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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 일기

부모가 된다는 것

토요일이었던 어젯밤 누런돼지가 기특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누런돼지가 읽던 책 하나를 건네주더니 '슬프다'고 하더군요.

뭐가 슬프지? 하고 봤더니...

 

 

<아빠가 좋아요>라는 책이었습니다.

아빠 코끼리와 아기 코끼리가 함께 목욕을 하고 아빠가 코로 아기를 비행기를 태워주고 함께 모래밭 위에서 노는 내용입니다.

 

아기 코끼리는 말합니다.

"아빠, 있잖아요.

난 아빠가 좋아요."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있잖아요.

난 이다음에 커서 꼭 아빠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처음에는 '이게 뭐가 슬프지' 했습니다.

"왜 슬퍼?" 이유를 물었더니...

'감수성 누런돼지님'의 설명.

"아기는 어른이 되고 어른이었던 아빠 코끼리는 사라질 테니까..."

 

더 물었더니

저 그림 속 황혼 너머로 아빠 코끼리는 사라질 것 같다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어릴 때는 아빠가 온세상인 것 아빠를 좋아하지만 좀더 크면 품을 떠날 테니까..."

 

처음엔 남편의 말을 듣고 웃고 말았는데

생각할수록 저도 살짝 서글프더라고요.

 

 

 

 

기특이가 100일이 갓 넘었을 때 코감기가 걸렸었습니다.

조그만 아기가 콧물을 흘리고 있으니 어찌나 미안하고 안타깝던지...

 

어릴 때 제가 조금만 아프면 어쩔줄 몰라 하셨던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열살 땐가 수영장에서 넘어서 앞니를 다친 날이었습니다.

입에서는 피가 많이 났고 대충 응급처치만 한 채 집 앞 정류장에 와서 엄마를 만났을 때

엄마는 제 등을 철썩 소리나게 때리셨습니다.

"왜 그랬어 왜! 엄마가 수영장 가지 말라고 했잖아" 라면서...

그 날 전 엄마가 수영장 가지 말라고 하는 걸 박박 우겨서 갔었거든요.

 

서른이 넘을 때까지 엄마의 그때 행동이 묘하게 서운했었습니다.

"다친 건 나였는데..."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 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을.

다친 건 나였지만 더 속상했던 건 엄마였겠구나...

 

부모가 된다는 것은 부모를 이해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저는 엄마가 되면 뭐든지 뚝딱뚝딱 해낼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기를 위해서, 자연스럽게 쓱싹쓱싹 해낼 수 있는 건 줄 알았어요.

 

아니더라고요.

뭐든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모유를 먹이는 것도, 잠을 재우는 것도, 옷을 갈아입히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도.

한 번에 자연스럽게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를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며 나를 키웠을까, 엄마는 이렇게 불안하고 우울할 때 어떻게 힘을 냈을까...

 

이제는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를 이해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누런돼지도 마찬가지였겠지요.

 

그래서 저 그림책이 슬프게 느껴졌을 겁니다.

10여년 전 서울로 올라와 아버지, 어머니와 떨어져 살게 된 남편이

이제는 그 엄마아빠를 자주 봐야 1년에 몇 번 밖에 볼 수 없게 된 남편이

기특이를 볼 때 '언젠간 나를 떠나 멀리 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하겠죠.

 

어제는 그래서 저도 기특이를 꼭 안고 잠들었습니다.

작은 아기가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는데 참 고마우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이렇게 초보 엄마아빠가 '부모'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요.

 

새삼 기특이에게 고맙습니다.

내 엄마아빠를 이해하게 해줘서.

아마 남편도 같은 마음일 겁니다.

 

 

아빠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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