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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최재천 교수 “양성협력 시대”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59·행동생태학·사진)는 “진정한 의미의 ‘여성시대’는 남녀 모두 성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 양성평등, 양성협력 시대”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학계에서 대표적인 여성친화적인 생물학자이다. 미토콘드리아 DNA 등을 근거로 “생물학적인 족보는 여성의 혈통만 기록한다”는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해 호주제 폐지(2005년 3월)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런 최 교수를 최근 만나 일과 가정에 대한 남녀 역할 문제를 들어봤다. 그는 10여년 전 삼성전자 임원 워크숍에서 특강했던 얘기부터 꺼냈다. 최 교수는 “당시 강의실에 100여명의 신임 임원이 있었는데 여성은 딱 2명이었다. 이렇게 가면 삼성은 망한다고 얘기했다”며 “여성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조직이나 국가가 21세기에 살아남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최소 임계질량(미니멈 크리티컬 매스: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한의 양)’ 개념을 들어 여성인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어난 뒤에야 본격적인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최초의 여성 임원이나 학장이 나왔다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심 세력권에 여성들이 일정수 이상 들어가 의사결정권을 갖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류 역사와 자연계를 예로 들며 이제 남성들도 사회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물 사회는 사실 암컷 위주로 돼 있다. 인간은 농경을 하면서 남성이 경제권을 손에 넣고 여성을 지배하는 구도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남성이 사회를 한쪽으로 끌고 왔지만 이는 25만년의 인류 역사에서 최근 1만년 정도에 불과하다. 결코 자연스러운 상황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남성 쪽으로 기운 추가 이제 움직이며 여성시대는 시동이 걸렸다. 추는 절대로 가운데서 딱 멈출 리는 없고 여자 쪽으로 기운 뒤에나 평형을 찾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사람을 닮은 침팬지 사회도 수컷이 힘은 세지만 가장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늘 암컷이다. 새끼를 갖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언제부턴가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게 삶의 최대 목표가 아닌 것처럼 돼버렸는데 인간도 생물이며 가장 중요한 건 번식이라는 사실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적어도 동물에게 수컷은 오히려 왔다가 사라지는 존재이다. 수컷의 95%는 암컷 근처에도 못 가고 쭉정이로 살다가 갈 뿐”이라며 “일부일처제가 법으로 보장되는 인간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냐”고 했다.
최 교수는 다만 젖을 먹이는 포유류의 속성상 양육이 1차적으로 어미의 몫이 돼버린 본질적 한계는 직시했다. 최 교수는 “현대사회에서도 남성들이 먹이를 전달하기 위해 양육 자체에는 손을 떼고 있는 셈인데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며 “자식 기르기는 동물로 태어나서 가장 보람되고 기막힌 경험이므로 아빠가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래야 남성도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아빠들은 일의 노예이다. 세상에 이처럼 불쌍한 동물은 없다”며 “젊을 때는 자식 키우는 재미도 느끼지 못하고, 나이 들어서는 고맙다는 말도 못 듣고 쓸쓸하게 늙어간다”고 했다.
최 교수는 “여성시대가 온다고 남자들이 큰 걸 뺏긴다고 생각할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남성이 일 부담을 덜고 평등하게 잘 만들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중략)
남성의 육아에 참여는 어떻게 보나
현대사회에서 남성들이 전부 브레드 위너(가장)를 하느라고 자식 양육에 손을 떼버린 거다. 해결책은 지극히 생물학자다운 얘기지만 아빠들이 자식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자식 기르는 건 주로 엄마가 하는 일이고 아빠가 가끔 도와줄 게 아니라 같이 하는 일이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남성에게도 행복한 날이 올 것이다.
대한민국 아빠들처럼 세상에 불쌍한 동물이 어디 있나. 일의 노예다. 일이 잘 되는 사람이야 즐기고 그러겠지만 대부분 직장인들은 힘든다. 아이가 깨기도 전에 출근해 밤늦게 야근이다 뭐다 술 한잔 해야 하고 그러다 들어오면 애는 벌써 자고 있다. 그렇게 키워놓았지만 나중에 자식하고 대화가 안 된다. 명절날 모습은 어머니가 있는 부엌 옆에 가서 다 있고 아버지는 저쪽에서 씨름이나 보고 있다. 대한민국 아빠들은 너무 외롭다.
이 세상에 동물로 태어나서 할 수 있는 가장 기가막힌 경험이 자식 기르는 거다. 제가 너무 여성인권에 대해서 떠들고 다닐 때 여성들 중에 저한테 끊임없이 해준 얘기가 “자식 기르는 재미만큼은 뺏어가지 말아주세요”라고 했다. 저는 그 마음 이해한다. 정말 제 아들 키우던 건 가장 버리기 힘든 일이다. 동물로 태어나서 가장 큰 보람이라는 게 내 새끼 낳아서 기르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나라 남성들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결국 키운 재미는 아내만 보고, 나중에 고맙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하는 게 남성이다. 그러고는 말년에 쓸쓸하게 가고 아내한테 버림받고 밥 달라는 얘기도 못하고. 꼭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뭐가 있나.
물론 지금은 남자가 아이 보기 힘들다. 저는 집에서 아이를 자주 봤는데 당장 옆집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바깥 양반이 직장이 없으세요?”라며 이상하게 봤다. 사회가 변해서 정말 ‘여성시대’가 오면 1주일에 3일은 남자도 집에 있을 수 있겠지. 집에 있으면 아내가 일하러 나가고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우리도 까페에서 만나 수다떨 수 있다.
진짜 ‘여성시대’는 무엇인가
완벽한 여성시대는 남편이 3일, 아내가 3일 일하고 주말은 가족 모두가 즐기는 거다. 남자와 여자가 반반씩 나눠서 하는 게 시대다. 남녀가 다 ‘성’이라는 게 사회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 것이다. 사실은 여성시대가 아니라 양성평등, 양성협력 시대다. 그러면 남자도 훨씬 더 행복해질 것이다. 남자들이 뭔가 큰 거를 뺏긴다고 생각할 게 아니다. 우리 남성에게도 얼마나 유리하고 평등하게 잘 되느냐고 지혜를 모을 일이지 반대할 일이 아니다.
워낙 우리나라 여성 능력이 탁월해서 다른 나라보다 상당히 유리하다. 여성들이 남성만큼 교육받은 나라가 흔치 않다. 미국도 우리만큼 안 된다. 국제 경쟁력 차원에서 우리가 반드시 나아질 것이다. 다른 나라도 남녀가 일하고 우리도 남녀가 일하면 우리가 유리하다. 남자가 혼자 벌어서 사는 것보다 남녀가 반씩 일하는 경제수준이 반드시 올라간다. 그러는 동안에 남자들도 삶의 여유를 좀 가질 수 있다. 왜 대한민국 남성은 이런 게 허용이 안 되는 불공평한 세상에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