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아영기자의 폭풍육아]‘주말 공동육아’ 1년째 부모인 우리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우리 주말마다 한 집에서 아이들을 보면 어때요?”
시작은 내 제안이었다. 깊이 생각해 본 제안은 아니었다. 지난해 봄 둘째 육아휴직 중이던 나는 복직을 앞두고 있었다. 휴직 기간 첫째 두진이 유치원 하원을 하면서 유치원 엄마들과 친해졌다. 엄마들과 서로의 집에 초대하면서 아이들에 대한 에피소드, 양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게 됐고 내게도 ‘동네 친구’가 생긴 것이다. 엄마가 자주 친구와 놀 수 있게 해주고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자 아이는 더 좋아했다. 엄마들의 안전한 보호 아래 친구들과 놀 수 있었으니까. 물론 놀이를 하다가 싸우기도 하고 모든 것이 ‘내 것’이라 우기는 터에 곤란할 때도 있었지만 그 곤란함 속에서도 아이들은 장난감을 나누는 연습, 차례를 양보하는 연습을 하며 자라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엿보면 흐뭇했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친구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구나.’
‘주말마다 갈 곳 없다’며 말 주고받다
한 집씩 돌아가며 아이들 보자 제안
그렇게 ‘주말 공동육아’가 시작됐다
그런데 복직하면 이런 시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문득 두려웠다.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점점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맞벌이 부부라 이런 시간을 자주 마련해줄 수 없다는 게 걱정스러웠다. 어느 날 유치원 엄마들과 주말마다 갈 곳이 없어서 곤란하다는 말을 주고받다가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 “우리 주말마다 한 집에서 아이들을 보면 어때요? 그날은 그 집 부부가 아이들을 다 돌보고 나머지는 쉬는 거예요. 어때요?” 3명의 엄마는 다들 흔쾌히 좋다고 했고 그렇게 ‘주말 공동육아’가 시작됐다.
처음 공동육아를 하던 날. 오전 10시 ㄱ네 집에 아이들을 데려다줬다. 엄마아빠 없어도 된다며 친구들과 신나게 놀겠다는 아이를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 오늘은 이준이만 보면 된다!’ 우리 집에서 돌보는 아이는 1명 줄어들었지만 ㄱ네 집은 6세 아이만 4명이 됐다. ㄱ네 엄마아빠는 점심을 먹이고 다 같이 공원을 갔다고 했다. 아이들은 장난감으로 다양한 놀이를 했는데 가장 좋아했던 것은 ㄱ네 이층침대에서 불을 끄고 공연하는 것이었다고.
오후 5시 아이들을 데려갈 시간이 됐다. 엄마아빠가 ㄱ네 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지만 두진이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놀았던 시간이 너무 즐거웠으니까. ㄱ네 엄마는 말했다. “한 명 보는 것보다는 힘들었지만 네 명 본다고 곱하기 4가 되지는 않더라고요. 할 만했어요!” 나머지 부부들은 쉬었지만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노니 육아 부담이 아이 수만큼 증가하진 않았다. 얼마나 현명한 방법인가.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거워한다는 게 뿌듯했다.
삽화 김상민 기자
■ 주말 공동육아 1년
그렇게 네 집이 주말 공동육아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물론 주말에 집안일, 경조사가 있으니 매주 공동육아를 할 수는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기로 하면서 내심 ‘이게 얼마나 오래 갈까’ 싶었다. 그런데 1년이 훌쩍 넘었다. 비결은 뭘까. 아빠들이 친해졌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이미 꽤 친해진 상태에서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진정 공동육아를 하기 위해서는 아빠들의 호응이 중요했다. 강화도에 할머니집이 있는 ㄴ네가 할머니가 여행 가셔서 집을 비우니 “놀러 오라”고 제안했다. 중요한 타이밍이었다. 아빠들이 이 모임에 호응을 할지, 하지 않을지를 볼 수 있는 리트머스 같은 타이밍.
아빠들 친해지자 ‘식사’ 일정 추가 돼
서로 이름 부르고 급할 때 아이 부탁
“당직이라서요…재워줄 수 있을까요”
강화도 옥토끼센터에서 처음 조우한 4명의 아빠들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아이를 돌보는 데만 집중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색한 분위기가 깨진 건 저녁에 강화도 할머니집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면서였다. 엄마들은 일부러 아빠들을 한 상에 앉게 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엄마들끼리 수다를 하다 아빠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궁금해서 귀를 기울였다. 다양한 이야기가 들렸다. 아이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정치, 사회 분야 이야기로 확장되며 이야기 주제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었던 것. ‘됐구나’ 싶었다.
그 이후부터 주말 공동육아를 하는 날 일정이 추가됐다. 오후 5시 각자 집으로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공동육아 당번 집에 모여서 모든 가족들이 저녁을 함께 먹는 것으로. 이제 맥주 한잔하며 각자 회사 이야기도 나누고 정치적 토론도 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자주 만나게 되자 서로의 이름도 알게 됐다. 물론 여전히 ‘누구네 엄마, 누구네 아빠’라고 많이 부르지만 서로의 이름도 부를 수 있는 사이가 된 것. 한 아빠가 말했다. “저는 아영씨, ㄷ씨, ㄹ씨라고 이름을 부르는 게 좋더라고요. 우리는 누구의 부모이기도 하지만 우리이기도 하니까요.”
가장 좋은 것은 급할 때 아이를 부탁할 수 있다는 거다. 공동육아니까. 쉬는 금요일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시간을 맞출 수 없을 때 “언니, 저 좀 늦는데요. 잠깐만 놀이터에서 데리고 놀아줄 수 있으세요?”라고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것. 거꾸로 부탁을 받기도 한다. “야근 당직 일정이 겹쳐서요. 아침에 등원할 사람이 없는데 아영씨가 재워줄 수 있어요?” 물론 나도 흔쾌히 가능하다고 답한다. 내 아이를 돌봐주는 만큼 나도 ㅁ을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같이 아이들을 돌보기로 한 거니까. 우리 집 칫솔 꽂이에는 ㅁ의 칫솔도 꽂혀있다. “ㅁ이가 자고 갈 때 써야 하니까 엄마 절대 빼지마”라는 두진이의 지시(?)가 있어서다.
■ 마을에서는 이렇게 길렀을까
아이들을 같이 돌보면서 집마다 아이를 기르는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엿본다. 처음에는 문화가 다르니 많이 조심했다. 우리 집에 왔다고 해서 우리 아이한테 하듯이 할 수는 없었다.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에서 공동육아를 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아이를 더 조심시키게 됐다. 장난감을 선제적으로(?) 나눠주게 하고 손님인 친구들을 배려할 수 있도록.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아이들 특성을 알 만큼 시간이 지났고 아이들을 재량껏 돌볼 수 있을 만큼 신뢰가 쌓였다. 그런 만큼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할 수 있게 됐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주기로 한 날이었다. 순서대로 줄을 서라고 했더니 ㅁ이 “이모는 맨날 나만 꼴찌로 줘요”라고 울먹였다. ‘ㅁ을 1등으로 준 것도 여러 번이었는데.’ 아마 공동육아를 하던 초반이었으면 “그래? ㅁ이 먼저 먹을까. 친구들이 양보해줄래” 했을 텐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ㅁ아, 이모가 ㅁ이 1등으로 준 게 이모 기억으로만 3번이나 나는데? ㅁ이는 3등으로 줄 섰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줄래? 이모가 빨리 만들어줄게.” ㅁ이가 머쓱한 듯 웃었다. 이제 아이별로 협상을 할 수 있을 만큼 친해졌다. 아이들도 친해진 만큼 나를 ‘이모’라 부르는데 스스럼없다.
이렇게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내 어릴 적이 생각난다. 옆집 친구가 엄마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엄마는 옆집 엄마와 시간을 보냈고 나와 친구는 집 앞 골목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술래잡기를 했다. 골목에 나온 다른 친구들까지 편을 갈라 신나게 고무줄을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저녁이 되면 엄마는 만든 반찬을 옆집에 가져다주라고 하시기도 했다. 어린 나는 쟁반 위의 접시가 깨지지 않도록 발걸음을 조심해 옆집까지 배달(?)했다. 돌아오는 쟁반 위에는 옆집 엄마가 주신 반찬이 담겨 돌아오는 길에도 발걸음을 조심해야 했다.
요즘 엄마들이 육아 힘들어하는 이유는
남편도, 골목도, 친구도 사라진 집 안에서
아이와 둘이 지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골목 문화가 살아있던 90년대 나는 그렇게 자랐다. 왜 요즘 젊은 엄마들은 다양한 육아 도구가 생기고 정부의 지원도 늘고 있는데 육아를 힘들어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답한다. 남편도, 골목도, 친구도 사라진 집 안에서 아이와 둘이 지내고 있어서 그렇다고. 그게 ‘독박육아’다. 아파트가 빽빽한 2018년의 서울에서 아이들은 어쩌면 집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 어른들에게도 ‘육아 친구’가 필요하다
아이가 클수록 육아는 막막하다. 내가 아이를 잘 기르고 있는 걸까. 영어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주변에 있어서인지 한글도 잘 모르는 두진이가 영어 단어를 말할 때 고민스럽다. ‘영어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긴 싫은데. 이게 과연 맞는 걸까.’ 크고 작은 고민이 생길 때마다 공동육아 친구들과 소통한다.
“누구누구는 일주일에 5일씩 영어 학원을 다닌다면서요”라고 시작되는 대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교육과정이 시작되는 것은 이유가 있겠죠.” “구글 통·번역기가 나오는데 얘네들이 크면 아마 영어 공부를 지금처럼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어요.” “한글도 모르는 애들한테 영어 가르치면 안 좋다면서요. 문자 교육이 아이들의 창의력 발달에 방해가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친구들은 나보다 더 현명하다.
아이가 클수록 육아는 막막하다
‘아 모르겠다’ 하는데 친구가 말했다
“같이 고민해보자”…왠지 용기가 난다
물론 공동육아 안에서 논의한다고 육아의 옳은 방법을 도출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을 기르는 옳은 방법은 각자 다를 테니. 아이에게 맞게, 반발짝 앞장서서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게 부모가 아닐까. 그런데 그 역할을 맡는 게 가끔은 버겁다. 세상의 육아서와 세상의 육아 팁들은 다들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지만 과연 그게 맞는 걸까.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갈등을 겪으면 더 복잡해진다. 도대체 부모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 걸까. ‘아 모르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동갑내기 친구가 말했다. “같이 고민해보자. 같이 고민할 그대가 있어 좋소.” 뭉클했다.
어른들에게도 육아의 고민을 나눌 친구가 필요하다. 우리 아이를 잘 알고 나에 대해 잘 아는 친구. 육아를 하는 내내 육아의 ‘정답’을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일에는 정답이 없을 테니까. 그러나 나 혼자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아이를 기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왠지 용기가 난다. 귀한 친구들을 얻었다. 이 주말 공동육아가 오래 지속되길.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함께 성장하는 관계가 되길.
주말에는 또 강화도에서 네 가족이 만나기로 했다. 기대된다. “두진아, 이번주에 강화도에 가기로 했어.” 두진이가 말했다. “우와 진짜? 너무 신난다. 엄마 얼른 토요일이 왔으면.” ‘응, 엄마도 네 맘이랑 똑같아.’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7131639005&code=21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