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특' 일기

<이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됐다> 발간 소식

누런돼지 2018. 9. 29. 23:51

두진이는 요즘 글씨쓰기를 꽤 좋아한다.

책상에 앉아 한글 공부책에다 '바 버 보 부 브 비'를 열심히 따라썼다.
그러고 난 뒤 페이지 위에다 80점이라고 적는다.
왜 80점이라고 적었어? 물으니
밑에 "쁘 뿌 삐" 라고 잘못 쓴 글자들을 가리켰다.
마침 이준이가 "똥쌌어 똥쌌어"를 연발한다.
바지를 만져보니 오줌이 줄줄 새 있다.
바닥에 갈긴 오줌은 매트를 뚫고 바닥까지 진격했다.
걸레를 가져와 매트를 뒤집고 오줌을 닦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는
"왜 80점이야? 하려고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나 100점이야~"
하고 지나가는 말로 두진이에게 말했다.

전쟁 끝에 애들을 재우고
책상 위에 앉아 무심히 두진이가 남긴 책을 다시 봤다.
80점에 줄이 쓱쓱 그어져 있고 그 옆에 '100점'이라고 다시 쓰여 있었다.
코끝이 찡했다.
아이들은 사소한 말, 작은 몸짓 하나에도 꺄르르 웃는다.
별 거 아닌 장난감 놀이를 몇 번 해 주면 아빠는 최고가 된다.

그거 하나가 힘들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늘 바닥을 들여다보는 일의 연속이다.
체력이 바닥나고, 인내심이 바닥나고, 결국은 정신력도 바닥난다.
소리 지르고 궁디 팡팡을 한바탕 하고 나면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하면서 또 바닥을 들여다보게 된다.

어렸을 때 나는 정말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나 모르겠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세상에는 해 보지 않고도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듣고
대충은 이해할 수 있는 일들도 많겠지만
육아는 그런 일에 속하지는 않는 것 같다.

가끔은 그런 저런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지만
블로그를 찾아보니 2016년이 마지막이었다.
다행히 아내가 많은 이야기를 써냈다.
책이 출간되기 전에 리뷰 겸 해서 두 번이나 읽었다.
몇 번이나 본 내용인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우리 얘기여서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아내는 편지를 잘 쓰는데, 꼭 편지 같은 책이다.
읽다보면 육성으로 들리는 듯한 착각도 든다.
평소 말투가 떠올라 피식 웃다가도 어느샌가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조가 강한 듯 느껴지지만 따뜻한 책이다.

많은 책에서 육아는 언제나 개인의 고난이나 영광으로만 묘사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우리 모두의 고민이 돼야 한다는 걸
아내의 글에서 배우고 곱씹는다.
육아와 일상이라는 작은 입구에서 출발하지만
어느새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큰 출구로 나와 돌아보게 되는
그런 글들이 가득하다.

올해로 벌써 첫째가 나온지 6년이 다 되어 간다.
내년에는 벌써 학교를 간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걸 배웠다.
자칫 뭘 했나 싶을 정도로 허망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시간을
빼곡히 책으로 써서 내 준 아내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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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그 동안 쓴 글을 모아 책으로 엮어냈습니다.

쑥스러워하는 아내 대신 제가 대신 소식을 올립니다.

더하고 고쳐쓰고 다듬느라 어느새 1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네요.

이 블로그에 들어와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과 공감의 댓글을 남겨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책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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