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아영기자의 폭풍육아] 양육의 균형추 잡느라 분투…그래도, 나는 내가 엄마인 게 좋다
억울했던 마음을 기억한다. “누나니까 양보해야지.” 내가 제일 싫어하던 말이었다. 그 말을 듣던 나는 가끔 내 발끝을 보고 있었다. 화가 나서 오므려지는 발을 뚫어져라 보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왜요?”라는 질문은 할 생각을 못했지만 항상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억울했던 작은 마음들. 세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는 장녀. 형제는 내게 그 애뿐이었고 나는 그 애가 가끔 좋고 자주 미웠다. 잠든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을 정도로 예뻐했던 기억도 있지만 싸웠던 기억이 더 많다. 부모님 앞에 서면 늘 나보다 어리고 서툰 그애를 도와줘야했고, 도와주는 나는 칭찬받았지만 먼저 뭔가를 하려고 하는 나는 자주 제지받았다. “동생은 아직 잘 못하잖아. 누나가 도와줘야지.” 나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다.
일곱 살이 된 첫째를 보면 어린 내가 떠오른다. 엄마가 된 나는 첫째에게 말한다. “동생은 아직 잘 못하니까 두진이가 도와줘야지.” 말을 하고선 마음이 안 좋아지면 따로 꼭 두진이를 불러서 말해준다. “동생이 참 귀찮지? 동생은 원래 그런 존재야. 귀찮은 존재. 엄마도 외삼촌이 얼마나 귀찮았다고. 그런데 동생은 엄마 아빠가 세상에 없을 때도 네 곁에 있어줄 사람이야.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두진이가 그 말을 다 알 순 없을 텐데도 가끔 그 말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면, 부모로 살면서 균형을 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깨닫는다.
어린시절 들었던 “누나니까 양보해야지”
첫째를 보면 당시 억울함이 떠오르지만
결국 해버린 말 “형이니까 도와줘야지”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외삼촌 눈사람을 만든 아들들.
■ 둘째를 질투하는 장녀 엄마
‘형아 따라쟁이’ 둘째를 보면 묘한 부러움이 차오른다. 이제 겨우 세 살인 둘째에게 일곱 살 형은 너무 재밌는 선생님이다. 형아가 블록으로 활주로를 만들고 ‘천천히’라고 써놓은 포스트잇을 세 장 붙인 뒤 활주로 끝에 ‘출발’이라고 적어놓는 것을 유심히 보고 있더니 둘째도 옆에서 활주로를 만들기 시작한다. 어설프게 블록을 이어 붙이더니 “엄마, 여기는 이준이 활주로야”라며 웃는 작은 얼굴. 그 모습에 기특했다가도 묘한 부러움이 솟았는데 순간 그 부러움의 정체를 깨닫고 쑥스러워서 혼자 막 웃었다. 세 살 둘째가 서른네 살 남동생처럼 느껴진 거였다. 나의 아기인 둘째를 남동생처럼 생각하고 질투하다니. 모방 대상이 있다는 게 부러웠다. 따라 할 형제가 있다는 것,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 자신의 선생님이 있다는 것, 엄마 아빠도 해주지 못하는 것을 형이 해준다는 것 말이다.
가끔 남편에게 말하기도 했다. “이거 봐, 둘째들은 정말 편하겠다. 저렇게 형아가 하는 것을 따라하기만 해도 되니.” 고등학교 가기 전에 나는 ‘야자’가 있는지도 몰랐다. 주변에 그걸 알려줄 언니, 선배가 없었다. 동생은 내 존재 덕분에 편하게 안 사실을 나는 미리 알 방도가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을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을 때 ‘언니나 오빠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실제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놀잇감을 다양하게 만들어 친구들을 이끄는 편이다. 뽁뽁이를 가지고 소근육 활동을 할 때 둘째가 먼저 친구들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볼까?”라며 머리에도 써보고 얼굴도 가려보고. 친구들이 이준이의 모습을 보고 따라 했다는 어린이집 일기장 기록에 나는 기특하면서도 묘한 감정이 들었다. “다 형한테 배운 거지, 둘째니까 빠르지!”
기질적으로도 첫째와 둘째는 다르다. 첫째는 조심스럽고 주저하고 걱정이 많은 성격이지만, 둘째는 겁이 없고 자유로운 성격으로 여유롭고 웃음이 많다. 모르는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타도 “저 세 살이에요. 안녕히 가세요~” 먼저 말 거는 아이.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고 나오면서 “또 올게요~”라는 아이. 소아과에 가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나, 코 안 나와”라며 콧물 제거는 오늘 하지 않겠다고 먼저 선언(?)하는 아이. 이제 30개월이 된 둘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항상 웃음이 나온다. 첫째는 부끄러워서 낯선 사람에게 인사를 잘 못했다. 억지로 인사를 하게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해서 그냥 넘긴 적도 많지만 속으로는 ‘왜 이런 것도 어색해하는 거야?’라며 답답해한 적도 많다.
첫째는 온전한 사랑 빼앗긴 것 같아서…
둘째는 사랑을 독차지한 적이 없어서…
엄마인 나는 두 아이 모두에 애잔함 느껴
아마 태어난 순서의 차이가 아니라 성격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겁이 많지만 한곳에 서서 오래 사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집중력과 관찰력을 가진 첫째와 사교적인 성격의 둘째의 차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이 둘이 어떻게 자랄지도 현재로선 전혀 알 수 없다.
■ 어린 나를 안아주고 싶을 때
형제가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로 자라면 좋지만 문제는 항상 싸울 때 벌어진다.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겠다고 다툼을 벌일 때, 처음에는 중재를 시도한다. “두진아, 이준이가 가지고 놀던 거잖아. 이번엔 형아가 양보해.” 아니면 “이준아, 형아한테 나눠줘야지. 혼자 다 독차지하려고 하면 어떡해.” 물론 아직 어리니까 중재가 먹히지 않는다. 그럼 결국 “둘 다 하지마. 나눌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장난감 가지고 놀 필요도 없어.” 둘 중 하나가 울어야 끝난다. 그때마다 이게 잘하는 훈육인지 헷갈리고 머리가 멍하다. 둘 사이에 끼여 이도저도 못하고 있을 때 그제서야 내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아이 둘을 낳고 알게 됐다. 첫째는 온전히 부모를 독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 그래서 단독자처럼 사랑을 독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기억이 너무 어릴 적이라 자기 자신에게는 남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다. ‘장녀였던 나도 이렇게 온전하게 사랑받은 시절이 있었겠구나, 엄마 아빠에게 나뿐이던 시절이 있었겠구나’라는 사실을 아이를 낳고 알게 됐다. 언제든 모방할 대상이 있어 살기 편한 것처럼 보이는 둘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자가 있어 혼자 사랑받는 시절을 가질 수 없다는 슬픈 사실도 알게 됐다. 그래서 엄마가 된 나는 아이 둘을 보면 애잔하다. 첫째는 온전하던 사랑을 빼앗긴 것이 애잔하고, 둘째는 한 번도 혼자서 사랑을 독차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애잔하다.
둘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하면서 곤란할 때, 발끝을 노려보느라고 엄마 아빠 표정을 보지 못하던 어린 시절 나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때 나는 내 억울함에만 집중하느라 부모님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이제야 나를 기르던 부모님들의 곤란함을 이해하게 된다. ‘그때 꼭 동생 편을 들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구나.’ 뒤늦은 깨달음. 아이들을 키우며 부모님의 마음을 만난다.
아이들 중재해보니 부모님 마음 이해돼
“서로 더 사랑한다”는 형제의 애정 공세
삶의 고단함 버티게 하는 힘이자 행복
또 어린 나를 다시 만나고 가끔은 그때의 나와 화해하기도 한다. 부모 마음을 몰라 오해했던 그때의 어린 나를 안아주고 싶어질 때, 곤란했을 부모님의 어깨를 안아드리고 싶어질 때 양육의 균형추를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닫는다.
아이를 낳기 전엔 아이를 낳고 기르면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된다고 생각했다. 뭐 그렇게 성숙한 인간이 되려고 생각했는지 싶지만. 막상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내 바닥을 보는 일이 너무 많았다. 아이를 기르는 것만으로 좋은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내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아이들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지 못한다고 느낄 때, 아이를 양육하는 일에 대해 너무 가벼이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이를 기르면서 아이이던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볼 때, 아이였던 나를 기르던 부모님의 마음을 돌아볼 때 제법 할 만한 일이었구나 생각해본다.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도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 사랑을 경쟁하는 형제
어젯밤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다 같이 누웠다. 둘째에게 흔한 레퍼토리인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를 물었다. 둘째는 당연히 “엄마”라는 단답을 했다. 그래서 “그럼 아빠는?” 묻자 둘째는 형아한테 떠넘긴다. “아빠는 형아가 좋아해.” 아빠는 그렇게 떠넘겨도 되는 존재인가 보다. 조용하던 첫째가 “나도 엄마 좋아해~”라고 해서 둘째에게 “형아도 엄마 좋대”라고 하니 둘째가 하는 말. “아니야~ 엄마는 내가 좋아해~~”
집 안에서는 나도 ‘슈퍼스타’다. 퇴근만 하면 내게 안겨드는 아이들을 보고 남편이 붙여준 별명이다. “엄마가 아주 슈퍼스타여.” 형제를 키우는 또 다른 재미. 그들은 나에 대한 사랑을 경쟁한다. 작은 아이들이 나를 향한 사랑을 경쟁할 때 “제발 좀 엄마 혼자 있자”라면서도 입은 귀에 걸려 있는 게 아들 둘 엄마의 속마음이다. 아빠가 아무리 잘해줘도 엄마를 찾는 이 유전자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내 배안에서 열 달을 살았던 힘일까.
육아와 회사 일을 병행하는 게 너무 벅찰 때 가만히 생각했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 퇴근한 나를 맞으러 아이들이 뛰어나올 때, 그리고 아이들을 재운 뒤 잠든 얼굴을 쓰다듬을 때. 다른 순간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구조에 분노하는 글을 많이 썼지만 아이를 낳은 사실 자체를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상상한 적도 있다. 다시 태어나 선택할 수 있다면 난 엄마가 되길 선택할까. 답은 너무 빨리 나왔다. 다시 또 엄마가 될 것이다. 태어날 곳을 바꾸거나 직업을 바꾸고 싶긴 하지만.
아이들을 기르는 일은 여전히 고되지만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 아이들이 내게 주는 웃음, 아이들이 내게 전하는 사랑이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 이제 나는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여전히 회사와 나와 아이들 사이에서, 아이와 아이 사이에서 양육의 균형추를 잡는 것은 너무 벅차지만 나는 내가 엄마인 것이 좋다. 그래서 좀 균형을 잘 잡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작은 다짐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