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특' 일기/폭풍육아

[임아영 기자의 폭풍육아] ‘극한직업’ 초등 1학년 학부모…“아, 차라리 내가 학교에 가고 싶다”

누런돼지 관리자 2019. 3. 24. 13:50

3월 벼락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다. ‘돌봄 공백이 전면화되는 초등 1학년’, ‘경력단절여성이 가장 많이 생긴다는 초등 1학년’, ‘엄마가 아이보다 더 바쁜 초등 1학년’에 대한 악명 높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걱정이 컸다. ‘실제 그 정도는 아니겠지’ 기대했지만 아이를 초등학교에 며칠 보내보니 결론은 ‘역시 그런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어’였다. 첫째 주 금쪽같은 휴가를 쓰며 두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부터 시작해 매일 준비물과 아이 할 일을 챙겼다. 겨우 3일이 지나자 목이 쉬어버렸다. “아, 내가 초등학교 가는 게 낫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던 일주일이었다. 이제 입학 후 할 일은 대충 끝났을까. 안타깝게도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둘째 주부터는 남편이 수행 중이다. 3월이 지나면 좀 나아질까?


 

돌봄 공백이 전면화 되는 초등 1학년
아이보다 엄마가 더 바쁘다는 이야기
설마했는데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월요일에 입학식이라니 선생님들도 전쟁일 거야.” 교사인 친구가 말했다.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입학식을 하면 하루 이틀 지나고 주말이 오니까 좀 여유를 가질 수 있는데 월요일에 입학식을 하면 5일 내내 아이들과 적응해야 해서 선생님들도 힘들다는 얘기였다. 1월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내러 학교에 갔을 때 초등학교 입학 안내 설명서를 받아왔다. 3월4일 입학식, 6일 학부모 연수. 입학식은 오전 11시, 학부모 연수는 오전 10시. ‘아니, 처음부터 이렇게 행사가 많다니.’ 이틀을 연차 낼 바에는 입사 10년이 되어서 쓸 수 있는 근속휴가를 이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입학식이 지나고 새로 알게 된 것은 3월에 또 학부모 총회, 반 모임, 학부모 상담 등이 이어진다는 사실이었다. ‘아, 왜 3월에 다 몰려있는 걸까.’


 

올해 초등학생이 된 8세 첫째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4세 둘째가 함께 집을 나섰다. 혼자 걸어다닐 수 없는 나이의 아이들과 함께 등·하교를 하면서 집과 학교, 집과 어린이집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부모의 시간은 금세 간다.

지난해 첫아이를 입학시킨 친구가 말했다. “회사에서 남은 육아휴직을 못 쓴다고 해서 3월에 회사 다니며 무슨 정신으로 초등학교를 보냈는지 모르겠어. 돌봄교실 추첨도 떨어져서 피아노, 태권도, 영어학원을 시간표 짜서 다니게 했는데. 셔틀을 탈 수 있는 학원을 등록하니까 더 비싸지는 거야. 근데 내가 아이 교육열이 엄청나서 그러면 돈이라도 안 아까울 텐데.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어하면 너무 괴롭더라고. 그래서 어찌어찌 1년이 갔네. 2학년 되면 좀 나아져.”

 

올해 초등학생이 된 8세 첫째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4세 둘째가 함께 집을 나섰다. 혼자 걸어다닐 수 없는 나이의 아이들과 함께 등·하교를 하면서 집과 학교, 집과 어린이집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부모의 시간은 금세 간다.


 

방과후 수업 등록은 수강신청보다 긴장
아이들은 왜 이렇게 일찍 집에 오고
챙겨야할 준비물은 어찌 이리 많은지…

 

■입학 첫 주에 해야 하는 일들


 

입학식 날 중요한 미션은 ‘방과후 수업 등록’하기였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너무 일찍 집에 온다. 월·수요일은 오후 12시40분에, 화·목·금요일은 오후 1시40분에 하교한다. 유치원, 어린이집 시절보다 빠른 하교. 집에 오는 시간을 늦춰야 했다. 1학기에는 다행히도 남편이 육아휴직을 할 수 있지만 2학기부터는 어차피 매일 ‘학원 뺑뺑이’를 돌아야 하니까.


 

보육을 빙자한 학원 뺑뺑이가 눈앞에 와 있는 순간. 사교육비 지출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방과후 수업 등록은 아주 중요한 ‘미션’이었다. 입학식 때 받은 방과후 수업 안내 책자에서 들을 수 있는 수업을 확인하고 그날 오후 8시부터 선착순으로 등록하는 구조다. 매일 듣도록 시간표를 짰다. 수업 종류는 로봇공학, 드론항공, 종이접기, 마술 등 다양했다. 아이가 관심 가질 법한 것들을 체크하고 아이에게 어떤 수업을 듣고 싶으냐고 상의한 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간표를 만들었다.


 

‘이대로 다 집어넣을 수 있어야 하는데….’ 오후 7시50분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대학 수강신청 때도 이렇게 긴장해본 적 없건만. 8시 정각이 되자 ‘빛의 속도로’ 클릭했다. 경쟁률이 높을 것 같은 수업부터 집어넣었지만 1개는 튕겼다. 재빨리 2순위 수업으로 신청하고 나니 몸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 다행히 방과후 수업을 다 넣으니 2시30분, 3시10분으로 하교 시간이 조정됐다. 여전히 퇴근 시간이 오후 8시쯤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시간이 너무 남는다.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있는 삶이 풍요롭겠지’ 생각하며 집 앞 피아노학원을 아이와 함께 가봤다. 다행히 아이가 피아노에 호기심을 보였다. 이제 대략 유치원 다니던 시절과 비슷하게 집에 오는 시간을 맞춘 셈이다.


 

하교 시간 맞추는 것만큼 중요한 미션이 ‘준비물 준비하기’였다. 어린이집, 유치원 시절에도 3월 준비물은 있었지만 초등학교에 가니 규모가 달라졌다. 입학식이 끝나고 당장 다이소로 향했다. 색연필, 사인펜, 크레파스 연필, 자, 지우개, 딱풀, 가위, 스카치테이프, 휴지, 물티슈, 개인 빗자루, 실내화 등등. 모든 물건에 이름 표시를 해야 한다고 해서 견출지도 샀다. 초보 학부모가 늦었는지 이미 12색 색연필, 24색 크레파스는 품절이었다.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SOS를 했고 남편은 광화문에서 색연필과 크레파스를 구했다. 집에 와서는 준비물에 이름표 붙이기 시작. 붙여도 붙여도 끝이 없는 이름표 붙이기. ‘사인펜에는 뚜껑이 왜 이렇게 많은가.’ 무념무상 이름표를 붙이고 실내화와 겉옷 등에도 네임펜으로 이름을 썼다. 야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색연필에 이름표를 붙이면서 말했다. “아니 이런 걸 다 챙겨주지 못하는 부모들은 어떡해?” 얼굴 모르는 아이들이 떠올랐다가 금세 사라졌다.


 

주양육자로 육아전쟁을 시작한 남편
등교·청소·하교…결국 녹초가 된다
그래도 분담이 가능한 우리는 운이 좋다

 

■아빠도 뻗어버린 육아

 

바통 터치하듯 첫 주가 지나자 남편이 주양육자가 됐다. 남편이 본격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이틀째. 집에 들어가니 집 안이 온통 장난감 천지였다. “아니, 집 청소 좀 하지.”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먼저 말이 튀어 나와버렸다. 그 순간 첫째가 말했다. “아빠는 정리도 안 하고 잤어. 놀아주지도 않고 누워서 잤잖아.” “뭐? 놀아주지도 않았다고?” 남편은 억울해했다. “너무 피곤해서 잠시 30분 누웠던 걸….”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남편은 아이들 등교, 등원시키고 화장실 청소를 했고 설거지를 했고 12시30분에 하교하는 첫째를 데리러 가서 운동장에서 놀아줬다. 동네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지금 애들이 두진 아빠를 적으로 상정하고 놀고 있어.” 회사에서 나는 그 장면을 상상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 중 아빠는 남편뿐이었을 거다. 아이들은 한 명 있는 신기한 아저씨를 적으로 생각하고 달리며 놀았겠지만 남편은 쓸쓸하지 않았을까. ‘아빠 육아’를 소재로 취재할 때마다 들었던 얘기다. “육아 동지가 없어서 외로웠죠.” 외로운(?) 남편은 아이들을 차례로 집으로 데려와 준비물을 챙기고 저녁을 먹였을 것이다.


 

퇴근 후에도 일은 이어진다. 나는 퇴근 후 쌀을 씻고 전기밥솥에 밥을 안치고 몇 가지 집안일을 했다. 학교 알리미 서비스를 엄마·아빠 둘 다 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학교에 제출해야 한다는 예방접종 기록을 확인하고 나니 어느새 9시가 넘었다. 남편이 멍한 눈으로 소파에 앉아 있기에 “남편, 애들 씻겨야지”라고 했다. 남편이 좀 피곤해 보였지만 한 명씩 애들을 맡아 씻기고 책을 읽어주고 재웠다. 10시 반 어제오늘 아이들 지낸 이야기를 물어보려 했으나 남편은 코 고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잠에 빠져 있다. 혼자 일어나서 맥주 한 캔을 마셨다. 남편이 주양육자가 되면 통쾌(?)할 줄 알았는데…. ‘남편도 내가 육아휴직하며 지냈던 생활을 짐작하게 되겠지. 그래도 신생아 키우는 것만큼 힘들겠어?’ 했었는데 쓰러져 자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그래 얼마나 힘들었겠니’ 묘한 동지의식이 피어올랐다.


 

그래도 할머니에게 육아 부담을 지울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다. 30대 부모가 해도 ‘빡센’ 이 초등 1학년 학부모 노릇을 할머니가 했다면. 그리고 남편이 안쓰럽대도 미안하진 않으니까. 남편이 육아를 담당하는 동안은 미안해하며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니까. 두 아이를 기르는 것은 ‘우리의 일’이니까. 그래도 첫 주에 휴가를 낼 수 있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우리 부부의 경우는 운이 좋은 경우다. 육아휴직도 못 쓰고 돌봄교실도 못 보내 막막한 경우가 더 많을 테니.


 

■부모가 학교 일에 참여한다는 것


 

“두진이 엄마, 학부모 총회에 두진이 아빠가 오는 거 아니죠? 꼭 엄마가 와야 해요.” 친한 엄마가 얘기했다. 물론 그런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가 와도 상관없는 자리지만 다들 엄마가 오는 자리에 아빠가 오면 어색해진다는 뜻일 거다. 그 말의 뜻을 너무 잘 알기에 남편에게 가라고 하기 어려운 마음이 올라왔다. 학부모 총회 때 반 대표를 뽑고 반 모임이 결성된다고 들었다. 녹색어머니회, 학교 내 봉사활동 등 학부모들이 나눠서 할 일이 분배되는 때도 그때다.


 

학부모 총회·녹색어머니회…다 엄마 몫
여전히 아빠가 끼어들기 어려운 구조
맘 편히 학교 갈 수 있는 날은 언제 올까

 

입학식과 학부모 연수를 끝냈는데도 학부모총회, 반모임, 학부모상담이 남아 있다는 게 부담스럽다. 학교 일에 얼마나 참여하는 것이 좋은 걸까. 유치원을 보내며 운영위원을 2년간 했다.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 회의 때마다 예·결산부터 급식까지 안건대로 심의했고 유치원이 운영되는 구조, 아이들의 교육 흐름, 그리고 유치원 원장·원감선생님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회사를 ‘쉬는 금요일’이면 쉬고 싶었지만 운영위 회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아이의 교육에 대해 다른 각도로 생각할 힘이 생겼다. 유치원 선생님들을 이해하게 됐고 선생님들과 더 좋은 교육을 논의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아이의 요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간간이 들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극성스럽게 아이 뒤를 따라다니는 부모보다 학교 일에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부모가 많아져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려면 아이 학교에 갈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생겨야 한다. 첫째와 같은 반이 된 동네 엄마가 3일간 조금 늦게 출근할 수 있게 배려받았다고 이야기하면서 말했다. “부장님이 양해해주셔서요.” 한국에서 아이 학교 일에 참여하는 것은 여전히 양해받아야 하는 일이다. 그 양해받아야 하는 일조차 엄마들에게 다 몰려있는 현실. 녹색어머니회라는 이름에서부터 다 ‘엄마’ 몫이다. 이렇게 엄마가 다 하라고 하면 아빠가 참여한대도 끼어들기 힘든 구조. 북유럽 육아 문화를 다룬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한국인 PD가 사무실의 빈자리를 가리키며 왜 비었느냐고 물었다. “아이 농구대회 응원하러 갔어요.” 자녀의 농구대회로 회사 휴가를 내는 게 가능해지는 사회는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