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아빠, 설거지하는 엄마

임아영

설거지를 좋아한다. 싱크대 앞에 서서 고무장갑을 끼고 개수통 물에 불린 그릇을 수세미로 문지를 때 음식 찌꺼기가 없어지는 게 좋다. 그 다음에는 비누거품이 묻어있는 그릇을 물에 헹궈낼 때 그릇이 다시 빛을 내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 또 그릇을 말린 뒤에 정리할 때 가지런해지는 게 좋다. 설거지는 내가 집안일 중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이렇게 말하면 #가사노동 을 무척 즐기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남편이고, 아이 밥을 주로 먹이는 사람도 남편이고, 아이 목욕을 주로 시키는 사람도 남편이다. 참을성을 요하는 일에 나는 치명적이다. 뭐든지 빨리 해내는 것을 즐기는 성격인데다 어떤 일을 해도 들이는 노력 대비 효용을 고려하는 내게 요리, 밥 먹이기는 정말 안 맞는다. 그러나 남편은 다르다. 꾸준하다. 남편을 좋아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남편은 빨리 시작하고 잘 지치는 내게 “괜찮다”고, “천천히 하면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금방 지쳐 떨어지는 나를 비난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다른 성격은 결혼 후 싸울 때마다 서로를 답답해하는 이유로 변질되고 말았지만. 모든 부부가 그렇지 않겠는가. 한 사람의 장점이 오래 지내고 나면 단점으로 비춰지는 것은 모든 관계가 그러니까.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만든 '밥솥 카스테라.' 힘들지만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기에 가끔 쿠키나 빵을 만든다.

 

  내가 설거지를 좋아한다면 남편은 요리를 좋아한다. 다섯살 때부터 병설유치원에 다닌 첫째는 매달 현장학습을 갔다. 거의 3년간 매달 김밥을 싸준 사람은 남편이었다. 지난 해 유치원 상담 때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두진이가 아빠가 싸준 김밥이 제일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아빠가 싸시는 거죠?”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음식을 만들고 아이의 도시락을 만드는 일도 ‘엄마’들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남편의 김밥을 자랑하는 것 같을까봐. 선생님은 이렇게 말을 이으셨다. “아니, 어머님은 어떻게 남편을 그렇게 만드셨어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남편이 요리를 하고 아이들 밥도 주로 먹이기 때문에 겉으로 봐서는 남편이 가사노동을 굉장히 많이 하는 걸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남편은 몸이 바쁘지만 나는 머리가 바쁘다. 한 가정이 굴러가려면(?) 회사의 총무, 재무 기능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클 때마다 옷을 사고 매주 먹을 음식을 인터넷으로 구매하고 대출 상환 계획을 수립하고 10년, 20년 단위의 재무 계획을 점검하는 것은 모두 ‘내 일’이다. 이제 아이들이 더 크면 아이들 관련 행정(?) 업무가 더 늘어날 것이다. 교육에 관련된 정보를 취득하고 예산에 따라 학원을 어디에 보낼지 결정하고 실제 학원비를 결제하는 것도 내 일이 될 것이다. 지금도 첫째 피아노학원과 둘째 어린이집 특활비 결제는 내가 한다.

회사 점심 시간에 정신없이 집안일을 처리하고 있을 때 가끔 ‘왜 이 모든 일을 내가 다 맡고 있을까’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내가 설거지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설명하면 이해하기 쉽다. 나는 동시에 많은 일을 하는 것을 즐긴다. #우선순위 에 따라 일의 순서를 결정하고 실행하면서 가장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기획 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집안일을 할 때도 빨래를 돌려놓고 설거지를 한 뒤 세탁기가 다 돌아가면 일부는 털어서 널고 일부는 건조기에 돌리고 가끔은 청소기도 살짝 돌리는 것처럼, 일을 가장 빨리 하는 법을 구상하고 실행하는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동시에 많은 정보를 처리하면서 우선순위를 매기는 ‘가사노동의 기획’ 업무를 결혼 이후 계속 내가 맡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 둘 다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던 신혼 때는 우리도 가사노동 배분 문제를 가지고 다퉜다. 그러나 돌아보면 각자 잘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맡게 된 것 같다. 남편은 참을성을 요하는 일로, 나는 기획하는 쪽으로. 이제 사실 누가 더 많이 가사노동을 하는지 따지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아졌다. 다만, #보이지않는노동 들이 많다는 것은 알리고 싶다.

 

  다들 가사노동이라 하면 청소, 빨래, 요리, 설거지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중에서 설거지만 하는 내가 우리집에서는 가사노동을 더 적게 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회사의 총무, 재무 기능을 내가 하고 있으니 그렇지 않다. 가사노동에 이렇게 #비가시적분야 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 삶을 유지하기 위한 자잘한 노동들이 얼마나 많은지 드러내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래도 가사노동을 전담했던 #친정엄마 때와 비교할 수 있을까. 엄마가 어떤 보이지 않는 노동을 ‘그렇게 많이’ 해냈는지 결혼하기 전까지 잘 몰랐다. 신혼 초 수건을 접을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나서 울었다. 수건을 접는 이런 작은(?) 일도 다 엄마가 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아서였다. 어릴 때 남동생은 내 꽃무늬 청바지를 물려 입어서 너무 부끄러웠다는 얘기를 아직도 한다. “엄마, 왜 누나 청바지를 입혔어요”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둘째를 낳고 보니 첫째 옷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새 옷을 사주는 게 정말 아깝다(물론 나는 성별이 같은 아들들이지만 남동생은 누나의 꽃무늬 바지가 부끄러웠을테다). 엄마가 집안의 총무부장이자 재무부장(?)으로 어떻게든 아끼려 노력했던 게 이해돼서 가끔은 코끝이 시큰하다.

  평생 제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엄마는 환갑이 된 해에야 명절 차례상의 압박에서 벗어났다. 우리 가족은 엄마 환갑을 기념해 난생 처음 추석 때 해외여행을 떠났다. “명절에 누가 차려준 밥을 먹으니 너무 좋다”는 말을 반복하던 엄마. 그러나 설 연휴에는 아빠와 남동생 생일이 겹쳐 있어서 다시 요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엄마는 다시 그리워했다. 싱가포르의 식사를. ‘누가 차려준 밥’을. 엄마는 늘 외식을 아까워한다. “바깥 음식은 비싸기만 하지”라면서. 밥을 차려본 사람이라 사 먹는 밥을 아까워하는 것이다. 재료의 원가가 금방 나오니까.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아니예요 엄마. 엄마 밥이 외식보다 저렴한 건 #엄마의노동력#공짜 여서예요. 우리가 그동안 엄마 밥을 공짜로 먹어서예요. 이 사회가 엄마 밥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아서예요.’

 

 가끔은 거창하게 다짐도 한다. 여전히 빚지고 있는 엄마 밥 뒤에 숨은 노동을 눈에 보이게 만들고 싶다고. 우리 모두 비가시화된 노동의 값을 제대로 아는 사회에 살아야 한다고.

오늘 저녁은 카레다! 아빠가 겨우 저녁밥을 차려주었지만, 거실에는 정리할 것들이 산더미다.

 

 

죽지 않는 좀비 같은 너란 녀석, 가사노동!

황경상

육아휴직을 하기 전엔 몰랐다. 아무 생각 없이 쓰던 현관 번호키란 정말 귀찮은 물건이었다. 집에 드나들 일이 정말 많은데 그때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어야 하다니. 잠깐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오거나 우유를 사러 갔다 올 때도 예외는 없었다.

 

잉여롭게 인터넷을 들여다보다가 스마트폰을 전자키로 등록할 수 있다는 글을 봤다. ‘그래, 바로 이거다.’ 스마트폰만 갖다 대면 문이 열린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도구적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현관 번호키가 내 ‘도구 중독증’에 걸려든 셈이다. 몇 번 등록을 시도해봤다. 잘 안 됐다. 우리집 키는 안 되나보다 하고 포기했다. 그 중간에 등록이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현재 비밀번호를 몇 번 쯤 대충 눌렀던 것 같다.

 

낮에 일이 있어 아이들을 처가에 잠깐 맡겨두고 저녁 때 집에 들어가려는데 장모님께서 말씀하셨다. “황 서방, 아까 집에 볼일이 있어 들렀는데 문이 안 열리더라고. 번호가 바뀌었나?” 갑자기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부리나케 집에 달려가서 문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이 번호, 저 번호를 눌러봐도 번호키는 ‘번호가 틀렸습니다’를 내뱉을 뿐이다. 수 년 만에 안 하던 기도도 여러 번 했지만 요지부동이다.

 

뭘 잘못 만졌는지는 몰라도, 내가 그런 건 분명했다. 결국 번호키를 뜯어내고 새로 갈았다. 열쇠수리공 아저씨는 나를 위로했다. “이런 분들 생각보다 많아요. 공부하시느라 정신 없으신 분들이 주로 그러더라고요.” 나는 공부도 안 하는데... 아무런 위로가 안 됐다. 경제적 손실에 정신적 타격까지 한동안 어질어질했다. 육아휴직을 한 뒤 몸을 좀 만들어보겠다고 집에서 팔굽혀펴기를 좀 하다가 팔이 안 굽혀져서 사흘째 팔꿈치에 파스를 붙였을 때도 이런 참담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옛날 옛적 컴퓨터 게임 중에 ‘너구리’ 게임이라는 게 있었다. 이 게임은 마지막 판이 끝없이 계속된다. 가사노동이 그런 느낌이다. 마지막 판인 줄 알고 깼는데 또 똑같은 스테이지가 다시 나온다.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또 치울거리가 나오는 #뫼비우스 의 띠와 같다. 실컷 청소를 해 놓고 한숨 돌리면 갑자기 저기서 ‘촤르르’ 하는 소리가 들린다. 둘째가 뭘 쏟는 소리다. 그런 단순반복을 좀 줄여보겠다고 번호키를 만졌다가 오히려 된통 당했다.

 

자취생활만 10년에 육박하는지라 요리나 청소 같은 가사노동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는 먹은 그릇을 바로 설거지해 놓고, 방에 청소기를 한 번씩 돌리는 일이 당연하다는 걸 나에게 알려주셨다. 그런데 가사노동이 가욋일이 아니라 주된 노동이 되니 상황은 판이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사흘에 한 번 설거지를 하고, 한 달에 한 번 청소를 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내 손길을 기다리는 일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그저 ‘어시스트’ 한다는 느낌으로 가끔 하는 입장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매일매일 할 일들이 죽지도 않는 좀비처럼 다시 나타나 내게 손을 뻗는다.

육체노동이 끝이 아니다. 집안일은 이것저것 챙길 일이 많다. 거기서도 나는 젬병이다. 학교에 큰애를 데리러 갔다가 시장에 들르자고 마음먹어 놓고는 지갑을 두고 간다. 코를 훌쩍이는 둘째를 데리러 갈 때 약을 꼭 챙겨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약을 타서 약병에 넣어두고는 식탁에 두고 간다. 학교 도서실에 반납기한이 다 된 책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에코백에 넣어뒀다가 현관에 그냥 놓고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나간다. 덕분에 학교에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와서 책을 가져가야 했다. 나 때문에 아이가 책을 빌리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에.

 

비단 집안일만이 아니다. 아이들을 태우고 장거리를 갈 일이 있어서 몇 년 만에 세차를 맡기고 보람차게 집에 돌아와 앉으면서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더니 전화가 온다. “차 키 안 꽂아두고 가셨어요?” “거기 꽂아놓고 왔는데요.” 당당하게 말하면서 탁자를 보니 차키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얼른 차키를 들고 뛰었다.

 

왜 그럴까 생각도 많이 했다. 심각한 건망증인가? 그냥 잘 잊어버리는 성격인걸까? 스마트폰 메모장에 메모도 해 두고 별 짓을 다해봤지만 안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어떤 생각에 한 번 빠지면 그 생각만 한다.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다. 외출할 때면 현관을 나가자, 그 생각밖에 못한다. 결국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한 번 주변을 돌아보면서 빠진 것이 없나 상기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또 까먹는다. 그래서 안 된다. #육아휴직 을 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첫째는 요즘 아빠가 정리하는 걸 보면 옆에서 도와주곤 한다. 고맙다, 아들!

아내에게 타박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난들 어쩌겠나. 결국은 아내가 챙겨야 할 일들을 도맡는다. 메모장에 할 일들을 잔뜩 적어놓고 수시로 내게 미션을 수행했느냐고 묻는다. 가끔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한 번씩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으면 아내도 참 힘들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힘쓰는# 집안일 은 가급적 내가 하려고 한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가사노동 분담이 됐다.

 

아마 대부분의 가정에서 보자면 우리는 남녀의 역할이 조금은 바뀐 듯 느껴질 수도 있다. 육아휴직 뒤에는 더 그렇다. 가끔은 약간 서럽다. 퇴근한 아내가 집에 와서 건조기를 열고 아직 꺼내지 않은 빨래를 꺼내서 접으려고 할 때, 마치 내가 할 일을 안 했다고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것 같아 짜증을 내기도 했다. ‘나 정말, 하루 종일 논 거 아니라고!’ 아마 많은 #전업주부 들이 남편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가사노동은 정말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더 힘들기 때문에.

 

[출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사노동을 한다는 것 [부부 육아일기 5화]|작성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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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집밥’이 먹고 싶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재료를 사와서 만들면 되지만 내가 만들어도, 남편이 만들어도 ‘집밥’ 맛이 안 난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엄마밥’이 먹고 싶었던 것 같다. 옆동에 사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디세요? 집에 밥 있어요?”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돌봐주신 지도 만 6년. 뻔뻔해진 것도 딱 6년만큼이다. 엄마는 집에 안 계시지만 집에 가 밥을 차려 먹어도 된다고 해서 남편과 나 둘이 가서 호박 된장찌개와 오징어볶음, 고춧잎나물을 와구와구 먹었다. 다 먹고 나니 전기밥솥에 있던 밥과 냉동실에 얼린 밥을 우리 둘이서 다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결혼 후 집안일하며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반쪽 인간’이었구나
작은 일 하나까지 엄마가 해주셨구나

 

나는 결혼을 하면서 엄마, 아빠로부터 독립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집안일도 별로 안 해봤고 엄마, 아빠 등에 얹혀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쪽 인간’이었다. 내가 반쪽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신혼집에서 나는 수건을 접을 때마다 엄마 생각을 하며 울었다. ‘엄마가 이런 작은 일까지 다 해줬구나.’ 수건 접기는 그나마 쉬운 쪽이었다. 신혼이어서 찌개도 해먹고 반찬도 해먹었지만 엄마가 해준 집밥 흉내를 내기는 어려웠다. 30년 숙련노동의 결과물을 흉내 내려 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일이었지만.


 

신혼 때는 밥을 해먹었지만, 아이를 낳고서는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아이 돌보기에 24시간이 맞춰 돌아가던 돌 전, 아이 이유식은 열심히 만들어 먹였지만 내 밥은 대충 먹기 일쑤였다. 그나마 친정엄마가 가져다주시는 반찬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첫째를 낳고 복직한 나는 아이 반찬을 잘 못 만들어 쩔쩔맸고 둘째를 낳고 복직하면서 배달받는 반찬으로 바꿨다. 일하면서 두 아들을 기르는 우리집에서 아이들 반찬까지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반찬 사먹기’도 금방 끝났다. 아이들이 ‘배달 반찬’을 잘 먹지 않았다. 결국 난 또 엄마에게 반찬을 얻어먹으며 기생 중이다. 여전히 내 임금노동은 엄마의 무임금노동에 빚지고 있다.


 

■ 엄마의 노동, 엄마의 일생

아이를 낳기 전에는 엄마의 하루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엄마’는 늘 돌아보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내 손으로 아이를 기르면서 비로소 나는 엄마의 하루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아침밥을 차리고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청소·빨래를 하고 반찬을 만들던 엄마의 하루를. 외환위기 이후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돈도 벌었다. 다만 풀타임 임금노동자로 일한 적이 없을 뿐이다. 엄마는 늘 자신을 ‘솥뚜껑 운전수’라고 말한다. 가끔 엄마가 학원문학상을 받았던 여고생 때, 가계부 일기로 은행에서 상을 받았던 젊은 시절에 대해 묘사할 때 나는 열정적이고 부지런한 우리 엄마가 임금노동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한다. 나처럼 글을 쓰는 일을 했다면, 아마 나보다 잘하지 않았을까?


 

주부란 ‘이름 없는 자’가 된다는 것
여전히 아이들과 나를 돌보는 엄마
나의 노동은 엄마의 무임금노동에 빚져

 

그 시절은 많이들 그랬다. 생계부양자 아버지가 가족을 부양했고 어머니는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을 돌봤다. 엄마들은 늘 ‘백업’하는 존재였다. 그런 엄마들은 딸을 ‘커리어우먼’으로 키우고 싶어 했다. 아마 자신처럼 ‘백업’하는 존재가 되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다행일까. 자라면서 남자와 다르지 않다고 교육받으며 대학을 갔고 겨우 취업과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았다. 뒤늦게 워킹맘이 되는 것은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면서 뼈빠지게 착취당하라는 메시지라는 것을 깨닫고 분노했지만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사회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는 것이 좋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한번은 지나가듯 말했다. “아빠는 그런 말 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이상하게도 친정부모님에게는 용돈을 드리는 게 그렇더라고.” 자신이 돈을 벌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는 게 맞는지 고민했다는 뜻이다. 마음이 아팠다. 일평생 아이들을 기르고 가정을 돌본 엄마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아무도 엄마의 노동을 귀하다고 말하지 않으니까. 사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니까. 돌아보면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주부가 된다는 것은 ‘이름 없는 자’가 된다는 뜻이라는 것을. 평생 그림자노동을 하며 자기 자신을 귀하게 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 임금노동만 성취인가

아이를 낳고 자주 의심했다. 임금노동에 시간을 빼앗겨 막상 내 아이들에게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나의 삶이 과연 ‘진보’한 것인지에 대해서. 그러나 수천번을 생각해봐도 나는 일도 하고 싶고 아이들도 잘 기르고 싶었다. 깨달았다. 이 사회가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 문제지, 내가 두 가지를 다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제 엄마의 노동에 대해 말한다. “엄마의 밥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엄마가 평생 나를 돌봐준 덕분에 내가 있고 이제는 내 아이들까지 엄마의 돌봄을 받고 있다”고. 또 “내 바이라인은 사실 임아영·두효순 기자라 써야 맞다”고. 아이들을 엄마에게 맡긴 채 하루 종일 일터에서 만든 임금노동의 성취는 온전히 내 것일 수가 없다고 말이다.


 

사적 공간의 일을 귀하게 생각않는 사회
종일 우선순위 매기고 정밀하게 수행하는
엄마의 반찬·집안일은 왜 성취가 아닌가

 

이제 결혼한 지 7년이 됐다. 지난 7년간 남편과 가사노동을 분배하면서 갈등도 적지 않았다. 남편이 더 바쁠 때는 내가 남편을 ‘백업’하는 존재가 될까 겁을 먹고 더 악을 쓰고 집안일을 분배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으로 우리 둘 다 ‘소진’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이제야 내가 결혼 전 집안일에 대해 ‘1’도 모르던 ‘반쪽 인간’에서 나아지는 것 같다. 꼭 임금노동을 하는 것만 성취인가? 엄마의 반찬, 엄마의 집안일 스킬은 왜 성취가 아닌가.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직접 해보고 알게 된 게 또 있다. 흔히 단순한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하루 종일 우선순위를 매기고 정밀하게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사실 말이다. 엄마가 음식 만드는 과정을 엿보면 굉장히 정교하다. 국을 끓이면서 샐러드 소스를 만들고 고기를 볶으면서 전을 부치는 과정을 동시에 해내는 일. 맛있게 상을 내려면 완성된 음식을 담는 순서도 중요하다. 엄마는 뭐 하나 대충하지 않는다. 차가운 반찬부터 접시에 담고 메인 반찬을 담은 뒤 밥과 국을 퍼서 먹는다. 그래야 음식이 덜 식기 때문이라는 것을 난 이제야 알게 됐다. 엄마밥을 먹은 지 이제 37년이나 됐는데.


 

주부의 삶은 하루 종일 표가 안 나는 일들에 우선순위를 매기고 수행하는 삶이다. 일평생 그 일을 한다면 당연히 우선순위를 매기고 순서대로 수행하는 작업에 능숙해질 수밖에 없다. 나도 아이들을 기르면서 좀 더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됐다. 가사노동, 돌봄노동, 임금노동을 동시에 하면 일의 총량이 늘어나는데 우선순위를 고려해 일의 순서를 배열하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집에서는 빠른 일처리가 필요한 것은 내가 맡고 꾸준한 작업이 필요한 것은 남편이 맡는다. 성격이 급한 대신 손이 빠른 나와 성격이 느린 대신 꼼꼼한 남편의 성격대로 자연스럽게 배분됐다. 지난해까지 아이들 기관에 관한 행정 업무를 내가 처리하다가 올해부터는 둘 다 어린이집, 유치원 알리미를 받기 시작했다. 준비물을 챙기고 아이가 아프거나 일이 생겼을 때 기관에 연락하는 일을 남편과 공유하니 빼먹는 일이 좀 줄어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남편과 ‘함께’ 육아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엄마의 숙련노동 기록 ‘장모님 레시피’

최근 통계청이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2014년 명목 국내총생산의 24.3%를 차지한다고 평가했다. 시간당 가사노동의 가치는 1만569원으로 3인 가족 기준으로는 연간 2132만원으로 계산됐다. 성별로 보면 1인당 기준 남자는 346만원, 여자는 1076만원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세 배 이상 높았는데 여자가 3배 더 가사노동을 많이 한다는 뜻이다. 여전히 여자가 가사노동을 3배 더 하지만 이 노동에 대한 대가는 지급되지 않는다. 다만 남자의 가사노동 평가액 비중이 1999년 20.1%에서 2014년 24.5%로 증가하고, 여자는 같은 기간 79.9%에서 75.5%로 줄었다. 집 안에서 남자들의 노동이 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려 한다. 속도는 너무 느리지만 여성들이 집 밖에 나와 임금노동을 하는 만큼 남성들이 집 안으로 들어와 가정 안의 노동을 분배해야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이제야 깨달은 엄마의 숙련 노동의 가치
그것이 궁금하고 기록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태어난 결과물 ‘장모님 레시피’

 

아이를 낳기 전 난 엄마표 반찬의 비법이 궁금하지 않았다. 이제야 엄마의 숙련노동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된 나는 ‘엄마의 레시피’가 궁금해졌다. 엄마의 숙련노동의 결과물을 누군가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남편과 둘이서 엄마의 레시피를 기록하는 동영상을 제작했다. 유튜브 계정 이름은 ‘장모님 레시피’라고 붙였다. 동영상을 뒤져보니 지난해 12월에 미역국 레시피를 올린 게 마지막이다. 호박전과 굴전 요리 과정도 찍어놨는데 아직 올리지 못했다. 게으름을 만회하기 위해 올해 김장 때는 꼭 레시피를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동영상을 만들면서 알게 됐다. 엄마는 미역국을 끓일 때 덩어리로 된 소고기를 산다. 보통 잘라진 소고기를 사서 참기름에 볶다가 미역도 볶은 뒤 물을 붓고 끓이지만 엄마는 국물 맛을 깊게 내기 위해 덩어리 고기를 산다고 했다. 푹 삶아서 고기 국물을 우려낸 다음 고기는 식혀서 일일이 찢어 넣는다. 처음부터 엄마가 이렇게 미역국을 끓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다 제일 맛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일 테지. 오늘은 김장할 때 쓸 새우를 사러 강화도에 가셨다. 지난해에는 홍시를 넣었는데 올해는 어떤 실험을 하실지 궁금하다. 언젠가는 꼭 엄마의 레시피 북을 만들어드리고 싶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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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워킹맘이다 아직은. 아이를 둘을 낳고 복직을 3개월여 앞두고 보니 한국 사회에서 워킹맘으로 살 생각이면서 둘을 낳는 무모한(?) 선택을 했구나 싶다. 그래서 아직이다. 만약 버텨낼 수 없다면 수많은 여자선배들처럼 경단녀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위기감 때문에.

 

그래도 나는 워킹맘들이 부러워하는 친정엄마가 백업해주는 워킹맘이다. “아영씨는 친정엄마 있잖아 걱정 없겠네”, “아 친정엄마 있어서 부러워요와 같은 말에 아무 할 말이 없는 부러운 워킹맘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든다. ‘우리 엄마는 행복할까.’

 

첫째를 낳고 복직했던 2014년에는 아이 걱정만 가득했다. 아이가 엄마 없는 긴 하루를 적응할 수 있을까, 어린이집에서 울지는 않을까, 퇴근이 늦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긴 것 아닌가 등등. 그런데 두 번째 복직을 앞둔 지금은 아이보다 친정엄마가 더 걱정이 된다. 아이들은 자주 울겠지만 또 적응하리라는 예상이 가능해서이기도 하고 친정엄마가 그때보다 나이가 더 드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둘이 됐기 때문이다.

 

아들들과 하루종일 같이 있다 보면 혼미해진다. 아이들은 그런 존재다. 조금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사고(?)치는 존재. 남편과 나는 주말에 둘이 아이 둘을 보면서도 전쟁이다, 전쟁,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구만을 되뇌는데 할머니인 우리 엄마가 다 감당할 수 있을까. 무릎은 버텨낼 수 있을까. 엄마는 무릎이 약하시다. 그렇다. 무릎 약한 엄마한테 아이를 맡긴 이기적인 불효녀. 그게 나다.

 

우리 엄마는 58년 개띠다. 전북 군산에서 명문여고를 다녔던 엄마는 글 쓰는 걸 좋아해서 당시 잡지 <학원>의 학원문학상에 단편소설을 응모해서 입선하기도 했다. 분량이 200자 원고지 50매 정도였다고 하니 분량도 꽤 됐다고. 그러나 외할아버지가 국립대만 보내준다고 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상경했다. 회사를 다니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고 스물네 살 때부터 전업주부로 살았다. 나를 낳았던 건 스물다섯 살. 그래서 우리는 띠가 똑같다. 3년 뒤 아들을 낳았고 엄마는 아이 둘을 키우고 가사노동을 하며 나이가 들었다.

 

엄마의 리즈 시절. 왼쪽이 우리 엄마.

 

가끔 엄마가 1982년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나보다 더 열정적인 우리 엄마가 나보다 더 잘 살지 않았을까.

 

어릴 때 아빠와 엄마가 맥주 한 잔을 하는 날에 엄마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아영아, 엄마처럼 살지 마...”

그 말은 늘 슬펐다. 이제 엄마는 내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기억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엄마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슬픈 그 말보다 훨씬 더 자주 해주던 말은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해. 엄마는 아영이가 잘 해낼 것을 믿어였다. 어린 시절 엄마는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시험을 망쳤을 때, 심지어 입사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힘들고 외로울 때 엄마가 전해줬던 엄마는 아영이를 믿어라는 편지에 나는 늘 울컥하며 힘을 냈다. 이 말에 의지해 어린 내가 용기를 냈고 또 두려움에 맞서왔다는 걸 떠올리면 코끝이 찡해진다.

 

이제 그 말이 단순히 삶을 사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엄마의 소망은 딸이 전업주부인 자신과는 다르게 일하는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엄마는 90년대 대다수 엄마들이 그랬듯이 딸이 자신보다 진취적인 모습으로 자라길 바랐다. 엄마가 꿈꾸는 딸의 모습은 커리어우먼이었고 엄마는 딸을 알파걸로 키우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결혼도 꼭 하길 바라셨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 키우는 평범한 행복을 누리길 바라신 거겠지.

 

나는 엄마의 소망대로 알파걸이 됐을까. 다만 엄마의 소망과 엇비슷한 일하는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의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선을 다한다고 뭐든 다 이룰 수 없다는 사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진실을 알게 될 만큼 성장했지만 동시에 나의 최선은 항상 온전히 나만의 노력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내 성취에는 내 노력에 엄마의 뒷바라지가 더해져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절절히 깨달았던 것은 아이를 낳고서였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산후조리부터 아이를 키우는 것까지 엄마의 손이 안 가는 곳이 없었다. 나는 엄마의 소망처럼 일하는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의 노동력에 의지해(노동력을 착취해)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온전히 나의 최선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나는 자주 좌절했다.

 

최선을 다 하면 된다고 나를 키운 엄마는 남자아이들과 경쟁해서도 뒤지지 않고 오히려 더 잘 해내는 딸을 늘 응원해줬지만 그것은 잘못된 꿈은 아니었을까. 언론에서 알파걸의 실패같은 기사를 쏟아내면 동의하면서도 씁쓸했다. 가부장적 구조로 점철돼 있는 결혼과 육아에서 나는 영락없이 실패한 알파걸이었다. 나와 남편은 같은 일을 하고 동시에 부모가 됐지만 절대 같을 수 없었다. 지금 난 궁지에 몰리면 알파걸 같은 소리 집어쳐라며 화내는 서른여섯 살이 되었다.

 

지난 겨울 군산 외할아버지를 뵈러 갔다가 가벼운 교통사고가 났다. 엄마와 나는 같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트럭이 멈추지 못했고 그를 본 나는 피했으나 엄마가 피하지 못했다. ‘하는 소리가 나는 그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 아 하늘이 노래진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생각이 들었을 때 깨달았다. ‘엄마를 두고 나 혼자만 피했구나.’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는데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트럭을 운전하던 아저씨가 뛰어나왔고 나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넘어진 엄마는 크게 다치지 않아 오히려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병원으로 이동해 검사를 했지만 머리 등에 큰 이상이 없었고 서울로 돌아와 서울 병원에서 엄마는 물리치료를 오래 받았다.

 

군산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그 짧은 시간 계속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나를 위해 내 새끼들을 봐주고 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다 해주는데 난 엄마를 두고 혼자 피했구나.’ 괴로웠다. 만약 엄마가 크게 다쳤다면 그 죄책감은 어땠을까. 지금도 그날 생각을 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엄마를 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난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고개를 젓는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자식들에게 모든 걸 내어주는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내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고 싶었다. 지금도 똑같다. 내 인생을 자식들에게 전부 줘버리고 싶지 않다. 그런데 엄마인 나는 내 자식들에게 전부 내주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내 일상은 내 엄마의 인생을 착취해야만 굴러간다. 그게 내 딜레마이고 죄책감이다. 나는 독립적인 여성으로, 개인으로 일을 유지하고 싶지만 그렇게 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평생 나와 동생을 위해 자신의 온 시간을 나눠준 친정엄마를 착취해야 한다는 것.

 

손주병이라는 신조어는 이제 신조어가 아닐 정도로 할머니들의 손주육아가 보편화됐다. 아이를 봐준다면 시증조할머니라도 필요하다는 농담을 할 만큼. 엄마한테 엄마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전쟁이다. 제일 부러워하는 할머니는 손주 안 보는 할머니.

 

한번은 엄마가 웃으면서 놀이터에 나오는 할머니들끼리 하는 농담을 들려줬다. “할머니들 사이에도 계급이 있어. 5~6시에 퇴근해서 해방시켜주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며느리나 딸로 둔 할머니가 1계급, 6~7시에 퇴근하는 공무원들 엄마가 2계급, 8~9시에 퇴근하는 일반 직장인들은 3계급, 11~12시에 퇴근해서 애도 못 재우는 딸과 며느리를 둔 할머니가 꼴찌야.”

 

내 경우 3계급이었다. 웃으면서 들었지만 마음이 쓰렸다. 육아를 혼자 감당하지 못할 거면서, 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아이를 키울 거면서 나는 왜 아이를 낳았을까. 슬프게도 꽃보다 더 예쁜 아이를 보면서도 가끔 이 생각을 했다.

 

엄마한테 맡기지 않고 내 손으로 키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엄마와 아이 양육 문제 또는 가사노동 문제로 다툴 때면 그런 생각을 했다. 괴로웠다. 아이도, 일도 포기하지 못하는 욕심 많은 딸. 딸의 욕심 때문에 엄마의 체력을 축내고 엄마의 시간을 훔친 기분. 죄책감은 엄마의 힘든 얼굴을 볼 때 제일 심했고 죄책감이 쌓이는 만큼 사회에 대한 분노가 켜켜이 쌓였다. 왜 나를 이렇게 궁지로 모나. 누가 나를 이렇게 궁지로 모나. 그런데 원망할 대상이 없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라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첫 번째 복직 후였던 2014년과 2015년이 제일 힘들 때였다. 일과 아이에 치여 매일이 피곤했고 전세가 오르는 속도에 기가 질려 어떻게 하면 서울을 떠날 수 있을까만 생각했던 때. 밤에 잠을 못 자고 한 시간씩 경기하듯 우는 큰애를 안고 있다가 결국 지쳐 바닥에 내려놓고 나도 울면서 끔찍해했다. ‘이 일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한 번은 엄마가 집에 김치 있냐고 물으셨다. 당시 식사 담당은 남편이었기에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가 엄마가 그런 것도 모르냐고 하시는 바람에 대판 싸웠다. 집안일은 내팽개치고 일만 신경 쓴다고 생각하셨을까. “엄마, 둘 다 잘 할 수 없어. 집안일은 포기했어.” 냉정한 말과 상처 입혀버리겠다는 말투, 그리고 모진 말들. 수많은 모녀의 사이가 그렇듯 우리도 그랬다. 못돼먹기론 대한민국 1등인 난 엄마 마음을 상처 낼 수 있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주워 담지 못해 괴로워하는 다툼을 반복했다. 엄마를 다치게 하면 결국 내가 다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날들이었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일상에서 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해 아이를 기르는 팔자, 언제 해야 할지 모르겠는 빨래들과 내가 하면 잘 먹지도 않는 아이 반찬을 걱정하며 회사 발제에 스트레스 받는 일상. 회사 일에서라도 애엄마라는 티는 절대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데 아이를 포기할 순 없잖아 라며 엉망진창인 집안을 합리화하던 일상. 그런데 김치라니. 김치가 있는지 없는지 까지 내가 알아야하나. 따박따박 엄마를 향해 따졌지만 엄마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나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한테 풀고 나니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 자괴감 때문에 견딜 수 없는 날들. 그저 떠나고 싶었다. 서울을 떠나 대한민국을 떠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아이를 내 손으로 기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가끔은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결혼은 해야지, 서른 전에는 해야지, 서른엔 해야지, 결혼했으면 아이는 낳아야지, 안 낳았으면 이 이쁜 것을 봤겠어?” 결혼을 꼭 해야 하고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고 말했던 엄마 세대가 수용했던 가부장적 질서. 그 질서를 21세기의 나는 벗어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했고 아니 벗어날 생각이 없었고 결혼 생활도 일도 잘해낼 수 있다고 착각했다. 착각을 한 건 나였으면서 아이 낳으면 엄마가 키워줄게라고 했던 엄마의 말들이 떠오르면 괜히 원망스러웠다. 엄마 세대는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 세대의 질서를 부정하면서 부정하며 살아가기 두려워했던 나는 그랬다.

 

그러면서도 당연한 듯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출근했다. 이제 첫째가 54개월이 됐으니 엄마의 육아 노동도 만 45개월을 지나는 중이다. 그동안 엄마의 몸은 내 자식 때문에 얼마나 축났을까. “엄마 운동 열심히 해요. 그래야 우리 애들 다 봐주지라는 농담을 건네는 내 입은 언제나 쓰다.

 

친정엄마한테 돈을 많이 드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지 말자. 아무리 돈을 많이 드려도(돈을 많이 드리지도 못하지만) 엄마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손주가 웃는 걸 보고 엄마가 잠시 행복해진다 해도(손주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 했다) 그건 정말 잠시고 육아는 엄청난 육체노동인데 왜 환갑을 앞둔 우리 엄마가 그 노동을 감내해야 하나. 그저 딸이 일을 계속 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인데 내 일은 엄마를 위해 해주는 것이 거의 없다.

 

엄마가 내 일을 응원해주는 것이 행운인 사회에서 엄마의 시간을 빼앗아 내 새끼들을 기르는 이기적인 딸. 복 받은 팔자다. 이 죄책감으로 일과 육아를 유지하는 내 팔자가 복 받은 팔자라니. 여성 노동력을 착취해서 아이를 기르는 구조에 분노하지만 결국 엄마한테는 아무 할 말이 없는 팔자. 엄마에게 의지하지 않고 아이를 기를 수 있기를 바라지만 아마 내가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는 힘들겠지.

 

엄마, 내 사주에 엄마 복이 있대요. 사주는 정말 잘 맞네요. 엄마 복으로 내가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워요. 스무 살 땐 엄마한테 독립해서 멋진 여자로 사는 게 꿈이었는데 여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미안해요. 엄마의 힘을 빌지 않으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이들도 제대로 기를 수 없어서. 그래서 내 일의 성과가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내 바이라인에는 언제나 엄마 이름이 겹쳐져 있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기자를 했으면 나보다 더 잘 했을 텐데. 고맙습니다. 어버이날이라 공개적으로 한 번 말해 봐요. 그리고 사랑해요.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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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필립모양 2017.05.09 1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이렇게 눈물이 철철나지....ㅜ ㅠ

  2. 아이 2017.05.09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하면서도 육아도우미 못 쓸 사람은 애를 안 낳거나 일을 그만두거나 해야하는데 아 그럼서 아이를 왜 낳을까요... 진짜 궁금

  3. 지현 2017.05.09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임기자님이 부러워요.
    시댁은 지방이고 한시간 거리 사는 친정엄마는 일을 하세요 ㅜ
    저는 출신휴가 2개월차 육아휴직 3개월 후 10월 복귀인데 7월부터 시터구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좋은분 만나냐하는 걱정에 사로 잡혀있네요. 돈도 돈이지만 내가 이정도 돈을 지불하려고 해도(180?) 좋은분 개란티 안된다는것도 서럽고 또 받는분 입장에선 큰 돈아닐 수 있다는거에 참 어렵네요(하루에 10시간 일하고 180이니깐요)
    해외출장 많은 직업으로 출장 줄이는 것도 직장 복귀 후 어떻게 조율할지 걱정으만 태산이구요!
    어떻게든 되겠죠?

    기자님 블로그 평소에 넘 잘 보고있습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1 2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글이 부럽게 읽히는 게 가장 걱정이 됐어요ㅠㅠ 해외출장까지 많으시다니. 그래도 잘 조율하실 수 있게 되기를요. 부모가 힘을 합쳐 아이를 잘 기를 수 있게 되길, 싱글맘 싱글파더 혼자서도 편견 없이 아이를 잘 기를 수 있게 되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가끔 손주를 보면서 체력을 소진하지 않게 되길... 진정 바래봅니다. 댓글 감사해요!! (글 잘 봐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4. 발바닥 2017.05.10 1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임기자님과 어머니 사이 개띠, 직장 남자입니다. 저도 아직 부모님한테서 독립 하지 못했네요. 부모님 손을 빌지않고 아이셋을 어떻게 키웠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쌀과 김치 등을 보내시는 부모님, 이사 할때마다 사위 모르게 전세금 보태주신 장인 장모님... 이런 양가 부모님들 지원이 없었다면 외벌이로 아이들을 이만큼 키울 수 있었을까요? 그래도 나 잘났다고 양가 부모님께 일좀 그만하시라고 얼마전까지 큰소리 쳤습니다. 이젠 알지요. 눈 감는 날까지 자식을 위해 모든것을 내어주시는 부모님 마음을..... 그리고 그분들이 바라셨던 것처럼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나름 노력했던 대견한 우리들.... 그렇지만 항상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과 죄송스러움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 부모님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1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희생하는만큼 정체성이 겹치는 게 한국 사회 부모 자식간의 관계인 것 같아 가끔은 답답하기도 했는데 나이가 드니까 부모님들의 노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또 고마워하는게 어른스러운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어요.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제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친정엄마아빠께 의지하게 됐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ㅠㅠ 아... 저는 그런 부모가 될 자신이 전혀 없는데... 감사하는 마음은 마음 깊이 새겨야죠 새겨야죠...

  5. 우리엄마 2017.05.10 2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소 생각했던 제맘이랑 완전 똑같아서 읽는 내내 울컥했어요 ㅠㅠ 저도 울아들 6세이니 만5년째 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딸이네요ㅠ 아이에 대한 죄책감은
    둘째치더라도 엄마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워킹맘이 축복받은 존재가 되는 모순된 세상... 정말 그렇네요.. 이모든것을 알면서도 오늘도 엄마의 노동력 없인 절대 아이를 키울 수 없네요 ㅠㅠ 그럼에도 둘째 낳으면 같이 키워준다는 우리 어무이.... ㅠㅠ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1 2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ㅠㅠ 둘째까지 낳아서 정말 엄마한테 미안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둘째를 낳았을까 가끔 생각합니다(둘째야 미안... 너는 축복이야!!)ㅠㅠ 저출산의 문제는 부모를 둘다 집으로 돌려주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을 거예요. 새로운 대통령이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갖고 또 의지를 갖길 바래봅니다.ㅠㅠ

  6. 생각하는 2017.05.11 1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까지도 여자에게만 모든 일을 떠넘기는 것이 '복'을 받는 팔자를 만드는 게 아닐까요.. 그걸 개인이 혼자 이겨내야만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여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1 2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ㅠㅠ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사회죠ㅠㅠ 절대 복받은게 아닌데 친정엄마, 시엄마마저 도와줄 수 없는 수많은 부모들에게 미안한 기분이 드는 이 상황은 정말 말이 안되는 거죠...

  7. 불효녀직장맘 2017.05.12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친정엄마에게..시어머니에게..돌아가면서 맡겨서 키우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은 하는건..자아성취..따위의 목적보다도..혼자벌어 애키우기 힘든세상에..
    한푼이라도 더 벌수 있을때 벌어두자...가 90%는 차지하죠...

    물론....그래도..집에서 아이보는거보다..회사가는게 덜 힘들어요..
    ..
    내친구는 나를 부럽다고 하지만..난참...엄마 어머니께 너무 죄송하네요..
    시간이 갈수록..애들은 커져서 힘들고 부모님은..나이가 드시고...
    가끔..회사집 회사집만 굴리면서 나는 뭔가..해지는데..그때마다..부모님 생각하면서..마음 다져요...

    너무너무..공감가네요..글이....저도 둘째낳고...우리둘째한텐 미안하지만..이렇게 생각없이 낳았나..
    그런생각 했거든요...
    아효.......답답합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2 1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ㅠㅠ 혼자 벌어 애 키우기 힘든 사회죠. 왜 시터 두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애를 두고 나가느냐는 댓글 보고 속상했는데... 그만큼 주거비 교육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요. 특히 주거비가 너무 심각하잖아요ㅠㅠ

      '애 보느니 밭매겠다'는 말이 정말 왜 전해지는지 알 것 같아요. 애보다보면 정말 회사 일이 더 견딜만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에 맞춰서 모든 걸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 참 힘들잖아요. 그런데 그걸 젊은 내가 아닌 엄마가 하셔야한다는게 이 빡센 육체노동을 내년에 환갑인 엄마가 하셔야 한다는 게 정말 걱정돼요. 미안하고요. ㅠㅠ

      정말 답답하죠.... 답답합니다. ㅠㅠ

  8. Favicon of http://www.azoomma.org 황인영 2017.05.23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 이번 18회 아줌마의날 행사 관련 내용은 아래 주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azoomma.org/?sec=sec04&pop=y#sec04

    • 황인영 2017.05.23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자님, 제가 장문의 글을 썼는데 다 날라가버렸네요.. ㅠㅠ

      음.. 다시 한번 써보겠습니다만 처음의 그 감흥을 그대로 다시 전달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는 아줌마닷컴(www.azoomma.com)의 대표를 맡고 있는 황인영입니다.

      17년 전인 2000년, 저희 회원들의 발의로 5월 마지막날을 '아줌마의날'로 정하고 매년 행사를 개최해오고 있습니다. 처음엔 50여명의 소풍으로 시작해서 '아줌마 헌장'을 낭독하고 해를 거듭하면서 나, 가정, 사회, 국가 속에서 아줌마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그 가치를 스스로 느끼고 세상에 공유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낸 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그런데 임아영 기자님의 글에서 보듯 나의 세대와 엄마의 세대.. 두세대를 거쳐도 역시 우리들의 삶에는 혁명이라는 것은 없는것 같습니다.

      저 역시 20년이 넘게 밥을 하고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냥 해야하는거니까 했지 이렇게 사는 삶이 정말 제가 원하는 삶인지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볼 틈이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그럴만한 겨를도 없이 엄마로, 직장인으로, 딸로, 아내로... 며느리로.. 그렇게 살아온것이고..

      우리 어머니도 역시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역시 그렇게 살아오셨죠.
      대대로 내려오는...

      나의 문제, 나를 알고 그것이 나와 사회가, 나와 정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깨닫는 '연결선'이 필요한거 같습니다.

      임아영 기자님의 글이 어쩌면 엄마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더구나 한 세대가 아닌 두 세대 엄마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글이라 생각되어

      기자님을 저희 행사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기자님의 글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연락처가 없어 댓글로 남깁니다. 가능하시다면 메일로 연락처를 주시면 제가 전화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저 역시 평범한 아줌마로서 이제 '나와 정치'를 연결하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세대가 약간 다르지만, 임기자님과 저 역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http://momcast.azoomma.com/potview/603182
      부족하지만 방송 들어보셔도 좋습니다.

      제 마음이 기자님과 닿았기를 기대하며... 회신 기다리겠습니다.
      제 이메일 주소는
      inus@inuscomm.co.kr

    • 2017.05.23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밀댓글입니다

  9. Favicon of https://bshell.tistory.com 아맹꼬 2017.06.02 2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역시 기자님과 같이 아들 둘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직장다녀요. 46년생 노모께 큰애 태어나서부터 8살,5살 된 지금까지요. 기자님 글그대로의 심정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사회, 조금씩조금씩 바뀌겠죠.계속 소리내다보면 그럴것이다라고 생각하고 희망합니다. 글 잘 보고 가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7.30 14: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ㅠㅠ 아들 둘이시군요. 전 왠지 아들만 둘이니 더 엄마한테 미안하더라고요. 하루종일 뛰어다니는 둘을 엄마한테 맡기다니 싶은게요... 계속 목소리내고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면 변화가 빨라지겠죠. 기운내세요.^^ 감사합니다.

  10. 재민재희맘 2017.06.09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복직 앞두고 있는데
    당연하듯 손주돌봄을 준비하고 있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 고마움이 밀려오네요
    애들 어린이집 맡기고 엄마 모시고 근처라도 데이트 다녀와야겠습니다

  11. 정덕 2017.07.26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페이스북에서 공유하며 눈물 흘렸는데 아영언니었네요. 새삼 반갑습니다. 힘을 내어 보아요. 우리.

그 선배 애 낳고 변하더라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더니 애 낳더니 어쩔 수 없나봐.”

 

결혼을 안 했던 시절 여자 선배들을 저렇게 묘사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애 낳으면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애 낳으면 일을 대충 한다로 이어져 애 낳은 여자들은 쓰면 안 돼에서 애를 낳을 수 있는 여자들은 쓰면 안 돼까지 연결된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땐 '결혼을 하면 안 되겠구나'부터 '다 그런 건 아닐 거야',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에까지 생각이 연결되곤 했다.

 

애를 낳고 알게 됐다. 가사 노동과 육아를 여성에게 떠넘긴 사회에서 회사 생활을 버틴 것도 대단한 것이라는 걸. 그나마 아이를 대신 맡아줄 가족(친정엄마나 시엄마, 아니면 시터이모님)이 없는 여자 선배들은 이미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을. 또 그 숫자가 적지 않았다는 것도. 게다가 그 선배들이 아이를 낳았던 시절은 출산 휴가 2개월밖에 주지 않던 때였다. 2개월이라니 2개월이라니. 아직 뒤집지도 못하는 아기를 떼놓고 출근하게 했던, 야만의 시절이었다.

 

복직 후 여자 선배들은 내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다. “애가 어릴 땐 일을 살살해도 괜찮아. 오래 버티는 게 중요한 거야에서부터 힘들지. 지금 정말 힘들 때야.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져”, “근데 정말 힘드니까 둘째는 낳지 마까지...

 

물론 나이가 열 살 이상 차이나는 선배들과 다른 생각을 가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선배들이 없었다면... 난 과연 이곳에 있었을까? 복직 후 그 생각을 많이 했다. '저 선배들 덕분에 내가 여기 있구나.' 표현한 적은 없지만. 그저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다녔다는 것이 고마웠다.

 

여기자가 없던 시절, 1/10이 여기자이던 시절, 그리고 2000년대 여기자가 많이(급속히?) 늘어나던 시절. 회사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끔 바지 입은 여자를 묘사하는 글을 읽는다. 직장 내 여자들이 늘어나도 그 여자들이 바지 입은 여자라 남자 상사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최근 페친의 추천으로 페이스북 COO인 셰릴 샌드버그의 <린 인>을 읽었다. 그 책에서 무릎을 치면서 웃었던 부분.

 

셰릴은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구글에서 일하고 있었다. 임신 3개월이면 끝난다는 입덧이 9개월 내내 계속됐고 어느 날 회의에 늦지 않으려고 겨우겨우 주차를 했는데 겨우 주차한 곳이 사무실과 멀어서 산처럼 부푼 배를 안고 겨우 회의실에 들어갔다는 이야기. 근데 그날 밤 야후에서 일하던 남편이 이야기한다. 야후에는 각 건물 앞에 임산부 전용 주차 공간이 있다고. 셰릴은 다음날 구글의 설립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사무실로 쳐들어가 회사에 임산부 전용 주차 공간을 가능한 한 빨리 마련해달라고 건의했다. 세르게이는 그 문제를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곧 사과하고 바로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셰릴은 말한다. “나 또한 내가 임신해서 발이 부어올라 쩔쩔맬 때까지 회사에 임산부 전용 주차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구글에서 최고참 여성 중역이었으니 당연히 생각했어야 할 문제 아닌가? 하지만 세르게이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다른 임산부 직원들은 배려해달라고 요청하지 못하고 묵묵히 불편함을 참았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감이 없거나 직위가 낮은 탓에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한 것이리라.”

 

이 부분을 읽으며 새삼 난 회사 화장실이 생각났다. 입사 초 편집국 화장실은 남자 화장실보다 여자 화장실이 더 좁았다. 기자가 남자만 있던 시절 남자 화장실 밖에 없었는데 그 공간을 일부 쪼개 여자 화장실로 만들었다고 들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2011년쯤 편집국 리모델링을 할 때 여자 화장실 크기가 더 넓어졌다. 여자 화장실에 대한 불만과 민원이 더해진 결과이리라.

 

여자가 늘어나면 뭐가 바뀌느냐고? ㅎㅎ 화장실이 생긴다. 웃기지만 편집국에 남기자만 있던 시절 처음 입사한 여자 기자는 어떻게 화장실을 다녔을까. 참 단순한 사실이지만 그 선배 덕분에 여자 화장실이 생겼을 것이고 또 여기자가 늘어나니 화장실도 커졌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간 임산부전용 주차장도 생기겠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남자 기자가 압도적으로 많던 시절(199쯤 되려나) 편집국에서는 담배도 피웠다고 한다. 요즘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풍경이다.

 

첫째를 임신했던 때 회식을 하던 중이었다. 남자 선배와 남자 동기가 회식 자리에서 담배를 피웠다. 속으로 생각했다. ‘임신 중이라고 말할까. 말까. 말할까.’ 결국... 말하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임신한지 몰랐을 뿐이었다. 그때는 괜히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기 싫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멍청했다. 그날 자리에서 나와 만만한 남자 동기에게만 말했다. “나 임신했어.” 쩔쩔매며 미안해하는 그를 보며 괜찮다고 했지만 이후 그 사건이 떠오를 때면 왜 나는 그 자리에서 말하지 못했나후회가 됐다. 이제 더 시간이 지나 회식 자리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에피소드 또 하나. 결혼 직후였다. 오랜만의 사내 커플이라 사람들의 장난스러운 시선도 꽤 있었다. 출근할 때였나 남편과 내가 한 엘리베이터에 탔다. 같이 엘리베이터에 탄 한 선배가 내게 물었다. “밥은 해줬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이미 얼굴엔 기분 나쁘다는 표가 다 난 뒤였다. 다행히 편한 선배였고 되물었다. “제가 왜 밥을 해줘야되죠?” 당황한 선배의 표정. 결혼한지 만 5년이 지난 지금이었다면 이보다 세련되게 받았겠지만 그때는 정색하고 말았다. 정말 다행히도 선배는 웃으셨고 그 이후부터는 남편만 보면 장난스럽게 밥은 해줬냐?”고 묻기 시작했다. 아마 처음에는 내 표정을 보고선 기분이 좋진 않았겠지만.

 

여자들이 늘어나 조직의 풍경을 얼마나 바꿨을까. 별 것 아니지만 남자에게 밥은 해줬느냐고 묻게 하는 것. 그게 시작이 아닐까. 셰릴은 <린 인>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제를 일으켜봤자 시끄러운 페미니스트라는 소리만 들을 터였다.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불이익을 지적하는 것이 푸념하거나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행동으로 잘못 해석될까봐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일했다.


해가 지나면서 여성 친구들과 동료들이 하나둘씩 직장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스스로 선택해서 떠나는 여성도 있었고 융통성을 허용하지 않는 회사에 떠밀리거나,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하지 않는 배우자의 요구로 낭패감에 휩싸여 떠나는 여성도 있었다. 직장에 남아 있더라도 주변의 대단한 기대를 충족시키겠다는 야망을 줄였다. 여성 리더가 출현하리라는 우리 세대의 희망도 점차 빛을 잃어갔다. 구글에서 근무한 지 몇 년이 지났을 무렵, 이러한 문제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내가 성 문제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현재 상황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세계에 진입한 첫 세대 여성들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내며 자신을 조직에 맞춰야 했는지 모른다. 어떤 때는 그것이 가장 안전한 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집단으로서의 여성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성은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하고, 자신을 뒷걸음치게 만드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요즘 대선 후보 배우자들의 인터뷰를 지나가다 몇 번 봤다.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남편 이승배씨의 인터뷰는 정독했다. “심상정 남편? 한 마디로 그게 뭐 어때서? 영광이지!’하는 생각이라는 답변과 제 처가 세상에 긍정적 기여를 하도록 옆에서 돕는 게, 저의 존재 이유의 핵심이라는 답변은 정말 멋졌다. 그리고 통쾌했다. 여성 정치인과 내조하는 남편이 보여주는 평등한 결합. 게다가 그 남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슈퍼우먼 방지법에 대한 설명이라니!

 

남녀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 조직, 나아가 이 사회의 건강에 좋다. 그게 회사에도, 국회에도, 고위 공직자의 세계에도 여자들이 절반을 차지해야 하는 이유다. 선배들이 버틴 덕분에 나는 둘째까지 육아휴직 1년씩 2년을 썼다. 내 여자 후배들은 육아휴직 2년을 남편과 공평하게 나눠 쓰기를 바란다. 또 내 남자 후배들은 육아휴직 기간 직접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

 

<린 인>에서 이 문장들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평등한 사회라면 여성이 국가와 기업의 반을 운영하고 남성이 가정의 반을 꾸려나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오는 아버지가 늘어나고 직장에서 일하느라 바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더욱 많은 선택 사항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상은 여성에게 성을 근거로 기대하지 않고 개인적인 열정과 재능, 흥미를 기준으로 기대할 것이다.(...) 내 아들이 풀타임으로 자녀를 키우는 중요한 일을 하고 싶어 하더라도 그 뜻을 존중받고 도움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 딸이 집 밖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기를 원하더라도 그 뜻을 존중받고 도움받을 뿐 아니라, 딸이 성취한 일들에 대해 타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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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며 2017.03.30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종류의 글이 페미니즘이 유행하다 보니 많이 보이는데요.얼핏 그럴 듯 하지만 사실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주장들이에요.
    일단 개인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과 다른 종류의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이런 논의가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논의의 순수하게 평등의 관점에서의 약점은 다른데 있으니까 그걸 얘기해보면요.
    모든 직업에서 성비가 일대 일이 되는 건 장기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많은 직업은 예비 단계인 대학이나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부터 성비가 확 갈리기 때문입니다.
    제가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이 아니라 거기는 잘 모르겠는데, 대학의 경우에 공대와 자연과학대와 인문대, 예술대는 성비가 확실하게 차이가 나죠.
    그리고 제가 아는 한 그건 무슨 성차별이 주요 원인이 아닙니다.
    공학이나 물리학 같은 학문의 주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여자 고등학생 수부터가 확실하게 남학생보다
    적어요. 자신의 가능성 같은 것 말고 관심 부터가 확실하게 차이가 나죠.
    물론 그런 관심의 차이가 사회에 퍼진 문화와 관계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전공을 갖지 못하게 하는 노골적인 입시 차별이나 전반적인 거대한 장벽이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전체 졸업자의 1/10 또는 1/100 밖에 안되는 여성을 무슨 수로 십년,이십년 뒤에 특정 직업의 주요 직위에 반을 채울까요? 만약 그 여성들이 언제나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잘하는게 아니라 동등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그 어떤 차별도 없고 경력 단절 문제가 해결되어도 절대로 반을 못 채우는 겁니다.
    실력에 관계 없이 무조건 억지로 반을 채우기로 정하지 않는다면요.

    단지 여성이 절반이 되는게 나름 좋은 점도 있을지 모른다는 까닭 하나만 가지고 주요 직위에 여자들을 채워야 하나요? 그 직위는 오로지 성평등을 구현하는 것 하나만을 목표로 존재하는 자리들이 아닙니다.

    반대로 수간호사 같은 자리는 실력있는 여자 간호사 모두 탈락시키고 억지로 반을 남자로 채워야 할까요?
    남자가 많은 전공이건 여자가 많은 전공이건 , 취직률이 높을 경우에 별짓 다해도 성비를 반을 못 채울 것 같지 않나요?

    여성이라는 까닭으로 직업을 가지고 일해 가는데 있어서 장애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게 바람직한 방향이기는 하지만, 그게 여성이 절반이 되어야 한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합니다.
    그걸 억지로 맞추는 것도 불가능하고 제도와 문화가 평등하게 바뀐다고 해서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절반이 되는 걸 어렵게 하는 문제들을 제거할 수 있을 뿐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이 엄청 싫어하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보다 높고,이공계에서는 70%입니다. 성평등을 위해서 여성 이공계 졸업자는 불이익이라도 줘야 할까요? 그런다는 말은 못 들어봤습니다.)


    • 또한지나가며 2017.03.30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나가며님께
      직업에 편견이 붙어있는게 문제인거죠
      간호사라는 직업은 남자도 할수있고 여자도 할수있어요, 하지만 남자간호사에 대한 사회 이미지가 남성으로 하여금 진입장벽이 있는게 아니라고 하실수있나요?
      미대와 예체능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학생이 미대를 진학하겠다는 것을 부모에게 이해시키는것도 여학생보다 훨씬 어렵죠.
      이건 여성에게도 해당되는게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이런 편견을 고쳐나간다면 미래에는 더 많은 선택지가 있는 사회가 되겠죠

    • ㅡㅡ 2017.04.01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 각각의 직업군 내의 성비를 1대1로 맞춰야 한다는 내용이 전혀 아닌데요. 당연히 직업마다 여성이 선호하거나 남성이 선호하는 직업군이 있을 수 있죠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상적이라고 하는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주입당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시대이니까) 여성에게만 육아의 부담을 지우는 사회 분위기가 여성이 직장을 다니는 데 큰 부담을 지게 하고 결국은 직장을 그만두게까지 하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문제라는 거예요. 간호사 중 여성의 비율이 9이고 남성이 1이었다가 여성이 이러한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어서 그 비율이 8대 2로 바뀌었다고 칩시다. 그래도 여자 비율이 월등하게 높으니까 불만 갖지 않고 가만 있어야 하나요? 어떻게 글을 이렇게 읽으실 수 있지?

  2. 지나가는 남성 2017.03.31 1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 공감합니다. 저도 변해보려고요.
    그래도 참 어렵네요. 아기 키우면서 회사 다닌다는 것이. 또 부부가 서로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래도 노력해야겠죠?
    노동시간 의무 단축을 포함해 다양한 논의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03 1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변하기 위해 노력하시겠다는 말씀이 넘 멋집니다. ^^ 대선을 계기로 많은 논의가 나와야하는데 항상 원하는 것보다 부족하죠. 또 실제 정책이 실현될지도 의문이고요. 그래서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할듯해요. 제 삶을 바꾸는 건 결국 제 자신이니까요. 댓글 감사합니다.

  3. Nine 2017.04.01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육아와 가정 생활을 좋아 하는 여성분도 계십니다.
    사회적 성공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아닙니다.
    여성이 육아를 책임지기 싫은 집이 있다면 남성이 지면 됩니다.
    역활은 반대로 하면 쉽게 해결 됩니다.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 나참 2017.04.01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부 둘 모두가 직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육아와 가사노동은 여자들의 몫이고 남자들이 안하니까 이런 글이 나온거죠(남자가 가사노동에 어느정도 기여하는지 통계적 지표들에서 아주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하면 쉽게 해결돼??? 말로 쓰니까 정말 쉽고 간단하네요. 입사면접볼때 출산계획 있냐는 질문 들어봤어요? 남자들에겐 저게 마이너스 요소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저런질문 안 들어봤겠지만 여자들은 항상 들어요. 일보다 육아가 더 좋은 사람, 있겠죠. 근데 그 비율이 정말 그렇게 높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러실수 있겠냐니ㅋㅋ 출산한 사람들이 가사노동에서 자아를 찾고 싶어서 직장 그만두는줄 알아요? 맨 첫문장에서 말했다시피, 남성중심적 사회이기 때문에 출산한 여성은 사회적 성공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래서 사회가 평등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문맥이 파악이 안되어서 의무교육은 수료하셨는지 궁금하네요

  4. Movelikejaggy 2017.04.01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껏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살아왔으니 이해가 안되겠지
    이제서야 여성들이 모여서 목소리내니까 너넨 왜그렇게 예민해? 라고 광광대는 인간들 역시나 속속들이 등장ㅋ 왜이렇게 성평등이슈에 한남들은 예민하게 구는지 ㅋㅋㅋㅋ

    기존의 가부장적이고 남성위주위 사회를 유지하고싶다는 한국남자들의 숨은 의도 너무 대단하네요 ㅎㅎ

    oecd세계에서 여성이 일하기 좋은나라 순위애서 우리나라 꼴지했구요, 남녀임금격차 심한걸로도 악명높아요 .. 팩트를 원하면 oecd홈피 가서 통계를 보세요

    • 얼씨구 2017.04.02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디 더러운 회사를 다녔는지 모르겠지만 체계를 갖춘 중소기업 수준만 되어도 동일노동에 남녀 임금 격차는 없다.
      하는 일이 다르고 시간이 다르고 책임이 다르겠지.
      가부장적이고 남성 위주의 사회를 유지하고 싶은 남자의 숨은 의도를 어쩌구하는거 보니까 피해의식이 대단히 심각해 보이는데 그냥 본인 능력이나 더 키우는게 어때?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 거기서 여성을 빼고 그냥 일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고 해도 통할까 말까인데 남자는 쏙 빼고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라니... 역차별 하자는거네.
      그냥 같은 일을 같은 시간동안 하고 같은 돈을 받아가겠다는것도 아니고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 ㅋㅋㅋ
      너같은 애들은 그냥 능력이 없는거야.

  5. 지나가다가 2017.04.01 1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ovelikejaggy님께

    대한민국에서 남녀임금격차 많이 심하죠..
    그런데 통계란건 항상 정직한게 아니에요.
    실제로 저런 통계를 내면서 직업군 이런건 다 무시하고 통계를 내기때문에 여성 임금이 남성 임금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어요.
    물론 사회적으로 유리천장 그러한 장벽도 있지요. 하지만 위험하고 소득이 많은 그런 직업에 진출한 여성들이 얼마나 있는지 어떤 직업군에 성비가 어떻게 되는지 다 따져보고 생각해야 된답니다.
    하나의 통계만으로 모든걸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 지나가다2 2017.04.02 0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통계하나만으로 모든걸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만, 직업군을 무시하고 통계를 냈다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어보입니다.
      국회의원 남성1명에 회사의 비정규직 여성1명 이렇게 직군이 엄청나게 차이나도록 표본을 선택하지 않는 한 압도적으로 낮을 수는 없을텐데요.
      소득이 많은직업이 위험한 직업이라는 가정도 섣부른 일반화인 것 같구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위험하고 소득이
      많은 직업이라 함은 어떤게 있는지?
      목숨을 걸고 일하는 소방관도 목숨값에 비하면 소득이란침 적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6. 머루 2017.04.01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성들이 아무리 울고불고 해도 남성들은 손에쥔 사회기득권을 결코 거저 내주지 않습니다. 쟁취하셔야합니다.
    시민들이 몇백년전에 프랑스에서 투쟁을 통해 신민권을받아낸것 처럼 몇십년전에 한국에서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시킨것 처럼 여성들 스스로 남성들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받아내야하는겁니다.
    지금 여성권익이 한국에 비해 훨씬 높다고 하는 서방선진국의 모든 나라가 그렇습니다. 권리=의무=책임 이 세가지가 균형을 이룰때 비로소 여성들의 권익이 상승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려면 용기를내어 남성들의 보호막을 스스로 깨야 합니다. 남성들의 보호막 석애선 절대로 동등함 이라는 권리를 남성으로 부터 받아낼수 없으니까요.,

    • 호두마루 2017.04.02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보호막이란거 IMF 이후로 다 무너진지 오래됬어요. 사회적 보호막이란건 애초에 있지도 않았지만. 남성은 여성을 보호하는게 아니라 위협하고 있죠.
      여성이 깨야할 것은 이미 깨지고 없는 남성들의 보호막이 아니라 견고한 남성 카르텔과 가부장제입니다.

    • ㅎㅁㄴㄹ 2017.04.02 0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희는 보호막 속에서 동등하게 해달라고 한적 없습니다^^!
      오히려 오빠가 허락하는 페미니즘을 하라고 하는 것이 한남들이죠!

    • 지나가다 2017.04.02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두마루 // 사회적 보호막이 없다? 당장 군대랑 경찰만 봐도 그딴소리 못할텐데... 안전하게 보호된 사회 안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는게 뭔지 모르는 인간들이 가지는 모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댓글이구만..
      견고한 남성 카르텔이 어디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있다한들 스스로 깨고 나가봐라. 그 방법은 간단하다. 밖에 나가서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일 하면 된다. 어디 실전은 경험해보지도 못한것 같은데 당장 도시 밖으로만 나가봐도 자기가 얼마나 보호된 사회속에서 살고 있는지 피부로 느껴질텐데 한심스럽다.

  7. 2017.04.01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용된 책도 이 글도 좋네요.
    조직에서 불편을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사회가 바뀌어간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저도 언젠가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03 1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책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를 바꾸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계속 이건 아니라고, 이렇게 해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목소리 내려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

  8. 좋은글 2017.04.02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지만 반드시 수반되어야할 한가지
    신장된 권리만큼 책임을 질것!

    여성이 하기싫은 일은 남자도 하기 싫다.
    힘든일, 어려운일, 더러운일, 의무여서 꼭해야만 하는일..
    젊은 여성중에 위의 4가지 일을 하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
    아직도 남자의 부속물로 만족하는 여자가 많은 이상 과도한 서비스다.

    필요한만큼 얼마든지 목소리를 높여 쟁취해라!
    하지만 취한 권한만큼 책일질줄 아는 사람만 그 권리의 진짜 주인이다.
    다른 여성의 노력으로 '얻어진'권리를 가진자가 책임도 같이 질 수 있을까?

  9. 행인1 2017.04.02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 차지해라. 군대부터 시작해서 하수구 퍼내고 철근 엮고...
    세상 일자리의 적어도 절반은 현장에서 몸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다. 이른바 3D 업종들... 여자들은 도전할 생각도 안해보는.. 아니 그런 일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직업들이지.
    그저 누군가가 힘들게 쌓아올린 후에 안정된 수익구조를 만들어놓으면 세상의 반은 여자이니 저 일자리도 절반은 여자라야 한다는 지극히 정치적인 구호로 남의 밥그릇에 숟가락 올리지 말고 몸으로 뛰고 돈 날려가면서 직접 만든다음에 남자들한테 하나도 주지말고 그냥 니들이 다 차지해라.
    그나저나 같은 논리로 학교 선생의 절반은 남자로 채우자고 하면 찬성할 여자들 몇이나 될까?? ㅋㅋ

  10. mju.ac.kr 2017.04.02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의 글은 이런 의미가 아닐텐데..

    모든것을 이분법적 메카니즘에 맡기자는 의미가 아니라

    보다 낳은 세상을 위해서 남자.여자 역할이 있어서 그에 맞는 입장을 취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생물학적 본성에 따르는 역할구분이 시대적으로 바귀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가되는데..



    같은 남성으로서

    여성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면

    똑같이 이구동성으로 의무병역, 잠수용접공 따위를 이야기 하는데...

    한심한 종자들 같아요

    "그럼 니들이 애 낳아라" 하고 외치는 여성들 이야기 하고 무엇이 다른지요?


    평등이란 절차적 평등의 의미보다는

    상호관계적 평등이 옳지 않을까요 ?

    죤롤스 교수가 이야기한 정의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일반인과 휠체어탄 사람과 100 미터 경주를 할떄

    동일선상에서 출발하는 게 평등이 아니지 않습ㄴ까?


    조금더 배려하고 남자라면 신체적 약자인 여성에게 양보하는게

    남성의 권위를 추락시키나요?




    기자님의 글 잘 보았어요


    그런데 항상 이런글은 여성이 써야 하나요?

    여성이 쓰면 꼭 남성들의 반박글이 되풀이 되는 현상이 수십년 되풀이 되는데...


  11. 슈~~ 2017.04.03 0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린 인>에서 이 문장들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평등한 사회라면 여성이 국가와 기업의 반을 운영하고 남성이 가정의 반을 꾸려나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남자와 여자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서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사회로 나아간다면 린인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는 반듯이 실현 되리라 믿습시다. 현재 한국또한 그러한 사회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수반되어 우리의 의식 또한 계속 변화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의식의 변화라 해서 거창한게 아닙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틀린게 아니라 다르다는것을 인식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다른 생각을 갖는게 당연한거고, 다른 습관과 다른 삶을 방식으로 살아가는게 당연 합니다. 그들이 틀린게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거...인격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 풍토가 조성된다면 필자의 글 또한 무의미해지는 사회...이런게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03 1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가 억압하는 것은 여성만이 아니죠. 남성의 선택권도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더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서로를 이해하며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12. 여자 2017.04.13 0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장에선 이미 기계다루고 회의장소설지 등 남자와 동등한 업무를 맡고있다 단지 힘쓰는일에서 힘이 남자보단 모자라 도움 받긴하지만. . 그러나 가정에서는 여전히 집안일 애보는 일 시댁눈치보며 잡일 등 전부 내차지다. 다른 남자들과 비슷한일을하고 가면 나도 힘들어서 눕고싶고 쉬고싶은데 다시 밤일을 하는 기분이다. 회식도 남자들처럼 새벽끝까지 함께 즐겨보고 싶으나 남들 눈엔 가정은? 아이는? 먼저들 걱정해준다 그럼 당신네의 아이와 가정은 어떻고? 암튼 늦게가면 이혼감이라 말하는 남자들. . 여자라서 집에서 밥하고 설거지하고아이보고 새벽마다 깨서 이불덮어주고 이럴려고 결혼해서 힘들려고한것은 아닌데 단지 남자보다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이런대접과 더 많은 일을 해야한다는 것에 화가난다. 힘만 강했더라면 못할것이 뭐가있나 용접? 왜 못하나 할 수있다. 다만 가정 일을 분담해서 피곤에 안찌들면 더한것도 하겠지. . 우선 구조적으로 여잔 힘이 약하고 남잔 섬세한면과 멀티가 안되는 것에 서로 도우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빨래도 세탁기가 하는데 세탁물 세탁기에 넣고 옷 널고 개키고 뭐가 어려워서 안하는가 그정도는 일이 아닌가? 가끔이야 아무렇지도 안겠지 티도 안나는 일 매일해보면 그것도 귀찮은 노동인거다 물론 힘이 필요한 벽돌 나르기등 힘이 안되서 남자10장 옮길때 여잔 5장 옮겨서 일의 효율이 없다고하겠지 하지만 그 일을 여잔 못한다하지 말길 악으로 깡으로 할수 있다

  13. 생각하는 2017.05.11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들이 노력해 얻어낸 것이 아니면서 남자들 중에서는 어떤 권리가 자신 것들이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겐 그럼 넌 그것들을 누리기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고, 처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무언가를 받아낸 사람이 너를 무시하면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고 말해 주세요. 의외로 자신이 몰랐던 것을 면전에서 지적당하면 정말 생각머리가 없지 않고서야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영, 집안일과 육아는 절반씩 분배가 안 돼. 나도 둘째 낳고 남편이랑 정말 많이 싸웠는데 결국 해결 방법은 사람을 쓰는 거였어.”


한 선배가 해준 말이었다. 아이 한 명을 낳고 복직한 2014년, 하루하루가 진이 빠질 때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는 아이 친정엄마께 맡기고 출근하고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재워야 하는 세 살 아기가 있었다. 아이는 하루에 옷을 두세 번씩 갈아입어 빨래는 산처럼 쌓이는데 평일에는 빨래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정엄마가 아이 빨래를 해주셔서 겨우겨우 일상이 유지됐다. 청소, 아이 반찬, 어른 빨래, 분리수거 등등. 무엇 하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자 선배들의 빳빳한 와이셔츠를 보면 누가 다려줬을까 생각했다. 부부의 역할 분담이 전형적인 남녀의 성역할로 분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선배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고 난 그들에게 이해받기 어렵겠다 피해의식이 생기기도 했다.

 

두 번째 휴직. 아이가 어릴수록 집안일의 양도 많아지는데 아이가 둘이 되니 제곱이 되는 느낌이다. 아이 둘을 밥만 먹였는데도 진이 빠지는데 그때마다 서른이 되어 결혼할 때까지 밥을 차려주신 친정엄마의 노고가 떠오른다. 반찬 투정을 하면 왜 엄마가 화를 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아 이제야...

 

아이가 둘이니 빨래는 이틀에 한 번씩 돌린다. 세탁기가 다 돌아가면 널고 마르면 접고. 청소를 하고 소파 밑에 들어간 아이 장난감들을 꺼내 정리하고 아~주 가끔 물걸레질을 한다. 큰아이 반찬을 만들어야 하고 작은아이 이유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내 밥은 늘 뒷전이다. 왜 엄마들은 남은 밥을 먹는지 아는가. 자기 밥을 먹을 시간이 없어서다.

 

최근 유치원 친구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집안일은 반반씩 안 돼. 사람을 쓰는 것도 또다른 스트레스야. 결국 방법은 하나야.” “뭔데?” “기계를 들이는 것.”

 

그 말을 듣고 물개박수를 쳤다. 정말 여성 해방은 가전제품이 가져다줬구나. 우리 둘은 새로 나온 빨래 건조기를 꼭 사야 한다며 맞장구쳤다. 마침 최근 신문 경제면에는 날개 돋친 듯 팔리는지 건조기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는 사진이 실렸고 다른 기업도 건조기 생산을 시작했다는 기사도 실렸다. 역시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 식기세척기, 빨래 건조기, 로봇청소기는 복직 후 꼭 구매해야 할 가사노동 기계들이다.


본인이 먹을 이유식을 보는 둘째. 

 

집안일... 해도 태가 나지 않는다고 다들 말한다. 매일 해야하는 반복된 작업이지만 안 하면 생활이 불편해지는 일. 휴직하고 주부로 지내며 음식을 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그동안 내가 집안일의 중요성을 얼마나 몰랐는지 깨닫는다. 항상 가사노동에 대해 생각하면 왜 분배가 절반씩 안 되는가에 분노에 집중했었는데(;;;;) 요즘 집안일에 제법 흥미를 느끼게 됐다. 내가 인터넷 레시피를 따라 해도 제법 맛이 나올 때, 그걸 가족들이 맛있게 먹을 때, 음악을 틀어놓고 경쾌하게 설거지를 하고 그릇이 깨끗해지는 것을 볼 때, 시금치를 생협에서 마트보다 싸게 살 때, 빨래를 가지런히 접어놓을 때 같이 단정해지는 기분을 느낄 때 등.

 

그런데 역시 그런 경쾌하고 단정한 마음을 한 번에 후려치는 말들이 있다. 가사노동과 육아를 전담하는 전업맘며느리에게 우리 며느리 놀잖아. 아들만 불쌍해 죽겠어같은 말들. 왜 가사노동이 노는 것인가! 육아가 어찌 노는 것인가! 내가 해본 어떤 일보다 힘든데 말이다. 남편도 훈련소 때보다 힘들다고 했다.

 

그러다 문득 집안일이 우라까이 기사’(타사보다 보도가 늦어 타사 기사를 베껴쓰는 것) 쓰는 것 같다는 들었다. 반복되는 일이라서가 아니라 인정받는일이 아니라서. 그런데 매일매일 우라까이 기사를 쓴다면, 그래서 매일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으로 일한다면 그 일상은 어떨까. 사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을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왜 근데 집안일과 육아는 사회적으로 대단하다고 인정해주지 않는가. 인정하는 순간 돈을 지불해야 해서 아닌가. 워킹맘들은 가사 노동 때문에 사람을 고용하거나 기계를 사지만 가사노동에 돈을 쓸 것을 결정하는 것도 결국 여자다!

 

친정엄마는 스물네 살 결혼하면서부터 가사노동을 직업으로 삼았으니 벌써 36년째다. 엄마가 음식을 만드시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깨달았다. 집안일도 창조적으로 할 수 있다! 엄마는 밥을 차리면서 마구잡이로 음식을 놓지 않으신다. 식으면 안 되는 음식, 양념을 마지막에 가미해야 하는 음식을 다 구분하고 순서대로 놓으신다. 심지어 빨래도 엄마가 접으면 훨씬 깔끔하고 청소도 엄마가 하면 훨씬 깨끗하다!! 숙련 노동의 힘이겠지. 예전엔 엄마 그냥 대충해요한 적도 많았는데 이제 그런 말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엄마는 엄마의 노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인데 누가 감히 대충하라고 하는가.

 

그러나 한편 두 아이를 기르면서 내가 인생 어느 때보다 많이 웃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엄마의 삶을 한편 부러워하게 된다. 이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한껏 보지는 못하게 될 내 상황이 과연 좋은 건가 되묻는 나를 볼 때 왜 아무도 내게 육아와 집안일이 이렇게 귀하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나 싶다. 이 귀한 일을 누가 폄하하는가.


주꾸미가 먹고 싶어서 주꾸미볶음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어릴 때부터 집안일이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집안일 지능을 길러줘야 한다. 신혼 때 빨래하고 마른 수건을 접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결혼이라는 형식으로 독립해서 제대로된 집안일은 처음이었다. 이런 사소한 집안일도 엄마가 다 해주셨다는 걸 깨닫고선 엄마가 그립고 미안하고 보고싶어서 자주 울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대학, 직장까지 편하게 집에서 다니면서 집안일에는 거의 손대지 않았다. 엄마는 상견례 자리에서 우리 애가 아무것도 할줄 몰라요라는 의례적인 인사를 진심으로 했고 시어머니는 요즘 다 그렇죠. 같이 살아가며 배우면 되죠라고 하셨다.

 

다행인 건 남편이 신혼 초 나보다 집안일 지능이 높았다는 것이었다. 스무살 때 서울에 올라와서 그때부터 자취를 했던 남편은 김치찌개, 떡볶이를 만들 줄 아는 남자였다. 떡볶이를 얻어먹으면서 중고등학교 시절 청소와 설거지를 아들의 일로 규정하셨던 예비 시어머니를 감사하게 생각했다. 남편의 집안일 지능은 어릴 때부터 형성된 것이었다. 일하셨던 시어머니는 남편이 집안일을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셨다. 지금도 내게 경상이랑 같이 해라고 말씀해주신다. 역설적으로 여자인 나는 집안일을 거의 안 해봐서 할 줄 몰랐는데 이것만 봐도 집안일 지능이 여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다.

 

나영석 피디의 <신혼일기>에서 구혜선 안재현 부부는 가사노동 문제로 다툰다. 신혼 초 가사노동을 분배하면서 벌이는 한국 부부의 전형적인 말다툼을 연예인들도 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꾼 남편보다는 걸레질 잘하는 남편이 최고지.’

 

한 출입처에서 일할 때였다. 진보적으로 알려진 한 인사는 인권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잦았다. 남자 직원들만 회식 자리에서 모아 중요 의사결정을 하는 등. 오히려 내가 정치적으로 비판했던 보수적인 인사는 집안일을 잘 하는 남편으로 유명했다. 그때 타사 기자와 나눈 얘기. “목소리 높여 진보와 인권을 외치는 가부장 남자와 보수적이나 가사노동에 협조적인 남자, 누가 나은가?”

 

잘 모르겠다. 남편만 봐도 한국 남자 모두 집안일 지능이 낮은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부모, 주로 엄마가 어떻게 아들을 키웠는가가 집안일 지능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론은 아들들을 잘 키우자. 집안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릴때부터 가르치자. 아들만 둘 낳은 내가 귀담아 실천해야 할 말. 그래서 두진이는 빨래를 자기 손으로 빨래통에 가져다놓고 다먹은 그릇을 개수통에 가져다놓는 집안일을 시작했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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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3.22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샘맘 2017.03.25 0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와닿는 글이네요.나이41에출산해서 두돌안된 남자아이와 초등 큰딸을 챙기는게 너무 버겁기도하고 남성우월주의 남편을 두고 같이 한평생을 살아야할 엄두가 나지않아 어제 한바탕 뒤집었는데 님의 글을 보며 맘 달래고가네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3.28 2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남성우월주의 남편 ㅠㅠ 뭐라 위로드려야할지 모르겠지만... 가끔 남편이 집안일 센쓰가 정말 떨어질 때!(신혼 땐 저보다 앞서 있던 지능이 왜 진화되지 않는지.... 저는 하나도 할줄 몰랐지만 급 진화됐습니다 한국 여자의 팔자인가요ㅠㅠ) 저는 아들을 잘 키워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합니다... 별로 위로가 되는 댓글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힘내셔요.....!

  3. Sy 2017.04.02 0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하고 아이낳고 나서 제가 매일 했던 생각을 정말 똑같이 하셨네요, 눈물날 정도로 공감합니다:). 글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4. 진재모맘 2017.04.23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오빠 둘 있는 막내딸인데
    어려서도 친정엄마가 "시집 가면 다 해!"하고 안시키셨고 오빠들은 "이혼사유야"라며 양말 옷 뒤집어 벗지 않기 세면대 물기닦기 등 엄하게 시키셨더랬어요
    가사 육아
    세상 제일 힘든 일이에요 정답도 없구요
    지금도 친정 오빠 둘은 집에서 청소기 돌리고 집안일을 많이 해요 저는 어린 나이에 일찍 결혼해서 시엄마가 지금도 반찬 다 해주시고요~
    팔자가 있다지만 친정엄마가 현명하셨단 생각이 들어요
    저도 두 아들 엄하게 훈련시키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