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19.07.31 육아가 괴롭고 힘들기만 한 건 아녜요
  2. 2019.05.01 [둘이 함께 '반반 육아'] 남편과 아내 역할 바꾸기 (2)
  3. 2018.09.10 [임아영 기자의 폭풍육아]수술방 들어가는 아이..내 인생은 내 것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4. 2018.07.20 [임아영기자의 폭풍육아]‘주말 공동육아’ 1년째 부모인 우리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5. 2018.06.16 [임아영 기자의 폭풍육아] 슈퍼우먼이 되는 건 거부하겠습니다 (1)
  6. 2018.06.03 어린 시절 나와 화해하게 될 때 (4)
  7. 2018.05.20 [임아영 기자의 폭풍육아]나도 그 수많은 언니들처럼 사라지는 건 아닐까 (6)
  8. 2018.04.22 [임아영 기자의 폭풍육아] 유치원 교사 1명이 7세 반 26명 돌봐…‘보육의 질’ 기대할 수 있을까 (2)
  9. 2018.03.24 아이를 그리워하는 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엄마
  10. 2018.03.17 [맘편한 세상을 위하여]이 폭력적인 세상에서, 아들을 잘 기른다는 것 (2)
  11. 2018.02.04 [맘편한 세상을 위하여]‘돌봄’ 시간 안 내주는 사회…독감 걸린 엄마 걱정할 여유도 없네
  12. 2018.01.21 워킹맘이라는 말이 숨기려는 것 (1)
  13. 2017.09.15 복직 후 한 달 ‘소진증후군’, 그리고 아빠 (2)
  14. 2017.07.04 늘 마음의 준비를 못한 건 오히려 나였지만
  15. 2017.06.01 사랑받는 건 오히려 나였다 (18)
  16. 2017.05.08 여전히 엄마한테 독립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22)
  17. 2017.04.12 단설 유치원 더 만들고 보육 바우처도 부모에게 달라 (25)
  18. 2017.03.28 왜 여자들이 절반을 차지해야 하는가 (25)
  19. 2017.03.17 왜 가사노동을 폄하하는가 (8)
  20. 2017.02.02 빡센 육아를 부모에게 허하라

 

아이들을 돌보며 웃고 울었던 시간과 바꾸고 싶지 않다

임아영

오늘은 유난히 피곤한 하루였다. 회사 생활이라는 게 어디나 그렇듯 가끔은 굉장히 지치고 고단하다. 날씨마저 푹푹 쪄서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 순간이동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아이들이 나를 맞았다. 그리고 첫째가 내게 묻는다. “엄마 기분이 안 좋아?” 좀 놀랐다. 어떻게 알았을까. “엄마 기분 안 좋은 거 어떻게 알았어?” 어려운 질문인지 대답은 안했다. 그럼에도 엄마의 기분을 헤아릴 수 있게 된 아들이라니, 그저 감동할 뿐이다.

끝이 아니다. 씻고나서 소파에 기대서 좀 쉬고 있는데 아이가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끄적거린다. “뭐해?”라고 물으니 “편지 써”라는 답이 돌아왔다. 5분쯤 지났을까. 아이가 내게 편지를 내밀었다. ”엄마한테 편지 쓴거야?” 아이를 끌어안았다. 기특한 아이야, 기특한 우리 아이야. 편지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엄마 회사는 어때? 회사는 잘 하고 있어?” 아이의 성격대로 공들여 쓴 흔적을 엿보면서 농담으로 답했다. “엄마, 회사에서 별로 잘 못하고 있어.” 어쩌면 솔직한 대답이었다. 오늘의 회사는 내게 힘든 곳이었으니까. 아이가 다시 말했다. “괜찮아, 엄마.” 오늘은 좀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는지 갑자기 명치 끝이 싸해졌다.

첫째 아이가 써준 편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며칠 전에는 첫째가 좀 늦게 퇴근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고생했어.” 고생했다니. 이제 남편과 나도 서로 쑥스러워서 하지 않는 말을 아이의 입을 통해 듣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고마워 고마워 아이야. 이제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구나.

 

#육아에 관한 글을 쓰면 가끔 이런 댓글이 달린다. “힘들고 괴롭기만 육아, 왜 하느냐, 절대 안 하겠다”고. 남녀가 불균등하게 #돌봄노동을 하게 되는 구조,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장시간 노동 문제와 엄마에게 양육 부담을 더 지우는 가부장제에 대해 비판하는 글인데 육아란 곧 괴로움이라 해석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의 대부분의 일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듯이 육아도 마찬가지다. 괴로움과 환희가 뒤섞여 있다.

 

우리 부부는 첫째를 좀 어렵게 키웠다. 처음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돌 전 첫째는 잠을 한 시간 이상 혼자 자지 못하는 예민한 아기였다. 둘째를 낳고 세상 모든 아기가 첫째처럼 잠을 못 자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바운서에 앉혀 놓으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울지 않고) 앉아 있던 둘째가 우리 부부에겐 너무 신기한 존재였다. 첫째가 8세가 된 지금에서야 겁이 많은 아이라 그렇게 울지 않았을까 짐작해볼 뿐이다. 첫째를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둘째를 낳았다. 왜 그렇게 무모했을까. 첫째가 크는 게 너무 아쉬웠다. 첫째가 어린이가 되어가는 속도를 내 힘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둘째를 낳으면 다시 아기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합리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30대 후반이 되면서 가끔은 ‘내 30대는 육아를 하느라 지나간 것 아닌가’라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질문을 바꿔 그럼 아이들이 없던 시절이 그립느냐고 하면 답은 “절대 아니다”이다. 서른에 결혼해 서른하나에 첫째를 낳았는데 돌아보면 아이들을 낳고 난 뒤의 나는 훨씬 편안해졌다. 엄마가 된 이후의 내가 엄마가 되기 이전의 나보다 좋다. 물론 육아의 구조에 분노할 때는 많았지만. 그것은 구조에 대한 분노지 아이들에 대한, 아이들을 키우는 행복에 대한 분노가 아니다. 이제 첫째가 8세, 둘째가 4세. 아이들을 몸으로 부대껴 키워야 하는 시기가 열 살까지라 본다면 내게 이제 6년이 남은 셈이다. 육아가 끝나지 않는다는 한국 사회에서 그 이후에는 다른 고민들이 커지겠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이렇게 힘든데도 아이들을 낳을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절대 아니다”라고 답하고 싶다.

 

가끔 후배들이 #육아에 대해 물어오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어떤 연애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교류”라고. 20대의 연애와도 서른이 되어서 한 결혼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 어떤 것이 더 좋다고 설명하자는 게 아니다. 다르다는 것. 연애가 달콤쌉싸름한 것이라면 육아는 그보다 훨씬 깊다고 느낀다. 깊게 아름다운 순간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이것이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고 무얼까.’ 아이들을 길렀던 30대는 내 인생의 황금기로 기억될 것이다.

 

유전자의 신비일지도 모른다. 내 배에서 나온 나를 닮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란. 어떤 면에선 맹목적이라 헌신적일 수 있고 또 맹목적이라 무모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가끔은 내가 어떤 존재에게 이렇게 최선을 다했나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존재가 온전하길 기도하게 되는 경험.’ 내게 육아는 이렇게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가끔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결국 짝사랑으로 끝날 것을 알아서 묘하게 서운하지만 그게 자식을 향한 사랑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점점 성숙해지는 것은 아닐지. 자기 위해서 불을 끄고 다같이 누우면 내 오른쪽에 누워 있는 둘째는 작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만지며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엄마 어디에 뽀뽀할까? 입술에 해야겠다.” 그리고나서는 입술에 뽀뽀했다가 또 볼에 뽀뽀하고 또 이마에.

 

이렇게 작은 존재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면 세상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뭉클하다. ‘고마워, 두진아 이준아. 언젠가 엄마는 너희들이 엄마에게 사랑을 퍼부어줬던 지금의 기억을 돌려보며 괴로운 한 순간을 나고 있을 것 같아. 고마워. 엄마에게 견딜 수 있는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줘서. 또 고마워. 많이 웃게 해줘서. 그저 고마워.’ 그러니까 육아가 괴로울 것이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괴로운 것은 사회 구조고 돌봄노동은 고되지만 나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웃고 울었던 시간과는 절대 바꾸고 싶지 않다고.

아이들이 같은 양말을 신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너희들을 떠올리면서 잠시 시간여행을 하겠지. 그것이면 충분해

황경상

지금으로부터 30년 뒤, 2049년. 내 나이가 칠십에 가까워진다. 우연히 내가 살아온 인생의 시간만큼만 되돌아갈 수 있는 시간여행의 통로를 알게 됐다면 무얼 하고 싶을까.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만한 사건이 내 삶 속에 없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런 순간들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내 의지대로 바꿀 수도 없고 나처럼 무지한 사람의 의지가 작용해서도 안 된다. 다만 한 가지, 그런 기회가 온다면 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다시 볼 수 있는 순간으로 다시 한 번 가고 싶을 것 같다.

하교를 하면서 가방을 들어줬더니 ‘아빠 힘들지 않아?’ 라고 물으며 다시 자기가 들겠다고 나서는 첫째 녀석의 살짝 찌푸린 툼벙한 얼굴을 보고 싶을 것 같다. 그림책을 읽어주면 책 속의 강아지가 귀엽다며 책에다 얼굴을 비비대는 둘째 녀석의 애교를 보고 싶을 것 같다. 단 10초만의 시간이라도 좋다. 금방 다시 돌아와야 하더라도. ‘요 놈들!’ 하고 볼 한 번 꼬집어줄 수 있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그 결정적인 순간, 만약 아이들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더라도 아이들과의 추억 중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대답하기 어려웠을 거다. 아이들의 빛나는 순간은 정말 짧다. 담으려고 하는 순간 어디론가 사라진다. 얼마 전 아버지에게 “나 학교 다닐 때 뭐 기억나시는 것 없어요?” 물으니 이렇게 말하신다. “니 어렸을 적 대구 달성공원에 갔던 거는 기억나는데… 내가 일만 했지, 뭐 했나?”

 

늘 “니가 알아서 다 했지 뭐”라고 하시지만,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최선을 다하셨다. 중학교 때는 바로 가는 버스 노선이 없어서 매일 아침 나를 학교 앞까지 태워 주시고 출근을 하셨다. 추운 겨울, 차에서 나오는 따스한 히터 바람을 쐬며 달콤한 쪽잠을 잤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내 피부가 저릿저릿하다. 워낙에 표현이 서툴기도 하시지만, 그때 만약 아버지가 육아휴직을 할 수 있었고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아버지의 대답은 분명 더 풍성해졌을 거라 생각한다.

 

힘은 든다. 아이들은 수시로 변한다. 식탁에 겨우 앉혀서 밥을 먹이려는데 갑자기 ‘똥꼬’가 아프다고 약을 발라달라고 한다. 아침에 웬일로 멀쩡히 혼자서 준비를 잘 하더니, 학교가려고 막 나서는데 갑자기 숙제를 안 했다며 꺼내들어 화를 돋우기도 한다. 어린이집에 가는 도중에 갑자기 어제 집 앞 놀이터에서 봤던 지렁이가 보고 싶다고 떼를 써서 곤란하게 만든다. #배변훈련을 하는 둘째는 씻으러 들어갔다가 대변을 다섯 번이나 바닥에 봤다. 닦고 또 닦느라 지치게 만들고 놓고도 낄낄 대며 웃는다.

 

이 변화무쌍한 아이들 앞에서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다. 화도 내고 짜증도 낸다. 그러다가도 “아빠 사랑해~ 아빠 더위?”하면서 잘 맞지도 않는 선풍기 리모컨을 들고 와서 에어컨에다 대고 막 눌러대는 아이를 보면서 뭉클해진다.

 

아이들이 판다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다. 아빠 판다가 형제 판다를 돌보고 있다.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는 걸 모두 안다. 그럼에도 가끔 우리는 갑작스레 불러오는 한 줄기 바람에, 어쩌다 귀에 들어온 익숙한 멜로디에, 오랜만에 맡은 익숙한 향내에 과거로 순간 이동한다. 나도 가끔 라면을 끓일 때 희게 부풀어 오른 면을 보면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아버지가 만들어주셨던 ‘괴식’ 말이다. 정확히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라면을 면만 따로 끓인 다음에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스프를 뿌려서 주셨다. 의외로 꽤 맛있었다. 지금 다시 해 볼 자신은 없지만. 아버지는 군대에서 밥에 마가린과 간장을 비벼서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는 얘기를 하시는 세대니, 그런 ‘괴식’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도 아이들에게 음식을 해 준다. 스마트폰에 음식 조리법을 틀어놓고 들여다보면서 주방을 동분서주해 보지만 사실 내가 봐도 맛은 없다. 궁중떡볶이를 했는데 떡이 다 뭉그러져서 첫째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둘째는 기껏 만들어놓은 카레가 맵다며 먹지 않는다. 대충 있는 걸로 먹일까 하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을 만들었더니……. 몹시 속상하다. 그러다 녀석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언젠가 너희들도 뭉개진 떡국 떡을 보면서, 카레의 알싸한 후추 맛을 새삼 느끼면서 아빠가 해 준 ‘괴식’을 생각하겠지. 아니, 내가 너희들을 떠올리면서 잠시 시간여행을 하겠지. 그것이면 충분하다.

불가능하기 때문인지, 시간여행을 다룬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나온다. 시간여행은 보통 시간을 마음대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미래의 시간을 미리 경험해 보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내 맘대로 움직일 수는 없지만, 우리의 삶이 어쩌면 ‘시간여행’이다. 시간 속에서 살면서 시간의 지배를 받으면서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지나고 나면 아무리 그리워도 돌아갈 수가 없다.

 

그 시간여행 속에서 아이들의 뺨을 부비며 “뭐 먹고 싶어?” “뭐 하고 싶어?”라고 물을 수 있는 이 시간으로 언제 건 다시 돌아오고 싶을 것 같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거실에서 종종대고 돌아다니는 녀석의 뒷모습을 스마트폰에 담는 것뿐이다. 돌아오지 못할 걸 알기에, 언젠가는 이 모습이 그리워 찾아 헤맬 걸 알기에.

 

[출처] 육아가 괴롭고 힘들기만 한 건 아녜요. [부부 육아일기 10화]|작성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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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아영 황경상 기자의 폭풍육아 시즌2

임아영·황경상 기자는 11년차 입사 동기입니다. 두 아들을 낳으면서 부모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양육은 엄마가 주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왜 ‘반반 육아’가 중요한지 말하려 합니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자…아이에게도, 내게도 ‘엄마’가 생겼다

초등학교 1학년 첫째와 천둥벌거숭이인 35개월 둘째까지 돌보는 일은 지루한 육체노동이다. 한편으로는 머리 한쪽이 지끈지끈 아픈 뭉근한 감정노동이기도 하다.

 

남편이 육아휴직한 지 한 달이 지났다. 2주쯤 지났을 때 어느 퇴근길 집 근처에 와서 남편에게 전화했다. “남편, 나 맥주 한잔만 하고 갈게.” 대뜸 무뚝뚝한 답이 돌아왔다. “왜.” 얼른 저녁 시간대 육아를 분담하기 위해 집에 돌아오라는 뜻이다. 이미 집 앞이던 나는 더 신나서 말했다. “아니, 맥주 한잔하면서 잠깐만 친구랑 이야기만 하고 갈게.” 갑자기 남편의 목소리가 커졌다. 따다다다다. 우리 남편이 이렇게 말 잘하는 사람이었던가. “나 벌써 1층이야.” 나는 가부장 흉내를 내서 신이 났고 남편은 내가 무사히 육아를 하러 돌아온 것에 대해 안심했다.

 

“남편, 나 맥주 한잔 하고 갈게” “왜?”
나는 언젠가 한 번 꼭 해보고 싶었던
한국 사회 가부장 흉내를 내며 신이 났다

 

통쾌했다. 언젠가 한 번 꼭 내보고 싶었다. 한국 사회 가부장 흉내를. 한 여성 개그맨의 ‘가모장 개그’를 좋아했다. “조신하게 살림하는 남자를 원한다”, “어디 아침부터 남자가 인상을 써”, “남자의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패가망신한다는 얘기가 있다” 등등. 공감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비튼 말 속에서 가부장 언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 수 있었으니까. 평등한 삶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깔아뭉개지 않는 삶, 우리의 임금노동이 누군가의 무임금노동에 빚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삶, 임금노동 아래에서 허우적대는 돌봄노동을 인정하는 삶 아닐까.

 

아이를 낳고 퇴근 후 회식이 자연스러운 아빠와 퇴근 후 회식할 수 없는 엄마로 구분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애써왔다. 육아는 금을 그을 수 없는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내 어깨가 무거워지면 때로는 싸우기도 했고 때로는 사정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 기준에서 ‘착한 남편’도 언제나 최선을 다해왔다. 주로 싸움을 걸고 사정하는 쪽은 나였지만 흔쾌히 싸움을 받아주거나 사정을 받아주는 것조차 고마웠다. 그래서 남편의 육아휴직을 결정할 때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남편의 육아 경력은 내 육아 경력과 같다. 참을성을 필요로 하는 일에는 나보다 남편이 훨씬 낫다. 길지 않은 육아휴직 기간 원래 해왔던 대로 하는 것인데 뭐가 크게 달라지랴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상의 결은 달라졌다.

 

남편이 만든 밥을 먹는데 기분이 묘하다
엄마 밥에 대한 향수가 개운치 않았던 건
숨겨진 돌봄노동의 실체 때문이었다

 

남편이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먹는데 기분이 묘했다. 시간거지인 맞벌이 부부라 평소 자주 음식을 사 먹었지만 가끔 요리라는 것을 하는 사람은 주로 남편이었다.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휴직 후 먹는 밥은 달랐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 남편이 마파두부밥과 참치전을 해놨다. 원래 손으로 뭔가를 빚어내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요리를 즐거워했지만 아침을 먹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먹고 싶었던 ‘엄마 반찬’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해준 고등어조림이 정말 맛있었는데.” 며칠 후 일하고 있는데 남편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고등어 샀어.”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주라고 남편의 육아휴직을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내게도 엄마가 생겼다. 늘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셔서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이 있는 게 훨씬 마음이 편했다. 우선 남편은 젊고 힘이 세니 아직 천둥벌거숭이인 35개월 둘째를 맡기기도 미안하지 않았고 사실 육아는 우리 둘의 일이라 미안할 이유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엄마가 생겼다’고 느낀 지점은 아마 ‘밥’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니 ‘밥을 해주는 엄마’가 생겼다. 결혼 후 늘 그리워하던 매일 아침밥을 차려주는 엄마. 따뜻한 엄마 밥.

 

남편과 역할을 바꾸면서 든 생각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돌아가는 삶 말고
서로서로 챙기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

 

며칠간 밥을 얻어먹고(?) 출근하는데 이상하게도 개운치 않았다. 엄마 밥에 대한 향수가 왜 개운치 않을까. 답은 쉽게 찾았다. ‘여전히 나도 누군가 돌봐주는 삶, 누군가 뒤치다꺼리를 다 해주는 삶, 자고 일어나 누가 차려준 밥을 먹고 나오는 삶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구나.’ 결혼하고 나서야 가사노동이 무엇인지 배웠고 아이를 낳고서야 돌봄노동의 실체를 알게 됐다. 이전의 나는 1인분의 삶을 살지 못했구나 하는 깨달음. 남편이 다시 내 뒤치다꺼리(?)를 해주니 안온해졌다. ‘임금노동에만 신경쓰면 되는 삶이 이랬었지.’

 

언젠가 동네 친구가 말했다. “가끔 자신은 집에서 노예라는 생각을 한다”고. 다른 엄마가 말했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삶과 사회를 논할 수 있었던 것은 밥을 차려준 노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가끔 기저귀를 한 번도 갈아보지 않았을 것만 같은 자들의 칼럼을 읽다 보면 묘하게 우울해졌다. ‘이런 생각할 여유가 있어서 좋겠다.’

 

나만 노예가 되지 않는 삶을 살면 될까. 우리 모두 노예가 되지 않게 서로의 돌봄을 나누는 사회가 좋은 사회 아닐까. 우리 모두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주겠다는 마음으로 돌봄의 영역을 나눠야 하는 것 아닐까. 남편과 역할을 바꾸면 신이 나기만 할 줄 알았다. “남편 좀 풀어주라”는 말이 너무 싫어서 남편 앞에서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역할을 바꿨으니 너도 고생해봐라’라는 독한 마음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데 결국 돌아가는 답은 거기다. 1인분의 삶을 살기 위해 귀찮은 일들은 누군가에게 떠넘기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누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고고한 말을 하는 삶 말고 서로서로 밥을 챙겨주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

 

<임아영기자 layknt@kyunghyang.com>

 

 

▲지루한 육체노동이지만…이 뭉클함 없인 인간은 반쪽 아닐까

“아빠 무서워~ 저기서 안 잘 거야.”

둘째가 매일 자던 창가 쪽 침대에서 건너와 내 옆에서 잔다고 한다. 좁은 자리에 녀석의 몸을 꼭 끌어안고 모로 누웠다. 따뜻하고 달큼했다.

 

이러다 내 삶이 사라질까 조바심 들지만
작은 일에도 손뼉을 치는 첫째의 표정에
그간 느끼지 못했던 뿌듯함을 느낀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일 없이 허무했다. 뭔가 그리우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누군가 만나고 싶으면서도 막상 만나고 싶진 않았다. 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열망했고, 헛헛한 속을 술로 달래기도 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어갈 틈조차 없다. 첫째와 둘째, 늘 이 녀석들이 내 삶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간인지라 이기적인 생각도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 자신의 삶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든다. 그러다가도 처음으로 아주 간단한 컴퓨터를 가르쳐줬더니 손뼉을 치며 깜짝 놀라는 첫째의 표정을 보며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종류의 뿌듯한 감정을 느낀다. 그저 아무렇게나 볶아서 만든 스파게티를 싹 비워버리는 둘째의 입을 바라보며 이것 외에 내 인생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아침밥을 먹이고, 씻기고, 빨래하고…
반복되는 일상, 생사 다투는 큰일은 없다
그저 작은 틈을 매일 메워 갈 뿐이다

 

녀석들을 돌보는 일은 지루한 육체노동이다. 누군가 내게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농담 삼아 ‘물병 씻기’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이들 물병에는 보통 빨대가 달려 있어 물을 먹이기에 편리하지만 매일 씻어야 한다. 하루라도 안 씻으면 물때가 뿌옇게 낀다. 시커먼 곰팡이까지 생긴다. 씻기는 번거롭다. 빨대와 물통 뚜껑을 일일이 분해해야 한다. 빨대 속은 솔질도 해 줘야 한다. 그러나 씻은 물병에는 머지않아 다시 물을 담아야 한다. 빨대 물병 시기는 지나갔지만 여전히 두 개의 물병을 씻는 일은 주요 일과다.

 

반복되는 일은 많다. 매일 아침밥을 먹이고, 이를 닦이고 씻기고, 가습기 물을 갈아주고 빨래도 해야 하고… 별것 아닌 일인데 매일 같은 반복에 지치기도 한다. 시시때때로 창궐하는 물때와 곰팡이야말로 하루하루 닥쳐오는 일상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생사를 다투는 큰일은 없다. 찬란한 기쁨이나 즐거움도, 견디지 못할 분노와 한숨도 없다. 그저 작은 틈을 매일 메울 뿐이다.

 

그것도 엄살이다. 첫째가 유치원에 다닐 때 한 달에 한 번 현장학습을 나가면 김밥을 싸 주었다. 아침에 김밥을 싸는데 갑자기 눈물이 난 적이 있다. 급식을 시작했던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매일같이 점심·저녁 도시락을 챙겨주셨던 어머니가 생각나서다. 나는 겨우 하루치 도시락만 준비해도 이렇게 진이 빠지는데 어머니는 도대체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견뎌 오셨던 걸까. 일까지 하시면서.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다. 언젠가 이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니가 “네가 인제 그걸 알았냐”며 눈물을 살짝 글썽이기도 하셨다.

 

가끔 삶의 끝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이 작은 녀석들을 보듬어 안는다
찰나인 이 때를 내 삶에 흠뻑 적시기 위해

 

육아는 머리 한쪽이 지끈지끈 아픈 뭉근한 감정노동이기도 하다. 녀석들은 내 아이들이지만 엄연한 타인이다. 그걸 알면서도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데 때로는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소리도 지르게 된다. 그러고 나면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하는 자괴감에 빠진다. 늘 내 바닥을 들여다보는 일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이 타인을(꼭 아이가 아니더라도) 돌봄으로써, 혹은 돌봄을 받으면서 느끼는 어떤 뭉클한 감정을 생각하지 못하고서 인간은 여전히 반쪽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한다. 아무런 보답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 몸이 아닌 타인을 챙겨주고 닦아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하는 그 행위는 어쩌면 인간의 영혼을 씻어주는 종교의식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는 예쁘게 핀 길가의 꽃잎에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고, 빈 담뱃갑을 구기지도 않고 땅바닥에 떨궈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한 번도 타인을 돌봐준 적도 돌봄을 받았다는 사실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일 테다.

 

녀석들은 되레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내일 가져갈 준비물을 밤에 정리해 두겠다고 하자 첫째가 말한다. “아빠, 그러면 잠 오지 않겠어?” 아이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바라보고 다시 한번 꼭 껴안는다. 신현림 시인은 <침대를 타고 달렸어>라는 시집에서 딸의 일기 중 이런 구절을 인용한다. “엄마, 화나고 슬프고 외로우면 나한테 말해. 내가 도와줄게 내가 웃겨줄게 내가 얼마나 웃기는데.” 시인은 “너를 안으면 다시 인생을 사는 느낌”이라고 썼다.

 

아이들 책을 읽어주면서 옥수수에 대한 설명을 봤다. 보통 우리는 옥수수 수염을 그저 쓸모없는 털이라고 생각하거나 ‘옥수수 수염차’ 정도만 떠올린다. 그 수염은 사실 한 올 한 올이 다 꽃이다. 그 한 올 한 올 수염마다 옥수수 알이 하나씩 맺힌다고 한다. 생각 없이 씹었던 옥수수 알 하나도 쉽게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

 

늘 옥수수 알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수염이, 아니 꽃이 되어 아이들을 낳고 품어내는 시간을 겪고 있다.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가끔 삶의 끝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이 작은 녀석들을 보듬어 안는다. 이렇게 안고 있을 수 있는 순간, 아주 짧은 이 순간을 내 삶에 흠뻑 적시기 위해서. 그래서 언젠가 아이들이 모두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고 헛헛해지더라도 그 얼룩이라도 얼굴에 대고 비볐으면 하는 바람에서.

 

<황경상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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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디 2019.05.02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따뜻한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사실 전 임아영 기자님이 블로그로 글을 쓰신 초반부터 열심히 읽었던 초기 독자고 <이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됐다>를 주변 지인에게 널리 추천하는 25살 여성이기도 합니다. 기자님의 글을 읽으며 돌봄노동이 얼마나 공적 논의에서 배제되어왔나 크게 깨달았어요. 폭풍육아라고 할 만큼 고된 노동을 이렇게나 내가 몰랐나, 우리 사회는 얼마나 돌봄노동을 비가시화했던 걸까 깨달을 수 있었어요. 기자님과 동갑이신 고등학교 은사님이랑 대화했었는데 육아를 사회적 문제로 의제화한 책이 나왔다는 것에 매우 반가워하시더라구요.
    댓글을 쓰는 오늘은 노동자의 날입니다. 한국사회의 장시간 노동체제가 바뀌길, 돌봄노동이 사회화되길 고대하며 함께 참여할게요. 늘 건강하시길!

    • 임아영 2019.05.10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 감사합니다. 초반부터 열심히 읽으셨다니 감동 ㅠㅠ

      여성들이 주로 해왔던 일이라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일로 취급돼 온 거라는 생각을 저도 아이를 낳고서야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돌봄노동에서 배제되어온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도 의문스러웠고요. 아이를 낳고서는 어떤 '균형'이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게 됐는데... 아이와 나, 또 나와 남편, 또 일하는 나와 돌보는 나, 또 엄마인 나와 기자인 나와 또 시민인 나 등등등.

      맞벌이 부부가 문제이니 다시 여성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답이 될 수 없고... 결국 남성, 여성 모두 균형을 이루는 삶을 우리 모두 쟁취해야 하는 것이 아닐지...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장시간 노동체제를 바꾸고 가부장적인 노동 구조를 바꾸고 또 돌봄노동을 모두가 나누는 평화로운 사회를 꿈꿔봅니다 ㅎ 감사해요!! 주말 잘 보내시고요^^

지난겨울 어느 토요일 저녁. 20개월이던 둘째와 나 단둘이 집에 있었다. 남편이 방학을 맞은 첫째를 경북 구미 시댁에 맡기러 갔을 때였다. 빨래를 널어야 했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데 둘째가 베란다 문 앞에 와서 문을 닫고 바로 잠갔다. ‘찰칵’ 하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 싶었다. 우리집 베란다는 베란다 밖에서 잠글 수 있게 돼 있다. 겨우 20개월이던 둘째는 문이 잠긴 걸 아는지 모르는지 문 앞에 서서 엄마 얼굴을 들여다보겠다며 미소 짓고 있었다. “이준아, 문 열어야지. 잠그면 어떡해!” 내 외마디 비명이 들리는지 마는지 아이는 계속 싱글벙글이었다. 알고보니 며칠 전 형아가 할머니가 빨래를 널고 있을 때 문을 잠그는 걸 본 것이었다. 일곱 살인 형아는 문을 잠그고 여는 게 능숙하니까 할머니를 가둬놓고 장난을 친 모양이었다.

 

20개월 둘째 장난에 베란다에 갇힌 나

아이는 울다가 집안으로 들어가버리고

나에겐 온갖 나쁜 상상들이 쏟아졌다

 

유리문 바깥에 아이 혼자 있다는 사실에 나는 ‘패닉’이었다. “이준아, 다시 돌려봐, 문을 다시 돌려봐!” 베란다에서 있는 힘껏 소리치니 아이가 잠금장치를 다시 돌려봤지만 아이 손가락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나중에 돌려보니 잠그는 건 쉽고 여는 건 어렵게 돼 있는 잠금장치였다. “이준아, 손에 힘을 꽉 주고 다시 돌려봐!” 있는 힘껏 소리쳤다. 아이는 내 표정이 이상한 걸 느꼈는지 ‘잉~’ 하며 울려고 했다. “아냐, 괜찮아. 엄마가 여기 있잖아.” 침착하게 아이를 다독여야 했다. 그러다 잠시 후 아이가 문 앞에서 사라졌다. 엄마가 나오지 않으니 지쳤는지 다른 곳으로 가버린 것이다.

 

■ 부모는 어떤 존재인가

그때부터였다. 베란다 창문을 열어 밖에다 대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여기요! 사람이 갇혔어요!” 어디에 갇히는 일은 나도 처음이었다. 머리가 새하얘지면서 아이가 눈 앞에서 사라졌다는 생각에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준아, 이리와, 아가, 이쪽으로 와봐!” 보이지도 않는 아이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겁이 없는 둘째가 식탁 위에 한창 올라가려고 할 때였다. ‘의자를 밟고 식탁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어떡하지, 변기 물 가지고 장난 치다가 변기 속에 빠지면 어떡하지.’ 평소라면 하지 않던 상상이 쏟아졌다. 안방 창문을 깨볼까, 창문 밖에 매달려 거실 창문으로 들어갈 수는 없을까 별의별 수를 고민했지만 창문을 깰 도구가 없었고 거실 창문으로 넘어가다 내가 1층 바닥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요즘 창은 방음이 잘되어서인지 아래층, 위층에서도 내 목소리를 못 듣는 것 같았다. 겨울이었고 저녁 때라 사람들이 밖에 아예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집은 14층. 단지를 걸어가는 두 사람은 내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그냥 지나갔다. 속이 탄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아이가 내 눈 앞에 보이지 않으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러다 어떤 아주머니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셨다. “여기 좀 봐주세요. 사람이 갇혔어요. 아이가 혼자 있어요. 좀 구해주세요!” 나와 겨우 눈이 마주친 아주머니에게 다시 외쳤다. “저희 집 비밀번호가 ****인데요. 좀 열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약 40분 만이었다. 아주머니 덕분에 나는 겨우 베란다를 탈출할 수 있었다. 아이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아이고, 아기 엄마가 얼마나 놀랐을꼬”라는 아주머니 말에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힘이 빠져버린 탓이었다. 다행히 아이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 아이는 40분 동안 안 보이는 곳에서 혼자 놀았던 모양이다. 두려움인지, 안심인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아이를 안고 한참을 울었다.

 

무겁고 두려웠다. 엄마라는 자리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가 엄마가 될 깜냥이 되는가 자주 생각한다. 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일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는 인형처럼 예뻐만 해주면 되는 존재가 아니었는데. 아이가 위험해질 때 끔찍한 불안감을 맞대면 ‘이렇게 큰 부담이라면, 부모가 되는 일이 이렇게 무거운 일인지 알았다면’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 불경스러운 생각을 하고나면 죄책감이 따라온다.

 

무작정 외쳤다 “여기, 사람이 갇혔어요”

다행히 이웃 덕에 나와 아이 안고 펑펑

엄마란 자리, 이렇게 두려울 줄이야

 

도토리 줍는 형제들.

 

■ 내게 아이의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다

최근 둘째가 수술을 했다. 간단한 탈장 수술이었지만 진단받고 검사받고 수술하고 회복하는 과정에 한 달 넘게 ‘걱정과 조율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 수술의 위험 요인 등을 판단하는 동안 생기는 걱정과 수술로 생겨나는 수많은 ‘가정 행정 업무’를 조율하는 시간. 남자아이들의 경우 100명 중 1명에게 생긴다는 서혜부 탈장 진단을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100명 중 1명이 많긴 하지만 왜 하필 우리 아이에게 이런 일이’였지만 그다음에 따라온 생각은 ‘아, 할 일도 많은데’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난 어쩜 이렇게 불경한 엄마인지. 병원을 알아보고 검진을 예약하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피 검사를 하고 소변 검사를 하고 심전도 검사를 하면서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이 걱정을 늘어놓자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말았다. “일을 해결하는 데만 집중하자. 남편 걱정까지 받아줄 여유가 없다고.”

 

‘나는 어떤 엄마인가.’ 자주 나의 ‘엄마됨’에 대해 생각한다. 엄한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고 기질적으로 강한 편이다. 엄살 피우는 것도, 엄살 피우는 것을 보는 것도 싫어한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에게도 난 엄한 엄마다. 감정을 읽어주는 자상한 엄마가 되고 싶지만 늘 마음이 급하다. 잘못한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알려주는 데에도 내가 가진 시간이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아이가 수술을 한다는 소식에도 ‘해야 할 일’을 목록화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또 생각했다. ‘나는 어떤 엄마인가.’

 

가끔은, 정말 가끔은 어깨 위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의 무게가 버겁다. 어쩜 이렇게 여전히 이기적일까. 그러다 천성이 걱정 많은 아이인 첫째에게서 두려움이 섞인 표정을 볼 때면 나를 다시 다독인다. ‘아이들을 낳은 건 내 선택이야. 이 아이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야.’ 성스러운 모성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아이를 낳은 이후 계속해서 ‘나’와 ‘엄마가 된 나’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다. 아이를 낳았지만 단숨에 나보다 아이들을 중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냉정한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면, 아이들의 감정을 차분히 들여다봐주는 엄마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이런 나지만 아이가 위급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다. 그럴 때면 내가 ‘엄마는 맞구나’ 생각이 든다. 아이 수술 과정에서 눈물이 난 건 딱 한 번이었다. 둘째가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작은 오른 손등에 링거 바늘을 꽂을 때까지도 괜찮았다. 수술대에 앉은 아이가 바늘을 빼고 싶다며 칭얼댔지만 칭얼대는 아이 앞에서도 침착했다. “이준아, 수술하고 나면 이제 다시 병원 올 일이 없을 거야.” 수술센터에서는 아이 수술 부위를 표시하고 이름, 생년월일을 확인한 뒤 바로 마취를 하고 들어간다고 했다. 마취약이 들어가면 바로 정신을 잃어서 고개가 꺾이니 엄마가 등을 안아주라고 했다.

 

아이 탈장 수술에도 ‘할 일’ 목록화하며

냉정한 엄마 같다는 생각에 미안하지만

아이가 위급 상황 처하는 건 견딜 수 없어

 

마취약이 들어가던 10여초. 정말 신기하게 아이는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눈이 꼭 감기지 않았다. 실눈을 뜬 아이의 모습이 낯설었다. 그제서야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언젠가 내 배안에 살던 아이, 왠지 계속 이어져 있던 끈이 잠시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수술방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제대로 못 보고 나왔는데 자꾸 혼잣말이 나왔다. “눈을 완전히 감겨줬어야 했는데.” 이제 내게 아이의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두 시간여의 수술 시간 동안, 베란다에서 나와 아이를 다시 안아보던 순간처럼 다시 아이를 안아보기만을 기도했다. 그저 아이가 무사하기만을.

 

■ 엄마도 엄마가 되어간다

이제 엄마가 된 지 만 5년9개월이 지났다. 딱 그 정도만큼 나도 엄마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무사하기만을 바라게 될 때, 이제 내 인생이 온전히 내 것일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다. 여전히 나는 성격 급한 엄마지만, 가끔은 아이의 일보다 내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엄마지만, 이제 내 양 어깨에 아이들을 메고 있다는 사실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아득할 때도 많다. 아이들 인생의 수많은 순간들을, 빛나는 순간부터 주저앉는 순간까지 다 지켜봐주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무겁게 다가올 때면.

 

어깨 위의 아이들 무게 버겁다 느끼지만

어느새 아이의 ‘안녕’만을 바라게 되는

딱 만5년9개월 만큼의 엄마가 되어간다

 

빠른 일처리를 지향하는 나라는 인간에게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육아’라는 일이 찾아왔을 때 평범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는 정해진 순서대로, 내가 원하는 속도로 키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겨우 50여㎝의 키로 태어난 작은 아기가 온 힘을 다해 내게 의지할 때, 내 24시간을 저당잡히는 것이 괴로웠지만 아이의 웃음 한 번에 괴로움을 날려버릴 때, 아빠에게도 할머니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가지 않고 엄마인 나에게 매달릴 때, 아프거나 힘들 때면 더더구나 아무에게도 가지 않고 내 몸에 의지하는 어린 것을 보면서 열달간 한 몸이었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여전히 내 품은 아이들을 품어안기에 부족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아이들의 속도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나를 볼 때 딱 5년9개월만큼 내가 나아지지 않았나 싶다.

 

언젠가 세상의 끝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 엄마는 언제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편지를 내게 전해줬다. 아이들을 지켜봐주는, 넓은 품을 가진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그때의 엄마 편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딱 그만큼만 아이들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엄마가 항상 뒤에 서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엄마가 되어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도 엄마가 된 지 10년이 지나면, 20년이 지나면 조금씩 더 넓어지겠지, 아이들도 그런 엄마에게 조금 더 기댈 수 있겠지, 라고 믿어보면서. ‘전적으로 네 편인 사람.’ 엄마가 되고나서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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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말마다 한 집에서 아이들을 보면 어때요?”


 

시작은 내 제안이었다. 깊이 생각해 본 제안은 아니었다. 지난해 봄 둘째 육아휴직 중이던 나는 복직을 앞두고 있었다. 휴직 기간 첫째 두진이 유치원 하원을 하면서 유치원 엄마들과 친해졌다. 엄마들과 서로의 집에 초대하면서 아이들에 대한 에피소드, 양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게 됐고 내게도 ‘동네 친구’가 생긴 것이다. 엄마가 자주 친구와 놀 수 있게 해주고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자 아이는 더 좋아했다. 엄마들의 안전한 보호 아래 친구들과 놀 수 있었으니까. 물론 놀이를 하다가 싸우기도 하고 모든 것이 ‘내 것’이라 우기는 터에 곤란할 때도 있었지만 그 곤란함 속에서도 아이들은 장난감을 나누는 연습, 차례를 양보하는 연습을 하며 자라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엿보면 흐뭇했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친구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구나.’


 

‘주말마다 갈 곳 없다’며 말 주고받다
한 집씩 돌아가며 아이들 보자 제안
그렇게 ‘주말 공동육아’가 시작됐다

 

그런데 복직하면 이런 시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문득 두려웠다.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점점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맞벌이 부부라 이런 시간을 자주 마련해줄 수 없다는 게 걱정스러웠다. 어느 날 유치원 엄마들과 주말마다 갈 곳이 없어서 곤란하다는 말을 주고받다가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 “우리 주말마다 한 집에서 아이들을 보면 어때요? 그날은 그 집 부부가 아이들을 다 돌보고 나머지는 쉬는 거예요. 어때요?” 3명의 엄마는 다들 흔쾌히 좋다고 했고 그렇게 ‘주말 공동육아’가 시작됐다.


 

처음 공동육아를 하던 날. 오전 10시 ㄱ네 집에 아이들을 데려다줬다. 엄마아빠 없어도 된다며 친구들과 신나게 놀겠다는 아이를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 오늘은 이준이만 보면 된다!’ 우리 집에서 돌보는 아이는 1명 줄어들었지만 ㄱ네 집은 6세 아이만 4명이 됐다. ㄱ네 엄마아빠는 점심을 먹이고 다 같이 공원을 갔다고 했다. 아이들은 장난감으로 다양한 놀이를 했는데 가장 좋아했던 것은 ㄱ네 이층침대에서 불을 끄고 공연하는 것이었다고.


 

오후 5시 아이들을 데려갈 시간이 됐다. 엄마아빠가 ㄱ네 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지만 두진이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놀았던 시간이 너무 즐거웠으니까. ㄱ네 엄마는 말했다. “한 명 보는 것보다는 힘들었지만 네 명 본다고 곱하기 4가 되지는 않더라고요. 할 만했어요!” 나머지 부부들은 쉬었지만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노니 육아 부담이 아이 수만큼 증가하진 않았다. 얼마나 현명한 방법인가.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거워한다는 게 뿌듯했다.

 

삽화 김상민 기자


■ 주말 공동육아 1년

그렇게 네 집이 주말 공동육아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물론 주말에 집안일, 경조사가 있으니 매주 공동육아를 할 수는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기로 하면서 내심 ‘이게 얼마나 오래 갈까’ 싶었다. 그런데 1년이 훌쩍 넘었다. 비결은 뭘까. 아빠들이 친해졌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이미 꽤 친해진 상태에서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진정 공동육아를 하기 위해서는 아빠들의 호응이 중요했다. 강화도에 할머니집이 있는 ㄴ네가 할머니가 여행 가셔서 집을 비우니 “놀러 오라”고 제안했다. 중요한 타이밍이었다. 아빠들이 이 모임에 호응을 할지, 하지 않을지를 볼 수 있는 리트머스 같은 타이밍.


 

아빠들 친해지자 ‘식사’ 일정 추가 돼
서로 이름 부르고 급할 때 아이 부탁
“당직이라서요…재워줄 수 있을까요”

 

강화도 옥토끼센터에서 처음 조우한 4명의 아빠들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아이를 돌보는 데만 집중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색한 분위기가 깨진 건 저녁에 강화도 할머니집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면서였다. 엄마들은 일부러 아빠들을 한 상에 앉게 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엄마들끼리 수다를 하다 아빠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궁금해서 귀를 기울였다. 다양한 이야기가 들렸다. 아이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정치, 사회 분야 이야기로 확장되며 이야기 주제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었던 것. ‘됐구나’ 싶었다.


 

그 이후부터 주말 공동육아를 하는 날 일정이 추가됐다. 오후 5시 각자 집으로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공동육아 당번 집에 모여서 모든 가족들이 저녁을 함께 먹는 것으로. 이제 맥주 한잔하며 각자 회사 이야기도 나누고 정치적 토론도 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자주 만나게 되자 서로의 이름도 알게 됐다. 물론 여전히 ‘누구네 엄마, 누구네 아빠’라고 많이 부르지만 서로의 이름도 부를 수 있는 사이가 된 것. 한 아빠가 말했다. “저는 아영씨, ㄷ씨, ㄹ씨라고 이름을 부르는 게 좋더라고요. 우리는 누구의 부모이기도 하지만 우리이기도 하니까요.”


 

가장 좋은 것은 급할 때 아이를 부탁할 수 있다는 거다. 공동육아니까. 쉬는 금요일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시간을 맞출 수 없을 때 “언니, 저 좀 늦는데요. 잠깐만 놀이터에서 데리고 놀아줄 수 있으세요?”라고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것. 거꾸로 부탁을 받기도 한다. “야근 당직 일정이 겹쳐서요. 아침에 등원할 사람이 없는데 아영씨가 재워줄 수 있어요?” 물론 나도 흔쾌히 가능하다고 답한다. 내 아이를 돌봐주는 만큼 나도 ㅁ을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같이 아이들을 돌보기로 한 거니까. 우리 집 칫솔 꽂이에는 ㅁ의 칫솔도 꽂혀있다. “ㅁ이가 자고 갈 때 써야 하니까 엄마 절대 빼지마”라는 두진이의 지시(?)가 있어서다.


 

■ 마을에서는 이렇게 길렀을까

아이들을 같이 돌보면서 집마다 아이를 기르는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엿본다. 처음에는 문화가 다르니 많이 조심했다. 우리 집에 왔다고 해서 우리 아이한테 하듯이 할 수는 없었다.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에서 공동육아를 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아이를 더 조심시키게 됐다. 장난감을 선제적으로(?) 나눠주게 하고 손님인 친구들을 배려할 수 있도록.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아이들 특성을 알 만큼 시간이 지났고 아이들을 재량껏 돌볼 수 있을 만큼 신뢰가 쌓였다. 그런 만큼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할 수 있게 됐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주기로 한 날이었다. 순서대로 줄을 서라고 했더니 ㅁ이 “이모는 맨날 나만 꼴찌로 줘요”라고 울먹였다. ‘ㅁ을 1등으로 준 것도 여러 번이었는데.’ 아마 공동육아를 하던 초반이었으면 “그래? ㅁ이 먼저 먹을까. 친구들이 양보해줄래” 했을 텐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ㅁ아, 이모가 ㅁ이 1등으로 준 게 이모 기억으로만 3번이나 나는데? ㅁ이는 3등으로 줄 섰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줄래? 이모가 빨리 만들어줄게.” ㅁ이가 머쓱한 듯 웃었다. 이제 아이별로 협상을 할 수 있을 만큼 친해졌다. 아이들도 친해진 만큼 나를 ‘이모’라 부르는데 스스럼없다.


 

이렇게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내 어릴 적이 생각난다. 옆집 친구가 엄마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엄마는 옆집 엄마와 시간을 보냈고 나와 친구는 집 앞 골목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술래잡기를 했다. 골목에 나온 다른 친구들까지 편을 갈라 신나게 고무줄을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저녁이 되면 엄마는 만든 반찬을 옆집에 가져다주라고 하시기도 했다. 어린 나는 쟁반 위의 접시가 깨지지 않도록 발걸음을 조심해 옆집까지 배달(?)했다. 돌아오는 쟁반 위에는 옆집 엄마가 주신 반찬이 담겨 돌아오는 길에도 발걸음을 조심해야 했다.


 

요즘 엄마들이 육아 힘들어하는 이유는
남편도, 골목도, 친구도 사라진 집 안에서
아이와 둘이 지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골목 문화가 살아있던 90년대 나는 그렇게 자랐다. 왜 요즘 젊은 엄마들은 다양한 육아 도구가 생기고 정부의 지원도 늘고 있는데 육아를 힘들어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답한다. 남편도, 골목도, 친구도 사라진 집 안에서 아이와 둘이 지내고 있어서 그렇다고. 그게 ‘독박육아’다. 아파트가 빽빽한 2018년의 서울에서 아이들은 어쩌면 집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 어른들에게도 ‘육아 친구’가 필요하다

아이가 클수록 육아는 막막하다. 내가 아이를 잘 기르고 있는 걸까. 영어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주변에 있어서인지 한글도 잘 모르는 두진이가 영어 단어를 말할 때 고민스럽다. ‘영어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긴 싫은데. 이게 과연 맞는 걸까.’ 크고 작은 고민이 생길 때마다 공동육아 친구들과 소통한다.


 

“누구누구는 일주일에 5일씩 영어 학원을 다닌다면서요”라고 시작되는 대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교육과정이 시작되는 것은 이유가 있겠죠.” “구글 통·번역기가 나오는데 얘네들이 크면 아마 영어 공부를 지금처럼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어요.” “한글도 모르는 애들한테 영어 가르치면 안 좋다면서요. 문자 교육이 아이들의 창의력 발달에 방해가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친구들은 나보다 더 현명하다.


 

아이가 클수록 육아는 막막하다
‘아 모르겠다’ 하는데 친구가 말했다
“같이 고민해보자”…왠지 용기가 난다

 

물론 공동육아 안에서 논의한다고 육아의 옳은 방법을 도출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을 기르는 옳은 방법은 각자 다를 테니. 아이에게 맞게, 반발짝 앞장서서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게 부모가 아닐까. 그런데 그 역할을 맡는 게 가끔은 버겁다. 세상의 육아서와 세상의 육아 팁들은 다들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지만 과연 그게 맞는 걸까.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갈등을 겪으면 더 복잡해진다. 도대체 부모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 걸까. ‘아 모르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동갑내기 친구가 말했다. “같이 고민해보자. 같이 고민할 그대가 있어 좋소.” 뭉클했다.


 

어른들에게도 육아의 고민을 나눌 친구가 필요하다. 우리 아이를 잘 알고 나에 대해 잘 아는 친구. 육아를 하는 내내 육아의 ‘정답’을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일에는 정답이 없을 테니까. 그러나 나 혼자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아이를 기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왠지 용기가 난다. 귀한 친구들을 얻었다. 이 주말 공동육아가 오래 지속되길.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함께 성장하는 관계가 되길.


 

주말에는 또 강화도에서 네 가족이 만나기로 했다. 기대된다. “두진아, 이번주에 강화도에 가기로 했어.” 두진이가 말했다. “우와 진짜? 너무 신난다. 엄마 얼른 토요일이 왔으면.” ‘응, 엄마도 네 맘이랑 똑같아.’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7131639005&code=210100)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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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아버지가 두진이를 데리고 동네 산에 다녀오시겠다고 했다. 남편은 일이 있어 혼자 두 아이를 보던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두진이는 휴일마다 종종 외할아버지를 따라 산에 다닌다. 산 중턱에서 장기 놀이를 하거나 평평한 트랙에서 킥보드를 타는 정도지만. 이준이가 낮잠을 잘 시간을 훨씬 넘겨 나도 따라나섰다. 유모차에 태워서 재운 뒤에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따라나선 나를 보신 아버지가 “산에 같이 가겠느냐”고 하셨다. 머뭇거리다 그러겠다고 했다. ‘운동 좀 해야지’ 싶어서.


 

회사에 주 6일씩 젊은 날을 내준 아버지
손주들과 놀아주다 잠시 쉬는 뒷모습에
언젠가 이 모습이 몹시 그립겠구나 싶어

 

“이 나이 되면 젊을 때 운동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에게 차이가 많이 나더라. 우리 때는 주 6일 근무여서 일요일 하루 쉬었는데 엄마가 너희들 보고 나는 하루 종일 잔 날도 있었지. 너무 피곤하니까. 그런데 피곤해도 일요일에 산에 다녀오거나 운동을 하면 그다음 주가 좀 낫더라고. 힘들어도 운동을 해야 해.”


 

피곤해하는 나에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서른일곱인 나보다 딱 서른 살이 많은 우리 아버지, 이제 예순일곱. 주 6일씩 회사에 시간과 체력을 내어준 젊은 날을 보냈다. 그렇게 아빠를 따라 산에 올라가 400m 넘는 트랙을 두 바퀴 돌고 두진이와 운동기구로 운동 시늉도 냈다. 낮잠을 자던 이준이가 깨서 이준이 머리보다 더 큰 농구공으로 공놀이도 했다. ‘이런 작은 행복들이 모여 인생의 결을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 생각하며 잠시 쉬고 있는데 아빠가 손주들과 나란히 앉아 쉬는 뒷모습을 봤다. 문득 ‘언젠간 이 모습이 몹시도 그립겠구나’ 싶어서 코끝이 시큰했다.


 

■ ‘워킹맘’을 추앙하지 마세요

나를 키울 시간이 없었던 아버지가 내 아이들을 돌봐주신다. 친정 부모님 옆에서 육아 지원을 받는 우리 아이들은 나와 남편이 없는 자리를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으로 채우고 있다. 내가 클 때 내 옆에 있을 수 없었던 아빠는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손주들 곁에 있게 됐다. 이 역설을 깨달을 때 생각한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 일평생 노동시장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빠가 집으로 돌아온 건 할아버지가 되어서라니.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육아’를 할 수 있게 됐다니.


 

첫째를 낳은 뒤 막다른 골목 처한 부모들
합계출산율 1.06명의 비밀은 여기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저녁, 거창한 꿈일까

 

‘할마 할빠’ 없이는 육아를 할 수 없는 사회다. 맞벌이 부부는 퇴근시간이 늦고 통근시간이 길어서 집에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는 일은 ‘꿈’이다. 무상보육을 하겠다며 어린이집·유치원 보육 지원을 해주지만 아이들 하원 시간까지 아이를 데리러 갈 사람이 없다. 그나마 ‘할마 할빠’가 지원해줄 수 있는 집은 다행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 부모가 퇴근하는 밤까지 어린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버티거나 시터 이모님을 고용해 버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육아 비용으로 쓴다. 부부 중 한쪽에 육아 부담이 몰려 갈등을 겪거나 결국 육아 공백을 채울 수 없게 되면 끙끙대다가 한쪽이 퇴사한다. 대부분 임금을 적게 받는 엄마들이다. ‘경력단절 여성’은 이렇게 탄생한다.


 

‘워킹맘들은 정말 힘들겠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한 취재원이 내게 아이가 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워킹맘, 참 힘드시죠?” 거기까진 뭐 괜찮았다. 이어지는 말. “저도 아이가 어린데 너무 힘들어요. 집에 돌아가도 쉴 수 없고. 와이프는 전업주부인데도 힘들다고 하니까 자꾸 싸우게 되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정색했다. “팀장님, 제가 육아휴직도 해보고 워킹맘도 해봤는데요. 애 보는 게 훨씬 힘들어요.” 너무 정색하니 취재원은 말을 돌렸다. 여전히 이 사회는 아이 기르기가 고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때는 ‘워킹맘’이 꿈이었다. 20대의 나는 아이를 기르며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한 인간을 기르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몰라서 그렇게 순진했다. 내가 한창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자잘한 차별의 언어들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적어도 여자라고 해서 남자가 하는 일을 할 수 없다고는 가르치지 않았다. 여자도 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안다.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사회생활도 하고 육아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슈퍼우먼이 되라는 말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착취’하겠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둘 다 하고 싶으면 너를 갈아 넣어’라는 말이었다니.

■ 슈퍼우먼 따위 되고 싶지 않다

이제 나는 슈퍼우먼 따위는 되고 싶지 않다.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24시간을 살 듯 나도 24시간을 산다. 아무리 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24시간을 넘는 시간을 살 수는 없다.


 

워킹맘이 슈퍼우먼이 되야하는 구조에서
엄마들은 일·육아에 심신이 다 소진되고
아빠들은 회사에 시달리다 방관자가 된다

 

워킹맘이 슈퍼우먼이 되는 구조에서 남편들은 방관자가 된다. “공무원이라 자녀돌봄휴가를 쓸 수 있어서 부럽다”고 하자 공무원 친구가 말했다. “공무원끼리 결혼해도 각종 복지제도는 다 여자 직원이 써. 동기끼리 결혼해도 10년 지나면 직급 차이가 크게 난다 하더라고. 아니 왜 똑같이 입사해서 그렇게 살아야 하냐고. 그래도 나라도 복지제도를 쓸 수 있어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할 말이 없었다. 우리 부부도 육아휴직은 나만 했다. 육아휴직 기간 아이들을 키우면서 배운 게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이라도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면 내 분노는 남편에게 향한다. “신생아 때부터 그 어려운 육아기를 내가 버텼다고. 당신이 아니고.”

가끔은 남편이 아니라 친정 부모님과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화가 난다. 결혼은 남편과 했는데 도대체 이게 뭐지. 친정아버지가 손주를 보고 나서야 육아를 할 수 있게 됐듯 남편도 육아에서 주체가 되기 어려운 구조. 물론 아버지 세대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적어도 기저귀도 갈고 아이 목욕도 시키니까. 그런데 내가 자라던 시기와 지금은 다르다.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구조가 깨졌지 않은가.


 

친정아버지는 젊은 시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다가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손자들을 돌볼 수 있었다.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남편이 애를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내 부모님의 황혼을 갉아먹으며 육아를 하는 난 항상 죄책감에 시달린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라 결국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남편에게 화살이 가는 구조. 남편이 회사에서 빨리 오려고, 집에 있는 동안 육아를 열심히 하려고, ‘도와준다’고 생각지 않고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할마 할빠’ 없이는 육아 할 수 없는 사회
한 인간을 기르는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워킹맘’이 되겠다는 건 순진한 꿈이었다

 

그런데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여전히 이 사회는 ‘가장은 회사에 시간을 바치라’고 말한다. 회사에 시간을 바쳐야 하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내줘야 한다. 그 비는 시간을 메우는 건 ‘칼퇴’하는 엄마들이거나 조부모이거나 ‘퇴사’한 경단녀다. 주말에 공원이나 키즈카페에 놀러가 ‘좀비’ 표정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아빠들을 본다. ‘저 사람들은 어제 몇 시에 퇴근했을까.’ 엄마들은 일과 육아를 하다가 소진되고 아빠들은 회사에 시달리다 소진된다. 그렇게 체력 분배를 하기 어려운 구조에서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얼마 전 대학 후배를 만나 이야기를 하다 문득 슬퍼졌다. 후배의 아내는 ‘육아 지원군’이 없어서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후배 아내가 동네에서 사귀던 친구들도 복직해서 아이와 하루 종일 둘이서 지내는데, 후배가 퇴근만 하면 우울함을 계속 토로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독박육아’의 상황으로 곪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그 와중에 후배는 회사 TF에서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라 매일 밤에 퇴근했고 부부 갈등이 심해졌다. ‘회식 금지법, 야근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아내의 성토에 ‘나도 괴로운데’라는 말을 삼키던 후배는 결국 회사를 옮겼다. 한 팀장의 조언을 듣고 난 뒤였다. “일도 잘하는데 자꾸 육아 때문에 일을 후순위로 미룬다는 인상을 주지 마라”는 조언이었다.

 

“심지어 여자 팀장이었어요. 같은 아파트 사는 언니들이 팀장님의 아이들을 다 키워줬거든요. 그런데 우리 부부는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요. 어쩌라는 건지. 그리고 아이 기르는 일보다 왜 회사 일이 더 중요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아이를 낳고나니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다. 애를 한 번도 안 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게 분명한 말들. “자기 애만 중요하고 회사 일은 나몰라라 한다”고 험담하던 목소리들. 그런 말들이 횡행했던 시절 어떻게 숨죽여 회사를 다녔을까. 아이 기저귀도 한 번 안 갈아봤을 게 분명한 정치인들이 ‘애를 많이 낳은 순서대로 비례대표를 줘야 한다’는 헛소리를 할 때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아이가 안 태어나는 거야.’

 

■ ‘부모’에게 시간을 주면 된다

나처럼 친정 부모님이 육아를 도와주는 환경은 한국 사회에서 ‘복 받은 상황’이다. 적어도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도대체 부모님은 무슨 죄인가. 우리 엄마 아빠는 왜 무릎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에 육아를 해야 하는가. 주변을 보면 자식들 육아를 도와주기 위해 지방에서 원정(?) 오는 할머니 때문에 노년의 기러기 부부도 적지 않다. 왜 자식들 육아 때문에 조부모들이 떨어져 살아야 하는가. 한편 이런 조부모의 존재가 ‘육아 지원군’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역차별이 된다. 결국 가족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는 증거다. 저출산이 심화되는 10년 동안 국가는 엉뚱한 곳에만 돈을 썼다는 증거다.

 

주변 많은 부부들이 첫째를 낳은 뒤 고군분투하다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면 극심한 갈등을 겪고 둘째는 포기한다. 합계출산율 1.06명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하나를 낳아봤더니 키울 수가 없는 구조. 아빠는 회사와 아내 사이에 끼여서 어쩔 줄 모르고 엄마는 눈치 보며 칼퇴하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면 원망할 대상을 찾지 못하다가 남편을 원망하는 악순환. 부모가 힘을 합쳐서 아이를 기를 수 있게 하면 되는데. 그 쉬운 방법을 모르는 건지. 아는데도 그렇게 해주려면 어려우니까 포기한 건지. 엄마가 된 나는 늘 궁금했다. ‘선배들은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구조를 버텨냈을까. 정말 존경스럽다. 어쩌면 우리 세대는 저출산이 심각해지니 발언권이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아버지는 늘 새벽에 출근해서 밤 11시 넘어 퇴근했다. 그게 1980~1990년대였다. ‘주 6일’간 그렇게 일했으니 주당 80시간 넘게 일만 하면서 산 것이다. 그 대가로 나는 아버지와 함께 보낼 시간을 내줘야 했다.

도대체 이렇게 긴 노동시간으로 득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주 5일이 도입될 때 경제가 휘청거릴 거라고들 했다. 그렇게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겁을 주더니 지금은 어떠한가. 7월부터 ‘주 52시간 시대’가 시작된다. 인간다운 삶, 우리는 꿈꿀 수 있을까. 거창한 삶을 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삶. 가족들이 얼굴을 보는 삶. 그런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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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아이맘 2018.06.20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슷하게 아이 둘을 키우고, 맞벌이를 하며, 친정 부모님에게 오후 육아를 맡기는 엄마이자, 직장인입니다.
    글자 하나하나 눈에 담에 되고, 의미를 곱씹게 되네요.
    적어도 20대의 나는, 여자와 남자가 차별받지 않으며, 아이를 낳고서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될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를 낳고 보니, <복귀>가 그렇게 어려운건지, 아니 눈치를 봐야 하는건지 몰랐습니다. 둘을 낳으면 여자가 아니란 말도 들었고, 그러게 둘째는 왜 가져서. 라는 말도 들어야 했습니다. 아이를 가진게 "죄"가 될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죄라며 왜 나의 애미 애비가 애써 보듬아 주는지, 왜 나의 애미 애비가 대신 울어주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슬프게도 아직 우리의 20대와 같은 세상은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 생각합니다. 생각이 변했고, 변하고 있으므로 그 "변화"가 퇴적되다 보면 걷기 편한 길이 만들어질거라 믿습니다.
    그 길 위에 우리의 아이들이 걸길 바래 봅니다.

<어린 시절 나와 화해하게 될 때>

 

 두진이가 부쩍 엄마는 이준이만 이뻐하고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두 돌을 맞은 이준이의 귀여움은 정말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른다.’ “엄마 사당해요라며 품을 파고들 때는 이렇게 이쁜 강아지를 본 적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4등신의 몸으로 뒤뚱뒤뚱 걸을 때는 엄마 미소를 숨길 수 없다. 나도 모르게 그 작은 강아지(?)를 안고 우리 천사가 어디서 왔나, 하늘에서 내려왔나라고 말하면서 뽀뽀를 퍼부을 때 두진이의 입은 삐쭉거린다. 그리고 바로 툭 튀어 나오는 말.

 

   “엄마는 이준이만 이뻐하고. .”

 

 이준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두진이의 상실감이 클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내가 첫째이기 때문에 둘째에 대한 질투를 익히 안다고 생각했다. 점점 배가 불러오면서 두진이에게 동생이 어떤 존재인지 설명해줬다. 네 평생 친구가 될 사람, 너를 평생 아껴주고 네가 평생 아껴주게 될 사람이 엄마 뱃속에 있다고. 그러면서도 엄마에게는 두진이가 항상 첫번째 아들이라고도 설명해줬다. 두진이는 엄마가 처음 낳은 아들, 엄마가 되게 해준 첫 번째 아들이라고. 가끔 귓속말로 속삭여주기도 했다. “두진아, 네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엄마는 훨씬 우울한 사람이었을 거야. 그래서 두진이에게 엄마는 너무 고마워. 두진이가 태어나서 엄마는 훨씬 행복한 사람이 됐어. 고마워요.”

 

 이준이를 낳으러 가던 날 가장 걱정이 됐던 존재도 두진이었다. 태어나서 엄마와 며칠간 떨어져 자야하는 건 처음인데... 제왕절개 수술을 한 난 병원에서 6일간 회복하고 조리원에서 2주 조리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돼 있었다. 수술 뒤 깨어나서 이준이를 안아보면서도 두진이를 걱정했다. ‘우리 두진이, 잘 있을까. 우리 두진이도 이렇게 눈도 제대로 못 떴었는데.’

 

 동생을 만나러 병원에 온 두진이는 의젓했다. 어쩌면 작은 이준이가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랑 떨어진 3주 동안 두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잘 지냈고 종종 조리원에 나를 만나러 놀러왔다. 두진이가 조리원에 온다고 전화가 올 때마다 마음은 문 앞을 기웃거리며 기다렸다. 우리 큰 아기가 어디쯤 오나 생각해보며 둘째를 안고 있을 땐 쓸데없이 눈물도 났다. (원래 애 낳은 직후에는 감정 조절이 어렵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 ‘우리 두진이도 이렇게 작았었는데 벌써 훌쩍 크다니.’ 작은 둘째를 안고 있으면서도 작았던 두진이가 그리웠다. 내 우려와 달리 이준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두진이는 의젓했다. 동생을 가만히 살펴보기도 하고 엄마가 기저귀나 물티슈를 가져다 달라고 하면 가져다주기도 하고. 몇 달은 큰 갈등 없이 잘 지냈다.

 

진격의 둘째. 우리집 무법자.

 

 두진, 이준 사이에 갈등이 시작된 건 이준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기기 시작한 이준이가 두진이의 장난감을 족족 망가뜨리면서. 정성들여 만들어놓은 레고 기차부터 블록 주차장이 망가질 때마다 두진이는 화를 내거나 울었다. 이준이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장난감 쟁탈전이 극심해졌다. 뭐든지 내 꺼인 아이들 사이에서 왜 그게 온전히 네 것이 아닌지설명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친구와 몸싸움을 하지 않는 성격인 두진이가 동생의 머리통(!)은 잘도 때렸다. 그때마다 주의를 줬지만 주의도 한두 번이지... ‘장난감 쟁탈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아마 자라는 내내 쟁탈전의 종류만 바뀌고 계속되겠지. 형아 옷을 물려입는 이준이는 오늘 아빠가 형아 옷 입라고 말하니 형아 옷 안 입어라는 말을 시작했다고. 아니, 벌써 형아 옷 안 입는다면 어떡해?!

 

엄마 입장은 그렇지만... 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면 세 살 아래 동생하고 나누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내게는 세 살 아래의 남동생이 하나 있다. 어릴 땐 징그럽게도 싸웠고 징그럽게도 미워했고 징그럽게도 사랑했다. 그때는 그게 사랑이었는지 몰랐지만 사랑과 미움은 양면이니까. 아직도 생생하다. 동생과 싸우다가 엄마한테 쫓겨났던 날, 아빠가 퇴근하시기만을 기다리던 밤.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마지막회를 하던 날이었다. 하필 그 중요한 순간에 싸워서 현관 밖으로 쫓겨난 남매는 드라마를 못 보는 서러움을 삭이며 아빠를 기다렸다. 그날따라 아빠가 더욱 늦으셨고 결국 드라마 보기는 실패. 모든 게 다 동생 탓 같았다. 동생도 아마 누나 탓 같았겠지.

 

엄마는 왜 그렇게 맛있는 생선도 동생한테만 큰 걸 주는지 싶었고(실제 생선 크기는 비슷비슷했을텐데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인 거다) 옷이나 운동화도 동생한테 더 좋은 걸 사주는 것만 같았다. “어리니까 동생을 이해해줘야지라는 말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던(!) 말이다. 왜 항상 내가 양보해야 하지? 실제로는 별로 양보도 안 했던 것 같은데 양보하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다.

 

아이를 둘 키우면서 첫째였던 내가 둘째였던 동생의 입장에 자주 서 보게 된다. 어릴 땐 무의식적으로 동생이 내 사랑을 다 가져갔다고 생각하고 질투했는지 모르겠지만 두진이를 키우면서 첫째들은 온전히 혼자 사랑받는 시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그렇게 사랑받았던 시간이 있었을텐데 안타깝게도 어린 시절 혼자 무한히 사랑받았던 시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둘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을 나눠가지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둘째로 태어난 자는 항상 나눠가져야 하는 운명. 나는 그런 것도 잘 모른 채 항상 동생한테 나눠준다고만 생각했었다. 별로 나눠준 것도 없으면서 그렇게 동생한테 나눠주는 게 아까웠는데. 두진이가 이준이한테 장난감을 나눠주려고 하지 않을 때 나도 모르게 두진이 넌 혼자 온전히 가져봤잖아라는 말을 삼킨다.

 

한편 두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첫째 엄마였던 나보다 둘째 엄마였던 내가 훨씬 능숙해졌기 때문이다. 두진이를 키우던 나는 너무 미숙했고 그래서 두진이에게도 서툴렀다. 왜 우는지, 왜 잠을 못 자는지, 어떻게 아이를 달래야 하는지 다 처음 배우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두진이를 키우는 게 힘들었다. 우는 두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같이 울 때 아이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가끔 불안해보이는 두진이를 보면 내 불안이 저 아이의 불안과 연결된 것은 아닐까 마음이 짠하다. 반면 이준이를 낳고 나는 훨씬 여유로워졌다. 수유하고 잠을 재우고 어르고 달래는 것 모두 능숙해졌고 딱 그만큼 아이에게 여유롭게 대할 수 있었다.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이준이가 두진이보다 여유롭고 편안해 보인다. 그게 두진이에게 미안한 점. 엄마가 처음이었던 것, 그래서 항상 서툴렀던 것.

 

얼마 전 또 이준이가 예쁜 짓을 해서 뽀뽀를 퍼부으니 그를 바라보던 두진이가 말했다.

 

엄마는 이준이만 이뻐하고.”

아니야, 두진아 엄마가 두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너무 서운해.”

 

얼마 시간이 지났을까. 서운하다는 말을 듣고서도 두진이가 또 엄마는 이준이만 이뻐하고라고 말하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어릴 때 내 목소리가 겹쳐지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영주만 이뻐하고.”

 

그때 엄마는 얼마나 곤란했을까. 내가 이렇게 곤란한데. 이렇게 또 아이를 키우며 엄마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한편 어렸던 내가 얼마나 많은 오해를 했는지, 부모의 사랑에 대해 잘 몰랐는지 깨닫는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나와 화해하게 되는 느낌.

 

사춘기 절정이던 시절 방 안에 틀어박혀 일기를 끄적였던 열네살 나는 엄마가 동생만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의 내게, 엄마 노릇이, 엄마가 잘 중재하며 공평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설명해주고 싶다. 아마 들어도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이 세상이 아이 키우는데 아무리 협조를 안 해준대도 아이 낳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내가 보지 못하던 세계로 나를 보내 준다. 아이들이 열어주는 세상에서 나는 다시 아이도 되고 엄마도 된다. 다시 아이가 되어서, 어린 시절의 내게 위로를 보낼 수 있을 때, 그 시절의 부모님을 좀 더 이해하게 될 때, 그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뭉클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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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yes-today.tistory.com 예스투데이 2018.06.04 1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생을 살면서 결혼을 하면서 한 단계 성장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서 또 한 번 크게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2. 서현맘 2018.06.05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디서 본건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각각에게 귓속말로 “이거 비밀인데 사실은 너를 제일 사랑해, 근데 00이 속상하니까 절대로 말하지 말자” 라고 말하는 건데 그 약발이 초등 고학년까지는(?) 간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사실 저도 엄마에게 속은적이 있고요^^
    제목처럼 아이를 키우면서 어린시절의 나와 화해도 하고 힐링도 받고 그러네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8.06.16 2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저도 사용해봐야겠어요. 아이들 안고 아이들 냄새 맡을 때 꼭 충전하는 것 같아요. 휴대폰 충전이 1%씩 올라가듯 말예요 ㅎㅎㅎㅎ 항상 안고 있으면 휴대폰 배터리 모양이 떠올라요 ㅋㅋ 댓글감사합니다.

둘째 아이가 욕실에서 넘어졌다. 뒤로 벌러덩. “이준아, 엄마가 잡으러 간다!” 장난을 치다가 욕실에 발을 내디딘 아이가 미끄러진 건 순식간이었다. 아이가 욕실 안까지 뛰리라고 생각 못하고 뒤따라가던 나와 욕실에서 아이 씻길 준비를 하던 남편은 굳어버렸다. 넘어지는 순간 욕실 타일 바닥에 뒤통수가 ‘딱’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아이는 10분 넘게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안고 있던 내 손은 점점 차가워졌다. “그렇게 장난치면 어떡해!” 나를 원망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쳐갔다.


 

퇴근 후에도 휴대폰으로 업무를 챙기다
아이에게 집중하자 생각한지 5분 만에
둘째 아이가 욕실 바닥에 미끄러졌다

 

장난치기 5분 전까지 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퇴근했지만 휴대폰으로도 볼 수 있는 회사 뉴스 데스크 시스템을 들여다보며 체크해야 할 기사들을 확인했고 남편이 “집에서는 휴대폰 좀 그만 봐”라고 할 정도였다. 그 말에 민망해서 “아직 못 고친 기사가 있다”고 항변했다. 이제 휴대폰을 그만 보고 아이에게 집중해야겠다 생각한 직후, 아이가 넘어졌다. ‘이준이가 좋아하는 잡기놀이부터 시작해야지’ 했다가 이어진 사고. 이제 겨우 23개월이 지난 아이, 응급실에 가야 하는 것인지 울음이 잦아들길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긴 한숨을 쉬었다. 나를 원망하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일부러 그랬어?”라며 화를 냈다.


 

서운했지만 억울하진 않았다. 집에 와서도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지 오래고 그 때문에 계속 죄책감을 느껴왔다. 남편에 대한 원망보다는 내 행동에 대한 후회가 이어졌다. 넘어진 아이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뒤 잠을 재웠고 아이들을 재운 뒤 혼자 일어나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 건가’라는 생각을 ‘또’ 했다. 아이가 넘어진 건 사고였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만 집에 와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일을 확인하던 내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아이들과 있는 시간에도 일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죄책감.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무엇을, 누구를 위해서.’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 엄마 욕심으로 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를 낳은 후부터는 일하는 이유를 하나씩 소거하게 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일하는 이유도 다양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많은 이유가 남아 있지 않다. 어쩌면 아이를 기르는 시간과 맞바꾼 이 시간. 재취업이 쉽다면 난 이렇게 아득바득 일을 했을까. 아이를 기르는 시간과 맞바꾼 내 시간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멍해진다.


 

일곱살 첫째는 주말마다 말하곤 한다
“근데 내일이면 엄마는 다시 없겠지?”
내가 일하는 건 다 내 욕심이었던 걸까

 

엄마가 회사에 가는 게 싫은 이유를 여럿 댈 수 있을 것 같은 7세 첫째는 지난 주말에도 말했다. “엄마, 하루 종일 엄마랑 있으니까 너무 좋다. 그런데 내일이 되면 엄마는 다시 없겠지?” ‘없다’는 말에 덜컥 해서 “없긴 뭘 없어. 밤에 오잖아”라고 대꾸하니 “밤 너무 늦게 오니까 엄마랑 놀 수가 없잖아. 엄마랑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데.” 아이가 내가 회사 간 시간을 ‘없다’고 생각한다는 게, ‘너무 늦은 밤’에 온다고 생각한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늘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집중 못하는 엄마랑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아이. 두진아, 엄마가 밤이 아니고 너희들 저녁 먹일 수 있는 시간에 돌아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치원 끝나면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면 할머니 도움 없이도 너희들을 키울 수 있을 텐데.


 

둘째 육아휴직 후 복직한 지 9개월이 지났다. 일에는 어느 정도 적응을 했고 가끔은 신이 났다. 성취감을 느낄 때도, 동료의 고마운 마음을 느낄 때도 있었다. 두 번의 육아휴직 동안 육아가 얼마나 ‘빡센’ 일인지 알게 된 나는 “역시 육아보다는 일이 쉽지”라고 노래를 부르며 회사에 나오는 아침을 고마워했다. 한편 일은 여전히 내 존재를 증명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두진이, 이준이 엄마가 아니라 ‘임아영’으로 불리는 일은 말할 수 없이 소중하니까.


 

다만 이 모든 게 ‘내 욕심’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 땅속으로 가라앉는다. 아이가 넘어졌을 때 나를 원망했던 남편이 다음날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을 때 나는 기분이 바닥인 채로 브리핑을 받아치고 있었다.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고 겨우 답장을 했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없는 건 아닐까.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어줄 자신도 없으면서 둘이나 낳은 건 결국 내 욕심이었는데.” 거기까지 썼는데 눈물이 책상에 뚝뚝 떨어졌다.


 

 

■ 다른 삶을 꿈꾸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 욕심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주지 못한 것은 노동시간이 길어서다. 알면서도 자꾸 내 탓을 하게 될 때, 이 사회가 전부 엄마 탓을 해도 나는 그러지 말자고 되뇌어도 어느 순간 나도 내 탓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끝까지 내 일을 지킬 수 있는지 걱정한다. 그러면서 ‘일이 도대체 뭐라고’ 말하면서 자기부정하는 분열 상태.


 

긴 노동시간을 벗어난 삶을 꿈꿔본다
하지만 그건 욕심이라고 말하는 사회
일을 그만두는 상상에 가끔 악몽을 꾼다

 

지금 상황이 괴로우니 아예 인생을 ‘리셋’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주 상상한다. 첫째를 낳고 회사에 돌아왔던 2014년에는 답답한 마음에 남편과 지방의 작은 마을에 가보기도 했다. 도시 사람들이 많이 내려와 정착한다는 마을에 들러 우리가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삶을 꿈꿀 수는 없을까. 아예 둘 다 일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디자인해볼 수는 없을까. 한 사람만 일하거나 두 사람이 시간을 나눠 5~6시간씩 일하는 방법은 없을까. 집값만 낮아져도 손써볼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이제는 그 상상이 현실이 되기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때 한 명이었던 아이는 두 명이 되었고 서울을 떠나서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 더 근본적으로 나는 삶을 크게 바꿀 용기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용기가 없다고 꿈꿀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꿈을 꾸며 출근한다. 내 꿈은 단순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그러나 이 사회에서 엄마가 그런 꿈을 꾸는 건 ‘욕심’이라 말한다. 이 구조에서 내가 일을 열심히 하려 한다는 것은 결국 아이들과 함께해야 하는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일이 재밌다고 느낄수록, 일에 좀 더 몰입할수록, 퇴근 시간이 늦어질수록 나는 아이와의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 그래서 일이 재밌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모두 다 일을 조금만 하면 좋을 텐데.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아내가 집안일과 육아를 다 해결해주는 남자처럼 일을 할 수는 없는데.


 

언젠가는 이 균형이 확 깨지지 않을까. 지금은 첫째 한 명이지만 둘째까지 엄마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계속 소거하다가 결국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면. 일을 그만둔 나를 상상해보다 가끔은 악몽을 꾼다. 어떤 꿈에서는 아이가 울면서 집에 혼자 돌아오고 있고 어떤 꿈에서는 회사를 그만둔 내가 울고 있다.


 

■ 사라진 언니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최근에는 병이 났다. 과도한 집중이 몰고 오는 두통과 구토. 점점 심해져서 진통제를 사먹으려고 편의점에 들렀다가 아이들을 돌보기는커녕 내 자신도 돌보지 못하고 있구나 싶었다. 몸부터 돌보라는 신호다. ‘이것은 지속가능한 삶인가.’ 첫째를 낳고 회사를 다니던 때 밤마다 잠을 못 자는 두진이를 붙잡고 생각하던 질문. 둘째를 낳고 달라졌는가. ‘이것은 지속가능한 삶인가.’


 

이 삶을 바꾸고 싶어서 지난해 창립한 ‘정치하는 엄마들’이라는 단체에 회원으로 참여했다. 엄마들이 겪는 일상의 불합리를 정치를 통해 직접 해결하자는 비영리단체다. 조금씩이라도 바뀐다는 희망을 잡고 싶었다. 그러나 복직하고나니 일에 치여서 단체 소식에도 관심을 갖기 어려워졌다. 아이들 볼 시간도 없는데 무슨 단체 참여를 하겠나. 한국의 시민사회단체 참여율이 왜 낮은지 이렇게 몸으로 체감한다. 이제 회원들에게 안부를 묻기도 민망해진 차에 “보고 싶어요”라고 먼저 말 걸어준 언니에게 “잘 지내느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이 왔다. “보고 싶어요. 우리 ‘시간 거지’인 만큼 만나서 시간 신경 안 쓰고 여유롭게 쫓기지 않고 이런저런 얘기 하고 싶어요.”


 

내 몸도 돌보지 못하는 ‘시간 거지’의 삶
야근 중 도착한 그림 속엔 “빨리 오세요”
‘언니’들도 이렇게 일터에서 사라졌겠지

 

울컥했다. ‘시간 거지’인 엄마들이 보고 싶어도 만나기 어려운 구조. 결국 이 노동환경에서 나가떨어지면 ‘경단녀’가 되어야 하는 구조.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눌 수 있다면. 오전에 출근하는 엄마가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오후에 퇴근하는 아빠가 아이들을 하원시킬 수 있다면. 할머니나 시터 이모님 도움 없이 부부 힘만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다면.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아이들이 내 퇴근만 기다리지 않을 수 있다면.


 

첫째가 다니는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보내준다. 야근 중에 그림 파일(사진)이 왔다. 선인장을 본떠 그린 그림으로 만든 편지지에 두진이는 글씨를 썼다. “엄마, 회사에서 빨리 오세요.” ‘아, 엄마는 야근 중인데…’ 먹먹한 마음이었는데 여자 후배가 “선배 잘 지내세요? 아이들은 잘 커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순간적으로 아이 그림을 보여주려다 멈추고 “응 그럼”이라고 대답했다. 난 버틸 수 있을까. 버티지 말고 싸우자고 생각했지만 결국 버티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 비관을 걷어내는 건 너무 어렵다.


 

수많은 ‘언니’들이 이렇게 일터에서 사라졌겠지. 나는, 그리고 여자 후배들은 사라진 그 언니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181657005&code=210100&sat_menu=A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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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감한표 2018.05.24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나도 공감합니다. 하물며 전업주부도 시간거지라 몸 못 챙기는 판에..워킹맘은 어떨지...ㅠㅜ
    근로시간이 너무 길어요.너무너무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8.05.25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 건 노동시간의 문제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주52시간 시행되고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은데...ㅠㅠ 아이들과 부모 모두 저녁을 매일 먹을 수 있는 날이 얼른 오길요. 댓글 감사해요.

  2. 커리어우먼의 딸 2018.05.24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벌이부모님 밑에서 자란 저와 남동생. 유치원때 시절 몇번 외에는 단 한번도 엄마께서 직장을 그만두길 원했던 적이 없어요. 새벽 두, 세시까지 자기개발을 위해 공부하시고 일하시는 어머니를 옆에서 보면서 외려 그것이 자랑스러웠고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 부터, 일단은 '내가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에 대해 일찍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라고 생각됩니다. 아이입장에서 말씀드리면 (물론 아이마다 좀 다른 것도 있지만요), 부모의 아주 넓은 울타리 안에서의 '방목'은 외려 생각을 크게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부모의 역활은 초원같은 울타리안에서 약간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닌 가 생각해요. 님께서 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이끌어 가시는 모습이 외려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이 될 것이니, 그런 부분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힘내세요! 다만 우리나라의 회사체제라던가 환경이 많이 바뀌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8.05.25 1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감사합니다. 많은 위로가 됩니다. 우리 아이들도 커서는 그러겠죠? ^^;; 그러면서도 노동시간을 줄이고 회사에서 분위기를 바꾸는 등 노력을 해야하겠죠. 그렇게 하다보면 아이들이 아이들을 키울 때는 훨씬 나아질 거라고 믿어요. 댓글 감사해요. ^^

  3. 마음의짐 2018.06.04 0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 역시 워킹맘으로서 비슷한 상황인데요.. 전 그럴때 남편이 원망스럽습니다. 제가 야근할 때 남편이라도 일찍 와줘서 애랑 놀아주면 좋겠는데.. 남편은 월화수목금 매일 야근이고, 저는 고생하는 친정엄마 맘에 걸려서 야근 해야해도 못하고 부리나케 집에 와서 애 놀아주고 애 자면 일하고.. 왜 여자만 이렇게 맨날 동동거리고 부대끼고, 이 모든게 다 제 책임 처럼 느껴지는 죄책감을 달고 살아야 하는지..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8.06.16 2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저도 첫째 낳고는 남편과 갈등이 심했어요. 친정 옆동으로 이사오고 갈등이 좀 잦아들었는데... 친정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은 평생 씻을 수 없겠죠ㅠㅠ 이 사회는 부부가 힘을 합쳐 아이를 키울 수 없게 하는지. 정말 답답합니다. ㅠㅠ 그래도 힘내세요. 같이 힘내요.

■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물려 오면’ 검색어가 많은 이유

두진이는 14개월 때, 이준이는 10개월 때부터 집 앞의 가정어린이집에 보냈다. 육아를 도와주시는 친정엄마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일수록 안고 들어야 하는 일이 많은데 원래 좋지 않은 엄마의 무릎이 아이들의 몸무게를 견뎌내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첫째는 출산휴가(3개월), 육아휴직(1년)을 마칠 때쯤 어린이집에 자리가 나서 보낼 수 있었고 둘째는 10개월 즈음에 보내야 했다. 한 번 순서를 내주면 1년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 대기 시스템 때문에 10개월에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미안했지만 아이가 잘 적응할 것이라 합리화하면서 죄책감을 희석시켰다.


 

블로그에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다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한 번은 두진이가 22개월일 때였다.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옆자리 아이에게 손을 물렸다. 퇴근 후 이 모양으로 멍든 자국이 난 아이 손등을 보고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 한 번은 이준이가 17개월일 때였다. 어린이집에서 산책을 하다가 넘어져 상순소대가 찢어지고 살짝 이를 다쳤다.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나의 상황을 원망했던 건 두진이가 다쳤을 때랑 비슷했다. 다행히 두진이 7세, 이준이 23개월인 지금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다쳐도 어쩔 수 없었겠지
아이 둘을 키우며 어린이집 구조 알게 돼
화나는 건 사고 안 나길 바라는 사회구조

가끔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를 때리거나 학대했다는 기사를 읽는다. 해당 교사에 대해 분노하는 댓글도 읽는다. 나도 그런 기사를 보면 분노한다. 그러나 ‘짧은 분노’ 후 그 분노가 무엇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 싶어 우울해진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블로그에 종종 ‘어린이집 물려오면’ ‘아이가 물려’ 등등의 검색어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으나 최근 든 생각. ‘어린이집에서 물리는 아이가 적지 않은 건 아닐까?’ 실제 ‘아이가 물려’라고 입력하고 들어온 걸 그대로 따라 들어가보니 어린이집에서 친구에게 물려온 아이들 이야기가 주르르 뜬다. 내 글이 제일 위에 떠서 블로그에 유입된 숫자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오 마이 가드.’


 

처음 두진이가 옆에 누운 아이에게 물렸다고 했을 때는 어린이집에 정말 화가 났다. ‘도대체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를 어떻게 본 거야. 선생님들은 뭐한 거야.’ 부글부글 분노를 삭이며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혹시라도 생길 사고를 방지하겠다는 직업적(?) 습관 같은 거였다. 몇 년이 지나고 이준이가 상순소대가 찢어졌다고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을 땐 좀 달랐다. 이상하게도 어린이집에 화가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겠지. 아이가 순간적으로 넘어진 걸. 내가 봤어도 다쳤을 상황일 거야.’


 

아이를 둘 키우면서 어린이집 구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얼마나 박봉을 받는지, 한국의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이 얼마인지, 무상보육을 이야기하며 정치권과 정부가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이제 오히려 화가 나는 건 어린이집, 유치원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이 사회의 구조다.


 

 

■ ‘만 0세 3명’을 ‘교사 1명’이 돌보는 시스템이 가능한가

3월 두진이가 7세가 되며 유치원에서 제일 ‘형님반’이 됐다. 새로운 반에 들어가 담임 선생님과 인사를 하는 날. 입학식에 온 부모들이 뒤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며 서 있는 틈에서 문득 ‘얘들은 도대체 몇 명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둘 세어 보다가 너무 많아 포기하고 나와 유치원 입구 공지문에 붙어있는 아이들 반 편성표를 봤다. ‘26명.’ 7세 26명을 한 선생님이 지도하는 게 가능할까. 만 5년을 조금 더 산 ‘천지분간 못하는 장난꾸러기’들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제각기 딴짓을 하고 웃으며 장난을 치고 “선생님, 얘가요…” 여기저기서 난리다. ‘아, 7세에 벌써 26명이 한 반이라니.’ 아득했다.


 

둘째는 국공립어린이집 턱걸이 입소
하교 시키러 유희실 갔더니 40명 뒤엉켜
활짝 웃는 선생님들 표정은 지쳐보여


올해 이준이는 대기했던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연락을 받아 어린이집을 옮겼다. 두진이 더 어릴 때부터 보내고 싶어했던 곳이다. 20명을 뽑는데 대기 순위 20번째로 ‘턱걸이’로 입소 허가를 받아 가족 모두 기뻐했다. 두진이는 첫째라 다자녀 점수가 없어 대기 전화도 받지 못하던 곳. 이준이를 보내면서 약간 기대도 됐다. ‘나도 국공립 어린이집을 보내보는구나.’ 그러던 얼마 전 쉬는 금요일 아이를 하원시키러 어린이집에 갔다. 아이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가 ‘경악’했다. 40여명이 유희실에서 놀고 있었다. 아이들 숫자 때문이었을까, 그들을 보며 활짝 웃는 선생님들 표정이 지쳐보였다.


 

3세인 이준이는 한 선생님이 5명을 돌본다. 쉴 새 없이 부딪치고 도망다니는(?) 23개월 된 아기들 5명을 한 명이 돌보는 시스템, 말이 되는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울적해졌다. ‘선생님에게 아이를 잘 봐달라는 말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얼마 전 두진이 유치원 상담을 할 때였다. 담임선생님과 잘 먹지 않던 반찬이 나오면 낯설어하며 먹으려 하지 않는 두진이의 식습관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말했다. “선생님, 두진이가 혀 끝에 음식을 대주고 막상 맛있다는 것을 알면 잘 먹는데요. 입에 넣는 데까지 오래 걸려요. 새로운 데 뛰어들려면 오래 걸리는 성격이잖아요. 선생님이 새로운 반찬도 맛있다고 잘 설명해주시면 아이가 먹을 수도 있거든요.” 거기까지 말하다가 문득, 아이들 숫자가 26명이라는 게 생각이 났다. 선생님은 또 활짝 웃으며 새로운 반찬도 입에 대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설명하셨지만 집에 돌아오면서 ‘26명을 한 선생님이 지도하는 시스템에서 내가 무슨 부탁을 한 건가’ 싶었다.


 

초등학교도 한 반에 25~30여명
아이 적성에 맞는 교육은 불가능하다
아직도 말 잘 듣는 아이가 ‘모범생’이듯


지역마다 편차가 있지만 정부 지침에 따라 교원 1인당 아이 숫자는 정해져 있다. 만 0세는 3명, 만 1세는 5명, 만 2세는 7명이다. 만 0세는 돌도 안된 아기다. 부모 둘이 봐도 벅찬 아기. 그런 아기 3명을 교원 1명이 돌보는 시스템이라니. 유치원에 다니는 만 3~5세는 급격히 늘어난다. 만 3세 17명, 만 4세 22명, 만 5세 26명. 이게 말이 되는 숫자인가? 이런 구조에서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아이가 털끝도 다치지 않게 봐달라고 이 사회가 요구하고 있다는 게, 오히려 더 말이 안되는 것 아닌가.


 

■ ‘교사 1인당 아이 숫자’라는 근본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초등학교에 가면 나아질까. 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을 정도로 크니까 25~30명 정도는 한 반에 있어도 교사 1명이 지도할 수 있을까. 교사 1인당 아이 숫자라는 근본 문제를 풀지 못하면 보육도, 교육도 답이 없다. 아이들이 대규모 집단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데 아이 한 명 한 명 특성과 기질을 존중하며 아이의 적성에 맞는 교육을 한다는 건 가능하지 않다.


 

두진이가 어릴 때 어린이집에서 상담할 때마다 행동 전환이 느리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두진이는 집중력이 좋지만 때론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에 눈돌리기 어려워하는 성격이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행동 전환을 빠르게 할 수 있도록 집에서도 도와달라고 말할 때면 대규모 집단 생활을 어려워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밀어넣은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물론 집에서 돌보는 게 아니니까 어느 정도 어린이집 전체 규칙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행동 전환 훈련’을 시켜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어릴 때는 한 반에 50명이 넘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는 오전·오후반을 시행하기도 했다. 그때에 비하면 나아졌을까. 그러나 대규모 집단 생활을 잘해내기 위해서 내가 배운 것은 이랬다. ‘튀면 안되고 어른들의 말에 의문을 품지 않고 무조건 말을 잘 듣는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곳.’ 50명이 넘는 반에서는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유리하다. 어린 마음에도 불리한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성장한 후에는 선생님 말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도 손을 들고 얘기한 적이 거의 없다. ‘말 잘 듣는 학생’이 유리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한편 교사 1명이 통제하기 역부족인 상황에서 선생님들이 윽박지르는 것은 ‘당연한 풍경’이었다. ‘3월엔 애들을 잘 잡아야 돼’라는 말도 흔히 들었다. 물론 내가 학교 다니던 때보다는 나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대집단 생활의 규모가 작아졌을 뿐 여전히 교사 1명이 아이들을 존중하고 지도하기 어려운 환경을 부정하지 말자. 교사들의 숙련노동으로 모든 걸 이겨나갈 수 있다고도 말하지 말자. 그것은 ‘기만’이다.


 

아동복지 지출 GDP 대비 1.1% ‘찔끔’
한국사회는 여전히 사람을 ‘수익’ 취급
교사 노동조건 개선해 줄 수 없는 건가


■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는 사회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뤄낸 국가지만 이 나라는 여전히 아동가족복지지출에 GDP 대비 1.1%밖에 쓰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2%, 선진국들은 3%까지 쓰기도 한다. 최근 육아정책연구소의 해외육아정책 동향에서 독일의 유치원, 어린이집 전문 일손이 부족하다는 자료를 봤다. 독일도 이런 문제를 겪나 신기해서 자료를 뜯어보니 아동 수가 늘어나는데 아동 대비 교사의 수를 맞추기 힘들어졌고 교사 부족 현상으로 유치원들이 정원 수를 줄여야 하는 상황까지 우려된다고 했다.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베르텔스만 재단이 2016년 발표한 이상적인 아동 대 교사 수를 반영하면 만 3세 이하의 경우 1대 3, 만 3세 이상은 1대 7.5인데 이 비율에 따르면 현재 독일에는 10만명 이상의 교사가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라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만 3세 이하는 1대 7까지 올라가고 만 3세 이상의 경우 1대 26까지 올라가는데 어떻게 이리 다를까. 어린이집, 유치원, 나아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잘 돌보고 지도해주길 바란다면 우리는 같이 말해야 한다.


 

선생님들 처우를 개선해달라고, 교사 1인당 아이 숫자를 줄여달라고. 국가가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말하려면 아이들을 직접 마주하는 사람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해줘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 아이 하나하나를 개별적 존재로 바라봐줄 시간이 생긴다고.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사람은 ‘숫자’ 이상의 취급을 받지 못한다. 사람은 그 장부상 숫자 안에서 ‘비용’처리되거나 ‘수익’으로 남는다. 미취업자 시절 공무원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엎드릴 수도 없는 작은 책상에 다닥다닥 붙어서 생각했다. ‘한 반에 300명은 기본으로 넘는데 불이 나면 어떻게 될까.’ 한 선배가 재수학원 구조가 여전히 그렇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민간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모두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이는 건 내가 과민해서일까.


 

세월호 참사 4주기다. 우리는 사람을 귀히 여기는 사회로 재구조화될 준비가 돼 있는가.

 

<원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4202049005&code=210100&sat_menu=A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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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베카 2018.12.17 2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딸아이가 유치원교사입니다
    7세반을 맡고 있는데 인원이 26명.
    보조교사없이 혼자 케어 합니다.
    사립유치원이어서 수업준비에 밤새는건 기본이고, 매일 퇴근이 8시에서 9시가 넘습니다. 그렇다고 급여가 월등히 많은것도 아니구요.
    최저임금보다 몇만원 더 받으며 아이들읕 지도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유치원교사들은 대부분 나이가 어린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아이가 좋아 유치원교사가 되었지만, 현실은 아이에게 많은 사랑을 주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죠.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지칠때가 있고, 과로에 병날때도 있으니까요.
    사립유치원의 비리에만 시선이 가 있는 현실앞에서 뒤에서 숨죽이며 힘들어하는 교사들의 안타까움도 살펴보아야 할 듯 합니다.
    저희딸은 오늘도 9시반이 넘어서 퇴근했네요 ㅠ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9.03.03 15: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ㅠㅠ 9시반 퇴근이라니ㅠㅠ 너무 슬픕니다. 저희 아이도 지난해까지 한 선생님이 26명을 돌봐주셨죠. 선생님들 덕분에 아이를 키운다는 생각을 하지만.... 교사 1인당 아동 숫자가 줄지 않기 전에는 근본적인 답을 찾기 어렵다는 생각도 동시에 듭니다... 댓글 감사해요.

<아이를 그리워하는 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엄마>

 

2주 전인가. 일주일짜리 출장을 다녀왔다. 둘째를 떼놓은 첫 번째 출장. 첫째 때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진 않았는데 그 기간이 둘째가 어린이집을 옮기는 적응 기간과 겹쳐 친정엄마는 고생을 하신 모양이었다. 새 공간에서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난 둘째가 많이 울었다고 했다. 마음이 아팠지만 이 모든 일에서 나는 항상 조정자의 역할일 뿐 실제 적응을 해야 하는 건 22개월짜리 아이이고, 적응을 도와야 하는 것은 이제 환갑이 되신 엄마다.

 

아이를 둘을 낳으면서 조정자의 역할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복직 후 마음이 크게 힘들진 않았다. 어차피 아이는 내가 없을 때 울 것이며 나는 그를 달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울어도 그친다는 것을 알아서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은 포기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첫째의 양육을 통해 배웠다. 이 포기가 어떤 점에선 긍정적이고 어떤 점에선 부정적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이상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니까 여기서 그만. 그러나 확실히 첫째 때보다 전전긍긍하지 않게 됐고 여유로워졌다. 그렇게 복직한지 6개월이 지났다.

 

출장 때 매일 기사를 써야했는데 시차가 안 맞아서 아이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일을 하기에도 벅찼다. 넷째 날인가 좀 적응을 해서인지 새벽에 기사 쓰는 것도 할만 하다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아이들이 갑자기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몽글몽글한 뺨에 뽀뽀를 하고 4등신의 둘째가 와락 안기고 둘째를 안은 팔에 일곱 살 첫째가 안기는 상상. 그때부터는 계속 휴대폰 속 아이들 사진과 동영상을 봤다. ‘, 보고싶다.’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날 아침이었다. 

"엄마, 얼마나 보고싶었는데..."라며 첫째가 품을 파고든다. 둘째도 노래를 부른다. 엄마 엄마 노래.' 둘이 합창을 한다첫째가 내 품에 파고 들며 엄마 엄마말하며 어리광을 부리면 둘째도 지지 않고 음마 음마말하며 내 목을 끌어안는다. 출장 전과 확연히 달라진 느낌. 두 아이 다 엄마 보고싶었어.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알아?’ 말하는 것과 같은.

 

이럴 때면 내가 아이를 낳아 사랑을 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내게 사랑을 퍼붓는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누가 나를 이렇게 사랑해줬던가. 어떤 절대적이고도 맹목적인 애정을 받다가 문득 코가 막힌다. 내 엄마의 사랑이 떠올라서.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가정주부로 아이들을 잘 기르는 게 일생의 사명이었던 엄마처럼은. 가끔 엄마에게 나와 동생이 절대적 명제라는 것을 깨달으면 나는 아이를 낳아도 내 인생의 절대적 명제로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알게 됐다. 아이는 그저 부모의 전부가 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그건 엄마가 주부여서가 아니었다는 걸. 내게도 아이들이 전부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엄마의 사랑을 오해했다는 사실을 겨우 깨닫는다. 일하며 집중할 때는 아이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회사로 이동할 때, 취재 장소를 옮기며 걸을 때는 아이들 생각이 많이 난다. 야근 후 집에 돌아가면 휴대폰에 찍어둔 아이들 영상을 본다. 자고 있는 아이들을 옆에 두고서도 보고싶어서.’ 가장 보고싶을 때는 역시 집으로 돌아갈 때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아이들을 얼른 안아보고 싶어서.

 

 

 

보고싶고 그리운 아이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새삼 내가 아이들과 연애 중이라는 것을 알겠다. 한때 아이를 낳으면 내 인생의 연애가 끝난다고 생각했었다. 첫째를 낳은 조리원에서였다. 서툰 모유수유를 끝내고 아이를 트림을 시킨 후 옆에 뉘였는데 우연히 페북에서 브런치를 먹는 아이 없는 부부 사진을 봤다.

 

'나는 이제 남편과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없구나. 어떤 연애의 종언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 그 시절이 우스워질 정도로 아이들에게 몰입해있다. 늘 보고싶고 그립고 안고 있으면 행복한 존재들에게.

 

이 연애는 아이들이 나에 대한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변환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연애다. 그래서 이 연애에서 결국 약자는 나라는 것을 안다. 아이들은 결국 엄마보다 친구를, 엄마보다 배우자를, 엄마보다 자식들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자주 균형에 대해 생각한다. 아이들과 거리를 둘 수 있는 과 아이들에 가까이 가야 하는 육아의 균형에 대해. 어느 정도 저울추를 움직여야 균형을 잡을 수 있는지. 아이들과 일, 아이들과 나의 균형에 대해서.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전전긍긍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이 보고싶고 아이들과 가까이 있고 싶은 내 마음을 긍정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은 내려놓아야 하는 뻔한 진실에 대해서도.

 

그러다가... 엄마의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을 했다. 출장 후 아이들이 내 얼굴을 부비고 어리광을 부렸다는 얘기를 전하자 친정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을 때다. 애들이 널 좋아해서 좋겠다.” 그 말에는 어떤 회한이 묻어있었다. 나와 동생은 이제 엄마아빠를 찾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다 커버렸다. 삼십대 중후반이 된 어렸던 나와 동생은 이제 엄마아빠 손이 없어도 세상을 살 수 있는 나이가 됐다.

 

'한때 나도 엄마아빠에게 지금 우리 아이들처럼 사랑을 퍼부었겠지.'

 

내 아이들도 언젠가 나처럼 부모 손을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연애는 점차 상대가 다른 사람을 나보다 사랑하게 되는 것을 지켜보는 연애가 될 것이다. 아이들은 나보다 친구를, 나보다 배우자를, 나보다 자식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 허전함은 얼마나 클까. 물론 뿌듯함이 같이 찾아오겠지만. 외로움이 담긴 친정엄마의 표정을 볼 때면 내 미래를 엿보는 기분이 든다.

 

그제서야 나를 길렀던 엄마아빠의 마음을 짐작한다. 아이를 기르게 되어서야 엄마아빠의 마음을 짐작하게 된 철없음도 떠오르고.

 

한편 나를 온몸으로 돌봤던 엄마아빠가 이제는 내가 보살펴야 할 존재가 됐다. 결혼할 때 어떤 선배가 얘기해줬다. “30대는 황금기야. 아이들은 어리고 부모님이 아직 건강하시지. 그 시간을 즐겨. 40대가 되면 아이들이 속썩이기 시작하고 부모님이 아프기 시작하셔.” 이제 내가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간다. 어느 새.  

 

부모님이 아프시기 시작하는 시기가 우리 부부에게는 조금 빨리 찾아왔다. 재작년 시아버지가 큰 수술을 하셨고 지난해에는 방사선치료를 받으며 항암을 하셨다. 아버님이 수술을 하시던 날 예상외로 시간이 오래 걸렸고 남편은 결국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수술이 끝나지 않아 계속 불안해하고 있을 때 겨우 5개월이었던 둘째가 킁킁소리를 내며 계속 울었다. 밤에 진료를 보는 소아과에 갔더니 후두염이라는 진단. 아직 어리기 때문에 밤새 숨을 잘 쉬는지 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남편은 병원에서 돌아오지 않고 나는 킁킁소리를 내면서 자는 5개월짜리를 안고 소파에 앉았다 일어섰다, 좁은 집을 돌아다니다를 반복하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아이가, 아니 아버님이 잘못되실까봐 두렵기도 했지만 내게 절대적인 존재였던 부모가 늙어가는 것이 서럽기도 했다.

 

다행히 아버님은 이제 괜찮으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버지가 백내장 수술을 하게 되셨다. 백내장 수술은 요즘 수술도 아니라고 하지만 나를 키웠던 아빠가 내 어릴 적 할머니가 했던 수술을 똑같이 하신다는 게 서글프다. 안대를 하고 있는 아빠 모습을 보는게 어색하다.  ‘아빠도 늙었구나.’ 아빠는 언제나 내게 휴가 때 계곡 물에 흘러내려갔던 내 샌들을 계곡물 속도보다 빠르게 달려가서 주워왔던 슈퍼맨인데. 아빠는 이제 일흔을 바라보고 나는 마흔을 바라보게 됐다. 샌들을 주워왔던 아빠는 지금 나처럼 삼십대였는데. 사람은 다 늙고 약해진다는 걸 쉽게 이야기하지만 부모가 늙고 약해지는 것을 지켜보는 건 쉽지 않다.

 

언젠가 나도 엄마처럼 이 시절을 몹시 그리워할 것이다. 젊은 나와 남편, 어린 아이들, 그리고 옆에 계셨던 부모님들까지. 아이들이 나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을 보며 지금 엄마처럼 허전해하고 서운해 하겠지. 아이들을 낳고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오늘 하루의 소중함을 새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언젠가 아이들의 뺨에 마구 뽀뽀했던 이 시절, 아이들의 달큼한 냄새에 취했던 이 시절을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엄마에게 쑥쓰러움을 감추고 말한 적이 있다. “엄마, 아이를 낳고 뭐가 제일 좋은지 알아요? 엄마를 많이 이해하게 돼서 좋아요.” 그 말 뒤에 이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부모를 이해하게 된 게 늦은 만큼 내 곁에 오래 계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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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낳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나보다 진취적인 여성으로 키우고 싶었다. 가끔은 도망치거나 물러섰고 또 가끔은 불안해했고 때로는 눈치를 살폈던 나와는 다른, 당당하고 아름다운 여성. 그런데 이게 웬걸. 아들이 태어났다. 둘째는 딸을 낳을 수 있겠지. 다시 임신했고 ‘봄봄’이라는 태명을 지으며 딸이길 소망했다. 또 아들이 태어났다. 이제 “아들들도 어릴 땐 예쁘다”며 ‘아들바보 엄마’가 됐다. 아들을 기르는 삶을 상상해보지 않았지만 아들들도 몹시 예쁘다. 내 자식이니까 당연히 예쁘겠지.


딸을 키워본 적이 없으니 딸을 키우는 일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늘 상상해왔다. 딸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장면을. “아이야, 너는 있는 그대로 소중해. 너를 사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마.”

 

나는 30대가 되어서야 나를 사랑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뒤늦게 그게 억울해졌다. 여자니까 늘 조심하라는 말을, 몸을 삼가라는 말을 들었다. ‘다리를 벌리고 앉지 마라, 여자애들이 얌전하지 못하고 시끄럽다’ 같은 말을 교실에서 늘 듣는 한국 학교를 다녔다. 그럴 때마다 억울했지만 항의해봤자 더 크게 혼이 날 거라는 눈치는 있었다. 집에서도 남동생은 외박이 가능했지만 나는 할 수 없었다. 위험하니까. 딸에게 처할 위험에 대한 부모님들의 걱정을 이해했지만 그럴수록 부득부득 밤에 떠돌아 다니고 싶었다.

 

남동생이 있지만 큰 차별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나는 아들에 비해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아들은 하나 있어야지” 같은 골목길의 할머니들 목소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외가 분위기에서, 제사 때 절을 하고 나면 원래 여자는 절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들에서, 엄마와 작은엄마들이 절을 하지 않고 뒤에 물러나 있는 걸 보면서. 아주 어릴 때 엄마가 친구와 산부인과에 갔던 날을 기억한다. 엄마 친구는 이미 딸 둘을 낳았고 셋째는 아들을 낳고 싶어했다. 산부인과 의사에게 물었다. “아들인가요?” 그 답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때 어린 나는 생각했다. ‘배 속의 저 아이가 여자애라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낙태라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던 때의 일이었다.

 

몇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 보도를 지켜보며 깨달았다. ‘여자치고 나는 운이 좋아 지금까지 안전하게 살아남았구나.’ 그리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들을 낳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번뜩 놀랐다. 이게 다행인가? 아들을 낳은 게 다행인가? 그 생각에 가 닿은 스스로에게 당혹스러웠다.

 

     자연물을 이용해 만든 전남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에서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놀고 있다. 어린이들이 놀 때 다른 이가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 번은 놀이터에서 한 남자애가 여자애에게 모래를 뿌렸다. 그 남자애 엄마가 말했다. “어머 어쩌나. 괜찮니? 네가 좋아서 그런 거야.” 여자애는 눈에 모래가 들어갔는지 울고 있었다. 여자애 엄마가 멀리 있었기에 아이의 상태를 살피지 못했다. 화가 났다. ‘좋아서 그런 거라니.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이 싫어하고 괴로워하는 행동은 못하게 가르쳐야지.’ 그 남자애 엄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남자애에게 가서 말했다. “네가 좋다고 친구를 괴롭히면 안되는 거야. 친구가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거야. 알겠니?” 오지랖이 넓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을 하지 않고는 그 여자애의 울음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좋아서 그런 거야.” 어릴 때는 ‘아이스케키’로 시작하지만 커서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저지르는 수많은 장면을 살면서 겪었고 들어오지 않았던가. 가정폭력을 저지른 남자들도 말한다. “사랑해서 그랬다”고.

 

“너도 좋았던 것 아니야? 싫으면 싫다고 진작 말하지. 이제 와서 왜 이래?” 유치한 드라마 대사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일상. 그런 일상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울고 있는 여자애처럼 뭐라 말하지 못한다.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너는 좋으냐고, 싫지 않으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이제 와서 왜 그러냐고 다그치는 사회. 아이가 모래 뿌린 사소한 일로 너무 과한 결론에 가닿는 것 아니냐고?

 

폭력은 일상적이다. 아이들이 어릴 땐 더 노골적이다. 아직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존재들 사이에서 가끔은 인간의 본연적 폭력성을 엿본다. 둘째가 태어나고 기기 시작하자 첫째와 둘째 사이에 ‘다툼(?)’이 시작됐다. 둘째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첫째의 장난감을 족족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둘째는 첫째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첫째가 만들어놓은 신기한 블록과 자동차 장난감 행렬들을 용감하게 부서뜨렸다. 첫째는 그때마다 화가 나 둘째의 머리를 때리고 둘째는 ‘우왕’ 울음을 터뜨린다. 혼이 나는 건 늘 첫째. 첫째에게 이렇게 말한다.

 

“두진아, 엄마는 이준이가 맞아서 속상한 게 아니야. 두진이가 때리는 사람이 되는 거 정말 싫어. 때리는 건 정말 나쁜 거야.” 동생을 때리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때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누군가를 괴롭히는 행동은 ‘폭력’이라는 것.

 

그렇지만 나도 헷갈린다. 때리는 건 나쁜 것,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자식이 가해자가 아니고 피해자가 된다면. 첫째는 일반 남자애들과 달리 활동적이지 않다. 몸싸움을 좋아하지도 않고 겁이 많다. 장난을 많이 치는 남자애들이 우리 아이를 밀칠 때 나도 모르게 소리치며 떠오르는 생각. ‘두진아 너도 밀어!’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들들이 남고에 간다면, 군대에 간다면. 아들들을 낳고 그런 상상을 자주 하게 됐다. 얼마 전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주의 깊게 봤던 이야기는 군대 내 괴롭힘 에피소드였다.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 후임병을 괴롭히는 이야기. 전형적인 구도다. 권력을 가진 자의 괴롭힘이 군대에서 벌어진 것뿐. 그런 장면을 볼 때 나는 이게 우리 아들들에게 벌어지면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여자로 살며 겪었던 폭력성과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폭력성이 크게 다를까라는 의문도 따라온다. 크든 작든 권력을 가진 자들이 휘두르는 폭력.

 

나는 평생 여자로 살았다. 한국에서 남자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른다. 그렇지만 남자든, 여자든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 남을 괴롭히는 행동은 폭력이라는 것은 안다.

 

그래서 아들들에게 길러주고 싶은 것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다. 어릴 때부터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야 폭력에 대응하고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응법은 무엇일까. 강자에게는 강하게, 약자에게는 약하게 대해야 하는 것 아닐까. 권력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몸짓에서 약자들에 대한 공감이 없다는 것을 엿볼 때 가장 절망스러웠다. 그 약자가 여성일 때는 수많은 기억들이 딸려 올라왔다.

 

‘미투’ 열풍에서 더 이상 참지 않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오랜 폭력에 참아왔던 목소리들. 한국 여성의 99%가 정도의 차이일 뿐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들. 공감한다. “남자는 그렇게 해도 돼, 남자니까 괜찮아”라는 게 여전히 용인되는 사회에서는 그게 당연한 결과다. 여성들에게 ‘그래도 되니까’ 그렇게 대해왔을 뿐. 센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추행은 더욱 추하지만 일상의 자잘한,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큰 타격을 줬을 폭력도 적지 않았으리라.

 

딸들을 아무리 진취적으로 키워도 아들들을 키우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왜 아들은 다르게 키우는가. 왜 아들이 친구를 괴롭히는 행동을 해도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가. 아들들의 폭력에 대한 감수성부터 키워야 한다. 설령 너는 재밌더라도 다른 사람이 싫어하면 멈추도록 하는 것,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 그게 시작 아닐까.

 

첫째가 내년에 학교에 간다. 점차 부모의 목소리 외에 보고 듣는 것이 많아질 것이다. 초등학교 남자애들이 음란물에 나오는 단어를 장난처럼 따라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래도 소소한 실천을 한다. 아이에게 장난감 총을 사주지 않고, 폭력적인 만화를 보여주지 않는 것. 장난감 총으로 노는 건 결국 쏘고 쓰러지는 재미인데 누군가를 굴복시키는 걸 놀이로 배우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를 대변하는 편과 악의 무리가 싸우는 만화는 일부러 피한다.

 

그런데 보여줄 만화가 몇 개 없다. 싸우지 않는 애니메이션들 <뽀로로> <폴리> <타요> 등등에서도 불편한 장면이 많다. 남자 캐릭터가 주인공이고 다수이며 여자 캐릭터가 소수이고 주변인인 상황 같은 것 말이다.

 

아직도 소년 목소리로 등장하는 뽀로로는 호기심이 가득해 이것저것 도전해보고 역시 소년 목소리인 에디는 기발한 생각으로 발명품을 만들어내는데 귀여운 소녀 목소리로 나오는 루피는 친구들에게 줄 쿠키를 굽고 자신이 만들어준 음식을 맛없어 하면 속상해한다. 아니, 루피는 친구인가, 엄마인가. 왜 친구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는가.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다고 가르치면 ‘네, 그렇군요’라고 받아들일까. 성별의 차이를 차별로 치환하는 것은 구시대적이라고 말하면 ‘아, 그렇군요’ 할까. 여전히 교과서에서 엄마는 앞치마를 두르고 아빠는 양복을 입은 모습이 눈에 띄고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설거지는 남자가 하는 일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역할은 정해져있다’고 말하는 정치인이 있는 사회다.

 

아득하다. 이런 사회에서 어떤 아들 엄마가 되어야 할까. 그래서 ‘미투’ 운동을 열렬하게 지지한다. 이 운동은 남성과 여성의 대결이 아니다. 크고 작은 권력을 무기로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사회, 성별에 따라 고정된 삶을 살지 않는 행복한 삶을 꿈꾸는 시작이다. 이런 삶이 해방시키는 것은 딸만이 아니다. 쓸데없이 무게를 지고 살아야 했던 아들들의 해방이기도 하니까. 내 아들들이 각자 그 존재로 사랑받을 수 있고 그렇게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161700005&code=210100&sat_menu=A073#csidxdcd3677ee80f165a762522d8949fc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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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es 2019.02.26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뽀로로 뿐만 아니라 아기상어 노래조차 여성은 예쁜 존재로 나오더라고요. 곧 태어날 아기에게 보여주기 싫은게 너무 많아요. 육아서적도 온통 “엄마” 천지.. 새삼 우리사회가 이랬구나 느낀답니다. 임신을 하니 또 다른 세상이 보여요.

엄마 독감 걸리자 ‘돌봄의 외주’ 비상

친정아빠까지 동원해 겨우 한숨 돌려

예전엔 몰랐다, 돌봄 업무 이렇게 많은지

 

 

■ 독감 파동

 

친정엄마가 독감에 걸리셨다. 오 마이 가드. 엄마가 아프시면 모든 게 ‘정지’다. 게다가 지금은 두진이 방학 중인데. 이를 어쩌나. 엄마 상태를 걱정했다가, 바로 아이들 돌보는 일정 조정하는 문제를 걱정했다가, 회사에는 뭐라고 말해야 하지 걱정했다가… 그 모든 걱정이 뒤섞여 지금 엄마 걱정을 하는 건지, 아이들 돌봄을 걱정하는 건지, 일을 걱정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괴감. 엄마가 아프셔도 엄마를 걱정하지 못하는 내 팔자. 엄마 미안해요.

 

두진이가 시작이었다. 지지난주 토요일부터 두진이가 독감 판정으로 타미플루를 먹기 시작했다. 다행히 독감 예방 접종을 해서 크게 아프지는 않았는데 “동생은 괜찮겠느냐”고 묻자 의사선생님이 말끝을 흐렸다. “이미 동생한테 영향을 줬을 거예요. 그래도 걱정되시면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게 하세요.” 주말 내내 마스크를 씌웠건만 이준이도 독감에 걸렸다. 게다가 친정엄마한테까지 옮기다니. 나도 가벼운 감기를 앓고 계속 기운이 없었다. 애들이 아프면 비상이다. 평소 할 일이 세 배 이상 늘어난다. 2~3일에 한번씩 소아과에 데려가야 하고 몸이 아픈 만큼 떼쓰는 것을 받아줘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아픈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병을 앓고 이겨내면 되니까. 20개월밖에 안된 아이한테 너무한가? 한국은 그런 사회다. 아이의 독감에 하나하나 민감하게 반응했다가는 아이를 키울 수가 없다. 아프니까 짠하다고 생각하며 아이 옆에 주저앉으면 어떻게 될까. 아이가 아파도 연차를 내기 전 수만번을 생각해야 하는 사회인데. 해야 할 일이 쌓여있어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는 사회. 이준이가 타미플루를 먹고 난 뒤 10분 넘게 악을 쓰며 우는 바람에 소아과로 뛰어갔다. 타미플루를 먹으면 배가 아플 수도 있다는 의사의 진단에 안도하고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그런 사회 앞에 한숨을 쉴 시간도 없었다. 친정엄마가 편찮으시면 모든 것이 정지되기 때문에. 친정엄마에게 아이들 돌봄을 외주화하고 있는 내 상황에서 엄마가 아프다는 것은 엄마가 해주셨던 모든 일이 정지됨을 뜻한다. 일요일 독감 판정을 받고 타미플루를 먹기 시작하신 엄마. 잠시 엄마가 괜찮으신지 보러 갔다가 마음이 푹 꺼졌다. 아이들과 달리 독감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서인지 엄마의 상태는 심각했다. 일어나지도 못하시는 엄마를 보고 다급해졌다. 엄마는 얼마나 아프실까. 아니, 당장 내일은 어떡하나.

 

김상민 기자

 

■ 돌봄노동을 천시하는 사회

 

엄마 상태를 온전히 걱정하지 못하는 팔자인 나는 현실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당장 월요일에 어떻게 아이들을 돌볼 것인가. 두진이도 방학이고 이준이는 독감으로 어린이집에 갈 수 없는 상황인데. 일요일 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정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좀 나아지셨어요? 내일 제가 쉴까요?” 평소 같으면 “그럴 필요 없다”는 말이 바로 나와야 우리 엄마인데. “쉴 수 있니?” 그만큼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결국 내가 오전에 아이들을 돌보다가 오후에 친정엄마가 오시기로 했다. 남편은 지난주에 휴가를 사흘 쓴 터라 후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오전 내 아이들을 돌보는데 이준이가 얼마나 아픈지 계속 짜증을 부렸다. 엄마인 나도 이 짜증과 떼를 다 받아주기 힘든데. 이런 상태의 20개월짜리를 독감 걸린 친정엄마한테 맡기고 나가는 게 맞나. 엄마가 점심 때 우리집으로 오셨다. 어제보다는 나아지셨지만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은데. 그때 구세주. “아빠가 지금 퇴근해서 오고 계신단다.” 결국 친정아버지까지 동원돼 아이들 ‘돌봄’ 문제를 해결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렇게 ‘돌봄 업무’가 많은지 몰랐다. 혼자 먹지도, 자지도, 걷지도 못하는 인간의 ‘아기’들을 돌보려면 24시간을 온전히 그 존재에게 내줘야 한다. 언제쯤 혼자 거리를 걸어다닐 수 있을까. 적어도 열 살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렇게 돌봄 업무가 긴지 몰랐다며 한숨을 쉬면서 깨달았다. 이 사회는 ‘돌봄’에 대한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일터에서 시달리다 밤에 집에 돌아오는 아빠들도, 부부 중 한 명은 일찍 돌아가야 한다고 눈치 보며 칼퇴근을 하는 엄마들도 돌봄에 대한 시간을 빼앗겼다는 것을.

 

그렇다면 외벌이 부부들은 행복할까. 늘 돌봄을 전담하는 쪽은 엄마다. 남성이 부양하고 여성이 가사노동과 육아를 책임지는 가부장적 모델에서는 그렇다. 여성의 임금은 남성보다 늘 적었고 한국은 그 격차가 크다. 노동시장에서 밀려나는 것은 늘 여성이다. 그 밀려난 여성들이 집으로 돌아가 가사노동과 육아를 담당하면 사회는 말한다. “놀면서 브런치나 먹으러 다니는 ‘맘충’ ”이라고. 돌봄노동을 노는 일로 치부하고 천시하는 사회. 그런데 한 번 돌아보자. 우리 모두 누군가의 돌봄으로 이렇게 자랐다는 것을. 그 돌봄이 ‘노는 일’인가?

 

 

반듯한 수건도, 늘 준비된 반찬도

엄마의 드러나지 않던 ‘그림자 노동’

어떻게 ‘노는 일’로 천시할 수 있나

 

■ 그림자노동으로 치부되는 돌봄노동

 

아이를 낳고 나서 친정엄마의 드러나지 않던 노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늘 반듯하게 접혀있던 수건, 언제나 싱싱한 재료로 해주시던 반찬, “엄마 뭐 필요한데요”라는 말 뒤에 바로 책상 위에 놓여있던 물건들. 그런 엄마도 우리 아이들을 봐주시면서 “놀면 뭐해, 애들이나 보지”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들으면 이제 마음이 아프다. 왜 엄마들의 노동을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나. 아이를 키우기 위해 10년 전 퇴사한 아저씨를 최근 취재했다. “저에게는 묻지도 않아요. 유모차에 앉아있는 아이한테 ‘너희 아빠는 회사 안 가니?’라고 묻죠. 백수냐고 돌려묻는 거예요.” 그림자노동인 돌봄노동을 경시, 아니 천시하는 사회.

 

“올리브영에서 버츠비 사기-장례식장-미술학원비 내기-운영위 회의-어린이집 서류 내기-마트에서 토마토 등 사기-인감증명서 발급-영유아검진 문진표-영유아검진.” 어느 쉬는 금요일 내가 메모한 내용이다. 오후 2시 두진이 유치원 운영위원회 회의에 참석해야 했고, 4시에 아이들 영·유아 검진을 예약해놓은 날. 자꾸 볼이 트는 이준이 때문에 ‘버츠비’ 크림을 사야 했고, 선배 부친상 조문을 가야 했고, 토마토와 아이들 먹을 것을 사야 했다. 영·유아 검진을 받기 전에는 문진표도 작성해야 하는 등등등. 이렇게 목록화해놓지 않으면 한두 가지 빼먹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서는 늘 메모를 한다.

 

우리집 가사노동은 ‘행정’ 업무는 내가 하고 ‘청소 등 가사노동’을 남편이 맡는다. 어린이집, 유치원 전화 통로도 나다. 나는 매일 머릿속이 분주하고 남편은 휴일에 할 일이 많다. 아,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끝은 어디인가. 언젠가부터 남편이 집안일을 덜 하네, 더 하네 싸우지 않게 됐다. 부부가 서로 도와가며 해결해야 하는 집안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 그림자노동을 해결하기 위해선 기계를 들여야 한다. 건조기를 사고 만들어진 반찬을 주문하고 간편식을 사먹는 일상. 아이 얼굴은 아침에 잠깐, 저녁에 잠깐 보고 재우기 바쁜 일상. 맞벌이 부부들의 일상은 이렇다. 그래서, 행복한가?

 

 

돌봄의 시간을 뺏겨 고통이 되었을 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삶의 활력소

모든 부모가 돌봄의 행복을 쟁취해야

 

 

■ 돌봄의 행복을 모두가 누려야 한다

 

지난주 남편이 두진이 방학을 막아내기 위해 3일간 휴가를 썼다. 출근할 때마다 그날 ‘미션’을 줬다. 아이 방학숙제 도와주라, 빨래를 해놓으라 등등. 돌아와서 아이 방학숙제 책을 펼치니 아빠와 아이의 기록이 가득하다. 그림에 같이 색칠을 하고 동물 숫자를 세서 숫자를 적어놓기도 했다.

 

남편에게 물었다. “그래도 애 보는 것보다 회사 가는 게 낫지 않아?” 돌봄노동은 고되니까. “아니, 아이랑 있는 것도 좋아.” 남편과 나는 참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돌봄노동을 ‘엄마’ 몫으로 가두니까 자꾸 돌봄노동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하고, 남편은 돌봄노동에서 ‘소외(?)’되니까 오히려 아이를 돌보고 싶다 하는 아이러니. 우리가 성별이 다르게 태어났으면 더 편했을까.

 

아니다. 돌봄의 시간을 빼앗기니 돌봄이 어려워진 게 문제다. 돌봄이 고통이 된 것이 문제다. 돌봄이 고통인가? 아침에 잠든 아이들이 침대에서 엄마가 있는 곳을 더듬다가 엄마 몸에 손이 닿으면 눈을 뜬다. 눈을 뜬 두진이를 먼저 꼭 안아줬다. “엄마가 어제 늦게 와서 얼굴을 못 봤네. 어제 못 보고 자니까 아쉬웠어”라며 애정 표현을 하고 나니 아이가 활짝 웃으며 품속으로 파고든다. 파고든 아이를 꼭 끌어안고는 생각한다. ‘1차 충전 중.’ 형과 꼭 안고 있는 엄마를 보자 이준이도 자기를 안아달라고 한다. “삼단 합체!”라고 외치면 두 아이가 내 품속에 파고든다. 두 아이를 꼭 끌어안고 생각한다. ‘2차 충전 완료.’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내 인생의 충전의 시간이 됐다. 이 안온한 시간들이 삶을 유지하는 힘이라는 것을 난 왜 이제야 알게 됐을까. 이게 행복이라는 것을 왜 이제야 알게 됐을까.

 

돌봄의 행복을 모두가 누려야 한다. 남편도, 나도 이 행복을 오래 누리길 바라면서. 모두가 돌봄의 시간을 쟁취해오는 미래를 또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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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이라는 말이 숨기려는 것>


 한 언니의 글에서 “워킹맘이라는 표현이 정말 싫다”는 문장을 읽었을 때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맞다. ‘밖에 나가 일하는 엄마’만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엄마는 일을 안 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그 언니가 ‘취업모’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저 임금노동을 하고 있을 뿐인데. ‘워킹맘’이라는 단어에 숨은 가사노동과 육아에 대한 경시, 어쩌면 천시를 나도 몰랐던 건가. 한 국회의원이 ‘밥하는 아줌마’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정말 화가 났다. 국회의원 정도 되는 여자는 밥하는 아줌마들을 무시해도 되나.

 

 두 번의 육아휴직 동안 ‘잘 쉬어’, ‘쉬어서 좋겠다’라는 말을 들으면 분했다. ‘쉬긴 뭘 쉬어. 하루종일 신생아랑 있어봐라’ 라며 입술을 꽉 깨물 때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 전업주부로 평생을 산 우리 엄마. 엄마는 두진이와 이준이를 봐주면서도 “놀면 뭐해. 손자들 돌봐주는 거지”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럴 때마다 난 “엄마가 놀긴 뭘 놀았어요. 나를 키우고 수많은 일들을 했잖아”라고 말하지만 공허하게 느껴졌다. 나조차도 휴직하기 전 글을 썼었다. “이제 내가 성취라 믿어온 것들은 잠시 멈춰지겠지만”이라고.


 이 ‘성취’의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좋은 회사 직원으로 살라’는 이 성취의 기준을 별생각없이 받아들였던 10대 20대의 나를 돌아보는 요즘, 그 성취의 기준이 흔들리는 요즘,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성취를 지향하라고 가르쳐야 하는지 헷갈린다.

 

 두진이가 일곱살이 되면 혼자 설거지하고 싶다는 소망을 그렸다.

두진이가 열심히 설거지하면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서 칭찬해주는 모습. 사진에 엄마는 없지만 할머니는 있다. 이 사진을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서운해해야 하는 건지 나는 여전히 헷갈린다.

 


 아이를 낳고 난 내 시간을 잃어버렸다. 오히려 회사 와서 밥 먹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해방구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려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그런 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렸다는 고백을 하는 중이다. ‘돌봄’이란 그런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내 몸으로 누군가를 온전히 돌보는 경험.

 

   주말에는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쓴다. 작은 존재를 돌보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아이들 밥을 먹이고 작은 아이 기저귀를 갈고 졸리면 혼자 자지 못하는 둘째를 안고 어르는 이 ‘작은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알게 됐다. 하루종일 그 일만 하다가 시간이 흐른다는 것, 우리 엄마도 나를 그렇게 길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엄마의 노고를 새삼 되새기는 중이다.


 고3 때 새벽에 일어나 아침 일찍 학교를 갈 때 엄마는 늘 새 밥을 지어줬다. 내가 좋아하는 두릅을 데쳐주고 삼치를 구워줬던 엄마의 밥상을 ‘받고’ 학교를 가는 일이 당연했었다. 그런데 ‘임금노동’을 하는 나는 집안일을 다 ‘아웃소싱’한다. 빨래는 건조기에, 반찬은 ‘더반찬’ 배송에 의지한다. 아직 두 돌도 안 된 우리 둘째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는 ‘사온 반찬’을 먹여 키운다. 나는 가끔, 아이들 밥상이 내가 먹었던 밥상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 헷갈린다. 가사노동과 육아를 아웃소싱해야 하는 내 인생이 맞는 건가.


 그렇지만 난 여전히 내 일을 좋아한다. 회사 가는 것이 좋고 회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기사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좋다. ‘82년생 김지영 세대’들은 다 그럴 것이다. 자기를 증명하는 일은 여전히 소중하다. 그런데 합계출산율이 1.06명을 찍을 것이라는 시대에 나는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평일엔 친정엄마의 ‘돌봄노동’ 의지해 내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엄마에게 미안한 ‘죄인’ 신세지만 또 친정엄마의 ‘돌봄노동’ 덕분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늘 안도한다.

 

    운이 좋아서다. 서울에 계시는 친정엄마가 아이를 흔쾌히 돌봐주겠다고 하는 ‘운’ 말이다. 그래서 난 가끔 내가 쓰는 글이 두렵다. 친정엄마를 착취해 일을 유지하는 내 상황이 도와줄 가족이 없어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어떤 엄마들을 속상하게 만들까봐.


 그런데 왜 엄마들만 자꾸 일이냐, 육아냐를 선택해야 하나. 왜 엄마들만 ‘전업맘’, ‘워킹맘’으로 구분하나. 맞춤형 보육 논쟁 때 어린이집에 보내는 전업맘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들에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는 하루종일 아이만 돌봐야 하나. 어쩔 수 없이 아이 때문에 집으로 돌아간 ‘경단녀’들은 아이에게 속박된 신세로 늙어야만 하나. 공부를 하든, 취업준비를 하든 자기 시간을 가지면 안되나. 정말 답답할 때는 친구를 만나 커피숍에서 브런치를 먹으면 안되나.

 

   육아휴직 중에 치과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친정엄마가 바쁘실 때라서 치과 예약을 두 번 미루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내 몸에 달라붙어있는 이 작은 아기 때문에 내 이 치료도 못 받는 게 ‘엄마의 신세’다. 그마저도 엄마가 아이를 봐주셔서 난 치료를 받으러 갈 수 있었다.


 가끔 ‘워킹맘의 성공 서사’를 읽는다. 대부분 ‘할머니 육아’ 덕분에 끝까지 갈 수 있었던 얘기들이다. 어떤 회보에서 워킹맘이 자식 대학 잘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글을 읽을 때는 울적했다. 할머니 덕분에 아이를 키우고 결국 엄마가 아이의 적성을 파악해 학원을 고르고 ‘서포트’해 대학을 잘 보내는 이야기, 개인이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 답답했다. 이제 난 그런 성공 서사가 지겹다. 내 아이들에게 이 구조에서는 이렇게 사는 게 유리하다고 가르치고 싶지 않다.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은 1500원짜리 커피를 사 먹었다가 어떤 ‘남자’들이 자기를 ‘맘충’이라고 욕하는 걸 듣는다. 토요판에 일하며 아이 키우다 소진된다고 글을 쓰니 ‘외벌이하며 아껴쓰라’는 댓글이 달렸다. 여자들은 일하러 나오면 ‘욕심이 많은 여자’라고 비난받고 집에 있으면 ‘논다’고 비난받는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전업맘은 ‘논다’고 말하고 워킹맘은 ‘죄인’이 되는 세상이니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거다.


 입사 동기인 남편과 나는 월급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누가 그만둬도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을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가끔 헷갈린다. 남성은 나가서 일하고 여성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가부장적 모델’을 버린 국가들이 출산율 반등에 성공했다. 엄마들만 전업맘, 워킹맘, 경단녀로 구분하는 사회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암담한 미래 뿐이다. 돌봄노동을 아빠와 엄마가 함께 할 수 있어야, 아빠가 돌봄노동을 할 수 있도록 집에 일찍 돌아와야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배우자보다 임금이 낮아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이 활기차게 자신의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길. 하루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느라 아이 얼굴도 못 보는 한국 남성들도 일찍 퇴근해 아이하고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소망해본다.


 이 글을 쓸 생각을 하게 된 “워킹맘이라는 표현이 정말 싫다”는 말을 했던 언니는 밖에서 보기엔 ‘전업주부’다. 임금노동을 하진 않지만 수많은 활동을 한다. 임금노동보다 의미있어보이는! 아이를 공동육아로 키우면서 선생님을 하고 아이 초등학교 교육도 공동육아처럼 시키고 싶어 학교도 준비 중이다. 그리고 ‘정치하는엄마들’이라는 공동대표로도 열심히 뛰고 있다. 그가 쓴 발제문, 토론문을 보면 어떤 전문가가 쓴 글보다도 훌륭하다는 느낌을 여러번 받았다.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 활동들이 ‘돈’으로 치환되지 않을 뿐. 지난해 만난 사람 중 가장 빛나는 사람, 응원한다는 말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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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니 2018.01.24 1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읽었어요 같은 육아맘이라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요
    혹시 죄송하지만 티스토리 초대장 보내주시면 안되나요?
    01194358693@hanmail.net
    티스토리 하고픈데 초대장이 있어야 한대요ㅠ부탁드려용

<복직 후 한 달 소진증후군’, 그리고 아빠>

 

어느 새 복직 후 한 달이 됐다. 816일에 복직했으니 정말 한 달. 출근하고 하루만에 감기에 걸려 복직을 실감했다. 심한 감기는 아니었는데 코가 막히고 목이 붓기 시작해 바로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왔다. 실감이 났다. '회사로 돌아왔구나.' 

 

그리고 4주가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평일에는 출근하고 퇴근하고 아이들 재우다 뻗었고 주말에는 각종 집안일을 챙기고 아이들과 놀다가 뻗었다. 한 달이 지나고서야 이렇게 끄적일 시간이 난다. 어제도 애들 재우다 뻗었는데 웬일인지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노트북 앞에 앉았다.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체력이 관건이다. 출근길 열심히 타지를 체크하고 출근하자마자 아침 보고를 하고 하루종일 보고를 하고 기사를 쓰다 보면 퇴근 시간이 넘어간다. 사실 이 일이 퇴근 시간이라는 게 명확하게 없어서 집에 와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기사를 살펴보고 메일을 체크하다보면 아 내가 복직했구나를 실감하곤 했다. 물론 아직 새로운 담당에 적응을 완전히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한 달 동안 오랜만에 일터로 나와서인지 계속 배가 고팠다. 한 번은 선배랑 저녁으로 떡볶이를 먹고 났는데 양이 부족했는지 혼자 회사 아래 빵집에 들어가서 빵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났는데도 빵을 먹는 스스로를 보며 휴직 때보다 체력 소모가 커지긴 했구나싶었다. 그래도 한 달이 지나니 많이 적응했다. 이제 배가 많이 고프진 않다. ㅎㅎ

 

 

아이들은 생각보다 적응을 잘 하고 있다. 둘째 이준이는 무던해서인지 엄마가 출근할 때 곧잘 손도 흔들어준다. 복직 첫날 뭔가를 알았는지 서글프게 울더니 그 다음날부터는 크게 울지 않았다. 자신의 분리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겠지 싶으면 너무 짠하지만 뭐 어쩔 수 없다. 적응을 해야 하니까 이준이도 나도. 그래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종종거릴까봐 많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아직까진 수월하다. 종알종알 말이 많은 첫째 두진이도 잘 적응하고 있다. 물론 엄마 야근하는 거 싫어. 엄마 오늘도 회사 가?” 물어보긴 하지만... 뭐 울고불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걱정은 덜었다.

 

남편의 육아 부담은 늘었다. 아침에 친정엄마가 두 명을 다 등원시키긴 쉽지 않고 해서(첫째 유치원과 둘째 어린이집은 반대 방향에 있다) 남편이 두진이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출근한다. 내가 먼저 출근하고 나면 애들 밥을 먹이고 씻겨 옷을 입혀놓고 두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준다. 매일 두진이가 유치원에 일찍 안 들어가려고 해서 지각할까봐 뛰어다니느라 전쟁이다. 두진이는 친구들이 없는 유치원 교실에 들어가기 싫다고 매일 유치원 현관 앞에서 늑장을 부린다고 한다. 일찍 들어가게 하는 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데 아침마다 빨리 밥 먹어라, 빨리 들어가라 전쟁 전쟁.

 

제일 고생하는 사람은 당연히 우리 엄마. 아이들이 하원하고 나나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을 돌보신다. 한두 줄 묘사하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고생하고 계시겠지. 고등학생인 아들을 친정엄마가 다 키워주셨다는 홍보팀 차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말했다. “제 바이라인에는 언제나 엄마 이름이 숨어있죠.” 더 말하면 울적해지기만 하니까 여기까지.

 

그러다 이준이가 주초부터 장염에 걸렸다. 심하진 않은데 먹을 것을 가려야하다 보니 어린이집에 가기 어려워졌고 다시 아이는 할머니 차지. 엄마가 힘들지 않게 조율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서 잠시 짜증이 났다. 화가 나는 대상은 없는데 상황에 화가 나는 이상한(?) 상황. 두진이를 낳고 돌아왔던 회사 생활에서도 늘 겪던 일이다. 다행인 건 그때만큼 심하게 화가 나지 않는 것.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회사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다행히 감정 조절은 잘 되고 있는데 한 달이 지나니 슬슬 소진증후군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다. 피곤함이 잘 해소되지 않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한 달인데.

 

나는 왜 일을 하는가. 친정엄마의 헌신 덕분에 일을 하는 고마운 팔자에 일을 제법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긴 노동시간을 당해낼 재간은 없는 건지. 출퇴근 시간 포함해 하루의 절반을 회사를 위해 보내야 하는 일상. 화요일에는 11시까지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잠시 아득해졌다. ‘나는 왜 일을 하는가.’

 

자꾸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일을 했을까. 야근이 끝나고 지하철역을 나와 집으로 걷는 길 저벅저벅 집으로 걸어가는 수많은 남자들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퇴근했을까.’

 

어릴 때 아빠는 평일에 볼 수 없었다. 거의 내가 잠든 뒤에 아빠는 퇴근했고 주말에만 볼 수 있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좋았던 기억이 많다. 주말에는 가족이 같이 등산도 했고 점심에 라면도 끓여 나눠 먹었고 목욕탕에 넷이 가서 두 명씩 남탕, 여탕에 들어갔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래도 주로 남아있는 기억은 방학 때 엄마와 동생과 지내던 기억이다. 아빠는 늘 회사에 있었으니까.

 

그걸 원망했던 적은 없었다. 그게 당연한 삶이었으니까. 6일 회사에 투신하고 토요일 오후 늦게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삶.

 

내가 회사원이 되고 나서야 아빠의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사회부 경찰팀에서 일할 때 당시 팀 분위기 때문에 징그러울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다. 회식 자리에서 내 앞에 앉아 있는 경찰 아저씨(?)를 보며 경찰 아저씨는 이 자리가 즐거울까생각하다가 집에 돌아와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도 술을 마시고 싶어서 마신 것은 아니었구만요? 고생하셨네요...” 회식 자리에 앉아 있으며 계속 생각했다. 회사 일이라는 명목으로 술을 마시며 영업도 하고 인간관계도 유지하기 위해 고민했을 아빠의 삶에 대해.

 

아빠는 은행원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 때였다. 그날도 역시 내가 잠든 뒤 퇴근한 아빠가 화장실에서 피를 토했다. 그 소란에 깨서 화장실 타일 바닥에 흥건한 피를 보고 놀랐던 어린 나. 과도한 노동, 과한 회식 문화, 과로가 겹친 일이었을 게다. 그 장면은 너무 생생해서 내가 회사원이 된 뒤 소진된다고 느낄 때마다 떠올랐다. 더 슬픈 건 그렇게 소진되도록 부려먹었던 회사가 아빠를 버린 건 40대 중반이었다. IMF 때 명예퇴직한 아빠는 그 후로 20년을 계약직으로 사셨다.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일했을까 생각하다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밥벌이를 한다는 것에 대한 서글픔이 몰려온다.

 

애써 일이 좋아서라고 말하지만 나는 크게 다른 걸까. 복직 전 이게 제일 두려웠다. 회사 일 때문에 절반이 넘는 시간을 써야하고 주말에만 겨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삶. 그리고 그동안에 소진되어야 하는 쳇바퀴. 나는 엄마와도, 아빠와도 다르게 살고 싶었는데 힘들어보였던 엄마, 아빠의 삶을 넘어서기는커녕 어떤 면에서는 더 나빠졌다는 것을 깨달을 때.

 

한 취재원은 아이가 5살, 2살이라고 했다. 토요일에 아내 생일이었는데 금요일 저녁 약속이 생겨 갈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혹시 이 자리를 가지 않으면 멋훗날 내가 그 자리를 갔어야 했는데 후회하지 않을까, 아니 이 자리를 나가면 내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내 생일인데도 새벽에 들어가면서 '이게 뭔가' 싶었다고. 후배는 말했다. "선배 전 일-가정 양립이라는 말도 이상해요. 가정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요?" 아... 그러게 말이다.

 

내 아이들에게는 이런 생각을 하게 하고 싶지 않다. 일 때문에 소진된다는 생각. 소진될 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밀려날 수 있다는 생각. 늦게 퇴근하는 축 처진 어깨들도 물려주고 싶지 않다.

 

답은 어디에 있을까. 노동시간 단축을 말하는 게 뻔한 답인지 알면서도 멀고 먼 길이라는 게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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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체아 2017.09.16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복직, 아이의 적응, 답없는 상황에 대한 화, 감정 조절, 풀리지 않는 피로, 취직하고 나서 이해할 수 있게 된 아빠, 일을 히는 이유에 대한 끝없는 고민, 일과 가정의 양립, 너무도 분명한 우선순위... 많은 것들이 제가 겪고 느껴왔던 것들과 닮아있어서 마치 제 일기를 보는 것도 같아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과정일거라고 믿고, 첫째때보다는 둘째때가 조금은 더 낫기를 바라고, 나때보다는 내 여동생때가 조금 더 나은 상황이길 바랍니다. 많은 공감을 하고 가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9.28 2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저도 제 아이들의 세상은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요. 어떤 거창한 생각보다 이런 마음들이 모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요. 힘내시고... 연휴 잘 보내시길요.^^

단유가 끝나간다. 지지난주 금요일부터 안 먹이기 시작해서 젖이 마르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하루에 한 번 밖에 안 먹이다 단유 했으니 쉬울 것이라 생각했지만(많이 먹일수록 젖을 말리는 게 힘들다) 역시나 육아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 말리는 동안 꽤 아프고 힘들었다.

 

젖 말리는 것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둘째가 보채는 것이 더 걱정됐다. 그러나 생각보다 둘째는 잘 견뎌냈다. 몇 번 울기는 했지만 심하지 않았고 이제는 찾지도 않는듯하다. 그런데... 허전한 건 뭐지? 둘째는 잘 있는 것 같은데 엄마인 난 왜 이렇게 허전할까.

 

젖 먹일 때 아이의 눈에 엄마가 제일 잘 보인다고 한다. 아이 눈과 엄마의 눈의 거리. 그 눈 맞춤. 그 눈 맞춤을 못한다고 생각하니 새삼 너무 허전하고 울적하다. 내 인생의 마지막 수유(셋째는 없다!)를 이렇게 끝냈구나 하는 허전함. 아이를 안고 수유할 때 느끼던 평온함을 잃었구나 하는 상실감.

 

그런데 어째 아이보다 내가 더 허전한 것 같다? 잘 놀고 있는 둘째를 보니 왠지 모를 상실감이 더 강해진다. 아이는 잘 노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허전한가.

 

둘째가 놀이터에서 놀며 가져다준 선물(?)

 

항상 아이 걱정을 먼저 했다. 임신했을 때도, 아이를 낳고서 작은 존재를 안았을 때도, 처음 수유를 할 때 유두가 다 벗겨져 피가 날 때도 이러면 아기가 못 먹는 것 아니냐며 울먹였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처음 보내던 날에도 울었던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단유를 하는 지금도 아이가 괜찮을까를 더 고민했는데... 그러나 항상 마음의 준비를 못한 건 오히려 나였다. 육아의 모든 과정은 이렇게 갑작스러웠다. 부모가 되는 일은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부모는 준비 없이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엄마아빠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 열한 살이었다. 아랫집에 사는 한 살 아래 동생과 수영장에 놀러갔다. 자유수영을 하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신이 많이 났던 기억이 생생. 그런데 이상하게 수영모자가 자꾸 벗겨졌다. 계속 샤워장을 들락거리며 거울을 보고 수영모자를 다시 썼다. 샤워장에서는 어떤 아줌마가 수영복인지 빨래인지를 비누로 빨고 있었는데 속으로 여기서 빨래를 해도 되나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번째였는지 다시 샤워장에 가서 모자를 고쳐쓰는데 같이 갔던 아랫집 동생이 따라 들어왔다. 같이 샤워기로 물장난을 하다가 그 아이가 나를 살짝 밀었는데 앞으로 미끄러졌다. 바닥이 비눗물로 미끄러웠다.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거울을 보다가 내 입에서 피가 난다는 걸 깨달은 건 수초 후였을 것이다. 너무 놀랐다. 위 앞니 한 개는 보이지 않았고 다른 한 개는 흔들렸다. 영구치였는데. 그 이후의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고 엄마가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내리자마자 등짝을 세 대인가 맞았다. “그러게 엄마가 오늘 수영 가지 말라고 했잖아!” 그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를 낳고 그 장면이 자주 떠오른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엄마가 사고를 당한 딸에게 왜 그랬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어떤 수필이었나. 그렇게라도 자식의 안위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는데. 그 글을 읽으면서도 와 닿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아이 둘의 엄마가 되자 버스 정류장에 내렸던 나를 보고 엄마는 얼마나 처참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내 등과 엄마 손이 닿을 때 느꼈던 어떤 안도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엄마 아빠도, 지금의 나처럼 마음의 준비 없이 부모가 됐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첫째였으니. 아이를 낳으면 이렇게 키워야지 같은 계획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계획이라는 게 적용되지 않는 영역 같다 육아는.

 

아이들을 기르면서 나를 키웠던 엄마아빠의 마음을 자주 짐작해 보게 된다. 그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때 아빠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어릴 땐 엄마아빠 때문에 서운할 때 왜 엄마는 나한테, 왜 아빠는 저렇게 하지 생각한 적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 서운함이 오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엄마아빠도 나처럼 마음의 준비가 안됐는데 상황이 들이닥쳤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런 것 같다. 이제야 엄마아빠가 나와 동생을 잘 기르기 위해 고군분투했구나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잘못을 혼냈을 때도, 어렵고 힘들 때 손을 잡아줬을 때도 엄마아빠는 부모로서 부단히 노력했었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

 

아빠와 아들.

 

가끔 2013년이 내 인생의 전환점 같은 게 아니었을까 가끔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서야 세상에 이렇게 귀한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세상의 모든 초점이 였다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첫 번째 경험.

 

첫째 휴직 1년간 그동안 내가 성취라고 믿던 모든 것들이 멈춰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복직하고 힘들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집에 가면 귀한 존재가 있어 행복했고 또 행복했다. 그제서야 내 삶의 기준이 뭔가 잘못돼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일과 아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갈등했고 (입사 동기인 남편은 그런 갈등을 할 필요가 없는데) 나만 갈등하는 것 같을 때는 세상이, 이 사회가 싫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다시 두 번째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내게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첫째를 통해서 알게 됐으니까. 무엇 하나 마음의 준비를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엄마인 나는 담대해지고 싶다. 세상일에 의연해지고 마음을 가다듬어 잔잔해지는 것. 그래서 아이가 엄마라는 호수 속에서 헤엄치고 세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허우적거릴 땐 손을 잡아주고 잘못된 길을 가려고 하면 부드럽게 이끌어주는 것.

 

아이들을 낳고 나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아이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나일지도 모르겠다. 늘 마음의 준비 없이 상황은 맞닥뜨리겠지만 이 마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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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돌이 되었다. 형은 돌잔치를 했는데 동생은 지나칠 수가 없어서 돌상을 차리고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그것만 해도 할 일이 넘쳐나 너무 바빴다. ‘... 난 이 집의 집사인가, 매니저인가싶을 때 우울하다. 아이들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으니 뭐든지 엄마 손이 필요하다. 밥을 먹어도, 옷을 입어도, 심지어 화장실을 가는 일도. 기저귀를 차는 둘째는 말할 것도 없고 첫째도. 아 왜 이렇게 인간은 무력한 존재로 태어나는 것인가.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 조금 있으면 걸어(?)다니고 혼자 밥 먹고 자립하던데 왜 이렇게 인간은 모든게 오래 걸리는가. 첫째를 낳았을 때 했던 쓸데없는(?) 의문은 여전히 똑같다.

 

둘째 기저귀를 갈다가 물 달라는 첫째에게 떠다 먹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참고 물을 따라준다. 그 사이 둘째는 안아주지 않는다고 칭얼대고. 내 팔이 여덟 개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다 내가 세 명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한 명씩 안아주고 한 명은 집안일 하고 책도 볼 텐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오래 한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간다. 이제 두 달 반 남았다. 첫 번째 휴직 땐 하루빨리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다. 말 못 하는 아이와 하루 종일 있다 보면 우울함이 몰려왔다. 동네에서 친구 한 명도 못 만들고 네트워크가 쪼그라들어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던 하루하루 놀이터를 빙글빙글 돌면서 서글펐다. 왜 아무도 엄마 노릇이 이렇게 외롭다고 알려주지 않았나.

 

그런데 두 번째 휴직 땐 친구가 생겼다. 바로 우리 첫째. 6세가 된 우리 집 꼬마가 말을 하면서 하루종일 심심할 새가 없다. 이유식을 만들던 날이었다. 오후에 2시간 정도 싱크대 앞에 서 있느라 첫째가 놀자고 하는데 두 번인가 거절했던가. 밤에 재우려고 누웠는데 괜히 미안해서 두진아, 엄마가 오늘 이유식 만드느라고 레고 같이 못 만들어서 미안해.” 첫째가 대답했다. “괜찮아.” 너무 담담한 대답에 괜찮아?”라고 물으니 첫째는 말했다. “엄마가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그 말을 듣곤 눈물이 죽죽.

 

첫째는 로맨틱하기도 하다. “엄마 주머니에 하트가 있어.” “?” 내 주머니에서 첫째의 작은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이 작은 하트를 만들고 있었다. 아 남편보다 로맨틱한 아들. 이러니까 아들 키우면 연애하는 기분이 든다고 하는구나 싶다.

 

돌잔치 때 찍은 전문가 버전 형제 사진.

 

말하는 아이와의 상호작용이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종알종알 떠드는 꼬마의 입술을 보고 있자면 세상이 갑자기 평화로워진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런 평화로움을 느껴보지 못했다. 나는 자주 우울했고 자주 불안했고 화를 다스리지 못해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나를 조금 달라지게 만들었다. 아이에게 불안한 지지대가 되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이한테 제일 많이 해주는 말은 괜찮아. 두진아, 넘어져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조금 다친 건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등등. 그러다 보면 나도 괜찮아지는 기분.

 

어제 둘째가 내 팔을 물었다. 이가 여섯 개 난 둘째는 가끔 세게 문다. 악 소리가 나서 일부러 엄살을 부리며 첫째에게 엄마 너무 아파엄살을 부리니 괜찮아, 엄마라면서 토닥토닥 해준다. “엄마 안아줘 두진아하니까 작은 팔로 엄마를 안아준다. 아이의 작은 팔에 안길 때면, 아이가 내 목을 끌어안을 때면 왜 그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뭉클해서일까. 이제 엄마를 위로할 수 있게 된 첫째, 그리고 돌 갓 지난 둘째. 아들들을 안고 있으면 그 품 안의 세상은 따뜻하다. 따뜻해서 눈물이 난다.

 

물론 이런 말도 한다. 요즘 복직 전 체력 단련으로 근력운동을 하는데 내가 근력운동을 할 때마다 옆에서 따라하는 첫째. 하도 귀찮게 해서 근력운동 동영상을 못 보게 하니까 ? 이유가 뭔데? 왜 못 보게 하는 건데?” 따박따박 따진다. 이제 54개월인데 이유가 뭔데라니... 엄마 말투 따라하지 마라. 매일 엄마 말투를 따라하며 하면 돼, 안돼?”라며 동생에게 훈계하기도... 나중엔 얼마나 따박따박 따질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이들과 하루종일 있는 게 힘들다고 투덜거렸지만 복직이 코앞에 다가오자 걱정이 많이 된다. 난 일과 아이들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을까.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짧아지는 걸 메울 수 있을까. 아니 아이들과 하루종일 있었던 좋았던 시간을 그리워하게 되면 어쩌지...

 

어쩌면 내가 제일 걱정하는 건 마지막에 적은 문장이다. 이 시간을 그리워하게 되면 어쩌지. 이 작은 존재들이 내게 만들어줬던 행복한 순간들이 자꾸 그리워지면 어떡하지. 하루하루 커버리는 이 작은 존재들이 그리우면 어떡하지.

 

부모가 되면 사랑을 많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뚝뚝했던 부모님보다는 애정을 많이 표현하는 따뜻한 엄마가 되어야지 생각했다.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해줘야지, 자주 안아줘야지, 잘하는 일은 몇 배로 칭찬해줘야지. 그런데 막상 낳아보니 정작 사랑을 받는 건 나였다. 엄마를 향한 맹목적 애정. 아빠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따라갈 수 없는 엄마에 대한 애정. 내 뱃속에 열 달을 살아서일까. 둘째 돌잔치날 원피스를 입은 내게 첫째가 말했다. “엄마, 너무 예쁘다. 공주님 같아.” 아 누가 날 이렇게 예쁘다고 해줬었나두진이는 엄마랑 결혼할 거야를 입에 달고 산다. “엄마는 아빠랑 이미 결혼했어라고 하면 아는지 모르는지 결혼하겠다고 우긴다. “나랑 다시 하면 되잖아~” 속으로는 나중에 여자친구 생겼다고 엄마는 신경도 안 쓸거 다 안다그러지만 내 입은 늘 웃고 있다.

 

엄마가 사랑을 많이 줘야 아이들이 쑥쑥 크는 줄 알았는데... 사랑을 받는 건 오히려 엄마인 나였다. 아이들에게 받았던 이 무한 애정을 잊을 수 있을까. 이 작은 존재들의 절대적인 애정과 지지, 아이들의 눈에서 발견했던 절대적 애정을 보고 느꼈던 감동과 행복을. 누가 날 이렇게 조건 없이 좋아해줬을까. 어린 시절 엄마? 아빠? 지금 이 시간들을 그리워하는 날이 오겠지. 이 작은 존재들이 나를 이렇게 좋아해줬던 순간 순간.

 

엄마는 항상 내 자신만 소중한 사람이었어. 연애를 해도 내 감정만 소중해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 적도 많았지. 그런데 너희들을 낳고 나서 정말 너희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게 되는 스스로를 보면서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많이 생각했단다. 너희들이 충만한 일상을 누리길, 어려움이 닥쳐와도 굳건하게 맞서고 유연하게 힘들어하길. 일상의 순간순간 평온함이 깃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좋아하는 것이 뭔지 찾을 수 있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다른 사람과 그 좋아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엄마는 그 과정에서 엄마가 실패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며 함께 할게. 뒤에 있을게. 언제나 지켜보고 있을게. 회사 가서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엄마는 너희를 생각하고 있을 거야. 미안하고 고마워. 이렇게 부족한 엄마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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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발바닥 2017.06.02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마는 사랑을 이야기 하는군요. 아이셋둔 아빠(저)는 아이들 행복하게 되길 희망하다보니 사람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살이를 이야기할때는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되고, 아이들이 좀더 살기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 참여도 많아졌으니 말이죠~~^^ 이 시대 부모들 모두 화이팅~~

  2. Favicon of https://praguelove.tistory.com 프라하밀루유 2017.06.02 20: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해외에서 18개월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 엄마에요. 많은 부분 공감이 가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읽었네요.

    외국에 있어서 저만 혼자 유모차 끌고 공원과 놀이터를 전전하는 줄 알았는데, 엄마들은 다 외롭나봐요 ㅠ.ㅠ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6.05 2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엄마들은 외로운가봐요ㅠㅠ 그래도 아이가 크면 친구가 되어주더라고요. 그게 36개월 지나면 급속도로 친구가 되어준 느낌요~~ 18개월이면 한창 힘드실땐데... 기운내세요!!

  3. 조이 2017.06.02 2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라하님 힘내세요

  4. 도윤맘 2017.06.02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첫째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외롭다는 구절에 공감하며 아 내가 그렇구나 문득 깨달았어요.
    이 밤에 많은 위로를 받고 갑니다.

    글쓴이의 말데로 사랑 받고 있다는 거
    날이 갈수록 많이 느껴요.
    다시 오지 않은 이 타임을 토닥토닥 위로하며
    다시 시작 되는 내일도 힘내요 파이팅❤️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6.05 2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아이의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요. 둘째 보면... 우리 막내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 내가 키우는 마지막 아기...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여유가 많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

  5. 고마리 2017.06.03 1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너무 아름다우신 두 아드님의 엄마!!
    님처럼 이렇게 견고하고 성숙한 사랑을 느낄 줄 아는 엄마의 아들들은 미래에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훌륭한 이 나라의 역군이 되어줄 것입니다.

    저도 엄마가 되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되었지요. 그래서 겁도 없이 셋이나 낳았고 직장다니면서 키우느라 많이 힘들었지만 너무 예뻐서 행복했더랬습니다. 엄마가 자녀에 대한 사랑을 느껴 본 사람들은 최소한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을거라고...남은 시간들도 아낌없이 사랑하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정 이루시길 축복하며 응원합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6.05 2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와 셋을 직장 다니면서... 정말 멋지십니다!! 맞아요. 아이에 대한 사랑을 느껴본 사람들은 최소한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을 거라는 말 공감 백개입니다. 아이의 눈을 보고 그러기는 정말 어려울텐데요. 이 마음을 잊지 않고 늙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

  6. 박신혜 2017.06.03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기억하시나요? 서강대에서 같이 수업들었던 박신혜에요.
    저도 10살짜리 딸을 키웁니다.
    정말 와닿는 글이에요^^그래서 아는 척 하고 갑니다^^

  7. 유림아빠 2017.06.03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그래요. 애들이 엄마 아빠 사랑을 받으면서 크기도 하지만 부모가 아이들에게서 받는 사랑과 배움도 정말 많죠.
    좋은 글 감사드려요.

  8. 2017.06.05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재민재희맘 2017.06.09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읽으며 눈물이 죽죽 흐르네요
    공감 공감 대공감 ㅠㅠ
    힘들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니 육아의 행복과 감사의 에피소드도 있었구나 떠올리게 되네요
    우리 아들들 멋지게 키우자구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7.30 14: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고마워요 지혜씨. 1년간 아들들한테 받은 사랑으로 복직 후에 버티게 될 것 같아요. 또 밤에 아들들 안고 자면서 힐링하고. 생각보다 육아가 체질?인가요?ㅋㅋㅋ 우리 아들들 멋지게, 예쁘게 키워요 ^^

 

나는 워킹맘이다 아직은. 아이를 둘을 낳고 복직을 3개월여 앞두고 보니 한국 사회에서 워킹맘으로 살 생각이면서 둘을 낳는 무모한(?) 선택을 했구나 싶다. 그래서 아직이다. 만약 버텨낼 수 없다면 수많은 여자선배들처럼 경단녀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위기감 때문에.

 

그래도 나는 워킹맘들이 부러워하는 친정엄마가 백업해주는 워킹맘이다. “아영씨는 친정엄마 있잖아 걱정 없겠네”, “아 친정엄마 있어서 부러워요와 같은 말에 아무 할 말이 없는 부러운 워킹맘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든다. ‘우리 엄마는 행복할까.’

 

첫째를 낳고 복직했던 2014년에는 아이 걱정만 가득했다. 아이가 엄마 없는 긴 하루를 적응할 수 있을까, 어린이집에서 울지는 않을까, 퇴근이 늦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긴 것 아닌가 등등. 그런데 두 번째 복직을 앞둔 지금은 아이보다 친정엄마가 더 걱정이 된다. 아이들은 자주 울겠지만 또 적응하리라는 예상이 가능해서이기도 하고 친정엄마가 그때보다 나이가 더 드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둘이 됐기 때문이다.

 

아들들과 하루종일 같이 있다 보면 혼미해진다. 아이들은 그런 존재다. 조금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사고(?)치는 존재. 남편과 나는 주말에 둘이 아이 둘을 보면서도 전쟁이다, 전쟁,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구만을 되뇌는데 할머니인 우리 엄마가 다 감당할 수 있을까. 무릎은 버텨낼 수 있을까. 엄마는 무릎이 약하시다. 그렇다. 무릎 약한 엄마한테 아이를 맡긴 이기적인 불효녀. 그게 나다.

 

우리 엄마는 58년 개띠다. 전북 군산에서 명문여고를 다녔던 엄마는 글 쓰는 걸 좋아해서 당시 잡지 <학원>의 학원문학상에 단편소설을 응모해서 입선하기도 했다. 분량이 200자 원고지 50매 정도였다고 하니 분량도 꽤 됐다고. 그러나 외할아버지가 국립대만 보내준다고 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상경했다. 회사를 다니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고 스물네 살 때부터 전업주부로 살았다. 나를 낳았던 건 스물다섯 살. 그래서 우리는 띠가 똑같다. 3년 뒤 아들을 낳았고 엄마는 아이 둘을 키우고 가사노동을 하며 나이가 들었다.

 

엄마의 리즈 시절. 왼쪽이 우리 엄마.

 

가끔 엄마가 1982년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나보다 더 열정적인 우리 엄마가 나보다 더 잘 살지 않았을까.

 

어릴 때 아빠와 엄마가 맥주 한 잔을 하는 날에 엄마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아영아, 엄마처럼 살지 마...”

그 말은 늘 슬펐다. 이제 엄마는 내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기억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엄마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슬픈 그 말보다 훨씬 더 자주 해주던 말은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해. 엄마는 아영이가 잘 해낼 것을 믿어였다. 어린 시절 엄마는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시험을 망쳤을 때, 심지어 입사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힘들고 외로울 때 엄마가 전해줬던 엄마는 아영이를 믿어라는 편지에 나는 늘 울컥하며 힘을 냈다. 이 말에 의지해 어린 내가 용기를 냈고 또 두려움에 맞서왔다는 걸 떠올리면 코끝이 찡해진다.

 

이제 그 말이 단순히 삶을 사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엄마의 소망은 딸이 전업주부인 자신과는 다르게 일하는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엄마는 90년대 대다수 엄마들이 그랬듯이 딸이 자신보다 진취적인 모습으로 자라길 바랐다. 엄마가 꿈꾸는 딸의 모습은 커리어우먼이었고 엄마는 딸을 알파걸로 키우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결혼도 꼭 하길 바라셨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 키우는 평범한 행복을 누리길 바라신 거겠지.

 

나는 엄마의 소망대로 알파걸이 됐을까. 다만 엄마의 소망과 엇비슷한 일하는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의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선을 다한다고 뭐든 다 이룰 수 없다는 사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진실을 알게 될 만큼 성장했지만 동시에 나의 최선은 항상 온전히 나만의 노력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내 성취에는 내 노력에 엄마의 뒷바라지가 더해져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절절히 깨달았던 것은 아이를 낳고서였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산후조리부터 아이를 키우는 것까지 엄마의 손이 안 가는 곳이 없었다. 나는 엄마의 소망처럼 일하는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의 노동력에 의지해(노동력을 착취해)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온전히 나의 최선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나는 자주 좌절했다.

 

최선을 다 하면 된다고 나를 키운 엄마는 남자아이들과 경쟁해서도 뒤지지 않고 오히려 더 잘 해내는 딸을 늘 응원해줬지만 그것은 잘못된 꿈은 아니었을까. 언론에서 알파걸의 실패같은 기사를 쏟아내면 동의하면서도 씁쓸했다. 가부장적 구조로 점철돼 있는 결혼과 육아에서 나는 영락없이 실패한 알파걸이었다. 나와 남편은 같은 일을 하고 동시에 부모가 됐지만 절대 같을 수 없었다. 지금 난 궁지에 몰리면 알파걸 같은 소리 집어쳐라며 화내는 서른여섯 살이 되었다.

 

지난 겨울 군산 외할아버지를 뵈러 갔다가 가벼운 교통사고가 났다. 엄마와 나는 같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트럭이 멈추지 못했고 그를 본 나는 피했으나 엄마가 피하지 못했다. ‘하는 소리가 나는 그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 아 하늘이 노래진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생각이 들었을 때 깨달았다. ‘엄마를 두고 나 혼자만 피했구나.’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는데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트럭을 운전하던 아저씨가 뛰어나왔고 나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넘어진 엄마는 크게 다치지 않아 오히려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병원으로 이동해 검사를 했지만 머리 등에 큰 이상이 없었고 서울로 돌아와 서울 병원에서 엄마는 물리치료를 오래 받았다.

 

군산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그 짧은 시간 계속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나를 위해 내 새끼들을 봐주고 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다 해주는데 난 엄마를 두고 혼자 피했구나.’ 괴로웠다. 만약 엄마가 크게 다쳤다면 그 죄책감은 어땠을까. 지금도 그날 생각을 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엄마를 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난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고개를 젓는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자식들에게 모든 걸 내어주는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내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고 싶었다. 지금도 똑같다. 내 인생을 자식들에게 전부 줘버리고 싶지 않다. 그런데 엄마인 나는 내 자식들에게 전부 내주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내 일상은 내 엄마의 인생을 착취해야만 굴러간다. 그게 내 딜레마이고 죄책감이다. 나는 독립적인 여성으로, 개인으로 일을 유지하고 싶지만 그렇게 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평생 나와 동생을 위해 자신의 온 시간을 나눠준 친정엄마를 착취해야 한다는 것.

 

손주병이라는 신조어는 이제 신조어가 아닐 정도로 할머니들의 손주육아가 보편화됐다. 아이를 봐준다면 시증조할머니라도 필요하다는 농담을 할 만큼. 엄마한테 엄마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전쟁이다. 제일 부러워하는 할머니는 손주 안 보는 할머니.

 

한번은 엄마가 웃으면서 놀이터에 나오는 할머니들끼리 하는 농담을 들려줬다. “할머니들 사이에도 계급이 있어. 5~6시에 퇴근해서 해방시켜주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며느리나 딸로 둔 할머니가 1계급, 6~7시에 퇴근하는 공무원들 엄마가 2계급, 8~9시에 퇴근하는 일반 직장인들은 3계급, 11~12시에 퇴근해서 애도 못 재우는 딸과 며느리를 둔 할머니가 꼴찌야.”

 

내 경우 3계급이었다. 웃으면서 들었지만 마음이 쓰렸다. 육아를 혼자 감당하지 못할 거면서, 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아이를 키울 거면서 나는 왜 아이를 낳았을까. 슬프게도 꽃보다 더 예쁜 아이를 보면서도 가끔 이 생각을 했다.

 

엄마한테 맡기지 않고 내 손으로 키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엄마와 아이 양육 문제 또는 가사노동 문제로 다툴 때면 그런 생각을 했다. 괴로웠다. 아이도, 일도 포기하지 못하는 욕심 많은 딸. 딸의 욕심 때문에 엄마의 체력을 축내고 엄마의 시간을 훔친 기분. 죄책감은 엄마의 힘든 얼굴을 볼 때 제일 심했고 죄책감이 쌓이는 만큼 사회에 대한 분노가 켜켜이 쌓였다. 왜 나를 이렇게 궁지로 모나. 누가 나를 이렇게 궁지로 모나. 그런데 원망할 대상이 없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라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첫 번째 복직 후였던 2014년과 2015년이 제일 힘들 때였다. 일과 아이에 치여 매일이 피곤했고 전세가 오르는 속도에 기가 질려 어떻게 하면 서울을 떠날 수 있을까만 생각했던 때. 밤에 잠을 못 자고 한 시간씩 경기하듯 우는 큰애를 안고 있다가 결국 지쳐 바닥에 내려놓고 나도 울면서 끔찍해했다. ‘이 일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한 번은 엄마가 집에 김치 있냐고 물으셨다. 당시 식사 담당은 남편이었기에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가 엄마가 그런 것도 모르냐고 하시는 바람에 대판 싸웠다. 집안일은 내팽개치고 일만 신경 쓴다고 생각하셨을까. “엄마, 둘 다 잘 할 수 없어. 집안일은 포기했어.” 냉정한 말과 상처 입혀버리겠다는 말투, 그리고 모진 말들. 수많은 모녀의 사이가 그렇듯 우리도 그랬다. 못돼먹기론 대한민국 1등인 난 엄마 마음을 상처 낼 수 있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주워 담지 못해 괴로워하는 다툼을 반복했다. 엄마를 다치게 하면 결국 내가 다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날들이었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일상에서 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해 아이를 기르는 팔자, 언제 해야 할지 모르겠는 빨래들과 내가 하면 잘 먹지도 않는 아이 반찬을 걱정하며 회사 발제에 스트레스 받는 일상. 회사 일에서라도 애엄마라는 티는 절대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데 아이를 포기할 순 없잖아 라며 엉망진창인 집안을 합리화하던 일상. 그런데 김치라니. 김치가 있는지 없는지 까지 내가 알아야하나. 따박따박 엄마를 향해 따졌지만 엄마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나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한테 풀고 나니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 자괴감 때문에 견딜 수 없는 날들. 그저 떠나고 싶었다. 서울을 떠나 대한민국을 떠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아이를 내 손으로 기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가끔은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결혼은 해야지, 서른 전에는 해야지, 서른엔 해야지, 결혼했으면 아이는 낳아야지, 안 낳았으면 이 이쁜 것을 봤겠어?” 결혼을 꼭 해야 하고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고 말했던 엄마 세대가 수용했던 가부장적 질서. 그 질서를 21세기의 나는 벗어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했고 아니 벗어날 생각이 없었고 결혼 생활도 일도 잘해낼 수 있다고 착각했다. 착각을 한 건 나였으면서 아이 낳으면 엄마가 키워줄게라고 했던 엄마의 말들이 떠오르면 괜히 원망스러웠다. 엄마 세대는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 세대의 질서를 부정하면서 부정하며 살아가기 두려워했던 나는 그랬다.

 

그러면서도 당연한 듯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출근했다. 이제 첫째가 54개월이 됐으니 엄마의 육아 노동도 만 45개월을 지나는 중이다. 그동안 엄마의 몸은 내 자식 때문에 얼마나 축났을까. “엄마 운동 열심히 해요. 그래야 우리 애들 다 봐주지라는 농담을 건네는 내 입은 언제나 쓰다.

 

친정엄마한테 돈을 많이 드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지 말자. 아무리 돈을 많이 드려도(돈을 많이 드리지도 못하지만) 엄마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손주가 웃는 걸 보고 엄마가 잠시 행복해진다 해도(손주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 했다) 그건 정말 잠시고 육아는 엄청난 육체노동인데 왜 환갑을 앞둔 우리 엄마가 그 노동을 감내해야 하나. 그저 딸이 일을 계속 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인데 내 일은 엄마를 위해 해주는 것이 거의 없다.

 

엄마가 내 일을 응원해주는 것이 행운인 사회에서 엄마의 시간을 빼앗아 내 새끼들을 기르는 이기적인 딸. 복 받은 팔자다. 이 죄책감으로 일과 육아를 유지하는 내 팔자가 복 받은 팔자라니. 여성 노동력을 착취해서 아이를 기르는 구조에 분노하지만 결국 엄마한테는 아무 할 말이 없는 팔자. 엄마에게 의지하지 않고 아이를 기를 수 있기를 바라지만 아마 내가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는 힘들겠지.

 

엄마, 내 사주에 엄마 복이 있대요. 사주는 정말 잘 맞네요. 엄마 복으로 내가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워요. 스무 살 땐 엄마한테 독립해서 멋진 여자로 사는 게 꿈이었는데 여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미안해요. 엄마의 힘을 빌지 않으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이들도 제대로 기를 수 없어서. 그래서 내 일의 성과가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내 바이라인에는 언제나 엄마 이름이 겹쳐져 있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기자를 했으면 나보다 더 잘 했을 텐데. 고맙습니다. 어버이날이라 공개적으로 한 번 말해 봐요. 그리고 사랑해요.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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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필립모양 2017.05.09 1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이렇게 눈물이 철철나지....ㅜ ㅠ

  2. 아이 2017.05.09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하면서도 육아도우미 못 쓸 사람은 애를 안 낳거나 일을 그만두거나 해야하는데 아 그럼서 아이를 왜 낳을까요... 진짜 궁금

  3. 지현 2017.05.09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임기자님이 부러워요.
    시댁은 지방이고 한시간 거리 사는 친정엄마는 일을 하세요 ㅜ
    저는 출신휴가 2개월차 육아휴직 3개월 후 10월 복귀인데 7월부터 시터구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좋은분 만나냐하는 걱정에 사로 잡혀있네요. 돈도 돈이지만 내가 이정도 돈을 지불하려고 해도(180?) 좋은분 개란티 안된다는것도 서럽고 또 받는분 입장에선 큰 돈아닐 수 있다는거에 참 어렵네요(하루에 10시간 일하고 180이니깐요)
    해외출장 많은 직업으로 출장 줄이는 것도 직장 복귀 후 어떻게 조율할지 걱정으만 태산이구요!
    어떻게든 되겠죠?

    기자님 블로그 평소에 넘 잘 보고있습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1 2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글이 부럽게 읽히는 게 가장 걱정이 됐어요ㅠㅠ 해외출장까지 많으시다니. 그래도 잘 조율하실 수 있게 되기를요. 부모가 힘을 합쳐 아이를 잘 기를 수 있게 되길, 싱글맘 싱글파더 혼자서도 편견 없이 아이를 잘 기를 수 있게 되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가끔 손주를 보면서 체력을 소진하지 않게 되길... 진정 바래봅니다. 댓글 감사해요!! (글 잘 봐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4. 발바닥 2017.05.10 1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임기자님과 어머니 사이 개띠, 직장 남자입니다. 저도 아직 부모님한테서 독립 하지 못했네요. 부모님 손을 빌지않고 아이셋을 어떻게 키웠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쌀과 김치 등을 보내시는 부모님, 이사 할때마다 사위 모르게 전세금 보태주신 장인 장모님... 이런 양가 부모님들 지원이 없었다면 외벌이로 아이들을 이만큼 키울 수 있었을까요? 그래도 나 잘났다고 양가 부모님께 일좀 그만하시라고 얼마전까지 큰소리 쳤습니다. 이젠 알지요. 눈 감는 날까지 자식을 위해 모든것을 내어주시는 부모님 마음을..... 그리고 그분들이 바라셨던 것처럼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나름 노력했던 대견한 우리들.... 그렇지만 항상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과 죄송스러움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 부모님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1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희생하는만큼 정체성이 겹치는 게 한국 사회 부모 자식간의 관계인 것 같아 가끔은 답답하기도 했는데 나이가 드니까 부모님들의 노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또 고마워하는게 어른스러운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어요.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제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친정엄마아빠께 의지하게 됐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ㅠㅠ 아... 저는 그런 부모가 될 자신이 전혀 없는데... 감사하는 마음은 마음 깊이 새겨야죠 새겨야죠...

  5. 우리엄마 2017.05.10 2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소 생각했던 제맘이랑 완전 똑같아서 읽는 내내 울컥했어요 ㅠㅠ 저도 울아들 6세이니 만5년째 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딸이네요ㅠ 아이에 대한 죄책감은
    둘째치더라도 엄마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워킹맘이 축복받은 존재가 되는 모순된 세상... 정말 그렇네요.. 이모든것을 알면서도 오늘도 엄마의 노동력 없인 절대 아이를 키울 수 없네요 ㅠㅠ 그럼에도 둘째 낳으면 같이 키워준다는 우리 어무이.... ㅠㅠ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1 2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ㅠㅠ 둘째까지 낳아서 정말 엄마한테 미안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둘째를 낳았을까 가끔 생각합니다(둘째야 미안... 너는 축복이야!!)ㅠㅠ 저출산의 문제는 부모를 둘다 집으로 돌려주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을 거예요. 새로운 대통령이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갖고 또 의지를 갖길 바래봅니다.ㅠㅠ

  6. 생각하는 2017.05.11 1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까지도 여자에게만 모든 일을 떠넘기는 것이 '복'을 받는 팔자를 만드는 게 아닐까요.. 그걸 개인이 혼자 이겨내야만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여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1 2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ㅠㅠ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사회죠ㅠㅠ 절대 복받은게 아닌데 친정엄마, 시엄마마저 도와줄 수 없는 수많은 부모들에게 미안한 기분이 드는 이 상황은 정말 말이 안되는 거죠...

  7. 불효녀직장맘 2017.05.12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친정엄마에게..시어머니에게..돌아가면서 맡겨서 키우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은 하는건..자아성취..따위의 목적보다도..혼자벌어 애키우기 힘든세상에..
    한푼이라도 더 벌수 있을때 벌어두자...가 90%는 차지하죠...

    물론....그래도..집에서 아이보는거보다..회사가는게 덜 힘들어요..
    ..
    내친구는 나를 부럽다고 하지만..난참...엄마 어머니께 너무 죄송하네요..
    시간이 갈수록..애들은 커져서 힘들고 부모님은..나이가 드시고...
    가끔..회사집 회사집만 굴리면서 나는 뭔가..해지는데..그때마다..부모님 생각하면서..마음 다져요...

    너무너무..공감가네요..글이....저도 둘째낳고...우리둘째한텐 미안하지만..이렇게 생각없이 낳았나..
    그런생각 했거든요...
    아효.......답답합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2 1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ㅠㅠ 혼자 벌어 애 키우기 힘든 사회죠. 왜 시터 두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애를 두고 나가느냐는 댓글 보고 속상했는데... 그만큼 주거비 교육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요. 특히 주거비가 너무 심각하잖아요ㅠㅠ

      '애 보느니 밭매겠다'는 말이 정말 왜 전해지는지 알 것 같아요. 애보다보면 정말 회사 일이 더 견딜만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에 맞춰서 모든 걸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 참 힘들잖아요. 그런데 그걸 젊은 내가 아닌 엄마가 하셔야한다는게 이 빡센 육체노동을 내년에 환갑인 엄마가 하셔야 한다는 게 정말 걱정돼요. 미안하고요. ㅠㅠ

      정말 답답하죠.... 답답합니다. ㅠㅠ

  8. Favicon of http://www.azoomma.org 황인영 2017.05.23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 이번 18회 아줌마의날 행사 관련 내용은 아래 주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azoomma.org/?sec=sec04&pop=y#sec04

    • 황인영 2017.05.23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자님, 제가 장문의 글을 썼는데 다 날라가버렸네요.. ㅠㅠ

      음.. 다시 한번 써보겠습니다만 처음의 그 감흥을 그대로 다시 전달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는 아줌마닷컴(www.azoomma.com)의 대표를 맡고 있는 황인영입니다.

      17년 전인 2000년, 저희 회원들의 발의로 5월 마지막날을 '아줌마의날'로 정하고 매년 행사를 개최해오고 있습니다. 처음엔 50여명의 소풍으로 시작해서 '아줌마 헌장'을 낭독하고 해를 거듭하면서 나, 가정, 사회, 국가 속에서 아줌마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그 가치를 스스로 느끼고 세상에 공유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낸 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그런데 임아영 기자님의 글에서 보듯 나의 세대와 엄마의 세대.. 두세대를 거쳐도 역시 우리들의 삶에는 혁명이라는 것은 없는것 같습니다.

      저 역시 20년이 넘게 밥을 하고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냥 해야하는거니까 했지 이렇게 사는 삶이 정말 제가 원하는 삶인지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볼 틈이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그럴만한 겨를도 없이 엄마로, 직장인으로, 딸로, 아내로... 며느리로.. 그렇게 살아온것이고..

      우리 어머니도 역시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역시 그렇게 살아오셨죠.
      대대로 내려오는...

      나의 문제, 나를 알고 그것이 나와 사회가, 나와 정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깨닫는 '연결선'이 필요한거 같습니다.

      임아영 기자님의 글이 어쩌면 엄마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더구나 한 세대가 아닌 두 세대 엄마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글이라 생각되어

      기자님을 저희 행사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기자님의 글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연락처가 없어 댓글로 남깁니다. 가능하시다면 메일로 연락처를 주시면 제가 전화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저 역시 평범한 아줌마로서 이제 '나와 정치'를 연결하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세대가 약간 다르지만, 임기자님과 저 역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http://momcast.azoomma.com/potview/603182
      부족하지만 방송 들어보셔도 좋습니다.

      제 마음이 기자님과 닿았기를 기대하며... 회신 기다리겠습니다.
      제 이메일 주소는
      inus@inuscomm.co.kr

    • 2017.05.23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밀댓글입니다

  9. Favicon of https://bshell.tistory.com 아맹꼬 2017.06.02 2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역시 기자님과 같이 아들 둘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직장다녀요. 46년생 노모께 큰애 태어나서부터 8살,5살 된 지금까지요. 기자님 글그대로의 심정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사회, 조금씩조금씩 바뀌겠죠.계속 소리내다보면 그럴것이다라고 생각하고 희망합니다. 글 잘 보고 가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7.30 14: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ㅠㅠ 아들 둘이시군요. 전 왠지 아들만 둘이니 더 엄마한테 미안하더라고요. 하루종일 뛰어다니는 둘을 엄마한테 맡기다니 싶은게요... 계속 목소리내고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면 변화가 빨라지겠죠. 기운내세요.^^ 감사합니다.

  10. 재민재희맘 2017.06.09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복직 앞두고 있는데
    당연하듯 손주돌봄을 준비하고 있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 고마움이 밀려오네요
    애들 어린이집 맡기고 엄마 모시고 근처라도 데이트 다녀와야겠습니다

  11. 정덕 2017.07.26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페이스북에서 공유하며 눈물 흘렸는데 아영언니었네요. 새삼 반갑습니다. 힘을 내어 보아요. 우리.

정말 화가 나서 이 글을 쓴다


지난 가을 첫째 유치원(첫째는 병설유치원에 다닌다)에서는 아침에 아이를 등원시키는 부모, 조부모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서울 동쪽 한 구에 단설유치원을 만들려고 하는데 사립유치원들의 반대가 심해서 만들어달라는 서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한숨과 분노가. 분노가.

 

육아휴직 1년을 감지덕지하는 나라에서 생후 1년이 된 아이(라고 쓰지만 아기다)들은 민간 어린이집에 간다. 국공립어린이집에 가기 너무 힘들어서. 3(우리 나이 5)가 되면 유치원에 가는데 또 사립유치원에 간다. 국공립유치원 추첨에서 떨어져서. 국공립유치원에 못 보내면 만5(우리 나라 7)까지 운영하는 국공립어린이집에라도 보내고 싶지만 못 보낸다. 순위가 한~~~참 밀려있으니까


왜 아이를 안 낳느냐고? 한국 사회에서 아이 키우기 너무 힘드니까. 부모는 일하러 가야 하는데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곳이 너무 적으니까.

 

이 간단한 이유를 정부는 모를까? 정치인들은 모를까?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 쓰고 어렵게(?) 유치원 다니는 꼬마들을 이용하지 말라!

 

오늘 단설 유치원해프닝(?)을 보고 알았다. 정치인들은 안다. 그저 의지가 없을 뿐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사립유치원장들이 모인 자리에 가서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해줬을 뿐이다. “대형 단설 유치원 안 만들게. 그리고 사립유치원 맘대로 운영하게 해줄게.” 그는 그 이야기를 이렇게 했다. “대형 단설 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고 현재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는 독립운영을 보장하고 시설 특성과 그에 따른 운영을 인정할 것.”

 

그리고 시끄러워지자 병설유치원이 아니고 단설유치원이라고 해명했다. 해명을 보고나니 분노가 치솟았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은 병설과 단설을 구분 잘 못하니까 이렇게 해명하면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간단하게 병설은 학교에 딸려있는 유치원이고 단설은 독립적인 유치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부모들은 단설을 더 선호한다. 단설은 유아교육 전공자가 원장을 맡지만 병설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원장을 맡는다. 당연히 단설이 더 전문적일 것이다. 그런데 단설은 찾아보기 힘들다. 저렇게 서명을 받을 만큼 만들기가 힘들어서일 것이다. 단설이 커서 위험하다고? 정말 코웃음이 나온다.

 

왜 병설유치원 등원 시간에 단설 유치원을 만들게 해달라는 서명을 받아야 하는가? 왜 우리 사회는 공립유치원 하나 만드는 게 이렇게 힘든 사회가 됐는가?

 

보육 전쟁을 취재하면서 들은 말 중 하나. “지역에 국공립유치원 하나 생기면 사립유치원 4개가 없어진대요. 그러니까 사립유치원들은 목숨을 걸고 공립유치원을 막을 수밖에요.” 사립유치원 원장님들을 원망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분들에겐 생존의 문제일 수 있으니까


문제는 표가 된다고 판단하는 곳에서 가서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다. 누리과정 예산을 두고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이 갈등을 겪을 때 결국 민간어린이집연합회, 사립유치원연합회 등 이익집단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정치인들에게 취합 가능한 이익집단의 목소리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할 게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아이를 키우겠다같은 캐치프레이즈는 집어 던졌으면 좋겠다국민의당은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단설유치원을 신설할 경우 인근거리 유치원의 수요와 공급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기존 시설 운영에 지장없는 범위에서 신설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단설이든 병설이든 국가가 나서서 국공립어린이집을 늘려야 할 때다. 기존 사립유치원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만 걱정하나? 국민의당은 그 이상으로 부모들이 얼마나 국공립 유치원을 바라는지 몰랐나보다. 병설을 늘린대도 대형이든 중형이든 단설을 줄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부모들이 바라는 바와 반대다. 또 정부가 국공립유치원을 늘려 그를 통해 사립유치원의 질을 끌어올리고 사립유치원에 들어가는 부모들의 비용을 낮춰줘야 할 때다. 이러한 부모들의 마음을 몰랐는지, 모르는 척 하고 싶었는지 이제 와서 '대형 단설'만 안 만들겠다는 얘기인데 전달이 잘못됐다는 식의 해명이라니.

 

아이 보육 이야기 하면 다들 한 보따리씩 이야기를 꺼내놓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 큰 아이를 낳고 집 근처 구립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었지만 순위는 400번대에서 줄지 않았다. 둘째를 낳고 맞벌이에 둘째 아이니 구립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겠지 생각하며 전화를 걸어봤다. 순위는 120번대. 선생님은 미안해하며 말씀하셨다. "어머님, 여기는 거의 셋째까지 있는 집에서 와요." 우리 아이들은 구립어린이집은 못 가겠구나. ㅠㅠ


다행히 첫째는 가정어린이집에 보냈고 좋은 원장선생님을 만나 큰 어려움 없이 어린이집을 다녔다. 어린이집에서 교사 폭행 같은 나쁜 뉴스가 뜰 때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 행운을 고마워했다. 그러나 말이 되나? 그게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사회가.

 

가정어린이집은 만2세(우리 나이 4세)까지만 운영하므로 지지난해 첫째는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을 지원했다. 유치원은 추첨 시스템이라 , 남편, 친정엄마, 친정아버지 온 가족이 구에 있는 공립유치원에 흩어져 추첨을 하러 갔다. 내가 갔던 유치원에서는 만 3세반은 141명 중 17명을 뽑는다고 했다. 법정 저소득층 자녀 1명, 재원생 형제자매 5명을 제외하면 추첨 몫은 11명. 12.8 대 1. 대한민국에서 만 3세 아이가 처음 맞은 경쟁률이었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치원 시청각실에 앉아 하나씩 번호가 불릴 때마다 탄식하던 풍경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유치원 떨어지는 것이 이렇게 속상한 사회라니. 정말 끔찍하다.’

 

그런데 온갖 추첨에서 돼 본 적 없던 나는 그동안 운을 아꼈는지 병설유치원 로또를 손에 쥐었다. 그날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기사 쓰기가 하나도 힘들지 않았을 정도. 그리고 1년 넘게 아이를 병설유치원에 보냈다. 만족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일단 생님들이 너무 좋은데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넘쳐서만은 아니다. 공무원인 선생님들은 매우 안정돼 보인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공립, 사립을 구분할 수 없겠지만 직업의 안정성은 선생님들의 불안을 줄인다. 그 줄어든 만큼의 불안이 아이들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장점.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 체험학습비만 내면 되는데 한 달에 만원 꼴이다. 1년에 방학 빼고 10만원 조금 넘었다. 사립유치원을 보내려면 한달에 50~100만원이 든다는데 50만원으로만 쳐도 난 얼마를 아낀 것인가. 3년에 1800만원. 작은 돈이 아니지 않은가. 큰 아이 추첨으로 뽑고 작은 아이 재원 형제 쿼터로 병설유치원에 보내는 한 엄마는 웃으며 이야기한다. “둘 합쳐서 내가 4천만원을 아꼈다고요.”

 

왜 그 어린 아이들에게 영어유치원을 보내느냐고? 사립유치원이 비싸서다. 거의 100만원이 드는 사립유치원(물론 유치원별로 원비는 천차만별)에 보낼 바엔 좀더 보태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게 덜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도대체 사립유치원은 왜 이렇게 비싼가? 유치원은 정부지원금 22만원도 받는다는데 그럼 지금 내는 돈에 20만원이 더 붙는 건데 이렇게 비싼 게 맞는 건가.

 

그와중에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 같은 뉴스를 보면 정말 속 터진다. 2월 정부 발표로 나온 유치원 운영비로 자녀 등록금 내고 차도 뽑고 선물도 사고기사. 기사 사례를 보자.

 

유치원 원장은 두 아들 등록금과 연기 아카데미 수업료 3900만원을 지출했다. 노래방 비용 등 847차례 3000만원, 개인차량 할부금 2500만원, 보험료 370만원, 자동차세와 과태료 300만원, 83차례에 걸친 경조사비 3200만원도 유치원 회계에서 지출했다. 교직원에게 선물을 준다면서 유치원 운영비로 250만원 상당의 루이비통 가방 등을 사기도 했다. 이 유치원 원장의 부당 사용액은 111000만원에 달했다.

 

유치원 설립자는 도자기 구입에 2500만원, 개인 외제차 1400만원, 사학연금 개인부담금 830만원 등을 쓰는 등 개인적으로 쓴 것으로 의심되는 돈이 2억원가량이라고 추진단이 설명했다. 유치원 설립자는 서울·경기 지역에 10개의 유치원을 운영하며 가족회사와 51000여만원을 불법적으로 거래했다가 들통났다.

 

교재, 교구, 식재료 등을 구입하거나 시설 공사를 할 때 계약서, 세금계산서 등을 허위로 작성하기도 했다. 어린이집 4개를 운영하는 씨는 부인 명의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교구나 식자재 납품 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뒤 서류 조작 방식으로 86000만원을 부당거래했다.”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95곳을 점검한 결과 609건 위반 사례를 적발했고 부당사용액은 54개 유치원에서 182억원, 37개 어린이집에서 23억원 등 205억원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 한숨이 절로 나오고 뒷목이 뻐근하다. 유치원 원장이 아이들 먹을 쇠고기를 자기 집 냉장고에 일부 떼놓았다는 얘기를 교육청 담당하며 기사 쓸 때 들었는데.... (당시 나온 기사 사립유치원장들, 공금 횡령…‘누리 예산’도 샜다또 반복이다. 답답해서 국무총리실 홈페이지에서 보도자료를 찾아봤다. 정부는 대책으로 현행 유치원/어린이집 재무회계 건전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겠다고 설명해놨다. 현행 재무회계가 정부지원금, 정부보조금, 부모부담금으로 수입 재원을 마련하고 있으나 지출 항목 구분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이러니까 유치원비로 어떻게 운영을 하고 있는지 믿을 수가 없다는 거다. 정부 재원이 매달 22만원씩 들어간다는데 왜 원비는 그렇게 비싼 건지, 그 비싼 원비로 운영은 어떻게 되는 건지 믿을 수가 없다는 것. 반면 공립은 모든 게 투명하다. 홈페이지만 들춰봐도 운영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정부는 어린이집이든지 유치원이든지 국공립 보육시설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이번 단설 해프닝을 보니 두렵다. 사립유치원 독립 운영을 보장하겠다며 교육(보육)을 민간에, 시장원리에 맡기겠다는 말을 저렇게 버젓이 하다니. 현행 재무회계도 엉망이어서 돈이 줄줄 새고 있다는데.


세금이 새지 않게 하려면 사립유치원에 주는 지원금을 부모들에게 직접 줘야 한다. 부모들이 그 세금과 자신의 돈을 보태 유치원을 보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기관에 지원금을 줘서는 부모들은 체감을 하지 못한다. 원비가 해마다 인상돼도 부모들에게는 제어할 수 있는 수단도 없다. 현재도 월 50~100만원을 내야하니 유치원비가 비싸다고 느끼는 집이 매우 많다. 보육료 지원금을 양육수당처럼 부모에게 직접 현금으로 지급하고 그를 통해 부모들이 열심히 운영하는 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잘 운영하는 사립유치원은 자연스럽게 발전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장 원리 아닌가?  


첫째를 보냈던 가정어린이집(민간)이 참 좋았다. 아이들 중심으로 생각하는 분위기, 깔끔한 운영, 오랫동안 일하는 선생님들... 둘째도 당연히 그 어린이집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복직을 앞두고 둘째 어린이집 입소 때문에 오랜만에 원장님을 만나 설명을 들었다. 어쩌다 어린이집 운영하며 힘든 일도 많지 않으시지 않으냐고 물었는데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어린이집을 하면 떼돈을 번다는 댓글들을 나도 가끔 읽는데 어린이집을 양심적으로 운영하면 적자가 난다는 책도 있는 걸 보면 결국 열심히 운영하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상처받는 구조다. 계속 이렇게 놔둬도 될까.

 

힘들 때도 많지만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죠. 이렇게 어릴 땐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존재니까요. 엄마아빠만큼은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늘 부족하죠.” 첫째를 보내며 늘 고마워했던 선생님이 한 말이라 매우 뭉클.

 

좋은 민간어린이집, 사립유치원도 많다. 다만 부모가 좋은 기관을 주체적으로 고를 수 없는 구조일 뿐. 열심히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모들이 안심하고 그 선생님들과 논의하며 같이 아이들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란다. 너무 어려운 바람은 아니지 않은가.

 

끝으로 정치인들이 표가 되는 곳에 가서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일반 부모들의 목소리가 흩어져있다고 해서 그들에게 표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이 글로 답하고 싶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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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안녕 2017.04.12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설 유치원 하나 만드는데 엄청난 비용이 듭니다.차라리 그 돈으로 사립유치원 지원하면 교육의 질은 좋아지고 비용을 크게 줄일수 있다는 의견도 없지 않습니다. 어떤 정책이 아이와 부모에게 더 보탬이 되는지 면밀히 따져보고 정책 결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엄마가 행복한 나라가 될테니 말입니다.

  3. 유민나인 2017.04.12 1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설만드는데돈이 많이드니 사립을 늘리자는게
    말이되나요? 그리고사립이 교육의 질을 높인다구요?헐~~제가 아이가 넷이라 사립도보내보고 단설.병설 다보내봤지만.사립이라고 교육의질이더높지도않습니다.
    돈벌기에 급급한곳이 더많지요..
    단설만드는데 설령 돈이 더많이들지.그거는제가잘모르겠으나..사립은 지어서 돈벌기 급급한곳이 허다해서요.. 그돈내느니.차라리 돈 모아서 단설에 보태주고 싶군요..

  4. 박실장 2017.04.12 1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원장들 입김이 정치권 투표에 강하게 작용하다보니 초등학교에 남아도는 교실을 이용한 유치원 신설이 어렵다 한심한 노릇이다 쯧쯧쯧

  5. 다은이엄마 2017.04.12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좀 넓게 생각할수도 있어요
    사립도 공립도 잘하는데 많아요
    국민의 혈세가 낭비된다니 말이죠
    1인당환산하면 사립은총22만원지원해주고 공립은 일인당 97만원된다는통계자료가 있어요
    당장 유튜브한번들어가봐요
    무조건 논리얘기하지말고 냉정하게 정확히 대한민국국민으로서 본인만 생각하는 ,
    그만큼 세금으로 하는것은 좀 아니다고
    보는데요
    그래서 세금으로 짓는다기보다 있는사립을 인정해주면서 하는것도 좋은생각인것같은데요
    단순히 우리들은 그만큼세금이 낭비되고 있는것은 현실이니까요

  6. 다은이엄마 2017.04.12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크게본다면 단설을 크게지으면 세금국민이왜내야해요

  7. 다은이엄마 2017.04.12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만생각지말고 너무하다는생각은들어요 사립은 22만원단설 1인당 100만원된데요 유트뷰들어가봐요
    공립보내면 비용이 안들어서 좋겠죠 엄마 입장으론 좋겠죠 하지만 국민혈세아닌가요
    사립주장도 틀린건아니다고 생각되든데요
    당장눈앞의 이익보다 어려운 국가는 국민의세금 왜허비하는것도 생각해봐야 할듯
    무조건 자기본인입장에서 내가 안되면 된다는생각은 ...

  8. *미향 2017.04.12 2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치원 교사도 10년 어린이집 원장도 수년간 해온 경험으로 간단히 제 생각을 표하자면 위 안철수 후보자의 의견은 맞다고도 생각합니다 정책이란게 정답이 없다보니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과 상황에 따라 좋기도하고 마음에 안맞을 수도 있겠고 워낙 상황도 의견도 다양하고요 또 오해하고 조금만 틀어 받아들이고 말하게되면 완전 어이없는 정책으로 전락해버리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단설 유치원을 새로 건립하는건 정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보다는 병설 유치원이 있는 초등학교를 늘려가는게 더 합리적이고 비용면에서도 실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립 유치원을 점차 폐쇄하거나 그 기능을 약화시키는것보다는 더 합리적이고 생산적인건 교육의 질을 높이고 보다 합리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미 있는 기관을 정비해가는 것이겠지요 안철수후보의 표현이 사립유치원 원장의 입맛에 맞게 할수있도록 열어주겠다는 뜻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9. 이선생 2017.04.12 2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핵심은, 어린이집의 운영을 시장논리에만 맡겨선 곤란하다. 는 뜻인것같습니다. 이런 지적은 옳다고 생각됩니다. 병원도 국공립이 필요하고 학교도 국공립이 필요한 것처럼 어린이집도 그렇다고 생각하는것은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 국공립을 더 늘리지 않겠다는 표현은 아무리 좋게 본다 해도 지금 대선 앞둔 시점에서 사립쪽의 표를 의식햏다고밖에 보여지지않습니다.

  10. *미향 2017.04.12 2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공립을 더 늘리지 않겠다는게 아니라 병설은 늘리고 대형단설은 늘리지 않겠다는 거죠
    단설을 늘리는것보다 병설을 늘리는게 여러가지 의미가운데 합리적이라는 판단인것 같은데 저는 그게 맞다고 봅니다

  11. 이선생 2017.04.12 2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안철수후보를 비난하기 위해 댓글을 쓴게 아닙니다. 위의 댓글에서 어떤분이, 사립은 22만원 단설은 100만원 국민혈세가 들어가는데, 무조건 본인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세금 허비하면 안된다는 생각도 좀 해라. 라고 발언하셨길래, 그런 경제논리만으로 어린이집 문제 (크게 보아 공.사교육의 문제로도 읽힐수있습니다.)를 보는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유아 교육은 충분히 공공서비스의 측면에서 생각될수있는 문제입니다.

  12. 2017.04.12 2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3. 철수는공가왕 2017.04.13 0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 좀 읽고 댓글 달아라.. 공가왕 안털수 유치원 발언에 문제 없단 인간들아..

  14. 지성 2017.04.13 0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효성이 문제입니다.
    좋은 의견 안건들은 많지요. 공립유치원의 선생들은 안정감이 있어보인다 하셨죠. 어린이 집 지원금? 잘 모르시네요.

    원래 부모가 내는 돈을 정부가 내주는 것인데 사립어린이집 매출이나 이윤이 늘었을까요? 땡전한푼도 늘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내던 돈을 정부가 내줄 뿐이 거든요. 대신 정부는 정부 돈이 나가니 온갖 감사와 관리에 어린이집은 아이를 봐야 하는 곳인데 공무원 처럼 쓸데 없는 페이퍼 워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게다 정치인들이 정치 쇼에 부모들이 휘둘려 생겨난 탁상행정이죠. 심지어 예산 확보도 안되 집행이 안돼서 원장이 대출 받아 운영하고 몇달 뒤에나 어린이집 지원금이 나오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러고 다시 원장이 본인돈 빼려고 하면, 힘듭니다. 불법이라 뭐라 감사 드러오고. 심지어 어린이집 원장은 서류상 으로 급여도 못 가져 갑니다.

    비영리 단체라 정부가 무상복지 시작하면서 만들 었죠. 몇해전 정치 쇼가 있었는데, 많은 어린이집 원장님들이 불법 운영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특별활동 리베이트니 뭐니 하면서. .

    당신들에게 묻습니다. 적게는 수억, 많게는 수십억을 투자했는데 갑자기 정부가 정부예산으로 운영 하니 원장은 급여를 책정하지 마라. 그래서 그들은 되물었죠. 그럼 우린 어떻게 하냐? 그랬더니 알아서들 해라. 그랬더니 나중에 정치쇼 하면서 부당, 불법 수당이다 합니다.

    어린이집은 정부 지원금을 원치 않습니다.

    왜? 더 버는 것도 아니고 일은 늘고, 부모들도 너희들 공짜로 돈벌고 있잖아 하는 말도 안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무상교육과 당장 국공립 어린이집, 유치원을 늘리는 비현실적인 정책보다는 선생님들 복지가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들은 박봉에 쉬는 시간도 없이 당신들 아이 오줌,똥 치우고 당신 출근하기 전에 출근하고 당신이 퇴근 하길 12시간을 일하면서 기다립니다.

    급여는 130~180. 당신의 점심은 어떻한가요? 회사 동료들과 혹은 지인과 아이 없이 편하게 식사 후 여유 있게 커피 한잔 하지 않나요? 어린이집 선생들에겐 전쟁과 같습니다. 그들은 점심시간도 아이들과 함께 해야만 하는 업무시간입니다.

    다들 포인트를 비켜 나가는데.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복지가 최우선입니다. 그래야 경쟁률이 심해져 질높은 선생님들이 이직 하지 않고 책임감 있게 일하지 않겠습니까?

    다들 좋은 곳 보내려고 줄서잖아요. 아닌 곳은 원생이 없어 망하는 어린이집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신 것 같아요. 줄서는 곳은 시설 좋고, 좋은 선생님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 곳은 돈이 많이 투자된 곳입니다.

    자선사업이 아닌 이상 그에 상응하는 돈을 내야줘. 다시 얘기 드리지만 공립, 사립 보다도 선생님들 퀄리티가 우선이며, 그를 위해선 급여와 근무 환경이 개선 되어야 합니다.

    다들 알만도 한데 내 아이 공짜로 보내고 싶고 당장 나한테 이득되는 부분으로 만 보니 저런 무상복지든 대책없는 공약들이 거지들 떡하나 던져 주는 공약들에 혹 하는 겁니다.

    요즘 별 거지 같은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선생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 아 국공립이요? 드러가기 어렵 잖아요? 아 그래서 단순하게 국공립을 늘리 자는 건가요? 동네에 국공립 한두개 는다고 들어갈 수 있을까요?

    어떤 부모들은 아이 등교할때 녹음기를 아이 가방에 넣는 다고 합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어린이집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생각이나 하고 있나요?

    답은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 자격 검증을 굉장히 높이고 급여와 복지 개선에 대한 법적, 행정적 정책이 나와야 합니다. 그게 가장 빠르고 현실적으로 타당하며, 실효성 있습니다..

    • 부모들에게 보육료 직접 지원하라! 2017.04.13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립 유치원 어린이집에 인건비를 보전하면 그 돈이 '교사'에게 '제대로' 갈지 의문이네요. 님 말씀대로 투자 본전 뽑으려면 급간식비, 교사들 인건비, 교재교구비, 특활비 리베이트로 뽑는 거 아닌가요? 교사들 불법으로 시간제 쓰고, 현금으로 월급 돌려받기 하는 게 많은 사립어린이집 유치원 실태던데, 그런 당사자들이 교사들 인건비 인상 운운하는게 전 위선처럼 느껴지네요. 서류상으로는 원장들 받는 돈이 없겠지만 정말 남는 게 없을까요?????
      투자해서 제대로 운영 못하면 도태돼야 하는 게 자본주의 시장원리 아닌가요? 자영업자들은 적자생존 하는데 개인이 설립한 사립유치원이나 어린이집도 운영 제대로 못하면 문닫아야죠. 이래서 유치원, 어린이집에 지원 말고, 부모들한테 직접 지원돼야 하는 거에요. 부모들이 그야말로 제대로 된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말이죠.

  15. 2017.04.13 0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립유치원 다니는 부모지원금을 현재 22만원에서 30만원 수준으로만 올려도 사립유치원비 비싼 느낌 없을껍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누리과정비 처음주던 몇 해전에 매년 2만원씩 인상하겠다고 했었습니다
    지켜지지 않았지만요~~


    공립은 원아당 매월 100만원 이상 들어갑니다
    단설 짓는다고 사립원장들이 반대해도 20년 전부터 단설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립원장들이 반대해서 못 생기는거 아닙니다

    공립지을 때 50억 씩 들어갑니다
    초중고에 빈교실이 속출할텐데 병설 늘리겠다는 공약은 이해합니다

    그리고
    유치원비가 50~100이라고 하셨는데
    지방은 지원금 월 29만원으로만 운영하는 곳도 꽤 있답니다

    경기도 1기 신도시에 있는 저희 유치원도 종일반 비용까지 다 해도 월 27만원 입니다
    정보공시에도 사립 평균 원비는 20만원 초반대로 나옵니다
    사립 원비 잘 써치해 보세요

  16. 2017.04.13 0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어딘가로부터 재원을 마련해야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자기 돈 아니라고 막쓰는 문재인의 공약보다 세금 허투로 쓰지 않는 안철수의 방향이 맞는 것 같습니다. 눈먼 돈인 세금으로 좋은 식당에서 식비만 1억쓰는 문재인과 저렴한 식당에서 몇백만원 식사만 한 안철수가 낫고, 직원 인건비 1950만원 지출한 문재인보다 6510만원 지출한 안철수가 진심이라는 겁니다. 본인 입에 들어가는 식비아껴서 직원 월급 더 줬으면 모를까..이건 아니죠.

  17. 어휴 2017.04.13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울 4년제 아동학 관련 전공생으로서 한마디하자면 모든 정책이 답답하다는 말뿐이네요. 서울 4년제 학생들 졸업하면 사립유치원 안갑니다. 직장어린이집, 병설유치원, 국공립어린이집/유치원이 마지노선이죠. 저는 급여와 처우보고 교사는 이미 접었고 취업할 생각인 선후배들 정말 많습니다.
    단설보다 병설, 국공립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설이 잘 운영되게 돕는다 해도 교사의 질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거에요. 영유아교육 모두 통합해 교육부에서 맡아 정부에서 철저한 인력관리를 해야한다고 봅니다.

  18. 바쁜맘 2017.04.13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회의원 손자녀들은 비싼유치원을 보내서 모르시 봅니다. 피부로 느끼는게 없으니까 발로 안 뛰는것 같군요ㅠ_ㅠ

  19. 공짜가 어딨나 2017.04.14 1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공립 유치원 과 사립 유치원 비용의 차이를 벌려놓은 박근혜 정부 잘못이다. 체험학습비 만원만 내면 되는게 상식적으로 말이되나. 사립 100만원이 비싸다고? 한명씩 백만원 받아서 운영해봐라. 추첨제? 이건 누구 아이디어인지 참 뉴스 볼 때마다 웃지못한다. 무당딸에 놀아나더니 운에 맡기는게 당연한가. 돈도 벌면서 공짜 너무 좋아하지마라.

  20. bia 2017.04.14 2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나라에사 아이를 키운다는것이 이렇게 못할짓인지 몰랐습니다. 내가 낳은 내새끼들한테 미안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우리아이들이 행복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 아이들이 커가면서 뭐든 비교당하는 사회속에서 교육시키기 어렵고 월급은 안오르고 물가와 집값은 하늘높은줄 모르고 치솟아 빛안내고는 살수 없는 상황이 왔죠 .. 또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 대학졸업을 하더라도 그 새싹같은 아이들이 또 취업난을 걱정하며 힘들어해야 하고 당연히 연애와 결혼은 힘들것이고 (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무원을 준비한다는것은 망조입니다 .. 이 결과의 원인은 모든 학생들 개개인의 개성과 재능을 존중하지 않고 누구나 모두 좋은 대학 대기업을 가냐만이 행복한 삶을 살수 있다고 교육시키는 이 썩어빠진 교육환경에 있다고 봅니다) ... 이젠 거기다 깨끗한 공기를 마쉴수도 없는 지경까지 와버렸네여. 점점 이민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죠 !!!! 저도 아떻게든 컨디션을 만들어 이나라를 뜨고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네요...내 형제가 있는곳 내 부모가 있는 곳에서 살고싶습니다. .. 평범하게 소박하게 이나라에서 살고싶습니다.. 국가가 더이상 자녀를 둔 이나라의 부모들을 더이상 힘들지 않게 내가 태어난 이나라에서 애국심을 가지고 살수 있도록 좀더 똑똑한 정치를 펼쳐야 합니다.

  21. 김미현 2017.04.15 1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 정치인은 유아교육에 관심도 없고 그 어떤 포지션도 취하지 않습니다..그래서 교육의 기초가 자릴잡지 못합니다..그래서 그 이후의 교육도 왔다갔다입니다ㅠㅠ

그 선배 애 낳고 변하더라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더니 애 낳더니 어쩔 수 없나봐.”

 

결혼을 안 했던 시절 여자 선배들을 저렇게 묘사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애 낳으면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애 낳으면 일을 대충 한다로 이어져 애 낳은 여자들은 쓰면 안 돼에서 애를 낳을 수 있는 여자들은 쓰면 안 돼까지 연결된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땐 '결혼을 하면 안 되겠구나'부터 '다 그런 건 아닐 거야',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에까지 생각이 연결되곤 했다.

 

애를 낳고 알게 됐다. 가사 노동과 육아를 여성에게 떠넘긴 사회에서 회사 생활을 버틴 것도 대단한 것이라는 걸. 그나마 아이를 대신 맡아줄 가족(친정엄마나 시엄마, 아니면 시터이모님)이 없는 여자 선배들은 이미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을. 또 그 숫자가 적지 않았다는 것도. 게다가 그 선배들이 아이를 낳았던 시절은 출산 휴가 2개월밖에 주지 않던 때였다. 2개월이라니 2개월이라니. 아직 뒤집지도 못하는 아기를 떼놓고 출근하게 했던, 야만의 시절이었다.

 

복직 후 여자 선배들은 내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다. “애가 어릴 땐 일을 살살해도 괜찮아. 오래 버티는 게 중요한 거야에서부터 힘들지. 지금 정말 힘들 때야.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져”, “근데 정말 힘드니까 둘째는 낳지 마까지...

 

물론 나이가 열 살 이상 차이나는 선배들과 다른 생각을 가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선배들이 없었다면... 난 과연 이곳에 있었을까? 복직 후 그 생각을 많이 했다. '저 선배들 덕분에 내가 여기 있구나.' 표현한 적은 없지만. 그저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다녔다는 것이 고마웠다.

 

여기자가 없던 시절, 1/10이 여기자이던 시절, 그리고 2000년대 여기자가 많이(급속히?) 늘어나던 시절. 회사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끔 바지 입은 여자를 묘사하는 글을 읽는다. 직장 내 여자들이 늘어나도 그 여자들이 바지 입은 여자라 남자 상사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최근 페친의 추천으로 페이스북 COO인 셰릴 샌드버그의 <린 인>을 읽었다. 그 책에서 무릎을 치면서 웃었던 부분.

 

셰릴은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구글에서 일하고 있었다. 임신 3개월이면 끝난다는 입덧이 9개월 내내 계속됐고 어느 날 회의에 늦지 않으려고 겨우겨우 주차를 했는데 겨우 주차한 곳이 사무실과 멀어서 산처럼 부푼 배를 안고 겨우 회의실에 들어갔다는 이야기. 근데 그날 밤 야후에서 일하던 남편이 이야기한다. 야후에는 각 건물 앞에 임산부 전용 주차 공간이 있다고. 셰릴은 다음날 구글의 설립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사무실로 쳐들어가 회사에 임산부 전용 주차 공간을 가능한 한 빨리 마련해달라고 건의했다. 세르게이는 그 문제를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곧 사과하고 바로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셰릴은 말한다. “나 또한 내가 임신해서 발이 부어올라 쩔쩔맬 때까지 회사에 임산부 전용 주차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구글에서 최고참 여성 중역이었으니 당연히 생각했어야 할 문제 아닌가? 하지만 세르게이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다른 임산부 직원들은 배려해달라고 요청하지 못하고 묵묵히 불편함을 참았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감이 없거나 직위가 낮은 탓에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한 것이리라.”

 

이 부분을 읽으며 새삼 난 회사 화장실이 생각났다. 입사 초 편집국 화장실은 남자 화장실보다 여자 화장실이 더 좁았다. 기자가 남자만 있던 시절 남자 화장실 밖에 없었는데 그 공간을 일부 쪼개 여자 화장실로 만들었다고 들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2011년쯤 편집국 리모델링을 할 때 여자 화장실 크기가 더 넓어졌다. 여자 화장실에 대한 불만과 민원이 더해진 결과이리라.

 

여자가 늘어나면 뭐가 바뀌느냐고? ㅎㅎ 화장실이 생긴다. 웃기지만 편집국에 남기자만 있던 시절 처음 입사한 여자 기자는 어떻게 화장실을 다녔을까. 참 단순한 사실이지만 그 선배 덕분에 여자 화장실이 생겼을 것이고 또 여기자가 늘어나니 화장실도 커졌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간 임산부전용 주차장도 생기겠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남자 기자가 압도적으로 많던 시절(199쯤 되려나) 편집국에서는 담배도 피웠다고 한다. 요즘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풍경이다.

 

첫째를 임신했던 때 회식을 하던 중이었다. 남자 선배와 남자 동기가 회식 자리에서 담배를 피웠다. 속으로 생각했다. ‘임신 중이라고 말할까. 말까. 말할까.’ 결국... 말하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임신한지 몰랐을 뿐이었다. 그때는 괜히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기 싫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멍청했다. 그날 자리에서 나와 만만한 남자 동기에게만 말했다. “나 임신했어.” 쩔쩔매며 미안해하는 그를 보며 괜찮다고 했지만 이후 그 사건이 떠오를 때면 왜 나는 그 자리에서 말하지 못했나후회가 됐다. 이제 더 시간이 지나 회식 자리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에피소드 또 하나. 결혼 직후였다. 오랜만의 사내 커플이라 사람들의 장난스러운 시선도 꽤 있었다. 출근할 때였나 남편과 내가 한 엘리베이터에 탔다. 같이 엘리베이터에 탄 한 선배가 내게 물었다. “밥은 해줬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이미 얼굴엔 기분 나쁘다는 표가 다 난 뒤였다. 다행히 편한 선배였고 되물었다. “제가 왜 밥을 해줘야되죠?” 당황한 선배의 표정. 결혼한지 만 5년이 지난 지금이었다면 이보다 세련되게 받았겠지만 그때는 정색하고 말았다. 정말 다행히도 선배는 웃으셨고 그 이후부터는 남편만 보면 장난스럽게 밥은 해줬냐?”고 묻기 시작했다. 아마 처음에는 내 표정을 보고선 기분이 좋진 않았겠지만.

 

여자들이 늘어나 조직의 풍경을 얼마나 바꿨을까. 별 것 아니지만 남자에게 밥은 해줬느냐고 묻게 하는 것. 그게 시작이 아닐까. 셰릴은 <린 인>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제를 일으켜봤자 시끄러운 페미니스트라는 소리만 들을 터였다.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불이익을 지적하는 것이 푸념하거나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행동으로 잘못 해석될까봐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일했다.


해가 지나면서 여성 친구들과 동료들이 하나둘씩 직장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스스로 선택해서 떠나는 여성도 있었고 융통성을 허용하지 않는 회사에 떠밀리거나,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하지 않는 배우자의 요구로 낭패감에 휩싸여 떠나는 여성도 있었다. 직장에 남아 있더라도 주변의 대단한 기대를 충족시키겠다는 야망을 줄였다. 여성 리더가 출현하리라는 우리 세대의 희망도 점차 빛을 잃어갔다. 구글에서 근무한 지 몇 년이 지났을 무렵, 이러한 문제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내가 성 문제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현재 상황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세계에 진입한 첫 세대 여성들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내며 자신을 조직에 맞춰야 했는지 모른다. 어떤 때는 그것이 가장 안전한 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집단으로서의 여성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성은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하고, 자신을 뒷걸음치게 만드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요즘 대선 후보 배우자들의 인터뷰를 지나가다 몇 번 봤다.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남편 이승배씨의 인터뷰는 정독했다. “심상정 남편? 한 마디로 그게 뭐 어때서? 영광이지!’하는 생각이라는 답변과 제 처가 세상에 긍정적 기여를 하도록 옆에서 돕는 게, 저의 존재 이유의 핵심이라는 답변은 정말 멋졌다. 그리고 통쾌했다. 여성 정치인과 내조하는 남편이 보여주는 평등한 결합. 게다가 그 남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슈퍼우먼 방지법에 대한 설명이라니!

 

남녀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 조직, 나아가 이 사회의 건강에 좋다. 그게 회사에도, 국회에도, 고위 공직자의 세계에도 여자들이 절반을 차지해야 하는 이유다. 선배들이 버틴 덕분에 나는 둘째까지 육아휴직 1년씩 2년을 썼다. 내 여자 후배들은 육아휴직 2년을 남편과 공평하게 나눠 쓰기를 바란다. 또 내 남자 후배들은 육아휴직 기간 직접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

 

<린 인>에서 이 문장들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평등한 사회라면 여성이 국가와 기업의 반을 운영하고 남성이 가정의 반을 꾸려나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오는 아버지가 늘어나고 직장에서 일하느라 바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더욱 많은 선택 사항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상은 여성에게 성을 근거로 기대하지 않고 개인적인 열정과 재능, 흥미를 기준으로 기대할 것이다.(...) 내 아들이 풀타임으로 자녀를 키우는 중요한 일을 하고 싶어 하더라도 그 뜻을 존중받고 도움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 딸이 집 밖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기를 원하더라도 그 뜻을 존중받고 도움받을 뿐 아니라, 딸이 성취한 일들에 대해 타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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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며 2017.03.30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종류의 글이 페미니즘이 유행하다 보니 많이 보이는데요.얼핏 그럴 듯 하지만 사실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주장들이에요.
    일단 개인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과 다른 종류의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이런 논의가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논의의 순수하게 평등의 관점에서의 약점은 다른데 있으니까 그걸 얘기해보면요.
    모든 직업에서 성비가 일대 일이 되는 건 장기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많은 직업은 예비 단계인 대학이나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부터 성비가 확 갈리기 때문입니다.
    제가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이 아니라 거기는 잘 모르겠는데, 대학의 경우에 공대와 자연과학대와 인문대, 예술대는 성비가 확실하게 차이가 나죠.
    그리고 제가 아는 한 그건 무슨 성차별이 주요 원인이 아닙니다.
    공학이나 물리학 같은 학문의 주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여자 고등학생 수부터가 확실하게 남학생보다
    적어요. 자신의 가능성 같은 것 말고 관심 부터가 확실하게 차이가 나죠.
    물론 그런 관심의 차이가 사회에 퍼진 문화와 관계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전공을 갖지 못하게 하는 노골적인 입시 차별이나 전반적인 거대한 장벽이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전체 졸업자의 1/10 또는 1/100 밖에 안되는 여성을 무슨 수로 십년,이십년 뒤에 특정 직업의 주요 직위에 반을 채울까요? 만약 그 여성들이 언제나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잘하는게 아니라 동등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그 어떤 차별도 없고 경력 단절 문제가 해결되어도 절대로 반을 못 채우는 겁니다.
    실력에 관계 없이 무조건 억지로 반을 채우기로 정하지 않는다면요.

    단지 여성이 절반이 되는게 나름 좋은 점도 있을지 모른다는 까닭 하나만 가지고 주요 직위에 여자들을 채워야 하나요? 그 직위는 오로지 성평등을 구현하는 것 하나만을 목표로 존재하는 자리들이 아닙니다.

    반대로 수간호사 같은 자리는 실력있는 여자 간호사 모두 탈락시키고 억지로 반을 남자로 채워야 할까요?
    남자가 많은 전공이건 여자가 많은 전공이건 , 취직률이 높을 경우에 별짓 다해도 성비를 반을 못 채울 것 같지 않나요?

    여성이라는 까닭으로 직업을 가지고 일해 가는데 있어서 장애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게 바람직한 방향이기는 하지만, 그게 여성이 절반이 되어야 한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합니다.
    그걸 억지로 맞추는 것도 불가능하고 제도와 문화가 평등하게 바뀐다고 해서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절반이 되는 걸 어렵게 하는 문제들을 제거할 수 있을 뿐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이 엄청 싫어하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보다 높고,이공계에서는 70%입니다. 성평등을 위해서 여성 이공계 졸업자는 불이익이라도 줘야 할까요? 그런다는 말은 못 들어봤습니다.)


    • 또한지나가며 2017.03.30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나가며님께
      직업에 편견이 붙어있는게 문제인거죠
      간호사라는 직업은 남자도 할수있고 여자도 할수있어요, 하지만 남자간호사에 대한 사회 이미지가 남성으로 하여금 진입장벽이 있는게 아니라고 하실수있나요?
      미대와 예체능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학생이 미대를 진학하겠다는 것을 부모에게 이해시키는것도 여학생보다 훨씬 어렵죠.
      이건 여성에게도 해당되는게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이런 편견을 고쳐나간다면 미래에는 더 많은 선택지가 있는 사회가 되겠죠

    • ㅡㅡ 2017.04.01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 각각의 직업군 내의 성비를 1대1로 맞춰야 한다는 내용이 전혀 아닌데요. 당연히 직업마다 여성이 선호하거나 남성이 선호하는 직업군이 있을 수 있죠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상적이라고 하는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주입당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시대이니까) 여성에게만 육아의 부담을 지우는 사회 분위기가 여성이 직장을 다니는 데 큰 부담을 지게 하고 결국은 직장을 그만두게까지 하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문제라는 거예요. 간호사 중 여성의 비율이 9이고 남성이 1이었다가 여성이 이러한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어서 그 비율이 8대 2로 바뀌었다고 칩시다. 그래도 여자 비율이 월등하게 높으니까 불만 갖지 않고 가만 있어야 하나요? 어떻게 글을 이렇게 읽으실 수 있지?

  2. 지나가는 남성 2017.03.31 1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 공감합니다. 저도 변해보려고요.
    그래도 참 어렵네요. 아기 키우면서 회사 다닌다는 것이. 또 부부가 서로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래도 노력해야겠죠?
    노동시간 의무 단축을 포함해 다양한 논의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03 1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변하기 위해 노력하시겠다는 말씀이 넘 멋집니다. ^^ 대선을 계기로 많은 논의가 나와야하는데 항상 원하는 것보다 부족하죠. 또 실제 정책이 실현될지도 의문이고요. 그래서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할듯해요. 제 삶을 바꾸는 건 결국 제 자신이니까요. 댓글 감사합니다.

  3. Nine 2017.04.01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육아와 가정 생활을 좋아 하는 여성분도 계십니다.
    사회적 성공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아닙니다.
    여성이 육아를 책임지기 싫은 집이 있다면 남성이 지면 됩니다.
    역활은 반대로 하면 쉽게 해결 됩니다.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 나참 2017.04.01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부 둘 모두가 직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육아와 가사노동은 여자들의 몫이고 남자들이 안하니까 이런 글이 나온거죠(남자가 가사노동에 어느정도 기여하는지 통계적 지표들에서 아주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하면 쉽게 해결돼??? 말로 쓰니까 정말 쉽고 간단하네요. 입사면접볼때 출산계획 있냐는 질문 들어봤어요? 남자들에겐 저게 마이너스 요소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저런질문 안 들어봤겠지만 여자들은 항상 들어요. 일보다 육아가 더 좋은 사람, 있겠죠. 근데 그 비율이 정말 그렇게 높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러실수 있겠냐니ㅋㅋ 출산한 사람들이 가사노동에서 자아를 찾고 싶어서 직장 그만두는줄 알아요? 맨 첫문장에서 말했다시피, 남성중심적 사회이기 때문에 출산한 여성은 사회적 성공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래서 사회가 평등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문맥이 파악이 안되어서 의무교육은 수료하셨는지 궁금하네요

  4. Movelikejaggy 2017.04.01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껏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살아왔으니 이해가 안되겠지
    이제서야 여성들이 모여서 목소리내니까 너넨 왜그렇게 예민해? 라고 광광대는 인간들 역시나 속속들이 등장ㅋ 왜이렇게 성평등이슈에 한남들은 예민하게 구는지 ㅋㅋㅋㅋ

    기존의 가부장적이고 남성위주위 사회를 유지하고싶다는 한국남자들의 숨은 의도 너무 대단하네요 ㅎㅎ

    oecd세계에서 여성이 일하기 좋은나라 순위애서 우리나라 꼴지했구요, 남녀임금격차 심한걸로도 악명높아요 .. 팩트를 원하면 oecd홈피 가서 통계를 보세요

    • 얼씨구 2017.04.02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디 더러운 회사를 다녔는지 모르겠지만 체계를 갖춘 중소기업 수준만 되어도 동일노동에 남녀 임금 격차는 없다.
      하는 일이 다르고 시간이 다르고 책임이 다르겠지.
      가부장적이고 남성 위주의 사회를 유지하고 싶은 남자의 숨은 의도를 어쩌구하는거 보니까 피해의식이 대단히 심각해 보이는데 그냥 본인 능력이나 더 키우는게 어때?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 거기서 여성을 빼고 그냥 일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고 해도 통할까 말까인데 남자는 쏙 빼고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라니... 역차별 하자는거네.
      그냥 같은 일을 같은 시간동안 하고 같은 돈을 받아가겠다는것도 아니고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 ㅋㅋㅋ
      너같은 애들은 그냥 능력이 없는거야.

  5. 지나가다가 2017.04.01 1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ovelikejaggy님께

    대한민국에서 남녀임금격차 많이 심하죠..
    그런데 통계란건 항상 정직한게 아니에요.
    실제로 저런 통계를 내면서 직업군 이런건 다 무시하고 통계를 내기때문에 여성 임금이 남성 임금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어요.
    물론 사회적으로 유리천장 그러한 장벽도 있지요. 하지만 위험하고 소득이 많은 그런 직업에 진출한 여성들이 얼마나 있는지 어떤 직업군에 성비가 어떻게 되는지 다 따져보고 생각해야 된답니다.
    하나의 통계만으로 모든걸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 지나가다2 2017.04.02 0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통계하나만으로 모든걸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만, 직업군을 무시하고 통계를 냈다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어보입니다.
      국회의원 남성1명에 회사의 비정규직 여성1명 이렇게 직군이 엄청나게 차이나도록 표본을 선택하지 않는 한 압도적으로 낮을 수는 없을텐데요.
      소득이 많은직업이 위험한 직업이라는 가정도 섣부른 일반화인 것 같구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위험하고 소득이
      많은 직업이라 함은 어떤게 있는지?
      목숨을 걸고 일하는 소방관도 목숨값에 비하면 소득이란침 적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6. 머루 2017.04.01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성들이 아무리 울고불고 해도 남성들은 손에쥔 사회기득권을 결코 거저 내주지 않습니다. 쟁취하셔야합니다.
    시민들이 몇백년전에 프랑스에서 투쟁을 통해 신민권을받아낸것 처럼 몇십년전에 한국에서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시킨것 처럼 여성들 스스로 남성들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받아내야하는겁니다.
    지금 여성권익이 한국에 비해 훨씬 높다고 하는 서방선진국의 모든 나라가 그렇습니다. 권리=의무=책임 이 세가지가 균형을 이룰때 비로소 여성들의 권익이 상승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려면 용기를내어 남성들의 보호막을 스스로 깨야 합니다. 남성들의 보호막 석애선 절대로 동등함 이라는 권리를 남성으로 부터 받아낼수 없으니까요.,

    • 호두마루 2017.04.02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보호막이란거 IMF 이후로 다 무너진지 오래됬어요. 사회적 보호막이란건 애초에 있지도 않았지만. 남성은 여성을 보호하는게 아니라 위협하고 있죠.
      여성이 깨야할 것은 이미 깨지고 없는 남성들의 보호막이 아니라 견고한 남성 카르텔과 가부장제입니다.

    • ㅎㅁㄴㄹ 2017.04.02 0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희는 보호막 속에서 동등하게 해달라고 한적 없습니다^^!
      오히려 오빠가 허락하는 페미니즘을 하라고 하는 것이 한남들이죠!

    • 지나가다 2017.04.02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두마루 // 사회적 보호막이 없다? 당장 군대랑 경찰만 봐도 그딴소리 못할텐데... 안전하게 보호된 사회 안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는게 뭔지 모르는 인간들이 가지는 모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댓글이구만..
      견고한 남성 카르텔이 어디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있다한들 스스로 깨고 나가봐라. 그 방법은 간단하다. 밖에 나가서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일 하면 된다. 어디 실전은 경험해보지도 못한것 같은데 당장 도시 밖으로만 나가봐도 자기가 얼마나 보호된 사회속에서 살고 있는지 피부로 느껴질텐데 한심스럽다.

  7. 2017.04.01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용된 책도 이 글도 좋네요.
    조직에서 불편을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사회가 바뀌어간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저도 언젠가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03 1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책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를 바꾸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계속 이건 아니라고, 이렇게 해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목소리 내려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

  8. 좋은글 2017.04.02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지만 반드시 수반되어야할 한가지
    신장된 권리만큼 책임을 질것!

    여성이 하기싫은 일은 남자도 하기 싫다.
    힘든일, 어려운일, 더러운일, 의무여서 꼭해야만 하는일..
    젊은 여성중에 위의 4가지 일을 하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
    아직도 남자의 부속물로 만족하는 여자가 많은 이상 과도한 서비스다.

    필요한만큼 얼마든지 목소리를 높여 쟁취해라!
    하지만 취한 권한만큼 책일질줄 아는 사람만 그 권리의 진짜 주인이다.
    다른 여성의 노력으로 '얻어진'권리를 가진자가 책임도 같이 질 수 있을까?

  9. 행인1 2017.04.02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 차지해라. 군대부터 시작해서 하수구 퍼내고 철근 엮고...
    세상 일자리의 적어도 절반은 현장에서 몸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다. 이른바 3D 업종들... 여자들은 도전할 생각도 안해보는.. 아니 그런 일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직업들이지.
    그저 누군가가 힘들게 쌓아올린 후에 안정된 수익구조를 만들어놓으면 세상의 반은 여자이니 저 일자리도 절반은 여자라야 한다는 지극히 정치적인 구호로 남의 밥그릇에 숟가락 올리지 말고 몸으로 뛰고 돈 날려가면서 직접 만든다음에 남자들한테 하나도 주지말고 그냥 니들이 다 차지해라.
    그나저나 같은 논리로 학교 선생의 절반은 남자로 채우자고 하면 찬성할 여자들 몇이나 될까?? ㅋㅋ

  10. mju.ac.kr 2017.04.02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의 글은 이런 의미가 아닐텐데..

    모든것을 이분법적 메카니즘에 맡기자는 의미가 아니라

    보다 낳은 세상을 위해서 남자.여자 역할이 있어서 그에 맞는 입장을 취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생물학적 본성에 따르는 역할구분이 시대적으로 바귀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가되는데..



    같은 남성으로서

    여성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면

    똑같이 이구동성으로 의무병역, 잠수용접공 따위를 이야기 하는데...

    한심한 종자들 같아요

    "그럼 니들이 애 낳아라" 하고 외치는 여성들 이야기 하고 무엇이 다른지요?


    평등이란 절차적 평등의 의미보다는

    상호관계적 평등이 옳지 않을까요 ?

    죤롤스 교수가 이야기한 정의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일반인과 휠체어탄 사람과 100 미터 경주를 할떄

    동일선상에서 출발하는 게 평등이 아니지 않습ㄴ까?


    조금더 배려하고 남자라면 신체적 약자인 여성에게 양보하는게

    남성의 권위를 추락시키나요?




    기자님의 글 잘 보았어요


    그런데 항상 이런글은 여성이 써야 하나요?

    여성이 쓰면 꼭 남성들의 반박글이 되풀이 되는 현상이 수십년 되풀이 되는데...


  11. 슈~~ 2017.04.03 0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린 인>에서 이 문장들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평등한 사회라면 여성이 국가와 기업의 반을 운영하고 남성이 가정의 반을 꾸려나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남자와 여자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서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사회로 나아간다면 린인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는 반듯이 실현 되리라 믿습시다. 현재 한국또한 그러한 사회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수반되어 우리의 의식 또한 계속 변화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의식의 변화라 해서 거창한게 아닙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틀린게 아니라 다르다는것을 인식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다른 생각을 갖는게 당연한거고, 다른 습관과 다른 삶을 방식으로 살아가는게 당연 합니다. 그들이 틀린게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거...인격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 풍토가 조성된다면 필자의 글 또한 무의미해지는 사회...이런게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03 1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가 억압하는 것은 여성만이 아니죠. 남성의 선택권도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더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서로를 이해하며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12. 여자 2017.04.13 0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장에선 이미 기계다루고 회의장소설지 등 남자와 동등한 업무를 맡고있다 단지 힘쓰는일에서 힘이 남자보단 모자라 도움 받긴하지만. . 그러나 가정에서는 여전히 집안일 애보는 일 시댁눈치보며 잡일 등 전부 내차지다. 다른 남자들과 비슷한일을하고 가면 나도 힘들어서 눕고싶고 쉬고싶은데 다시 밤일을 하는 기분이다. 회식도 남자들처럼 새벽끝까지 함께 즐겨보고 싶으나 남들 눈엔 가정은? 아이는? 먼저들 걱정해준다 그럼 당신네의 아이와 가정은 어떻고? 암튼 늦게가면 이혼감이라 말하는 남자들. . 여자라서 집에서 밥하고 설거지하고아이보고 새벽마다 깨서 이불덮어주고 이럴려고 결혼해서 힘들려고한것은 아닌데 단지 남자보다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이런대접과 더 많은 일을 해야한다는 것에 화가난다. 힘만 강했더라면 못할것이 뭐가있나 용접? 왜 못하나 할 수있다. 다만 가정 일을 분담해서 피곤에 안찌들면 더한것도 하겠지. . 우선 구조적으로 여잔 힘이 약하고 남잔 섬세한면과 멀티가 안되는 것에 서로 도우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빨래도 세탁기가 하는데 세탁물 세탁기에 넣고 옷 널고 개키고 뭐가 어려워서 안하는가 그정도는 일이 아닌가? 가끔이야 아무렇지도 안겠지 티도 안나는 일 매일해보면 그것도 귀찮은 노동인거다 물론 힘이 필요한 벽돌 나르기등 힘이 안되서 남자10장 옮길때 여잔 5장 옮겨서 일의 효율이 없다고하겠지 하지만 그 일을 여잔 못한다하지 말길 악으로 깡으로 할수 있다

  13. 생각하는 2017.05.11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들이 노력해 얻어낸 것이 아니면서 남자들 중에서는 어떤 권리가 자신 것들이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겐 그럼 넌 그것들을 누리기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고, 처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무언가를 받아낸 사람이 너를 무시하면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고 말해 주세요. 의외로 자신이 몰랐던 것을 면전에서 지적당하면 정말 생각머리가 없지 않고서야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영, 집안일과 육아는 절반씩 분배가 안 돼. 나도 둘째 낳고 남편이랑 정말 많이 싸웠는데 결국 해결 방법은 사람을 쓰는 거였어.”


한 선배가 해준 말이었다. 아이 한 명을 낳고 복직한 2014년, 하루하루가 진이 빠질 때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는 아이 친정엄마께 맡기고 출근하고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재워야 하는 세 살 아기가 있었다. 아이는 하루에 옷을 두세 번씩 갈아입어 빨래는 산처럼 쌓이는데 평일에는 빨래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정엄마가 아이 빨래를 해주셔서 겨우겨우 일상이 유지됐다. 청소, 아이 반찬, 어른 빨래, 분리수거 등등. 무엇 하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자 선배들의 빳빳한 와이셔츠를 보면 누가 다려줬을까 생각했다. 부부의 역할 분담이 전형적인 남녀의 성역할로 분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선배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고 난 그들에게 이해받기 어렵겠다 피해의식이 생기기도 했다.

 

두 번째 휴직. 아이가 어릴수록 집안일의 양도 많아지는데 아이가 둘이 되니 제곱이 되는 느낌이다. 아이 둘을 밥만 먹였는데도 진이 빠지는데 그때마다 서른이 되어 결혼할 때까지 밥을 차려주신 친정엄마의 노고가 떠오른다. 반찬 투정을 하면 왜 엄마가 화를 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아 이제야...

 

아이가 둘이니 빨래는 이틀에 한 번씩 돌린다. 세탁기가 다 돌아가면 널고 마르면 접고. 청소를 하고 소파 밑에 들어간 아이 장난감들을 꺼내 정리하고 아~주 가끔 물걸레질을 한다. 큰아이 반찬을 만들어야 하고 작은아이 이유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내 밥은 늘 뒷전이다. 왜 엄마들은 남은 밥을 먹는지 아는가. 자기 밥을 먹을 시간이 없어서다.

 

최근 유치원 친구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집안일은 반반씩 안 돼. 사람을 쓰는 것도 또다른 스트레스야. 결국 방법은 하나야.” “뭔데?” “기계를 들이는 것.”

 

그 말을 듣고 물개박수를 쳤다. 정말 여성 해방은 가전제품이 가져다줬구나. 우리 둘은 새로 나온 빨래 건조기를 꼭 사야 한다며 맞장구쳤다. 마침 최근 신문 경제면에는 날개 돋친 듯 팔리는지 건조기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는 사진이 실렸고 다른 기업도 건조기 생산을 시작했다는 기사도 실렸다. 역시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 식기세척기, 빨래 건조기, 로봇청소기는 복직 후 꼭 구매해야 할 가사노동 기계들이다.


본인이 먹을 이유식을 보는 둘째. 

 

집안일... 해도 태가 나지 않는다고 다들 말한다. 매일 해야하는 반복된 작업이지만 안 하면 생활이 불편해지는 일. 휴직하고 주부로 지내며 음식을 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그동안 내가 집안일의 중요성을 얼마나 몰랐는지 깨닫는다. 항상 가사노동에 대해 생각하면 왜 분배가 절반씩 안 되는가에 분노에 집중했었는데(;;;;) 요즘 집안일에 제법 흥미를 느끼게 됐다. 내가 인터넷 레시피를 따라 해도 제법 맛이 나올 때, 그걸 가족들이 맛있게 먹을 때, 음악을 틀어놓고 경쾌하게 설거지를 하고 그릇이 깨끗해지는 것을 볼 때, 시금치를 생협에서 마트보다 싸게 살 때, 빨래를 가지런히 접어놓을 때 같이 단정해지는 기분을 느낄 때 등.

 

그런데 역시 그런 경쾌하고 단정한 마음을 한 번에 후려치는 말들이 있다. 가사노동과 육아를 전담하는 전업맘며느리에게 우리 며느리 놀잖아. 아들만 불쌍해 죽겠어같은 말들. 왜 가사노동이 노는 것인가! 육아가 어찌 노는 것인가! 내가 해본 어떤 일보다 힘든데 말이다. 남편도 훈련소 때보다 힘들다고 했다.

 

그러다 문득 집안일이 우라까이 기사’(타사보다 보도가 늦어 타사 기사를 베껴쓰는 것) 쓰는 것 같다는 들었다. 반복되는 일이라서가 아니라 인정받는일이 아니라서. 그런데 매일매일 우라까이 기사를 쓴다면, 그래서 매일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으로 일한다면 그 일상은 어떨까. 사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을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왜 근데 집안일과 육아는 사회적으로 대단하다고 인정해주지 않는가. 인정하는 순간 돈을 지불해야 해서 아닌가. 워킹맘들은 가사 노동 때문에 사람을 고용하거나 기계를 사지만 가사노동에 돈을 쓸 것을 결정하는 것도 결국 여자다!

 

친정엄마는 스물네 살 결혼하면서부터 가사노동을 직업으로 삼았으니 벌써 36년째다. 엄마가 음식을 만드시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깨달았다. 집안일도 창조적으로 할 수 있다! 엄마는 밥을 차리면서 마구잡이로 음식을 놓지 않으신다. 식으면 안 되는 음식, 양념을 마지막에 가미해야 하는 음식을 다 구분하고 순서대로 놓으신다. 심지어 빨래도 엄마가 접으면 훨씬 깔끔하고 청소도 엄마가 하면 훨씬 깨끗하다!! 숙련 노동의 힘이겠지. 예전엔 엄마 그냥 대충해요한 적도 많았는데 이제 그런 말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엄마는 엄마의 노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인데 누가 감히 대충하라고 하는가.

 

그러나 한편 두 아이를 기르면서 내가 인생 어느 때보다 많이 웃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엄마의 삶을 한편 부러워하게 된다. 이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한껏 보지는 못하게 될 내 상황이 과연 좋은 건가 되묻는 나를 볼 때 왜 아무도 내게 육아와 집안일이 이렇게 귀하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나 싶다. 이 귀한 일을 누가 폄하하는가.


주꾸미가 먹고 싶어서 주꾸미볶음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어릴 때부터 집안일이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집안일 지능을 길러줘야 한다. 신혼 때 빨래하고 마른 수건을 접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결혼이라는 형식으로 독립해서 제대로된 집안일은 처음이었다. 이런 사소한 집안일도 엄마가 다 해주셨다는 걸 깨닫고선 엄마가 그립고 미안하고 보고싶어서 자주 울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대학, 직장까지 편하게 집에서 다니면서 집안일에는 거의 손대지 않았다. 엄마는 상견례 자리에서 우리 애가 아무것도 할줄 몰라요라는 의례적인 인사를 진심으로 했고 시어머니는 요즘 다 그렇죠. 같이 살아가며 배우면 되죠라고 하셨다.

 

다행인 건 남편이 신혼 초 나보다 집안일 지능이 높았다는 것이었다. 스무살 때 서울에 올라와서 그때부터 자취를 했던 남편은 김치찌개, 떡볶이를 만들 줄 아는 남자였다. 떡볶이를 얻어먹으면서 중고등학교 시절 청소와 설거지를 아들의 일로 규정하셨던 예비 시어머니를 감사하게 생각했다. 남편의 집안일 지능은 어릴 때부터 형성된 것이었다. 일하셨던 시어머니는 남편이 집안일을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셨다. 지금도 내게 경상이랑 같이 해라고 말씀해주신다. 역설적으로 여자인 나는 집안일을 거의 안 해봐서 할 줄 몰랐는데 이것만 봐도 집안일 지능이 여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다.

 

나영석 피디의 <신혼일기>에서 구혜선 안재현 부부는 가사노동 문제로 다툰다. 신혼 초 가사노동을 분배하면서 벌이는 한국 부부의 전형적인 말다툼을 연예인들도 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꾼 남편보다는 걸레질 잘하는 남편이 최고지.’

 

한 출입처에서 일할 때였다. 진보적으로 알려진 한 인사는 인권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잦았다. 남자 직원들만 회식 자리에서 모아 중요 의사결정을 하는 등. 오히려 내가 정치적으로 비판했던 보수적인 인사는 집안일을 잘 하는 남편으로 유명했다. 그때 타사 기자와 나눈 얘기. “목소리 높여 진보와 인권을 외치는 가부장 남자와 보수적이나 가사노동에 협조적인 남자, 누가 나은가?”

 

잘 모르겠다. 남편만 봐도 한국 남자 모두 집안일 지능이 낮은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부모, 주로 엄마가 어떻게 아들을 키웠는가가 집안일 지능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론은 아들들을 잘 키우자. 집안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릴때부터 가르치자. 아들만 둘 낳은 내가 귀담아 실천해야 할 말. 그래서 두진이는 빨래를 자기 손으로 빨래통에 가져다놓고 다먹은 그릇을 개수통에 가져다놓는 집안일을 시작했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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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3.22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샘맘 2017.03.25 0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와닿는 글이네요.나이41에출산해서 두돌안된 남자아이와 초등 큰딸을 챙기는게 너무 버겁기도하고 남성우월주의 남편을 두고 같이 한평생을 살아야할 엄두가 나지않아 어제 한바탕 뒤집었는데 님의 글을 보며 맘 달래고가네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3.28 2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남성우월주의 남편 ㅠㅠ 뭐라 위로드려야할지 모르겠지만... 가끔 남편이 집안일 센쓰가 정말 떨어질 때!(신혼 땐 저보다 앞서 있던 지능이 왜 진화되지 않는지.... 저는 하나도 할줄 몰랐지만 급 진화됐습니다 한국 여자의 팔자인가요ㅠㅠ) 저는 아들을 잘 키워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합니다... 별로 위로가 되는 댓글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힘내셔요.....!

  3. Sy 2017.04.02 0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하고 아이낳고 나서 제가 매일 했던 생각을 정말 똑같이 하셨네요, 눈물날 정도로 공감합니다:). 글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4. 진재모맘 2017.04.23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오빠 둘 있는 막내딸인데
    어려서도 친정엄마가 "시집 가면 다 해!"하고 안시키셨고 오빠들은 "이혼사유야"라며 양말 옷 뒤집어 벗지 않기 세면대 물기닦기 등 엄하게 시키셨더랬어요
    가사 육아
    세상 제일 힘든 일이에요 정답도 없구요
    지금도 친정 오빠 둘은 집에서 청소기 돌리고 집안일을 많이 해요 저는 어린 나이에 일찍 결혼해서 시엄마가 지금도 반찬 다 해주시고요~
    팔자가 있다지만 친정엄마가 현명하셨단 생각이 들어요
    저도 두 아들 엄하게 훈련시키고 있답니다^^

"아들 둘을 키우면 욕을 달고 살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들 둘을 낳게 되자 가끔 이 말이 떠오르는데... 어제 오늘 '샤우팅'의 연속이어서 더 그렇다(아직 '이눔시키' 정도의 욕(?)만 하고 있다는 게 다행인 지점). 설 연휴가 지났고 결국 병이 났다. 오늘 모유수유 중이어도 먹을 수 있는 약, 타이레놀을 먹고 3시간을 자고나니 좀 나았다. 둘째 아이를 낳고 벌써 네번째다. 몸살, 감기, 두통 등. 일할 때는 이렇게 아픈 적이 없었다. 체력 하나는 믿을만 했는데. 왜 아팠는지 생각해보다가 결국 체력 방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휴직 중인 내 하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오전 8시> 기상. 남편과 내가 먹을 야채주스를 급히 갈아 마시고 50개월 아들 아침을 차리고 8개월 아들 이유식을 데운다. (그 사이 둘째는 칭얼대고 첫째는 '엄마 이것 좀 해줘, 저것 좀 해주세요' 요구사항을 외친다) 


<오전 8시30분> 애들 아침 먹이기. 내 주스는 거의 흡입하지만 애들 밥 먹이기는 30분 넘게 걸린다. 아이들은 밥먹는데 집중을 하지 못한다. 밥상에 앉혀놓은 첫째는 둘째 이유식 먹이는 사이에 어딘가로 사라지고 "어디 갔어! 밥 먹을 때는 밥먹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랬지!" 1차 샤우팅. 첫째는 늘 놀고싶어서 밥먹는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둘째도 그 사이 부스터에서 탈출하고 싶다며 칭얼댄다. 새로운 장난감을 부스터에 놓아줘야 할 타이밍. 급히 주변 장난감을 살펴보고 아무거나 하나 집어(그러나 둘째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놔준다. 그 사이 입을 벌릴 때마다 이유식을 먹인다(아니 집어넣는다). 그러는 사이 첫째는 입 안의 밥을 씹지 않고 물고 있다. "물고 있지 말고 씹으라고 했지!" 2차 샤우팅..... 어찌어찌 밥을 다 먹이고 설거지통에 애들 밥그릇을 담가놓는다. 설거지통이 쌓이기 시작한다.


<오전 9시> 이유식을 만들어야 하는 날이다. 고구마브로콜리치즈죽을 만들기로 했다. 고구마, 브로콜리를 계량해서 준비하고 편수냄비에 물을 데운다. 준비한 고구마, 브로콜리를 데치거나 삶는다. 브로콜리를 먼저 꺼내면 된다. 그 사이 첫째 블럭을 둘째가 만져서 다 부서졌다. 첫째가 둘째 머리를 밀어 넘어뜨렸다. "동생 밀지 말라 그랬지!" 3차 샤우팅. 첫째를 붙잡고 왜 동생을 밀면 안되는지 설명한다. 그 사이 편수냄비 속 고구마 담긴 물이 끓는다. 부엌으로 달려간다. 고구마를 꺼내 브로콜리와 함께 미니믹서기에 살짝 간다(도저히 다지는 건 못하겠다). 편수냄비 속 야채 삶은 물은 컵에 부어놓고 불려놓은 이유식 중기 쌀을 냄비에 살짝 끓인다. 쌀이 끓으면 믹서기에 담긴 고구마+브로콜리를 붓고 컵에 부어놓은 야채 삶은 물까지 부어 끓인다. 첫째와 둘째 장난감 쟁탈전은 계속된다. 소리지리는 것도 포기한다. 대신 가끔 노려봐준다. 둘째는 아직 모르지만 첫째는 엄마 눈빛을 감지하고 잠시 잠잠해진다. 편수냄비 속 재료들이 끓으면 불을 줄여 5분간 더 끓인다. 1분 남았을 때 치즈를 넣어 섞는다. 그리고 글라스락 210ml 이유식 용기 4개를 꺼내 하나씩 담는다. 이유식 4일치 완성. 지금은 이유식 중기라 하루에 두번 먹인다. 고기를 주재료로 한 이유식 + 야채 이유식. 하루 두번 씩이니까 일주일이면 14개 이유식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두번씩 4가지 메뉴를 만들고 있다. 이제 곧 9개월, 이유식 후기로 들어가면 하루 3번 이유식을 먹어서 21개 이유식이 필요하고 6가지 메뉴가 필요하다. 그래도 둘째라 훨씬 수월하다. 예전보다 남은 재료를 덜 버린다. 딱 그만큼 요령이 생겼다.


<오전 10시> 소아과 갈 준비. 둘째가 모세기관지염이다. 첫째 목감기에 옮았는데 어려서인지 기관지염까지 왔다. 목에서 쇳소리가 나는데 짠하지만 보채니까 엄마도 너무 힘들다. 소아과에 가려면 애들 옷을 입혀야 한다. "아 언제쯤 혼자 옷 입을래"라는 말이 튀어나오지만 아무도 대꾸를 해주지 않는다. 애들 옷 입힐 때는 순서가 중요하다. 첫째를 먼저 입혀야 둘째를 입힌 후 바로 유모차를 태울 수 있다. 둘째를 먼저 입혀놓고 방치하면 울어버린다. 둘째는 손발이 나오지 않는 우주복을 입기 때문에 옷을 답답해한다. 내복만 입은 첫째 양말부터 신긴다. 양말을 신긴 뒤에 기모바지를 입혀야 내복이 속에서 안 올라간다. 양말을 신으라고 던져주고(?) 나부터 옷을 입는다. 첫째가 그래도 양말을 혼자 신고 바지를 혼자 입을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나... 그 와중에 첫째는 골라준 바지가 맘에 안든다고 타박한다. "아!" 혈압이 오르지만 화내봤자 소용없다. 자기 스타일을 고집할 수 있을 만큼 컸다는 얘기다. 말을 잘 들어주는 민주적인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화가난다 화가난다. 그사이 둘째는 칭얼댄다. 요즘 아파서 부쩍 칭얼대는 주기가 짧아졌다. 그러나 다 받아줄 수가 없다. 첫째 상의를 대충 입혀준 뒤 패딩을 입힌다. 아이들은 보온이 중요하다. 목도리, 마스크, 모자까지 입혀주고(?) 장갑은 스스로 하라고 준다. 그러면 둘째 차례. 아직 걷지 못하는 8개월 둘째 양말을 얼른 신기고 우주복을 입혀 유모차까지 태웠다. 10분도 안 걸리는 일이지만 너무 힘들다. 이미 하루 에너지 다 소진된 느낌.


<오전 10시10분> 집을 나선다. 눈이 온 뒤로 이면도로는 길이 미끄러워서 유모차가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첫째가 넘어지지 않게 계속 주의를 준다. "그쪽은 얼음이 얼었으니까 이쪽으로 와 두진아" 그 말을 열번쯤 하니 10분 거리의 소아과에 도착했다. 그 사이 첫째는 자기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고 단 한번 칭얼댔다. 오늘은 매우 양호하다. 게다가 웬일인지 소아과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바로 진료를 봤다. 병원에 오래 있는 건 힘든 일이다. 그만큼 아이들이 병원에서 감기가 심해질 확률도 높아진다. 선생님은 두진이 보고 먼저 진료를 보자고 했지만 "이준이부터 하기로 했잖아"라며 갑자기 떼를 쓴다. 언제 이준이부터 하기로 했지. 그런 적이 없는데. 황당하지만 참는다. 아이하고는 싸움이 되지 않는다. 의견이 다르다고 협상하고 논쟁하는 건 불가능하다. 급히 둘째부터 진료를 본다. 청진기를 배에 대자마자 울기 시작한다. 버둥대는 아이 두 손을 꼭 잡고 의사선생님이 목, 귀를 살펴보실 수 있도록 힘을 준다. 그와중에 첫째는 "이준아 병원에서는 울면 안돼" 참견한다. 너도 얼마나 울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겨우 둘째 진료를 보고 첫째를 앉힌다. 둘째 모세기관지염이 아직 다 낫지 않아 호흡기치료를 해야 한다고 한다. 아... 5분간 코와 입을 둥그런 기구로 가리고 있는 치료다. 8개월짜리는 5분 내내 버둥댄다. "이준아 호흡기 치료 잘하라 그랬지" 첫째는 엄마 말을 따라한다. 창피하다. 겨우겨우 끝내고 처방전을 받아 1층 약국으로 내려간다. 약을 기다리며 시계를 보니 겨우 10시40분. 이미 하루 에너지를 다 썼다. 소아과만 안 가도 30%는 덜 힘들 거다. 아이가 아프면 그만큼 더 체력이 소진된다. 


<오전 11시> 집에 돌아왔다. 거실과 작은 방은 장난감에 뒤덮여있고 부엌도 엉망이다. 웬만하면 청소를 미루고 싶지만 청소기만 대충 돌린게 며칠째다. 둘째 기관지염 생각을 하니 먼지도 좀 청소해줘야 할 것 같다. 게다가 둘째가 집으로 돌아오는 유모차 안에서 잠들었다. 청소 적기다. 놓칠 수 없다. 얼른 거실 매트 위에 깔려있는 장난감을 정리한다. 작은 방에 깔려있는 레고도 레고정리함에 담는다. 아!!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 4차 샤우팅. 엄마가 어린 시절 하던 레퍼토리를 똑같이 한다. 첫째는 듣는둥마는둥 옆에서 더 어지른다. 포기다. 어지르는 것보다 더 빨리 치우면 된다. 대충 장난감을 다 밀어넣고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청소기 소리가 나자 첫째가 본인의 장난감 청소기를 들고온다. 도와주기 바라지 않으니 방해만 하지마,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렇게 집안일을 해봐야 나중에 시킬 수 있지 싶어서 호응해준다. "아 우리 두진이 잘하네~" 안방, 거실, 작은방, 부엌 바닥을 청소기로 민다. 다음은 물걸레질.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는 물걸레질. 안하고 싶다. 그러나 이미 걸레를 잡았다. 기관지염이잖아. 물에 적셨다. 그리고 짠다. 하나만 가지고 나오니 첫째가 자기 것도 달라고 야단이다. 그냥 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하나 더 적셔서 준다. 안방, 거실, 부엌, 작은 방 순서대로 걸레질을 한다. 집이 좁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와중에 둘째가 깼다. 운다.


<오전 11시30분> 둘째 수유를 하고 아기띠로 업었다. 내려놓으면 또 첫째랑 장난감 다툼을 하고 중재를 해야 하니 이럴 땐 분리를 시키는 게 낫다. 업고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한다. 허리가 아프다. 그와중에 첫째는 "엄마, 레고 기차 만들고 싶어"라 말한다. "엄마 설거지해야 하니까 좀 기다려" 무마한다. 부엌 정리를 끝내니 정오가 됐다. TV 뉴스를 켠다. 드디어 소파에 앉았다.


<오후 12시30분> 그러나 금방 점심 시간이다. 첫째는 방학이 6주다. 병설유치원 로또를 내 손으로 뽑았지만 방학이 6주는 정말... 너무 힘들다. 왜 어릴 때 엄마가 동생과 내 방학을 힘들어했는지 이제 알겠다. 유치원 다닐 때는 그래도 점심은 먹고 오는데. 점심을 준비해야 한다. "뭐 먹을래? 계란밥, 치킨너겟, 주먹주먹" 선택지를 주면 첫째는 80% 계란밥을 선택한다. 계란후라이를 하면서 치킨너겟도 튀긴다. 간장과 참기름, 계란후라이를 밥에 비벼서 치킨너겟과 김치, 밑반찬과 먹인다. 벌써 혼자 서기 시작한 둘째는 열심히 기어 화장실, 작은방, 안방, 베란다 등등을 넘본다. 첫째 밥을 먹이면서 계속 열려있는 문을 닫는다. 문을 닫을 때마다 둘째가 칭얼댄다. 그러나 어쩔 수없어 지금은 형 밥을 먹여야해. 그러나 첫째는 또 밥을 물고 있는다. "엄마가 밥 물고 있지 말라 그랬지!" 6차 샤우팅.... 


<오후 2시> 밥먹고 잠시 쉬었으나 빨래를 해야 하는 날이다. 아기가 어리면 빨래 양도 많다. 대소변을 아직 못 가리니 옷을 버릴 때도 많고(기저귀가 샐 때도 많다......양이 많아서.....) 체온이 조절이 잘 안되니 땀도 많아 자주 갈아입는다. 빨래는 거의 이틀에 한 번은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빨래는 세탁기가 한다. 빨래가 돌아가기 시작하니 소파에 잠시 앉자 했지만 이제부터 '같이 놀자' 시간이다. 책 읽어달라고 가져오는 첫째, 레고 만들어달라고 가져오는 첫째, 블럭 같이 만들자는 첫째. 둘째 때문에 육아휴직을 했는데 둘째는 모유수유만 하고 있는 느낌이고 하루의 80%를 첫째를 위해 쓰는 것 같다. 놀이에 집중하고 싶지만 둘째는 계속 사고를 친다. 형아랑 책을 읽고 있으면 부엌으로 기어가 놀다가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울고. 그러면 데려와서 토닥토닥해주고. 형아랑 블럭 만들고 있으면 옆에서 방해하다가 형아한테 한대 맞고 울고. 그럼 형아를 또 훈육해야 한다. 중재와 훈육, 협박의 연속이다.


<오후 3시> 빨래가 다 됐다. 다리에 매달리는 둘째와 '놀자' 공격을 펼치는 첫째를 어찌어찌 막고 다 널었다. 그런데 둘째가 운다. 졸린가보다. 귀를 긁는다. 아기띠로 업었다. 아니 근데 소파에 이건 뭐지. 점심 먹다가 흘렸나. 아! 똥이다!!! 기저귀가 또 샜나보다. 아니 뭔 똥을 이렇게 많이 눴어 말하는 찰나 아!!!!!!!!!!!!!!!!!!!!!!!!!!! 아기띠에도 묻었을 것이다. 좀전에 업었으니까. 바로 애를 내려놓으니 역시나 범벅이 돼 있다. 정말 울고 싶다. 울고 싶은 건 나인데 내려놨다고 둘째가 운다. 얼릉 옷을 다 벗기고 기저귀를 갈았다. 안아주지 않고 옷을 입힌다고 계속 버둥대며 운다. "옷을 입어야지 안아주지!!!!!!!!!" 7차 샤우팅... 겨우 옷을 다 입히고 안았다. 그때 갑자기 기침을 하는 둘째. 기관지염 때문에 기침이 잦다. 근데... 기침 끝에 먹은 모유를 다 뱉어냈다. 안고 있는 내 옷과 본인 옷이 다 젖었다. "토하면 어떡해!!!!!!!!!!!" 8차 샤우팅.... 이제 정말 눈물이 나온다. 옷을 다시 갈아입혀야 한다. 내 옷 먼저 갈아입고 울면서 버둥대고 있는 둘째 옷을 갈아입힌다. 소리소리 운다. 그래 옷을 갈아입어야 안아주지. 이제 포기 상태다. 포대기랑 소파 패드를 빨아야 하는데 하는데...


동생에게 발 내미는 현장 포착. 이미 둘째는 울음보 터졌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겨우 3시까지 밖에 적지 않았는데 양이 저 정도다. 저녁에는 이유식과 밥을 또다시 먹였고 목욕도 시켰으며 잠도 재웠다. 일할 때보다 퇴근이 더 늦다. 혼자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입지도 못하는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전쟁이다.  


첫째 휴직 중에 남편이 퇴근할 시간에 맞춰 매일 버스 정류장 앞에서 기다렸다. 혼자서 하루종일 너무 힘들었고 말도 못하는 아이랑 하루종일 있는 것은 우울 그 자체였다. 가끔 남편이 예고 없이 늦는 날은 정말 너무 화가 났다. 둘째 휴직 후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말 못하는 아기와 단둘이 있다는 고립감은 이제 말을 잘하는 첫째와 근처에 사시는 친정엄마 덕분에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 아이가 둘이 됐다는 점이다. 체력이 세네배가 필요한 것 같다. 청소, 빨래, 밥 등은 2배가 될 줄 알았지만 첫째와의 상호작용, 첫째와 둘째 갈등 조정을 계산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은 것도, 모유수유를 할 수 있는 것도 나지만 나는 자주 남편이 육아에 더 맞는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육아는 매일 반복되는 일을 지치지 않고 무던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매일 새로운 일을 찾고 넓은 공간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야 행복해지는 전형적인 외향형 인간이다. 그런데 육아는 그 모든 것을 제한한다. 집에 갇혀(?) 있어야 하며 주로 만나는 사람은(99%) 50개월, 8개월 아들 둘이다. (그나마 내 외로움을 줄여주시는 친정엄마께 무한 감사를....) 남편은 내향형 인간에다 참을성이 있다. 반복되는 일을 나보다 잘 견디며 괴로움을 덜 느끼는 것 같다. 모유수유가 아니었다면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본다.


옛날 사람들도 '애를 보느니 밭을 매겠다'라고 했다며 복직한 아는 엄마들은 말한다. 육아보다 일이 덜 힘들다고. 일이 노동강도가 약해서가 아니다. 일이 육아보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크기 때문이다. 육아는 내 의지로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최근 복직한 한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밥을 내 맘대로 먹고 커피를 내 맘대로 마시는데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행복했어요." 그렇다. 육아는 밥먹는 것, 자고 싶은 것, 쉬고 싶은 것과 같은 기본적 욕구를 제한한다. 그래서 더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일테다.


특히 24개월 이하 아이들은. 내가 육아휴직 2년(남녀 1년씩)을 주장하는 이유다. 첫 1년은 모유수유하는 엄마가, 그다음 1년은 아빠가 하면 완벽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24개월만 지나면 조금 사람이 된다. 말도 한다!! 


그러니 더 걱정이다. 말도 못하는 돌 갓 지난 둘째와 자기 주장이 점점 더 강해지는 첫째를 친정엄마에게 맡긴다는 것이. 젊은 내가 봐도 병이 나는데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우리 엄마는 얼마나 힘들까. 아프시면 어쩌나. 왜 우리 엄마는 할머니가 되어도 육아가 끝나지 않는가. 


빡센 육아를 부모에게 허하라. 특히 체력이 좋은 아빠에게 허하라. 아빠들의 체력을 직장에서 다 쓰지 않도록 남겨달라. 부디.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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