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후 한 달 소진증후군’, 그리고 아빠>

 

어느 새 복직 후 한 달이 됐다. 816일에 복직했으니 정말 한 달. 출근하고 하루만에 감기에 걸려 복직을 실감했다. 심한 감기는 아니었는데 코가 막히고 목이 붓기 시작해 바로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왔다. 실감이 났다. '회사로 돌아왔구나.' 

 

그리고 4주가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평일에는 출근하고 퇴근하고 아이들 재우다 뻗었고 주말에는 각종 집안일을 챙기고 아이들과 놀다가 뻗었다. 한 달이 지나고서야 이렇게 끄적일 시간이 난다. 어제도 애들 재우다 뻗었는데 웬일인지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노트북 앞에 앉았다.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체력이 관건이다. 출근길 열심히 타지를 체크하고 출근하자마자 아침 보고를 하고 하루종일 보고를 하고 기사를 쓰다 보면 퇴근 시간이 넘어간다. 사실 이 일이 퇴근 시간이라는 게 명확하게 없어서 집에 와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기사를 살펴보고 메일을 체크하다보면 아 내가 복직했구나를 실감하곤 했다. 물론 아직 새로운 담당에 적응을 완전히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한 달 동안 오랜만에 일터로 나와서인지 계속 배가 고팠다. 한 번은 선배랑 저녁으로 떡볶이를 먹고 났는데 양이 부족했는지 혼자 회사 아래 빵집에 들어가서 빵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났는데도 빵을 먹는 스스로를 보며 휴직 때보다 체력 소모가 커지긴 했구나싶었다. 그래도 한 달이 지나니 많이 적응했다. 이제 배가 많이 고프진 않다. ㅎㅎ

 

 

아이들은 생각보다 적응을 잘 하고 있다. 둘째 이준이는 무던해서인지 엄마가 출근할 때 곧잘 손도 흔들어준다. 복직 첫날 뭔가를 알았는지 서글프게 울더니 그 다음날부터는 크게 울지 않았다. 자신의 분리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겠지 싶으면 너무 짠하지만 뭐 어쩔 수 없다. 적응을 해야 하니까 이준이도 나도. 그래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종종거릴까봐 많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아직까진 수월하다. 종알종알 말이 많은 첫째 두진이도 잘 적응하고 있다. 물론 엄마 야근하는 거 싫어. 엄마 오늘도 회사 가?” 물어보긴 하지만... 뭐 울고불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걱정은 덜었다.

 

남편의 육아 부담은 늘었다. 아침에 친정엄마가 두 명을 다 등원시키긴 쉽지 않고 해서(첫째 유치원과 둘째 어린이집은 반대 방향에 있다) 남편이 두진이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출근한다. 내가 먼저 출근하고 나면 애들 밥을 먹이고 씻겨 옷을 입혀놓고 두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준다. 매일 두진이가 유치원에 일찍 안 들어가려고 해서 지각할까봐 뛰어다니느라 전쟁이다. 두진이는 친구들이 없는 유치원 교실에 들어가기 싫다고 매일 유치원 현관 앞에서 늑장을 부린다고 한다. 일찍 들어가게 하는 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데 아침마다 빨리 밥 먹어라, 빨리 들어가라 전쟁 전쟁.

 

제일 고생하는 사람은 당연히 우리 엄마. 아이들이 하원하고 나나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을 돌보신다. 한두 줄 묘사하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고생하고 계시겠지. 고등학생인 아들을 친정엄마가 다 키워주셨다는 홍보팀 차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말했다. “제 바이라인에는 언제나 엄마 이름이 숨어있죠.” 더 말하면 울적해지기만 하니까 여기까지.

 

그러다 이준이가 주초부터 장염에 걸렸다. 심하진 않은데 먹을 것을 가려야하다 보니 어린이집에 가기 어려워졌고 다시 아이는 할머니 차지. 엄마가 힘들지 않게 조율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서 잠시 짜증이 났다. 화가 나는 대상은 없는데 상황에 화가 나는 이상한(?) 상황. 두진이를 낳고 돌아왔던 회사 생활에서도 늘 겪던 일이다. 다행인 건 그때만큼 심하게 화가 나지 않는 것.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회사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다행히 감정 조절은 잘 되고 있는데 한 달이 지나니 슬슬 소진증후군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다. 피곤함이 잘 해소되지 않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한 달인데.

 

나는 왜 일을 하는가. 친정엄마의 헌신 덕분에 일을 하는 고마운 팔자에 일을 제법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긴 노동시간을 당해낼 재간은 없는 건지. 출퇴근 시간 포함해 하루의 절반을 회사를 위해 보내야 하는 일상. 화요일에는 11시까지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잠시 아득해졌다. ‘나는 왜 일을 하는가.’

 

자꾸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일을 했을까. 야근이 끝나고 지하철역을 나와 집으로 걷는 길 저벅저벅 집으로 걸어가는 수많은 남자들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퇴근했을까.’

 

어릴 때 아빠는 평일에 볼 수 없었다. 거의 내가 잠든 뒤에 아빠는 퇴근했고 주말에만 볼 수 있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좋았던 기억이 많다. 주말에는 가족이 같이 등산도 했고 점심에 라면도 끓여 나눠 먹었고 목욕탕에 넷이 가서 두 명씩 남탕, 여탕에 들어갔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래도 주로 남아있는 기억은 방학 때 엄마와 동생과 지내던 기억이다. 아빠는 늘 회사에 있었으니까.

 

그걸 원망했던 적은 없었다. 그게 당연한 삶이었으니까. 6일 회사에 투신하고 토요일 오후 늦게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삶.

 

내가 회사원이 되고 나서야 아빠의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사회부 경찰팀에서 일할 때 당시 팀 분위기 때문에 징그러울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다. 회식 자리에서 내 앞에 앉아 있는 경찰 아저씨(?)를 보며 경찰 아저씨는 이 자리가 즐거울까생각하다가 집에 돌아와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도 술을 마시고 싶어서 마신 것은 아니었구만요? 고생하셨네요...” 회식 자리에 앉아 있으며 계속 생각했다. 회사 일이라는 명목으로 술을 마시며 영업도 하고 인간관계도 유지하기 위해 고민했을 아빠의 삶에 대해.

 

아빠는 은행원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 때였다. 그날도 역시 내가 잠든 뒤 퇴근한 아빠가 화장실에서 피를 토했다. 그 소란에 깨서 화장실 타일 바닥에 흥건한 피를 보고 놀랐던 어린 나. 과도한 노동, 과한 회식 문화, 과로가 겹친 일이었을 게다. 그 장면은 너무 생생해서 내가 회사원이 된 뒤 소진된다고 느낄 때마다 떠올랐다. 더 슬픈 건 그렇게 소진되도록 부려먹었던 회사가 아빠를 버린 건 40대 중반이었다. IMF 때 명예퇴직한 아빠는 그 후로 20년을 계약직으로 사셨다.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일했을까 생각하다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밥벌이를 한다는 것에 대한 서글픔이 몰려온다.

 

애써 일이 좋아서라고 말하지만 나는 크게 다른 걸까. 복직 전 이게 제일 두려웠다. 회사 일 때문에 절반이 넘는 시간을 써야하고 주말에만 겨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삶. 그리고 그동안에 소진되어야 하는 쳇바퀴. 나는 엄마와도, 아빠와도 다르게 살고 싶었는데 힘들어보였던 엄마, 아빠의 삶을 넘어서기는커녕 어떤 면에서는 더 나빠졌다는 것을 깨달을 때.

 

한 취재원은 아이가 5살, 2살이라고 했다. 토요일에 아내 생일이었는데 금요일 저녁 약속이 생겨 갈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혹시 이 자리를 가지 않으면 멋훗날 내가 그 자리를 갔어야 했는데 후회하지 않을까, 아니 이 자리를 나가면 내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내 생일인데도 새벽에 들어가면서 '이게 뭔가' 싶었다고. 후배는 말했다. "선배 전 일-가정 양립이라는 말도 이상해요. 가정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요?" 아... 그러게 말이다.

 

내 아이들에게는 이런 생각을 하게 하고 싶지 않다. 일 때문에 소진된다는 생각. 소진될 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밀려날 수 있다는 생각. 늦게 퇴근하는 축 처진 어깨들도 물려주고 싶지 않다.

 

답은 어디에 있을까. 노동시간 단축을 말하는 게 뻔한 답인지 알면서도 멀고 먼 길이라는 게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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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체아 2017.09.16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복직, 아이의 적응, 답없는 상황에 대한 화, 감정 조절, 풀리지 않는 피로, 취직하고 나서 이해할 수 있게 된 아빠, 일을 히는 이유에 대한 끝없는 고민, 일과 가정의 양립, 너무도 분명한 우선순위... 많은 것들이 제가 겪고 느껴왔던 것들과 닮아있어서 마치 제 일기를 보는 것도 같아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과정일거라고 믿고, 첫째때보다는 둘째때가 조금은 더 낫기를 바라고, 나때보다는 내 여동생때가 조금 더 나은 상황이길 바랍니다. 많은 공감을 하고 가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9.28 2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저도 제 아이들의 세상은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요. 어떤 거창한 생각보다 이런 마음들이 모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요. 힘내시고... 연휴 잘 보내시길요.^^

둘째가 돌이 되었다. 형은 돌잔치를 했는데 동생은 지나칠 수가 없어서 돌상을 차리고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그것만 해도 할 일이 넘쳐나 너무 바빴다. ‘... 난 이 집의 집사인가, 매니저인가싶을 때 우울하다. 아이들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으니 뭐든지 엄마 손이 필요하다. 밥을 먹어도, 옷을 입어도, 심지어 화장실을 가는 일도. 기저귀를 차는 둘째는 말할 것도 없고 첫째도. 아 왜 이렇게 인간은 무력한 존재로 태어나는 것인가.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 조금 있으면 걸어(?)다니고 혼자 밥 먹고 자립하던데 왜 이렇게 인간은 모든게 오래 걸리는가. 첫째를 낳았을 때 했던 쓸데없는(?) 의문은 여전히 똑같다.

 

둘째 기저귀를 갈다가 물 달라는 첫째에게 떠다 먹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참고 물을 따라준다. 그 사이 둘째는 안아주지 않는다고 칭얼대고. 내 팔이 여덟 개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다 내가 세 명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한 명씩 안아주고 한 명은 집안일 하고 책도 볼 텐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오래 한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간다. 이제 두 달 반 남았다. 첫 번째 휴직 땐 하루빨리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다. 말 못 하는 아이와 하루 종일 있다 보면 우울함이 몰려왔다. 동네에서 친구 한 명도 못 만들고 네트워크가 쪼그라들어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던 하루하루 놀이터를 빙글빙글 돌면서 서글펐다. 왜 아무도 엄마 노릇이 이렇게 외롭다고 알려주지 않았나.

 

그런데 두 번째 휴직 땐 친구가 생겼다. 바로 우리 첫째. 6세가 된 우리 집 꼬마가 말을 하면서 하루종일 심심할 새가 없다. 이유식을 만들던 날이었다. 오후에 2시간 정도 싱크대 앞에 서 있느라 첫째가 놀자고 하는데 두 번인가 거절했던가. 밤에 재우려고 누웠는데 괜히 미안해서 두진아, 엄마가 오늘 이유식 만드느라고 레고 같이 못 만들어서 미안해.” 첫째가 대답했다. “괜찮아.” 너무 담담한 대답에 괜찮아?”라고 물으니 첫째는 말했다. “엄마가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그 말을 듣곤 눈물이 죽죽.

 

첫째는 로맨틱하기도 하다. “엄마 주머니에 하트가 있어.” “?” 내 주머니에서 첫째의 작은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이 작은 하트를 만들고 있었다. 아 남편보다 로맨틱한 아들. 이러니까 아들 키우면 연애하는 기분이 든다고 하는구나 싶다.

 

돌잔치 때 찍은 전문가 버전 형제 사진.

 

말하는 아이와의 상호작용이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종알종알 떠드는 꼬마의 입술을 보고 있자면 세상이 갑자기 평화로워진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런 평화로움을 느껴보지 못했다. 나는 자주 우울했고 자주 불안했고 화를 다스리지 못해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나를 조금 달라지게 만들었다. 아이에게 불안한 지지대가 되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이한테 제일 많이 해주는 말은 괜찮아. 두진아, 넘어져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조금 다친 건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등등. 그러다 보면 나도 괜찮아지는 기분.

 

어제 둘째가 내 팔을 물었다. 이가 여섯 개 난 둘째는 가끔 세게 문다. 악 소리가 나서 일부러 엄살을 부리며 첫째에게 엄마 너무 아파엄살을 부리니 괜찮아, 엄마라면서 토닥토닥 해준다. “엄마 안아줘 두진아하니까 작은 팔로 엄마를 안아준다. 아이의 작은 팔에 안길 때면, 아이가 내 목을 끌어안을 때면 왜 그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뭉클해서일까. 이제 엄마를 위로할 수 있게 된 첫째, 그리고 돌 갓 지난 둘째. 아들들을 안고 있으면 그 품 안의 세상은 따뜻하다. 따뜻해서 눈물이 난다.

 

물론 이런 말도 한다. 요즘 복직 전 체력 단련으로 근력운동을 하는데 내가 근력운동을 할 때마다 옆에서 따라하는 첫째. 하도 귀찮게 해서 근력운동 동영상을 못 보게 하니까 ? 이유가 뭔데? 왜 못 보게 하는 건데?” 따박따박 따진다. 이제 54개월인데 이유가 뭔데라니... 엄마 말투 따라하지 마라. 매일 엄마 말투를 따라하며 하면 돼, 안돼?”라며 동생에게 훈계하기도... 나중엔 얼마나 따박따박 따질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이들과 하루종일 있는 게 힘들다고 투덜거렸지만 복직이 코앞에 다가오자 걱정이 많이 된다. 난 일과 아이들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을까.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짧아지는 걸 메울 수 있을까. 아니 아이들과 하루종일 있었던 좋았던 시간을 그리워하게 되면 어쩌지...

 

어쩌면 내가 제일 걱정하는 건 마지막에 적은 문장이다. 이 시간을 그리워하게 되면 어쩌지. 이 작은 존재들이 내게 만들어줬던 행복한 순간들이 자꾸 그리워지면 어떡하지. 하루하루 커버리는 이 작은 존재들이 그리우면 어떡하지.

 

부모가 되면 사랑을 많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뚝뚝했던 부모님보다는 애정을 많이 표현하는 따뜻한 엄마가 되어야지 생각했다.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해줘야지, 자주 안아줘야지, 잘하는 일은 몇 배로 칭찬해줘야지. 그런데 막상 낳아보니 정작 사랑을 받는 건 나였다. 엄마를 향한 맹목적 애정. 아빠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따라갈 수 없는 엄마에 대한 애정. 내 뱃속에 열 달을 살아서일까. 둘째 돌잔치날 원피스를 입은 내게 첫째가 말했다. “엄마, 너무 예쁘다. 공주님 같아.” 아 누가 날 이렇게 예쁘다고 해줬었나두진이는 엄마랑 결혼할 거야를 입에 달고 산다. “엄마는 아빠랑 이미 결혼했어라고 하면 아는지 모르는지 결혼하겠다고 우긴다. “나랑 다시 하면 되잖아~” 속으로는 나중에 여자친구 생겼다고 엄마는 신경도 안 쓸거 다 안다그러지만 내 입은 늘 웃고 있다.

 

엄마가 사랑을 많이 줘야 아이들이 쑥쑥 크는 줄 알았는데... 사랑을 받는 건 오히려 엄마인 나였다. 아이들에게 받았던 이 무한 애정을 잊을 수 있을까. 이 작은 존재들의 절대적인 애정과 지지, 아이들의 눈에서 발견했던 절대적 애정을 보고 느꼈던 감동과 행복을. 누가 날 이렇게 조건 없이 좋아해줬을까. 어린 시절 엄마? 아빠? 지금 이 시간들을 그리워하는 날이 오겠지. 이 작은 존재들이 나를 이렇게 좋아해줬던 순간 순간.

 

엄마는 항상 내 자신만 소중한 사람이었어. 연애를 해도 내 감정만 소중해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 적도 많았지. 그런데 너희들을 낳고 나서 정말 너희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게 되는 스스로를 보면서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많이 생각했단다. 너희들이 충만한 일상을 누리길, 어려움이 닥쳐와도 굳건하게 맞서고 유연하게 힘들어하길. 일상의 순간순간 평온함이 깃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좋아하는 것이 뭔지 찾을 수 있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다른 사람과 그 좋아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엄마는 그 과정에서 엄마가 실패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며 함께 할게. 뒤에 있을게. 언제나 지켜보고 있을게. 회사 가서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엄마는 너희를 생각하고 있을 거야. 미안하고 고마워. 이렇게 부족한 엄마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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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발바닥 2017.06.02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마는 사랑을 이야기 하는군요. 아이셋둔 아빠(저)는 아이들 행복하게 되길 희망하다보니 사람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살이를 이야기할때는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되고, 아이들이 좀더 살기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 참여도 많아졌으니 말이죠~~^^ 이 시대 부모들 모두 화이팅~~

  2. Favicon of https://praguelove.tistory.com 프라하밀루유 2017.06.02 20: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해외에서 18개월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 엄마에요. 많은 부분 공감이 가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읽었네요.

    외국에 있어서 저만 혼자 유모차 끌고 공원과 놀이터를 전전하는 줄 알았는데, 엄마들은 다 외롭나봐요 ㅠ.ㅠ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6.05 2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엄마들은 외로운가봐요ㅠㅠ 그래도 아이가 크면 친구가 되어주더라고요. 그게 36개월 지나면 급속도로 친구가 되어준 느낌요~~ 18개월이면 한창 힘드실땐데... 기운내세요!!

  3. 조이 2017.06.02 2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라하님 힘내세요

  4. 도윤맘 2017.06.02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첫째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외롭다는 구절에 공감하며 아 내가 그렇구나 문득 깨달았어요.
    이 밤에 많은 위로를 받고 갑니다.

    글쓴이의 말데로 사랑 받고 있다는 거
    날이 갈수록 많이 느껴요.
    다시 오지 않은 이 타임을 토닥토닥 위로하며
    다시 시작 되는 내일도 힘내요 파이팅❤️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6.05 2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아이의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요. 둘째 보면... 우리 막내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 내가 키우는 마지막 아기...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여유가 많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

  5. 고마리 2017.06.03 1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너무 아름다우신 두 아드님의 엄마!!
    님처럼 이렇게 견고하고 성숙한 사랑을 느낄 줄 아는 엄마의 아들들은 미래에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훌륭한 이 나라의 역군이 되어줄 것입니다.

    저도 엄마가 되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되었지요. 그래서 겁도 없이 셋이나 낳았고 직장다니면서 키우느라 많이 힘들었지만 너무 예뻐서 행복했더랬습니다. 엄마가 자녀에 대한 사랑을 느껴 본 사람들은 최소한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을거라고...남은 시간들도 아낌없이 사랑하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정 이루시길 축복하며 응원합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6.05 2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와 셋을 직장 다니면서... 정말 멋지십니다!! 맞아요. 아이에 대한 사랑을 느껴본 사람들은 최소한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을 거라는 말 공감 백개입니다. 아이의 눈을 보고 그러기는 정말 어려울텐데요. 이 마음을 잊지 않고 늙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

  6. 박신혜 2017.06.03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기억하시나요? 서강대에서 같이 수업들었던 박신혜에요.
    저도 10살짜리 딸을 키웁니다.
    정말 와닿는 글이에요^^그래서 아는 척 하고 갑니다^^

  7. 유림아빠 2017.06.03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그래요. 애들이 엄마 아빠 사랑을 받으면서 크기도 하지만 부모가 아이들에게서 받는 사랑과 배움도 정말 많죠.
    좋은 글 감사드려요.

  8. 2017.06.05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재민재희맘 2017.06.09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읽으며 눈물이 죽죽 흐르네요
    공감 공감 대공감 ㅠㅠ
    힘들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니 육아의 행복과 감사의 에피소드도 있었구나 떠올리게 되네요
    우리 아들들 멋지게 키우자구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7.30 14: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고마워요 지혜씨. 1년간 아들들한테 받은 사랑으로 복직 후에 버티게 될 것 같아요. 또 밤에 아들들 안고 자면서 힐링하고. 생각보다 육아가 체질?인가요?ㅋㅋㅋ 우리 아들들 멋지게, 예쁘게 키워요 ^^

지지난주 목요일 두진이 유치원 상담을 받고 왔다. 밥을 잘 안 먹으니(두진이는 밥 물고 있기 제왕, 밥먹다 멍때리기 제왕이다) 급식 먹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실까 하고 갔는데 담임선생님은 발달 및 지능 검사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 당황스러웠다.


선생님은 아이가 특이하다고 설명하셨다. ‘특이하다는 게 무슨 뜻일까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상담카드에 같이 꼽아둔 두진이의 미술 활동물을 보여주셨다. 나비 그림 테두리에 바늘로 구멍을 뚫고 실을 이용해 구멍을 연결하는 활동이었다. 두진이는 테두리대로 연결하지 않고 대각선으로 여러 개를 이어놓았다. “이렇게 할 수도 있어요 어머님. 근데 세 번이나 설명해줬는데 계속 이렇게 하는 거예요. 아이가 설명을 못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에요.”

 

그럼 왜 이렇게 했을까요?”

 

그러게요. 저도 임상 쪽 전문가가 아니니까 전문 기관에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 손바닥만한 작은 책 만드는 활동에서는 책 페이지마다 다 풀로 붙여놨다고 했다.

 

아이가 특이하다고 느껴져요. 어머님 배우 탐 크루즈가 난독증이잖아요. 근데 연기를 정말 잘하잖아요. 두진이를 보면 그 생각이 들어서요.”

 

얘기를 듣는 내 표정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난독증, 특이하다... 좋은 말도 해주셨다. “아이가 반짝반짝거릴 때가 있어요. 집중하면 레이저를 쏠 정도로 빠져들어요. 소리를 못 듣는 건지 대답을 안 할 때도 많아요. 근데 안 듣는 건지, 못 듣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도 그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니까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으셨으면 좋겠다는 뜻이에요.”


얼음으로 실컷 장난한 뒤 물시계(?) 만드는 중...


 

그리고 돌아와 기관을 알아봤다. 생각보다 비용이 비싼 걸 확인한 후 괜한 반감이 들었다. ‘내가 보기엔 별로 특이한 것 같지 않은데. 이 돈을 들여서 검사를 받아야 할 만큼 특이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지만 찝찝했다. 아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두진에게 물었다. “두진아 나비를 왜 이렇게 했어?” 두진이는 명쾌하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두진이는 말이 많은 꼬마가 아니다. 유치원 생활을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하거나 단답형. 그렇지만 이번에는 여러 번 질문을 던지니 두 가지 단서를 던져줬다. “아까워서라는 답변과 그럼 코랑 연결이 안 되잖아라는 답변. 아이의 설명대로라면 뭔가가 아까웠고 선생님 설명대로 테두리를 연결하면 코랑 연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스스로 행동의 의도를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6(53개월)다. 몇 번을 더 물어보니 "엄마 물어보는게 힘들어"라고도 했다.

 

난독증 비유와 특이하다는 말만으로도 불안했는데 내 불안을 더 키운 대화도 있었다. 두진이를 여러 번 본 유치원 친구 아빠(직업이 교사)가 두진이가 상담 받고 왔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발달검사를 권유받았느냐고 물어본 것, 몇 번 더 두진이를 만나보고 우리 부부에게 검사를 권유하려고 했다는 얘기, 두진이에게 불안함이 엿보인다는 이야기까지.

 

15개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두진이에 대한 선생님들의 평가는 비슷했다. 집중력이 좋다, 그런데 집중하는 만큼 행동 전환이 느리다. 우리 부부는 12월생이라 그렇지 않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다. 또 집중 잘하는 것은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다 다른데 아이들도 그렇지 않느냐고 생각도 함께였다. 

 

그런데 불안함이 엿보인다는 얘기를 듣고 우울함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최근 아이가 블록놀이 등을 하면서 마음대로 안 되자 불안해하고 울어버렸던 풍경들이 떠올랐고 왜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나 우울해졌다. 아이의 불안함을 내가 몰라줬다는 생각이 들자 미안해졌다. 그렇다 미안해졌다

 

어머니가 복직하시잖아요. 복직하시지 않으면 문제가 아니에요. 복직 전에 구멍난 부분을 확인하고 채우자는 차원이에요. 저도 큰애 키우면서 상담 많이 받았어요. 도움이 돼요 어머님.” 두진이는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식탐이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생각이 들 정도로 밥에 관심이 없고 밥 먹으면서도 놀고 싶어서 집중을 하지 못한다. 유치원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겠지 싶어서 그 부분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상담을 갔다. 그러나 내 복직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선생님의 의도는 간명하다. 밥 안 먹는 아이를 할머니가 먹게 하기는 더 힘들다는 것. 충분히 이해한다. 이미 지금도 내 말이 할머니 말보다 더 잘 먹히고 남자 아이는 점점 더 할머니의 말을 안 들을 것이라는 것도 예상 가능하다. 선생님은 퇴근 시간도 물으셨다. 내 퇴근 시간을 말하니 표정이 어두워진 것은 오히려 선생님 쪽이었다. ‘복직이 문제된다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나는 발달검사 제안과 별개로 또 충격을 받았다.

 

화가 났다. 왜 내 복직만 문제가 되는가. 남편이 회사 다니는 건 왜 문제가 되지 않는가. 왜 한국 사회에서 주양육자는 항상 엄마인가. 결국 선생님이 추천한 상담센터를 예약했다. 먼저 엄마가 80분 면담을 받고 검사 종류를 결정한다고 했다. 왜 엄마, 아빠 다 오라고 하지 않는가. 나만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게 아닌데. 내 관점이 과잉되거나 틀릴 수도 있지 않는가.

 

그러다 화는 금세 가라앉고 계속 우울해졌다. 이제 생각의 단계는 나는 회사를 제대로 다닐 수 있겠는가로 옮겨갔다. 역시 워킹맘인 동네 친구는 말했다. “반푼이로 살아야 한대요. 회사에서 반푼이, 집에서도 반푼이. 아니면 견뎌내지 못한대요.” 작년에 아이 발달이 늦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장을 옮겨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엄마다. 난 반푼이가 될 수 있을까. 아니 이미 반푼이일까.

 

처음으로 ‘다들 이렇게 아이에게 이상한 점을 발견하면 회사를 그만뒀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기 전 한 회사 선배는 와이프가 파마를 했는데 아이가 엄마를 못 알아보자 일을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어떻게 엄마를 못 알아보지 하면서 웃었는데 심각한 이야기였다. 만약 두진이에게 특이한 점이 정말 발견된다면 난 어떤 좌절감을 느낄까.

 

안다. 특이한 점이 발견되어도 큰 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걸. 뛰어난 부분이 있으면 키워주고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면 된다는 걸. 부모의 역할은 그렇게 이끌어주는 것이라는 걸.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한 발짝 앞에 서서 손을 잡아주면 된다는 걸.

 

아니 안다고 믿었다. 근데 내 아이 일이 되니까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다. 이상한 말을 들으면 어떡하지. 무섭고 두렵다. 두렵다.


왜 아무도 내게 아이를 키우는 일이 이렇게 거대한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나.’ 


가끔 아이를 훈육하는 게 힘들 때, 엄마라는 역할을 하기에 버겁다고 느껴질 때마다 이 답답한 질문이 튀어 오른다. 왜 아무도 아이를 키우는 일에 이렇게 많은 시간과 품이 들어간다고 알려주지 않았나. 아이의 온몸을 안고 업고 지내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아이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옷을 입고 혼자 길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는 독립적 존재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왜 알려주지 않았나. 그러면서 사회는 왜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시간을 내어주지 않나.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사람 아냐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타인에게 적당하게 손 내밀고 거리두기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며 뿌듯해했던 삼십대 초반 내 아이에게도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며 안정적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러나 아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밥을 먹여줘야 하고 옷을 입혀줘야 하는 작은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이를 낳기 전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밥 먹여주고 옷 입혀주는 게 끝이 아니다. 어떻게 밥을 먹어야 하고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는지 가르쳐줘야 한다. 아이가 밥을 잘 안 먹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제대로 밥을 먹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제일 먼저 들었다. “어머니 아이가 어쩜 식탐이 이렇게 없나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게요, 선생님.’


그뒤로 아이를 자꾸 채근하게 된다. 왜 밥을 안 먹니, 왜 물고 있니, 씹고 뜨고 다시 씹고 뜨는 거야, 가만히 있지마, 그렇게 아이를 닦달하다가 과자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 어제도 밥을 깨작깨작 먹고 물고 있다가 몇 번 혼난 두진이는 겨우겨우 밥을 다 먹고선 과자를 달라고 했다. 과자 때문에 밥을 안 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또 과자를 줬다. 밥 다 먹으면 이거 줄게. 유인하기 위해 사온 과자인데. 신나서 과자를 먹는 표정을 보고 정말 화가 났다. 밥을 그렇게 먹어라 밥을. 과자는 달콤하니까 먹겠지. 알면서도 아이를 혼내고 말았다. , 지금 뭐하는 짓인지. 과자 사달라고 했을 때 안 사줬으면 됐잖아. 자괴감이 몰려온다. 이 작은 존재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은 자괴감.

 

결국 상담센터에 가서 80분간 엄마 면담을 받고 돌아왔다. 그 면담을 통해 상담이든 검사든 결정하는데 3주가 걸린다고 했다. 차분히 기다리면 된다. 3주 후 결정이 되면 절차대로 따라가면 된다. 상담을 받든 검사를 받든. 이성적으로는 안다. 그런데 아이에 관해선 이 평정심이 자꾸 무너진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면 어떡하지.’

 

유난스러운 엄마가 되기 싫었다. 유난스럽게 굴지 않는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내 일과 내 영역을 유지하는 만큼 아이들의 자유를 인정해줘야지. 아이들에게 집중하되 집착하지 말아야지. 늘 생각했다. 근데 전문 상담 받으라는 말 한 마디에 이렇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아이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장담하면 안된다는 세간의 말의 뜻을 이해했다.

 

그러다 아들연구소라는 앱에서 이런 글이 날아왔다. 꼭 나를 위한 글처럼.

 

주어도 주어도 넘쳐도 넘쳐도 괜찮은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사랑을 줄 때 순수 의미의 사랑인지, 걱정을 가장한 관심의 표현인지 구분이 조금 필요한 것 같아요.


관심과 걱정과 사랑은 다르죠. 관심이 많아지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혹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걱정이 생기곤 합니다. 그러한 걱정을 양육자가 아이에게 표현한다면, 아이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들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감이 먼저 생길 수 있어요.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요. 정말 부족한 것인지 걱정으로 인한 부족인지 구할 수 있는 힘을 길러보아요.”

 

특이하다는 말을 걱정하느라 아이의 마음을 돌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밥 안 먹는다고 화내면서 아이를 힘들게 하면서 먹게 하면 무슨 소용인가. 마음을 다잡아본다. 3주 후면 상담을 할지, 검사를 할지도 결정될 텐데. 차분히 기다려보기로 했다. 중간중간 걱정이 치고 올라오겠지만 다시 평정심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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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엄마는힘들어ㅠ 2017.04.21 15: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보면서 울뻔했네요. 우리나라 구조는 참 이상해서 아이기 다쳐도 엄마탓이고 아이가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해도 엄마가 가르친거냐 묻습니다. 딸아이인데도 남자아이들만큼 달리고 뛰어내리는 아이를 보며 항상 언제 다칠지모르는 두려움이 나를 감싸고, 다쳐도 꼭 머리만 다치는 통에 트라우마도 가득하네요.그런데 나만 불안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였네요. 그런 저를 바라보는 아이는 더 불안했겠지요.... ㅠ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23 2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ㅠㅠ 왜 다들 엄마를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요. 아이를 믿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고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어요. 우리 힘내요. 힘내세요.

  2. 힘내요 2017.04.21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영씨 힘내세요 ~~♡♡
    아이마다 저마다 가진 기질이 있어요
    아이를 직접보지 못해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우리 아이가 기질에 맞는 선생님 아이를 볼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나면 다를 수 있어요
    가장 잘아는 사람은 엄마일거예요
    아이나이가 너무 어리고 정확하게 판단하기 힘들어요
    아들이란 성이 가진 기질도 있답니다.
    아들의 기질 파악이 더욱 중요할것 같아요
    저는 일단부모가 파악하고 있는 아이의 기질검사 추천드려요.
    힘내세요 !!

  3. 공감 2017.04.23 1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이집상담을 다녀오고 지금 두려움과 걱정 스트레스에 빠져있는 12월생 아들을 둔 엄마예요. 기관을 그만두게해야할지까지 고민중인데 공감가는글이네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23 2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린이집 상담... ㅠㅠ 저도 상담 몇번밖에 안 받았지만 상담 받고 기분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어요. 아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모든 시선이 아이에게 좋을 수 없구나라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됐던 시간. 기관에 보낼지 말지까지 고민하신다면 정말... 어떤 심정이실지. 그래도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4. 랄라 2017.06.02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렵고 또 어렵네요 ㅠㅠ
    24개월 남아 엄마에요. 영유아검진때 보니 또래의 아이들보다 대근육발달이 느리고 움직임이 많지않습니다. O형이지만 활동적이지않고 정적이구요. 같은 혈액형의 사촌형아들이 노는 모습이랑은 확연히 다른 성향이에요. 우스갯소리로 남자아기들의 집엔 남아나는 책 표지가 없다는데 저희집은 안그래요 ㅠ 너무 깨끗합니다. 그렇다고 또 책을 안보는것은 아니구요. 아직 제자리뛰기 점프를 못한다고 대근육발달검사를 받아보라고 하는데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아직도 고민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어른들이 정해놓은 틀에 획일화되게 맞추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평균치에도 못미친다고하니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걱정만 앞서네요 ㅠㅠ 남들과 다름은 평범치않은 또다른 재능의 발견 아닐까요? 그들이 잘 자랄수있게 열심히 보조해줍시다 ㅠㅅㅠ 홧팅입니다~

그 선배 애 낳고 변하더라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더니 애 낳더니 어쩔 수 없나봐.”

 

결혼을 안 했던 시절 여자 선배들을 저렇게 묘사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애 낳으면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애 낳으면 일을 대충 한다로 이어져 애 낳은 여자들은 쓰면 안 돼에서 애를 낳을 수 있는 여자들은 쓰면 안 돼까지 연결된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땐 '결혼을 하면 안 되겠구나'부터 '다 그런 건 아닐 거야',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에까지 생각이 연결되곤 했다.

 

애를 낳고 알게 됐다. 가사 노동과 육아를 여성에게 떠넘긴 사회에서 회사 생활을 버틴 것도 대단한 것이라는 걸. 그나마 아이를 대신 맡아줄 가족(친정엄마나 시엄마, 아니면 시터이모님)이 없는 여자 선배들은 이미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을. 또 그 숫자가 적지 않았다는 것도. 게다가 그 선배들이 아이를 낳았던 시절은 출산 휴가 2개월밖에 주지 않던 때였다. 2개월이라니 2개월이라니. 아직 뒤집지도 못하는 아기를 떼놓고 출근하게 했던, 야만의 시절이었다.

 

복직 후 여자 선배들은 내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다. “애가 어릴 땐 일을 살살해도 괜찮아. 오래 버티는 게 중요한 거야에서부터 힘들지. 지금 정말 힘들 때야.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져”, “근데 정말 힘드니까 둘째는 낳지 마까지...

 

물론 나이가 열 살 이상 차이나는 선배들과 다른 생각을 가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선배들이 없었다면... 난 과연 이곳에 있었을까? 복직 후 그 생각을 많이 했다. '저 선배들 덕분에 내가 여기 있구나.' 표현한 적은 없지만. 그저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다녔다는 것이 고마웠다.

 

여기자가 없던 시절, 1/10이 여기자이던 시절, 그리고 2000년대 여기자가 많이(급속히?) 늘어나던 시절. 회사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끔 바지 입은 여자를 묘사하는 글을 읽는다. 직장 내 여자들이 늘어나도 그 여자들이 바지 입은 여자라 남자 상사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최근 페친의 추천으로 페이스북 COO인 셰릴 샌드버그의 <린 인>을 읽었다. 그 책에서 무릎을 치면서 웃었던 부분.

 

셰릴은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구글에서 일하고 있었다. 임신 3개월이면 끝난다는 입덧이 9개월 내내 계속됐고 어느 날 회의에 늦지 않으려고 겨우겨우 주차를 했는데 겨우 주차한 곳이 사무실과 멀어서 산처럼 부푼 배를 안고 겨우 회의실에 들어갔다는 이야기. 근데 그날 밤 야후에서 일하던 남편이 이야기한다. 야후에는 각 건물 앞에 임산부 전용 주차 공간이 있다고. 셰릴은 다음날 구글의 설립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사무실로 쳐들어가 회사에 임산부 전용 주차 공간을 가능한 한 빨리 마련해달라고 건의했다. 세르게이는 그 문제를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곧 사과하고 바로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셰릴은 말한다. “나 또한 내가 임신해서 발이 부어올라 쩔쩔맬 때까지 회사에 임산부 전용 주차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구글에서 최고참 여성 중역이었으니 당연히 생각했어야 할 문제 아닌가? 하지만 세르게이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다른 임산부 직원들은 배려해달라고 요청하지 못하고 묵묵히 불편함을 참았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감이 없거나 직위가 낮은 탓에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한 것이리라.”

 

이 부분을 읽으며 새삼 난 회사 화장실이 생각났다. 입사 초 편집국 화장실은 남자 화장실보다 여자 화장실이 더 좁았다. 기자가 남자만 있던 시절 남자 화장실 밖에 없었는데 그 공간을 일부 쪼개 여자 화장실로 만들었다고 들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2011년쯤 편집국 리모델링을 할 때 여자 화장실 크기가 더 넓어졌다. 여자 화장실에 대한 불만과 민원이 더해진 결과이리라.

 

여자가 늘어나면 뭐가 바뀌느냐고? ㅎㅎ 화장실이 생긴다. 웃기지만 편집국에 남기자만 있던 시절 처음 입사한 여자 기자는 어떻게 화장실을 다녔을까. 참 단순한 사실이지만 그 선배 덕분에 여자 화장실이 생겼을 것이고 또 여기자가 늘어나니 화장실도 커졌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간 임산부전용 주차장도 생기겠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남자 기자가 압도적으로 많던 시절(199쯤 되려나) 편집국에서는 담배도 피웠다고 한다. 요즘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풍경이다.

 

첫째를 임신했던 때 회식을 하던 중이었다. 남자 선배와 남자 동기가 회식 자리에서 담배를 피웠다. 속으로 생각했다. ‘임신 중이라고 말할까. 말까. 말할까.’ 결국... 말하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임신한지 몰랐을 뿐이었다. 그때는 괜히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기 싫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멍청했다. 그날 자리에서 나와 만만한 남자 동기에게만 말했다. “나 임신했어.” 쩔쩔매며 미안해하는 그를 보며 괜찮다고 했지만 이후 그 사건이 떠오를 때면 왜 나는 그 자리에서 말하지 못했나후회가 됐다. 이제 더 시간이 지나 회식 자리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에피소드 또 하나. 결혼 직후였다. 오랜만의 사내 커플이라 사람들의 장난스러운 시선도 꽤 있었다. 출근할 때였나 남편과 내가 한 엘리베이터에 탔다. 같이 엘리베이터에 탄 한 선배가 내게 물었다. “밥은 해줬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이미 얼굴엔 기분 나쁘다는 표가 다 난 뒤였다. 다행히 편한 선배였고 되물었다. “제가 왜 밥을 해줘야되죠?” 당황한 선배의 표정. 결혼한지 만 5년이 지난 지금이었다면 이보다 세련되게 받았겠지만 그때는 정색하고 말았다. 정말 다행히도 선배는 웃으셨고 그 이후부터는 남편만 보면 장난스럽게 밥은 해줬냐?”고 묻기 시작했다. 아마 처음에는 내 표정을 보고선 기분이 좋진 않았겠지만.

 

여자들이 늘어나 조직의 풍경을 얼마나 바꿨을까. 별 것 아니지만 남자에게 밥은 해줬느냐고 묻게 하는 것. 그게 시작이 아닐까. 셰릴은 <린 인>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제를 일으켜봤자 시끄러운 페미니스트라는 소리만 들을 터였다.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불이익을 지적하는 것이 푸념하거나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행동으로 잘못 해석될까봐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일했다.


해가 지나면서 여성 친구들과 동료들이 하나둘씩 직장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스스로 선택해서 떠나는 여성도 있었고 융통성을 허용하지 않는 회사에 떠밀리거나,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하지 않는 배우자의 요구로 낭패감에 휩싸여 떠나는 여성도 있었다. 직장에 남아 있더라도 주변의 대단한 기대를 충족시키겠다는 야망을 줄였다. 여성 리더가 출현하리라는 우리 세대의 희망도 점차 빛을 잃어갔다. 구글에서 근무한 지 몇 년이 지났을 무렵, 이러한 문제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내가 성 문제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현재 상황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세계에 진입한 첫 세대 여성들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내며 자신을 조직에 맞춰야 했는지 모른다. 어떤 때는 그것이 가장 안전한 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집단으로서의 여성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성은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하고, 자신을 뒷걸음치게 만드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요즘 대선 후보 배우자들의 인터뷰를 지나가다 몇 번 봤다.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남편 이승배씨의 인터뷰는 정독했다. “심상정 남편? 한 마디로 그게 뭐 어때서? 영광이지!’하는 생각이라는 답변과 제 처가 세상에 긍정적 기여를 하도록 옆에서 돕는 게, 저의 존재 이유의 핵심이라는 답변은 정말 멋졌다. 그리고 통쾌했다. 여성 정치인과 내조하는 남편이 보여주는 평등한 결합. 게다가 그 남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슈퍼우먼 방지법에 대한 설명이라니!

 

남녀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 조직, 나아가 이 사회의 건강에 좋다. 그게 회사에도, 국회에도, 고위 공직자의 세계에도 여자들이 절반을 차지해야 하는 이유다. 선배들이 버틴 덕분에 나는 둘째까지 육아휴직 1년씩 2년을 썼다. 내 여자 후배들은 육아휴직 2년을 남편과 공평하게 나눠 쓰기를 바란다. 또 내 남자 후배들은 육아휴직 기간 직접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

 

<린 인>에서 이 문장들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평등한 사회라면 여성이 국가와 기업의 반을 운영하고 남성이 가정의 반을 꾸려나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오는 아버지가 늘어나고 직장에서 일하느라 바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더욱 많은 선택 사항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상은 여성에게 성을 근거로 기대하지 않고 개인적인 열정과 재능, 흥미를 기준으로 기대할 것이다.(...) 내 아들이 풀타임으로 자녀를 키우는 중요한 일을 하고 싶어 하더라도 그 뜻을 존중받고 도움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 딸이 집 밖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기를 원하더라도 그 뜻을 존중받고 도움받을 뿐 아니라, 딸이 성취한 일들에 대해 타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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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며 2017.03.30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종류의 글이 페미니즘이 유행하다 보니 많이 보이는데요.얼핏 그럴 듯 하지만 사실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주장들이에요.
    일단 개인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과 다른 종류의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이런 논의가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논의의 순수하게 평등의 관점에서의 약점은 다른데 있으니까 그걸 얘기해보면요.
    모든 직업에서 성비가 일대 일이 되는 건 장기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많은 직업은 예비 단계인 대학이나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부터 성비가 확 갈리기 때문입니다.
    제가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이 아니라 거기는 잘 모르겠는데, 대학의 경우에 공대와 자연과학대와 인문대, 예술대는 성비가 확실하게 차이가 나죠.
    그리고 제가 아는 한 그건 무슨 성차별이 주요 원인이 아닙니다.
    공학이나 물리학 같은 학문의 주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여자 고등학생 수부터가 확실하게 남학생보다
    적어요. 자신의 가능성 같은 것 말고 관심 부터가 확실하게 차이가 나죠.
    물론 그런 관심의 차이가 사회에 퍼진 문화와 관계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전공을 갖지 못하게 하는 노골적인 입시 차별이나 전반적인 거대한 장벽이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전체 졸업자의 1/10 또는 1/100 밖에 안되는 여성을 무슨 수로 십년,이십년 뒤에 특정 직업의 주요 직위에 반을 채울까요? 만약 그 여성들이 언제나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잘하는게 아니라 동등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그 어떤 차별도 없고 경력 단절 문제가 해결되어도 절대로 반을 못 채우는 겁니다.
    실력에 관계 없이 무조건 억지로 반을 채우기로 정하지 않는다면요.

    단지 여성이 절반이 되는게 나름 좋은 점도 있을지 모른다는 까닭 하나만 가지고 주요 직위에 여자들을 채워야 하나요? 그 직위는 오로지 성평등을 구현하는 것 하나만을 목표로 존재하는 자리들이 아닙니다.

    반대로 수간호사 같은 자리는 실력있는 여자 간호사 모두 탈락시키고 억지로 반을 남자로 채워야 할까요?
    남자가 많은 전공이건 여자가 많은 전공이건 , 취직률이 높을 경우에 별짓 다해도 성비를 반을 못 채울 것 같지 않나요?

    여성이라는 까닭으로 직업을 가지고 일해 가는데 있어서 장애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게 바람직한 방향이기는 하지만, 그게 여성이 절반이 되어야 한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합니다.
    그걸 억지로 맞추는 것도 불가능하고 제도와 문화가 평등하게 바뀐다고 해서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절반이 되는 걸 어렵게 하는 문제들을 제거할 수 있을 뿐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이 엄청 싫어하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보다 높고,이공계에서는 70%입니다. 성평등을 위해서 여성 이공계 졸업자는 불이익이라도 줘야 할까요? 그런다는 말은 못 들어봤습니다.)


    • 또한지나가며 2017.03.30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나가며님께
      직업에 편견이 붙어있는게 문제인거죠
      간호사라는 직업은 남자도 할수있고 여자도 할수있어요, 하지만 남자간호사에 대한 사회 이미지가 남성으로 하여금 진입장벽이 있는게 아니라고 하실수있나요?
      미대와 예체능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학생이 미대를 진학하겠다는 것을 부모에게 이해시키는것도 여학생보다 훨씬 어렵죠.
      이건 여성에게도 해당되는게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이런 편견을 고쳐나간다면 미래에는 더 많은 선택지가 있는 사회가 되겠죠

    • ㅡㅡ 2017.04.01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 각각의 직업군 내의 성비를 1대1로 맞춰야 한다는 내용이 전혀 아닌데요. 당연히 직업마다 여성이 선호하거나 남성이 선호하는 직업군이 있을 수 있죠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상적이라고 하는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주입당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시대이니까) 여성에게만 육아의 부담을 지우는 사회 분위기가 여성이 직장을 다니는 데 큰 부담을 지게 하고 결국은 직장을 그만두게까지 하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문제라는 거예요. 간호사 중 여성의 비율이 9이고 남성이 1이었다가 여성이 이러한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어서 그 비율이 8대 2로 바뀌었다고 칩시다. 그래도 여자 비율이 월등하게 높으니까 불만 갖지 않고 가만 있어야 하나요? 어떻게 글을 이렇게 읽으실 수 있지?

  2. 지나가는 남성 2017.03.31 1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 공감합니다. 저도 변해보려고요.
    그래도 참 어렵네요. 아기 키우면서 회사 다닌다는 것이. 또 부부가 서로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래도 노력해야겠죠?
    노동시간 의무 단축을 포함해 다양한 논의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03 1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변하기 위해 노력하시겠다는 말씀이 넘 멋집니다. ^^ 대선을 계기로 많은 논의가 나와야하는데 항상 원하는 것보다 부족하죠. 또 실제 정책이 실현될지도 의문이고요. 그래서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할듯해요. 제 삶을 바꾸는 건 결국 제 자신이니까요. 댓글 감사합니다.

  3. Nine 2017.04.01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육아와 가정 생활을 좋아 하는 여성분도 계십니다.
    사회적 성공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아닙니다.
    여성이 육아를 책임지기 싫은 집이 있다면 남성이 지면 됩니다.
    역활은 반대로 하면 쉽게 해결 됩니다.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 나참 2017.04.01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부 둘 모두가 직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육아와 가사노동은 여자들의 몫이고 남자들이 안하니까 이런 글이 나온거죠(남자가 가사노동에 어느정도 기여하는지 통계적 지표들에서 아주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하면 쉽게 해결돼??? 말로 쓰니까 정말 쉽고 간단하네요. 입사면접볼때 출산계획 있냐는 질문 들어봤어요? 남자들에겐 저게 마이너스 요소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저런질문 안 들어봤겠지만 여자들은 항상 들어요. 일보다 육아가 더 좋은 사람, 있겠죠. 근데 그 비율이 정말 그렇게 높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러실수 있겠냐니ㅋㅋ 출산한 사람들이 가사노동에서 자아를 찾고 싶어서 직장 그만두는줄 알아요? 맨 첫문장에서 말했다시피, 남성중심적 사회이기 때문에 출산한 여성은 사회적 성공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래서 사회가 평등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문맥이 파악이 안되어서 의무교육은 수료하셨는지 궁금하네요

  4. Movelikejaggy 2017.04.01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껏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살아왔으니 이해가 안되겠지
    이제서야 여성들이 모여서 목소리내니까 너넨 왜그렇게 예민해? 라고 광광대는 인간들 역시나 속속들이 등장ㅋ 왜이렇게 성평등이슈에 한남들은 예민하게 구는지 ㅋㅋㅋㅋ

    기존의 가부장적이고 남성위주위 사회를 유지하고싶다는 한국남자들의 숨은 의도 너무 대단하네요 ㅎㅎ

    oecd세계에서 여성이 일하기 좋은나라 순위애서 우리나라 꼴지했구요, 남녀임금격차 심한걸로도 악명높아요 .. 팩트를 원하면 oecd홈피 가서 통계를 보세요

    • 얼씨구 2017.04.02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디 더러운 회사를 다녔는지 모르겠지만 체계를 갖춘 중소기업 수준만 되어도 동일노동에 남녀 임금 격차는 없다.
      하는 일이 다르고 시간이 다르고 책임이 다르겠지.
      가부장적이고 남성 위주의 사회를 유지하고 싶은 남자의 숨은 의도를 어쩌구하는거 보니까 피해의식이 대단히 심각해 보이는데 그냥 본인 능력이나 더 키우는게 어때?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 거기서 여성을 빼고 그냥 일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고 해도 통할까 말까인데 남자는 쏙 빼고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라니... 역차별 하자는거네.
      그냥 같은 일을 같은 시간동안 하고 같은 돈을 받아가겠다는것도 아니고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 ㅋㅋㅋ
      너같은 애들은 그냥 능력이 없는거야.

  5. 지나가다가 2017.04.01 1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ovelikejaggy님께

    대한민국에서 남녀임금격차 많이 심하죠..
    그런데 통계란건 항상 정직한게 아니에요.
    실제로 저런 통계를 내면서 직업군 이런건 다 무시하고 통계를 내기때문에 여성 임금이 남성 임금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어요.
    물론 사회적으로 유리천장 그러한 장벽도 있지요. 하지만 위험하고 소득이 많은 그런 직업에 진출한 여성들이 얼마나 있는지 어떤 직업군에 성비가 어떻게 되는지 다 따져보고 생각해야 된답니다.
    하나의 통계만으로 모든걸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 지나가다2 2017.04.02 0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통계하나만으로 모든걸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만, 직업군을 무시하고 통계를 냈다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어보입니다.
      국회의원 남성1명에 회사의 비정규직 여성1명 이렇게 직군이 엄청나게 차이나도록 표본을 선택하지 않는 한 압도적으로 낮을 수는 없을텐데요.
      소득이 많은직업이 위험한 직업이라는 가정도 섣부른 일반화인 것 같구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위험하고 소득이
      많은 직업이라 함은 어떤게 있는지?
      목숨을 걸고 일하는 소방관도 목숨값에 비하면 소득이란침 적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6. 머루 2017.04.01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성들이 아무리 울고불고 해도 남성들은 손에쥔 사회기득권을 결코 거저 내주지 않습니다. 쟁취하셔야합니다.
    시민들이 몇백년전에 프랑스에서 투쟁을 통해 신민권을받아낸것 처럼 몇십년전에 한국에서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시킨것 처럼 여성들 스스로 남성들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받아내야하는겁니다.
    지금 여성권익이 한국에 비해 훨씬 높다고 하는 서방선진국의 모든 나라가 그렇습니다. 권리=의무=책임 이 세가지가 균형을 이룰때 비로소 여성들의 권익이 상승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려면 용기를내어 남성들의 보호막을 스스로 깨야 합니다. 남성들의 보호막 석애선 절대로 동등함 이라는 권리를 남성으로 부터 받아낼수 없으니까요.,

    • 호두마루 2017.04.02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보호막이란거 IMF 이후로 다 무너진지 오래됬어요. 사회적 보호막이란건 애초에 있지도 않았지만. 남성은 여성을 보호하는게 아니라 위협하고 있죠.
      여성이 깨야할 것은 이미 깨지고 없는 남성들의 보호막이 아니라 견고한 남성 카르텔과 가부장제입니다.

    • ㅎㅁㄴㄹ 2017.04.02 0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희는 보호막 속에서 동등하게 해달라고 한적 없습니다^^!
      오히려 오빠가 허락하는 페미니즘을 하라고 하는 것이 한남들이죠!

    • 지나가다 2017.04.02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두마루 // 사회적 보호막이 없다? 당장 군대랑 경찰만 봐도 그딴소리 못할텐데... 안전하게 보호된 사회 안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는게 뭔지 모르는 인간들이 가지는 모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댓글이구만..
      견고한 남성 카르텔이 어디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있다한들 스스로 깨고 나가봐라. 그 방법은 간단하다. 밖에 나가서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일 하면 된다. 어디 실전은 경험해보지도 못한것 같은데 당장 도시 밖으로만 나가봐도 자기가 얼마나 보호된 사회속에서 살고 있는지 피부로 느껴질텐데 한심스럽다.

  7. 2017.04.01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용된 책도 이 글도 좋네요.
    조직에서 불편을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사회가 바뀌어간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저도 언젠가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03 1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책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를 바꾸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계속 이건 아니라고, 이렇게 해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목소리 내려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

  8. 좋은글 2017.04.02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지만 반드시 수반되어야할 한가지
    신장된 권리만큼 책임을 질것!

    여성이 하기싫은 일은 남자도 하기 싫다.
    힘든일, 어려운일, 더러운일, 의무여서 꼭해야만 하는일..
    젊은 여성중에 위의 4가지 일을 하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
    아직도 남자의 부속물로 만족하는 여자가 많은 이상 과도한 서비스다.

    필요한만큼 얼마든지 목소리를 높여 쟁취해라!
    하지만 취한 권한만큼 책일질줄 아는 사람만 그 권리의 진짜 주인이다.
    다른 여성의 노력으로 '얻어진'권리를 가진자가 책임도 같이 질 수 있을까?

  9. 행인1 2017.04.02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 차지해라. 군대부터 시작해서 하수구 퍼내고 철근 엮고...
    세상 일자리의 적어도 절반은 현장에서 몸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다. 이른바 3D 업종들... 여자들은 도전할 생각도 안해보는.. 아니 그런 일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직업들이지.
    그저 누군가가 힘들게 쌓아올린 후에 안정된 수익구조를 만들어놓으면 세상의 반은 여자이니 저 일자리도 절반은 여자라야 한다는 지극히 정치적인 구호로 남의 밥그릇에 숟가락 올리지 말고 몸으로 뛰고 돈 날려가면서 직접 만든다음에 남자들한테 하나도 주지말고 그냥 니들이 다 차지해라.
    그나저나 같은 논리로 학교 선생의 절반은 남자로 채우자고 하면 찬성할 여자들 몇이나 될까?? ㅋㅋ

  10. mju.ac.kr 2017.04.02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의 글은 이런 의미가 아닐텐데..

    모든것을 이분법적 메카니즘에 맡기자는 의미가 아니라

    보다 낳은 세상을 위해서 남자.여자 역할이 있어서 그에 맞는 입장을 취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생물학적 본성에 따르는 역할구분이 시대적으로 바귀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가되는데..



    같은 남성으로서

    여성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면

    똑같이 이구동성으로 의무병역, 잠수용접공 따위를 이야기 하는데...

    한심한 종자들 같아요

    "그럼 니들이 애 낳아라" 하고 외치는 여성들 이야기 하고 무엇이 다른지요?


    평등이란 절차적 평등의 의미보다는

    상호관계적 평등이 옳지 않을까요 ?

    죤롤스 교수가 이야기한 정의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일반인과 휠체어탄 사람과 100 미터 경주를 할떄

    동일선상에서 출발하는 게 평등이 아니지 않습ㄴ까?


    조금더 배려하고 남자라면 신체적 약자인 여성에게 양보하는게

    남성의 권위를 추락시키나요?




    기자님의 글 잘 보았어요


    그런데 항상 이런글은 여성이 써야 하나요?

    여성이 쓰면 꼭 남성들의 반박글이 되풀이 되는 현상이 수십년 되풀이 되는데...


  11. 슈~~ 2017.04.03 0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린 인>에서 이 문장들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평등한 사회라면 여성이 국가와 기업의 반을 운영하고 남성이 가정의 반을 꾸려나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남자와 여자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서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사회로 나아간다면 린인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는 반듯이 실현 되리라 믿습시다. 현재 한국또한 그러한 사회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수반되어 우리의 의식 또한 계속 변화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의식의 변화라 해서 거창한게 아닙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틀린게 아니라 다르다는것을 인식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다른 생각을 갖는게 당연한거고, 다른 습관과 다른 삶을 방식으로 살아가는게 당연 합니다. 그들이 틀린게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거...인격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 풍토가 조성된다면 필자의 글 또한 무의미해지는 사회...이런게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03 1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가 억압하는 것은 여성만이 아니죠. 남성의 선택권도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더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서로를 이해하며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12. 여자 2017.04.13 0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장에선 이미 기계다루고 회의장소설지 등 남자와 동등한 업무를 맡고있다 단지 힘쓰는일에서 힘이 남자보단 모자라 도움 받긴하지만. . 그러나 가정에서는 여전히 집안일 애보는 일 시댁눈치보며 잡일 등 전부 내차지다. 다른 남자들과 비슷한일을하고 가면 나도 힘들어서 눕고싶고 쉬고싶은데 다시 밤일을 하는 기분이다. 회식도 남자들처럼 새벽끝까지 함께 즐겨보고 싶으나 남들 눈엔 가정은? 아이는? 먼저들 걱정해준다 그럼 당신네의 아이와 가정은 어떻고? 암튼 늦게가면 이혼감이라 말하는 남자들. . 여자라서 집에서 밥하고 설거지하고아이보고 새벽마다 깨서 이불덮어주고 이럴려고 결혼해서 힘들려고한것은 아닌데 단지 남자보다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이런대접과 더 많은 일을 해야한다는 것에 화가난다. 힘만 강했더라면 못할것이 뭐가있나 용접? 왜 못하나 할 수있다. 다만 가정 일을 분담해서 피곤에 안찌들면 더한것도 하겠지. . 우선 구조적으로 여잔 힘이 약하고 남잔 섬세한면과 멀티가 안되는 것에 서로 도우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빨래도 세탁기가 하는데 세탁물 세탁기에 넣고 옷 널고 개키고 뭐가 어려워서 안하는가 그정도는 일이 아닌가? 가끔이야 아무렇지도 안겠지 티도 안나는 일 매일해보면 그것도 귀찮은 노동인거다 물론 힘이 필요한 벽돌 나르기등 힘이 안되서 남자10장 옮길때 여잔 5장 옮겨서 일의 효율이 없다고하겠지 하지만 그 일을 여잔 못한다하지 말길 악으로 깡으로 할수 있다

  13. 생각하는 2017.05.11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들이 노력해 얻어낸 것이 아니면서 남자들 중에서는 어떤 권리가 자신 것들이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겐 그럼 넌 그것들을 누리기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고, 처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무언가를 받아낸 사람이 너를 무시하면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고 말해 주세요. 의외로 자신이 몰랐던 것을 면전에서 지적당하면 정말 생각머리가 없지 않고서야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엄마, 회사 내년 말고 낸중에 가면 안돼?"

 

두진이는 이제 우리 나이로 6세가 되었다. 제법 논리적인 언어 구사를 한다. 오늘은 동생이 물을 쏟아 엄마가 짜증을 내니(;;;;) "엄마 화내면 안되는거야.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라고 말하며 나를 당황시켰다. 그런 두진이가 자주 하는 말.

 

"내년 말고 낸중에."

 

가끔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두진이에게 이야기를 해줬다.

 

"엄마가 지금 잠깐 너희를 돌보려고 회사를 안 가는 거고 1년이 지나면 다시 회사에 가야해."

 

시간 개념이 정확치 않은 두진이는 1년, 내년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그저 엄마가 회사를 다시 가야 한다는 것이 싫을 뿐.

 

"엄마 내년에는 회사를 가야 해."

 

그때부터 두진이는 계속 말했다.

 

"엄마, 회사 내년 말고 낸중에 가면 안돼?"

 

'낸중에'는 구미 할머니한테 배운 사투리다. 나중에라는 뜻. 어린 마음에는 '내년'보다 '나중'이 훨씬 먼 일로 느껴지는 것일테다. 그때마다 낸중에라고 말하는 게 너무 웃겨서 막 웃으면서 "내년은 아직 많이 남았어. 나중보다 내년이 더 먼거야~"라고 말했지만 두진이 입장에서는 무슨 말인지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새해 달력이 생기자 두진이와 함께 8월 15일에 동그라미를 쳤다. 내 복직 날짜다.

 

그리고 설명을 해줬다.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 엄마 복직 날짜가 다가오는 거라고. 금방 울듯하는 두진. 그래도 난 미리 알려주는 게 닥쳐서 알려주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혼자서 (속으로) 합리화했다.

 

처음으로 킥보드타던 날, 좌절한 두진

 

두진이를 낳은 후 1년이 지나고 복직하기 직전 어린이집에 맡겼던 날이었다. 아직도 생생하다. 어린이집 적응 훈련을 한다고 갓 돌이 지난 10kg의 아이를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곁에 놓고 나온 날. 어린이집 현관문을 닫고 나오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이는 잘 있을 것이라고, 불과 한 시간 후에 다시 데리러 올 것이라고, 더 일찍 어린이집에 오는 아이들도 많다고 자기 위안을 위안을 했지만 떨어지는 눈물을 막을 순 없었다.

 

엄마 옆에 더 있고 싶어 하는 아이를 떼놓고 출근하던 복직 적응기. 아이를 돌봐주시던 친정엄마도, 출근하는 나도, 엄마랑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도 아침마다 눈물바람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우는 아이의 소리를 들을 땐 '아 회사에 늦는다고 말해볼까', '아 지각하더라도 한번 안아주고 갈까', '아냐, 적응해야지 어쩔 수 없어'의 반복이었다. 엄살부리는 걸 싫어한다며 짐짓 태연한 척 하며 출근했지만 늘 마음은 요동치는 바다같았다. 어떨 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고 "아이는 누구한테 맡겼어?"라고 안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어린이집과 친정엄마요"라고 대답하면서도 괜히 마음속에 칼날이 서기도 했다.

 

누구 잘못이 아닌데 괜히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제일 괴로웠다. 아이를 낳아놓고 방치한 것만 같은 기분, 아이를 뱃속에 품었던 내가 그 모든 걸 떠안아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뉘앙스를 느끼면 괜히 분노했다. 그러면서도 뱃속에 있던 아이를 제대로 품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면 내 일상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느꼈고 다른 삶을 상상하며 자주 도피했다. 친정엄마에게도,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제대로된 역할행동을 해내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면 괴로웠고 왜 내게 이런 많은 일들이 부여돼 있나 생각이 들면 억울했다. 회사에서라도 욕먹지 말아야 한다는 자기 세뇌는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자주 울었고 자주 화를 냈다.

 

또다시 복직을 해야 한다. 이제는 다리에 매달릴 아이가 둘이다. 게다가 한 명은 자신의 마음을 논리정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두진이는 36개월까지 일주일 두세번쯤 깨서 한 시간을 울었다. 무서운 꿈을 꾼 건지, 무엇에 놀란 건지 표현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도대체 왜 그러니" 어르고 달랬다가 화를 냈다가 새벽 세네시가 된 것을 보면 '내일 출근은 어쩌나'하며 아침을 맞기도 여러번.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와의 분리에 대한 공포와 상처를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해결하려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는 그 마음을 말로 표현하겠지. 두렵다.

 

이제 육아휴직 기간이 절반 남았다. 지난 8개월, 아이를 옆에서 키운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됐다. 아이의 밥을 차리기 위해 반찬을 하고 아이가 책을 가져오면 읽어주고 아이가 종이접기책을 가져오면 같이 종이접기를 하고 아이가 졸려하면 재워주고. 둘째가 첫째 장난감을 망가뜨리면 중재하고 또 혼내기도 하고. 아침 먹고 이유식 만들고 조금 놀다가 또 점심 먹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또 저녁 먹고 목욕시키고 재울 준비하고 재우면 하루가 끝난다. '아 언제 이렇게 하루가 금방 갔지' 싶지만 아이와 살을 부대고 안고 뽀뽀하고 '사랑해' 귓속말을 하는 순간순간은 정말 행복하다. 어떤 남자랑 이런 연애를 해봤을까 싶을 정도로.

 

나도 나지만 아이가 행복해하는 게 눈에 보인다. 하루에도 몇번씩 "엄마가 좋아", "엄마 사랑해", "엄마랑 노니까 재밌어"를 말하는 아이다. 한번은 회사 다닐 때 입었던 패딩을 입으니 표정이 어두워진다. "엄마 회사가는거야?" 아이는 내가 회사 가던 풍경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는 것일테다.

 

그런데 복직하면 이 행복을 아이가 잃어야 한다. 아이는 내 복직 후 일상을 다시 적응할 수 있을까. 첫째는 엄마와 하루종일 놀다가 밤에만, 주말에만 놀아야 한다는 것에 적응할 수 있을까. 둘째는 첫째처럼 무사히 어린이집에 적응할 수 있을까.

 

아마 나는 또 복직 후 엘리베이터 앞에서 울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엄마, 회사 내년 말고 낸중에 가면 안돼?"라는 말이 귀에 둥둥 울리겠지. 괜찮다고, 아이들은 마을이 키우는 것이라고, 누구보다 든든한 친정엄마가 나보다 아이들을 다 잘 봐주실 것이라고 말해도, 아이들과 내가 지금처럼 오래 함께 할 시간은 또 오기 힘들 것이다. 그것이 슬프다. 아이들이 이렇게 엄마아빠를 필요로 하는 시간은 짧은데. 이렇게 몸으로 부때껴서 안아주고 업어줘야 하는 시간은 짧은데. 왜 나는 너희들을 이렇게 빨리 두고 나가야 하는 거니.

 

그러면서도 다시 일할 것이 걱정된다. 회사 일에 적응하고 또 돌아와서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그리고 내일 발제를 걱정하는 삶. 주말에는 주중에 부모 품이 고팠을 아이들이 매달릴 것이다. 나를 위해 쉬는 시간은 이제 사치가 됐다. 그러면서도 일과 아이의 균형점이 어디인가 고민하느라 '나'는 잊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오늘 세아이 워킹맘이자 공무원인 30대 여성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봤다. 아이를 셋이나 두고 주 70시간 일을 했다고 한다. 70시간을 5일로 나누니 14시간, 7일로 나누니 10시간이다. 무슨 일을 그리 많이 했을까. 아니면 욕먹지 말아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던걸까. 집에 가면 아이들을 돌보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소진되면서도 몰랐을 것이다. 정말 끔찍하다. 끔찍하다. 끔찍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더이상 이렇게 살지 말자고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내 자리에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고 싶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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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정훈 2017.01.18 1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를 떼어놓고 나오는 그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느낄수 없는 감정입니다. 마치 아우슈비츠에서 아이를 떼놓고 철길개설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가는 노동자와 다를게 없지요. 이나라가 국민을 위한 나라인지 사업주를 위한 나라인지 헷갈립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1.19 16: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우슈비츠 비유는 심하지 않나 잠시 생각해봤다가... 뭐가 다른가 생각해보니 맞네요ㅠㅠ 이렇게 노동자들을 값싸게 부려먹으려는 나라, 그나마 있는 일자리라도 어떻게든 붙잡아야 겨우 살아남는 나라에서 어떻게 인간 대접을 받겠어요. 여기는 사업주를 위한 나라 맞습니다. 슬프네요.

  2. 후유 2017.01.19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울었죠...

안녕하세요. '누런돼지 관리자' 임아영입니다.

 

 

왜 요즘 엄마들은 죄책감을 느낄까요.

블로그에 달린 댓글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블로그 포스팅 '부모가 된다는 것'(http://ilovepig.khan.kr/193)에 9개월 아들을 둔 엄마가

"복직 전에 자책감을 느끼다 위로가 되는 글을 찾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댓글을 남겨주셨네요.

인터넷상에서 만난 얼굴 모르는 분이지만 왠지 위로를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또 하나의 육아일기를 올립니다.

 

"왜 요즘 엄마들은 죄책감을 느낄까요?"

 

 

 

(아기를 낳고 나서는 다이어리도 이렇게 업고 써야 합니다. 훌쩍)

 

 

장면 하나.

 

아기를 낳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습니다.

출산 후 호르몬 영향인지 매우 우울했었어요.

그러다 페북에서 사진 하나를 봤지요.

아는 선배 부부가 신문과 책을 읽으며 브런치를 먹는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고 왈칵 눈물을 쏟았습니다.

 

선배 부부는 아이를 낳기 않기로 약속한 '딩크족'이었거든요.

아기를 낳기로 선택한 저의 삶과 비교가 된 것이지요.

바로 이 느낌. "이제 내 인생에 저런 브런치는 없겠구나. 자유는 끝이구나."

 

눈물을 줄줄 흘리다(호르몬 영향 때문에 더 감정이 고조된다 합니다...;;)

안고 있는 4킬로그램도 안 되는 아기를 봤습니다.

밀려오는 죄책감...........................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

 

"내가 과연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장면 둘.

기특이는 백일 때까지는 정말 많이 우는 아기였습니다.

조리원에서는 '3대 울보'로 꼽힐 정도였지요.

 

백일 잔치를 하루 앞둔 날

그날따라 컨디션이 안 좋았던지 기특이는 한 시간을 넘게 울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달래고달래다 힘은 빠지고 신경은 있는대로 날카로워졌지요.

결국 "그만 좀 울으라고! 나한테 어떻게 해달라는 말이야!"라며

백일 아기 엉덩이를 두 대 때렸습니다.

 

그리고 밀려오는 죄책감.............................

"난 엄마 자격이 없다"

 

 

 

장면 셋.

지난 9월 기특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복직 후 친정 엄마가 돌봐주시기로 했지만 그래도 하루종일 맡기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

결국 어린이집을 알아보기로 했지요.

 

어린이집을 알아보다가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회사를 꼭 다녀야 할까. 저 어린 것을, 말도 못 하는 저 어린 것을 남의 손에 맡겨야 하나, 엄마 보고싶다고 많이 울텐데...'

 

"미안해 아가야" 라며 자고 있는 기특이를 여러 번 쓰다듬었습니다.

엄마 되고 가장 죄책감을 크게 느낀 날이었을 거예요.

왜 수많은 엄마들이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애가 생기면 이렇게 책도 안고 봐야 합니다.....훌쩍)

 

 

아마 죄책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휴... 엄마들의 죄책감은 어디서 왔을까요?

 

기특이를 돌보다 우울하면 전 EBS <마더쇼크>라는 책을 봤습니다.

 

<마더쇼크> 유명한 다큐 프로그램이죠. EBS 다큐프라임에서 연작으로 방송했었습니다.

전 다큐는 못 보고 나중에 나온 책을 봤는데요.

 

죄책감을 느끼거나 불안할 때 이 책을 봅니다.

 

 

  육아 스트레스, 과도한 책임감에서 벗어나려면 엄마를 도와줄 육아 도우미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연로하신 부모님, 또는 아직도 사회활동을 하시는 부모님께 맡기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놀이방이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려 하지만 영아를 24시간 돌봐주는 곳은 찾기 어렵다. 찾았다고 해도 신뢰할 수 있는 곳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초등학교 입학 후 오후 2시에 하교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가 더 난감하다. 학교에서 시행하는 방과후 교실을 이용하는 것도, 학원 순례를 시키는 것도 만만치 않다. 사회적으로 육아를 보조해줄 도우미나 탁아·위탁 시설 등이 확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도 양질의 보육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 양육에 관련한 모든 책임이 가정, 특히 엄마에게 몰리고 있다.

  사회적인 여건상 엄마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가는 엄마는 그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점수를 매길 때는 박한 평가를 내린다. 지금이라도 엄마는 자기 자신에게 말해야 한다. 아이 키우기가 힘든 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다, 슈퍼맘이 아니어도 괜찮다, 나는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라고 말이다.

 

- <마더쇼크> 239~240쪽 "불필요한 죄책감을 벗어던져라" 중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

 

<마더쇼크>에서는 '슈퍼맘 신드롬'이나 '착한 엄마 콤플레스'에 시달리고 말라고 조언합니다.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라는 거지요.

 

아이가 성장하면서 엄마 또한 '보호자→양육자→훈육자→격려자→상담자'로 변해야 하는데

엄마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동시에, 지속적으로 해내야 한다고 여긴다네요.

 

 

 

아이 연령에 따른 엄마 역할의 발달 단계

 

1단계 보호자

  아기가 태어나면 1년까지 보호자, 보육자로서 엄마는 아기를 보호하고 기른다. 아기에게 닥칠 사고나 생명의 위협을 보호해야 하는 존재.

 

2단계 양육자

  만 1~3세까지. 보육이나 보호의 의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개념. 연령에 맞춰 운동, 정서, 두뇌 등을 고루 발달시킬 수 있도록 엄마가 아이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거나 지도하는 일까지 포함됨.

 

3단계 훈육자

  만 4~7세. 어린이집 등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기에게 엄마는 옳고 그른 것을 알려주고,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가르친다. 아이를 가르쳐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세상을 접하는 일이 순조로워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

 

4단계 격려자

  만 7~12세. 학령기에 접어들면서 아이는 엄마 이외에 선생님, 친구, 책, TV, 인터넷 등에서 다양한 것을 배운다. 이때 엄마는 아이가 혼자 힘으로 잘 해낼 수 있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맡는다.

 

5단계 상담자

  만 12~20세. 엄마가 청소년인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관여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아이의 생각이나 속내는 아무리 엄마라도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부모로서 꼭 필요한 역할은 카운슬러, 멘토가 되어주는 일이다.

 

<마더쇼크> 244~247쪽 요약

 

아기를 낳기 전에는 '쿨한 엄마가 되자'고 다짐했었습니다.

아이에 전전긍긍하는 엄마가 되지 말자.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더군요.

아기가 재채기만 해도 '내가 뭔갈 잘못해줬나'라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그런 저에게 위의 얘기는 많은 위로가 됐습니다.

 

엄마도 아기와 함께 성장하는 것 아닐까요.

전 아직도 제가 미숙하다고, 어리다고(흠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완벽하겠어요.

그저 지나면서 배우는 것이겠죠.

기특이가 세상에 적응하고 다양한 것을 배울 때

저 또한 기특이를 통해 세상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니가 괜한 죄책감은 버리자,고 스스로에게 말해봅니다.

나중에 복직을 해서도 육아 때문에 갈등을 느끼는 순간이 많겠죠.

그때도 저의 행복, 그리고 기특이의 행복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엄마가 되었으면,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마더쇼크>가 언급하지 않은 부분!

아이는 엄마 혼자 키우는 게 아니죠.

아이를 사이에 두고 엄마, 아빠가 같이 아이 손을 잡아주고 함께 걷는 것이잖아요.

 

많은 엄마들이 혼자 짐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꿈꿔봅니다.

아빠가 일찍! 퇴근해서 아이랑 놀아주는 사회.

(기특이가 어른이 되면 가...능할까요?ㅠㅠ)

아빠도 양육의 기쁨을 느끼는 사회.

엄마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회! 말입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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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talgi21.khan.kr 딸기 2013.12.03 1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종류의 죄책감의 시기는 지나가니까 걱정 마 ^^
    그리고 아이와 함께 브런치를 먹는 날이 올 거야
    혹은 아이 없이 우아하게 남편과 브런치를 먹거나
    생각보다 그 날이 빨리 오더라고.....

    죄책감 느낄 필요 전혀 없어. 나도 참 많이 그랬는데...
    그래서 니 글에 정말정말 공감하지만,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니 지금은 좀 편해

    물론, 좀 더 지나면(울딸이 더 커서 공부 '잘 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또다른 종류의 죄책감에 시달리게 될지는 모르지만... ㅎㅎㅎ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3.12.03 10: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이랑 브런치 먹기... 뭔가 멋진데요 선배 ㅎㅎ
      기특이랑 있으면서 선배 얘기가 많이 생각났어요. 키울 때 힘드셨다고 했던 얘기들. 휴...^^ 저도 선배처럼 곧 편해지겠죠. 복직한 후 어쩌나 걱정도 많이 되지만... 무던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 하하

      선배 집에 놀러오세요요요요~~ㅎㅎ

  2. 혠이 2013.12.03 1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 멋져요 ㅠ_ㅠ 뭐라 쪼찡하기는 쑥스럽지만... 여튼 대단하세요. 이렇게 글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괜찮다 괜찮다 위안을 주시는 것도 멋지네요. 회사 오실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 >ㅁ<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3.12.03 1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혜인아 네 댓글에 내가 더 쑥스러워졌지만... 고맙네 ㅎㅎ 그냥 엄마는 아무나 되는 건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길래 함 써봤어;;ㅋ 나도 혜인이 기사 열심히 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