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돼지 관리자'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2.03.04 베트남·캄보디아 여행기 #1. 하롱베이 (2)
  2. 2012.02.26 존재가 빛이 나는 순간 (2)
  3. 2012.01.05 ‘이근안’되지 않기
  4. 2011.10.24 '누런돼지'를 관리하게 된 사연 (10)

'누런돼지' '누런돼지 관리자' 부부는 지난 2월 6일부터 4박 6일간
베트남 하롱베이와 하노이, 캄보디아 앙코르왓과 씨엠립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의 추운 겨울, 저는 너무나도 서울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추워서요. ㅎㅎ
마침 저희가 베트남/캄보디아에 있었을 때는 서울이 심각한 '한파'였더군요.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ㅋ

여행은 늘 '일상을 떠나는 일'이라 설레는 만큼
새로운 곳의 낯섬과 그에 대한 적응 사이에서 '고생'도 생기기 마련이죠.
저희 부부도 갑자기 맞댄 캄보디아의 더위에 몸이 한 번 놀라고
석회질 물에 한 번 더 놀라 다녀와서 '장염' 등으로 고생 좀 했습니다.

ㅎㅎ 그래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떠나고 싶은 게 인간의 뻔한 마음이라
또 여행가고 싶네요. 여름휴가 만을 애타게 기다리며!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제대로 기록하지 못해
이번에는 사진을 중심으로 기록해보기로 했습니다.



첫째날은 인천공항에서 씨엠립공항(캄보디아), 씨엠립공항에서 다시 하노이공항(베트남),
또 하노이공항에서 하롱베이까지 버스를 타고 4시간여를 달리느라 다 써버렸습니다...


그래도 씨엠립 공항에서 하늘이 너무 예뻐서 찍은 사진입니다.  

둘째날부터 본격적 여행이 시작됐죠.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17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하롱베이의
‘하롱(下龍)’은 ‘용이 내려온 자리’라는 뜻이더군요.
전설로는 한 무리의 용들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했고,
침략자들과 싸우기 위해 내뱉은 보석들은 섬이 되었다고 합니다.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3000여개의 그림같은 섬들이 있었고
바다 위의 기암괴석도 신기했습니다.


아름답죠?
배를 타고 기암괴석을 계속 바라봤습니다.

하롱베이는 '3無'라고 합니다.
갈매기, 바다 냄새, 멀미가 없다더라고요.

파도가 없으니 포말(물거품)이 없고 포말이 없으니 비린내가 나지 않고
냄새가 나질 않으니 갈매기가 오지 않는답니다. 

정말 오랫동안 배를 탔는데도 멀미를 하지 않아 신기했습니다.



기암괴석 사이에 배가 떠다니고 있는데
도올 김용옥 선생은 '여객선들이 다투어 가는 모습이 꼭 한산도 앞바다로 몰려드는 왜군의 배들 같다.
물론 내가 탄 배는 거북선처럼 의젓했다'고 적었더군요. (<앙코르와트·월남 가다> /도올 김용옥>

누런돼지도 명량해전 당시에 울돌목이라는 좁은 물길로 들어오는 왜구의 배들 같다고 하더라고요.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있다"라고 하는 이순신 장군의 말이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저는 누런돼지의 말에 속으로 웃었습니다 ㅎㅎ)


가다보니 섬 밑의 작은 구멍을 통해 그 안으로 통통배를 타고 들어가는 체험도 있었습니다.
누런돼지는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돼지>에 나오는 장면이 연상됐다고 합니다.
붉은돼지의 기지가 섬에 난 구멍을 통해 들어가야 하거든요.
참고로 아래 그 장면을 추가했습니다.
비교해 보세요. 

누런돼지는
섬 안에는 이런 아늑한 모래사장은 없었지만
섬 구멍을 통해 어떤 장소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마치 붉은돼지가 된 마냥 신났다고 합니다.
ㅎㅎ
(누런돼지는 정말 '붉은돼지'를 좋아합니다. ㅎㅎ)
*참고 '누런돼지'를 관리하게 된 사연  http://ilovepig.khan.kr/2


중간에 내려서 과일들도 구경했고요. 탐스럽죠?



수상 가옥의 모습입니다.
빨강 바탕에 노랑색 별 모양의 베트남 국기가 보이죠?
1976년 7월에 통일국가의 국기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베트남 독립운동 당시에는 빨강은 '혁명의 피와 조국의 정신',
노랑색 별 다섯개의 모서리는 '노동자, 농민, 지식인, 청년, 군인의 단결'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통일 이후에는 별은 베트남 공산당의 리더쉽을, 붉은색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국기의 뜻이 바뀌었다고 하네요.
당시 가이드에게 들은 말로는 별이 호치민을 상징한다고도 하는데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계속 펼쳐지는 섬들과 기암괴석.
계속 이어지는 풍경에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배에 있던 작은 계단에 앉아서 이 풍경들을 바라보는데 '신선놀음'하는 것 같아서
저희 부부는 발을 올려두고 "지금 이대로"를 되뇌었습니다.


티톱 전망대도 올라갔습니다.


티톱이라는 사람은 소련의 우주비행사 출신 군인이라고 합니다. 
인도차이나 전쟁 때 군사 고문으로 베트남에 왔었다고 합니다.
호치민이 소련에 공부하러 갔을 때 친한 친구이기도 했는데
군사 고문으로 왔을 당시 하롱베이를 보고 정말 아름다웠다고 느꼈는지 이 섬을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호치민은 섬을 줄 수는 없고 이름을 붙여주겠다고 해서 '티톱 전망대'가 됐다고 하네요.

전망대 끝까지 올라가서 찍은 하롱베이 전경입니다.
원래 하롱베이는 안개가 끼는 등 날씨가 안 좋은 날이 많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저희가 간 날에는 날씨가 좋아서 저렇게 좋은 풍광을 많이 찍어올 수 있었습니다. 

사진으로 구경해 보세요.
 

  




그리고 석회동굴입니다. 엄청난 크기더군요.
전쟁할 때 군수 물자도 저장하던 곳이라고 했는데 실제 보니 그 정도로 매우 컸습니다.



귀신처럼 나와서 신이 났습니다 ㅎㅎ


배에 내려서 저녁을 먹고 나니 밤이 됐습니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려는데 일행이었던 5살짜리 남자 꼬마아이가 베트남 여자 꼬마아이를 만나더니
금방 뛰면서 친해지더라고요.


아이들은 정말 국적도, 민족도 상관없이 어울려 놀더군요.
어른인 저는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새삼 나는 나이가 들었구나' 했습니다. ㅎㅎ

첫날 여행은 이렇게 끝.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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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talgi21.khan.kr 딸기 2012.03.04 2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넘 재밌다! 나 원래 여행기 잘 안 읽는데, 누런돼지네 여행기는 사진들이 많아서 재밌네.
    일본에도 놀러와라. 둘이 주말에 하루만 휴가내서 목욜밤~일욜밤 다녀가면 되잖아.
    도쿄에 오면 숙식제공해줄게~~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2.03.04 2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선배~~~ 안 그래도 선배 블로그 올리신 글 보고 댓글 남긴다는 게 까먹었어요. 잘 도착하셨군요!!^^ 일본 가면 정말 좋은데 ㅎㅎ 선배 돌아오시기 전까지 도전해보겠습니다~~ 웹상에서 자주 봬용^^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입니다. 어떤 오후를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느지막이 일어나 '누런돼지'가 마감하는 날이라 아침을 차려주고 커피도 끓여줬습니다.
(ㅎㅎ 이렇게 말하면 제가 밥을 더 잘 챙겨주는 것 같지만 사실 반대입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죠ㅋㅋ)

그리고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경향신문 '인터랙티브팀'이 낸 책인데요.
지난해 이 팀에서 경향신문에서 '알파레이디 리더십' 강연을 진행했고 그 강연을 묶어낸 책입니다.

첫 장이 손미나 전 KBS 아나운서가 한 강연 부분이었어요.
큰 기대 없이 책을 넘겼는데 그녀의 문장이 마음에 쏙쏙 들어와 이렇게 블로그까지 열어 글을 씁니다.
"아나운서에서 여행작가로 변신한 손미나"라는 제목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에게 현실은 언제나 부족한 듯, 불안한 듯 느껴지는 법이거든요. 탈출하고 싶고, 나아지고 싶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생활을 하고 싶고, 여행도 하고 싶고...... 그런 생각은 누구나 할 텐데, 제가 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용기를 내어 실천에 옮긴 것이죠.

저는 이 문장을 읽고 요즘 저의 생각을 표현해준 것 같아 마음이 울렸습니다.
삶이라는 게 항상 어딘가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와 다른 측면에서는 또 '견뎌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견딘다'는 것은 현실이 늘 부족하고 불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요즘 그래서인지 자주 '탈출' 혹은 '도망'을 꿈꿨습니다. ㅎㅎ 물론 실제로 그러진 못했지만요. 

그녀는 누구나 선망하던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졌었지만 10년차쯤 되면 그만두고 나가서 유학을 해야지, 계획표에 적어뒀었고 유학 시절 여행작가로 글 쓰시던 분이 특강을 하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저런 일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인생에는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며 마음을 울리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순간의 마음을 기억해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인 거죠.
그게 보통 사람들과 차이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KBS 아나운서를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도 그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랑도 많이 받고 행복하기도 했지만, 고민도 많았습니다. 아나운서가 선망의 직업이라 하는데, 막상 그 안에서 경쟁하고 사랑받는 진행자로 살아남으려 애쓰면서 고민도 많았어요.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어요. 주7일 근무를 5년간 했어요. 떠나기 직전에는 '잠에서 깨어 직장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하루만 있었으면'하고  밤마다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 제가 오랫동안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라디오 프로그그램을 진행했어요. 밤 프로이니 주로 심란한 사연이 올라옵니다. "죽을 것 같다"는 청취자 이야기를 들으면 그 마음을 풀어 줘야 하니 저도 성심껏 "곧 헤쳐 나갈 거예요" 말해 주지요. 그런데, 나도 죽겠는데 누가 좀 위로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그만두어야 할 때가 됐구나, 쉬어야겠다 싶었지요.

나에게 휴가를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떠나야겠다고 생각해보니 제 자신이 어느새 약해져 있었습니다. 방송국에서는 도와주는 사람도 많고, 저 혼자 힘으로 해온 일은 없는 것 같고, 그래서 두려움도 많아지더라고요. 대학 시절 스페인에 갔을 때는 젊었던지라 겁이 없었는데, 그때는 여행조차 무서웠습니다.  

그녀는 두려움을 넘어 몰디브로 여행을 '혼자' 떠났다고 합니다. 거기서 만난 영국인 여성 의사와 말이 잘 통해서 7박8일을 함께 이야기했다고 하네요.

제가 방송사에서 일했던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그 친구가 듣고 있다가 "그래서, 행복하니(So are you happy?)"라고 묻는 거예요. 너무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어요. 수영복 차림에 앞에는 인도양이 펼쳐져 있는데 거짓말은 못 하겠더라고요. 죽어도 입에서 "Yes!"가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여러분은 행복하신가요?
손미나씨의 문장에 저는 지난해 5월이 생각났습니다. 지난해 5월쯤 저는 '행복하지 않아'라는 말을 매일 되새겼습니다. 일을 하고는 있는데 열심히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열심히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책을 읽을 시간도 나지 않는 업무 구조가 답답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또 역시나 '탈출'과 '도망'을 꿈꿨죠.  

그런데 '결혼'이 걸렸습니다. 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결혼은 어쩌지.. 라며 걱정했습니다.
"여자 나이 서른"이었고 옆에서 엄마는 저를 볼 때마다 '결혼'을 얘기했습니다.
멋지고 '쏘 쿨'하게 "나는 결혼 같은 거 상관 않는 30대 커리어 우먼'이 되겠어!"하면 좋았겠지만
저는 결혼이 하고 싶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달려 오는 아내, 엄마, 며느리로의 책임감이 두렵긴 했지만
한 사람과 평생을 신뢰와 사랑으로 걸어간다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무한한 성장'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여자로 태어나 '엄마'가 되어 아기를 뱃 속에서 키우고 한 때 '내 몸'이었던 아이를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게 도와주는 그 과정을 꼭 겪어보고 싶다고 생각해 왔거든요.

그래서 그 5월에 저는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역설적으로 지난해 가장 답답하고 힘들었던 시간, 제가 선택한 것은 '결혼'이었던 겁니다.

저는 결혼이 인생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길 기대했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인생이 더 재미 없어지거나 하면 어떡해요. 그게 사실 사람들이 결혼하기 두려워하는 지점이죠. 특히 2012년 한국은 젊은이들이 결혼하기 가혹한 사회가 맞습니다.

그래도 저는 희망에 가득차 (ㅎㅎ) 배우자를 고를 때 가장 상위에 두고 고민했던 세 가지를 당시 남자친구였던 '누런돼지'가 지니고 있는지를 따져봤습니다(잘 따져봐야 합니다 ㅎㅎ) 첫번째는 정치적 지향이 비슷한가, 두번째가 문학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이 제일 찾기 어려운 부분이었는데요. "감정의 진폭이 큰 나를 상쇄시켜줄 수 있는 사람인가" ㅎㅎ 왠지 부끄럽네요.

당시 남자친구였던 '누런돼지'는 다행히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세 가지 중 하나만 부족했더라도 결혼을 결심하지 못했겠지만 다행히도 누런돼지를 믿어 의심치 않아 저는 5월 말부터 5개월을 준비해 결혼을 했지요.

결혼하고 나니 행복한 순간이 자주 찾아왔습니다.
남편은 결혼 전 예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뉴스를 보거나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며 정부를 비판하기도 하고 토론을 하기도 합니다. 가끔 무작정 싫은 정치인이나 구태의연한 상황을 함께 무자비하게 욕하기도 하지요 ㅎㅎ 같이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남편이 밑줄 쳐 놓은 구절은 한 번 더 읽으며 적어두기도 하고 영화를 보고 영화 속 인물들의 심리와 감독의 역량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감정의 진폭이 큰 저는 막 우울했다가도 남편의 말을 듣고 위로받고 막 화가 났다가도 남편의 말을 듣고 화가 났던 상황이나 대상을 이해하게 되지요. ㅎㅎ 네 결혼 잘 했습니다.

/제주도의 하늘.

그런데도 저는 문득 '이렇게 살아도 좋은가'를 생각합니다.

손미나씨는 대학 후배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대학 후배가 회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얘기를 했어요. 좋은 직장을 왜 관두냐고 하니, 더 이상 안 되겠대요. 남들 보기에는 번듯한 직장이었거든요. "누나, 가슴이 뛰질 않아요." 그 한 마디에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후배는 '가슴 뛰는 일'을 찾아가서 지금 너무 잘 하고 있어요. 어느 순간 자기에게 오는 육감적 이끌림이 있어요. 그걸 꼭 붙잡으세요.

가슴이 떨리시나요?
고민이었던 '결혼'을 하고 나니 저는 또다시 다른 '떨림'을 찾는 기분입니다.
인간이란 원래 욕망을 끊임없이 충족하려는 존재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만 쉬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손미나씨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도 노력하라"고 말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돼요. 어릴 적으로 돌아가 보세요. 자전거, 스케이트 배울 때 안 넘어지고 배울 수 있던가요? 그런데 왜 인생에서는 안 넘어지고 가려 하나요.

제가 한동안 일이 잘 되기 않아 "왜 이렇게 안 될까요?" 했더니 친구 어머니께서 "네가 인생을 모르는구나. 뜻대로 되는 건 거의 없어"라고 하셨어요. 그걸 알면서도 노력하기 때문에 삶이 가치 있는 것이죠.

(...)
인생은 1막짜리 연극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2만, 3막을 열 수 있어요.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하지만 같은 코스를 뛰는 건 아니죠. 누구에게나 '나만의 코스'가 있어요.


저는 오늘 손미나씨의 강연록을 읽고
'나만의 코스'를 뛰는 사람의 열정을 읽어 행복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고 넘어져 울게 되어도 다시 일어나 행복하게 달리는 삶.
직장 생활을 한 지 3년 5개월 정도 됐는데 언젠가부터 '가슴이 뛰지 않는다'며 열심히 달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결혼을 선택했을 때처럼 마음을 열심히 달리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여행기를 쓴 이유에 대해서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간으로서 계속 성장하지 않으면 달나라를 간들, 어디를 간들 똑같은 글이 나올 거예요. 나 스스로 성장하고 싶어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성장하는 삶을 살기 위해 여행기를 쓰는 그녀. 너무 멋있지 않습니까!! ㅎ

회사를 나와 지금 책을 쓰면서 살다 보니, 내가 나의 성장을 위해 어디로 여행할 것인지 선택하고, 내가 글을 쓰고, 제목을 짓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디자인하니 그게 좋더라고요. 방송사에서도 10년간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일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나의 천직이었어, 하지만 지금의 작가라는 것도 나의 천직이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읽은 책들 중에 '마음을 울리는 말'이 가장 많은 글이었습니다.

그녀의 삶을 무작정 응원하고 싶어졌습니다. 저도 그녀의 용기를 배우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제가 정말 좋아하는 구절을 인용할게요.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어도 '왜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는 의문이 솟구치는 일 따위에는 애당초 몰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by 누런돼지 관리자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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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ost.tistory.com 박소희 2012.03.15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절기라서 마음마저 싱숭생숭한데 뭐랄까, 그냥 좋구나, 생각만 하다 가요. 잘 읽고 갑니다..:)


안녕하세요. ‘누런돼지 관리자’ 임아영입니다.

좋은 사람은 일찍 떠나는 법일까요. 4일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영결식이 엄수됐습니다.
마석모란공원에 잠들게 되었다는 글을 보면서 문득 아득해졌습니다.

김근태의 삶을 말하는 것조차 미안한 사람들과 그에게 빚을 진 사람이 많아서일까요.
저는 김근태 고문이라도 오래 살기를 바랬습니다.
지난 몇년간 우리는 너무 많은 ‘어른’들을 잃어버렸으니까요.
그가 ‘뉴라이트’의 상징에 졌을 때도 이렇게 아득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시 그가 우리 앞에서 그의 삶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사진공동취재단

딸 병민씨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말했습니다.
“김근태 딸로 태어난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많은 분들께는 민주주의자 김근태로 기억되길 바라고 저는 저에게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을 선물해준 가장 저의 사랑하는 아버지로 기억하고 싶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페이스북에서 김근태 상임고문의 생전 말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희망을 의심할 줄 아는 진지함,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려는 성실함, 대안이 없음을 고백하는 용기, 추상적인 도덕이 아닌 현실적 차선을 선택해가는 긴장 속에서 우리는 다시 희망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1995)

 

빅터 프랭클이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제가 매우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http://blog.naver.com/mercury117?Redirect=Log&logNo=140118088539&jumpingVid=F7D930914A03667D75181A265049A9875042
빅터 프랭클에 대해 만든 EBS의 <e지식채널> 영상입니다.
(EBS에서는 다시보기를 지원하지 않는듯합니다. 그래서 이 링크를 걸어둡니다)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입니다.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아내, 형제들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갑니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끌려오자마자 책으로 내려 했던 원고를 독일군에 빼앗기고 낙담합니다.
언제 가스실로 끌려가 죽게 될지 모르는 공포가 그를 엄습했을 겁니다.
그때 빅터 프랭클은 죄수복 속의 작은 쪽지를 발견합니다.
“진심으로 네 영혼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빅터 프랭클은 그때부터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루에 한 컵씩 배급되는 물을 반만 먹고
나머지는 세수하는데 쓰고 유리조각으로 면도까지 했다고 합니다.
건강하고 깨끗해 보이면 가스실로 가는 시간이 미뤄질 것을 알았던 것이죠.
결국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을 세상에 폭로하고 그 기억을 토대로 ‘로고테라피’(의미치료)를 만들어냅니다.
어떤 두려운 상황, 죽음이 엄습하는 상황에서도 긍정적 마음가짐을 가지며 삶의 ‘의미’를 찾는 태도.
로고테라피는 ‘의미’를 찾는 훈련을 통해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유지하도록 하는 치료라고 합니다.

그냥 포기하고 죽음을 기다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빅터 프랭클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우슈비츠의 상황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죠.
그리고 ‘아내’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내와 함께 했던 행복한 일상을 떠올리며 다시 그날로 돌아가는 꿈꾸며 괴로운 현실을 견뎌냈다고 합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것이죠.

정혜신 박사는 <사람 vs 사람>(2005)이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빅터 프랭클은 끌려간 사람의 95%가 도착 30분 내에 가스실에서 처형되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 중 하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극심한 기아와 강제노동에 고문까지 견디면서 그는 자기 자신과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의 심리변화 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전쟁이 끝난 후 그 참상을 세상에 알렸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엄청난 행운(?)과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아우슈비츠에서 끝내 살아남은 극소수의 사람들 중 99%는 자기경멸로 인한 정신적 황폐화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은 알코올이나 약물중독 혹은 자폐증 등으로 고생하다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빅터 프랭클은 그야말로 ‘초월적 존재’라 불러도 될 만한 사람이다. 초월적 존재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빅터 프랭클, 김근태 같은 사람이 바로 초월적 존재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이나 성별을 따지지 않고 말한다면 나는 김근태가 너무나 고맙다. 그 지옥의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옥의 고통 속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사람들. 빅터 프랭클과 김근태.


정혜신 박사는 김근태 고문에 대한 기억도 꺼내놓습니다.

“김근태는 지난 96년 15대 총선을 통해 제도권 정치에 진입했는데, 그는 이 선거를 회상하며 개인적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한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고 그런 호들갑을 떤다면 애초에 김근태가 아니다. 김근태는 재야에 있던 30여 년간 언제나 익명이나 가명을 쓰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오지 못하다가 15대 총선 때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내걸고 사람들 앞에 나섰다. 그는 거절되거나 단절되지 않고 사람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다고 회고한다. 그동안 왜곡되고 편견에 갇혔던 자신의 진짜배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 나를 소개하는 일 따위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사라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감흥을 주는 일이 아닌데도, 김근태는 그 일이 그렇게 고맙고 좋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김근태는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삶을 살아온 김근태, 빅터 프랭클 같은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진 빚이 커서이기도 하겠지만
다시는 같은 악몽과 절망을 반복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게 끝일까요.
같은 악몽과 절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김근태를 기억하는 것만큼 김근태를 상처입힌 사람들처럼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합니다.
내가 만약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 내가 만약 처절한 독재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김근태처럼, 독립운동가들처럼 살 수 있었을까.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했던 사람들처럼은,
일제에 적극 부응했던 사람들처럼만은 살지 않을 수 있기를.
엄혹했던 독재 아래에서 자유와 희망을 말했던 사람들에게
총과 칼을 겨눴던 사람들처럼만은 살지 않을 수 있기를.


김근태 상임고문이 타계하자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악연’이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에 대한 기사도 많이 나왔습니다. 김 상임고문은 1985년 9월 4일 민주화청년연합을 결성했다는 혐의로 안기부(현 국정원)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이 전 경감에게 20여일간 고문을 당했습니다.

전기고문 8차례와 물고문 2차례.
김 상임고문은 고문을 받은 뒤 후유증에 시달렸고 2007년에는 파킨슨병을 진단받았지요.
 
이근안 전 경감은 지난해 한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시대 상황에선 고문이 애국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죠.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다”, “나는 고문 기술자가 아니고 굳이 기술자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심문 기술자’가 맞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심문도 하나의 예술이다” 등등.

저는 그 기사를 읽고 정말 아득했습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애국이었을까요.

 

‘악의 평범성’으로 유명한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하는 일은 (…) 정치적 자유가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그렇게들 한다. 그러나 저명한 학자들이 보통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참으로 불행히도 생각하도록 하는 힘은 인간의 다른 능력에 비해 가장 약하다. 폭정 아래에서는, 생각하는 일보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일이 훨씬 쉽다.”

 

아렌트는 1961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에 참관합니다.
재판을 보고 그녀는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죠.

그녀는 아이히만이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이라고 평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아이히만은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만 말합니다.
또 명령은 지키는 것이 도리라고 말하죠.

자신의 일이 수백만의 죄 없는 사람들을 살육하는 일이었는데도 아이히만은 자신의 일이 사람을 죽인 것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시키는대로 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죠.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보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냅니다.

악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는 것.
“나는 명령받은 대로 했을 뿐”이라는 핑계로 ‘생각’을 그만둔다면
평범한 누구나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렌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언제나 ‘생각’해야 한다는 것 아니었을까요.
우리 안에 있는 악마를 마주하지 않도록 ‘생각’하는 그것뿐.
악을 마주쳤다 할지라도 그 악을 멈출 수 있게 하는 것은 ‘자기성찰’뿐.

가끔 살아가는 것이 ‘역할 놀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각자 맡은 역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갈등도 일으키고 조화도 만들어내겠죠.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막연히 ‘좋은 역할’을 맡아 ‘선한 역할행동’을 해내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최대한 좋은 역할을 맡는 것.
그것이 끝이 아니라 그 역할 안에서 최대한의 선한 행동을 하는 것.
내가 맡은 역할이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이라면,
그것도 그 사람의 생명과 안위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 역할을 포기하는 게 맞겠죠.

아이히만은, 이근안은 ‘생각’을 멈추고
자기의 역할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선택한 역할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내놓았는지 눈을 감았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이죠.

 


이근안을 찾아내서 그를 속죄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타의로 용서를 구하게 만드는 것이 ‘반성’이 될 수 있을까요.

1999년 11월 언론 기고문을 통해 김근태 상임고문은 말했습니다.

(이근안 전 경감 같은) 고문자들은 독재구조의 악순환에 가담한 가해자면서 동시에 인간성이 파괴된 피해자다.

 


또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이 이근안 뿐일까요.
당시 이근안에 고문을 지시한 사람들, 그 위 또 그 위 결제권자들, 책임자들...
손에 피 하나 묻히지 않고 사람을 죽여도 상관 없다고 뒷짐지고 있었던 ‘윗분들’
독재 구조를 만들어냈던 사람들. 그 악순환을 묵인했던 수많은 사람들.


기억해야 합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우리 모두 ‘이근안’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사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에게 총을 겨누지 않을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을 수 있도록.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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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거창(?)하지만 사실 이 글의 목적은 ‘블로그 소개’입니다.ㅎㅎ

안녕하세요? ‘누런돼지 관리자’이자 경향신문 디지털뉴스팀 소속 임아영 기자입니다.

‘누런돼지’를 관리하게 된 사연을 설명하려면
우선 ‘누런돼지’를 소개해야겠군요.ㅎㅎ

누런돼지는 경향신문 문화부 소속 황경상 기자입니다.
이메일 아이디가 yellowpig@kyunghyang.com 이죠.
황 기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붉은 돼지>를 ‘일생의 명작’으로 꼽습니다.
하야오 감독이 중년이 된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는 자전적 작품이죠.
1차세계대전에서 공군 조종사로 참전해 동료들을 잃었던 ‘붉은 돼지’, 포르코 로소가 인간에 대한 혐오감으로 스스로 돼지로 변해 군대를 떠난 뒤의 이야기입니다. ‘붉은 돼지’는 황 기자의 로망입니다.
붉은 돼지처럼 살고 싶다는 얘기인지는 ‘붉은 돼지’를 ‘누런 돼지’로 패러디한 황 기자가 대답할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ㅎㅎ

황 기자와 저는 입사 동기입니다. 2008년 10월에 입사했으니 만난지는 3년이 조금 넘었네요.


제가 합격했을 때 대학 후배가 합격자 발표란을 캡처해서 보내준 겁니다.
이걸 보고 감격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나 지났네요. ㅎㅎ 더 신기한 건 그때만 해도 제 이름 뒤에뒤에 있는 이름이 제 ‘남편’이 될지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ㅎㅎ


입사 후 2년 동안은 친한 친구처럼, 고민을 공유하는 동기로 잘 지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흔한 연애 스토리들처럼) 동기가 남자친구가 되었고
이제 오늘로써 ‘남편’이 되기 12일 전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전하기에는 아직 너무 부끄럽네요 ㅎㅎ;;; 그건 다음 기회로 남겨둘게용)


회사에서는 십여년만의 사내 커플의 탄생이라고 합니다.
기자 커플은 안 좋다고 일부 선배들은 놀리시기도 하지만
결혼이라는 일이,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일이, 매우 뭉클한 거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일을 빨리 처리하기 좋아하지만 참을성이 없는 저와
시동이 매우 늦게 걸리나 마무리는 확실하고 꼼꼼한 황 기자가
함께 산다면 ‘좋은 상호보완 관계’가 되겠구나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사실 느리고 잘 망설이는 황 기자를 다독다독해서 일을 하게 만드는 일은 힘들기도 했습니다ㅠㅠ
앞으로 정말 잘 ‘관리’해야겠구나 싶어 황 기자에게 “나는 (황 기자의) 엄마가 되기 싫어!”라고 하기도 했죠.
그러나 이제 ‘관리자’의 역할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ㅎㅎㅎㅎㅎㅎ)


앞으로 이 블로그에서
경향신문 부부 기자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사소한 일상(신혼 일기)부터
사회 현안에 대한 생각까지 다양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저와 황 기자는 산책과 여행, 영화(이야기)를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 이야기들도 공유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저희의 청첩장 문구를 소개할까 합니다. 부끄럽지만 ㅎㅎ

외롭고 높고 쓸쓸한 길에서도 서로의 더듬이를 부비며 온기를 찾고
묵은 김치 한 조각에 더운 밥 하나, 세상의 가장 소박한 찬에도 즐거워하겠습니다.
며칠째 정신없어 다듬지 못한 손톱을 다정하게 깎아주는 시간을 행복해하고,
서로가 만든 그늘 속에서 즐겁게 쉬며,
무엇을 이뤘느냐 묻기보다, 어떻게 살았느냐를 묻는 그런 부부가 되겠습니다.
오셔서 저희의 앞길을 축복해 주세요.



‘예비 남편’이 쓴 문구입니다. 이 문구를 보고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앞으로 이렇게만 산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은 느낌...(예비 신부의 감성입니다 ㅎㅎㅎ)

끝으로 저희 관계를 상징하는 사진입니다. ㅎㅎㅎ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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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talgi21.khan.kr 딸기 2011.10.25 1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영 넘 이쁘다!!

  2. 레옹 2011.10.25 1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속았다. 둘이 몰케다니길래 공동기획하는 줄 알았다.
    몰랐다. 두 사람이 그렇게 묵은지를 좋아하는지.
    당혹스럽다. 어디다 부조해야 하나.

    • 누런돼지 관리자 2011.10.25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장 처음에는 취재원을 같이 만나다 친해졌으니 기획은 아니더라도 일을 하고는 있었는데요. 사실 성과로 이어졌는지는 반성을...;;;
      묵은지 좋아하니까 ‘한옥집’에서 밥 사주세요. ㅎㅎㅎ
      음... 마지막이 가장 어려운 문제네요. ㅠㅠ 현재 직속 후배의 복지를 생각하심이...ㅎㅎㅎ 결혼식이 끝나면 부 일에 혼을 쏟겠습니다.... ^^;;;

  3. 퍙미 2011.10.26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곧 공개될 '방'도 기대해 ㅎㅎㅎㅎㅎㅎㅎㅎ

  4. Favicon of http://leegoeun.khan.kr 이고은 2011.10.27 1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청첩장 문구, 감동적이다. 황기자의 감성이 묻어나는구먼.
    당신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사진에서 읽을 수 있듯이, 아영은 아마 '(황기자의) 엄마'가 될 것 같다. 흐흐흐.
    나도 결혼 전, 아영과 100% 똑같은 멘트를 남편에게 했으나, 1년만에 포기하고 그길로 들어섰다우.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1.10.27 1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배 왠지 위로가 돼요. 저만 그런 건 아니었군요 ㅎㅎ 가금 '엄마' 역할에 뭉클해진다면 점점 중증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요즘 그래요ㅠㅠ) 그래도 뭐 살면서 맞춰가는 연습을 열심히 해야겠죠? 팁 많이 주세요~^^

  5. 2011.10.29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1.10.31 1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그때가 언제인가요. 어떤 시기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ㅎㅎ 축하 감사합니다. 두근두근하기보단 아직 실감이 안 나지만. 그래도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ㅎㅎ 블로그 자주 놀러오세요. 축하 다시 한번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