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으면 어른 된다’는 말이 싫었다. 인간의 성장이나 성숙이 그런 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은 이후 나는 많이 변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 자체가 달라진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각도에서는 보수일 수도, 어떤 각도에서는 진보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에 대한 판단은 미루고 싶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이를 낳은 후의 나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20대의 나는 자주 손끝이 차가워질 정도로 불안해했다. 아이를 낳은 30대의 나는 그런 20대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이가 내 불안을 줄여준 것인지, 엄마 노릇을 하기 위해서, 아이에게 불안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달라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아이를 낳고 훨씬 안정됐다.


 

육아로 성취의 삶 멀어질까 두렵던 나
그런데 성취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사회가 주입한 메시지, 틀렸음을 알았다

 

물론 육아는 힘들었다. 아이는 24시간 나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였다. 자는 시간마저 온전히 확보되지 않자 아이를 돌보기 위한 준비가 하나도 돼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도 나 외의 존재를 온전히 돌본 적이 없었구나. 이런 종류의 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운 적도 없었구나.’ 몸이 ‘돌봄의 하루’에 적응하면서 ‘돌보는 존재’를 배워가자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삶은 무엇인가. ‘아이를 낳게 되면 모든 것이 멈춰지는 게 아닐까’ 두려워했었다. 육아휴직 전 나는 ‘아이를 기르는 동안 성취의 삶과는 멀어지겠지만’이라고 적었었다. 그런데 그 ‘성취’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성취인가. 아이를 낳고 나는 그동안 주입받아왔던 사회의 메시지가 틀렸다는 것을 확신했다.


 

 

결혼한 지 7년,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애를 써온 남편은 3월부터 육아휴직을 한다. 주 양육자가 되는 것이다.

■ 누군가를 돌보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

첫아이를 낳고 아이를 돌보는 일이 벅찰 때였다. 어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심지어 혼자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아기를 보고 두려웠을 때. 어느 날 횡단보도 앞에 섰다. 맞은편에 십여명의 사람들이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울컥했다. ‘저 사람들도 내 아기처럼 아기였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우리 모두 언젠간 아이였고 누군가의 도움, 돌봄 없이는 클 수 없는 존재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횡단보도에 서 있던 나는 파란불로 바뀌자마자 달려서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를 돌보러 얼른 가야 할 것 같아서.


 

언젠가 노인이 되어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살 수 없는 시절이 올 것이다. 아주 조금 겸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이라는 미숙한 존재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해도, 아무리 높은 지위로 올라가도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아이를 낳기 전에는 성취의 메시지에 가슴 떨린 적이 많았다. 잘하고 싶었다. 일도, 일 밖의 것들도. 그것들이 나를 괴롭혀도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그 성취는 누구의 기준인가? 그 기준에 따르면 아이를 키우는 것은 성취가 될 수 없었다. 달리고 또 달려서 높이 올라가려는 남성의 삶을 지향한 것은 아니었을까. 임신하고 배가 나오니 달릴 수 없었다. 아이를 안고서도 달릴 수 없었다. 달릴 수 없는 삶은 후퇴한 삶인가? 주로 여성들이 해온 출산, 양육의 가치를 폄하해온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회사에서부터 대중매체, 정치권까지 아이 기르는 삶을 폄하하는 말은 곳곳에 있었다. 기저귀도 한번 갈아보지 않은 자들이 ‘기저귀를 갈고 아이 엉덩이가 짓무르지 않게 노력하는 삶’을 깔아뭉갤 때 생각했다. ‘뭔가 잘못됐구나.’


 

아침에 아이들이 파고드는 행복한 시간
아이가 필요로 할 때 멈춰서며 배웠다
꼭 성취 위해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사실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세상이 ‘기저귀 가는 삶’을 무시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다르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다르게 살겠다고 아등바등한 결과는 나 또한 기저귀 가는 삶을 무시해왔다는 슬픈 깨달음이었다. 아이가 내게 알려줬다. ‘엄마, 나는 엄마가 필요해요.’ 아이의 눈빛이 나를 필요로 할 때마다 나는 주춤했다. 멈춰서야만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평온해졌다. 달리지 않아도 되어서가 아니었을까. 이제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침에 일어난 작은 아이들이 내 품에 파고들 때다. 이 행복을 왜 나는 밀어내려고 했을까. 아이를 낳기 전의 내게 말해주고 싶다. 꼭 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가 사뿐사뿐 걷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어릴수록 걸음에 몸무게를 싣는다. 20㎏이 넘는 첫째보다 13㎏에 불과한 둘째의 발소리가 훨씬 크다. 사뿐사뿐 걷는 것도 배워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이런 작은 것들을 배워왔다는 사실을 아이들을 통해 배운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심어주려고 했던 모성은 여전히 내게 없지만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스스로 내 모성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어쩌면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이렇게 모성을 긍정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아이를 낳은 이후의 내가 더 좋다. 내가 모성을 긍정하는 이유다.


 

■모두가 돌봄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회

내가 모성을 긍정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남편 덕분이다. 결혼한 지 7년이 지난 지금 남편은 이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애써왔다. 돌볼 시간을 내주지 않는 사회에서 남편과 나도 많이 싸웠다.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전쟁이니까. “남편 좀 풀어주라”는 농담 앞에 속수무책이 되어버릴 때도 많지만, 또 어떤 날은 남편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잖아’라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으면 힘이 빠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남편과 논의한다. ‘여성의 전유물인 돌봄’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함께하는 돌봄’으로 ‘서로돌봄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믿으니까.


 

한국에서 남성이 ‘돌보는 존재’ 된다는 것
벅차고 힘들지만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그렇게 ‘서로돌봄의 사회’로 나아가기를

 

남편이 3월부터 육아휴직을 한다. 남편이 주 양육자가 되는 것은 처음이다. 오랜 시간 아이 둘을 돌봐온 친정엄마의 무릎이 탈이 났고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오전 11시40분에 하교한다. 선택지가 없고 너무 당연한 결정이라 생각하지만 결정은 쉽지 않았다. 당장 경제적인 상황을 걱정해야 해 오래 육아휴직을 쓸 수는 없다. 길어도 6개월만 쓰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남편에게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돌봄을 전담하는 존재일 때만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의 결이 남편에게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줄 것이다. 남편이 돌봄의 기쁨을 많이 누리길 바란다. 내가 육아휴직을 했을 때 그랬듯이.


 

그럼에도 한국에서 남성이 ‘돌보는 존재’가 되는 것은 여전히 벅찬 일일 것이다. 걱정하는 내게 남편이 자신의 지난해 일기를 보여줬다.


 

“두 돌이 다 되어가는 이준이는 어느새 제법 말을 한다. ‘아빠 미워!!’ 이준이는 얼마 전부터 단것을 못 먹게 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못 갖고 놀게 하거나 하면 이런 말을 한다. 어제는 친구가 갖고 온 장난감을 하염없이 갖고 놀기에 이제 자자 했더니 ‘시러. 여기 더 있스 거야’라고 한다. 어제 아침에는 녀석을 안고 교차로에 서 있었다. 햇살은 눈부셨고, 녀석과 손을 잡고 어린이집까지 걸었다. 이준이 녀석과 손잡고 걸으면 좋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녀석의 작은 손을 잡고 걷는 일 자체가 좋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귀여워한다. 한참을 손잡고 같이 걷던 녀석은 갑자기 ‘아나저요’라고 한다. 번쩍 들어 안아준 녀석이 내 품에 폭 안긴다. 폭 안긴 녀석을 안고 봄날 가로수의 연둣빛으로 가득한 교차로를 바라보고 서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인생의 짧은 순간은 그렇게 간다. 그날따라 이준이는 어린이집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며 울었다. 울지 않아도 녀석이 빠빠이 하며 손 흔드는 모습만 봐도 늘 가슴이 아팠다. 녀석의 손은 늘 내 가슴을 휘저어 놓곤 했다. 아, 그냥 녀석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 전체를 봐선 나은 일 아닌가. 두진이 때도 똑같이 들던 생각이다. 못난 아빠는 또 이렇게 글을 남긴다.”(2018년 5월11일)


 

남편의 일기를 읽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린이집에서 아이에게 손을 흔들 때마다 느꼈던 감정을 남편도 느끼고 있었다는 것, 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인생 전체를 봐서는 나은 일이 아닐까 고민했던 것 모두 나와 너무 똑같아서. 잠을 하도 안 자서 애먹였던 아기 두진이는 이제 엄마를 걱정해줄 줄 아는 어린이가 됐다. 어제 둘째의 장난으로 머리를 꽈당 박은 나는 머리를 감싸고 엎드려 있었다. 두진이가 내게 와서 “엄마 괜찮아?”라며 짧은 팔로 나를 안고 ‘호호’ 불기 시작했다. “엄마 괜찮아질 거야. 금방 괜찮아질 거야.” 언젠가 자신에게 건넸던 말들을 내게 돌려주는 아들의 얼굴을 보는데 ‘내가 너를 돌보는 것인가, 네가 나를 돌보는 것인가’ 눈물이 나려 했다. 남편도 비슷한 경험을 했나보다.


 

걱정하는 내게 남편이 보여준 육아일기
아이를 통해 배우고 위로받던 내 모습이
그의 일기 안에도 고스란히 들어있다

 

“두진이가 오늘은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힘이 센데 왜 힘들어해?’ 청소기를 돌리면서 꽤나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나보다. ‘그러게. 힘이 센데 왜 나는 힘들어하고 있을까.’ 몸이 너무 피곤하다. 오후 4~5시만 되면 뇌가 흐물흐물해져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애들을 볼 때도 별일 아닌데 소리를 빽 지르고는 금세 후회를 한다. 오늘도 잠자리에서 녀석의 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미안해 두진아, 너한테 더 사랑을 줘야 하는데… 아빠가 사랑하는 거 알지?’ 물론 녀석은 듣고도 암말도 않는다. 자면서 가끔 녀석의 손을 만지작거려본다. 너무 작고 부드러워서 부서질 것만 같았던 손은 제법 두툼해졌다. 최근에 장인어른이 백내장 수술을 하셨다. 어디선가 그 말을 들었나보다. 몇 주 전인가, 책을 읽어주는데 갑자기 ‘아빠는 수순하지 마’ 이런다. 뭔 말인가 싶어서 몇 번 다시 물어보자 ‘눈 많이 써서 아프면 안돼’라고 말한다. 아빠는 수술하지 말라는 얘기였던 거다. 수술이 뭔지도 모르는 녀석이… 마음이 뜨끈해졌다.”(2018년 4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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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es 2019.02.26 2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너무 좋아요.. 출산 후 육아분담 계획 세우는 중인데 흘러흘러 이 곳을 발견했어요. 저도 워킹맘 이란 단어를 증오하는 사람이예요. (여자에게 가사육아노동과 근로노동을 떠넘기는 느낌이랄까?)
    기자님처럼 저도 아기라는 인생의 첫경험을 남편과 온전히 함께하고 싶네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9.03.03 15: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워킹맘은 엄마들한테 모든 것을 전가하는 말이지요. ㅠㅠ 저도 웬만하면 워킹맘이라는 말을 안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육아분담 계획을 세우고 계신다니... 파이팅입니다!! 많은 순간 지치고 멈춰서고 싶을 때가 있으시겠지만 그래도 아기를 보며 힘내시길요. 앞 문장을 쓰고 나니 많은 일들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저는 아이 낳은 후의 제가 더 좋아요. 엄마든, 아빠든 아이 낳은 후의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댓글 감사합니다.

지난 일요일 아버지가 두진이를 데리고 동네 산에 다녀오시겠다고 했다. 남편은 일이 있어 혼자 두 아이를 보던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두진이는 휴일마다 종종 외할아버지를 따라 산에 다닌다. 산 중턱에서 장기 놀이를 하거나 평평한 트랙에서 킥보드를 타는 정도지만. 이준이가 낮잠을 잘 시간을 훨씬 넘겨 나도 따라나섰다. 유모차에 태워서 재운 뒤에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따라나선 나를 보신 아버지가 “산에 같이 가겠느냐”고 하셨다. 머뭇거리다 그러겠다고 했다. ‘운동 좀 해야지’ 싶어서.


 

회사에 주 6일씩 젊은 날을 내준 아버지
손주들과 놀아주다 잠시 쉬는 뒷모습에
언젠가 이 모습이 몹시 그립겠구나 싶어

 

“이 나이 되면 젊을 때 운동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에게 차이가 많이 나더라. 우리 때는 주 6일 근무여서 일요일 하루 쉬었는데 엄마가 너희들 보고 나는 하루 종일 잔 날도 있었지. 너무 피곤하니까. 그런데 피곤해도 일요일에 산에 다녀오거나 운동을 하면 그다음 주가 좀 낫더라고. 힘들어도 운동을 해야 해.”


 

피곤해하는 나에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서른일곱인 나보다 딱 서른 살이 많은 우리 아버지, 이제 예순일곱. 주 6일씩 회사에 시간과 체력을 내어준 젊은 날을 보냈다. 그렇게 아빠를 따라 산에 올라가 400m 넘는 트랙을 두 바퀴 돌고 두진이와 운동기구로 운동 시늉도 냈다. 낮잠을 자던 이준이가 깨서 이준이 머리보다 더 큰 농구공으로 공놀이도 했다. ‘이런 작은 행복들이 모여 인생의 결을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 생각하며 잠시 쉬고 있는데 아빠가 손주들과 나란히 앉아 쉬는 뒷모습을 봤다. 문득 ‘언젠간 이 모습이 몹시도 그립겠구나’ 싶어서 코끝이 시큰했다.


 

■ ‘워킹맘’을 추앙하지 마세요

나를 키울 시간이 없었던 아버지가 내 아이들을 돌봐주신다. 친정 부모님 옆에서 육아 지원을 받는 우리 아이들은 나와 남편이 없는 자리를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으로 채우고 있다. 내가 클 때 내 옆에 있을 수 없었던 아빠는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손주들 곁에 있게 됐다. 이 역설을 깨달을 때 생각한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 일평생 노동시장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빠가 집으로 돌아온 건 할아버지가 되어서라니.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육아’를 할 수 있게 됐다니.


 

첫째를 낳은 뒤 막다른 골목 처한 부모들
합계출산율 1.06명의 비밀은 여기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저녁, 거창한 꿈일까

 

‘할마 할빠’ 없이는 육아를 할 수 없는 사회다. 맞벌이 부부는 퇴근시간이 늦고 통근시간이 길어서 집에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는 일은 ‘꿈’이다. 무상보육을 하겠다며 어린이집·유치원 보육 지원을 해주지만 아이들 하원 시간까지 아이를 데리러 갈 사람이 없다. 그나마 ‘할마 할빠’가 지원해줄 수 있는 집은 다행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 부모가 퇴근하는 밤까지 어린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버티거나 시터 이모님을 고용해 버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육아 비용으로 쓴다. 부부 중 한쪽에 육아 부담이 몰려 갈등을 겪거나 결국 육아 공백을 채울 수 없게 되면 끙끙대다가 한쪽이 퇴사한다. 대부분 임금을 적게 받는 엄마들이다. ‘경력단절 여성’은 이렇게 탄생한다.


 

‘워킹맘들은 정말 힘들겠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한 취재원이 내게 아이가 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워킹맘, 참 힘드시죠?” 거기까진 뭐 괜찮았다. 이어지는 말. “저도 아이가 어린데 너무 힘들어요. 집에 돌아가도 쉴 수 없고. 와이프는 전업주부인데도 힘들다고 하니까 자꾸 싸우게 되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정색했다. “팀장님, 제가 육아휴직도 해보고 워킹맘도 해봤는데요. 애 보는 게 훨씬 힘들어요.” 너무 정색하니 취재원은 말을 돌렸다. 여전히 이 사회는 아이 기르기가 고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때는 ‘워킹맘’이 꿈이었다. 20대의 나는 아이를 기르며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한 인간을 기르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몰라서 그렇게 순진했다. 내가 한창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자잘한 차별의 언어들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적어도 여자라고 해서 남자가 하는 일을 할 수 없다고는 가르치지 않았다. 여자도 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안다.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사회생활도 하고 육아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슈퍼우먼이 되라는 말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착취’하겠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둘 다 하고 싶으면 너를 갈아 넣어’라는 말이었다니.

■ 슈퍼우먼 따위 되고 싶지 않다

이제 나는 슈퍼우먼 따위는 되고 싶지 않다.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24시간을 살 듯 나도 24시간을 산다. 아무리 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24시간을 넘는 시간을 살 수는 없다.


 

워킹맘이 슈퍼우먼이 되야하는 구조에서
엄마들은 일·육아에 심신이 다 소진되고
아빠들은 회사에 시달리다 방관자가 된다

 

워킹맘이 슈퍼우먼이 되는 구조에서 남편들은 방관자가 된다. “공무원이라 자녀돌봄휴가를 쓸 수 있어서 부럽다”고 하자 공무원 친구가 말했다. “공무원끼리 결혼해도 각종 복지제도는 다 여자 직원이 써. 동기끼리 결혼해도 10년 지나면 직급 차이가 크게 난다 하더라고. 아니 왜 똑같이 입사해서 그렇게 살아야 하냐고. 그래도 나라도 복지제도를 쓸 수 있어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할 말이 없었다. 우리 부부도 육아휴직은 나만 했다. 육아휴직 기간 아이들을 키우면서 배운 게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이라도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면 내 분노는 남편에게 향한다. “신생아 때부터 그 어려운 육아기를 내가 버텼다고. 당신이 아니고.”

가끔은 남편이 아니라 친정 부모님과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화가 난다. 결혼은 남편과 했는데 도대체 이게 뭐지. 친정아버지가 손주를 보고 나서야 육아를 할 수 있게 됐듯 남편도 육아에서 주체가 되기 어려운 구조. 물론 아버지 세대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적어도 기저귀도 갈고 아이 목욕도 시키니까. 그런데 내가 자라던 시기와 지금은 다르다.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구조가 깨졌지 않은가.


 

친정아버지는 젊은 시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다가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손자들을 돌볼 수 있었다.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남편이 애를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내 부모님의 황혼을 갉아먹으며 육아를 하는 난 항상 죄책감에 시달린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라 결국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남편에게 화살이 가는 구조. 남편이 회사에서 빨리 오려고, 집에 있는 동안 육아를 열심히 하려고, ‘도와준다’고 생각지 않고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할마 할빠’ 없이는 육아 할 수 없는 사회
한 인간을 기르는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워킹맘’이 되겠다는 건 순진한 꿈이었다

 

그런데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여전히 이 사회는 ‘가장은 회사에 시간을 바치라’고 말한다. 회사에 시간을 바쳐야 하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내줘야 한다. 그 비는 시간을 메우는 건 ‘칼퇴’하는 엄마들이거나 조부모이거나 ‘퇴사’한 경단녀다. 주말에 공원이나 키즈카페에 놀러가 ‘좀비’ 표정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아빠들을 본다. ‘저 사람들은 어제 몇 시에 퇴근했을까.’ 엄마들은 일과 육아를 하다가 소진되고 아빠들은 회사에 시달리다 소진된다. 그렇게 체력 분배를 하기 어려운 구조에서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얼마 전 대학 후배를 만나 이야기를 하다 문득 슬퍼졌다. 후배의 아내는 ‘육아 지원군’이 없어서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후배 아내가 동네에서 사귀던 친구들도 복직해서 아이와 하루 종일 둘이서 지내는데, 후배가 퇴근만 하면 우울함을 계속 토로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독박육아’의 상황으로 곪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그 와중에 후배는 회사 TF에서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라 매일 밤에 퇴근했고 부부 갈등이 심해졌다. ‘회식 금지법, 야근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아내의 성토에 ‘나도 괴로운데’라는 말을 삼키던 후배는 결국 회사를 옮겼다. 한 팀장의 조언을 듣고 난 뒤였다. “일도 잘하는데 자꾸 육아 때문에 일을 후순위로 미룬다는 인상을 주지 마라”는 조언이었다.

 

“심지어 여자 팀장이었어요. 같은 아파트 사는 언니들이 팀장님의 아이들을 다 키워줬거든요. 그런데 우리 부부는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요. 어쩌라는 건지. 그리고 아이 기르는 일보다 왜 회사 일이 더 중요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아이를 낳고나니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다. 애를 한 번도 안 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게 분명한 말들. “자기 애만 중요하고 회사 일은 나몰라라 한다”고 험담하던 목소리들. 그런 말들이 횡행했던 시절 어떻게 숨죽여 회사를 다녔을까. 아이 기저귀도 한 번 안 갈아봤을 게 분명한 정치인들이 ‘애를 많이 낳은 순서대로 비례대표를 줘야 한다’는 헛소리를 할 때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아이가 안 태어나는 거야.’

 

■ ‘부모’에게 시간을 주면 된다

나처럼 친정 부모님이 육아를 도와주는 환경은 한국 사회에서 ‘복 받은 상황’이다. 적어도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도대체 부모님은 무슨 죄인가. 우리 엄마 아빠는 왜 무릎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에 육아를 해야 하는가. 주변을 보면 자식들 육아를 도와주기 위해 지방에서 원정(?) 오는 할머니 때문에 노년의 기러기 부부도 적지 않다. 왜 자식들 육아 때문에 조부모들이 떨어져 살아야 하는가. 한편 이런 조부모의 존재가 ‘육아 지원군’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역차별이 된다. 결국 가족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는 증거다. 저출산이 심화되는 10년 동안 국가는 엉뚱한 곳에만 돈을 썼다는 증거다.

 

주변 많은 부부들이 첫째를 낳은 뒤 고군분투하다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면 극심한 갈등을 겪고 둘째는 포기한다. 합계출산율 1.06명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하나를 낳아봤더니 키울 수가 없는 구조. 아빠는 회사와 아내 사이에 끼여서 어쩔 줄 모르고 엄마는 눈치 보며 칼퇴하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면 원망할 대상을 찾지 못하다가 남편을 원망하는 악순환. 부모가 힘을 합쳐서 아이를 기를 수 있게 하면 되는데. 그 쉬운 방법을 모르는 건지. 아는데도 그렇게 해주려면 어려우니까 포기한 건지. 엄마가 된 나는 늘 궁금했다. ‘선배들은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구조를 버텨냈을까. 정말 존경스럽다. 어쩌면 우리 세대는 저출산이 심각해지니 발언권이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아버지는 늘 새벽에 출근해서 밤 11시 넘어 퇴근했다. 그게 1980~1990년대였다. ‘주 6일’간 그렇게 일했으니 주당 80시간 넘게 일만 하면서 산 것이다. 그 대가로 나는 아버지와 함께 보낼 시간을 내줘야 했다.

도대체 이렇게 긴 노동시간으로 득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주 5일이 도입될 때 경제가 휘청거릴 거라고들 했다. 그렇게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겁을 주더니 지금은 어떠한가. 7월부터 ‘주 52시간 시대’가 시작된다. 인간다운 삶, 우리는 꿈꿀 수 있을까. 거창한 삶을 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삶. 가족들이 얼굴을 보는 삶. 그런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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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아이맘 2018.06.20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슷하게 아이 둘을 키우고, 맞벌이를 하며, 친정 부모님에게 오후 육아를 맡기는 엄마이자, 직장인입니다.
    글자 하나하나 눈에 담에 되고, 의미를 곱씹게 되네요.
    적어도 20대의 나는, 여자와 남자가 차별받지 않으며, 아이를 낳고서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될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를 낳고 보니, <복귀>가 그렇게 어려운건지, 아니 눈치를 봐야 하는건지 몰랐습니다. 둘을 낳으면 여자가 아니란 말도 들었고, 그러게 둘째는 왜 가져서. 라는 말도 들어야 했습니다. 아이를 가진게 "죄"가 될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죄라며 왜 나의 애미 애비가 애써 보듬아 주는지, 왜 나의 애미 애비가 대신 울어주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슬프게도 아직 우리의 20대와 같은 세상은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 생각합니다. 생각이 변했고, 변하고 있으므로 그 "변화"가 퇴적되다 보면 걷기 편한 길이 만들어질거라 믿습니다.
    그 길 위에 우리의 아이들이 걸길 바래 봅니다.

'응답하라 1994' 요즘 인기 엄청나죠.

저도 '응사' 팬 중 하나입니다.

 

좀 다른 점은

다들 '쓰레기'냐, '칠봉이'냐 한다면...

 

저는 '포블리'!! 라인입니다. ㅎㅎㅎ

 

 

 

 

<응답하라 1994> 홈페이지 캡처

 

삼천포-윤진 라인!

 

'포블리'는 삼천포의 애칭이죠.

삼천'포'와 러'블리'를 합쳐 만든 말.

 

정녕 블리블리 '포블리'입니다.

 

어제도 전 IPTV로 포블리와 윤진이 나오는 장면만 다시 봤습니다. 1회부터 쭉~!

 

왜 전 주인공인 나정-쓰레기-칠봉 라인이 빠지지 않고

포블리 라인에 빠졌을까요?

 

 

 

ㅎㅎㅎ

답은 쉽게 찾았습니다.

 

응사 7회를 보던 날인가요.

남편의 대학 친구가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남편의 새내기 시절을 함께 한 친구죠.

 

통화하던 남편이 갑자기 웃음 반, 항의 반으로 외칩니다.

"내가 무슨 삼천포고!"

 

ㅎㅎㅎㅎㅎㅎ

그때 깨달았습니다.

 

'우리 남편, 삼천포랑 닮았다'

 

 

 

 

 

외모가 닮았다는 게 아니고요. 캐릭터입니다, 캐릭터. (남편 미안...)

아무리 남편이 삼천포가 아니라(캐도) 닮았음.......

 

'누런돼지'는 경북 구미가 고향입니다.

전 결혼하고 처음 구미에 가본 '서울 녀자'고요.

 

남편은 10여년간 서울에 살면서 서울 사람이 다 됐다 하겠지만

구미에 가면 사투리 마구 튀어나옵니다.

덕분에 저도 시댁에 다녀오면 일주일 정도는 구미 사투리를 따라하게 되지요(무의식 중에) ㅎㅎ

요즘엔 삼천포 때문에 사투리를 따라합니다..... 포블리

 

 

 

<응답하라 1994> 홈페이지 캡처

 

 

극 중 삼천포는 '경남 삼천포'가 고향이지요. 그래서 삼천포.

경상도 남자 특유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무심하지만 진득한, 무뚝뚝하지만 정감 있는, 느리게 행동하지만 따뜻한.

 

삼천포도 그렇습니다.

 

어리버리, 무심, 꼼꼼.... 그런데 따뜻하죠.

 

첫 회에서 신촌하숙까지 오기 위해

서울역-신촌역-택시-그리고 하숙집 앞 전화부스.

식은땀 삐질 하던 삼천포를 보며

"남편도 그랬나" 했었죠.

 

아니랍니다. 길 잘 찾았대요. ㅎㅎ

 

 

 

경향신문 입사 동기인 저희 부부는

아마 '사령장'을 받았던 2008년 10월 1일이 처음 만난 날일 거예요.

사령장을 받고 바로 3박4일간 합숙 교육을 받으러 갔었는데요.

 

그 3박4일 동안 저는 남편과 줄곧 같은 조였습니다. 조모 동기랑 셋이요.

그런데 남편과는 별다른 대화를 했던 기억이 없습니다. 워낙 말수가 적어서요.

계속 조모 동기랑 수다수다 했던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기억은 딱 하나.

"왜 쟨 저렇게 말이 없지?"

 

ㅎㅎㅎ

남편은 새벽 2시부터 말문이 터지는 스타일입니다.

워낙 말을 많이 하는 걸 꺼리는 성격이라 술을 좀 마시고나야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그때는 다들 집에 돌아가고 싶어하거나, 자고 싶어할 시간이죠 ㅠㅠ)

 

그래서인지 입사 이후 1년, 남편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남편을 좋게 본 계기가 있었는데요.

바로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심함 뒤의 따뜻함'을 느낀 순간이었죠. ㅍㅎㅎ

 

회사 일에 지치고 힘들었던 퇴근 길이었습니다.

그날 따라 '절친'들이 제 전화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특히 항상 회사 고민을 터놓던 김모 동기, 조모 동기가 제 전화를 받아주지 않았기에

항상 후순위였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술 마시고 있던 남편은 제 얘기를 듣는둥 마는둥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얼른 전화를 끊었죠.

 

그리고 5분 후 문자가 왔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금 고민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거다.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별 대단한 내용의 문자도 아니었지만

그 문자가 남편을 '무심하기만 한 건 아니군'이라고 생각하게 해줬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연애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간이 좀더 흘러서.... ㅎㅎ

 

 

 

 

삼천포를 보고 있으면 그때의 남편 문자가 생각납니다.

 

무심하지만 따뜻한 남자.

 

 

tvn 캡처

 

 

윤진의 엄마가 서울에 올라와 터미널에서 무작정 딸을 기다리고 있을 때

해태는 전화를 무시하지만

삼천포는 '자전거 여행을 갔어야 했음에도' 터미널에 가죠.

 

그리고 윤진의 엄마가 '말을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윤진이 술자리에서 자신의 비밀(?)을 말할 뻔한 순간에서 입을 막아주죠.

 

아 '포블리'답습니다.

 

아침에 SNS에 '포블리 원츄'라는 글을 남겼더니

한 선배가 삼천포의 성격을 대번에 정리해주셨습니다.

 

"남 앞에선 시비 걸면서 남 몰래 잘해주는 무뚝뚝 귀요미였단 뜻?"

 

ㅎㅎ

 

남편이 남 앞에서 시비 거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하도 티가 안 나 저한테 잘해주는 건지도 몰랐습니다.

 

지금도 가끔 전 불리하면 "남편 너무 무심함"이라고 1차 경고를 보냅니다.

그럼 남편은 '무뚝뚝' 모드에서 '잘해주는' 모드로 바로 변신.

 

경상도 남자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삼천포'가 표현하는 경상도 남자 특유의 분위기, 참 좋네요.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런가봅니다.

연애하던 생각.ㅎㅎ

 

연애는.... 이제 남의 꿈... 이니까요 ㅠㅠ

 

이제 저는 한참 싱크대, 찬장, 젖병소독기 등에서 '엄마 물건 탐험'에 빠진 아드님을 돌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포블리와 윤진의 키스신~을 마무리로.

 

 

 

 

 tvn 캡처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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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블리포블리 2013.12.13 18: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글을 너무 예쁘게 쓰시네요 ㅎㅎ 남편분이랑 평생 알콩달콩 포블리-윤진이 같이 러블리한 사랑하시길 ! ㅎㅎ

  2. 지언 2014.01.09 1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좋아요.티격태격 포블리 사랑....일출 키스...

제목은 거창(?)하지만 사실 이 글의 목적은 ‘블로그 소개’입니다.ㅎㅎ

안녕하세요? ‘누런돼지 관리자’이자 경향신문 디지털뉴스팀 소속 임아영 기자입니다.

‘누런돼지’를 관리하게 된 사연을 설명하려면
우선 ‘누런돼지’를 소개해야겠군요.ㅎㅎ

누런돼지는 경향신문 문화부 소속 황경상 기자입니다.
이메일 아이디가 yellowpig@kyunghyang.com 이죠.
황 기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붉은 돼지>를 ‘일생의 명작’으로 꼽습니다.
하야오 감독이 중년이 된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는 자전적 작품이죠.
1차세계대전에서 공군 조종사로 참전해 동료들을 잃었던 ‘붉은 돼지’, 포르코 로소가 인간에 대한 혐오감으로 스스로 돼지로 변해 군대를 떠난 뒤의 이야기입니다. ‘붉은 돼지’는 황 기자의 로망입니다.
붉은 돼지처럼 살고 싶다는 얘기인지는 ‘붉은 돼지’를 ‘누런 돼지’로 패러디한 황 기자가 대답할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ㅎㅎ

황 기자와 저는 입사 동기입니다. 2008년 10월에 입사했으니 만난지는 3년이 조금 넘었네요.


제가 합격했을 때 대학 후배가 합격자 발표란을 캡처해서 보내준 겁니다.
이걸 보고 감격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나 지났네요. ㅎㅎ 더 신기한 건 그때만 해도 제 이름 뒤에뒤에 있는 이름이 제 ‘남편’이 될지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ㅎㅎ


입사 후 2년 동안은 친한 친구처럼, 고민을 공유하는 동기로 잘 지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흔한 연애 스토리들처럼) 동기가 남자친구가 되었고
이제 오늘로써 ‘남편’이 되기 12일 전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전하기에는 아직 너무 부끄럽네요 ㅎㅎ;;; 그건 다음 기회로 남겨둘게용)


회사에서는 십여년만의 사내 커플의 탄생이라고 합니다.
기자 커플은 안 좋다고 일부 선배들은 놀리시기도 하지만
결혼이라는 일이,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일이, 매우 뭉클한 거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일을 빨리 처리하기 좋아하지만 참을성이 없는 저와
시동이 매우 늦게 걸리나 마무리는 확실하고 꼼꼼한 황 기자가
함께 산다면 ‘좋은 상호보완 관계’가 되겠구나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사실 느리고 잘 망설이는 황 기자를 다독다독해서 일을 하게 만드는 일은 힘들기도 했습니다ㅠㅠ
앞으로 정말 잘 ‘관리’해야겠구나 싶어 황 기자에게 “나는 (황 기자의) 엄마가 되기 싫어!”라고 하기도 했죠.
그러나 이제 ‘관리자’의 역할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ㅎㅎㅎㅎㅎㅎ)


앞으로 이 블로그에서
경향신문 부부 기자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사소한 일상(신혼 일기)부터
사회 현안에 대한 생각까지 다양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저와 황 기자는 산책과 여행, 영화(이야기)를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 이야기들도 공유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저희의 청첩장 문구를 소개할까 합니다. 부끄럽지만 ㅎㅎ

외롭고 높고 쓸쓸한 길에서도 서로의 더듬이를 부비며 온기를 찾고
묵은 김치 한 조각에 더운 밥 하나, 세상의 가장 소박한 찬에도 즐거워하겠습니다.
며칠째 정신없어 다듬지 못한 손톱을 다정하게 깎아주는 시간을 행복해하고,
서로가 만든 그늘 속에서 즐겁게 쉬며,
무엇을 이뤘느냐 묻기보다, 어떻게 살았느냐를 묻는 그런 부부가 되겠습니다.
오셔서 저희의 앞길을 축복해 주세요.



‘예비 남편’이 쓴 문구입니다. 이 문구를 보고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앞으로 이렇게만 산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은 느낌...(예비 신부의 감성입니다 ㅎㅎㅎ)

끝으로 저희 관계를 상징하는 사진입니다. ㅎㅎㅎ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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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talgi21.khan.kr 딸기 2011.10.25 1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영 넘 이쁘다!!

  2. 레옹 2011.10.25 1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속았다. 둘이 몰케다니길래 공동기획하는 줄 알았다.
    몰랐다. 두 사람이 그렇게 묵은지를 좋아하는지.
    당혹스럽다. 어디다 부조해야 하나.

    • 누런돼지 관리자 2011.10.25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장 처음에는 취재원을 같이 만나다 친해졌으니 기획은 아니더라도 일을 하고는 있었는데요. 사실 성과로 이어졌는지는 반성을...;;;
      묵은지 좋아하니까 ‘한옥집’에서 밥 사주세요. ㅎㅎㅎ
      음... 마지막이 가장 어려운 문제네요. ㅠㅠ 현재 직속 후배의 복지를 생각하심이...ㅎㅎㅎ 결혼식이 끝나면 부 일에 혼을 쏟겠습니다.... ^^;;;

  3. 퍙미 2011.10.26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곧 공개될 '방'도 기대해 ㅎㅎㅎㅎㅎㅎㅎㅎ

  4. Favicon of http://leegoeun.khan.kr 이고은 2011.10.27 1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청첩장 문구, 감동적이다. 황기자의 감성이 묻어나는구먼.
    당신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사진에서 읽을 수 있듯이, 아영은 아마 '(황기자의) 엄마'가 될 것 같다. 흐흐흐.
    나도 결혼 전, 아영과 100% 똑같은 멘트를 남편에게 했으나, 1년만에 포기하고 그길로 들어섰다우.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1.10.27 1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배 왠지 위로가 돼요. 저만 그런 건 아니었군요 ㅎㅎ 가금 '엄마' 역할에 뭉클해진다면 점점 중증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요즘 그래요ㅠㅠ) 그래도 뭐 살면서 맞춰가는 연습을 열심히 해야겠죠? 팁 많이 주세요~^^

  5. 2011.10.29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1.10.31 1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그때가 언제인가요. 어떤 시기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ㅎㅎ 축하 감사합니다. 두근두근하기보단 아직 실감이 안 나지만. 그래도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ㅎㅎ 블로그 자주 놀러오세요. 축하 다시 한번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