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으면 어른 된다’는 말이 싫었다. 인간의 성장이나 성숙이 그런 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은 이후 나는 많이 변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 자체가 달라진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각도에서는 보수일 수도, 어떤 각도에서는 진보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에 대한 판단은 미루고 싶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이를 낳은 후의 나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20대의 나는 자주 손끝이 차가워질 정도로 불안해했다. 아이를 낳은 30대의 나는 그런 20대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이가 내 불안을 줄여준 것인지, 엄마 노릇을 하기 위해서, 아이에게 불안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달라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아이를 낳고 훨씬 안정됐다.


 

육아로 성취의 삶 멀어질까 두렵던 나
그런데 성취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사회가 주입한 메시지, 틀렸음을 알았다

 

물론 육아는 힘들었다. 아이는 24시간 나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였다. 자는 시간마저 온전히 확보되지 않자 아이를 돌보기 위한 준비가 하나도 돼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도 나 외의 존재를 온전히 돌본 적이 없었구나. 이런 종류의 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운 적도 없었구나.’ 몸이 ‘돌봄의 하루’에 적응하면서 ‘돌보는 존재’를 배워가자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삶은 무엇인가. ‘아이를 낳게 되면 모든 것이 멈춰지는 게 아닐까’ 두려워했었다. 육아휴직 전 나는 ‘아이를 기르는 동안 성취의 삶과는 멀어지겠지만’이라고 적었었다. 그런데 그 ‘성취’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성취인가. 아이를 낳고 나는 그동안 주입받아왔던 사회의 메시지가 틀렸다는 것을 확신했다.


 

 

결혼한 지 7년,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애를 써온 남편은 3월부터 육아휴직을 한다. 주 양육자가 되는 것이다.

■ 누군가를 돌보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

첫아이를 낳고 아이를 돌보는 일이 벅찰 때였다. 어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심지어 혼자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아기를 보고 두려웠을 때. 어느 날 횡단보도 앞에 섰다. 맞은편에 십여명의 사람들이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울컥했다. ‘저 사람들도 내 아기처럼 아기였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우리 모두 언젠간 아이였고 누군가의 도움, 돌봄 없이는 클 수 없는 존재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횡단보도에 서 있던 나는 파란불로 바뀌자마자 달려서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를 돌보러 얼른 가야 할 것 같아서.


 

언젠가 노인이 되어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살 수 없는 시절이 올 것이다. 아주 조금 겸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이라는 미숙한 존재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해도, 아무리 높은 지위로 올라가도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아이를 낳기 전에는 성취의 메시지에 가슴 떨린 적이 많았다. 잘하고 싶었다. 일도, 일 밖의 것들도. 그것들이 나를 괴롭혀도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그 성취는 누구의 기준인가? 그 기준에 따르면 아이를 키우는 것은 성취가 될 수 없었다. 달리고 또 달려서 높이 올라가려는 남성의 삶을 지향한 것은 아니었을까. 임신하고 배가 나오니 달릴 수 없었다. 아이를 안고서도 달릴 수 없었다. 달릴 수 없는 삶은 후퇴한 삶인가? 주로 여성들이 해온 출산, 양육의 가치를 폄하해온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회사에서부터 대중매체, 정치권까지 아이 기르는 삶을 폄하하는 말은 곳곳에 있었다. 기저귀도 한번 갈아보지 않은 자들이 ‘기저귀를 갈고 아이 엉덩이가 짓무르지 않게 노력하는 삶’을 깔아뭉갤 때 생각했다. ‘뭔가 잘못됐구나.’


 

아침에 아이들이 파고드는 행복한 시간
아이가 필요로 할 때 멈춰서며 배웠다
꼭 성취 위해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사실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세상이 ‘기저귀 가는 삶’을 무시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다르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다르게 살겠다고 아등바등한 결과는 나 또한 기저귀 가는 삶을 무시해왔다는 슬픈 깨달음이었다. 아이가 내게 알려줬다. ‘엄마, 나는 엄마가 필요해요.’ 아이의 눈빛이 나를 필요로 할 때마다 나는 주춤했다. 멈춰서야만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평온해졌다. 달리지 않아도 되어서가 아니었을까. 이제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침에 일어난 작은 아이들이 내 품에 파고들 때다. 이 행복을 왜 나는 밀어내려고 했을까. 아이를 낳기 전의 내게 말해주고 싶다. 꼭 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가 사뿐사뿐 걷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어릴수록 걸음에 몸무게를 싣는다. 20㎏이 넘는 첫째보다 13㎏에 불과한 둘째의 발소리가 훨씬 크다. 사뿐사뿐 걷는 것도 배워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이런 작은 것들을 배워왔다는 사실을 아이들을 통해 배운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심어주려고 했던 모성은 여전히 내게 없지만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스스로 내 모성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어쩌면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이렇게 모성을 긍정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아이를 낳은 이후의 내가 더 좋다. 내가 모성을 긍정하는 이유다.


 

■모두가 돌봄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회

내가 모성을 긍정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남편 덕분이다. 결혼한 지 7년이 지난 지금 남편은 이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애써왔다. 돌볼 시간을 내주지 않는 사회에서 남편과 나도 많이 싸웠다.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전쟁이니까. “남편 좀 풀어주라”는 농담 앞에 속수무책이 되어버릴 때도 많지만, 또 어떤 날은 남편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잖아’라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으면 힘이 빠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남편과 논의한다. ‘여성의 전유물인 돌봄’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함께하는 돌봄’으로 ‘서로돌봄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믿으니까.


 

한국에서 남성이 ‘돌보는 존재’ 된다는 것
벅차고 힘들지만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그렇게 ‘서로돌봄의 사회’로 나아가기를

 

남편이 3월부터 육아휴직을 한다. 남편이 주 양육자가 되는 것은 처음이다. 오랜 시간 아이 둘을 돌봐온 친정엄마의 무릎이 탈이 났고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오전 11시40분에 하교한다. 선택지가 없고 너무 당연한 결정이라 생각하지만 결정은 쉽지 않았다. 당장 경제적인 상황을 걱정해야 해 오래 육아휴직을 쓸 수는 없다. 길어도 6개월만 쓰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남편에게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돌봄을 전담하는 존재일 때만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의 결이 남편에게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줄 것이다. 남편이 돌봄의 기쁨을 많이 누리길 바란다. 내가 육아휴직을 했을 때 그랬듯이.


 

그럼에도 한국에서 남성이 ‘돌보는 존재’가 되는 것은 여전히 벅찬 일일 것이다. 걱정하는 내게 남편이 자신의 지난해 일기를 보여줬다.


 

“두 돌이 다 되어가는 이준이는 어느새 제법 말을 한다. ‘아빠 미워!!’ 이준이는 얼마 전부터 단것을 못 먹게 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못 갖고 놀게 하거나 하면 이런 말을 한다. 어제는 친구가 갖고 온 장난감을 하염없이 갖고 놀기에 이제 자자 했더니 ‘시러. 여기 더 있스 거야’라고 한다. 어제 아침에는 녀석을 안고 교차로에 서 있었다. 햇살은 눈부셨고, 녀석과 손을 잡고 어린이집까지 걸었다. 이준이 녀석과 손잡고 걸으면 좋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녀석의 작은 손을 잡고 걷는 일 자체가 좋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귀여워한다. 한참을 손잡고 같이 걷던 녀석은 갑자기 ‘아나저요’라고 한다. 번쩍 들어 안아준 녀석이 내 품에 폭 안긴다. 폭 안긴 녀석을 안고 봄날 가로수의 연둣빛으로 가득한 교차로를 바라보고 서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인생의 짧은 순간은 그렇게 간다. 그날따라 이준이는 어린이집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며 울었다. 울지 않아도 녀석이 빠빠이 하며 손 흔드는 모습만 봐도 늘 가슴이 아팠다. 녀석의 손은 늘 내 가슴을 휘저어 놓곤 했다. 아, 그냥 녀석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 전체를 봐선 나은 일 아닌가. 두진이 때도 똑같이 들던 생각이다. 못난 아빠는 또 이렇게 글을 남긴다.”(2018년 5월11일)


 

남편의 일기를 읽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린이집에서 아이에게 손을 흔들 때마다 느꼈던 감정을 남편도 느끼고 있었다는 것, 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인생 전체를 봐서는 나은 일이 아닐까 고민했던 것 모두 나와 너무 똑같아서. 잠을 하도 안 자서 애먹였던 아기 두진이는 이제 엄마를 걱정해줄 줄 아는 어린이가 됐다. 어제 둘째의 장난으로 머리를 꽈당 박은 나는 머리를 감싸고 엎드려 있었다. 두진이가 내게 와서 “엄마 괜찮아?”라며 짧은 팔로 나를 안고 ‘호호’ 불기 시작했다. “엄마 괜찮아질 거야. 금방 괜찮아질 거야.” 언젠가 자신에게 건넸던 말들을 내게 돌려주는 아들의 얼굴을 보는데 ‘내가 너를 돌보는 것인가, 네가 나를 돌보는 것인가’ 눈물이 나려 했다. 남편도 비슷한 경험을 했나보다.


 

걱정하는 내게 남편이 보여준 육아일기
아이를 통해 배우고 위로받던 내 모습이
그의 일기 안에도 고스란히 들어있다

 

“두진이가 오늘은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힘이 센데 왜 힘들어해?’ 청소기를 돌리면서 꽤나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나보다. ‘그러게. 힘이 센데 왜 나는 힘들어하고 있을까.’ 몸이 너무 피곤하다. 오후 4~5시만 되면 뇌가 흐물흐물해져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애들을 볼 때도 별일 아닌데 소리를 빽 지르고는 금세 후회를 한다. 오늘도 잠자리에서 녀석의 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미안해 두진아, 너한테 더 사랑을 줘야 하는데… 아빠가 사랑하는 거 알지?’ 물론 녀석은 듣고도 암말도 않는다. 자면서 가끔 녀석의 손을 만지작거려본다. 너무 작고 부드러워서 부서질 것만 같았던 손은 제법 두툼해졌다. 최근에 장인어른이 백내장 수술을 하셨다. 어디선가 그 말을 들었나보다. 몇 주 전인가, 책을 읽어주는데 갑자기 ‘아빠는 수순하지 마’ 이런다. 뭔 말인가 싶어서 몇 번 다시 물어보자 ‘눈 많이 써서 아프면 안돼’라고 말한다. 아빠는 수술하지 말라는 얘기였던 거다. 수술이 뭔지도 모르는 녀석이… 마음이 뜨끈해졌다.”(2018년 4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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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es 2019.02.26 2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너무 좋아요.. 출산 후 육아분담 계획 세우는 중인데 흘러흘러 이 곳을 발견했어요. 저도 워킹맘 이란 단어를 증오하는 사람이예요. (여자에게 가사육아노동과 근로노동을 떠넘기는 느낌이랄까?)
    기자님처럼 저도 아기라는 인생의 첫경험을 남편과 온전히 함께하고 싶네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9.03.03 15: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워킹맘은 엄마들한테 모든 것을 전가하는 말이지요. ㅠㅠ 저도 웬만하면 워킹맘이라는 말을 안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육아분담 계획을 세우고 계신다니... 파이팅입니다!! 많은 순간 지치고 멈춰서고 싶을 때가 있으시겠지만 그래도 아기를 보며 힘내시길요. 앞 문장을 쓰고 나니 많은 일들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저는 아이 낳은 후의 제가 더 좋아요. 엄마든, 아빠든 아이 낳은 후의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댓글 감사합니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230715071&code=940100


어떤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기억하기’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22일 오후 7시30분 서울 홍대에서 개그맨 김미화씨의 사회로 <기억하라>는 제목의 북 콘서트가 열렸다. <기억하라>는 시사만화로 엮은 ‘MB 정권 4년의 현대사’다. 이 책은 지난 이명박 정권 4년간의 역사를 시사만화로 풀어냈다. 국내 최고의 시사만화가 프레시안의 손문상 화백, 한겨레의 장봉군 화백, 경향신문의 김용민 화백, 노컷뉴스의 권범철 화백이 참여했다.


4명의 화백은 이날 <기억하라>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제각기 풀어냈다. 장봉군 화백은 “지금은 MB 4년에 대한 미움만 있는데 이 정권이 어떻게 도래했고 어떤 문제를 낳았는지 정확한 기억들이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잘 기억을 해야 이후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같은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용민 화백도 “이번에 책을 내면서 그림을 정리하다 보니 내가 그린 그림인데도 기억 못하는 것들도 있었다”며 “기억하는데서 머물지 말고 행동했으면 하는 마음에 책을 냈다”고 말했다.

손문상 화백은 과거 모 매체에서 일할 때의 기억을 꺼냈다. 그는 “과거 한 매체에 다닐 때 저소득층을 동정하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는데 편집국장 말이 ‘당신이 그런 궁상스러운 그림을 그리니까 베르사체, 루이뷔통 광고가 안 들어온다’고 하더라”며 “과연 우리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표하고 그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2일 서울 홍대 브이홀에서 북 콘서트를 열고 있는 한겨레신문의 장봉군 화백(왼쪽에서 두번째), 경향신문의 김용민 화백, 프레시안의 손문상 화백, 노컷뉴스의 권범철 화백(순서대로). 개그맨 김미화씨(가장 왼쪽)가 사회를 맡았다. |임아영 기자

 
희망버스 시인 송경동씨, 4대강 르포르타주를 쓴 송기역씨, 용산참사 현장을 시로 기록했던 심보선씨가 ‘기억하라’는 의미로 시낭송을 곁들였다. 송기역 시인은 “4대강으로 인간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있는 생명들을 죽일 권리가 인간에게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시를 낭송했다.

강은 포클레인이 삼켜버렸네
벌린 입 속 치솟은 이빨 사이
허리 부러진 단양쑥부쟁이
꼬리 잘리고 눈깔 빠진 꾸구리가 있네
재두루미 발자국이 있네
강의 철거민들이 무한궤도 아래 깔려 있네

- 송기역 <눈물을 찾아 우시네> 中


심보선 시인은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이라는 시를 쓰게 된 장면을 얘기했다. 그는 “용산 참사 현장에서 작가들과 피케팅을 하고 있었는데 점심 시간에 직장인들이 커피 한 잔씩 들고 지나가면서 우리를 보고 ‘아 여기 TV에서 봤다’라며 지나가더라”며 “사건이 일어난지 채 1년도 안 됐고 용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이 이제 생각났다’는듯이 지나가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남일당 자리를 주차장이 돼 있는데 용산참사 기억을 할 수 있는 나지막한 기념비 하나라도 있다면 하는 바람으로 이 시를 썼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 우리는 그 위에 앉아 있기만 하지는 않겠네 우리는 그 위에 일어서서 말하겠네 이제 인간이란 너나 할 것 없이 하나하나 불붙은 망루가 되었다 생존의 가파른 꼭대기에 매달려 쓰레기와 잿더미 사이에 흔들리며 여기 사람이 있다! 여기 사람이 있단 말이다! 절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고

- 심보선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 中
 


심보선 시인이 용산참사에 관한 시,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을 낭송하고 있다. |임아영 기자



송경동 시인은 이날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기룡전자에서 떨어져 다친 발이 좋지 않아 다시 재수술했다고 했다. 그는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에 ‘희망광장’이라고
서울광장에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며 8년을 해고자로 살아온 코오롱 노동자들, 5년째 기타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콜트콜렉 노동자들, 1600일 넘게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 비정규직 노동자들, 21명 동료들을 묻어야 했던 쌍용차 노동자들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정치권이 민생을 얘기하고 정리해고 비정규직을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지금 오늘 싸우고 있는 그들 곁에는 사람들이 없다”며 “저희들이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3차 희망버스를 준비할 때 쓴 시를 읊었다.

저 문을 열어라
전깃불 하나 없는 깜깜한 쇠기둥 위에서
내려오는 법을 까먹을까봐
날마다 어둠속 되짚으며
계단씩 내려오는 연습을 한다는
저 서러운 철문을 열어라
저 문을 열어라
모두가 열고 싶어하는 저 문을 열어라

- 송경동 <저 문을 열어라> 중에서



 


송경동 시인이 <저 문을 열어라>를 낭송하고 있는 모습. | 임아영 기자



이날 북콘서트는 명진 스님이 초대손님으로 나오면서 대미를 장식했다. 명진 스님은 김미화씨 등을 가리키며 “이 정권에서 쫓겨난 분들이 많다”며 “쫓겨난 분들이 모임을 가져서 ‘MB를 쫓아낼 사람’이라고 바꿀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끝나고 봉은사 앞에 ‘대검 중수부 검사 봉은사 출입 금하시오’라고 플래카드를 걸었고 5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시오’라고 애드벌룬을 띄웠다”면서 “‘준수하지 마시오’는 욕이지만 ‘준수하시오’가 왜 욕이냐”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이명박 대통령을 뽑을 때 인사가 ‘부자되세요’였는데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 소름이 끼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만하면 되는데 얼마나 더 부자가 되라는 뜻이냐. 좀 나눠갖고 힘든 사람들을 돕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부자되세요, 뉴타운 이런 것들 때문에 ‘MB 괴물’을 탄생시켰다”며 “2012년에는 국민의 피땀흘린 세금을 함부로 안 쓸 사람들을 뽑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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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누런돼지 관리자’ 임아영입니다.

좋은 사람은 일찍 떠나는 법일까요. 4일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영결식이 엄수됐습니다.
마석모란공원에 잠들게 되었다는 글을 보면서 문득 아득해졌습니다.

김근태의 삶을 말하는 것조차 미안한 사람들과 그에게 빚을 진 사람이 많아서일까요.
저는 김근태 고문이라도 오래 살기를 바랬습니다.
지난 몇년간 우리는 너무 많은 ‘어른’들을 잃어버렸으니까요.
그가 ‘뉴라이트’의 상징에 졌을 때도 이렇게 아득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시 그가 우리 앞에서 그의 삶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사진공동취재단

딸 병민씨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말했습니다.
“김근태 딸로 태어난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많은 분들께는 민주주의자 김근태로 기억되길 바라고 저는 저에게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을 선물해준 가장 저의 사랑하는 아버지로 기억하고 싶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페이스북에서 김근태 상임고문의 생전 말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희망을 의심할 줄 아는 진지함,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려는 성실함, 대안이 없음을 고백하는 용기, 추상적인 도덕이 아닌 현실적 차선을 선택해가는 긴장 속에서 우리는 다시 희망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1995)

 

빅터 프랭클이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제가 매우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http://blog.naver.com/mercury117?Redirect=Log&logNo=140118088539&jumpingVid=F7D930914A03667D75181A265049A9875042
빅터 프랭클에 대해 만든 EBS의 <e지식채널> 영상입니다.
(EBS에서는 다시보기를 지원하지 않는듯합니다. 그래서 이 링크를 걸어둡니다)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입니다.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아내, 형제들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갑니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끌려오자마자 책으로 내려 했던 원고를 독일군에 빼앗기고 낙담합니다.
언제 가스실로 끌려가 죽게 될지 모르는 공포가 그를 엄습했을 겁니다.
그때 빅터 프랭클은 죄수복 속의 작은 쪽지를 발견합니다.
“진심으로 네 영혼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빅터 프랭클은 그때부터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루에 한 컵씩 배급되는 물을 반만 먹고
나머지는 세수하는데 쓰고 유리조각으로 면도까지 했다고 합니다.
건강하고 깨끗해 보이면 가스실로 가는 시간이 미뤄질 것을 알았던 것이죠.
결국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을 세상에 폭로하고 그 기억을 토대로 ‘로고테라피’(의미치료)를 만들어냅니다.
어떤 두려운 상황, 죽음이 엄습하는 상황에서도 긍정적 마음가짐을 가지며 삶의 ‘의미’를 찾는 태도.
로고테라피는 ‘의미’를 찾는 훈련을 통해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유지하도록 하는 치료라고 합니다.

그냥 포기하고 죽음을 기다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빅터 프랭클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우슈비츠의 상황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죠.
그리고 ‘아내’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내와 함께 했던 행복한 일상을 떠올리며 다시 그날로 돌아가는 꿈꾸며 괴로운 현실을 견뎌냈다고 합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것이죠.

정혜신 박사는 <사람 vs 사람>(2005)이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빅터 프랭클은 끌려간 사람의 95%가 도착 30분 내에 가스실에서 처형되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 중 하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극심한 기아와 강제노동에 고문까지 견디면서 그는 자기 자신과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의 심리변화 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전쟁이 끝난 후 그 참상을 세상에 알렸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엄청난 행운(?)과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아우슈비츠에서 끝내 살아남은 극소수의 사람들 중 99%는 자기경멸로 인한 정신적 황폐화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은 알코올이나 약물중독 혹은 자폐증 등으로 고생하다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빅터 프랭클은 그야말로 ‘초월적 존재’라 불러도 될 만한 사람이다. 초월적 존재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빅터 프랭클, 김근태 같은 사람이 바로 초월적 존재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이나 성별을 따지지 않고 말한다면 나는 김근태가 너무나 고맙다. 그 지옥의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옥의 고통 속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사람들. 빅터 프랭클과 김근태.


정혜신 박사는 김근태 고문에 대한 기억도 꺼내놓습니다.

“김근태는 지난 96년 15대 총선을 통해 제도권 정치에 진입했는데, 그는 이 선거를 회상하며 개인적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한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고 그런 호들갑을 떤다면 애초에 김근태가 아니다. 김근태는 재야에 있던 30여 년간 언제나 익명이나 가명을 쓰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오지 못하다가 15대 총선 때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내걸고 사람들 앞에 나섰다. 그는 거절되거나 단절되지 않고 사람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다고 회고한다. 그동안 왜곡되고 편견에 갇혔던 자신의 진짜배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 나를 소개하는 일 따위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사라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감흥을 주는 일이 아닌데도, 김근태는 그 일이 그렇게 고맙고 좋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김근태는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삶을 살아온 김근태, 빅터 프랭클 같은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진 빚이 커서이기도 하겠지만
다시는 같은 악몽과 절망을 반복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게 끝일까요.
같은 악몽과 절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김근태를 기억하는 것만큼 김근태를 상처입힌 사람들처럼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합니다.
내가 만약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 내가 만약 처절한 독재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김근태처럼, 독립운동가들처럼 살 수 있었을까.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했던 사람들처럼은,
일제에 적극 부응했던 사람들처럼만은 살지 않을 수 있기를.
엄혹했던 독재 아래에서 자유와 희망을 말했던 사람들에게
총과 칼을 겨눴던 사람들처럼만은 살지 않을 수 있기를.


김근태 상임고문이 타계하자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악연’이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에 대한 기사도 많이 나왔습니다. 김 상임고문은 1985년 9월 4일 민주화청년연합을 결성했다는 혐의로 안기부(현 국정원)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이 전 경감에게 20여일간 고문을 당했습니다.

전기고문 8차례와 물고문 2차례.
김 상임고문은 고문을 받은 뒤 후유증에 시달렸고 2007년에는 파킨슨병을 진단받았지요.
 
이근안 전 경감은 지난해 한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시대 상황에선 고문이 애국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죠.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다”, “나는 고문 기술자가 아니고 굳이 기술자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심문 기술자’가 맞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심문도 하나의 예술이다” 등등.

저는 그 기사를 읽고 정말 아득했습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애국이었을까요.

 

‘악의 평범성’으로 유명한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하는 일은 (…) 정치적 자유가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그렇게들 한다. 그러나 저명한 학자들이 보통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참으로 불행히도 생각하도록 하는 힘은 인간의 다른 능력에 비해 가장 약하다. 폭정 아래에서는, 생각하는 일보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일이 훨씬 쉽다.”

 

아렌트는 1961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에 참관합니다.
재판을 보고 그녀는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죠.

그녀는 아이히만이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이라고 평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아이히만은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만 말합니다.
또 명령은 지키는 것이 도리라고 말하죠.

자신의 일이 수백만의 죄 없는 사람들을 살육하는 일이었는데도 아이히만은 자신의 일이 사람을 죽인 것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시키는대로 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죠.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보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냅니다.

악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는 것.
“나는 명령받은 대로 했을 뿐”이라는 핑계로 ‘생각’을 그만둔다면
평범한 누구나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렌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언제나 ‘생각’해야 한다는 것 아니었을까요.
우리 안에 있는 악마를 마주하지 않도록 ‘생각’하는 그것뿐.
악을 마주쳤다 할지라도 그 악을 멈출 수 있게 하는 것은 ‘자기성찰’뿐.

가끔 살아가는 것이 ‘역할 놀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각자 맡은 역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갈등도 일으키고 조화도 만들어내겠죠.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막연히 ‘좋은 역할’을 맡아 ‘선한 역할행동’을 해내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최대한 좋은 역할을 맡는 것.
그것이 끝이 아니라 그 역할 안에서 최대한의 선한 행동을 하는 것.
내가 맡은 역할이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이라면,
그것도 그 사람의 생명과 안위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 역할을 포기하는 게 맞겠죠.

아이히만은, 이근안은 ‘생각’을 멈추고
자기의 역할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선택한 역할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내놓았는지 눈을 감았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이죠.

 


이근안을 찾아내서 그를 속죄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타의로 용서를 구하게 만드는 것이 ‘반성’이 될 수 있을까요.

1999년 11월 언론 기고문을 통해 김근태 상임고문은 말했습니다.

(이근안 전 경감 같은) 고문자들은 독재구조의 악순환에 가담한 가해자면서 동시에 인간성이 파괴된 피해자다.

 


또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이 이근안 뿐일까요.
당시 이근안에 고문을 지시한 사람들, 그 위 또 그 위 결제권자들, 책임자들...
손에 피 하나 묻히지 않고 사람을 죽여도 상관 없다고 뒷짐지고 있었던 ‘윗분들’
독재 구조를 만들어냈던 사람들. 그 악순환을 묵인했던 수많은 사람들.


기억해야 합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우리 모두 ‘이근안’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사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에게 총을 겨누지 않을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을 수 있도록.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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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공무원 시험 준비생은 아름다운 선생님과 맺어질 수 없는 걸까요.

안녕하세요. ‘누런돼지 관리자’ 임아영입니다.
요즘 ‘누런돼지’와 MBC의 <하이킥-짧은 다리의 역습>을 보고 있습니다.
가장 비호감인 캐릭터는 ‘고영욱’이었는데요.

MBC 홈페이지에서

장조림 한 조각에도 눈물 흘리는 노량진 붙박이 고시생 고영욱

노량진 고시원에서 몇 년째 9급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인 고시생. 가난한데 식탐이 있어 소고기 장조림 하나에도 목숨을 건다. 원칙주의자에 융통성도 부족해 뭐든 미련하게 한 우물만 파는 스타일. 천사같은 하선에게 반한 뒤 사랑에서도 미련하게 한 우물만 판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고영욱 캐릭터 설명입니다.

소심하나 아름다운 국어 선생님 박하선을 짝사랑하는 고영욱이 나올 때마다 괜히 주는 것도 없이 얄미워 그 캐릭터를 안 좋아했습니다.;;ㅎㅎ 게다가 잘생긴데다 하선을 몹시도 좋아하는 체육 선생님 서지석이 마음 앓이를 할 때마다 고영욱 캐릭터가 더 싫어졌죠. 하선과 지석이 맺어지기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몽유병이 있던 고시원 이웃주민(?)인 백진희가 소고기 장조림을 먹었다고 고래고래 화를 내는 모습도 좀스러워 보였고 우연히 하선의 ‘생명의 은인’이 되어 사귀게 된 과정도 탐탁치 않았습니다. 하선을 더 좋아하는 지석이 있는데 어디 감히!


 

그런데 드디어 영욱과 하선이 헤어졌습니다. 그것도 영욱이 먼저 하선에게 이별을 선언하는 방식이었습니다.

23일 방송된 <하이킥>에서 영욱은 시험 발표가 난 뒤 하선 앞에 멋진 차를 끌고 나타났습니다.
하선은 영욱이 시험에 합격한 걸 기뻐하며 넥타이도 사주고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헤어지던 순간 영욱은 “멀리 지방으로 발령받을 것 같은데 혹시 하선씨, 나와 함께 가줄 수 있냐”고 묻습니다. 지방직 공무원에 합격했다는 것이었죠.

당황한 하선은 “저는 학교도 여기 있고 지원이도 있고...”라며 거절 의사를 보입니다.
영욱은 “기적이 일어날까 해서 한 번 물어본 것”이라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선씨 만난 후로 너무 행복했다. 그동안 나 같은 놈 만나주신 것 정말 감사하다. 잘돼서 헤어지는 건데 웃으면서 헤어지자”며 이별을 고하죠.

영욱은 또 시험에 떨어졌던 겁니다. 영욱은 마지막으로 하선을 한 번 안아본 후 “다 미안하다. 다 고맙다”고 말하고 뒤돌아섭니다. 하선은 영욱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영욱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죠.

고시원에 돌아온 영욱을 맞은 건 작디작은 방이었습니다. 영욱은 그 작은 방에서 하선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소리내어 흐느낍니다. 그때 옆방에서 조용히 하라는 ‘노크’ 소리가 들리죠. 그동안 노크 소리에 주눅들어 살던 영욱도 이번에는 울음소리를 죽일 수가 없는지 엉엉 울었습니다.

MBC 화면 캡처

23일 방송분이 끝나고 나서 갑자기 멍해졌습니다.
영욱이 안돼 보여서였을까요?

영욱이라는 캐릭터가 공시생에게는 연애도 허락되지 않는 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 TV 드라마에서 사법고시를 공부하는 남자 주인공에게 헌신적인 여자 주인공 스토리가 반복됐었던 적이 있었죠. 사시를 합격한 남주(인공)는 결국 여주(인공)를 버리고 여주가 복수하는 이야기.

그런데 김병욱 감독은 ‘공시생’을 이야기합니다.
사시도, 행시도 아닌 공시. 그것도 9급 공무원 준비생.

‘여자 버전’ 88만원 세대를 보여주는 캐릭터 백진희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진희는 고시원에 살다가 방값을 못 내 쫓겨나고 학자금 대출은 산더미같이 쌓여있으나 계속 취직이 안 됩니다. 결국 보건소 행정 인턴으로 취직했으나 월급은 쥐꼬리인데 고용 안정성도 불투명하죠.

어느날 진희도 결혼한다는 친구 얘기를 들으며 ‘취집’을 상상합니다.
보건소 의사 선생님인 윤계상과 결혼하는 상상이었는데요.
아마 진희의 바람도 이뤄지기 힘들 것입니다.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과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보여준 김병욱 감독의 비관주의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테니까요.

영욱이 하선과 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진희가 계상 때문에 어떤 눈물을 흘리게 될까 걱정이 됐습니다. 공시생으로, 88만원 세대의 백조로 찌질해지기만 하는 20대들에게 어떤 희망이 있을 수 있을까요.
취업 여부가 ‘계급’을 가르는 사회가 되어 버렸는데.
연애·결혼·출산, 기본 중의 기본을 꿈꿀 수 없는 사회.

김병욱 감독은 그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찌질하게 장조림에 목을 매는 것이 영욱의 잘못은 아닙니다.
하선에게 영욱은 늘 진심이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하선이 영욱을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겠죠. 사람이 사람이 좋아지는 건 사람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하선은 영욱이 공시생이라는 이유로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좋은 사람이죠.

그런데 왜 저는 영욱을 안 좋아했을까요.
혹시 ‘찌질해서’였을까요.
그 생각이 다다르자 맨얼굴을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습니다.

3년 전 제가 미취업자이던 시절 저는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취직을 못한 것이 온전히 내 잘못만도 아니거늘 자신도 없었고 사람 만나는 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긍정하는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 어떤 것도 온전히 내 탓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데까지요.

그때 제 모습도 혹시 ‘찌질’했을까요.
영욱을 바라보던 시선에 그때 제가 겹쳤습니다.


공시생이 선생님을 만날 수 없는 사회,
이제 더이상 사시, 행시를 봐서 합격하는 ‘신분상승’의 사회가 아니라
9급 공무원이 되는 게 ‘생존’이 되는 세상.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MBC 화면 캡처

제가 좋아하는 <지붕뚫고 하이킥>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실은 가기 전에 아저씨 꼭 보고싶었는데, 이뤄져서 너무 좋아요.

(이민 갈 이유 안 갈 이유가 반반이었다고 그랬지?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뭐야? 아빠랑 셋이 사는 거?)

네. 그리고 신애한테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신애?)

언젠가부터 신애가 자꾸 저처럼 쪼그라드는 것 같아서요. 식탐 많던 애가 먹을 거 눈치를 보고 아파도 병원갈 돈이 없을 까봐 걱정하고. 그게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가난해도 신애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안 가고 싶었던 이유는)

검정고시 꼭 보고싶었어요. 그래서 대학도 가고. 아저씨 말대로 신분의 사다리를 한칸이라도 올라가고 싶었어요. 근데 언젠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 사다리를 죽기살기로 올라가면 또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있겠구나. 결국 못 올라간 사람의 변명이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가기 싫었던 이유는 아저씨였어요. 아저씨를 좋아했거든요. 너무 많이. 처음이었어요 그런 감정.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설레고, 밥을 해도, 빨래를 해도, 걸레질을 해도. 그러다 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부끄럽고 비참했어요.

(미안하다. 내가 한 말들 때문에. 상처주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다 지난 일이고 전 괜찮아요. 그동안 제가 좀 컸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의 끝이 꼭 그 사람과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는 거 이제 깨달았고. 그래도 떠나기로 하고 좀 힘이 들긴..들었어요. 아저씨랑 막상 헤어지면 보고싶어서 못 견딜 것 같아서.

그래도 마지막엔 이런 순간이 오네요. 아저씨한테 그동안 마음에 담아놓은 말들 꼭 한번 마음껏 하고 싶었는데. 이뤄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매일 지금 이순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다 와 가나요?

(어)

아쉽네요. 잠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뭐?)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동생이 ‘쪼그라드는’ 걸 보기 힘들었던 언니 세경이 신분의 사다리를 고민하지 않는 사회로 떠나려는 찰나
세경은 죽음으로써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이룹니다.
지훈을 좋아했던 세경은 이렇게 꿈을 이루는 걸까요.

저는 죽지 않고 살아서 우리들의 소망을 이루면 좋겠습니다.

영욱이 공무원 시험에 붙지 않아도 행복해지는 사회, 스스로가 ‘찌질하다’고 느끼지 않는 그런 사회.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겠죠.

이제 왠지 하선과 지석의 사랑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없어질 거 같습니다.
영욱이 생각나서요. ㅠㅠ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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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 2012.01.02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눈물이 나려고 하네...
    김병욱 감독은 너무 잔인해...
    나도 고영욱 미워했는데. 찌질한게 들러붙는다고.
    안내상도 싫었는데. 무능한 주제에 오바한다고.
    그런데 저 감독은, 안내상을 정.말.로. 감옥에 보내버리더라구. -_-
    과잉행동장애가 되어 나온 안내상이 마라톤 하는 걸 보면서 울었다우...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2.01.03 1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선배 내상씨도 정말 안됐죠.
      내상씨가 진희 다친 손목을 이용해 게임에서 이겨서 상품권 타내려고 했을 땐 ‘격분’했지만 그 작은 거라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니 그 방송분 끝나고 허탈했어요.
      ㅠㅠ <하이킥>은 잔인해서 현실적이예요. 이번 <하이킥>은 어떻게 끝날지...ㅎㄷㄷㄷ

  2. Favicon of http://leegoeun.khan.kr 이고은 2012.01.03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영, 글 넘 좋다. 그나저나 우리 내러티브는 언제 다시...? WCMS가 점점 멀어지고 있군하. 하아...

“없는 사람 얼굴 가져다가 있는 사람 위해서 쓰지 마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0·26 재보선이 끝났습니다.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이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고 저녁에도 민생 행보를 이어간다고 하네요.
정말 그동안 시장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했네요. 기대가 많이 됩니다.


맨 위에 쓴 문장은 제가 취재하면서 들었던 가장 잊지 못하는 말입니다.
2009년 여름이었을까요. 저는 서울시를 출입했었습니다.
당시 기업형슈퍼마켓(SSM) 문제를 기획 기사로 다뤄보자는 데스크 지시로 서울 강북 가게들을 취재하러 갔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여러 가게들을 돌아봐야 하는 일이라 가기 전에는 짜증도 났었던 기억이 나네요.
철퍽철퍽 길을 걸어 한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기자라고 소개하니 주인 아주머니는 약간 냉담한 표정으로 “왜 왔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아주머니가 냉담하게 묻자 저도 조심스러워져 “저기 길 너머 SSM이 생겼던데 가게 운영이 힘드시지 않은가...해서...”라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아주머니는 그제서야 얼마나 매출이 떨어졌는지 말씀하기 시작했습니다.
손님들이 더 싼 것을 찾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꼭 우리같은 영세업자들의 밥그릇까지 대기업이 가져가야 하는 거냐, 나는 옷가게를 하다가 가게 옆에 대형마트가 생겨서 망하고 그 다음엔 빵집을 했는데 또 파리바게트가 옆에 생겨서 망하고 3년 전에 이 가게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또 업종을 바꿔야 하느냐, 우리 아들이 대학교 2학년인데 가끔 저 대기업들에 내 아들이 취직은 할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까지 든다... 답답하고 답답하다...

줄줄이 말을 듣는데 점점 더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기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그저
“그러게요... 어떻게 이런 곳까지 SSM이 들어올까요” 정도였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아주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없는 사람 얼굴 가져다가 있는 사람 위해서 쓰지 마요”

갑자기 목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아주머니의 말씀을 들은 이후로
“없는 사람 얼굴 가져다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쓰는 사람”을 보면 울컥 화가 납니다.

저 또한 얼마나 “없는 사람 얼굴 가져다가 있는 사람을 위해서 쓰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지도 되돌아 봐야겠죠.

그래서 이번 선거 과정에서 유독 화가 많이 났습니다.
고가의 피부과를 다니면서 피부 관리를 받는 사람과 하도 구두를 오래 신어서 헌 구두가 화제가 되는 사람.
과연 어떤 사람이 “없는 사람 얼굴을 가져다가 있는 사람을 위해 쓰는 사람”일까요?
어느 트위터 이용자의 말처럼 ‘시궁창’이 ‘수돗물’에게 네거티브를 퍼붓는 것을 보면서 절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디지털뉴스팀으로 오기 직전 사회부에서 종로경찰서를 출입했습니다.
종로서 근처에는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가 있어서 그 세 단체도 제 출입처였습니다.
모두 박원순 신임시장이 만들고 가꾼 단체들이지요.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이 박원순 신임 시장과 단일화 선언을 한 이후 캠프가 본격적으로 꾸려지기 전
제가 박원순 당시 예비후보를 이틀 정도 취재했었습니다.

9월 8일이었던가요.
상임이사로 재직하고 있던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에 사직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헌 구두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뒤였고 박 시장은 “오늘은 새 구두 신었다”며 웃었습니다.
뒤축이 닳을 때까지 구두를 신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은 헌 옷 등 다 쓴 물건을 교환하는 가게, ‘아름다운가게’를 만들었습니다.

그 아름다운가게에 인사를 와서 “저는 괜찮은데…선물로 주신 구두이니 잘 신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부 보수 언론은 강남의 월세 아파트를 사는 박 시장이 ‘서민’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서민이라는 존재가 과연 뭘까요?
저는 소득계층을 따져 서민이냐 아니냐를 묻기 이전에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어디를 바라보고 살아왔는지 말입니다.

사법고시를 패스하고도 인권변호사의 길에 들어선 사람, 참여연대를 만들어 꾸준히 권력감시운동을 펼친 사람,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를 바꿔보겠다며 시작한 아름다운재단 활동, 헌 것을 나눠쓰며 소비문화를 바꿔보려고 노력한 아름다운가게, 그리고 시민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모아 세상을 바꾸자는 희망제작소 활동...

취재하면서 아름다운재단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2006년 박원순 시장(변호사)은 필리핀 막사이사이상의 공공봉사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상금이 5000여만원이었는데 박 시장은 아름다운재단에 전화를 걸었답니다.
“도저히 가지고 올 수 없어 두고 오겠다”며.

항상 기금을 모으느라 고생하는 아름다운재단 관계자가 “재단도 돈이 없으니까 반만 두고 와주세요”라고 부탁했는데도 박 시장은 결국 다 두고 왔다고 합니다.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을 응원합니다.
그가 부디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없는 사람 얼굴 가져다가 있는 사람 위해서 쓰지 않는” 시정을 펼치길 바랍니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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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거창(?)하지만 사실 이 글의 목적은 ‘블로그 소개’입니다.ㅎㅎ

안녕하세요? ‘누런돼지 관리자’이자 경향신문 디지털뉴스팀 소속 임아영 기자입니다.

‘누런돼지’를 관리하게 된 사연을 설명하려면
우선 ‘누런돼지’를 소개해야겠군요.ㅎㅎ

누런돼지는 경향신문 문화부 소속 황경상 기자입니다.
이메일 아이디가 yellowpig@kyunghyang.com 이죠.
황 기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붉은 돼지>를 ‘일생의 명작’으로 꼽습니다.
하야오 감독이 중년이 된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는 자전적 작품이죠.
1차세계대전에서 공군 조종사로 참전해 동료들을 잃었던 ‘붉은 돼지’, 포르코 로소가 인간에 대한 혐오감으로 스스로 돼지로 변해 군대를 떠난 뒤의 이야기입니다. ‘붉은 돼지’는 황 기자의 로망입니다.
붉은 돼지처럼 살고 싶다는 얘기인지는 ‘붉은 돼지’를 ‘누런 돼지’로 패러디한 황 기자가 대답할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ㅎㅎ

황 기자와 저는 입사 동기입니다. 2008년 10월에 입사했으니 만난지는 3년이 조금 넘었네요.


제가 합격했을 때 대학 후배가 합격자 발표란을 캡처해서 보내준 겁니다.
이걸 보고 감격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나 지났네요. ㅎㅎ 더 신기한 건 그때만 해도 제 이름 뒤에뒤에 있는 이름이 제 ‘남편’이 될지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ㅎㅎ


입사 후 2년 동안은 친한 친구처럼, 고민을 공유하는 동기로 잘 지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흔한 연애 스토리들처럼) 동기가 남자친구가 되었고
이제 오늘로써 ‘남편’이 되기 12일 전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전하기에는 아직 너무 부끄럽네요 ㅎㅎ;;; 그건 다음 기회로 남겨둘게용)


회사에서는 십여년만의 사내 커플의 탄생이라고 합니다.
기자 커플은 안 좋다고 일부 선배들은 놀리시기도 하지만
결혼이라는 일이,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일이, 매우 뭉클한 거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일을 빨리 처리하기 좋아하지만 참을성이 없는 저와
시동이 매우 늦게 걸리나 마무리는 확실하고 꼼꼼한 황 기자가
함께 산다면 ‘좋은 상호보완 관계’가 되겠구나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사실 느리고 잘 망설이는 황 기자를 다독다독해서 일을 하게 만드는 일은 힘들기도 했습니다ㅠㅠ
앞으로 정말 잘 ‘관리’해야겠구나 싶어 황 기자에게 “나는 (황 기자의) 엄마가 되기 싫어!”라고 하기도 했죠.
그러나 이제 ‘관리자’의 역할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ㅎㅎㅎㅎㅎㅎ)


앞으로 이 블로그에서
경향신문 부부 기자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사소한 일상(신혼 일기)부터
사회 현안에 대한 생각까지 다양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저와 황 기자는 산책과 여행, 영화(이야기)를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 이야기들도 공유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저희의 청첩장 문구를 소개할까 합니다. 부끄럽지만 ㅎㅎ

외롭고 높고 쓸쓸한 길에서도 서로의 더듬이를 부비며 온기를 찾고
묵은 김치 한 조각에 더운 밥 하나, 세상의 가장 소박한 찬에도 즐거워하겠습니다.
며칠째 정신없어 다듬지 못한 손톱을 다정하게 깎아주는 시간을 행복해하고,
서로가 만든 그늘 속에서 즐겁게 쉬며,
무엇을 이뤘느냐 묻기보다, 어떻게 살았느냐를 묻는 그런 부부가 되겠습니다.
오셔서 저희의 앞길을 축복해 주세요.



‘예비 남편’이 쓴 문구입니다. 이 문구를 보고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앞으로 이렇게만 산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은 느낌...(예비 신부의 감성입니다 ㅎㅎㅎ)

끝으로 저희 관계를 상징하는 사진입니다. ㅎㅎㅎ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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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talgi21.khan.kr 딸기 2011.10.25 1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영 넘 이쁘다!!

  2. 레옹 2011.10.25 1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속았다. 둘이 몰케다니길래 공동기획하는 줄 알았다.
    몰랐다. 두 사람이 그렇게 묵은지를 좋아하는지.
    당혹스럽다. 어디다 부조해야 하나.

    • 누런돼지 관리자 2011.10.25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장 처음에는 취재원을 같이 만나다 친해졌으니 기획은 아니더라도 일을 하고는 있었는데요. 사실 성과로 이어졌는지는 반성을...;;;
      묵은지 좋아하니까 ‘한옥집’에서 밥 사주세요. ㅎㅎㅎ
      음... 마지막이 가장 어려운 문제네요. ㅠㅠ 현재 직속 후배의 복지를 생각하심이...ㅎㅎㅎ 결혼식이 끝나면 부 일에 혼을 쏟겠습니다.... ^^;;;

  3. 퍙미 2011.10.26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곧 공개될 '방'도 기대해 ㅎㅎㅎㅎㅎㅎㅎㅎ

  4. Favicon of http://leegoeun.khan.kr 이고은 2011.10.27 1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청첩장 문구, 감동적이다. 황기자의 감성이 묻어나는구먼.
    당신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사진에서 읽을 수 있듯이, 아영은 아마 '(황기자의) 엄마'가 될 것 같다. 흐흐흐.
    나도 결혼 전, 아영과 100% 똑같은 멘트를 남편에게 했으나, 1년만에 포기하고 그길로 들어섰다우.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1.10.27 1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배 왠지 위로가 돼요. 저만 그런 건 아니었군요 ㅎㅎ 가금 '엄마' 역할에 뭉클해진다면 점점 중증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요즘 그래요ㅠㅠ) 그래도 뭐 살면서 맞춰가는 연습을 열심히 해야겠죠? 팁 많이 주세요~^^

  5. 2011.10.29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1.10.31 1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그때가 언제인가요. 어떤 시기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ㅎㅎ 축하 감사합니다. 두근두근하기보단 아직 실감이 안 나지만. 그래도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ㅎㅎ 블로그 자주 놀러오세요. 축하 다시 한번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