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아영 황경상 기자의 폭풍육아 시즌2

 

▲ 아이들이 불평하지 않는다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힘을 잘 줘야지, 이렇게.” 첫째가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어른 젓가락’을 쥐여주고 힘을 주는 연습을 열심히 하게 했다. 학교 급식을 먹을 때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성인용 수저를 쓴다고 해서다. 아직 어른 젓가락을 쥐기에는 작은 첫째의 손을 만져보며 조금 안쓰러웠지만 ‘학교가 그렇다면 네가 적응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며칠 전 우연히 오마이뉴스에 실린 오문봉 선생님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됐다. 그는 초등학교 급식에서의 성인용 수저 제공에 문제가 있다며 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아… 잘못된 건데 나는 아이 보고 적응하라 했구나.’ 씁쓸한 기분이 스쳤다.

 

초등학교 급식에서 성인용 수저를 쓴다
한 선생님의 문제제기를 듣고 나서야
아이에게 적응하라 했던 나를 돌아봤다

 

오 선생님은 지난해 5월 교무회의에서 아이들에게 아동용 수저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가 ‘지급 안 해도 된다’는 결론이 나오자 고민 끝에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그가 진정을 넣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아이들이 숟가락을 갖고 다녀라’부터 ‘수저가 무슨 인권이냐’까지. 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어른 수저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게 아닙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그런 불평을 학교에 말하지 못합니다.” 부끄러웠다. 선생님 말대로 아이들은 사안별로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이제 세상에 대한 상을 머릿속에 구성하고 있을 터이다.

 

인권위는 ‘초등학교 급식에서 성인용 수저 제공 관련 의견표명’이라는 제목의 결정문을 내면서 “학교 급식에 관한 계획을 수립·시행할 때, 아동이 사용하기에 알맞은 수저 등의 제공을 포함하여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낯설까. ‘노키즈 존’ 논란을 볼 때면 늘 갑갑했다. 아이들은 열 살 정도는 되어야 사뿐사뿐 걸을 수 있다는데 시끄럽고 부산스럽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일정 공간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보도는 점점 좁아지고 차도는 넓어지기만 하는 것 같은 도시에서 천지분간 못하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있으면 식은땀이 난다. ‘학교 앞 시속 30㎞ 규정’이 있는데도 쌩쌩 지나가는 차를 보면 속수무책이 되는 기분이었다. 어른이 모는 차는 쌩쌩 달려도 되고 뛰는 아이들은 어떤 공간에 들어갈 수 없는 세상이라 말하면 비약일까.

 

어디까지 세상의 질서를 배우라 말하고
어느 선부터는 잘못됐다고 말해야 할까
배우고 적응하라고만 하는 것은 아닐까

 

아동이 스스로의 권리 주체가 된다는 것은 어떤 선에 있는 걸까. 부모는 어디까지 세상의 질서를 배우라고 말하고 어느 선부터는 세상의 질서가 잘못됐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세상의 질서를 배우고 적응하라고만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한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기는 정녕 어려운 걸까. 가끔 부모인 나도 아이들의 관점보다는 내 관점에서 아이들을 재단하는 것 같을 때 미안하다. 아이가 학교에서 겪은 에피소드에 대해 글을 썼을 때 남편이 말했다. “이제 글에 아이들 이름은 넣지 말자.” 육아에 대한 글이지만 내 글의 주요 등장인물은 나와 남편, 아이들이다. 아이도 사회생활을 하는데 우리가 쓰는 글이 아이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 이후부터 글에 아이들 이름은 넣지 않고 ‘첫째, 둘째’라고 쓴다. 아이들에 대한 내 관점을 글로 쓰는 것을 아이들에게 허락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처음 ‘폭풍육아’를 쓸 때부터 아이들 사진은 쓰고 싶지 않았다. 글이 돌아다니면 사진도 같이 돌아다닐 텐데 아이들의 얼굴은 내 것이 아니지 않은가. 처음에는 삽화를 썼지만 언젠가부터 아이들 옆모습, 뒷모습이 들어간 사진을 쓰고 있다. 물론 아이들에게 허락받지는 않았다. 가끔 신문에 자신의 사진이 나온 것을 본 첫째는 자기 얼굴이 나왔다고 좋아하지만 나는 기분이 묘하다. ‘아직 뭘 몰라서 좋아하는 걸 수도 있는데… 엄마가 잘 모른다고 허락도 받지 않고 써서 미안해.’ 사실 이런 생각을 시작한 지도 오래되지 않았다. 첫째가 어릴 때는 SNS에 사진을 많이 올렸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가 신기해서이기도 했지만 아마 아이를 자랑하고 싶었을 거다. ‘내 소유물도 아닌데.’ 아이가 커서 자신의 사진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이후부터 SNS에 사진을 거의 올리지 않는다.

 

아이들의 관점보다 내 관점에서
아이들을 재단하는 것 같을 때 미안하다
이 글도 허락받아야 하는 건 아닐까

 

선거연령 만 18세로 하향, 청소년인권법 제정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들의 기사를 읽다가 “우리는 미래 세대가 아닙니다”라는 문장을 읽었다. 머리를 맞은 듯했다. 그들은 자신도 현재를 살고 있는 주체라고 말했다. 어릴 적 어른들은 늘 말했다. 어린이는 미래의 꿈나무라고. 아니다,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현재를 살고 있다. 오 선생님은 인터뷰 끝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계기로 어린이와 학생들을 차별하지 말고 배려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 익숙한 생각과 행동이 아이들을 차별하는 것은 아닌지 늘 돌아봐야겠다. 내가 권리의 주체라면 작고 힘없는 존재들도 권리의 주체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지 말자고.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를 아이들에게서 빼앗은 것은 아닐까

 

아이들은 무조건 뛴다. 걸어가야 할 순간에도 뛰고 뛰어야 할 순간에도 뛴다. 숨이 턱에 차서 헐떡거리면서도 뛴다. 어른들은 뛰어야 할 때도 굳이 걷는데 말이다. 아이들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을 순식간에 벗어나 아찔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침마다 학교,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갈 때면 손에 힘이 꽉 들어가 있다.

 

아이들을 대하는 손길은 늘 빨라진다
밥을 먹일 때도 씻길 때도 마찬가지다
왜 한 번에 빨리 해치우려고 하는 것일까

 

아이들을 대하는 내 손길은 늘 무심코 빨라진다. 밥을 먹일 때도 그렇다. 밥상머리에 딱 앉아서 한 그릇 뚝딱 하면 좋으련만, 아직까지 둘째는 숟가락을 들고 다니며 먹일 때가 많다. 먹이다 보면 입에 든 밥을 다 삼키지도, 심지어 씹지도 않은 녀석에게 다음 숟가락을 떠서 입에 갖다 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한 숟가락으로 뜨는 밥의 양도 점점 늘어난다. 그 위에 반찬도 2~3개씩 한꺼번에 올린다. 종종 채 입에 다 들어가지 못한 밥과 반찬은 숟가락에서 낙하한다. 녀석이 도리질이라도 칠라치면 밥과 반찬은 폭발한 포탄처럼 흩어진다.

 

씻길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씻는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물놀이에만 심취해 있다. 화장실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빨리 녀석들을 적당히 달래 씻겨서 내보내야 한다는 결의를 다진다. 안 씻겠다는 녀석들의 손을 잡아 끌어서 양치질을 시키고 비누칠을 하고 머리를 감기는 내 손길은 점점 급해진다. 거친 손길 탓에 아이들의 몸에 손톱자국을 길게 남기기도 한다. ‘아파! 아파!’ 하고 난리를 친다. 발을 씻기려다 아이가 욕조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게 한 적도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다 씻기고 안아서 나오다 화장실 문짝이나 벽에 아이의 머리를 찧은 적도 여러 번이다. 칫솔질도 너무 세게 시켜 칫솔에 피가 묻어 나온 적도 있다.

 

나는 왜 아이들과 있으면 뭔가를 한 번에 빨리 해치우려 하는 것일까. 나와 달리 아이들은 뭐든 긴 시간을 들여서 하고, 그걸 반복해서 또 하는 걸 좋아한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물론 너무나도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이지만, 그다지 ‘재미’있는 시간은 아니다.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하는 것은 어른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해 흔해빠진 일상이다. 반대로 모든 게 처음인 아이는 뭐든 한 번 더 해보고 싶어 한다. 세상의 이치를 잘 모르니, 이해하고 납득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끔은 마음이 급해져서 소리를 ‘빽’ 지르고 나서는 금세 후회를 한다.

 

나는 어쩌면 아이들에게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조금만 시간을 들여 설득하면 가끔 아이들은 놀랄 정도로 잘 따라준다. 첫째가 네 살쯤 됐을 때의 일이다. 장난감에 빠져 노는 녀석이 칫솔질을 하자니까 너무 싫어하기에 “그럼 그거 다 하고 나서 양치하는 거야” 하고 말해줬다. 그냥 지쳐서 거의 반은 포기한 채 한 말이었다. 근데 녀석이 5분쯤 지나니까 “인제 이거 다 했으니깐 치카치카 하자”면서 오는 게 아닌가. 너무 신기해서 꼭 안아주었다. 물론 칫솔질을 막상 시작하자 또 떼를 쓰고 인상을 쓰긴 했지만.

 

아이들이 달려가는 게 무서워 잡아채다
되레 넘어지게 만든 일이 많았다
스스로 판단해 달리면 외려 덜 넘어졌다

 

아이들이 막 달려가는 게 무서워 잡아채다가 되레 넘어지게 만든 일이 많았다. 스스로 판단해서 달리는 아이들은 뒤뚱뒤뚱하면서도 오히려 덜 넘어졌다. 목욕을 할 때도 처음에는 비누칠을 하고 헹구고 물기를 닦는 일까지 일체의 권한을 주지 않고 내가 다 알아서 했다. 언젠가 그냥 지쳐서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이에게 화를 냈다. 수건을 맡기면서 알아서 닦으라고 했더니 생각보다 잘 닦아서 놀랐다. 뭐든 그렇다. 양치질도, 일을 보고 뒤를 닦는 일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혼자서 잘해냈다. 문제는 내가 믿고 기다려주지 못한다는 거다. 늘 더 완벽하고 빠르고 깔끔하게 해내길 바란다. 혼자 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하고 수건을 들어 닦거나 칫솔을 뺏어 이를 문질러버린다.

 

첫째가 혼자 옷 입는 훈련을 할 때였다. 바지는 제법 혼자 입고 벗는데 윗옷은 잘 입고 벗지 못했다. 머리에 옷이 걸려 제대로 빼지 못하는 것이다. 한 번은 혼자 바지를 입느라 용을 쓰고 있고 있기에 윗옷을 입히겠다고 머리에 티셔츠를 넣으려고 하니 녀석이 막 짜증을 냈다. “이따가~ 이따가~ 바지 입고~” 아, 내가 또 마음이 급했구나.

 

시간이, 무엇보다 아이에겐 소중하다
좀 더 시간을 내 준다면 그 시간들이
아이 삶에 제법 긴 나이테로 남을 것이다

 

단순히 생활습관을 길러주는 데서만 벌어지는 문제일까. 요즘 덧셈, 뺄셈을 어려워하는 첫째와 문제를 풀고 앉아 있다 보면 속이 터질 때가 많다. “왜 그걸 몰라?” 하면서 윽박지르다가도 모르는 게 당연한데 싶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언젠가 녀석들이 더 커서 혼자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도 난 조바심을 부리게 되는 건 아닐까.

 

시간이, 무엇보다 아이에겐 소중하다. 똑같은 시간 속에 살지만, 아이와 어른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뭐든 차근차근 기다려준다면, 아이에게 좀 더 시간을 내 줄 수 있다면, 그 짧은 시간들이 아이의 삶에는 제법 긴 나이테로 남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8091633005&code=940100#csidx2592926dd97dac39815b131f5fecb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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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으로 가족 나들이 떠난 날. 아이들이 업어달라고 조르자 엄마는 스카프를 잡고 따라오라고 이끈다. 두 아들이 다루는 노하우가 느는 만큼, 육아의 불안감도 커진다.

 

▲덧셈 뺄셈 늦는다고…다그친 엄마, 아이가 어려움 겪을 것이 두려웠다

 

초등학생이 된 첫째는 얼마 전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여덟 살이 되고 학교 가면서 힘든 일이 많아졌어.” 아이가 가끔 이렇게 툭 말을 던지면 마음이 싸해진다. “왜? 뭐가 힘들어?” “글씨 쓰는 것도 힘들고 교과서 하는 것도 힘들어.” 수업시간이 힘들다는 얘기였다. 아직 10분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가 40분 동안 앉아 있으려면 힘들겠지. 뭐 하나라도 허투루 하지 않는 아빠를 닮아 글씨도 꾹꾹 눌러쓰는 첫째를 보면서 이렇게 공들여 하면 힘들 텐데 속으로 생각한 적이 많았던 터라 더 마음이 싸해졌다.

 

아이가 며칠 동안 수학익힘책을 나머지 공부로 들고 왔다. 유치원을 다니며 ‘엄마표 선행학습’을 전혀 하지 않고 학교에 보낸 우리 부부의 방침(?)이 무리였던 걸까. 영어도 8세에 노출을 시작한 결정이 잘못된 걸까. 의외로 영어는 흥미로워하며 할머니가 주민센터 수업에서 배워와 알려준 영어 뜻을 내게 묻기도 했다. “엄마, you have a good memory가 무슨 뜻인 줄 알아? 기억력이 좋다는 뜻이야.”

 

의외의 복병은 ‘빼기’였다. 덧셈·뺄셈은커녕 숫자 공부를 거의 해본 적 없어서인지 힘들어한다. 어린이날 서점에 데려가 아이가 좋아하는 안녕달 작가님의 그림책을 선물로 사주면서 수학 문제집을 두 권 샀다. 퇴근을 하고서는 옆에 앉아 같이 수학 문제집을 푼다. 퇴근 후 지하철역에 도착하면 얼른 집에 가서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하다.

 

선행학습 없이 학교 보낸 게 무리였을까
숫자 공부 해본 적 없는 아이가 힘들단다
학교에선 놀이·점심시간만 좋다는데…

 

모든 아이가 빛난다. 우리 아이도 빛나는 아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선풍기 하나를 봐도 어디로 전기가 들어와 날개가 돌아가는지를 탐구하는 아이다. 12월생이라 조금 늦고 뭐든 꼼꼼하게 해야 하는 성격이라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수학의 원리야 익히면 금세일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그렇지만 ‘힘들다’는 말에는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거꾸로 물었다. “그럼 학교 다니면서 즐거울 때는 언제야?” “놀이시간이랑 점심시간.” 1학년은 2교시가 끝나고 30분간 놀이시간이 있다. “엄마도 생각해보니 학교 다닐 때 점심 먹으러 다녔던 것 같아.” 아이를 다독이고 싶었다.

 

공부하며 집중 않는 아이에 화 내고…
다음날 만난 담임 선생님의 차분한 말
“걱정할 필요 없어요, 연습하면 돼요”

 

물론 하기 싫은 건 하기 싫은 일이다. 하루는 아이가 하품을 하며 딴생각을 하자 화가 났다. “집중 안 할 거야!” 목소리가 높아졌다. “수학도 국어도 안 해도 돼. 공부 안 해도 돼.” 단호한 말투에 뭐가 잘못된 것인지 눈이 똥그래졌던 첫째는 엄마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울음을 터뜨렸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다음날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했다. 차분한 말이 돌아왔다. “어머님,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아이가 이해력이 떨어지고 그런 게 아니에요. 연습만 하면 돼요. 수학은 연습이 필요하니까요.”

 

아이는 그대로다. 문제는 ‘부모의 불안’이다. 덧셈·뺄셈을 못할 리가 없는데 다른 아이보다 늦다고 불안해서 아이를 다그치는 엄마라니. 내 불안은 어디서 오는가.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을 보면서도 나는 불안했다. 드라마에서는 직원들을 착취하고 산재를 은폐하는 사업장에서 근로감독관이 활약해 문제를 풀지만 드라마는 판타지고 현실은 대부분 시궁창이다. “엄마, 나는 커서 버스기사 안될 거야.” 사장의 말도 안되는 지시에 쉬는 시간도 없이 버스를 운전하며 꾸벅꾸벅 조는 버스기사들의 장면이 지나간 뒤 첫째가 말했다. “버스기사는 잘못하게 되잖아.” 할 말이 없어진 나는 말했다. “아냐, 기사님들의 잘못이 아니라 버스회사 사장의 잘못이야.” 허공을 맴도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두려웠다. 우리 아이는 커서 안전한 사업장에서 일할 수 있는 사회인가.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사회인가. 아이가 빼기를 못한다고 불안해하는 것은 이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을 아이가 못 맞추면 어쩌나 하는 마음 탓일 게다. 그렇다면 공부를 잘하고 세상의 눈높이에 맞추려 노력한다고 잘 살 수 있는 걸까. 사람값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시대다. 취업하고 결혼하고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아이를 갖는 것, 갈수록 이렇게 평범하게 살기도 어려운 사회가 되고 있다.

 

“뭐 어때, 결과는 내 몫이 아니야.” 내 일에 대해서는 한없이 쿨한 내가 왜 아이들 일에 대해서는 불안해지는가. 부모가 되고 보니 가장 괴로운 것은 아이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는 거였다. 인생이란 괴로움과 후회의 연속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내 아이는 그 괴로움과 후회를 통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불가능한 마음을 품고선 어떤 세상인가 올려다보면 불안은 계속 커지기만 한다. 남편에게 말했다. “부모가 되면서 사회를 다시 잘게 잘게 쪼개 먹는 느낌이야.” 어릴 땐 엄마가 비관적 전망을 말하면 화를 냈다. “엄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부모가 되어보니 엄마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자식이 어떤 일에 처했을 때 부정적인 경우의 수를 배제할 수가 없다. 어쩌면 사회를 좀 더 잘 알게 되어서일지 모른다.

 

이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못 맞출까
두려운 마음에 불안해지는 부모 마음
결국 그 불안을 가다듬는 게 숙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숙제는 불안을 가다듬는 것 아닐까. 어릴 때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 속에 자랐다. 이제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야, 어떻게 살고 싶어? 무엇이 너를 즐겁게 하고 어떤 순간이 너를 두근거리게 하니.’

 

이 질문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으려면 사람이 도구로 취급받지 않고 누구나 존중받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게 가장 아득하다. 이 아득함이 몰아칠 때 나는 가장 두렵다. 이 세상에 아이들을 내놓았다는 게.

 

<임아영기자 layknt@kyunghyang.com>

 

 

▲실컷 놀게 못 해줬나…자책한 아빠, 모든 위험 피하게 해주고 싶었다

 

둘째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올 때는 자주 자전거형 유모차에 태운다. 녀석과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일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지만, 아직 체력이 약한 녀석은 집에 끝까지 오지 못한다. 중간에 안아달라고 칭얼대기 마련이다. 안아주면 녀석을 바라보며 호흡을 느낄 수 있어 좋지만 맞다, 힘들다. 제법 무게감이 느껴져서 조금만 걸어도 팔이 뻐근하고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훌쩍 커버린 녀석은 이제 유모차는 안 타려고 하는데 다행히 자전거형 유모차는 잘 타려고 했다.

 

유모차 타고 집에 가는 둘째를 보며
말 건네는 아주머니 “걸어야 좋아요”
약하게 키운 건 아닌가 마음 무거워진다

 

어느 날도 자전거 유모차에 태워서 오는데 어떤 중년의 여성분이 말을 걸었다. “아이들이 걸어 다니면서 이것저것 보고 만지면서 사물을 느끼면서 가야지 지능이 잘 계발된대요.” 아마도 꽤나 큰 녀석을 자전거에 태워서 가는 모습이 마뜩잖게 보였나보다. “네, 제가 힘들어서 그래요.” 그날따라 짐도 많아서 낑낑대며 가는데 불쑥 화딱지가 났다.

 

퉁명스럽게 대꾸하고는 지나쳐 갔지만 불안감이 피어오른다. 둘째 또래 아이들을 보면 다들 걸어서 등·하원을 한다. ‘이 녀석, 너무 약하게 키우는 거 아닌가.’ 마음이 무거워진다.

 

원래도 불안이 많은 성격이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면 ‘혹시 떨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하는 나다. 첫째 아이가 갓 태어난 모습을 보고서는 ‘혹시 만졌다가 팔뚝이나 다리를 부러뜨리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10초 정도 안았다가 다시 장모님께 건네기도 했다. 이제 그런 걱정은 안 하지만 계속해서 다른 걱정들이 실타래처럼 끊어지지 않고 풀려나와서 뭉게뭉게 부풀어 마음속을 어지럽힌다.

 

아이를 낳으면서 공부 걱정은 안 할 줄 알았다. 잘할 거라 믿었다기보다는, 공부보다 세상에 중요한 게 많다고 생각했다. 공부에 매달리기보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막상 첫째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걱정을 놓지 못한다. 처음 참관수업에 들어가보니 아이는 좀체 선생님의 말에 집중을 못하고 자꾸만 나를 돌아봤다. 선생님이 하라는 건 하지 않고 몸을 비비 꼬기만 했다. ‘나는 저러지 않았던 거 같은데’ 하는 ‘꼰대’스러운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1학년 꼬마가 집중을 하면 얼마나 할 수 있었을까.

 

반대로 아이들을 실컷 뛰어놀게 해주지 못하는 건 아닌가 걱정도 한다. 두 녀석은 학교와 어린이집에 다녀온 뒤 놀이터에서 놀 때도 있지만 대부분 일찍 들어간다. 그런데 놀이터에서 만난 어떤 엄마는 벌써 4시간째 아이들을 바깥에서 놀게 해주고 있었다. 다 커서 아이들끼리 놀면 괜찮지만 어린 아이들은 계속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 ‘벌서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되면 저녁 먹고, 아이들 씻기고 재우고 하는 시간이 다 늦어져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 해주는 그분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친구들은 벌써 두 발 자전거 타는데
보조 바퀴 달고도 페달 겨우 밟는 첫째
몸 쓰며 놀게 해주지 못해 그런가 자책

 

나는 조금만 춥거나 덥거나 배가 고프거나 몸이 피곤하면 슬슬 ‘집에 가자’는 신호를 아이들에게 보낸다. ‘아빠 힘들어’라는 말을 달고 산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바깥 놀이가 늘 고픈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첫째의 친구들은 벌써 자전거를 보조바퀴도 떼고 타는데, 녀석은 보조바퀴 달린 자전거 페달도 겨우 굴린다. 줄넘기도 아직 서툰 것 같다. 본인도 그게 조금 속상하다는 뜻의 말을 언뜻 내비치기도 한다. 역시 밖에서 몸을 쓰면서 노는 걸 많이 못해줘서 그런가. 또 자책한다.

 

부모는 늘 무한책임이다. 한 엄마는 아이가 이마에 모기가 물렸는데 지나가는 할머니가 제대로 못 봤다는 식으로 얘기해 속상했다고 했다. “내가 얼마나 애지중지 키우는데…” 맞다, 정말, 얼마나 애지중지 키우는데.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지만, 뭔가 부족한 것 같으면 그 모든 게 다 내 책임인 것만 같다. 안 해주려고 안 해준 게 아닌데…. 가진 게 많아야 불안이 많다는데, 별로 가진 것도 없는 내가 세상에 제일 중요한 보물단지를 껴안게 됐다.

 

아이들은 강요한다고 따르지 않는다
부모는 ‘저렇게 살면 좋겠구나’라는
역할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면 그나마 낫다. 세상 자체가 불안으로 다가오면 그때는 무력감을 느낀다. 얼마 전 첫째가 다니는 학교에서 석면 제거 공사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반대 여론이 조성된다고 하자 왜 그런지 궁금해졌다. 관련 정보를 찾다보니 부실 공사도 생각보다 많았다. 만에 하나 공사 후에 석면이 0.00001%라도 남아 있다면… 그걸 아이들이 마신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왜 석면이라는 게 아직 학교에 남아 있는 걸까. 그래도 잘 감시하고 믿을 만한 업체에 맡기면 되지 않을까.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학부모들의 반대로 끝내 공사는 무산됐지만 아이는 앞으로도 내가 미처 몰랐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 배를 타는 일에 아무런 경각심이 없었던 것처럼. 플라스틱 남용이나 기후위기 문제처럼 뻔히 아이들에게 고통을 줄 것이 예상되지만 무력감만 느껴지는 미래도 있다. 결국은 다시 생각한다. 우리 아이만 모든 불안과 위험을 비켜나가 자라기를 바라는 건 허망하다는 사실을.

 

육아책을 보면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강요한다고 해서 절대 아이들이 그 말대로 따라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부모는 그저 저렇게 살면 좋겠구나 하는 역할 모델을 보여주는 게 최선이라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게, 공동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살아가는 것 그 이상은 없을 것이다.

 

<황경상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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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아영 황경상 기자의 폭풍육아 시즌2

임아영·황경상 기자는 11년차 입사 동기입니다. 두 아들을 낳으면서 부모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양육은 엄마가 주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왜 ‘반반 육아’가 중요한지 말하려 합니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자…아이에게도, 내게도 ‘엄마’가 생겼다

초등학교 1학년 첫째와 천둥벌거숭이인 35개월 둘째까지 돌보는 일은 지루한 육체노동이다. 한편으로는 머리 한쪽이 지끈지끈 아픈 뭉근한 감정노동이기도 하다.

 

남편이 육아휴직한 지 한 달이 지났다. 2주쯤 지났을 때 어느 퇴근길 집 근처에 와서 남편에게 전화했다. “남편, 나 맥주 한잔만 하고 갈게.” 대뜸 무뚝뚝한 답이 돌아왔다. “왜.” 얼른 저녁 시간대 육아를 분담하기 위해 집에 돌아오라는 뜻이다. 이미 집 앞이던 나는 더 신나서 말했다. “아니, 맥주 한잔하면서 잠깐만 친구랑 이야기만 하고 갈게.” 갑자기 남편의 목소리가 커졌다. 따다다다다. 우리 남편이 이렇게 말 잘하는 사람이었던가. “나 벌써 1층이야.” 나는 가부장 흉내를 내서 신이 났고 남편은 내가 무사히 육아를 하러 돌아온 것에 대해 안심했다.

 

“남편, 나 맥주 한잔 하고 갈게” “왜?”
나는 언젠가 한 번 꼭 해보고 싶었던
한국 사회 가부장 흉내를 내며 신이 났다

 

통쾌했다. 언젠가 한 번 꼭 내보고 싶었다. 한국 사회 가부장 흉내를. 한 여성 개그맨의 ‘가모장 개그’를 좋아했다. “조신하게 살림하는 남자를 원한다”, “어디 아침부터 남자가 인상을 써”, “남자의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패가망신한다는 얘기가 있다” 등등. 공감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비튼 말 속에서 가부장 언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 수 있었으니까. 평등한 삶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깔아뭉개지 않는 삶, 우리의 임금노동이 누군가의 무임금노동에 빚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삶, 임금노동 아래에서 허우적대는 돌봄노동을 인정하는 삶 아닐까.

 

아이를 낳고 퇴근 후 회식이 자연스러운 아빠와 퇴근 후 회식할 수 없는 엄마로 구분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애써왔다. 육아는 금을 그을 수 없는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내 어깨가 무거워지면 때로는 싸우기도 했고 때로는 사정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 기준에서 ‘착한 남편’도 언제나 최선을 다해왔다. 주로 싸움을 걸고 사정하는 쪽은 나였지만 흔쾌히 싸움을 받아주거나 사정을 받아주는 것조차 고마웠다. 그래서 남편의 육아휴직을 결정할 때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남편의 육아 경력은 내 육아 경력과 같다. 참을성을 필요로 하는 일에는 나보다 남편이 훨씬 낫다. 길지 않은 육아휴직 기간 원래 해왔던 대로 하는 것인데 뭐가 크게 달라지랴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상의 결은 달라졌다.

 

남편이 만든 밥을 먹는데 기분이 묘하다
엄마 밥에 대한 향수가 개운치 않았던 건
숨겨진 돌봄노동의 실체 때문이었다

 

남편이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먹는데 기분이 묘했다. 시간거지인 맞벌이 부부라 평소 자주 음식을 사 먹었지만 가끔 요리라는 것을 하는 사람은 주로 남편이었다.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휴직 후 먹는 밥은 달랐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 남편이 마파두부밥과 참치전을 해놨다. 원래 손으로 뭔가를 빚어내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요리를 즐거워했지만 아침을 먹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먹고 싶었던 ‘엄마 반찬’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해준 고등어조림이 정말 맛있었는데.” 며칠 후 일하고 있는데 남편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고등어 샀어.”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주라고 남편의 육아휴직을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내게도 엄마가 생겼다. 늘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셔서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이 있는 게 훨씬 마음이 편했다. 우선 남편은 젊고 힘이 세니 아직 천둥벌거숭이인 35개월 둘째를 맡기기도 미안하지 않았고 사실 육아는 우리 둘의 일이라 미안할 이유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엄마가 생겼다’고 느낀 지점은 아마 ‘밥’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니 ‘밥을 해주는 엄마’가 생겼다. 결혼 후 늘 그리워하던 매일 아침밥을 차려주는 엄마. 따뜻한 엄마 밥.

 

남편과 역할을 바꾸면서 든 생각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돌아가는 삶 말고
서로서로 챙기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

 

며칠간 밥을 얻어먹고(?) 출근하는데 이상하게도 개운치 않았다. 엄마 밥에 대한 향수가 왜 개운치 않을까. 답은 쉽게 찾았다. ‘여전히 나도 누군가 돌봐주는 삶, 누군가 뒤치다꺼리를 다 해주는 삶, 자고 일어나 누가 차려준 밥을 먹고 나오는 삶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구나.’ 결혼하고 나서야 가사노동이 무엇인지 배웠고 아이를 낳고서야 돌봄노동의 실체를 알게 됐다. 이전의 나는 1인분의 삶을 살지 못했구나 하는 깨달음. 남편이 다시 내 뒤치다꺼리(?)를 해주니 안온해졌다. ‘임금노동에만 신경쓰면 되는 삶이 이랬었지.’

 

언젠가 동네 친구가 말했다. “가끔 자신은 집에서 노예라는 생각을 한다”고. 다른 엄마가 말했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삶과 사회를 논할 수 있었던 것은 밥을 차려준 노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가끔 기저귀를 한 번도 갈아보지 않았을 것만 같은 자들의 칼럼을 읽다 보면 묘하게 우울해졌다. ‘이런 생각할 여유가 있어서 좋겠다.’

 

나만 노예가 되지 않는 삶을 살면 될까. 우리 모두 노예가 되지 않게 서로의 돌봄을 나누는 사회가 좋은 사회 아닐까. 우리 모두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주겠다는 마음으로 돌봄의 영역을 나눠야 하는 것 아닐까. 남편과 역할을 바꾸면 신이 나기만 할 줄 알았다. “남편 좀 풀어주라”는 말이 너무 싫어서 남편 앞에서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역할을 바꿨으니 너도 고생해봐라’라는 독한 마음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데 결국 돌아가는 답은 거기다. 1인분의 삶을 살기 위해 귀찮은 일들은 누군가에게 떠넘기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누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고고한 말을 하는 삶 말고 서로서로 밥을 챙겨주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

 

<임아영기자 layknt@kyunghyang.com>

 

 

▲지루한 육체노동이지만…이 뭉클함 없인 인간은 반쪽 아닐까

“아빠 무서워~ 저기서 안 잘 거야.”

둘째가 매일 자던 창가 쪽 침대에서 건너와 내 옆에서 잔다고 한다. 좁은 자리에 녀석의 몸을 꼭 끌어안고 모로 누웠다. 따뜻하고 달큼했다.

 

이러다 내 삶이 사라질까 조바심 들지만
작은 일에도 손뼉을 치는 첫째의 표정에
그간 느끼지 못했던 뿌듯함을 느낀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일 없이 허무했다. 뭔가 그리우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누군가 만나고 싶으면서도 막상 만나고 싶진 않았다. 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열망했고, 헛헛한 속을 술로 달래기도 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어갈 틈조차 없다. 첫째와 둘째, 늘 이 녀석들이 내 삶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간인지라 이기적인 생각도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 자신의 삶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든다. 그러다가도 처음으로 아주 간단한 컴퓨터를 가르쳐줬더니 손뼉을 치며 깜짝 놀라는 첫째의 표정을 보며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종류의 뿌듯한 감정을 느낀다. 그저 아무렇게나 볶아서 만든 스파게티를 싹 비워버리는 둘째의 입을 바라보며 이것 외에 내 인생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아침밥을 먹이고, 씻기고, 빨래하고…
반복되는 일상, 생사 다투는 큰일은 없다
그저 작은 틈을 매일 메워 갈 뿐이다

 

녀석들을 돌보는 일은 지루한 육체노동이다. 누군가 내게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농담 삼아 ‘물병 씻기’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이들 물병에는 보통 빨대가 달려 있어 물을 먹이기에 편리하지만 매일 씻어야 한다. 하루라도 안 씻으면 물때가 뿌옇게 낀다. 시커먼 곰팡이까지 생긴다. 씻기는 번거롭다. 빨대와 물통 뚜껑을 일일이 분해해야 한다. 빨대 속은 솔질도 해 줘야 한다. 그러나 씻은 물병에는 머지않아 다시 물을 담아야 한다. 빨대 물병 시기는 지나갔지만 여전히 두 개의 물병을 씻는 일은 주요 일과다.

 

반복되는 일은 많다. 매일 아침밥을 먹이고, 이를 닦이고 씻기고, 가습기 물을 갈아주고 빨래도 해야 하고… 별것 아닌 일인데 매일 같은 반복에 지치기도 한다. 시시때때로 창궐하는 물때와 곰팡이야말로 하루하루 닥쳐오는 일상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생사를 다투는 큰일은 없다. 찬란한 기쁨이나 즐거움도, 견디지 못할 분노와 한숨도 없다. 그저 작은 틈을 매일 메울 뿐이다.

 

그것도 엄살이다. 첫째가 유치원에 다닐 때 한 달에 한 번 현장학습을 나가면 김밥을 싸 주었다. 아침에 김밥을 싸는데 갑자기 눈물이 난 적이 있다. 급식을 시작했던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매일같이 점심·저녁 도시락을 챙겨주셨던 어머니가 생각나서다. 나는 겨우 하루치 도시락만 준비해도 이렇게 진이 빠지는데 어머니는 도대체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견뎌 오셨던 걸까. 일까지 하시면서.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다. 언젠가 이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니가 “네가 인제 그걸 알았냐”며 눈물을 살짝 글썽이기도 하셨다.

 

가끔 삶의 끝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이 작은 녀석들을 보듬어 안는다
찰나인 이 때를 내 삶에 흠뻑 적시기 위해

 

육아는 머리 한쪽이 지끈지끈 아픈 뭉근한 감정노동이기도 하다. 녀석들은 내 아이들이지만 엄연한 타인이다. 그걸 알면서도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데 때로는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소리도 지르게 된다. 그러고 나면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하는 자괴감에 빠진다. 늘 내 바닥을 들여다보는 일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이 타인을(꼭 아이가 아니더라도) 돌봄으로써, 혹은 돌봄을 받으면서 느끼는 어떤 뭉클한 감정을 생각하지 못하고서 인간은 여전히 반쪽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한다. 아무런 보답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 몸이 아닌 타인을 챙겨주고 닦아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하는 그 행위는 어쩌면 인간의 영혼을 씻어주는 종교의식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는 예쁘게 핀 길가의 꽃잎에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고, 빈 담뱃갑을 구기지도 않고 땅바닥에 떨궈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한 번도 타인을 돌봐준 적도 돌봄을 받았다는 사실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일 테다.

 

녀석들은 되레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내일 가져갈 준비물을 밤에 정리해 두겠다고 하자 첫째가 말한다. “아빠, 그러면 잠 오지 않겠어?” 아이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바라보고 다시 한번 꼭 껴안는다. 신현림 시인은 <침대를 타고 달렸어>라는 시집에서 딸의 일기 중 이런 구절을 인용한다. “엄마, 화나고 슬프고 외로우면 나한테 말해. 내가 도와줄게 내가 웃겨줄게 내가 얼마나 웃기는데.” 시인은 “너를 안으면 다시 인생을 사는 느낌”이라고 썼다.

 

아이들 책을 읽어주면서 옥수수에 대한 설명을 봤다. 보통 우리는 옥수수 수염을 그저 쓸모없는 털이라고 생각하거나 ‘옥수수 수염차’ 정도만 떠올린다. 그 수염은 사실 한 올 한 올이 다 꽃이다. 그 한 올 한 올 수염마다 옥수수 알이 하나씩 맺힌다고 한다. 생각 없이 씹었던 옥수수 알 하나도 쉽게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

 

늘 옥수수 알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수염이, 아니 꽃이 되어 아이들을 낳고 품어내는 시간을 겪고 있다.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가끔 삶의 끝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이 작은 녀석들을 보듬어 안는다. 이렇게 안고 있을 수 있는 순간, 아주 짧은 이 순간을 내 삶에 흠뻑 적시기 위해서. 그래서 언젠가 아이들이 모두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고 헛헛해지더라도 그 얼룩이라도 얼굴에 대고 비볐으면 하는 바람에서.

 

<황경상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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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디 2019.05.02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따뜻한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사실 전 임아영 기자님이 블로그로 글을 쓰신 초반부터 열심히 읽었던 초기 독자고 <이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됐다>를 주변 지인에게 널리 추천하는 25살 여성이기도 합니다. 기자님의 글을 읽으며 돌봄노동이 얼마나 공적 논의에서 배제되어왔나 크게 깨달았어요. 폭풍육아라고 할 만큼 고된 노동을 이렇게나 내가 몰랐나, 우리 사회는 얼마나 돌봄노동을 비가시화했던 걸까 깨달을 수 있었어요. 기자님과 동갑이신 고등학교 은사님이랑 대화했었는데 육아를 사회적 문제로 의제화한 책이 나왔다는 것에 매우 반가워하시더라구요.
    댓글을 쓰는 오늘은 노동자의 날입니다. 한국사회의 장시간 노동체제가 바뀌길, 돌봄노동이 사회화되길 고대하며 함께 참여할게요. 늘 건강하시길!

    • 임아영 2019.05.10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 감사합니다. 초반부터 열심히 읽으셨다니 감동 ㅠㅠ

      여성들이 주로 해왔던 일이라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일로 취급돼 온 거라는 생각을 저도 아이를 낳고서야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돌봄노동에서 배제되어온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도 의문스러웠고요. 아이를 낳고서는 어떤 '균형'이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게 됐는데... 아이와 나, 또 나와 남편, 또 일하는 나와 돌보는 나, 또 엄마인 나와 기자인 나와 또 시민인 나 등등등.

      맞벌이 부부가 문제이니 다시 여성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답이 될 수 없고... 결국 남성, 여성 모두 균형을 이루는 삶을 우리 모두 쟁취해야 하는 것이 아닐지...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장시간 노동체제를 바꾸고 가부장적인 노동 구조를 바꾸고 또 돌봄노동을 모두가 나누는 평화로운 사회를 꿈꿔봅니다 ㅎ 감사해요!! 주말 잘 보내시고요^^

3월 벼락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다. ‘돌봄 공백이 전면화되는 초등 1학년’, ‘경력단절여성이 가장 많이 생긴다는 초등 1학년’, ‘엄마가 아이보다 더 바쁜 초등 1학년’에 대한 악명 높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걱정이 컸다. ‘실제 그 정도는 아니겠지’ 기대했지만 아이를 초등학교에 며칠 보내보니 결론은 ‘역시 그런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어’였다. 첫째 주 금쪽같은 휴가를 쓰며 두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부터 시작해 매일 준비물과 아이 할 일을 챙겼다. 겨우 3일이 지나자 목이 쉬어버렸다. “아, 내가 초등학교 가는 게 낫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던 일주일이었다. 이제 입학 후 할 일은 대충 끝났을까. 안타깝게도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둘째 주부터는 남편이 수행 중이다. 3월이 지나면 좀 나아질까?


 

돌봄 공백이 전면화 되는 초등 1학년
아이보다 엄마가 더 바쁘다는 이야기
설마했는데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월요일에 입학식이라니 선생님들도 전쟁일 거야.” 교사인 친구가 말했다.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입학식을 하면 하루 이틀 지나고 주말이 오니까 좀 여유를 가질 수 있는데 월요일에 입학식을 하면 5일 내내 아이들과 적응해야 해서 선생님들도 힘들다는 얘기였다. 1월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내러 학교에 갔을 때 초등학교 입학 안내 설명서를 받아왔다. 3월4일 입학식, 6일 학부모 연수. 입학식은 오전 11시, 학부모 연수는 오전 10시. ‘아니, 처음부터 이렇게 행사가 많다니.’ 이틀을 연차 낼 바에는 입사 10년이 되어서 쓸 수 있는 근속휴가를 이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입학식이 지나고 새로 알게 된 것은 3월에 또 학부모 총회, 반 모임, 학부모 상담 등이 이어진다는 사실이었다. ‘아, 왜 3월에 다 몰려있는 걸까.’


 

올해 초등학생이 된 8세 첫째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4세 둘째가 함께 집을 나섰다. 혼자 걸어다닐 수 없는 나이의 아이들과 함께 등·하교를 하면서 집과 학교, 집과 어린이집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부모의 시간은 금세 간다.

지난해 첫아이를 입학시킨 친구가 말했다. “회사에서 남은 육아휴직을 못 쓴다고 해서 3월에 회사 다니며 무슨 정신으로 초등학교를 보냈는지 모르겠어. 돌봄교실 추첨도 떨어져서 피아노, 태권도, 영어학원을 시간표 짜서 다니게 했는데. 셔틀을 탈 수 있는 학원을 등록하니까 더 비싸지는 거야. 근데 내가 아이 교육열이 엄청나서 그러면 돈이라도 안 아까울 텐데.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어하면 너무 괴롭더라고. 그래서 어찌어찌 1년이 갔네. 2학년 되면 좀 나아져.”

 

올해 초등학생이 된 8세 첫째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4세 둘째가 함께 집을 나섰다. 혼자 걸어다닐 수 없는 나이의 아이들과 함께 등·하교를 하면서 집과 학교, 집과 어린이집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부모의 시간은 금세 간다.


 

방과후 수업 등록은 수강신청보다 긴장
아이들은 왜 이렇게 일찍 집에 오고
챙겨야할 준비물은 어찌 이리 많은지…

 

■입학 첫 주에 해야 하는 일들


 

입학식 날 중요한 미션은 ‘방과후 수업 등록’하기였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너무 일찍 집에 온다. 월·수요일은 오후 12시40분에, 화·목·금요일은 오후 1시40분에 하교한다. 유치원, 어린이집 시절보다 빠른 하교. 집에 오는 시간을 늦춰야 했다. 1학기에는 다행히도 남편이 육아휴직을 할 수 있지만 2학기부터는 어차피 매일 ‘학원 뺑뺑이’를 돌아야 하니까.


 

보육을 빙자한 학원 뺑뺑이가 눈앞에 와 있는 순간. 사교육비 지출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방과후 수업 등록은 아주 중요한 ‘미션’이었다. 입학식 때 받은 방과후 수업 안내 책자에서 들을 수 있는 수업을 확인하고 그날 오후 8시부터 선착순으로 등록하는 구조다. 매일 듣도록 시간표를 짰다. 수업 종류는 로봇공학, 드론항공, 종이접기, 마술 등 다양했다. 아이가 관심 가질 법한 것들을 체크하고 아이에게 어떤 수업을 듣고 싶으냐고 상의한 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간표를 만들었다.


 

‘이대로 다 집어넣을 수 있어야 하는데….’ 오후 7시50분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대학 수강신청 때도 이렇게 긴장해본 적 없건만. 8시 정각이 되자 ‘빛의 속도로’ 클릭했다. 경쟁률이 높을 것 같은 수업부터 집어넣었지만 1개는 튕겼다. 재빨리 2순위 수업으로 신청하고 나니 몸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 다행히 방과후 수업을 다 넣으니 2시30분, 3시10분으로 하교 시간이 조정됐다. 여전히 퇴근 시간이 오후 8시쯤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시간이 너무 남는다.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있는 삶이 풍요롭겠지’ 생각하며 집 앞 피아노학원을 아이와 함께 가봤다. 다행히 아이가 피아노에 호기심을 보였다. 이제 대략 유치원 다니던 시절과 비슷하게 집에 오는 시간을 맞춘 셈이다.


 

하교 시간 맞추는 것만큼 중요한 미션이 ‘준비물 준비하기’였다. 어린이집, 유치원 시절에도 3월 준비물은 있었지만 초등학교에 가니 규모가 달라졌다. 입학식이 끝나고 당장 다이소로 향했다. 색연필, 사인펜, 크레파스 연필, 자, 지우개, 딱풀, 가위, 스카치테이프, 휴지, 물티슈, 개인 빗자루, 실내화 등등. 모든 물건에 이름 표시를 해야 한다고 해서 견출지도 샀다. 초보 학부모가 늦었는지 이미 12색 색연필, 24색 크레파스는 품절이었다.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SOS를 했고 남편은 광화문에서 색연필과 크레파스를 구했다. 집에 와서는 준비물에 이름표 붙이기 시작. 붙여도 붙여도 끝이 없는 이름표 붙이기. ‘사인펜에는 뚜껑이 왜 이렇게 많은가.’ 무념무상 이름표를 붙이고 실내화와 겉옷 등에도 네임펜으로 이름을 썼다. 야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색연필에 이름표를 붙이면서 말했다. “아니 이런 걸 다 챙겨주지 못하는 부모들은 어떡해?” 얼굴 모르는 아이들이 떠올랐다가 금세 사라졌다.


 

주양육자로 육아전쟁을 시작한 남편
등교·청소·하교…결국 녹초가 된다
그래도 분담이 가능한 우리는 운이 좋다

 

■아빠도 뻗어버린 육아

 

바통 터치하듯 첫 주가 지나자 남편이 주양육자가 됐다. 남편이 본격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이틀째. 집에 들어가니 집 안이 온통 장난감 천지였다. “아니, 집 청소 좀 하지.”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먼저 말이 튀어 나와버렸다. 그 순간 첫째가 말했다. “아빠는 정리도 안 하고 잤어. 놀아주지도 않고 누워서 잤잖아.” “뭐? 놀아주지도 않았다고?” 남편은 억울해했다. “너무 피곤해서 잠시 30분 누웠던 걸….”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남편은 아이들 등교, 등원시키고 화장실 청소를 했고 설거지를 했고 12시30분에 하교하는 첫째를 데리러 가서 운동장에서 놀아줬다. 동네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지금 애들이 두진 아빠를 적으로 상정하고 놀고 있어.” 회사에서 나는 그 장면을 상상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 중 아빠는 남편뿐이었을 거다. 아이들은 한 명 있는 신기한 아저씨를 적으로 생각하고 달리며 놀았겠지만 남편은 쓸쓸하지 않았을까. ‘아빠 육아’를 소재로 취재할 때마다 들었던 얘기다. “육아 동지가 없어서 외로웠죠.” 외로운(?) 남편은 아이들을 차례로 집으로 데려와 준비물을 챙기고 저녁을 먹였을 것이다.


 

퇴근 후에도 일은 이어진다. 나는 퇴근 후 쌀을 씻고 전기밥솥에 밥을 안치고 몇 가지 집안일을 했다. 학교 알리미 서비스를 엄마·아빠 둘 다 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학교에 제출해야 한다는 예방접종 기록을 확인하고 나니 어느새 9시가 넘었다. 남편이 멍한 눈으로 소파에 앉아 있기에 “남편, 애들 씻겨야지”라고 했다. 남편이 좀 피곤해 보였지만 한 명씩 애들을 맡아 씻기고 책을 읽어주고 재웠다. 10시 반 어제오늘 아이들 지낸 이야기를 물어보려 했으나 남편은 코 고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잠에 빠져 있다. 혼자 일어나서 맥주 한 캔을 마셨다. 남편이 주양육자가 되면 통쾌(?)할 줄 알았는데…. ‘남편도 내가 육아휴직하며 지냈던 생활을 짐작하게 되겠지. 그래도 신생아 키우는 것만큼 힘들겠어?’ 했었는데 쓰러져 자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그래 얼마나 힘들었겠니’ 묘한 동지의식이 피어올랐다.


 

그래도 할머니에게 육아 부담을 지울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다. 30대 부모가 해도 ‘빡센’ 이 초등 1학년 학부모 노릇을 할머니가 했다면. 그리고 남편이 안쓰럽대도 미안하진 않으니까. 남편이 육아를 담당하는 동안은 미안해하며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니까. 두 아이를 기르는 것은 ‘우리의 일’이니까. 그래도 첫 주에 휴가를 낼 수 있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우리 부부의 경우는 운이 좋은 경우다. 육아휴직도 못 쓰고 돌봄교실도 못 보내 막막한 경우가 더 많을 테니.


 

■부모가 학교 일에 참여한다는 것


 

“두진이 엄마, 학부모 총회에 두진이 아빠가 오는 거 아니죠? 꼭 엄마가 와야 해요.” 친한 엄마가 얘기했다. 물론 그런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가 와도 상관없는 자리지만 다들 엄마가 오는 자리에 아빠가 오면 어색해진다는 뜻일 거다. 그 말의 뜻을 너무 잘 알기에 남편에게 가라고 하기 어려운 마음이 올라왔다. 학부모 총회 때 반 대표를 뽑고 반 모임이 결성된다고 들었다. 녹색어머니회, 학교 내 봉사활동 등 학부모들이 나눠서 할 일이 분배되는 때도 그때다.


 

학부모 총회·녹색어머니회…다 엄마 몫
여전히 아빠가 끼어들기 어려운 구조
맘 편히 학교 갈 수 있는 날은 언제 올까

 

입학식과 학부모 연수를 끝냈는데도 학부모총회, 반모임, 학부모상담이 남아 있다는 게 부담스럽다. 학교 일에 얼마나 참여하는 것이 좋은 걸까. 유치원을 보내며 운영위원을 2년간 했다.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 회의 때마다 예·결산부터 급식까지 안건대로 심의했고 유치원이 운영되는 구조, 아이들의 교육 흐름, 그리고 유치원 원장·원감선생님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회사를 ‘쉬는 금요일’이면 쉬고 싶었지만 운영위 회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아이의 교육에 대해 다른 각도로 생각할 힘이 생겼다. 유치원 선생님들을 이해하게 됐고 선생님들과 더 좋은 교육을 논의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아이의 요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간간이 들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극성스럽게 아이 뒤를 따라다니는 부모보다 학교 일에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부모가 많아져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려면 아이 학교에 갈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생겨야 한다. 첫째와 같은 반이 된 동네 엄마가 3일간 조금 늦게 출근할 수 있게 배려받았다고 이야기하면서 말했다. “부장님이 양해해주셔서요.” 한국에서 아이 학교 일에 참여하는 것은 여전히 양해받아야 하는 일이다. 그 양해받아야 하는 일조차 엄마들에게 다 몰려있는 현실. 녹색어머니회라는 이름에서부터 다 ‘엄마’ 몫이다. 이렇게 엄마가 다 하라고 하면 아빠가 참여한대도 끼어들기 힘든 구조. 북유럽 육아 문화를 다룬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한국인 PD가 사무실의 빈자리를 가리키며 왜 비었느냐고 물었다. “아이 농구대회 응원하러 갔어요.” 자녀의 농구대회로 회사 휴가를 내는 게 가능해지는 사회는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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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으면 어른 된다’는 말이 싫었다. 인간의 성장이나 성숙이 그런 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은 이후 나는 많이 변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 자체가 달라진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각도에서는 보수일 수도, 어떤 각도에서는 진보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에 대한 판단은 미루고 싶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이를 낳은 후의 나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20대의 나는 자주 손끝이 차가워질 정도로 불안해했다. 아이를 낳은 30대의 나는 그런 20대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이가 내 불안을 줄여준 것인지, 엄마 노릇을 하기 위해서, 아이에게 불안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달라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아이를 낳고 훨씬 안정됐다.


 

육아로 성취의 삶 멀어질까 두렵던 나
그런데 성취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사회가 주입한 메시지, 틀렸음을 알았다

 

물론 육아는 힘들었다. 아이는 24시간 나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였다. 자는 시간마저 온전히 확보되지 않자 아이를 돌보기 위한 준비가 하나도 돼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도 나 외의 존재를 온전히 돌본 적이 없었구나. 이런 종류의 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운 적도 없었구나.’ 몸이 ‘돌봄의 하루’에 적응하면서 ‘돌보는 존재’를 배워가자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삶은 무엇인가. ‘아이를 낳게 되면 모든 것이 멈춰지는 게 아닐까’ 두려워했었다. 육아휴직 전 나는 ‘아이를 기르는 동안 성취의 삶과는 멀어지겠지만’이라고 적었었다. 그런데 그 ‘성취’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성취인가. 아이를 낳고 나는 그동안 주입받아왔던 사회의 메시지가 틀렸다는 것을 확신했다.


 

 

결혼한 지 7년,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애를 써온 남편은 3월부터 육아휴직을 한다. 주 양육자가 되는 것이다.

■ 누군가를 돌보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

첫아이를 낳고 아이를 돌보는 일이 벅찰 때였다. 어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심지어 혼자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아기를 보고 두려웠을 때. 어느 날 횡단보도 앞에 섰다. 맞은편에 십여명의 사람들이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울컥했다. ‘저 사람들도 내 아기처럼 아기였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우리 모두 언젠간 아이였고 누군가의 도움, 돌봄 없이는 클 수 없는 존재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횡단보도에 서 있던 나는 파란불로 바뀌자마자 달려서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를 돌보러 얼른 가야 할 것 같아서.


 

언젠가 노인이 되어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살 수 없는 시절이 올 것이다. 아주 조금 겸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이라는 미숙한 존재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해도, 아무리 높은 지위로 올라가도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아이를 낳기 전에는 성취의 메시지에 가슴 떨린 적이 많았다. 잘하고 싶었다. 일도, 일 밖의 것들도. 그것들이 나를 괴롭혀도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그 성취는 누구의 기준인가? 그 기준에 따르면 아이를 키우는 것은 성취가 될 수 없었다. 달리고 또 달려서 높이 올라가려는 남성의 삶을 지향한 것은 아니었을까. 임신하고 배가 나오니 달릴 수 없었다. 아이를 안고서도 달릴 수 없었다. 달릴 수 없는 삶은 후퇴한 삶인가? 주로 여성들이 해온 출산, 양육의 가치를 폄하해온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회사에서부터 대중매체, 정치권까지 아이 기르는 삶을 폄하하는 말은 곳곳에 있었다. 기저귀도 한번 갈아보지 않은 자들이 ‘기저귀를 갈고 아이 엉덩이가 짓무르지 않게 노력하는 삶’을 깔아뭉갤 때 생각했다. ‘뭔가 잘못됐구나.’


 

아침에 아이들이 파고드는 행복한 시간
아이가 필요로 할 때 멈춰서며 배웠다
꼭 성취 위해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사실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세상이 ‘기저귀 가는 삶’을 무시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다르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다르게 살겠다고 아등바등한 결과는 나 또한 기저귀 가는 삶을 무시해왔다는 슬픈 깨달음이었다. 아이가 내게 알려줬다. ‘엄마, 나는 엄마가 필요해요.’ 아이의 눈빛이 나를 필요로 할 때마다 나는 주춤했다. 멈춰서야만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평온해졌다. 달리지 않아도 되어서가 아니었을까. 이제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침에 일어난 작은 아이들이 내 품에 파고들 때다. 이 행복을 왜 나는 밀어내려고 했을까. 아이를 낳기 전의 내게 말해주고 싶다. 꼭 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가 사뿐사뿐 걷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어릴수록 걸음에 몸무게를 싣는다. 20㎏이 넘는 첫째보다 13㎏에 불과한 둘째의 발소리가 훨씬 크다. 사뿐사뿐 걷는 것도 배워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이런 작은 것들을 배워왔다는 사실을 아이들을 통해 배운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심어주려고 했던 모성은 여전히 내게 없지만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스스로 내 모성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어쩌면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이렇게 모성을 긍정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아이를 낳은 이후의 내가 더 좋다. 내가 모성을 긍정하는 이유다.


 

■모두가 돌봄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회

내가 모성을 긍정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남편 덕분이다. 결혼한 지 7년이 지난 지금 남편은 이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애써왔다. 돌볼 시간을 내주지 않는 사회에서 남편과 나도 많이 싸웠다.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전쟁이니까. “남편 좀 풀어주라”는 농담 앞에 속수무책이 되어버릴 때도 많지만, 또 어떤 날은 남편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잖아’라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으면 힘이 빠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남편과 논의한다. ‘여성의 전유물인 돌봄’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함께하는 돌봄’으로 ‘서로돌봄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믿으니까.


 

한국에서 남성이 ‘돌보는 존재’ 된다는 것
벅차고 힘들지만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그렇게 ‘서로돌봄의 사회’로 나아가기를

 

남편이 3월부터 육아휴직을 한다. 남편이 주 양육자가 되는 것은 처음이다. 오랜 시간 아이 둘을 돌봐온 친정엄마의 무릎이 탈이 났고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오전 11시40분에 하교한다. 선택지가 없고 너무 당연한 결정이라 생각하지만 결정은 쉽지 않았다. 당장 경제적인 상황을 걱정해야 해 오래 육아휴직을 쓸 수는 없다. 길어도 6개월만 쓰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남편에게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돌봄을 전담하는 존재일 때만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의 결이 남편에게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줄 것이다. 남편이 돌봄의 기쁨을 많이 누리길 바란다. 내가 육아휴직을 했을 때 그랬듯이.


 

그럼에도 한국에서 남성이 ‘돌보는 존재’가 되는 것은 여전히 벅찬 일일 것이다. 걱정하는 내게 남편이 자신의 지난해 일기를 보여줬다.


 

“두 돌이 다 되어가는 이준이는 어느새 제법 말을 한다. ‘아빠 미워!!’ 이준이는 얼마 전부터 단것을 못 먹게 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못 갖고 놀게 하거나 하면 이런 말을 한다. 어제는 친구가 갖고 온 장난감을 하염없이 갖고 놀기에 이제 자자 했더니 ‘시러. 여기 더 있스 거야’라고 한다. 어제 아침에는 녀석을 안고 교차로에 서 있었다. 햇살은 눈부셨고, 녀석과 손을 잡고 어린이집까지 걸었다. 이준이 녀석과 손잡고 걸으면 좋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녀석의 작은 손을 잡고 걷는 일 자체가 좋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귀여워한다. 한참을 손잡고 같이 걷던 녀석은 갑자기 ‘아나저요’라고 한다. 번쩍 들어 안아준 녀석이 내 품에 폭 안긴다. 폭 안긴 녀석을 안고 봄날 가로수의 연둣빛으로 가득한 교차로를 바라보고 서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인생의 짧은 순간은 그렇게 간다. 그날따라 이준이는 어린이집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며 울었다. 울지 않아도 녀석이 빠빠이 하며 손 흔드는 모습만 봐도 늘 가슴이 아팠다. 녀석의 손은 늘 내 가슴을 휘저어 놓곤 했다. 아, 그냥 녀석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 전체를 봐선 나은 일 아닌가. 두진이 때도 똑같이 들던 생각이다. 못난 아빠는 또 이렇게 글을 남긴다.”(2018년 5월11일)


 

남편의 일기를 읽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린이집에서 아이에게 손을 흔들 때마다 느꼈던 감정을 남편도 느끼고 있었다는 것, 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인생 전체를 봐서는 나은 일이 아닐까 고민했던 것 모두 나와 너무 똑같아서. 잠을 하도 안 자서 애먹였던 아기 두진이는 이제 엄마를 걱정해줄 줄 아는 어린이가 됐다. 어제 둘째의 장난으로 머리를 꽈당 박은 나는 머리를 감싸고 엎드려 있었다. 두진이가 내게 와서 “엄마 괜찮아?”라며 짧은 팔로 나를 안고 ‘호호’ 불기 시작했다. “엄마 괜찮아질 거야. 금방 괜찮아질 거야.” 언젠가 자신에게 건넸던 말들을 내게 돌려주는 아들의 얼굴을 보는데 ‘내가 너를 돌보는 것인가, 네가 나를 돌보는 것인가’ 눈물이 나려 했다. 남편도 비슷한 경험을 했나보다.


 

걱정하는 내게 남편이 보여준 육아일기
아이를 통해 배우고 위로받던 내 모습이
그의 일기 안에도 고스란히 들어있다

 

“두진이가 오늘은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힘이 센데 왜 힘들어해?’ 청소기를 돌리면서 꽤나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나보다. ‘그러게. 힘이 센데 왜 나는 힘들어하고 있을까.’ 몸이 너무 피곤하다. 오후 4~5시만 되면 뇌가 흐물흐물해져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애들을 볼 때도 별일 아닌데 소리를 빽 지르고는 금세 후회를 한다. 오늘도 잠자리에서 녀석의 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미안해 두진아, 너한테 더 사랑을 줘야 하는데… 아빠가 사랑하는 거 알지?’ 물론 녀석은 듣고도 암말도 않는다. 자면서 가끔 녀석의 손을 만지작거려본다. 너무 작고 부드러워서 부서질 것만 같았던 손은 제법 두툼해졌다. 최근에 장인어른이 백내장 수술을 하셨다. 어디선가 그 말을 들었나보다. 몇 주 전인가, 책을 읽어주는데 갑자기 ‘아빠는 수순하지 마’ 이런다. 뭔 말인가 싶어서 몇 번 다시 물어보자 ‘눈 많이 써서 아프면 안돼’라고 말한다. 아빠는 수술하지 말라는 얘기였던 거다. 수술이 뭔지도 모르는 녀석이… 마음이 뜨끈해졌다.”(2018년 4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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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es 2019.02.26 2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너무 좋아요.. 출산 후 육아분담 계획 세우는 중인데 흘러흘러 이 곳을 발견했어요. 저도 워킹맘 이란 단어를 증오하는 사람이예요. (여자에게 가사육아노동과 근로노동을 떠넘기는 느낌이랄까?)
    기자님처럼 저도 아기라는 인생의 첫경험을 남편과 온전히 함께하고 싶네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9.03.03 15: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워킹맘은 엄마들한테 모든 것을 전가하는 말이지요. ㅠㅠ 저도 웬만하면 워킹맘이라는 말을 안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육아분담 계획을 세우고 계신다니... 파이팅입니다!! 많은 순간 지치고 멈춰서고 싶을 때가 있으시겠지만 그래도 아기를 보며 힘내시길요. 앞 문장을 쓰고 나니 많은 일들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저는 아이 낳은 후의 제가 더 좋아요. 엄마든, 아빠든 아이 낳은 후의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댓글 감사합니다.

“위 아동은 초·중등교육법 제13조에 의하여 아래 학교에 배정되었사오니, 이 통지서는 취학할 초등학교의 예비소집에 참석할 때 지참하시기 바랍니다.”


 

야근 후 집에 돌아오니 탁자 위에 ‘취학통지서’가 놓여 있었다. 아, 꼬맹이가 벌써 ‘초딩’이 되다니. 아이를 낳은 게 엊그제 같은데 학부모가 되다니. 태어날 때 신장이 54㎝였던 아기는 이제 2배 이상 자라 120㎝를 넘어섰다. 이제 두 팔로도 안기 힘들어진 첫째가 가끔 31개월 된 둘째처럼 안아달라고 하면 곤란해진다.


 

“두진아 엄마가 안아주고 싶은데….” 못내 미안해져 잠깐 업으면 첫째는 “엄마가 힘들어하니 내려올게”라며 의젓하게 군다. 이렇게 의젓하게 굴 정도로 커버린 내 아이가 이제 ‘학생’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학생’이 된다는 게 너무 짠하다. 한국에서 학생이 된다는 건 적어도 내겐 ‘경쟁 시스템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느껴진다. 겨우 만 6년1개월 산 어린이인데 ‘경쟁’이라니.


 

마냥 꼬맹이같던 첫째가 ‘초딩’이라니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는 세상에서
아이가 클수록 내 가슴은 불안을 품는다


 

2012년 태어난 첫째는 예민한 아기였다. 많이 울었고 엄마 품을 떠나는 걸 두려워했다. “울지마 아가야. 엄마 여기 있잖아.” 조리원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아기를 내 배 위에 눕혀 재워야 했다. 아기는 엎드린 채로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세를 취해야만 잠이 들었다. 조금만 떨어져도 비명을 지르듯 우는 아기를 안고 가끔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내가 너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마’ 했다. 그러다가 가끔 아이의 두려움이 내게 옮겨오면, 몸이 힘들고 마음이 지치면 나 역시 크게 울었다. 그러고 나면 아이는 더 크게 울었다. 안정을 줘야 하는 당신이 내게 이러면 어떡하냐는 듯이.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내 안에 불안이 찾아왔을 때 아이는 더 불안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불안을 가다듬지 못하는 엄마인 것이 미안했다.


 

아이가 커 갈수록 아이 뒤의 세상이 비쳐 걱정이 더 커진다. 이제 군대에서의 사고를 봐도, 구조의 모순이 누적되고 누적돼 터져버리는 사건들을 봐도, 비정규직의 안타까운 죽음을 봐도 자유로울 수가 없어졌다. 그 장애물들이 혹시나 아이의 인생에 드리울까 두렵다. 담담해지려고 호흡을 가다듬어도끔찍한 사고가 연상되는 사회다. 아니, 어쩌면 세상 자체가 그런 것일까. 어릴 적 엄마가 내 안전을 걱정하는 말을 하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딸을 믿으라” 했는데. 엄마가 된 나는 작은 것에도 불안해한다. 부모가 담담하고 담대해야 아이가 굳게 선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내 ‘가슴’은 자주 불안을 품는다.


 

■ 한국 사회의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국 사회에서 그 불안은 교육의 사다리 위로 올라갈수록 증폭된다. “두진이 엄마는 영어 안 시켜요?”라는 말을 들을 때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내 눈빛도 흔들릴 것이다.


 

친정엄마가 “다른 애들은 이것저것 많이도 하던데 학습지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실 때 “일곱살이 무슨 학습지예요”라고 대답하지만 주변 아이들이 유치원 때부터 사교육 시장의 소비자가 됐다는 사실에 나도 불안하다. 초등학교에 가면 본격적인 선행 사교육 시장이 열릴 텐데 나는 도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초등학생이 되면 어차피 경쟁에 노출될 텐데 유치원 때까지는 그냥 마음껏 놀게 하고 싶다”고 대답해왔는데 그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시기가 온 것이다.

 

 

숫자 개념을 몰라도 ‘423탄’까지 이어진 책을 만든 아이. 책 내용을 설명하며 상상을 펼친다.

 

얼마 전 동네에서 첫째 유치원 친구 엄마를 만났다. 그는 이미 첫째 딸을 초등학교 2학년까지 보낸 ‘선배 엄마’다. 그는 내게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 한글은 다 읽어야 하고 100까지는 셀 수 있어야 하며 10 이하의 숫자를 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교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는 설명과 함께. 한글책을 몇 권 사주는 것 말고는 한글 공부를 시킨 적이 없는 나는 불안해졌다. 돌아오자마자 아이를 붙잡고 ‘숫자 놀이’를 하자고 재촉했다. “두진아 숫자 세보자. 엄마가 먼저 셀게. 일!” 아이는 놀이인 줄 알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이!” 100을 넘어가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이는 130까지 세고 그만하자고 했다. 그 안도감이란…. 만 3~5세 교육과정을 잘 운영한 유치원에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돌봄 공백이 전면화되는 초등학교 1학년
모두들 사교육으로 미리 배우는 구조에서
점점 더 커지는 불안을 극복할 수 있을까


 

물론 ‘선배 엄마’의 조언이 절대 진실이라 믿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오전 11시40분 하교, ‘돌봄 공백’이 전면화되는 초등학교 1학년. 그 공백을 채우는 것에 이제 아이 교육까지 더해질 것이다. “보육은 할머니가 해줄 수 있지만 교육은 할머니가 해줄 수 없어”라는 말이 횡행하는 사회다. 학교에 가서 다 배우면 된다고 공교육은 말하지만 모두들 사교육을 통해 미리 배우고 오는 구조에서 점점 더 학년이 올라가면, 중학생이 되면, 입시를 코앞에 두면 어떻게 될까. 나는 불안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는 역할에 학습을 전적으로 지원하는 업무(?)까지 엄마가 짊어진 이 사회에서 나는 어떤 포즈를 취하게 될까.


 

■ ‘아빠표 한글’은 없으면서

인기 드라마 <SKY(스카이)캐슬>은 ‘학습 매니저 엄마’가 극대화되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아이의 학습을 컨설팅하고 지원하는 전면적인 매니저의 역할을 도맡는 상류층 전업주부. 그는 전업주부지만 가사노동은 입주도우미에게 외주를 준다. “적어도 내 딸들은 나만큼은 살아야 하니까!”라며 두 주먹에 힘주는 그는 수십억원이 드는 ‘학습 코디’까지 고용해 딸의 서울대 입성에 매진한다. 그런 그에게 원조 대치동 ‘돼지엄마’(입시 정보나 공부법 등과 관련해 정보력이 뛰어난 엄마)인 시어머니가 말한다. “중심은 엄마인 네가 쥐고 있어야 해.” 아이의 성적이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학습을 컨설팅하는 매니저 엄마. 소름 끼친다.


 

‘아빠표 놀이’는 하나도 없는 사회에서
엄마는 아이의 ‘학습 매니저’가 된다
그저 담담하게 사는 걸 보여주고 싶은데


 

드라마 속 아빠들은 하나같이 권위적인 ‘가부장’이다. 짐짓 아이 성적에 ‘쿨’한 척하지만 아이 성적이 제대로 안 나오면 ‘엄마 탓’을 하는 가부장. 남자들은 거들먹거리며 퇴근 후 옷을 아내에게 건네고 아이 성적에 문제가 생기면 아내를 탓한다. 드라마를 빨려들어가듯 보면서도 뒤끝이 쓰다. 2000년하고도 18년이 지난 세상에서 여성은 여전히 자녀를 백업한다. 가사노동을 외주 줄 수 있는 소득을 지녔어도 공부는 전적으로 ‘엄마 책임’이다. 경쟁이 격화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엄마들이 쓰는 전략은 새치기를 해서라도 자녀를 ‘톱’으로 올려놓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톱’인지도 의심스럽지만 그 톱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그는 그 세계에서 추방될 것이다. “네가 나한테 인정받을 마지막 기회야.” 남편의 어머니, 즉 시어머니는 그에게 그렇게 말한다.

 

과연 의미 있는 역할인지 의심스럽지만 이 사회에서 엄마는 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아이가 뒤처질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그 불안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엄마인가, 사회인가. ‘엄마표 한글’ ‘엄마표 수학’ ‘엄마표 놀이’까지 있지만 ‘아빠표’는 하나도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서 남편과 일을 분배해도 사회가 엄마의 일을 강조하면 결국 내 일이 늘어나는 구조. 공교육의 몫이 자연스럽게 엄마의 몫이 되는 구조에서 엄마의 역할은 기이하게 늘어난다. 가사노동을 외주 주거나 기계에 맡겨도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은 이상한 쪽으로 확장되는 사회.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가.

‘아이의 학습 매니저가 되고 싶지 않다. 아이의 성적보다는 아이의 관심사에 귀 기울여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엄마에게 떠넘겨진 역할을 혼자 떠안지 않겠다. 남편과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이가 어떤 흥미와 적성을 지니고 있는지 대화하고 싶다.’ 이렇게 다짐해도 불안이 교묘하게 파고든다. 부모는 그저 한발 앞서 걷는 사람일 뿐이고 세상은 빨리 변하며 아이의 세상이 어떤 곳인지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담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는 것, 힘들고 괴로울 때도 많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힘을 내는 것이 삶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 ‘스카이캐슬’ 속 괴물 엄마는 왜 호응받는가

말은 쉽다. 초등학교에 가면 영어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압박에 더 전방위적으로 노출될 것이다. 학교 교육과정이 3학년부터 시작한다 해도 이미 영어유치원에서부터 영어를 배워오는 시대다. 이런 사회에서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사실 잘 모르겠다. 모든 부모는 자식의 행복을 원한다. 그 행복의 모습이 어떤 모양이냐가 다를 뿐이다. 임금 격차가 크고 비정규직을 차별하며 기술직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적다면 당연히 행복의 모습은 더 단조로워진다. <스카이캐슬> 속 엄마들이 호응받는 이유는 이 불안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다양한 행복을 상상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다양한 행복을 상상할 수 있도록
중요한 것은 지속적 대화를 나누는 힘
답을 알지만 선택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너무 거창한 생각을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나는 답을 모른다. 다만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야겠다고 다잡을 뿐이다.

만화 <출동! 슈퍼윙스>에 빠져 있는 첫째는 요즘 매일 슈퍼윙스책을 만든다. 1탄부터 423탄까지 나왔다. 100을 넘는 숫자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 같진 않지만, 아이가 설명하는 책 소개에서 아이의 자유로운 상상을 듣는다. "엄마, 남극 세종기지는 있잖아~.” 세계를 여행하는 만화를 보는 아이는 세계를 탐험 중이다. 아이가 어릴 때 마트 문화센터를 다녔다. 소근육 경험을 다양하게 해주고 다양한 놀잇감을 경험하게 해주겠다는 취지였다. 독박육아의 괴로움을 탈출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그렇지만 돌아보면 그 돈이 아깝다. 외부 환경보다 집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첫째는 문화센터에서 자주 위축돼 있었다. 낯선 환경에서 놀고 싶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다닌 것은 아니었을까.

 

고교 교사인 친구가 말했다. “부모들은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에는 아이들에 대해 관심이 지대하지만 중·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아이들과 대화를 하지 않더라고.” ‘공부 못하면 큰일 난다’는 대화만 하게 되는 구조라면 대화를 피하게 되지 않을까. 정말 중요한 것은 부모와 아이가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힘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답을 안다. 그러나 답을 선택하기 어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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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했던 마음을 기억한다. “누나니까 양보해야지.” 내가 제일 싫어하던 말이었다. 그 말을 듣던 나는 가끔 내 발끝을 보고 있었다. 화가 나서 오므려지는 발을 뚫어져라 보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왜요?”라는 질문은 할 생각을 못했지만 항상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억울했던 작은 마음들. 세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는 장녀. 형제는 내게 그 애뿐이었고 나는 그 애가 가끔 좋고 자주 미웠다. 잠든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을 정도로 예뻐했던 기억도 있지만 싸웠던 기억이 더 많다. 부모님 앞에 서면 늘 나보다 어리고 서툰 그애를 도와줘야했고, 도와주는 나는 칭찬받았지만 먼저 뭔가를 하려고 하는 나는 자주 제지받았다. “동생은 아직 잘 못하잖아. 누나가 도와줘야지.” 나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다.


 

일곱 살이 된 첫째를 보면 어린 내가 떠오른다. 엄마가 된 나는 첫째에게 말한다. “동생은 아직 잘 못하니까 두진이가 도와줘야지.” 말을 하고선 마음이 안 좋아지면 따로 꼭 두진이를 불러서 말해준다. “동생이 참 귀찮지? 동생은 원래 그런 존재야. 귀찮은 존재. 엄마도 외삼촌이 얼마나 귀찮았다고. 그런데 동생은 엄마 아빠가 세상에 없을 때도 네 곁에 있어줄 사람이야.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두진이가 그 말을 다 알 순 없을 텐데도 가끔 그 말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면, 부모로 살면서 균형을 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깨닫는다.


 

어린시절 들었던 “누나니까 양보해야지”
첫째를 보면 당시 억울함이 떠오르지만
결국 해버린 말 “형이니까 도와줘야지”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외삼촌 눈사람을 만든 아들들.

■ 둘째를 질투하는 장녀 엄마

‘형아 따라쟁이’ 둘째를 보면 묘한 부러움이 차오른다. 이제 겨우 세 살인 둘째에게 일곱 살 형은 너무 재밌는 선생님이다. 형아가 블록으로 활주로를 만들고 ‘천천히’라고 써놓은 포스트잇을 세 장 붙인 뒤 활주로 끝에 ‘출발’이라고 적어놓는 것을 유심히 보고 있더니 둘째도 옆에서 활주로를 만들기 시작한다. 어설프게 블록을 이어 붙이더니 “엄마, 여기는 이준이 활주로야”라며 웃는 작은 얼굴. 그 모습에 기특했다가도 묘한 부러움이 솟았는데 순간 그 부러움의 정체를 깨닫고 쑥스러워서 혼자 막 웃었다. 세 살 둘째가 서른네 살 남동생처럼 느껴진 거였다. 나의 아기인 둘째를 남동생처럼 생각하고 질투하다니. 모방 대상이 있다는 게 부러웠다. 따라 할 형제가 있다는 것,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 자신의 선생님이 있다는 것, 엄마 아빠도 해주지 못하는 것을 형이 해준다는 것 말이다.


 

가끔 남편에게 말하기도 했다. “이거 봐, 둘째들은 정말 편하겠다. 저렇게 형아가 하는 것을 따라하기만 해도 되니.” 고등학교 가기 전에 나는 ‘야자’가 있는지도 몰랐다. 주변에 그걸 알려줄 언니, 선배가 없었다. 동생은 내 존재 덕분에 편하게 안 사실을 나는 미리 알 방도가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을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을 때 ‘언니나 오빠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실제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놀잇감을 다양하게 만들어 친구들을 이끄는 편이다. 뽁뽁이를 가지고 소근육 활동을 할 때 둘째가 먼저 친구들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볼까?”라며 머리에도 써보고 얼굴도 가려보고. 친구들이 이준이의 모습을 보고 따라 했다는 어린이집 일기장 기록에 나는 기특하면서도 묘한 감정이 들었다. “다 형한테 배운 거지, 둘째니까 빠르지!”


 

기질적으로도 첫째와 둘째는 다르다. 첫째는 조심스럽고 주저하고 걱정이 많은 성격이지만, 둘째는 겁이 없고 자유로운 성격으로 여유롭고 웃음이 많다. 모르는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타도 “저 세 살이에요. 안녕히 가세요~” 먼저 말 거는 아이.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고 나오면서 “또 올게요~”라는 아이. 소아과에 가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나, 코 안 나와”라며 콧물 제거는 오늘 하지 않겠다고 먼저 선언(?)하는 아이. 이제 30개월이 된 둘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항상 웃음이 나온다. 첫째는 부끄러워서 낯선 사람에게 인사를 잘 못했다. 억지로 인사를 하게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해서 그냥 넘긴 적도 많지만 속으로는 ‘왜 이런 것도 어색해하는 거야?’라며 답답해한 적도 많다.


 

첫째는 온전한 사랑 빼앗긴 것 같아서…
둘째는 사랑을 독차지한 적이 없어서…
엄마인 나는 두 아이 모두에 애잔함 느껴

 

아마 태어난 순서의 차이가 아니라 성격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겁이 많지만 한곳에 서서 오래 사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집중력과 관찰력을 가진 첫째와 사교적인 성격의 둘째의 차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이 둘이 어떻게 자랄지도 현재로선 전혀 알 수 없다.


 

■ 어린 나를 안아주고 싶을 때

형제가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로 자라면 좋지만 문제는 항상 싸울 때 벌어진다.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겠다고 다툼을 벌일 때, 처음에는 중재를 시도한다. “두진아, 이준이가 가지고 놀던 거잖아. 이번엔 형아가 양보해.” 아니면 “이준아, 형아한테 나눠줘야지. 혼자 다 독차지하려고 하면 어떡해.” 물론 아직 어리니까 중재가 먹히지 않는다. 그럼 결국 “둘 다 하지마. 나눌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장난감 가지고 놀 필요도 없어.” 둘 중 하나가 울어야 끝난다. 그때마다 이게 잘하는 훈육인지 헷갈리고 머리가 멍하다. 둘 사이에 끼여 이도저도 못하고 있을 때 그제서야 내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아이 둘을 낳고 알게 됐다. 첫째는 온전히 부모를 독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 그래서 단독자처럼 사랑을 독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기억이 너무 어릴 적이라 자기 자신에게는 남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다. ‘장녀였던 나도 이렇게 온전하게 사랑받은 시절이 있었겠구나, 엄마 아빠에게 나뿐이던 시절이 있었겠구나’라는 사실을 아이를 낳고 알게 됐다. 언제든 모방할 대상이 있어 살기 편한 것처럼 보이는 둘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자가 있어 혼자 사랑받는 시절을 가질 수 없다는 슬픈 사실도 알게 됐다. 그래서 엄마가 된 나는 아이 둘을 보면 애잔하다. 첫째는 온전하던 사랑을 빼앗긴 것이 애잔하고, 둘째는 한 번도 혼자서 사랑을 독차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애잔하다.


 

둘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하면서 곤란할 때, 발끝을 노려보느라고 엄마 아빠 표정을 보지 못하던 어린 시절 나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때 나는 내 억울함에만 집중하느라 부모님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이제야 나를 기르던 부모님들의 곤란함을 이해하게 된다. ‘그때 꼭 동생 편을 들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구나.’ 뒤늦은 깨달음. 아이들을 키우며 부모님의 마음을 만난다.


 

아이들 중재해보니 부모님 마음 이해돼
“서로 더 사랑한다”는 형제의 애정 공세
삶의 고단함 버티게 하는 힘이자 행복

 

또 어린 나를 다시 만나고 가끔은 그때의 나와 화해하기도 한다. 부모 마음을 몰라 오해했던 그때의 어린 나를 안아주고 싶어질 때, 곤란했을 부모님의 어깨를 안아드리고 싶어질 때 양육의 균형추를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닫는다.


 

아이를 낳기 전엔 아이를 낳고 기르면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된다고 생각했다. 뭐 그렇게 성숙한 인간이 되려고 생각했는지 싶지만. 막상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내 바닥을 보는 일이 너무 많았다. 아이를 기르는 것만으로 좋은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내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아이들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지 못한다고 느낄 때, 아이를 양육하는 일에 대해 너무 가벼이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이를 기르면서 아이이던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볼 때, 아이였던 나를 기르던 부모님의 마음을 돌아볼 때 제법 할 만한 일이었구나 생각해본다.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도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 사랑을 경쟁하는 형제

어젯밤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다 같이 누웠다. 둘째에게 흔한 레퍼토리인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를 물었다. 둘째는 당연히 “엄마”라는 단답을 했다. 그래서 “그럼 아빠는?” 묻자 둘째는 형아한테 떠넘긴다. “아빠는 형아가 좋아해.” 아빠는 그렇게 떠넘겨도 되는 존재인가 보다. 조용하던 첫째가 “나도 엄마 좋아해~”라고 해서 둘째에게 “형아도 엄마 좋대”라고 하니 둘째가 하는 말. “아니야~ 엄마는 내가 좋아해~~”

집 안에서는 나도 ‘슈퍼스타’다. 퇴근만 하면 내게 안겨드는 아이들을 보고 남편이 붙여준 별명이다. “엄마가 아주 슈퍼스타여.” 형제를 키우는 또 다른 재미. 그들은 나에 대한 사랑을 경쟁한다. 작은 아이들이 나를 향한 사랑을 경쟁할 때 “제발 좀 엄마 혼자 있자”라면서도 입은 귀에 걸려 있는 게 아들 둘 엄마의 속마음이다. 아빠가 아무리 잘해줘도 엄마를 찾는 이 유전자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내 배안에서 열 달을 살았던 힘일까.

육아와 회사 일을 병행하는 게 너무 벅찰 때 가만히 생각했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 퇴근한 나를 맞으러 아이들이 뛰어나올 때, 그리고 아이들을 재운 뒤 잠든 얼굴을 쓰다듬을 때. 다른 순간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구조에 분노하는 글을 많이 썼지만 아이를 낳은 사실 자체를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상상한 적도 있다. 다시 태어나 선택할 수 있다면 난 엄마가 되길 선택할까. 답은 너무 빨리 나왔다. 다시 또 엄마가 될 것이다. 태어날 곳을 바꾸거나 직업을 바꾸고 싶긴 하지만.


 

아이들을 기르는 일은 여전히 고되지만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 아이들이 내게 주는 웃음, 아이들이 내게 전하는 사랑이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 이제 나는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여전히 회사와 나와 아이들 사이에서, 아이와 아이 사이에서 양육의 균형추를 잡는 것은 너무 벅차지만 나는 내가 엄마인 것이 좋다. 그래서 좀 균형을 잘 잡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작은 다짐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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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2.15 0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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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아침은 늘 전쟁터다. 아이들은 부모 출근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 유치원에 가느라 시간에 쫓긴다. 가끔 29개월 둘째 입장에서 어린이집에 가는 장면을 상상한다. ‘좀 늦잠을 자도 되는데 엄마가 깨우고 아빠가 밥 안 먹는다고 성화다. 아직 좀 천천히 해도 되는데 엄마 아빠는 항상 서두르라고 재촉한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어린이집에 간다는 뜻이다. 가기 싫은데. 그래도 엄마가 출근하듯 나도 어린이집에 가야한다고 하니까 간다. 어린이집 가는 길에 길가에 떨어진 낙엽도 보고 자동차도 구경하고 싶지만 아빠는 그럴 시간 없다고 나를 안고 뛴다.’


 

어린이집·유치원 안 보낼 수 없던 나
대신 좋은 곳 찾으려 애쓰는 게 최선
한국 사회선 좋은 기관 찾는 것도 ‘복’

 

아이들은 원해서 어린이집, 유치원에 가는 것이 아니다. 29개월밖에 안된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면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좋은 어린이집, 유치원을 찾으려 애를 쓰는 게 최선이었다. 첫째는 15개월부터, 둘째는 10개월부터 기관에 맡겨 키워왔다. 오전 9시반부터 오후 3시반, 늦게는 5시까지 기관에서 아이를 돌봐줬기에 아직 일을 유지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처음 맡기던 날에는 현관 문 밖을 나서 펑펑 울 정도로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기관에 아이를 맡긴 지 만 5년6개월 지난 지금, 선생님들의 보육과 교육 덕분에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랐다고 생각할 만큼 여유로워졌다. 기관에 일찍 맡겨야 했던 환경에 대해서는 여전히 할 말이 많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좋은 기관을 찾은 것조차 ‘복’이라는 것을 안다.


 

■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 환경이란

두 아이를 기르면서 많은 선생님들에게 양육에 관한 도움을 받았다. 집중력이 좋은 대신 행동 전환이 느린 첫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처음 알려준 사람은 어린이집 선생님이었고, 아이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워킹맘의 처지를 비관할 때 지나치게 낙담할 필요가 없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며 위로를 건넸던 사람은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둘째가 넘어져 다쳤을 때 나보다 더 슬프게 운 사람도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선생님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절감한다. 첫째를 아꼈던 한 선생님은 내가 모르던 아이의 장점을 찾아내 정말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 두진이는 정말 아이들이 안 보는 것까지 보는 아이예요.” 경쾌한 목소리, 아이를 아끼는 눈빛에 정말 고마웠다.


 

국공립의 장점, 둘째 보내면서 실감
학부모 참여 운영위 통해 투명한 운영
사립은 운영위 없거나 자문 역할만

 

우리 아이들은 가정 어린이집, 병설 유치원, 국공립어린이집을 다녔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난 어린이집, 유치원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만 3~5세 공통 과정인 누리과정이라는 교육과정은 이미 통합돼 있는 상태여서 그럴 것이다. 오히려 내게 중요한 것은 공립이냐, 사립이냐였다. 실제 둘째를 올해부터 국공립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더 확신했다.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운영위를 통해 예·결산 내역을 공유하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한 번은 어린이집에서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송편 만들기 행사를 했다. 할머니를 초대할 생각을 하다니 조부모가 양육하는 집까지 배려하는구나. 할머니가 와서 송편까지 만든 것에 대해 아이가 매우 신나하는 모습을 보며 새삼 어린이집에 고마웠다.


 

공립, 사립을 넘어 핵심은 선생님 처우와 교육환경이다. 고용이 안정돼 있는지 여부가 일선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들의 여유를 만들 수 있는지를 가를 것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정말 체력적으로 고된데 그에 맞는 급여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근본적 해결책은 교사 1인당 아이 수를 줄이는 것이다. 선생님에게 좋은 환경이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이라는 사실을 정부 당국자들은 진정 모르는 건가.


 

■ 민주적 통제가 답

지난해부터 유치원 운영위원이 됐다. 운영위는 예·결산 내역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아이들 교육재료비, 비품구입비, 인건비까지. 1원 단위까지 공개하기 때문에 샐 틈이 없다. 아이들이 먹는 급식은 특위를 구성해서 점검한다. 방학 때 방과후반 아이들에게 급식을 만들어줄 조리사 선생님을 채용하지 못한 유치원은 결국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급식특위 위원 엄마 2명은 3곳의 도시락 업체를 가서 직접 먹어보고 제일 좋은 곳으로 결정했다. 유치원 운영에 대해 궁금하면 학부모들이 운영위원을 통해 공식적으로 유치원에 묻기도 한다. 유치원 운영위원회가 도입된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운영위원으로 참여해보니 내실화하면 정말 좋은 기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국공립유치원 얘기다. 국공립유치원에서 운영위는 심의 기능을 갖지만 사립유치원에서는 자문 기능뿐이다. 그나마 운영위를 구성하지 않은 곳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이야기를 하면 아이를 사립유치원에 보내는 엄마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본다.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이에요? 난 그냥 유치원 원장님이 하는 말만 일방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어요.” 학부모들이 과한 요구를 하면 운영위원회에서 토론을 통해 조정하기도 한다. 한번은 아이들 사진을 자주 찍어서 홈페이지에 올려줄 수 있겠느냐는 문의가 있었지만 다수의 운영위원들이 “선생님들은 이미 많은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과중한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며 “사진 찍을 시간에 더 좋은 교육을 고민하셨으면 좋겠다”고 결론을 냈다. 다수의 토론이 좋은 결론에 닿는 사례였다.


 

사립유치원 감사, 비리 유치원 명단 문제로 유·보육계가 발칵 뒤집혔다. 그런데 이들 문제도 다 사후 감사로 적발된 것이다. 정부의 사후 감사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내부에서 민주적 통제를 하는 게 근본적 해결 방법이다. 그러나 운영위는 유명무실한 경우가 적지 않고 교사들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원장이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문제를 제기했다가 잘못 되면 다른 어린이집 취직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는 너무 당연하다. 원장 그룹은 민간어린이집연합회,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등 조직으로 단합되지만 교사들은 그럴 방법이 없다. 노조가 있지만 노조에 가입하기 쉽지 않다.


 

■ 어른들이 풀 문제를 회피하지 말자

2015년 누리과정 예산 갈등이 극심했을 때 나는 교육 담당 기자였다. 중앙정부는 시·도 교육청에 빚을 내서라도 누리과정 예산을 충당하라고 했고 교육청은 버티다 지방채를 발행하는 악순환이었다. 어린이집, 유치원에 지원금이 나온다 안 나온다 다들 혼란스러워하자 교육부는 어린이집 대표, 유치원 대표, 학부모 대표를 앉혀놓고 여러 차례 간담회를 열었다. 둘째를 임신하고 있던 나는 그런 간담회 현장을 취재하며 참담했다. 어느 자리에서도 진정 아이들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 없다고 느꼈다. 한가한 소리만 오가던 어느 간담회 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뒤에서 수첩에 말을 받아적고 있던 나는 소리치며 말하고 싶었다. “이런 식의 간담회는 하지 말라고요. 선생님들도 정부 지원금 말고는 관심이 없나요?”


 

그러다 사립유치원, 민간어린이집 감사 결과를 보도자료로 읽으면서 괴로웠다. “어떤 유치원은 가보니까 원장이 쇠고기를 일부만 떼서 유치원 냉장고에 넣고 다 자기 집으로 가져갔더라고요.” 이 탐욕스러운 어른들에게 우리 아이를 맡길 수 있을까. 지난해 7월 육아휴직 중이던 나는 서울시교육청이 공립유치원을 늘려야 한다는 연구 결과에 대해 논의하는 간담회에 간 적이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서울시교육청 간담회 장소를 점거(?)해버렸고 교육청 인사들 나오라고 소리를 쳤다. 몇몇 원장선생님은 외쳤다. “휴원해요. 워킹맘들 볼모로 삼아야지.” 귀를 의심했다. 볼모? 교육자가 아니구나.


 

“휴원해요, 워킹맘 볼모로” 외친 원장들
정부 사후 감사만으론 문제 해결 안 돼
기관 내부의 ‘민주적 통제’가 근본 대책

 

‘비리 유치원 명단’이 주요 뉴스이던 몇 주간 기시감을 느꼈다. 사건이 벌어져서 시끄러워지면 급히 땜빵 대책을 만들고 다시 조용해지길 기다리는 그 악순환. 어린이집에서 학대가 벌어졌을 때 우리 사회는 어린이집에 폐쇄회로(CC)TV를 들였다. 학대를 예방하겠다며 사건이 벌어진 뒤 사후 대처밖에 할 수 없는 CCTV를 들여놓는 게 우리 사회 실력이다. 교육청, 교육부는 사립유치원, 민간 어린이집의 문제가 무엇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 지금까지 방치해왔던 것에 대해 깊이 고개 숙이고,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유치원이, 학교가 자기 것이라 믿는 사람들에 의해 교육이 이뤄져왔다. 아이를 때린 선생님, 아이를 버스에 두고 내린 선생님을 욕하기는 쉽다. 그 뒤의 구조를 드러내 고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땜질 대책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는 유아 교육, 보육에 공공성을 확보할 때다. 내년에 첫째가 초등학교에 가니까, 둘째도 곧 보육·유아교육 기관을 졸업할 테니 이 시기 동안 내 아이가 안전하기만을 바라면서 지내야 할까. 그러고 싶지 않다. 우리 어른들이 이 정도밖에 할 수 없으면 아이들은 또 같은 구조에 놓일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우리 어른들의 실력이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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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집밥’이 먹고 싶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재료를 사와서 만들면 되지만 내가 만들어도, 남편이 만들어도 ‘집밥’ 맛이 안 난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엄마밥’이 먹고 싶었던 것 같다. 옆동에 사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디세요? 집에 밥 있어요?”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돌봐주신 지도 만 6년. 뻔뻔해진 것도 딱 6년만큼이다. 엄마는 집에 안 계시지만 집에 가 밥을 차려 먹어도 된다고 해서 남편과 나 둘이 가서 호박 된장찌개와 오징어볶음, 고춧잎나물을 와구와구 먹었다. 다 먹고 나니 전기밥솥에 있던 밥과 냉동실에 얼린 밥을 우리 둘이서 다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결혼 후 집안일하며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반쪽 인간’이었구나
작은 일 하나까지 엄마가 해주셨구나

 

나는 결혼을 하면서 엄마, 아빠로부터 독립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집안일도 별로 안 해봤고 엄마, 아빠 등에 얹혀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쪽 인간’이었다. 내가 반쪽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신혼집에서 나는 수건을 접을 때마다 엄마 생각을 하며 울었다. ‘엄마가 이런 작은 일까지 다 해줬구나.’ 수건 접기는 그나마 쉬운 쪽이었다. 신혼이어서 찌개도 해먹고 반찬도 해먹었지만 엄마가 해준 집밥 흉내를 내기는 어려웠다. 30년 숙련노동의 결과물을 흉내 내려 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일이었지만.


 

신혼 때는 밥을 해먹었지만, 아이를 낳고서는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아이 돌보기에 24시간이 맞춰 돌아가던 돌 전, 아이 이유식은 열심히 만들어 먹였지만 내 밥은 대충 먹기 일쑤였다. 그나마 친정엄마가 가져다주시는 반찬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첫째를 낳고 복직한 나는 아이 반찬을 잘 못 만들어 쩔쩔맸고 둘째를 낳고 복직하면서 배달받는 반찬으로 바꿨다. 일하면서 두 아들을 기르는 우리집에서 아이들 반찬까지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반찬 사먹기’도 금방 끝났다. 아이들이 ‘배달 반찬’을 잘 먹지 않았다. 결국 난 또 엄마에게 반찬을 얻어먹으며 기생 중이다. 여전히 내 임금노동은 엄마의 무임금노동에 빚지고 있다.


 

■ 엄마의 노동, 엄마의 일생

아이를 낳기 전에는 엄마의 하루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엄마’는 늘 돌아보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내 손으로 아이를 기르면서 비로소 나는 엄마의 하루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아침밥을 차리고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청소·빨래를 하고 반찬을 만들던 엄마의 하루를. 외환위기 이후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돈도 벌었다. 다만 풀타임 임금노동자로 일한 적이 없을 뿐이다. 엄마는 늘 자신을 ‘솥뚜껑 운전수’라고 말한다. 가끔 엄마가 학원문학상을 받았던 여고생 때, 가계부 일기로 은행에서 상을 받았던 젊은 시절에 대해 묘사할 때 나는 열정적이고 부지런한 우리 엄마가 임금노동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한다. 나처럼 글을 쓰는 일을 했다면, 아마 나보다 잘하지 않았을까?


 

주부란 ‘이름 없는 자’가 된다는 것
여전히 아이들과 나를 돌보는 엄마
나의 노동은 엄마의 무임금노동에 빚져

 

그 시절은 많이들 그랬다. 생계부양자 아버지가 가족을 부양했고 어머니는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을 돌봤다. 엄마들은 늘 ‘백업’하는 존재였다. 그런 엄마들은 딸을 ‘커리어우먼’으로 키우고 싶어 했다. 아마 자신처럼 ‘백업’하는 존재가 되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다행일까. 자라면서 남자와 다르지 않다고 교육받으며 대학을 갔고 겨우 취업과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았다. 뒤늦게 워킹맘이 되는 것은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면서 뼈빠지게 착취당하라는 메시지라는 것을 깨닫고 분노했지만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사회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는 것이 좋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한번은 지나가듯 말했다. “아빠는 그런 말 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이상하게도 친정부모님에게는 용돈을 드리는 게 그렇더라고.” 자신이 돈을 벌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는 게 맞는지 고민했다는 뜻이다. 마음이 아팠다. 일평생 아이들을 기르고 가정을 돌본 엄마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아무도 엄마의 노동을 귀하다고 말하지 않으니까. 사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니까. 돌아보면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주부가 된다는 것은 ‘이름 없는 자’가 된다는 뜻이라는 것을. 평생 그림자노동을 하며 자기 자신을 귀하게 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 임금노동만 성취인가

아이를 낳고 자주 의심했다. 임금노동에 시간을 빼앗겨 막상 내 아이들에게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나의 삶이 과연 ‘진보’한 것인지에 대해서. 그러나 수천번을 생각해봐도 나는 일도 하고 싶고 아이들도 잘 기르고 싶었다. 깨달았다. 이 사회가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 문제지, 내가 두 가지를 다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제 엄마의 노동에 대해 말한다. “엄마의 밥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엄마가 평생 나를 돌봐준 덕분에 내가 있고 이제는 내 아이들까지 엄마의 돌봄을 받고 있다”고. 또 “내 바이라인은 사실 임아영·두효순 기자라 써야 맞다”고. 아이들을 엄마에게 맡긴 채 하루 종일 일터에서 만든 임금노동의 성취는 온전히 내 것일 수가 없다고 말이다.


 

사적 공간의 일을 귀하게 생각않는 사회
종일 우선순위 매기고 정밀하게 수행하는
엄마의 반찬·집안일은 왜 성취가 아닌가

 

이제 결혼한 지 7년이 됐다. 지난 7년간 남편과 가사노동을 분배하면서 갈등도 적지 않았다. 남편이 더 바쁠 때는 내가 남편을 ‘백업’하는 존재가 될까 겁을 먹고 더 악을 쓰고 집안일을 분배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으로 우리 둘 다 ‘소진’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이제야 내가 결혼 전 집안일에 대해 ‘1’도 모르던 ‘반쪽 인간’에서 나아지는 것 같다. 꼭 임금노동을 하는 것만 성취인가? 엄마의 반찬, 엄마의 집안일 스킬은 왜 성취가 아닌가.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직접 해보고 알게 된 게 또 있다. 흔히 단순한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하루 종일 우선순위를 매기고 정밀하게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사실 말이다. 엄마가 음식 만드는 과정을 엿보면 굉장히 정교하다. 국을 끓이면서 샐러드 소스를 만들고 고기를 볶으면서 전을 부치는 과정을 동시에 해내는 일. 맛있게 상을 내려면 완성된 음식을 담는 순서도 중요하다. 엄마는 뭐 하나 대충하지 않는다. 차가운 반찬부터 접시에 담고 메인 반찬을 담은 뒤 밥과 국을 퍼서 먹는다. 그래야 음식이 덜 식기 때문이라는 것을 난 이제야 알게 됐다. 엄마밥을 먹은 지 이제 37년이나 됐는데.


 

주부의 삶은 하루 종일 표가 안 나는 일들에 우선순위를 매기고 수행하는 삶이다. 일평생 그 일을 한다면 당연히 우선순위를 매기고 순서대로 수행하는 작업에 능숙해질 수밖에 없다. 나도 아이들을 기르면서 좀 더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됐다. 가사노동, 돌봄노동, 임금노동을 동시에 하면 일의 총량이 늘어나는데 우선순위를 고려해 일의 순서를 배열하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집에서는 빠른 일처리가 필요한 것은 내가 맡고 꾸준한 작업이 필요한 것은 남편이 맡는다. 성격이 급한 대신 손이 빠른 나와 성격이 느린 대신 꼼꼼한 남편의 성격대로 자연스럽게 배분됐다. 지난해까지 아이들 기관에 관한 행정 업무를 내가 처리하다가 올해부터는 둘 다 어린이집, 유치원 알리미를 받기 시작했다. 준비물을 챙기고 아이가 아프거나 일이 생겼을 때 기관에 연락하는 일을 남편과 공유하니 빼먹는 일이 좀 줄어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남편과 ‘함께’ 육아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엄마의 숙련노동 기록 ‘장모님 레시피’

최근 통계청이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2014년 명목 국내총생산의 24.3%를 차지한다고 평가했다. 시간당 가사노동의 가치는 1만569원으로 3인 가족 기준으로는 연간 2132만원으로 계산됐다. 성별로 보면 1인당 기준 남자는 346만원, 여자는 1076만원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세 배 이상 높았는데 여자가 3배 더 가사노동을 많이 한다는 뜻이다. 여전히 여자가 가사노동을 3배 더 하지만 이 노동에 대한 대가는 지급되지 않는다. 다만 남자의 가사노동 평가액 비중이 1999년 20.1%에서 2014년 24.5%로 증가하고, 여자는 같은 기간 79.9%에서 75.5%로 줄었다. 집 안에서 남자들의 노동이 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려 한다. 속도는 너무 느리지만 여성들이 집 밖에 나와 임금노동을 하는 만큼 남성들이 집 안으로 들어와 가정 안의 노동을 분배해야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이제야 깨달은 엄마의 숙련 노동의 가치
그것이 궁금하고 기록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태어난 결과물 ‘장모님 레시피’

 

아이를 낳기 전 난 엄마표 반찬의 비법이 궁금하지 않았다. 이제야 엄마의 숙련노동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된 나는 ‘엄마의 레시피’가 궁금해졌다. 엄마의 숙련노동의 결과물을 누군가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남편과 둘이서 엄마의 레시피를 기록하는 동영상을 제작했다. 유튜브 계정 이름은 ‘장모님 레시피’라고 붙였다. 동영상을 뒤져보니 지난해 12월에 미역국 레시피를 올린 게 마지막이다. 호박전과 굴전 요리 과정도 찍어놨는데 아직 올리지 못했다. 게으름을 만회하기 위해 올해 김장 때는 꼭 레시피를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동영상을 만들면서 알게 됐다. 엄마는 미역국을 끓일 때 덩어리로 된 소고기를 산다. 보통 잘라진 소고기를 사서 참기름에 볶다가 미역도 볶은 뒤 물을 붓고 끓이지만 엄마는 국물 맛을 깊게 내기 위해 덩어리 고기를 산다고 했다. 푹 삶아서 고기 국물을 우려낸 다음 고기는 식혀서 일일이 찢어 넣는다. 처음부터 엄마가 이렇게 미역국을 끓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다 제일 맛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일 테지. 오늘은 김장할 때 쓸 새우를 사러 강화도에 가셨다. 지난해에는 홍시를 넣었는데 올해는 어떤 실험을 하실지 궁금하다. 언젠가는 꼭 엄마의 레시피 북을 만들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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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어느 토요일 저녁. 20개월이던 둘째와 나 단둘이 집에 있었다. 남편이 방학을 맞은 첫째를 경북 구미 시댁에 맡기러 갔을 때였다. 빨래를 널어야 했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데 둘째가 베란다 문 앞에 와서 문을 닫고 바로 잠갔다. ‘찰칵’ 하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 싶었다. 우리집 베란다는 베란다 밖에서 잠글 수 있게 돼 있다. 겨우 20개월이던 둘째는 문이 잠긴 걸 아는지 모르는지 문 앞에 서서 엄마 얼굴을 들여다보겠다며 미소 짓고 있었다. “이준아, 문 열어야지. 잠그면 어떡해!” 내 외마디 비명이 들리는지 마는지 아이는 계속 싱글벙글이었다. 알고보니 며칠 전 형아가 할머니가 빨래를 널고 있을 때 문을 잠그는 걸 본 것이었다. 일곱 살인 형아는 문을 잠그고 여는 게 능숙하니까 할머니를 가둬놓고 장난을 친 모양이었다.

 

20개월 둘째 장난에 베란다에 갇힌 나

아이는 울다가 집안으로 들어가버리고

나에겐 온갖 나쁜 상상들이 쏟아졌다

 

유리문 바깥에 아이 혼자 있다는 사실에 나는 ‘패닉’이었다. “이준아, 다시 돌려봐, 문을 다시 돌려봐!” 베란다에서 있는 힘껏 소리치니 아이가 잠금장치를 다시 돌려봤지만 아이 손가락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나중에 돌려보니 잠그는 건 쉽고 여는 건 어렵게 돼 있는 잠금장치였다. “이준아, 손에 힘을 꽉 주고 다시 돌려봐!” 있는 힘껏 소리쳤다. 아이는 내 표정이 이상한 걸 느꼈는지 ‘잉~’ 하며 울려고 했다. “아냐, 괜찮아. 엄마가 여기 있잖아.” 침착하게 아이를 다독여야 했다. 그러다 잠시 후 아이가 문 앞에서 사라졌다. 엄마가 나오지 않으니 지쳤는지 다른 곳으로 가버린 것이다.

 

■ 부모는 어떤 존재인가

그때부터였다. 베란다 창문을 열어 밖에다 대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여기요! 사람이 갇혔어요!” 어디에 갇히는 일은 나도 처음이었다. 머리가 새하얘지면서 아이가 눈 앞에서 사라졌다는 생각에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준아, 이리와, 아가, 이쪽으로 와봐!” 보이지도 않는 아이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겁이 없는 둘째가 식탁 위에 한창 올라가려고 할 때였다. ‘의자를 밟고 식탁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어떡하지, 변기 물 가지고 장난 치다가 변기 속에 빠지면 어떡하지.’ 평소라면 하지 않던 상상이 쏟아졌다. 안방 창문을 깨볼까, 창문 밖에 매달려 거실 창문으로 들어갈 수는 없을까 별의별 수를 고민했지만 창문을 깰 도구가 없었고 거실 창문으로 넘어가다 내가 1층 바닥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요즘 창은 방음이 잘되어서인지 아래층, 위층에서도 내 목소리를 못 듣는 것 같았다. 겨울이었고 저녁 때라 사람들이 밖에 아예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집은 14층. 단지를 걸어가는 두 사람은 내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그냥 지나갔다. 속이 탄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아이가 내 눈 앞에 보이지 않으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러다 어떤 아주머니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셨다. “여기 좀 봐주세요. 사람이 갇혔어요. 아이가 혼자 있어요. 좀 구해주세요!” 나와 겨우 눈이 마주친 아주머니에게 다시 외쳤다. “저희 집 비밀번호가 ****인데요. 좀 열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약 40분 만이었다. 아주머니 덕분에 나는 겨우 베란다를 탈출할 수 있었다. 아이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아이고, 아기 엄마가 얼마나 놀랐을꼬”라는 아주머니 말에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힘이 빠져버린 탓이었다. 다행히 아이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 아이는 40분 동안 안 보이는 곳에서 혼자 놀았던 모양이다. 두려움인지, 안심인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아이를 안고 한참을 울었다.

 

무겁고 두려웠다. 엄마라는 자리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가 엄마가 될 깜냥이 되는가 자주 생각한다. 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일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는 인형처럼 예뻐만 해주면 되는 존재가 아니었는데. 아이가 위험해질 때 끔찍한 불안감을 맞대면 ‘이렇게 큰 부담이라면, 부모가 되는 일이 이렇게 무거운 일인지 알았다면’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 불경스러운 생각을 하고나면 죄책감이 따라온다.

 

무작정 외쳤다 “여기, 사람이 갇혔어요”

다행히 이웃 덕에 나와 아이 안고 펑펑

엄마란 자리, 이렇게 두려울 줄이야

 

도토리 줍는 형제들.

 

■ 내게 아이의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다

최근 둘째가 수술을 했다. 간단한 탈장 수술이었지만 진단받고 검사받고 수술하고 회복하는 과정에 한 달 넘게 ‘걱정과 조율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 수술의 위험 요인 등을 판단하는 동안 생기는 걱정과 수술로 생겨나는 수많은 ‘가정 행정 업무’를 조율하는 시간. 남자아이들의 경우 100명 중 1명에게 생긴다는 서혜부 탈장 진단을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100명 중 1명이 많긴 하지만 왜 하필 우리 아이에게 이런 일이’였지만 그다음에 따라온 생각은 ‘아, 할 일도 많은데’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난 어쩜 이렇게 불경한 엄마인지. 병원을 알아보고 검진을 예약하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피 검사를 하고 소변 검사를 하고 심전도 검사를 하면서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이 걱정을 늘어놓자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말았다. “일을 해결하는 데만 집중하자. 남편 걱정까지 받아줄 여유가 없다고.”

 

‘나는 어떤 엄마인가.’ 자주 나의 ‘엄마됨’에 대해 생각한다. 엄한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고 기질적으로 강한 편이다. 엄살 피우는 것도, 엄살 피우는 것을 보는 것도 싫어한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에게도 난 엄한 엄마다. 감정을 읽어주는 자상한 엄마가 되고 싶지만 늘 마음이 급하다. 잘못한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알려주는 데에도 내가 가진 시간이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아이가 수술을 한다는 소식에도 ‘해야 할 일’을 목록화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또 생각했다. ‘나는 어떤 엄마인가.’

 

가끔은, 정말 가끔은 어깨 위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의 무게가 버겁다. 어쩜 이렇게 여전히 이기적일까. 그러다 천성이 걱정 많은 아이인 첫째에게서 두려움이 섞인 표정을 볼 때면 나를 다시 다독인다. ‘아이들을 낳은 건 내 선택이야. 이 아이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야.’ 성스러운 모성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아이를 낳은 이후 계속해서 ‘나’와 ‘엄마가 된 나’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다. 아이를 낳았지만 단숨에 나보다 아이들을 중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냉정한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면, 아이들의 감정을 차분히 들여다봐주는 엄마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이런 나지만 아이가 위급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다. 그럴 때면 내가 ‘엄마는 맞구나’ 생각이 든다. 아이 수술 과정에서 눈물이 난 건 딱 한 번이었다. 둘째가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작은 오른 손등에 링거 바늘을 꽂을 때까지도 괜찮았다. 수술대에 앉은 아이가 바늘을 빼고 싶다며 칭얼댔지만 칭얼대는 아이 앞에서도 침착했다. “이준아, 수술하고 나면 이제 다시 병원 올 일이 없을 거야.” 수술센터에서는 아이 수술 부위를 표시하고 이름, 생년월일을 확인한 뒤 바로 마취를 하고 들어간다고 했다. 마취약이 들어가면 바로 정신을 잃어서 고개가 꺾이니 엄마가 등을 안아주라고 했다.

 

아이 탈장 수술에도 ‘할 일’ 목록화하며

냉정한 엄마 같다는 생각에 미안하지만

아이가 위급 상황 처하는 건 견딜 수 없어

 

마취약이 들어가던 10여초. 정말 신기하게 아이는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눈이 꼭 감기지 않았다. 실눈을 뜬 아이의 모습이 낯설었다. 그제서야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언젠가 내 배안에 살던 아이, 왠지 계속 이어져 있던 끈이 잠시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수술방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제대로 못 보고 나왔는데 자꾸 혼잣말이 나왔다. “눈을 완전히 감겨줬어야 했는데.” 이제 내게 아이의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두 시간여의 수술 시간 동안, 베란다에서 나와 아이를 다시 안아보던 순간처럼 다시 아이를 안아보기만을 기도했다. 그저 아이가 무사하기만을.

 

■ 엄마도 엄마가 되어간다

이제 엄마가 된 지 만 5년9개월이 지났다. 딱 그 정도만큼 나도 엄마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무사하기만을 바라게 될 때, 이제 내 인생이 온전히 내 것일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다. 여전히 나는 성격 급한 엄마지만, 가끔은 아이의 일보다 내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엄마지만, 이제 내 양 어깨에 아이들을 메고 있다는 사실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아득할 때도 많다. 아이들 인생의 수많은 순간들을, 빛나는 순간부터 주저앉는 순간까지 다 지켜봐주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무겁게 다가올 때면.

 

어깨 위의 아이들 무게 버겁다 느끼지만

어느새 아이의 ‘안녕’만을 바라게 되는

딱 만5년9개월 만큼의 엄마가 되어간다

 

빠른 일처리를 지향하는 나라는 인간에게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육아’라는 일이 찾아왔을 때 평범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는 정해진 순서대로, 내가 원하는 속도로 키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겨우 50여㎝의 키로 태어난 작은 아기가 온 힘을 다해 내게 의지할 때, 내 24시간을 저당잡히는 것이 괴로웠지만 아이의 웃음 한 번에 괴로움을 날려버릴 때, 아빠에게도 할머니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가지 않고 엄마인 나에게 매달릴 때, 아프거나 힘들 때면 더더구나 아무에게도 가지 않고 내 몸에 의지하는 어린 것을 보면서 열달간 한 몸이었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여전히 내 품은 아이들을 품어안기에 부족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아이들의 속도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나를 볼 때 딱 5년9개월만큼 내가 나아지지 않았나 싶다.

 

언젠가 세상의 끝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 엄마는 언제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편지를 내게 전해줬다. 아이들을 지켜봐주는, 넓은 품을 가진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그때의 엄마 편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딱 그만큼만 아이들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엄마가 항상 뒤에 서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엄마가 되어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도 엄마가 된 지 10년이 지나면, 20년이 지나면 조금씩 더 넓어지겠지, 아이들도 그런 엄마에게 조금 더 기댈 수 있겠지, 라고 믿어보면서. ‘전적으로 네 편인 사람.’ 엄마가 되고나서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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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아버지가 두진이를 데리고 동네 산에 다녀오시겠다고 했다. 남편은 일이 있어 혼자 두 아이를 보던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두진이는 휴일마다 종종 외할아버지를 따라 산에 다닌다. 산 중턱에서 장기 놀이를 하거나 평평한 트랙에서 킥보드를 타는 정도지만. 이준이가 낮잠을 잘 시간을 훨씬 넘겨 나도 따라나섰다. 유모차에 태워서 재운 뒤에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따라나선 나를 보신 아버지가 “산에 같이 가겠느냐”고 하셨다. 머뭇거리다 그러겠다고 했다. ‘운동 좀 해야지’ 싶어서.


 

회사에 주 6일씩 젊은 날을 내준 아버지
손주들과 놀아주다 잠시 쉬는 뒷모습에
언젠가 이 모습이 몹시 그립겠구나 싶어

 

“이 나이 되면 젊을 때 운동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에게 차이가 많이 나더라. 우리 때는 주 6일 근무여서 일요일 하루 쉬었는데 엄마가 너희들 보고 나는 하루 종일 잔 날도 있었지. 너무 피곤하니까. 그런데 피곤해도 일요일에 산에 다녀오거나 운동을 하면 그다음 주가 좀 낫더라고. 힘들어도 운동을 해야 해.”


 

피곤해하는 나에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서른일곱인 나보다 딱 서른 살이 많은 우리 아버지, 이제 예순일곱. 주 6일씩 회사에 시간과 체력을 내어준 젊은 날을 보냈다. 그렇게 아빠를 따라 산에 올라가 400m 넘는 트랙을 두 바퀴 돌고 두진이와 운동기구로 운동 시늉도 냈다. 낮잠을 자던 이준이가 깨서 이준이 머리보다 더 큰 농구공으로 공놀이도 했다. ‘이런 작은 행복들이 모여 인생의 결을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 생각하며 잠시 쉬고 있는데 아빠가 손주들과 나란히 앉아 쉬는 뒷모습을 봤다. 문득 ‘언젠간 이 모습이 몹시도 그립겠구나’ 싶어서 코끝이 시큰했다.


 

■ ‘워킹맘’을 추앙하지 마세요

나를 키울 시간이 없었던 아버지가 내 아이들을 돌봐주신다. 친정 부모님 옆에서 육아 지원을 받는 우리 아이들은 나와 남편이 없는 자리를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으로 채우고 있다. 내가 클 때 내 옆에 있을 수 없었던 아빠는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손주들 곁에 있게 됐다. 이 역설을 깨달을 때 생각한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 일평생 노동시장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빠가 집으로 돌아온 건 할아버지가 되어서라니.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육아’를 할 수 있게 됐다니.


 

첫째를 낳은 뒤 막다른 골목 처한 부모들
합계출산율 1.06명의 비밀은 여기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저녁, 거창한 꿈일까

 

‘할마 할빠’ 없이는 육아를 할 수 없는 사회다. 맞벌이 부부는 퇴근시간이 늦고 통근시간이 길어서 집에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는 일은 ‘꿈’이다. 무상보육을 하겠다며 어린이집·유치원 보육 지원을 해주지만 아이들 하원 시간까지 아이를 데리러 갈 사람이 없다. 그나마 ‘할마 할빠’가 지원해줄 수 있는 집은 다행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 부모가 퇴근하는 밤까지 어린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버티거나 시터 이모님을 고용해 버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육아 비용으로 쓴다. 부부 중 한쪽에 육아 부담이 몰려 갈등을 겪거나 결국 육아 공백을 채울 수 없게 되면 끙끙대다가 한쪽이 퇴사한다. 대부분 임금을 적게 받는 엄마들이다. ‘경력단절 여성’은 이렇게 탄생한다.


 

‘워킹맘들은 정말 힘들겠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한 취재원이 내게 아이가 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워킹맘, 참 힘드시죠?” 거기까진 뭐 괜찮았다. 이어지는 말. “저도 아이가 어린데 너무 힘들어요. 집에 돌아가도 쉴 수 없고. 와이프는 전업주부인데도 힘들다고 하니까 자꾸 싸우게 되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정색했다. “팀장님, 제가 육아휴직도 해보고 워킹맘도 해봤는데요. 애 보는 게 훨씬 힘들어요.” 너무 정색하니 취재원은 말을 돌렸다. 여전히 이 사회는 아이 기르기가 고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때는 ‘워킹맘’이 꿈이었다. 20대의 나는 아이를 기르며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한 인간을 기르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몰라서 그렇게 순진했다. 내가 한창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자잘한 차별의 언어들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적어도 여자라고 해서 남자가 하는 일을 할 수 없다고는 가르치지 않았다. 여자도 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안다.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사회생활도 하고 육아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슈퍼우먼이 되라는 말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착취’하겠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둘 다 하고 싶으면 너를 갈아 넣어’라는 말이었다니.

■ 슈퍼우먼 따위 되고 싶지 않다

이제 나는 슈퍼우먼 따위는 되고 싶지 않다.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24시간을 살 듯 나도 24시간을 산다. 아무리 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24시간을 넘는 시간을 살 수는 없다.


 

워킹맘이 슈퍼우먼이 되야하는 구조에서
엄마들은 일·육아에 심신이 다 소진되고
아빠들은 회사에 시달리다 방관자가 된다

 

워킹맘이 슈퍼우먼이 되는 구조에서 남편들은 방관자가 된다. “공무원이라 자녀돌봄휴가를 쓸 수 있어서 부럽다”고 하자 공무원 친구가 말했다. “공무원끼리 결혼해도 각종 복지제도는 다 여자 직원이 써. 동기끼리 결혼해도 10년 지나면 직급 차이가 크게 난다 하더라고. 아니 왜 똑같이 입사해서 그렇게 살아야 하냐고. 그래도 나라도 복지제도를 쓸 수 있어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할 말이 없었다. 우리 부부도 육아휴직은 나만 했다. 육아휴직 기간 아이들을 키우면서 배운 게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이라도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면 내 분노는 남편에게 향한다. “신생아 때부터 그 어려운 육아기를 내가 버텼다고. 당신이 아니고.”

가끔은 남편이 아니라 친정 부모님과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화가 난다. 결혼은 남편과 했는데 도대체 이게 뭐지. 친정아버지가 손주를 보고 나서야 육아를 할 수 있게 됐듯 남편도 육아에서 주체가 되기 어려운 구조. 물론 아버지 세대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적어도 기저귀도 갈고 아이 목욕도 시키니까. 그런데 내가 자라던 시기와 지금은 다르다.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구조가 깨졌지 않은가.


 

친정아버지는 젊은 시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다가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손자들을 돌볼 수 있었다.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남편이 애를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내 부모님의 황혼을 갉아먹으며 육아를 하는 난 항상 죄책감에 시달린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라 결국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남편에게 화살이 가는 구조. 남편이 회사에서 빨리 오려고, 집에 있는 동안 육아를 열심히 하려고, ‘도와준다’고 생각지 않고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할마 할빠’ 없이는 육아 할 수 없는 사회
한 인간을 기르는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워킹맘’이 되겠다는 건 순진한 꿈이었다

 

그런데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여전히 이 사회는 ‘가장은 회사에 시간을 바치라’고 말한다. 회사에 시간을 바쳐야 하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내줘야 한다. 그 비는 시간을 메우는 건 ‘칼퇴’하는 엄마들이거나 조부모이거나 ‘퇴사’한 경단녀다. 주말에 공원이나 키즈카페에 놀러가 ‘좀비’ 표정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아빠들을 본다. ‘저 사람들은 어제 몇 시에 퇴근했을까.’ 엄마들은 일과 육아를 하다가 소진되고 아빠들은 회사에 시달리다 소진된다. 그렇게 체력 분배를 하기 어려운 구조에서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얼마 전 대학 후배를 만나 이야기를 하다 문득 슬퍼졌다. 후배의 아내는 ‘육아 지원군’이 없어서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후배 아내가 동네에서 사귀던 친구들도 복직해서 아이와 하루 종일 둘이서 지내는데, 후배가 퇴근만 하면 우울함을 계속 토로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독박육아’의 상황으로 곪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그 와중에 후배는 회사 TF에서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라 매일 밤에 퇴근했고 부부 갈등이 심해졌다. ‘회식 금지법, 야근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아내의 성토에 ‘나도 괴로운데’라는 말을 삼키던 후배는 결국 회사를 옮겼다. 한 팀장의 조언을 듣고 난 뒤였다. “일도 잘하는데 자꾸 육아 때문에 일을 후순위로 미룬다는 인상을 주지 마라”는 조언이었다.

 

“심지어 여자 팀장이었어요. 같은 아파트 사는 언니들이 팀장님의 아이들을 다 키워줬거든요. 그런데 우리 부부는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요. 어쩌라는 건지. 그리고 아이 기르는 일보다 왜 회사 일이 더 중요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아이를 낳고나니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다. 애를 한 번도 안 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게 분명한 말들. “자기 애만 중요하고 회사 일은 나몰라라 한다”고 험담하던 목소리들. 그런 말들이 횡행했던 시절 어떻게 숨죽여 회사를 다녔을까. 아이 기저귀도 한 번 안 갈아봤을 게 분명한 정치인들이 ‘애를 많이 낳은 순서대로 비례대표를 줘야 한다’는 헛소리를 할 때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아이가 안 태어나는 거야.’

 

■ ‘부모’에게 시간을 주면 된다

나처럼 친정 부모님이 육아를 도와주는 환경은 한국 사회에서 ‘복 받은 상황’이다. 적어도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도대체 부모님은 무슨 죄인가. 우리 엄마 아빠는 왜 무릎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에 육아를 해야 하는가. 주변을 보면 자식들 육아를 도와주기 위해 지방에서 원정(?) 오는 할머니 때문에 노년의 기러기 부부도 적지 않다. 왜 자식들 육아 때문에 조부모들이 떨어져 살아야 하는가. 한편 이런 조부모의 존재가 ‘육아 지원군’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역차별이 된다. 결국 가족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는 증거다. 저출산이 심화되는 10년 동안 국가는 엉뚱한 곳에만 돈을 썼다는 증거다.

 

주변 많은 부부들이 첫째를 낳은 뒤 고군분투하다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면 극심한 갈등을 겪고 둘째는 포기한다. 합계출산율 1.06명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하나를 낳아봤더니 키울 수가 없는 구조. 아빠는 회사와 아내 사이에 끼여서 어쩔 줄 모르고 엄마는 눈치 보며 칼퇴하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면 원망할 대상을 찾지 못하다가 남편을 원망하는 악순환. 부모가 힘을 합쳐서 아이를 기를 수 있게 하면 되는데. 그 쉬운 방법을 모르는 건지. 아는데도 그렇게 해주려면 어려우니까 포기한 건지. 엄마가 된 나는 늘 궁금했다. ‘선배들은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구조를 버텨냈을까. 정말 존경스럽다. 어쩌면 우리 세대는 저출산이 심각해지니 발언권이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아버지는 늘 새벽에 출근해서 밤 11시 넘어 퇴근했다. 그게 1980~1990년대였다. ‘주 6일’간 그렇게 일했으니 주당 80시간 넘게 일만 하면서 산 것이다. 그 대가로 나는 아버지와 함께 보낼 시간을 내줘야 했다.

도대체 이렇게 긴 노동시간으로 득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주 5일이 도입될 때 경제가 휘청거릴 거라고들 했다. 그렇게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겁을 주더니 지금은 어떠한가. 7월부터 ‘주 52시간 시대’가 시작된다. 인간다운 삶, 우리는 꿈꿀 수 있을까. 거창한 삶을 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삶. 가족들이 얼굴을 보는 삶. 그런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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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아이맘 2018.06.20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슷하게 아이 둘을 키우고, 맞벌이를 하며, 친정 부모님에게 오후 육아를 맡기는 엄마이자, 직장인입니다.
    글자 하나하나 눈에 담에 되고, 의미를 곱씹게 되네요.
    적어도 20대의 나는, 여자와 남자가 차별받지 않으며, 아이를 낳고서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될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를 낳고 보니, <복귀>가 그렇게 어려운건지, 아니 눈치를 봐야 하는건지 몰랐습니다. 둘을 낳으면 여자가 아니란 말도 들었고, 그러게 둘째는 왜 가져서. 라는 말도 들어야 했습니다. 아이를 가진게 "죄"가 될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죄라며 왜 나의 애미 애비가 애써 보듬아 주는지, 왜 나의 애미 애비가 대신 울어주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슬프게도 아직 우리의 20대와 같은 세상은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 생각합니다. 생각이 변했고, 변하고 있으므로 그 "변화"가 퇴적되다 보면 걷기 편한 길이 만들어질거라 믿습니다.
    그 길 위에 우리의 아이들이 걸길 바래 봅니다.

둘째 아이가 욕실에서 넘어졌다. 뒤로 벌러덩. “이준아, 엄마가 잡으러 간다!” 장난을 치다가 욕실에 발을 내디딘 아이가 미끄러진 건 순식간이었다. 아이가 욕실 안까지 뛰리라고 생각 못하고 뒤따라가던 나와 욕실에서 아이 씻길 준비를 하던 남편은 굳어버렸다. 넘어지는 순간 욕실 타일 바닥에 뒤통수가 ‘딱’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아이는 10분 넘게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안고 있던 내 손은 점점 차가워졌다. “그렇게 장난치면 어떡해!” 나를 원망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쳐갔다.


 

퇴근 후에도 휴대폰으로 업무를 챙기다
아이에게 집중하자 생각한지 5분 만에
둘째 아이가 욕실 바닥에 미끄러졌다

 

장난치기 5분 전까지 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퇴근했지만 휴대폰으로도 볼 수 있는 회사 뉴스 데스크 시스템을 들여다보며 체크해야 할 기사들을 확인했고 남편이 “집에서는 휴대폰 좀 그만 봐”라고 할 정도였다. 그 말에 민망해서 “아직 못 고친 기사가 있다”고 항변했다. 이제 휴대폰을 그만 보고 아이에게 집중해야겠다 생각한 직후, 아이가 넘어졌다. ‘이준이가 좋아하는 잡기놀이부터 시작해야지’ 했다가 이어진 사고. 이제 겨우 23개월이 지난 아이, 응급실에 가야 하는 것인지 울음이 잦아들길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긴 한숨을 쉬었다. 나를 원망하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일부러 그랬어?”라며 화를 냈다.


 

서운했지만 억울하진 않았다. 집에 와서도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지 오래고 그 때문에 계속 죄책감을 느껴왔다. 남편에 대한 원망보다는 내 행동에 대한 후회가 이어졌다. 넘어진 아이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뒤 잠을 재웠고 아이들을 재운 뒤 혼자 일어나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 건가’라는 생각을 ‘또’ 했다. 아이가 넘어진 건 사고였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만 집에 와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일을 확인하던 내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아이들과 있는 시간에도 일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죄책감.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무엇을, 누구를 위해서.’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 엄마 욕심으로 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를 낳은 후부터는 일하는 이유를 하나씩 소거하게 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일하는 이유도 다양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많은 이유가 남아 있지 않다. 어쩌면 아이를 기르는 시간과 맞바꾼 이 시간. 재취업이 쉽다면 난 이렇게 아득바득 일을 했을까. 아이를 기르는 시간과 맞바꾼 내 시간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멍해진다.


 

일곱살 첫째는 주말마다 말하곤 한다
“근데 내일이면 엄마는 다시 없겠지?”
내가 일하는 건 다 내 욕심이었던 걸까

 

엄마가 회사에 가는 게 싫은 이유를 여럿 댈 수 있을 것 같은 7세 첫째는 지난 주말에도 말했다. “엄마, 하루 종일 엄마랑 있으니까 너무 좋다. 그런데 내일이 되면 엄마는 다시 없겠지?” ‘없다’는 말에 덜컥 해서 “없긴 뭘 없어. 밤에 오잖아”라고 대꾸하니 “밤 너무 늦게 오니까 엄마랑 놀 수가 없잖아. 엄마랑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데.” 아이가 내가 회사 간 시간을 ‘없다’고 생각한다는 게, ‘너무 늦은 밤’에 온다고 생각한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늘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집중 못하는 엄마랑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아이. 두진아, 엄마가 밤이 아니고 너희들 저녁 먹일 수 있는 시간에 돌아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치원 끝나면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면 할머니 도움 없이도 너희들을 키울 수 있을 텐데.


 

둘째 육아휴직 후 복직한 지 9개월이 지났다. 일에는 어느 정도 적응을 했고 가끔은 신이 났다. 성취감을 느낄 때도, 동료의 고마운 마음을 느낄 때도 있었다. 두 번의 육아휴직 동안 육아가 얼마나 ‘빡센’ 일인지 알게 된 나는 “역시 육아보다는 일이 쉽지”라고 노래를 부르며 회사에 나오는 아침을 고마워했다. 한편 일은 여전히 내 존재를 증명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두진이, 이준이 엄마가 아니라 ‘임아영’으로 불리는 일은 말할 수 없이 소중하니까.


 

다만 이 모든 게 ‘내 욕심’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 땅속으로 가라앉는다. 아이가 넘어졌을 때 나를 원망했던 남편이 다음날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을 때 나는 기분이 바닥인 채로 브리핑을 받아치고 있었다.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고 겨우 답장을 했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없는 건 아닐까.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어줄 자신도 없으면서 둘이나 낳은 건 결국 내 욕심이었는데.” 거기까지 썼는데 눈물이 책상에 뚝뚝 떨어졌다.


 

 

■ 다른 삶을 꿈꾸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 욕심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주지 못한 것은 노동시간이 길어서다. 알면서도 자꾸 내 탓을 하게 될 때, 이 사회가 전부 엄마 탓을 해도 나는 그러지 말자고 되뇌어도 어느 순간 나도 내 탓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끝까지 내 일을 지킬 수 있는지 걱정한다. 그러면서 ‘일이 도대체 뭐라고’ 말하면서 자기부정하는 분열 상태.


 

긴 노동시간을 벗어난 삶을 꿈꿔본다
하지만 그건 욕심이라고 말하는 사회
일을 그만두는 상상에 가끔 악몽을 꾼다

 

지금 상황이 괴로우니 아예 인생을 ‘리셋’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주 상상한다. 첫째를 낳고 회사에 돌아왔던 2014년에는 답답한 마음에 남편과 지방의 작은 마을에 가보기도 했다. 도시 사람들이 많이 내려와 정착한다는 마을에 들러 우리가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삶을 꿈꿀 수는 없을까. 아예 둘 다 일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디자인해볼 수는 없을까. 한 사람만 일하거나 두 사람이 시간을 나눠 5~6시간씩 일하는 방법은 없을까. 집값만 낮아져도 손써볼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이제는 그 상상이 현실이 되기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때 한 명이었던 아이는 두 명이 되었고 서울을 떠나서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 더 근본적으로 나는 삶을 크게 바꿀 용기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용기가 없다고 꿈꿀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꿈을 꾸며 출근한다. 내 꿈은 단순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그러나 이 사회에서 엄마가 그런 꿈을 꾸는 건 ‘욕심’이라 말한다. 이 구조에서 내가 일을 열심히 하려 한다는 것은 결국 아이들과 함께해야 하는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일이 재밌다고 느낄수록, 일에 좀 더 몰입할수록, 퇴근 시간이 늦어질수록 나는 아이와의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 그래서 일이 재밌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모두 다 일을 조금만 하면 좋을 텐데.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아내가 집안일과 육아를 다 해결해주는 남자처럼 일을 할 수는 없는데.


 

언젠가는 이 균형이 확 깨지지 않을까. 지금은 첫째 한 명이지만 둘째까지 엄마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계속 소거하다가 결국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면. 일을 그만둔 나를 상상해보다 가끔은 악몽을 꾼다. 어떤 꿈에서는 아이가 울면서 집에 혼자 돌아오고 있고 어떤 꿈에서는 회사를 그만둔 내가 울고 있다.


 

■ 사라진 언니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최근에는 병이 났다. 과도한 집중이 몰고 오는 두통과 구토. 점점 심해져서 진통제를 사먹으려고 편의점에 들렀다가 아이들을 돌보기는커녕 내 자신도 돌보지 못하고 있구나 싶었다. 몸부터 돌보라는 신호다. ‘이것은 지속가능한 삶인가.’ 첫째를 낳고 회사를 다니던 때 밤마다 잠을 못 자는 두진이를 붙잡고 생각하던 질문. 둘째를 낳고 달라졌는가. ‘이것은 지속가능한 삶인가.’


 

이 삶을 바꾸고 싶어서 지난해 창립한 ‘정치하는 엄마들’이라는 단체에 회원으로 참여했다. 엄마들이 겪는 일상의 불합리를 정치를 통해 직접 해결하자는 비영리단체다. 조금씩이라도 바뀐다는 희망을 잡고 싶었다. 그러나 복직하고나니 일에 치여서 단체 소식에도 관심을 갖기 어려워졌다. 아이들 볼 시간도 없는데 무슨 단체 참여를 하겠나. 한국의 시민사회단체 참여율이 왜 낮은지 이렇게 몸으로 체감한다. 이제 회원들에게 안부를 묻기도 민망해진 차에 “보고 싶어요”라고 먼저 말 걸어준 언니에게 “잘 지내느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이 왔다. “보고 싶어요. 우리 ‘시간 거지’인 만큼 만나서 시간 신경 안 쓰고 여유롭게 쫓기지 않고 이런저런 얘기 하고 싶어요.”


 

내 몸도 돌보지 못하는 ‘시간 거지’의 삶
야근 중 도착한 그림 속엔 “빨리 오세요”
‘언니’들도 이렇게 일터에서 사라졌겠지

 

울컥했다. ‘시간 거지’인 엄마들이 보고 싶어도 만나기 어려운 구조. 결국 이 노동환경에서 나가떨어지면 ‘경단녀’가 되어야 하는 구조.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눌 수 있다면. 오전에 출근하는 엄마가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오후에 퇴근하는 아빠가 아이들을 하원시킬 수 있다면. 할머니나 시터 이모님 도움 없이 부부 힘만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다면.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아이들이 내 퇴근만 기다리지 않을 수 있다면.


 

첫째가 다니는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보내준다. 야근 중에 그림 파일(사진)이 왔다. 선인장을 본떠 그린 그림으로 만든 편지지에 두진이는 글씨를 썼다. “엄마, 회사에서 빨리 오세요.” ‘아, 엄마는 야근 중인데…’ 먹먹한 마음이었는데 여자 후배가 “선배 잘 지내세요? 아이들은 잘 커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순간적으로 아이 그림을 보여주려다 멈추고 “응 그럼”이라고 대답했다. 난 버틸 수 있을까. 버티지 말고 싸우자고 생각했지만 결국 버티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 비관을 걷어내는 건 너무 어렵다.


 

수많은 ‘언니’들이 이렇게 일터에서 사라졌겠지. 나는, 그리고 여자 후배들은 사라진 그 언니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181657005&code=210100&sat_menu=A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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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감한표 2018.05.24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나도 공감합니다. 하물며 전업주부도 시간거지라 몸 못 챙기는 판에..워킹맘은 어떨지...ㅠㅜ
    근로시간이 너무 길어요.너무너무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8.05.25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 건 노동시간의 문제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주52시간 시행되고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은데...ㅠㅠ 아이들과 부모 모두 저녁을 매일 먹을 수 있는 날이 얼른 오길요. 댓글 감사해요.

  2. 커리어우먼의 딸 2018.05.24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벌이부모님 밑에서 자란 저와 남동생. 유치원때 시절 몇번 외에는 단 한번도 엄마께서 직장을 그만두길 원했던 적이 없어요. 새벽 두, 세시까지 자기개발을 위해 공부하시고 일하시는 어머니를 옆에서 보면서 외려 그것이 자랑스러웠고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 부터, 일단은 '내가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에 대해 일찍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라고 생각됩니다. 아이입장에서 말씀드리면 (물론 아이마다 좀 다른 것도 있지만요), 부모의 아주 넓은 울타리 안에서의 '방목'은 외려 생각을 크게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부모의 역활은 초원같은 울타리안에서 약간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닌 가 생각해요. 님께서 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이끌어 가시는 모습이 외려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이 될 것이니, 그런 부분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힘내세요! 다만 우리나라의 회사체제라던가 환경이 많이 바뀌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8.05.25 1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감사합니다. 많은 위로가 됩니다. 우리 아이들도 커서는 그러겠죠? ^^;; 그러면서도 노동시간을 줄이고 회사에서 분위기를 바꾸는 등 노력을 해야하겠죠. 그렇게 하다보면 아이들이 아이들을 키울 때는 훨씬 나아질 거라고 믿어요. 댓글 감사해요. ^^

  3. 마음의짐 2018.06.04 0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 역시 워킹맘으로서 비슷한 상황인데요.. 전 그럴때 남편이 원망스럽습니다. 제가 야근할 때 남편이라도 일찍 와줘서 애랑 놀아주면 좋겠는데.. 남편은 월화수목금 매일 야근이고, 저는 고생하는 친정엄마 맘에 걸려서 야근 해야해도 못하고 부리나케 집에 와서 애 놀아주고 애 자면 일하고.. 왜 여자만 이렇게 맨날 동동거리고 부대끼고, 이 모든게 다 제 책임 처럼 느껴지는 죄책감을 달고 살아야 하는지..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8.06.16 2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저도 첫째 낳고는 남편과 갈등이 심했어요. 친정 옆동으로 이사오고 갈등이 좀 잦아들었는데... 친정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은 평생 씻을 수 없겠죠ㅠㅠ 이 사회는 부부가 힘을 합쳐 아이를 키울 수 없게 하는지. 정말 답답합니다. ㅠㅠ 그래도 힘내세요. 같이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