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돌이 되었다. 형은 돌잔치를 했는데 동생은 지나칠 수가 없어서 돌상을 차리고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그것만 해도 할 일이 넘쳐나 너무 바빴다. ‘... 난 이 집의 집사인가, 매니저인가싶을 때 우울하다. 아이들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으니 뭐든지 엄마 손이 필요하다. 밥을 먹어도, 옷을 입어도, 심지어 화장실을 가는 일도. 기저귀를 차는 둘째는 말할 것도 없고 첫째도. 아 왜 이렇게 인간은 무력한 존재로 태어나는 것인가.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 조금 있으면 걸어(?)다니고 혼자 밥 먹고 자립하던데 왜 이렇게 인간은 모든게 오래 걸리는가. 첫째를 낳았을 때 했던 쓸데없는(?) 의문은 여전히 똑같다.

 

둘째 기저귀를 갈다가 물 달라는 첫째에게 떠다 먹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참고 물을 따라준다. 그 사이 둘째는 안아주지 않는다고 칭얼대고. 내 팔이 여덟 개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다 내가 세 명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한 명씩 안아주고 한 명은 집안일 하고 책도 볼 텐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오래 한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간다. 이제 두 달 반 남았다. 첫 번째 휴직 땐 하루빨리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다. 말 못 하는 아이와 하루 종일 있다 보면 우울함이 몰려왔다. 동네에서 친구 한 명도 못 만들고 네트워크가 쪼그라들어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던 하루하루 놀이터를 빙글빙글 돌면서 서글펐다. 왜 아무도 엄마 노릇이 이렇게 외롭다고 알려주지 않았나.

 

그런데 두 번째 휴직 땐 친구가 생겼다. 바로 우리 첫째. 6세가 된 우리 집 꼬마가 말을 하면서 하루종일 심심할 새가 없다. 이유식을 만들던 날이었다. 오후에 2시간 정도 싱크대 앞에 서 있느라 첫째가 놀자고 하는데 두 번인가 거절했던가. 밤에 재우려고 누웠는데 괜히 미안해서 두진아, 엄마가 오늘 이유식 만드느라고 레고 같이 못 만들어서 미안해.” 첫째가 대답했다. “괜찮아.” 너무 담담한 대답에 괜찮아?”라고 물으니 첫째는 말했다. “엄마가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그 말을 듣곤 눈물이 죽죽.

 

첫째는 로맨틱하기도 하다. “엄마 주머니에 하트가 있어.” “?” 내 주머니에서 첫째의 작은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이 작은 하트를 만들고 있었다. 아 남편보다 로맨틱한 아들. 이러니까 아들 키우면 연애하는 기분이 든다고 하는구나 싶다.

 

돌잔치 때 찍은 전문가 버전 형제 사진.

 

말하는 아이와의 상호작용이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종알종알 떠드는 꼬마의 입술을 보고 있자면 세상이 갑자기 평화로워진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런 평화로움을 느껴보지 못했다. 나는 자주 우울했고 자주 불안했고 화를 다스리지 못해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나를 조금 달라지게 만들었다. 아이에게 불안한 지지대가 되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이한테 제일 많이 해주는 말은 괜찮아. 두진아, 넘어져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조금 다친 건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등등. 그러다 보면 나도 괜찮아지는 기분.

 

어제 둘째가 내 팔을 물었다. 이가 여섯 개 난 둘째는 가끔 세게 문다. 악 소리가 나서 일부러 엄살을 부리며 첫째에게 엄마 너무 아파엄살을 부리니 괜찮아, 엄마라면서 토닥토닥 해준다. “엄마 안아줘 두진아하니까 작은 팔로 엄마를 안아준다. 아이의 작은 팔에 안길 때면, 아이가 내 목을 끌어안을 때면 왜 그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뭉클해서일까. 이제 엄마를 위로할 수 있게 된 첫째, 그리고 돌 갓 지난 둘째. 아들들을 안고 있으면 그 품 안의 세상은 따뜻하다. 따뜻해서 눈물이 난다.

 

물론 이런 말도 한다. 요즘 복직 전 체력 단련으로 근력운동을 하는데 내가 근력운동을 할 때마다 옆에서 따라하는 첫째. 하도 귀찮게 해서 근력운동 동영상을 못 보게 하니까 ? 이유가 뭔데? 왜 못 보게 하는 건데?” 따박따박 따진다. 이제 54개월인데 이유가 뭔데라니... 엄마 말투 따라하지 마라. 매일 엄마 말투를 따라하며 하면 돼, 안돼?”라며 동생에게 훈계하기도... 나중엔 얼마나 따박따박 따질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이들과 하루종일 있는 게 힘들다고 투덜거렸지만 복직이 코앞에 다가오자 걱정이 많이 된다. 난 일과 아이들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을까.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짧아지는 걸 메울 수 있을까. 아니 아이들과 하루종일 있었던 좋았던 시간을 그리워하게 되면 어쩌지...

 

어쩌면 내가 제일 걱정하는 건 마지막에 적은 문장이다. 이 시간을 그리워하게 되면 어쩌지. 이 작은 존재들이 내게 만들어줬던 행복한 순간들이 자꾸 그리워지면 어떡하지. 하루하루 커버리는 이 작은 존재들이 그리우면 어떡하지.

 

부모가 되면 사랑을 많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뚝뚝했던 부모님보다는 애정을 많이 표현하는 따뜻한 엄마가 되어야지 생각했다.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해줘야지, 자주 안아줘야지, 잘하는 일은 몇 배로 칭찬해줘야지. 그런데 막상 낳아보니 정작 사랑을 받는 건 나였다. 엄마를 향한 맹목적 애정. 아빠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따라갈 수 없는 엄마에 대한 애정. 내 뱃속에 열 달을 살아서일까. 둘째 돌잔치날 원피스를 입은 내게 첫째가 말했다. “엄마, 너무 예쁘다. 공주님 같아.” 아 누가 날 이렇게 예쁘다고 해줬었나두진이는 엄마랑 결혼할 거야를 입에 달고 산다. “엄마는 아빠랑 이미 결혼했어라고 하면 아는지 모르는지 결혼하겠다고 우긴다. “나랑 다시 하면 되잖아~” 속으로는 나중에 여자친구 생겼다고 엄마는 신경도 안 쓸거 다 안다그러지만 내 입은 늘 웃고 있다.

 

엄마가 사랑을 많이 줘야 아이들이 쑥쑥 크는 줄 알았는데... 사랑을 받는 건 오히려 엄마인 나였다. 아이들에게 받았던 이 무한 애정을 잊을 수 있을까. 이 작은 존재들의 절대적인 애정과 지지, 아이들의 눈에서 발견했던 절대적 애정을 보고 느꼈던 감동과 행복을. 누가 날 이렇게 조건 없이 좋아해줬을까. 어린 시절 엄마? 아빠? 지금 이 시간들을 그리워하는 날이 오겠지. 이 작은 존재들이 나를 이렇게 좋아해줬던 순간 순간.

 

엄마는 항상 내 자신만 소중한 사람이었어. 연애를 해도 내 감정만 소중해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 적도 많았지. 그런데 너희들을 낳고 나서 정말 너희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게 되는 스스로를 보면서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많이 생각했단다. 너희들이 충만한 일상을 누리길, 어려움이 닥쳐와도 굳건하게 맞서고 유연하게 힘들어하길. 일상의 순간순간 평온함이 깃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좋아하는 것이 뭔지 찾을 수 있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다른 사람과 그 좋아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엄마는 그 과정에서 엄마가 실패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며 함께 할게. 뒤에 있을게. 언제나 지켜보고 있을게. 회사 가서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엄마는 너희를 생각하고 있을 거야. 미안하고 고마워. 이렇게 부족한 엄마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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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발바닥 2017.06.02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마는 사랑을 이야기 하는군요. 아이셋둔 아빠(저)는 아이들 행복하게 되길 희망하다보니 사람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살이를 이야기할때는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되고, 아이들이 좀더 살기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 참여도 많아졌으니 말이죠~~^^ 이 시대 부모들 모두 화이팅~~

  2. Favicon of https://praguelove.tistory.com 프라하밀루유 2017.06.02 20: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해외에서 18개월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 엄마에요. 많은 부분 공감이 가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읽었네요.

    외국에 있어서 저만 혼자 유모차 끌고 공원과 놀이터를 전전하는 줄 알았는데, 엄마들은 다 외롭나봐요 ㅠ.ㅠ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6.05 2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엄마들은 외로운가봐요ㅠㅠ 그래도 아이가 크면 친구가 되어주더라고요. 그게 36개월 지나면 급속도로 친구가 되어준 느낌요~~ 18개월이면 한창 힘드실땐데... 기운내세요!!

  3. 조이 2017.06.02 2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라하님 힘내세요

  4. 도윤맘 2017.06.02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첫째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외롭다는 구절에 공감하며 아 내가 그렇구나 문득 깨달았어요.
    이 밤에 많은 위로를 받고 갑니다.

    글쓴이의 말데로 사랑 받고 있다는 거
    날이 갈수록 많이 느껴요.
    다시 오지 않은 이 타임을 토닥토닥 위로하며
    다시 시작 되는 내일도 힘내요 파이팅❤️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6.05 2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아이의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요. 둘째 보면... 우리 막내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 내가 키우는 마지막 아기...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여유가 많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

  5. 고마리 2017.06.03 1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너무 아름다우신 두 아드님의 엄마!!
    님처럼 이렇게 견고하고 성숙한 사랑을 느낄 줄 아는 엄마의 아들들은 미래에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훌륭한 이 나라의 역군이 되어줄 것입니다.

    저도 엄마가 되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되었지요. 그래서 겁도 없이 셋이나 낳았고 직장다니면서 키우느라 많이 힘들었지만 너무 예뻐서 행복했더랬습니다. 엄마가 자녀에 대한 사랑을 느껴 본 사람들은 최소한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을거라고...남은 시간들도 아낌없이 사랑하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정 이루시길 축복하며 응원합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6.05 2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와 셋을 직장 다니면서... 정말 멋지십니다!! 맞아요. 아이에 대한 사랑을 느껴본 사람들은 최소한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을 거라는 말 공감 백개입니다. 아이의 눈을 보고 그러기는 정말 어려울텐데요. 이 마음을 잊지 않고 늙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

  6. 박신혜 2017.06.03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기억하시나요? 서강대에서 같이 수업들었던 박신혜에요.
    저도 10살짜리 딸을 키웁니다.
    정말 와닿는 글이에요^^그래서 아는 척 하고 갑니다^^

  7. 유림아빠 2017.06.03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그래요. 애들이 엄마 아빠 사랑을 받으면서 크기도 하지만 부모가 아이들에게서 받는 사랑과 배움도 정말 많죠.
    좋은 글 감사드려요.

  8. 2017.06.05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재민재희맘 2017.06.09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읽으며 눈물이 죽죽 흐르네요
    공감 공감 대공감 ㅠㅠ
    힘들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니 육아의 행복과 감사의 에피소드도 있었구나 떠올리게 되네요
    우리 아들들 멋지게 키우자구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7.30 14: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고마워요 지혜씨. 1년간 아들들한테 받은 사랑으로 복직 후에 버티게 될 것 같아요. 또 밤에 아들들 안고 자면서 힐링하고. 생각보다 육아가 체질?인가요?ㅋㅋㅋ 우리 아들들 멋지게, 예쁘게 키워요 ^^

'응답하라 1994' 요즘 인기 엄청나죠.

저도 '응사' 팬 중 하나입니다.

 

좀 다른 점은

다들 '쓰레기'냐, '칠봉이'냐 한다면...

 

저는 '포블리'!! 라인입니다. ㅎㅎㅎ

 

 

 

 

<응답하라 1994> 홈페이지 캡처

 

삼천포-윤진 라인!

 

'포블리'는 삼천포의 애칭이죠.

삼천'포'와 러'블리'를 합쳐 만든 말.

 

정녕 블리블리 '포블리'입니다.

 

어제도 전 IPTV로 포블리와 윤진이 나오는 장면만 다시 봤습니다. 1회부터 쭉~!

 

왜 전 주인공인 나정-쓰레기-칠봉 라인이 빠지지 않고

포블리 라인에 빠졌을까요?

 

 

 

ㅎㅎㅎ

답은 쉽게 찾았습니다.

 

응사 7회를 보던 날인가요.

남편의 대학 친구가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남편의 새내기 시절을 함께 한 친구죠.

 

통화하던 남편이 갑자기 웃음 반, 항의 반으로 외칩니다.

"내가 무슨 삼천포고!"

 

ㅎㅎㅎㅎㅎㅎ

그때 깨달았습니다.

 

'우리 남편, 삼천포랑 닮았다'

 

 

 

 

 

외모가 닮았다는 게 아니고요. 캐릭터입니다, 캐릭터. (남편 미안...)

아무리 남편이 삼천포가 아니라(캐도) 닮았음.......

 

'누런돼지'는 경북 구미가 고향입니다.

전 결혼하고 처음 구미에 가본 '서울 녀자'고요.

 

남편은 10여년간 서울에 살면서 서울 사람이 다 됐다 하겠지만

구미에 가면 사투리 마구 튀어나옵니다.

덕분에 저도 시댁에 다녀오면 일주일 정도는 구미 사투리를 따라하게 되지요(무의식 중에) ㅎㅎ

요즘엔 삼천포 때문에 사투리를 따라합니다..... 포블리

 

 

 

<응답하라 1994> 홈페이지 캡처

 

 

극 중 삼천포는 '경남 삼천포'가 고향이지요. 그래서 삼천포.

경상도 남자 특유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무심하지만 진득한, 무뚝뚝하지만 정감 있는, 느리게 행동하지만 따뜻한.

 

삼천포도 그렇습니다.

 

어리버리, 무심, 꼼꼼.... 그런데 따뜻하죠.

 

첫 회에서 신촌하숙까지 오기 위해

서울역-신촌역-택시-그리고 하숙집 앞 전화부스.

식은땀 삐질 하던 삼천포를 보며

"남편도 그랬나" 했었죠.

 

아니랍니다. 길 잘 찾았대요. ㅎㅎ

 

 

 

경향신문 입사 동기인 저희 부부는

아마 '사령장'을 받았던 2008년 10월 1일이 처음 만난 날일 거예요.

사령장을 받고 바로 3박4일간 합숙 교육을 받으러 갔었는데요.

 

그 3박4일 동안 저는 남편과 줄곧 같은 조였습니다. 조모 동기랑 셋이요.

그런데 남편과는 별다른 대화를 했던 기억이 없습니다. 워낙 말수가 적어서요.

계속 조모 동기랑 수다수다 했던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기억은 딱 하나.

"왜 쟨 저렇게 말이 없지?"

 

ㅎㅎㅎ

남편은 새벽 2시부터 말문이 터지는 스타일입니다.

워낙 말을 많이 하는 걸 꺼리는 성격이라 술을 좀 마시고나야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그때는 다들 집에 돌아가고 싶어하거나, 자고 싶어할 시간이죠 ㅠㅠ)

 

그래서인지 입사 이후 1년, 남편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남편을 좋게 본 계기가 있었는데요.

바로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심함 뒤의 따뜻함'을 느낀 순간이었죠. ㅍㅎㅎ

 

회사 일에 지치고 힘들었던 퇴근 길이었습니다.

그날 따라 '절친'들이 제 전화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특히 항상 회사 고민을 터놓던 김모 동기, 조모 동기가 제 전화를 받아주지 않았기에

항상 후순위였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술 마시고 있던 남편은 제 얘기를 듣는둥 마는둥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얼른 전화를 끊었죠.

 

그리고 5분 후 문자가 왔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금 고민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거다.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별 대단한 내용의 문자도 아니었지만

그 문자가 남편을 '무심하기만 한 건 아니군'이라고 생각하게 해줬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연애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간이 좀더 흘러서.... ㅎㅎ

 

 

 

 

삼천포를 보고 있으면 그때의 남편 문자가 생각납니다.

 

무심하지만 따뜻한 남자.

 

 

tvn 캡처

 

 

윤진의 엄마가 서울에 올라와 터미널에서 무작정 딸을 기다리고 있을 때

해태는 전화를 무시하지만

삼천포는 '자전거 여행을 갔어야 했음에도' 터미널에 가죠.

 

그리고 윤진의 엄마가 '말을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윤진이 술자리에서 자신의 비밀(?)을 말할 뻔한 순간에서 입을 막아주죠.

 

아 '포블리'답습니다.

 

아침에 SNS에 '포블리 원츄'라는 글을 남겼더니

한 선배가 삼천포의 성격을 대번에 정리해주셨습니다.

 

"남 앞에선 시비 걸면서 남 몰래 잘해주는 무뚝뚝 귀요미였단 뜻?"

 

ㅎㅎ

 

남편이 남 앞에서 시비 거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하도 티가 안 나 저한테 잘해주는 건지도 몰랐습니다.

 

지금도 가끔 전 불리하면 "남편 너무 무심함"이라고 1차 경고를 보냅니다.

그럼 남편은 '무뚝뚝' 모드에서 '잘해주는' 모드로 바로 변신.

 

경상도 남자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삼천포'가 표현하는 경상도 남자 특유의 분위기, 참 좋네요.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런가봅니다.

연애하던 생각.ㅎㅎ

 

연애는.... 이제 남의 꿈... 이니까요 ㅠㅠ

 

이제 저는 한참 싱크대, 찬장, 젖병소독기 등에서 '엄마 물건 탐험'에 빠진 아드님을 돌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포블리와 윤진의 키스신~을 마무리로.

 

 

 

 

 tvn 캡처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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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블리포블리 2013.12.13 18: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글을 너무 예쁘게 쓰시네요 ㅎㅎ 남편분이랑 평생 알콩달콩 포블리-윤진이 같이 러블리한 사랑하시길 ! ㅎㅎ

  2. 지언 2014.01.09 1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좋아요.티격태격 포블리 사랑....일출 키스...


화이트데이입니다. 어떤 밤을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좀전에 퇴근해서 집입니다. 오늘 저녁 약속이 취소돼서 일찍 들어왔습니다.
'누런돼지'도 다른 약속이 있어서 오늘은 조금 늦는다고 하네요.

지난주에 약속을 잡을 때만 해도 오늘이 '화이트데이'인지 기억도 못 하고 있었는데
새삼 약속이 취소되고 혼자 집에 돌아오는 길, 그 '데이'를 깨닫고
감기인 아내를 집에 두고 술을 마시는 남편을 살짝 원망했습니다.(코감기에 훌쩍거리고 있거든요;;)
ㅎㅎ

그런데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한지.
남편은 아침 출근 직전에 이미 선물을 줬습니다.
나름 '서프라이즈'라며 식탁에 어색하게 선물을 내려놓더군요.
(저는 사실 식탁에 내놓기 전, 제가 일어나자마자 작은 방 책상에 선물을 펼쳐놓은 걸 봤습니다;;ㅎㅎ
어설픈 누런돼지...그런데 아마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아침에 선물을 주는 '공격'을 펼친 걸지도 모릅니다.
은근 꼼꼼합니다...ㅎㅎ)



꼼꼼한 누런돼지가 얼마나 고심해서 샀을지 예상되는 선물이었습니다.
이 선물을 사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들어가 이것저것 따져봤을 장면이 상상이 됐습니다.
그 장면을 생각하며 마냥 마음이 고마웠어요.

편지를 읽으며 따뜻한 마음으로 출근했는데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퇴근하는 길, 약속 때문에 늦는 누런돼지에게 서운해 하는 마음은 뭘까요?
저도 원래 약속이 있었고 게다가 저는 발렌타인데이 때 선물은커녕 초콜릿도 주지 않았는데 말이죠.
ㅎㅎㅎ 부끄럽습니다... 너무 간사하네요. ㅡㅡ;;



언젠가부터 저는 연애나 결혼이 '시뮬레이션'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배우는 시뮬레이션.
그게 영화든, TV 드라마든, 연애 소설이든, 웹툰이든 뭐든.
우리가 자연스럽게 행하는 연애의 관습이라는 게
미디어를 통해 배우는 시뮬레이션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요.

사귄지 100일이 되면 이벤트를 하고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를 챙기고, 매달 14일마다 돌아오는 무슨무슨 기념일을 챙기고 서로의 생일도 챙겨줘야 하고 크리스마스 때는 꼭 함께 있어야 하고 등등등.

결혼하기 전에 여자는 남자에게 프로포즈를 받아야 하는 것도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죠.

TV 드라마에서는 (재벌) 남자가 레스토랑을 빌려 (서민) 여자에게 노래를 부르며 "결혼해줄래요"를 외치거나
(업체에서 협찬받았을 게 분명한) 다이아반지를 내밀며 여자에게 끼워주죠.

제가 결혼할 때도 친구들은 제게 물었습니다. "프로포즈는 받았어?"
ㅎㅎㅎ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촌스럽게 프로포즈는 뭐... 내가 하면 되는 거 아냐?"
라고 말했습니다.


머리로는 저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뜸을 들이면서 프로포즈를 하지 않는 '누런돼지'에 대한 원망이 서서히 커져갔죠.

미디어를 통해 주입받은 시뮬레이션이 연애의 진정성과는 크게 상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 시뮬레이션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누런돼지'는 결국 결혼식 이틀 전인가에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신혼집에 데려와서 (이미 혼수로 사서 설치해뒀던) TV에 손수 만든 영상을 보여줬습니다.
ㅎㅎ 늦었지만 영상을 보며 감동한 후에야 원망이 가라앉았죠.

                   (영상과는 상관없는 사진입니다. /정선 레일바이크를 타며 덜덜 떨던 겨울의 사진.)


머리로는 화이트데이, 발렌타인데이 같은 게 상술이라는 걸 알면서도
연애의 시뮬레이션에 맞추는 게 편한 이 심정은 뭘까요.

이십대 초반 저는 여자친구들끼리 모여서
남자친구가 뭘 해줬다, 무슨 선물을 줬다, 그런데 그래도 뭐가 맘에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라는 식으로 이어지는 대화를 안 좋아했습니다.
그때는 막연히 그런 대화란 연애의 진전성을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나봐요.

그런데 연애의 진정성이라는 게 뭘까요?
이십대 후반을 거쳐 서른하나가 된 지금은
시간이 오래 지났고 그 시간만큼 쌓인 실패의 경험을 통해 연애의 진정성에 대해 잘 알게 된 걸까요?
또 결혼을 했으니 연애에 대해서는 잘 알게된 걸까요?



갑자기 궁금해져서 '연애'에 대해 검색해봤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함'이라고 되어 있네요.

'애틋하다'는 말이 참 낯서네요.
연애의 시뮬레이션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상대가 아니라 상대가 해주는 일에 대해 집중하게 되겠죠.
상대가 해주는 일에 대해서는 '애틋'해질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연애'라고 부를 수 없는 거겠죠.

상대에 대해 '애틋'해질 수 있는 것.
아끼는 사람이 아프다면 하루종일 신경쓰며 걱정하는 것, 아끼는 사람의 기쁨에 내가 먼저 기뻐하는 것, 아끼는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 그런 것이 '애틋하다'는 것 아닐까요.


결혼을 해도,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계속 공부해야 하나봐요.

오늘은 이렇게 다시금 깨달았으니 '누런돼지'가 술을 먹고 들어와도 구박하지 말아야겠습니다. 흐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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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공무원 시험 준비생은 아름다운 선생님과 맺어질 수 없는 걸까요.

안녕하세요. ‘누런돼지 관리자’ 임아영입니다.
요즘 ‘누런돼지’와 MBC의 <하이킥-짧은 다리의 역습>을 보고 있습니다.
가장 비호감인 캐릭터는 ‘고영욱’이었는데요.

MBC 홈페이지에서

장조림 한 조각에도 눈물 흘리는 노량진 붙박이 고시생 고영욱

노량진 고시원에서 몇 년째 9급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인 고시생. 가난한데 식탐이 있어 소고기 장조림 하나에도 목숨을 건다. 원칙주의자에 융통성도 부족해 뭐든 미련하게 한 우물만 파는 스타일. 천사같은 하선에게 반한 뒤 사랑에서도 미련하게 한 우물만 판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고영욱 캐릭터 설명입니다.

소심하나 아름다운 국어 선생님 박하선을 짝사랑하는 고영욱이 나올 때마다 괜히 주는 것도 없이 얄미워 그 캐릭터를 안 좋아했습니다.;;ㅎㅎ 게다가 잘생긴데다 하선을 몹시도 좋아하는 체육 선생님 서지석이 마음 앓이를 할 때마다 고영욱 캐릭터가 더 싫어졌죠. 하선과 지석이 맺어지기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몽유병이 있던 고시원 이웃주민(?)인 백진희가 소고기 장조림을 먹었다고 고래고래 화를 내는 모습도 좀스러워 보였고 우연히 하선의 ‘생명의 은인’이 되어 사귀게 된 과정도 탐탁치 않았습니다. 하선을 더 좋아하는 지석이 있는데 어디 감히!


 

그런데 드디어 영욱과 하선이 헤어졌습니다. 그것도 영욱이 먼저 하선에게 이별을 선언하는 방식이었습니다.

23일 방송된 <하이킥>에서 영욱은 시험 발표가 난 뒤 하선 앞에 멋진 차를 끌고 나타났습니다.
하선은 영욱이 시험에 합격한 걸 기뻐하며 넥타이도 사주고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헤어지던 순간 영욱은 “멀리 지방으로 발령받을 것 같은데 혹시 하선씨, 나와 함께 가줄 수 있냐”고 묻습니다. 지방직 공무원에 합격했다는 것이었죠.

당황한 하선은 “저는 학교도 여기 있고 지원이도 있고...”라며 거절 의사를 보입니다.
영욱은 “기적이 일어날까 해서 한 번 물어본 것”이라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선씨 만난 후로 너무 행복했다. 그동안 나 같은 놈 만나주신 것 정말 감사하다. 잘돼서 헤어지는 건데 웃으면서 헤어지자”며 이별을 고하죠.

영욱은 또 시험에 떨어졌던 겁니다. 영욱은 마지막으로 하선을 한 번 안아본 후 “다 미안하다. 다 고맙다”고 말하고 뒤돌아섭니다. 하선은 영욱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영욱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죠.

고시원에 돌아온 영욱을 맞은 건 작디작은 방이었습니다. 영욱은 그 작은 방에서 하선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소리내어 흐느낍니다. 그때 옆방에서 조용히 하라는 ‘노크’ 소리가 들리죠. 그동안 노크 소리에 주눅들어 살던 영욱도 이번에는 울음소리를 죽일 수가 없는지 엉엉 울었습니다.

MBC 화면 캡처

23일 방송분이 끝나고 나서 갑자기 멍해졌습니다.
영욱이 안돼 보여서였을까요?

영욱이라는 캐릭터가 공시생에게는 연애도 허락되지 않는 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 TV 드라마에서 사법고시를 공부하는 남자 주인공에게 헌신적인 여자 주인공 스토리가 반복됐었던 적이 있었죠. 사시를 합격한 남주(인공)는 결국 여주(인공)를 버리고 여주가 복수하는 이야기.

그런데 김병욱 감독은 ‘공시생’을 이야기합니다.
사시도, 행시도 아닌 공시. 그것도 9급 공무원 준비생.

‘여자 버전’ 88만원 세대를 보여주는 캐릭터 백진희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진희는 고시원에 살다가 방값을 못 내 쫓겨나고 학자금 대출은 산더미같이 쌓여있으나 계속 취직이 안 됩니다. 결국 보건소 행정 인턴으로 취직했으나 월급은 쥐꼬리인데 고용 안정성도 불투명하죠.

어느날 진희도 결혼한다는 친구 얘기를 들으며 ‘취집’을 상상합니다.
보건소 의사 선생님인 윤계상과 결혼하는 상상이었는데요.
아마 진희의 바람도 이뤄지기 힘들 것입니다.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과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보여준 김병욱 감독의 비관주의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테니까요.

영욱이 하선과 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진희가 계상 때문에 어떤 눈물을 흘리게 될까 걱정이 됐습니다. 공시생으로, 88만원 세대의 백조로 찌질해지기만 하는 20대들에게 어떤 희망이 있을 수 있을까요.
취업 여부가 ‘계급’을 가르는 사회가 되어 버렸는데.
연애·결혼·출산, 기본 중의 기본을 꿈꿀 수 없는 사회.

김병욱 감독은 그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찌질하게 장조림에 목을 매는 것이 영욱의 잘못은 아닙니다.
하선에게 영욱은 늘 진심이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하선이 영욱을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겠죠. 사람이 사람이 좋아지는 건 사람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하선은 영욱이 공시생이라는 이유로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좋은 사람이죠.

그런데 왜 저는 영욱을 안 좋아했을까요.
혹시 ‘찌질해서’였을까요.
그 생각이 다다르자 맨얼굴을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습니다.

3년 전 제가 미취업자이던 시절 저는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취직을 못한 것이 온전히 내 잘못만도 아니거늘 자신도 없었고 사람 만나는 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긍정하는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 어떤 것도 온전히 내 탓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데까지요.

그때 제 모습도 혹시 ‘찌질’했을까요.
영욱을 바라보던 시선에 그때 제가 겹쳤습니다.


공시생이 선생님을 만날 수 없는 사회,
이제 더이상 사시, 행시를 봐서 합격하는 ‘신분상승’의 사회가 아니라
9급 공무원이 되는 게 ‘생존’이 되는 세상.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MBC 화면 캡처

제가 좋아하는 <지붕뚫고 하이킥>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실은 가기 전에 아저씨 꼭 보고싶었는데, 이뤄져서 너무 좋아요.

(이민 갈 이유 안 갈 이유가 반반이었다고 그랬지?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뭐야? 아빠랑 셋이 사는 거?)

네. 그리고 신애한테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신애?)

언젠가부터 신애가 자꾸 저처럼 쪼그라드는 것 같아서요. 식탐 많던 애가 먹을 거 눈치를 보고 아파도 병원갈 돈이 없을 까봐 걱정하고. 그게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가난해도 신애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안 가고 싶었던 이유는)

검정고시 꼭 보고싶었어요. 그래서 대학도 가고. 아저씨 말대로 신분의 사다리를 한칸이라도 올라가고 싶었어요. 근데 언젠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 사다리를 죽기살기로 올라가면 또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있겠구나. 결국 못 올라간 사람의 변명이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가기 싫었던 이유는 아저씨였어요. 아저씨를 좋아했거든요. 너무 많이. 처음이었어요 그런 감정.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설레고, 밥을 해도, 빨래를 해도, 걸레질을 해도. 그러다 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부끄럽고 비참했어요.

(미안하다. 내가 한 말들 때문에. 상처주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다 지난 일이고 전 괜찮아요. 그동안 제가 좀 컸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의 끝이 꼭 그 사람과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는 거 이제 깨달았고. 그래도 떠나기로 하고 좀 힘이 들긴..들었어요. 아저씨랑 막상 헤어지면 보고싶어서 못 견딜 것 같아서.

그래도 마지막엔 이런 순간이 오네요. 아저씨한테 그동안 마음에 담아놓은 말들 꼭 한번 마음껏 하고 싶었는데. 이뤄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매일 지금 이순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다 와 가나요?

(어)

아쉽네요. 잠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뭐?)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동생이 ‘쪼그라드는’ 걸 보기 힘들었던 언니 세경이 신분의 사다리를 고민하지 않는 사회로 떠나려는 찰나
세경은 죽음으로써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이룹니다.
지훈을 좋아했던 세경은 이렇게 꿈을 이루는 걸까요.

저는 죽지 않고 살아서 우리들의 소망을 이루면 좋겠습니다.

영욱이 공무원 시험에 붙지 않아도 행복해지는 사회, 스스로가 ‘찌질하다’고 느끼지 않는 그런 사회.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겠죠.

이제 왠지 하선과 지석의 사랑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없어질 거 같습니다.
영욱이 생각나서요. ㅠㅠ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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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 2012.01.02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눈물이 나려고 하네...
    김병욱 감독은 너무 잔인해...
    나도 고영욱 미워했는데. 찌질한게 들러붙는다고.
    안내상도 싫었는데. 무능한 주제에 오바한다고.
    그런데 저 감독은, 안내상을 정.말.로. 감옥에 보내버리더라구. -_-
    과잉행동장애가 되어 나온 안내상이 마라톤 하는 걸 보면서 울었다우...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2.01.03 1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선배 내상씨도 정말 안됐죠.
      내상씨가 진희 다친 손목을 이용해 게임에서 이겨서 상품권 타내려고 했을 땐 ‘격분’했지만 그 작은 거라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니 그 방송분 끝나고 허탈했어요.
      ㅠㅠ <하이킥>은 잔인해서 현실적이예요. 이번 <하이킥>은 어떻게 끝날지...ㅎㄷㄷㄷ

  2. Favicon of http://leegoeun.khan.kr 이고은 2012.01.03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영, 글 넘 좋다. 그나저나 우리 내러티브는 언제 다시...? WCMS가 점점 멀어지고 있군하.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