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아침은 늘 전쟁터다. 아이들은 부모 출근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 유치원에 가느라 시간에 쫓긴다. 가끔 29개월 둘째 입장에서 어린이집에 가는 장면을 상상한다. ‘좀 늦잠을 자도 되는데 엄마가 깨우고 아빠가 밥 안 먹는다고 성화다. 아직 좀 천천히 해도 되는데 엄마 아빠는 항상 서두르라고 재촉한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어린이집에 간다는 뜻이다. 가기 싫은데. 그래도 엄마가 출근하듯 나도 어린이집에 가야한다고 하니까 간다. 어린이집 가는 길에 길가에 떨어진 낙엽도 보고 자동차도 구경하고 싶지만 아빠는 그럴 시간 없다고 나를 안고 뛴다.’


 

어린이집·유치원 안 보낼 수 없던 나
대신 좋은 곳 찾으려 애쓰는 게 최선
한국 사회선 좋은 기관 찾는 것도 ‘복’

 

아이들은 원해서 어린이집, 유치원에 가는 것이 아니다. 29개월밖에 안된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면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좋은 어린이집, 유치원을 찾으려 애를 쓰는 게 최선이었다. 첫째는 15개월부터, 둘째는 10개월부터 기관에 맡겨 키워왔다. 오전 9시반부터 오후 3시반, 늦게는 5시까지 기관에서 아이를 돌봐줬기에 아직 일을 유지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처음 맡기던 날에는 현관 문 밖을 나서 펑펑 울 정도로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기관에 아이를 맡긴 지 만 5년6개월 지난 지금, 선생님들의 보육과 교육 덕분에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랐다고 생각할 만큼 여유로워졌다. 기관에 일찍 맡겨야 했던 환경에 대해서는 여전히 할 말이 많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좋은 기관을 찾은 것조차 ‘복’이라는 것을 안다.


 

■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 환경이란

두 아이를 기르면서 많은 선생님들에게 양육에 관한 도움을 받았다. 집중력이 좋은 대신 행동 전환이 느린 첫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처음 알려준 사람은 어린이집 선생님이었고, 아이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워킹맘의 처지를 비관할 때 지나치게 낙담할 필요가 없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며 위로를 건넸던 사람은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둘째가 넘어져 다쳤을 때 나보다 더 슬프게 운 사람도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선생님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절감한다. 첫째를 아꼈던 한 선생님은 내가 모르던 아이의 장점을 찾아내 정말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 두진이는 정말 아이들이 안 보는 것까지 보는 아이예요.” 경쾌한 목소리, 아이를 아끼는 눈빛에 정말 고마웠다.


 

국공립의 장점, 둘째 보내면서 실감
학부모 참여 운영위 통해 투명한 운영
사립은 운영위 없거나 자문 역할만

 

우리 아이들은 가정 어린이집, 병설 유치원, 국공립어린이집을 다녔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난 어린이집, 유치원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만 3~5세 공통 과정인 누리과정이라는 교육과정은 이미 통합돼 있는 상태여서 그럴 것이다. 오히려 내게 중요한 것은 공립이냐, 사립이냐였다. 실제 둘째를 올해부터 국공립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더 확신했다.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운영위를 통해 예·결산 내역을 공유하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한 번은 어린이집에서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송편 만들기 행사를 했다. 할머니를 초대할 생각을 하다니 조부모가 양육하는 집까지 배려하는구나. 할머니가 와서 송편까지 만든 것에 대해 아이가 매우 신나하는 모습을 보며 새삼 어린이집에 고마웠다.


 

공립, 사립을 넘어 핵심은 선생님 처우와 교육환경이다. 고용이 안정돼 있는지 여부가 일선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들의 여유를 만들 수 있는지를 가를 것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정말 체력적으로 고된데 그에 맞는 급여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근본적 해결책은 교사 1인당 아이 수를 줄이는 것이다. 선생님에게 좋은 환경이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이라는 사실을 정부 당국자들은 진정 모르는 건가.


 

■ 민주적 통제가 답

지난해부터 유치원 운영위원이 됐다. 운영위는 예·결산 내역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아이들 교육재료비, 비품구입비, 인건비까지. 1원 단위까지 공개하기 때문에 샐 틈이 없다. 아이들이 먹는 급식은 특위를 구성해서 점검한다. 방학 때 방과후반 아이들에게 급식을 만들어줄 조리사 선생님을 채용하지 못한 유치원은 결국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급식특위 위원 엄마 2명은 3곳의 도시락 업체를 가서 직접 먹어보고 제일 좋은 곳으로 결정했다. 유치원 운영에 대해 궁금하면 학부모들이 운영위원을 통해 공식적으로 유치원에 묻기도 한다. 유치원 운영위원회가 도입된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운영위원으로 참여해보니 내실화하면 정말 좋은 기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국공립유치원 얘기다. 국공립유치원에서 운영위는 심의 기능을 갖지만 사립유치원에서는 자문 기능뿐이다. 그나마 운영위를 구성하지 않은 곳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이야기를 하면 아이를 사립유치원에 보내는 엄마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본다.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이에요? 난 그냥 유치원 원장님이 하는 말만 일방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어요.” 학부모들이 과한 요구를 하면 운영위원회에서 토론을 통해 조정하기도 한다. 한번은 아이들 사진을 자주 찍어서 홈페이지에 올려줄 수 있겠느냐는 문의가 있었지만 다수의 운영위원들이 “선생님들은 이미 많은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과중한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며 “사진 찍을 시간에 더 좋은 교육을 고민하셨으면 좋겠다”고 결론을 냈다. 다수의 토론이 좋은 결론에 닿는 사례였다.


 

사립유치원 감사, 비리 유치원 명단 문제로 유·보육계가 발칵 뒤집혔다. 그런데 이들 문제도 다 사후 감사로 적발된 것이다. 정부의 사후 감사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내부에서 민주적 통제를 하는 게 근본적 해결 방법이다. 그러나 운영위는 유명무실한 경우가 적지 않고 교사들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원장이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문제를 제기했다가 잘못 되면 다른 어린이집 취직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는 너무 당연하다. 원장 그룹은 민간어린이집연합회,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등 조직으로 단합되지만 교사들은 그럴 방법이 없다. 노조가 있지만 노조에 가입하기 쉽지 않다.


 

■ 어른들이 풀 문제를 회피하지 말자

2015년 누리과정 예산 갈등이 극심했을 때 나는 교육 담당 기자였다. 중앙정부는 시·도 교육청에 빚을 내서라도 누리과정 예산을 충당하라고 했고 교육청은 버티다 지방채를 발행하는 악순환이었다. 어린이집, 유치원에 지원금이 나온다 안 나온다 다들 혼란스러워하자 교육부는 어린이집 대표, 유치원 대표, 학부모 대표를 앉혀놓고 여러 차례 간담회를 열었다. 둘째를 임신하고 있던 나는 그런 간담회 현장을 취재하며 참담했다. 어느 자리에서도 진정 아이들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 없다고 느꼈다. 한가한 소리만 오가던 어느 간담회 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뒤에서 수첩에 말을 받아적고 있던 나는 소리치며 말하고 싶었다. “이런 식의 간담회는 하지 말라고요. 선생님들도 정부 지원금 말고는 관심이 없나요?”


 

그러다 사립유치원, 민간어린이집 감사 결과를 보도자료로 읽으면서 괴로웠다. “어떤 유치원은 가보니까 원장이 쇠고기를 일부만 떼서 유치원 냉장고에 넣고 다 자기 집으로 가져갔더라고요.” 이 탐욕스러운 어른들에게 우리 아이를 맡길 수 있을까. 지난해 7월 육아휴직 중이던 나는 서울시교육청이 공립유치원을 늘려야 한다는 연구 결과에 대해 논의하는 간담회에 간 적이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서울시교육청 간담회 장소를 점거(?)해버렸고 교육청 인사들 나오라고 소리를 쳤다. 몇몇 원장선생님은 외쳤다. “휴원해요. 워킹맘들 볼모로 삼아야지.” 귀를 의심했다. 볼모? 교육자가 아니구나.


 

“휴원해요, 워킹맘 볼모로” 외친 원장들
정부 사후 감사만으론 문제 해결 안 돼
기관 내부의 ‘민주적 통제’가 근본 대책

 

‘비리 유치원 명단’이 주요 뉴스이던 몇 주간 기시감을 느꼈다. 사건이 벌어져서 시끄러워지면 급히 땜빵 대책을 만들고 다시 조용해지길 기다리는 그 악순환. 어린이집에서 학대가 벌어졌을 때 우리 사회는 어린이집에 폐쇄회로(CC)TV를 들였다. 학대를 예방하겠다며 사건이 벌어진 뒤 사후 대처밖에 할 수 없는 CCTV를 들여놓는 게 우리 사회 실력이다. 교육청, 교육부는 사립유치원, 민간 어린이집의 문제가 무엇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 지금까지 방치해왔던 것에 대해 깊이 고개 숙이고,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유치원이, 학교가 자기 것이라 믿는 사람들에 의해 교육이 이뤄져왔다. 아이를 때린 선생님, 아이를 버스에 두고 내린 선생님을 욕하기는 쉽다. 그 뒤의 구조를 드러내 고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땜질 대책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는 유아 교육, 보육에 공공성을 확보할 때다. 내년에 첫째가 초등학교에 가니까, 둘째도 곧 보육·유아교육 기관을 졸업할 테니 이 시기 동안 내 아이가 안전하기만을 바라면서 지내야 할까. 그러고 싶지 않다. 우리 어른들이 이 정도밖에 할 수 없으면 아이들은 또 같은 구조에 놓일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우리 어른들의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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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물려 오면’ 검색어가 많은 이유

두진이는 14개월 때, 이준이는 10개월 때부터 집 앞의 가정어린이집에 보냈다. 육아를 도와주시는 친정엄마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일수록 안고 들어야 하는 일이 많은데 원래 좋지 않은 엄마의 무릎이 아이들의 몸무게를 견뎌내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첫째는 출산휴가(3개월), 육아휴직(1년)을 마칠 때쯤 어린이집에 자리가 나서 보낼 수 있었고 둘째는 10개월 즈음에 보내야 했다. 한 번 순서를 내주면 1년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 대기 시스템 때문에 10개월에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미안했지만 아이가 잘 적응할 것이라 합리화하면서 죄책감을 희석시켰다.


 

블로그에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다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한 번은 두진이가 22개월일 때였다.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옆자리 아이에게 손을 물렸다. 퇴근 후 이 모양으로 멍든 자국이 난 아이 손등을 보고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 한 번은 이준이가 17개월일 때였다. 어린이집에서 산책을 하다가 넘어져 상순소대가 찢어지고 살짝 이를 다쳤다.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나의 상황을 원망했던 건 두진이가 다쳤을 때랑 비슷했다. 다행히 두진이 7세, 이준이 23개월인 지금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다쳐도 어쩔 수 없었겠지
아이 둘을 키우며 어린이집 구조 알게 돼
화나는 건 사고 안 나길 바라는 사회구조

가끔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를 때리거나 학대했다는 기사를 읽는다. 해당 교사에 대해 분노하는 댓글도 읽는다. 나도 그런 기사를 보면 분노한다. 그러나 ‘짧은 분노’ 후 그 분노가 무엇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 싶어 우울해진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블로그에 종종 ‘어린이집 물려오면’ ‘아이가 물려’ 등등의 검색어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으나 최근 든 생각. ‘어린이집에서 물리는 아이가 적지 않은 건 아닐까?’ 실제 ‘아이가 물려’라고 입력하고 들어온 걸 그대로 따라 들어가보니 어린이집에서 친구에게 물려온 아이들 이야기가 주르르 뜬다. 내 글이 제일 위에 떠서 블로그에 유입된 숫자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오 마이 가드.’


 

처음 두진이가 옆에 누운 아이에게 물렸다고 했을 때는 어린이집에 정말 화가 났다. ‘도대체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를 어떻게 본 거야. 선생님들은 뭐한 거야.’ 부글부글 분노를 삭이며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혹시라도 생길 사고를 방지하겠다는 직업적(?) 습관 같은 거였다. 몇 년이 지나고 이준이가 상순소대가 찢어졌다고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을 땐 좀 달랐다. 이상하게도 어린이집에 화가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겠지. 아이가 순간적으로 넘어진 걸. 내가 봤어도 다쳤을 상황일 거야.’


 

아이를 둘 키우면서 어린이집 구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얼마나 박봉을 받는지, 한국의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이 얼마인지, 무상보육을 이야기하며 정치권과 정부가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이제 오히려 화가 나는 건 어린이집, 유치원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이 사회의 구조다.


 

 

■ ‘만 0세 3명’을 ‘교사 1명’이 돌보는 시스템이 가능한가

3월 두진이가 7세가 되며 유치원에서 제일 ‘형님반’이 됐다. 새로운 반에 들어가 담임 선생님과 인사를 하는 날. 입학식에 온 부모들이 뒤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며 서 있는 틈에서 문득 ‘얘들은 도대체 몇 명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둘 세어 보다가 너무 많아 포기하고 나와 유치원 입구 공지문에 붙어있는 아이들 반 편성표를 봤다. ‘26명.’ 7세 26명을 한 선생님이 지도하는 게 가능할까. 만 5년을 조금 더 산 ‘천지분간 못하는 장난꾸러기’들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제각기 딴짓을 하고 웃으며 장난을 치고 “선생님, 얘가요…” 여기저기서 난리다. ‘아, 7세에 벌써 26명이 한 반이라니.’ 아득했다.


 

둘째는 국공립어린이집 턱걸이 입소
하교 시키러 유희실 갔더니 40명 뒤엉켜
활짝 웃는 선생님들 표정은 지쳐보여


올해 이준이는 대기했던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연락을 받아 어린이집을 옮겼다. 두진이 더 어릴 때부터 보내고 싶어했던 곳이다. 20명을 뽑는데 대기 순위 20번째로 ‘턱걸이’로 입소 허가를 받아 가족 모두 기뻐했다. 두진이는 첫째라 다자녀 점수가 없어 대기 전화도 받지 못하던 곳. 이준이를 보내면서 약간 기대도 됐다. ‘나도 국공립 어린이집을 보내보는구나.’ 그러던 얼마 전 쉬는 금요일 아이를 하원시키러 어린이집에 갔다. 아이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가 ‘경악’했다. 40여명이 유희실에서 놀고 있었다. 아이들 숫자 때문이었을까, 그들을 보며 활짝 웃는 선생님들 표정이 지쳐보였다.


 

3세인 이준이는 한 선생님이 5명을 돌본다. 쉴 새 없이 부딪치고 도망다니는(?) 23개월 된 아기들 5명을 한 명이 돌보는 시스템, 말이 되는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울적해졌다. ‘선생님에게 아이를 잘 봐달라는 말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얼마 전 두진이 유치원 상담을 할 때였다. 담임선생님과 잘 먹지 않던 반찬이 나오면 낯설어하며 먹으려 하지 않는 두진이의 식습관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말했다. “선생님, 두진이가 혀 끝에 음식을 대주고 막상 맛있다는 것을 알면 잘 먹는데요. 입에 넣는 데까지 오래 걸려요. 새로운 데 뛰어들려면 오래 걸리는 성격이잖아요. 선생님이 새로운 반찬도 맛있다고 잘 설명해주시면 아이가 먹을 수도 있거든요.” 거기까지 말하다가 문득, 아이들 숫자가 26명이라는 게 생각이 났다. 선생님은 또 활짝 웃으며 새로운 반찬도 입에 대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설명하셨지만 집에 돌아오면서 ‘26명을 한 선생님이 지도하는 시스템에서 내가 무슨 부탁을 한 건가’ 싶었다.


 

초등학교도 한 반에 25~30여명
아이 적성에 맞는 교육은 불가능하다
아직도 말 잘 듣는 아이가 ‘모범생’이듯


지역마다 편차가 있지만 정부 지침에 따라 교원 1인당 아이 숫자는 정해져 있다. 만 0세는 3명, 만 1세는 5명, 만 2세는 7명이다. 만 0세는 돌도 안된 아기다. 부모 둘이 봐도 벅찬 아기. 그런 아기 3명을 교원 1명이 돌보는 시스템이라니. 유치원에 다니는 만 3~5세는 급격히 늘어난다. 만 3세 17명, 만 4세 22명, 만 5세 26명. 이게 말이 되는 숫자인가? 이런 구조에서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아이가 털끝도 다치지 않게 봐달라고 이 사회가 요구하고 있다는 게, 오히려 더 말이 안되는 것 아닌가.


 

■ ‘교사 1인당 아이 숫자’라는 근본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초등학교에 가면 나아질까. 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을 정도로 크니까 25~30명 정도는 한 반에 있어도 교사 1명이 지도할 수 있을까. 교사 1인당 아이 숫자라는 근본 문제를 풀지 못하면 보육도, 교육도 답이 없다. 아이들이 대규모 집단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데 아이 한 명 한 명 특성과 기질을 존중하며 아이의 적성에 맞는 교육을 한다는 건 가능하지 않다.


 

두진이가 어릴 때 어린이집에서 상담할 때마다 행동 전환이 느리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두진이는 집중력이 좋지만 때론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에 눈돌리기 어려워하는 성격이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행동 전환을 빠르게 할 수 있도록 집에서도 도와달라고 말할 때면 대규모 집단 생활을 어려워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밀어넣은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물론 집에서 돌보는 게 아니니까 어느 정도 어린이집 전체 규칙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행동 전환 훈련’을 시켜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어릴 때는 한 반에 50명이 넘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는 오전·오후반을 시행하기도 했다. 그때에 비하면 나아졌을까. 그러나 대규모 집단 생활을 잘해내기 위해서 내가 배운 것은 이랬다. ‘튀면 안되고 어른들의 말에 의문을 품지 않고 무조건 말을 잘 듣는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곳.’ 50명이 넘는 반에서는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유리하다. 어린 마음에도 불리한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성장한 후에는 선생님 말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도 손을 들고 얘기한 적이 거의 없다. ‘말 잘 듣는 학생’이 유리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한편 교사 1명이 통제하기 역부족인 상황에서 선생님들이 윽박지르는 것은 ‘당연한 풍경’이었다. ‘3월엔 애들을 잘 잡아야 돼’라는 말도 흔히 들었다. 물론 내가 학교 다니던 때보다는 나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대집단 생활의 규모가 작아졌을 뿐 여전히 교사 1명이 아이들을 존중하고 지도하기 어려운 환경을 부정하지 말자. 교사들의 숙련노동으로 모든 걸 이겨나갈 수 있다고도 말하지 말자. 그것은 ‘기만’이다.


 

아동복지 지출 GDP 대비 1.1% ‘찔끔’
한국사회는 여전히 사람을 ‘수익’ 취급
교사 노동조건 개선해 줄 수 없는 건가


■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는 사회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뤄낸 국가지만 이 나라는 여전히 아동가족복지지출에 GDP 대비 1.1%밖에 쓰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2%, 선진국들은 3%까지 쓰기도 한다. 최근 육아정책연구소의 해외육아정책 동향에서 독일의 유치원, 어린이집 전문 일손이 부족하다는 자료를 봤다. 독일도 이런 문제를 겪나 신기해서 자료를 뜯어보니 아동 수가 늘어나는데 아동 대비 교사의 수를 맞추기 힘들어졌고 교사 부족 현상으로 유치원들이 정원 수를 줄여야 하는 상황까지 우려된다고 했다.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베르텔스만 재단이 2016년 발표한 이상적인 아동 대 교사 수를 반영하면 만 3세 이하의 경우 1대 3, 만 3세 이상은 1대 7.5인데 이 비율에 따르면 현재 독일에는 10만명 이상의 교사가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라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만 3세 이하는 1대 7까지 올라가고 만 3세 이상의 경우 1대 26까지 올라가는데 어떻게 이리 다를까. 어린이집, 유치원, 나아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잘 돌보고 지도해주길 바란다면 우리는 같이 말해야 한다.


 

선생님들 처우를 개선해달라고, 교사 1인당 아이 숫자를 줄여달라고. 국가가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말하려면 아이들을 직접 마주하는 사람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해줘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 아이 하나하나를 개별적 존재로 바라봐줄 시간이 생긴다고.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사람은 ‘숫자’ 이상의 취급을 받지 못한다. 사람은 그 장부상 숫자 안에서 ‘비용’처리되거나 ‘수익’으로 남는다. 미취업자 시절 공무원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엎드릴 수도 없는 작은 책상에 다닥다닥 붙어서 생각했다. ‘한 반에 300명은 기본으로 넘는데 불이 나면 어떻게 될까.’ 한 선배가 재수학원 구조가 여전히 그렇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민간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모두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이는 건 내가 과민해서일까.


 

세월호 참사 4주기다. 우리는 사람을 귀히 여기는 사회로 재구조화될 준비가 돼 있는가.

 

<원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4202049005&code=210100&sat_menu=A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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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베카 2018.12.17 2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딸아이가 유치원교사입니다
    7세반을 맡고 있는데 인원이 26명.
    보조교사없이 혼자 케어 합니다.
    사립유치원이어서 수업준비에 밤새는건 기본이고, 매일 퇴근이 8시에서 9시가 넘습니다. 그렇다고 급여가 월등히 많은것도 아니구요.
    최저임금보다 몇만원 더 받으며 아이들읕 지도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유치원교사들은 대부분 나이가 어린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아이가 좋아 유치원교사가 되었지만, 현실은 아이에게 많은 사랑을 주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죠.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지칠때가 있고, 과로에 병날때도 있으니까요.
    사립유치원의 비리에만 시선이 가 있는 현실앞에서 뒤에서 숨죽이며 힘들어하는 교사들의 안타까움도 살펴보아야 할 듯 합니다.
    저희딸은 오늘도 9시반이 넘어서 퇴근했네요 ㅠ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9.03.03 15: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ㅠㅠ 9시반 퇴근이라니ㅠㅠ 너무 슬픕니다. 저희 아이도 지난해까지 한 선생님이 26명을 돌봐주셨죠. 선생님들 덕분에 아이를 키운다는 생각을 하지만.... 교사 1인당 아동 숫자가 줄지 않기 전에는 근본적인 답을 찾기 어렵다는 생각도 동시에 듭니다... 댓글 감사해요.

<아이가 다치면 마음이 무너진다>

 

휴직했을 때 엄마 회사 낸중에 가면 안돼?” 노래 불렀던 두진이는 요즘 아침마다 출근하는 내게 물어본다.

 

엄마 오늘 야근이야?”

 

야근을 하면 11시에 끝나고 집에 가면 12시가 넘는다. 야근은 한 달에 서너번 밖에 안 되는데도 아이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묻는다. 아이들은 10시쯤 잠드니 잠들 때까지 엄마를 볼 수 없다. 같이 못 자는 날이 싫은 큰 아들의 야근 타령. 이제 시작인가. 어떤 선배는 아들 이야기를 해주며 말했다. “처음엔 회사 가지마현관문에서 울더니 시간이 지나고 포기하더라고. 그다음엔 언제 퇴근해?’ 노래를 불러. 그것도 포기하고 나면 이번주엔 주말에 누가 쉬어?’ 그러더라.”

 

여전히 월요일 신문을 만들기 위해서 일요일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아이에게는 엄마가 주말에 언제 쉬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아직 우리집 아들들은 요일 구분은 할 줄 모르지만 야근은 알게 됐으니 나도 그 날이 멀지는 않겠지.

 

작년인가 한국 아이들 수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적게 잔다고. 아이를 다른 방에 재우는 서양과 달리 아이와 엄마가 같이 자는 습관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때 한 언론이 엄마 때문에 잠 못 자는 아이들이라고 제목을 달아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헛웃음이 난다. “엄마 때문에 잠 못 자는 게 아니고요, 엄마아빠가 늦게 퇴근하니 자는 시간이 늦어지는 거거든요.”

 

집에 들어가면 빠르면 8, 늦으면 9시가 된다. 애들을 씻기고 재울 준비만 해도 금방 10시가 된다. 평일에는 같이 못 놀았다며 같이 놀자고 떼를 쓰기 시작하면 시간은 점점 늦어진다. 복직 후에 우리 집 아들들 자는 시간도 점점 늦어지고 있다. 놀고 싶다고 하면 그냥 뿌리칠 수가 없다. 하루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으니.

 

부산한 둘째. 첫째와 달리 겁이 없다. 18개월도 안됐는데 벌써 치과행 세번째.

 

그러다 마음이 몹시 상한 날이 있었다. 유치원 근처에서 워킹맘 험담을 들은 날이었다. 우연히 유치원 근처 커피숍에 앉아있다가 어떤 엄마들의 대화가 귓가에 들렸다.

 

워킹맘들은 애들이 아파도 보내더라. 불쌍하지도 않은가봐.”

 

갑자기 마음이 싸해졌다. 열이 나지 않는 한 아이를 기관에 보낼 수밖에 없는 사정을 모르는구나.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게 아닌데. “아이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라고.”

그 말까지 듣고 나니 마음이 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할퀴어졌다. 설명하고 싶었다. 왜 아픈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는지. 열이라도 나면 얼마나 종종거리게 되는지.

 

두진이 유치원에서는 현장학습을 가는 날마다 엄마들이 출발하는 버스 앞에서 빠빠이를 해주는 문화가 있다. 출산휴가 들어가면서 나도 그 문화를 알게 됐으니 두진이는 엄마가 빠빠이를 해주지 않은 채 현장학습을 갔던 거였다. 미안했다. 그렇지만 빠빠이가 뭐 별거냐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두진이 친구 엄마는 왜 아이가 현장학습날마다 유치원에 안 간다고 하는지 궁금해하다가 이 빠빠이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 엄마도 워킹맘이라 그런 문화가 있는 줄 모르다가 하도 현장학습을 가기 싫어해 엄마가 같이 가면 현장학습에 가겠다는 아이 말에 반차를 내고 따라왔다가 알게 된 것이다. 아이가 자기 엄마만 빠빠이를 해주지 않는 걸 싫어했다는 걸.

 

유치원 선생님은 이야기하셨다. “어떤 아이는 친구한테 말하더라고요. ‘나는 엄마 안 오니까 네가 창가에 앉아라고. 그 말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이제 이 빠빠이는 내 고민이 됐다. “아빠가 빠빠이 하러 가면 안돼?”라는 말에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아드님을 설득해야 하는 내 고민.

 

어떤 엄마는 2시간짜리 휴가를 내 와서 빠빠이만 하고 다시 회사로 뛰어간다. 공무원들에게 자녀돌봄휴가 이틀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부러웠다. 학교 행사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가 고3인 선배가 말했다. “학기 초에 입시설명회가 많은데 꼭 안 가도 되지만 꼭 가라고 어떤 선배가 조언하더라고. 왜 그러냐고 했더니 나중에 혹시 안 좋은 결과를 받았을 때 그때 내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들지 않기 위해서라는 거야.”

 

아이가 클수록 학교 행사가 많아진단다. 유치원생인데도 상담, 참관수업, 운동회가 철마다 준비돼 있다. 초등학교에 가면 총회니 반모임이니 더 많아진다고. 왜 초등학교 때 경단녀가 많이 생기는지는 그걸 경험해보면 알 수 있다고.

 

그러다... 이준이가 어린이집에서 다쳤다. 벌써 한 달여 전이다. 일하고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좀 다쳐서 소아과에 다녀왔다고. 상순소대가 찢어졌는데 소아과에서는 괜찮다고 한다고.

 

좀 마음이 안 좋았지만 괜찮다고 하니까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또 상순소대가 찢어진 적이 한 번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아이 이와 잇몸을 살펴보자 심상치 않았다. ‘왜 잇몸이 보라색이지.’ 아차 싶었다. 이가 괜찮은지는 본 건가.

 

다음날 치과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국정감사를 취재해야 하는 날이었다. 남편이 치과에 데려가기로 하고 나는 출근했다. 국감을 들으면서도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10시쯤 진료받으러 갔는데 치과 예약 때문에 진료를 받을 수 없다 해 되돌아왔고 오후 2시에 다시 가기로 했다고 했다. 점점 초조해졌다. 점심을 먹는둥마는둥 했다. 2시가 좀 넘어서야 진료 결과를 들었다. 뿌리는 괜찮은데 이가 흔들린다고.

 

화가 났다. 왜 대처를 이렇게밖에 못했는가. 취재고뭐고 집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아이가 다치고 하루가 지나는 동안 난 왜 이렇게밖에 대처를 못했는가. 누구한테 화가 나는지 알 수 없다가 어제 병원에 왔어도 달라질 것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정했다. 넘어지는 사고가 난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구나. 대신 한 달 동안 변색되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변색되면 고름이 생길 수 있고 고름이 생기면 신경치료를 해야 한다고. 어떻게 17개월 아이를 신경치료를 하냐고 하니까 그냥 한다고 했다. 그냥 하는 게 뭐냐니까 그냥 울어도 붙잡고 한다고.

 

아득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객관화하기 위해 머리가 돌아갔다.

집이었어도 다칠 수 있잖아, 내가 봐도 다칠 수 있지, 그냥 사고일 뿐이었고 병원에 빨리 간대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잖아.’

신기하게도 어린이집에는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두진이를 보냈던 어린이집이라 어린이집에 대한 신뢰가 높아서일 것이다. 사고에 대한 객관화는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고 오히려 생각은 왜 이렇게 사는가에 모아졌다.

 

왜 나는 아이가 다쳐도 이렇게 대처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져 있는가.

 

아이가 다치면 마음이 무너진다. 그리고 며칠 동안 힘이 나지 않았다. 아이는 다치고나서인지 출근할 때 많이 울었고 다쳐서 우는 게 아닐 수도 있는데 무너진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았다. ‘아가야, 미안해. 다치고 피가 많이 났을 텐데, 아프고 놀랐을 텐데,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절대 일하면서 죄책감을 갖지 말자고 다독이지만 아이가 이렇게 아프거나 다치면 그게 되지 않는다. 그리고 올라오는 질문.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가.’

 

이제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던 한 달이 다 지나간다. 다행히 아이 이는 아직까지 변색되지 않았다. 큰 이상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아직 답은 찾지 못했다. 아마 아이가 크는 내내 찾지 못할 것이다. 그냥 적당히 인정하고 적당히 포기하며 무뎌지겠지. 그걸 알고 있으니 더 울적한 이 모순.

 

그래도 힘을 내야지.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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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나 2017.11.04 0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니 우리만나면 서로 한번 꼭 안아줘요..

  2. 정덕 2017.11.04 1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니. 오늘 아침에 문득 복직을 앞두고 우울해하던 언니가 떠올랐어요. 역시.. 힘든 일 많았군요. 앞으로도 그럴 거구. 힘들지만.. 조금은 단단해지길.. 조심히 손 얹어봅니다. 언니랑 아이들 보고 싶네요.

  3. punky 2017.11.06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보육교사입니다. 마음이 아프네요. 어린이집에서 다치면 정말이지 엄마 마음만큼이나 저도 가슴이 무너져내립니다. 첫째는 아이에게 미안해서 둘째는 엄마에게 미안해서 세번째는 아이들 돌보는 일의 불안감과 돌발성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때문에 마음에 돌덩이가 들어앉아 있는 것처럼요. 엄마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것만큼 교사인 저도 아이들에게 마음을 어루만져줍니다. 때때로 장난감 전화로 엄마에게 전화해서 이따가 코자고 빨리 올거죠? 라고 말못하는 3세 아이대신 전화이야기 해주고 있어요. 저도 엄마가 바빠서 초등학교 1학년때 소풍가서 엄마가 오지 않는 아이들끼리 도시락 먹을때 좀 서럽더라구요. 그래도 우리 아이들 금새 잊어버리고 엄마가 날 사랑한다는 그 마음은 절대 변치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11.09 2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선생님, 선생님들이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잘 알고 있어요. 사고는 한순간에 일어나니까요. 집에서 아이랑 단둘이 있어도 사고가 일어나는데 말이어요.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잘 돌봐주셔서 안심하고 회사로 일하러 간다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4. 엄마 2017.11.09 1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아, 우리 애들도 그랬어.
    이런 글 읽으면 어느새 제 아이가 오버랩 되어 눈물이 가득 찹니다.
    충분히 겪었고 다 지나갔다 생각하지만 마음 아픈 건 어쩔 수 없네요.
    부디 힘 내세요.

복직하고 제일 많이 들은 질문.

 

"애는 누가 봐?"

 

"어린이집과 친정엄마요."

 

이상하게도 그 대답을 할 때는 죄책감이 듭니다.

어린 아이를 엄마인 내가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 힘든 할머니에게 손주를 맡겨놓았다는 죄책감이

이중삼중으로 들죠.

 

저는 복직에 맞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제가 출산휴가(3개월) 및 육아휴직(1년)을 하고 나서 보낸 거니 15개월이 좀 안됐을 때죠.

 

처음에 친정엄마는 두 돌까지 아기를 돌보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휴직 기간 하루종일 아기를 보다보니 '안 되겠다' 싶었어요.

핵가족 시대, 마을이 붕괴된 서울에서는 혼자 아기를 보다보면

물리적으로 힘든 것은 둘째고 우울증이 올 것 같았거든요.

할머니에게 그럴 수는 없다 싶었고

또 복직을 앞두고 있었을 때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순서가 됐다고.

 

 

어린이집에 보내던 첫날이 생생합니다.

아이는 아직 상황을 잘 모르고 긴장한 건 오히려 저였죠.

호기심 많은 아이는 어린이집을 낯설어도 안 하고 엄마 없이도 잘 놀더군요.

그렇게 적응을 위해서 한 시간여 어린이집에 같이 있다가 아이를 두고 나오는데

아파트 동 사이에서 혼자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미안함과

출산 이후 거의 떼어놓지 않았던 어린 생명을 떼어놓은 어색함이

동시에 몰려왔던 것 같아요.

 

 

 

그러나 아이는 엄마의 복잡한 심경과 달리

적응을 잘 했어요.

별 적응 기간도 없이 어린이집을 잘 다녔고

회사에 돌아온 저는 아이에게 항상 고맙고 고마웠습니다.

 

 

정부의 정책공감 블로그에서.

 

그런데.

아이가 지지난주 어린이집에서 물려왔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다른 아기에게.

 

야근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아이가 잘 있는지 걱정돼서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엄마가 "손을 다쳤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우리 아이 옆에 누워 있던 다른 아이가 우리 아이 손을 꽉 물었다는 겁니다.

 

처음 그 얘기를 듣고 전화를 끊었을 땐 그냥 '멍했습니다'

한 5분쯤 지났을까 화가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왜 난 이제서야 알게 된 거지.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엄마는 제 일에 방해될까봐 말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이집 원장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상황을 물었고 원장님은 미안하다고 연신 그러시더군요.

그리고 직장맘들에게는 퇴근 후에 전화드린다고 하셨습니다.

 

 

...

 

왜 다들 내 아이보다 내 일을 걱정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이 쭉 빠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제 일을 객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린 것 정도 가지고 이러면 '유난스러운 엄마'다, 아냐, 아이는 고작 21개월인데 엄마를 부르며 울었을거야,

...

 

 

엄마인 제가 아이가 다친 걸 8시간이나 지나서 알아야 했다는 게

너무 속상했습니다.

저를 찾으며 울었을 아이한테 너무 미안했습니다.

 

 

정부의 정책공감 블로그에서.

 

 

그래도

원장 선생님과 통화하면서 화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원장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저는 '을'이니까요.(선생님이 좋은 분이라고 믿지만)

아이를 맡긴 입장이니까요.

 

그리고 사고였을 뿐이니까요.

 

집에 돌아가니 밤 11시.

아이가 깰까봐 어둠 속에서 휴대폰 후레시를 비춰 상처를 가늠했습니다.

막상 눈으로 보니 정말.....

 

 

 

다음날 아침에 보니 생각보다 상처가 심했습니다.

 

쉬는 날이었고 병원부터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왜 바로 오지 않았느냐고 되묻더군요.

바로 드레싱을 했어야 하고 이 정도면 흉이 남을 수 있다고.

 

그 순간 또 치미는 화.

같이 병원에 가신 친정엄마는 괜히 자책하시고

저는 어린이집이 원망스럽고 마음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그래도 이성을 찾고 진단서를 발급해달라고 했어요.

(직업병이죠. 문서를 남겨 증거를 만들어놓아야 한다는;;)

 

 

 

결국 집에 가서 다시 어린이집에 전화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얘기했습니다.

 

우리 아이를 문 아이에게 잘못을 물을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아이도 아기인데 뭘 알겠느냐,

어른들이 잘 살펴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아차 하는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 안다, 그래도 잘 부탁한다,

이번에 우리 아이가 피해자가 되고 보니 아찔하다, 우리 아이가 가해자가 되지 않게 잘 살펴봐달라 등등.

 

그렇게 돌려말하곤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곤 아이를 몇분간 안고 있었어요.

놀고싶다고 엄마 품을 벗어나겠다는 아이를 안고 있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별일 아닌데, 유난스러운 엄마들 제일 싫어했잖아, 절대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잖아,

그런 아우성 치는 말들은 소용 없었어요.

그냥 두 돌도 안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냈다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했던 것만 같고

다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해프닝은 끝났습니다.

손에 흉은 안 남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워킹맘은 대처가 늦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인정하는 수밖에 없겠죠.

 

회사 선배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놀다 치아를 다쳐서 눈 속에서 울면서 치아를 찾던 일화를 얘기해주시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이제 시작일 뿐인데 너무 우울해하지 말자, 다독였습니다.

 

 

 

담대한, 담담한 엄마가 되어야지 매일 다짐하는데

매일 실패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는 거라고 소소하게 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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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naver.com 잘참았어요 2014.12.02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이집에 그런일은 다반사입니다.
    속상하시겠지만 애키우면서 어린이집 아니래도 아이가 멍들고 다치는일 많아요.
    애가 자란뒤에 이해할겁니다.
    물리고 다칠까봐 원에 안보내거나 아이들과 못어울리게 집안에서만 키울수도 없구요.
    그럼 사회성도 잃고 이런저런 사고에 대처하는법도 아이는 깨우치지 못합니다.
    늘 깨끗하고 문제없이 자란아이는 작은 돌뿌리에도 큰좌절을 겪으니 이런저런 환경을 다 접해보고
    옳고 그름을 알아가도록 기회를 줘야해요.

    잘 참으셨어요.
    일부로 물어라 하는 선생님이나 아이도 없을것이구요. 이런 사고발생시 선생님들도 참 난감해요

안녕하세요. '누런돼지 관리자' 임아영입니다.

 

 

왜 요즘 엄마들은 죄책감을 느낄까요.

블로그에 달린 댓글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블로그 포스팅 '부모가 된다는 것'(http://ilovepig.khan.kr/193)에 9개월 아들을 둔 엄마가

"복직 전에 자책감을 느끼다 위로가 되는 글을 찾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댓글을 남겨주셨네요.

인터넷상에서 만난 얼굴 모르는 분이지만 왠지 위로를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또 하나의 육아일기를 올립니다.

 

"왜 요즘 엄마들은 죄책감을 느낄까요?"

 

 

 

(아기를 낳고 나서는 다이어리도 이렇게 업고 써야 합니다. 훌쩍)

 

 

장면 하나.

 

아기를 낳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습니다.

출산 후 호르몬 영향인지 매우 우울했었어요.

그러다 페북에서 사진 하나를 봤지요.

아는 선배 부부가 신문과 책을 읽으며 브런치를 먹는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고 왈칵 눈물을 쏟았습니다.

 

선배 부부는 아이를 낳기 않기로 약속한 '딩크족'이었거든요.

아기를 낳기로 선택한 저의 삶과 비교가 된 것이지요.

바로 이 느낌. "이제 내 인생에 저런 브런치는 없겠구나. 자유는 끝이구나."

 

눈물을 줄줄 흘리다(호르몬 영향 때문에 더 감정이 고조된다 합니다...;;)

안고 있는 4킬로그램도 안 되는 아기를 봤습니다.

밀려오는 죄책감...........................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

 

"내가 과연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장면 둘.

기특이는 백일 때까지는 정말 많이 우는 아기였습니다.

조리원에서는 '3대 울보'로 꼽힐 정도였지요.

 

백일 잔치를 하루 앞둔 날

그날따라 컨디션이 안 좋았던지 기특이는 한 시간을 넘게 울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달래고달래다 힘은 빠지고 신경은 있는대로 날카로워졌지요.

결국 "그만 좀 울으라고! 나한테 어떻게 해달라는 말이야!"라며

백일 아기 엉덩이를 두 대 때렸습니다.

 

그리고 밀려오는 죄책감.............................

"난 엄마 자격이 없다"

 

 

 

장면 셋.

지난 9월 기특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복직 후 친정 엄마가 돌봐주시기로 했지만 그래도 하루종일 맡기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

결국 어린이집을 알아보기로 했지요.

 

어린이집을 알아보다가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회사를 꼭 다녀야 할까. 저 어린 것을, 말도 못 하는 저 어린 것을 남의 손에 맡겨야 하나, 엄마 보고싶다고 많이 울텐데...'

 

"미안해 아가야" 라며 자고 있는 기특이를 여러 번 쓰다듬었습니다.

엄마 되고 가장 죄책감을 크게 느낀 날이었을 거예요.

왜 수많은 엄마들이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애가 생기면 이렇게 책도 안고 봐야 합니다.....훌쩍)

 

 

아마 죄책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휴... 엄마들의 죄책감은 어디서 왔을까요?

 

기특이를 돌보다 우울하면 전 EBS <마더쇼크>라는 책을 봤습니다.

 

<마더쇼크> 유명한 다큐 프로그램이죠. EBS 다큐프라임에서 연작으로 방송했었습니다.

전 다큐는 못 보고 나중에 나온 책을 봤는데요.

 

죄책감을 느끼거나 불안할 때 이 책을 봅니다.

 

 

  육아 스트레스, 과도한 책임감에서 벗어나려면 엄마를 도와줄 육아 도우미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연로하신 부모님, 또는 아직도 사회활동을 하시는 부모님께 맡기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놀이방이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려 하지만 영아를 24시간 돌봐주는 곳은 찾기 어렵다. 찾았다고 해도 신뢰할 수 있는 곳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초등학교 입학 후 오후 2시에 하교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가 더 난감하다. 학교에서 시행하는 방과후 교실을 이용하는 것도, 학원 순례를 시키는 것도 만만치 않다. 사회적으로 육아를 보조해줄 도우미나 탁아·위탁 시설 등이 확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도 양질의 보육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 양육에 관련한 모든 책임이 가정, 특히 엄마에게 몰리고 있다.

  사회적인 여건상 엄마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가는 엄마는 그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점수를 매길 때는 박한 평가를 내린다. 지금이라도 엄마는 자기 자신에게 말해야 한다. 아이 키우기가 힘든 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다, 슈퍼맘이 아니어도 괜찮다, 나는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라고 말이다.

 

- <마더쇼크> 239~240쪽 "불필요한 죄책감을 벗어던져라" 중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

 

<마더쇼크>에서는 '슈퍼맘 신드롬'이나 '착한 엄마 콤플레스'에 시달리고 말라고 조언합니다.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라는 거지요.

 

아이가 성장하면서 엄마 또한 '보호자→양육자→훈육자→격려자→상담자'로 변해야 하는데

엄마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동시에, 지속적으로 해내야 한다고 여긴다네요.

 

 

 

아이 연령에 따른 엄마 역할의 발달 단계

 

1단계 보호자

  아기가 태어나면 1년까지 보호자, 보육자로서 엄마는 아기를 보호하고 기른다. 아기에게 닥칠 사고나 생명의 위협을 보호해야 하는 존재.

 

2단계 양육자

  만 1~3세까지. 보육이나 보호의 의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개념. 연령에 맞춰 운동, 정서, 두뇌 등을 고루 발달시킬 수 있도록 엄마가 아이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거나 지도하는 일까지 포함됨.

 

3단계 훈육자

  만 4~7세. 어린이집 등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기에게 엄마는 옳고 그른 것을 알려주고,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가르친다. 아이를 가르쳐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세상을 접하는 일이 순조로워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

 

4단계 격려자

  만 7~12세. 학령기에 접어들면서 아이는 엄마 이외에 선생님, 친구, 책, TV, 인터넷 등에서 다양한 것을 배운다. 이때 엄마는 아이가 혼자 힘으로 잘 해낼 수 있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맡는다.

 

5단계 상담자

  만 12~20세. 엄마가 청소년인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관여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아이의 생각이나 속내는 아무리 엄마라도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부모로서 꼭 필요한 역할은 카운슬러, 멘토가 되어주는 일이다.

 

<마더쇼크> 244~247쪽 요약

 

아기를 낳기 전에는 '쿨한 엄마가 되자'고 다짐했었습니다.

아이에 전전긍긍하는 엄마가 되지 말자.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더군요.

아기가 재채기만 해도 '내가 뭔갈 잘못해줬나'라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그런 저에게 위의 얘기는 많은 위로가 됐습니다.

 

엄마도 아기와 함께 성장하는 것 아닐까요.

전 아직도 제가 미숙하다고, 어리다고(흠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완벽하겠어요.

그저 지나면서 배우는 것이겠죠.

기특이가 세상에 적응하고 다양한 것을 배울 때

저 또한 기특이를 통해 세상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니가 괜한 죄책감은 버리자,고 스스로에게 말해봅니다.

나중에 복직을 해서도 육아 때문에 갈등을 느끼는 순간이 많겠죠.

그때도 저의 행복, 그리고 기특이의 행복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엄마가 되었으면,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마더쇼크>가 언급하지 않은 부분!

아이는 엄마 혼자 키우는 게 아니죠.

아이를 사이에 두고 엄마, 아빠가 같이 아이 손을 잡아주고 함께 걷는 것이잖아요.

 

많은 엄마들이 혼자 짐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꿈꿔봅니다.

아빠가 일찍! 퇴근해서 아이랑 놀아주는 사회.

(기특이가 어른이 되면 가...능할까요?ㅠㅠ)

아빠도 양육의 기쁨을 느끼는 사회.

엄마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회! 말입니다. ^ㅡ^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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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talgi21.khan.kr 딸기 2013.12.03 1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종류의 죄책감의 시기는 지나가니까 걱정 마 ^^
    그리고 아이와 함께 브런치를 먹는 날이 올 거야
    혹은 아이 없이 우아하게 남편과 브런치를 먹거나
    생각보다 그 날이 빨리 오더라고.....

    죄책감 느낄 필요 전혀 없어. 나도 참 많이 그랬는데...
    그래서 니 글에 정말정말 공감하지만,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니 지금은 좀 편해

    물론, 좀 더 지나면(울딸이 더 커서 공부 '잘 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또다른 종류의 죄책감에 시달리게 될지는 모르지만... ㅎㅎㅎ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3.12.03 10: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이랑 브런치 먹기... 뭔가 멋진데요 선배 ㅎㅎ
      기특이랑 있으면서 선배 얘기가 많이 생각났어요. 키울 때 힘드셨다고 했던 얘기들. 휴...^^ 저도 선배처럼 곧 편해지겠죠. 복직한 후 어쩌나 걱정도 많이 되지만... 무던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 하하

      선배 집에 놀러오세요요요요~~ㅎㅎ

  2. 혠이 2013.12.03 1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 멋져요 ㅠ_ㅠ 뭐라 쪼찡하기는 쑥스럽지만... 여튼 대단하세요. 이렇게 글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괜찮다 괜찮다 위안을 주시는 것도 멋지네요. 회사 오실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 >ㅁ<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3.12.03 1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혜인아 네 댓글에 내가 더 쑥스러워졌지만... 고맙네 ㅎㅎ 그냥 엄마는 아무나 되는 건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길래 함 써봤어;;ㅋ 나도 혜인이 기사 열심히 보고 있음!!^^

요즘 제 가장 큰 고민은 '어린이집'입니다.

 

내년 2월 복직 후 기특이가 다닐 곳을 찾는 중이지요.

친정엄마가 돌봐주시기로 하셨지만 하루종일은 무리겠죠.

그래서 오전에 네 시간 정도만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고나서 살펴본 어린이집 순위.

놀랍습니다.

 

ㅠㅠㅠㅠ

 

 

어린이집 대기 신청은 태어나자마자 해야한다고 해서 서둘렀습니다.

출생신고 직후부터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요.

이후 한 달쯤 지나 대기 신청을 해 놓은 결과입니다.

(지금 와서는 왜 출생신고 다음날부터 하지 않았나 후회될 정도ㅠㅠ네요)

 

한 8개월쯤 지났는데 아직 순위가 이 정도입니다.

제가 이사가게 될 동네에서 제일 평판이 좋은 어린이집 순위가 현재 653번째.

처음 순위가 900등대였으니까 한 300명 빠졌군요.

그러나...

8개월 동안 300명이 줄었으니 앞으로 600여명 더 줄으려면 16개월이 지나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

한숨이 나옵니다.

 

 

 

 

어린이집 사건 사고 소식 많죠.

그런 뉴스를 접하면 두렵고 마음이 아픕니다.

아직 말도 잘 못 하는 아기들이 가서 맞댈 환경이 끔찍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5월에는 세종청사 어린이집에서도 정서적 학대가 있었다는 보도 때문에 엄마들 사이에서 난리였습니다.

 

만약 기특이가 어린이집 가서 선생님 혹은 친구들 때문에 다치거나 정서적으로 스트레스 받는다면 

아기를 맡기고 회사를 다니는 제가 얼마나 괴로울까요. 기특이에게 얼마나 미안할까요. 

 

압니다. 좋은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많죠.

그러나 좋은 선생님들도 여러 명의 아기를 돌보다 보면 스트레스 받을 겁니다.

자기 애 돌보는 것도 스트레스일 때가 있는데 남의 자식은 오죽할까요.

그러니까 보육교사에게 좋은 대우를 해줘야 합니다.

어린이집 교사 급여는 월평균 155만원, 유치원 교사 급여는 214만원으로 차이가 납니다.

선생님 한 명이 돌봐야 하는 아기들 수를 줄여주고, 급여도 올려줘야죠.

그래야 스트레스 덜 받고, 스트레스 덜 받아야 아기를 잘 돌보지 않겠어요.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한 무상보육, 박근혜 정부에서는 양육수당도 지급하기 시작했죠.

제게도 한 달 20만원씩 양육수당이 나옵니다.

양육수당은 집에서 아기를 돌보는 가정에 나오는 돈이고요.

어린이집에 보내는 가정의 경우는 어린이집으로 보육료가 지원됩니다.

직접 지원하는 양육수당과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는 보육수당은 가격 차이가 납니다.

12개월 미만 아가들의 경우 양육수당은 20만원, 보육수당은 39만4000원인데요.

전 이게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20만원이면 20만원, 40만원이면 40만원을 일괄적으로 줘서 직접 키우든, 어린이집에 보내든

부모가 선택할 수 있게 해야죠.

 

어린이집에 지원되는 금액이 크다 보니 탈이 많았죠.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 아이를 허위로 등록해

국고지원금을 타낸 원장들, 그를 도운 학부모들이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무상보육이라면서

어린이집에 하루종일 있는 아기들과 몇 시간 있는 아기들 사이에 금액 차이도 없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어린이집에서는 몇 시간 있는 아기들, 즉 엄마나 할머니 등이 일찍 데려가는 아기들만

받고 싶지 않을까요?

그러다보니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발을 동동 구르게 됐습니다.

 

 

에휴 정책이 엉망입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제 일이 되고 보니 보육 정책 피부에 와 닿지 않습니다.

 

엄마들이 생각하는 보육정책은 간단합니다.

 

문제를 일으킨 시설은 엄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이를 체벌, 학대한 경우, 허위로 국고지원금을 타낸 경우 등은

어린이집을 폐쇄하는 정도의 강경 정책을 써야 같은 일이 일어날 확률이 줄어들 겁니다.

 

양육수당과 보육수당을 일원화하고

어린이집에 바우처로 지급하는 보육료를 부모에게 지급해 부모가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정이 줄어들 겁니다.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일은

어린이집 시설 확충입니다.

 

정부가 직장마다 어린이집을 지어준다면,  직장마다 짓기 어렵다면

아기를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 곳곳에 많아서

출근하면서 맡기고 퇴근하면서 데려올 수 있도록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참... 아기 키우기 힘든 사회입니다.

 

 

복직과 함께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려면 준비할 것이 많겠죠.

기특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겁니다.

 

어린이집에 보내려면 '낮잠 이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기들은 보통 하루에 한두 번 낮잠을 자니까 자기 이불이 필요한 것인데요.

엄마들이 그 이불에 아기 이름을 바느질로 새긴다고 하네요.

그걸 새기면서 얼마나 눈물을 쏟은 엄마들이 많을까요.

내년에 저도 바느질을 하며 얼마나 울게 될지...

 

엄마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사회, 아직도 멀었습니다.

 

보육정책, 어렵지 않은데요.

결국 재원과 정책 의지의 문제겠죠.

재원도 결국 정책 의지의 문제일 겁니다.

결국 답은 정치,인 걸까요.

 

 

어린이집을 보내기로 한 날 기특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언젠가 기특이가 자랐을 때 제 마음을 이해해줬음 하는 마음으로...

 

 

  기특아, 오늘은 엄마 품에 온지 266일이 지난 날이야. 오늘 아침에 기특이는 이유식을 잘 안 먹었지만 엄마 등에 업혀 잘 잠들었고 엄마랑 잠시 같이 낮잠도 잤어. 엄마가 자다가 눈을 떴는데 기특이가 엄마 가슴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어서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어. 그런 마음을 기특이는 언제쯤 알게 될까?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나는 마음.

 

  내년 2월이 되면 엄마는 회사로 돌아가야 해. 그때면 기특이는 돌도 지나고 15개월이 되어 있겠지. 아마 조금씩 말도 할 거고 지금은 소파나 엄마 무릎을 잡고 걷지만 그때는 혼자 아장아장 잘 걸을 거야. 기특이가 쑥쑥 크는 만큼 엄마 품에서 멀어져가는 것 같아 가끔은 쓸쓸할 때도 있어. 하지만 보통은 기특이가 엄마를 찾으며 보채면 엄마도 뻔한 인간인지라 답답하기도 해. 그런데 아직은 엄마 품에서 있고 싶을 때 널 어린이집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엄마는 눈물부터 난다. 왜 세상은 엄마 품에 있고 싶은 아기를 좀더 품에서 돌보지 못하게 하는 걸까 화도 나. 적어도 세 살까지만 엄마가 돌봐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사회를 원망하거나 변하지 않는 사실 앞에서 화를 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됐는데도 말이야.

 

  기특이가 세상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엄마 품에서 멀어지게 될 거야. 언젠가는 엄마보다 좋아하게 되는 여자친구도 생길 거고 엄마보다 소중해질 아기도, 가족도 생기겠지. 그때 엄마는 기특이가 좋은 어른이 되었다는 걸 기쁘게만 생각할 수 있을까. 아마 외할머니가 외삼촌을 바라보는 것처럼 서운해도 할 것 같아. 내 품에서 엄마만을 의지하던 내 아기가 엄마 품을 떠나는 건 그런 건가봐.

 

  함께 있을 땐 엄마는 혼자 자유롭고 싶은데 기특이와 떨어져야 한다니까 왜 이렇게 슬플까. 우리가 서로 끌어안고 있지 않아도 기특이가 안심할 수 있을 때 멀어져도 좋을 텐데. 그런 날은 멀지 않은 날에 찾아올텐데 말야.

 

  기특아 걱정 많은 엄마가 괜히 우울해하는 거라고 생각해. 기특이는 엄마가 회사를 가도 씩씩하게 잘 지내고 어린이집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거라고 믿어. 엄마가 엄마의 삶 때문에 온전히 기특이의 엄마만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엄마의 삶이 행복해야 기특이도 행복한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거니까 잘 이해해줬음 좋겠다. 기특이가 언젠가 엄마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엄마도 기특이와 떨어지는 걸 이렇게 슬퍼했다는 걸 알게 될까? 기특이만 엄마와 떨어져 슬픈 게 아니라 엄마도 기특이와 떨어지게 되어 이렇게 슬퍼했다고. 그리고 정말 미안해. 이런 사회에 너를 꺼내놓은 것 같아서 엄마는 가끔 너무 슬프고 화가 나.

 

  사랑하는 아들, 씩씩한 우리 기특이는 엄마아빠와 잘 해낼 거라고 믿어. 늘 하는 말이지만, 이런 말밖에 해줄 수 없지만, 기특이가 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 엄마는 항상 기특이 뒤에 서 있을게. 기특이가 손 내밀면 언제든 잡을 수 있는 거리에. 우리 아들,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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