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육아휴직한 뒤 진짜 동지가 됐다

임아영

아이를 낳고서는 주말에도 쉴 수 없다. 늘상 수면 부족이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 내게는 아이를 돌보는 의무가 주어져 있다. 남편과 나는 늘 지친 표정으로 “쉬고 싶다”고 외친다. 물론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내게 웃음을 준다. “엄마, 여기는 도깨비 집이야.” 그림책을 본 뒤 둘째가 스케치북에 알 수 없는 형상(?)을 그려놓고 말했다. “엄마는 무서워”라며 과장되게 말하면 아이는 활짝 웃으며 말한다. “엄마, 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아이를 낳고 느꼈던 평온함과 환희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느낄 수 없던 감정이다. 물론 아무리 예뻐도 나도 사람이니 주말에는 쉬고 싶지만. ‘예쁘지만, 기쁘지만 엄마도 쉬고 싶어.’ 어떤 무한루프 같은 것일까. #양육의 환희와 양육의 고통은 이어져 있다.

증조할아버지댁에 갔다가 거위를 발견하고 신기해하고 있다.

주말 두 아이는 공원에서 킥보드를 탔다. 그냥 유유히 앉아서 킥보드를 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고작 36개월인 둘째는 헬맷을 씌우고 무릎, 팔꿈치에 보호대를 해줘도 불안하다. ‘아, 킥보드를 사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아이가 너무 타고 싶어했다. 킥보드를 타는 둘째를 남편이 따라다녔다. 30분쯤 지났을까. 남편이 힘들어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하다. 남편이 힘들어 보이면 양가적 감정이 든다. ‘어쩌나’ 하는 애잔한 감정도 들지만 ‘너도 더 힘들어봐라’라는 못된 생각도 올라온다. 남편의 잘못은 아니다. 세상이 내게 양육의 의무를 더 지라고 말할 때 나는 미워할 사람이 없었다. 그 화살은 종종 남편에게 간다. ‘남편, 미안해. 그런데 구조에 화를 낼 순 없잖아.’

남편이 둘째를 돌보는 동안 나는 상대적으로 수월한 첫째를 돌봤다. #초등 1학년인 첫째는 혼자서도 킥보드를 잘 탄다. 문제는 킥보드로 끝이 아니었다는 점. 첫째가 공원에서 우연히 학교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보조바퀴가 있는 자전거도 아니고 두발 자전거! 아이는 삼촌이 선물로 사준 자전거에 1도 관심이 없었지만 친구가 타니 관심이 생겼다.

‘아이의 첫 자전거’는 드라마 속 묘사만큼 로맨틱(?)하지 않았다. 어른 남자가 8세 아이 자전거 높이에 맞춰 허리를 구부려 계속 잡아줘야 하는 일. 그때부터였다. 남편의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기 시작했다. 부모의 체력을 고려해주지 않는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보채기 시작했다. 첫째는 집에 있는 자기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했고 둘째는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냥 집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하며 씻었으면 좋겠건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남편이 아이들을 놀이터에 데려갔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접었다. 한시간쯤 지났을까. 남편이 돌아왔다. 얼굴이 ‘흙빛’이었다.

“나도 힘들어.”

남편이 휴직하고 곧잘 하는 말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도 모르게 어지러져 있는 거실을 훑어보고 “좀 치우지” 말하게 될 때, 첫째의 #주간학습계획표에 뭔가 빼먹은 게 있을 때 왜 빼먹었느냐고 되묻게 될 때 남편은 말한다. “나도 힘들어.” 8세, 4세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먹을 것을 흩뿌리며(?) 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런 말이 튀어나올까. 어린이집 준비물을 빼먹고 회사에서 후회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는데 왜 남편에게 왜 빼먹었느냐고 되묻게 될까. 퇴근하고 돌아오면 남편은 이미 소진된 표정이다. “어때? 회사 일이 나아, 육아가 나아?” “회사 일이 낫지”라는 힘없는 대답이 돌아올 때 남편과 역할을 바꿔서 신나기만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너무 남편이 짠해질 때 이상하게도 ‘동지’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얼마 전 첫째 숙제에 대해 남편과 논의하다가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남편이 다른 것 다 해놔야지. 첫째 초등학교 적응 때문에 육아휴직한 이유도 있는데”라고 말했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친구가 말했다. “그렇게 말한 것 남편에게 사과해! 애들 때문에 정신 없는 것 알면서.” 그 친구는 전업주부였다. 돌봄을 전담하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나도 역할을 바꾸고 보니 남편의 상황보다는 나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었다. ‘아, 이런 건 내가 오기 전에 다 해놓지.’ 얼마나 싫어하던 말이던가.

남편이 #육아휴직을 한 것을 보면서 주변에서 다들 말한다. “경상씨가 참 대단해요.” 그럼 나도 모르게 욱한다. “저는 #육아휴직 두 번이나 했고요. #신생아를 키웠어요.” 그 뒤에는 ‘다 큰 애들 보는 게 뭐가 힘들어요?’라는 말이 숨어 있다. 그러나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안다. 신생아든, 미운 네 살이든, 초등학교에 간 아동이든 육아는 고된 일이다. 남편이 육아휴직 하기 전까지 항상 조정하는 것은 나였다. “남편 내가 힘들어, 일을 더 나눠서 해줘.” 울며 사정한 날들도 있었다. 이제는 달라졌다. 내가 #돌봄노동에 시달릴 것이 분명한 ‘안사람’을 위해 회사에서 뛰어와야 한다. 처음에는 ‘그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 알겠어?’라는 알 수 없는 쾌감(?)이 들었지만 퇴근 후 지친 남편의 표정을 보면 ‘서로의 상황을 비교해봤자 무의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 전 아기였을 때 정말 많이 울던 첫째. 첫째가 덜 울었다면 육아는 덜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서야 남편이 진짜 내 편 같다. 몸으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을 우리는 이제 정말 함께 하며 서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햇볕이 뜨거운 날 남편이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진심으로 걱정이 된다. ‘오래 서 있으면 힘들텐데.’ 둘째는 이제 장난감을 찾을 때도 아빠를 부른다. “엄마가 찾아줄게”라고 하면 “엄마 말고 아빠”라고 말한다. 아빠와의 시간이 쌓이면서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빠, 아빠”라며 아이들이 매달릴 때 후련하다가도 남편이 짠해진다.

가끔 궁금하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마친 뒤 우리가 다시 함께 회사를 다니고 함께 돌봄노동을 나누게 되면 나는 이전보다 덜 화가 나게 될까? 아마 아닐 것이다. 여전히 이 사회는 엄마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니까. 남편의 노력과 별개로 내가 힘든 것은 ‘구조’니까. 그러나 남편이 육아휴직하기 이전의 남편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이 시간이 매우 귀하다고 느낀다.

 

 

매일의 지난함을 함께 통과하는 '동지'

황경상

첫째가 태어나고 한 달 즈음 되었을 때니,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아내는 아침에 출근한 나에게 방긋방긋 웃는 첫째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줬다. 보고 또 들여다보고 하면서 조금은 안심했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고 집에서 혼자 갓난쟁이와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내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제 좀 나아지려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오후에 아내에게 전화가 또 왔다. 정말 도망가고 싶다고 했다. 울기도 했다. 아침에 방긋댄 건 잠깐이고 그 이후로는 내내 칭얼거렸던 모양이다. 저녁에 퇴근하고 가 보니 아내의 안경에는 눈물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모든 게 처음이라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행여나 아이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홀로 집에 남아있는 일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외롭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고립감이었을 터다. 육아휴직 시절 아내는 퇴근하는 나를 지하철역까지 마중 나오는 일을 좋아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을 터다.

처음 첫째를 낳고 나서 아내는 젖 먹이는 것조차 힘들어 했고 잠도 잘 자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힘들어한다고 간호사에게 하소연을 하자 간호사는 단호히 말했다. “엄마는 원래 그래야 해요.” 원래 그렇게 태어나는 사람은 없는데, 어쨌든 엄마는 그 모든 걸 버텨야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어머니에게 나를 처음 낳았을 때도 그렇게 힘드셨냐고 물었다. 어머니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애는 하루 종일 울어대는데 젖은 잘 안 나오고 해서 몹시 힘들었고, 울기도 많이 하셨다고 했다. 산후조리를 돕던 할머니가 산후에 울면 눈이 나빠진다고 해서 제대로 울 수도 없었다고 했다.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지금은 아이들도 많이 컸다. 둘이 놀면 그냥 놔두고 다른 일을 해도 될 정도다. ‘그래, 예전 이 녀석들 어렸을 때보다 지금은 많이 편하지.’ 그럼에도 한 가지 사실은 변함이 없다. 중간에 가다가 쉴 수는 없다는 것, 귀찮거나 힘들다고 열 번 중 한 번쯤은 놓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열 번 잘 해도 한 번 못하면 못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

언젠가 들었던 잠수함사령부의 모토는 “100번 잠항하면 100번 부상한다”라고 한다. 잠수함은 바다 속에서 아무리 작전을 잘 수행하더라도, 단 한 번이라도 바다 위로 나오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다. 육아도 마찬가지. 아이들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아니나 다를까 사고를 친다. 매일 해도 한 번을 잘 못하면 인정을 못 받는다. 늘 전쟁하듯이 최선을 다하지만 한 번 삐끗하면 개념 없고 무관심한 부모가 되기 십상이다.

첫째가 유치원을 다닐 때 등원을 시키면서 감기약을 유치원가방에 넣어두고 깜박 잊은 채 투약지시서를 쓰지 못했다. 오후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는데 왜 약만 넣어뒀냐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단다. 나는 졸지에 투약지시서도 쓸 줄 모르고 약만 넣어둔 개념 없는 아빠가 됐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기운이 쭉 빠졌다. 그런데 지시서를 안 썼는데 약이 있는 줄은 어떻게 아셨지? 첫째가 다른 친구가 약 먹는 걸 보더니 자기도 달라고 했단다. 눈치 없는 녀석.

얼마 전 새벽녘에 빗소리에 깼다가 다시 겨우 잠을 청했는데 아이가 일어난다. ‘아빠 나가자, 나가 놀자’ 아휴, 정말. 죽겠다는 소리가 입밖으로 나오려는 찰나, 아내가 데리고 나간다. 30분인가 눈을 더 붙였을까. 어렴풋하게 아이들과 엄마의 재잘거리는 희미한 소리에 선잠을 깼다.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이불에 몸을 묻고 안락하게 누워있으니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잠이 덜 깬 채로 내 침대에 누워 몸을 비비대는데 부엌에서는 엄마가 뭔가 투닥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다. 희미하게 음식 냄새도 난다. 그 소리를 들으면 괜히 안심이 됐다.

그때는 생각을 못했다. 그 투닥거리는 소리는 바로 매일 다가오는 일상에 맞서 ‘100번 잠항하면 100번 부상하는’ 미션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소리였다는 것을. 귀찮다고, 힘들다고 도망갈 수도 없고 늘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내는 소리였다는 것을. 매일 아침 엄마도 얼마나 일어나느라 힘들었을까. 엄마도 이불에 몸을 더 파묻고 누워있고 싶었을 텐데. 엄마뿐만 아니라 육아휴직을 하던 시절 아내도, 지금까지 아이들을 돌봐 주신 장모님도 그랬을 것이다. 육아가 온전히 내 영역에 들어오고 나서야 다시 한 번 그 지난함을 생각하게 된다. 잘 하면 본전이고, 잘못하면 오직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은 그 일.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던 시절, 불가피하게 일 때문에 늦게 들어간다고 하면 아내는 알았다고 하면서도 풀 죽은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아, 정말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건데... 놀려고 일부러 늦게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나 역시 서운했다. 그런데 요즘 아내가 ‘일 때문에 늦어’라고 메시지를 보내면 머릿속으로는 다 이해가 가지만 어쩔 수 없이 야속하다. 일을 마친 아내는 집에 와도 파김치가 되어 있기 때문에 큰 도움도 안 된다. 그래도 어떤 때는 그게 더 낫다는 걸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알게 됐다. 아무 것도 안 하고 그저 곁에만 있어도 동지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재우고 맥주 한잔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출처] 아빠의 육아휴직으로 우리는 드디어 동지가 됐다 [부부 육아일기 8화]|작성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우리 주말마다 한 집에서 아이들을 보면 어때요?”


 

시작은 내 제안이었다. 깊이 생각해 본 제안은 아니었다. 지난해 봄 둘째 육아휴직 중이던 나는 복직을 앞두고 있었다. 휴직 기간 첫째 두진이 유치원 하원을 하면서 유치원 엄마들과 친해졌다. 엄마들과 서로의 집에 초대하면서 아이들에 대한 에피소드, 양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게 됐고 내게도 ‘동네 친구’가 생긴 것이다. 엄마가 자주 친구와 놀 수 있게 해주고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자 아이는 더 좋아했다. 엄마들의 안전한 보호 아래 친구들과 놀 수 있었으니까. 물론 놀이를 하다가 싸우기도 하고 모든 것이 ‘내 것’이라 우기는 터에 곤란할 때도 있었지만 그 곤란함 속에서도 아이들은 장난감을 나누는 연습, 차례를 양보하는 연습을 하며 자라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엿보면 흐뭇했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친구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구나.’


 

‘주말마다 갈 곳 없다’며 말 주고받다
한 집씩 돌아가며 아이들 보자 제안
그렇게 ‘주말 공동육아’가 시작됐다

 

그런데 복직하면 이런 시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문득 두려웠다.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점점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맞벌이 부부라 이런 시간을 자주 마련해줄 수 없다는 게 걱정스러웠다. 어느 날 유치원 엄마들과 주말마다 갈 곳이 없어서 곤란하다는 말을 주고받다가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 “우리 주말마다 한 집에서 아이들을 보면 어때요? 그날은 그 집 부부가 아이들을 다 돌보고 나머지는 쉬는 거예요. 어때요?” 3명의 엄마는 다들 흔쾌히 좋다고 했고 그렇게 ‘주말 공동육아’가 시작됐다.


 

처음 공동육아를 하던 날. 오전 10시 ㄱ네 집에 아이들을 데려다줬다. 엄마아빠 없어도 된다며 친구들과 신나게 놀겠다는 아이를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 오늘은 이준이만 보면 된다!’ 우리 집에서 돌보는 아이는 1명 줄어들었지만 ㄱ네 집은 6세 아이만 4명이 됐다. ㄱ네 엄마아빠는 점심을 먹이고 다 같이 공원을 갔다고 했다. 아이들은 장난감으로 다양한 놀이를 했는데 가장 좋아했던 것은 ㄱ네 이층침대에서 불을 끄고 공연하는 것이었다고.


 

오후 5시 아이들을 데려갈 시간이 됐다. 엄마아빠가 ㄱ네 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지만 두진이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놀았던 시간이 너무 즐거웠으니까. ㄱ네 엄마는 말했다. “한 명 보는 것보다는 힘들었지만 네 명 본다고 곱하기 4가 되지는 않더라고요. 할 만했어요!” 나머지 부부들은 쉬었지만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노니 육아 부담이 아이 수만큼 증가하진 않았다. 얼마나 현명한 방법인가.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거워한다는 게 뿌듯했다.

 

삽화 김상민 기자


■ 주말 공동육아 1년

그렇게 네 집이 주말 공동육아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물론 주말에 집안일, 경조사가 있으니 매주 공동육아를 할 수는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기로 하면서 내심 ‘이게 얼마나 오래 갈까’ 싶었다. 그런데 1년이 훌쩍 넘었다. 비결은 뭘까. 아빠들이 친해졌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이미 꽤 친해진 상태에서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진정 공동육아를 하기 위해서는 아빠들의 호응이 중요했다. 강화도에 할머니집이 있는 ㄴ네가 할머니가 여행 가셔서 집을 비우니 “놀러 오라”고 제안했다. 중요한 타이밍이었다. 아빠들이 이 모임에 호응을 할지, 하지 않을지를 볼 수 있는 리트머스 같은 타이밍.


 

아빠들 친해지자 ‘식사’ 일정 추가 돼
서로 이름 부르고 급할 때 아이 부탁
“당직이라서요…재워줄 수 있을까요”

 

강화도 옥토끼센터에서 처음 조우한 4명의 아빠들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아이를 돌보는 데만 집중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색한 분위기가 깨진 건 저녁에 강화도 할머니집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면서였다. 엄마들은 일부러 아빠들을 한 상에 앉게 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엄마들끼리 수다를 하다 아빠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궁금해서 귀를 기울였다. 다양한 이야기가 들렸다. 아이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정치, 사회 분야 이야기로 확장되며 이야기 주제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었던 것. ‘됐구나’ 싶었다.


 

그 이후부터 주말 공동육아를 하는 날 일정이 추가됐다. 오후 5시 각자 집으로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공동육아 당번 집에 모여서 모든 가족들이 저녁을 함께 먹는 것으로. 이제 맥주 한잔하며 각자 회사 이야기도 나누고 정치적 토론도 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자주 만나게 되자 서로의 이름도 알게 됐다. 물론 여전히 ‘누구네 엄마, 누구네 아빠’라고 많이 부르지만 서로의 이름도 부를 수 있는 사이가 된 것. 한 아빠가 말했다. “저는 아영씨, ㄷ씨, ㄹ씨라고 이름을 부르는 게 좋더라고요. 우리는 누구의 부모이기도 하지만 우리이기도 하니까요.”


 

가장 좋은 것은 급할 때 아이를 부탁할 수 있다는 거다. 공동육아니까. 쉬는 금요일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시간을 맞출 수 없을 때 “언니, 저 좀 늦는데요. 잠깐만 놀이터에서 데리고 놀아줄 수 있으세요?”라고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것. 거꾸로 부탁을 받기도 한다. “야근 당직 일정이 겹쳐서요. 아침에 등원할 사람이 없는데 아영씨가 재워줄 수 있어요?” 물론 나도 흔쾌히 가능하다고 답한다. 내 아이를 돌봐주는 만큼 나도 ㅁ을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같이 아이들을 돌보기로 한 거니까. 우리 집 칫솔 꽂이에는 ㅁ의 칫솔도 꽂혀있다. “ㅁ이가 자고 갈 때 써야 하니까 엄마 절대 빼지마”라는 두진이의 지시(?)가 있어서다.


 

■ 마을에서는 이렇게 길렀을까

아이들을 같이 돌보면서 집마다 아이를 기르는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엿본다. 처음에는 문화가 다르니 많이 조심했다. 우리 집에 왔다고 해서 우리 아이한테 하듯이 할 수는 없었다.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에서 공동육아를 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아이를 더 조심시키게 됐다. 장난감을 선제적으로(?) 나눠주게 하고 손님인 친구들을 배려할 수 있도록.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아이들 특성을 알 만큼 시간이 지났고 아이들을 재량껏 돌볼 수 있을 만큼 신뢰가 쌓였다. 그런 만큼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할 수 있게 됐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주기로 한 날이었다. 순서대로 줄을 서라고 했더니 ㅁ이 “이모는 맨날 나만 꼴찌로 줘요”라고 울먹였다. ‘ㅁ을 1등으로 준 것도 여러 번이었는데.’ 아마 공동육아를 하던 초반이었으면 “그래? ㅁ이 먼저 먹을까. 친구들이 양보해줄래” 했을 텐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ㅁ아, 이모가 ㅁ이 1등으로 준 게 이모 기억으로만 3번이나 나는데? ㅁ이는 3등으로 줄 섰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줄래? 이모가 빨리 만들어줄게.” ㅁ이가 머쓱한 듯 웃었다. 이제 아이별로 협상을 할 수 있을 만큼 친해졌다. 아이들도 친해진 만큼 나를 ‘이모’라 부르는데 스스럼없다.


 

이렇게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내 어릴 적이 생각난다. 옆집 친구가 엄마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엄마는 옆집 엄마와 시간을 보냈고 나와 친구는 집 앞 골목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술래잡기를 했다. 골목에 나온 다른 친구들까지 편을 갈라 신나게 고무줄을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저녁이 되면 엄마는 만든 반찬을 옆집에 가져다주라고 하시기도 했다. 어린 나는 쟁반 위의 접시가 깨지지 않도록 발걸음을 조심해 옆집까지 배달(?)했다. 돌아오는 쟁반 위에는 옆집 엄마가 주신 반찬이 담겨 돌아오는 길에도 발걸음을 조심해야 했다.


 

요즘 엄마들이 육아 힘들어하는 이유는
남편도, 골목도, 친구도 사라진 집 안에서
아이와 둘이 지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골목 문화가 살아있던 90년대 나는 그렇게 자랐다. 왜 요즘 젊은 엄마들은 다양한 육아 도구가 생기고 정부의 지원도 늘고 있는데 육아를 힘들어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답한다. 남편도, 골목도, 친구도 사라진 집 안에서 아이와 둘이 지내고 있어서 그렇다고. 그게 ‘독박육아’다. 아파트가 빽빽한 2018년의 서울에서 아이들은 어쩌면 집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 어른들에게도 ‘육아 친구’가 필요하다

아이가 클수록 육아는 막막하다. 내가 아이를 잘 기르고 있는 걸까. 영어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주변에 있어서인지 한글도 잘 모르는 두진이가 영어 단어를 말할 때 고민스럽다. ‘영어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긴 싫은데. 이게 과연 맞는 걸까.’ 크고 작은 고민이 생길 때마다 공동육아 친구들과 소통한다.


 

“누구누구는 일주일에 5일씩 영어 학원을 다닌다면서요”라고 시작되는 대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교육과정이 시작되는 것은 이유가 있겠죠.” “구글 통·번역기가 나오는데 얘네들이 크면 아마 영어 공부를 지금처럼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어요.” “한글도 모르는 애들한테 영어 가르치면 안 좋다면서요. 문자 교육이 아이들의 창의력 발달에 방해가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친구들은 나보다 더 현명하다.


 

아이가 클수록 육아는 막막하다
‘아 모르겠다’ 하는데 친구가 말했다
“같이 고민해보자”…왠지 용기가 난다

 

물론 공동육아 안에서 논의한다고 육아의 옳은 방법을 도출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을 기르는 옳은 방법은 각자 다를 테니. 아이에게 맞게, 반발짝 앞장서서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게 부모가 아닐까. 그런데 그 역할을 맡는 게 가끔은 버겁다. 세상의 육아서와 세상의 육아 팁들은 다들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지만 과연 그게 맞는 걸까.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갈등을 겪으면 더 복잡해진다. 도대체 부모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 걸까. ‘아 모르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동갑내기 친구가 말했다. “같이 고민해보자. 같이 고민할 그대가 있어 좋소.” 뭉클했다.


 

어른들에게도 육아의 고민을 나눌 친구가 필요하다. 우리 아이를 잘 알고 나에 대해 잘 아는 친구. 육아를 하는 내내 육아의 ‘정답’을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일에는 정답이 없을 테니까. 그러나 나 혼자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아이를 기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왠지 용기가 난다. 귀한 친구들을 얻었다. 이 주말 공동육아가 오래 지속되길.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함께 성장하는 관계가 되길.


 

주말에는 또 강화도에서 네 가족이 만나기로 했다. 기대된다. “두진아, 이번주에 강화도에 가기로 했어.” 두진이가 말했다. “우와 진짜? 너무 신난다. 엄마 얼른 토요일이 왔으면.” ‘응, 엄마도 네 맘이랑 똑같아.’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7131639005&code=210100)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워킹맘이라는 말이 숨기려는 것>


 한 언니의 글에서 “워킹맘이라는 표현이 정말 싫다”는 문장을 읽었을 때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맞다. ‘밖에 나가 일하는 엄마’만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엄마는 일을 안 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그 언니가 ‘취업모’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저 임금노동을 하고 있을 뿐인데. ‘워킹맘’이라는 단어에 숨은 가사노동과 육아에 대한 경시, 어쩌면 천시를 나도 몰랐던 건가. 한 국회의원이 ‘밥하는 아줌마’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정말 화가 났다. 국회의원 정도 되는 여자는 밥하는 아줌마들을 무시해도 되나.

 

 두 번의 육아휴직 동안 ‘잘 쉬어’, ‘쉬어서 좋겠다’라는 말을 들으면 분했다. ‘쉬긴 뭘 쉬어. 하루종일 신생아랑 있어봐라’ 라며 입술을 꽉 깨물 때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 전업주부로 평생을 산 우리 엄마. 엄마는 두진이와 이준이를 봐주면서도 “놀면 뭐해. 손자들 돌봐주는 거지”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럴 때마다 난 “엄마가 놀긴 뭘 놀았어요. 나를 키우고 수많은 일들을 했잖아”라고 말하지만 공허하게 느껴졌다. 나조차도 휴직하기 전 글을 썼었다. “이제 내가 성취라 믿어온 것들은 잠시 멈춰지겠지만”이라고.


 이 ‘성취’의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좋은 회사 직원으로 살라’는 이 성취의 기준을 별생각없이 받아들였던 10대 20대의 나를 돌아보는 요즘, 그 성취의 기준이 흔들리는 요즘,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성취를 지향하라고 가르쳐야 하는지 헷갈린다.

 

 두진이가 일곱살이 되면 혼자 설거지하고 싶다는 소망을 그렸다.

두진이가 열심히 설거지하면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서 칭찬해주는 모습. 사진에 엄마는 없지만 할머니는 있다. 이 사진을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서운해해야 하는 건지 나는 여전히 헷갈린다.

 


 아이를 낳고 난 내 시간을 잃어버렸다. 오히려 회사 와서 밥 먹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해방구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려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그런 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렸다는 고백을 하는 중이다. ‘돌봄’이란 그런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내 몸으로 누군가를 온전히 돌보는 경험.

 

   주말에는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쓴다. 작은 존재를 돌보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아이들 밥을 먹이고 작은 아이 기저귀를 갈고 졸리면 혼자 자지 못하는 둘째를 안고 어르는 이 ‘작은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알게 됐다. 하루종일 그 일만 하다가 시간이 흐른다는 것, 우리 엄마도 나를 그렇게 길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엄마의 노고를 새삼 되새기는 중이다.


 고3 때 새벽에 일어나 아침 일찍 학교를 갈 때 엄마는 늘 새 밥을 지어줬다. 내가 좋아하는 두릅을 데쳐주고 삼치를 구워줬던 엄마의 밥상을 ‘받고’ 학교를 가는 일이 당연했었다. 그런데 ‘임금노동’을 하는 나는 집안일을 다 ‘아웃소싱’한다. 빨래는 건조기에, 반찬은 ‘더반찬’ 배송에 의지한다. 아직 두 돌도 안 된 우리 둘째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는 ‘사온 반찬’을 먹여 키운다. 나는 가끔, 아이들 밥상이 내가 먹었던 밥상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 헷갈린다. 가사노동과 육아를 아웃소싱해야 하는 내 인생이 맞는 건가.


 그렇지만 난 여전히 내 일을 좋아한다. 회사 가는 것이 좋고 회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기사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좋다. ‘82년생 김지영 세대’들은 다 그럴 것이다. 자기를 증명하는 일은 여전히 소중하다. 그런데 합계출산율이 1.06명을 찍을 것이라는 시대에 나는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평일엔 친정엄마의 ‘돌봄노동’ 의지해 내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엄마에게 미안한 ‘죄인’ 신세지만 또 친정엄마의 ‘돌봄노동’ 덕분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늘 안도한다.

 

    운이 좋아서다. 서울에 계시는 친정엄마가 아이를 흔쾌히 돌봐주겠다고 하는 ‘운’ 말이다. 그래서 난 가끔 내가 쓰는 글이 두렵다. 친정엄마를 착취해 일을 유지하는 내 상황이 도와줄 가족이 없어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어떤 엄마들을 속상하게 만들까봐.


 그런데 왜 엄마들만 자꾸 일이냐, 육아냐를 선택해야 하나. 왜 엄마들만 ‘전업맘’, ‘워킹맘’으로 구분하나. 맞춤형 보육 논쟁 때 어린이집에 보내는 전업맘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들에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는 하루종일 아이만 돌봐야 하나. 어쩔 수 없이 아이 때문에 집으로 돌아간 ‘경단녀’들은 아이에게 속박된 신세로 늙어야만 하나. 공부를 하든, 취업준비를 하든 자기 시간을 가지면 안되나. 정말 답답할 때는 친구를 만나 커피숍에서 브런치를 먹으면 안되나.

 

   육아휴직 중에 치과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친정엄마가 바쁘실 때라서 치과 예약을 두 번 미루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내 몸에 달라붙어있는 이 작은 아기 때문에 내 이 치료도 못 받는 게 ‘엄마의 신세’다. 그마저도 엄마가 아이를 봐주셔서 난 치료를 받으러 갈 수 있었다.


 가끔 ‘워킹맘의 성공 서사’를 읽는다. 대부분 ‘할머니 육아’ 덕분에 끝까지 갈 수 있었던 얘기들이다. 어떤 회보에서 워킹맘이 자식 대학 잘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글을 읽을 때는 울적했다. 할머니 덕분에 아이를 키우고 결국 엄마가 아이의 적성을 파악해 학원을 고르고 ‘서포트’해 대학을 잘 보내는 이야기, 개인이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 답답했다. 이제 난 그런 성공 서사가 지겹다. 내 아이들에게 이 구조에서는 이렇게 사는 게 유리하다고 가르치고 싶지 않다.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은 1500원짜리 커피를 사 먹었다가 어떤 ‘남자’들이 자기를 ‘맘충’이라고 욕하는 걸 듣는다. 토요판에 일하며 아이 키우다 소진된다고 글을 쓰니 ‘외벌이하며 아껴쓰라’는 댓글이 달렸다. 여자들은 일하러 나오면 ‘욕심이 많은 여자’라고 비난받고 집에 있으면 ‘논다’고 비난받는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전업맘은 ‘논다’고 말하고 워킹맘은 ‘죄인’이 되는 세상이니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거다.


 입사 동기인 남편과 나는 월급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누가 그만둬도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을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가끔 헷갈린다. 남성은 나가서 일하고 여성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가부장적 모델’을 버린 국가들이 출산율 반등에 성공했다. 엄마들만 전업맘, 워킹맘, 경단녀로 구분하는 사회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암담한 미래 뿐이다. 돌봄노동을 아빠와 엄마가 함께 할 수 있어야, 아빠가 돌봄노동을 할 수 있도록 집에 일찍 돌아와야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배우자보다 임금이 낮아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이 활기차게 자신의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길. 하루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느라 아이 얼굴도 못 보는 한국 남성들도 일찍 퇴근해 아이하고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소망해본다.


 이 글을 쓸 생각을 하게 된 “워킹맘이라는 표현이 정말 싫다”는 말을 했던 언니는 밖에서 보기엔 ‘전업주부’다. 임금노동을 하진 않지만 수많은 활동을 한다. 임금노동보다 의미있어보이는! 아이를 공동육아로 키우면서 선생님을 하고 아이 초등학교 교육도 공동육아처럼 시키고 싶어 학교도 준비 중이다. 그리고 ‘정치하는엄마들’이라는 공동대표로도 열심히 뛰고 있다. 그가 쓴 발제문, 토론문을 보면 어떤 전문가가 쓴 글보다도 훌륭하다는 느낌을 여러번 받았다.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 활동들이 ‘돈’으로 치환되지 않을 뿐. 지난해 만난 사람 중 가장 빛나는 사람, 응원한다는 말로 이 글을 마친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리니 2018.01.24 1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읽었어요 같은 육아맘이라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요
    혹시 죄송하지만 티스토리 초대장 보내주시면 안되나요?
    01194358693@hanmail.net
    티스토리 하고픈데 초대장이 있어야 한대요ㅠ부탁드려용

한 국회의원이 저출산 문제를 풀겠다며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시간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수당을 주는 아이돌봄 지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고 한다.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가정을 위한 것이라는데 정말 육아 문제, 저출산 문제의 핵심을 짚지 못 한데에 대한 한숨이 푹푹 나온다.

 

그 의원은 이번 개정안이 국가적 재앙수준까지 와 있는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고 고령사회 노년층의 소득 보장 및 가정양육기능 회복에 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 노년층 소득 보장이 저출산 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할마할빠에 대한 기사가 쏟아진다. ‘친정과 가까이 살수록 빨리 자녀 출산한다’, ‘친정과의 거리가 첫째아 출산 속도에 영향 끼쳐’, ‘양육수당 조부모에 직접 지원하고 보조인력 운영 방안도 고려를’, ‘황혼육아 돕는 <조부모의 행복한 육아교실> 운영’, ‘손주 보느라 등골 휘는 할빠 할마, 황혼육아 5년새 2배 증가등등등 .

 

저출산 문제는 할마에 대한 지원책으로 풀 수 없다. 회사 다니겠다고 친정엄마를 착취하는 주제에 정부가 할머니들에게 수당을 주겠다는데 왜 안 고마워하느냐고? 제발 곁다리 짚는 방안을 해결책으로 제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금을 쓰겠다면 제대로 좀 쓰라고. 이제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데 모든 역량과 재정을 집중하자.

 

 

휴가 중 바다에 처음 발을 담가본 첫째. 아빠 등에 업혀서 바다를 보고있다.

할마 육아 덕분으로 벌써 여섯살 형님이 된 첫째.

 

 

우리 외갓집 할머니 육아를 보면 한국 사회가 왜 헬조선인지 알 수 있다. 친정엄마는 32녀의 장녀이자 셋째다. 내 외가 사촌들은 여자가 많고 대부분 나이대가 비슷하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고 그 손주들이 다 외숙모들, 엄마, 이모 차지가 되었다는 슬픈 사실.

 

큰외숙모는 딸 셋에 아들 하나인데 딸 셋이 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 지금 세 명의 손주를 돌보고 있다. 은행원인 둘째 딸이 퇴근이 늦어 10시까지 아이를 돌보는 날이 수두룩. 사위는 딸보다 더 늦게 퇴근해 얼굴보기도 힘들다고. 작은외숙모는 쌍둥이 딸 중 언니의 아이들을 돌봐줘야 했는데 문제는 작은외숙모는 군산에 살고 딸은 수원에 산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이모님을 고용하고 지방에서 외숙모가 CCTV로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보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연출되다가 사촌 제부가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서 결국 외숙모가 수원으로 올라와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외숙모와 외삼촌이 기러기 부부가 된 것. 결국 몇 개월 지나 외숙모는 다시 군산으로 내려가셨다.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할머니들 중에도 지방에서 혼자 아이를 돌보러 오셔서 기러기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분이 여러분. ‘헬육아는 할머니 할아버지마저 기러기 부부를 만들고 있다.

 

끝이 아니다. 우리 이모는 작은 아들 부부가 모두 안동에서 일하는데 아들 부부 모두 서울/경기 출신이라 이모가 시시때때로 내려가 손주들을 돌보고 계시다. 그러나 내려가서 돌보는 게 한계가 있으니 이종사촌의 둘째 아들은 지금 돌이 안됐는데 서울의 외할머니 집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이종사촌 부부가 주말마다 아들을 보러 올라오는 상황. 올케가 최근 셋째를 임신했는데 첫째를 돌볼 손이 필요해서 최근 이모는 다시 안동행. 그리고 마지막 우리 엄마. 2014년 내 복직부터 우리 첫째를 봐주시다 이제 손자 두 명을 맡으셔야 하는 팔자.

 

첫째 복직 후에 아이를 누가 돌봐주냐고 묻는 질문이 그렇게 싫었다. 딱히 나를 보고 할 말이 없어서 묻는 것인지 알면서도 친정엄마요라는 답변하면서 드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나이들어 무릎 성하지도 않은 엄마에게 아이를 떠넘겠다는 죄책감.

 

육아는 대체가 어렵다. 특히 영유아기는. 많은 이기적인(?) 부모들이 대체할 수 있는 존재로 할머니를 의지하는 건 아직 인간이 되기엔 너무 미약한 존재들을 돌보는 게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데 그 힘듦을 사랑으로 견디는 건 가족이 최고라는 것을 아니까.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지만 내 새끼들을 안전하게 돌볼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너무 힘드니까.

 

친정엄마들은 딸과 사위 부부가 퇴근이 늦어 방치되는 손자들을 놔둘 수 없어 육아를 맡는다. 딸이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하나로 자기 몸이 축나는 것을 알면서도 손자들을 돌본다. 그런 할머니들에게 수당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자식들이 주는 용돈이 부족할 수도 있고 할머니 육아를 개인화하면 안 된다는 것도 공감한다. 그런데 말이다. 할머니들이 돌봐줄 수 없는 가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역차별이다. 많은 경단녀들이 지방에 사는 부모님들이 아이를 돌봐줄 수 없어서 일을 포기한다. 그들에게 국가는 무엇을 해줄 것인가. 친정엄마, 시엄마가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상황은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니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런 가정에 수당까지 준다는 것은 할머니 육아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가정들에 대한 역차별이다.

 

국가는 할머니 착취를 그만둬야 한다.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게 아이들을 돌볼 시간을 돌려주면 된다. 국가는 아이를 맡아서 키워주겠다는 허언을 그만두라. 아이는 부모들이 키울 수 있어야 하고 국가는 그를 지원하면 된다. ‘할마수당같은 정책으로 친정엄마, 시엄마 없이 아이를 키워야 하는 가정에 상실감을 주지 말라. 그리고 부디 친정엄마, 시엄마를 착취를 끊어 친정엄마, 시엄마 눈치 보며 출근해야 하는 가정의 죄책감을 덜어 달라. 부모들에게 시간을 주면 모든 게 해결된다.

 

모든 것은 노동시간 문제다. 근본적인 것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저출산 문제를 풀겠다고 하지 말라. 보육 문제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는 보육 정책의 모토를 건전한 보육 환경 조성과 일-가정 양립에 둔다고 했다. 그러나 일-가정 양립이 노동 정책에서 해소되지 않는데 보육 정책으로 풀 수는 없다. 육아휴직을 엄마아빠 1년씩만 해도 아이는 두 돌이 지난다. 두 돌이 지난 아이들부터만 보육시설에 가도 어린이집 문제는 많은 것이 해결될 것이다. 돌이 안 된 03명을 보육교사 1명이 돌보는 게 말이 되나. 엄마 1명이 아이 1, 아빠 1명이 아이 1명을 돌보게 해달라. 보육교사를 착취하지 말고. 그리고 두 돌 이후에는 유연근무제, 시차출퇴근제 등이 현실화되면 12시간 종일반 같은 말도 안 되는 정책이 필요 없다. 왜 아이들이 하루종일 현관문만 바라보며 밤늦게 퇴근하는 엄마아빠를 기다려야 하나.

 

복직이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첫째 휴직 땐 영아와 하루종일 집에 있는 게 힘들어서 회사로 도망(?)치고 싶었는데 지금은 뭐가 옳은지 잘 모르겠다. 둘째 육아휴직 때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고 우울감도 거의 없었다. 첫째가 말상대가 되어주고 친정 근처에서 살아서 외롭지 않아서일 것이다. 동네 친구도 많이 생겨서 지금 사는 곳이 동네로 느껴져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회사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절대적으로 길어질 복직 후의 내 일상은 어떻게 될까. 그로 인해 빼앗겨야 하는 아이들과의 시간이 그리워도 회사에서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추어처럼 보일까봐. ‘이등 사원으로 보일까봐.

 

아이를 낳기 전에는 엄마들은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들인 줄 알았다. “그 선배 애 낳더니 변했잖아같이 엄마 선배들이 칼퇴하면 자기 자식돌보러 일찍 퇴근한다고 비난하는 말을 들어서일까.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그 아이들을 방치하고 회사에 남아 있으라고 말하는 이 사회가 더 괴물 같다. 내 아이라서가 아니다. 어른이라면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것 아닌가? 아직 혼자 거리를 걸어다니기 어려운 어린아이들을 방치하라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 우리 모두 다같이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할마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수많은 워킹맘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할마가 없어서 회사를 그만둔 경단녀들에게는 무슨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 같이 말해야 한다. 나는 친정엄마와 아이를 기르고 싶지 않다. 나는 남편과 함께 아이를 기르고 싶다. 전업맘이 되고만 경단녀들도 마찬가지다. 엄마와 아빠가 아이를 길러야 한다. 아빠들이 육아의 구경꾼이 되는 구조를 거부하자. 아빠들은 회사의 노예가 아니고 엄마들은 회사의 이등 사원이 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우리 친정엄마도 말씀하셨다. “제가 칼퇴근법을 가장 원하는 사람이에요! 할머니들끼리도 등수를 매겨요. 제일 빨리 퇴근하는 초등학교 교사가 1, 공무원이 그다음이죠. 제일 꼴찌가 밤 10, 11시는 되어야 퇴근하는 대기업 다니는 자식들입니다. 제시간에만 퇴근해도 서로 육아를 나눠 하기 괜찮아요. 꼭 칼퇴근법이 통과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임금님 2017.07.26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우 공감합니다.

  2. 한심인 2017.07.28 0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에 가고 싶다" 고딩들 학교에 9시 10시까지 잡아 놓고, 직장인들 회사에 잡아 놓고.
    제발 집에 좀 가자.
    장시간 잡아 두니 생산효율 낮고,
    조직을 위한답시고 사생활 박탈하고,
    인간답게 사는 나라 그렇게 어렵나?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7.30 14: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우리 다같이 집에 가서 가족들과 시간 보내는 게 참 어렵네요. 꼭 젊은 부부들 뿐 아니라 저도 중고등학교 때 그랬네요. 그러니까 생산성이 낮은 걸텐데. 그저 붙잡아두면, 오래 일 시키면, 오래 공부시키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지. 그게 문제의 본질인데 말이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