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집밥’이 먹고 싶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재료를 사와서 만들면 되지만 내가 만들어도, 남편이 만들어도 ‘집밥’ 맛이 안 난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엄마밥’이 먹고 싶었던 것 같다. 옆동에 사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디세요? 집에 밥 있어요?”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돌봐주신 지도 만 6년. 뻔뻔해진 것도 딱 6년만큼이다. 엄마는 집에 안 계시지만 집에 가 밥을 차려 먹어도 된다고 해서 남편과 나 둘이 가서 호박 된장찌개와 오징어볶음, 고춧잎나물을 와구와구 먹었다. 다 먹고 나니 전기밥솥에 있던 밥과 냉동실에 얼린 밥을 우리 둘이서 다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결혼 후 집안일하며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반쪽 인간’이었구나
작은 일 하나까지 엄마가 해주셨구나

 

나는 결혼을 하면서 엄마, 아빠로부터 독립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집안일도 별로 안 해봤고 엄마, 아빠 등에 얹혀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쪽 인간’이었다. 내가 반쪽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신혼집에서 나는 수건을 접을 때마다 엄마 생각을 하며 울었다. ‘엄마가 이런 작은 일까지 다 해줬구나.’ 수건 접기는 그나마 쉬운 쪽이었다. 신혼이어서 찌개도 해먹고 반찬도 해먹었지만 엄마가 해준 집밥 흉내를 내기는 어려웠다. 30년 숙련노동의 결과물을 흉내 내려 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일이었지만.


 

신혼 때는 밥을 해먹었지만, 아이를 낳고서는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아이 돌보기에 24시간이 맞춰 돌아가던 돌 전, 아이 이유식은 열심히 만들어 먹였지만 내 밥은 대충 먹기 일쑤였다. 그나마 친정엄마가 가져다주시는 반찬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첫째를 낳고 복직한 나는 아이 반찬을 잘 못 만들어 쩔쩔맸고 둘째를 낳고 복직하면서 배달받는 반찬으로 바꿨다. 일하면서 두 아들을 기르는 우리집에서 아이들 반찬까지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반찬 사먹기’도 금방 끝났다. 아이들이 ‘배달 반찬’을 잘 먹지 않았다. 결국 난 또 엄마에게 반찬을 얻어먹으며 기생 중이다. 여전히 내 임금노동은 엄마의 무임금노동에 빚지고 있다.


 

■ 엄마의 노동, 엄마의 일생

아이를 낳기 전에는 엄마의 하루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엄마’는 늘 돌아보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내 손으로 아이를 기르면서 비로소 나는 엄마의 하루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아침밥을 차리고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청소·빨래를 하고 반찬을 만들던 엄마의 하루를. 외환위기 이후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돈도 벌었다. 다만 풀타임 임금노동자로 일한 적이 없을 뿐이다. 엄마는 늘 자신을 ‘솥뚜껑 운전수’라고 말한다. 가끔 엄마가 학원문학상을 받았던 여고생 때, 가계부 일기로 은행에서 상을 받았던 젊은 시절에 대해 묘사할 때 나는 열정적이고 부지런한 우리 엄마가 임금노동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한다. 나처럼 글을 쓰는 일을 했다면, 아마 나보다 잘하지 않았을까?


 

주부란 ‘이름 없는 자’가 된다는 것
여전히 아이들과 나를 돌보는 엄마
나의 노동은 엄마의 무임금노동에 빚져

 

그 시절은 많이들 그랬다. 생계부양자 아버지가 가족을 부양했고 어머니는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을 돌봤다. 엄마들은 늘 ‘백업’하는 존재였다. 그런 엄마들은 딸을 ‘커리어우먼’으로 키우고 싶어 했다. 아마 자신처럼 ‘백업’하는 존재가 되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다행일까. 자라면서 남자와 다르지 않다고 교육받으며 대학을 갔고 겨우 취업과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았다. 뒤늦게 워킹맘이 되는 것은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면서 뼈빠지게 착취당하라는 메시지라는 것을 깨닫고 분노했지만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사회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는 것이 좋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한번은 지나가듯 말했다. “아빠는 그런 말 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이상하게도 친정부모님에게는 용돈을 드리는 게 그렇더라고.” 자신이 돈을 벌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는 게 맞는지 고민했다는 뜻이다. 마음이 아팠다. 일평생 아이들을 기르고 가정을 돌본 엄마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아무도 엄마의 노동을 귀하다고 말하지 않으니까. 사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니까. 돌아보면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주부가 된다는 것은 ‘이름 없는 자’가 된다는 뜻이라는 것을. 평생 그림자노동을 하며 자기 자신을 귀하게 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 임금노동만 성취인가

아이를 낳고 자주 의심했다. 임금노동에 시간을 빼앗겨 막상 내 아이들에게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나의 삶이 과연 ‘진보’한 것인지에 대해서. 그러나 수천번을 생각해봐도 나는 일도 하고 싶고 아이들도 잘 기르고 싶었다. 깨달았다. 이 사회가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 문제지, 내가 두 가지를 다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제 엄마의 노동에 대해 말한다. “엄마의 밥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엄마가 평생 나를 돌봐준 덕분에 내가 있고 이제는 내 아이들까지 엄마의 돌봄을 받고 있다”고. 또 “내 바이라인은 사실 임아영·두효순 기자라 써야 맞다”고. 아이들을 엄마에게 맡긴 채 하루 종일 일터에서 만든 임금노동의 성취는 온전히 내 것일 수가 없다고 말이다.


 

사적 공간의 일을 귀하게 생각않는 사회
종일 우선순위 매기고 정밀하게 수행하는
엄마의 반찬·집안일은 왜 성취가 아닌가

 

이제 결혼한 지 7년이 됐다. 지난 7년간 남편과 가사노동을 분배하면서 갈등도 적지 않았다. 남편이 더 바쁠 때는 내가 남편을 ‘백업’하는 존재가 될까 겁을 먹고 더 악을 쓰고 집안일을 분배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으로 우리 둘 다 ‘소진’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이제야 내가 결혼 전 집안일에 대해 ‘1’도 모르던 ‘반쪽 인간’에서 나아지는 것 같다. 꼭 임금노동을 하는 것만 성취인가? 엄마의 반찬, 엄마의 집안일 스킬은 왜 성취가 아닌가.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직접 해보고 알게 된 게 또 있다. 흔히 단순한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하루 종일 우선순위를 매기고 정밀하게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사실 말이다. 엄마가 음식 만드는 과정을 엿보면 굉장히 정교하다. 국을 끓이면서 샐러드 소스를 만들고 고기를 볶으면서 전을 부치는 과정을 동시에 해내는 일. 맛있게 상을 내려면 완성된 음식을 담는 순서도 중요하다. 엄마는 뭐 하나 대충하지 않는다. 차가운 반찬부터 접시에 담고 메인 반찬을 담은 뒤 밥과 국을 퍼서 먹는다. 그래야 음식이 덜 식기 때문이라는 것을 난 이제야 알게 됐다. 엄마밥을 먹은 지 이제 37년이나 됐는데.


 

주부의 삶은 하루 종일 표가 안 나는 일들에 우선순위를 매기고 수행하는 삶이다. 일평생 그 일을 한다면 당연히 우선순위를 매기고 순서대로 수행하는 작업에 능숙해질 수밖에 없다. 나도 아이들을 기르면서 좀 더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됐다. 가사노동, 돌봄노동, 임금노동을 동시에 하면 일의 총량이 늘어나는데 우선순위를 고려해 일의 순서를 배열하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집에서는 빠른 일처리가 필요한 것은 내가 맡고 꾸준한 작업이 필요한 것은 남편이 맡는다. 성격이 급한 대신 손이 빠른 나와 성격이 느린 대신 꼼꼼한 남편의 성격대로 자연스럽게 배분됐다. 지난해까지 아이들 기관에 관한 행정 업무를 내가 처리하다가 올해부터는 둘 다 어린이집, 유치원 알리미를 받기 시작했다. 준비물을 챙기고 아이가 아프거나 일이 생겼을 때 기관에 연락하는 일을 남편과 공유하니 빼먹는 일이 좀 줄어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남편과 ‘함께’ 육아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엄마의 숙련노동 기록 ‘장모님 레시피’

최근 통계청이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2014년 명목 국내총생산의 24.3%를 차지한다고 평가했다. 시간당 가사노동의 가치는 1만569원으로 3인 가족 기준으로는 연간 2132만원으로 계산됐다. 성별로 보면 1인당 기준 남자는 346만원, 여자는 1076만원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세 배 이상 높았는데 여자가 3배 더 가사노동을 많이 한다는 뜻이다. 여전히 여자가 가사노동을 3배 더 하지만 이 노동에 대한 대가는 지급되지 않는다. 다만 남자의 가사노동 평가액 비중이 1999년 20.1%에서 2014년 24.5%로 증가하고, 여자는 같은 기간 79.9%에서 75.5%로 줄었다. 집 안에서 남자들의 노동이 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려 한다. 속도는 너무 느리지만 여성들이 집 밖에 나와 임금노동을 하는 만큼 남성들이 집 안으로 들어와 가정 안의 노동을 분배해야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이제야 깨달은 엄마의 숙련 노동의 가치
그것이 궁금하고 기록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태어난 결과물 ‘장모님 레시피’

 

아이를 낳기 전 난 엄마표 반찬의 비법이 궁금하지 않았다. 이제야 엄마의 숙련노동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된 나는 ‘엄마의 레시피’가 궁금해졌다. 엄마의 숙련노동의 결과물을 누군가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남편과 둘이서 엄마의 레시피를 기록하는 동영상을 제작했다. 유튜브 계정 이름은 ‘장모님 레시피’라고 붙였다. 동영상을 뒤져보니 지난해 12월에 미역국 레시피를 올린 게 마지막이다. 호박전과 굴전 요리 과정도 찍어놨는데 아직 올리지 못했다. 게으름을 만회하기 위해 올해 김장 때는 꼭 레시피를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동영상을 만들면서 알게 됐다. 엄마는 미역국을 끓일 때 덩어리로 된 소고기를 산다. 보통 잘라진 소고기를 사서 참기름에 볶다가 미역도 볶은 뒤 물을 붓고 끓이지만 엄마는 국물 맛을 깊게 내기 위해 덩어리 고기를 산다고 했다. 푹 삶아서 고기 국물을 우려낸 다음 고기는 식혀서 일일이 찢어 넣는다. 처음부터 엄마가 이렇게 미역국을 끓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다 제일 맛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일 테지. 오늘은 김장할 때 쓸 새우를 사러 강화도에 가셨다. 지난해에는 홍시를 넣었는데 올해는 어떤 실험을 하실지 궁금하다. 언젠가는 꼭 엄마의 레시피 북을 만들어드리고 싶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우리 주말마다 한 집에서 아이들을 보면 어때요?”


 

시작은 내 제안이었다. 깊이 생각해 본 제안은 아니었다. 지난해 봄 둘째 육아휴직 중이던 나는 복직을 앞두고 있었다. 휴직 기간 첫째 두진이 유치원 하원을 하면서 유치원 엄마들과 친해졌다. 엄마들과 서로의 집에 초대하면서 아이들에 대한 에피소드, 양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게 됐고 내게도 ‘동네 친구’가 생긴 것이다. 엄마가 자주 친구와 놀 수 있게 해주고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자 아이는 더 좋아했다. 엄마들의 안전한 보호 아래 친구들과 놀 수 있었으니까. 물론 놀이를 하다가 싸우기도 하고 모든 것이 ‘내 것’이라 우기는 터에 곤란할 때도 있었지만 그 곤란함 속에서도 아이들은 장난감을 나누는 연습, 차례를 양보하는 연습을 하며 자라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엿보면 흐뭇했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친구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구나.’


 

‘주말마다 갈 곳 없다’며 말 주고받다
한 집씩 돌아가며 아이들 보자 제안
그렇게 ‘주말 공동육아’가 시작됐다

 

그런데 복직하면 이런 시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문득 두려웠다.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점점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맞벌이 부부라 이런 시간을 자주 마련해줄 수 없다는 게 걱정스러웠다. 어느 날 유치원 엄마들과 주말마다 갈 곳이 없어서 곤란하다는 말을 주고받다가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 “우리 주말마다 한 집에서 아이들을 보면 어때요? 그날은 그 집 부부가 아이들을 다 돌보고 나머지는 쉬는 거예요. 어때요?” 3명의 엄마는 다들 흔쾌히 좋다고 했고 그렇게 ‘주말 공동육아’가 시작됐다.


 

처음 공동육아를 하던 날. 오전 10시 ㄱ네 집에 아이들을 데려다줬다. 엄마아빠 없어도 된다며 친구들과 신나게 놀겠다는 아이를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 오늘은 이준이만 보면 된다!’ 우리 집에서 돌보는 아이는 1명 줄어들었지만 ㄱ네 집은 6세 아이만 4명이 됐다. ㄱ네 엄마아빠는 점심을 먹이고 다 같이 공원을 갔다고 했다. 아이들은 장난감으로 다양한 놀이를 했는데 가장 좋아했던 것은 ㄱ네 이층침대에서 불을 끄고 공연하는 것이었다고.


 

오후 5시 아이들을 데려갈 시간이 됐다. 엄마아빠가 ㄱ네 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지만 두진이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놀았던 시간이 너무 즐거웠으니까. ㄱ네 엄마는 말했다. “한 명 보는 것보다는 힘들었지만 네 명 본다고 곱하기 4가 되지는 않더라고요. 할 만했어요!” 나머지 부부들은 쉬었지만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노니 육아 부담이 아이 수만큼 증가하진 않았다. 얼마나 현명한 방법인가.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거워한다는 게 뿌듯했다.

 

삽화 김상민 기자


■ 주말 공동육아 1년

그렇게 네 집이 주말 공동육아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물론 주말에 집안일, 경조사가 있으니 매주 공동육아를 할 수는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기로 하면서 내심 ‘이게 얼마나 오래 갈까’ 싶었다. 그런데 1년이 훌쩍 넘었다. 비결은 뭘까. 아빠들이 친해졌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이미 꽤 친해진 상태에서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진정 공동육아를 하기 위해서는 아빠들의 호응이 중요했다. 강화도에 할머니집이 있는 ㄴ네가 할머니가 여행 가셔서 집을 비우니 “놀러 오라”고 제안했다. 중요한 타이밍이었다. 아빠들이 이 모임에 호응을 할지, 하지 않을지를 볼 수 있는 리트머스 같은 타이밍.


 

아빠들 친해지자 ‘식사’ 일정 추가 돼
서로 이름 부르고 급할 때 아이 부탁
“당직이라서요…재워줄 수 있을까요”

 

강화도 옥토끼센터에서 처음 조우한 4명의 아빠들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아이를 돌보는 데만 집중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색한 분위기가 깨진 건 저녁에 강화도 할머니집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면서였다. 엄마들은 일부러 아빠들을 한 상에 앉게 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엄마들끼리 수다를 하다 아빠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궁금해서 귀를 기울였다. 다양한 이야기가 들렸다. 아이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정치, 사회 분야 이야기로 확장되며 이야기 주제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었던 것. ‘됐구나’ 싶었다.


 

그 이후부터 주말 공동육아를 하는 날 일정이 추가됐다. 오후 5시 각자 집으로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공동육아 당번 집에 모여서 모든 가족들이 저녁을 함께 먹는 것으로. 이제 맥주 한잔하며 각자 회사 이야기도 나누고 정치적 토론도 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자주 만나게 되자 서로의 이름도 알게 됐다. 물론 여전히 ‘누구네 엄마, 누구네 아빠’라고 많이 부르지만 서로의 이름도 부를 수 있는 사이가 된 것. 한 아빠가 말했다. “저는 아영씨, ㄷ씨, ㄹ씨라고 이름을 부르는 게 좋더라고요. 우리는 누구의 부모이기도 하지만 우리이기도 하니까요.”


 

가장 좋은 것은 급할 때 아이를 부탁할 수 있다는 거다. 공동육아니까. 쉬는 금요일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시간을 맞출 수 없을 때 “언니, 저 좀 늦는데요. 잠깐만 놀이터에서 데리고 놀아줄 수 있으세요?”라고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것. 거꾸로 부탁을 받기도 한다. “야근 당직 일정이 겹쳐서요. 아침에 등원할 사람이 없는데 아영씨가 재워줄 수 있어요?” 물론 나도 흔쾌히 가능하다고 답한다. 내 아이를 돌봐주는 만큼 나도 ㅁ을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같이 아이들을 돌보기로 한 거니까. 우리 집 칫솔 꽂이에는 ㅁ의 칫솔도 꽂혀있다. “ㅁ이가 자고 갈 때 써야 하니까 엄마 절대 빼지마”라는 두진이의 지시(?)가 있어서다.


 

■ 마을에서는 이렇게 길렀을까

아이들을 같이 돌보면서 집마다 아이를 기르는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엿본다. 처음에는 문화가 다르니 많이 조심했다. 우리 집에 왔다고 해서 우리 아이한테 하듯이 할 수는 없었다.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에서 공동육아를 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아이를 더 조심시키게 됐다. 장난감을 선제적으로(?) 나눠주게 하고 손님인 친구들을 배려할 수 있도록.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아이들 특성을 알 만큼 시간이 지났고 아이들을 재량껏 돌볼 수 있을 만큼 신뢰가 쌓였다. 그런 만큼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할 수 있게 됐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주기로 한 날이었다. 순서대로 줄을 서라고 했더니 ㅁ이 “이모는 맨날 나만 꼴찌로 줘요”라고 울먹였다. ‘ㅁ을 1등으로 준 것도 여러 번이었는데.’ 아마 공동육아를 하던 초반이었으면 “그래? ㅁ이 먼저 먹을까. 친구들이 양보해줄래” 했을 텐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ㅁ아, 이모가 ㅁ이 1등으로 준 게 이모 기억으로만 3번이나 나는데? ㅁ이는 3등으로 줄 섰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줄래? 이모가 빨리 만들어줄게.” ㅁ이가 머쓱한 듯 웃었다. 이제 아이별로 협상을 할 수 있을 만큼 친해졌다. 아이들도 친해진 만큼 나를 ‘이모’라 부르는데 스스럼없다.


 

이렇게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내 어릴 적이 생각난다. 옆집 친구가 엄마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엄마는 옆집 엄마와 시간을 보냈고 나와 친구는 집 앞 골목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술래잡기를 했다. 골목에 나온 다른 친구들까지 편을 갈라 신나게 고무줄을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저녁이 되면 엄마는 만든 반찬을 옆집에 가져다주라고 하시기도 했다. 어린 나는 쟁반 위의 접시가 깨지지 않도록 발걸음을 조심해 옆집까지 배달(?)했다. 돌아오는 쟁반 위에는 옆집 엄마가 주신 반찬이 담겨 돌아오는 길에도 발걸음을 조심해야 했다.


 

요즘 엄마들이 육아 힘들어하는 이유는
남편도, 골목도, 친구도 사라진 집 안에서
아이와 둘이 지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골목 문화가 살아있던 90년대 나는 그렇게 자랐다. 왜 요즘 젊은 엄마들은 다양한 육아 도구가 생기고 정부의 지원도 늘고 있는데 육아를 힘들어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답한다. 남편도, 골목도, 친구도 사라진 집 안에서 아이와 둘이 지내고 있어서 그렇다고. 그게 ‘독박육아’다. 아파트가 빽빽한 2018년의 서울에서 아이들은 어쩌면 집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 어른들에게도 ‘육아 친구’가 필요하다

아이가 클수록 육아는 막막하다. 내가 아이를 잘 기르고 있는 걸까. 영어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주변에 있어서인지 한글도 잘 모르는 두진이가 영어 단어를 말할 때 고민스럽다. ‘영어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긴 싫은데. 이게 과연 맞는 걸까.’ 크고 작은 고민이 생길 때마다 공동육아 친구들과 소통한다.


 

“누구누구는 일주일에 5일씩 영어 학원을 다닌다면서요”라고 시작되는 대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교육과정이 시작되는 것은 이유가 있겠죠.” “구글 통·번역기가 나오는데 얘네들이 크면 아마 영어 공부를 지금처럼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어요.” “한글도 모르는 애들한테 영어 가르치면 안 좋다면서요. 문자 교육이 아이들의 창의력 발달에 방해가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친구들은 나보다 더 현명하다.


 

아이가 클수록 육아는 막막하다
‘아 모르겠다’ 하는데 친구가 말했다
“같이 고민해보자”…왠지 용기가 난다

 

물론 공동육아 안에서 논의한다고 육아의 옳은 방법을 도출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을 기르는 옳은 방법은 각자 다를 테니. 아이에게 맞게, 반발짝 앞장서서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게 부모가 아닐까. 그런데 그 역할을 맡는 게 가끔은 버겁다. 세상의 육아서와 세상의 육아 팁들은 다들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지만 과연 그게 맞는 걸까.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갈등을 겪으면 더 복잡해진다. 도대체 부모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 걸까. ‘아 모르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동갑내기 친구가 말했다. “같이 고민해보자. 같이 고민할 그대가 있어 좋소.” 뭉클했다.


 

어른들에게도 육아의 고민을 나눌 친구가 필요하다. 우리 아이를 잘 알고 나에 대해 잘 아는 친구. 육아를 하는 내내 육아의 ‘정답’을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일에는 정답이 없을 테니까. 그러나 나 혼자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아이를 기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왠지 용기가 난다. 귀한 친구들을 얻었다. 이 주말 공동육아가 오래 지속되길.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함께 성장하는 관계가 되길.


 

주말에는 또 강화도에서 네 가족이 만나기로 했다. 기대된다. “두진아, 이번주에 강화도에 가기로 했어.” 두진이가 말했다. “우와 진짜? 너무 신난다. 엄마 얼른 토요일이 왔으면.” ‘응, 엄마도 네 맘이랑 똑같아.’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7131639005&code=210100)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 일요일 아버지가 두진이를 데리고 동네 산에 다녀오시겠다고 했다. 남편은 일이 있어 혼자 두 아이를 보던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두진이는 휴일마다 종종 외할아버지를 따라 산에 다닌다. 산 중턱에서 장기 놀이를 하거나 평평한 트랙에서 킥보드를 타는 정도지만. 이준이가 낮잠을 잘 시간을 훨씬 넘겨 나도 따라나섰다. 유모차에 태워서 재운 뒤에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따라나선 나를 보신 아버지가 “산에 같이 가겠느냐”고 하셨다. 머뭇거리다 그러겠다고 했다. ‘운동 좀 해야지’ 싶어서.


 

회사에 주 6일씩 젊은 날을 내준 아버지
손주들과 놀아주다 잠시 쉬는 뒷모습에
언젠가 이 모습이 몹시 그립겠구나 싶어

 

“이 나이 되면 젊을 때 운동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에게 차이가 많이 나더라. 우리 때는 주 6일 근무여서 일요일 하루 쉬었는데 엄마가 너희들 보고 나는 하루 종일 잔 날도 있었지. 너무 피곤하니까. 그런데 피곤해도 일요일에 산에 다녀오거나 운동을 하면 그다음 주가 좀 낫더라고. 힘들어도 운동을 해야 해.”


 

피곤해하는 나에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서른일곱인 나보다 딱 서른 살이 많은 우리 아버지, 이제 예순일곱. 주 6일씩 회사에 시간과 체력을 내어준 젊은 날을 보냈다. 그렇게 아빠를 따라 산에 올라가 400m 넘는 트랙을 두 바퀴 돌고 두진이와 운동기구로 운동 시늉도 냈다. 낮잠을 자던 이준이가 깨서 이준이 머리보다 더 큰 농구공으로 공놀이도 했다. ‘이런 작은 행복들이 모여 인생의 결을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 생각하며 잠시 쉬고 있는데 아빠가 손주들과 나란히 앉아 쉬는 뒷모습을 봤다. 문득 ‘언젠간 이 모습이 몹시도 그립겠구나’ 싶어서 코끝이 시큰했다.


 

■ ‘워킹맘’을 추앙하지 마세요

나를 키울 시간이 없었던 아버지가 내 아이들을 돌봐주신다. 친정 부모님 옆에서 육아 지원을 받는 우리 아이들은 나와 남편이 없는 자리를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으로 채우고 있다. 내가 클 때 내 옆에 있을 수 없었던 아빠는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손주들 곁에 있게 됐다. 이 역설을 깨달을 때 생각한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 일평생 노동시장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빠가 집으로 돌아온 건 할아버지가 되어서라니.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육아’를 할 수 있게 됐다니.


 

첫째를 낳은 뒤 막다른 골목 처한 부모들
합계출산율 1.06명의 비밀은 여기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저녁, 거창한 꿈일까

 

‘할마 할빠’ 없이는 육아를 할 수 없는 사회다. 맞벌이 부부는 퇴근시간이 늦고 통근시간이 길어서 집에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는 일은 ‘꿈’이다. 무상보육을 하겠다며 어린이집·유치원 보육 지원을 해주지만 아이들 하원 시간까지 아이를 데리러 갈 사람이 없다. 그나마 ‘할마 할빠’가 지원해줄 수 있는 집은 다행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 부모가 퇴근하는 밤까지 어린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버티거나 시터 이모님을 고용해 버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육아 비용으로 쓴다. 부부 중 한쪽에 육아 부담이 몰려 갈등을 겪거나 결국 육아 공백을 채울 수 없게 되면 끙끙대다가 한쪽이 퇴사한다. 대부분 임금을 적게 받는 엄마들이다. ‘경력단절 여성’은 이렇게 탄생한다.


 

‘워킹맘들은 정말 힘들겠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한 취재원이 내게 아이가 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워킹맘, 참 힘드시죠?” 거기까진 뭐 괜찮았다. 이어지는 말. “저도 아이가 어린데 너무 힘들어요. 집에 돌아가도 쉴 수 없고. 와이프는 전업주부인데도 힘들다고 하니까 자꾸 싸우게 되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정색했다. “팀장님, 제가 육아휴직도 해보고 워킹맘도 해봤는데요. 애 보는 게 훨씬 힘들어요.” 너무 정색하니 취재원은 말을 돌렸다. 여전히 이 사회는 아이 기르기가 고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때는 ‘워킹맘’이 꿈이었다. 20대의 나는 아이를 기르며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한 인간을 기르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몰라서 그렇게 순진했다. 내가 한창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자잘한 차별의 언어들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적어도 여자라고 해서 남자가 하는 일을 할 수 없다고는 가르치지 않았다. 여자도 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안다.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사회생활도 하고 육아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슈퍼우먼이 되라는 말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착취’하겠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둘 다 하고 싶으면 너를 갈아 넣어’라는 말이었다니.

■ 슈퍼우먼 따위 되고 싶지 않다

이제 나는 슈퍼우먼 따위는 되고 싶지 않다.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24시간을 살 듯 나도 24시간을 산다. 아무리 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24시간을 넘는 시간을 살 수는 없다.


 

워킹맘이 슈퍼우먼이 되야하는 구조에서
엄마들은 일·육아에 심신이 다 소진되고
아빠들은 회사에 시달리다 방관자가 된다

 

워킹맘이 슈퍼우먼이 되는 구조에서 남편들은 방관자가 된다. “공무원이라 자녀돌봄휴가를 쓸 수 있어서 부럽다”고 하자 공무원 친구가 말했다. “공무원끼리 결혼해도 각종 복지제도는 다 여자 직원이 써. 동기끼리 결혼해도 10년 지나면 직급 차이가 크게 난다 하더라고. 아니 왜 똑같이 입사해서 그렇게 살아야 하냐고. 그래도 나라도 복지제도를 쓸 수 있어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할 말이 없었다. 우리 부부도 육아휴직은 나만 했다. 육아휴직 기간 아이들을 키우면서 배운 게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이라도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면 내 분노는 남편에게 향한다. “신생아 때부터 그 어려운 육아기를 내가 버텼다고. 당신이 아니고.”

가끔은 남편이 아니라 친정 부모님과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화가 난다. 결혼은 남편과 했는데 도대체 이게 뭐지. 친정아버지가 손주를 보고 나서야 육아를 할 수 있게 됐듯 남편도 육아에서 주체가 되기 어려운 구조. 물론 아버지 세대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적어도 기저귀도 갈고 아이 목욕도 시키니까. 그런데 내가 자라던 시기와 지금은 다르다.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구조가 깨졌지 않은가.


 

친정아버지는 젊은 시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다가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손자들을 돌볼 수 있었다.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남편이 애를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내 부모님의 황혼을 갉아먹으며 육아를 하는 난 항상 죄책감에 시달린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라 결국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남편에게 화살이 가는 구조. 남편이 회사에서 빨리 오려고, 집에 있는 동안 육아를 열심히 하려고, ‘도와준다’고 생각지 않고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할마 할빠’ 없이는 육아 할 수 없는 사회
한 인간을 기르는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워킹맘’이 되겠다는 건 순진한 꿈이었다

 

그런데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여전히 이 사회는 ‘가장은 회사에 시간을 바치라’고 말한다. 회사에 시간을 바쳐야 하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내줘야 한다. 그 비는 시간을 메우는 건 ‘칼퇴’하는 엄마들이거나 조부모이거나 ‘퇴사’한 경단녀다. 주말에 공원이나 키즈카페에 놀러가 ‘좀비’ 표정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아빠들을 본다. ‘저 사람들은 어제 몇 시에 퇴근했을까.’ 엄마들은 일과 육아를 하다가 소진되고 아빠들은 회사에 시달리다 소진된다. 그렇게 체력 분배를 하기 어려운 구조에서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얼마 전 대학 후배를 만나 이야기를 하다 문득 슬퍼졌다. 후배의 아내는 ‘육아 지원군’이 없어서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후배 아내가 동네에서 사귀던 친구들도 복직해서 아이와 하루 종일 둘이서 지내는데, 후배가 퇴근만 하면 우울함을 계속 토로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독박육아’의 상황으로 곪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그 와중에 후배는 회사 TF에서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라 매일 밤에 퇴근했고 부부 갈등이 심해졌다. ‘회식 금지법, 야근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아내의 성토에 ‘나도 괴로운데’라는 말을 삼키던 후배는 결국 회사를 옮겼다. 한 팀장의 조언을 듣고 난 뒤였다. “일도 잘하는데 자꾸 육아 때문에 일을 후순위로 미룬다는 인상을 주지 마라”는 조언이었다.

 

“심지어 여자 팀장이었어요. 같은 아파트 사는 언니들이 팀장님의 아이들을 다 키워줬거든요. 그런데 우리 부부는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요. 어쩌라는 건지. 그리고 아이 기르는 일보다 왜 회사 일이 더 중요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아이를 낳고나니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다. 애를 한 번도 안 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게 분명한 말들. “자기 애만 중요하고 회사 일은 나몰라라 한다”고 험담하던 목소리들. 그런 말들이 횡행했던 시절 어떻게 숨죽여 회사를 다녔을까. 아이 기저귀도 한 번 안 갈아봤을 게 분명한 정치인들이 ‘애를 많이 낳은 순서대로 비례대표를 줘야 한다’는 헛소리를 할 때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아이가 안 태어나는 거야.’

 

■ ‘부모’에게 시간을 주면 된다

나처럼 친정 부모님이 육아를 도와주는 환경은 한국 사회에서 ‘복 받은 상황’이다. 적어도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도대체 부모님은 무슨 죄인가. 우리 엄마 아빠는 왜 무릎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에 육아를 해야 하는가. 주변을 보면 자식들 육아를 도와주기 위해 지방에서 원정(?) 오는 할머니 때문에 노년의 기러기 부부도 적지 않다. 왜 자식들 육아 때문에 조부모들이 떨어져 살아야 하는가. 한편 이런 조부모의 존재가 ‘육아 지원군’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역차별이 된다. 결국 가족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는 증거다. 저출산이 심화되는 10년 동안 국가는 엉뚱한 곳에만 돈을 썼다는 증거다.

 

주변 많은 부부들이 첫째를 낳은 뒤 고군분투하다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면 극심한 갈등을 겪고 둘째는 포기한다. 합계출산율 1.06명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하나를 낳아봤더니 키울 수가 없는 구조. 아빠는 회사와 아내 사이에 끼여서 어쩔 줄 모르고 엄마는 눈치 보며 칼퇴하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면 원망할 대상을 찾지 못하다가 남편을 원망하는 악순환. 부모가 힘을 합쳐서 아이를 기를 수 있게 하면 되는데. 그 쉬운 방법을 모르는 건지. 아는데도 그렇게 해주려면 어려우니까 포기한 건지. 엄마가 된 나는 늘 궁금했다. ‘선배들은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구조를 버텨냈을까. 정말 존경스럽다. 어쩌면 우리 세대는 저출산이 심각해지니 발언권이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아버지는 늘 새벽에 출근해서 밤 11시 넘어 퇴근했다. 그게 1980~1990년대였다. ‘주 6일’간 그렇게 일했으니 주당 80시간 넘게 일만 하면서 산 것이다. 그 대가로 나는 아버지와 함께 보낼 시간을 내줘야 했다.

도대체 이렇게 긴 노동시간으로 득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주 5일이 도입될 때 경제가 휘청거릴 거라고들 했다. 그렇게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겁을 주더니 지금은 어떠한가. 7월부터 ‘주 52시간 시대’가 시작된다. 인간다운 삶, 우리는 꿈꿀 수 있을까. 거창한 삶을 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삶. 가족들이 얼굴을 보는 삶. 그런 삶, 말이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두아이맘 2018.06.20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슷하게 아이 둘을 키우고, 맞벌이를 하며, 친정 부모님에게 오후 육아를 맡기는 엄마이자, 직장인입니다.
    글자 하나하나 눈에 담에 되고, 의미를 곱씹게 되네요.
    적어도 20대의 나는, 여자와 남자가 차별받지 않으며, 아이를 낳고서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될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를 낳고 보니, <복귀>가 그렇게 어려운건지, 아니 눈치를 봐야 하는건지 몰랐습니다. 둘을 낳으면 여자가 아니란 말도 들었고, 그러게 둘째는 왜 가져서. 라는 말도 들어야 했습니다. 아이를 가진게 "죄"가 될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죄라며 왜 나의 애미 애비가 애써 보듬아 주는지, 왜 나의 애미 애비가 대신 울어주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슬프게도 아직 우리의 20대와 같은 세상은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 생각합니다. 생각이 변했고, 변하고 있으므로 그 "변화"가 퇴적되다 보면 걷기 편한 길이 만들어질거라 믿습니다.
    그 길 위에 우리의 아이들이 걸길 바래 봅니다.

<어린 시절 나와 화해하게 될 때>

 

 두진이가 부쩍 엄마는 이준이만 이뻐하고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두 돌을 맞은 이준이의 귀여움은 정말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른다.’ “엄마 사당해요라며 품을 파고들 때는 이렇게 이쁜 강아지를 본 적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4등신의 몸으로 뒤뚱뒤뚱 걸을 때는 엄마 미소를 숨길 수 없다. 나도 모르게 그 작은 강아지(?)를 안고 우리 천사가 어디서 왔나, 하늘에서 내려왔나라고 말하면서 뽀뽀를 퍼부을 때 두진이의 입은 삐쭉거린다. 그리고 바로 툭 튀어 나오는 말.

 

   “엄마는 이준이만 이뻐하고. .”

 

 이준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두진이의 상실감이 클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내가 첫째이기 때문에 둘째에 대한 질투를 익히 안다고 생각했다. 점점 배가 불러오면서 두진이에게 동생이 어떤 존재인지 설명해줬다. 네 평생 친구가 될 사람, 너를 평생 아껴주고 네가 평생 아껴주게 될 사람이 엄마 뱃속에 있다고. 그러면서도 엄마에게는 두진이가 항상 첫번째 아들이라고도 설명해줬다. 두진이는 엄마가 처음 낳은 아들, 엄마가 되게 해준 첫 번째 아들이라고. 가끔 귓속말로 속삭여주기도 했다. “두진아, 네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엄마는 훨씬 우울한 사람이었을 거야. 그래서 두진이에게 엄마는 너무 고마워. 두진이가 태어나서 엄마는 훨씬 행복한 사람이 됐어. 고마워요.”

 

 이준이를 낳으러 가던 날 가장 걱정이 됐던 존재도 두진이었다. 태어나서 엄마와 며칠간 떨어져 자야하는 건 처음인데... 제왕절개 수술을 한 난 병원에서 6일간 회복하고 조리원에서 2주 조리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돼 있었다. 수술 뒤 깨어나서 이준이를 안아보면서도 두진이를 걱정했다. ‘우리 두진이, 잘 있을까. 우리 두진이도 이렇게 눈도 제대로 못 떴었는데.’

 

 동생을 만나러 병원에 온 두진이는 의젓했다. 어쩌면 작은 이준이가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랑 떨어진 3주 동안 두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잘 지냈고 종종 조리원에 나를 만나러 놀러왔다. 두진이가 조리원에 온다고 전화가 올 때마다 마음은 문 앞을 기웃거리며 기다렸다. 우리 큰 아기가 어디쯤 오나 생각해보며 둘째를 안고 있을 땐 쓸데없이 눈물도 났다. (원래 애 낳은 직후에는 감정 조절이 어렵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 ‘우리 두진이도 이렇게 작았었는데 벌써 훌쩍 크다니.’ 작은 둘째를 안고 있으면서도 작았던 두진이가 그리웠다. 내 우려와 달리 이준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두진이는 의젓했다. 동생을 가만히 살펴보기도 하고 엄마가 기저귀나 물티슈를 가져다 달라고 하면 가져다주기도 하고. 몇 달은 큰 갈등 없이 잘 지냈다.

 

진격의 둘째. 우리집 무법자.

 

 두진, 이준 사이에 갈등이 시작된 건 이준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기기 시작한 이준이가 두진이의 장난감을 족족 망가뜨리면서. 정성들여 만들어놓은 레고 기차부터 블록 주차장이 망가질 때마다 두진이는 화를 내거나 울었다. 이준이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장난감 쟁탈전이 극심해졌다. 뭐든지 내 꺼인 아이들 사이에서 왜 그게 온전히 네 것이 아닌지설명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친구와 몸싸움을 하지 않는 성격인 두진이가 동생의 머리통(!)은 잘도 때렸다. 그때마다 주의를 줬지만 주의도 한두 번이지... ‘장난감 쟁탈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아마 자라는 내내 쟁탈전의 종류만 바뀌고 계속되겠지. 형아 옷을 물려입는 이준이는 오늘 아빠가 형아 옷 입라고 말하니 형아 옷 안 입어라는 말을 시작했다고. 아니, 벌써 형아 옷 안 입는다면 어떡해?!

 

엄마 입장은 그렇지만... 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면 세 살 아래 동생하고 나누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내게는 세 살 아래의 남동생이 하나 있다. 어릴 땐 징그럽게도 싸웠고 징그럽게도 미워했고 징그럽게도 사랑했다. 그때는 그게 사랑이었는지 몰랐지만 사랑과 미움은 양면이니까. 아직도 생생하다. 동생과 싸우다가 엄마한테 쫓겨났던 날, 아빠가 퇴근하시기만을 기다리던 밤.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마지막회를 하던 날이었다. 하필 그 중요한 순간에 싸워서 현관 밖으로 쫓겨난 남매는 드라마를 못 보는 서러움을 삭이며 아빠를 기다렸다. 그날따라 아빠가 더욱 늦으셨고 결국 드라마 보기는 실패. 모든 게 다 동생 탓 같았다. 동생도 아마 누나 탓 같았겠지.

 

엄마는 왜 그렇게 맛있는 생선도 동생한테만 큰 걸 주는지 싶었고(실제 생선 크기는 비슷비슷했을텐데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인 거다) 옷이나 운동화도 동생한테 더 좋은 걸 사주는 것만 같았다. “어리니까 동생을 이해해줘야지라는 말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던(!) 말이다. 왜 항상 내가 양보해야 하지? 실제로는 별로 양보도 안 했던 것 같은데 양보하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다.

 

아이를 둘 키우면서 첫째였던 내가 둘째였던 동생의 입장에 자주 서 보게 된다. 어릴 땐 무의식적으로 동생이 내 사랑을 다 가져갔다고 생각하고 질투했는지 모르겠지만 두진이를 키우면서 첫째들은 온전히 혼자 사랑받는 시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그렇게 사랑받았던 시간이 있었을텐데 안타깝게도 어린 시절 혼자 무한히 사랑받았던 시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둘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을 나눠가지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둘째로 태어난 자는 항상 나눠가져야 하는 운명. 나는 그런 것도 잘 모른 채 항상 동생한테 나눠준다고만 생각했었다. 별로 나눠준 것도 없으면서 그렇게 동생한테 나눠주는 게 아까웠는데. 두진이가 이준이한테 장난감을 나눠주려고 하지 않을 때 나도 모르게 두진이 넌 혼자 온전히 가져봤잖아라는 말을 삼킨다.

 

한편 두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첫째 엄마였던 나보다 둘째 엄마였던 내가 훨씬 능숙해졌기 때문이다. 두진이를 키우던 나는 너무 미숙했고 그래서 두진이에게도 서툴렀다. 왜 우는지, 왜 잠을 못 자는지, 어떻게 아이를 달래야 하는지 다 처음 배우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두진이를 키우는 게 힘들었다. 우는 두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같이 울 때 아이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가끔 불안해보이는 두진이를 보면 내 불안이 저 아이의 불안과 연결된 것은 아닐까 마음이 짠하다. 반면 이준이를 낳고 나는 훨씬 여유로워졌다. 수유하고 잠을 재우고 어르고 달래는 것 모두 능숙해졌고 딱 그만큼 아이에게 여유롭게 대할 수 있었다.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이준이가 두진이보다 여유롭고 편안해 보인다. 그게 두진이에게 미안한 점. 엄마가 처음이었던 것, 그래서 항상 서툴렀던 것.

 

얼마 전 또 이준이가 예쁜 짓을 해서 뽀뽀를 퍼부으니 그를 바라보던 두진이가 말했다.

 

엄마는 이준이만 이뻐하고.”

아니야, 두진아 엄마가 두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너무 서운해.”

 

얼마 시간이 지났을까. 서운하다는 말을 듣고서도 두진이가 또 엄마는 이준이만 이뻐하고라고 말하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어릴 때 내 목소리가 겹쳐지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영주만 이뻐하고.”

 

그때 엄마는 얼마나 곤란했을까. 내가 이렇게 곤란한데. 이렇게 또 아이를 키우며 엄마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한편 어렸던 내가 얼마나 많은 오해를 했는지, 부모의 사랑에 대해 잘 몰랐는지 깨닫는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나와 화해하게 되는 느낌.

 

사춘기 절정이던 시절 방 안에 틀어박혀 일기를 끄적였던 열네살 나는 엄마가 동생만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의 내게, 엄마 노릇이, 엄마가 잘 중재하며 공평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설명해주고 싶다. 아마 들어도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이 세상이 아이 키우는데 아무리 협조를 안 해준대도 아이 낳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내가 보지 못하던 세계로 나를 보내 준다. 아이들이 열어주는 세상에서 나는 다시 아이도 되고 엄마도 된다. 다시 아이가 되어서, 어린 시절의 내게 위로를 보낼 수 있을 때, 그 시절의 부모님을 좀 더 이해하게 될 때, 그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뭉클하게도.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yes-today.tistory.com 예스투데이 2018.06.04 1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생을 살면서 결혼을 하면서 한 단계 성장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서 또 한 번 크게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2. 서현맘 2018.06.05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디서 본건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각각에게 귓속말로 “이거 비밀인데 사실은 너를 제일 사랑해, 근데 00이 속상하니까 절대로 말하지 말자” 라고 말하는 건데 그 약발이 초등 고학년까지는(?) 간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사실 저도 엄마에게 속은적이 있고요^^
    제목처럼 아이를 키우면서 어린시절의 나와 화해도 하고 힐링도 받고 그러네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8.06.16 2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저도 사용해봐야겠어요. 아이들 안고 아이들 냄새 맡을 때 꼭 충전하는 것 같아요. 휴대폰 충전이 1%씩 올라가듯 말예요 ㅎㅎㅎㅎ 항상 안고 있으면 휴대폰 배터리 모양이 떠올라요 ㅋㅋ 댓글감사합니다.

둘째 아이가 욕실에서 넘어졌다. 뒤로 벌러덩. “이준아, 엄마가 잡으러 간다!” 장난을 치다가 욕실에 발을 내디딘 아이가 미끄러진 건 순식간이었다. 아이가 욕실 안까지 뛰리라고 생각 못하고 뒤따라가던 나와 욕실에서 아이 씻길 준비를 하던 남편은 굳어버렸다. 넘어지는 순간 욕실 타일 바닥에 뒤통수가 ‘딱’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아이는 10분 넘게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안고 있던 내 손은 점점 차가워졌다. “그렇게 장난치면 어떡해!” 나를 원망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쳐갔다.


 

퇴근 후에도 휴대폰으로 업무를 챙기다
아이에게 집중하자 생각한지 5분 만에
둘째 아이가 욕실 바닥에 미끄러졌다

 

장난치기 5분 전까지 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퇴근했지만 휴대폰으로도 볼 수 있는 회사 뉴스 데스크 시스템을 들여다보며 체크해야 할 기사들을 확인했고 남편이 “집에서는 휴대폰 좀 그만 봐”라고 할 정도였다. 그 말에 민망해서 “아직 못 고친 기사가 있다”고 항변했다. 이제 휴대폰을 그만 보고 아이에게 집중해야겠다 생각한 직후, 아이가 넘어졌다. ‘이준이가 좋아하는 잡기놀이부터 시작해야지’ 했다가 이어진 사고. 이제 겨우 23개월이 지난 아이, 응급실에 가야 하는 것인지 울음이 잦아들길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긴 한숨을 쉬었다. 나를 원망하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일부러 그랬어?”라며 화를 냈다.


 

서운했지만 억울하진 않았다. 집에 와서도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지 오래고 그 때문에 계속 죄책감을 느껴왔다. 남편에 대한 원망보다는 내 행동에 대한 후회가 이어졌다. 넘어진 아이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뒤 잠을 재웠고 아이들을 재운 뒤 혼자 일어나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 건가’라는 생각을 ‘또’ 했다. 아이가 넘어진 건 사고였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만 집에 와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일을 확인하던 내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아이들과 있는 시간에도 일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죄책감.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무엇을, 누구를 위해서.’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 엄마 욕심으로 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를 낳은 후부터는 일하는 이유를 하나씩 소거하게 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일하는 이유도 다양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많은 이유가 남아 있지 않다. 어쩌면 아이를 기르는 시간과 맞바꾼 이 시간. 재취업이 쉽다면 난 이렇게 아득바득 일을 했을까. 아이를 기르는 시간과 맞바꾼 내 시간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멍해진다.


 

일곱살 첫째는 주말마다 말하곤 한다
“근데 내일이면 엄마는 다시 없겠지?”
내가 일하는 건 다 내 욕심이었던 걸까

 

엄마가 회사에 가는 게 싫은 이유를 여럿 댈 수 있을 것 같은 7세 첫째는 지난 주말에도 말했다. “엄마, 하루 종일 엄마랑 있으니까 너무 좋다. 그런데 내일이 되면 엄마는 다시 없겠지?” ‘없다’는 말에 덜컥 해서 “없긴 뭘 없어. 밤에 오잖아”라고 대꾸하니 “밤 너무 늦게 오니까 엄마랑 놀 수가 없잖아. 엄마랑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데.” 아이가 내가 회사 간 시간을 ‘없다’고 생각한다는 게, ‘너무 늦은 밤’에 온다고 생각한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늘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집중 못하는 엄마랑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아이. 두진아, 엄마가 밤이 아니고 너희들 저녁 먹일 수 있는 시간에 돌아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치원 끝나면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면 할머니 도움 없이도 너희들을 키울 수 있을 텐데.


 

둘째 육아휴직 후 복직한 지 9개월이 지났다. 일에는 어느 정도 적응을 했고 가끔은 신이 났다. 성취감을 느낄 때도, 동료의 고마운 마음을 느낄 때도 있었다. 두 번의 육아휴직 동안 육아가 얼마나 ‘빡센’ 일인지 알게 된 나는 “역시 육아보다는 일이 쉽지”라고 노래를 부르며 회사에 나오는 아침을 고마워했다. 한편 일은 여전히 내 존재를 증명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두진이, 이준이 엄마가 아니라 ‘임아영’으로 불리는 일은 말할 수 없이 소중하니까.


 

다만 이 모든 게 ‘내 욕심’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 땅속으로 가라앉는다. 아이가 넘어졌을 때 나를 원망했던 남편이 다음날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을 때 나는 기분이 바닥인 채로 브리핑을 받아치고 있었다.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고 겨우 답장을 했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없는 건 아닐까.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어줄 자신도 없으면서 둘이나 낳은 건 결국 내 욕심이었는데.” 거기까지 썼는데 눈물이 책상에 뚝뚝 떨어졌다.


 

 

■ 다른 삶을 꿈꾸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 욕심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주지 못한 것은 노동시간이 길어서다. 알면서도 자꾸 내 탓을 하게 될 때, 이 사회가 전부 엄마 탓을 해도 나는 그러지 말자고 되뇌어도 어느 순간 나도 내 탓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끝까지 내 일을 지킬 수 있는지 걱정한다. 그러면서 ‘일이 도대체 뭐라고’ 말하면서 자기부정하는 분열 상태.


 

긴 노동시간을 벗어난 삶을 꿈꿔본다
하지만 그건 욕심이라고 말하는 사회
일을 그만두는 상상에 가끔 악몽을 꾼다

 

지금 상황이 괴로우니 아예 인생을 ‘리셋’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주 상상한다. 첫째를 낳고 회사에 돌아왔던 2014년에는 답답한 마음에 남편과 지방의 작은 마을에 가보기도 했다. 도시 사람들이 많이 내려와 정착한다는 마을에 들러 우리가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삶을 꿈꿀 수는 없을까. 아예 둘 다 일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디자인해볼 수는 없을까. 한 사람만 일하거나 두 사람이 시간을 나눠 5~6시간씩 일하는 방법은 없을까. 집값만 낮아져도 손써볼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이제는 그 상상이 현실이 되기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때 한 명이었던 아이는 두 명이 되었고 서울을 떠나서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 더 근본적으로 나는 삶을 크게 바꿀 용기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용기가 없다고 꿈꿀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꿈을 꾸며 출근한다. 내 꿈은 단순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그러나 이 사회에서 엄마가 그런 꿈을 꾸는 건 ‘욕심’이라 말한다. 이 구조에서 내가 일을 열심히 하려 한다는 것은 결국 아이들과 함께해야 하는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일이 재밌다고 느낄수록, 일에 좀 더 몰입할수록, 퇴근 시간이 늦어질수록 나는 아이와의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 그래서 일이 재밌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모두 다 일을 조금만 하면 좋을 텐데.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아내가 집안일과 육아를 다 해결해주는 남자처럼 일을 할 수는 없는데.


 

언젠가는 이 균형이 확 깨지지 않을까. 지금은 첫째 한 명이지만 둘째까지 엄마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계속 소거하다가 결국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면. 일을 그만둔 나를 상상해보다 가끔은 악몽을 꾼다. 어떤 꿈에서는 아이가 울면서 집에 혼자 돌아오고 있고 어떤 꿈에서는 회사를 그만둔 내가 울고 있다.


 

■ 사라진 언니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최근에는 병이 났다. 과도한 집중이 몰고 오는 두통과 구토. 점점 심해져서 진통제를 사먹으려고 편의점에 들렀다가 아이들을 돌보기는커녕 내 자신도 돌보지 못하고 있구나 싶었다. 몸부터 돌보라는 신호다. ‘이것은 지속가능한 삶인가.’ 첫째를 낳고 회사를 다니던 때 밤마다 잠을 못 자는 두진이를 붙잡고 생각하던 질문. 둘째를 낳고 달라졌는가. ‘이것은 지속가능한 삶인가.’


 

이 삶을 바꾸고 싶어서 지난해 창립한 ‘정치하는 엄마들’이라는 단체에 회원으로 참여했다. 엄마들이 겪는 일상의 불합리를 정치를 통해 직접 해결하자는 비영리단체다. 조금씩이라도 바뀐다는 희망을 잡고 싶었다. 그러나 복직하고나니 일에 치여서 단체 소식에도 관심을 갖기 어려워졌다. 아이들 볼 시간도 없는데 무슨 단체 참여를 하겠나. 한국의 시민사회단체 참여율이 왜 낮은지 이렇게 몸으로 체감한다. 이제 회원들에게 안부를 묻기도 민망해진 차에 “보고 싶어요”라고 먼저 말 걸어준 언니에게 “잘 지내느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이 왔다. “보고 싶어요. 우리 ‘시간 거지’인 만큼 만나서 시간 신경 안 쓰고 여유롭게 쫓기지 않고 이런저런 얘기 하고 싶어요.”


 

내 몸도 돌보지 못하는 ‘시간 거지’의 삶
야근 중 도착한 그림 속엔 “빨리 오세요”
‘언니’들도 이렇게 일터에서 사라졌겠지

 

울컥했다. ‘시간 거지’인 엄마들이 보고 싶어도 만나기 어려운 구조. 결국 이 노동환경에서 나가떨어지면 ‘경단녀’가 되어야 하는 구조.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눌 수 있다면. 오전에 출근하는 엄마가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오후에 퇴근하는 아빠가 아이들을 하원시킬 수 있다면. 할머니나 시터 이모님 도움 없이 부부 힘만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다면.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아이들이 내 퇴근만 기다리지 않을 수 있다면.


 

첫째가 다니는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보내준다. 야근 중에 그림 파일(사진)이 왔다. 선인장을 본떠 그린 그림으로 만든 편지지에 두진이는 글씨를 썼다. “엄마, 회사에서 빨리 오세요.” ‘아, 엄마는 야근 중인데…’ 먹먹한 마음이었는데 여자 후배가 “선배 잘 지내세요? 아이들은 잘 커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순간적으로 아이 그림을 보여주려다 멈추고 “응 그럼”이라고 대답했다. 난 버틸 수 있을까. 버티지 말고 싸우자고 생각했지만 결국 버티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 비관을 걷어내는 건 너무 어렵다.


 

수많은 ‘언니’들이 이렇게 일터에서 사라졌겠지. 나는, 그리고 여자 후배들은 사라진 그 언니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181657005&code=210100&sat_menu=A073>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공감한표 2018.05.24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나도 공감합니다. 하물며 전업주부도 시간거지라 몸 못 챙기는 판에..워킹맘은 어떨지...ㅠㅜ
    근로시간이 너무 길어요.너무너무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8.05.25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 건 노동시간의 문제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주52시간 시행되고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은데...ㅠㅠ 아이들과 부모 모두 저녁을 매일 먹을 수 있는 날이 얼른 오길요. 댓글 감사해요.

  2. 커리어우먼의 딸 2018.05.24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벌이부모님 밑에서 자란 저와 남동생. 유치원때 시절 몇번 외에는 단 한번도 엄마께서 직장을 그만두길 원했던 적이 없어요. 새벽 두, 세시까지 자기개발을 위해 공부하시고 일하시는 어머니를 옆에서 보면서 외려 그것이 자랑스러웠고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 부터, 일단은 '내가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에 대해 일찍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라고 생각됩니다. 아이입장에서 말씀드리면 (물론 아이마다 좀 다른 것도 있지만요), 부모의 아주 넓은 울타리 안에서의 '방목'은 외려 생각을 크게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부모의 역활은 초원같은 울타리안에서 약간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닌 가 생각해요. 님께서 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이끌어 가시는 모습이 외려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이 될 것이니, 그런 부분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힘내세요! 다만 우리나라의 회사체제라던가 환경이 많이 바뀌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8.05.25 1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감사합니다. 많은 위로가 됩니다. 우리 아이들도 커서는 그러겠죠? ^^;; 그러면서도 노동시간을 줄이고 회사에서 분위기를 바꾸는 등 노력을 해야하겠죠. 그렇게 하다보면 아이들이 아이들을 키울 때는 훨씬 나아질 거라고 믿어요. 댓글 감사해요. ^^

  3. 마음의짐 2018.06.04 0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 역시 워킹맘으로서 비슷한 상황인데요.. 전 그럴때 남편이 원망스럽습니다. 제가 야근할 때 남편이라도 일찍 와줘서 애랑 놀아주면 좋겠는데.. 남편은 월화수목금 매일 야근이고, 저는 고생하는 친정엄마 맘에 걸려서 야근 해야해도 못하고 부리나케 집에 와서 애 놀아주고 애 자면 일하고.. 왜 여자만 이렇게 맨날 동동거리고 부대끼고, 이 모든게 다 제 책임 처럼 느껴지는 죄책감을 달고 살아야 하는지..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8.06.16 2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저도 첫째 낳고는 남편과 갈등이 심했어요. 친정 옆동으로 이사오고 갈등이 좀 잦아들었는데... 친정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은 평생 씻을 수 없겠죠ㅠㅠ 이 사회는 부부가 힘을 합쳐 아이를 키울 수 없게 하는지. 정말 답답합니다. ㅠㅠ 그래도 힘내세요. 같이 힘내요.

엄마 독감 걸리자 ‘돌봄의 외주’ 비상

친정아빠까지 동원해 겨우 한숨 돌려

예전엔 몰랐다, 돌봄 업무 이렇게 많은지

 

 

■ 독감 파동

 

친정엄마가 독감에 걸리셨다. 오 마이 가드. 엄마가 아프시면 모든 게 ‘정지’다. 게다가 지금은 두진이 방학 중인데. 이를 어쩌나. 엄마 상태를 걱정했다가, 바로 아이들 돌보는 일정 조정하는 문제를 걱정했다가, 회사에는 뭐라고 말해야 하지 걱정했다가… 그 모든 걱정이 뒤섞여 지금 엄마 걱정을 하는 건지, 아이들 돌봄을 걱정하는 건지, 일을 걱정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괴감. 엄마가 아프셔도 엄마를 걱정하지 못하는 내 팔자. 엄마 미안해요.

 

두진이가 시작이었다. 지지난주 토요일부터 두진이가 독감 판정으로 타미플루를 먹기 시작했다. 다행히 독감 예방 접종을 해서 크게 아프지는 않았는데 “동생은 괜찮겠느냐”고 묻자 의사선생님이 말끝을 흐렸다. “이미 동생한테 영향을 줬을 거예요. 그래도 걱정되시면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게 하세요.” 주말 내내 마스크를 씌웠건만 이준이도 독감에 걸렸다. 게다가 친정엄마한테까지 옮기다니. 나도 가벼운 감기를 앓고 계속 기운이 없었다. 애들이 아프면 비상이다. 평소 할 일이 세 배 이상 늘어난다. 2~3일에 한번씩 소아과에 데려가야 하고 몸이 아픈 만큼 떼쓰는 것을 받아줘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아픈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병을 앓고 이겨내면 되니까. 20개월밖에 안된 아이한테 너무한가? 한국은 그런 사회다. 아이의 독감에 하나하나 민감하게 반응했다가는 아이를 키울 수가 없다. 아프니까 짠하다고 생각하며 아이 옆에 주저앉으면 어떻게 될까. 아이가 아파도 연차를 내기 전 수만번을 생각해야 하는 사회인데. 해야 할 일이 쌓여있어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는 사회. 이준이가 타미플루를 먹고 난 뒤 10분 넘게 악을 쓰며 우는 바람에 소아과로 뛰어갔다. 타미플루를 먹으면 배가 아플 수도 있다는 의사의 진단에 안도하고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그런 사회 앞에 한숨을 쉴 시간도 없었다. 친정엄마가 편찮으시면 모든 것이 정지되기 때문에. 친정엄마에게 아이들 돌봄을 외주화하고 있는 내 상황에서 엄마가 아프다는 것은 엄마가 해주셨던 모든 일이 정지됨을 뜻한다. 일요일 독감 판정을 받고 타미플루를 먹기 시작하신 엄마. 잠시 엄마가 괜찮으신지 보러 갔다가 마음이 푹 꺼졌다. 아이들과 달리 독감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서인지 엄마의 상태는 심각했다. 일어나지도 못하시는 엄마를 보고 다급해졌다. 엄마는 얼마나 아프실까. 아니, 당장 내일은 어떡하나.

 

김상민 기자

 

■ 돌봄노동을 천시하는 사회

 

엄마 상태를 온전히 걱정하지 못하는 팔자인 나는 현실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당장 월요일에 어떻게 아이들을 돌볼 것인가. 두진이도 방학이고 이준이는 독감으로 어린이집에 갈 수 없는 상황인데. 일요일 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정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좀 나아지셨어요? 내일 제가 쉴까요?” 평소 같으면 “그럴 필요 없다”는 말이 바로 나와야 우리 엄마인데. “쉴 수 있니?” 그만큼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결국 내가 오전에 아이들을 돌보다가 오후에 친정엄마가 오시기로 했다. 남편은 지난주에 휴가를 사흘 쓴 터라 후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오전 내 아이들을 돌보는데 이준이가 얼마나 아픈지 계속 짜증을 부렸다. 엄마인 나도 이 짜증과 떼를 다 받아주기 힘든데. 이런 상태의 20개월짜리를 독감 걸린 친정엄마한테 맡기고 나가는 게 맞나. 엄마가 점심 때 우리집으로 오셨다. 어제보다는 나아지셨지만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은데. 그때 구세주. “아빠가 지금 퇴근해서 오고 계신단다.” 결국 친정아버지까지 동원돼 아이들 ‘돌봄’ 문제를 해결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렇게 ‘돌봄 업무’가 많은지 몰랐다. 혼자 먹지도, 자지도, 걷지도 못하는 인간의 ‘아기’들을 돌보려면 24시간을 온전히 그 존재에게 내줘야 한다. 언제쯤 혼자 거리를 걸어다닐 수 있을까. 적어도 열 살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렇게 돌봄 업무가 긴지 몰랐다며 한숨을 쉬면서 깨달았다. 이 사회는 ‘돌봄’에 대한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일터에서 시달리다 밤에 집에 돌아오는 아빠들도, 부부 중 한 명은 일찍 돌아가야 한다고 눈치 보며 칼퇴근을 하는 엄마들도 돌봄에 대한 시간을 빼앗겼다는 것을.

 

그렇다면 외벌이 부부들은 행복할까. 늘 돌봄을 전담하는 쪽은 엄마다. 남성이 부양하고 여성이 가사노동과 육아를 책임지는 가부장적 모델에서는 그렇다. 여성의 임금은 남성보다 늘 적었고 한국은 그 격차가 크다. 노동시장에서 밀려나는 것은 늘 여성이다. 그 밀려난 여성들이 집으로 돌아가 가사노동과 육아를 담당하면 사회는 말한다. “놀면서 브런치나 먹으러 다니는 ‘맘충’ ”이라고. 돌봄노동을 노는 일로 치부하고 천시하는 사회. 그런데 한 번 돌아보자. 우리 모두 누군가의 돌봄으로 이렇게 자랐다는 것을. 그 돌봄이 ‘노는 일’인가?

 

 

반듯한 수건도, 늘 준비된 반찬도

엄마의 드러나지 않던 ‘그림자 노동’

어떻게 ‘노는 일’로 천시할 수 있나

 

■ 그림자노동으로 치부되는 돌봄노동

 

아이를 낳고 나서 친정엄마의 드러나지 않던 노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늘 반듯하게 접혀있던 수건, 언제나 싱싱한 재료로 해주시던 반찬, “엄마 뭐 필요한데요”라는 말 뒤에 바로 책상 위에 놓여있던 물건들. 그런 엄마도 우리 아이들을 봐주시면서 “놀면 뭐해, 애들이나 보지”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들으면 이제 마음이 아프다. 왜 엄마들의 노동을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나. 아이를 키우기 위해 10년 전 퇴사한 아저씨를 최근 취재했다. “저에게는 묻지도 않아요. 유모차에 앉아있는 아이한테 ‘너희 아빠는 회사 안 가니?’라고 묻죠. 백수냐고 돌려묻는 거예요.” 그림자노동인 돌봄노동을 경시, 아니 천시하는 사회.

 

“올리브영에서 버츠비 사기-장례식장-미술학원비 내기-운영위 회의-어린이집 서류 내기-마트에서 토마토 등 사기-인감증명서 발급-영유아검진 문진표-영유아검진.” 어느 쉬는 금요일 내가 메모한 내용이다. 오후 2시 두진이 유치원 운영위원회 회의에 참석해야 했고, 4시에 아이들 영·유아 검진을 예약해놓은 날. 자꾸 볼이 트는 이준이 때문에 ‘버츠비’ 크림을 사야 했고, 선배 부친상 조문을 가야 했고, 토마토와 아이들 먹을 것을 사야 했다. 영·유아 검진을 받기 전에는 문진표도 작성해야 하는 등등등. 이렇게 목록화해놓지 않으면 한두 가지 빼먹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서는 늘 메모를 한다.

 

우리집 가사노동은 ‘행정’ 업무는 내가 하고 ‘청소 등 가사노동’을 남편이 맡는다. 어린이집, 유치원 전화 통로도 나다. 나는 매일 머릿속이 분주하고 남편은 휴일에 할 일이 많다. 아,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끝은 어디인가. 언젠가부터 남편이 집안일을 덜 하네, 더 하네 싸우지 않게 됐다. 부부가 서로 도와가며 해결해야 하는 집안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 그림자노동을 해결하기 위해선 기계를 들여야 한다. 건조기를 사고 만들어진 반찬을 주문하고 간편식을 사먹는 일상. 아이 얼굴은 아침에 잠깐, 저녁에 잠깐 보고 재우기 바쁜 일상. 맞벌이 부부들의 일상은 이렇다. 그래서, 행복한가?

 

 

돌봄의 시간을 뺏겨 고통이 되었을 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삶의 활력소

모든 부모가 돌봄의 행복을 쟁취해야

 

 

■ 돌봄의 행복을 모두가 누려야 한다

 

지난주 남편이 두진이 방학을 막아내기 위해 3일간 휴가를 썼다. 출근할 때마다 그날 ‘미션’을 줬다. 아이 방학숙제 도와주라, 빨래를 해놓으라 등등. 돌아와서 아이 방학숙제 책을 펼치니 아빠와 아이의 기록이 가득하다. 그림에 같이 색칠을 하고 동물 숫자를 세서 숫자를 적어놓기도 했다.

 

남편에게 물었다. “그래도 애 보는 것보다 회사 가는 게 낫지 않아?” 돌봄노동은 고되니까. “아니, 아이랑 있는 것도 좋아.” 남편과 나는 참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돌봄노동을 ‘엄마’ 몫으로 가두니까 자꾸 돌봄노동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하고, 남편은 돌봄노동에서 ‘소외(?)’되니까 오히려 아이를 돌보고 싶다 하는 아이러니. 우리가 성별이 다르게 태어났으면 더 편했을까.

 

아니다. 돌봄의 시간을 빼앗기니 돌봄이 어려워진 게 문제다. 돌봄이 고통이 된 것이 문제다. 돌봄이 고통인가? 아침에 잠든 아이들이 침대에서 엄마가 있는 곳을 더듬다가 엄마 몸에 손이 닿으면 눈을 뜬다. 눈을 뜬 두진이를 먼저 꼭 안아줬다. “엄마가 어제 늦게 와서 얼굴을 못 봤네. 어제 못 보고 자니까 아쉬웠어”라며 애정 표현을 하고 나니 아이가 활짝 웃으며 품속으로 파고든다. 파고든 아이를 꼭 끌어안고는 생각한다. ‘1차 충전 중.’ 형과 꼭 안고 있는 엄마를 보자 이준이도 자기를 안아달라고 한다. “삼단 합체!”라고 외치면 두 아이가 내 품속에 파고든다. 두 아이를 꼭 끌어안고 생각한다. ‘2차 충전 완료.’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내 인생의 충전의 시간이 됐다. 이 안온한 시간들이 삶을 유지하는 힘이라는 것을 난 왜 이제야 알게 됐을까. 이게 행복이라는 것을 왜 이제야 알게 됐을까.

 

돌봄의 행복을 모두가 누려야 한다. 남편도, 나도 이 행복을 오래 누리길 바라면서. 모두가 돌봄의 시간을 쟁취해오는 미래를 또 꿈꾼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워킹맘이라는 말이 숨기려는 것>


 한 언니의 글에서 “워킹맘이라는 표현이 정말 싫다”는 문장을 읽었을 때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맞다. ‘밖에 나가 일하는 엄마’만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엄마는 일을 안 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그 언니가 ‘취업모’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저 임금노동을 하고 있을 뿐인데. ‘워킹맘’이라는 단어에 숨은 가사노동과 육아에 대한 경시, 어쩌면 천시를 나도 몰랐던 건가. 한 국회의원이 ‘밥하는 아줌마’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정말 화가 났다. 국회의원 정도 되는 여자는 밥하는 아줌마들을 무시해도 되나.

 

 두 번의 육아휴직 동안 ‘잘 쉬어’, ‘쉬어서 좋겠다’라는 말을 들으면 분했다. ‘쉬긴 뭘 쉬어. 하루종일 신생아랑 있어봐라’ 라며 입술을 꽉 깨물 때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 전업주부로 평생을 산 우리 엄마. 엄마는 두진이와 이준이를 봐주면서도 “놀면 뭐해. 손자들 돌봐주는 거지”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럴 때마다 난 “엄마가 놀긴 뭘 놀았어요. 나를 키우고 수많은 일들을 했잖아”라고 말하지만 공허하게 느껴졌다. 나조차도 휴직하기 전 글을 썼었다. “이제 내가 성취라 믿어온 것들은 잠시 멈춰지겠지만”이라고.


 이 ‘성취’의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좋은 회사 직원으로 살라’는 이 성취의 기준을 별생각없이 받아들였던 10대 20대의 나를 돌아보는 요즘, 그 성취의 기준이 흔들리는 요즘,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성취를 지향하라고 가르쳐야 하는지 헷갈린다.

 

 두진이가 일곱살이 되면 혼자 설거지하고 싶다는 소망을 그렸다.

두진이가 열심히 설거지하면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서 칭찬해주는 모습. 사진에 엄마는 없지만 할머니는 있다. 이 사진을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서운해해야 하는 건지 나는 여전히 헷갈린다.

 


 아이를 낳고 난 내 시간을 잃어버렸다. 오히려 회사 와서 밥 먹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해방구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려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그런 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렸다는 고백을 하는 중이다. ‘돌봄’이란 그런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내 몸으로 누군가를 온전히 돌보는 경험.

 

   주말에는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쓴다. 작은 존재를 돌보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아이들 밥을 먹이고 작은 아이 기저귀를 갈고 졸리면 혼자 자지 못하는 둘째를 안고 어르는 이 ‘작은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알게 됐다. 하루종일 그 일만 하다가 시간이 흐른다는 것, 우리 엄마도 나를 그렇게 길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엄마의 노고를 새삼 되새기는 중이다.


 고3 때 새벽에 일어나 아침 일찍 학교를 갈 때 엄마는 늘 새 밥을 지어줬다. 내가 좋아하는 두릅을 데쳐주고 삼치를 구워줬던 엄마의 밥상을 ‘받고’ 학교를 가는 일이 당연했었다. 그런데 ‘임금노동’을 하는 나는 집안일을 다 ‘아웃소싱’한다. 빨래는 건조기에, 반찬은 ‘더반찬’ 배송에 의지한다. 아직 두 돌도 안 된 우리 둘째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는 ‘사온 반찬’을 먹여 키운다. 나는 가끔, 아이들 밥상이 내가 먹었던 밥상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 헷갈린다. 가사노동과 육아를 아웃소싱해야 하는 내 인생이 맞는 건가.


 그렇지만 난 여전히 내 일을 좋아한다. 회사 가는 것이 좋고 회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기사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좋다. ‘82년생 김지영 세대’들은 다 그럴 것이다. 자기를 증명하는 일은 여전히 소중하다. 그런데 합계출산율이 1.06명을 찍을 것이라는 시대에 나는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평일엔 친정엄마의 ‘돌봄노동’ 의지해 내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엄마에게 미안한 ‘죄인’ 신세지만 또 친정엄마의 ‘돌봄노동’ 덕분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늘 안도한다.

 

    운이 좋아서다. 서울에 계시는 친정엄마가 아이를 흔쾌히 돌봐주겠다고 하는 ‘운’ 말이다. 그래서 난 가끔 내가 쓰는 글이 두렵다. 친정엄마를 착취해 일을 유지하는 내 상황이 도와줄 가족이 없어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어떤 엄마들을 속상하게 만들까봐.


 그런데 왜 엄마들만 자꾸 일이냐, 육아냐를 선택해야 하나. 왜 엄마들만 ‘전업맘’, ‘워킹맘’으로 구분하나. 맞춤형 보육 논쟁 때 어린이집에 보내는 전업맘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들에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는 하루종일 아이만 돌봐야 하나. 어쩔 수 없이 아이 때문에 집으로 돌아간 ‘경단녀’들은 아이에게 속박된 신세로 늙어야만 하나. 공부를 하든, 취업준비를 하든 자기 시간을 가지면 안되나. 정말 답답할 때는 친구를 만나 커피숍에서 브런치를 먹으면 안되나.

 

   육아휴직 중에 치과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친정엄마가 바쁘실 때라서 치과 예약을 두 번 미루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내 몸에 달라붙어있는 이 작은 아기 때문에 내 이 치료도 못 받는 게 ‘엄마의 신세’다. 그마저도 엄마가 아이를 봐주셔서 난 치료를 받으러 갈 수 있었다.


 가끔 ‘워킹맘의 성공 서사’를 읽는다. 대부분 ‘할머니 육아’ 덕분에 끝까지 갈 수 있었던 얘기들이다. 어떤 회보에서 워킹맘이 자식 대학 잘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글을 읽을 때는 울적했다. 할머니 덕분에 아이를 키우고 결국 엄마가 아이의 적성을 파악해 학원을 고르고 ‘서포트’해 대학을 잘 보내는 이야기, 개인이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 답답했다. 이제 난 그런 성공 서사가 지겹다. 내 아이들에게 이 구조에서는 이렇게 사는 게 유리하다고 가르치고 싶지 않다.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은 1500원짜리 커피를 사 먹었다가 어떤 ‘남자’들이 자기를 ‘맘충’이라고 욕하는 걸 듣는다. 토요판에 일하며 아이 키우다 소진된다고 글을 쓰니 ‘외벌이하며 아껴쓰라’는 댓글이 달렸다. 여자들은 일하러 나오면 ‘욕심이 많은 여자’라고 비난받고 집에 있으면 ‘논다’고 비난받는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전업맘은 ‘논다’고 말하고 워킹맘은 ‘죄인’이 되는 세상이니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거다.


 입사 동기인 남편과 나는 월급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누가 그만둬도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을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가끔 헷갈린다. 남성은 나가서 일하고 여성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가부장적 모델’을 버린 국가들이 출산율 반등에 성공했다. 엄마들만 전업맘, 워킹맘, 경단녀로 구분하는 사회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암담한 미래 뿐이다. 돌봄노동을 아빠와 엄마가 함께 할 수 있어야, 아빠가 돌봄노동을 할 수 있도록 집에 일찍 돌아와야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배우자보다 임금이 낮아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이 활기차게 자신의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길. 하루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느라 아이 얼굴도 못 보는 한국 남성들도 일찍 퇴근해 아이하고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소망해본다.


 이 글을 쓸 생각을 하게 된 “워킹맘이라는 표현이 정말 싫다”는 말을 했던 언니는 밖에서 보기엔 ‘전업주부’다. 임금노동을 하진 않지만 수많은 활동을 한다. 임금노동보다 의미있어보이는! 아이를 공동육아로 키우면서 선생님을 하고 아이 초등학교 교육도 공동육아처럼 시키고 싶어 학교도 준비 중이다. 그리고 ‘정치하는엄마들’이라는 공동대표로도 열심히 뛰고 있다. 그가 쓴 발제문, 토론문을 보면 어떤 전문가가 쓴 글보다도 훌륭하다는 느낌을 여러번 받았다.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 활동들이 ‘돈’으로 치환되지 않을 뿐. 지난해 만난 사람 중 가장 빛나는 사람, 응원한다는 말로 이 글을 마친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리니 2018.01.24 1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읽었어요 같은 육아맘이라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요
    혹시 죄송하지만 티스토리 초대장 보내주시면 안되나요?
    01194358693@hanmail.net
    티스토리 하고픈데 초대장이 있어야 한대요ㅠ부탁드려용

<아이가 다치면 마음이 무너진다>

 

휴직했을 때 엄마 회사 낸중에 가면 안돼?” 노래 불렀던 두진이는 요즘 아침마다 출근하는 내게 물어본다.

 

엄마 오늘 야근이야?”

 

야근을 하면 11시에 끝나고 집에 가면 12시가 넘는다. 야근은 한 달에 서너번 밖에 안 되는데도 아이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묻는다. 아이들은 10시쯤 잠드니 잠들 때까지 엄마를 볼 수 없다. 같이 못 자는 날이 싫은 큰 아들의 야근 타령. 이제 시작인가. 어떤 선배는 아들 이야기를 해주며 말했다. “처음엔 회사 가지마현관문에서 울더니 시간이 지나고 포기하더라고. 그다음엔 언제 퇴근해?’ 노래를 불러. 그것도 포기하고 나면 이번주엔 주말에 누가 쉬어?’ 그러더라.”

 

여전히 월요일 신문을 만들기 위해서 일요일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아이에게는 엄마가 주말에 언제 쉬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아직 우리집 아들들은 요일 구분은 할 줄 모르지만 야근은 알게 됐으니 나도 그 날이 멀지는 않겠지.

 

작년인가 한국 아이들 수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적게 잔다고. 아이를 다른 방에 재우는 서양과 달리 아이와 엄마가 같이 자는 습관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때 한 언론이 엄마 때문에 잠 못 자는 아이들이라고 제목을 달아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헛웃음이 난다. “엄마 때문에 잠 못 자는 게 아니고요, 엄마아빠가 늦게 퇴근하니 자는 시간이 늦어지는 거거든요.”

 

집에 들어가면 빠르면 8, 늦으면 9시가 된다. 애들을 씻기고 재울 준비만 해도 금방 10시가 된다. 평일에는 같이 못 놀았다며 같이 놀자고 떼를 쓰기 시작하면 시간은 점점 늦어진다. 복직 후에 우리 집 아들들 자는 시간도 점점 늦어지고 있다. 놀고 싶다고 하면 그냥 뿌리칠 수가 없다. 하루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으니.

 

부산한 둘째. 첫째와 달리 겁이 없다. 18개월도 안됐는데 벌써 치과행 세번째.

 

그러다 마음이 몹시 상한 날이 있었다. 유치원 근처에서 워킹맘 험담을 들은 날이었다. 우연히 유치원 근처 커피숍에 앉아있다가 어떤 엄마들의 대화가 귓가에 들렸다.

 

워킹맘들은 애들이 아파도 보내더라. 불쌍하지도 않은가봐.”

 

갑자기 마음이 싸해졌다. 열이 나지 않는 한 아이를 기관에 보낼 수밖에 없는 사정을 모르는구나.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게 아닌데. “아이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라고.”

그 말까지 듣고 나니 마음이 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할퀴어졌다. 설명하고 싶었다. 왜 아픈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는지. 열이라도 나면 얼마나 종종거리게 되는지.

 

두진이 유치원에서는 현장학습을 가는 날마다 엄마들이 출발하는 버스 앞에서 빠빠이를 해주는 문화가 있다. 출산휴가 들어가면서 나도 그 문화를 알게 됐으니 두진이는 엄마가 빠빠이를 해주지 않은 채 현장학습을 갔던 거였다. 미안했다. 그렇지만 빠빠이가 뭐 별거냐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두진이 친구 엄마는 왜 아이가 현장학습날마다 유치원에 안 간다고 하는지 궁금해하다가 이 빠빠이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 엄마도 워킹맘이라 그런 문화가 있는 줄 모르다가 하도 현장학습을 가기 싫어해 엄마가 같이 가면 현장학습에 가겠다는 아이 말에 반차를 내고 따라왔다가 알게 된 것이다. 아이가 자기 엄마만 빠빠이를 해주지 않는 걸 싫어했다는 걸.

 

유치원 선생님은 이야기하셨다. “어떤 아이는 친구한테 말하더라고요. ‘나는 엄마 안 오니까 네가 창가에 앉아라고. 그 말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이제 이 빠빠이는 내 고민이 됐다. “아빠가 빠빠이 하러 가면 안돼?”라는 말에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아드님을 설득해야 하는 내 고민.

 

어떤 엄마는 2시간짜리 휴가를 내 와서 빠빠이만 하고 다시 회사로 뛰어간다. 공무원들에게 자녀돌봄휴가 이틀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부러웠다. 학교 행사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가 고3인 선배가 말했다. “학기 초에 입시설명회가 많은데 꼭 안 가도 되지만 꼭 가라고 어떤 선배가 조언하더라고. 왜 그러냐고 했더니 나중에 혹시 안 좋은 결과를 받았을 때 그때 내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들지 않기 위해서라는 거야.”

 

아이가 클수록 학교 행사가 많아진단다. 유치원생인데도 상담, 참관수업, 운동회가 철마다 준비돼 있다. 초등학교에 가면 총회니 반모임이니 더 많아진다고. 왜 초등학교 때 경단녀가 많이 생기는지는 그걸 경험해보면 알 수 있다고.

 

그러다... 이준이가 어린이집에서 다쳤다. 벌써 한 달여 전이다. 일하고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좀 다쳐서 소아과에 다녀왔다고. 상순소대가 찢어졌는데 소아과에서는 괜찮다고 한다고.

 

좀 마음이 안 좋았지만 괜찮다고 하니까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또 상순소대가 찢어진 적이 한 번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아이 이와 잇몸을 살펴보자 심상치 않았다. ‘왜 잇몸이 보라색이지.’ 아차 싶었다. 이가 괜찮은지는 본 건가.

 

다음날 치과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국정감사를 취재해야 하는 날이었다. 남편이 치과에 데려가기로 하고 나는 출근했다. 국감을 들으면서도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10시쯤 진료받으러 갔는데 치과 예약 때문에 진료를 받을 수 없다 해 되돌아왔고 오후 2시에 다시 가기로 했다고 했다. 점점 초조해졌다. 점심을 먹는둥마는둥 했다. 2시가 좀 넘어서야 진료 결과를 들었다. 뿌리는 괜찮은데 이가 흔들린다고.

 

화가 났다. 왜 대처를 이렇게밖에 못했는가. 취재고뭐고 집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아이가 다치고 하루가 지나는 동안 난 왜 이렇게밖에 대처를 못했는가. 누구한테 화가 나는지 알 수 없다가 어제 병원에 왔어도 달라질 것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정했다. 넘어지는 사고가 난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구나. 대신 한 달 동안 변색되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변색되면 고름이 생길 수 있고 고름이 생기면 신경치료를 해야 한다고. 어떻게 17개월 아이를 신경치료를 하냐고 하니까 그냥 한다고 했다. 그냥 하는 게 뭐냐니까 그냥 울어도 붙잡고 한다고.

 

아득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객관화하기 위해 머리가 돌아갔다.

집이었어도 다칠 수 있잖아, 내가 봐도 다칠 수 있지, 그냥 사고일 뿐이었고 병원에 빨리 간대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잖아.’

신기하게도 어린이집에는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두진이를 보냈던 어린이집이라 어린이집에 대한 신뢰가 높아서일 것이다. 사고에 대한 객관화는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고 오히려 생각은 왜 이렇게 사는가에 모아졌다.

 

왜 나는 아이가 다쳐도 이렇게 대처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져 있는가.

 

아이가 다치면 마음이 무너진다. 그리고 며칠 동안 힘이 나지 않았다. 아이는 다치고나서인지 출근할 때 많이 울었고 다쳐서 우는 게 아닐 수도 있는데 무너진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았다. ‘아가야, 미안해. 다치고 피가 많이 났을 텐데, 아프고 놀랐을 텐데,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절대 일하면서 죄책감을 갖지 말자고 다독이지만 아이가 이렇게 아프거나 다치면 그게 되지 않는다. 그리고 올라오는 질문.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가.’

 

이제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던 한 달이 다 지나간다. 다행히 아이 이는 아직까지 변색되지 않았다. 큰 이상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아직 답은 찾지 못했다. 아마 아이가 크는 내내 찾지 못할 것이다. 그냥 적당히 인정하고 적당히 포기하며 무뎌지겠지. 그걸 알고 있으니 더 울적한 이 모순.

 

그래도 힘을 내야지. 내야지.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한나 2017.11.04 0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니 우리만나면 서로 한번 꼭 안아줘요..

  2. 정덕 2017.11.04 1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니. 오늘 아침에 문득 복직을 앞두고 우울해하던 언니가 떠올랐어요. 역시.. 힘든 일 많았군요. 앞으로도 그럴 거구. 힘들지만.. 조금은 단단해지길.. 조심히 손 얹어봅니다. 언니랑 아이들 보고 싶네요.

  3. punky 2017.11.06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보육교사입니다. 마음이 아프네요. 어린이집에서 다치면 정말이지 엄마 마음만큼이나 저도 가슴이 무너져내립니다. 첫째는 아이에게 미안해서 둘째는 엄마에게 미안해서 세번째는 아이들 돌보는 일의 불안감과 돌발성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때문에 마음에 돌덩이가 들어앉아 있는 것처럼요. 엄마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것만큼 교사인 저도 아이들에게 마음을 어루만져줍니다. 때때로 장난감 전화로 엄마에게 전화해서 이따가 코자고 빨리 올거죠? 라고 말못하는 3세 아이대신 전화이야기 해주고 있어요. 저도 엄마가 바빠서 초등학교 1학년때 소풍가서 엄마가 오지 않는 아이들끼리 도시락 먹을때 좀 서럽더라구요. 그래도 우리 아이들 금새 잊어버리고 엄마가 날 사랑한다는 그 마음은 절대 변치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11.09 2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선생님, 선생님들이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잘 알고 있어요. 사고는 한순간에 일어나니까요. 집에서 아이랑 단둘이 있어도 사고가 일어나는데 말이어요.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잘 돌봐주셔서 안심하고 회사로 일하러 간다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4. 엄마 2017.11.09 1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아, 우리 애들도 그랬어.
    이런 글 읽으면 어느새 제 아이가 오버랩 되어 눈물이 가득 찹니다.
    충분히 겪었고 다 지나갔다 생각하지만 마음 아픈 건 어쩔 수 없네요.
    부디 힘 내세요.

 

나는 워킹맘이다 아직은. 아이를 둘을 낳고 복직을 3개월여 앞두고 보니 한국 사회에서 워킹맘으로 살 생각이면서 둘을 낳는 무모한(?) 선택을 했구나 싶다. 그래서 아직이다. 만약 버텨낼 수 없다면 수많은 여자선배들처럼 경단녀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위기감 때문에.

 

그래도 나는 워킹맘들이 부러워하는 친정엄마가 백업해주는 워킹맘이다. “아영씨는 친정엄마 있잖아 걱정 없겠네”, “아 친정엄마 있어서 부러워요와 같은 말에 아무 할 말이 없는 부러운 워킹맘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든다. ‘우리 엄마는 행복할까.’

 

첫째를 낳고 복직했던 2014년에는 아이 걱정만 가득했다. 아이가 엄마 없는 긴 하루를 적응할 수 있을까, 어린이집에서 울지는 않을까, 퇴근이 늦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긴 것 아닌가 등등. 그런데 두 번째 복직을 앞둔 지금은 아이보다 친정엄마가 더 걱정이 된다. 아이들은 자주 울겠지만 또 적응하리라는 예상이 가능해서이기도 하고 친정엄마가 그때보다 나이가 더 드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둘이 됐기 때문이다.

 

아들들과 하루종일 같이 있다 보면 혼미해진다. 아이들은 그런 존재다. 조금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사고(?)치는 존재. 남편과 나는 주말에 둘이 아이 둘을 보면서도 전쟁이다, 전쟁,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구만을 되뇌는데 할머니인 우리 엄마가 다 감당할 수 있을까. 무릎은 버텨낼 수 있을까. 엄마는 무릎이 약하시다. 그렇다. 무릎 약한 엄마한테 아이를 맡긴 이기적인 불효녀. 그게 나다.

 

우리 엄마는 58년 개띠다. 전북 군산에서 명문여고를 다녔던 엄마는 글 쓰는 걸 좋아해서 당시 잡지 <학원>의 학원문학상에 단편소설을 응모해서 입선하기도 했다. 분량이 200자 원고지 50매 정도였다고 하니 분량도 꽤 됐다고. 그러나 외할아버지가 국립대만 보내준다고 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상경했다. 회사를 다니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고 스물네 살 때부터 전업주부로 살았다. 나를 낳았던 건 스물다섯 살. 그래서 우리는 띠가 똑같다. 3년 뒤 아들을 낳았고 엄마는 아이 둘을 키우고 가사노동을 하며 나이가 들었다.

 

엄마의 리즈 시절. 왼쪽이 우리 엄마.

 

가끔 엄마가 1982년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나보다 더 열정적인 우리 엄마가 나보다 더 잘 살지 않았을까.

 

어릴 때 아빠와 엄마가 맥주 한 잔을 하는 날에 엄마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아영아, 엄마처럼 살지 마...”

그 말은 늘 슬펐다. 이제 엄마는 내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기억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엄마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슬픈 그 말보다 훨씬 더 자주 해주던 말은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해. 엄마는 아영이가 잘 해낼 것을 믿어였다. 어린 시절 엄마는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시험을 망쳤을 때, 심지어 입사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힘들고 외로울 때 엄마가 전해줬던 엄마는 아영이를 믿어라는 편지에 나는 늘 울컥하며 힘을 냈다. 이 말에 의지해 어린 내가 용기를 냈고 또 두려움에 맞서왔다는 걸 떠올리면 코끝이 찡해진다.

 

이제 그 말이 단순히 삶을 사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엄마의 소망은 딸이 전업주부인 자신과는 다르게 일하는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엄마는 90년대 대다수 엄마들이 그랬듯이 딸이 자신보다 진취적인 모습으로 자라길 바랐다. 엄마가 꿈꾸는 딸의 모습은 커리어우먼이었고 엄마는 딸을 알파걸로 키우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결혼도 꼭 하길 바라셨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 키우는 평범한 행복을 누리길 바라신 거겠지.

 

나는 엄마의 소망대로 알파걸이 됐을까. 다만 엄마의 소망과 엇비슷한 일하는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의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선을 다한다고 뭐든 다 이룰 수 없다는 사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진실을 알게 될 만큼 성장했지만 동시에 나의 최선은 항상 온전히 나만의 노력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내 성취에는 내 노력에 엄마의 뒷바라지가 더해져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절절히 깨달았던 것은 아이를 낳고서였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산후조리부터 아이를 키우는 것까지 엄마의 손이 안 가는 곳이 없었다. 나는 엄마의 소망처럼 일하는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의 노동력에 의지해(노동력을 착취해)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온전히 나의 최선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나는 자주 좌절했다.

 

최선을 다 하면 된다고 나를 키운 엄마는 남자아이들과 경쟁해서도 뒤지지 않고 오히려 더 잘 해내는 딸을 늘 응원해줬지만 그것은 잘못된 꿈은 아니었을까. 언론에서 알파걸의 실패같은 기사를 쏟아내면 동의하면서도 씁쓸했다. 가부장적 구조로 점철돼 있는 결혼과 육아에서 나는 영락없이 실패한 알파걸이었다. 나와 남편은 같은 일을 하고 동시에 부모가 됐지만 절대 같을 수 없었다. 지금 난 궁지에 몰리면 알파걸 같은 소리 집어쳐라며 화내는 서른여섯 살이 되었다.

 

지난 겨울 군산 외할아버지를 뵈러 갔다가 가벼운 교통사고가 났다. 엄마와 나는 같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트럭이 멈추지 못했고 그를 본 나는 피했으나 엄마가 피하지 못했다. ‘하는 소리가 나는 그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 아 하늘이 노래진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생각이 들었을 때 깨달았다. ‘엄마를 두고 나 혼자만 피했구나.’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는데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트럭을 운전하던 아저씨가 뛰어나왔고 나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넘어진 엄마는 크게 다치지 않아 오히려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병원으로 이동해 검사를 했지만 머리 등에 큰 이상이 없었고 서울로 돌아와 서울 병원에서 엄마는 물리치료를 오래 받았다.

 

군산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그 짧은 시간 계속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나를 위해 내 새끼들을 봐주고 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다 해주는데 난 엄마를 두고 혼자 피했구나.’ 괴로웠다. 만약 엄마가 크게 다쳤다면 그 죄책감은 어땠을까. 지금도 그날 생각을 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엄마를 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난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고개를 젓는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자식들에게 모든 걸 내어주는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내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고 싶었다. 지금도 똑같다. 내 인생을 자식들에게 전부 줘버리고 싶지 않다. 그런데 엄마인 나는 내 자식들에게 전부 내주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내 일상은 내 엄마의 인생을 착취해야만 굴러간다. 그게 내 딜레마이고 죄책감이다. 나는 독립적인 여성으로, 개인으로 일을 유지하고 싶지만 그렇게 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평생 나와 동생을 위해 자신의 온 시간을 나눠준 친정엄마를 착취해야 한다는 것.

 

손주병이라는 신조어는 이제 신조어가 아닐 정도로 할머니들의 손주육아가 보편화됐다. 아이를 봐준다면 시증조할머니라도 필요하다는 농담을 할 만큼. 엄마한테 엄마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전쟁이다. 제일 부러워하는 할머니는 손주 안 보는 할머니.

 

한번은 엄마가 웃으면서 놀이터에 나오는 할머니들끼리 하는 농담을 들려줬다. “할머니들 사이에도 계급이 있어. 5~6시에 퇴근해서 해방시켜주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며느리나 딸로 둔 할머니가 1계급, 6~7시에 퇴근하는 공무원들 엄마가 2계급, 8~9시에 퇴근하는 일반 직장인들은 3계급, 11~12시에 퇴근해서 애도 못 재우는 딸과 며느리를 둔 할머니가 꼴찌야.”

 

내 경우 3계급이었다. 웃으면서 들었지만 마음이 쓰렸다. 육아를 혼자 감당하지 못할 거면서, 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아이를 키울 거면서 나는 왜 아이를 낳았을까. 슬프게도 꽃보다 더 예쁜 아이를 보면서도 가끔 이 생각을 했다.

 

엄마한테 맡기지 않고 내 손으로 키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엄마와 아이 양육 문제 또는 가사노동 문제로 다툴 때면 그런 생각을 했다. 괴로웠다. 아이도, 일도 포기하지 못하는 욕심 많은 딸. 딸의 욕심 때문에 엄마의 체력을 축내고 엄마의 시간을 훔친 기분. 죄책감은 엄마의 힘든 얼굴을 볼 때 제일 심했고 죄책감이 쌓이는 만큼 사회에 대한 분노가 켜켜이 쌓였다. 왜 나를 이렇게 궁지로 모나. 누가 나를 이렇게 궁지로 모나. 그런데 원망할 대상이 없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라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첫 번째 복직 후였던 2014년과 2015년이 제일 힘들 때였다. 일과 아이에 치여 매일이 피곤했고 전세가 오르는 속도에 기가 질려 어떻게 하면 서울을 떠날 수 있을까만 생각했던 때. 밤에 잠을 못 자고 한 시간씩 경기하듯 우는 큰애를 안고 있다가 결국 지쳐 바닥에 내려놓고 나도 울면서 끔찍해했다. ‘이 일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한 번은 엄마가 집에 김치 있냐고 물으셨다. 당시 식사 담당은 남편이었기에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가 엄마가 그런 것도 모르냐고 하시는 바람에 대판 싸웠다. 집안일은 내팽개치고 일만 신경 쓴다고 생각하셨을까. “엄마, 둘 다 잘 할 수 없어. 집안일은 포기했어.” 냉정한 말과 상처 입혀버리겠다는 말투, 그리고 모진 말들. 수많은 모녀의 사이가 그렇듯 우리도 그랬다. 못돼먹기론 대한민국 1등인 난 엄마 마음을 상처 낼 수 있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주워 담지 못해 괴로워하는 다툼을 반복했다. 엄마를 다치게 하면 결국 내가 다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날들이었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일상에서 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해 아이를 기르는 팔자, 언제 해야 할지 모르겠는 빨래들과 내가 하면 잘 먹지도 않는 아이 반찬을 걱정하며 회사 발제에 스트레스 받는 일상. 회사 일에서라도 애엄마라는 티는 절대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데 아이를 포기할 순 없잖아 라며 엉망진창인 집안을 합리화하던 일상. 그런데 김치라니. 김치가 있는지 없는지 까지 내가 알아야하나. 따박따박 엄마를 향해 따졌지만 엄마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나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한테 풀고 나니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 자괴감 때문에 견딜 수 없는 날들. 그저 떠나고 싶었다. 서울을 떠나 대한민국을 떠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아이를 내 손으로 기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가끔은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결혼은 해야지, 서른 전에는 해야지, 서른엔 해야지, 결혼했으면 아이는 낳아야지, 안 낳았으면 이 이쁜 것을 봤겠어?” 결혼을 꼭 해야 하고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고 말했던 엄마 세대가 수용했던 가부장적 질서. 그 질서를 21세기의 나는 벗어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했고 아니 벗어날 생각이 없었고 결혼 생활도 일도 잘해낼 수 있다고 착각했다. 착각을 한 건 나였으면서 아이 낳으면 엄마가 키워줄게라고 했던 엄마의 말들이 떠오르면 괜히 원망스러웠다. 엄마 세대는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 세대의 질서를 부정하면서 부정하며 살아가기 두려워했던 나는 그랬다.

 

그러면서도 당연한 듯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출근했다. 이제 첫째가 54개월이 됐으니 엄마의 육아 노동도 만 45개월을 지나는 중이다. 그동안 엄마의 몸은 내 자식 때문에 얼마나 축났을까. “엄마 운동 열심히 해요. 그래야 우리 애들 다 봐주지라는 농담을 건네는 내 입은 언제나 쓰다.

 

친정엄마한테 돈을 많이 드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지 말자. 아무리 돈을 많이 드려도(돈을 많이 드리지도 못하지만) 엄마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손주가 웃는 걸 보고 엄마가 잠시 행복해진다 해도(손주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 했다) 그건 정말 잠시고 육아는 엄청난 육체노동인데 왜 환갑을 앞둔 우리 엄마가 그 노동을 감내해야 하나. 그저 딸이 일을 계속 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인데 내 일은 엄마를 위해 해주는 것이 거의 없다.

 

엄마가 내 일을 응원해주는 것이 행운인 사회에서 엄마의 시간을 빼앗아 내 새끼들을 기르는 이기적인 딸. 복 받은 팔자다. 이 죄책감으로 일과 육아를 유지하는 내 팔자가 복 받은 팔자라니. 여성 노동력을 착취해서 아이를 기르는 구조에 분노하지만 결국 엄마한테는 아무 할 말이 없는 팔자. 엄마에게 의지하지 않고 아이를 기를 수 있기를 바라지만 아마 내가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는 힘들겠지.

 

엄마, 내 사주에 엄마 복이 있대요. 사주는 정말 잘 맞네요. 엄마 복으로 내가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워요. 스무 살 땐 엄마한테 독립해서 멋진 여자로 사는 게 꿈이었는데 여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미안해요. 엄마의 힘을 빌지 않으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이들도 제대로 기를 수 없어서. 그래서 내 일의 성과가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내 바이라인에는 언제나 엄마 이름이 겹쳐져 있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기자를 했으면 나보다 더 잘 했을 텐데. 고맙습니다. 어버이날이라 공개적으로 한 번 말해 봐요. 그리고 사랑해요.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필립모양 2017.05.09 1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이렇게 눈물이 철철나지....ㅜ ㅠ

  2. 아이 2017.05.09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하면서도 육아도우미 못 쓸 사람은 애를 안 낳거나 일을 그만두거나 해야하는데 아 그럼서 아이를 왜 낳을까요... 진짜 궁금

  3. 지현 2017.05.09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임기자님이 부러워요.
    시댁은 지방이고 한시간 거리 사는 친정엄마는 일을 하세요 ㅜ
    저는 출신휴가 2개월차 육아휴직 3개월 후 10월 복귀인데 7월부터 시터구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좋은분 만나냐하는 걱정에 사로 잡혀있네요. 돈도 돈이지만 내가 이정도 돈을 지불하려고 해도(180?) 좋은분 개란티 안된다는것도 서럽고 또 받는분 입장에선 큰 돈아닐 수 있다는거에 참 어렵네요(하루에 10시간 일하고 180이니깐요)
    해외출장 많은 직업으로 출장 줄이는 것도 직장 복귀 후 어떻게 조율할지 걱정으만 태산이구요!
    어떻게든 되겠죠?

    기자님 블로그 평소에 넘 잘 보고있습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1 2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글이 부럽게 읽히는 게 가장 걱정이 됐어요ㅠㅠ 해외출장까지 많으시다니. 그래도 잘 조율하실 수 있게 되기를요. 부모가 힘을 합쳐 아이를 잘 기를 수 있게 되길, 싱글맘 싱글파더 혼자서도 편견 없이 아이를 잘 기를 수 있게 되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가끔 손주를 보면서 체력을 소진하지 않게 되길... 진정 바래봅니다. 댓글 감사해요!! (글 잘 봐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4. 발바닥 2017.05.10 1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임기자님과 어머니 사이 개띠, 직장 남자입니다. 저도 아직 부모님한테서 독립 하지 못했네요. 부모님 손을 빌지않고 아이셋을 어떻게 키웠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쌀과 김치 등을 보내시는 부모님, 이사 할때마다 사위 모르게 전세금 보태주신 장인 장모님... 이런 양가 부모님들 지원이 없었다면 외벌이로 아이들을 이만큼 키울 수 있었을까요? 그래도 나 잘났다고 양가 부모님께 일좀 그만하시라고 얼마전까지 큰소리 쳤습니다. 이젠 알지요. 눈 감는 날까지 자식을 위해 모든것을 내어주시는 부모님 마음을..... 그리고 그분들이 바라셨던 것처럼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나름 노력했던 대견한 우리들.... 그렇지만 항상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과 죄송스러움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 부모님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1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희생하는만큼 정체성이 겹치는 게 한국 사회 부모 자식간의 관계인 것 같아 가끔은 답답하기도 했는데 나이가 드니까 부모님들의 노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또 고마워하는게 어른스러운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어요.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제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친정엄마아빠께 의지하게 됐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ㅠㅠ 아... 저는 그런 부모가 될 자신이 전혀 없는데... 감사하는 마음은 마음 깊이 새겨야죠 새겨야죠...

  5. 우리엄마 2017.05.10 2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소 생각했던 제맘이랑 완전 똑같아서 읽는 내내 울컥했어요 ㅠㅠ 저도 울아들 6세이니 만5년째 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딸이네요ㅠ 아이에 대한 죄책감은
    둘째치더라도 엄마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워킹맘이 축복받은 존재가 되는 모순된 세상... 정말 그렇네요.. 이모든것을 알면서도 오늘도 엄마의 노동력 없인 절대 아이를 키울 수 없네요 ㅠㅠ 그럼에도 둘째 낳으면 같이 키워준다는 우리 어무이.... ㅠㅠ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1 2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ㅠㅠ 둘째까지 낳아서 정말 엄마한테 미안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둘째를 낳았을까 가끔 생각합니다(둘째야 미안... 너는 축복이야!!)ㅠㅠ 저출산의 문제는 부모를 둘다 집으로 돌려주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을 거예요. 새로운 대통령이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갖고 또 의지를 갖길 바래봅니다.ㅠㅠ

  6. 생각하는 2017.05.11 1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까지도 여자에게만 모든 일을 떠넘기는 것이 '복'을 받는 팔자를 만드는 게 아닐까요.. 그걸 개인이 혼자 이겨내야만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여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1 2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ㅠㅠ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사회죠ㅠㅠ 절대 복받은게 아닌데 친정엄마, 시엄마마저 도와줄 수 없는 수많은 부모들에게 미안한 기분이 드는 이 상황은 정말 말이 안되는 거죠...

  7. 불효녀직장맘 2017.05.12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친정엄마에게..시어머니에게..돌아가면서 맡겨서 키우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은 하는건..자아성취..따위의 목적보다도..혼자벌어 애키우기 힘든세상에..
    한푼이라도 더 벌수 있을때 벌어두자...가 90%는 차지하죠...

    물론....그래도..집에서 아이보는거보다..회사가는게 덜 힘들어요..
    ..
    내친구는 나를 부럽다고 하지만..난참...엄마 어머니께 너무 죄송하네요..
    시간이 갈수록..애들은 커져서 힘들고 부모님은..나이가 드시고...
    가끔..회사집 회사집만 굴리면서 나는 뭔가..해지는데..그때마다..부모님 생각하면서..마음 다져요...

    너무너무..공감가네요..글이....저도 둘째낳고...우리둘째한텐 미안하지만..이렇게 생각없이 낳았나..
    그런생각 했거든요...
    아효.......답답합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2 1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ㅠㅠ 혼자 벌어 애 키우기 힘든 사회죠. 왜 시터 두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애를 두고 나가느냐는 댓글 보고 속상했는데... 그만큼 주거비 교육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요. 특히 주거비가 너무 심각하잖아요ㅠㅠ

      '애 보느니 밭매겠다'는 말이 정말 왜 전해지는지 알 것 같아요. 애보다보면 정말 회사 일이 더 견딜만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에 맞춰서 모든 걸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 참 힘들잖아요. 그런데 그걸 젊은 내가 아닌 엄마가 하셔야한다는게 이 빡센 육체노동을 내년에 환갑인 엄마가 하셔야 한다는 게 정말 걱정돼요. 미안하고요. ㅠㅠ

      정말 답답하죠.... 답답합니다. ㅠㅠ

  8. Favicon of http://www.azoomma.org 황인영 2017.05.23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 이번 18회 아줌마의날 행사 관련 내용은 아래 주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azoomma.org/?sec=sec04&pop=y#sec04

    • 황인영 2017.05.23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자님, 제가 장문의 글을 썼는데 다 날라가버렸네요.. ㅠㅠ

      음.. 다시 한번 써보겠습니다만 처음의 그 감흥을 그대로 다시 전달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는 아줌마닷컴(www.azoomma.com)의 대표를 맡고 있는 황인영입니다.

      17년 전인 2000년, 저희 회원들의 발의로 5월 마지막날을 '아줌마의날'로 정하고 매년 행사를 개최해오고 있습니다. 처음엔 50여명의 소풍으로 시작해서 '아줌마 헌장'을 낭독하고 해를 거듭하면서 나, 가정, 사회, 국가 속에서 아줌마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그 가치를 스스로 느끼고 세상에 공유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낸 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그런데 임아영 기자님의 글에서 보듯 나의 세대와 엄마의 세대.. 두세대를 거쳐도 역시 우리들의 삶에는 혁명이라는 것은 없는것 같습니다.

      저 역시 20년이 넘게 밥을 하고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냥 해야하는거니까 했지 이렇게 사는 삶이 정말 제가 원하는 삶인지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볼 틈이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그럴만한 겨를도 없이 엄마로, 직장인으로, 딸로, 아내로... 며느리로.. 그렇게 살아온것이고..

      우리 어머니도 역시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역시 그렇게 살아오셨죠.
      대대로 내려오는...

      나의 문제, 나를 알고 그것이 나와 사회가, 나와 정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깨닫는 '연결선'이 필요한거 같습니다.

      임아영 기자님의 글이 어쩌면 엄마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더구나 한 세대가 아닌 두 세대 엄마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글이라 생각되어

      기자님을 저희 행사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기자님의 글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연락처가 없어 댓글로 남깁니다. 가능하시다면 메일로 연락처를 주시면 제가 전화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저 역시 평범한 아줌마로서 이제 '나와 정치'를 연결하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세대가 약간 다르지만, 임기자님과 저 역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http://momcast.azoomma.com/potview/603182
      부족하지만 방송 들어보셔도 좋습니다.

      제 마음이 기자님과 닿았기를 기대하며... 회신 기다리겠습니다.
      제 이메일 주소는
      inus@inuscomm.co.kr

    • 2017.05.23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밀댓글입니다

  9. Favicon of https://bshell.tistory.com 아맹꼬 2017.06.02 2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역시 기자님과 같이 아들 둘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직장다녀요. 46년생 노모께 큰애 태어나서부터 8살,5살 된 지금까지요. 기자님 글그대로의 심정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사회, 조금씩조금씩 바뀌겠죠.계속 소리내다보면 그럴것이다라고 생각하고 희망합니다. 글 잘 보고 가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7.30 14: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ㅠㅠ 아들 둘이시군요. 전 왠지 아들만 둘이니 더 엄마한테 미안하더라고요. 하루종일 뛰어다니는 둘을 엄마한테 맡기다니 싶은게요... 계속 목소리내고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면 변화가 빨라지겠죠. 기운내세요.^^ 감사합니다.

  10. 재민재희맘 2017.06.09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복직 앞두고 있는데
    당연하듯 손주돌봄을 준비하고 있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 고마움이 밀려오네요
    애들 어린이집 맡기고 엄마 모시고 근처라도 데이트 다녀와야겠습니다

  11. 정덕 2017.07.26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페이스북에서 공유하며 눈물 흘렸는데 아영언니었네요. 새삼 반갑습니다. 힘을 내어 보아요. 우리.

지지난주 목요일 두진이 유치원 상담을 받고 왔다. 밥을 잘 안 먹으니(두진이는 밥 물고 있기 제왕, 밥먹다 멍때리기 제왕이다) 급식 먹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실까 하고 갔는데 담임선생님은 발달 및 지능 검사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 당황스러웠다.


선생님은 아이가 특이하다고 설명하셨다. ‘특이하다는 게 무슨 뜻일까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상담카드에 같이 꼽아둔 두진이의 미술 활동물을 보여주셨다. 나비 그림 테두리에 바늘로 구멍을 뚫고 실을 이용해 구멍을 연결하는 활동이었다. 두진이는 테두리대로 연결하지 않고 대각선으로 여러 개를 이어놓았다. “이렇게 할 수도 있어요 어머님. 근데 세 번이나 설명해줬는데 계속 이렇게 하는 거예요. 아이가 설명을 못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에요.”

 

그럼 왜 이렇게 했을까요?”

 

그러게요. 저도 임상 쪽 전문가가 아니니까 전문 기관에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 손바닥만한 작은 책 만드는 활동에서는 책 페이지마다 다 풀로 붙여놨다고 했다.

 

아이가 특이하다고 느껴져요. 어머님 배우 탐 크루즈가 난독증이잖아요. 근데 연기를 정말 잘하잖아요. 두진이를 보면 그 생각이 들어서요.”

 

얘기를 듣는 내 표정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난독증, 특이하다... 좋은 말도 해주셨다. “아이가 반짝반짝거릴 때가 있어요. 집중하면 레이저를 쏠 정도로 빠져들어요. 소리를 못 듣는 건지 대답을 안 할 때도 많아요. 근데 안 듣는 건지, 못 듣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도 그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니까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으셨으면 좋겠다는 뜻이에요.”


얼음으로 실컷 장난한 뒤 물시계(?) 만드는 중...


 

그리고 돌아와 기관을 알아봤다. 생각보다 비용이 비싼 걸 확인한 후 괜한 반감이 들었다. ‘내가 보기엔 별로 특이한 것 같지 않은데. 이 돈을 들여서 검사를 받아야 할 만큼 특이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지만 찝찝했다. 아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두진에게 물었다. “두진아 나비를 왜 이렇게 했어?” 두진이는 명쾌하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두진이는 말이 많은 꼬마가 아니다. 유치원 생활을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하거나 단답형. 그렇지만 이번에는 여러 번 질문을 던지니 두 가지 단서를 던져줬다. “아까워서라는 답변과 그럼 코랑 연결이 안 되잖아라는 답변. 아이의 설명대로라면 뭔가가 아까웠고 선생님 설명대로 테두리를 연결하면 코랑 연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스스로 행동의 의도를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6(53개월)다. 몇 번을 더 물어보니 "엄마 물어보는게 힘들어"라고도 했다.

 

난독증 비유와 특이하다는 말만으로도 불안했는데 내 불안을 더 키운 대화도 있었다. 두진이를 여러 번 본 유치원 친구 아빠(직업이 교사)가 두진이가 상담 받고 왔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발달검사를 권유받았느냐고 물어본 것, 몇 번 더 두진이를 만나보고 우리 부부에게 검사를 권유하려고 했다는 얘기, 두진이에게 불안함이 엿보인다는 이야기까지.

 

15개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두진이에 대한 선생님들의 평가는 비슷했다. 집중력이 좋다, 그런데 집중하는 만큼 행동 전환이 느리다. 우리 부부는 12월생이라 그렇지 않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다. 또 집중 잘하는 것은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다 다른데 아이들도 그렇지 않느냐고 생각도 함께였다. 

 

그런데 불안함이 엿보인다는 얘기를 듣고 우울함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최근 아이가 블록놀이 등을 하면서 마음대로 안 되자 불안해하고 울어버렸던 풍경들이 떠올랐고 왜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나 우울해졌다. 아이의 불안함을 내가 몰라줬다는 생각이 들자 미안해졌다. 그렇다 미안해졌다

 

어머니가 복직하시잖아요. 복직하시지 않으면 문제가 아니에요. 복직 전에 구멍난 부분을 확인하고 채우자는 차원이에요. 저도 큰애 키우면서 상담 많이 받았어요. 도움이 돼요 어머님.” 두진이는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식탐이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생각이 들 정도로 밥에 관심이 없고 밥 먹으면서도 놀고 싶어서 집중을 하지 못한다. 유치원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겠지 싶어서 그 부분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상담을 갔다. 그러나 내 복직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선생님의 의도는 간명하다. 밥 안 먹는 아이를 할머니가 먹게 하기는 더 힘들다는 것. 충분히 이해한다. 이미 지금도 내 말이 할머니 말보다 더 잘 먹히고 남자 아이는 점점 더 할머니의 말을 안 들을 것이라는 것도 예상 가능하다. 선생님은 퇴근 시간도 물으셨다. 내 퇴근 시간을 말하니 표정이 어두워진 것은 오히려 선생님 쪽이었다. ‘복직이 문제된다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나는 발달검사 제안과 별개로 또 충격을 받았다.

 

화가 났다. 왜 내 복직만 문제가 되는가. 남편이 회사 다니는 건 왜 문제가 되지 않는가. 왜 한국 사회에서 주양육자는 항상 엄마인가. 결국 선생님이 추천한 상담센터를 예약했다. 먼저 엄마가 80분 면담을 받고 검사 종류를 결정한다고 했다. 왜 엄마, 아빠 다 오라고 하지 않는가. 나만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게 아닌데. 내 관점이 과잉되거나 틀릴 수도 있지 않는가.

 

그러다 화는 금세 가라앉고 계속 우울해졌다. 이제 생각의 단계는 나는 회사를 제대로 다닐 수 있겠는가로 옮겨갔다. 역시 워킹맘인 동네 친구는 말했다. “반푼이로 살아야 한대요. 회사에서 반푼이, 집에서도 반푼이. 아니면 견뎌내지 못한대요.” 작년에 아이 발달이 늦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장을 옮겨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엄마다. 난 반푼이가 될 수 있을까. 아니 이미 반푼이일까.

 

처음으로 ‘다들 이렇게 아이에게 이상한 점을 발견하면 회사를 그만뒀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기 전 한 회사 선배는 와이프가 파마를 했는데 아이가 엄마를 못 알아보자 일을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어떻게 엄마를 못 알아보지 하면서 웃었는데 심각한 이야기였다. 만약 두진이에게 특이한 점이 정말 발견된다면 난 어떤 좌절감을 느낄까.

 

안다. 특이한 점이 발견되어도 큰 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걸. 뛰어난 부분이 있으면 키워주고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면 된다는 걸. 부모의 역할은 그렇게 이끌어주는 것이라는 걸.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한 발짝 앞에 서서 손을 잡아주면 된다는 걸.

 

아니 안다고 믿었다. 근데 내 아이 일이 되니까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다. 이상한 말을 들으면 어떡하지. 무섭고 두렵다. 두렵다.


왜 아무도 내게 아이를 키우는 일이 이렇게 거대한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나.’ 


가끔 아이를 훈육하는 게 힘들 때, 엄마라는 역할을 하기에 버겁다고 느껴질 때마다 이 답답한 질문이 튀어 오른다. 왜 아무도 아이를 키우는 일에 이렇게 많은 시간과 품이 들어간다고 알려주지 않았나. 아이의 온몸을 안고 업고 지내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아이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옷을 입고 혼자 길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는 독립적 존재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왜 알려주지 않았나. 그러면서 사회는 왜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시간을 내어주지 않나.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사람 아냐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타인에게 적당하게 손 내밀고 거리두기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며 뿌듯해했던 삼십대 초반 내 아이에게도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며 안정적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러나 아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밥을 먹여줘야 하고 옷을 입혀줘야 하는 작은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이를 낳기 전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밥 먹여주고 옷 입혀주는 게 끝이 아니다. 어떻게 밥을 먹어야 하고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는지 가르쳐줘야 한다. 아이가 밥을 잘 안 먹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제대로 밥을 먹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제일 먼저 들었다. “어머니 아이가 어쩜 식탐이 이렇게 없나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게요, 선생님.’


그뒤로 아이를 자꾸 채근하게 된다. 왜 밥을 안 먹니, 왜 물고 있니, 씹고 뜨고 다시 씹고 뜨는 거야, 가만히 있지마, 그렇게 아이를 닦달하다가 과자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 어제도 밥을 깨작깨작 먹고 물고 있다가 몇 번 혼난 두진이는 겨우겨우 밥을 다 먹고선 과자를 달라고 했다. 과자 때문에 밥을 안 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또 과자를 줬다. 밥 다 먹으면 이거 줄게. 유인하기 위해 사온 과자인데. 신나서 과자를 먹는 표정을 보고 정말 화가 났다. 밥을 그렇게 먹어라 밥을. 과자는 달콤하니까 먹겠지. 알면서도 아이를 혼내고 말았다. , 지금 뭐하는 짓인지. 과자 사달라고 했을 때 안 사줬으면 됐잖아. 자괴감이 몰려온다. 이 작은 존재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은 자괴감.

 

결국 상담센터에 가서 80분간 엄마 면담을 받고 돌아왔다. 그 면담을 통해 상담이든 검사든 결정하는데 3주가 걸린다고 했다. 차분히 기다리면 된다. 3주 후 결정이 되면 절차대로 따라가면 된다. 상담을 받든 검사를 받든. 이성적으로는 안다. 그런데 아이에 관해선 이 평정심이 자꾸 무너진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면 어떡하지.’

 

유난스러운 엄마가 되기 싫었다. 유난스럽게 굴지 않는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내 일과 내 영역을 유지하는 만큼 아이들의 자유를 인정해줘야지. 아이들에게 집중하되 집착하지 말아야지. 늘 생각했다. 근데 전문 상담 받으라는 말 한 마디에 이렇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아이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장담하면 안된다는 세간의 말의 뜻을 이해했다.

 

그러다 아들연구소라는 앱에서 이런 글이 날아왔다. 꼭 나를 위한 글처럼.

 

주어도 주어도 넘쳐도 넘쳐도 괜찮은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사랑을 줄 때 순수 의미의 사랑인지, 걱정을 가장한 관심의 표현인지 구분이 조금 필요한 것 같아요.


관심과 걱정과 사랑은 다르죠. 관심이 많아지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혹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걱정이 생기곤 합니다. 그러한 걱정을 양육자가 아이에게 표현한다면, 아이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들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감이 먼저 생길 수 있어요.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요. 정말 부족한 것인지 걱정으로 인한 부족인지 구할 수 있는 힘을 길러보아요.”

 

특이하다는 말을 걱정하느라 아이의 마음을 돌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밥 안 먹는다고 화내면서 아이를 힘들게 하면서 먹게 하면 무슨 소용인가. 마음을 다잡아본다. 3주 후면 상담을 할지, 검사를 할지도 결정될 텐데. 차분히 기다려보기로 했다. 중간중간 걱정이 치고 올라오겠지만 다시 평정심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엄마는힘들어ㅠ 2017.04.21 15: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보면서 울뻔했네요. 우리나라 구조는 참 이상해서 아이기 다쳐도 엄마탓이고 아이가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해도 엄마가 가르친거냐 묻습니다. 딸아이인데도 남자아이들만큼 달리고 뛰어내리는 아이를 보며 항상 언제 다칠지모르는 두려움이 나를 감싸고, 다쳐도 꼭 머리만 다치는 통에 트라우마도 가득하네요.그런데 나만 불안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였네요. 그런 저를 바라보는 아이는 더 불안했겠지요.... ㅠ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23 2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ㅠㅠ 왜 다들 엄마를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요. 아이를 믿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고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어요. 우리 힘내요. 힘내세요.

  2. 힘내요 2017.04.21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영씨 힘내세요 ~~♡♡
    아이마다 저마다 가진 기질이 있어요
    아이를 직접보지 못해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우리 아이가 기질에 맞는 선생님 아이를 볼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나면 다를 수 있어요
    가장 잘아는 사람은 엄마일거예요
    아이나이가 너무 어리고 정확하게 판단하기 힘들어요
    아들이란 성이 가진 기질도 있답니다.
    아들의 기질 파악이 더욱 중요할것 같아요
    저는 일단부모가 파악하고 있는 아이의 기질검사 추천드려요.
    힘내세요 !!

  3. 공감 2017.04.23 1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이집상담을 다녀오고 지금 두려움과 걱정 스트레스에 빠져있는 12월생 아들을 둔 엄마예요. 기관을 그만두게해야할지까지 고민중인데 공감가는글이네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23 2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린이집 상담... ㅠㅠ 저도 상담 몇번밖에 안 받았지만 상담 받고 기분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어요. 아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모든 시선이 아이에게 좋을 수 없구나라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됐던 시간. 기관에 보낼지 말지까지 고민하신다면 정말... 어떤 심정이실지. 그래도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4. 랄라 2017.06.02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렵고 또 어렵네요 ㅠㅠ
    24개월 남아 엄마에요. 영유아검진때 보니 또래의 아이들보다 대근육발달이 느리고 움직임이 많지않습니다. O형이지만 활동적이지않고 정적이구요. 같은 혈액형의 사촌형아들이 노는 모습이랑은 확연히 다른 성향이에요. 우스갯소리로 남자아기들의 집엔 남아나는 책 표지가 없다는데 저희집은 안그래요 ㅠ 너무 깨끗합니다. 그렇다고 또 책을 안보는것은 아니구요. 아직 제자리뛰기 점프를 못한다고 대근육발달검사를 받아보라고 하는데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아직도 고민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어른들이 정해놓은 틀에 획일화되게 맞추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평균치에도 못미친다고하니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걱정만 앞서네요 ㅠㅠ 남들과 다름은 평범치않은 또다른 재능의 발견 아닐까요? 그들이 잘 자랄수있게 열심히 보조해줍시다 ㅠㅅㅠ 홧팅입니다~

그 선배 애 낳고 변하더라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더니 애 낳더니 어쩔 수 없나봐.”

 

결혼을 안 했던 시절 여자 선배들을 저렇게 묘사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애 낳으면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애 낳으면 일을 대충 한다로 이어져 애 낳은 여자들은 쓰면 안 돼에서 애를 낳을 수 있는 여자들은 쓰면 안 돼까지 연결된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땐 '결혼을 하면 안 되겠구나'부터 '다 그런 건 아닐 거야',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에까지 생각이 연결되곤 했다.

 

애를 낳고 알게 됐다. 가사 노동과 육아를 여성에게 떠넘긴 사회에서 회사 생활을 버틴 것도 대단한 것이라는 걸. 그나마 아이를 대신 맡아줄 가족(친정엄마나 시엄마, 아니면 시터이모님)이 없는 여자 선배들은 이미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을. 또 그 숫자가 적지 않았다는 것도. 게다가 그 선배들이 아이를 낳았던 시절은 출산 휴가 2개월밖에 주지 않던 때였다. 2개월이라니 2개월이라니. 아직 뒤집지도 못하는 아기를 떼놓고 출근하게 했던, 야만의 시절이었다.

 

복직 후 여자 선배들은 내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다. “애가 어릴 땐 일을 살살해도 괜찮아. 오래 버티는 게 중요한 거야에서부터 힘들지. 지금 정말 힘들 때야.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져”, “근데 정말 힘드니까 둘째는 낳지 마까지...

 

물론 나이가 열 살 이상 차이나는 선배들과 다른 생각을 가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선배들이 없었다면... 난 과연 이곳에 있었을까? 복직 후 그 생각을 많이 했다. '저 선배들 덕분에 내가 여기 있구나.' 표현한 적은 없지만. 그저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다녔다는 것이 고마웠다.

 

여기자가 없던 시절, 1/10이 여기자이던 시절, 그리고 2000년대 여기자가 많이(급속히?) 늘어나던 시절. 회사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끔 바지 입은 여자를 묘사하는 글을 읽는다. 직장 내 여자들이 늘어나도 그 여자들이 바지 입은 여자라 남자 상사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최근 페친의 추천으로 페이스북 COO인 셰릴 샌드버그의 <린 인>을 읽었다. 그 책에서 무릎을 치면서 웃었던 부분.

 

셰릴은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구글에서 일하고 있었다. 임신 3개월이면 끝난다는 입덧이 9개월 내내 계속됐고 어느 날 회의에 늦지 않으려고 겨우겨우 주차를 했는데 겨우 주차한 곳이 사무실과 멀어서 산처럼 부푼 배를 안고 겨우 회의실에 들어갔다는 이야기. 근데 그날 밤 야후에서 일하던 남편이 이야기한다. 야후에는 각 건물 앞에 임산부 전용 주차 공간이 있다고. 셰릴은 다음날 구글의 설립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사무실로 쳐들어가 회사에 임산부 전용 주차 공간을 가능한 한 빨리 마련해달라고 건의했다. 세르게이는 그 문제를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곧 사과하고 바로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셰릴은 말한다. “나 또한 내가 임신해서 발이 부어올라 쩔쩔맬 때까지 회사에 임산부 전용 주차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구글에서 최고참 여성 중역이었으니 당연히 생각했어야 할 문제 아닌가? 하지만 세르게이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다른 임산부 직원들은 배려해달라고 요청하지 못하고 묵묵히 불편함을 참았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감이 없거나 직위가 낮은 탓에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한 것이리라.”

 

이 부분을 읽으며 새삼 난 회사 화장실이 생각났다. 입사 초 편집국 화장실은 남자 화장실보다 여자 화장실이 더 좁았다. 기자가 남자만 있던 시절 남자 화장실 밖에 없었는데 그 공간을 일부 쪼개 여자 화장실로 만들었다고 들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2011년쯤 편집국 리모델링을 할 때 여자 화장실 크기가 더 넓어졌다. 여자 화장실에 대한 불만과 민원이 더해진 결과이리라.

 

여자가 늘어나면 뭐가 바뀌느냐고? ㅎㅎ 화장실이 생긴다. 웃기지만 편집국에 남기자만 있던 시절 처음 입사한 여자 기자는 어떻게 화장실을 다녔을까. 참 단순한 사실이지만 그 선배 덕분에 여자 화장실이 생겼을 것이고 또 여기자가 늘어나니 화장실도 커졌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간 임산부전용 주차장도 생기겠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남자 기자가 압도적으로 많던 시절(199쯤 되려나) 편집국에서는 담배도 피웠다고 한다. 요즘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풍경이다.

 

첫째를 임신했던 때 회식을 하던 중이었다. 남자 선배와 남자 동기가 회식 자리에서 담배를 피웠다. 속으로 생각했다. ‘임신 중이라고 말할까. 말까. 말할까.’ 결국... 말하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임신한지 몰랐을 뿐이었다. 그때는 괜히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기 싫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멍청했다. 그날 자리에서 나와 만만한 남자 동기에게만 말했다. “나 임신했어.” 쩔쩔매며 미안해하는 그를 보며 괜찮다고 했지만 이후 그 사건이 떠오를 때면 왜 나는 그 자리에서 말하지 못했나후회가 됐다. 이제 더 시간이 지나 회식 자리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에피소드 또 하나. 결혼 직후였다. 오랜만의 사내 커플이라 사람들의 장난스러운 시선도 꽤 있었다. 출근할 때였나 남편과 내가 한 엘리베이터에 탔다. 같이 엘리베이터에 탄 한 선배가 내게 물었다. “밥은 해줬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이미 얼굴엔 기분 나쁘다는 표가 다 난 뒤였다. 다행히 편한 선배였고 되물었다. “제가 왜 밥을 해줘야되죠?” 당황한 선배의 표정. 결혼한지 만 5년이 지난 지금이었다면 이보다 세련되게 받았겠지만 그때는 정색하고 말았다. 정말 다행히도 선배는 웃으셨고 그 이후부터는 남편만 보면 장난스럽게 밥은 해줬냐?”고 묻기 시작했다. 아마 처음에는 내 표정을 보고선 기분이 좋진 않았겠지만.

 

여자들이 늘어나 조직의 풍경을 얼마나 바꿨을까. 별 것 아니지만 남자에게 밥은 해줬느냐고 묻게 하는 것. 그게 시작이 아닐까. 셰릴은 <린 인>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제를 일으켜봤자 시끄러운 페미니스트라는 소리만 들을 터였다.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불이익을 지적하는 것이 푸념하거나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행동으로 잘못 해석될까봐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일했다.


해가 지나면서 여성 친구들과 동료들이 하나둘씩 직장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스스로 선택해서 떠나는 여성도 있었고 융통성을 허용하지 않는 회사에 떠밀리거나,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하지 않는 배우자의 요구로 낭패감에 휩싸여 떠나는 여성도 있었다. 직장에 남아 있더라도 주변의 대단한 기대를 충족시키겠다는 야망을 줄였다. 여성 리더가 출현하리라는 우리 세대의 희망도 점차 빛을 잃어갔다. 구글에서 근무한 지 몇 년이 지났을 무렵, 이러한 문제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내가 성 문제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현재 상황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세계에 진입한 첫 세대 여성들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내며 자신을 조직에 맞춰야 했는지 모른다. 어떤 때는 그것이 가장 안전한 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집단으로서의 여성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성은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하고, 자신을 뒷걸음치게 만드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요즘 대선 후보 배우자들의 인터뷰를 지나가다 몇 번 봤다.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남편 이승배씨의 인터뷰는 정독했다. “심상정 남편? 한 마디로 그게 뭐 어때서? 영광이지!’하는 생각이라는 답변과 제 처가 세상에 긍정적 기여를 하도록 옆에서 돕는 게, 저의 존재 이유의 핵심이라는 답변은 정말 멋졌다. 그리고 통쾌했다. 여성 정치인과 내조하는 남편이 보여주는 평등한 결합. 게다가 그 남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슈퍼우먼 방지법에 대한 설명이라니!

 

남녀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 조직, 나아가 이 사회의 건강에 좋다. 그게 회사에도, 국회에도, 고위 공직자의 세계에도 여자들이 절반을 차지해야 하는 이유다. 선배들이 버틴 덕분에 나는 둘째까지 육아휴직 1년씩 2년을 썼다. 내 여자 후배들은 육아휴직 2년을 남편과 공평하게 나눠 쓰기를 바란다. 또 내 남자 후배들은 육아휴직 기간 직접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

 

<린 인>에서 이 문장들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평등한 사회라면 여성이 국가와 기업의 반을 운영하고 남성이 가정의 반을 꾸려나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오는 아버지가 늘어나고 직장에서 일하느라 바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더욱 많은 선택 사항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상은 여성에게 성을 근거로 기대하지 않고 개인적인 열정과 재능, 흥미를 기준으로 기대할 것이다.(...) 내 아들이 풀타임으로 자녀를 키우는 중요한 일을 하고 싶어 하더라도 그 뜻을 존중받고 도움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 딸이 집 밖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기를 원하더라도 그 뜻을 존중받고 도움받을 뿐 아니라, 딸이 성취한 일들에 대해 타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지나가며 2017.03.30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종류의 글이 페미니즘이 유행하다 보니 많이 보이는데요.얼핏 그럴 듯 하지만 사실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주장들이에요.
    일단 개인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과 다른 종류의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이런 논의가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논의의 순수하게 평등의 관점에서의 약점은 다른데 있으니까 그걸 얘기해보면요.
    모든 직업에서 성비가 일대 일이 되는 건 장기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많은 직업은 예비 단계인 대학이나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부터 성비가 확 갈리기 때문입니다.
    제가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이 아니라 거기는 잘 모르겠는데, 대학의 경우에 공대와 자연과학대와 인문대, 예술대는 성비가 확실하게 차이가 나죠.
    그리고 제가 아는 한 그건 무슨 성차별이 주요 원인이 아닙니다.
    공학이나 물리학 같은 학문의 주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여자 고등학생 수부터가 확실하게 남학생보다
    적어요. 자신의 가능성 같은 것 말고 관심 부터가 확실하게 차이가 나죠.
    물론 그런 관심의 차이가 사회에 퍼진 문화와 관계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전공을 갖지 못하게 하는 노골적인 입시 차별이나 전반적인 거대한 장벽이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전체 졸업자의 1/10 또는 1/100 밖에 안되는 여성을 무슨 수로 십년,이십년 뒤에 특정 직업의 주요 직위에 반을 채울까요? 만약 그 여성들이 언제나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잘하는게 아니라 동등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그 어떤 차별도 없고 경력 단절 문제가 해결되어도 절대로 반을 못 채우는 겁니다.
    실력에 관계 없이 무조건 억지로 반을 채우기로 정하지 않는다면요.

    단지 여성이 절반이 되는게 나름 좋은 점도 있을지 모른다는 까닭 하나만 가지고 주요 직위에 여자들을 채워야 하나요? 그 직위는 오로지 성평등을 구현하는 것 하나만을 목표로 존재하는 자리들이 아닙니다.

    반대로 수간호사 같은 자리는 실력있는 여자 간호사 모두 탈락시키고 억지로 반을 남자로 채워야 할까요?
    남자가 많은 전공이건 여자가 많은 전공이건 , 취직률이 높을 경우에 별짓 다해도 성비를 반을 못 채울 것 같지 않나요?

    여성이라는 까닭으로 직업을 가지고 일해 가는데 있어서 장애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게 바람직한 방향이기는 하지만, 그게 여성이 절반이 되어야 한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합니다.
    그걸 억지로 맞추는 것도 불가능하고 제도와 문화가 평등하게 바뀐다고 해서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절반이 되는 걸 어렵게 하는 문제들을 제거할 수 있을 뿐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이 엄청 싫어하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보다 높고,이공계에서는 70%입니다. 성평등을 위해서 여성 이공계 졸업자는 불이익이라도 줘야 할까요? 그런다는 말은 못 들어봤습니다.)


    • 또한지나가며 2017.03.30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나가며님께
      직업에 편견이 붙어있는게 문제인거죠
      간호사라는 직업은 남자도 할수있고 여자도 할수있어요, 하지만 남자간호사에 대한 사회 이미지가 남성으로 하여금 진입장벽이 있는게 아니라고 하실수있나요?
      미대와 예체능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학생이 미대를 진학하겠다는 것을 부모에게 이해시키는것도 여학생보다 훨씬 어렵죠.
      이건 여성에게도 해당되는게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이런 편견을 고쳐나간다면 미래에는 더 많은 선택지가 있는 사회가 되겠죠

    • ㅡㅡ 2017.04.01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 각각의 직업군 내의 성비를 1대1로 맞춰야 한다는 내용이 전혀 아닌데요. 당연히 직업마다 여성이 선호하거나 남성이 선호하는 직업군이 있을 수 있죠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상적이라고 하는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주입당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시대이니까) 여성에게만 육아의 부담을 지우는 사회 분위기가 여성이 직장을 다니는 데 큰 부담을 지게 하고 결국은 직장을 그만두게까지 하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문제라는 거예요. 간호사 중 여성의 비율이 9이고 남성이 1이었다가 여성이 이러한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어서 그 비율이 8대 2로 바뀌었다고 칩시다. 그래도 여자 비율이 월등하게 높으니까 불만 갖지 않고 가만 있어야 하나요? 어떻게 글을 이렇게 읽으실 수 있지?

  2. 지나가는 남성 2017.03.31 1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 공감합니다. 저도 변해보려고요.
    그래도 참 어렵네요. 아기 키우면서 회사 다닌다는 것이. 또 부부가 서로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래도 노력해야겠죠?
    노동시간 의무 단축을 포함해 다양한 논의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03 1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변하기 위해 노력하시겠다는 말씀이 넘 멋집니다. ^^ 대선을 계기로 많은 논의가 나와야하는데 항상 원하는 것보다 부족하죠. 또 실제 정책이 실현될지도 의문이고요. 그래서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할듯해요. 제 삶을 바꾸는 건 결국 제 자신이니까요. 댓글 감사합니다.

  3. Nine 2017.04.01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육아와 가정 생활을 좋아 하는 여성분도 계십니다.
    사회적 성공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아닙니다.
    여성이 육아를 책임지기 싫은 집이 있다면 남성이 지면 됩니다.
    역활은 반대로 하면 쉽게 해결 됩니다.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 나참 2017.04.01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부 둘 모두가 직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육아와 가사노동은 여자들의 몫이고 남자들이 안하니까 이런 글이 나온거죠(남자가 가사노동에 어느정도 기여하는지 통계적 지표들에서 아주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하면 쉽게 해결돼??? 말로 쓰니까 정말 쉽고 간단하네요. 입사면접볼때 출산계획 있냐는 질문 들어봤어요? 남자들에겐 저게 마이너스 요소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저런질문 안 들어봤겠지만 여자들은 항상 들어요. 일보다 육아가 더 좋은 사람, 있겠죠. 근데 그 비율이 정말 그렇게 높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러실수 있겠냐니ㅋㅋ 출산한 사람들이 가사노동에서 자아를 찾고 싶어서 직장 그만두는줄 알아요? 맨 첫문장에서 말했다시피, 남성중심적 사회이기 때문에 출산한 여성은 사회적 성공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래서 사회가 평등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문맥이 파악이 안되어서 의무교육은 수료하셨는지 궁금하네요

  4. Movelikejaggy 2017.04.01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껏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살아왔으니 이해가 안되겠지
    이제서야 여성들이 모여서 목소리내니까 너넨 왜그렇게 예민해? 라고 광광대는 인간들 역시나 속속들이 등장ㅋ 왜이렇게 성평등이슈에 한남들은 예민하게 구는지 ㅋㅋㅋㅋ

    기존의 가부장적이고 남성위주위 사회를 유지하고싶다는 한국남자들의 숨은 의도 너무 대단하네요 ㅎㅎ

    oecd세계에서 여성이 일하기 좋은나라 순위애서 우리나라 꼴지했구요, 남녀임금격차 심한걸로도 악명높아요 .. 팩트를 원하면 oecd홈피 가서 통계를 보세요

    • 얼씨구 2017.04.02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디 더러운 회사를 다녔는지 모르겠지만 체계를 갖춘 중소기업 수준만 되어도 동일노동에 남녀 임금 격차는 없다.
      하는 일이 다르고 시간이 다르고 책임이 다르겠지.
      가부장적이고 남성 위주의 사회를 유지하고 싶은 남자의 숨은 의도를 어쩌구하는거 보니까 피해의식이 대단히 심각해 보이는데 그냥 본인 능력이나 더 키우는게 어때?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 거기서 여성을 빼고 그냥 일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고 해도 통할까 말까인데 남자는 쏙 빼고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라니... 역차별 하자는거네.
      그냥 같은 일을 같은 시간동안 하고 같은 돈을 받아가겠다는것도 아니고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 ㅋㅋㅋ
      너같은 애들은 그냥 능력이 없는거야.

  5. 지나가다가 2017.04.01 1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ovelikejaggy님께

    대한민국에서 남녀임금격차 많이 심하죠..
    그런데 통계란건 항상 정직한게 아니에요.
    실제로 저런 통계를 내면서 직업군 이런건 다 무시하고 통계를 내기때문에 여성 임금이 남성 임금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어요.
    물론 사회적으로 유리천장 그러한 장벽도 있지요. 하지만 위험하고 소득이 많은 그런 직업에 진출한 여성들이 얼마나 있는지 어떤 직업군에 성비가 어떻게 되는지 다 따져보고 생각해야 된답니다.
    하나의 통계만으로 모든걸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 지나가다2 2017.04.02 0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통계하나만으로 모든걸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만, 직업군을 무시하고 통계를 냈다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어보입니다.
      국회의원 남성1명에 회사의 비정규직 여성1명 이렇게 직군이 엄청나게 차이나도록 표본을 선택하지 않는 한 압도적으로 낮을 수는 없을텐데요.
      소득이 많은직업이 위험한 직업이라는 가정도 섣부른 일반화인 것 같구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위험하고 소득이
      많은 직업이라 함은 어떤게 있는지?
      목숨을 걸고 일하는 소방관도 목숨값에 비하면 소득이란침 적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6. 머루 2017.04.01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성들이 아무리 울고불고 해도 남성들은 손에쥔 사회기득권을 결코 거저 내주지 않습니다. 쟁취하셔야합니다.
    시민들이 몇백년전에 프랑스에서 투쟁을 통해 신민권을받아낸것 처럼 몇십년전에 한국에서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시킨것 처럼 여성들 스스로 남성들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받아내야하는겁니다.
    지금 여성권익이 한국에 비해 훨씬 높다고 하는 서방선진국의 모든 나라가 그렇습니다. 권리=의무=책임 이 세가지가 균형을 이룰때 비로소 여성들의 권익이 상승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려면 용기를내어 남성들의 보호막을 스스로 깨야 합니다. 남성들의 보호막 석애선 절대로 동등함 이라는 권리를 남성으로 부터 받아낼수 없으니까요.,

    • 호두마루 2017.04.02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보호막이란거 IMF 이후로 다 무너진지 오래됬어요. 사회적 보호막이란건 애초에 있지도 않았지만. 남성은 여성을 보호하는게 아니라 위협하고 있죠.
      여성이 깨야할 것은 이미 깨지고 없는 남성들의 보호막이 아니라 견고한 남성 카르텔과 가부장제입니다.

    • ㅎㅁㄴㄹ 2017.04.02 0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희는 보호막 속에서 동등하게 해달라고 한적 없습니다^^!
      오히려 오빠가 허락하는 페미니즘을 하라고 하는 것이 한남들이죠!

    • 지나가다 2017.04.02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두마루 // 사회적 보호막이 없다? 당장 군대랑 경찰만 봐도 그딴소리 못할텐데... 안전하게 보호된 사회 안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는게 뭔지 모르는 인간들이 가지는 모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댓글이구만..
      견고한 남성 카르텔이 어디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있다한들 스스로 깨고 나가봐라. 그 방법은 간단하다. 밖에 나가서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일 하면 된다. 어디 실전은 경험해보지도 못한것 같은데 당장 도시 밖으로만 나가봐도 자기가 얼마나 보호된 사회속에서 살고 있는지 피부로 느껴질텐데 한심스럽다.

  7. 2017.04.01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용된 책도 이 글도 좋네요.
    조직에서 불편을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사회가 바뀌어간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저도 언젠가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03 1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책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를 바꾸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계속 이건 아니라고, 이렇게 해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목소리 내려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

  8. 좋은글 2017.04.02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지만 반드시 수반되어야할 한가지
    신장된 권리만큼 책임을 질것!

    여성이 하기싫은 일은 남자도 하기 싫다.
    힘든일, 어려운일, 더러운일, 의무여서 꼭해야만 하는일..
    젊은 여성중에 위의 4가지 일을 하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
    아직도 남자의 부속물로 만족하는 여자가 많은 이상 과도한 서비스다.

    필요한만큼 얼마든지 목소리를 높여 쟁취해라!
    하지만 취한 권한만큼 책일질줄 아는 사람만 그 권리의 진짜 주인이다.
    다른 여성의 노력으로 '얻어진'권리를 가진자가 책임도 같이 질 수 있을까?

  9. 행인1 2017.04.02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 차지해라. 군대부터 시작해서 하수구 퍼내고 철근 엮고...
    세상 일자리의 적어도 절반은 현장에서 몸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다. 이른바 3D 업종들... 여자들은 도전할 생각도 안해보는.. 아니 그런 일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직업들이지.
    그저 누군가가 힘들게 쌓아올린 후에 안정된 수익구조를 만들어놓으면 세상의 반은 여자이니 저 일자리도 절반은 여자라야 한다는 지극히 정치적인 구호로 남의 밥그릇에 숟가락 올리지 말고 몸으로 뛰고 돈 날려가면서 직접 만든다음에 남자들한테 하나도 주지말고 그냥 니들이 다 차지해라.
    그나저나 같은 논리로 학교 선생의 절반은 남자로 채우자고 하면 찬성할 여자들 몇이나 될까?? ㅋㅋ

  10. mju.ac.kr 2017.04.02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의 글은 이런 의미가 아닐텐데..

    모든것을 이분법적 메카니즘에 맡기자는 의미가 아니라

    보다 낳은 세상을 위해서 남자.여자 역할이 있어서 그에 맞는 입장을 취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생물학적 본성에 따르는 역할구분이 시대적으로 바귀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가되는데..



    같은 남성으로서

    여성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면

    똑같이 이구동성으로 의무병역, 잠수용접공 따위를 이야기 하는데...

    한심한 종자들 같아요

    "그럼 니들이 애 낳아라" 하고 외치는 여성들 이야기 하고 무엇이 다른지요?


    평등이란 절차적 평등의 의미보다는

    상호관계적 평등이 옳지 않을까요 ?

    죤롤스 교수가 이야기한 정의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일반인과 휠체어탄 사람과 100 미터 경주를 할떄

    동일선상에서 출발하는 게 평등이 아니지 않습ㄴ까?


    조금더 배려하고 남자라면 신체적 약자인 여성에게 양보하는게

    남성의 권위를 추락시키나요?




    기자님의 글 잘 보았어요


    그런데 항상 이런글은 여성이 써야 하나요?

    여성이 쓰면 꼭 남성들의 반박글이 되풀이 되는 현상이 수십년 되풀이 되는데...


  11. 슈~~ 2017.04.03 0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린 인>에서 이 문장들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평등한 사회라면 여성이 국가와 기업의 반을 운영하고 남성이 가정의 반을 꾸려나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남자와 여자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서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사회로 나아간다면 린인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는 반듯이 실현 되리라 믿습시다. 현재 한국또한 그러한 사회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수반되어 우리의 의식 또한 계속 변화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의식의 변화라 해서 거창한게 아닙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틀린게 아니라 다르다는것을 인식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다른 생각을 갖는게 당연한거고, 다른 습관과 다른 삶을 방식으로 살아가는게 당연 합니다. 그들이 틀린게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거...인격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 풍토가 조성된다면 필자의 글 또한 무의미해지는 사회...이런게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03 1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가 억압하는 것은 여성만이 아니죠. 남성의 선택권도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더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서로를 이해하며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12. 여자 2017.04.13 0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장에선 이미 기계다루고 회의장소설지 등 남자와 동등한 업무를 맡고있다 단지 힘쓰는일에서 힘이 남자보단 모자라 도움 받긴하지만. . 그러나 가정에서는 여전히 집안일 애보는 일 시댁눈치보며 잡일 등 전부 내차지다. 다른 남자들과 비슷한일을하고 가면 나도 힘들어서 눕고싶고 쉬고싶은데 다시 밤일을 하는 기분이다. 회식도 남자들처럼 새벽끝까지 함께 즐겨보고 싶으나 남들 눈엔 가정은? 아이는? 먼저들 걱정해준다 그럼 당신네의 아이와 가정은 어떻고? 암튼 늦게가면 이혼감이라 말하는 남자들. . 여자라서 집에서 밥하고 설거지하고아이보고 새벽마다 깨서 이불덮어주고 이럴려고 결혼해서 힘들려고한것은 아닌데 단지 남자보다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이런대접과 더 많은 일을 해야한다는 것에 화가난다. 힘만 강했더라면 못할것이 뭐가있나 용접? 왜 못하나 할 수있다. 다만 가정 일을 분담해서 피곤에 안찌들면 더한것도 하겠지. . 우선 구조적으로 여잔 힘이 약하고 남잔 섬세한면과 멀티가 안되는 것에 서로 도우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빨래도 세탁기가 하는데 세탁물 세탁기에 넣고 옷 널고 개키고 뭐가 어려워서 안하는가 그정도는 일이 아닌가? 가끔이야 아무렇지도 안겠지 티도 안나는 일 매일해보면 그것도 귀찮은 노동인거다 물론 힘이 필요한 벽돌 나르기등 힘이 안되서 남자10장 옮길때 여잔 5장 옮겨서 일의 효율이 없다고하겠지 하지만 그 일을 여잔 못한다하지 말길 악으로 깡으로 할수 있다

  13. 생각하는 2017.05.11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들이 노력해 얻어낸 것이 아니면서 남자들 중에서는 어떤 권리가 자신 것들이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겐 그럼 넌 그것들을 누리기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고, 처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무언가를 받아낸 사람이 너를 무시하면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고 말해 주세요. 의외로 자신이 몰랐던 것을 면전에서 지적당하면 정말 생각머리가 없지 않고서야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영, 집안일과 육아는 절반씩 분배가 안 돼. 나도 둘째 낳고 남편이랑 정말 많이 싸웠는데 결국 해결 방법은 사람을 쓰는 거였어.”


한 선배가 해준 말이었다. 아이 한 명을 낳고 복직한 2014년, 하루하루가 진이 빠질 때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는 아이 친정엄마께 맡기고 출근하고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재워야 하는 세 살 아기가 있었다. 아이는 하루에 옷을 두세 번씩 갈아입어 빨래는 산처럼 쌓이는데 평일에는 빨래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정엄마가 아이 빨래를 해주셔서 겨우겨우 일상이 유지됐다. 청소, 아이 반찬, 어른 빨래, 분리수거 등등. 무엇 하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자 선배들의 빳빳한 와이셔츠를 보면 누가 다려줬을까 생각했다. 부부의 역할 분담이 전형적인 남녀의 성역할로 분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선배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고 난 그들에게 이해받기 어렵겠다 피해의식이 생기기도 했다.

 

두 번째 휴직. 아이가 어릴수록 집안일의 양도 많아지는데 아이가 둘이 되니 제곱이 되는 느낌이다. 아이 둘을 밥만 먹였는데도 진이 빠지는데 그때마다 서른이 되어 결혼할 때까지 밥을 차려주신 친정엄마의 노고가 떠오른다. 반찬 투정을 하면 왜 엄마가 화를 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아 이제야...

 

아이가 둘이니 빨래는 이틀에 한 번씩 돌린다. 세탁기가 다 돌아가면 널고 마르면 접고. 청소를 하고 소파 밑에 들어간 아이 장난감들을 꺼내 정리하고 아~주 가끔 물걸레질을 한다. 큰아이 반찬을 만들어야 하고 작은아이 이유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내 밥은 늘 뒷전이다. 왜 엄마들은 남은 밥을 먹는지 아는가. 자기 밥을 먹을 시간이 없어서다.

 

최근 유치원 친구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집안일은 반반씩 안 돼. 사람을 쓰는 것도 또다른 스트레스야. 결국 방법은 하나야.” “뭔데?” “기계를 들이는 것.”

 

그 말을 듣고 물개박수를 쳤다. 정말 여성 해방은 가전제품이 가져다줬구나. 우리 둘은 새로 나온 빨래 건조기를 꼭 사야 한다며 맞장구쳤다. 마침 최근 신문 경제면에는 날개 돋친 듯 팔리는지 건조기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는 사진이 실렸고 다른 기업도 건조기 생산을 시작했다는 기사도 실렸다. 역시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 식기세척기, 빨래 건조기, 로봇청소기는 복직 후 꼭 구매해야 할 가사노동 기계들이다.


본인이 먹을 이유식을 보는 둘째. 

 

집안일... 해도 태가 나지 않는다고 다들 말한다. 매일 해야하는 반복된 작업이지만 안 하면 생활이 불편해지는 일. 휴직하고 주부로 지내며 음식을 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그동안 내가 집안일의 중요성을 얼마나 몰랐는지 깨닫는다. 항상 가사노동에 대해 생각하면 왜 분배가 절반씩 안 되는가에 분노에 집중했었는데(;;;;) 요즘 집안일에 제법 흥미를 느끼게 됐다. 내가 인터넷 레시피를 따라 해도 제법 맛이 나올 때, 그걸 가족들이 맛있게 먹을 때, 음악을 틀어놓고 경쾌하게 설거지를 하고 그릇이 깨끗해지는 것을 볼 때, 시금치를 생협에서 마트보다 싸게 살 때, 빨래를 가지런히 접어놓을 때 같이 단정해지는 기분을 느낄 때 등.

 

그런데 역시 그런 경쾌하고 단정한 마음을 한 번에 후려치는 말들이 있다. 가사노동과 육아를 전담하는 전업맘며느리에게 우리 며느리 놀잖아. 아들만 불쌍해 죽겠어같은 말들. 왜 가사노동이 노는 것인가! 육아가 어찌 노는 것인가! 내가 해본 어떤 일보다 힘든데 말이다. 남편도 훈련소 때보다 힘들다고 했다.

 

그러다 문득 집안일이 우라까이 기사’(타사보다 보도가 늦어 타사 기사를 베껴쓰는 것) 쓰는 것 같다는 들었다. 반복되는 일이라서가 아니라 인정받는일이 아니라서. 그런데 매일매일 우라까이 기사를 쓴다면, 그래서 매일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으로 일한다면 그 일상은 어떨까. 사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을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왜 근데 집안일과 육아는 사회적으로 대단하다고 인정해주지 않는가. 인정하는 순간 돈을 지불해야 해서 아닌가. 워킹맘들은 가사 노동 때문에 사람을 고용하거나 기계를 사지만 가사노동에 돈을 쓸 것을 결정하는 것도 결국 여자다!

 

친정엄마는 스물네 살 결혼하면서부터 가사노동을 직업으로 삼았으니 벌써 36년째다. 엄마가 음식을 만드시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깨달았다. 집안일도 창조적으로 할 수 있다! 엄마는 밥을 차리면서 마구잡이로 음식을 놓지 않으신다. 식으면 안 되는 음식, 양념을 마지막에 가미해야 하는 음식을 다 구분하고 순서대로 놓으신다. 심지어 빨래도 엄마가 접으면 훨씬 깔끔하고 청소도 엄마가 하면 훨씬 깨끗하다!! 숙련 노동의 힘이겠지. 예전엔 엄마 그냥 대충해요한 적도 많았는데 이제 그런 말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엄마는 엄마의 노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인데 누가 감히 대충하라고 하는가.

 

그러나 한편 두 아이를 기르면서 내가 인생 어느 때보다 많이 웃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엄마의 삶을 한편 부러워하게 된다. 이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한껏 보지는 못하게 될 내 상황이 과연 좋은 건가 되묻는 나를 볼 때 왜 아무도 내게 육아와 집안일이 이렇게 귀하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나 싶다. 이 귀한 일을 누가 폄하하는가.


주꾸미가 먹고 싶어서 주꾸미볶음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어릴 때부터 집안일이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집안일 지능을 길러줘야 한다. 신혼 때 빨래하고 마른 수건을 접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결혼이라는 형식으로 독립해서 제대로된 집안일은 처음이었다. 이런 사소한 집안일도 엄마가 다 해주셨다는 걸 깨닫고선 엄마가 그립고 미안하고 보고싶어서 자주 울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대학, 직장까지 편하게 집에서 다니면서 집안일에는 거의 손대지 않았다. 엄마는 상견례 자리에서 우리 애가 아무것도 할줄 몰라요라는 의례적인 인사를 진심으로 했고 시어머니는 요즘 다 그렇죠. 같이 살아가며 배우면 되죠라고 하셨다.

 

다행인 건 남편이 신혼 초 나보다 집안일 지능이 높았다는 것이었다. 스무살 때 서울에 올라와서 그때부터 자취를 했던 남편은 김치찌개, 떡볶이를 만들 줄 아는 남자였다. 떡볶이를 얻어먹으면서 중고등학교 시절 청소와 설거지를 아들의 일로 규정하셨던 예비 시어머니를 감사하게 생각했다. 남편의 집안일 지능은 어릴 때부터 형성된 것이었다. 일하셨던 시어머니는 남편이 집안일을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셨다. 지금도 내게 경상이랑 같이 해라고 말씀해주신다. 역설적으로 여자인 나는 집안일을 거의 안 해봐서 할 줄 몰랐는데 이것만 봐도 집안일 지능이 여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다.

 

나영석 피디의 <신혼일기>에서 구혜선 안재현 부부는 가사노동 문제로 다툰다. 신혼 초 가사노동을 분배하면서 벌이는 한국 부부의 전형적인 말다툼을 연예인들도 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꾼 남편보다는 걸레질 잘하는 남편이 최고지.’

 

한 출입처에서 일할 때였다. 진보적으로 알려진 한 인사는 인권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잦았다. 남자 직원들만 회식 자리에서 모아 중요 의사결정을 하는 등. 오히려 내가 정치적으로 비판했던 보수적인 인사는 집안일을 잘 하는 남편으로 유명했다. 그때 타사 기자와 나눈 얘기. “목소리 높여 진보와 인권을 외치는 가부장 남자와 보수적이나 가사노동에 협조적인 남자, 누가 나은가?”

 

잘 모르겠다. 남편만 봐도 한국 남자 모두 집안일 지능이 낮은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부모, 주로 엄마가 어떻게 아들을 키웠는가가 집안일 지능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론은 아들들을 잘 키우자. 집안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릴때부터 가르치자. 아들만 둘 낳은 내가 귀담아 실천해야 할 말. 그래서 두진이는 빨래를 자기 손으로 빨래통에 가져다놓고 다먹은 그릇을 개수통에 가져다놓는 집안일을 시작했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7.03.22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샘맘 2017.03.25 0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와닿는 글이네요.나이41에출산해서 두돌안된 남자아이와 초등 큰딸을 챙기는게 너무 버겁기도하고 남성우월주의 남편을 두고 같이 한평생을 살아야할 엄두가 나지않아 어제 한바탕 뒤집었는데 님의 글을 보며 맘 달래고가네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3.28 2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남성우월주의 남편 ㅠㅠ 뭐라 위로드려야할지 모르겠지만... 가끔 남편이 집안일 센쓰가 정말 떨어질 때!(신혼 땐 저보다 앞서 있던 지능이 왜 진화되지 않는지.... 저는 하나도 할줄 몰랐지만 급 진화됐습니다 한국 여자의 팔자인가요ㅠㅠ) 저는 아들을 잘 키워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합니다... 별로 위로가 되는 댓글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힘내셔요.....!

  3. Sy 2017.04.02 0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하고 아이낳고 나서 제가 매일 했던 생각을 정말 똑같이 하셨네요, 눈물날 정도로 공감합니다:). 글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4. 진재모맘 2017.04.23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오빠 둘 있는 막내딸인데
    어려서도 친정엄마가 "시집 가면 다 해!"하고 안시키셨고 오빠들은 "이혼사유야"라며 양말 옷 뒤집어 벗지 않기 세면대 물기닦기 등 엄하게 시키셨더랬어요
    가사 육아
    세상 제일 힘든 일이에요 정답도 없구요
    지금도 친정 오빠 둘은 집에서 청소기 돌리고 집안일을 많이 해요 저는 어린 나이에 일찍 결혼해서 시엄마가 지금도 반찬 다 해주시고요~
    팔자가 있다지만 친정엄마가 현명하셨단 생각이 들어요
    저도 두 아들 엄하게 훈련시키고 있답니다^^

"아들 둘을 키우면 욕을 달고 살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들 둘을 낳게 되자 가끔 이 말이 떠오르는데... 어제 오늘 '샤우팅'의 연속이어서 더 그렇다(아직 '이눔시키' 정도의 욕(?)만 하고 있다는 게 다행인 지점). 설 연휴가 지났고 결국 병이 났다. 오늘 모유수유 중이어도 먹을 수 있는 약, 타이레놀을 먹고 3시간을 자고나니 좀 나았다. 둘째 아이를 낳고 벌써 네번째다. 몸살, 감기, 두통 등. 일할 때는 이렇게 아픈 적이 없었다. 체력 하나는 믿을만 했는데. 왜 아팠는지 생각해보다가 결국 체력 방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휴직 중인 내 하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오전 8시> 기상. 남편과 내가 먹을 야채주스를 급히 갈아 마시고 50개월 아들 아침을 차리고 8개월 아들 이유식을 데운다. (그 사이 둘째는 칭얼대고 첫째는 '엄마 이것 좀 해줘, 저것 좀 해주세요' 요구사항을 외친다) 


<오전 8시30분> 애들 아침 먹이기. 내 주스는 거의 흡입하지만 애들 밥 먹이기는 30분 넘게 걸린다. 아이들은 밥먹는데 집중을 하지 못한다. 밥상에 앉혀놓은 첫째는 둘째 이유식 먹이는 사이에 어딘가로 사라지고 "어디 갔어! 밥 먹을 때는 밥먹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랬지!" 1차 샤우팅. 첫째는 늘 놀고싶어서 밥먹는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둘째도 그 사이 부스터에서 탈출하고 싶다며 칭얼댄다. 새로운 장난감을 부스터에 놓아줘야 할 타이밍. 급히 주변 장난감을 살펴보고 아무거나 하나 집어(그러나 둘째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놔준다. 그 사이 입을 벌릴 때마다 이유식을 먹인다(아니 집어넣는다). 그러는 사이 첫째는 입 안의 밥을 씹지 않고 물고 있다. "물고 있지 말고 씹으라고 했지!" 2차 샤우팅..... 어찌어찌 밥을 다 먹이고 설거지통에 애들 밥그릇을 담가놓는다. 설거지통이 쌓이기 시작한다.


<오전 9시> 이유식을 만들어야 하는 날이다. 고구마브로콜리치즈죽을 만들기로 했다. 고구마, 브로콜리를 계량해서 준비하고 편수냄비에 물을 데운다. 준비한 고구마, 브로콜리를 데치거나 삶는다. 브로콜리를 먼저 꺼내면 된다. 그 사이 첫째 블럭을 둘째가 만져서 다 부서졌다. 첫째가 둘째 머리를 밀어 넘어뜨렸다. "동생 밀지 말라 그랬지!" 3차 샤우팅. 첫째를 붙잡고 왜 동생을 밀면 안되는지 설명한다. 그 사이 편수냄비 속 고구마 담긴 물이 끓는다. 부엌으로 달려간다. 고구마를 꺼내 브로콜리와 함께 미니믹서기에 살짝 간다(도저히 다지는 건 못하겠다). 편수냄비 속 야채 삶은 물은 컵에 부어놓고 불려놓은 이유식 중기 쌀을 냄비에 살짝 끓인다. 쌀이 끓으면 믹서기에 담긴 고구마+브로콜리를 붓고 컵에 부어놓은 야채 삶은 물까지 부어 끓인다. 첫째와 둘째 장난감 쟁탈전은 계속된다. 소리지리는 것도 포기한다. 대신 가끔 노려봐준다. 둘째는 아직 모르지만 첫째는 엄마 눈빛을 감지하고 잠시 잠잠해진다. 편수냄비 속 재료들이 끓으면 불을 줄여 5분간 더 끓인다. 1분 남았을 때 치즈를 넣어 섞는다. 그리고 글라스락 210ml 이유식 용기 4개를 꺼내 하나씩 담는다. 이유식 4일치 완성. 지금은 이유식 중기라 하루에 두번 먹인다. 고기를 주재료로 한 이유식 + 야채 이유식. 하루 두번 씩이니까 일주일이면 14개 이유식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두번씩 4가지 메뉴를 만들고 있다. 이제 곧 9개월, 이유식 후기로 들어가면 하루 3번 이유식을 먹어서 21개 이유식이 필요하고 6가지 메뉴가 필요하다. 그래도 둘째라 훨씬 수월하다. 예전보다 남은 재료를 덜 버린다. 딱 그만큼 요령이 생겼다.


<오전 10시> 소아과 갈 준비. 둘째가 모세기관지염이다. 첫째 목감기에 옮았는데 어려서인지 기관지염까지 왔다. 목에서 쇳소리가 나는데 짠하지만 보채니까 엄마도 너무 힘들다. 소아과에 가려면 애들 옷을 입혀야 한다. "아 언제쯤 혼자 옷 입을래"라는 말이 튀어나오지만 아무도 대꾸를 해주지 않는다. 애들 옷 입힐 때는 순서가 중요하다. 첫째를 먼저 입혀야 둘째를 입힌 후 바로 유모차를 태울 수 있다. 둘째를 먼저 입혀놓고 방치하면 울어버린다. 둘째는 손발이 나오지 않는 우주복을 입기 때문에 옷을 답답해한다. 내복만 입은 첫째 양말부터 신긴다. 양말을 신긴 뒤에 기모바지를 입혀야 내복이 속에서 안 올라간다. 양말을 신으라고 던져주고(?) 나부터 옷을 입는다. 첫째가 그래도 양말을 혼자 신고 바지를 혼자 입을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나... 그 와중에 첫째는 골라준 바지가 맘에 안든다고 타박한다. "아!" 혈압이 오르지만 화내봤자 소용없다. 자기 스타일을 고집할 수 있을 만큼 컸다는 얘기다. 말을 잘 들어주는 민주적인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화가난다 화가난다. 그사이 둘째는 칭얼댄다. 요즘 아파서 부쩍 칭얼대는 주기가 짧아졌다. 그러나 다 받아줄 수가 없다. 첫째 상의를 대충 입혀준 뒤 패딩을 입힌다. 아이들은 보온이 중요하다. 목도리, 마스크, 모자까지 입혀주고(?) 장갑은 스스로 하라고 준다. 그러면 둘째 차례. 아직 걷지 못하는 8개월 둘째 양말을 얼른 신기고 우주복을 입혀 유모차까지 태웠다. 10분도 안 걸리는 일이지만 너무 힘들다. 이미 하루 에너지 다 소진된 느낌.


<오전 10시10분> 집을 나선다. 눈이 온 뒤로 이면도로는 길이 미끄러워서 유모차가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첫째가 넘어지지 않게 계속 주의를 준다. "그쪽은 얼음이 얼었으니까 이쪽으로 와 두진아" 그 말을 열번쯤 하니 10분 거리의 소아과에 도착했다. 그 사이 첫째는 자기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고 단 한번 칭얼댔다. 오늘은 매우 양호하다. 게다가 웬일인지 소아과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바로 진료를 봤다. 병원에 오래 있는 건 힘든 일이다. 그만큼 아이들이 병원에서 감기가 심해질 확률도 높아진다. 선생님은 두진이 보고 먼저 진료를 보자고 했지만 "이준이부터 하기로 했잖아"라며 갑자기 떼를 쓴다. 언제 이준이부터 하기로 했지. 그런 적이 없는데. 황당하지만 참는다. 아이하고는 싸움이 되지 않는다. 의견이 다르다고 협상하고 논쟁하는 건 불가능하다. 급히 둘째부터 진료를 본다. 청진기를 배에 대자마자 울기 시작한다. 버둥대는 아이 두 손을 꼭 잡고 의사선생님이 목, 귀를 살펴보실 수 있도록 힘을 준다. 그와중에 첫째는 "이준아 병원에서는 울면 안돼" 참견한다. 너도 얼마나 울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겨우 둘째 진료를 보고 첫째를 앉힌다. 둘째 모세기관지염이 아직 다 낫지 않아 호흡기치료를 해야 한다고 한다. 아... 5분간 코와 입을 둥그런 기구로 가리고 있는 치료다. 8개월짜리는 5분 내내 버둥댄다. "이준아 호흡기 치료 잘하라 그랬지" 첫째는 엄마 말을 따라한다. 창피하다. 겨우겨우 끝내고 처방전을 받아 1층 약국으로 내려간다. 약을 기다리며 시계를 보니 겨우 10시40분. 이미 하루 에너지를 다 썼다. 소아과만 안 가도 30%는 덜 힘들 거다. 아이가 아프면 그만큼 더 체력이 소진된다. 


<오전 11시> 집에 돌아왔다. 거실과 작은 방은 장난감에 뒤덮여있고 부엌도 엉망이다. 웬만하면 청소를 미루고 싶지만 청소기만 대충 돌린게 며칠째다. 둘째 기관지염 생각을 하니 먼지도 좀 청소해줘야 할 것 같다. 게다가 둘째가 집으로 돌아오는 유모차 안에서 잠들었다. 청소 적기다. 놓칠 수 없다. 얼른 거실 매트 위에 깔려있는 장난감을 정리한다. 작은 방에 깔려있는 레고도 레고정리함에 담는다. 아!!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 4차 샤우팅. 엄마가 어린 시절 하던 레퍼토리를 똑같이 한다. 첫째는 듣는둥마는둥 옆에서 더 어지른다. 포기다. 어지르는 것보다 더 빨리 치우면 된다. 대충 장난감을 다 밀어넣고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청소기 소리가 나자 첫째가 본인의 장난감 청소기를 들고온다. 도와주기 바라지 않으니 방해만 하지마,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렇게 집안일을 해봐야 나중에 시킬 수 있지 싶어서 호응해준다. "아 우리 두진이 잘하네~" 안방, 거실, 작은방, 부엌 바닥을 청소기로 민다. 다음은 물걸레질.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는 물걸레질. 안하고 싶다. 그러나 이미 걸레를 잡았다. 기관지염이잖아. 물에 적셨다. 그리고 짠다. 하나만 가지고 나오니 첫째가 자기 것도 달라고 야단이다. 그냥 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하나 더 적셔서 준다. 안방, 거실, 부엌, 작은 방 순서대로 걸레질을 한다. 집이 좁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와중에 둘째가 깼다. 운다.


<오전 11시30분> 둘째 수유를 하고 아기띠로 업었다. 내려놓으면 또 첫째랑 장난감 다툼을 하고 중재를 해야 하니 이럴 땐 분리를 시키는 게 낫다. 업고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한다. 허리가 아프다. 그와중에 첫째는 "엄마, 레고 기차 만들고 싶어"라 말한다. "엄마 설거지해야 하니까 좀 기다려" 무마한다. 부엌 정리를 끝내니 정오가 됐다. TV 뉴스를 켠다. 드디어 소파에 앉았다.


<오후 12시30분> 그러나 금방 점심 시간이다. 첫째는 방학이 6주다. 병설유치원 로또를 내 손으로 뽑았지만 방학이 6주는 정말... 너무 힘들다. 왜 어릴 때 엄마가 동생과 내 방학을 힘들어했는지 이제 알겠다. 유치원 다닐 때는 그래도 점심은 먹고 오는데. 점심을 준비해야 한다. "뭐 먹을래? 계란밥, 치킨너겟, 주먹주먹" 선택지를 주면 첫째는 80% 계란밥을 선택한다. 계란후라이를 하면서 치킨너겟도 튀긴다. 간장과 참기름, 계란후라이를 밥에 비벼서 치킨너겟과 김치, 밑반찬과 먹인다. 벌써 혼자 서기 시작한 둘째는 열심히 기어 화장실, 작은방, 안방, 베란다 등등을 넘본다. 첫째 밥을 먹이면서 계속 열려있는 문을 닫는다. 문을 닫을 때마다 둘째가 칭얼댄다. 그러나 어쩔 수없어 지금은 형 밥을 먹여야해. 그러나 첫째는 또 밥을 물고 있는다. "엄마가 밥 물고 있지 말라 그랬지!" 6차 샤우팅.... 


<오후 2시> 밥먹고 잠시 쉬었으나 빨래를 해야 하는 날이다. 아기가 어리면 빨래 양도 많다. 대소변을 아직 못 가리니 옷을 버릴 때도 많고(기저귀가 샐 때도 많다......양이 많아서.....) 체온이 조절이 잘 안되니 땀도 많아 자주 갈아입는다. 빨래는 거의 이틀에 한 번은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빨래는 세탁기가 한다. 빨래가 돌아가기 시작하니 소파에 잠시 앉자 했지만 이제부터 '같이 놀자' 시간이다. 책 읽어달라고 가져오는 첫째, 레고 만들어달라고 가져오는 첫째, 블럭 같이 만들자는 첫째. 둘째 때문에 육아휴직을 했는데 둘째는 모유수유만 하고 있는 느낌이고 하루의 80%를 첫째를 위해 쓰는 것 같다. 놀이에 집중하고 싶지만 둘째는 계속 사고를 친다. 형아랑 책을 읽고 있으면 부엌으로 기어가 놀다가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울고. 그러면 데려와서 토닥토닥해주고. 형아랑 블럭 만들고 있으면 옆에서 방해하다가 형아한테 한대 맞고 울고. 그럼 형아를 또 훈육해야 한다. 중재와 훈육, 협박의 연속이다.


<오후 3시> 빨래가 다 됐다. 다리에 매달리는 둘째와 '놀자' 공격을 펼치는 첫째를 어찌어찌 막고 다 널었다. 그런데 둘째가 운다. 졸린가보다. 귀를 긁는다. 아기띠로 업었다. 아니 근데 소파에 이건 뭐지. 점심 먹다가 흘렸나. 아! 똥이다!!! 기저귀가 또 샜나보다. 아니 뭔 똥을 이렇게 많이 눴어 말하는 찰나 아!!!!!!!!!!!!!!!!!!!!!!!!!!! 아기띠에도 묻었을 것이다. 좀전에 업었으니까. 바로 애를 내려놓으니 역시나 범벅이 돼 있다. 정말 울고 싶다. 울고 싶은 건 나인데 내려놨다고 둘째가 운다. 얼릉 옷을 다 벗기고 기저귀를 갈았다. 안아주지 않고 옷을 입힌다고 계속 버둥대며 운다. "옷을 입어야지 안아주지!!!!!!!!!" 7차 샤우팅... 겨우 옷을 다 입히고 안았다. 그때 갑자기 기침을 하는 둘째. 기관지염 때문에 기침이 잦다. 근데... 기침 끝에 먹은 모유를 다 뱉어냈다. 안고 있는 내 옷과 본인 옷이 다 젖었다. "토하면 어떡해!!!!!!!!!!!" 8차 샤우팅.... 이제 정말 눈물이 나온다. 옷을 다시 갈아입혀야 한다. 내 옷 먼저 갈아입고 울면서 버둥대고 있는 둘째 옷을 갈아입힌다. 소리소리 운다. 그래 옷을 갈아입어야 안아주지. 이제 포기 상태다. 포대기랑 소파 패드를 빨아야 하는데 하는데...


동생에게 발 내미는 현장 포착. 이미 둘째는 울음보 터졌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겨우 3시까지 밖에 적지 않았는데 양이 저 정도다. 저녁에는 이유식과 밥을 또다시 먹였고 목욕도 시켰으며 잠도 재웠다. 일할 때보다 퇴근이 더 늦다. 혼자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입지도 못하는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전쟁이다.  


첫째 휴직 중에 남편이 퇴근할 시간에 맞춰 매일 버스 정류장 앞에서 기다렸다. 혼자서 하루종일 너무 힘들었고 말도 못하는 아이랑 하루종일 있는 것은 우울 그 자체였다. 가끔 남편이 예고 없이 늦는 날은 정말 너무 화가 났다. 둘째 휴직 후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말 못하는 아기와 단둘이 있다는 고립감은 이제 말을 잘하는 첫째와 근처에 사시는 친정엄마 덕분에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 아이가 둘이 됐다는 점이다. 체력이 세네배가 필요한 것 같다. 청소, 빨래, 밥 등은 2배가 될 줄 알았지만 첫째와의 상호작용, 첫째와 둘째 갈등 조정을 계산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은 것도, 모유수유를 할 수 있는 것도 나지만 나는 자주 남편이 육아에 더 맞는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육아는 매일 반복되는 일을 지치지 않고 무던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매일 새로운 일을 찾고 넓은 공간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야 행복해지는 전형적인 외향형 인간이다. 그런데 육아는 그 모든 것을 제한한다. 집에 갇혀(?) 있어야 하며 주로 만나는 사람은(99%) 50개월, 8개월 아들 둘이다. (그나마 내 외로움을 줄여주시는 친정엄마께 무한 감사를....) 남편은 내향형 인간에다 참을성이 있다. 반복되는 일을 나보다 잘 견디며 괴로움을 덜 느끼는 것 같다. 모유수유가 아니었다면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본다.


옛날 사람들도 '애를 보느니 밭을 매겠다'라고 했다며 복직한 아는 엄마들은 말한다. 육아보다 일이 덜 힘들다고. 일이 노동강도가 약해서가 아니다. 일이 육아보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크기 때문이다. 육아는 내 의지로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최근 복직한 한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밥을 내 맘대로 먹고 커피를 내 맘대로 마시는데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행복했어요." 그렇다. 육아는 밥먹는 것, 자고 싶은 것, 쉬고 싶은 것과 같은 기본적 욕구를 제한한다. 그래서 더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일테다.


특히 24개월 이하 아이들은. 내가 육아휴직 2년(남녀 1년씩)을 주장하는 이유다. 첫 1년은 모유수유하는 엄마가, 그다음 1년은 아빠가 하면 완벽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24개월만 지나면 조금 사람이 된다. 말도 한다!! 


그러니 더 걱정이다. 말도 못하는 돌 갓 지난 둘째와 자기 주장이 점점 더 강해지는 첫째를 친정엄마에게 맡긴다는 것이. 젊은 내가 봐도 병이 나는데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우리 엄마는 얼마나 힘들까. 아프시면 어쩌나. 왜 우리 엄마는 할머니가 되어도 육아가 끝나지 않는가. 


빡센 육아를 부모에게 허하라. 특히 체력이 좋은 아빠에게 허하라. 아빠들의 체력을 직장에서 다 쓰지 않도록 남겨달라. 부디.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엄마, 회사 내년 말고 낸중에 가면 안돼?"

 

두진이는 이제 우리 나이로 6세가 되었다. 제법 논리적인 언어 구사를 한다. 오늘은 동생이 물을 쏟아 엄마가 짜증을 내니(;;;;) "엄마 화내면 안되는거야.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라고 말하며 나를 당황시켰다. 그런 두진이가 자주 하는 말.

 

"내년 말고 낸중에."

 

가끔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두진이에게 이야기를 해줬다.

 

"엄마가 지금 잠깐 너희를 돌보려고 회사를 안 가는 거고 1년이 지나면 다시 회사에 가야해."

 

시간 개념이 정확치 않은 두진이는 1년, 내년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그저 엄마가 회사를 다시 가야 한다는 것이 싫을 뿐.

 

"엄마 내년에는 회사를 가야 해."

 

그때부터 두진이는 계속 말했다.

 

"엄마, 회사 내년 말고 낸중에 가면 안돼?"

 

'낸중에'는 구미 할머니한테 배운 사투리다. 나중에라는 뜻. 어린 마음에는 '내년'보다 '나중'이 훨씬 먼 일로 느껴지는 것일테다. 그때마다 낸중에라고 말하는 게 너무 웃겨서 막 웃으면서 "내년은 아직 많이 남았어. 나중보다 내년이 더 먼거야~"라고 말했지만 두진이 입장에서는 무슨 말인지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새해 달력이 생기자 두진이와 함께 8월 15일에 동그라미를 쳤다. 내 복직 날짜다.

 

그리고 설명을 해줬다.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 엄마 복직 날짜가 다가오는 거라고. 금방 울듯하는 두진. 그래도 난 미리 알려주는 게 닥쳐서 알려주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혼자서 (속으로) 합리화했다.

 

처음으로 킥보드타던 날, 좌절한 두진

 

두진이를 낳은 후 1년이 지나고 복직하기 직전 어린이집에 맡겼던 날이었다. 아직도 생생하다. 어린이집 적응 훈련을 한다고 갓 돌이 지난 10kg의 아이를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곁에 놓고 나온 날. 어린이집 현관문을 닫고 나오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이는 잘 있을 것이라고, 불과 한 시간 후에 다시 데리러 올 것이라고, 더 일찍 어린이집에 오는 아이들도 많다고 자기 위안을 위안을 했지만 떨어지는 눈물을 막을 순 없었다.

 

엄마 옆에 더 있고 싶어 하는 아이를 떼놓고 출근하던 복직 적응기. 아이를 돌봐주시던 친정엄마도, 출근하는 나도, 엄마랑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도 아침마다 눈물바람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우는 아이의 소리를 들을 땐 '아 회사에 늦는다고 말해볼까', '아 지각하더라도 한번 안아주고 갈까', '아냐, 적응해야지 어쩔 수 없어'의 반복이었다. 엄살부리는 걸 싫어한다며 짐짓 태연한 척 하며 출근했지만 늘 마음은 요동치는 바다같았다. 어떨 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고 "아이는 누구한테 맡겼어?"라고 안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어린이집과 친정엄마요"라고 대답하면서도 괜히 마음속에 칼날이 서기도 했다.

 

누구 잘못이 아닌데 괜히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제일 괴로웠다. 아이를 낳아놓고 방치한 것만 같은 기분, 아이를 뱃속에 품었던 내가 그 모든 걸 떠안아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뉘앙스를 느끼면 괜히 분노했다. 그러면서도 뱃속에 있던 아이를 제대로 품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면 내 일상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느꼈고 다른 삶을 상상하며 자주 도피했다. 친정엄마에게도,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제대로된 역할행동을 해내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면 괴로웠고 왜 내게 이런 많은 일들이 부여돼 있나 생각이 들면 억울했다. 회사에서라도 욕먹지 말아야 한다는 자기 세뇌는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자주 울었고 자주 화를 냈다.

 

또다시 복직을 해야 한다. 이제는 다리에 매달릴 아이가 둘이다. 게다가 한 명은 자신의 마음을 논리정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두진이는 36개월까지 일주일 두세번쯤 깨서 한 시간을 울었다. 무서운 꿈을 꾼 건지, 무엇에 놀란 건지 표현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도대체 왜 그러니" 어르고 달랬다가 화를 냈다가 새벽 세네시가 된 것을 보면 '내일 출근은 어쩌나'하며 아침을 맞기도 여러번.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와의 분리에 대한 공포와 상처를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해결하려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는 그 마음을 말로 표현하겠지. 두렵다.

 

이제 육아휴직 기간이 절반 남았다. 지난 8개월, 아이를 옆에서 키운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됐다. 아이의 밥을 차리기 위해 반찬을 하고 아이가 책을 가져오면 읽어주고 아이가 종이접기책을 가져오면 같이 종이접기를 하고 아이가 졸려하면 재워주고. 둘째가 첫째 장난감을 망가뜨리면 중재하고 또 혼내기도 하고. 아침 먹고 이유식 만들고 조금 놀다가 또 점심 먹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또 저녁 먹고 목욕시키고 재울 준비하고 재우면 하루가 끝난다. '아 언제 이렇게 하루가 금방 갔지' 싶지만 아이와 살을 부대고 안고 뽀뽀하고 '사랑해' 귓속말을 하는 순간순간은 정말 행복하다. 어떤 남자랑 이런 연애를 해봤을까 싶을 정도로.

 

나도 나지만 아이가 행복해하는 게 눈에 보인다. 하루에도 몇번씩 "엄마가 좋아", "엄마 사랑해", "엄마랑 노니까 재밌어"를 말하는 아이다. 한번은 회사 다닐 때 입었던 패딩을 입으니 표정이 어두워진다. "엄마 회사가는거야?" 아이는 내가 회사 가던 풍경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는 것일테다.

 

그런데 복직하면 이 행복을 아이가 잃어야 한다. 아이는 내 복직 후 일상을 다시 적응할 수 있을까. 첫째는 엄마와 하루종일 놀다가 밤에만, 주말에만 놀아야 한다는 것에 적응할 수 있을까. 둘째는 첫째처럼 무사히 어린이집에 적응할 수 있을까.

 

아마 나는 또 복직 후 엘리베이터 앞에서 울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엄마, 회사 내년 말고 낸중에 가면 안돼?"라는 말이 귀에 둥둥 울리겠지. 괜찮다고, 아이들은 마을이 키우는 것이라고, 누구보다 든든한 친정엄마가 나보다 아이들을 다 잘 봐주실 것이라고 말해도, 아이들과 내가 지금처럼 오래 함께 할 시간은 또 오기 힘들 것이다. 그것이 슬프다. 아이들이 이렇게 엄마아빠를 필요로 하는 시간은 짧은데. 이렇게 몸으로 부때껴서 안아주고 업어줘야 하는 시간은 짧은데. 왜 나는 너희들을 이렇게 빨리 두고 나가야 하는 거니.

 

그러면서도 다시 일할 것이 걱정된다. 회사 일에 적응하고 또 돌아와서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그리고 내일 발제를 걱정하는 삶. 주말에는 주중에 부모 품이 고팠을 아이들이 매달릴 것이다. 나를 위해 쉬는 시간은 이제 사치가 됐다. 그러면서도 일과 아이의 균형점이 어디인가 고민하느라 '나'는 잊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오늘 세아이 워킹맘이자 공무원인 30대 여성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봤다. 아이를 셋이나 두고 주 70시간 일을 했다고 한다. 70시간을 5일로 나누니 14시간, 7일로 나누니 10시간이다. 무슨 일을 그리 많이 했을까. 아니면 욕먹지 말아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던걸까. 집에 가면 아이들을 돌보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소진되면서도 몰랐을 것이다. 정말 끔찍하다. 끔찍하다. 끔찍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더이상 이렇게 살지 말자고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내 자리에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고 싶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고정훈 2017.01.18 1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를 떼어놓고 나오는 그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느낄수 없는 감정입니다. 마치 아우슈비츠에서 아이를 떼놓고 철길개설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가는 노동자와 다를게 없지요. 이나라가 국민을 위한 나라인지 사업주를 위한 나라인지 헷갈립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1.19 16: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우슈비츠 비유는 심하지 않나 잠시 생각해봤다가... 뭐가 다른가 생각해보니 맞네요ㅠㅠ 이렇게 노동자들을 값싸게 부려먹으려는 나라, 그나마 있는 일자리라도 어떻게든 붙잡아야 겨우 살아남는 나라에서 어떻게 인간 대접을 받겠어요. 여기는 사업주를 위한 나라 맞습니다. 슬프네요.

  2. 후유 2017.01.19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울었죠...

아빠와의 추억은 누가 빼앗아갔나


엊그제 친정아버지에게 농담처럼 건넸다.

아빠, 30대는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이 많아 늘 시간이 부족하고 육아에 집중할 수가 없네요.”

 

투정부리는 것처럼 느끼시면 어쩌나 했는데 아빠는 급 진지 모드. 

너희들 어릴 때는 주6일이라 얼마나 바빴는지. 일주일 내내 일하고 일요일에는 늦잠 좀 자고 싶은데 너희들이 깨워서 정말 괴로웠다.”

 

그 말을 듣고 맞다. 왜 애들은 새벽같이 일어나지하며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는 두 아들들(6+7개월)을 떠올렸다가 어린 시절 내가 떠올랐다. 일요일 아침 아빠랑 놀고 싶은데 아빠는 늦잠을 주무시고 나랑 동생은 일요 만화, 일요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이런 거) 보던 생각. 침대도 쓰지 않던 시절 요에 네 가족이 도란도란 티비를 보고 늦잠을 자던 풍경.

 

아 그립다생각했지만 우리 아빠의 육아 시간은 누가 빼앗아갔나 생각하니 또 불끈


어린 시절 아빠는 늘 바빴다. 잠들기 전에 아빠가 퇴근했던 기억은 손에 꼽는다. 하루는 아빠가 며칠째 연달아 회식을 하다가 집에 돌아왔던 날 화장실에서 피를 토하셨다. 과로였을 것이다.

 

아빠는 외손자인 두진이, 이준이가 태어난 뒤 변했다. 나에게는 그렇게도 엄하던 우리 아빠, 늘 강하게 커야 한다고 일체유심조를 강조하는 우리 아빠, 아파도 참아야 한다는 아빠 말을 듣고 끝까지 참다가 결국 병원에 실려갈 뻔한 열한살 딸을 데리러 왔다가 놀랐던 우리 아빠, 그렇게도 엄했던 우리 아빠는 손주들과는 얼마나 잘 놀아주시는지 모른다. 할아버지가 잘 놀아주시니 두진이는 할아버지랑 도둑놀이하기, 책 읽기, 같이 동네 뒷산에 가기를 참 좋아한다.

 

아빠 왜 나랑은 그렇게 안 놀아줬어요?” 한 번은 농담을 던지니 민망한 듯 웃으신다. 엄마도 너희 아빠가 너희 어렸을 때 이렇게 놀아줬으면 오죽 좋았겠니라 하신다


30대 부모는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놀아주기 힘들다. 회사에 매여, 일에 매여. 아빠도 그랬을 거다. 게다가 그때는 주6일 직장에 투신하던 시대가 아니었나.


첫째 육아휴직 후 복직했을 때 한번은 아버지가 내게 이런 말을 하셨다.

"종종거리고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는 너를 보면 20여년 전 같이 일하던 후배 여직원이 생각난다"고. 그때는 그 직원이 칼퇴근하는 게 참 싫었는데 그 직원도 너처럼 아이 재우러 종종걸음으로 눈치 보며 퇴근했을 것 같다고. 이제 와서 그 직원에게 알게 모르게 눈치 줬을 게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나는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으니까요"라고 답했지만 아빠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게 놀라웠다. 아빠도 만약 일하는 딸을 두지 않았으면 이런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은행에 다니던 아버지는 주6일씩 직장에 인생을 투자했지만 IMF 때 명예퇴직했다. 이후 아버지의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투신했지만 버려졌던 경험이 그렇게 만들었을 거다. 그렇지만 시간은 흘러버렸고 아빠와 어린 내가 추억을 쌓을 시간도 사라져버린 뒤다


아빠와 나의 추억은 누가 빼앗아갔나. 요즘 아빠가 손주들과 놀아주는 모습을 보며 새삼 울적. 더 울적한 것은 20여년이 지났지만 요즘 아빠들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손주 보고 활짝 웃는 아부지.



한 출입처에서 일했을 때였다. 친해진 여자 직원이 해준 이야기가 충격적이었다.


"부장님이 여직원들 퇴근하고 나면 남직원들만 데리고 술 마시러 가요. 거기까진 좋은데 그 자리에서 중요 의사결정을 하고 다음날 출근하면 여직원들만 '어 이게 뭐지' 하게 되는 경우가 여러번인 거예요. 그래놓고 술자리에 빠졌다는 식으로 여직원들 뒤에서 험담하고..."


그 얘기를 듣는데 어찌나 화가 나던지. 그 간부는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 여자 직원은 이런 말도 했다.


"아빠들이 그렇게 회사에 매여있으니 엄마들이라도 일찍 집에 가는 거 아녜요. 진보는 무슨 진보예요. 가부장 진보가 너무 많아요."


그때 들었던 생각. 회식자리에 끌려갔던(?) 남직원들은 좋았을까.


아마 아니었을 거다.


왜 우린 회사 직원들과 지내는 시간이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보다 긴 걸까. 어쩜 노동시간 단축을 바라는 것보다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고 쓸데없이 퇴근할까 말까 눈치보는 시간만 없애줘도 삶의 질이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쓸데없는 주말 근무와 주말 등산과 같은 이벤트도 제발 없애고. 이렇게 소진되는 시간이 많고 어차피 야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상 일할 때 대강대강 일하게 되고 생산성은 OECD 평균 이하인 것. 




남편은 '유럽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왜 나는 여자로 태어났을까’ 애먼 남편한테 한탄을 많이 했다. 첫째를 낳고 복직했을 때가 남편과 다툼이 제일 심했다. 사내 커플인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일을 하지만 남편과 내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첫째는 엄마를 더 많이 찾았고 엄마 없이는 잠도 못 잤다36개월까지 자다가 깨서 한 시간씩 우는 아이를 붙잡고 윽박도 지르고 같이 울기도 여러 번. 밤에 잠을 잘 못 자니 컨디션은 늘 바닥이었다. 친정에서 아이를 봐주다보니 온갖 감정노동과 시간 조율도 내가 해야 한다는 사실이 자주 화가 났다. ‘나는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짜증이 올라올 때마다 남편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당신은 편하잖아.”

 

회사 선배들은 내게 남편에게는 묻지 않는 질문을 가끔 했다. “밥은 잘 해줘?”, “집에 일찍 가야하는 것 아냐?” 같은 질문을 들으면 뒷목을 타고 열이 뻗쳤다. 같은 일을 하는데 왜 남편에게 밥을 해주냐는 질문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게 절대적 애정과 지지를 보이는 아이를 보면서 내가 꿈꿨던 일하는 엄마’, ‘커리어우먼의 환상은 잘못됐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나와 남편은 같은 일을 하고 동시에 부모가 됐지만 절대 같을 수 없었다.


어떤 선배들은 "남편 좀 놔줘", "남편 좀 그만 괴롭혀"라며 장난을 던지기도 했다. 장난이었지만 속으론 늘 속이 상해 퇴근해 애먼 남편에게 한풀이를 했다. 친정 아버지조차 "황서방, 요즘 술을 못 마셔서 괴롭지"라고 하시길래 "아빠, 나도 술 못 마신지 오래됐거든요!" 버럭 한 적도 있다. 


이런 일을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정도일 줄 몰랐을 뿐. 


결혼한 이후 장난스럽게 늘 말했다

남편의 목표는 유럽 남자니까 한국 남자들을 기준을 잡고 이야기하지 마.” 

육아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집안일도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가부장적인 남자들과 비교해서 집안일과 육아를 대충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말라는 선전포고였다


그러나 남편은 과연 한국 사회에서 '유럽 아빠'가 될 수 있을까. 한국 현실은 그대로인데 유럽 아빠를 강요하는 게 맞는 걸까. 


둘째를 낳고 보건소에서 산후우울증, 아기 건강 등을 체크해주고 아기 돌보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전화가 왔다. 요즘 구청에 새로 생긴 주민 서비스인듯했다. 출장 나온 선생님이 이것저것 체크해보시더니 '양호'한 상태라면서 "남편이 잘해주나 봐요?"라고 말했다. 뭐라 답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선생님은 덧붙였다.


"아빠도 산후우울증을 겪는거 아세요?"


아빠들도 아기가 태어나는 거대한 변화를 겪으면서 우울증이 온다는 얘기였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은  축복이 맞지만 그 아기를 건사하기 위해 일상은 크게 변한다. 아기를 재우기 위해서 부모가 잠을 포기해야 하며 아기를 먹이기 위해 부모는 하지 않던 노동을 해야 한다. 그밖에 수많은 노동 노동 노동... 그 노동의 양은 예상치 못한 양이었다. 그리고 책임감. 아빠들의 산후우울증은 아마 일상의 변화 + 한국 사회 특유의 '가장 책임감'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주말에는 체력이 소진되어 눕게 되는 게 아빠 탓이겠나.


그러나 몸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육아 시간은 짧다. 아이들은 금방 큰다. 그리고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육아는 고통과 행복이 함께 오는 특별한 경험이다. 아기에 맞춰 모든 일상을 변화시켜야 하지만 아기가 한번 웃으면 그 괴로움을 잊고 마는 특별한 순간들. 남편은 자주 "아이들이 크는 게 아쉽고 아깝다"고 말한다. 그렇다. 아이들은 열 살만 되어도 지금만큼 부모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이 귀여운 꼬마들이 금방 굵은 목소리로 "아빠 밥 줘, 엄마 돈 줘" 이러겠지.


그러니까 이 특별한 순간들을 엄마 아빠가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추억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아이들은 열 살까지의 경험을 가지고 부모와의 관계를 형성한다고 온갖 육아서들은 말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시간을 같이 많이 보내라고. 그렇지만 왜 이 사회는 그 시간을 주지 않나.


내 남편은 우리 아빠처럼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못 보냈다고 후회하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아빠와의 추억 쌓을 시간을 빼앗겼지만 우리 아이들은 아빠와 다채로운 추억을 쌓기를 바란다. 문제는 참 간단하다. 쓸데없는 야근, 회식, 주말 근무, 주말 등산 이런 거 안 하면 된다. 그리고 근무 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하면 된다. 6일 일하던 시대 주5일 도입하면 세상이 망할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 많았지만 주5일 되어도 망하지 않았다


많이 일할수록 득보는 사람들이 누군가. 육아와 가사노동 문제를 가지고 남녀가 싸울 일이 아니라 힘을 합쳐 그 득보는 사람들을 향해 말해야 한다


아빠와 추억 쌓을 시간을 확보해 달라.”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목마른 돼지 2017.01.14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버지와의 추억이 별로 없는 1인 입니다
    아버지와 자전거를 함께 타본 적이 없어서
    두발 자전거를 아직도 잘 못 탑니다
    예전 어느 프로그램을 보고 그 사실을 깨달았죠...
    그래서 제 애들과 많은 추억을 만들려고 발악합니다
    그런데 참 힘들죠...
    그리고 우리 회사에 같이 근무하는 수많은 여직원들...
    저처럼 일하면서 엄마이기 때문에 더욱 아이들과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들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자아실현?
    내가 열정을 쏟아도 결국 언젠가 폐기처분하는 회사에서
    무슨 자아실현을 하나요...
    우리 개돼지들끼리라도 서로 돕고 이해하면서 서로의 가정과 아이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돈 벌어서 결국 뭐 할 겁니까?
    함께 즐길 사람이 없다면...
    글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1.18 0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자아실현이라는 말이 자주 우습게 느껴지죠ㅠㅠ 조직이 무슨 답을 준다고 미래를 맡길까 생각하는 사람 많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 사회가 야박해진 것일텐데 너무 서글픕니다ㅠㅠ 그러면서도 하루하루 아이는 집에 두고 나가서 일하는 엄마아빠들... 그래도 방법을 조금씩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글 잘 읽었다고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5월 육아휴직했을 때 만삭의 몸으로 첫째 유치원이 끝나면 데리러갔다. 아이는 엄마가 데리러온다며 매일 신나했지만 난 늘 우울했다. 유치원 현관 앞에 기다리는 엄마들모습을 보며. 두진이는 병설유치원에 다녀서 오후 130분이면 끝난다. 처음 하원할 때 기다리면서 아니, 도대체 이 시간에 어떻게 엄마들이 이렇게 많지. 목동 집값을 버티며 외벌이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다 금수저인가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엄마들을 하나도 모르니까 이렇게 워킹맘은 소외당하는가 싶은 생각까지 덮쳐 더 울적했다. 여름방학을 하던 날 두진이 같은 반 꼬마친구들이 두진아 같이 놀자. 우리 집에 초대할게라고 하자 두진이는 신나서 따라갔는데 내가 그 엄마들과 잘 몰라서 민망해졌던 순간. 엄마들이 초대해주지 않는 이상 갈 수 없는데. “두진아 어디가~”하며 집에 데려오는데 두진이는 친구 집에 가고 싶었다고 투정. 집에 왔는데 과연 내가 일하며 아이 둘을 기를 수 있는가 우울 또 우울. 나는 무슨 배짱으로 둘을 낳았는가 더 우울.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유치원 친구 엄마들과도 친해졌다. 매일 얼굴을 보고 유치원 끝나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것을 괜히 걱정한 셈. 그리고 알고보니 다들 전업맘도 아니었다. 방학식날 두진일 초대해준다며 날 곤란하게 했던 꼬마친구 엄마도 나랑 같은 육아휴직자였고 주말 근무가 많아 평일에는 휴무가 많은 직종도 있었고 오전에만 일하는 엄마 등등 다양했다.

 

그때 깨달았다. 정책 설계하는 정부와 언론이 함부로 지칭한 전업맘’, ‘워킹맘은 잘못된 구분이라는 걸. 4시면 퇴근하는 초등학교 선생님과 8~9(일 터지면 11~12)에 겨우 퇴근하는 나, 12시에 겨우 퇴근해 돌아오는 모 대기업 직원이 같은가. 워킹맘도 수만 가지 종류가 있다. 또 집에서 창업을 꿈꾸며 오전에만 일하는 엄마는 전업맘인가, 워킹맘인가. 아마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전업맘이라 부를 것이다. 소속이 없으니까.

 

한때 아무것도 모를 때 다들 전업맘인가했던 유치원 엄마들은 선생님, 간호사, 한복 디자이너, 승무원 등 다양한 직업군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우리끼리 농담처럼 말한다. “이렇게 육아와 일이 병행하기 힘들고 결국 기댈 수 있는 친정엄마, 시엄마 없으면 경단녀된다. “우리 언니는 그러던데요? 아직 애가 다섯 살이면 겨우겨우 회사에 붙어있을 때라고. 이제 애가 초등학교 가면 떨어져나가는 사람 더 늘어난다고요. 그래서 우리 언니도 그만뒀잖아요.”

 

엄마들과 친해지며 깨달았다. 다들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다들 자기 일을 좋아한다.’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에(그리고 그 이후에) 태어난 내 주변 여자들은 다들 그렇게 컸다. 남자랑 똑같이 공부하고 경쟁했고, 반장선거에도 나가서 당선됐고 전교 회장도 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학 때까지는 똑같았다. 취직하면서부터 성별이 장애가 된다는 걸 깨달았지만(이 얘기는 나중에. 결국 이것도 여성 노동력을 육아 전담자라고 사회가 편하게 규정하면서 생기는 일). 그래도 일을 하며 사는 삶을 꿈꿨다는 것은 다들 똑같을 것이다. 좋은 직장, 좋아하는 일을 꿈꿨던 것은 다들 비슷했을 거다. 그게 지금은 부르기 민망한 이름이지만 한 때는 이라고 불렸을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들 아이를 낳아보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맞닥뜨렸다. (조직 생활이라는 게 힘들지만 그래도) 일을 참 좋아하는데 육아와 병행이 힘들다는 것, 게다가 이 사회는 여자에게 육아를 떠넘기는 사회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 아니 조금은 알긴 했는데 이 정도인 줄을 몰랐.....

 

이제 가늘고 길게 가야죠. 다행히 친정엄마가 도와주셔서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그래도 은행 빚 생각하면 일을 놓을 수가 없어요. 그 사이 방치되는 우리 애 생각하면...”

 

전업맘’, ‘워킹맘’, ‘경단녀는 같은 이름이다. 여자들도 좋아하는 일하며 살 수 있다고 제도 교육은 가르쳤지만 실제 사회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달라지는 이름일 뿐이다. 친정엄마나 시엄마가 어릴 때 애를 돌봐줄 수 있으면 워킹맘’,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전업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다 버티다 떨어져 나가버리면 경단녀가 되는 것인데 감히 누가 우리를 이렇게 구분하나.

 

문제는 그 사이 아이들이 방치된다는 것이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야 할 우리 사회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못 받고 큰다는 것. 육아는 양보다 질이라고 모든 육아서가 말하지만 그것도 최소한의 양이 담보될 때 가능한 말이다. 최소한 아이가 혼자 먹고 혼자 자고 혼자 길거리를 걸어다닐 수 있을 때까지 어른이 돌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할머니가 아니라 부모여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엄마 복직 후 다시 유치원 하원을 할머니와 해야 하는 첫째. 하원하는 길 길에서 자꾸 앉아있어서 데리고 오기 힘들.....;; 

 

왜 우리 사회는 체력이 충분한 젊은 부모들이 아이를 돌보게 하지 않고 늙은 조부모들에게 떠넘기는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동동거리는 엄마들을 맘충이라고 싸잡아 욕하는가. 아 쓰다보니 격해진다. 꿈은커녕 경제적 이유로 일하는 수많은 엄마들에게도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누가 돌보고 있을까. 슬프다.

 

사회가 부모에게 조금만 시간을 주면 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금방 큰다. 돌 때까지는 엄마, 두돌 때까지는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게 해주고 그 이후 몇 년간은 유연근무제를 늘리면 된다. 회사에서 일도 안 하면서 주구장창 앉아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할 텐데. 세계 최장을 자랑하는 노동 시간을 줄이지 않는 한 이 육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요즘 애들은 초등학교 3~4학년만 돼도 엄마아빠를 찾지 않는단다.

 

어린이집 늘리고 맞춤형 보육한다고? 정말 코웃음이 난다. 정책 설계를 50대 아저씨들에게 맡기는 이 사회는 답이 없다. 예산을 그렇게 쓰고도 이렇게밖에 못하는 건 정말 중요한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고 건드릴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남녀 다 할 수 있게 해주고 육아휴직급여를 많이 줘야 한다. 육아휴직을 해도 경제적 손실을 많이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후배들은 물어본다. “선배 황경상 선배도 육아휴직을 하면 어떨까요?” 내 대답은 똑같다. “빚 갚아야 해서 안 돼.” 그리고 헐값에 친정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불효녀가 되고 만다. 남녀가 육아휴직을 동등하게 하면 여성 취업자를 차별할 이유도 사라진다. 이 사회는 모든 걸 여성 돌봄 노동에 의지하고 그걸 공짜로 퉁치려 한다.

 

육아휴직급여를 신청하려고 고용센터에 갔을 때였다. 남성 육아휴직을 독려하는 전단을 만들어 놓았길래 살펴봤다. 상사한테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조심스럽게 말 꺼내는 방법부터 육아휴직 때 자기계발(일과 멀어지지 않는 법?)하는 법까지 써놨던데 그걸 보다가 집어던질 뻔했다. 여자 육아휴직도 하기 힘들고 심지어 한다 해도 눈치 주는 사회에서 남성 육아휴직? 제발 육아휴직 안 시켜주는 회사에 벌금이나 수천만원씩 때려라. 그럼 육아휴직을 못하게 할 수 없을 텐데.

 

아 유치원 엄마들 이야기하다가 길어졌다. 유치원 친구 엄마 중에 아기 낳기 전에 했던 일을 놓지 않으려고 오전에 열심히 한복 디자인을 해서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엄마가 있다. 블로그에 올라온 한복 디자인을 보고 너무 예뻐서 반했다. 그다음엔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최선을 다해 디자인하고 바느질하는지 설명하는 표정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후 130분에 아이 둘을 데리러 오니까 전업주부구나 생각하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말하는 그 표정은 나와 똑같을 것이다. ‘일을 준비하는 전업맘’, ‘친정엄마(시엄마)에게 미안해하며 종종거리며 회사를 다니는 워킹맘’, ‘어쩔수 없이 그만뒀지만 애들 크기만 하면 다시 일하고 말거야 되뇌이는 경단녀를 응원한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6.12.30 0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공감이 갑니다 전업맘 직장맘 구분을 할것이 아니라 남자들도 여자들과 똑같은 가사노동을 해야합니다 여자들도 자신이 하고픈 일 할수 있는일이 많은데 육아에 치여 못하고 하는데도 티안나고~~전업맘들도 미래를 생각하고 걱정합니다 제가 해본일중 가사노동이 젤 지칩니다
    아이를 보는것도 행복하지만 자신의 일도 열심히 하고픈데 여자들이 철인인가요 ㅠ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6.12.30 2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가사 + 육아는 티도 안 나고 사람들이 인정도 안해주는 것 같고. 여자들한테 다 떠넘기지 말고 남자들이 같이 하고(돕지 말고 부디 같이!) 그리고 남자들이 집안일과 육아를 같이 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해야겠죠. 힘내세요!

  2. 저기.. 2016.12.30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논점에서 조금은 벗어난 얘기라는 거 알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이신 엄마를 둔 자녀로서 '4시면 퇴근하는 초등학교 선생님' 이라는 표현은 사실 기분이 좀 안좋네요. 칼퇴근 하시는 분들도 물론 계시겠지만 그건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일테고, 한국에서 교사는 가르치는 일만 하는 직업이 아닙니다. 수업 준비 뿐만이 아니라 행정업무에 학부모 상담 등 할일이 정말 많습니다. 4시에 퇴근 하시는건 본적도 없고요 집에 오셔도 늦은 시간까지 학교 행정업무 마무리에 다음날 수업준비 까지 항상 바쁘셨어요. 퇴근시간 이후 밤 늦게, 심지어 주말에 시도때도 없이 전화하는 학부모도 정말 많고요. 그런 분들께서 교사 비하하면서 방학 얘기 많이 하는데 방학이면 집에서 쉬기만 할 것 같죠? 전혀 아니에요. 교사 연수도 들어야 하고, 학교 당직도 있고, 또 개학 전에 학교 가서 해야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렇게 따지면 다른 직업군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갖는 휴가 기간이랑 별다를 거 없습니다. 한국 교육 시스템은 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교사들 입장에서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교사가 가르치는 일만 하면 사실 이렇게 제가 이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 거에요. 교육 선진국을 보면 학생 상담은 따로 상담선생님 혹은 교장 선생님과 하지 선생님 개인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며 핸드폰 번호는 잘 알려주지도 않고요. 또 행정 업무는 따로 일처리 하는 분들이 계시지 선생님들이 하지 않습니다. 왜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교사가 학부모 상담에 학생상담에 학교 예산안 관리에 인사업무까지 해야하죠? 그리고 교사 되는게 얼마나 힘든데요. 사실 사교육 시장에서 잘 자리잡으면 교사보다 돈도 더 많이 벌어요. 교사 봉급은 유리지갑이라 다 아시잖아요. 하지만 뜻이 있어서 교사가 되신거고 자부심 갖고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워요. 그래서 더욱더 사람들이 교사를 쉽게 돈버는 직업으로 생각할 때면 화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에서는 교사가 하는일에 비해 봉급이 적다고 파업도 하고, 학생들도 선생님을 위해 같이 거리로 나와 시위에 참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일이 있었다면 아마 어떻게 교사들이.. 돈도 쉽게 벌면서.. 이런 시선으로 봤겠지요. 저도 어려서부터 목동에서 자라서 부모님이 맞벌이 하시며 힘들게 저 키우셨습니다. 말씀은 잘 안하셨지만 돈 문제로도 많이 힘들어 하셨고요. 교사 자녀라서 부모님과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이런거 없었어요. 엄마들끼리 친구라 같이 놀고 친해지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고, 학교 행사 때면 왜 우리 엄마는 못오지 하며 서러웠던 기억이 많아요. 가끔 저를 위해서 아는 분 하나 없이 민망한 자리에 가시면 교사라고 불편해 하시는 분들도 계셨고요. 지금은 그게 부모님 잘못이 아니라 교육제도의 문제라는 걸 알고, 당신께서 저희에게 쓸 시간을 주말까지 남의 자녀들 일에 쓰면서 얼마나 마음고생 하셨을지 알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글이 너무 길어졌지만 교사도 결국에는 다른 엄마들과 같은 고충을 겪고 있는, 잘못된 정책의 피해자라는거 알아주셨으면 해서 이렇게 글 남깁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지나가다 2016.12.30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교사를 비하한건 없는것같은데요~ 타 직업에비해 비교적 정확한 시간에 출퇴근이 가능하니 시간을 저렇게 적으신거같아요. 교사도 잡무나 업무로 바쁘시겠죠 안그런 직업이 어디있겠어요.

    • 저도지나가다... 2016.12.30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이 글의 말씀하신 부분을 보고 교사를 비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단단히 선입견이 있는 사람이라고밖에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포인트가 '교사는 일찍 퇴근한다'가 아니고 '직장인 퇴근시간은 천차만별이다'에 가깝지 않나요? 전 교사 스스로가 이 부분에서 이렇게 화난다고 하시는 게 되게 신기할 정도인데...요... 말씀하신 내용 관련해서 뭔가 평소에 쌓인 게 있으신듯...

    • ^^ 2016.12.30 1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직 초등교사 입니다~ 칼퇴해도 근무시간이 8:30-16:30,학교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어요~점심시간에도 아이들이랑 같이 밥먹고 급식지도를 하기 때문에 근무시간으로 인정받는거구요~ 저도 읽다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쉬운 직업으로 보이는 구나...저렇게 빨리 퇴근한다고 생각하는 구나...라고 씁쓸하긴 했네요 아무래도 다른 직업의 사정이나 고충을 알긴 힘드니까요. 칼퇴하려면 쉬는시간에 화장실 한 번 가기 힘들고, 채점거리는 바리바리 싸들고 와야하고 방학도 맘 편히 쉬는 날은 아니지만 회사원은 회사원들의 고충이 있을테고 서로 힘든 부분만 말하자만 끝도 없겠지요. 엄마 직업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자녀가 있다는것으로도 어머니께 큰 힘이 되겠네요.어머님께 사랑한다고 말씀 한 번 해주시고 너무 날카롭게 생각하진 마셔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6.12.30 22: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사려깊지 못하게 쓴 부분이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것 같네요. 어느 조직이나 사람을 많이 안 뽑고 있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죠. 교사들에게 행정 업무를 분리하기는커녕 과도하게 부과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치만 제 글은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것, 워킹맘이 근무 형태가 너무나도 다양한데 워킹맘 vs 전업맘 구도로 만드는 게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선생님을 쉬운 직업으로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고 그렇게 글에 쓰지 않았는데... 속상해 마시길요.

    • 저기.. 2016.12.31 0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혹시 글을 잘못 읽으셨나 싶어서.. 제 스스로가 교사가 아니라 제 엄마가 교사이시고 당신께서는 저런 말씀 하신적 한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글쓴이 님께서 비하했다고 한적도 없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생각보다 꽤 많다는 의미였지요. 저도 논점에서 벗어난 얘기를 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쌓인 부분이 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네요. 교사를 두고 '그래도 요즘 세상에 다른 직업에 비해서는' 이라는 표현을 참 많이 들었으니까요. 어렸을 때 또래 친구들이 선생님을 막 대할 때, 극성스러운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와 학생 잘못을 교사에게 뒤집어 씌우며 소리소리 지를 때 혹시나 우리 엄마도 저런 대접 받는건 아닌지 걱정하고 마음 아파 한 기억이 참 많아요. 어떤 직업이든 육아와 일을 같이 하는건 똑같이 힘든 일입니다. 저 직업은 좀 낫지 않을까 이런건 없다고 생각해요. 댓글 다신 분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는게 아니라 교사 자녀로서 오랫동안 느껴온 사회적 시선입니다. 아무튼 원글 요지에 조금은 벗어난 긴 글이었는데 읽고 답변까지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그저 다른 사람들이 힘든 것처럼 교사라고 다를 것 없이 똑같다 라는거 알아줬으면 해서..

    • 두아이엄마 2016.12.31 2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분나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초등교사의 경우 특별한 일이 있거나 잔업이 없는날엔 4시에 퇴근이 가능하시지요... 하지만 일반 직장을 다니는 경우엔 꿈도 꿀 수 없어요. 내년에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는데 퇴근하면 7시예요. 그것도 칼퇴근 할 경우고 저희 또한 칼퇴근은 꿈꾸기 어렵지요. 디딜 양가 부모님도 멀리 계셔서 앞날이 깜깜할 뿐이예요. 사실 탄력근무로 막히지 않는 5시(?) 쯤에라도 퇴근이 가능하면 좋겠어요. 그냥.... 부러워서 한마디 남겨요. ^^;;

  3. 유니맘 2016.12.30 1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정엄마의 노동력 착취 ㅜㅜ 출근길 눈물나네요

  4. 기쁨맘 2016.12.30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이 되네요...저도 요즘 고민하는데...내년에 일을 시작하려면 돌도 안 된 영유아 우리 아기를 얼집에 보내야 해서 어린이집 대기 신청을 하며 마음이 먹먹했어요..휴직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는데...남편은 자기가 일하느라 힘드니 육아는 여자몫인 듯 얘가할때가 있는데 엄청 서운해요...어머님도 아기 키우는 게 뭐 힘드냐라고 하시고...참...제 마음을 알아주는 들어주는 한 사람만 있음 좋겠네요...저도 일도 잘 하고 싶고 아기도 잘 키우고 싶다고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6.12.30 22: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고... 육아가 왜 여자 몫인가요ㅠㅠ 엄마들은 다 이야기하잖아요~ "일이 훨씬 쉽다! 육아가 더 빡세다!!" 저도 내년 3월에 돌 안된 둘째 어린이집에 보내요ㅠㅠㅠㅠ 첫째 때처럼 울면 안되는데... 힘내세요! 다들 기쁨맘님 마음과 비슷할 거예요. 저도 일도 잘하고 싶고 아기도 잘 키우고 싶어요!!

  5. 예비맘 2016.12.30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월초에 출산하는데 깊은공감이 드네요.
    임신내내 회사눈치보느라 힘들었는데, 출산하고는 현실에 부딪히는 상황들이 더 많을거란 생각에.. 대한민국에서 살기가 참 팍팍해서 슬프네요...ㅠ.ㅠ 에효..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6.12.30 2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임신하고 회사 다니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정말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얼마나 울고싶은 적이 많았는지 몰라요ㅠㅠ 고생하셨어요... 출산하면 또 많은 힘든 일들이 닥치지만 정말 예쁜 아기가 오잖아요. 너무너무 힘들어서 다 놓고 도망치고 싶다가도 아기가 한 번 웃으면 내가 이런 천사를 낳았나 싶기도 해요. 대한민국은 빡세지만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더 힘을 내봐요!

  6. 미나 2017.01.01 0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제일기장을들여다본것같네요. 일단문제점을너무잘지적해주셔서속이시원하구요, 다들저와같은고민, 걱정, 고뇌를한다는게, 혼자가아닌것같아조금은위로가됩니다. 다들그냥아무렇지않게아이들을키우는것같아보였는데 막상제가해보니엄마들, 친정엄마들이피눈물을흘려서가능한일이였더라구요. 아니면아이들을어느정도는방치하거나,,, 생후25개월,2개월아이둘을키우는맞벌이부부인데요, 남편은1월1일에도출근합니다. 육아휴직씩이나바라지않을테니최소한주5일근무와칼퇴근만이라도지켜줬으면좋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1.01 1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25개월, 2개월 아이가 있는데 아빠를 휴일에 출근시키다니!! 정말 주5일근무 철저히 지켜주고 쓸데없는 야근, 휴일 단합을 명분으로 하는 이상한(?) 등산 이런 것 좀 싹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힘내세요. 엄마가 되어서도 엄마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 세대 때는 조금더 나아졌으면 하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둘째가 2개월이면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실텐데 체력 소진되지 않도록 주변에 미안해하지 말고 힘든 티 많이 내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7. 냐옹 2017.01.03 0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이다같은 글이네요
    육아휴직 강제로 여자 1년 남자1년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거의 여자만하니까 회사에서도 여자뽑는걸 부담스러워하는거같아요.
    진짜 두돌만 되도 훨씬 나은데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1.03 2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두 돌 되면 적어도 말은 잘 하게 되니까 훨씬 어린이집에 보내기도 덜 불안할텐데요... 그 두 돌 될때까지 사회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게 참 잔인하죠. ㅠㅠ 딱 1년씩 육아휴직 번갈아 하면 여성 취업자를 차별할 이유도 사라지는데요. 답답합니다ㅠㅠ

  8. 용이네 2017.01.04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이집에서 종일반신청하라고, 알바라도 하던지 이름이라도 올릴데없냐는 원장선생님눈치에 알바자리 찾아봐도 퇴근6시밖에 없는데ㅠ 어린이집 아이들은 5시면 거의 다 가고없답니다.
    그게 어떻게 종일반인가요~
    저희아이는 10시등원 3시40분하원인데 바우처금액도 맘대로 올려서 받고 참 이나라의 보육정책은 우주로 날아가버리자는건지 이해가 안가요ㅠ 정말 실질적인 정책을 펼칠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1.04 2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맞춤형보육 성질납니다.... 어린이집에서는 종일반 신청을 좋아한다면서요... 5시에 끝나는데 무슨 종일반인가요ㅠㅠㅠㅠ 정말 답답합니다. 저출산대책에 수조를 썼다던데 그 돈은 다 어디로 간건지... 실질적인 정책을 펼 생각이 없으니까 다 숭숭 사라지는 거죠. 끔찍합니다.ㅠㅠ

  9. 2017.01.04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버베 2017.01.05 1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의 나와 같은 실정~~
    애가 초등 들어가니깐 어쩔수없이 경단맘 되버렸어요. 오늘 내일 그만둬야 하나 고민중~~
    아이는 아이데로 방치되고 외할머니도 힘드시고~ 고민하던차에 페북에 내용이 올라와서 몆자 적어요. 조만간 그만둘거같음

  11. 미래맘 2017.01.06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단어 자체가 남녀 차별이고 육아는 여자들 엄마들 몫이라는 것같아요 ㅠ 워킹파 전업파 이런 말은 없으니까요 .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1.09 13: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네요. 워킹파 전업파 이런 말은 없잖아요ㅠㅠ 요즘 뭐 육아대디 정도 생긴거 같은데.... 여성들에게 전가하고 퉁치는 수법이죠ㅠㅠ 갑갑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어봅니다...

  12. 두아이엄마 2017.01.13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답답하네요... 제가 다니는 회사는...심하게 머라고 하지는 않지만도..출산휴가는 당연히 쓰는구나 하는 정도까지는 해주지만..참..눈치밥이야 참참참 많이 먹는건 사실이죠..

    저도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찬스를 쓰는 중이지만..방학때라든지 아이아플때..또는 봐주시는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할때..제일먼저 걱정은 아이는 어쩌지 입니다..

    연차를쓰던 조퇴를하던..눈치가 보여서... 마음껏 아이를 볼수가 없으니까요...

    아이가..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까지만이라도..시간을조절해서 일 할수 있는 사회분위기나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어요...

    에효.........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1.13 21: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ㅠㅠ 부모님 아프시거나 일 생기시면 정말 난감하죠ㅠㅠ 부모님은 아이 때문에 더 늙어가시고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아빠를 찾고ㅠ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는게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데... 참 사회가 야박해요... 그래도 우리 힘내요!!

  13. 밍재밍준 2017.07.24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마아빠 각각 1년 육아휴직, 유연근무제..너무공감합니다...
    (기자님 같은 분께서 국회의원이 되어야하는데! 이글에 교사비하한다는 댓글은.. 뭐지ㅠ..)
    이런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어야하는데 자꾸..양육수당 10만원, 이런걸로 어떻게 출산율을 높이겠다는건지.
    너무 감사한글입니다. 이런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야하는데..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7.30 14: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양육수당, 아동수당도 중요한 정책 수단이지만 지금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가 아닌지요. 출산율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라면 자연스럽게 높아지겠죠. 지금은 아이를 키울 수 없기 때문에 낳지 않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명제를 알고는 있을텐데 말예요. 감사해요. 힘내세요!

복직하고 제일 많이 들은 질문.

 

"애는 누가 봐?"

 

"어린이집과 친정엄마요."

 

이상하게도 그 대답을 할 때는 죄책감이 듭니다.

어린 아이를 엄마인 내가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 힘든 할머니에게 손주를 맡겨놓았다는 죄책감이

이중삼중으로 들죠.

 

저는 복직에 맞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제가 출산휴가(3개월) 및 육아휴직(1년)을 하고 나서 보낸 거니 15개월이 좀 안됐을 때죠.

 

처음에 친정엄마는 두 돌까지 아기를 돌보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휴직 기간 하루종일 아기를 보다보니 '안 되겠다' 싶었어요.

핵가족 시대, 마을이 붕괴된 서울에서는 혼자 아기를 보다보면

물리적으로 힘든 것은 둘째고 우울증이 올 것 같았거든요.

할머니에게 그럴 수는 없다 싶었고

또 복직을 앞두고 있었을 때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순서가 됐다고.

 

 

어린이집에 보내던 첫날이 생생합니다.

아이는 아직 상황을 잘 모르고 긴장한 건 오히려 저였죠.

호기심 많은 아이는 어린이집을 낯설어도 안 하고 엄마 없이도 잘 놀더군요.

그렇게 적응을 위해서 한 시간여 어린이집에 같이 있다가 아이를 두고 나오는데

아파트 동 사이에서 혼자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미안함과

출산 이후 거의 떼어놓지 않았던 어린 생명을 떼어놓은 어색함이

동시에 몰려왔던 것 같아요.

 

 

 

그러나 아이는 엄마의 복잡한 심경과 달리

적응을 잘 했어요.

별 적응 기간도 없이 어린이집을 잘 다녔고

회사에 돌아온 저는 아이에게 항상 고맙고 고마웠습니다.

 

 

정부의 정책공감 블로그에서.

 

그런데.

아이가 지지난주 어린이집에서 물려왔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다른 아기에게.

 

야근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아이가 잘 있는지 걱정돼서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엄마가 "손을 다쳤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우리 아이 옆에 누워 있던 다른 아이가 우리 아이 손을 꽉 물었다는 겁니다.

 

처음 그 얘기를 듣고 전화를 끊었을 땐 그냥 '멍했습니다'

한 5분쯤 지났을까 화가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왜 난 이제서야 알게 된 거지.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엄마는 제 일에 방해될까봐 말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이집 원장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상황을 물었고 원장님은 미안하다고 연신 그러시더군요.

그리고 직장맘들에게는 퇴근 후에 전화드린다고 하셨습니다.

 

 

...

 

왜 다들 내 아이보다 내 일을 걱정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이 쭉 빠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제 일을 객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린 것 정도 가지고 이러면 '유난스러운 엄마'다, 아냐, 아이는 고작 21개월인데 엄마를 부르며 울었을거야,

...

 

 

엄마인 제가 아이가 다친 걸 8시간이나 지나서 알아야 했다는 게

너무 속상했습니다.

저를 찾으며 울었을 아이한테 너무 미안했습니다.

 

 

정부의 정책공감 블로그에서.

 

 

그래도

원장 선생님과 통화하면서 화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원장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저는 '을'이니까요.(선생님이 좋은 분이라고 믿지만)

아이를 맡긴 입장이니까요.

 

그리고 사고였을 뿐이니까요.

 

집에 돌아가니 밤 11시.

아이가 깰까봐 어둠 속에서 휴대폰 후레시를 비춰 상처를 가늠했습니다.

막상 눈으로 보니 정말.....

 

 

 

다음날 아침에 보니 생각보다 상처가 심했습니다.

 

쉬는 날이었고 병원부터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왜 바로 오지 않았느냐고 되묻더군요.

바로 드레싱을 했어야 하고 이 정도면 흉이 남을 수 있다고.

 

그 순간 또 치미는 화.

같이 병원에 가신 친정엄마는 괜히 자책하시고

저는 어린이집이 원망스럽고 마음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그래도 이성을 찾고 진단서를 발급해달라고 했어요.

(직업병이죠. 문서를 남겨 증거를 만들어놓아야 한다는;;)

 

 

 

결국 집에 가서 다시 어린이집에 전화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얘기했습니다.

 

우리 아이를 문 아이에게 잘못을 물을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아이도 아기인데 뭘 알겠느냐,

어른들이 잘 살펴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아차 하는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 안다, 그래도 잘 부탁한다,

이번에 우리 아이가 피해자가 되고 보니 아찔하다, 우리 아이가 가해자가 되지 않게 잘 살펴봐달라 등등.

 

그렇게 돌려말하곤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곤 아이를 몇분간 안고 있었어요.

놀고싶다고 엄마 품을 벗어나겠다는 아이를 안고 있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별일 아닌데, 유난스러운 엄마들 제일 싫어했잖아, 절대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잖아,

그런 아우성 치는 말들은 소용 없었어요.

그냥 두 돌도 안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냈다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했던 것만 같고

다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해프닝은 끝났습니다.

손에 흉은 안 남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워킹맘은 대처가 늦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인정하는 수밖에 없겠죠.

 

회사 선배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놀다 치아를 다쳐서 눈 속에서 울면서 치아를 찾던 일화를 얘기해주시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이제 시작일 뿐인데 너무 우울해하지 말자, 다독였습니다.

 

 

 

담대한, 담담한 엄마가 되어야지 매일 다짐하는데

매일 실패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는 거라고 소소하게 위로를.

 

 

 

''기특'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진이가 내는 수수께끼  (0) 2015.04.30
두진이를 재우는 완벽한 방법  (0) 2015.02.27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물려오면  (1) 2014.10.02
너의 의미  (0) 2014.08.03
손주병 할머니들의 계급(?)  (0) 2014.07.23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0) 2014.07.09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www.naver.com 잘참았어요 2014.12.02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이집에 그런일은 다반사입니다.
    속상하시겠지만 애키우면서 어린이집 아니래도 아이가 멍들고 다치는일 많아요.
    애가 자란뒤에 이해할겁니다.
    물리고 다칠까봐 원에 안보내거나 아이들과 못어울리게 집안에서만 키울수도 없구요.
    그럼 사회성도 잃고 이런저런 사고에 대처하는법도 아이는 깨우치지 못합니다.
    늘 깨끗하고 문제없이 자란아이는 작은 돌뿌리에도 큰좌절을 겪으니 이런저런 환경을 다 접해보고
    옳고 그름을 알아가도록 기회를 줘야해요.

    잘 참으셨어요.
    일부로 물어라 하는 선생님이나 아이도 없을것이구요. 이런 사고발생시 선생님들도 참 난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