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초 여자 선배들이 농반 진반으로 명절 당직을 서고 싶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냥 웃었다. 그때는 결혼하지 않았을 때라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정확하게 몰랐다. 그냥 시댁에 가기 싫은가보다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내가 결혼을 했고 처음 명절을 보내기 위해 구미인 시댁에 내려갔다. 시댁이 아직 불편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시댁에 가서 시부모님과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도 구경하고 즐겁게 보냈다. 남편의 이모님들이 놀러오셨지만 잘해주셔서 어렵지 않았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결혼을 실감한 건 집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내가 서울로 가려는 시간 동생은 늘 그랬듯 서울에서 차례를 지내고 사촌동생들을 만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다 내 생각이 났는지 전화를 걸어 사촌동생들을 바꿔줬다. “언니, 보고싶어라는 사촌동생 말에 실감했다. ‘내가 결혼이란 걸 했구나. 이제 사촌동생들을 명절 때 볼 수 없구나.’ 결혼은 그런 것이었다. 명절에 이제 내 친척들을 만나지 못하고 남편 친척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 물론 난 시댁이 멀어서 더 그렇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 아직도 가부장제가 강하게 작동하는 제도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처음엔 순진하게 생각했다. ‘나만 그렇게 살지 않으면 되겠지.’ 아니었다. 관습이, 인식이, 문화가 그렇게 짜여있는 구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이제 그 가부장제의 틀 안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지 만 6년이 된다.

 

결혼 초 보수적인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남편은 보수적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편 고향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도 농반 진반. “며느리는 새벽 같이 일어나서 시부모님 봉양할 밥을 차려야죠~” 그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하지 싶어 머리가 띵했는데 남편이 막아줬다. “요즘엔 그런 말하면 장가 못 간다.” 남편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가. 어머니는 늘 쉬라고 하셨고 늦잠 자는 습관은 못 바꿔서 시댁에서도 늦게까지 자고 집에서 하던 대로 했다. 시댁에서는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아 그것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설거지는 열심히 했다. 남편은 설거지도 하지 않았지만 설거지 정도야하면서. 그 대신 음식을 하고 챙기는 모든 일은 시어머니 몫이 됐다. 결국 여자 몫이 되는 신기한 구조.

 

이번 추석엔 시부모님이 역귀성하셔서 서울에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같이 과천 서울대공원 가서 추억을.

 

 

아니 왜들 그렇게 명절에 시댁 가는 걸 싫어해?” 얼마 전 한 남자 선배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하다가 번뜩 든 생각. “며느리들은 시댁에 가면 이 되지만 사위는 처가에 가도 이 되지 않잖아요.” 선배는 100프로 이해 못 하신 것 같았다. “요즘은 사위도 아니야?” 거기에 덧붙였어야 했다. “며느리들은 시댁에 가면 안 하던 집안일을 더 해야 하니까 싫은 거예요. 요즘은 다들 일하니 집안일은 다 기계에 의존하고 밥도 사 먹는데 명절이라고 전 부치고 설거지하고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남자들은 안 하고 누워있고 쉬어도 되니 역차별로 느껴지는 거죠.”

 

며느리들은 왜 명절을 싫어할까. 시댁에서 이고 발언권이 최하위권이거나 없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야 할 집안일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연휴면 뭐하나. 쉴 수가 없는데. 시부모님이 아무리 좋아도 이 구조는 바꿀 수 없다.

 

결혼 후 내가 시댁에서 설거지를 하니 친정에 와서 남편도 설거지를 했으면 했다. 사실 어머님이 밥을 다 해주시는데 젊은 내가 설거지를 하는 게 별것인가 싶기도 했다. 다만 남편도 친정에 와서 집안일을 했으면 했다. 젊은 우리가 부모님을 돕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여자만 돕고 남자는 손님처럼 쉰다는 게 문제니까 함께 하면 간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장벽은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사위가 설거지를 하는 것을 극구 반대하셨다. 사위한테 그런 일(?)을 시킬 수 없다는 것. 화가 났다. 가부장제의 화신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바로 우리 엄마 아빠가 사위는 집안일을 하면 안 되고 나는 시댁에 가서 어머님 일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억울했다. ‘왜 나만. 왜 남편은 아니고.’ 아빠는 계속 사위를 시키느니 본인이 하는 게 편하다고 하셨다. ‘아니 아빠가 엄마와 합동해 집안일을 하는 건 좋게 생각해야 하는 건가싶다가도 왜 남편만 특별대우냐고 계속 얘기했다. 그 생각을 바꾸는데 3년이 넘게 걸렸다. 아빠와 엄마는 동생이 결혼하면 사위와 아들을 같이 설거지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유난스러운가. 설거지 하나가 별 거라고. 그러나 관습은 태초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온 것일 뿐이다. 누군가 괴로운 관습은 바꾸는 게 마땅하다. 시대가 바뀌었으면 관습도 바뀌어야 한다. 그 관습을 바꾸는 것은 결국 관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드디어 9월 동생이 결혼을 했다. 이제는 남편과 동생이 설거지를 공식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써놓으면 남편이 참 억울할 것 같아서 한 마디. 남편은 집안일 지능이 높아 나보다 뭐든 잘 한다. 참고. ‘왜 가사노동을 폄하하는가’ http://ilovepig.khan.kr/264)

 

동생이 결혼하니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내가 시누이가 된 것.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생겼다. ‘형님이라니. 동생의 여자친구 입에서 형님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순간 놀랐다. ‘언니가 아니고 형님이지.‘

 

호칭도 문제다. 도련님, 형님 같이 시댁에서는 이 왜 붙을까. 이 불균형한 권력이 일상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며느리들이 그것을 극대화해서 체험하게 되는 명절을 싫어하는 것이다.

 

조금더 친해지면 올케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 서로 올케, 형님이라고 부르지 말자. 그냥 이름을 부르거나 언니라고 했으면 좋겠다. 불합리한 호칭과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호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의. 며느리는 딸이 아니다. 그냥 며느리는 며느리다. 며느리를 딸처럼 대한다면서 아들한테 시키지 않는 집안일을 시키는 것보다 며느리는 며느리로,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로 서로 예의를 지키면 된다. 나도 올케에게 그러고 싶다. 서로 예의를 지키고 시간이 지나는 만큼 서로에 대해 알게 되면 친해지면 좋겠다. 가족이 되었다고 급히 친해질 수도 없을 뿐더러 가족이 되었으니 서로 편하게 지내도 된다고(주로 위에서 아랫사람에게만 편히 대할텐데) 하는 것은 허구다. 사람이 친해지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조금씩 친해지는 만큼 서로 평등했으면 좋겠다. 거창한 평등은 아니고 내 발언권만큼 올케의 발언권이 있었으면 좋겠다. 올케의 발언권이 집에서 꼴찌가 되지 않게 챙겨주고 싶다. 물론 이런 마음만큼 잘 될지는 내 스스로를 지켜봐야겠지만. 하하.

 

시댁에서 내가 정말 가족이 되었다고 느낀 순간도 이 발언권이었다. 내가 내 생각을 자유롭게까지는 아니어도 많이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느꼈을 때. 지난 촛불 정국 때 아버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아버님, 종편 너무 많이 보지 마세요했을 때. 아버님이 다행히 하하 웃으면서 "투표권은 나한테 있다" 하셨는데 나도 그 순간 가족이 된 것 같다고 느꼈다. 정치와 종교 얘기는 가족 간에 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이다. 어찌됐든. ㅎㅎ

 

시대가 달라졌고 겉으로는 여자들이 장관도 되고 대통령도 되는데 왜 아직도 불평등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깨알같이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주의가 남아 있다. 어떤 가부장들은 착하고 따뜻해 가부장인지도 헷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착한 가부장들의 관습을 바꿔야 모두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착한 가부장의 전형인 우리 아버지가 올해 명절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고 산소에 다녀오시기로 했다. 늦었지만 아빠의 결정을 응원해주고 싶다. 어제 엄마와 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갔다가 오늘 외할아버지 요양병원에 가셨다. 엄마가 명절에 귀향한 첫 번째 명절이다. 내년에 엄마가 환갑인데 말이다. 그게 참 마음이 아프다. 일평생 차례를 지내느라 명절에 친정에 가지 못한 우리 엄마. 이제야 친정에 갈 수 있게 됐는데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계시고 엄마는 돌아가셨다. 나는 우리 엄마의 인생을 닮고 싶지 않다. 내 아들들은 이런 틀에 매이지 말고 나보다 더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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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결혼2년차 2017.10.13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한지 얼마 안됐지만 정말 공감되는 글입니다.
    큰 행운으로 가사일 시키지 않고 차례 지내지 않는 시댁 만나 명절이 괴롭지는 않지만.. 혼자서 다 해나가셨던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친정 어머니도 마찬가지구요..종갓집 시집오셔서 2달에 1번꼴로 제사 지냈던 어린날이 있었네요.) 시아버지가 많이 도와주시는 편인데도, 명절 풍경은 여자들만 일을 하고 있는건 여전하네요. 우리 세대부터는 꼭 바뀌어야 할 문화라고 생각해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11.09 2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꼭 바꿔야 할 문화죠. 저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오래 제사를 지낸 엄마가 너무 대단해보이고 안쓰러워요. 우리 세대부터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공감, 감사해요.

  2. 현이엄마 2018.05.16 1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복직 검색하다가 우연히 쓰신 글을 읽게 되었어요.. 어쩜 생각하고 계시는것이 제가 생각하고 있는거와 너무 똑같아요! 저도 왜 시댁에 신랑 남동생은 도련님이고 제 여동생은 처제인건지? 부터해서 ㅎㅎ 뭔가 이건 아니다 라고 생각할때가 많았는데.. 그리고 본인은 돌직구로 말하니까 내가 말하는거에 상처받지 말라고 미리 얘기하시고선 정말로 가끔 말하실때 돌직구 날리실때;가 있으신대 (예를 들면, 제가 싼 꼬마김밥 보고 맛없게 생겼다.그러니 애가 안먹지. 또 고기를 구워줬니? 삶아서주지. 너보난 니 동생이 인상이 더 좋게생기지 않았니 니가생각해도? 등..) 물론 저희 어머님이 저한테 나쁜마음으로 말씀하신건 아니세요 그냥 생각나시는데로 말을 막 하실때가 있는데 듣는 저는 기분이 나쁜거죠..ㅎㅎ 그냥 무튼 글을 읽다보니 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거랑 너무 다 똑같아서 제가 쓴글 같았어요^^ 정말 저도 아들 키우지만 제 아들이 커서 결혼을 해도 큰 관섭없이 살게 하고 싶습니다.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입니다. 어떤 오후를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느지막이 일어나 '누런돼지'가 마감하는 날이라 아침을 차려주고 커피도 끓여줬습니다.
(ㅎㅎ 이렇게 말하면 제가 밥을 더 잘 챙겨주는 것 같지만 사실 반대입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죠ㅋㅋ)

그리고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경향신문 '인터랙티브팀'이 낸 책인데요.
지난해 이 팀에서 경향신문에서 '알파레이디 리더십' 강연을 진행했고 그 강연을 묶어낸 책입니다.

첫 장이 손미나 전 KBS 아나운서가 한 강연 부분이었어요.
큰 기대 없이 책을 넘겼는데 그녀의 문장이 마음에 쏙쏙 들어와 이렇게 블로그까지 열어 글을 씁니다.
"아나운서에서 여행작가로 변신한 손미나"라는 제목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에게 현실은 언제나 부족한 듯, 불안한 듯 느껴지는 법이거든요. 탈출하고 싶고, 나아지고 싶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생활을 하고 싶고, 여행도 하고 싶고...... 그런 생각은 누구나 할 텐데, 제가 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용기를 내어 실천에 옮긴 것이죠.

저는 이 문장을 읽고 요즘 저의 생각을 표현해준 것 같아 마음이 울렸습니다.
삶이라는 게 항상 어딘가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와 다른 측면에서는 또 '견뎌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견딘다'는 것은 현실이 늘 부족하고 불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요즘 그래서인지 자주 '탈출' 혹은 '도망'을 꿈꿨습니다. ㅎㅎ 물론 실제로 그러진 못했지만요. 

그녀는 누구나 선망하던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졌었지만 10년차쯤 되면 그만두고 나가서 유학을 해야지, 계획표에 적어뒀었고 유학 시절 여행작가로 글 쓰시던 분이 특강을 하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저런 일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인생에는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며 마음을 울리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순간의 마음을 기억해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인 거죠.
그게 보통 사람들과 차이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KBS 아나운서를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도 그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랑도 많이 받고 행복하기도 했지만, 고민도 많았습니다. 아나운서가 선망의 직업이라 하는데, 막상 그 안에서 경쟁하고 사랑받는 진행자로 살아남으려 애쓰면서 고민도 많았어요.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어요. 주7일 근무를 5년간 했어요. 떠나기 직전에는 '잠에서 깨어 직장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하루만 있었으면'하고  밤마다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 제가 오랫동안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라디오 프로그그램을 진행했어요. 밤 프로이니 주로 심란한 사연이 올라옵니다. "죽을 것 같다"는 청취자 이야기를 들으면 그 마음을 풀어 줘야 하니 저도 성심껏 "곧 헤쳐 나갈 거예요" 말해 주지요. 그런데, 나도 죽겠는데 누가 좀 위로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그만두어야 할 때가 됐구나, 쉬어야겠다 싶었지요.

나에게 휴가를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떠나야겠다고 생각해보니 제 자신이 어느새 약해져 있었습니다. 방송국에서는 도와주는 사람도 많고, 저 혼자 힘으로 해온 일은 없는 것 같고, 그래서 두려움도 많아지더라고요. 대학 시절 스페인에 갔을 때는 젊었던지라 겁이 없었는데, 그때는 여행조차 무서웠습니다.  

그녀는 두려움을 넘어 몰디브로 여행을 '혼자' 떠났다고 합니다. 거기서 만난 영국인 여성 의사와 말이 잘 통해서 7박8일을 함께 이야기했다고 하네요.

제가 방송사에서 일했던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그 친구가 듣고 있다가 "그래서, 행복하니(So are you happy?)"라고 묻는 거예요. 너무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어요. 수영복 차림에 앞에는 인도양이 펼쳐져 있는데 거짓말은 못 하겠더라고요. 죽어도 입에서 "Yes!"가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여러분은 행복하신가요?
손미나씨의 문장에 저는 지난해 5월이 생각났습니다. 지난해 5월쯤 저는 '행복하지 않아'라는 말을 매일 되새겼습니다. 일을 하고는 있는데 열심히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열심히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책을 읽을 시간도 나지 않는 업무 구조가 답답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또 역시나 '탈출'과 '도망'을 꿈꿨죠.  

그런데 '결혼'이 걸렸습니다. 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결혼은 어쩌지.. 라며 걱정했습니다.
"여자 나이 서른"이었고 옆에서 엄마는 저를 볼 때마다 '결혼'을 얘기했습니다.
멋지고 '쏘 쿨'하게 "나는 결혼 같은 거 상관 않는 30대 커리어 우먼'이 되겠어!"하면 좋았겠지만
저는 결혼이 하고 싶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달려 오는 아내, 엄마, 며느리로의 책임감이 두렵긴 했지만
한 사람과 평생을 신뢰와 사랑으로 걸어간다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무한한 성장'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여자로 태어나 '엄마'가 되어 아기를 뱃 속에서 키우고 한 때 '내 몸'이었던 아이를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게 도와주는 그 과정을 꼭 겪어보고 싶다고 생각해 왔거든요.

그래서 그 5월에 저는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역설적으로 지난해 가장 답답하고 힘들었던 시간, 제가 선택한 것은 '결혼'이었던 겁니다.

저는 결혼이 인생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길 기대했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인생이 더 재미 없어지거나 하면 어떡해요. 그게 사실 사람들이 결혼하기 두려워하는 지점이죠. 특히 2012년 한국은 젊은이들이 결혼하기 가혹한 사회가 맞습니다.

그래도 저는 희망에 가득차 (ㅎㅎ) 배우자를 고를 때 가장 상위에 두고 고민했던 세 가지를 당시 남자친구였던 '누런돼지'가 지니고 있는지를 따져봤습니다(잘 따져봐야 합니다 ㅎㅎ) 첫번째는 정치적 지향이 비슷한가, 두번째가 문학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이 제일 찾기 어려운 부분이었는데요. "감정의 진폭이 큰 나를 상쇄시켜줄 수 있는 사람인가" ㅎㅎ 왠지 부끄럽네요.

당시 남자친구였던 '누런돼지'는 다행히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세 가지 중 하나만 부족했더라도 결혼을 결심하지 못했겠지만 다행히도 누런돼지를 믿어 의심치 않아 저는 5월 말부터 5개월을 준비해 결혼을 했지요.

결혼하고 나니 행복한 순간이 자주 찾아왔습니다.
남편은 결혼 전 예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뉴스를 보거나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며 정부를 비판하기도 하고 토론을 하기도 합니다. 가끔 무작정 싫은 정치인이나 구태의연한 상황을 함께 무자비하게 욕하기도 하지요 ㅎㅎ 같이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남편이 밑줄 쳐 놓은 구절은 한 번 더 읽으며 적어두기도 하고 영화를 보고 영화 속 인물들의 심리와 감독의 역량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감정의 진폭이 큰 저는 막 우울했다가도 남편의 말을 듣고 위로받고 막 화가 났다가도 남편의 말을 듣고 화가 났던 상황이나 대상을 이해하게 되지요. ㅎㅎ 네 결혼 잘 했습니다.

/제주도의 하늘.

그런데도 저는 문득 '이렇게 살아도 좋은가'를 생각합니다.

손미나씨는 대학 후배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대학 후배가 회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얘기를 했어요. 좋은 직장을 왜 관두냐고 하니, 더 이상 안 되겠대요. 남들 보기에는 번듯한 직장이었거든요. "누나, 가슴이 뛰질 않아요." 그 한 마디에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후배는 '가슴 뛰는 일'을 찾아가서 지금 너무 잘 하고 있어요. 어느 순간 자기에게 오는 육감적 이끌림이 있어요. 그걸 꼭 붙잡으세요.

가슴이 떨리시나요?
고민이었던 '결혼'을 하고 나니 저는 또다시 다른 '떨림'을 찾는 기분입니다.
인간이란 원래 욕망을 끊임없이 충족하려는 존재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만 쉬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손미나씨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도 노력하라"고 말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돼요. 어릴 적으로 돌아가 보세요. 자전거, 스케이트 배울 때 안 넘어지고 배울 수 있던가요? 그런데 왜 인생에서는 안 넘어지고 가려 하나요.

제가 한동안 일이 잘 되기 않아 "왜 이렇게 안 될까요?" 했더니 친구 어머니께서 "네가 인생을 모르는구나. 뜻대로 되는 건 거의 없어"라고 하셨어요. 그걸 알면서도 노력하기 때문에 삶이 가치 있는 것이죠.

(...)
인생은 1막짜리 연극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2만, 3막을 열 수 있어요.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하지만 같은 코스를 뛰는 건 아니죠. 누구에게나 '나만의 코스'가 있어요.


저는 오늘 손미나씨의 강연록을 읽고
'나만의 코스'를 뛰는 사람의 열정을 읽어 행복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고 넘어져 울게 되어도 다시 일어나 행복하게 달리는 삶.
직장 생활을 한 지 3년 5개월 정도 됐는데 언젠가부터 '가슴이 뛰지 않는다'며 열심히 달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결혼을 선택했을 때처럼 마음을 열심히 달리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여행기를 쓴 이유에 대해서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간으로서 계속 성장하지 않으면 달나라를 간들, 어디를 간들 똑같은 글이 나올 거예요. 나 스스로 성장하고 싶어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성장하는 삶을 살기 위해 여행기를 쓰는 그녀. 너무 멋있지 않습니까!! ㅎ

회사를 나와 지금 책을 쓰면서 살다 보니, 내가 나의 성장을 위해 어디로 여행할 것인지 선택하고, 내가 글을 쓰고, 제목을 짓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디자인하니 그게 좋더라고요. 방송사에서도 10년간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일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나의 천직이었어, 하지만 지금의 작가라는 것도 나의 천직이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읽은 책들 중에 '마음을 울리는 말'이 가장 많은 글이었습니다.

그녀의 삶을 무작정 응원하고 싶어졌습니다. 저도 그녀의 용기를 배우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제가 정말 좋아하는 구절을 인용할게요.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어도 '왜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는 의문이 솟구치는 일 따위에는 애당초 몰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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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ost.tistory.com 박소희 2012.03.15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절기라서 마음마저 싱숭생숭한데 뭐랄까, 그냥 좋구나, 생각만 하다 가요. 잘 읽고 갑니다..:)


찌질한 공무원 시험 준비생은 아름다운 선생님과 맺어질 수 없는 걸까요.

안녕하세요. ‘누런돼지 관리자’ 임아영입니다.
요즘 ‘누런돼지’와 MBC의 <하이킥-짧은 다리의 역습>을 보고 있습니다.
가장 비호감인 캐릭터는 ‘고영욱’이었는데요.

MBC 홈페이지에서

장조림 한 조각에도 눈물 흘리는 노량진 붙박이 고시생 고영욱

노량진 고시원에서 몇 년째 9급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인 고시생. 가난한데 식탐이 있어 소고기 장조림 하나에도 목숨을 건다. 원칙주의자에 융통성도 부족해 뭐든 미련하게 한 우물만 파는 스타일. 천사같은 하선에게 반한 뒤 사랑에서도 미련하게 한 우물만 판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고영욱 캐릭터 설명입니다.

소심하나 아름다운 국어 선생님 박하선을 짝사랑하는 고영욱이 나올 때마다 괜히 주는 것도 없이 얄미워 그 캐릭터를 안 좋아했습니다.;;ㅎㅎ 게다가 잘생긴데다 하선을 몹시도 좋아하는 체육 선생님 서지석이 마음 앓이를 할 때마다 고영욱 캐릭터가 더 싫어졌죠. 하선과 지석이 맺어지기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몽유병이 있던 고시원 이웃주민(?)인 백진희가 소고기 장조림을 먹었다고 고래고래 화를 내는 모습도 좀스러워 보였고 우연히 하선의 ‘생명의 은인’이 되어 사귀게 된 과정도 탐탁치 않았습니다. 하선을 더 좋아하는 지석이 있는데 어디 감히!


 

그런데 드디어 영욱과 하선이 헤어졌습니다. 그것도 영욱이 먼저 하선에게 이별을 선언하는 방식이었습니다.

23일 방송된 <하이킥>에서 영욱은 시험 발표가 난 뒤 하선 앞에 멋진 차를 끌고 나타났습니다.
하선은 영욱이 시험에 합격한 걸 기뻐하며 넥타이도 사주고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헤어지던 순간 영욱은 “멀리 지방으로 발령받을 것 같은데 혹시 하선씨, 나와 함께 가줄 수 있냐”고 묻습니다. 지방직 공무원에 합격했다는 것이었죠.

당황한 하선은 “저는 학교도 여기 있고 지원이도 있고...”라며 거절 의사를 보입니다.
영욱은 “기적이 일어날까 해서 한 번 물어본 것”이라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선씨 만난 후로 너무 행복했다. 그동안 나 같은 놈 만나주신 것 정말 감사하다. 잘돼서 헤어지는 건데 웃으면서 헤어지자”며 이별을 고하죠.

영욱은 또 시험에 떨어졌던 겁니다. 영욱은 마지막으로 하선을 한 번 안아본 후 “다 미안하다. 다 고맙다”고 말하고 뒤돌아섭니다. 하선은 영욱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영욱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죠.

고시원에 돌아온 영욱을 맞은 건 작디작은 방이었습니다. 영욱은 그 작은 방에서 하선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소리내어 흐느낍니다. 그때 옆방에서 조용히 하라는 ‘노크’ 소리가 들리죠. 그동안 노크 소리에 주눅들어 살던 영욱도 이번에는 울음소리를 죽일 수가 없는지 엉엉 울었습니다.

MBC 화면 캡처

23일 방송분이 끝나고 나서 갑자기 멍해졌습니다.
영욱이 안돼 보여서였을까요?

영욱이라는 캐릭터가 공시생에게는 연애도 허락되지 않는 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 TV 드라마에서 사법고시를 공부하는 남자 주인공에게 헌신적인 여자 주인공 스토리가 반복됐었던 적이 있었죠. 사시를 합격한 남주(인공)는 결국 여주(인공)를 버리고 여주가 복수하는 이야기.

그런데 김병욱 감독은 ‘공시생’을 이야기합니다.
사시도, 행시도 아닌 공시. 그것도 9급 공무원 준비생.

‘여자 버전’ 88만원 세대를 보여주는 캐릭터 백진희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진희는 고시원에 살다가 방값을 못 내 쫓겨나고 학자금 대출은 산더미같이 쌓여있으나 계속 취직이 안 됩니다. 결국 보건소 행정 인턴으로 취직했으나 월급은 쥐꼬리인데 고용 안정성도 불투명하죠.

어느날 진희도 결혼한다는 친구 얘기를 들으며 ‘취집’을 상상합니다.
보건소 의사 선생님인 윤계상과 결혼하는 상상이었는데요.
아마 진희의 바람도 이뤄지기 힘들 것입니다.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과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보여준 김병욱 감독의 비관주의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테니까요.

영욱이 하선과 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진희가 계상 때문에 어떤 눈물을 흘리게 될까 걱정이 됐습니다. 공시생으로, 88만원 세대의 백조로 찌질해지기만 하는 20대들에게 어떤 희망이 있을 수 있을까요.
취업 여부가 ‘계급’을 가르는 사회가 되어 버렸는데.
연애·결혼·출산, 기본 중의 기본을 꿈꿀 수 없는 사회.

김병욱 감독은 그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찌질하게 장조림에 목을 매는 것이 영욱의 잘못은 아닙니다.
하선에게 영욱은 늘 진심이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하선이 영욱을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겠죠. 사람이 사람이 좋아지는 건 사람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하선은 영욱이 공시생이라는 이유로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좋은 사람이죠.

그런데 왜 저는 영욱을 안 좋아했을까요.
혹시 ‘찌질해서’였을까요.
그 생각이 다다르자 맨얼굴을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습니다.

3년 전 제가 미취업자이던 시절 저는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취직을 못한 것이 온전히 내 잘못만도 아니거늘 자신도 없었고 사람 만나는 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긍정하는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 어떤 것도 온전히 내 탓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데까지요.

그때 제 모습도 혹시 ‘찌질’했을까요.
영욱을 바라보던 시선에 그때 제가 겹쳤습니다.


공시생이 선생님을 만날 수 없는 사회,
이제 더이상 사시, 행시를 봐서 합격하는 ‘신분상승’의 사회가 아니라
9급 공무원이 되는 게 ‘생존’이 되는 세상.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MBC 화면 캡처

제가 좋아하는 <지붕뚫고 하이킥>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실은 가기 전에 아저씨 꼭 보고싶었는데, 이뤄져서 너무 좋아요.

(이민 갈 이유 안 갈 이유가 반반이었다고 그랬지?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뭐야? 아빠랑 셋이 사는 거?)

네. 그리고 신애한테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신애?)

언젠가부터 신애가 자꾸 저처럼 쪼그라드는 것 같아서요. 식탐 많던 애가 먹을 거 눈치를 보고 아파도 병원갈 돈이 없을 까봐 걱정하고. 그게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가난해도 신애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안 가고 싶었던 이유는)

검정고시 꼭 보고싶었어요. 그래서 대학도 가고. 아저씨 말대로 신분의 사다리를 한칸이라도 올라가고 싶었어요. 근데 언젠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 사다리를 죽기살기로 올라가면 또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있겠구나. 결국 못 올라간 사람의 변명이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가기 싫었던 이유는 아저씨였어요. 아저씨를 좋아했거든요. 너무 많이. 처음이었어요 그런 감정.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설레고, 밥을 해도, 빨래를 해도, 걸레질을 해도. 그러다 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부끄럽고 비참했어요.

(미안하다. 내가 한 말들 때문에. 상처주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다 지난 일이고 전 괜찮아요. 그동안 제가 좀 컸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의 끝이 꼭 그 사람과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는 거 이제 깨달았고. 그래도 떠나기로 하고 좀 힘이 들긴..들었어요. 아저씨랑 막상 헤어지면 보고싶어서 못 견딜 것 같아서.

그래도 마지막엔 이런 순간이 오네요. 아저씨한테 그동안 마음에 담아놓은 말들 꼭 한번 마음껏 하고 싶었는데. 이뤄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매일 지금 이순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다 와 가나요?

(어)

아쉽네요. 잠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뭐?)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동생이 ‘쪼그라드는’ 걸 보기 힘들었던 언니 세경이 신분의 사다리를 고민하지 않는 사회로 떠나려는 찰나
세경은 죽음으로써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이룹니다.
지훈을 좋아했던 세경은 이렇게 꿈을 이루는 걸까요.

저는 죽지 않고 살아서 우리들의 소망을 이루면 좋겠습니다.

영욱이 공무원 시험에 붙지 않아도 행복해지는 사회, 스스로가 ‘찌질하다’고 느끼지 않는 그런 사회.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겠죠.

이제 왠지 하선과 지석의 사랑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없어질 거 같습니다.
영욱이 생각나서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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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 2012.01.02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눈물이 나려고 하네...
    김병욱 감독은 너무 잔인해...
    나도 고영욱 미워했는데. 찌질한게 들러붙는다고.
    안내상도 싫었는데. 무능한 주제에 오바한다고.
    그런데 저 감독은, 안내상을 정.말.로. 감옥에 보내버리더라구. -_-
    과잉행동장애가 되어 나온 안내상이 마라톤 하는 걸 보면서 울었다우...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2.01.03 1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선배 내상씨도 정말 안됐죠.
      내상씨가 진희 다친 손목을 이용해 게임에서 이겨서 상품권 타내려고 했을 땐 ‘격분’했지만 그 작은 거라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니 그 방송분 끝나고 허탈했어요.
      ㅠㅠ <하이킥>은 잔인해서 현실적이예요. 이번 <하이킥>은 어떻게 끝날지...ㅎㄷㄷㄷ

  2. Favicon of http://leegoeun.khan.kr 이고은 2012.01.03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영, 글 넘 좋다. 그나저나 우리 내러티브는 언제 다시...? WCMS가 점점 멀어지고 있군하. 하아...

못 위의 잠    -나희덕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선배가 블로그에 함민복의 <절하고 싶다>를 소개하셨길래 “저도 좋아해요”라고 하니
책을 빌려주셨습니다.

함민복 시인이 ‘시인의 마음으로 시 읽기’라는 부제로 책을 냈네요.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랍니다.

목차를 펴서 좋아하는 시인들을 먼저 찾아보았는데요.
그렇게 찾아진 시가 나희덕의 <못 위의 잠>입니다.

대학 때 친구에게 <어두워진다는 것>을 선물받았을 때부터
이 시인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사실 시를 읽는 건 쉽지 않아서(ㅎㅎ) 진득하게 읽지는 못했는데요.
<어두워진다는 것>을 읽었을 때 시인의 맑은 감성이 느껴져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못 위의 잠>에 대해 시인 함민복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달빛이 그림자 만들어주는 것 보면 가로등도 없는 길인가보다. 골목이 좁아 귀가하며 손잡은 세 식구의 그림자 벽에 접혔었겠다. 길이 좁아 가족들 대열에 설 수 없는, 아니 설 수 있는 길이라도 차마 같이 서지 못하고, 한 걸음 뒤처져서 자식들과 아내 그림자 보며 귀가하는 아비. 그 아비의 마음, 아비의 그림자 쓸쓸하다.

제비들도 사랑방은 아비가 쓰나보다. 침입자에 대한 경계심 끝내 풀지 않았을 사랑방 초소, 못 하나. 새끼들 날 수 있을 때까지 말뚝근무 섰을 제비 한 마리, 서러운 이름 아비.

제비의 삶과 사람의 삶은 닮았구나. 모든 생명체의 삶은 마치 그림자처럼 서로 닮은 것인가.


이 시를 읽고 저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도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결혼한지 불과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아 부모님과 한 집에 살지 않게 된 것도 한 달밖에 되지 않았네요.
결혼하면 어른이 된다고 새삼 부모님이 제게 해주신 것들을 되새겼던 한 달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오늘 점심 때는 갑자기 아빠(아버지란 호칭은 아직도 어색합니다ㅋ)가 보고싶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평소에는 간단히 용건만 말하고 전화를 끊는 사이였던 부녀가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어제 된장찌개를 끓였다고 아빠에게 자랑을 했고 아빠는 그렇게 하나둘씩 할 수 있는 게 늘어날 거라고 응원해주셨습니다.

전화를 끊고 거리를 걷는데 명치 끝이 살짝 울렸습니다.

아홉살 때인가 무주구천동에 여름 휴가를 갔는데 계곡에 첨벙첨벙 놀던 어린 제가 샌들을 계곡의 센 물살에 빠뜨렸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엉엉 우는 저를 보고 아빠는 멀리까지 가 샌들을 구해(?) 오셨습니다. 저 멀리서 아빠가 샌들을 찾았다며 머리 위로 흔들던 모습이 아련하게 기억납니다. 어린 제게 아빠는 ‘슈퍼맨’이었지요.

초등학교 때 살던 이층집은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가족들은 거실 창문을 다 열어 놓고 베란다에서 잠을 잤습니다. 더위를 쫓기 위해 도둑의 위험을 감수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참 신기하기도 한데요. 아빠는 가족들이 처할 수 있는 위험 때문에 여름이면 늘 푹 주무시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피곤해하며 출근하던 아빠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결혼식을 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인사를 하니 매우 신이 났었습니다.
살면서 유일하게 주인공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요.ㅎㅎ

신부대기실에 앉아서 신나게 손을 흔들고 들어오는 사람마다 불러 사진을 찍자며 웃었지요.
그래서 친구들이 왜 그렇게 신부가 소리를 크게 내냐며 구박(?)을 하기도 했는데요.

신부 입장하는데도 신이 나서 사진마다 활짝 웃고 있습니다;;
그러다 눈물이 터진 건 케이크 커팅을 하고 나서 아빠와 눈이 마주쳤을 때였습니다.
아빠 표정이 “쟤가 참 많이 컸구나, 시간이 참 많이 흘렀구나, 이제 우리 없이 잘 지내련가” 싶은 수만가지 생각이 스친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표정을 보면서 이제 ‘슈퍼맨’이었던 아빠와 한 집에 살지 않게 됐다는 걸
‘실체적으로’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입사 이후 직업 특성상 술을 많이 마시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그다지 즐겁지 않은 회식 자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는데 아빠가 주무시지 않길래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빠, 아빠는 어떻게 싫은 술자리를 참았어요?”

아빠는 허허 웃으셨지만
힘든 회식 자리나 회사 일에 지칠 때나 그저 ‘사회적 성숙’을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압박감을 느낄 때
아빠가 자주 생각났습니다.

나희덕 시인의 말처럼 ‘못 위의 잠’이 떠올랐던 걸까요.

이제는 ‘슈퍼맨’ 없이 스스로 일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가끔은 무작정 아이처럼 부모님께 의지하고 싶어집니다.
늘 “못 위에서 잠을 청하며” 돌봐주신 아버지께 새삼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지네요.

이번주 목요일에는 (이제 친정어머니, 친정아버지가 된) 부모님과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습니다.
즐거운 이야기만 하다가 돌아오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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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거창(?)하지만 사실 이 글의 목적은 ‘블로그 소개’입니다.ㅎㅎ

안녕하세요? ‘누런돼지 관리자’이자 경향신문 디지털뉴스팀 소속 임아영 기자입니다.

‘누런돼지’를 관리하게 된 사연을 설명하려면
우선 ‘누런돼지’를 소개해야겠군요.ㅎㅎ

누런돼지는 경향신문 문화부 소속 황경상 기자입니다.
이메일 아이디가 yellowpig@kyunghyang.com 이죠.
황 기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붉은 돼지>를 ‘일생의 명작’으로 꼽습니다.
하야오 감독이 중년이 된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는 자전적 작품이죠.
1차세계대전에서 공군 조종사로 참전해 동료들을 잃었던 ‘붉은 돼지’, 포르코 로소가 인간에 대한 혐오감으로 스스로 돼지로 변해 군대를 떠난 뒤의 이야기입니다. ‘붉은 돼지’는 황 기자의 로망입니다.
붉은 돼지처럼 살고 싶다는 얘기인지는 ‘붉은 돼지’를 ‘누런 돼지’로 패러디한 황 기자가 대답할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ㅎㅎ

황 기자와 저는 입사 동기입니다. 2008년 10월에 입사했으니 만난지는 3년이 조금 넘었네요.


제가 합격했을 때 대학 후배가 합격자 발표란을 캡처해서 보내준 겁니다.
이걸 보고 감격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나 지났네요. ㅎㅎ 더 신기한 건 그때만 해도 제 이름 뒤에뒤에 있는 이름이 제 ‘남편’이 될지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ㅎㅎ


입사 후 2년 동안은 친한 친구처럼, 고민을 공유하는 동기로 잘 지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흔한 연애 스토리들처럼) 동기가 남자친구가 되었고
이제 오늘로써 ‘남편’이 되기 12일 전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전하기에는 아직 너무 부끄럽네요 ㅎㅎ;;; 그건 다음 기회로 남겨둘게용)


회사에서는 십여년만의 사내 커플의 탄생이라고 합니다.
기자 커플은 안 좋다고 일부 선배들은 놀리시기도 하지만
결혼이라는 일이,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일이, 매우 뭉클한 거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일을 빨리 처리하기 좋아하지만 참을성이 없는 저와
시동이 매우 늦게 걸리나 마무리는 확실하고 꼼꼼한 황 기자가
함께 산다면 ‘좋은 상호보완 관계’가 되겠구나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사실 느리고 잘 망설이는 황 기자를 다독다독해서 일을 하게 만드는 일은 힘들기도 했습니다ㅠㅠ
앞으로 정말 잘 ‘관리’해야겠구나 싶어 황 기자에게 “나는 (황 기자의) 엄마가 되기 싫어!”라고 하기도 했죠.
그러나 이제 ‘관리자’의 역할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ㅎㅎㅎㅎㅎㅎ)


앞으로 이 블로그에서
경향신문 부부 기자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사소한 일상(신혼 일기)부터
사회 현안에 대한 생각까지 다양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저와 황 기자는 산책과 여행, 영화(이야기)를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 이야기들도 공유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저희의 청첩장 문구를 소개할까 합니다. 부끄럽지만 ㅎㅎ

외롭고 높고 쓸쓸한 길에서도 서로의 더듬이를 부비며 온기를 찾고
묵은 김치 한 조각에 더운 밥 하나, 세상의 가장 소박한 찬에도 즐거워하겠습니다.
며칠째 정신없어 다듬지 못한 손톱을 다정하게 깎아주는 시간을 행복해하고,
서로가 만든 그늘 속에서 즐겁게 쉬며,
무엇을 이뤘느냐 묻기보다, 어떻게 살았느냐를 묻는 그런 부부가 되겠습니다.
오셔서 저희의 앞길을 축복해 주세요.



‘예비 남편’이 쓴 문구입니다. 이 문구를 보고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앞으로 이렇게만 산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은 느낌...(예비 신부의 감성입니다 ㅎㅎㅎ)

끝으로 저희 관계를 상징하는 사진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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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talgi21.khan.kr 딸기 2011.10.25 1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영 넘 이쁘다!!

  2. 레옹 2011.10.25 1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속았다. 둘이 몰케다니길래 공동기획하는 줄 알았다.
    몰랐다. 두 사람이 그렇게 묵은지를 좋아하는지.
    당혹스럽다. 어디다 부조해야 하나.

    • 누런돼지 관리자 2011.10.25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장 처음에는 취재원을 같이 만나다 친해졌으니 기획은 아니더라도 일을 하고는 있었는데요. 사실 성과로 이어졌는지는 반성을...;;;
      묵은지 좋아하니까 ‘한옥집’에서 밥 사주세요. ㅎㅎㅎ
      음... 마지막이 가장 어려운 문제네요. ㅠㅠ 현재 직속 후배의 복지를 생각하심이...ㅎㅎㅎ 결혼식이 끝나면 부 일에 혼을 쏟겠습니다.... ^^;;;

  3. 퍙미 2011.10.26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곧 공개될 '방'도 기대해 ㅎㅎㅎㅎㅎㅎㅎㅎ

  4. Favicon of http://leegoeun.khan.kr 이고은 2011.10.27 1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청첩장 문구, 감동적이다. 황기자의 감성이 묻어나는구먼.
    당신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사진에서 읽을 수 있듯이, 아영은 아마 '(황기자의) 엄마'가 될 것 같다. 흐흐흐.
    나도 결혼 전, 아영과 100% 똑같은 멘트를 남편에게 했으나, 1년만에 포기하고 그길로 들어섰다우.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1.10.27 1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배 왠지 위로가 돼요. 저만 그런 건 아니었군요 ㅎㅎ 가금 '엄마' 역할에 뭉클해진다면 점점 중증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요즘 그래요ㅠㅠ) 그래도 뭐 살면서 맞춰가는 연습을 열심히 해야겠죠? 팁 많이 주세요~^^

  5. 2011.10.29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1.10.31 1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그때가 언제인가요. 어떤 시기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ㅎㅎ 축하 감사합니다. 두근두근하기보단 아직 실감이 안 나지만. 그래도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ㅎㅎ 블로그 자주 놀러오세요. 축하 다시 한번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