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회의원이 저출산 문제를 풀겠다며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시간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수당을 주는 아이돌봄 지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고 한다.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가정을 위한 것이라는데 정말 육아 문제, 저출산 문제의 핵심을 짚지 못 한데에 대한 한숨이 푹푹 나온다.

 

그 의원은 이번 개정안이 국가적 재앙수준까지 와 있는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고 고령사회 노년층의 소득 보장 및 가정양육기능 회복에 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 노년층 소득 보장이 저출산 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할마할빠에 대한 기사가 쏟아진다. ‘친정과 가까이 살수록 빨리 자녀 출산한다’, ‘친정과의 거리가 첫째아 출산 속도에 영향 끼쳐’, ‘양육수당 조부모에 직접 지원하고 보조인력 운영 방안도 고려를’, ‘황혼육아 돕는 <조부모의 행복한 육아교실> 운영’, ‘손주 보느라 등골 휘는 할빠 할마, 황혼육아 5년새 2배 증가등등등 .

 

저출산 문제는 할마에 대한 지원책으로 풀 수 없다. 회사 다니겠다고 친정엄마를 착취하는 주제에 정부가 할머니들에게 수당을 주겠다는데 왜 안 고마워하느냐고? 제발 곁다리 짚는 방안을 해결책으로 제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금을 쓰겠다면 제대로 좀 쓰라고. 이제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데 모든 역량과 재정을 집중하자.

 

 

휴가 중 바다에 처음 발을 담가본 첫째. 아빠 등에 업혀서 바다를 보고있다.

할마 육아 덕분으로 벌써 여섯살 형님이 된 첫째.

 

 

우리 외갓집 할머니 육아를 보면 한국 사회가 왜 헬조선인지 알 수 있다. 친정엄마는 32녀의 장녀이자 셋째다. 내 외가 사촌들은 여자가 많고 대부분 나이대가 비슷하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고 그 손주들이 다 외숙모들, 엄마, 이모 차지가 되었다는 슬픈 사실.

 

큰외숙모는 딸 셋에 아들 하나인데 딸 셋이 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 지금 세 명의 손주를 돌보고 있다. 은행원인 둘째 딸이 퇴근이 늦어 10시까지 아이를 돌보는 날이 수두룩. 사위는 딸보다 더 늦게 퇴근해 얼굴보기도 힘들다고. 작은외숙모는 쌍둥이 딸 중 언니의 아이들을 돌봐줘야 했는데 문제는 작은외숙모는 군산에 살고 딸은 수원에 산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이모님을 고용하고 지방에서 외숙모가 CCTV로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보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연출되다가 사촌 제부가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서 결국 외숙모가 수원으로 올라와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외숙모와 외삼촌이 기러기 부부가 된 것. 결국 몇 개월 지나 외숙모는 다시 군산으로 내려가셨다.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할머니들 중에도 지방에서 혼자 아이를 돌보러 오셔서 기러기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분이 여러분. ‘헬육아는 할머니 할아버지마저 기러기 부부를 만들고 있다.

 

끝이 아니다. 우리 이모는 작은 아들 부부가 모두 안동에서 일하는데 아들 부부 모두 서울/경기 출신이라 이모가 시시때때로 내려가 손주들을 돌보고 계시다. 그러나 내려가서 돌보는 게 한계가 있으니 이종사촌의 둘째 아들은 지금 돌이 안됐는데 서울의 외할머니 집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이종사촌 부부가 주말마다 아들을 보러 올라오는 상황. 올케가 최근 셋째를 임신했는데 첫째를 돌볼 손이 필요해서 최근 이모는 다시 안동행. 그리고 마지막 우리 엄마. 2014년 내 복직부터 우리 첫째를 봐주시다 이제 손자 두 명을 맡으셔야 하는 팔자.

 

첫째 복직 후에 아이를 누가 돌봐주냐고 묻는 질문이 그렇게 싫었다. 딱히 나를 보고 할 말이 없어서 묻는 것인지 알면서도 친정엄마요라는 답변하면서 드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나이들어 무릎 성하지도 않은 엄마에게 아이를 떠넘겠다는 죄책감.

 

육아는 대체가 어렵다. 특히 영유아기는. 많은 이기적인(?) 부모들이 대체할 수 있는 존재로 할머니를 의지하는 건 아직 인간이 되기엔 너무 미약한 존재들을 돌보는 게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데 그 힘듦을 사랑으로 견디는 건 가족이 최고라는 것을 아니까.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지만 내 새끼들을 안전하게 돌볼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너무 힘드니까.

 

친정엄마들은 딸과 사위 부부가 퇴근이 늦어 방치되는 손자들을 놔둘 수 없어 육아를 맡는다. 딸이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하나로 자기 몸이 축나는 것을 알면서도 손자들을 돌본다. 그런 할머니들에게 수당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자식들이 주는 용돈이 부족할 수도 있고 할머니 육아를 개인화하면 안 된다는 것도 공감한다. 그런데 말이다. 할머니들이 돌봐줄 수 없는 가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역차별이다. 많은 경단녀들이 지방에 사는 부모님들이 아이를 돌봐줄 수 없어서 일을 포기한다. 그들에게 국가는 무엇을 해줄 것인가. 친정엄마, 시엄마가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상황은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니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런 가정에 수당까지 준다는 것은 할머니 육아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가정들에 대한 역차별이다.

 

국가는 할머니 착취를 그만둬야 한다.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게 아이들을 돌볼 시간을 돌려주면 된다. 국가는 아이를 맡아서 키워주겠다는 허언을 그만두라. 아이는 부모들이 키울 수 있어야 하고 국가는 그를 지원하면 된다. ‘할마수당같은 정책으로 친정엄마, 시엄마 없이 아이를 키워야 하는 가정에 상실감을 주지 말라. 그리고 부디 친정엄마, 시엄마를 착취를 끊어 친정엄마, 시엄마 눈치 보며 출근해야 하는 가정의 죄책감을 덜어 달라. 부모들에게 시간을 주면 모든 게 해결된다.

 

모든 것은 노동시간 문제다. 근본적인 것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저출산 문제를 풀겠다고 하지 말라. 보육 문제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는 보육 정책의 모토를 건전한 보육 환경 조성과 일-가정 양립에 둔다고 했다. 그러나 일-가정 양립이 노동 정책에서 해소되지 않는데 보육 정책으로 풀 수는 없다. 육아휴직을 엄마아빠 1년씩만 해도 아이는 두 돌이 지난다. 두 돌이 지난 아이들부터만 보육시설에 가도 어린이집 문제는 많은 것이 해결될 것이다. 돌이 안 된 03명을 보육교사 1명이 돌보는 게 말이 되나. 엄마 1명이 아이 1, 아빠 1명이 아이 1명을 돌보게 해달라. 보육교사를 착취하지 말고. 그리고 두 돌 이후에는 유연근무제, 시차출퇴근제 등이 현실화되면 12시간 종일반 같은 말도 안 되는 정책이 필요 없다. 왜 아이들이 하루종일 현관문만 바라보며 밤늦게 퇴근하는 엄마아빠를 기다려야 하나.

 

복직이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첫째 휴직 땐 영아와 하루종일 집에 있는 게 힘들어서 회사로 도망(?)치고 싶었는데 지금은 뭐가 옳은지 잘 모르겠다. 둘째 육아휴직 때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고 우울감도 거의 없었다. 첫째가 말상대가 되어주고 친정 근처에서 살아서 외롭지 않아서일 것이다. 동네 친구도 많이 생겨서 지금 사는 곳이 동네로 느껴져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회사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절대적으로 길어질 복직 후의 내 일상은 어떻게 될까. 그로 인해 빼앗겨야 하는 아이들과의 시간이 그리워도 회사에서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추어처럼 보일까봐. ‘이등 사원으로 보일까봐.

 

아이를 낳기 전에는 엄마들은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들인 줄 알았다. “그 선배 애 낳더니 변했잖아같이 엄마 선배들이 칼퇴하면 자기 자식돌보러 일찍 퇴근한다고 비난하는 말을 들어서일까.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그 아이들을 방치하고 회사에 남아 있으라고 말하는 이 사회가 더 괴물 같다. 내 아이라서가 아니다. 어른이라면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것 아닌가? 아직 혼자 거리를 걸어다니기 어려운 어린아이들을 방치하라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 우리 모두 다같이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할마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수많은 워킹맘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할마가 없어서 회사를 그만둔 경단녀들에게는 무슨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 같이 말해야 한다. 나는 친정엄마와 아이를 기르고 싶지 않다. 나는 남편과 함께 아이를 기르고 싶다. 전업맘이 되고만 경단녀들도 마찬가지다. 엄마와 아빠가 아이를 길러야 한다. 아빠들이 육아의 구경꾼이 되는 구조를 거부하자. 아빠들은 회사의 노예가 아니고 엄마들은 회사의 이등 사원이 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우리 친정엄마도 말씀하셨다. “제가 칼퇴근법을 가장 원하는 사람이에요! 할머니들끼리도 등수를 매겨요. 제일 빨리 퇴근하는 초등학교 교사가 1, 공무원이 그다음이죠. 제일 꼴찌가 밤 10, 11시는 되어야 퇴근하는 대기업 다니는 자식들입니다. 제시간에만 퇴근해도 서로 육아를 나눠 하기 괜찮아요. 꼭 칼퇴근법이 통과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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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금님 2017.07.26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우 공감합니다.

  2. 한심인 2017.07.28 0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에 가고 싶다" 고딩들 학교에 9시 10시까지 잡아 놓고, 직장인들 회사에 잡아 놓고.
    제발 집에 좀 가자.
    장시간 잡아 두니 생산효율 낮고,
    조직을 위한답시고 사생활 박탈하고,
    인간답게 사는 나라 그렇게 어렵나?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7.30 14: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우리 다같이 집에 가서 가족들과 시간 보내는 게 참 어렵네요. 꼭 젊은 부부들 뿐 아니라 저도 중고등학교 때 그랬네요. 그러니까 생산성이 낮은 걸텐데. 그저 붙잡아두면, 오래 일 시키면, 오래 공부시키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지. 그게 문제의 본질인데 말이죠. ㅠㅠ

 

나는 워킹맘이다 아직은. 아이를 둘을 낳고 복직을 3개월여 앞두고 보니 한국 사회에서 워킹맘으로 살 생각이면서 둘을 낳는 무모한(?) 선택을 했구나 싶다. 그래서 아직이다. 만약 버텨낼 수 없다면 수많은 여자선배들처럼 경단녀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위기감 때문에.

 

그래도 나는 워킹맘들이 부러워하는 친정엄마가 백업해주는 워킹맘이다. “아영씨는 친정엄마 있잖아 걱정 없겠네”, “아 친정엄마 있어서 부러워요와 같은 말에 아무 할 말이 없는 부러운 워킹맘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든다. ‘우리 엄마는 행복할까.’

 

첫째를 낳고 복직했던 2014년에는 아이 걱정만 가득했다. 아이가 엄마 없는 긴 하루를 적응할 수 있을까, 어린이집에서 울지는 않을까, 퇴근이 늦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긴 것 아닌가 등등. 그런데 두 번째 복직을 앞둔 지금은 아이보다 친정엄마가 더 걱정이 된다. 아이들은 자주 울겠지만 또 적응하리라는 예상이 가능해서이기도 하고 친정엄마가 그때보다 나이가 더 드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둘이 됐기 때문이다.

 

아들들과 하루종일 같이 있다 보면 혼미해진다. 아이들은 그런 존재다. 조금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사고(?)치는 존재. 남편과 나는 주말에 둘이 아이 둘을 보면서도 전쟁이다, 전쟁,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구만을 되뇌는데 할머니인 우리 엄마가 다 감당할 수 있을까. 무릎은 버텨낼 수 있을까. 엄마는 무릎이 약하시다. 그렇다. 무릎 약한 엄마한테 아이를 맡긴 이기적인 불효녀. 그게 나다.

 

우리 엄마는 58년 개띠다. 전북 군산에서 명문여고를 다녔던 엄마는 글 쓰는 걸 좋아해서 당시 잡지 <학원>의 학원문학상에 단편소설을 응모해서 입선하기도 했다. 분량이 200자 원고지 50매 정도였다고 하니 분량도 꽤 됐다고. 그러나 외할아버지가 국립대만 보내준다고 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상경했다. 회사를 다니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고 스물네 살 때부터 전업주부로 살았다. 나를 낳았던 건 스물다섯 살. 그래서 우리는 띠가 똑같다. 3년 뒤 아들을 낳았고 엄마는 아이 둘을 키우고 가사노동을 하며 나이가 들었다.

 

엄마의 리즈 시절. 왼쪽이 우리 엄마.

 

가끔 엄마가 1982년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나보다 더 열정적인 우리 엄마가 나보다 더 잘 살지 않았을까.

 

어릴 때 아빠와 엄마가 맥주 한 잔을 하는 날에 엄마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아영아, 엄마처럼 살지 마...”

그 말은 늘 슬펐다. 이제 엄마는 내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기억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엄마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슬픈 그 말보다 훨씬 더 자주 해주던 말은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해. 엄마는 아영이가 잘 해낼 것을 믿어였다. 어린 시절 엄마는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시험을 망쳤을 때, 심지어 입사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힘들고 외로울 때 엄마가 전해줬던 엄마는 아영이를 믿어라는 편지에 나는 늘 울컥하며 힘을 냈다. 이 말에 의지해 어린 내가 용기를 냈고 또 두려움에 맞서왔다는 걸 떠올리면 코끝이 찡해진다.

 

이제 그 말이 단순히 삶을 사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엄마의 소망은 딸이 전업주부인 자신과는 다르게 일하는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엄마는 90년대 대다수 엄마들이 그랬듯이 딸이 자신보다 진취적인 모습으로 자라길 바랐다. 엄마가 꿈꾸는 딸의 모습은 커리어우먼이었고 엄마는 딸을 알파걸로 키우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결혼도 꼭 하길 바라셨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 키우는 평범한 행복을 누리길 바라신 거겠지.

 

나는 엄마의 소망대로 알파걸이 됐을까. 다만 엄마의 소망과 엇비슷한 일하는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의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선을 다한다고 뭐든 다 이룰 수 없다는 사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진실을 알게 될 만큼 성장했지만 동시에 나의 최선은 항상 온전히 나만의 노력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내 성취에는 내 노력에 엄마의 뒷바라지가 더해져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절절히 깨달았던 것은 아이를 낳고서였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산후조리부터 아이를 키우는 것까지 엄마의 손이 안 가는 곳이 없었다. 나는 엄마의 소망처럼 일하는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의 노동력에 의지해(노동력을 착취해)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온전히 나의 최선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나는 자주 좌절했다.

 

최선을 다 하면 된다고 나를 키운 엄마는 남자아이들과 경쟁해서도 뒤지지 않고 오히려 더 잘 해내는 딸을 늘 응원해줬지만 그것은 잘못된 꿈은 아니었을까. 언론에서 알파걸의 실패같은 기사를 쏟아내면 동의하면서도 씁쓸했다. 가부장적 구조로 점철돼 있는 결혼과 육아에서 나는 영락없이 실패한 알파걸이었다. 나와 남편은 같은 일을 하고 동시에 부모가 됐지만 절대 같을 수 없었다. 지금 난 궁지에 몰리면 알파걸 같은 소리 집어쳐라며 화내는 서른여섯 살이 되었다.

 

지난 겨울 군산 외할아버지를 뵈러 갔다가 가벼운 교통사고가 났다. 엄마와 나는 같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트럭이 멈추지 못했고 그를 본 나는 피했으나 엄마가 피하지 못했다. ‘하는 소리가 나는 그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 아 하늘이 노래진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생각이 들었을 때 깨달았다. ‘엄마를 두고 나 혼자만 피했구나.’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는데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트럭을 운전하던 아저씨가 뛰어나왔고 나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넘어진 엄마는 크게 다치지 않아 오히려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병원으로 이동해 검사를 했지만 머리 등에 큰 이상이 없었고 서울로 돌아와 서울 병원에서 엄마는 물리치료를 오래 받았다.

 

군산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그 짧은 시간 계속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나를 위해 내 새끼들을 봐주고 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다 해주는데 난 엄마를 두고 혼자 피했구나.’ 괴로웠다. 만약 엄마가 크게 다쳤다면 그 죄책감은 어땠을까. 지금도 그날 생각을 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엄마를 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난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고개를 젓는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자식들에게 모든 걸 내어주는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내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고 싶었다. 지금도 똑같다. 내 인생을 자식들에게 전부 줘버리고 싶지 않다. 그런데 엄마인 나는 내 자식들에게 전부 내주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내 일상은 내 엄마의 인생을 착취해야만 굴러간다. 그게 내 딜레마이고 죄책감이다. 나는 독립적인 여성으로, 개인으로 일을 유지하고 싶지만 그렇게 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평생 나와 동생을 위해 자신의 온 시간을 나눠준 친정엄마를 착취해야 한다는 것.

 

손주병이라는 신조어는 이제 신조어가 아닐 정도로 할머니들의 손주육아가 보편화됐다. 아이를 봐준다면 시증조할머니라도 필요하다는 농담을 할 만큼. 엄마한테 엄마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전쟁이다. 제일 부러워하는 할머니는 손주 안 보는 할머니.

 

한번은 엄마가 웃으면서 놀이터에 나오는 할머니들끼리 하는 농담을 들려줬다. “할머니들 사이에도 계급이 있어. 5~6시에 퇴근해서 해방시켜주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며느리나 딸로 둔 할머니가 1계급, 6~7시에 퇴근하는 공무원들 엄마가 2계급, 8~9시에 퇴근하는 일반 직장인들은 3계급, 11~12시에 퇴근해서 애도 못 재우는 딸과 며느리를 둔 할머니가 꼴찌야.”

 

내 경우 3계급이었다. 웃으면서 들었지만 마음이 쓰렸다. 육아를 혼자 감당하지 못할 거면서, 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아이를 키울 거면서 나는 왜 아이를 낳았을까. 슬프게도 꽃보다 더 예쁜 아이를 보면서도 가끔 이 생각을 했다.

 

엄마한테 맡기지 않고 내 손으로 키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엄마와 아이 양육 문제 또는 가사노동 문제로 다툴 때면 그런 생각을 했다. 괴로웠다. 아이도, 일도 포기하지 못하는 욕심 많은 딸. 딸의 욕심 때문에 엄마의 체력을 축내고 엄마의 시간을 훔친 기분. 죄책감은 엄마의 힘든 얼굴을 볼 때 제일 심했고 죄책감이 쌓이는 만큼 사회에 대한 분노가 켜켜이 쌓였다. 왜 나를 이렇게 궁지로 모나. 누가 나를 이렇게 궁지로 모나. 그런데 원망할 대상이 없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라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첫 번째 복직 후였던 2014년과 2015년이 제일 힘들 때였다. 일과 아이에 치여 매일이 피곤했고 전세가 오르는 속도에 기가 질려 어떻게 하면 서울을 떠날 수 있을까만 생각했던 때. 밤에 잠을 못 자고 한 시간씩 경기하듯 우는 큰애를 안고 있다가 결국 지쳐 바닥에 내려놓고 나도 울면서 끔찍해했다. ‘이 일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한 번은 엄마가 집에 김치 있냐고 물으셨다. 당시 식사 담당은 남편이었기에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가 엄마가 그런 것도 모르냐고 하시는 바람에 대판 싸웠다. 집안일은 내팽개치고 일만 신경 쓴다고 생각하셨을까. “엄마, 둘 다 잘 할 수 없어. 집안일은 포기했어.” 냉정한 말과 상처 입혀버리겠다는 말투, 그리고 모진 말들. 수많은 모녀의 사이가 그렇듯 우리도 그랬다. 못돼먹기론 대한민국 1등인 난 엄마 마음을 상처 낼 수 있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주워 담지 못해 괴로워하는 다툼을 반복했다. 엄마를 다치게 하면 결국 내가 다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날들이었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일상에서 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해 아이를 기르는 팔자, 언제 해야 할지 모르겠는 빨래들과 내가 하면 잘 먹지도 않는 아이 반찬을 걱정하며 회사 발제에 스트레스 받는 일상. 회사 일에서라도 애엄마라는 티는 절대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데 아이를 포기할 순 없잖아 라며 엉망진창인 집안을 합리화하던 일상. 그런데 김치라니. 김치가 있는지 없는지 까지 내가 알아야하나. 따박따박 엄마를 향해 따졌지만 엄마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나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한테 풀고 나니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 자괴감 때문에 견딜 수 없는 날들. 그저 떠나고 싶었다. 서울을 떠나 대한민국을 떠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아이를 내 손으로 기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가끔은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결혼은 해야지, 서른 전에는 해야지, 서른엔 해야지, 결혼했으면 아이는 낳아야지, 안 낳았으면 이 이쁜 것을 봤겠어?” 결혼을 꼭 해야 하고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고 말했던 엄마 세대가 수용했던 가부장적 질서. 그 질서를 21세기의 나는 벗어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했고 아니 벗어날 생각이 없었고 결혼 생활도 일도 잘해낼 수 있다고 착각했다. 착각을 한 건 나였으면서 아이 낳으면 엄마가 키워줄게라고 했던 엄마의 말들이 떠오르면 괜히 원망스러웠다. 엄마 세대는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 세대의 질서를 부정하면서 부정하며 살아가기 두려워했던 나는 그랬다.

 

그러면서도 당연한 듯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출근했다. 이제 첫째가 54개월이 됐으니 엄마의 육아 노동도 만 45개월을 지나는 중이다. 그동안 엄마의 몸은 내 자식 때문에 얼마나 축났을까. “엄마 운동 열심히 해요. 그래야 우리 애들 다 봐주지라는 농담을 건네는 내 입은 언제나 쓰다.

 

친정엄마한테 돈을 많이 드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지 말자. 아무리 돈을 많이 드려도(돈을 많이 드리지도 못하지만) 엄마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손주가 웃는 걸 보고 엄마가 잠시 행복해진다 해도(손주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 했다) 그건 정말 잠시고 육아는 엄청난 육체노동인데 왜 환갑을 앞둔 우리 엄마가 그 노동을 감내해야 하나. 그저 딸이 일을 계속 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인데 내 일은 엄마를 위해 해주는 것이 거의 없다.

 

엄마가 내 일을 응원해주는 것이 행운인 사회에서 엄마의 시간을 빼앗아 내 새끼들을 기르는 이기적인 딸. 복 받은 팔자다. 이 죄책감으로 일과 육아를 유지하는 내 팔자가 복 받은 팔자라니. 여성 노동력을 착취해서 아이를 기르는 구조에 분노하지만 결국 엄마한테는 아무 할 말이 없는 팔자. 엄마에게 의지하지 않고 아이를 기를 수 있기를 바라지만 아마 내가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는 힘들겠지.

 

엄마, 내 사주에 엄마 복이 있대요. 사주는 정말 잘 맞네요. 엄마 복으로 내가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워요. 스무 살 땐 엄마한테 독립해서 멋진 여자로 사는 게 꿈이었는데 여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미안해요. 엄마의 힘을 빌지 않으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이들도 제대로 기를 수 없어서. 그래서 내 일의 성과가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내 바이라인에는 언제나 엄마 이름이 겹쳐져 있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기자를 했으면 나보다 더 잘 했을 텐데. 고맙습니다. 어버이날이라 공개적으로 한 번 말해 봐요. 그리고 사랑해요.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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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필립모양 2017.05.09 1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이렇게 눈물이 철철나지....ㅜ ㅠ

  2. 아이 2017.05.09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하면서도 육아도우미 못 쓸 사람은 애를 안 낳거나 일을 그만두거나 해야하는데 아 그럼서 아이를 왜 낳을까요... 진짜 궁금

  3. 지현 2017.05.09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임기자님이 부러워요.
    시댁은 지방이고 한시간 거리 사는 친정엄마는 일을 하세요 ㅜ
    저는 출신휴가 2개월차 육아휴직 3개월 후 10월 복귀인데 7월부터 시터구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좋은분 만나냐하는 걱정에 사로 잡혀있네요. 돈도 돈이지만 내가 이정도 돈을 지불하려고 해도(180?) 좋은분 개란티 안된다는것도 서럽고 또 받는분 입장에선 큰 돈아닐 수 있다는거에 참 어렵네요(하루에 10시간 일하고 180이니깐요)
    해외출장 많은 직업으로 출장 줄이는 것도 직장 복귀 후 어떻게 조율할지 걱정으만 태산이구요!
    어떻게든 되겠죠?

    기자님 블로그 평소에 넘 잘 보고있습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1 2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글이 부럽게 읽히는 게 가장 걱정이 됐어요ㅠㅠ 해외출장까지 많으시다니. 그래도 잘 조율하실 수 있게 되기를요. 부모가 힘을 합쳐 아이를 잘 기를 수 있게 되길, 싱글맘 싱글파더 혼자서도 편견 없이 아이를 잘 기를 수 있게 되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가끔 손주를 보면서 체력을 소진하지 않게 되길... 진정 바래봅니다. 댓글 감사해요!! (글 잘 봐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4. 발바닥 2017.05.10 1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임기자님과 어머니 사이 개띠, 직장 남자입니다. 저도 아직 부모님한테서 독립 하지 못했네요. 부모님 손을 빌지않고 아이셋을 어떻게 키웠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쌀과 김치 등을 보내시는 부모님, 이사 할때마다 사위 모르게 전세금 보태주신 장인 장모님... 이런 양가 부모님들 지원이 없었다면 외벌이로 아이들을 이만큼 키울 수 있었을까요? 그래도 나 잘났다고 양가 부모님께 일좀 그만하시라고 얼마전까지 큰소리 쳤습니다. 이젠 알지요. 눈 감는 날까지 자식을 위해 모든것을 내어주시는 부모님 마음을..... 그리고 그분들이 바라셨던 것처럼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나름 노력했던 대견한 우리들.... 그렇지만 항상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과 죄송스러움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 부모님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1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희생하는만큼 정체성이 겹치는 게 한국 사회 부모 자식간의 관계인 것 같아 가끔은 답답하기도 했는데 나이가 드니까 부모님들의 노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또 고마워하는게 어른스러운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어요.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제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친정엄마아빠께 의지하게 됐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ㅠㅠ 아... 저는 그런 부모가 될 자신이 전혀 없는데... 감사하는 마음은 마음 깊이 새겨야죠 새겨야죠...

  5. 우리엄마 2017.05.10 2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소 생각했던 제맘이랑 완전 똑같아서 읽는 내내 울컥했어요 ㅠㅠ 저도 울아들 6세이니 만5년째 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딸이네요ㅠ 아이에 대한 죄책감은
    둘째치더라도 엄마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워킹맘이 축복받은 존재가 되는 모순된 세상... 정말 그렇네요.. 이모든것을 알면서도 오늘도 엄마의 노동력 없인 절대 아이를 키울 수 없네요 ㅠㅠ 그럼에도 둘째 낳으면 같이 키워준다는 우리 어무이.... ㅠㅠ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1 2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ㅠㅠ 둘째까지 낳아서 정말 엄마한테 미안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둘째를 낳았을까 가끔 생각합니다(둘째야 미안... 너는 축복이야!!)ㅠㅠ 저출산의 문제는 부모를 둘다 집으로 돌려주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을 거예요. 새로운 대통령이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갖고 또 의지를 갖길 바래봅니다.ㅠㅠ

  6. 생각하는 2017.05.11 1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까지도 여자에게만 모든 일을 떠넘기는 것이 '복'을 받는 팔자를 만드는 게 아닐까요.. 그걸 개인이 혼자 이겨내야만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여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1 2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ㅠㅠ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사회죠ㅠㅠ 절대 복받은게 아닌데 친정엄마, 시엄마마저 도와줄 수 없는 수많은 부모들에게 미안한 기분이 드는 이 상황은 정말 말이 안되는 거죠...

  7. 불효녀직장맘 2017.05.12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친정엄마에게..시어머니에게..돌아가면서 맡겨서 키우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은 하는건..자아성취..따위의 목적보다도..혼자벌어 애키우기 힘든세상에..
    한푼이라도 더 벌수 있을때 벌어두자...가 90%는 차지하죠...

    물론....그래도..집에서 아이보는거보다..회사가는게 덜 힘들어요..
    ..
    내친구는 나를 부럽다고 하지만..난참...엄마 어머니께 너무 죄송하네요..
    시간이 갈수록..애들은 커져서 힘들고 부모님은..나이가 드시고...
    가끔..회사집 회사집만 굴리면서 나는 뭔가..해지는데..그때마다..부모님 생각하면서..마음 다져요...

    너무너무..공감가네요..글이....저도 둘째낳고...우리둘째한텐 미안하지만..이렇게 생각없이 낳았나..
    그런생각 했거든요...
    아효.......답답합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5.12 1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ㅠㅠ 혼자 벌어 애 키우기 힘든 사회죠. 왜 시터 두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애를 두고 나가느냐는 댓글 보고 속상했는데... 그만큼 주거비 교육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요. 특히 주거비가 너무 심각하잖아요ㅠㅠ

      '애 보느니 밭매겠다'는 말이 정말 왜 전해지는지 알 것 같아요. 애보다보면 정말 회사 일이 더 견딜만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에 맞춰서 모든 걸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 참 힘들잖아요. 그런데 그걸 젊은 내가 아닌 엄마가 하셔야한다는게 이 빡센 육체노동을 내년에 환갑인 엄마가 하셔야 한다는 게 정말 걱정돼요. 미안하고요. ㅠㅠ

      정말 답답하죠.... 답답합니다. ㅠㅠ

  8. Favicon of http://www.azoomma.org 황인영 2017.05.23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 이번 18회 아줌마의날 행사 관련 내용은 아래 주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azoomma.org/?sec=sec04&pop=y#sec04

    • 황인영 2017.05.23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자님, 제가 장문의 글을 썼는데 다 날라가버렸네요.. ㅠㅠ

      음.. 다시 한번 써보겠습니다만 처음의 그 감흥을 그대로 다시 전달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는 아줌마닷컴(www.azoomma.com)의 대표를 맡고 있는 황인영입니다.

      17년 전인 2000년, 저희 회원들의 발의로 5월 마지막날을 '아줌마의날'로 정하고 매년 행사를 개최해오고 있습니다. 처음엔 50여명의 소풍으로 시작해서 '아줌마 헌장'을 낭독하고 해를 거듭하면서 나, 가정, 사회, 국가 속에서 아줌마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그 가치를 스스로 느끼고 세상에 공유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낸 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그런데 임아영 기자님의 글에서 보듯 나의 세대와 엄마의 세대.. 두세대를 거쳐도 역시 우리들의 삶에는 혁명이라는 것은 없는것 같습니다.

      저 역시 20년이 넘게 밥을 하고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냥 해야하는거니까 했지 이렇게 사는 삶이 정말 제가 원하는 삶인지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볼 틈이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그럴만한 겨를도 없이 엄마로, 직장인으로, 딸로, 아내로... 며느리로.. 그렇게 살아온것이고..

      우리 어머니도 역시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역시 그렇게 살아오셨죠.
      대대로 내려오는...

      나의 문제, 나를 알고 그것이 나와 사회가, 나와 정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깨닫는 '연결선'이 필요한거 같습니다.

      임아영 기자님의 글이 어쩌면 엄마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더구나 한 세대가 아닌 두 세대 엄마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글이라 생각되어

      기자님을 저희 행사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기자님의 글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연락처가 없어 댓글로 남깁니다. 가능하시다면 메일로 연락처를 주시면 제가 전화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저 역시 평범한 아줌마로서 이제 '나와 정치'를 연결하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세대가 약간 다르지만, 임기자님과 저 역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http://momcast.azoomma.com/potview/603182
      부족하지만 방송 들어보셔도 좋습니다.

      제 마음이 기자님과 닿았기를 기대하며... 회신 기다리겠습니다.
      제 이메일 주소는
      inus@inuscomm.co.kr

    • 2017.05.23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밀댓글입니다

  9. Favicon of https://bshell.tistory.com 아맹꼬 2017.06.02 2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역시 기자님과 같이 아들 둘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직장다녀요. 46년생 노모께 큰애 태어나서부터 8살,5살 된 지금까지요. 기자님 글그대로의 심정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사회, 조금씩조금씩 바뀌겠죠.계속 소리내다보면 그럴것이다라고 생각하고 희망합니다. 글 잘 보고 가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7.30 14: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ㅠㅠ 아들 둘이시군요. 전 왠지 아들만 둘이니 더 엄마한테 미안하더라고요. 하루종일 뛰어다니는 둘을 엄마한테 맡기다니 싶은게요... 계속 목소리내고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면 변화가 빨라지겠죠. 기운내세요.^^ 감사합니다.

  10. 재민재희맘 2017.06.09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복직 앞두고 있는데
    당연하듯 손주돌봄을 준비하고 있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 고마움이 밀려오네요
    애들 어린이집 맡기고 엄마 모시고 근처라도 데이트 다녀와야겠습니다

  11. 정덕 2017.07.26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페이스북에서 공유하며 눈물 흘렸는데 아영언니었네요. 새삼 반갑습니다. 힘을 내어 보아요. 우리.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뒤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아이는 누가 봐줘?"

 

저는 조심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친정엄마와 어린이집이요."

 

 

 

다양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아이고 고생많네" (이 정도면 고마운 분)

"몇 개월이지?"(이 정도도 고마운 분)

"아이고 엄마가 힘드시겠네" (살짝 찔리는 대답....)

"요즘은 할머니들이 고생이야" (더 찔리는 대답....)

 

음... 그러다 이런 대답도 들어봤습니다.

 

"요즘 할머니들은 무슨 죄로 이렇게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어.

손주 맡기고 나왔으면 무조건 엄마한테 잘해야돼!!"

 

하하. 이런 분에게는 가타부타 말하기도 귀찮습니다....

사실 어떻게 물어보셔도 저는 '친정엄마'한테 애 맡기고 일하러 나온 '미안한' 엄마거든요.

아기한테도 미안하고 친정엄마께도 미안한 복합적 상황을 매일 겪다보니 이제 좀 익숙해졌습니다.

(그래도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은 정말 밉습니다.... 절대 잊지 말아야지... ㅎㅎ)

 

 

<아침마당> 캡처 화면. "누구를 위한 황혼육아인가" 제목이 너무 슬프네요.

 

 

 

엊그제 친정엄마가 제게

"손주를 놀이터에 데리고 나온 할머니들 사이에도 계급(?)이 있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무슨 말이지? 했더니

이런 거였습니다.

 

오후에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할머니하고 놀고 있으면 엄마들이 순서대로 퇴근한다는 겁니다.

엄마들이 퇴근하는 순서대로 할머니들도 아이로부터 자유로운 몸이 되는 거죠.

엄마가 일찍 퇴근하는 아이의 할머니가 높은 계급이 되시는 겁니다.....

 

친정엄마 말씀에 따르면

1계급은 선생님. 대략 네시 반쯤 놀이터에 나타나신답니다.

2계급은 공무원. 대략 여섯시에서 여섯시 반쯤 나타나시고

3계급은 일반(?) 직장인. 대략 여덟시쯤 나타나는 양호한 직장에 다니는 분들입니다.

4계급은 대기업 다니는 분들. 보통 열시반 넘어서 퇴근하고 아이가 깨어있는 모습을 보기 힘든 분들.....

 

할머니들끼리도 선호 직종이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

다들 선생님, 공무원 딸(며느리)을 둔 할머니를 부러워한다는 겁니다.

 

참 서글픈 풍경이죠?

 

전 이 계급에 따르면 3계급 정도입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야근해서 4계급이 되기도;;;;

 

 

 

(SBS 뉴스 캡처)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고 보육 환경은 그에 못 미치면서

할머니들이 손주를 돌보는 풍경 많이 보셨죠.

'손주병', '황혼육아', '기러기 할머니' 등등 신조어도 나오던데요.

 

저희 동네 한 할머니도 대구에서 사시는데 손주 봐주시느라 평일엔 서울에 올라오고

다시 주말엔 대구 내려가는 생활을 7년째 하셨답니다.

할머니가 서울에 계시는 동안 할아버지는 혼자 밥 차려드시는 '기러기 할아버지'가 되시는 거죠.

 

애 키우기가 이렇게 버거운데 "둘째는 누가 낳습니까" 사회에 묻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예요.

동시에 친정 부모님께 몹시도 죄송하죠....

그리고 동시에 말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낍니다.

 

어릴 때 선생님, 공무원 하라시던 어른들의 말씀을 왜 안 들었을까요.ㅠㅠ

 

선생님, 공무원이 쉬운 직업이라는 뜻은 물론 절대 아니고요.

노동 시간이 부럽습니다. 진정.

 

 

모두들 9 to 5 가능한 세상, 오긴 올까요.

(기자는 그 세상에서도 노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어려울 것 같지만....ㅠㅠ)

 

 

 

 

사진을 구글에서 검색하다가 부민병원의 그래픽을 발견했습니다.

 

'손주병' 할머니들의 위험 질환과 도움이 되는 방법입니다.

 

우리 할머니들에게, 고마운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들에게 전해드려요....ㅠㅠ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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