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복직했다, 할아버지 육아가 시작됐다

임아영

9월 1일 일요일 밤 누웠는데 잠이 안 왔다. 다음날은 월요일이기도 했지만 남편의 복직일, 첫째의 2학기 #개학일, 할아버지 육아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자기 직전까지 남편과 아이의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첫째의 2학기 #방과후수업 시간, #돌봄교실 시간, #피아노학원 시간을 표로 정리했고 중간에 둘째 어린이집 하원 시간까지 정리했다. 할아버지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할아버지의 동선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아이들의 활동과 휴식 시간도 고려하다 보니 머리가 아팠다. 누워서 잠을 청하는데 묘하게 불안했다.

월요일 오전 7시 남편은 아이들과 일어나 아침을 먹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또 나는 아이들 옷을 갈아입히고 준비물을 점검했다. 돌봄교실에 가져 갈 색연필과 사인펜은 사지 못해 내일 가져가기로 하고 둘째 #어린이집 이불까지 개켰다. 오전 8시20분이 되자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등교, 등원시키기 위해 집에 오셨다. 10분 후 다같이 집을 나왔다. 남편과 나는 회사로, 첫째와 둘째는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데려다주러.

아이들과 빠빠이를 하며 헤어지는데 기분이 묘했다. 아버지의 바지를 보고서다. 8월 30일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두시면서 9월 2일부터 아이들의 등하교(원)를 책임지시기로 했다. 아버지는 첫날 검정색 긴 바지를 입고 나타나셨다. 속으로 생각했다. ‘정장은 아닌 것 같은데 정장 디자인으로 나온 등산 바지인가.’ 할아버지가 육아를 도와주시기로 하면서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학교, 어린이집에 와서 손주들이 속상해하면 어쩌나’를 걱정하셨다. 여전히 엄마가 데리러오는 아이들이 많은 사회에서 아빠도 아니고 할머니도 아니고 할아버지라는 게 걱정되셨을 터이다. 하얀색 티셔츠에 정갈한 검정색 바지를 갖춰(?) 입은 아버지를 보면서 그 걱정 때문인가 싶었다.

첫째에게는 한 번 물어봤다. “2학기가 되면 아빠가 회사를 다시 가고 할아버지가 학교를 데려다주실 텐데 할아버지가 오시면 싫을 것 같아?” 첫째는 “왜?”라고 오히려 물었다. “다들 엄마가 오는데 할아버지가 오시면 속상할 수도 있으니까”라는 말에 첫째는 “괜찮은데?”라고 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아이에게 웃으며 협박(?)했다. “할아버지가 오신다고 속상해하면 나쁜 거야.” 늘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엄마, 아빠가 할 일을 대신 해주시는 거야. 할머니, 할아버지는 엄마, 아빠나 다름 없어.”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아이가 ‘엄마의 부재’를 속상해할까봐 전전긍긍한다.

하필이라 말하면 안 되지만 하필... 남편 복직 다음날에는 둘째 #어린이집 #참관수업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둘다 참여하기 어려워서 할아버지가 나서시기로 했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린이집 알림장에 사진이 올라왔다. 둘째를 무릎에 앉히고 웃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을 보니 뭉클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어색하실까봐 같이 나서신 듯했다. 남편은 내게 말했다. “얼마나 복 받은 상황이야.” 그래, 맞다. 복받은 상황이다. 그렇지만 항상 나는 고맙지만도 않고 미안하지만도 않은, 고마움, 미안함, 죄책감, 사회에 대한 분노가 뒤섞인 감정을 맞댄다. 퇴근하니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선생님이 고생하셨지. 안 오던 할아버지까지 오니 엄마, 아빠, 할머니에 할아버지까지 부르셔야 했어.” 무슨 말인가 했더니 참관수업을 진행한 선생님이 참여한 부모들을 부를 때 ‘엄마, 아빠, 할머니’까지만 불러도 됐을텐데 ‘할아버지’까지 와서 한 사람 더 불러야 했다는 얘기였다. 웃음이 나왔다.

부모님의 절대적 도움으로 아이를 키우는 ‘복받은 우리 부부’는 다시 #맞벌이 부부로 돌아왔다. 남편은 복직해 정신이 없고 나도 남편이 복직하니 정신이 없다. 남편이야 6개월간 쉬던 회사를 나오니 정신이 없지만 나는 다니던 회사를 다니는데 너무 피곤해 밤마다 뻗었다. 양육 구조를 다시 맞벌이 부부 구조로 맞춰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을 거다. 아버지가 헷갈리실까봐 매일 아침 ‘오늘 동선’을 메시지로 전달하면서 깨달았다. ‘다시 외줄에 올라왔구나. 조금만 삐끗하면 떨어지는 외줄에.’ 아무리 친정부모님이 계셔도 남편이 아이들을 돌봤던 육아휴직 시절의 ‘안도’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육아는 우리 부부의 일이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일이 아니니까. 묘하게 계속 울적했다. 둘째를 낳고 회사로 돌아온 후 나는 자주 ‘한국에서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버티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우울감이 또 휘감을까 두려웠다.

내가 꿈꾸는 육아는 내가 출근하며 아이를 어린이집·학교에 보내고 남편이 퇴근하며 아이를 데려와 저녁을 먹이는 풍경이다. 조부모가 ‘독박 육아’를 하지 않아도 되고 조부모가 도와줄 수 없어서 역차별을 받는 가정이 없는 그런 풍경 말이다. 늘 마음 한켠엔 언젠가 어떤 고리 하나라도 문제가 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것은 ‘나’라는 생각이 있다. 여전히 한국에서 생계부양자는 아빠고 돌봄을 담당하는 건 엄마니까. 우리 부부가 서로를 그렇게 규정하지 않아도 우리도 사회 바깥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남편과 함께 출근하는 길 짧았던 남편의 육아휴직 기간을 오래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 더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남편과 복직 전날 밤 첫째 방과후수업에 대해 논의할 때였다. 2학기부터 돌봄교실에 있을 수 있게 됐는데 돌봄교실 시간과 방과후수업 시간이 겹쳐서 1학기에 하던 방과후수업 중 2개를 빼려고 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보드게임 수업은 두자. 쑥스러움 많은 아이가 친구들과 같이 보드게임 하면서 사회성을 키울 수 있을 것 같더라.” 남편은 1학기 방과후수업 참관을 도맡았다. ‘남편이 내가 보지 못했던 아이의 표정을 다 보고 있었구나.’ 남편의 #육아휴직 기간이 오래 그리울 것 같다. 다행히 아빠가 회사에 다시 가고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상에 아이들은 잘 적응하고 있다. 남편과 내가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육아를 할 순 없지만 외줄에서 떨어지지 않게 서로 손을 꼭 잡고 있어야겠다. 우리 아이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시대에는 ‘외줄’을 떠올리지 않는 환경이 되길 바라면서.

 

할아버지가 첫째는 학교에, 둘째는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복직의 순간도 닥쳤다

황경상

 

“아빠 오늘부터 회사 가는 거야?”

“응~”

“아쉽다.”

거의 반년에 걸친 육아휴직을 끝내고 출근하는 첫날, 학교에 가려고 함께 현관을 나서던 첫째가 말했다.

“회사 가서 잘 하고 와~”

녀석, 훌쩍 컸구나. 괜히 미안했다. 이제부터 데려다줄 수 없다는 사실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그리고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더 잘 보살펴 줄 테지만. 왠지 모를 서운함이 나도 마음 속 한구석에서 솟구쳤다.

복직하기 전날 잠이 오지 않았다. 내 인생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이 시간들을 나는 잘 보낸 것일까. 아이들에게 나는 좋은 추억을 만들어줬을까. 휴직을 하면서 결심했던 수많은 다짐들을 나는 잘 실천했나. 자신이 서질 않았다.

첫째와는 함께 만들기도 더 많이 하고 컴퓨터도 가르쳐 주고 싶었다. 둘째와는 밖에서 더 신나게 놀고 싶었다. 그렇지만 늘 피곤하다는 이유로,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을 해치우느라, 빨리 밥을 먹고 씻고 자야 한다는 이유로 그러지 못했다. 목표했던 것에 반에 반도 채우지 못했다. 생활습관을 가르치는 일에서도 차근차근 설명해서 납득시키기보다는 소리를 빽빽 지르는 일이 더 많았다. 나 스스로도 아이를 돌보는 것 외에 조금 남는 시간에는 운동도 하고 책도 좀 더 보고 싶었지만 애당초 얼토당토않은 일이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그렇게 시간이 남을 정도로 녹록지가 않았다. 시간은 말 그대로 쏜살같이 흘러갔고 오지 않을 것 같던 복직의 순간도 닥쳤다.

복직하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그 자리에서 첫째에게 아빠가 육아휴직하고 나서 뭐가 기억에 가장 남았느냐고 물어봤다. 어떤 대답을 할까. 막상 돌아온 대답은 싱거웠다. “양천탐험하고 떡볶이!”

‘양천탐험’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별 것 아니었다. 구청에서 주민들에게 건강을 위한 산책로를 만들었는데, 그걸 알려주기 위해 보도블록에 박아 놓은 표지판을 찾으러 다니는 일이었다. 첫째는 유난히도 그 표지판을 신기해했다. 새롭게 하나를 찾을 때마다 환호성을 지를 정도로 좋아했다.

방학을 한 뒤에는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 수업 하나를 듣고 하굣길에 나와 함께 그걸 찾으러 다녔다. 다섯 개, 여섯 개, 일곱 개… 하나하나 더 찾을 때마다 첫째는 신나서 뛰어갔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에 때로는 다리가 뻐근할 정도로 걸어야 했지만 첫째가 어찌나 좋아하는지, 그만하자고 할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녀석과 함께 학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김밥을 사 먹었다. 밥 차려 먹기 귀찮아서 먹자고 한 것인데, 첫째는 그것도 몹시 좋아했다. 매운 걸 잘 먹지도 못하는 녀석이 ‘헥헥’하면서 물을 마셔가며 떡볶이를 먹는 모습은 말할 수 없이 귀여웠다. 그런 별 거 아닌 일이 녀석에게는 너무나 기억에 남았나보다.

둘째 녀석은 여행 중 머물던 숙소에서 화장실에 갔다가 손을 씻고 나오면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빠, 수건을 여기에 좀 걸어 놔라~” 아마도 손을 닦을 수건이 없었나보다. 잔망스런 말투에 아연실색했다가 한편으론 흐뭇했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당연히 집안일은 아빠가 하는 것이고, 수건도 아빠가 걸어놔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나보다. 헛물켠 셈은 아닌 것이다.

첫째가 인형들 사이에 노트북(?)을 놓고 회사놀이를 하고 있다.

 

두 녀석은 숙소에서 ‘회사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숙소 밖 마당에 앉아 있던 나에게는 ‘부장님’의 역할을 맡겼다. 첫째 녀석은 회사에 가는 아빠, 혹은 엄마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둘째 녀석은 집에 있는 아이 역할이다. 둘이서 현관문을 드나들며 열심히 논다. 첫째는 테이블에 장난감으로 노트북 컴퓨터도 만들어놓고 뭔가를 심각하게 두들긴다. “이거 어떻게 하는 놀이야?”라고 묻자 첫째가 답한다.

 “응, 내가 동생한테 회사에 가면서 자고 있으면 들어온다고 하고 회사에 갔다가 그 다음에 동생이 자고 있으면 다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놀이야.”

살짝 말문이 막혔다. 우리 부부가 매일 같이 야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가끔 “오늘은 늦게 오는 날이라 자고 있으면 들어올 거야” 하는 말을 녀석들은 잊지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아빠와의 시간을 그렇게나 갈구하는 녀석들.

육아휴직을 했다고 하면 “우리 때는 그런 것을 상상도 못했다”고 하시며 부러워하는 선배들도 계신다. 여건이 안 되어서 하고 싶어도 못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 행운이지만, 이대로 육아휴직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여전히 뭔가 찜찜하고 아쉽다.

복직 둘째 날, 회식을 하고 밤늦게 집에 돌아갔다. 아침에 일어나 녀석들을 보니 왠지 인상이 달라 보인다. 그새 부쩍 큰 느낌이다. 겨우 하루 안 봤는데. 괜히 녀석들의 머리를 한참동안 쓰다듬었다.

 

아빠의 복직 직전 휴가에서 엄마와 아이들이 바다에서 즐겁게 놀고 있다.

 

 

[출처] 아빠의 육아휴직이 끝났다 [부부 육아 일기] 13화|작성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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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라서 괜찮아

임아영

 

첫 아이가 처음 하는 일은 내게도 보통 처음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에 간다면 초등학교 #학부모 는 처음이듯이. 둘째를 낳고서 알게 됐다. 두번째 경험하게 되면 훨씬 유연해지고 편안해진다는 것을. 둘째를 #어린이집 에 처음 보낼 때도 아이에게 미안하고 아이가 안쓰러웠지만 첫째 때만큼은 아니었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던 날은 정말 펑펑 울었다. 어떤 연애의 끝보다 슬프게. 둘째 때는 그러지 않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안쓰러움’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초보’라서 어려운 이유는 그게 처음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펼쳐진 일이 감당 가능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혼자 겪어야 하는 일은 그나마 다행이다. 어른이 되었으니까. 아이와 함께 겪어야 하는 일은 부담스럽다. 부모가 되고보니 가장 힘든 것은 아이가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지난 겨우내 첫째가 초등학생이 된다는 게 걱정스러웠다. 약간 내성적인 아이가 학교 생활을 즐거워할지 걱정됐고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에 아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3월 한 달을 보낸 결론은 ‘할 만 했다’이다. 아이는 학교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고 나도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에 들어간 첫 달을 잘 보냈다. 모두 남편 덕분이다. 우리 둘다 초보 부모지만 남편과 내가 일을 분담했기에 가능했다. #아빠육아휴직 을 허락한 회사 덕분이기도 하고 아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독려한 사회 덕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지 못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3월 한 달 각종 학교 행사가 쏟아졌다. 말 그대로 ‘쏟아졌다.’ 3월 4일 입학식부터 학부모 #공개수업, #학부모총회, 1학기 상담, 반 모임까지. 보통 하듯 엄마가 다 소화해야 했다면 나는 3~4일을 휴가내야 했을 것이다. 입학식날부터 5일간 10년 근속휴가를 썼고 학부모 총회 때 반차를 썼다.

3월 둘째주부터 육아휴직한 남편은 입학식을 함께 했고 공개 수업, 상담을 맡았다. 엄마들이 주로 오는 반 모임은 다행히 밤에 잡혀 퇴근 후 갈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갈 수 없었던 어린이집 행사도 남편이 갔다. 지난해 내내 ‘열린 어린이집’ 행사에 참여하지 못해 미안했던 둘째에게 어느 정도 만회를 할 수 있었다.

34개월 둘째는 치안센터에 가는 ‘열린 어린이집’ 행사에서 계속 아빠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했다. 회사에 있던 나는 아빠 손을 꼭 잡고 치안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둘째 사진을 보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다행이다.”

초등학교 입학 때 #경단녀 가 가장 많이 생긴다더니 입학 후 첫 3주간은 학교에서 #단축수업 을 해서 만약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정말 곤란했을 상황이었다. 오후 12시40분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가는 남편은 퇴근 후 내게 말했다. “오늘 1만5000보를 걸었어.” 그 다음날은 “오늘은 2만보 가까이 걸었어.”

남편은 오전 8시40분 두 아이를 데리고 학교-어린이집 코스로 데려다주고 오후 12시40분 첫째 학교에 가서 방과후수업이 하는 시간까지 학교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를 두고 기다리다가 다시 집에 가서 오후 3시쯤 첫째 방과후수업이 끝나면 데려오고 또 오후3시30분 둘째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왔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잘 걷지도 못하는 둘째, 호기심 많은 첫째를 데리고 왕복하는 일은 고되다. “그래, OO엄마가 애들은 편도지만 부모는 왕복이라 하더라.”

초등학교를 왔다갔다, 어린이집을 왔다갔다 하는 남편의 모습을 회사에서 상상하면서 기분이 묘했다. ‘아, 내가 육아휴직하는 동안 늘 했던 일인데 뭐 그렇게 힘들어’ 싶었다가 ‘그래도 그때 나도 너무 왔다갔다 힘들었지. 남편도 고생하네.’했다가.

 여러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다. 남편의 눈으로 아이를 볼 수 있게 된 거다. 남편이 첫째 아이 공개수업이 간 것은 처음이었다. 유치원 3년 동안 공개수업은 내가 다 참여했었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아이가 수업을 듣는 모습을 보고 약간 충격을 받았다. 아이가 수업에 약간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던 것.

그러나 남편이 보내준 영상을 보고 거꾸로 나는 아이가 많이 컸다고 생각했다. 5세 때보다 7세 때보다 많이 자란 아이의 모습을 보고 뭉클했다. “아이는 잘 크고 있어. 유치원 때보다 훨씬 의젓해졌네.” 남편도 내 설명을 듣고 안심했다. 우리는 얼마나 각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가. 남편과 아내인 우리도 마찬가지다.

 매우 뭉클했던 순간도 있었다. 남편이 첫째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돌아와서 상담 내용을 요약한 글을 보고서였다. “내가 간 것처럼 복기해 와야해”라는 말을 들어서였겠지만 남편은 정말 꼼꼼하게 상담 내용을 적어왔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했다.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아이 질문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대화를 잘 해 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항상 남편과 육아를 함께 하려고 노력해왔다. 선생님은 그런 의도로 하신 말이 아니겠지만 그동안의 나와 남편의 노력을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건 해봐야 가늠할 수 있다. 초보 부모 3월 한 달 분투기, 할 만했다. 그러나 남편과 같이 할 수 없었다면 괴로웠을 것이다. 어린이집 알림장에 선생님이 이렇게 적으셨다. ‘우리 이준이가 양치질 시간에 “아빠가 사준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아빠가 준비해 준다고 말했다며 칫솔을 보고 좋아했어요. “엄마는 물통을 사줬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이준이가 “아빠는 칫솔을 사줘서 멋져요”라고 하자 선생님이 “엄마는?”하고 묻자 “엄마도 멋져요”라고 말해주었어요.’ 아이의 말에 엄마, 아빠 모두 등장하는 것이 정말 나는 기쁘다. 요즘 퇴근하는 길 예전보다 더 발걸음이 빨라진다. 집에는 아이들과, 아이들을 돌보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으니까.

 

퇴근한 엄마 등 위에 올라탄 아이들

 

 

 

‘아빠’라는 작은 히어로

황경상

 

 

“뛰어! 뛰어!”

 아침부터 달린다. 아직 덜 풀린 다리가 진짜 풀려버릴 것 같다. 오늘도 아침부터 밥도 안 먹고, 옷도 안 입으려는 두 녀석을 데리고 실랑이를 벌이다 학교로 출발하는 시각이 늦어졌다. 마음이 급한데 터덜터덜 따라오던 첫째가 투정을 부린다.

“아빠, 힘들어~ 천천히 가!”, “네가 준비를 늦게 해서 그렇지! 벌써 50분이야~ 지각하겠다.”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차마 남들 볼까봐 화도 못 낸다. 그저 애써 얼굴을 눌러 펴고 첫째의 등을 토닥인다.

그 와중에 둘째는 온갖 사물에 관심을 보인다. “아빠 저건 뭐야?”, “응, 강아지들을 맡겨두는 곳이야.” 첫째 역시 한몫 거든다. “우와~ 아빠! 여기 피자집이 맥주에 치킨집으로 바뀌었어!” 갑자기 이삿짐을 나르는 차가 눈앞에 보이자 둘째가 소리친다. “와, 사다리차다! 보고 싶어~ 멈춰! 멈춰!” 요즘 사다리차에 푹 빠져 있는 둘째가 가만 있질 못한다.

 처음에는 두 녀석의 손을 모두 잡고 걸어 다녔지만, 하도 내 손을 잡아끌고 제멋대로 다니려고 하는 둘째 녀석 때문에 등교 시간이 고무줄처럼 길어졌다. 뒤에서 미는 세발자전거에 둘째를 태웠더니 속도는 나는데 오르막이나 계단, 턱이 많아 휘청휘청한다. 첫째의 손을 잘 잡아주지 못하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허둥지둥 교문에 들어서서 첫째를 학교 현관에서 배웅한다. 내가 멀어질 때까지 몇 번이고 들어갔다 나왔다가를 반복하면서 손을 흔들다가 사라지는 녀석의 작은 등을 바라보면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콧날이 시큰해진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 학교가 쉽지 않았는지 첫 주에는 열감기에 걸려 결석까지 했다.

두 녀석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에 오면 잠시의 여유가 생긴다. 많은 분들이 #육아휴직 에 응원을 보내주셨지만, 오전 시간은 잠시 쉴 수 있지 않느냐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왠지 마음이 더 급해진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해야 할 일이 많다. 눈에 밟히는 것도 많다. 이불 빨래를 널다가 베란다 바닥에 살짝 스쳤더니 시커먼 검댕이 묻어나온다. 몇 달 동안 한 번도 청소를 하지 않은 탓이다. 대충 걸레로 닦으려다 잘 닦이지 않아 결국 물청소를 했다.

 

냉장고에는 2018년, 심지어 2016년에 유통기한이 끝난 냉동 생선과 언제 넣었는지 모를 누렇게 변색된 미역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곰팡이가 생긴 떡국 떡과 마늘도 꺼내 버렸다. 화장실 변기에는 솔질로도 잘 닦이지 않는 곰팡이가 석 달째 방치돼 있었다. 사 놓고 넉 달째 먹지 않았던 크림 스파게티 소스가 눈에 띈다. 다행히 냄새를 맡아보니 상하진 않았다. ‘그래, 오늘은 이걸 먹어야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을 데려와야 할 시간이 된다.

 

보통 아내가 가던 #학부모상담도 내가 가기로 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아내와 상의 끝에 몇 가지를 적어서 스마트폰에 저장했다.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아 학교 운동장에 서서 몇 번이고 그걸 꺼내봤는데 도통 머리에 남질 않는다. 교실 앞으로 가니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입사 면접 이후 이렇게 긴장된 건 처음이었다. 살짝 들여다보니 선생님은 계시는데 아직 시간이 남아 방해해선 안 될 것 같고… 두어 차례 망설이다 조심스레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먼발치에서 봤을 때는 다소 엄한 인상이셨는데 가까이서 뵈니 달랐다. 선생님은 따뜻한 눈빛으로 쭈뼛쭈뼛하는 아빠를 맞아주셨다. “나중에 크면 아빠랑 대화를 자주 나누는 아이들이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꼭 아빠랑 상의를 하는 아이들도 있더라고요.” 선생님은 육아휴직을 응원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저도 잘 될 진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아빠가 된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은 쉽지만 쉽진 않다. 처음 3주간은 단축수업을 해서 #방과후 수업까지 중간에 1시간이 비었다.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1시간을 서 있어야 했는데 좀이 쑤셨다. “1시간 동안 벌 서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한 엄마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그랬다. 봄인데 날씨는 왜 이렇게 추운지, 얇은 옷을 입고 나갔다가 벌벌 떨었다. “아직까지 롱패딩은 필수라니까요.” 정말 그랬다.

 

첫째가 학교 놀이터에서 친구와 함께 만든 케이크(?)

 

 

그냥 있기 뭣해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놀이터에 섰다. 어색하게 발걸음을 이리저리 뗐더니 아이들은 나를 ‘적’이라고 부르면서 낄낄대며 도망친다. 아이들에게는 악당을 물리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놀이다.

좀 신나게 놀아주려는 찰나, 첫째 녀석이 나를 물리친다며 모래를 내 머리에 뿌렸다 흥이 식은 것은 물론 울화가 치밀었다. 온몸에 모래가 다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아서 화도 못 냈다. ‘그러지 마, 인제 아빠 안 해’ 하면서 돌아와 바닥에 털퍼덕 앉았는데 뭔가 창피했다. 아이들과 노는 것도 훈련이 안 돼 있었던 셈이다. 신문에 나온 육아휴직 하는 아빠들 보면 정말 잘 놀아주던데…….

 기운이 빠지는 것도 오래갈 수는 없다. 아직까지 이 작은 녀석들의 우주에서 내 존재는 비중이 크다. 작은 돌멩이 하나라도 주워주면 신나 어쩔 줄 모른다. 둘째에게 아직까지 아빠는 ‘신’이다. 어느 흐린 날 둘째가 말했다. “아빠, 비 못 내리게 해 줘!” “아빠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할 수가 없어.” 녀석은 ‘힝!’ 하면서 발을 구른다.

 

첫째는 컴퓨터로 로봇을 조작하는 아주 기초적인 코딩을 알려줬더니 ‘우와’ 하면서 탄성을 지르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두한다. 둘째는 막 피어오르는 새싹을 보여주고 만지게 해 줬더니, 어느 날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싹을 보고 “새싹 예쁘다!”라고 말한다. 장난감 지게차, 소방차를 만들어주면 “아빠 멋지다! 고마워!”를 연발한다.

 

아빠와 함께 로봇 만들기 삼매경에 빠진 첫째

 

그 새싹보다 예쁜 것들을 껴안으며 잠들면 달큰한 냄새가 난다.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잘못 대해 준 게 생각나 내가 아빠가 될 자격이 없는 거 아닌가, 괜히 감당하지도 못할 아이들을 낳은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졌다가도 작은 손을 잡고 누워있으면 마음이 다시 편안해진다. 손을 잡고 오래오래 걸을 시간이 아직은 많이 남았다.

 

 

[출처] 아빠가 간 학부모 상담! 초등학교 행사가 쏟아지는 3월-4월 처음 부모 분투기 [부부 육아일기 2화]|작성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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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으면 어른 된다’는 말이 싫었다. 인간의 성장이나 성숙이 그런 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은 이후 나는 많이 변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 자체가 달라진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각도에서는 보수일 수도, 어떤 각도에서는 진보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에 대한 판단은 미루고 싶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이를 낳은 후의 나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20대의 나는 자주 손끝이 차가워질 정도로 불안해했다. 아이를 낳은 30대의 나는 그런 20대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이가 내 불안을 줄여준 것인지, 엄마 노릇을 하기 위해서, 아이에게 불안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달라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아이를 낳고 훨씬 안정됐다.


 

육아로 성취의 삶 멀어질까 두렵던 나
그런데 성취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사회가 주입한 메시지, 틀렸음을 알았다

 

물론 육아는 힘들었다. 아이는 24시간 나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였다. 자는 시간마저 온전히 확보되지 않자 아이를 돌보기 위한 준비가 하나도 돼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도 나 외의 존재를 온전히 돌본 적이 없었구나. 이런 종류의 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운 적도 없었구나.’ 몸이 ‘돌봄의 하루’에 적응하면서 ‘돌보는 존재’를 배워가자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삶은 무엇인가. ‘아이를 낳게 되면 모든 것이 멈춰지는 게 아닐까’ 두려워했었다. 육아휴직 전 나는 ‘아이를 기르는 동안 성취의 삶과는 멀어지겠지만’이라고 적었었다. 그런데 그 ‘성취’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성취인가. 아이를 낳고 나는 그동안 주입받아왔던 사회의 메시지가 틀렸다는 것을 확신했다.


 

 

결혼한 지 7년,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애를 써온 남편은 3월부터 육아휴직을 한다. 주 양육자가 되는 것이다.

■ 누군가를 돌보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

첫아이를 낳고 아이를 돌보는 일이 벅찰 때였다. 어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심지어 혼자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아기를 보고 두려웠을 때. 어느 날 횡단보도 앞에 섰다. 맞은편에 십여명의 사람들이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울컥했다. ‘저 사람들도 내 아기처럼 아기였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우리 모두 언젠간 아이였고 누군가의 도움, 돌봄 없이는 클 수 없는 존재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횡단보도에 서 있던 나는 파란불로 바뀌자마자 달려서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를 돌보러 얼른 가야 할 것 같아서.


 

언젠가 노인이 되어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살 수 없는 시절이 올 것이다. 아주 조금 겸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이라는 미숙한 존재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해도, 아무리 높은 지위로 올라가도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아이를 낳기 전에는 성취의 메시지에 가슴 떨린 적이 많았다. 잘하고 싶었다. 일도, 일 밖의 것들도. 그것들이 나를 괴롭혀도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그 성취는 누구의 기준인가? 그 기준에 따르면 아이를 키우는 것은 성취가 될 수 없었다. 달리고 또 달려서 높이 올라가려는 남성의 삶을 지향한 것은 아니었을까. 임신하고 배가 나오니 달릴 수 없었다. 아이를 안고서도 달릴 수 없었다. 달릴 수 없는 삶은 후퇴한 삶인가? 주로 여성들이 해온 출산, 양육의 가치를 폄하해온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회사에서부터 대중매체, 정치권까지 아이 기르는 삶을 폄하하는 말은 곳곳에 있었다. 기저귀도 한번 갈아보지 않은 자들이 ‘기저귀를 갈고 아이 엉덩이가 짓무르지 않게 노력하는 삶’을 깔아뭉갤 때 생각했다. ‘뭔가 잘못됐구나.’


 

아침에 아이들이 파고드는 행복한 시간
아이가 필요로 할 때 멈춰서며 배웠다
꼭 성취 위해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사실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세상이 ‘기저귀 가는 삶’을 무시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다르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다르게 살겠다고 아등바등한 결과는 나 또한 기저귀 가는 삶을 무시해왔다는 슬픈 깨달음이었다. 아이가 내게 알려줬다. ‘엄마, 나는 엄마가 필요해요.’ 아이의 눈빛이 나를 필요로 할 때마다 나는 주춤했다. 멈춰서야만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평온해졌다. 달리지 않아도 되어서가 아니었을까. 이제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침에 일어난 작은 아이들이 내 품에 파고들 때다. 이 행복을 왜 나는 밀어내려고 했을까. 아이를 낳기 전의 내게 말해주고 싶다. 꼭 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가 사뿐사뿐 걷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어릴수록 걸음에 몸무게를 싣는다. 20㎏이 넘는 첫째보다 13㎏에 불과한 둘째의 발소리가 훨씬 크다. 사뿐사뿐 걷는 것도 배워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이런 작은 것들을 배워왔다는 사실을 아이들을 통해 배운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심어주려고 했던 모성은 여전히 내게 없지만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스스로 내 모성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어쩌면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이렇게 모성을 긍정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아이를 낳은 이후의 내가 더 좋다. 내가 모성을 긍정하는 이유다.


 

■모두가 돌봄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회

내가 모성을 긍정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남편 덕분이다. 결혼한 지 7년이 지난 지금 남편은 이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애써왔다. 돌볼 시간을 내주지 않는 사회에서 남편과 나도 많이 싸웠다.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전쟁이니까. “남편 좀 풀어주라”는 농담 앞에 속수무책이 되어버릴 때도 많지만, 또 어떤 날은 남편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잖아’라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으면 힘이 빠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남편과 논의한다. ‘여성의 전유물인 돌봄’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함께하는 돌봄’으로 ‘서로돌봄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믿으니까.


 

한국에서 남성이 ‘돌보는 존재’ 된다는 것
벅차고 힘들지만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그렇게 ‘서로돌봄의 사회’로 나아가기를

 

남편이 3월부터 육아휴직을 한다. 남편이 주 양육자가 되는 것은 처음이다. 오랜 시간 아이 둘을 돌봐온 친정엄마의 무릎이 탈이 났고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오전 11시40분에 하교한다. 선택지가 없고 너무 당연한 결정이라 생각하지만 결정은 쉽지 않았다. 당장 경제적인 상황을 걱정해야 해 오래 육아휴직을 쓸 수는 없다. 길어도 6개월만 쓰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남편에게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돌봄을 전담하는 존재일 때만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의 결이 남편에게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줄 것이다. 남편이 돌봄의 기쁨을 많이 누리길 바란다. 내가 육아휴직을 했을 때 그랬듯이.


 

그럼에도 한국에서 남성이 ‘돌보는 존재’가 되는 것은 여전히 벅찬 일일 것이다. 걱정하는 내게 남편이 자신의 지난해 일기를 보여줬다.


 

“두 돌이 다 되어가는 이준이는 어느새 제법 말을 한다. ‘아빠 미워!!’ 이준이는 얼마 전부터 단것을 못 먹게 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못 갖고 놀게 하거나 하면 이런 말을 한다. 어제는 친구가 갖고 온 장난감을 하염없이 갖고 놀기에 이제 자자 했더니 ‘시러. 여기 더 있스 거야’라고 한다. 어제 아침에는 녀석을 안고 교차로에 서 있었다. 햇살은 눈부셨고, 녀석과 손을 잡고 어린이집까지 걸었다. 이준이 녀석과 손잡고 걸으면 좋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녀석의 작은 손을 잡고 걷는 일 자체가 좋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귀여워한다. 한참을 손잡고 같이 걷던 녀석은 갑자기 ‘아나저요’라고 한다. 번쩍 들어 안아준 녀석이 내 품에 폭 안긴다. 폭 안긴 녀석을 안고 봄날 가로수의 연둣빛으로 가득한 교차로를 바라보고 서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인생의 짧은 순간은 그렇게 간다. 그날따라 이준이는 어린이집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며 울었다. 울지 않아도 녀석이 빠빠이 하며 손 흔드는 모습만 봐도 늘 가슴이 아팠다. 녀석의 손은 늘 내 가슴을 휘저어 놓곤 했다. 아, 그냥 녀석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 전체를 봐선 나은 일 아닌가. 두진이 때도 똑같이 들던 생각이다. 못난 아빠는 또 이렇게 글을 남긴다.”(2018년 5월11일)


 

남편의 일기를 읽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린이집에서 아이에게 손을 흔들 때마다 느꼈던 감정을 남편도 느끼고 있었다는 것, 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인생 전체를 봐서는 나은 일이 아닐까 고민했던 것 모두 나와 너무 똑같아서. 잠을 하도 안 자서 애먹였던 아기 두진이는 이제 엄마를 걱정해줄 줄 아는 어린이가 됐다. 어제 둘째의 장난으로 머리를 꽈당 박은 나는 머리를 감싸고 엎드려 있었다. 두진이가 내게 와서 “엄마 괜찮아?”라며 짧은 팔로 나를 안고 ‘호호’ 불기 시작했다. “엄마 괜찮아질 거야. 금방 괜찮아질 거야.” 언젠가 자신에게 건넸던 말들을 내게 돌려주는 아들의 얼굴을 보는데 ‘내가 너를 돌보는 것인가, 네가 나를 돌보는 것인가’ 눈물이 나려 했다. 남편도 비슷한 경험을 했나보다.


 

걱정하는 내게 남편이 보여준 육아일기
아이를 통해 배우고 위로받던 내 모습이
그의 일기 안에도 고스란히 들어있다

 

“두진이가 오늘은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힘이 센데 왜 힘들어해?’ 청소기를 돌리면서 꽤나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나보다. ‘그러게. 힘이 센데 왜 나는 힘들어하고 있을까.’ 몸이 너무 피곤하다. 오후 4~5시만 되면 뇌가 흐물흐물해져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애들을 볼 때도 별일 아닌데 소리를 빽 지르고는 금세 후회를 한다. 오늘도 잠자리에서 녀석의 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미안해 두진아, 너한테 더 사랑을 줘야 하는데… 아빠가 사랑하는 거 알지?’ 물론 녀석은 듣고도 암말도 않는다. 자면서 가끔 녀석의 손을 만지작거려본다. 너무 작고 부드러워서 부서질 것만 같았던 손은 제법 두툼해졌다. 최근에 장인어른이 백내장 수술을 하셨다. 어디선가 그 말을 들었나보다. 몇 주 전인가, 책을 읽어주는데 갑자기 ‘아빠는 수순하지 마’ 이런다. 뭔 말인가 싶어서 몇 번 다시 물어보자 ‘눈 많이 써서 아프면 안돼’라고 말한다. 아빠는 수술하지 말라는 얘기였던 거다. 수술이 뭔지도 모르는 녀석이… 마음이 뜨끈해졌다.”(2018년 4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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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es 2019.02.26 2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너무 좋아요.. 출산 후 육아분담 계획 세우는 중인데 흘러흘러 이 곳을 발견했어요. 저도 워킹맘 이란 단어를 증오하는 사람이예요. (여자에게 가사육아노동과 근로노동을 떠넘기는 느낌이랄까?)
    기자님처럼 저도 아기라는 인생의 첫경험을 남편과 온전히 함께하고 싶네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9.03.03 15: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워킹맘은 엄마들한테 모든 것을 전가하는 말이지요. ㅠㅠ 저도 웬만하면 워킹맘이라는 말을 안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육아분담 계획을 세우고 계신다니... 파이팅입니다!! 많은 순간 지치고 멈춰서고 싶을 때가 있으시겠지만 그래도 아기를 보며 힘내시길요. 앞 문장을 쓰고 나니 많은 일들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저는 아이 낳은 후의 제가 더 좋아요. 엄마든, 아빠든 아이 낳은 후의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댓글 감사합니다.

<워킹맘이라는 말이 숨기려는 것>


 한 언니의 글에서 “워킹맘이라는 표현이 정말 싫다”는 문장을 읽었을 때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맞다. ‘밖에 나가 일하는 엄마’만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엄마는 일을 안 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그 언니가 ‘취업모’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저 임금노동을 하고 있을 뿐인데. ‘워킹맘’이라는 단어에 숨은 가사노동과 육아에 대한 경시, 어쩌면 천시를 나도 몰랐던 건가. 한 국회의원이 ‘밥하는 아줌마’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정말 화가 났다. 국회의원 정도 되는 여자는 밥하는 아줌마들을 무시해도 되나.

 

 두 번의 육아휴직 동안 ‘잘 쉬어’, ‘쉬어서 좋겠다’라는 말을 들으면 분했다. ‘쉬긴 뭘 쉬어. 하루종일 신생아랑 있어봐라’ 라며 입술을 꽉 깨물 때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 전업주부로 평생을 산 우리 엄마. 엄마는 두진이와 이준이를 봐주면서도 “놀면 뭐해. 손자들 돌봐주는 거지”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럴 때마다 난 “엄마가 놀긴 뭘 놀았어요. 나를 키우고 수많은 일들을 했잖아”라고 말하지만 공허하게 느껴졌다. 나조차도 휴직하기 전 글을 썼었다. “이제 내가 성취라 믿어온 것들은 잠시 멈춰지겠지만”이라고.


 이 ‘성취’의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좋은 회사 직원으로 살라’는 이 성취의 기준을 별생각없이 받아들였던 10대 20대의 나를 돌아보는 요즘, 그 성취의 기준이 흔들리는 요즘,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성취를 지향하라고 가르쳐야 하는지 헷갈린다.

 

 두진이가 일곱살이 되면 혼자 설거지하고 싶다는 소망을 그렸다.

두진이가 열심히 설거지하면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서 칭찬해주는 모습. 사진에 엄마는 없지만 할머니는 있다. 이 사진을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서운해해야 하는 건지 나는 여전히 헷갈린다.

 


 아이를 낳고 난 내 시간을 잃어버렸다. 오히려 회사 와서 밥 먹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해방구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려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그런 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렸다는 고백을 하는 중이다. ‘돌봄’이란 그런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내 몸으로 누군가를 온전히 돌보는 경험.

 

   주말에는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쓴다. 작은 존재를 돌보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아이들 밥을 먹이고 작은 아이 기저귀를 갈고 졸리면 혼자 자지 못하는 둘째를 안고 어르는 이 ‘작은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알게 됐다. 하루종일 그 일만 하다가 시간이 흐른다는 것, 우리 엄마도 나를 그렇게 길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엄마의 노고를 새삼 되새기는 중이다.


 고3 때 새벽에 일어나 아침 일찍 학교를 갈 때 엄마는 늘 새 밥을 지어줬다. 내가 좋아하는 두릅을 데쳐주고 삼치를 구워줬던 엄마의 밥상을 ‘받고’ 학교를 가는 일이 당연했었다. 그런데 ‘임금노동’을 하는 나는 집안일을 다 ‘아웃소싱’한다. 빨래는 건조기에, 반찬은 ‘더반찬’ 배송에 의지한다. 아직 두 돌도 안 된 우리 둘째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는 ‘사온 반찬’을 먹여 키운다. 나는 가끔, 아이들 밥상이 내가 먹었던 밥상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 헷갈린다. 가사노동과 육아를 아웃소싱해야 하는 내 인생이 맞는 건가.


 그렇지만 난 여전히 내 일을 좋아한다. 회사 가는 것이 좋고 회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기사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좋다. ‘82년생 김지영 세대’들은 다 그럴 것이다. 자기를 증명하는 일은 여전히 소중하다. 그런데 합계출산율이 1.06명을 찍을 것이라는 시대에 나는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평일엔 친정엄마의 ‘돌봄노동’ 의지해 내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엄마에게 미안한 ‘죄인’ 신세지만 또 친정엄마의 ‘돌봄노동’ 덕분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늘 안도한다.

 

    운이 좋아서다. 서울에 계시는 친정엄마가 아이를 흔쾌히 돌봐주겠다고 하는 ‘운’ 말이다. 그래서 난 가끔 내가 쓰는 글이 두렵다. 친정엄마를 착취해 일을 유지하는 내 상황이 도와줄 가족이 없어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어떤 엄마들을 속상하게 만들까봐.


 그런데 왜 엄마들만 자꾸 일이냐, 육아냐를 선택해야 하나. 왜 엄마들만 ‘전업맘’, ‘워킹맘’으로 구분하나. 맞춤형 보육 논쟁 때 어린이집에 보내는 전업맘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들에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는 하루종일 아이만 돌봐야 하나. 어쩔 수 없이 아이 때문에 집으로 돌아간 ‘경단녀’들은 아이에게 속박된 신세로 늙어야만 하나. 공부를 하든, 취업준비를 하든 자기 시간을 가지면 안되나. 정말 답답할 때는 친구를 만나 커피숍에서 브런치를 먹으면 안되나.

 

   육아휴직 중에 치과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친정엄마가 바쁘실 때라서 치과 예약을 두 번 미루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내 몸에 달라붙어있는 이 작은 아기 때문에 내 이 치료도 못 받는 게 ‘엄마의 신세’다. 그마저도 엄마가 아이를 봐주셔서 난 치료를 받으러 갈 수 있었다.


 가끔 ‘워킹맘의 성공 서사’를 읽는다. 대부분 ‘할머니 육아’ 덕분에 끝까지 갈 수 있었던 얘기들이다. 어떤 회보에서 워킹맘이 자식 대학 잘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글을 읽을 때는 울적했다. 할머니 덕분에 아이를 키우고 결국 엄마가 아이의 적성을 파악해 학원을 고르고 ‘서포트’해 대학을 잘 보내는 이야기, 개인이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 답답했다. 이제 난 그런 성공 서사가 지겹다. 내 아이들에게 이 구조에서는 이렇게 사는 게 유리하다고 가르치고 싶지 않다.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은 1500원짜리 커피를 사 먹었다가 어떤 ‘남자’들이 자기를 ‘맘충’이라고 욕하는 걸 듣는다. 토요판에 일하며 아이 키우다 소진된다고 글을 쓰니 ‘외벌이하며 아껴쓰라’는 댓글이 달렸다. 여자들은 일하러 나오면 ‘욕심이 많은 여자’라고 비난받고 집에 있으면 ‘논다’고 비난받는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전업맘은 ‘논다’고 말하고 워킹맘은 ‘죄인’이 되는 세상이니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거다.


 입사 동기인 남편과 나는 월급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누가 그만둬도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을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가끔 헷갈린다. 남성은 나가서 일하고 여성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가부장적 모델’을 버린 국가들이 출산율 반등에 성공했다. 엄마들만 전업맘, 워킹맘, 경단녀로 구분하는 사회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암담한 미래 뿐이다. 돌봄노동을 아빠와 엄마가 함께 할 수 있어야, 아빠가 돌봄노동을 할 수 있도록 집에 일찍 돌아와야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배우자보다 임금이 낮아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이 활기차게 자신의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길. 하루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느라 아이 얼굴도 못 보는 한국 남성들도 일찍 퇴근해 아이하고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소망해본다.


 이 글을 쓸 생각을 하게 된 “워킹맘이라는 표현이 정말 싫다”는 말을 했던 언니는 밖에서 보기엔 ‘전업주부’다. 임금노동을 하진 않지만 수많은 활동을 한다. 임금노동보다 의미있어보이는! 아이를 공동육아로 키우면서 선생님을 하고 아이 초등학교 교육도 공동육아처럼 시키고 싶어 학교도 준비 중이다. 그리고 ‘정치하는엄마들’이라는 공동대표로도 열심히 뛰고 있다. 그가 쓴 발제문, 토론문을 보면 어떤 전문가가 쓴 글보다도 훌륭하다는 느낌을 여러번 받았다.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 활동들이 ‘돈’으로 치환되지 않을 뿐. 지난해 만난 사람 중 가장 빛나는 사람, 응원한다는 말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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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니 2018.01.24 1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읽었어요 같은 육아맘이라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요
    혹시 죄송하지만 티스토리 초대장 보내주시면 안되나요?
    01194358693@hanmail.net
    티스토리 하고픈데 초대장이 있어야 한대요ㅠ부탁드려용

<복직 후 한 달 소진증후군’, 그리고 아빠>

 

어느 새 복직 후 한 달이 됐다. 816일에 복직했으니 정말 한 달. 출근하고 하루만에 감기에 걸려 복직을 실감했다. 심한 감기는 아니었는데 코가 막히고 목이 붓기 시작해 바로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왔다. 실감이 났다. '회사로 돌아왔구나.' 

 

그리고 4주가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평일에는 출근하고 퇴근하고 아이들 재우다 뻗었고 주말에는 각종 집안일을 챙기고 아이들과 놀다가 뻗었다. 한 달이 지나고서야 이렇게 끄적일 시간이 난다. 어제도 애들 재우다 뻗었는데 웬일인지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노트북 앞에 앉았다.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체력이 관건이다. 출근길 열심히 타지를 체크하고 출근하자마자 아침 보고를 하고 하루종일 보고를 하고 기사를 쓰다 보면 퇴근 시간이 넘어간다. 사실 이 일이 퇴근 시간이라는 게 명확하게 없어서 집에 와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기사를 살펴보고 메일을 체크하다보면 아 내가 복직했구나를 실감하곤 했다. 물론 아직 새로운 담당에 적응을 완전히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한 달 동안 오랜만에 일터로 나와서인지 계속 배가 고팠다. 한 번은 선배랑 저녁으로 떡볶이를 먹고 났는데 양이 부족했는지 혼자 회사 아래 빵집에 들어가서 빵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났는데도 빵을 먹는 스스로를 보며 휴직 때보다 체력 소모가 커지긴 했구나싶었다. 그래도 한 달이 지나니 많이 적응했다. 이제 배가 많이 고프진 않다. ㅎㅎ

 

 

아이들은 생각보다 적응을 잘 하고 있다. 둘째 이준이는 무던해서인지 엄마가 출근할 때 곧잘 손도 흔들어준다. 복직 첫날 뭔가를 알았는지 서글프게 울더니 그 다음날부터는 크게 울지 않았다. 자신의 분리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겠지 싶으면 너무 짠하지만 뭐 어쩔 수 없다. 적응을 해야 하니까 이준이도 나도. 그래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종종거릴까봐 많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아직까진 수월하다. 종알종알 말이 많은 첫째 두진이도 잘 적응하고 있다. 물론 엄마 야근하는 거 싫어. 엄마 오늘도 회사 가?” 물어보긴 하지만... 뭐 울고불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걱정은 덜었다.

 

남편의 육아 부담은 늘었다. 아침에 친정엄마가 두 명을 다 등원시키긴 쉽지 않고 해서(첫째 유치원과 둘째 어린이집은 반대 방향에 있다) 남편이 두진이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출근한다. 내가 먼저 출근하고 나면 애들 밥을 먹이고 씻겨 옷을 입혀놓고 두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준다. 매일 두진이가 유치원에 일찍 안 들어가려고 해서 지각할까봐 뛰어다니느라 전쟁이다. 두진이는 친구들이 없는 유치원 교실에 들어가기 싫다고 매일 유치원 현관 앞에서 늑장을 부린다고 한다. 일찍 들어가게 하는 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데 아침마다 빨리 밥 먹어라, 빨리 들어가라 전쟁 전쟁.

 

제일 고생하는 사람은 당연히 우리 엄마. 아이들이 하원하고 나나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을 돌보신다. 한두 줄 묘사하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고생하고 계시겠지. 고등학생인 아들을 친정엄마가 다 키워주셨다는 홍보팀 차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말했다. “제 바이라인에는 언제나 엄마 이름이 숨어있죠.” 더 말하면 울적해지기만 하니까 여기까지.

 

그러다 이준이가 주초부터 장염에 걸렸다. 심하진 않은데 먹을 것을 가려야하다 보니 어린이집에 가기 어려워졌고 다시 아이는 할머니 차지. 엄마가 힘들지 않게 조율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서 잠시 짜증이 났다. 화가 나는 대상은 없는데 상황에 화가 나는 이상한(?) 상황. 두진이를 낳고 돌아왔던 회사 생활에서도 늘 겪던 일이다. 다행인 건 그때만큼 심하게 화가 나지 않는 것.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회사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다행히 감정 조절은 잘 되고 있는데 한 달이 지나니 슬슬 소진증후군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다. 피곤함이 잘 해소되지 않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한 달인데.

 

나는 왜 일을 하는가. 친정엄마의 헌신 덕분에 일을 하는 고마운 팔자에 일을 제법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긴 노동시간을 당해낼 재간은 없는 건지. 출퇴근 시간 포함해 하루의 절반을 회사를 위해 보내야 하는 일상. 화요일에는 11시까지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잠시 아득해졌다. ‘나는 왜 일을 하는가.’

 

자꾸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일을 했을까. 야근이 끝나고 지하철역을 나와 집으로 걷는 길 저벅저벅 집으로 걸어가는 수많은 남자들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퇴근했을까.’

 

어릴 때 아빠는 평일에 볼 수 없었다. 거의 내가 잠든 뒤에 아빠는 퇴근했고 주말에만 볼 수 있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좋았던 기억이 많다. 주말에는 가족이 같이 등산도 했고 점심에 라면도 끓여 나눠 먹었고 목욕탕에 넷이 가서 두 명씩 남탕, 여탕에 들어갔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래도 주로 남아있는 기억은 방학 때 엄마와 동생과 지내던 기억이다. 아빠는 늘 회사에 있었으니까.

 

그걸 원망했던 적은 없었다. 그게 당연한 삶이었으니까. 6일 회사에 투신하고 토요일 오후 늦게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삶.

 

내가 회사원이 되고 나서야 아빠의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사회부 경찰팀에서 일할 때 당시 팀 분위기 때문에 징그러울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다. 회식 자리에서 내 앞에 앉아 있는 경찰 아저씨(?)를 보며 경찰 아저씨는 이 자리가 즐거울까생각하다가 집에 돌아와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도 술을 마시고 싶어서 마신 것은 아니었구만요? 고생하셨네요...” 회식 자리에 앉아 있으며 계속 생각했다. 회사 일이라는 명목으로 술을 마시며 영업도 하고 인간관계도 유지하기 위해 고민했을 아빠의 삶에 대해.

 

아빠는 은행원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 때였다. 그날도 역시 내가 잠든 뒤 퇴근한 아빠가 화장실에서 피를 토했다. 그 소란에 깨서 화장실 타일 바닥에 흥건한 피를 보고 놀랐던 어린 나. 과도한 노동, 과한 회식 문화, 과로가 겹친 일이었을 게다. 그 장면은 너무 생생해서 내가 회사원이 된 뒤 소진된다고 느낄 때마다 떠올랐다. 더 슬픈 건 그렇게 소진되도록 부려먹었던 회사가 아빠를 버린 건 40대 중반이었다. IMF 때 명예퇴직한 아빠는 그 후로 20년을 계약직으로 사셨다.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일했을까 생각하다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밥벌이를 한다는 것에 대한 서글픔이 몰려온다.

 

애써 일이 좋아서라고 말하지만 나는 크게 다른 걸까. 복직 전 이게 제일 두려웠다. 회사 일 때문에 절반이 넘는 시간을 써야하고 주말에만 겨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삶. 그리고 그동안에 소진되어야 하는 쳇바퀴. 나는 엄마와도, 아빠와도 다르게 살고 싶었는데 힘들어보였던 엄마, 아빠의 삶을 넘어서기는커녕 어떤 면에서는 더 나빠졌다는 것을 깨달을 때.

 

한 취재원은 아이가 5살, 2살이라고 했다. 토요일에 아내 생일이었는데 금요일 저녁 약속이 생겨 갈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혹시 이 자리를 가지 않으면 멋훗날 내가 그 자리를 갔어야 했는데 후회하지 않을까, 아니 이 자리를 나가면 내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내 생일인데도 새벽에 들어가면서 '이게 뭔가' 싶었다고. 후배는 말했다. "선배 전 일-가정 양립이라는 말도 이상해요. 가정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요?" 아... 그러게 말이다.

 

내 아이들에게는 이런 생각을 하게 하고 싶지 않다. 일 때문에 소진된다는 생각. 소진될 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밀려날 수 있다는 생각. 늦게 퇴근하는 축 처진 어깨들도 물려주고 싶지 않다.

 

답은 어디에 있을까. 노동시간 단축을 말하는 게 뻔한 답인지 알면서도 멀고 먼 길이라는 게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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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체아 2017.09.16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복직, 아이의 적응, 답없는 상황에 대한 화, 감정 조절, 풀리지 않는 피로, 취직하고 나서 이해할 수 있게 된 아빠, 일을 히는 이유에 대한 끝없는 고민, 일과 가정의 양립, 너무도 분명한 우선순위... 많은 것들이 제가 겪고 느껴왔던 것들과 닮아있어서 마치 제 일기를 보는 것도 같아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과정일거라고 믿고, 첫째때보다는 둘째때가 조금은 더 낫기를 바라고, 나때보다는 내 여동생때가 조금 더 나은 상황이길 바랍니다. 많은 공감을 하고 가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9.28 2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저도 제 아이들의 세상은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요. 어떤 거창한 생각보다 이런 마음들이 모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요. 힘내시고... 연휴 잘 보내시길요.^^

둘째가 돌이 되었다. 형은 돌잔치를 했는데 동생은 지나칠 수가 없어서 돌상을 차리고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그것만 해도 할 일이 넘쳐나 너무 바빴다. ‘... 난 이 집의 집사인가, 매니저인가싶을 때 우울하다. 아이들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으니 뭐든지 엄마 손이 필요하다. 밥을 먹어도, 옷을 입어도, 심지어 화장실을 가는 일도. 기저귀를 차는 둘째는 말할 것도 없고 첫째도. 아 왜 이렇게 인간은 무력한 존재로 태어나는 것인가.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 조금 있으면 걸어(?)다니고 혼자 밥 먹고 자립하던데 왜 이렇게 인간은 모든게 오래 걸리는가. 첫째를 낳았을 때 했던 쓸데없는(?) 의문은 여전히 똑같다.

 

둘째 기저귀를 갈다가 물 달라는 첫째에게 떠다 먹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참고 물을 따라준다. 그 사이 둘째는 안아주지 않는다고 칭얼대고. 내 팔이 여덟 개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다 내가 세 명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한 명씩 안아주고 한 명은 집안일 하고 책도 볼 텐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오래 한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간다. 이제 두 달 반 남았다. 첫 번째 휴직 땐 하루빨리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다. 말 못 하는 아이와 하루 종일 있다 보면 우울함이 몰려왔다. 동네에서 친구 한 명도 못 만들고 네트워크가 쪼그라들어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던 하루하루 놀이터를 빙글빙글 돌면서 서글펐다. 왜 아무도 엄마 노릇이 이렇게 외롭다고 알려주지 않았나.

 

그런데 두 번째 휴직 땐 친구가 생겼다. 바로 우리 첫째. 6세가 된 우리 집 꼬마가 말을 하면서 하루종일 심심할 새가 없다. 이유식을 만들던 날이었다. 오후에 2시간 정도 싱크대 앞에 서 있느라 첫째가 놀자고 하는데 두 번인가 거절했던가. 밤에 재우려고 누웠는데 괜히 미안해서 두진아, 엄마가 오늘 이유식 만드느라고 레고 같이 못 만들어서 미안해.” 첫째가 대답했다. “괜찮아.” 너무 담담한 대답에 괜찮아?”라고 물으니 첫째는 말했다. “엄마가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그 말을 듣곤 눈물이 죽죽.

 

첫째는 로맨틱하기도 하다. “엄마 주머니에 하트가 있어.” “?” 내 주머니에서 첫째의 작은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이 작은 하트를 만들고 있었다. 아 남편보다 로맨틱한 아들. 이러니까 아들 키우면 연애하는 기분이 든다고 하는구나 싶다.

 

돌잔치 때 찍은 전문가 버전 형제 사진.

 

말하는 아이와의 상호작용이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종알종알 떠드는 꼬마의 입술을 보고 있자면 세상이 갑자기 평화로워진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런 평화로움을 느껴보지 못했다. 나는 자주 우울했고 자주 불안했고 화를 다스리지 못해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나를 조금 달라지게 만들었다. 아이에게 불안한 지지대가 되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이한테 제일 많이 해주는 말은 괜찮아. 두진아, 넘어져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조금 다친 건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등등. 그러다 보면 나도 괜찮아지는 기분.

 

어제 둘째가 내 팔을 물었다. 이가 여섯 개 난 둘째는 가끔 세게 문다. 악 소리가 나서 일부러 엄살을 부리며 첫째에게 엄마 너무 아파엄살을 부리니 괜찮아, 엄마라면서 토닥토닥 해준다. “엄마 안아줘 두진아하니까 작은 팔로 엄마를 안아준다. 아이의 작은 팔에 안길 때면, 아이가 내 목을 끌어안을 때면 왜 그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뭉클해서일까. 이제 엄마를 위로할 수 있게 된 첫째, 그리고 돌 갓 지난 둘째. 아들들을 안고 있으면 그 품 안의 세상은 따뜻하다. 따뜻해서 눈물이 난다.

 

물론 이런 말도 한다. 요즘 복직 전 체력 단련으로 근력운동을 하는데 내가 근력운동을 할 때마다 옆에서 따라하는 첫째. 하도 귀찮게 해서 근력운동 동영상을 못 보게 하니까 ? 이유가 뭔데? 왜 못 보게 하는 건데?” 따박따박 따진다. 이제 54개월인데 이유가 뭔데라니... 엄마 말투 따라하지 마라. 매일 엄마 말투를 따라하며 하면 돼, 안돼?”라며 동생에게 훈계하기도... 나중엔 얼마나 따박따박 따질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이들과 하루종일 있는 게 힘들다고 투덜거렸지만 복직이 코앞에 다가오자 걱정이 많이 된다. 난 일과 아이들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을까.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짧아지는 걸 메울 수 있을까. 아니 아이들과 하루종일 있었던 좋았던 시간을 그리워하게 되면 어쩌지...

 

어쩌면 내가 제일 걱정하는 건 마지막에 적은 문장이다. 이 시간을 그리워하게 되면 어쩌지. 이 작은 존재들이 내게 만들어줬던 행복한 순간들이 자꾸 그리워지면 어떡하지. 하루하루 커버리는 이 작은 존재들이 그리우면 어떡하지.

 

부모가 되면 사랑을 많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뚝뚝했던 부모님보다는 애정을 많이 표현하는 따뜻한 엄마가 되어야지 생각했다.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해줘야지, 자주 안아줘야지, 잘하는 일은 몇 배로 칭찬해줘야지. 그런데 막상 낳아보니 정작 사랑을 받는 건 나였다. 엄마를 향한 맹목적 애정. 아빠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따라갈 수 없는 엄마에 대한 애정. 내 뱃속에 열 달을 살아서일까. 둘째 돌잔치날 원피스를 입은 내게 첫째가 말했다. “엄마, 너무 예쁘다. 공주님 같아.” 아 누가 날 이렇게 예쁘다고 해줬었나두진이는 엄마랑 결혼할 거야를 입에 달고 산다. “엄마는 아빠랑 이미 결혼했어라고 하면 아는지 모르는지 결혼하겠다고 우긴다. “나랑 다시 하면 되잖아~” 속으로는 나중에 여자친구 생겼다고 엄마는 신경도 안 쓸거 다 안다그러지만 내 입은 늘 웃고 있다.

 

엄마가 사랑을 많이 줘야 아이들이 쑥쑥 크는 줄 알았는데... 사랑을 받는 건 오히려 엄마인 나였다. 아이들에게 받았던 이 무한 애정을 잊을 수 있을까. 이 작은 존재들의 절대적인 애정과 지지, 아이들의 눈에서 발견했던 절대적 애정을 보고 느꼈던 감동과 행복을. 누가 날 이렇게 조건 없이 좋아해줬을까. 어린 시절 엄마? 아빠? 지금 이 시간들을 그리워하는 날이 오겠지. 이 작은 존재들이 나를 이렇게 좋아해줬던 순간 순간.

 

엄마는 항상 내 자신만 소중한 사람이었어. 연애를 해도 내 감정만 소중해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 적도 많았지. 그런데 너희들을 낳고 나서 정말 너희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게 되는 스스로를 보면서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많이 생각했단다. 너희들이 충만한 일상을 누리길, 어려움이 닥쳐와도 굳건하게 맞서고 유연하게 힘들어하길. 일상의 순간순간 평온함이 깃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좋아하는 것이 뭔지 찾을 수 있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다른 사람과 그 좋아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엄마는 그 과정에서 엄마가 실패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며 함께 할게. 뒤에 있을게. 언제나 지켜보고 있을게. 회사 가서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엄마는 너희를 생각하고 있을 거야. 미안하고 고마워. 이렇게 부족한 엄마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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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발바닥 2017.06.02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마는 사랑을 이야기 하는군요. 아이셋둔 아빠(저)는 아이들 행복하게 되길 희망하다보니 사람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살이를 이야기할때는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되고, 아이들이 좀더 살기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 참여도 많아졌으니 말이죠~~^^ 이 시대 부모들 모두 화이팅~~

  2. Favicon of https://praguelove.tistory.com 프라하밀루유 2017.06.02 20: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해외에서 18개월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 엄마에요. 많은 부분 공감이 가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읽었네요.

    외국에 있어서 저만 혼자 유모차 끌고 공원과 놀이터를 전전하는 줄 알았는데, 엄마들은 다 외롭나봐요 ㅠ.ㅠ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6.05 2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엄마들은 외로운가봐요ㅠㅠ 그래도 아이가 크면 친구가 되어주더라고요. 그게 36개월 지나면 급속도로 친구가 되어준 느낌요~~ 18개월이면 한창 힘드실땐데... 기운내세요!!

  3. 조이 2017.06.02 2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라하님 힘내세요

  4. 도윤맘 2017.06.02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첫째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외롭다는 구절에 공감하며 아 내가 그렇구나 문득 깨달았어요.
    이 밤에 많은 위로를 받고 갑니다.

    글쓴이의 말데로 사랑 받고 있다는 거
    날이 갈수록 많이 느껴요.
    다시 오지 않은 이 타임을 토닥토닥 위로하며
    다시 시작 되는 내일도 힘내요 파이팅❤️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6.05 2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아이의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요. 둘째 보면... 우리 막내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 내가 키우는 마지막 아기...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여유가 많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

  5. 고마리 2017.06.03 1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너무 아름다우신 두 아드님의 엄마!!
    님처럼 이렇게 견고하고 성숙한 사랑을 느낄 줄 아는 엄마의 아들들은 미래에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훌륭한 이 나라의 역군이 되어줄 것입니다.

    저도 엄마가 되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되었지요. 그래서 겁도 없이 셋이나 낳았고 직장다니면서 키우느라 많이 힘들었지만 너무 예뻐서 행복했더랬습니다. 엄마가 자녀에 대한 사랑을 느껴 본 사람들은 최소한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을거라고...남은 시간들도 아낌없이 사랑하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정 이루시길 축복하며 응원합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6.05 2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와 셋을 직장 다니면서... 정말 멋지십니다!! 맞아요. 아이에 대한 사랑을 느껴본 사람들은 최소한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을 거라는 말 공감 백개입니다. 아이의 눈을 보고 그러기는 정말 어려울텐데요. 이 마음을 잊지 않고 늙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

  6. 박신혜 2017.06.03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기억하시나요? 서강대에서 같이 수업들었던 박신혜에요.
    저도 10살짜리 딸을 키웁니다.
    정말 와닿는 글이에요^^그래서 아는 척 하고 갑니다^^

  7. 유림아빠 2017.06.03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그래요. 애들이 엄마 아빠 사랑을 받으면서 크기도 하지만 부모가 아이들에게서 받는 사랑과 배움도 정말 많죠.
    좋은 글 감사드려요.

  8. 2017.06.05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재민재희맘 2017.06.09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읽으며 눈물이 죽죽 흐르네요
    공감 공감 대공감 ㅠㅠ
    힘들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니 육아의 행복과 감사의 에피소드도 있었구나 떠올리게 되네요
    우리 아들들 멋지게 키우자구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7.30 14: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고마워요 지혜씨. 1년간 아들들한테 받은 사랑으로 복직 후에 버티게 될 것 같아요. 또 밤에 아들들 안고 자면서 힐링하고. 생각보다 육아가 체질?인가요?ㅋㅋㅋ 우리 아들들 멋지게, 예쁘게 키워요 ^^

그 선배 애 낳고 변하더라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더니 애 낳더니 어쩔 수 없나봐.”

 

결혼을 안 했던 시절 여자 선배들을 저렇게 묘사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애 낳으면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애 낳으면 일을 대충 한다로 이어져 애 낳은 여자들은 쓰면 안 돼에서 애를 낳을 수 있는 여자들은 쓰면 안 돼까지 연결된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땐 '결혼을 하면 안 되겠구나'부터 '다 그런 건 아닐 거야',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에까지 생각이 연결되곤 했다.

 

애를 낳고 알게 됐다. 가사 노동과 육아를 여성에게 떠넘긴 사회에서 회사 생활을 버틴 것도 대단한 것이라는 걸. 그나마 아이를 대신 맡아줄 가족(친정엄마나 시엄마, 아니면 시터이모님)이 없는 여자 선배들은 이미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을. 또 그 숫자가 적지 않았다는 것도. 게다가 그 선배들이 아이를 낳았던 시절은 출산 휴가 2개월밖에 주지 않던 때였다. 2개월이라니 2개월이라니. 아직 뒤집지도 못하는 아기를 떼놓고 출근하게 했던, 야만의 시절이었다.

 

복직 후 여자 선배들은 내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다. “애가 어릴 땐 일을 살살해도 괜찮아. 오래 버티는 게 중요한 거야에서부터 힘들지. 지금 정말 힘들 때야.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져”, “근데 정말 힘드니까 둘째는 낳지 마까지...

 

물론 나이가 열 살 이상 차이나는 선배들과 다른 생각을 가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선배들이 없었다면... 난 과연 이곳에 있었을까? 복직 후 그 생각을 많이 했다. '저 선배들 덕분에 내가 여기 있구나.' 표현한 적은 없지만. 그저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다녔다는 것이 고마웠다.

 

여기자가 없던 시절, 1/10이 여기자이던 시절, 그리고 2000년대 여기자가 많이(급속히?) 늘어나던 시절. 회사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끔 바지 입은 여자를 묘사하는 글을 읽는다. 직장 내 여자들이 늘어나도 그 여자들이 바지 입은 여자라 남자 상사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최근 페친의 추천으로 페이스북 COO인 셰릴 샌드버그의 <린 인>을 읽었다. 그 책에서 무릎을 치면서 웃었던 부분.

 

셰릴은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구글에서 일하고 있었다. 임신 3개월이면 끝난다는 입덧이 9개월 내내 계속됐고 어느 날 회의에 늦지 않으려고 겨우겨우 주차를 했는데 겨우 주차한 곳이 사무실과 멀어서 산처럼 부푼 배를 안고 겨우 회의실에 들어갔다는 이야기. 근데 그날 밤 야후에서 일하던 남편이 이야기한다. 야후에는 각 건물 앞에 임산부 전용 주차 공간이 있다고. 셰릴은 다음날 구글의 설립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사무실로 쳐들어가 회사에 임산부 전용 주차 공간을 가능한 한 빨리 마련해달라고 건의했다. 세르게이는 그 문제를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곧 사과하고 바로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셰릴은 말한다. “나 또한 내가 임신해서 발이 부어올라 쩔쩔맬 때까지 회사에 임산부 전용 주차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구글에서 최고참 여성 중역이었으니 당연히 생각했어야 할 문제 아닌가? 하지만 세르게이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다른 임산부 직원들은 배려해달라고 요청하지 못하고 묵묵히 불편함을 참았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감이 없거나 직위가 낮은 탓에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한 것이리라.”

 

이 부분을 읽으며 새삼 난 회사 화장실이 생각났다. 입사 초 편집국 화장실은 남자 화장실보다 여자 화장실이 더 좁았다. 기자가 남자만 있던 시절 남자 화장실 밖에 없었는데 그 공간을 일부 쪼개 여자 화장실로 만들었다고 들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2011년쯤 편집국 리모델링을 할 때 여자 화장실 크기가 더 넓어졌다. 여자 화장실에 대한 불만과 민원이 더해진 결과이리라.

 

여자가 늘어나면 뭐가 바뀌느냐고? ㅎㅎ 화장실이 생긴다. 웃기지만 편집국에 남기자만 있던 시절 처음 입사한 여자 기자는 어떻게 화장실을 다녔을까. 참 단순한 사실이지만 그 선배 덕분에 여자 화장실이 생겼을 것이고 또 여기자가 늘어나니 화장실도 커졌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간 임산부전용 주차장도 생기겠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남자 기자가 압도적으로 많던 시절(199쯤 되려나) 편집국에서는 담배도 피웠다고 한다. 요즘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풍경이다.

 

첫째를 임신했던 때 회식을 하던 중이었다. 남자 선배와 남자 동기가 회식 자리에서 담배를 피웠다. 속으로 생각했다. ‘임신 중이라고 말할까. 말까. 말할까.’ 결국... 말하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임신한지 몰랐을 뿐이었다. 그때는 괜히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기 싫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멍청했다. 그날 자리에서 나와 만만한 남자 동기에게만 말했다. “나 임신했어.” 쩔쩔매며 미안해하는 그를 보며 괜찮다고 했지만 이후 그 사건이 떠오를 때면 왜 나는 그 자리에서 말하지 못했나후회가 됐다. 이제 더 시간이 지나 회식 자리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에피소드 또 하나. 결혼 직후였다. 오랜만의 사내 커플이라 사람들의 장난스러운 시선도 꽤 있었다. 출근할 때였나 남편과 내가 한 엘리베이터에 탔다. 같이 엘리베이터에 탄 한 선배가 내게 물었다. “밥은 해줬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이미 얼굴엔 기분 나쁘다는 표가 다 난 뒤였다. 다행히 편한 선배였고 되물었다. “제가 왜 밥을 해줘야되죠?” 당황한 선배의 표정. 결혼한지 만 5년이 지난 지금이었다면 이보다 세련되게 받았겠지만 그때는 정색하고 말았다. 정말 다행히도 선배는 웃으셨고 그 이후부터는 남편만 보면 장난스럽게 밥은 해줬냐?”고 묻기 시작했다. 아마 처음에는 내 표정을 보고선 기분이 좋진 않았겠지만.

 

여자들이 늘어나 조직의 풍경을 얼마나 바꿨을까. 별 것 아니지만 남자에게 밥은 해줬느냐고 묻게 하는 것. 그게 시작이 아닐까. 셰릴은 <린 인>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제를 일으켜봤자 시끄러운 페미니스트라는 소리만 들을 터였다.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불이익을 지적하는 것이 푸념하거나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행동으로 잘못 해석될까봐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일했다.


해가 지나면서 여성 친구들과 동료들이 하나둘씩 직장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스스로 선택해서 떠나는 여성도 있었고 융통성을 허용하지 않는 회사에 떠밀리거나,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하지 않는 배우자의 요구로 낭패감에 휩싸여 떠나는 여성도 있었다. 직장에 남아 있더라도 주변의 대단한 기대를 충족시키겠다는 야망을 줄였다. 여성 리더가 출현하리라는 우리 세대의 희망도 점차 빛을 잃어갔다. 구글에서 근무한 지 몇 년이 지났을 무렵, 이러한 문제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내가 성 문제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현재 상황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세계에 진입한 첫 세대 여성들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내며 자신을 조직에 맞춰야 했는지 모른다. 어떤 때는 그것이 가장 안전한 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집단으로서의 여성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성은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하고, 자신을 뒷걸음치게 만드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요즘 대선 후보 배우자들의 인터뷰를 지나가다 몇 번 봤다.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남편 이승배씨의 인터뷰는 정독했다. “심상정 남편? 한 마디로 그게 뭐 어때서? 영광이지!’하는 생각이라는 답변과 제 처가 세상에 긍정적 기여를 하도록 옆에서 돕는 게, 저의 존재 이유의 핵심이라는 답변은 정말 멋졌다. 그리고 통쾌했다. 여성 정치인과 내조하는 남편이 보여주는 평등한 결합. 게다가 그 남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슈퍼우먼 방지법에 대한 설명이라니!

 

남녀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 조직, 나아가 이 사회의 건강에 좋다. 그게 회사에도, 국회에도, 고위 공직자의 세계에도 여자들이 절반을 차지해야 하는 이유다. 선배들이 버틴 덕분에 나는 둘째까지 육아휴직 1년씩 2년을 썼다. 내 여자 후배들은 육아휴직 2년을 남편과 공평하게 나눠 쓰기를 바란다. 또 내 남자 후배들은 육아휴직 기간 직접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

 

<린 인>에서 이 문장들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평등한 사회라면 여성이 국가와 기업의 반을 운영하고 남성이 가정의 반을 꾸려나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오는 아버지가 늘어나고 직장에서 일하느라 바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더욱 많은 선택 사항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상은 여성에게 성을 근거로 기대하지 않고 개인적인 열정과 재능, 흥미를 기준으로 기대할 것이다.(...) 내 아들이 풀타임으로 자녀를 키우는 중요한 일을 하고 싶어 하더라도 그 뜻을 존중받고 도움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 딸이 집 밖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기를 원하더라도 그 뜻을 존중받고 도움받을 뿐 아니라, 딸이 성취한 일들에 대해 타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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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며 2017.03.30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종류의 글이 페미니즘이 유행하다 보니 많이 보이는데요.얼핏 그럴 듯 하지만 사실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주장들이에요.
    일단 개인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과 다른 종류의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이런 논의가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논의의 순수하게 평등의 관점에서의 약점은 다른데 있으니까 그걸 얘기해보면요.
    모든 직업에서 성비가 일대 일이 되는 건 장기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많은 직업은 예비 단계인 대학이나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부터 성비가 확 갈리기 때문입니다.
    제가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이 아니라 거기는 잘 모르겠는데, 대학의 경우에 공대와 자연과학대와 인문대, 예술대는 성비가 확실하게 차이가 나죠.
    그리고 제가 아는 한 그건 무슨 성차별이 주요 원인이 아닙니다.
    공학이나 물리학 같은 학문의 주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여자 고등학생 수부터가 확실하게 남학생보다
    적어요. 자신의 가능성 같은 것 말고 관심 부터가 확실하게 차이가 나죠.
    물론 그런 관심의 차이가 사회에 퍼진 문화와 관계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전공을 갖지 못하게 하는 노골적인 입시 차별이나 전반적인 거대한 장벽이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전체 졸업자의 1/10 또는 1/100 밖에 안되는 여성을 무슨 수로 십년,이십년 뒤에 특정 직업의 주요 직위에 반을 채울까요? 만약 그 여성들이 언제나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잘하는게 아니라 동등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그 어떤 차별도 없고 경력 단절 문제가 해결되어도 절대로 반을 못 채우는 겁니다.
    실력에 관계 없이 무조건 억지로 반을 채우기로 정하지 않는다면요.

    단지 여성이 절반이 되는게 나름 좋은 점도 있을지 모른다는 까닭 하나만 가지고 주요 직위에 여자들을 채워야 하나요? 그 직위는 오로지 성평등을 구현하는 것 하나만을 목표로 존재하는 자리들이 아닙니다.

    반대로 수간호사 같은 자리는 실력있는 여자 간호사 모두 탈락시키고 억지로 반을 남자로 채워야 할까요?
    남자가 많은 전공이건 여자가 많은 전공이건 , 취직률이 높을 경우에 별짓 다해도 성비를 반을 못 채울 것 같지 않나요?

    여성이라는 까닭으로 직업을 가지고 일해 가는데 있어서 장애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게 바람직한 방향이기는 하지만, 그게 여성이 절반이 되어야 한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합니다.
    그걸 억지로 맞추는 것도 불가능하고 제도와 문화가 평등하게 바뀐다고 해서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절반이 되는 걸 어렵게 하는 문제들을 제거할 수 있을 뿐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이 엄청 싫어하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보다 높고,이공계에서는 70%입니다. 성평등을 위해서 여성 이공계 졸업자는 불이익이라도 줘야 할까요? 그런다는 말은 못 들어봤습니다.)


    • 또한지나가며 2017.03.30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나가며님께
      직업에 편견이 붙어있는게 문제인거죠
      간호사라는 직업은 남자도 할수있고 여자도 할수있어요, 하지만 남자간호사에 대한 사회 이미지가 남성으로 하여금 진입장벽이 있는게 아니라고 하실수있나요?
      미대와 예체능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학생이 미대를 진학하겠다는 것을 부모에게 이해시키는것도 여학생보다 훨씬 어렵죠.
      이건 여성에게도 해당되는게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이런 편견을 고쳐나간다면 미래에는 더 많은 선택지가 있는 사회가 되겠죠

    • ㅡㅡ 2017.04.01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 각각의 직업군 내의 성비를 1대1로 맞춰야 한다는 내용이 전혀 아닌데요. 당연히 직업마다 여성이 선호하거나 남성이 선호하는 직업군이 있을 수 있죠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상적이라고 하는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주입당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시대이니까) 여성에게만 육아의 부담을 지우는 사회 분위기가 여성이 직장을 다니는 데 큰 부담을 지게 하고 결국은 직장을 그만두게까지 하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문제라는 거예요. 간호사 중 여성의 비율이 9이고 남성이 1이었다가 여성이 이러한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어서 그 비율이 8대 2로 바뀌었다고 칩시다. 그래도 여자 비율이 월등하게 높으니까 불만 갖지 않고 가만 있어야 하나요? 어떻게 글을 이렇게 읽으실 수 있지?

  2. 지나가는 남성 2017.03.31 1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 공감합니다. 저도 변해보려고요.
    그래도 참 어렵네요. 아기 키우면서 회사 다닌다는 것이. 또 부부가 서로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래도 노력해야겠죠?
    노동시간 의무 단축을 포함해 다양한 논의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03 1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변하기 위해 노력하시겠다는 말씀이 넘 멋집니다. ^^ 대선을 계기로 많은 논의가 나와야하는데 항상 원하는 것보다 부족하죠. 또 실제 정책이 실현될지도 의문이고요. 그래서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할듯해요. 제 삶을 바꾸는 건 결국 제 자신이니까요. 댓글 감사합니다.

  3. Nine 2017.04.01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육아와 가정 생활을 좋아 하는 여성분도 계십니다.
    사회적 성공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아닙니다.
    여성이 육아를 책임지기 싫은 집이 있다면 남성이 지면 됩니다.
    역활은 반대로 하면 쉽게 해결 됩니다.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 나참 2017.04.01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부 둘 모두가 직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육아와 가사노동은 여자들의 몫이고 남자들이 안하니까 이런 글이 나온거죠(남자가 가사노동에 어느정도 기여하는지 통계적 지표들에서 아주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하면 쉽게 해결돼??? 말로 쓰니까 정말 쉽고 간단하네요. 입사면접볼때 출산계획 있냐는 질문 들어봤어요? 남자들에겐 저게 마이너스 요소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저런질문 안 들어봤겠지만 여자들은 항상 들어요. 일보다 육아가 더 좋은 사람, 있겠죠. 근데 그 비율이 정말 그렇게 높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러실수 있겠냐니ㅋㅋ 출산한 사람들이 가사노동에서 자아를 찾고 싶어서 직장 그만두는줄 알아요? 맨 첫문장에서 말했다시피, 남성중심적 사회이기 때문에 출산한 여성은 사회적 성공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래서 사회가 평등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문맥이 파악이 안되어서 의무교육은 수료하셨는지 궁금하네요

  4. Movelikejaggy 2017.04.01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껏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살아왔으니 이해가 안되겠지
    이제서야 여성들이 모여서 목소리내니까 너넨 왜그렇게 예민해? 라고 광광대는 인간들 역시나 속속들이 등장ㅋ 왜이렇게 성평등이슈에 한남들은 예민하게 구는지 ㅋㅋㅋㅋ

    기존의 가부장적이고 남성위주위 사회를 유지하고싶다는 한국남자들의 숨은 의도 너무 대단하네요 ㅎㅎ

    oecd세계에서 여성이 일하기 좋은나라 순위애서 우리나라 꼴지했구요, 남녀임금격차 심한걸로도 악명높아요 .. 팩트를 원하면 oecd홈피 가서 통계를 보세요

    • 얼씨구 2017.04.02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디 더러운 회사를 다녔는지 모르겠지만 체계를 갖춘 중소기업 수준만 되어도 동일노동에 남녀 임금 격차는 없다.
      하는 일이 다르고 시간이 다르고 책임이 다르겠지.
      가부장적이고 남성 위주의 사회를 유지하고 싶은 남자의 숨은 의도를 어쩌구하는거 보니까 피해의식이 대단히 심각해 보이는데 그냥 본인 능력이나 더 키우는게 어때?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 거기서 여성을 빼고 그냥 일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고 해도 통할까 말까인데 남자는 쏙 빼고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라니... 역차별 하자는거네.
      그냥 같은 일을 같은 시간동안 하고 같은 돈을 받아가겠다는것도 아니고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 ㅋㅋㅋ
      너같은 애들은 그냥 능력이 없는거야.

  5. 지나가다가 2017.04.01 1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ovelikejaggy님께

    대한민국에서 남녀임금격차 많이 심하죠..
    그런데 통계란건 항상 정직한게 아니에요.
    실제로 저런 통계를 내면서 직업군 이런건 다 무시하고 통계를 내기때문에 여성 임금이 남성 임금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어요.
    물론 사회적으로 유리천장 그러한 장벽도 있지요. 하지만 위험하고 소득이 많은 그런 직업에 진출한 여성들이 얼마나 있는지 어떤 직업군에 성비가 어떻게 되는지 다 따져보고 생각해야 된답니다.
    하나의 통계만으로 모든걸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 지나가다2 2017.04.02 0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통계하나만으로 모든걸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만, 직업군을 무시하고 통계를 냈다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어보입니다.
      국회의원 남성1명에 회사의 비정규직 여성1명 이렇게 직군이 엄청나게 차이나도록 표본을 선택하지 않는 한 압도적으로 낮을 수는 없을텐데요.
      소득이 많은직업이 위험한 직업이라는 가정도 섣부른 일반화인 것 같구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위험하고 소득이
      많은 직업이라 함은 어떤게 있는지?
      목숨을 걸고 일하는 소방관도 목숨값에 비하면 소득이란침 적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6. 머루 2017.04.01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성들이 아무리 울고불고 해도 남성들은 손에쥔 사회기득권을 결코 거저 내주지 않습니다. 쟁취하셔야합니다.
    시민들이 몇백년전에 프랑스에서 투쟁을 통해 신민권을받아낸것 처럼 몇십년전에 한국에서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시킨것 처럼 여성들 스스로 남성들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받아내야하는겁니다.
    지금 여성권익이 한국에 비해 훨씬 높다고 하는 서방선진국의 모든 나라가 그렇습니다. 권리=의무=책임 이 세가지가 균형을 이룰때 비로소 여성들의 권익이 상승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려면 용기를내어 남성들의 보호막을 스스로 깨야 합니다. 남성들의 보호막 석애선 절대로 동등함 이라는 권리를 남성으로 부터 받아낼수 없으니까요.,

    • 호두마루 2017.04.02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보호막이란거 IMF 이후로 다 무너진지 오래됬어요. 사회적 보호막이란건 애초에 있지도 않았지만. 남성은 여성을 보호하는게 아니라 위협하고 있죠.
      여성이 깨야할 것은 이미 깨지고 없는 남성들의 보호막이 아니라 견고한 남성 카르텔과 가부장제입니다.

    • ㅎㅁㄴㄹ 2017.04.02 0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희는 보호막 속에서 동등하게 해달라고 한적 없습니다^^!
      오히려 오빠가 허락하는 페미니즘을 하라고 하는 것이 한남들이죠!

    • 지나가다 2017.04.02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두마루 // 사회적 보호막이 없다? 당장 군대랑 경찰만 봐도 그딴소리 못할텐데... 안전하게 보호된 사회 안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는게 뭔지 모르는 인간들이 가지는 모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댓글이구만..
      견고한 남성 카르텔이 어디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있다한들 스스로 깨고 나가봐라. 그 방법은 간단하다. 밖에 나가서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일 하면 된다. 어디 실전은 경험해보지도 못한것 같은데 당장 도시 밖으로만 나가봐도 자기가 얼마나 보호된 사회속에서 살고 있는지 피부로 느껴질텐데 한심스럽다.

  7. 2017.04.01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용된 책도 이 글도 좋네요.
    조직에서 불편을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사회가 바뀌어간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저도 언젠가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03 1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책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를 바꾸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계속 이건 아니라고, 이렇게 해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목소리 내려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

  8. 좋은글 2017.04.02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지만 반드시 수반되어야할 한가지
    신장된 권리만큼 책임을 질것!

    여성이 하기싫은 일은 남자도 하기 싫다.
    힘든일, 어려운일, 더러운일, 의무여서 꼭해야만 하는일..
    젊은 여성중에 위의 4가지 일을 하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
    아직도 남자의 부속물로 만족하는 여자가 많은 이상 과도한 서비스다.

    필요한만큼 얼마든지 목소리를 높여 쟁취해라!
    하지만 취한 권한만큼 책일질줄 아는 사람만 그 권리의 진짜 주인이다.
    다른 여성의 노력으로 '얻어진'권리를 가진자가 책임도 같이 질 수 있을까?

  9. 행인1 2017.04.02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 차지해라. 군대부터 시작해서 하수구 퍼내고 철근 엮고...
    세상 일자리의 적어도 절반은 현장에서 몸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다. 이른바 3D 업종들... 여자들은 도전할 생각도 안해보는.. 아니 그런 일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직업들이지.
    그저 누군가가 힘들게 쌓아올린 후에 안정된 수익구조를 만들어놓으면 세상의 반은 여자이니 저 일자리도 절반은 여자라야 한다는 지극히 정치적인 구호로 남의 밥그릇에 숟가락 올리지 말고 몸으로 뛰고 돈 날려가면서 직접 만든다음에 남자들한테 하나도 주지말고 그냥 니들이 다 차지해라.
    그나저나 같은 논리로 학교 선생의 절반은 남자로 채우자고 하면 찬성할 여자들 몇이나 될까?? ㅋㅋ

  10. mju.ac.kr 2017.04.02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의 글은 이런 의미가 아닐텐데..

    모든것을 이분법적 메카니즘에 맡기자는 의미가 아니라

    보다 낳은 세상을 위해서 남자.여자 역할이 있어서 그에 맞는 입장을 취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생물학적 본성에 따르는 역할구분이 시대적으로 바귀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가되는데..



    같은 남성으로서

    여성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면

    똑같이 이구동성으로 의무병역, 잠수용접공 따위를 이야기 하는데...

    한심한 종자들 같아요

    "그럼 니들이 애 낳아라" 하고 외치는 여성들 이야기 하고 무엇이 다른지요?


    평등이란 절차적 평등의 의미보다는

    상호관계적 평등이 옳지 않을까요 ?

    죤롤스 교수가 이야기한 정의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일반인과 휠체어탄 사람과 100 미터 경주를 할떄

    동일선상에서 출발하는 게 평등이 아니지 않습ㄴ까?


    조금더 배려하고 남자라면 신체적 약자인 여성에게 양보하는게

    남성의 권위를 추락시키나요?




    기자님의 글 잘 보았어요


    그런데 항상 이런글은 여성이 써야 하나요?

    여성이 쓰면 꼭 남성들의 반박글이 되풀이 되는 현상이 수십년 되풀이 되는데...


  11. 슈~~ 2017.04.03 0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린 인>에서 이 문장들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평등한 사회라면 여성이 국가와 기업의 반을 운영하고 남성이 가정의 반을 꾸려나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남자와 여자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서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사회로 나아간다면 린인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는 반듯이 실현 되리라 믿습시다. 현재 한국또한 그러한 사회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수반되어 우리의 의식 또한 계속 변화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의식의 변화라 해서 거창한게 아닙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틀린게 아니라 다르다는것을 인식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다른 생각을 갖는게 당연한거고, 다른 습관과 다른 삶을 방식으로 살아가는게 당연 합니다. 그들이 틀린게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거...인격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 풍토가 조성된다면 필자의 글 또한 무의미해지는 사회...이런게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4.03 1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가 억압하는 것은 여성만이 아니죠. 남성의 선택권도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더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서로를 이해하며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12. 여자 2017.04.13 0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장에선 이미 기계다루고 회의장소설지 등 남자와 동등한 업무를 맡고있다 단지 힘쓰는일에서 힘이 남자보단 모자라 도움 받긴하지만. . 그러나 가정에서는 여전히 집안일 애보는 일 시댁눈치보며 잡일 등 전부 내차지다. 다른 남자들과 비슷한일을하고 가면 나도 힘들어서 눕고싶고 쉬고싶은데 다시 밤일을 하는 기분이다. 회식도 남자들처럼 새벽끝까지 함께 즐겨보고 싶으나 남들 눈엔 가정은? 아이는? 먼저들 걱정해준다 그럼 당신네의 아이와 가정은 어떻고? 암튼 늦게가면 이혼감이라 말하는 남자들. . 여자라서 집에서 밥하고 설거지하고아이보고 새벽마다 깨서 이불덮어주고 이럴려고 결혼해서 힘들려고한것은 아닌데 단지 남자보다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이런대접과 더 많은 일을 해야한다는 것에 화가난다. 힘만 강했더라면 못할것이 뭐가있나 용접? 왜 못하나 할 수있다. 다만 가정 일을 분담해서 피곤에 안찌들면 더한것도 하겠지. . 우선 구조적으로 여잔 힘이 약하고 남잔 섬세한면과 멀티가 안되는 것에 서로 도우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빨래도 세탁기가 하는데 세탁물 세탁기에 넣고 옷 널고 개키고 뭐가 어려워서 안하는가 그정도는 일이 아닌가? 가끔이야 아무렇지도 안겠지 티도 안나는 일 매일해보면 그것도 귀찮은 노동인거다 물론 힘이 필요한 벽돌 나르기등 힘이 안되서 남자10장 옮길때 여잔 5장 옮겨서 일의 효율이 없다고하겠지 하지만 그 일을 여잔 못한다하지 말길 악으로 깡으로 할수 있다

  13. 생각하는 2017.05.11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들이 노력해 얻어낸 것이 아니면서 남자들 중에서는 어떤 권리가 자신 것들이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겐 그럼 넌 그것들을 누리기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고, 처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무언가를 받아낸 사람이 너를 무시하면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고 말해 주세요. 의외로 자신이 몰랐던 것을 면전에서 지적당하면 정말 생각머리가 없지 않고서야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들 둘을 키우면 욕을 달고 살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들 둘을 낳게 되자 가끔 이 말이 떠오르는데... 어제 오늘 '샤우팅'의 연속이어서 더 그렇다(아직 '이눔시키' 정도의 욕(?)만 하고 있다는 게 다행인 지점). 설 연휴가 지났고 결국 병이 났다. 오늘 모유수유 중이어도 먹을 수 있는 약, 타이레놀을 먹고 3시간을 자고나니 좀 나았다. 둘째 아이를 낳고 벌써 네번째다. 몸살, 감기, 두통 등. 일할 때는 이렇게 아픈 적이 없었다. 체력 하나는 믿을만 했는데. 왜 아팠는지 생각해보다가 결국 체력 방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휴직 중인 내 하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오전 8시> 기상. 남편과 내가 먹을 야채주스를 급히 갈아 마시고 50개월 아들 아침을 차리고 8개월 아들 이유식을 데운다. (그 사이 둘째는 칭얼대고 첫째는 '엄마 이것 좀 해줘, 저것 좀 해주세요' 요구사항을 외친다) 


<오전 8시30분> 애들 아침 먹이기. 내 주스는 거의 흡입하지만 애들 밥 먹이기는 30분 넘게 걸린다. 아이들은 밥먹는데 집중을 하지 못한다. 밥상에 앉혀놓은 첫째는 둘째 이유식 먹이는 사이에 어딘가로 사라지고 "어디 갔어! 밥 먹을 때는 밥먹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랬지!" 1차 샤우팅. 첫째는 늘 놀고싶어서 밥먹는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둘째도 그 사이 부스터에서 탈출하고 싶다며 칭얼댄다. 새로운 장난감을 부스터에 놓아줘야 할 타이밍. 급히 주변 장난감을 살펴보고 아무거나 하나 집어(그러나 둘째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놔준다. 그 사이 입을 벌릴 때마다 이유식을 먹인다(아니 집어넣는다). 그러는 사이 첫째는 입 안의 밥을 씹지 않고 물고 있다. "물고 있지 말고 씹으라고 했지!" 2차 샤우팅..... 어찌어찌 밥을 다 먹이고 설거지통에 애들 밥그릇을 담가놓는다. 설거지통이 쌓이기 시작한다.


<오전 9시> 이유식을 만들어야 하는 날이다. 고구마브로콜리치즈죽을 만들기로 했다. 고구마, 브로콜리를 계량해서 준비하고 편수냄비에 물을 데운다. 준비한 고구마, 브로콜리를 데치거나 삶는다. 브로콜리를 먼저 꺼내면 된다. 그 사이 첫째 블럭을 둘째가 만져서 다 부서졌다. 첫째가 둘째 머리를 밀어 넘어뜨렸다. "동생 밀지 말라 그랬지!" 3차 샤우팅. 첫째를 붙잡고 왜 동생을 밀면 안되는지 설명한다. 그 사이 편수냄비 속 고구마 담긴 물이 끓는다. 부엌으로 달려간다. 고구마를 꺼내 브로콜리와 함께 미니믹서기에 살짝 간다(도저히 다지는 건 못하겠다). 편수냄비 속 야채 삶은 물은 컵에 부어놓고 불려놓은 이유식 중기 쌀을 냄비에 살짝 끓인다. 쌀이 끓으면 믹서기에 담긴 고구마+브로콜리를 붓고 컵에 부어놓은 야채 삶은 물까지 부어 끓인다. 첫째와 둘째 장난감 쟁탈전은 계속된다. 소리지리는 것도 포기한다. 대신 가끔 노려봐준다. 둘째는 아직 모르지만 첫째는 엄마 눈빛을 감지하고 잠시 잠잠해진다. 편수냄비 속 재료들이 끓으면 불을 줄여 5분간 더 끓인다. 1분 남았을 때 치즈를 넣어 섞는다. 그리고 글라스락 210ml 이유식 용기 4개를 꺼내 하나씩 담는다. 이유식 4일치 완성. 지금은 이유식 중기라 하루에 두번 먹인다. 고기를 주재료로 한 이유식 + 야채 이유식. 하루 두번 씩이니까 일주일이면 14개 이유식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두번씩 4가지 메뉴를 만들고 있다. 이제 곧 9개월, 이유식 후기로 들어가면 하루 3번 이유식을 먹어서 21개 이유식이 필요하고 6가지 메뉴가 필요하다. 그래도 둘째라 훨씬 수월하다. 예전보다 남은 재료를 덜 버린다. 딱 그만큼 요령이 생겼다.


<오전 10시> 소아과 갈 준비. 둘째가 모세기관지염이다. 첫째 목감기에 옮았는데 어려서인지 기관지염까지 왔다. 목에서 쇳소리가 나는데 짠하지만 보채니까 엄마도 너무 힘들다. 소아과에 가려면 애들 옷을 입혀야 한다. "아 언제쯤 혼자 옷 입을래"라는 말이 튀어나오지만 아무도 대꾸를 해주지 않는다. 애들 옷 입힐 때는 순서가 중요하다. 첫째를 먼저 입혀야 둘째를 입힌 후 바로 유모차를 태울 수 있다. 둘째를 먼저 입혀놓고 방치하면 울어버린다. 둘째는 손발이 나오지 않는 우주복을 입기 때문에 옷을 답답해한다. 내복만 입은 첫째 양말부터 신긴다. 양말을 신긴 뒤에 기모바지를 입혀야 내복이 속에서 안 올라간다. 양말을 신으라고 던져주고(?) 나부터 옷을 입는다. 첫째가 그래도 양말을 혼자 신고 바지를 혼자 입을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나... 그 와중에 첫째는 골라준 바지가 맘에 안든다고 타박한다. "아!" 혈압이 오르지만 화내봤자 소용없다. 자기 스타일을 고집할 수 있을 만큼 컸다는 얘기다. 말을 잘 들어주는 민주적인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화가난다 화가난다. 그사이 둘째는 칭얼댄다. 요즘 아파서 부쩍 칭얼대는 주기가 짧아졌다. 그러나 다 받아줄 수가 없다. 첫째 상의를 대충 입혀준 뒤 패딩을 입힌다. 아이들은 보온이 중요하다. 목도리, 마스크, 모자까지 입혀주고(?) 장갑은 스스로 하라고 준다. 그러면 둘째 차례. 아직 걷지 못하는 8개월 둘째 양말을 얼른 신기고 우주복을 입혀 유모차까지 태웠다. 10분도 안 걸리는 일이지만 너무 힘들다. 이미 하루 에너지 다 소진된 느낌.


<오전 10시10분> 집을 나선다. 눈이 온 뒤로 이면도로는 길이 미끄러워서 유모차가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첫째가 넘어지지 않게 계속 주의를 준다. "그쪽은 얼음이 얼었으니까 이쪽으로 와 두진아" 그 말을 열번쯤 하니 10분 거리의 소아과에 도착했다. 그 사이 첫째는 자기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고 단 한번 칭얼댔다. 오늘은 매우 양호하다. 게다가 웬일인지 소아과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바로 진료를 봤다. 병원에 오래 있는 건 힘든 일이다. 그만큼 아이들이 병원에서 감기가 심해질 확률도 높아진다. 선생님은 두진이 보고 먼저 진료를 보자고 했지만 "이준이부터 하기로 했잖아"라며 갑자기 떼를 쓴다. 언제 이준이부터 하기로 했지. 그런 적이 없는데. 황당하지만 참는다. 아이하고는 싸움이 되지 않는다. 의견이 다르다고 협상하고 논쟁하는 건 불가능하다. 급히 둘째부터 진료를 본다. 청진기를 배에 대자마자 울기 시작한다. 버둥대는 아이 두 손을 꼭 잡고 의사선생님이 목, 귀를 살펴보실 수 있도록 힘을 준다. 그와중에 첫째는 "이준아 병원에서는 울면 안돼" 참견한다. 너도 얼마나 울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겨우 둘째 진료를 보고 첫째를 앉힌다. 둘째 모세기관지염이 아직 다 낫지 않아 호흡기치료를 해야 한다고 한다. 아... 5분간 코와 입을 둥그런 기구로 가리고 있는 치료다. 8개월짜리는 5분 내내 버둥댄다. "이준아 호흡기 치료 잘하라 그랬지" 첫째는 엄마 말을 따라한다. 창피하다. 겨우겨우 끝내고 처방전을 받아 1층 약국으로 내려간다. 약을 기다리며 시계를 보니 겨우 10시40분. 이미 하루 에너지를 다 썼다. 소아과만 안 가도 30%는 덜 힘들 거다. 아이가 아프면 그만큼 더 체력이 소진된다. 


<오전 11시> 집에 돌아왔다. 거실과 작은 방은 장난감에 뒤덮여있고 부엌도 엉망이다. 웬만하면 청소를 미루고 싶지만 청소기만 대충 돌린게 며칠째다. 둘째 기관지염 생각을 하니 먼지도 좀 청소해줘야 할 것 같다. 게다가 둘째가 집으로 돌아오는 유모차 안에서 잠들었다. 청소 적기다. 놓칠 수 없다. 얼른 거실 매트 위에 깔려있는 장난감을 정리한다. 작은 방에 깔려있는 레고도 레고정리함에 담는다. 아!!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 4차 샤우팅. 엄마가 어린 시절 하던 레퍼토리를 똑같이 한다. 첫째는 듣는둥마는둥 옆에서 더 어지른다. 포기다. 어지르는 것보다 더 빨리 치우면 된다. 대충 장난감을 다 밀어넣고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청소기 소리가 나자 첫째가 본인의 장난감 청소기를 들고온다. 도와주기 바라지 않으니 방해만 하지마,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렇게 집안일을 해봐야 나중에 시킬 수 있지 싶어서 호응해준다. "아 우리 두진이 잘하네~" 안방, 거실, 작은방, 부엌 바닥을 청소기로 민다. 다음은 물걸레질.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는 물걸레질. 안하고 싶다. 그러나 이미 걸레를 잡았다. 기관지염이잖아. 물에 적셨다. 그리고 짠다. 하나만 가지고 나오니 첫째가 자기 것도 달라고 야단이다. 그냥 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하나 더 적셔서 준다. 안방, 거실, 부엌, 작은 방 순서대로 걸레질을 한다. 집이 좁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와중에 둘째가 깼다. 운다.


<오전 11시30분> 둘째 수유를 하고 아기띠로 업었다. 내려놓으면 또 첫째랑 장난감 다툼을 하고 중재를 해야 하니 이럴 땐 분리를 시키는 게 낫다. 업고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한다. 허리가 아프다. 그와중에 첫째는 "엄마, 레고 기차 만들고 싶어"라 말한다. "엄마 설거지해야 하니까 좀 기다려" 무마한다. 부엌 정리를 끝내니 정오가 됐다. TV 뉴스를 켠다. 드디어 소파에 앉았다.


<오후 12시30분> 그러나 금방 점심 시간이다. 첫째는 방학이 6주다. 병설유치원 로또를 내 손으로 뽑았지만 방학이 6주는 정말... 너무 힘들다. 왜 어릴 때 엄마가 동생과 내 방학을 힘들어했는지 이제 알겠다. 유치원 다닐 때는 그래도 점심은 먹고 오는데. 점심을 준비해야 한다. "뭐 먹을래? 계란밥, 치킨너겟, 주먹주먹" 선택지를 주면 첫째는 80% 계란밥을 선택한다. 계란후라이를 하면서 치킨너겟도 튀긴다. 간장과 참기름, 계란후라이를 밥에 비벼서 치킨너겟과 김치, 밑반찬과 먹인다. 벌써 혼자 서기 시작한 둘째는 열심히 기어 화장실, 작은방, 안방, 베란다 등등을 넘본다. 첫째 밥을 먹이면서 계속 열려있는 문을 닫는다. 문을 닫을 때마다 둘째가 칭얼댄다. 그러나 어쩔 수없어 지금은 형 밥을 먹여야해. 그러나 첫째는 또 밥을 물고 있는다. "엄마가 밥 물고 있지 말라 그랬지!" 6차 샤우팅.... 


<오후 2시> 밥먹고 잠시 쉬었으나 빨래를 해야 하는 날이다. 아기가 어리면 빨래 양도 많다. 대소변을 아직 못 가리니 옷을 버릴 때도 많고(기저귀가 샐 때도 많다......양이 많아서.....) 체온이 조절이 잘 안되니 땀도 많아 자주 갈아입는다. 빨래는 거의 이틀에 한 번은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빨래는 세탁기가 한다. 빨래가 돌아가기 시작하니 소파에 잠시 앉자 했지만 이제부터 '같이 놀자' 시간이다. 책 읽어달라고 가져오는 첫째, 레고 만들어달라고 가져오는 첫째, 블럭 같이 만들자는 첫째. 둘째 때문에 육아휴직을 했는데 둘째는 모유수유만 하고 있는 느낌이고 하루의 80%를 첫째를 위해 쓰는 것 같다. 놀이에 집중하고 싶지만 둘째는 계속 사고를 친다. 형아랑 책을 읽고 있으면 부엌으로 기어가 놀다가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울고. 그러면 데려와서 토닥토닥해주고. 형아랑 블럭 만들고 있으면 옆에서 방해하다가 형아한테 한대 맞고 울고. 그럼 형아를 또 훈육해야 한다. 중재와 훈육, 협박의 연속이다.


<오후 3시> 빨래가 다 됐다. 다리에 매달리는 둘째와 '놀자' 공격을 펼치는 첫째를 어찌어찌 막고 다 널었다. 그런데 둘째가 운다. 졸린가보다. 귀를 긁는다. 아기띠로 업었다. 아니 근데 소파에 이건 뭐지. 점심 먹다가 흘렸나. 아! 똥이다!!! 기저귀가 또 샜나보다. 아니 뭔 똥을 이렇게 많이 눴어 말하는 찰나 아!!!!!!!!!!!!!!!!!!!!!!!!!!! 아기띠에도 묻었을 것이다. 좀전에 업었으니까. 바로 애를 내려놓으니 역시나 범벅이 돼 있다. 정말 울고 싶다. 울고 싶은 건 나인데 내려놨다고 둘째가 운다. 얼릉 옷을 다 벗기고 기저귀를 갈았다. 안아주지 않고 옷을 입힌다고 계속 버둥대며 운다. "옷을 입어야지 안아주지!!!!!!!!!" 7차 샤우팅... 겨우 옷을 다 입히고 안았다. 그때 갑자기 기침을 하는 둘째. 기관지염 때문에 기침이 잦다. 근데... 기침 끝에 먹은 모유를 다 뱉어냈다. 안고 있는 내 옷과 본인 옷이 다 젖었다. "토하면 어떡해!!!!!!!!!!!" 8차 샤우팅.... 이제 정말 눈물이 나온다. 옷을 다시 갈아입혀야 한다. 내 옷 먼저 갈아입고 울면서 버둥대고 있는 둘째 옷을 갈아입힌다. 소리소리 운다. 그래 옷을 갈아입어야 안아주지. 이제 포기 상태다. 포대기랑 소파 패드를 빨아야 하는데 하는데...


동생에게 발 내미는 현장 포착. 이미 둘째는 울음보 터졌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겨우 3시까지 밖에 적지 않았는데 양이 저 정도다. 저녁에는 이유식과 밥을 또다시 먹였고 목욕도 시켰으며 잠도 재웠다. 일할 때보다 퇴근이 더 늦다. 혼자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입지도 못하는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전쟁이다.  


첫째 휴직 중에 남편이 퇴근할 시간에 맞춰 매일 버스 정류장 앞에서 기다렸다. 혼자서 하루종일 너무 힘들었고 말도 못하는 아이랑 하루종일 있는 것은 우울 그 자체였다. 가끔 남편이 예고 없이 늦는 날은 정말 너무 화가 났다. 둘째 휴직 후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말 못하는 아기와 단둘이 있다는 고립감은 이제 말을 잘하는 첫째와 근처에 사시는 친정엄마 덕분에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 아이가 둘이 됐다는 점이다. 체력이 세네배가 필요한 것 같다. 청소, 빨래, 밥 등은 2배가 될 줄 알았지만 첫째와의 상호작용, 첫째와 둘째 갈등 조정을 계산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은 것도, 모유수유를 할 수 있는 것도 나지만 나는 자주 남편이 육아에 더 맞는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육아는 매일 반복되는 일을 지치지 않고 무던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매일 새로운 일을 찾고 넓은 공간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야 행복해지는 전형적인 외향형 인간이다. 그런데 육아는 그 모든 것을 제한한다. 집에 갇혀(?) 있어야 하며 주로 만나는 사람은(99%) 50개월, 8개월 아들 둘이다. (그나마 내 외로움을 줄여주시는 친정엄마께 무한 감사를....) 남편은 내향형 인간에다 참을성이 있다. 반복되는 일을 나보다 잘 견디며 괴로움을 덜 느끼는 것 같다. 모유수유가 아니었다면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본다.


옛날 사람들도 '애를 보느니 밭을 매겠다'라고 했다며 복직한 아는 엄마들은 말한다. 육아보다 일이 덜 힘들다고. 일이 노동강도가 약해서가 아니다. 일이 육아보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크기 때문이다. 육아는 내 의지로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최근 복직한 한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밥을 내 맘대로 먹고 커피를 내 맘대로 마시는데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행복했어요." 그렇다. 육아는 밥먹는 것, 자고 싶은 것, 쉬고 싶은 것과 같은 기본적 욕구를 제한한다. 그래서 더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일테다.


특히 24개월 이하 아이들은. 내가 육아휴직 2년(남녀 1년씩)을 주장하는 이유다. 첫 1년은 모유수유하는 엄마가, 그다음 1년은 아빠가 하면 완벽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24개월만 지나면 조금 사람이 된다. 말도 한다!! 


그러니 더 걱정이다. 말도 못하는 돌 갓 지난 둘째와 자기 주장이 점점 더 강해지는 첫째를 친정엄마에게 맡긴다는 것이. 젊은 내가 봐도 병이 나는데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우리 엄마는 얼마나 힘들까. 아프시면 어쩌나. 왜 우리 엄마는 할머니가 되어도 육아가 끝나지 않는가. 


빡센 육아를 부모에게 허하라. 특히 체력이 좋은 아빠에게 허하라. 아빠들의 체력을 직장에서 다 쓰지 않도록 남겨달라. 부디.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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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육아휴직했을 때 만삭의 몸으로 첫째 유치원이 끝나면 데리러갔다. 아이는 엄마가 데리러온다며 매일 신나했지만 난 늘 우울했다. 유치원 현관 앞에 기다리는 엄마들모습을 보며. 두진이는 병설유치원에 다녀서 오후 130분이면 끝난다. 처음 하원할 때 기다리면서 아니, 도대체 이 시간에 어떻게 엄마들이 이렇게 많지. 목동 집값을 버티며 외벌이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다 금수저인가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엄마들을 하나도 모르니까 이렇게 워킹맘은 소외당하는가 싶은 생각까지 덮쳐 더 울적했다. 여름방학을 하던 날 두진이 같은 반 꼬마친구들이 두진아 같이 놀자. 우리 집에 초대할게라고 하자 두진이는 신나서 따라갔는데 내가 그 엄마들과 잘 몰라서 민망해졌던 순간. 엄마들이 초대해주지 않는 이상 갈 수 없는데. “두진아 어디가~”하며 집에 데려오는데 두진이는 친구 집에 가고 싶었다고 투정. 집에 왔는데 과연 내가 일하며 아이 둘을 기를 수 있는가 우울 또 우울. 나는 무슨 배짱으로 둘을 낳았는가 더 우울.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유치원 친구 엄마들과도 친해졌다. 매일 얼굴을 보고 유치원 끝나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것을 괜히 걱정한 셈. 그리고 알고보니 다들 전업맘도 아니었다. 방학식날 두진일 초대해준다며 날 곤란하게 했던 꼬마친구 엄마도 나랑 같은 육아휴직자였고 주말 근무가 많아 평일에는 휴무가 많은 직종도 있었고 오전에만 일하는 엄마 등등 다양했다.

 

그때 깨달았다. 정책 설계하는 정부와 언론이 함부로 지칭한 전업맘’, ‘워킹맘은 잘못된 구분이라는 걸. 4시면 퇴근하는 초등학교 선생님과 8~9(일 터지면 11~12)에 겨우 퇴근하는 나, 12시에 겨우 퇴근해 돌아오는 모 대기업 직원이 같은가. 워킹맘도 수만 가지 종류가 있다. 또 집에서 창업을 꿈꾸며 오전에만 일하는 엄마는 전업맘인가, 워킹맘인가. 아마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전업맘이라 부를 것이다. 소속이 없으니까.

 

한때 아무것도 모를 때 다들 전업맘인가했던 유치원 엄마들은 선생님, 간호사, 한복 디자이너, 승무원 등 다양한 직업군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우리끼리 농담처럼 말한다. “이렇게 육아와 일이 병행하기 힘들고 결국 기댈 수 있는 친정엄마, 시엄마 없으면 경단녀된다. “우리 언니는 그러던데요? 아직 애가 다섯 살이면 겨우겨우 회사에 붙어있을 때라고. 이제 애가 초등학교 가면 떨어져나가는 사람 더 늘어난다고요. 그래서 우리 언니도 그만뒀잖아요.”

 

엄마들과 친해지며 깨달았다. 다들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다들 자기 일을 좋아한다.’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에(그리고 그 이후에) 태어난 내 주변 여자들은 다들 그렇게 컸다. 남자랑 똑같이 공부하고 경쟁했고, 반장선거에도 나가서 당선됐고 전교 회장도 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학 때까지는 똑같았다. 취직하면서부터 성별이 장애가 된다는 걸 깨달았지만(이 얘기는 나중에. 결국 이것도 여성 노동력을 육아 전담자라고 사회가 편하게 규정하면서 생기는 일). 그래도 일을 하며 사는 삶을 꿈꿨다는 것은 다들 똑같을 것이다. 좋은 직장, 좋아하는 일을 꿈꿨던 것은 다들 비슷했을 거다. 그게 지금은 부르기 민망한 이름이지만 한 때는 이라고 불렸을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들 아이를 낳아보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맞닥뜨렸다. (조직 생활이라는 게 힘들지만 그래도) 일을 참 좋아하는데 육아와 병행이 힘들다는 것, 게다가 이 사회는 여자에게 육아를 떠넘기는 사회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 아니 조금은 알긴 했는데 이 정도인 줄을 몰랐.....

 

이제 가늘고 길게 가야죠. 다행히 친정엄마가 도와주셔서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그래도 은행 빚 생각하면 일을 놓을 수가 없어요. 그 사이 방치되는 우리 애 생각하면...”

 

전업맘’, ‘워킹맘’, ‘경단녀는 같은 이름이다. 여자들도 좋아하는 일하며 살 수 있다고 제도 교육은 가르쳤지만 실제 사회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달라지는 이름일 뿐이다. 친정엄마나 시엄마가 어릴 때 애를 돌봐줄 수 있으면 워킹맘’,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전업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다 버티다 떨어져 나가버리면 경단녀가 되는 것인데 감히 누가 우리를 이렇게 구분하나.

 

문제는 그 사이 아이들이 방치된다는 것이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야 할 우리 사회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못 받고 큰다는 것. 육아는 양보다 질이라고 모든 육아서가 말하지만 그것도 최소한의 양이 담보될 때 가능한 말이다. 최소한 아이가 혼자 먹고 혼자 자고 혼자 길거리를 걸어다닐 수 있을 때까지 어른이 돌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할머니가 아니라 부모여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엄마 복직 후 다시 유치원 하원을 할머니와 해야 하는 첫째. 하원하는 길 길에서 자꾸 앉아있어서 데리고 오기 힘들.....;; 

 

왜 우리 사회는 체력이 충분한 젊은 부모들이 아이를 돌보게 하지 않고 늙은 조부모들에게 떠넘기는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동동거리는 엄마들을 맘충이라고 싸잡아 욕하는가. 아 쓰다보니 격해진다. 꿈은커녕 경제적 이유로 일하는 수많은 엄마들에게도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누가 돌보고 있을까. 슬프다.

 

사회가 부모에게 조금만 시간을 주면 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금방 큰다. 돌 때까지는 엄마, 두돌 때까지는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게 해주고 그 이후 몇 년간은 유연근무제를 늘리면 된다. 회사에서 일도 안 하면서 주구장창 앉아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할 텐데. 세계 최장을 자랑하는 노동 시간을 줄이지 않는 한 이 육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요즘 애들은 초등학교 3~4학년만 돼도 엄마아빠를 찾지 않는단다.

 

어린이집 늘리고 맞춤형 보육한다고? 정말 코웃음이 난다. 정책 설계를 50대 아저씨들에게 맡기는 이 사회는 답이 없다. 예산을 그렇게 쓰고도 이렇게밖에 못하는 건 정말 중요한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고 건드릴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남녀 다 할 수 있게 해주고 육아휴직급여를 많이 줘야 한다. 육아휴직을 해도 경제적 손실을 많이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후배들은 물어본다. “선배 황경상 선배도 육아휴직을 하면 어떨까요?” 내 대답은 똑같다. “빚 갚아야 해서 안 돼.” 그리고 헐값에 친정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불효녀가 되고 만다. 남녀가 육아휴직을 동등하게 하면 여성 취업자를 차별할 이유도 사라진다. 이 사회는 모든 걸 여성 돌봄 노동에 의지하고 그걸 공짜로 퉁치려 한다.

 

육아휴직급여를 신청하려고 고용센터에 갔을 때였다. 남성 육아휴직을 독려하는 전단을 만들어 놓았길래 살펴봤다. 상사한테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조심스럽게 말 꺼내는 방법부터 육아휴직 때 자기계발(일과 멀어지지 않는 법?)하는 법까지 써놨던데 그걸 보다가 집어던질 뻔했다. 여자 육아휴직도 하기 힘들고 심지어 한다 해도 눈치 주는 사회에서 남성 육아휴직? 제발 육아휴직 안 시켜주는 회사에 벌금이나 수천만원씩 때려라. 그럼 육아휴직을 못하게 할 수 없을 텐데.

 

아 유치원 엄마들 이야기하다가 길어졌다. 유치원 친구 엄마 중에 아기 낳기 전에 했던 일을 놓지 않으려고 오전에 열심히 한복 디자인을 해서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엄마가 있다. 블로그에 올라온 한복 디자인을 보고 너무 예뻐서 반했다. 그다음엔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최선을 다해 디자인하고 바느질하는지 설명하는 표정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후 130분에 아이 둘을 데리러 오니까 전업주부구나 생각하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말하는 그 표정은 나와 똑같을 것이다. ‘일을 준비하는 전업맘’, ‘친정엄마(시엄마)에게 미안해하며 종종거리며 회사를 다니는 워킹맘’, ‘어쩔수 없이 그만뒀지만 애들 크기만 하면 다시 일하고 말거야 되뇌이는 경단녀를 응원한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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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30 0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공감이 갑니다 전업맘 직장맘 구분을 할것이 아니라 남자들도 여자들과 똑같은 가사노동을 해야합니다 여자들도 자신이 하고픈 일 할수 있는일이 많은데 육아에 치여 못하고 하는데도 티안나고~~전업맘들도 미래를 생각하고 걱정합니다 제가 해본일중 가사노동이 젤 지칩니다
    아이를 보는것도 행복하지만 자신의 일도 열심히 하고픈데 여자들이 철인인가요 ㅠ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6.12.30 2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가사 + 육아는 티도 안 나고 사람들이 인정도 안해주는 것 같고. 여자들한테 다 떠넘기지 말고 남자들이 같이 하고(돕지 말고 부디 같이!) 그리고 남자들이 집안일과 육아를 같이 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해야겠죠. 힘내세요!

  2. 저기.. 2016.12.30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논점에서 조금은 벗어난 얘기라는 거 알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이신 엄마를 둔 자녀로서 '4시면 퇴근하는 초등학교 선생님' 이라는 표현은 사실 기분이 좀 안좋네요. 칼퇴근 하시는 분들도 물론 계시겠지만 그건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일테고, 한국에서 교사는 가르치는 일만 하는 직업이 아닙니다. 수업 준비 뿐만이 아니라 행정업무에 학부모 상담 등 할일이 정말 많습니다. 4시에 퇴근 하시는건 본적도 없고요 집에 오셔도 늦은 시간까지 학교 행정업무 마무리에 다음날 수업준비 까지 항상 바쁘셨어요. 퇴근시간 이후 밤 늦게, 심지어 주말에 시도때도 없이 전화하는 학부모도 정말 많고요. 그런 분들께서 교사 비하하면서 방학 얘기 많이 하는데 방학이면 집에서 쉬기만 할 것 같죠? 전혀 아니에요. 교사 연수도 들어야 하고, 학교 당직도 있고, 또 개학 전에 학교 가서 해야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렇게 따지면 다른 직업군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갖는 휴가 기간이랑 별다를 거 없습니다. 한국 교육 시스템은 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교사들 입장에서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교사가 가르치는 일만 하면 사실 이렇게 제가 이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 거에요. 교육 선진국을 보면 학생 상담은 따로 상담선생님 혹은 교장 선생님과 하지 선생님 개인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며 핸드폰 번호는 잘 알려주지도 않고요. 또 행정 업무는 따로 일처리 하는 분들이 계시지 선생님들이 하지 않습니다. 왜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교사가 학부모 상담에 학생상담에 학교 예산안 관리에 인사업무까지 해야하죠? 그리고 교사 되는게 얼마나 힘든데요. 사실 사교육 시장에서 잘 자리잡으면 교사보다 돈도 더 많이 벌어요. 교사 봉급은 유리지갑이라 다 아시잖아요. 하지만 뜻이 있어서 교사가 되신거고 자부심 갖고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워요. 그래서 더욱더 사람들이 교사를 쉽게 돈버는 직업으로 생각할 때면 화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에서는 교사가 하는일에 비해 봉급이 적다고 파업도 하고, 학생들도 선생님을 위해 같이 거리로 나와 시위에 참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일이 있었다면 아마 어떻게 교사들이.. 돈도 쉽게 벌면서.. 이런 시선으로 봤겠지요. 저도 어려서부터 목동에서 자라서 부모님이 맞벌이 하시며 힘들게 저 키우셨습니다. 말씀은 잘 안하셨지만 돈 문제로도 많이 힘들어 하셨고요. 교사 자녀라서 부모님과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이런거 없었어요. 엄마들끼리 친구라 같이 놀고 친해지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고, 학교 행사 때면 왜 우리 엄마는 못오지 하며 서러웠던 기억이 많아요. 가끔 저를 위해서 아는 분 하나 없이 민망한 자리에 가시면 교사라고 불편해 하시는 분들도 계셨고요. 지금은 그게 부모님 잘못이 아니라 교육제도의 문제라는 걸 알고, 당신께서 저희에게 쓸 시간을 주말까지 남의 자녀들 일에 쓰면서 얼마나 마음고생 하셨을지 알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글이 너무 길어졌지만 교사도 결국에는 다른 엄마들과 같은 고충을 겪고 있는, 잘못된 정책의 피해자라는거 알아주셨으면 해서 이렇게 글 남깁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지나가다 2016.12.30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교사를 비하한건 없는것같은데요~ 타 직업에비해 비교적 정확한 시간에 출퇴근이 가능하니 시간을 저렇게 적으신거같아요. 교사도 잡무나 업무로 바쁘시겠죠 안그런 직업이 어디있겠어요.

    • 저도지나가다... 2016.12.30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이 글의 말씀하신 부분을 보고 교사를 비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단단히 선입견이 있는 사람이라고밖에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포인트가 '교사는 일찍 퇴근한다'가 아니고 '직장인 퇴근시간은 천차만별이다'에 가깝지 않나요? 전 교사 스스로가 이 부분에서 이렇게 화난다고 하시는 게 되게 신기할 정도인데...요... 말씀하신 내용 관련해서 뭔가 평소에 쌓인 게 있으신듯...

    • ^^ 2016.12.30 1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직 초등교사 입니다~ 칼퇴해도 근무시간이 8:30-16:30,학교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어요~점심시간에도 아이들이랑 같이 밥먹고 급식지도를 하기 때문에 근무시간으로 인정받는거구요~ 저도 읽다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쉬운 직업으로 보이는 구나...저렇게 빨리 퇴근한다고 생각하는 구나...라고 씁쓸하긴 했네요 아무래도 다른 직업의 사정이나 고충을 알긴 힘드니까요. 칼퇴하려면 쉬는시간에 화장실 한 번 가기 힘들고, 채점거리는 바리바리 싸들고 와야하고 방학도 맘 편히 쉬는 날은 아니지만 회사원은 회사원들의 고충이 있을테고 서로 힘든 부분만 말하자만 끝도 없겠지요. 엄마 직업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자녀가 있다는것으로도 어머니께 큰 힘이 되겠네요.어머님께 사랑한다고 말씀 한 번 해주시고 너무 날카롭게 생각하진 마셔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6.12.30 22: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사려깊지 못하게 쓴 부분이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것 같네요. 어느 조직이나 사람을 많이 안 뽑고 있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죠. 교사들에게 행정 업무를 분리하기는커녕 과도하게 부과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치만 제 글은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것, 워킹맘이 근무 형태가 너무나도 다양한데 워킹맘 vs 전업맘 구도로 만드는 게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선생님을 쉬운 직업으로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고 그렇게 글에 쓰지 않았는데... 속상해 마시길요.

    • 저기.. 2016.12.31 0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혹시 글을 잘못 읽으셨나 싶어서.. 제 스스로가 교사가 아니라 제 엄마가 교사이시고 당신께서는 저런 말씀 하신적 한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글쓴이 님께서 비하했다고 한적도 없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생각보다 꽤 많다는 의미였지요. 저도 논점에서 벗어난 얘기를 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쌓인 부분이 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네요. 교사를 두고 '그래도 요즘 세상에 다른 직업에 비해서는' 이라는 표현을 참 많이 들었으니까요. 어렸을 때 또래 친구들이 선생님을 막 대할 때, 극성스러운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와 학생 잘못을 교사에게 뒤집어 씌우며 소리소리 지를 때 혹시나 우리 엄마도 저런 대접 받는건 아닌지 걱정하고 마음 아파 한 기억이 참 많아요. 어떤 직업이든 육아와 일을 같이 하는건 똑같이 힘든 일입니다. 저 직업은 좀 낫지 않을까 이런건 없다고 생각해요. 댓글 다신 분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는게 아니라 교사 자녀로서 오랫동안 느껴온 사회적 시선입니다. 아무튼 원글 요지에 조금은 벗어난 긴 글이었는데 읽고 답변까지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그저 다른 사람들이 힘든 것처럼 교사라고 다를 것 없이 똑같다 라는거 알아줬으면 해서..

    • 두아이엄마 2016.12.31 2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분나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초등교사의 경우 특별한 일이 있거나 잔업이 없는날엔 4시에 퇴근이 가능하시지요... 하지만 일반 직장을 다니는 경우엔 꿈도 꿀 수 없어요. 내년에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는데 퇴근하면 7시예요. 그것도 칼퇴근 할 경우고 저희 또한 칼퇴근은 꿈꾸기 어렵지요. 디딜 양가 부모님도 멀리 계셔서 앞날이 깜깜할 뿐이예요. 사실 탄력근무로 막히지 않는 5시(?) 쯤에라도 퇴근이 가능하면 좋겠어요. 그냥.... 부러워서 한마디 남겨요. ^^;;

  3. 유니맘 2016.12.30 1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정엄마의 노동력 착취 ㅜㅜ 출근길 눈물나네요

  4. 기쁨맘 2016.12.30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이 되네요...저도 요즘 고민하는데...내년에 일을 시작하려면 돌도 안 된 영유아 우리 아기를 얼집에 보내야 해서 어린이집 대기 신청을 하며 마음이 먹먹했어요..휴직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는데...남편은 자기가 일하느라 힘드니 육아는 여자몫인 듯 얘가할때가 있는데 엄청 서운해요...어머님도 아기 키우는 게 뭐 힘드냐라고 하시고...참...제 마음을 알아주는 들어주는 한 사람만 있음 좋겠네요...저도 일도 잘 하고 싶고 아기도 잘 키우고 싶다고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6.12.30 22: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고... 육아가 왜 여자 몫인가요ㅠㅠ 엄마들은 다 이야기하잖아요~ "일이 훨씬 쉽다! 육아가 더 빡세다!!" 저도 내년 3월에 돌 안된 둘째 어린이집에 보내요ㅠㅠㅠㅠ 첫째 때처럼 울면 안되는데... 힘내세요! 다들 기쁨맘님 마음과 비슷할 거예요. 저도 일도 잘하고 싶고 아기도 잘 키우고 싶어요!!

  5. 예비맘 2016.12.30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월초에 출산하는데 깊은공감이 드네요.
    임신내내 회사눈치보느라 힘들었는데, 출산하고는 현실에 부딪히는 상황들이 더 많을거란 생각에.. 대한민국에서 살기가 참 팍팍해서 슬프네요...ㅠ.ㅠ 에효..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6.12.30 2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임신하고 회사 다니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정말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얼마나 울고싶은 적이 많았는지 몰라요ㅠㅠ 고생하셨어요... 출산하면 또 많은 힘든 일들이 닥치지만 정말 예쁜 아기가 오잖아요. 너무너무 힘들어서 다 놓고 도망치고 싶다가도 아기가 한 번 웃으면 내가 이런 천사를 낳았나 싶기도 해요. 대한민국은 빡세지만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더 힘을 내봐요!

  6. 미나 2017.01.01 0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제일기장을들여다본것같네요. 일단문제점을너무잘지적해주셔서속이시원하구요, 다들저와같은고민, 걱정, 고뇌를한다는게, 혼자가아닌것같아조금은위로가됩니다. 다들그냥아무렇지않게아이들을키우는것같아보였는데 막상제가해보니엄마들, 친정엄마들이피눈물을흘려서가능한일이였더라구요. 아니면아이들을어느정도는방치하거나,,, 생후25개월,2개월아이둘을키우는맞벌이부부인데요, 남편은1월1일에도출근합니다. 육아휴직씩이나바라지않을테니최소한주5일근무와칼퇴근만이라도지켜줬으면좋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1.01 1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25개월, 2개월 아이가 있는데 아빠를 휴일에 출근시키다니!! 정말 주5일근무 철저히 지켜주고 쓸데없는 야근, 휴일 단합을 명분으로 하는 이상한(?) 등산 이런 것 좀 싹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힘내세요. 엄마가 되어서도 엄마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 세대 때는 조금더 나아졌으면 하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둘째가 2개월이면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실텐데 체력 소진되지 않도록 주변에 미안해하지 말고 힘든 티 많이 내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7. 냐옹 2017.01.03 0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이다같은 글이네요
    육아휴직 강제로 여자 1년 남자1년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거의 여자만하니까 회사에서도 여자뽑는걸 부담스러워하는거같아요.
    진짜 두돌만 되도 훨씬 나은데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1.03 2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두 돌 되면 적어도 말은 잘 하게 되니까 훨씬 어린이집에 보내기도 덜 불안할텐데요... 그 두 돌 될때까지 사회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게 참 잔인하죠. ㅠㅠ 딱 1년씩 육아휴직 번갈아 하면 여성 취업자를 차별할 이유도 사라지는데요. 답답합니다ㅠㅠ

  8. 용이네 2017.01.04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이집에서 종일반신청하라고, 알바라도 하던지 이름이라도 올릴데없냐는 원장선생님눈치에 알바자리 찾아봐도 퇴근6시밖에 없는데ㅠ 어린이집 아이들은 5시면 거의 다 가고없답니다.
    그게 어떻게 종일반인가요~
    저희아이는 10시등원 3시40분하원인데 바우처금액도 맘대로 올려서 받고 참 이나라의 보육정책은 우주로 날아가버리자는건지 이해가 안가요ㅠ 정말 실질적인 정책을 펼칠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1.04 2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맞춤형보육 성질납니다.... 어린이집에서는 종일반 신청을 좋아한다면서요... 5시에 끝나는데 무슨 종일반인가요ㅠㅠㅠㅠ 정말 답답합니다. 저출산대책에 수조를 썼다던데 그 돈은 다 어디로 간건지... 실질적인 정책을 펼 생각이 없으니까 다 숭숭 사라지는 거죠. 끔찍합니다.ㅠㅠ

  9. 2017.01.04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버베 2017.01.05 1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의 나와 같은 실정~~
    애가 초등 들어가니깐 어쩔수없이 경단맘 되버렸어요. 오늘 내일 그만둬야 하나 고민중~~
    아이는 아이데로 방치되고 외할머니도 힘드시고~ 고민하던차에 페북에 내용이 올라와서 몆자 적어요. 조만간 그만둘거같음

  11. 미래맘 2017.01.06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단어 자체가 남녀 차별이고 육아는 여자들 엄마들 몫이라는 것같아요 ㅠ 워킹파 전업파 이런 말은 없으니까요 .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1.09 13: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네요. 워킹파 전업파 이런 말은 없잖아요ㅠㅠ 요즘 뭐 육아대디 정도 생긴거 같은데.... 여성들에게 전가하고 퉁치는 수법이죠ㅠㅠ 갑갑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어봅니다...

  12. 두아이엄마 2017.01.13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답답하네요... 제가 다니는 회사는...심하게 머라고 하지는 않지만도..출산휴가는 당연히 쓰는구나 하는 정도까지는 해주지만..참..눈치밥이야 참참참 많이 먹는건 사실이죠..

    저도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찬스를 쓰는 중이지만..방학때라든지 아이아플때..또는 봐주시는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할때..제일먼저 걱정은 아이는 어쩌지 입니다..

    연차를쓰던 조퇴를하던..눈치가 보여서... 마음껏 아이를 볼수가 없으니까요...

    아이가..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까지만이라도..시간을조절해서 일 할수 있는 사회분위기나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어요...

    에효.........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1.13 21: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ㅠㅠ 부모님 아프시거나 일 생기시면 정말 난감하죠ㅠㅠ 부모님은 아이 때문에 더 늙어가시고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아빠를 찾고ㅠ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는게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데... 참 사회가 야박해요... 그래도 우리 힘내요!!

  13. 밍재밍준 2017.07.24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마아빠 각각 1년 육아휴직, 유연근무제..너무공감합니다...
    (기자님 같은 분께서 국회의원이 되어야하는데! 이글에 교사비하한다는 댓글은.. 뭐지ㅠ..)
    이런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어야하는데 자꾸..양육수당 10만원, 이런걸로 어떻게 출산율을 높이겠다는건지.
    너무 감사한글입니다. 이런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야하는데..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7.07.30 14: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양육수당, 아동수당도 중요한 정책 수단이지만 지금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가 아닌지요. 출산율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라면 자연스럽게 높아지겠죠. 지금은 아이를 키울 수 없기 때문에 낳지 않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명제를 알고는 있을텐데 말예요. 감사해요. 힘내세요!

한가위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명절을 앞두고 가장 걱정되는 것은 친척들의 '말' 아닐까요.

 

아르바이트 사이트 알바몬이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명절 때 듣기 싫은 말 1,2위로

'취업은 언제 할 거니'와 '좋은 데 취업해야지'가 올랐네요.

'살 좀 빼렴', '애인은 있니', '어릴 땐 참 예뻤는데' 등등도 있네요. (이런 말을 한단 말인가요...?!)

 

저도 미취업자 시절 가장 싫어던 말이 '취업 준비는 잘 돼가니'였었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숙제'를 차근히 끝내가고 있나 싶었는데...

질문은 계속 남아있나봐요.

 

이제 남은 질문. "둘째는 언제 낳을 거니"

 

 

ㅎㅎ

인생의 숙제는 끝이 없습니다...ㅠㅠ

 

 

 

 

 

기특님은 이제 9개월을 넘어 10개월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9개월 아가에게 묻습니다.

"동생이 필요해??"

 

 

 

(아니야! 메롱 이런거 말고)

 

 

 

그러나 누런돼지와 저는 고개를 갸웃합니다.

 

자신이 없어서요.

 

 

 

 

1. 누가 키우나?

 

둘째를 낳는다한들 누가 키울까요?

저희는 요즘 이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내년 복직을 앞두고 친정 엄마 옆으로 가기 위해서요.

최근 제 주변 아이를 낳은 친구 중 친정 엄마 옆으로 이사한 사람, 몇 됩니다.

이 얘기를 들은 저희 친정 엄마, "다들 엄마 옆으로 가는구나, 엄마들은 무슨 죄야?"

저는 고개를 떨구...;;

 

친정 엄마는 무슨 죄일까요.

 

그래도 전 운이 좋은 편입니다.

친정 엄마가 가까이 사시고 또 아기를 봐주시겠다고 하니까요.

시엄마가 봐주시겠다고 하는 분들도 다행이죠.

요즘 소아과를 가도, 놀이터를 가도 아기 보는 할머니들이 많습니다.

참... 할머니들이 무슨 죄인가요 훌쩍.

 

저희 엄마도 무릎 관절이 안 좋으십니다.

이런 엄마에게 10kg 기특을 봐 달라고 하는 게 맞는지 여러 번 생각했죠.

그러나 복직을 하려면 어쩔 수가 없네요. ㅠㅠ

 

이보다 안좋은 상황도 많습니다.

양가 모두 서울 아닌 지방에 사시는 경우.

아기를 평일에는 지방에 두고 주말에만 데려오는 겁니다.

당연히 평일에는 가족이 만날 수가 없게 되겠죠.

가족은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일텐데요. 같이 밥을 먹는 사이, 식구죠.

아... 이산가족이 따로 없습니다.

밤낮 아기를 돌봐야 하는 할머니들도 힘드신 건 마찬가지일테구요.

 

3세 이전에는 '주양육자'를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이론을 들으면 걱정도 됩니다.

아기를 돌보다 보면 엄마, 친할머니, 외할머니, 어린이집을 전전하게 되는 경우도 많죠.

불안정 애착... 이런 말 들으면 무섭습니다.

 

요즘 <하루 3시간 엄마 냄새>라는 책이 유행하던데 전 처음 코웃음이 났습니다.

"하루 3시간? 어떻게 3시간? 야근이 일상인 여기, 한국에서?"

그런데 코웃음도 잠깐, 슬프더군요.

아기와 하루에 3시간도 함께 있지 못하는 일상, 그 일상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게... 참 서글프잖아요.

 

양가 할머니가 다 아기를 보실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입주 아줌마를 들이든가 등의 방법을 찾아야합니다.

 

제 사촌동생이 그런 경우인데요.

일을 해야 하는 동생이 선택한 방법은

'집에 CCTV를 설치하고 입주 아줌마를 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엔 다들 이렇게 계약을 한다네요.

참 서글픈 일인데도 이런 일이 많다 보니 아줌마들도 이해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기 엄마는 일을 하고 아기는 입주 아줌마가 봐주고 지방에 사는 친정 엄마가 CCTV를 보는 상황.

어쩜 참 끔찍하죠.

 

 

그런데... 둘째라니요?

둘째는 누가 키우나요?

무릎 아픈 친정 엄마한테 둘째까지 맡길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제가 일을 그만둬야 하나요?

훌쩍.

 

 

 

 

 

2. 또 육아휴직을 해야 한다면?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1년.

약 15개월 동안 아기를 돌보는 것도 '복'인 사회입니다.

 

법으로 보장된 제도라지만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죠.

 

아기를 낳기 전에는 쉽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1년 휴직하고 누런돼지가 1년 휴직한 후 친정 엄마가 봐주신다면 기특이가 말도 제법 잘 할 거고 어린이집에도 다닐 수가 있을 거야. 그럼 내가 퇴근한 후에 기특이를 재우고 다음날 아침도 먹일 수 있겠지?"

 

그러나...

남성 육아휴직은 여전히 드문 일이죠.

여성 육아휴직도 제대로 못 쓰는데 말하면 입 아픕니다.

 

그런데 만약 둘째를 낳으면 제가 또 휴직해야 하나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같은 회사, 게다가 입사 동기인 누런돼지가 계속 일하는 동안

저는 2년을 넘게 쉰다면 똑같이, 아니 비슷하게라도 일할 수 있을까요?

 

꼭 누런돼지와 똑같이 일하고 같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경력 단절이라는 게 가끔 두렵기도 합니다.

아기를 키우며 많은 것을 배우지만

직장일, 기사를 쓰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둘째는 누런돼지가 휴직하면 되는 일일까요.

그것도 쉽게 답이 안 나옵니다.

 

아기를 낳고 365일 함께 하며 모유를 먹이던 첫째처럼은 키울 수 없을테니까요.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둘째에게 미안해질 것 같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아이에게 죄책감을 가지면 안 된다고들 하는데

그것 참 쉽지 않아 보입니다.

 

 

 

 

 

 

3. 역시 돈이 문제.

 

아기가 크는데는 돈이 들죠.

말이 필요없습니다.

 

출산 비용, 예방주사 비용, 육아용품까지, 그리고 등등등.

 

보통 아기 6개월쯤 뇌수막염, 로타백신, 페구균 예방주사를 한꺼번에 맞힙니다.

그것도 1차가 아니라 3차. 3번을 맞히는데요.

선택 접종이라 한 번에 25만원 이상이 듭니다. 세 번이면 얼마? 말하면 입 아픕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정말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이 예방주사를 어떻게 할까?

선택 접종이니까 맞히지 않고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건강부터...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겁니다.

교육으로 가면 더 심각해지겠죠.

 

우울하니까 돈 얘기는 여기까지.

 

 

 

 

 

4. 그래도...

 

그래도 기특이에게 동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거든요.

자주 싸우고 때로 미워도 하는,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

 

엄마가 되고 이 사회가 원망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아기 키우기가 힘들다고 누가 말해줬다면, 그랬다면.

 

복직 후에 안절부절, 종종대며 기특이를 돌보게 되겠죠.

그때의 갈등을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슬프게도 엄마아빠는 주저합니다.

 

둘째를 낳고 싶은 이유는 하나지만

둘째를 낳을 수 없는 이유는 세 가지가 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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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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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eonjae 2013.11.29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아요.. 저는 그래서 결혼후에 첫째만 낳고 둘째에 대해서는 아예 고민조차 안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ㅠ 그나저나 저는 일단 첫째부터...^^

  2. 신안젤라 2014.03.04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연히 아기관련정보를 읽다들어와 계속읽게되네요. 그저 누군가 저대신 저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해준거같았습니다.

'누런돼지'와 결혼 전 가사 노동 분담을 했었습니다.

 

빨래하고 너는 건 누런돼지, 빨래 개는 건 누런돼지 관리자. (젖은 빨래 만지기 싫어서...;;)

음식은 누런돼지, 설거지는 누런돼지 관리자. (요리는커녕 할 줄 아는 음식이 거의 없어서...;;)

청소는 누런돼지, 쓰레기 버리기도 누런돼지. (청소기 소음과 쓰레기 냄새가 싫어서...;;)

대신... 가계부 작성, 가계 운용 계획 세우고 실제 운용하기는 누런돼지 관리자. (경제권은 내가!)

 

결혼식 후 폐백 드릴 때 부부가 대추를 나눠 먹죠.

대추씨를 먹은 자가 경제권을 가진다 했는데 저희 부부는 제가 대추씨를...ㅎㅎ

 

결혼 후 위 규칙은 잘 지켜졌습니다.

임신 후에는 누런돼지의 일이 더 많아지기도 했었죠. 저는 집에 오기만 하면 잠들어 버렸거든요.

 

 

 

그런데 육아휴직을 하고 나니 이 규칙이 지켜지지 않습니다.

사실 지킬 수가 없어진 거죠.

저는 하루종일 집에 있으니 하루종일 집 구석구석을 치우며 살게 됐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깔끔한 성격이 아니니 엄청 열심인 건 아닙니다......)

집안일은 하면 했을 뿐이고 안 하면 너무 티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바로 집안인에 능숙해지는 것은 아니더군요.

가장 큰 문제는 청소도, 빨래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음식 만들기!!

 

보통 가사 분담을 할 때도 요리는 여자가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 특이한 걸까요. 요리하기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누런돼지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편 생각하기도 했었죠.

10년 자취생 누런돼지가 엄마밥만 30년 먹은 나보다 요리를 잘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육아휴직 후엔 누런돼지에게 마냥 밥해달라고 조를 수가 없게 됐습니다. 훌쩍.

 

친정이 가깝고 헌신적인 친정 엄마 덕분에 김치와 밑반찬은 거의 다 공수해 옵니다.

문제는 국.

끓이기 힘듭니다. 간 맞추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없이 먹는 날이 많습니다. (불쌍히 여긴 친정엄마가 가끔 주십니다... ;;;)

하루종일 애 돌보다 보면 내 밥 챙겨먹기는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저도 요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요리라고 하기엔 너무 미약한데... '기특님'이 밥을 먹기 시작했거든요.

 

 

 

기특이는 만 6개월이 조금 안 됐을 때부터 이유식을 시작했습니다.

모유수유하는 아가들은 이유식이 좀 늦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이유식은 간을 맞추는 게 아니라 사실 '요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그러나 난생 처음 식재료를 준비하고 다듬어서 익혀서 그릇에 담아 내놓는 일!

엄두가 잘 안 났습니다.

 

 

 

그래서 마련한 육아용품, 이유식마스터기!

 

 

 

 

 

(요렇게 생겼습니다) (출처:옥션)

 

 

엄마들의 인기 상품이죠!

 

이유식이 힘든 이유는(제겐 뭔들 안 힘들겠냐만은)

아직 밥을 먹지 않는 아가가 먹을 수 있도록(소화가 잘 되도록)

다지고 푹 쪄서 입자가 작게 만들어야 하는 것 때문일텐데요.

 

이 도구는 칼로 힘들게 다지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이유식마스터기에 재료를 넣고 20분간 푹 찌면(증기를 이용해)

저 투명 플라스틱 통을 반대로 뒤집어 (믹서기처럼) 갈 수 있게 돼 있거든요.

 

이유식 초기(4~6개월)이라면 거의 입자가 남지 않게 갈고

이유식 중기(6~8개월)이라면 입자 2mm 정도?

이유식 후기(9~12개월)이라면 입자 4mm 정도?

뭐 그렇습니다.

 

칼로 다 다져야 한다면... 힘들겠죠.

 

 

 

 

이 도구가 생겼지만 그래도 제게 이유식은 험난한 길의 연속이었습니다.

'기특님'이 한 8개월 무렵부터 이유식을 거부하기 시작했거든요.

 

역시 사람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걸까요.

아님 자식 앞에 절대 '을'이 되는 부모 마음인 걸까요.

 

 

어떻게 하면 '기특님'이 이유식을 잘 먹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단 걸 넣어볼까, 입자를 좀 부드럽게 만들까, 아니면 좀 씹히는 맛을 느끼게 해볼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보고 인터넷을 뒤져서 레시피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에게도 하지 않았던 노력을 하게 만드는 '아들'의 힘이란....

 

이유식 책과 네이버 키친, 그리고 수많은 '엄마 블로거'들의 글까지 섭렵섭렵.

 

결혼 전엔, 아니 출산 전엔

아이 밥 못 먹여 절절 매는 엄마들을 보면 이해를 못 했었죠.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밥 먹이는 엄마들을 보면 혀를 끌끌 한 적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모습이 딱. 훌쩍.

 

기특 탄생 만 9개월이 넘었습니다. 지금은 하루 세 끼를 먹는 시기입니다.

하루에 한 끼라도 제대로 먹었으면 하는 소망을 간절히 가져봅니다..........

 

 

그래도 이렇게 이것저것 먹여보며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기특이는 고구마를 좋아합니다. (임신하고 '누런돼지 관리자'가 아침마다 고구마를 먹어서???)

또 기특이는 사과, 배, 바나나, 복숭아 등 단 것을 좋아합니다. (아 엄마아빠 닮았구나....)

 

될 수 있는 한 골고루 먹이고 편식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콩 따위, 시금치 따위 가리지 않는 듬직한 아들로 키우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냥 아무거나 잘만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훌쩍.

 

 

그런데...

이렇게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니 이유식 만들기가 재밌어집니다.

쉴 때도 인터넷에서 이유식 레시피를 찾아보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아... 나도 이런 게 좋아지는구나.

 

'기특'이는 제 취향마저 바꿔놓고 있습니다.

 

아들 앞에 절대 '을'이 되고 마는 엄마, 그 엄마가 된 지  287일입니다.

 

 

 

 

 

(비트 먹고 입술 빨개진 기특. 먹기 싫다고 미소만 짓기 없기!!)

 

 

아래는 그동안 만들어온 이유식 기록입니다.

 

다른 엄마들은 후딱후딱 잘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저로선... 매우 자랑스러운 기록. ㅎㅎ

 

 

 

*기특 이유식 기록

 

523일 목요일 첫 이유식. 쌀미음. 열 숟가락 정도 먹음.

524일 금요일 쌀미음 2번째. (3일치 한꺼번에 만듬)

525일 토요일 쌀미음 3번째. (냉장 보관 먹음)

527일 월요일 쌀미음 4번째. (냉동 보관 먹음)

528일 화요일 쌀미음 5번째

529일 수요일 쇠고기미음 시작

62일 일요일 브로콜리미음 / 모유를 컵으로 시도

66일 목요일 사과미음

610일 월요일 쇠고기 배 미음 / 배 과즙망

614일 금요일 고구마미음 / 밀가루 첨가

618일 화요일 닭고기죽(약간 굵게)

622일 토요일 단호박 배 죽

626일 수요일 쇠고기 양배추 죽

71일 월요일 고구마 배추 죽

73일 수요일 고구마 감자 죽

74일 목요일 쇠고기 감자 죽 / 브로콜리 사과 죽 (하루에 2번씩 중기 이유식!)

78일 월요일 닭고기 당근 죽 / 단호박 배 죽

712일 금요일 쇠고기 아욱 당근 죽 / 고구마 양배추 죽

717일 수요일 닭고기 감자 당근 아욱 죽 / 옥수수 감자 브로콜리 죽

721일 일요일 쇠고기 애호박 당근 죽 / 단호박 배 죽

726일 금요일 닭고기 달걀 감자 브로콜리 죽 / 고구마 옥수수 죽 (본격적 이유식 거부 시작 아......)

731일 수요일 쇠고기 감자 브로콜리 수프(모유 첨가) / 연두부바나나푸딩

84일 일요일 <이유식 3번 시작>

닭고기 시금치 감자 수프 / 채소 으깸 + 고구마치즈볼 / 고구마 배추 죽

88일 목요일

쇠고기 브로콜리 배 죽 / 배 퓨레 / 대구살 배추 죽

811일 일요일(3)

닭고기 단호박 당근 죽 / 고구마연두부 매시 / 시금치 죽

814일 수요일(4)

쇠고기 건포도 배추 죽 / 자두 퓨레 / 단호박 배 죽

819일 월요일(3)

닭고기 팽이버섯 배 죽 / 단호박 건포도 퓨레 / 대구 옥수수 죽

822일 목요일(3)

쇠고기 시금치 배 죽 / 고구마 사과 퓨레 / 옥수수 양파

825일 일요일(4)

닭고기 애호박 배 죽 / 연두부 바나나 푸딩 / 밤 시금치 죽

829일 목요일(3)

쇠고기 건포도 배추 죽 / 감자 단호박 수프 / 검은콩 바나나 죽

91일 일요일(2)

닭고기 단호박 당근 죽 / 감자 단호박 수프 / 검은콩 바나나 죽

93일 화요일(4)

닭고기 양배추 두부 죽 / 고구마 비트 / 대구 감자 치즈 죽

97일 토요일(3)

쇠고기 표고버섯 배 죽 / 고구마 배추 죽 / 단호박 찹쌀진밥

911일 수요일(4)

닭고기 연근 배 죽 / 연두부 비트 수프 / 밤 시금치 죽

915일 일요일(4)

쇠고기 건포도 배추 밥 / 고구마 모듬버섯 밥 / 게살 양파 브로콜리 밥

919일 목요일(4)

닭고기 사과 콩나물 / 비트 사과진밥 / 대구 표고버섯 연두부 찜 

 

(* 굵은 글씨는 새로 시도해 본 식재료입니다. 아 뿌듯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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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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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기정 2013.09.20 2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깨알 이유식 일지 ...기특이엄마 대단하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