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할게
임아영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어젯밤 세 돌이 지난 이준이를 업고 <섬집 아기>를 불러줬다. 여덟살 두진이가 돌 전 아기였을 때 정말 많이 불러줬던 노래였는데. 이준이가 가사를 따라 불렀다. 내 목소리와 이준이의 목소리가 겹쳐지자 문득 두 아이를 업어줬던 날들이 스쳐지나가면서 울컥 눈물이 났다. 엄마가 울자 등에 업혀 있던 이준이가 말했다. “엄마 울어? 왜그래?” 그러게. 엄마는 왜 울까. “이준이가 크는 게 아까워서.”
이준이가 짐짓 어른스럽게(?) 작은 손으로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엄마. 괜찮아.” ‘괜찮아’라는 말을 몇 번 해줬던가. 아이의 위로에 이상하게도 더 눈물이 났다.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를 위로해주는 아들이 됐을까? 너무 기특해서 아이를 소파에 내려놓고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이준아, 엄마 눈 봐봐.” 어쩌면 이렇게 눈빛이 맑을까. “엄마가 이준이를 정말 사랑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섬집 아기>는 이준이보다 두진이에게 많이 불러줬던 동요였다. 돌 전 아기였던 두진이를 키울 때 나는 너무 ‘초보’였다. 아이와 둘이 있는 게 두려웠다. 울어버리는 두진이 앞에서 무력해지는 스스로가 두려웠다. 아기띠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텼던 두진이는 포대기를 좋아했다. 엄마가 나를 키울 때 쓰던 포대기. 물론 엄마가 아이를 업듯 아이를 등에 손쉽게 얹은 뒤 포대기로 감지는 못했다. 아이가 졸려 하면 침대에 포대기를 펼쳐놓고 두진이를 포대기 가운데에 눕힌 뒤 침대에 등을 밀착하는 자세로 몸을 뒤로 구부려 아이를 겨우 업었다. 두진이를 키울 땐 하나도 쉬운 게 없었다. 그렇게 어렵게 아이를 업고서 불러주던 노래가 <섬집 아기>였다. 두진이는 이 노래를 불러주면 잠을 잘 잤다. 물론 금세 다시 일어났지만.
<섬집 아기>를 부르고 있으면 엄마 노릇을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워했던 초보 엄마 마음이 떠오른다. 요즘 두진이를 몇 번 다그쳤다. “두진아 모르겠어? 두진아 어딜 보는 거야. 두진아 두진아!”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이는 빼기를 어려워한다. “두진아 세 개에서 두 개를 빼면 몇 개야?” “한 개!” “그럼 3-2는 뭘까?” “2!” 속에서 부글부글 뭔가가 올라온다. 이래서 자기 자식은 가르칠 수 없는 거라고들 한 건가. 가장 답답할 때는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를 볼 때다. 아이는 뭐든지 늦다. 느리지만 꼼꼼한 아이라서다.
얼마 전에는 ‘ㅏ ㅑ ㅓ ㅕ’를 배우는데 수업 시간에 다 하지 못했다고 했다. 선생님이 집에서 좀 같이 해보라고까지 했다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국어 교과서를 보니 사자 그림에 ‘ㅏ’ 부분에 같은 색을 칠하고 ‘ㅑ’ 부분에 같은 색을 칠하는 거였다. “두진아 왜 색칠 못했어?” 아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원래도 자기 표현을 많이 하는 아이가 아니다. “두진아 왜 못했느냐고.” 다시 물어도 묵묵부답. 다시 속이 부글부글한다. 한 번 더 참고 물었다. “두진아 대답해야지. 엄마가 물어보잖아.” 겨우 답이 나온다. “다 할 수가 없었어.” “왜?” 바로 다다다 소리가 나올까봐 꾹 참고 다시 물었다. “두진아 그럼 친구들이 색칠하고 있을 때 두진이는 뭐했어?” 두진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색연필을 보고 있었어.” “왜?” 이해가 잘 안됐지만 다시 물었다. “왜 색연필을 보고 있었어?” 두진이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어떤 색을 칠하면 예쁜지 생각했어.” 아... 그랬구나.
아이와 함께 색칠을 다시 했다. 아이는 수업 시간에 못한 사자 그림을 다시 칠했고 나는 그 옆 페이지의 여우 그림을 칠했다. 시작하기 전부터 아이는 말했다. “아, 힘들어.” 아니 칠하기 시작도 안했는데 왜 힘들다는 거야. “엄마, 다 칠하려면 힘들어.” 같이 색칠을 하면서 알게 됐다. 뭐 하나 꼼꼼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색연필을 꾹꾹 눌러 빈틈없이 색칠할 생각하니 손도 아프고 걱정되었던 것. 옆에서 내가 색연필을 뉘여 살살 색칠하자 두진이가 계속 참견했다. “엄마, 그렇게 하면 하얀색이 다 보이잖아.” 아... “두진아 이렇게 칠해도 돼. 그렇게 다 하려면 힘들잖아.” 말하고나서도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 자신이 만족할 정도로 해야 하는 아이다. 남편을 닮았다.
하루는 더하기 빼기를 하다가 아이가 하품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너무 화가 났다. “두진아 하지마. 집중하기 싫으면 안해도 돼. 수학도 국어도 안해도 돼!”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이고 집중을 오래 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다그치고 말았다. 겨우겨우 나머지 공부를 마치고 아이를 재우려고 누웠는데 눈물이 났다. 이렇게 다그치는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닌데.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나는 효율을 지향하는 인간이다. 군더더기가 있는 것을 참기 힘들다. 그러나 아이는 아직 아이다. 수줍음이 많고 느리다. 말이 많지도 않다. 남편을 닮았다는 생각에 가끔은 남편의 답답한 모습과 연결되며 답답하다. 나를 닮은 둘째가 종알종알 떠들고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하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비교하게 된다.
나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어릴 때 비교당하는 것이 가장 싫었다. 아이에게는 절대 ‘욱’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부모 자식과도 ‘케미’가 있다던데 내가 두진이의 성정을 이해 못하는 엄마인 걸까. 선풍기가 돌아가면 어떤 원리로 선풍기가 돌아가는지 탐구하는 아이, 우유를 안 먹으려고 해서 선생님이 “우유를 버리면 물고기가 아파”라고 한 말을 듣고 우유가 어느 관을 타고 버려지는지 생각하는 아이다. 집에서 더하기 빼기를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아이는 3+2를 계산할 때 동그라미 3개를 그리고 2개를 그린 뒤 더했다. “두진아 이렇게 하는 거 누가 알려줬어?” “그냥 내가 했어.” 아이를 믿어줘야 좋은 부모라고 했다. 기특한 아이를 나만 못 믿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느린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급한 게 문제일 수도 있다. 남편이 아이를 자꾸 자기를 닮았다고 규정하지 말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아이는 그냥 아이다. 첫째는 남편, 둘째를 나를 닮았다며 이미 아이들을 어떤 틀로 규정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식이란 존재는 너무 어렵다. 내가 아닌데 나를 닮은 작은 존재.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게 너무 당연한 존재인데 보살피고 등을 토닥여줘야 하는 존재. 옳고 그름을 가르쳐주고 세상의 풍파를 잘 헤쳐가는지 뒤에서 바라봐줘야 하는 존재.
자책하고 있으니 친구가 말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말라 하더라고. 그냥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거라고 했어.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아이들이 잘 크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힘내.” 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계속 배우는 것은 아마 뒤에서 바라봐주는 존재가 되는 법일지도 모르겠다. 조바심 내지 않고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법. ‘엄마도 계속 더 엄마가 되어가고 있어. 두진아 이준아, 엄마가 헤매서 미안해. 그래도 조금씩 더 나아질거야. 엄마도 시간이 지나면 더 배울 테니까. 고마워. 태어나줘서 고마워.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찬찬히, 너희들을 살펴보는 걸 잊지 않을게
황경상
“선생님, 아빠는 맨날 잠만 자요.”
어느 날 큰애가 담임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기가 막혔다. 내가 언제? 아마 피곤해서 잠깐 누워있었던 것을 그리 말했나 보다. 육아휴직도 이제 두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부족한 아빠인가보다.
가끔은 깜짝 놀라는 일도 있다. 여전히 학교 가는 일에 적응 중인 1학년 첫째는 월요일만 되면 배가 아프다고 한다. 녀석 나름대로의 스트레스가 있는 모양이다. 지난 번에는 꾸역꾸역 배 아픈 걸 참다가 함께 있던 친구의 엄마가 나한테 전화를 해 줘서 뒤늦게 알게 되기도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타일렀다. “아프면 참지 말고 선생님께 얘기하고, 아빠한테 전화를 해 달라고 말씀드려.” 그랬더니 녀석이 말한다. “아빠 전화번호는 몰라.” “엄마 전화번호는?” “알아. XXXX에 XXXX” 헉... 아직 아빠 전화번호는 몰랐단 말인가.
아빠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물론 아이들에게 ‘만족’이란 없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억울할 때가 있다. 지난번에는 방과후 수업을 내내 서서 참관하고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실컷 놀려준 뒤 겨우 한숨을 돌리고 메시지를 보낼 것이 있어 2~3시간 만에 휴대전화를 열었다. 그때 첫째가 ‘아빠! 아빠!’ 하는 걸 못 들었나보다. 내가 대답을 안 했더니 녀석이 말한다. “아빠는 맨날 휴대폰만 보고 있어!” “야, 아빠도 뭐 보낼 게 있어 그래! 뭐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 왜 아빠한테 그래!” 나도 모르게 소리가 커진다.
대충 때우려는 것도 아이들은 귀신처럼 눈치 챈다. 언젠가 첫째가 레고로 조립한 장난감 프로펠러를 돌리면서 “이것 봐 잘 돌아가지?” 하고 내게 자랑을 했다. 아마 그때 몹시 피곤했던 나는 아이에게 눈도 안 돌리고 “응, 잘 돌아가네” 그랬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첫째가 말한다. “아빠는 옆에 눈이 달려있어?” 급하게 자세를 고쳐 잡고 녀석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니야, 이렇게 아빠가 곁눈으로 봤어, 안 보고 말하는 줄 알았어?” 녀석은 유심히 옆으로 흘기는 내 눈을 바라보더니 믿어보겠다는 눈치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아이들을 오래 지켜보다 보니 안 좋은 점도 생겼다. 자꾸만 다른 아이들과 우리 아이를 비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집 아이들이 김치나 나물에 밥을 쓱싹 비운다는 얘기를 듣고는 왜 우리 아이들은 손이 이렇게 많아 가는가 하며 한숨을 쉰다. 목이 쉬도록 밥을 먹으라고 불러도 불러도 밥을 안 먹는 녀석들, 겨우 한 숟갈 떴다가도 먹기 싫은 반찬이라고 게워내 버리는 녀석들. 그러다 갑자기 울컥 화가 치솟는다. ‘도대체 니들은 왜 그러는 거니.’
그런데 돌이켜보면 ‘아빠 너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그런 질문을 아이들이 할 법도 하다. “다른 아빠들은 말이지, 몸으로 잘 놀아주는데 아빠 너는 왜 그렇게 늘 퍼져 있니? 또 다른 아빠들은 물어보면 차근차근 설명도 잘 해주고, 화도 안 내는데 아빠는 걸핏하면 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니?”
그렇다. 요즘은 하도 불끈불끈 화를 내서 아이들이 나를 ‘화내는 인간’으로 기억하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다. 언젠가는 갑자기 막 매달리는 첫째 때문에 목과 어깨 언저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갑자기 그러면 어떡하냐고 막 뭐라고 했더니 녀석의 입꼬리가 금세 실룩실룩해지면서 눈매가 파르르 떨린다. 눈망울은 곧 눈물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반짝거렸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빠도 아픈 걸 어째. 미안하다!
아빠가 왜 이렇게 화를 많이 내냐고? 아이들이 이해한다면, 좀 어렵더라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아빠는 지금 너희들의 시간을 배우는 중이라고.
아이도 어른과 비슷하다. 나름대로 생각하는 자기의 스케쥴이 있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당황스러워한다. 뭘 하기 전에는 아이들에게 미리 말해주고 동의를 구한 뒤 움직여야 뒤탈이 적다. 늘 그걸 까맣게 잊는다. 노는 아이를 갑자기 데려와 씻기고, 집에 있는 아이를 갑자기 어린이집에 데려가 부려놓으려고 한다. 아이들이 울고 떼쓸 때면 ‘아차’ 싶지만 늦었다.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날은 다르다. 서운해 하지만 떼쓰거나 울지는 않는다.
그것이 늘 어렵다. 머릿속에 아직도 아이들의 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어른들의 시간에만 맞춰 움직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허겁지겁 윽박지르는 일이 반복된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조금만 더 헤아려본다면 그러지 않아도 됐을 텐데.
오늘부터 너희들의 시간에 맞춰볼게, 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일거다. 또 나는 어른들의, 세상의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닦달하고 있을 거다. 그래도 가급적이면 찬찬히, 너희들을 살펴보는 걸 잊지 않을게.
어느 날 화장실에서 첫째를 씻기고 있었을 때였다. “아, 좀 크게 해 봐!”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안 벌리려는 녀석의 입을 억지로 벌려 칫솔질을 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나를 바라보던 녀석이 말했다.
“아빠! 귀여워!”
그래, 좋은 아빠가 되는 것, 아주 실패하고 있지는 않는 걸까.
[출처] 좋은 부모, 그냥 부모 [부부 육아일기 6화]|작성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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