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아버지가 두진이를 데리고 동네 산에 다녀오시겠다고 했다. 남편은 일이 있어 혼자 두 아이를 보던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두진이는 휴일마다 종종 외할아버지를 따라 산에 다닌다. 산 중턱에서 장기 놀이를 하거나 평평한 트랙에서 킥보드를 타는 정도지만. 이준이가 낮잠을 잘 시간을 훨씬 넘겨 나도 따라나섰다. 유모차에 태워서 재운 뒤에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따라나선 나를 보신 아버지가 “산에 같이 가겠느냐”고 하셨다. 머뭇거리다 그러겠다고 했다. ‘운동 좀 해야지’ 싶어서.


 

회사에 주 6일씩 젊은 날을 내준 아버지
손주들과 놀아주다 잠시 쉬는 뒷모습에
언젠가 이 모습이 몹시 그립겠구나 싶어

 

“이 나이 되면 젊을 때 운동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에게 차이가 많이 나더라. 우리 때는 주 6일 근무여서 일요일 하루 쉬었는데 엄마가 너희들 보고 나는 하루 종일 잔 날도 있었지. 너무 피곤하니까. 그런데 피곤해도 일요일에 산에 다녀오거나 운동을 하면 그다음 주가 좀 낫더라고. 힘들어도 운동을 해야 해.”


 

피곤해하는 나에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서른일곱인 나보다 딱 서른 살이 많은 우리 아버지, 이제 예순일곱. 주 6일씩 회사에 시간과 체력을 내어준 젊은 날을 보냈다. 그렇게 아빠를 따라 산에 올라가 400m 넘는 트랙을 두 바퀴 돌고 두진이와 운동기구로 운동 시늉도 냈다. 낮잠을 자던 이준이가 깨서 이준이 머리보다 더 큰 농구공으로 공놀이도 했다. ‘이런 작은 행복들이 모여 인생의 결을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 생각하며 잠시 쉬고 있는데 아빠가 손주들과 나란히 앉아 쉬는 뒷모습을 봤다. 문득 ‘언젠간 이 모습이 몹시도 그립겠구나’ 싶어서 코끝이 시큰했다.


 

■ ‘워킹맘’을 추앙하지 마세요

나를 키울 시간이 없었던 아버지가 내 아이들을 돌봐주신다. 친정 부모님 옆에서 육아 지원을 받는 우리 아이들은 나와 남편이 없는 자리를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으로 채우고 있다. 내가 클 때 내 옆에 있을 수 없었던 아빠는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손주들 곁에 있게 됐다. 이 역설을 깨달을 때 생각한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 일평생 노동시장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빠가 집으로 돌아온 건 할아버지가 되어서라니.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육아’를 할 수 있게 됐다니.


 

첫째를 낳은 뒤 막다른 골목 처한 부모들
합계출산율 1.06명의 비밀은 여기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저녁, 거창한 꿈일까

 

‘할마 할빠’ 없이는 육아를 할 수 없는 사회다. 맞벌이 부부는 퇴근시간이 늦고 통근시간이 길어서 집에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는 일은 ‘꿈’이다. 무상보육을 하겠다며 어린이집·유치원 보육 지원을 해주지만 아이들 하원 시간까지 아이를 데리러 갈 사람이 없다. 그나마 ‘할마 할빠’가 지원해줄 수 있는 집은 다행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 부모가 퇴근하는 밤까지 어린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버티거나 시터 이모님을 고용해 버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육아 비용으로 쓴다. 부부 중 한쪽에 육아 부담이 몰려 갈등을 겪거나 결국 육아 공백을 채울 수 없게 되면 끙끙대다가 한쪽이 퇴사한다. 대부분 임금을 적게 받는 엄마들이다. ‘경력단절 여성’은 이렇게 탄생한다.


 

‘워킹맘들은 정말 힘들겠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한 취재원이 내게 아이가 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워킹맘, 참 힘드시죠?” 거기까진 뭐 괜찮았다. 이어지는 말. “저도 아이가 어린데 너무 힘들어요. 집에 돌아가도 쉴 수 없고. 와이프는 전업주부인데도 힘들다고 하니까 자꾸 싸우게 되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정색했다. “팀장님, 제가 육아휴직도 해보고 워킹맘도 해봤는데요. 애 보는 게 훨씬 힘들어요.” 너무 정색하니 취재원은 말을 돌렸다. 여전히 이 사회는 아이 기르기가 고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때는 ‘워킹맘’이 꿈이었다. 20대의 나는 아이를 기르며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한 인간을 기르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몰라서 그렇게 순진했다. 내가 한창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자잘한 차별의 언어들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적어도 여자라고 해서 남자가 하는 일을 할 수 없다고는 가르치지 않았다. 여자도 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안다.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사회생활도 하고 육아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슈퍼우먼이 되라는 말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착취’하겠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둘 다 하고 싶으면 너를 갈아 넣어’라는 말이었다니.

■ 슈퍼우먼 따위 되고 싶지 않다

이제 나는 슈퍼우먼 따위는 되고 싶지 않다.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24시간을 살 듯 나도 24시간을 산다. 아무리 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24시간을 넘는 시간을 살 수는 없다.


 

워킹맘이 슈퍼우먼이 되야하는 구조에서
엄마들은 일·육아에 심신이 다 소진되고
아빠들은 회사에 시달리다 방관자가 된다

 

워킹맘이 슈퍼우먼이 되는 구조에서 남편들은 방관자가 된다. “공무원이라 자녀돌봄휴가를 쓸 수 있어서 부럽다”고 하자 공무원 친구가 말했다. “공무원끼리 결혼해도 각종 복지제도는 다 여자 직원이 써. 동기끼리 결혼해도 10년 지나면 직급 차이가 크게 난다 하더라고. 아니 왜 똑같이 입사해서 그렇게 살아야 하냐고. 그래도 나라도 복지제도를 쓸 수 있어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할 말이 없었다. 우리 부부도 육아휴직은 나만 했다. 육아휴직 기간 아이들을 키우면서 배운 게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이라도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면 내 분노는 남편에게 향한다. “신생아 때부터 그 어려운 육아기를 내가 버텼다고. 당신이 아니고.”

가끔은 남편이 아니라 친정 부모님과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화가 난다. 결혼은 남편과 했는데 도대체 이게 뭐지. 친정아버지가 손주를 보고 나서야 육아를 할 수 있게 됐듯 남편도 육아에서 주체가 되기 어려운 구조. 물론 아버지 세대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적어도 기저귀도 갈고 아이 목욕도 시키니까. 그런데 내가 자라던 시기와 지금은 다르다.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구조가 깨졌지 않은가.


 

친정아버지는 젊은 시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다가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손자들을 돌볼 수 있었다.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남편이 애를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내 부모님의 황혼을 갉아먹으며 육아를 하는 난 항상 죄책감에 시달린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라 결국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남편에게 화살이 가는 구조. 남편이 회사에서 빨리 오려고, 집에 있는 동안 육아를 열심히 하려고, ‘도와준다’고 생각지 않고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할마 할빠’ 없이는 육아 할 수 없는 사회
한 인간을 기르는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워킹맘’이 되겠다는 건 순진한 꿈이었다

 

그런데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여전히 이 사회는 ‘가장은 회사에 시간을 바치라’고 말한다. 회사에 시간을 바쳐야 하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내줘야 한다. 그 비는 시간을 메우는 건 ‘칼퇴’하는 엄마들이거나 조부모이거나 ‘퇴사’한 경단녀다. 주말에 공원이나 키즈카페에 놀러가 ‘좀비’ 표정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아빠들을 본다. ‘저 사람들은 어제 몇 시에 퇴근했을까.’ 엄마들은 일과 육아를 하다가 소진되고 아빠들은 회사에 시달리다 소진된다. 그렇게 체력 분배를 하기 어려운 구조에서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얼마 전 대학 후배를 만나 이야기를 하다 문득 슬퍼졌다. 후배의 아내는 ‘육아 지원군’이 없어서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후배 아내가 동네에서 사귀던 친구들도 복직해서 아이와 하루 종일 둘이서 지내는데, 후배가 퇴근만 하면 우울함을 계속 토로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독박육아’의 상황으로 곪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그 와중에 후배는 회사 TF에서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라 매일 밤에 퇴근했고 부부 갈등이 심해졌다. ‘회식 금지법, 야근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아내의 성토에 ‘나도 괴로운데’라는 말을 삼키던 후배는 결국 회사를 옮겼다. 한 팀장의 조언을 듣고 난 뒤였다. “일도 잘하는데 자꾸 육아 때문에 일을 후순위로 미룬다는 인상을 주지 마라”는 조언이었다.

 

“심지어 여자 팀장이었어요. 같은 아파트 사는 언니들이 팀장님의 아이들을 다 키워줬거든요. 그런데 우리 부부는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요. 어쩌라는 건지. 그리고 아이 기르는 일보다 왜 회사 일이 더 중요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아이를 낳고나니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다. 애를 한 번도 안 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게 분명한 말들. “자기 애만 중요하고 회사 일은 나몰라라 한다”고 험담하던 목소리들. 그런 말들이 횡행했던 시절 어떻게 숨죽여 회사를 다녔을까. 아이 기저귀도 한 번 안 갈아봤을 게 분명한 정치인들이 ‘애를 많이 낳은 순서대로 비례대표를 줘야 한다’는 헛소리를 할 때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아이가 안 태어나는 거야.’

 

■ ‘부모’에게 시간을 주면 된다

나처럼 친정 부모님이 육아를 도와주는 환경은 한국 사회에서 ‘복 받은 상황’이다. 적어도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도대체 부모님은 무슨 죄인가. 우리 엄마 아빠는 왜 무릎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에 육아를 해야 하는가. 주변을 보면 자식들 육아를 도와주기 위해 지방에서 원정(?) 오는 할머니 때문에 노년의 기러기 부부도 적지 않다. 왜 자식들 육아 때문에 조부모들이 떨어져 살아야 하는가. 한편 이런 조부모의 존재가 ‘육아 지원군’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역차별이 된다. 결국 가족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는 증거다. 저출산이 심화되는 10년 동안 국가는 엉뚱한 곳에만 돈을 썼다는 증거다.

 

주변 많은 부부들이 첫째를 낳은 뒤 고군분투하다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면 극심한 갈등을 겪고 둘째는 포기한다. 합계출산율 1.06명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하나를 낳아봤더니 키울 수가 없는 구조. 아빠는 회사와 아내 사이에 끼여서 어쩔 줄 모르고 엄마는 눈치 보며 칼퇴하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면 원망할 대상을 찾지 못하다가 남편을 원망하는 악순환. 부모가 힘을 합쳐서 아이를 기를 수 있게 하면 되는데. 그 쉬운 방법을 모르는 건지. 아는데도 그렇게 해주려면 어려우니까 포기한 건지. 엄마가 된 나는 늘 궁금했다. ‘선배들은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구조를 버텨냈을까. 정말 존경스럽다. 어쩌면 우리 세대는 저출산이 심각해지니 발언권이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아버지는 늘 새벽에 출근해서 밤 11시 넘어 퇴근했다. 그게 1980~1990년대였다. ‘주 6일’간 그렇게 일했으니 주당 80시간 넘게 일만 하면서 산 것이다. 그 대가로 나는 아버지와 함께 보낼 시간을 내줘야 했다.

도대체 이렇게 긴 노동시간으로 득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주 5일이 도입될 때 경제가 휘청거릴 거라고들 했다. 그렇게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겁을 주더니 지금은 어떠한가. 7월부터 ‘주 52시간 시대’가 시작된다. 인간다운 삶, 우리는 꿈꿀 수 있을까. 거창한 삶을 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삶. 가족들이 얼굴을 보는 삶. 그런 삶, 말이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두아이맘 2018.06.20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슷하게 아이 둘을 키우고, 맞벌이를 하며, 친정 부모님에게 오후 육아를 맡기는 엄마이자, 직장인입니다.
    글자 하나하나 눈에 담에 되고, 의미를 곱씹게 되네요.
    적어도 20대의 나는, 여자와 남자가 차별받지 않으며, 아이를 낳고서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될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를 낳고 보니, <복귀>가 그렇게 어려운건지, 아니 눈치를 봐야 하는건지 몰랐습니다. 둘을 낳으면 여자가 아니란 말도 들었고, 그러게 둘째는 왜 가져서. 라는 말도 들어야 했습니다. 아이를 가진게 "죄"가 될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죄라며 왜 나의 애미 애비가 애써 보듬아 주는지, 왜 나의 애미 애비가 대신 울어주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슬프게도 아직 우리의 20대와 같은 세상은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 생각합니다. 생각이 변했고, 변하고 있으므로 그 "변화"가 퇴적되다 보면 걷기 편한 길이 만들어질거라 믿습니다.
    그 길 위에 우리의 아이들이 걸길 바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