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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 일기

조부모들에게 수당을 주는 대신 부모들에게 시간을 달라

한 국회의원이 저출산 문제를 풀겠다며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시간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수당을 주는 아이돌봄 지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고 한다.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가정을 위한 것이라는데 정말 육아 문제, 저출산 문제의 핵심을 짚지 못 한데에 대한 한숨이 푹푹 나온다.

 

그 의원은 이번 개정안이 국가적 재앙수준까지 와 있는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고 고령사회 노년층의 소득 보장 및 가정양육기능 회복에 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 노년층 소득 보장이 저출산 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할마할빠에 대한 기사가 쏟아진다. ‘친정과 가까이 살수록 빨리 자녀 출산한다’, ‘친정과의 거리가 첫째아 출산 속도에 영향 끼쳐’, ‘양육수당 조부모에 직접 지원하고 보조인력 운영 방안도 고려를’, ‘황혼육아 돕는 <조부모의 행복한 육아교실> 운영’, ‘손주 보느라 등골 휘는 할빠 할마, 황혼육아 5년새 2배 증가등등등 .

 

저출산 문제는 할마에 대한 지원책으로 풀 수 없다. 회사 다니겠다고 친정엄마를 착취하는 주제에 정부가 할머니들에게 수당을 주겠다는데 왜 안 고마워하느냐고? 제발 곁다리 짚는 방안을 해결책으로 제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금을 쓰겠다면 제대로 좀 쓰라고. 이제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데 모든 역량과 재정을 집중하자.

 

 

휴가 중 바다에 처음 발을 담가본 첫째. 아빠 등에 업혀서 바다를 보고있다.

할마 육아 덕분으로 벌써 여섯살 형님이 된 첫째.

 

 

우리 외갓집 할머니 육아를 보면 한국 사회가 왜 헬조선인지 알 수 있다. 친정엄마는 32녀의 장녀이자 셋째다. 내 외가 사촌들은 여자가 많고 대부분 나이대가 비슷하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고 그 손주들이 다 외숙모들, 엄마, 이모 차지가 되었다는 슬픈 사실.

 

큰외숙모는 딸 셋에 아들 하나인데 딸 셋이 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 지금 세 명의 손주를 돌보고 있다. 은행원인 둘째 딸이 퇴근이 늦어 10시까지 아이를 돌보는 날이 수두룩. 사위는 딸보다 더 늦게 퇴근해 얼굴보기도 힘들다고. 작은외숙모는 쌍둥이 딸 중 언니의 아이들을 돌봐줘야 했는데 문제는 작은외숙모는 군산에 살고 딸은 수원에 산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이모님을 고용하고 지방에서 외숙모가 CCTV로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보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연출되다가 사촌 제부가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서 결국 외숙모가 수원으로 올라와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외숙모와 외삼촌이 기러기 부부가 된 것. 결국 몇 개월 지나 외숙모는 다시 군산으로 내려가셨다.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할머니들 중에도 지방에서 혼자 아이를 돌보러 오셔서 기러기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분이 여러분. ‘헬육아는 할머니 할아버지마저 기러기 부부를 만들고 있다.

 

끝이 아니다. 우리 이모는 작은 아들 부부가 모두 안동에서 일하는데 아들 부부 모두 서울/경기 출신이라 이모가 시시때때로 내려가 손주들을 돌보고 계시다. 그러나 내려가서 돌보는 게 한계가 있으니 이종사촌의 둘째 아들은 지금 돌이 안됐는데 서울의 외할머니 집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이종사촌 부부가 주말마다 아들을 보러 올라오는 상황. 올케가 최근 셋째를 임신했는데 첫째를 돌볼 손이 필요해서 최근 이모는 다시 안동행. 그리고 마지막 우리 엄마. 2014년 내 복직부터 우리 첫째를 봐주시다 이제 손자 두 명을 맡으셔야 하는 팔자.

 

첫째 복직 후에 아이를 누가 돌봐주냐고 묻는 질문이 그렇게 싫었다. 딱히 나를 보고 할 말이 없어서 묻는 것인지 알면서도 친정엄마요라는 답변하면서 드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나이들어 무릎 성하지도 않은 엄마에게 아이를 떠넘겠다는 죄책감.

 

육아는 대체가 어렵다. 특히 영유아기는. 많은 이기적인(?) 부모들이 대체할 수 있는 존재로 할머니를 의지하는 건 아직 인간이 되기엔 너무 미약한 존재들을 돌보는 게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데 그 힘듦을 사랑으로 견디는 건 가족이 최고라는 것을 아니까.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지만 내 새끼들을 안전하게 돌볼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너무 힘드니까.

 

친정엄마들은 딸과 사위 부부가 퇴근이 늦어 방치되는 손자들을 놔둘 수 없어 육아를 맡는다. 딸이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하나로 자기 몸이 축나는 것을 알면서도 손자들을 돌본다. 그런 할머니들에게 수당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자식들이 주는 용돈이 부족할 수도 있고 할머니 육아를 개인화하면 안 된다는 것도 공감한다. 그런데 말이다. 할머니들이 돌봐줄 수 없는 가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역차별이다. 많은 경단녀들이 지방에 사는 부모님들이 아이를 돌봐줄 수 없어서 일을 포기한다. 그들에게 국가는 무엇을 해줄 것인가. 친정엄마, 시엄마가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상황은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니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런 가정에 수당까지 준다는 것은 할머니 육아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가정들에 대한 역차별이다.

 

국가는 할머니 착취를 그만둬야 한다.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게 아이들을 돌볼 시간을 돌려주면 된다. 국가는 아이를 맡아서 키워주겠다는 허언을 그만두라. 아이는 부모들이 키울 수 있어야 하고 국가는 그를 지원하면 된다. ‘할마수당같은 정책으로 친정엄마, 시엄마 없이 아이를 키워야 하는 가정에 상실감을 주지 말라. 그리고 부디 친정엄마, 시엄마를 착취를 끊어 친정엄마, 시엄마 눈치 보며 출근해야 하는 가정의 죄책감을 덜어 달라. 부모들에게 시간을 주면 모든 게 해결된다.

 

모든 것은 노동시간 문제다. 근본적인 것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저출산 문제를 풀겠다고 하지 말라. 보육 문제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는 보육 정책의 모토를 건전한 보육 환경 조성과 일-가정 양립에 둔다고 했다. 그러나 일-가정 양립이 노동 정책에서 해소되지 않는데 보육 정책으로 풀 수는 없다. 육아휴직을 엄마아빠 1년씩만 해도 아이는 두 돌이 지난다. 두 돌이 지난 아이들부터만 보육시설에 가도 어린이집 문제는 많은 것이 해결될 것이다. 돌이 안 된 03명을 보육교사 1명이 돌보는 게 말이 되나. 엄마 1명이 아이 1, 아빠 1명이 아이 1명을 돌보게 해달라. 보육교사를 착취하지 말고. 그리고 두 돌 이후에는 유연근무제, 시차출퇴근제 등이 현실화되면 12시간 종일반 같은 말도 안 되는 정책이 필요 없다. 왜 아이들이 하루종일 현관문만 바라보며 밤늦게 퇴근하는 엄마아빠를 기다려야 하나.

 

복직이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첫째 휴직 땐 영아와 하루종일 집에 있는 게 힘들어서 회사로 도망(?)치고 싶었는데 지금은 뭐가 옳은지 잘 모르겠다. 둘째 육아휴직 때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고 우울감도 거의 없었다. 첫째가 말상대가 되어주고 친정 근처에서 살아서 외롭지 않아서일 것이다. 동네 친구도 많이 생겨서 지금 사는 곳이 동네로 느껴져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회사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절대적으로 길어질 복직 후의 내 일상은 어떻게 될까. 그로 인해 빼앗겨야 하는 아이들과의 시간이 그리워도 회사에서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추어처럼 보일까봐. ‘이등 사원으로 보일까봐.

 

아이를 낳기 전에는 엄마들은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들인 줄 알았다. “그 선배 애 낳더니 변했잖아같이 엄마 선배들이 칼퇴하면 자기 자식돌보러 일찍 퇴근한다고 비난하는 말을 들어서일까.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그 아이들을 방치하고 회사에 남아 있으라고 말하는 이 사회가 더 괴물 같다. 내 아이라서가 아니다. 어른이라면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것 아닌가? 아직 혼자 거리를 걸어다니기 어려운 어린아이들을 방치하라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 우리 모두 다같이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할마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수많은 워킹맘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할마가 없어서 회사를 그만둔 경단녀들에게는 무슨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 같이 말해야 한다. 나는 친정엄마와 아이를 기르고 싶지 않다. 나는 남편과 함께 아이를 기르고 싶다. 전업맘이 되고만 경단녀들도 마찬가지다. 엄마와 아빠가 아이를 길러야 한다. 아빠들이 육아의 구경꾼이 되는 구조를 거부하자. 아빠들은 회사의 노예가 아니고 엄마들은 회사의 이등 사원이 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우리 친정엄마도 말씀하셨다. “제가 칼퇴근법을 가장 원하는 사람이에요! 할머니들끼리도 등수를 매겨요. 제일 빨리 퇴근하는 초등학교 교사가 1, 공무원이 그다음이죠. 제일 꼴찌가 밤 10, 11시는 되어야 퇴근하는 대기업 다니는 자식들입니다. 제시간에만 퇴근해도 서로 육아를 나눠 하기 괜찮아요. 꼭 칼퇴근법이 통과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