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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 일기

둘째를 낳을 수 없는 이유

한가위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명절을 앞두고 가장 걱정되는 것은 친척들의 '말' 아닐까요.

 

아르바이트 사이트 알바몬이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명절 때 듣기 싫은 말 1,2위로

'취업은 언제 할 거니'와 '좋은 데 취업해야지'가 올랐네요.

'살 좀 빼렴', '애인은 있니', '어릴 땐 참 예뻤는데' 등등도 있네요. (이런 말을 한단 말인가요...?!)

 

저도 미취업자 시절 가장 싫어던 말이 '취업 준비는 잘 돼가니'였었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숙제'를 차근히 끝내가고 있나 싶었는데...

질문은 계속 남아있나봐요.

 

이제 남은 질문. "둘째는 언제 낳을 거니"

 

 

ㅎㅎ

인생의 숙제는 끝이 없습니다...ㅠㅠ

 

 

 

 

 

기특님은 이제 9개월을 넘어 10개월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9개월 아가에게 묻습니다.

"동생이 필요해??"

 

 

 

(아니야! 메롱 이런거 말고)

 

 

 

그러나 누런돼지와 저는 고개를 갸웃합니다.

 

자신이 없어서요.

 

 

 

 

1. 누가 키우나?

 

둘째를 낳는다한들 누가 키울까요?

저희는 요즘 이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내년 복직을 앞두고 친정 엄마 옆으로 가기 위해서요.

최근 제 주변 아이를 낳은 친구 중 친정 엄마 옆으로 이사한 사람, 몇 됩니다.

이 얘기를 들은 저희 친정 엄마, "다들 엄마 옆으로 가는구나, 엄마들은 무슨 죄야?"

저는 고개를 떨구...;;

 

친정 엄마는 무슨 죄일까요.

 

그래도 전 운이 좋은 편입니다.

친정 엄마가 가까이 사시고 또 아기를 봐주시겠다고 하니까요.

시엄마가 봐주시겠다고 하는 분들도 다행이죠.

요즘 소아과를 가도, 놀이터를 가도 아기 보는 할머니들이 많습니다.

참... 할머니들이 무슨 죄인가요 훌쩍.

 

저희 엄마도 무릎 관절이 안 좋으십니다.

이런 엄마에게 10kg 기특을 봐 달라고 하는 게 맞는지 여러 번 생각했죠.

그러나 복직을 하려면 어쩔 수가 없네요. ㅠㅠ

 

이보다 안좋은 상황도 많습니다.

양가 모두 서울 아닌 지방에 사시는 경우.

아기를 평일에는 지방에 두고 주말에만 데려오는 겁니다.

당연히 평일에는 가족이 만날 수가 없게 되겠죠.

가족은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일텐데요. 같이 밥을 먹는 사이, 식구죠.

아... 이산가족이 따로 없습니다.

밤낮 아기를 돌봐야 하는 할머니들도 힘드신 건 마찬가지일테구요.

 

3세 이전에는 '주양육자'를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이론을 들으면 걱정도 됩니다.

아기를 돌보다 보면 엄마, 친할머니, 외할머니, 어린이집을 전전하게 되는 경우도 많죠.

불안정 애착... 이런 말 들으면 무섭습니다.

 

요즘 <하루 3시간 엄마 냄새>라는 책이 유행하던데 전 처음 코웃음이 났습니다.

"하루 3시간? 어떻게 3시간? 야근이 일상인 여기, 한국에서?"

그런데 코웃음도 잠깐, 슬프더군요.

아기와 하루에 3시간도 함께 있지 못하는 일상, 그 일상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게... 참 서글프잖아요.

 

양가 할머니가 다 아기를 보실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입주 아줌마를 들이든가 등의 방법을 찾아야합니다.

 

제 사촌동생이 그런 경우인데요.

일을 해야 하는 동생이 선택한 방법은

'집에 CCTV를 설치하고 입주 아줌마를 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엔 다들 이렇게 계약을 한다네요.

참 서글픈 일인데도 이런 일이 많다 보니 아줌마들도 이해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기 엄마는 일을 하고 아기는 입주 아줌마가 봐주고 지방에 사는 친정 엄마가 CCTV를 보는 상황.

어쩜 참 끔찍하죠.

 

 

그런데... 둘째라니요?

둘째는 누가 키우나요?

무릎 아픈 친정 엄마한테 둘째까지 맡길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제가 일을 그만둬야 하나요?

훌쩍.

 

 

 

 

 

2. 또 육아휴직을 해야 한다면?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1년.

약 15개월 동안 아기를 돌보는 것도 '복'인 사회입니다.

 

법으로 보장된 제도라지만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죠.

 

아기를 낳기 전에는 쉽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1년 휴직하고 누런돼지가 1년 휴직한 후 친정 엄마가 봐주신다면 기특이가 말도 제법 잘 할 거고 어린이집에도 다닐 수가 있을 거야. 그럼 내가 퇴근한 후에 기특이를 재우고 다음날 아침도 먹일 수 있겠지?"

 

그러나...

남성 육아휴직은 여전히 드문 일이죠.

여성 육아휴직도 제대로 못 쓰는데 말하면 입 아픕니다.

 

그런데 만약 둘째를 낳으면 제가 또 휴직해야 하나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같은 회사, 게다가 입사 동기인 누런돼지가 계속 일하는 동안

저는 2년을 넘게 쉰다면 똑같이, 아니 비슷하게라도 일할 수 있을까요?

 

꼭 누런돼지와 똑같이 일하고 같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경력 단절이라는 게 가끔 두렵기도 합니다.

아기를 키우며 많은 것을 배우지만

직장일, 기사를 쓰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둘째는 누런돼지가 휴직하면 되는 일일까요.

그것도 쉽게 답이 안 나옵니다.

 

아기를 낳고 365일 함께 하며 모유를 먹이던 첫째처럼은 키울 수 없을테니까요.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둘째에게 미안해질 것 같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아이에게 죄책감을 가지면 안 된다고들 하는데

그것 참 쉽지 않아 보입니다.

 

 

 

 

 

 

3. 역시 돈이 문제.

 

아기가 크는데는 돈이 들죠.

말이 필요없습니다.

 

출산 비용, 예방주사 비용, 육아용품까지, 그리고 등등등.

 

보통 아기 6개월쯤 뇌수막염, 로타백신, 페구균 예방주사를 한꺼번에 맞힙니다.

그것도 1차가 아니라 3차. 3번을 맞히는데요.

선택 접종이라 한 번에 25만원 이상이 듭니다. 세 번이면 얼마? 말하면 입 아픕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정말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이 예방주사를 어떻게 할까?

선택 접종이니까 맞히지 않고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건강부터...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겁니다.

교육으로 가면 더 심각해지겠죠.

 

우울하니까 돈 얘기는 여기까지.

 

 

 

 

 

4. 그래도...

 

그래도 기특이에게 동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거든요.

자주 싸우고 때로 미워도 하는,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

 

엄마가 되고 이 사회가 원망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아기 키우기가 힘들다고 누가 말해줬다면, 그랬다면.

 

복직 후에 안절부절, 종종대며 기특이를 돌보게 되겠죠.

그때의 갈등을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슬프게도 엄마아빠는 주저합니다.

 

둘째를 낳고 싶은 이유는 하나지만

둘째를 낳을 수 없는 이유는 세 가지가 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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