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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 일기

이유식 만들기 대작전

'누런돼지'와 결혼 전 가사 노동 분담을 했었습니다.

 

빨래하고 너는 건 누런돼지, 빨래 개는 건 누런돼지 관리자. (젖은 빨래 만지기 싫어서...;;)

음식은 누런돼지, 설거지는 누런돼지 관리자. (요리는커녕 할 줄 아는 음식이 거의 없어서...;;)

청소는 누런돼지, 쓰레기 버리기도 누런돼지. (청소기 소음과 쓰레기 냄새가 싫어서...;;)

대신... 가계부 작성, 가계 운용 계획 세우고 실제 운용하기는 누런돼지 관리자. (경제권은 내가!)

 

결혼식 후 폐백 드릴 때 부부가 대추를 나눠 먹죠.

대추씨를 먹은 자가 경제권을 가진다 했는데 저희 부부는 제가 대추씨를...ㅎㅎ

 

결혼 후 위 규칙은 잘 지켜졌습니다.

임신 후에는 누런돼지의 일이 더 많아지기도 했었죠. 저는 집에 오기만 하면 잠들어 버렸거든요.

 

 

 

그런데 육아휴직을 하고 나니 이 규칙이 지켜지지 않습니다.

사실 지킬 수가 없어진 거죠.

저는 하루종일 집에 있으니 하루종일 집 구석구석을 치우며 살게 됐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깔끔한 성격이 아니니 엄청 열심인 건 아닙니다......)

집안일은 하면 했을 뿐이고 안 하면 너무 티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바로 집안인에 능숙해지는 것은 아니더군요.

가장 큰 문제는 청소도, 빨래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음식 만들기!!

 

보통 가사 분담을 할 때도 요리는 여자가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 특이한 걸까요. 요리하기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누런돼지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편 생각하기도 했었죠.

10년 자취생 누런돼지가 엄마밥만 30년 먹은 나보다 요리를 잘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육아휴직 후엔 누런돼지에게 마냥 밥해달라고 조를 수가 없게 됐습니다. 훌쩍.

 

친정이 가깝고 헌신적인 친정 엄마 덕분에 김치와 밑반찬은 거의 다 공수해 옵니다.

문제는 국.

끓이기 힘듭니다. 간 맞추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없이 먹는 날이 많습니다. (불쌍히 여긴 친정엄마가 가끔 주십니다... ;;;)

하루종일 애 돌보다 보면 내 밥 챙겨먹기는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저도 요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요리라고 하기엔 너무 미약한데... '기특님'이 밥을 먹기 시작했거든요.

 

 

 

기특이는 만 6개월이 조금 안 됐을 때부터 이유식을 시작했습니다.

모유수유하는 아가들은 이유식이 좀 늦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이유식은 간을 맞추는 게 아니라 사실 '요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그러나 난생 처음 식재료를 준비하고 다듬어서 익혀서 그릇에 담아 내놓는 일!

엄두가 잘 안 났습니다.

 

 

 

그래서 마련한 육아용품, 이유식마스터기!

 

 

 

 

 

(요렇게 생겼습니다) (출처:옥션)

 

 

엄마들의 인기 상품이죠!

 

이유식이 힘든 이유는(제겐 뭔들 안 힘들겠냐만은)

아직 밥을 먹지 않는 아가가 먹을 수 있도록(소화가 잘 되도록)

다지고 푹 쪄서 입자가 작게 만들어야 하는 것 때문일텐데요.

 

이 도구는 칼로 힘들게 다지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이유식마스터기에 재료를 넣고 20분간 푹 찌면(증기를 이용해)

저 투명 플라스틱 통을 반대로 뒤집어 (믹서기처럼) 갈 수 있게 돼 있거든요.

 

이유식 초기(4~6개월)이라면 거의 입자가 남지 않게 갈고

이유식 중기(6~8개월)이라면 입자 2mm 정도?

이유식 후기(9~12개월)이라면 입자 4mm 정도?

뭐 그렇습니다.

 

칼로 다 다져야 한다면... 힘들겠죠.

 

 

 

 

이 도구가 생겼지만 그래도 제게 이유식은 험난한 길의 연속이었습니다.

'기특님'이 한 8개월 무렵부터 이유식을 거부하기 시작했거든요.

 

역시 사람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걸까요.

아님 자식 앞에 절대 '을'이 되는 부모 마음인 걸까요.

 

 

어떻게 하면 '기특님'이 이유식을 잘 먹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단 걸 넣어볼까, 입자를 좀 부드럽게 만들까, 아니면 좀 씹히는 맛을 느끼게 해볼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보고 인터넷을 뒤져서 레시피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에게도 하지 않았던 노력을 하게 만드는 '아들'의 힘이란....

 

이유식 책과 네이버 키친, 그리고 수많은 '엄마 블로거'들의 글까지 섭렵섭렵.

 

결혼 전엔, 아니 출산 전엔

아이 밥 못 먹여 절절 매는 엄마들을 보면 이해를 못 했었죠.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밥 먹이는 엄마들을 보면 혀를 끌끌 한 적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모습이 딱. 훌쩍.

 

기특 탄생 만 9개월이 넘었습니다. 지금은 하루 세 끼를 먹는 시기입니다.

하루에 한 끼라도 제대로 먹었으면 하는 소망을 간절히 가져봅니다..........

 

 

그래도 이렇게 이것저것 먹여보며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기특이는 고구마를 좋아합니다. (임신하고 '누런돼지 관리자'가 아침마다 고구마를 먹어서???)

또 기특이는 사과, 배, 바나나, 복숭아 등 단 것을 좋아합니다. (아 엄마아빠 닮았구나....)

 

될 수 있는 한 골고루 먹이고 편식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콩 따위, 시금치 따위 가리지 않는 듬직한 아들로 키우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냥 아무거나 잘만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훌쩍.

 

 

그런데...

이렇게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니 이유식 만들기가 재밌어집니다.

쉴 때도 인터넷에서 이유식 레시피를 찾아보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아... 나도 이런 게 좋아지는구나.

 

'기특'이는 제 취향마저 바꿔놓고 있습니다.

 

아들 앞에 절대 '을'이 되고 마는 엄마, 그 엄마가 된 지  287일입니다.

 

 

 

 

 

(비트 먹고 입술 빨개진 기특. 먹기 싫다고 미소만 짓기 없기!!)

 

 

아래는 그동안 만들어온 이유식 기록입니다.

 

다른 엄마들은 후딱후딱 잘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저로선... 매우 자랑스러운 기록. ㅎㅎ

 

 

 

*기특 이유식 기록

 

523일 목요일 첫 이유식. 쌀미음. 열 숟가락 정도 먹음.

524일 금요일 쌀미음 2번째. (3일치 한꺼번에 만듬)

525일 토요일 쌀미음 3번째. (냉장 보관 먹음)

527일 월요일 쌀미음 4번째. (냉동 보관 먹음)

528일 화요일 쌀미음 5번째

529일 수요일 쇠고기미음 시작

62일 일요일 브로콜리미음 / 모유를 컵으로 시도

66일 목요일 사과미음

610일 월요일 쇠고기 배 미음 / 배 과즙망

614일 금요일 고구마미음 / 밀가루 첨가

618일 화요일 닭고기죽(약간 굵게)

622일 토요일 단호박 배 죽

626일 수요일 쇠고기 양배추 죽

71일 월요일 고구마 배추 죽

73일 수요일 고구마 감자 죽

74일 목요일 쇠고기 감자 죽 / 브로콜리 사과 죽 (하루에 2번씩 중기 이유식!)

78일 월요일 닭고기 당근 죽 / 단호박 배 죽

712일 금요일 쇠고기 아욱 당근 죽 / 고구마 양배추 죽

717일 수요일 닭고기 감자 당근 아욱 죽 / 옥수수 감자 브로콜리 죽

721일 일요일 쇠고기 애호박 당근 죽 / 단호박 배 죽

726일 금요일 닭고기 달걀 감자 브로콜리 죽 / 고구마 옥수수 죽 (본격적 이유식 거부 시작 아......)

731일 수요일 쇠고기 감자 브로콜리 수프(모유 첨가) / 연두부바나나푸딩

84일 일요일 <이유식 3번 시작>

닭고기 시금치 감자 수프 / 채소 으깸 + 고구마치즈볼 / 고구마 배추 죽

88일 목요일

쇠고기 브로콜리 배 죽 / 배 퓨레 / 대구살 배추 죽

811일 일요일(3)

닭고기 단호박 당근 죽 / 고구마연두부 매시 / 시금치 죽

814일 수요일(4)

쇠고기 건포도 배추 죽 / 자두 퓨레 / 단호박 배 죽

819일 월요일(3)

닭고기 팽이버섯 배 죽 / 단호박 건포도 퓨레 / 대구 옥수수 죽

822일 목요일(3)

쇠고기 시금치 배 죽 / 고구마 사과 퓨레 / 옥수수 양파

825일 일요일(4)

닭고기 애호박 배 죽 / 연두부 바나나 푸딩 / 밤 시금치 죽

829일 목요일(3)

쇠고기 건포도 배추 죽 / 감자 단호박 수프 / 검은콩 바나나 죽

91일 일요일(2)

닭고기 단호박 당근 죽 / 감자 단호박 수프 / 검은콩 바나나 죽

93일 화요일(4)

닭고기 양배추 두부 죽 / 고구마 비트 / 대구 감자 치즈 죽

97일 토요일(3)

쇠고기 표고버섯 배 죽 / 고구마 배추 죽 / 단호박 찹쌀진밥

911일 수요일(4)

닭고기 연근 배 죽 / 연두부 비트 수프 / 밤 시금치 죽

915일 일요일(4)

쇠고기 건포도 배추 밥 / 고구마 모듬버섯 밥 / 게살 양파 브로콜리 밥

919일 목요일(4)

닭고기 사과 콩나물 / 비트 사과진밥 / 대구 표고버섯 연두부 찜 

 

(* 굵은 글씨는 새로 시도해 본 식재료입니다. 아 뿌듯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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