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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 일기

단설 유치원 더 만들고 보육 바우처도 부모에게 달라

정말 화가 나서 이 글을 쓴다


지난 가을 첫째 유치원(첫째는 병설유치원에 다닌다)에서는 아침에 아이를 등원시키는 부모, 조부모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서울 동쪽 한 구에 단설유치원을 만들려고 하는데 사립유치원들의 반대가 심해서 만들어달라는 서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한숨과 분노가. 분노가.

 

육아휴직 1년을 감지덕지하는 나라에서 생후 1년이 된 아이(라고 쓰지만 아기다)들은 민간 어린이집에 간다. 국공립어린이집에 가기 너무 힘들어서. 3(우리 나이 5)가 되면 유치원에 가는데 또 사립유치원에 간다. 국공립유치원 추첨에서 떨어져서. 국공립유치원에 못 보내면 만5(우리 나라 7)까지 운영하는 국공립어린이집에라도 보내고 싶지만 못 보낸다. 순위가 한~~~참 밀려있으니까


왜 아이를 안 낳느냐고? 한국 사회에서 아이 키우기 너무 힘드니까. 부모는 일하러 가야 하는데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곳이 너무 적으니까.

 

이 간단한 이유를 정부는 모를까? 정치인들은 모를까?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 쓰고 어렵게(?) 유치원 다니는 꼬마들을 이용하지 말라!

 

오늘 단설 유치원해프닝(?)을 보고 알았다. 정치인들은 안다. 그저 의지가 없을 뿐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사립유치원장들이 모인 자리에 가서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해줬을 뿐이다. “대형 단설 유치원 안 만들게. 그리고 사립유치원 맘대로 운영하게 해줄게.” 그는 그 이야기를 이렇게 했다. “대형 단설 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고 현재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는 독립운영을 보장하고 시설 특성과 그에 따른 운영을 인정할 것.”

 

그리고 시끄러워지자 병설유치원이 아니고 단설유치원이라고 해명했다. 해명을 보고나니 분노가 치솟았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은 병설과 단설을 구분 잘 못하니까 이렇게 해명하면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간단하게 병설은 학교에 딸려있는 유치원이고 단설은 독립적인 유치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부모들은 단설을 더 선호한다. 단설은 유아교육 전공자가 원장을 맡지만 병설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원장을 맡는다. 당연히 단설이 더 전문적일 것이다. 그런데 단설은 찾아보기 힘들다. 저렇게 서명을 받을 만큼 만들기가 힘들어서일 것이다. 단설이 커서 위험하다고? 정말 코웃음이 나온다.

 

왜 병설유치원 등원 시간에 단설 유치원을 만들게 해달라는 서명을 받아야 하는가? 왜 우리 사회는 공립유치원 하나 만드는 게 이렇게 힘든 사회가 됐는가?

 

보육 전쟁을 취재하면서 들은 말 중 하나. “지역에 국공립유치원 하나 생기면 사립유치원 4개가 없어진대요. 그러니까 사립유치원들은 목숨을 걸고 공립유치원을 막을 수밖에요.” 사립유치원 원장님들을 원망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분들에겐 생존의 문제일 수 있으니까


문제는 표가 된다고 판단하는 곳에서 가서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다. 누리과정 예산을 두고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이 갈등을 겪을 때 결국 민간어린이집연합회, 사립유치원연합회 등 이익집단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정치인들에게 취합 가능한 이익집단의 목소리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할 게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아이를 키우겠다같은 캐치프레이즈는 집어 던졌으면 좋겠다국민의당은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단설유치원을 신설할 경우 인근거리 유치원의 수요와 공급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기존 시설 운영에 지장없는 범위에서 신설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단설이든 병설이든 국가가 나서서 국공립어린이집을 늘려야 할 때다. 기존 사립유치원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만 걱정하나? 국민의당은 그 이상으로 부모들이 얼마나 국공립 유치원을 바라는지 몰랐나보다. 병설을 늘린대도 대형이든 중형이든 단설을 줄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부모들이 바라는 바와 반대다. 또 정부가 국공립유치원을 늘려 그를 통해 사립유치원의 질을 끌어올리고 사립유치원에 들어가는 부모들의 비용을 낮춰줘야 할 때다. 이러한 부모들의 마음을 몰랐는지, 모르는 척 하고 싶었는지 이제 와서 '대형 단설'만 안 만들겠다는 얘기인데 전달이 잘못됐다는 식의 해명이라니.

 

아이 보육 이야기 하면 다들 한 보따리씩 이야기를 꺼내놓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 큰 아이를 낳고 집 근처 구립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었지만 순위는 400번대에서 줄지 않았다. 둘째를 낳고 맞벌이에 둘째 아이니 구립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겠지 생각하며 전화를 걸어봤다. 순위는 120번대. 선생님은 미안해하며 말씀하셨다. "어머님, 여기는 거의 셋째까지 있는 집에서 와요." 우리 아이들은 구립어린이집은 못 가겠구나. ㅠㅠ


다행히 첫째는 가정어린이집에 보냈고 좋은 원장선생님을 만나 큰 어려움 없이 어린이집을 다녔다. 어린이집에서 교사 폭행 같은 나쁜 뉴스가 뜰 때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 행운을 고마워했다. 그러나 말이 되나? 그게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사회가.

 

가정어린이집은 만2세(우리 나이 4세)까지만 운영하므로 지지난해 첫째는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을 지원했다. 유치원은 추첨 시스템이라 , 남편, 친정엄마, 친정아버지 온 가족이 구에 있는 공립유치원에 흩어져 추첨을 하러 갔다. 내가 갔던 유치원에서는 만 3세반은 141명 중 17명을 뽑는다고 했다. 법정 저소득층 자녀 1명, 재원생 형제자매 5명을 제외하면 추첨 몫은 11명. 12.8 대 1. 대한민국에서 만 3세 아이가 처음 맞은 경쟁률이었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치원 시청각실에 앉아 하나씩 번호가 불릴 때마다 탄식하던 풍경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유치원 떨어지는 것이 이렇게 속상한 사회라니. 정말 끔찍하다.’

 

그런데 온갖 추첨에서 돼 본 적 없던 나는 그동안 운을 아꼈는지 병설유치원 로또를 손에 쥐었다. 그날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기사 쓰기가 하나도 힘들지 않았을 정도. 그리고 1년 넘게 아이를 병설유치원에 보냈다. 만족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일단 생님들이 너무 좋은데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넘쳐서만은 아니다. 공무원인 선생님들은 매우 안정돼 보인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공립, 사립을 구분할 수 없겠지만 직업의 안정성은 선생님들의 불안을 줄인다. 그 줄어든 만큼의 불안이 아이들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장점.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 체험학습비만 내면 되는데 한 달에 만원 꼴이다. 1년에 방학 빼고 10만원 조금 넘었다. 사립유치원을 보내려면 한달에 50~100만원이 든다는데 50만원으로만 쳐도 난 얼마를 아낀 것인가. 3년에 1800만원. 작은 돈이 아니지 않은가. 큰 아이 추첨으로 뽑고 작은 아이 재원 형제 쿼터로 병설유치원에 보내는 한 엄마는 웃으며 이야기한다. “둘 합쳐서 내가 4천만원을 아꼈다고요.”

 

왜 그 어린 아이들에게 영어유치원을 보내느냐고? 사립유치원이 비싸서다. 거의 100만원이 드는 사립유치원(물론 유치원별로 원비는 천차만별)에 보낼 바엔 좀더 보태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게 덜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도대체 사립유치원은 왜 이렇게 비싼가? 유치원은 정부지원금 22만원도 받는다는데 그럼 지금 내는 돈에 20만원이 더 붙는 건데 이렇게 비싼 게 맞는 건가.

 

그와중에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 같은 뉴스를 보면 정말 속 터진다. 2월 정부 발표로 나온 유치원 운영비로 자녀 등록금 내고 차도 뽑고 선물도 사고기사. 기사 사례를 보자.

 

유치원 원장은 두 아들 등록금과 연기 아카데미 수업료 3900만원을 지출했다. 노래방 비용 등 847차례 3000만원, 개인차량 할부금 2500만원, 보험료 370만원, 자동차세와 과태료 300만원, 83차례에 걸친 경조사비 3200만원도 유치원 회계에서 지출했다. 교직원에게 선물을 준다면서 유치원 운영비로 250만원 상당의 루이비통 가방 등을 사기도 했다. 이 유치원 원장의 부당 사용액은 111000만원에 달했다.

 

유치원 설립자는 도자기 구입에 2500만원, 개인 외제차 1400만원, 사학연금 개인부담금 830만원 등을 쓰는 등 개인적으로 쓴 것으로 의심되는 돈이 2억원가량이라고 추진단이 설명했다. 유치원 설립자는 서울·경기 지역에 10개의 유치원을 운영하며 가족회사와 51000여만원을 불법적으로 거래했다가 들통났다.

 

교재, 교구, 식재료 등을 구입하거나 시설 공사를 할 때 계약서, 세금계산서 등을 허위로 작성하기도 했다. 어린이집 4개를 운영하는 씨는 부인 명의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교구나 식자재 납품 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뒤 서류 조작 방식으로 86000만원을 부당거래했다.”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95곳을 점검한 결과 609건 위반 사례를 적발했고 부당사용액은 54개 유치원에서 182억원, 37개 어린이집에서 23억원 등 205억원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 한숨이 절로 나오고 뒷목이 뻐근하다. 유치원 원장이 아이들 먹을 쇠고기를 자기 집 냉장고에 일부 떼놓았다는 얘기를 교육청 담당하며 기사 쓸 때 들었는데.... (당시 나온 기사 사립유치원장들, 공금 횡령…‘누리 예산’도 샜다또 반복이다. 답답해서 국무총리실 홈페이지에서 보도자료를 찾아봤다. 정부는 대책으로 현행 유치원/어린이집 재무회계 건전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겠다고 설명해놨다. 현행 재무회계가 정부지원금, 정부보조금, 부모부담금으로 수입 재원을 마련하고 있으나 지출 항목 구분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이러니까 유치원비로 어떻게 운영을 하고 있는지 믿을 수가 없다는 거다. 정부 재원이 매달 22만원씩 들어간다는데 왜 원비는 그렇게 비싼 건지, 그 비싼 원비로 운영은 어떻게 되는 건지 믿을 수가 없다는 것. 반면 공립은 모든 게 투명하다. 홈페이지만 들춰봐도 운영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정부는 어린이집이든지 유치원이든지 국공립 보육시설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이번 단설 해프닝을 보니 두렵다. 사립유치원 독립 운영을 보장하겠다며 교육(보육)을 민간에, 시장원리에 맡기겠다는 말을 저렇게 버젓이 하다니. 현행 재무회계도 엉망이어서 돈이 줄줄 새고 있다는데.


세금이 새지 않게 하려면 사립유치원에 주는 지원금을 부모들에게 직접 줘야 한다. 부모들이 그 세금과 자신의 돈을 보태 유치원을 보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기관에 지원금을 줘서는 부모들은 체감을 하지 못한다. 원비가 해마다 인상돼도 부모들에게는 제어할 수 있는 수단도 없다. 현재도 월 50~100만원을 내야하니 유치원비가 비싸다고 느끼는 집이 매우 많다. 보육료 지원금을 양육수당처럼 부모에게 직접 현금으로 지급하고 그를 통해 부모들이 열심히 운영하는 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잘 운영하는 사립유치원은 자연스럽게 발전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장 원리 아닌가?  


첫째를 보냈던 가정어린이집(민간)이 참 좋았다. 아이들 중심으로 생각하는 분위기, 깔끔한 운영, 오랫동안 일하는 선생님들... 둘째도 당연히 그 어린이집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복직을 앞두고 둘째 어린이집 입소 때문에 오랜만에 원장님을 만나 설명을 들었다. 어쩌다 어린이집 운영하며 힘든 일도 많지 않으시지 않으냐고 물었는데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어린이집을 하면 떼돈을 번다는 댓글들을 나도 가끔 읽는데 어린이집을 양심적으로 운영하면 적자가 난다는 책도 있는 걸 보면 결국 열심히 운영하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상처받는 구조다. 계속 이렇게 놔둬도 될까.

 

힘들 때도 많지만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죠. 이렇게 어릴 땐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존재니까요. 엄마아빠만큼은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늘 부족하죠.” 첫째를 보내며 늘 고마워했던 선생님이 한 말이라 매우 뭉클.

 

좋은 민간어린이집, 사립유치원도 많다. 다만 부모가 좋은 기관을 주체적으로 고를 수 없는 구조일 뿐. 열심히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모들이 안심하고 그 선생님들과 논의하며 같이 아이들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란다. 너무 어려운 바람은 아니지 않은가.

 

끝으로 정치인들이 표가 되는 곳에 가서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일반 부모들의 목소리가 흩어져있다고 해서 그들에게 표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이 글로 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