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 목요일 두진이 유치원 상담을 받고 왔다. 밥을 잘 안 먹으니(두진이는 밥 물고 있기 제왕, 밥먹다 멍때리기 제왕이다) 급식 먹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실까 하고 갔는데 담임선생님은 발달 및 지능 검사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 당황스러웠다.
선생님은 아이가 ‘특이하다’고 설명하셨다. ‘특이하다는 게 무슨 뜻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상담카드에 같이 꼽아둔 두진이의 미술 활동물을 보여주셨다. 나비 그림 테두리에 바늘로 구멍을 뚫고 실을 이용해 구멍을 연결하는 활동이었다. 두진이는 테두리대로 연결하지 않고 대각선으로 여러 개를 이어놓았다. “이렇게 할 수도 있어요 어머님. 근데 세 번이나 설명해줬는데 계속 이렇게 하는 거예요. 아이가 설명을 못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에요.”
“그럼 왜 이렇게 했을까요?”
“그러게요. 저도 임상 쪽 전문가가 아니니까 전문 기관에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 손바닥만한 작은 책 만드는 활동에서는 책 페이지마다 다 풀로 붙여놨다고 했다.
“아이가 특이하다고 느껴져요. 어머님 배우 탐 크루즈가 난독증이잖아요. 근데 연기를 정말 잘하잖아요. 두진이를 보면 그 생각이 들어서요.”
얘기를 듣는 내 표정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난독증, 특이하다... 좋은 말도 해주셨다. “아이가 반짝반짝거릴 때가 있어요. 집중하면 레이저를 쏠 정도로 빠져들어요. 소리를 못 듣는 건지 대답을 안 할 때도 많아요. 근데 안 듣는 건지, 못 듣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도 그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니까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으셨으면 좋겠다는 뜻이에요.”
얼음으로 실컷 장난한 뒤 물시계(?) 만드는 중...
그리고 돌아와 기관을 알아봤다. 생각보다 비용이 비싼 걸 확인한 후 괜한 반감이 들었다. ‘내가 보기엔 별로 특이한 것 같지 않은데. 이 돈을 들여서 검사를 받아야 할 만큼 특이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지만 찝찝했다. 아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두진에게 물었다. “두진아 나비를 왜 이렇게 했어?” 두진이는 명쾌하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두진이는 말이 많은 꼬마가 아니다. 유치원 생활을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하거나 단답형. 그렇지만 이번에는 여러 번 질문을 던지니 두 가지 단서를 던져줬다. “아까워서”라는 답변과 “그럼 코랑 연결이 안 되잖아”라는 답변. 아이의 설명대로라면 뭔가가 아까웠고 선생님 설명대로 테두리를 연결하면 코랑 연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스스로 행동의 의도를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6세(만 53개월)다. 몇 번을 더 물어보니 "엄마 물어보는게 힘들어"라고도 했다.
난독증 비유와 특이하다는 말만으로도 불안했는데 내 불안을 더 키운 대화도 있었다. 두진이를 여러 번 본 유치원 친구 아빠(직업이 교사)가 두진이가 상담 받고 왔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발달검사를 권유받았느냐고 물어본 것, 몇 번 더 두진이를 만나보고 우리 부부에게 검사를 권유하려고 했다는 얘기, 두진이에게 불안함이 엿보인다는 이야기까지.
만 15개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두진이에 대한 선생님들의 평가는 비슷했다. 집중력이 좋다, 그런데 집중하는 만큼 행동 전환이 느리다. 우리 부부는 12월생이라 그렇지 않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다. 또 집중 잘하는 것은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다 다른데 아이들도 그렇지 않느냐고 생각도 함께였다.
그런데 불안함이 엿보인다는 얘기를 듣고 우울함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최근 아이가 블록놀이 등을 하면서 마음대로 안 되자 불안해하고 울어버렸던 풍경들이 떠올랐고 왜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나 우울해졌다. 아이의 불안함을 내가 몰라줬다는 생각이 들자 미안해졌다. 그렇다 미안해졌다.
“어머니가 복직하시잖아요. 복직하시지 않으면 문제가 아니에요. 복직 전에 구멍난 부분을 확인하고 채우자는 차원이에요. 저도 큰애 키우면서 상담 많이 받았어요. 도움이 돼요 어머님.” 두진이는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식탐이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생각이 들 정도로 밥에 관심이 없고 밥 먹으면서도 놀고 싶어서 집중을 하지 못한다. 유치원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겠지 싶어서 그 부분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상담을 갔다. 그러나 내 ‘복직’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선생님의 의도는 간명하다. 밥 안 먹는 아이를 할머니가 먹게 하기는 더 힘들다는 것. 충분히 이해한다. 이미 지금도 내 말이 할머니 말보다 더 잘 먹히고 남자 아이는 점점 더 할머니의 말을 안 들을 것이라는 것도 예상 가능하다. 선생님은 퇴근 시간도 물으셨다. 내 퇴근 시간을 말하니 표정이 어두워진 것은 오히려 선생님 쪽이었다. ‘복직’이 문제된다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나는 발달검사 제안과 별개로 또 충격을 받았다.
화가 났다. 왜 내 ‘복직’만 문제가 되는가. 남편이 회사 다니는 건 왜 문제가 되지 않는가. 왜 한국 사회에서 주양육자는 항상 ‘엄마’인가. 결국 선생님이 추천한 상담센터를 예약했다. 먼저 엄마가 80분 면담을 받고 검사 종류를 결정한다고 했다. 왜 엄마, 아빠 다 오라고 하지 않는가. 나만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게 아닌데. 내 관점이 과잉되거나 틀릴 수도 있지 않는가.
그러다 화는 금세 가라앉고 계속 우울해졌다. 이제 생각의 단계는 ‘나는 회사를 제대로 다닐 수 있겠는가’로 옮겨갔다. 역시 워킹맘인 동네 친구는 말했다. “반푼이로 살아야 한대요. 회사에서 반푼이, 집에서도 반푼이. 아니면 견뎌내지 못한대요.” 작년에 아이 발달이 늦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장을 옮겨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엄마다. 난 반푼이가 될 수 있을까. 아니 이미 반푼이일까.
처음으로 ‘다들 이렇게 아이에게 이상한 점을 발견하면 회사를 그만뒀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기 전 한 회사 선배는 와이프가 파마를 했는데 아이가 엄마를 못 알아보자 일을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어떻게 엄마를 못 알아보지 하면서 웃었는데 심각한 이야기였다. 만약 두진이에게 특이한 점이 정말 발견된다면 난 어떤 좌절감을 느낄까.
안다. 특이한 점이 발견되어도 큰 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걸. 뛰어난 부분이 있으면 키워주고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면 된다는 걸. 부모의 역할은 그렇게 이끌어주는 것이라는 걸.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한 발짝 앞에 서서 손을 잡아주면 된다는 걸.
아니 안다고 믿었다. 근데 내 아이 일이 되니까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다. 이상한 말을 들으면 어떡하지. 무섭고 두렵다. 두렵다.
‘왜 아무도 내게 아이를 키우는 일이 이렇게 거대한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나.’
가끔 아이를 훈육하는 게 힘들 때, 엄마라는 역할을 하기에 버겁다고 느껴질 때마다 이 답답한 질문이 튀어 오른다. 왜 아무도 아이를 키우는 일에 이렇게 많은 시간과 품이 들어간다고 알려주지 않았나. 아이의 온몸을 안고 업고 지내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아이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옷을 입고 혼자 길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는 독립적 존재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왜 알려주지 않았나. 그러면서 사회는 왜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시간을 내어주지 않나.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사람 아냐’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타인에게 적당하게 손 내밀고 거리두기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며 뿌듯해했던 삼십대 초반 내 아이에게도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며 안정적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러나 아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밥을 먹여줘야 하고 옷을 입혀줘야 하는 작은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이를 낳기 전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밥 먹여주고 옷 입혀주는 게 끝이 아니다. 어떻게 밥을 먹어야 하고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는지 가르쳐줘야 한다. 아이가 밥을 잘 안 먹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제대로 밥을 먹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제일 먼저 들었다. “어머니 아이가 어쩜 식탐이 이렇게 없나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게요, 선생님.’
그뒤로 아이를 자꾸 채근하게 된다. 왜 밥을 안 먹니, 왜 물고 있니, 씹고 뜨고 다시 씹고 뜨는 거야, 가만히 있지마, 그렇게 아이를 닦달하다가 과자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 어제도 밥을 깨작깨작 먹고 물고 있다가 몇 번 혼난 두진이는 겨우겨우 밥을 다 먹고선 과자를 달라고 했다. 과자 때문에 밥을 안 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또 과자를 줬다. 밥 다 먹으면 이거 줄게. 유인하기 위해 사온 과자인데. 신나서 과자를 먹는 표정을 보고 정말 화가 났다. 밥을 그렇게 먹어라 밥을. 과자는 달콤하니까 먹겠지. 알면서도 아이를 혼내고 말았다. 아, 지금 뭐하는 짓인지. 과자 사달라고 했을 때 안 사줬으면 됐잖아. 자괴감이 몰려온다. 이 작은 존재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은 자괴감.
결국 상담센터에 가서 80분간 엄마 면담을 받고 돌아왔다. 그 면담을 통해 상담이든 검사든 결정하는데 3주가 걸린다고 했다. 차분히 기다리면 된다. 3주 후 결정이 되면 절차대로 따라가면 된다. 상담을 받든 검사를 받든. 이성적으로는 안다. 그런데 아이에 관해선 이 평정심이 자꾸 무너진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면 어떡하지.’
유난스러운 엄마가 되기 싫었다. 유난스럽게 굴지 않는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내 일과 내 영역을 유지하는 만큼 아이들의 자유를 인정해줘야지. 아이들에게 집중하되 집착하지 말아야지. 늘 생각했다. 근데 전문 상담 받으라는 말 한 마디에 이렇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아이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장담하면 안된다는 세간의 말의 뜻을 이해했다.
그러다 ‘아들연구소’라는 앱에서 이런 글이 날아왔다. 꼭 나를 위한 글처럼.
“주어도 주어도 넘쳐도 넘쳐도 괜찮은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사랑을 줄 때 순수 의미의 사랑인지, 걱정을 가장한 관심의 표현인지 구분이 조금 필요한 것 같아요.
관심과 걱정과 사랑은 다르죠. 관심이 많아지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혹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걱정이 생기곤 합니다. 그러한 걱정을 양육자가 아이에게 표현한다면, 아이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들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감이 먼저 생길 수 있어요.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요. 정말 부족한 것인지 걱정으로 인한 부족인지 구할 수 있는 힘을 길러보아요.”
‘특이하다’는 말을 걱정하느라 아이의 마음을 돌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밥 안 먹는다고 화내면서 아이를 힘들게 하면서 먹게 하면 무슨 소용인가. 마음을 다잡아본다. 3주 후면 상담을 할지, 검사를 할지도 결정될 텐데. 차분히 기다려보기로 했다. 중간중간 걱정이 치고 올라오겠지만 다시 평정심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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