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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 일기/폭풍육아

[임아영기자의 폭풍육아]국가는 출산캠페인 기획할 시간에 '돌봄공백' 메우라

일곱 살 된 두진이는 수요일에 미술학원에 다닌다. 이준이는 3시30분, 두진이는 5시 하원하는데 어린이집과 유치원 거리는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친정엄마가 26개월 된 둘째를 데리고 첫째 유치원에 매일같이 왔다 갔다 하시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미술학원을 등록했다. 26개월이 되면 차가 오는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른 손을 뿌리치고 달려나가려 해서 혼비백산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 등·하원은 커피 한잔 들고 유유하게 걸어오는 일이 아니다. 차가 쌩쌩 다니는 서울에서 아이 손을 꽉 잡고 달아나지 않도록 하는 일을 환갑이 된 친정엄마가 도맡는다는 게 늘 미안할 뿐이다.


 

환갑 된 엄마에게 등하원 맡기기 미안해
보육을 빙자한 ‘학원 뺑뺑이’ 시작됐다
학원 결정의 1순위 조건은 ‘픽업 여부’

 

학원 결정의 1순위 조건은 ‘픽업’이 되느냐였다. 선생님이 얼마나 잘 가르치는지, 두진이가 학원에 얼마나 흥미 있어 하느냐가 아니었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라도 어린이집, 유치원을 왔다 갔다 하며 엄마가 고생하시지 않길 바랐다. 픽업이 되면 두진이가 학원 끝나고 집 앞에서 내리게 되니 엄마가 집 앞까지만 나가시면 되니까. 이렇게 보육을 빙자한 ‘학원 뺑뺑이’가 시작됐다.


 

문제가 생긴 건 지난주 수요일이었다. 일하고 있는데 오후 5시30분쯤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님, 두진이가 할머니가 오신다고 기다리고 있는데 왜 할머니가 안 오실까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술학원에 가 있어야 할 시간인데 무슨 말이지. 선생님이 말했다. “어머님, 아이들이 미술학원 휴가라고 하는데요.” “뭐라고요? 휴가라뇨. 말도 안돼요.” 미술학원에서 4박5일간 여름휴가라는 사실을 내게 알리는 걸 잊어버린 것이었다. 학원에 전화를 하니 이미 휴가를 갔는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알아보니 같이 미술학원에 다니는 친구 몇 명도 휴가라는 공지를 듣지 못했다.


 

너무 화가 났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서 거리에서 소리를 질렀다. “아이를 이렇게 두고 휴가를 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봤다. 분노인지, 억울함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지나 눈앞이 흐려졌다. 아이가 유치원에 있었기에 다행이지 혹시 이 폭염에 밖에 서 있었다면. 그럴 일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아이 혼자 학원 차를 기다리는 상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죄책감이 밀려왔다. 아이 의사에 무관하게 학원을 보낸 내 잘못은 아니었을까.


 

■ 어린이집 차에 아이가 갇혀 죽었다


한 아이가 어린이집 차에 갇혀 죽었다. 고작 4세라고 했다. 48개월 안팎의 나이였을 것이다. 7시간이나 어린이집 차량에 갇혀 있었다니. 아이들에게 일어난 사고는 이제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얼마 전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곳에 세워둔 차를 탔을 때 이준이는 외마디를 뱉었다. “엄마, 뜨거워!” 카시트가 달아올라 아이 몸에는 뜨거울 지경이었던 거다. 그런데 7시간을 갇혀 있었다니. 그 아이는 얼마나 뜨거웠을까. 마음이 아파서 더 상상할 수가 없다.

언론이 기사를 쏟아내고 정부가 사후약방문식 대책을 마련하는 동안에도 수많은 아이들이 어린이집 차량을 타고 등·하원을 한다. 대책이 쏟아지고 정부는 31일 어린이집 차량 ‘잠자는 아이 확인 장치’ 시연회를 연다고 한다. 익숙한 풍경이다. 사고는 반복돼 벌어지고 그때마다 대책을 수립한다고 시끄럽지만 근본적인 처방에 손을 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두진이가 3세일 때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선생님이 한 아이 뺨을 때렸고 그를 지켜보는 다른 아이들은 무릎을 꿇고 있었던 영상이 방송을 탔다. 불난 여론에 당정이 난리였지만 결론은 싱겁게도(?) ‘폐쇄회로(CC) TV’ 설치 의무화로 났다. 어린이집 CCTV 설치가 의무화되면서 사고는 줄어들었을까. 선생님 1명당 원아가 너무 많은 현실은 그대로 둔 채 CCTV로 감시하면 아이들이 안전해질까.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어린이집에서의 사고는 반복되는데
그럴 때마다 사후약방문식 대책 뿐
어릴 때부터 보내야 하는 구조가 문제

 

너무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구조가 문제다. 그나마도 갈 만한 어린이집을 찾기 힘들어 차량을 타고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사회다. 그 어린아이들이 아침부터 차를 타고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구조에 대해서는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은 부모 따라 출근(?)하느라 바쁘다. 부모 시간에 맞추느라 아침마다 전쟁이다. 그나마도 부모가 등·하원을 맡을 수 없으면 할머니에게 의지하거나 등·하원 이모님을 고용해야 한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스케줄에 맞추느라 고생해야 하는 구조에서 정작 책임져야 하는 어른들은 어떤 포즈를 취하고 있는가.


 

바쁜 아침 이준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면 베테랑(?)이 된 둘째 엄마인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준아, 엄마도 출근하는데 너도 출근해야지.” 아이 어린이집 등원이 어른들 출근처럼 느껴져서 하는 잔혹한 농담이다. 아이 둘을 낳아 기르면서 ‘돌봄 공백’이 생길 때마다 아이를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버텨왔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한편 합리화도 했다. ‘잘 돌봐주는 어린이집을 만나서 다행이야.’ 그런데 그건 운이 좋아서 아닌가? 내 아이가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다행히 어린이집 차량은 타지 않아도 되어서는 아닌가?

■ ‘아이 낳으면 행복해요’ 캠페인이 불쾌한 이유

아이를 낳으라는 온갖 캠페인을 곳곳에서 본다. “아이 낳으면 행복해요.” 그런 문구는 너무 불쾌하다. “행복한 거 누가 모르나요? 아이 키우는 행복을 몰라서 안 낳나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사람들은 멍청하지 않다. 아이 낳는 일이 귀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육아가 아무리 벅차도 아이 웃음에 괴로움을 날려버리는 게 또 육아다. 낳아도 키울 수가 없는 상황을 맞댔는데, 낳아도 키울 수가 없다는 걸 주변을 보고 알고 있는데 아이를 낳으면 행복하다고?


 

부모가 돌볼 시간이 절대적 부족한데
아이 키우는 행복을 몰라서 안 낳을까
육아휴직 제도부터 제대로 굴러가야

 

왜 그렇게 키우기 힘드냐고들 묻는다. 부모가 아이를 직접 돌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다. 일하다 알게 된 방송작가가 내게 말했다. “그래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서 좋으시겠어요. 저는 어림도 없어요.” 할 말을 잃었다. 그나마의 육아휴직 제도는 고용보험 가입자만 쓸 수 있다. 육아휴직 급여도 노동자가 낸 고용보험에서 나온다. 부부가 육아휴직을 1년씩만 써도 신생아는 두 돌 아기로 큰다. 두 돌이 되면 말도 하고 돌보기도 수월해진다. 그러나 주변에서 부부가 1년씩 육아휴직을 사용한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돌도 안 된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육아휴직을 1년 했던 내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건 첫째가 14개월, 둘째가 10개월 때였다. 얼마 전 11개월짜리 아이가 서울 강서구 어린이집에서 죽었다. 부적격교사의 문제로 밝혀졌다.


 

그런데 내게는 ‘11개월’이라는 숫자가 더 먼저 들어왔다. 돌도 안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저 엄마의 심정을 누가 알까.


 

다행히 나는 1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직장을 다녔고 아이 둘을 그만큼씩 키웠다. 운 좋게 복직 즈음에 맞춰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고 친정엄마가 어린이집 하원 이후에는 아이들을 전면적으로 돌봐주신다. 내가 갑자기 야근해도, 남편이 갑자기 일이 생겨도 친정 부모님이 아이들을 맡아주시기 때문에 아이 둘을 낳는 게 가능했다.

하나씩 소거해보자. 첫 번째, 할머니가 양육을 도와줄 수 없는 집이라면. 12시간씩 돌봐주는 어린이집을 보낸다. 우리 아이만 꼴찌로 어린이집에 남아있는 모습을 봐야 한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집으로 갈 때 계속 엄마아빠를 기다린다. 부모가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정상적인 직장을 다녀도 아이들은 통근 시간 때문에 오전 8시에 맡겨져 오후 7시까지 기다리게 된다. ‘12시간 보육’을 해주겠다고? 정부 당국자들에게 묻고 싶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12시간씩 있는 사회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지. 보육교사들은 부모들의 노동 환경에 자신들의 노동 여건을 끼워 맞춰야 한다. 주로 여성인 그들도 누군가의 엄마일 텐데.


 

두 번째, 믿을 만한 어린이집을 보낼 수 없다면. 시터이모님을 고용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아이가 생판 모르는 사람을 따를 수 있어야 한다. 간단한 일은 아니다. 세 번째, 아예 육아휴직조차 안 되는 사업장에 다닌다면. 결국 부부 중 한쪽이 그만둬야 한다. 주로 임금이 적은 여자가 그만둔다. 이후 ‘독박육아’가 시작된다. 구조에 의해 그만두게 됐을 때 그건 자의에 의한 사직일까? 나는 권고사직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는 여성들을 권고사직하고 있다.


 

“아이 낳으면 행복해요” 같은 캠페인은 그만하라. 정부와 언론은 그런 캠페인을 기획할 시간에 돌봄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을 고민하라. 아이들이 너무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에 가는 구조가 문제다. 부부가 법으로 정한 육아휴직을 1년씩만 해도 신생아는 두 돌 아이로 자란다. 그 이후엔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게 노동시간을 줄여달라. 이미 제도는 다 있다. 핵심은 육아휴직제도, 육아기 단축근로, 시차출퇴근제 같은 제도가 제대로 굴러가게 만드는 것이다.

■ 국가는 돌봄 공백을 메우라

세상 좋아졌다고들 한다. 임신하면 병원에서 검진할 수 있는 바우처가 나오고 출산하면 자치구에서 출산축하금도 준다. 양육수당도 주고 9월부터는 아동수당도 준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찔끔찔끔 수당으로 아이 낳는 결심을 할 수는 없다. 아이는 바우처로 키우는 게 아니다. 부모의 시간으로 큰다.


 

둘째를 낳은 많은 이유가 있다. 원래 아이를 좋아했고 엄마가 되기 위해 결혼을 했다는 농담을 할 정도였다. 첫째에게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이유는 사소하다. 나는 첫째 곁에 있고 싶었다. 자꾸 크는 아이가 아까웠다. 아이가 부모의 품을 필요로 한다는 걸 알았다. 둘째를 낳아서 다시 육아휴직을 한다면 첫째 옆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회사를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1년이라도 벌고 싶었다. 둘째를 돌쟁이 아가로 키웠던 1년 동안 행복했다. 신생아를 키우는 것은 첫째를 키울 때처럼 힘들었지만 5세 꼬마가 된 첫째와의 수다는 순간순간을 다 기록하고 싶을 정도였다.


 

아이는 수당 아닌 부모의 시간으로 큰다
육아기 단축근로·시차출퇴근 현실화 등
국가는 돌봄 공백을 메울 방법 고민해야

 

둘째가 클수록 크는 아이들이 아까워 나는 다시 아이들 옆에 있고 싶다는 꿈을 꾼다. 아이들 옆에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회사를 그만두거나 셋째를 낳거나. 둘 다 선택할 수 없다.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고 셋째까지 친정엄마한테 키워달라고 할 수 없다. 그 정도로 철면피 자식이 될 수는 없다. 셋째를 낳아도 셋 다 내가 양육해낼 경제적 자신도 없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 옆에서 시간을 보내는 꿈을 접는다. 저출산이 심각해지니 선진국들의 육아 제도를 다루는 기사들이 쏟아진다. ‘라테파파’가 사는 사회에서는 셋째가 유행이라는 인터뷰도 봤다. 셋째는 무슨, 둘째를 낳은 것도 친정엄마 덕분인데.


 

국가는 정책을 분화시키지 말고 돌봄 공백을 메우는 데만 집중했으면 좋겠다. 다양한 수당도 좋지만 본질적 문제를 해결해야 다른 정책도 빛이 난다.


 

육아휴직 소득대체율을 높이고 고용보험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면 먼저 그쪽에 하자. 육아기 단축근로와 시차출퇴근제를 현실화하는 방법을 고민하자.

7월부터 주 52시간이 본격화되면서 야근한 다음날 오후 출근한다. 야근 다음날은 아이들을 유치원, 어린이집에 데려다줄 수 있게 됐다. 이준이를 먼저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두진이와 손을 꼭 잡고 유치원으로 가는 길에 두진이가 말했다. “엄마랑 유치원 가니까 너무 좋다.” 이런 시간들이 조금만 더 늘어나길 바라는 게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