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아침은 늘 전쟁터다. 아이들은 부모 출근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 유치원에 가느라 시간에 쫓긴다. 가끔 29개월 둘째 입장에서 어린이집에 가는 장면을 상상한다. ‘좀 늦잠을 자도 되는데 엄마가 깨우고 아빠가 밥 안 먹는다고 성화다. 아직 좀 천천히 해도 되는데 엄마 아빠는 항상 서두르라고 재촉한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어린이집에 간다는 뜻이다. 가기 싫은데. 그래도 엄마가 출근하듯 나도 어린이집에 가야한다고 하니까 간다. 어린이집 가는 길에 길가에 떨어진 낙엽도 보고 자동차도 구경하고 싶지만 아빠는 그럴 시간 없다고 나를 안고 뛴다.’
어린이집·유치원 안 보낼 수 없던 나
대신 좋은 곳 찾으려 애쓰는 게 최선
한국 사회선 좋은 기관 찾는 것도 ‘복’
아이들은 원해서 어린이집, 유치원에 가는 것이 아니다. 29개월밖에 안된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면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좋은 어린이집, 유치원을 찾으려 애를 쓰는 게 최선이었다. 첫째는 15개월부터, 둘째는 10개월부터 기관에 맡겨 키워왔다. 오전 9시반부터 오후 3시반, 늦게는 5시까지 기관에서 아이를 돌봐줬기에 아직 일을 유지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처음 맡기던 날에는 현관 문 밖을 나서 펑펑 울 정도로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기관에 아이를 맡긴 지 만 5년6개월 지난 지금, 선생님들의 보육과 교육 덕분에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랐다고 생각할 만큼 여유로워졌다. 기관에 일찍 맡겨야 했던 환경에 대해서는 여전히 할 말이 많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좋은 기관을 찾은 것조차 ‘복’이라는 것을 안다.
■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 환경이란
두 아이를 기르면서 많은 선생님들에게 양육에 관한 도움을 받았다. 집중력이 좋은 대신 행동 전환이 느린 첫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처음 알려준 사람은 어린이집 선생님이었고, 아이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워킹맘의 처지를 비관할 때 지나치게 낙담할 필요가 없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며 위로를 건넸던 사람은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둘째가 넘어져 다쳤을 때 나보다 더 슬프게 운 사람도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선생님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절감한다. 첫째를 아꼈던 한 선생님은 내가 모르던 아이의 장점을 찾아내 정말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 두진이는 정말 아이들이 안 보는 것까지 보는 아이예요.” 경쾌한 목소리, 아이를 아끼는 눈빛에 정말 고마웠다.
국공립의 장점, 둘째 보내면서 실감
학부모 참여 운영위 통해 투명한 운영
사립은 운영위 없거나 자문 역할만
우리 아이들은 가정 어린이집, 병설 유치원, 국공립어린이집을 다녔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난 어린이집, 유치원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만 3~5세 공통 과정인 누리과정이라는 교육과정은 이미 통합돼 있는 상태여서 그럴 것이다. 오히려 내게 중요한 것은 공립이냐, 사립이냐였다. 실제 둘째를 올해부터 국공립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더 확신했다.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운영위를 통해 예·결산 내역을 공유하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한 번은 어린이집에서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송편 만들기 행사를 했다. 할머니를 초대할 생각을 하다니 조부모가 양육하는 집까지 배려하는구나. 할머니가 와서 송편까지 만든 것에 대해 아이가 매우 신나하는 모습을 보며 새삼 어린이집에 고마웠다.
공립, 사립을 넘어 핵심은 선생님 처우와 교육환경이다. 고용이 안정돼 있는지 여부가 일선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들의 여유를 만들 수 있는지를 가를 것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정말 체력적으로 고된데 그에 맞는 급여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근본적 해결책은 교사 1인당 아이 수를 줄이는 것이다. 선생님에게 좋은 환경이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이라는 사실을 정부 당국자들은 진정 모르는 건가.
■ 민주적 통제가 답
지난해부터 유치원 운영위원이 됐다. 운영위는 예·결산 내역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아이들 교육재료비, 비품구입비, 인건비까지. 1원 단위까지 공개하기 때문에 샐 틈이 없다. 아이들이 먹는 급식은 특위를 구성해서 점검한다. 방학 때 방과후반 아이들에게 급식을 만들어줄 조리사 선생님을 채용하지 못한 유치원은 결국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급식특위 위원 엄마 2명은 3곳의 도시락 업체를 가서 직접 먹어보고 제일 좋은 곳으로 결정했다. 유치원 운영에 대해 궁금하면 학부모들이 운영위원을 통해 공식적으로 유치원에 묻기도 한다. 유치원 운영위원회가 도입된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운영위원으로 참여해보니 내실화하면 정말 좋은 기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국공립유치원 얘기다. 국공립유치원에서 운영위는 심의 기능을 갖지만 사립유치원에서는 자문 기능뿐이다. 그나마 운영위를 구성하지 않은 곳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이야기를 하면 아이를 사립유치원에 보내는 엄마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본다.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이에요? 난 그냥 유치원 원장님이 하는 말만 일방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어요.” 학부모들이 과한 요구를 하면 운영위원회에서 토론을 통해 조정하기도 한다. 한번은 아이들 사진을 자주 찍어서 홈페이지에 올려줄 수 있겠느냐는 문의가 있었지만 다수의 운영위원들이 “선생님들은 이미 많은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과중한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며 “사진 찍을 시간에 더 좋은 교육을 고민하셨으면 좋겠다”고 결론을 냈다. 다수의 토론이 좋은 결론에 닿는 사례였다.
사립유치원 감사, 비리 유치원 명단 문제로 유·보육계가 발칵 뒤집혔다. 그런데 이들 문제도 다 사후 감사로 적발된 것이다. 정부의 사후 감사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내부에서 민주적 통제를 하는 게 근본적 해결 방법이다. 그러나 운영위는 유명무실한 경우가 적지 않고 교사들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원장이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문제를 제기했다가 잘못 되면 다른 어린이집 취직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는 너무 당연하다. 원장 그룹은 민간어린이집연합회,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등 조직으로 단합되지만 교사들은 그럴 방법이 없다. 노조가 있지만 노조에 가입하기 쉽지 않다.
■ 어른들이 풀 문제를 회피하지 말자
2015년 누리과정 예산 갈등이 극심했을 때 나는 교육 담당 기자였다. 중앙정부는 시·도 교육청에 빚을 내서라도 누리과정 예산을 충당하라고 했고 교육청은 버티다 지방채를 발행하는 악순환이었다. 어린이집, 유치원에 지원금이 나온다 안 나온다 다들 혼란스러워하자 교육부는 어린이집 대표, 유치원 대표, 학부모 대표를 앉혀놓고 여러 차례 간담회를 열었다. 둘째를 임신하고 있던 나는 그런 간담회 현장을 취재하며 참담했다. 어느 자리에서도 진정 아이들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 없다고 느꼈다. 한가한 소리만 오가던 어느 간담회 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뒤에서 수첩에 말을 받아적고 있던 나는 소리치며 말하고 싶었다. “이런 식의 간담회는 하지 말라고요. 선생님들도 정부 지원금 말고는 관심이 없나요?”
그러다 사립유치원, 민간어린이집 감사 결과를 보도자료로 읽으면서 괴로웠다. “어떤 유치원은 가보니까 원장이 쇠고기를 일부만 떼서 유치원 냉장고에 넣고 다 자기 집으로 가져갔더라고요.” 이 탐욕스러운 어른들에게 우리 아이를 맡길 수 있을까. 지난해 7월 육아휴직 중이던 나는 서울시교육청이 공립유치원을 늘려야 한다는 연구 결과에 대해 논의하는 간담회에 간 적이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서울시교육청 간담회 장소를 점거(?)해버렸고 교육청 인사들 나오라고 소리를 쳤다. 몇몇 원장선생님은 외쳤다. “휴원해요. 워킹맘들 볼모로 삼아야지.” 귀를 의심했다. 볼모? 교육자가 아니구나.
“휴원해요, 워킹맘 볼모로” 외친 원장들
정부 사후 감사만으론 문제 해결 안 돼
기관 내부의 ‘민주적 통제’가 근본 대책
‘비리 유치원 명단’이 주요 뉴스이던 몇 주간 기시감을 느꼈다. 사건이 벌어져서 시끄러워지면 급히 땜빵 대책을 만들고 다시 조용해지길 기다리는 그 악순환. 어린이집에서 학대가 벌어졌을 때 우리 사회는 어린이집에 폐쇄회로(CC)TV를 들였다. 학대를 예방하겠다며 사건이 벌어진 뒤 사후 대처밖에 할 수 없는 CCTV를 들여놓는 게 우리 사회 실력이다. 교육청, 교육부는 사립유치원, 민간 어린이집의 문제가 무엇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 지금까지 방치해왔던 것에 대해 깊이 고개 숙이고,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유치원이, 학교가 자기 것이라 믿는 사람들에 의해 교육이 이뤄져왔다. 아이를 때린 선생님, 아이를 버스에 두고 내린 선생님을 욕하기는 쉽다. 그 뒤의 구조를 드러내 고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땜질 대책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는 유아 교육, 보육에 공공성을 확보할 때다. 내년에 첫째가 초등학교에 가니까, 둘째도 곧 보육·유아교육 기관을 졸업할 테니 이 시기 동안 내 아이가 안전하기만을 바라면서 지내야 할까. 그러고 싶지 않다. 우리 어른들이 이 정도밖에 할 수 없으면 아이들은 또 같은 구조에 놓일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우리 어른들의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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