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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 일기

아이가 다치면 마음이 무너진다

<아이가 다치면 마음이 무너진다>

 

휴직했을 때 엄마 회사 낸중에 가면 안돼?” 노래 불렀던 두진이는 요즘 아침마다 출근하는 내게 물어본다.

 

엄마 오늘 야근이야?”

 

야근을 하면 11시에 끝나고 집에 가면 12시가 넘는다. 야근은 한 달에 서너번 밖에 안 되는데도 아이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묻는다. 아이들은 10시쯤 잠드니 잠들 때까지 엄마를 볼 수 없다. 같이 못 자는 날이 싫은 큰 아들의 야근 타령. 이제 시작인가. 어떤 선배는 아들 이야기를 해주며 말했다. “처음엔 회사 가지마현관문에서 울더니 시간이 지나고 포기하더라고. 그다음엔 언제 퇴근해?’ 노래를 불러. 그것도 포기하고 나면 이번주엔 주말에 누가 쉬어?’ 그러더라.”

 

여전히 월요일 신문을 만들기 위해서 일요일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아이에게는 엄마가 주말에 언제 쉬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아직 우리집 아들들은 요일 구분은 할 줄 모르지만 야근은 알게 됐으니 나도 그 날이 멀지는 않겠지.

 

작년인가 한국 아이들 수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적게 잔다고. 아이를 다른 방에 재우는 서양과 달리 아이와 엄마가 같이 자는 습관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때 한 언론이 엄마 때문에 잠 못 자는 아이들이라고 제목을 달아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헛웃음이 난다. “엄마 때문에 잠 못 자는 게 아니고요, 엄마아빠가 늦게 퇴근하니 자는 시간이 늦어지는 거거든요.”

 

집에 들어가면 빠르면 8, 늦으면 9시가 된다. 애들을 씻기고 재울 준비만 해도 금방 10시가 된다. 평일에는 같이 못 놀았다며 같이 놀자고 떼를 쓰기 시작하면 시간은 점점 늦어진다. 복직 후에 우리 집 아들들 자는 시간도 점점 늦어지고 있다. 놀고 싶다고 하면 그냥 뿌리칠 수가 없다. 하루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으니.

 

부산한 둘째. 첫째와 달리 겁이 없다. 18개월도 안됐는데 벌써 치과행 세번째.

 

그러다 마음이 몹시 상한 날이 있었다. 유치원 근처에서 워킹맘 험담을 들은 날이었다. 우연히 유치원 근처 커피숍에 앉아있다가 어떤 엄마들의 대화가 귓가에 들렸다.

 

워킹맘들은 애들이 아파도 보내더라. 불쌍하지도 않은가봐.”

 

갑자기 마음이 싸해졌다. 열이 나지 않는 한 아이를 기관에 보낼 수밖에 없는 사정을 모르는구나.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게 아닌데. “아이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라고.”

그 말까지 듣고 나니 마음이 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할퀴어졌다. 설명하고 싶었다. 왜 아픈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는지. 열이라도 나면 얼마나 종종거리게 되는지.

 

두진이 유치원에서는 현장학습을 가는 날마다 엄마들이 출발하는 버스 앞에서 빠빠이를 해주는 문화가 있다. 출산휴가 들어가면서 나도 그 문화를 알게 됐으니 두진이는 엄마가 빠빠이를 해주지 않은 채 현장학습을 갔던 거였다. 미안했다. 그렇지만 빠빠이가 뭐 별거냐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두진이 친구 엄마는 왜 아이가 현장학습날마다 유치원에 안 간다고 하는지 궁금해하다가 이 빠빠이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 엄마도 워킹맘이라 그런 문화가 있는 줄 모르다가 하도 현장학습을 가기 싫어해 엄마가 같이 가면 현장학습에 가겠다는 아이 말에 반차를 내고 따라왔다가 알게 된 것이다. 아이가 자기 엄마만 빠빠이를 해주지 않는 걸 싫어했다는 걸.

 

유치원 선생님은 이야기하셨다. “어떤 아이는 친구한테 말하더라고요. ‘나는 엄마 안 오니까 네가 창가에 앉아라고. 그 말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이제 이 빠빠이는 내 고민이 됐다. “아빠가 빠빠이 하러 가면 안돼?”라는 말에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아드님을 설득해야 하는 내 고민.

 

어떤 엄마는 2시간짜리 휴가를 내 와서 빠빠이만 하고 다시 회사로 뛰어간다. 공무원들에게 자녀돌봄휴가 이틀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부러웠다. 학교 행사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가 고3인 선배가 말했다. “학기 초에 입시설명회가 많은데 꼭 안 가도 되지만 꼭 가라고 어떤 선배가 조언하더라고. 왜 그러냐고 했더니 나중에 혹시 안 좋은 결과를 받았을 때 그때 내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들지 않기 위해서라는 거야.”

 

아이가 클수록 학교 행사가 많아진단다. 유치원생인데도 상담, 참관수업, 운동회가 철마다 준비돼 있다. 초등학교에 가면 총회니 반모임이니 더 많아진다고. 왜 초등학교 때 경단녀가 많이 생기는지는 그걸 경험해보면 알 수 있다고.

 

그러다... 이준이가 어린이집에서 다쳤다. 벌써 한 달여 전이다. 일하고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좀 다쳐서 소아과에 다녀왔다고. 상순소대가 찢어졌는데 소아과에서는 괜찮다고 한다고.

 

좀 마음이 안 좋았지만 괜찮다고 하니까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또 상순소대가 찢어진 적이 한 번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아이 이와 잇몸을 살펴보자 심상치 않았다. ‘왜 잇몸이 보라색이지.’ 아차 싶었다. 이가 괜찮은지는 본 건가.

 

다음날 치과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국정감사를 취재해야 하는 날이었다. 남편이 치과에 데려가기로 하고 나는 출근했다. 국감을 들으면서도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10시쯤 진료받으러 갔는데 치과 예약 때문에 진료를 받을 수 없다 해 되돌아왔고 오후 2시에 다시 가기로 했다고 했다. 점점 초조해졌다. 점심을 먹는둥마는둥 했다. 2시가 좀 넘어서야 진료 결과를 들었다. 뿌리는 괜찮은데 이가 흔들린다고.

 

화가 났다. 왜 대처를 이렇게밖에 못했는가. 취재고뭐고 집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아이가 다치고 하루가 지나는 동안 난 왜 이렇게밖에 대처를 못했는가. 누구한테 화가 나는지 알 수 없다가 어제 병원에 왔어도 달라질 것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정했다. 넘어지는 사고가 난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구나. 대신 한 달 동안 변색되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변색되면 고름이 생길 수 있고 고름이 생기면 신경치료를 해야 한다고. 어떻게 17개월 아이를 신경치료를 하냐고 하니까 그냥 한다고 했다. 그냥 하는 게 뭐냐니까 그냥 울어도 붙잡고 한다고.

 

아득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객관화하기 위해 머리가 돌아갔다.

집이었어도 다칠 수 있잖아, 내가 봐도 다칠 수 있지, 그냥 사고일 뿐이었고 병원에 빨리 간대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잖아.’

신기하게도 어린이집에는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두진이를 보냈던 어린이집이라 어린이집에 대한 신뢰가 높아서일 것이다. 사고에 대한 객관화는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고 오히려 생각은 왜 이렇게 사는가에 모아졌다.

 

왜 나는 아이가 다쳐도 이렇게 대처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져 있는가.

 

아이가 다치면 마음이 무너진다. 그리고 며칠 동안 힘이 나지 않았다. 아이는 다치고나서인지 출근할 때 많이 울었고 다쳐서 우는 게 아닐 수도 있는데 무너진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았다. ‘아가야, 미안해. 다치고 피가 많이 났을 텐데, 아프고 놀랐을 텐데,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절대 일하면서 죄책감을 갖지 말자고 다독이지만 아이가 이렇게 아프거나 다치면 그게 되지 않는다. 그리고 올라오는 질문.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가.’

 

이제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던 한 달이 다 지나간다. 다행히 아이 이는 아직까지 변색되지 않았다. 큰 이상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아직 답은 찾지 못했다. 아마 아이가 크는 내내 찾지 못할 것이다. 그냥 적당히 인정하고 적당히 포기하며 무뎌지겠지. 그걸 알고 있으니 더 울적한 이 모순.

 

그래도 힘을 내야지. 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