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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 일기

'기특이'가 우리에게

가끔 이런 상상을 했었습니다.

뱃속에 나 아닌 생명을 품고 있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여린 생명이 꿈틀, 뭉클하면 어떤 기분일까.

 

누구나 부모가 될 수 있지만

아기와 한 몸으로 열 달을 사는 건 '엄마'뿐이라서 여자로 태어난 게 좋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결혼한 이후에 '자녀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신이 주시는대로"라고 대답했습니다.

 

막연히 두렵기도 했습니다.

임신이 생각보다 잘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요즘엔 그렇게 난임 불임 부부가 많다던데.

 

언젠가 박완서 작가의 소설에서

엄마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짐승'처럼 자식을 돌보는 스스로에 대한 생경함.

그럼에도 아기가 자신을 바라보고 웃어줄 때 경험해보지 못했던 기쁨.

 

 

저도 언젠가 엄마가 되면 그런 두려움과 기쁨을 번갈아 느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우리 부부에게 '아기'가 찾아왔습니다.

 

 

 

 

처음에 봄날 자꾸 춥다는 제게 '혹시 임신한 거 아니야'라는 농담을 했던 선배에게

'에이 설마요' 한 그날

호기심 충만한 저는 당장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다음날 새벽에 검사를 했지요.(첫 소변으로 검사하라는 조언을 챙겼습니다 ㅎㅎ)

 

헉! 두 줄.

 

남편과 저는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직 너무 작아 '아기집'도 보이지 않았지만 '임신'이었습니다.

 

 

 

병원을 나오는데 묘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몸은 건강한 걸까.

앞으로 일은 어떡하지.

휴직하게 되면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

아니다 아기가 건강하기만 하다면.

건강하겠...지?

 

 

우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은 새 생명이 탄생한다는 '기쁨'에 축하의 말을 건넸지만

'실감'은 나지 않았고 자꾸 '두려워'졌습니다.

 

 

 

신체의 변화는 빨랐습니다.

자꾸 졸렸고 가끔 어지러웠고 배에 약한 통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책에는

"감기나 몸살에 걸린 것처럼 온몸이 나른하고 머리가 아프거나 한기를 느낀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피로를 느낀다. 이런 현상은 임신 상태를 유지하려는 황체호르몬의 영향이므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자주 샤워를 해서 산뜻한 기분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

 

의사 선생님은 "자궁이 커지느라" 배에 통증이 있을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변화가 달갑지 않았습니다.

일을 해야 하는데 졸렸고 자꾸 눕고 싶었습니다.

주말에는 소파나 침대에 누워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수면 시간도 너무 많이 늘어났습니다. (밤 10시쯤 자서 다음날 아침 7시반쯤 일어날 정도...;;;)

 

 

 

 

지난주에는 남편이 출장 중이라 혼자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혹시나 '자궁외임신'일 수도 있기 때문에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아기집'이 보였습니다. '태낭'이라고 하나 봅니다.(가운데 작은 타원이 '태낭'입니다)

 

1.7cm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작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갑자기 '멍'해졌습니다.

 

 

정말 '아기'가 왔구나.

'우리 아기'구나.

 

그제서야 실감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로 7주 4일에 접어들었습니다.

아기는 여전히 작겠지요.

그렇지만 점점 자라나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할 것입니다.

12월이면 제 품에 아기를 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도 준비되지 않은 엄마에게 올 우리 아기.

그저 건강했으면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처음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지금은 그저 '건강해야한다'는 생각만 합니다.

 

아기가 건강하도록 스스로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

그러면서 아기가 나를 조금쯤 '겸손'하게 만들고 있구나... 했습니다.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그저 사랑스럽습니다.

그 아이들도, 아니 어른들도 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자라났을 거라고 생각하면

갑자기 세상이 뭉클해집니다.

감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기'가 오기 전에는 잘 하지 않던 생각. '감사하다'

 

그저 건강하고 감사함을 아는 아기가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누런돼지와 저의 어릴 적 모습입니다. 반씩 닮겠지요?ㅎㅎ

 

 

 

 

친정 엄마께서 '태몽'을 꾸셨습니다.

물이 세차게 내려오는 폭포 아래에 물이 한가득 모여 있었는데 한쪽에 '황금색 물'이 보였다고 합니다.

 

책을 찾아보니

"물은 창의성을 상징하여 문학이나 예술, 창의력이 필요한 직업을 가지면 성공할 수 있다"

고 되어있더군요.

 

ㅎㅎ '누런돼지'와 저는 "괴테나 톨스토이?"하면서 웃었습니다.

 

 

 

그래도 혼자 있을 때면

저는 '아기'에게 조용히 말을 겁니다.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라면서요.

 

태명을 '기특이'라고 지었습니다.

그저, 기특해서요.

 

 

 

어릴 때부터 끄적이는 걸 좋아했던 저는

임신하면 꼭 '태교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에 '기특' 일기를 자주 쓸 생각입니다.

'기특이'가 태어날 때까지.

 

 

 

4월 9일 오후 10시30분

 

'기특'이가 우리에게 왔다. 남편과 나는 12월에 부모가 된다. '엄마'라니.

우리 아가, 예쁜 아가. 건강하기만을.

 

생명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준엄하고도 연약한 일인지 되새기며 가끔 배에 손을 댄다.

아가야, 건강해야해. 네가 어떤 존재이든 나는 너를 사랑할 것이란다.

 

잠이 쏟아진다. 아직 임신 4~5주. 모든 것이 순리대로 갈 것을 믿으며 '태교 자장가 클래식'을 듣는다.

기특한 우리 아기. 존재만으로도 고마워.

 

딸이었음, 어떤 아이였음 했던 소망이 다 부질없게 느껴진다.

그저 건강하기만을.

 

우리 기특이, 아홉달 후에 만나자.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이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널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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