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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 일기

모유수유 분투기 1

2013년 3월 어느새 기특이는 태어난지 100일이 되었다.

 

 

 

하루종일 아기를 안고 어쩔줄 모르던 지난 100일. 밤새 젖 먹이느라 잠도 못 자고 하루종일 아기를 안고 있으니 손목은 시큰거렸다. 예쁜 '내 새끼'를 보면 행복했지만 또 그만큼 괴로웠다. 왜 육아 선배들이 뱃속에 있을 때가 그리울 거라고들 말해줬는지 알 것 같았다. 기특이는 목청 높여 울다가 '꺽꺽' 목넘어가도록 서럽게 우는 아기였다. 물론 지금도 선잠이 깨거나 뭔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그렇게 운다. 아기가 울면 나도 같이 어쩔줄 몰라 당황했고 아기가 잘못될까봐 노심초사. 출산 후 산후우울증 초기의 감정은 '내가 아기를 잘못되게 하면 어쩌지'라는 감정이라더니 정말 안절부절의 연속이었다.

 

이제 100일이 지나고 조금씩 기특이와 호흡을 맞춰가고 있다.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건지, 밥을 달라는 건지, 놀아달라는 건지, 재워달라는 건지 아기 욕구를 알아채고 그를 도와주면서 하루를 같이 보낸다.

 

그래도 지난 100일은 정말 힘들었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모유수유'

 

 

 

 

 

1. 그냥 먹이면 되는 거 아니었어? 그냥 빨면 되는 거 아니었어?

 

막연히 아기를 낳으면 '모유수유'를 하겠다고 생각만 했지 그 '모유수유'라는 게 어떤 건지 정확히 몰랐다. 그냥 엄마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아기는 빨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상에 그저 주어지는 것은 없었던 것이다. 엄마가 주는 밥을 먹는 일조차. 모유수유는 아기에게나, 엄마에게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원치 않은 제왕절개 수술로 아기를 낳았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출산 직후 아기에게 젖을 물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 책에서는 아기가 태어난 후 30분에서 1시간 이내에 모유수유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난 그 시간 마취가 깨지 않아 잠들어 있었고 아기에게 젖을 물린 것은 거의 두세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나마 젖이 잘 나오지도 않았다.

 

수술 후 진통제와 수액 링겔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서 바로 모유수유를 하기도 어려웠다. 병원에선 신생아는 처음 24시간 동안에는 젖을 먹지 않아도 뱃속에서 먹고 나온 것이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지만 3.88kg, 54cm로 태어난 우리 기특이는 배고파하는 듯했다. 결국 간호사는 '분유 보충'을 해야겠다며 데려갔고 아기는 분유를 먹어야 했다.

 

둘째날부터는 본격적으로 모유수유를 시작했다. 아직 링겔을 매달고 있긴 했지만 앉아 있을 수 있었고 최대한 아기가 엄마 젖을 많이 빨아야 젖량도 늘어난다고 했다.

 

그러나 고통이 시작됐다.

아기는 세차게 빨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센 힘에 유두에 상처가 났다. 아기 빠는 힘이 그렇게 셀 줄이야.

'젖 먹는 힘까지'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너무 아.팠.다.

유두보호크림을 바르고 멍하니 병실 의자에 앉아 있는데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가, 여긴 어딘가' 싶었다.

 

수술 후 마취제 때문에 뱃속에 가스가 차고 숨쉴 때마다 배가 아파 눈물이 나는데도 모유수유를 해야 하는 상황도 괴로웠다. 자꾸 먹여야 젖 양이 늘어난다는 간호사 선생님 말이 야속해서 '조금 있다 먹이겠다'고 고집을 피우기도 했다. 내 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기 젖을 먹어야 하는 상황. 한 간호사 선생님이 '엄마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 말이 더 야속했다.

 

아기도 쉬운 게 아니었다. 뱃속에서 엄마가 주는 밥을 편히 받아먹던 아기도 세상에 태어나 처음 '먹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기 입장에서 젖병을 빠는 것보다 엄마 젖을 빠는 일은 60배나 힘들다고 했다.

 

아기는 자꾸 입 속에서 젖꼭지가 미끄러지자 자지러지게 울었다. 기특이는 조금이라도 젖이 안 나온다 싶으면 목청 높여 우는 아기였다. 간호사 선생님이 주사기를 가져다 주셨다. 젖량이 적어 아기가 만족을 못 하니 분유를 탄 주사기로 조금씩 분유를 입 속에 흘려주는 것. 아기는 그럼 모유인 줄 알고 젖을 빨게 되고 아기가 빠는 만큼 젖량이 늘어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기특이는 주사기로 넣어준 분유만 빨고 더 이상 빨지 않았다. 영특한 것. 간호사 선생님이 '머리가 좋아서 그렇다'는 말을 위로 삼으며 계속 요령 있게 조금씩 넣어주는 수밖에.

 

'모유 생성유도기'도 동원됐다. 작은 병에 분유 혹은 유축한 모유를 담아서 엄마 목에 매달고 병에 연결된 가는 호스를 젖꼭지 부분에 연결해 분유(모유)가 흘러나오게 하는 기구였다. 아기는 엄마 젖꼭지를 빨면서 '생성유도기'에서 나오는 분유(모유)도 먹게 되는 것. 엄마 젖이 잘 안 나와도 '생성유도기'에서 나오는 분유(모유)를 먹게 되니 아기도 짜증나지 않고 엄마도 자신의 젖량을 늘릴 수 있게 고안된 기구였다. 아 신기한 세상. 모유수유에도 다양한 도구가 동원됐다.

 

 

모유 생성유도기(출처 : 옥션)

 

 

셋째날 저녁, 또다시 모유수유 시간이 다가오자 진정 울고 싶었다. 결국 환자복에 눈물이 뚝뚝 흘렀다. 아기를 보다 잠든 남편을 불러서 깨웠다. 젖꼭지가 너무 아팠기 때문. 환자복의 단추도 다 채울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옷에 살짝만 스치기도 해도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 어떤 엄마들은 피가 나기도 한다는데 '나도 그러면 어떡하지' 겁에 질린 상태였다. 젖꼭지는 다 헤져서 피부가 조금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진정 다시 젖 물리는 시간이 다가오는 게 두려웠다.

 

울고 있는 나와 달래고 있는 남편을 발견한 간호사 선생님이 가슴 마사지를 해줬다. 소주잔만한 컵에 '초유'가 조금씩 담겼다. 마사지를 받고 나니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았다. 너덜너덜해진 피부는 며칠이 지난 후에야 괜찮아졋다.

 

 

 

편하게 젖병을 빨 수도 있는데 엄마 젖을 빨게 하는 일은 아기도, 엄마도 너무 힘들었다. 남편도 세상에 자연스러운 일이란 하나도 없다며, '젖먹이 같은 녀석,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는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모유수유'를 고집한 이유는

젖을 먹이면 아기에게도, 엄마에게도 좋기 때문이다.

젖을 먹이면 아기 면역에도 좋고 분유를 먹는 아기들보다 알레르기도 적게 생기고 머리도 좋아진다고.

또 엄마에게도 좋은데 지속적인 호르몬 변화 때문에 산후 회복이 빨라지고 아기가 젖을 빨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돼 자궁의 수축을 도와 출산 후 출혈도 줄이고 자궁 수축도 돕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분유 수유보다 모유수유가 더 편해진다. 분유를 먹이려면 항상 분유, 뜨거운 물 등을 들고 다녀야 하지만 모유를 먹이면 엄마와 아기가 함께 있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나 내가 무엇보다 모유수유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그게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아기를 자연스럽게 키우고 싶었다.

 

원래 분유가 없었던 시절 아기들은 모유를 먹었을 것이다. 엄마도 모유 외에 줄 게 없어 당연히 모유를 먹였을 것이고. 요즘엔 '산양 성분' 어쩌고 하면서 온갖 현란한 말로 분유를 광고하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아기에게도, 엄마에게도 좋은 것이 아닐까.

 

 

세계보건기구는 생후 첫 6개월 동안 아기에게 젖만 먹이는 완전모유수유를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 6개월부터 월령에 적합한 이유 보충식을 적절히 먹이면서, 적어도 2년 이상은 젖을 먹이고, 그 이후에도 아기와 엄마가 서로 원하는 한 게속해서 젖을 먹일 것을 권하고 있다. (출처 : <삐뽀삐뽀 119 우리 아가 모유 먹이기>) 

 

(그러나 육아휴직 1년도 쉽지 않은 우리나라 상황에서 2년을 모유수유하는 것은 꿈ㅠㅠ)

 

 

이제 100일이 지난 기특이와 나는 제법 적응했다. 젖냄새를 맡은 기특이는 밤새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려 젖을 찾고 손쉽게 젖꼭지를 문다. 배가 고플 때는 젖꼭지를 그 작은 입으로 잡아챈다. 나도 이제 그런 아기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정도는 됐다.

 

그치만 모유수유 분투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육아는 한 장애물을 넘어서면 다른 장애물이 나타나는 과정이라더니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초보맘의 수유일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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