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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 일기

'돌잔치'도 외주 주는 사회

며칠 후 돌잔치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챙기려 하다보니 정말 정신이 없네요.

 

요즘 돌잔치 준비 과정 세태... 제가 직접 체험해봤는데요. ㅎㅎㅎ 소개합니다. 

 

먼저 장소를 대여합니다.

요즘은 전문 돌잔치 업체도 많고 한정식집, 퓨전 레스토랑 등에서도 돌잔치를 많이 합니다.

 

전 우여곡절 끝에 시푸드 레스토랑을 골랐습니다.

 

두번째 몇 명을 초대할까를 정해야 합니다.

이런 업체들은 '최소 보증 인원' 있습니다. 적어도 몇 명은 있어야 방을 빌릴 수 있는 거죠.

10명만 초대하고 싶어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제시한 '최소 보증 인원'이 있으니까요.

(레스토랑 입장에서도 수익을 내야 하는 적정 인원이 있겠죠)

결혼식도 아니고 돌잔치를 초대해도 되나 고민하게 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돌잔치 크게 안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이런저런 고민을 안 하려면 '가족'들과만 식사를 하면 됩니다.

그런데 양가 어른들이 손님을 초대했으면 하셨습니다.

저희도 '기특이'가 외동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ㅎㅎ) '정말 친한' 친구들은 초대하자로 의견이 모아졌어요.

(참고 : 둘째를 낳을 수 없는 이유 http://ilovepig.khan.kr/186)

 

가족들과 식사만 한다고 해도 결정해야 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돌상'!

 

세 번째 돌상을 골라야 합니다.

업체에서는 보통 돌상을 제공합니다. 음식점도 마찬가지고요.

 

인터넷 쇼핑몰에서 돌상을 검색해봤습니다.

 

[전통돌상] 출장 돌상, 럭셔리돌상, 명풍 돌상, 청담돌스타일돌상

 

이름부터 심상치 않습니다...ㅎㅎ

얼마인가 봤더니...

 

기본떡 3종 + 과일 3종 + 포토테이블 + 사진 인화    429,000원
백설기, 무지개케이크                                          80,000원
풍선 장식                                                         289,000원
돌잔치 이벤트 사회자 A급                                   100,000원

 

총 889,000원이네요.

 

헉 소리 나죠.

출장하는 업체라 더 비싼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음식점에서 해주는 돌상이나 돌잔치 업체에서 해주는 돌상도 30만원, 50만원 적지 않게 듭니다.

 

 

몇십만원의 돈을 주고 '돌상'을 사는거죠.

그야말로 '돌상의 외주화'입니다.

 

그러고나면 아기 돌복을 빌리고 돌스냅 촬영을 예약하고 사진을 찍으니까 헤어&메이크업을 예약하고

오시는 분들에게 답례품을 드려야 하니까 또 답례품을 구매하고

돌잔치 장소에 장식하기 위해 포토테이블을 꾸며야 하니까 사진을 맡기고

또 아기 성장동영상을 만들 자료를 업체에 넘기고

등등... 할일이 끝이 없습니다.

 

 

위의 일들의 공통점이 있지 않나요.

뭐든지 '외주'입니다. 

돌상도, 돌복도, 사진도, 성장동영상도 '외주' 를 줍니다.

 

 

 

전 어떻게 했을까요.

저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음식점에서 제공하는 돌상을 샀고

아기 돌복을 빌렸고 촬영을 예약했습니다.

답례품도 샀습니다.

 

아기 성장동영상만 누런돼지와 제가 같이 만들었다 정도입니다.

 

 

 

 

 

계속 준비하며 뭔가 찝찝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검색하던 중

우연히 '전통 돌상'에 담겨 있는 의미라는 글을 보게 됐어요.

 

돌잔치는 왕조실록인 [정조실록]에 등장할 만큼 중요한 잔치로 인식됐다. 과거에는 첫돌이 되는 날 아침 일찍 성주고사를 지냈다. 성주고사는 아이를 점지해준 삼신에게 감사하는 것. 상에는 쌀밥과 미역국, 정화수를 기본 상차림으로 하고 삼색나물, 백설기, 수수팥떡 등을 올렸다. 상을 동쪽이나 남쪽 방향으로 두고 아이의 건강과 장수, 복을 기원한 다음 고사가 끝나면 상에 올린 밥과 국을 엄마가 먹었다. (힘들게 아이를 낳고 1년 동안 무사히 키워낸 엄마의 수고를 치하하는 의미)


돌상엔 백반, 국, 나물, 고기, 떡 등을 차리고 국수, 백설기, 수수판떡 등 장수와 무병을 기원하는 음식을 올린다. 또 돌상은 둥근상에 차리는데 모가 없이 둥글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과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또 음식을 둥근 유기그릇에 담아 아이가 은은하게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생화 대신 직접 만든 상화를 쌀에 꽂았는데 금방 시들어버리는 생화는 아이의 첫 생일상에 놓지 않고 장식을 위해 살아있는 꽃을 꺾지 않는다는 마음.

 

(출처 : '알고 나면 재밌는 전통 돌상의 의미'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097&contents_id=41800)

 

 

 

저는 돌상에 뭐가 올라가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음식점에서 알아서 해주겠거니... 했죠.

 

그런데 이 글을 읽고

둥근상에 음식을 차리고 떡과 과일을 유기그릇에 담고 상화를 쌀에 꽂는 마음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묘하게 부끄럽고

묘하게 죄책감이 들었어요.

 

저도 업체에서 돌상을 현대식으로 할 거냐, 전통식으로 할 거냐 물어봐서

'전통 돌상'으로 하겠다고 했는데요.

그냥 현대식 돌상은 레이스에, 풍선에 마구 장식돼 있는 게 싫어서 그랬습니다....

돌상에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요즘 전통 돌상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출처 : 델쿠마라)

 


요즘 한창 전통 돌상이 유행하는데 그 '전통'마저 유행처럼 소비되는 것 같습니다.

 

전통 돌상에 올리는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겠죠.

관습이나 전통이라는 게 전부인 것도 아니고 그 전통을 모른다고 해서 문제인 것도 아니지만

엄마아빠가 정성껏 차려주던 돌상은 남의 손에 맡기고

저는 아기 옷을 열심히 빌리고 있는 게 좀 어쩐지 우스웠습니다.

 

그러다 '누런돼지' 얘기가 생각났어요.

 

우리는 사생활마저 외주화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제가 왜 돌잔치를 남의 손에 맡겼을까요.

시간은 없고(주로 24시간 아기에게 매여 있는 일상이다보니ㅠㅠ)

외주 주는 편이 빠르고 편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돈이 들죠.

(뭐 합리화를 하자면 직접 상을 차려도 돈은 만만치 않게 든다, 내가 업체만큼 잘 차릴 수 있겠느냐 였겠죠)

 

현대인은 바쁩니다.

결혼식을 준비하던 전 사회부 사건팀에 있었습니다. 정말 너무 바빴습니다.

제가 다 준비할 엄두는 나지 않았죠. 웨딩플래너에게 맡겼습니다.

 

아기를 낳고 조리원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2주간 200만원이 훌쩍 넘는 조리원이 묘하게 꺼림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조리원에 안 가면 친정 엄마를 또 고생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갔습니다.

 

그리고 돌잔치까지.

 

'누런돼지'가 소개한 책 <나를 빌려드립니다>에는

 '아내'를 돈을 주고 사고 연애도 돈을 주고 코치를 받고 아기도 대신 낳아주는 사람을 구하고

육아도우미에게 아이를 맡기고 가정부에게 집안 살림을 맡기고

요양보호사에게 병든 부모님을 맡기고 상조회사 직원에게 장례를 맡기는

우리의 자화상이 드러납니다.

 

결혼식을, 돌잔치를, 아이를, 집안 살림을, 병든 부모님을 남의 손에 맡길 때

우리는 뭘 하고 있었을까요.

'일'을 하고 있었겠죠.

결국 '시장'이 잠식한 위 일들에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일'을 하는 시스템.

 

 

'누런돼지'가 책 서평을 쓴 기사의 일부입니다.

 

가족과 마을공동체, 정부와 비영리단체가 하던 일들은 점점 블랙홀처럼 서비스 시장으로 빨려들어간다. 시간이 없어서 서비스를 구입했던 우리는 더 많은 서비스를 구입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시간은 갈수록 더 부족해진다. 서비스 시장에 주요 노동력을 제공하는 빈곤층들은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집을 보살피는 동안 자신의 인생은 산산이 조각나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팍팍한 삶 속에서 갈수록 인간관계는 점점 더 비인간화된다.

 

뭔가 서글프네요.

 

 

뱃속에 생명이 자리잡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전 가장 먼저 아기 배냇저고리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DIY 업체에서 '구매'한 것이지만... 바느질은 저와 '누런돼지'가 했죠)

 

 

(배냇저고리 사진은 없네요. 귀여운 발싸개!)

 

 

바느질을 하며 참 즐거웠습니다. 뿌듯한 성취감도 느꼈고요.

 

모든 걸 다 직접 만들거나 차리면서 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어디까지는 '외주 주지 않고 사는 인생' 살 수 있으면...

적어도 모르는 사람 말고 아는 사람 손에 '부탁'할 수 있는 삶... 가능할까 생각해 봅니다.

 

 

 

 

관련 기사를 붙여봅니다.

 

[책과 삶]아내·친구를 사고 가족·우정을 판다… 사생활 외주화의 ‘서글픈 자화상’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0042011095&code=900308
▲ 나를 빌려드립니다…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류현 옮김 | 이매진 | 432쪽 | 2만원

한 미국인이 인터넷에 ‘아내 아닌 아내’를 찾는다는 구인광고를 냈다. 주로 ‘개인비서’ 역할을 해주면 되는데, 주당 10시간에 400달러를 준다고 했다. 추가 업무에는 돈을 더 지급한다. 가사 업무 처리(시간당 30달러), 집에서 하는 파티의 안주인 역할(시간당 40달러), 부드러운 마사지(시간당 140달러), 함께 여행하기(일당 300달러와 여행경비 일체)…. 보통 아내가 하는 일이지만 배우자를 찾는 건 아니다. “미모의 지성을 겸비한” 여성을 찾는다는 이 남성은 다만 “성관계는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남성이 결국 ‘아내 아닌 아내’를 구했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건, 결혼은 하기 싫어도 결혼생활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앞서 <감정 노동>이란 책에서 자신의 감정까지 팔라고 강요받는 현대인들의 삶을 다뤄 주목을 받았다. 이번에는 아주 내밀한 개인적 영역까지 돈으로 사고파는 시대를 조명했다. 이전에는 가족이나 공동체 내에서 해결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이 이제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서 치러야 하는 세상이 됐다. ‘아내 아닌 아내’는 한 예에 불과하다. 연애코치, 하우스매니저, 대리모라면 낯설지만 웨딩플래너, 가정부, 육아도우미, 요양보호사, 상조회사 직원 등은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상부상조식 전통적 농촌 공동체는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집안일을 도맡았던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혼율 증가로 가족이란 울타리마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유럽식 사회복지마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눈길을 돌릴 수 있는 곳은 ‘시장’뿐이었다.” 1900년에 미국인이 지출한 식비의 95% 이상은 식자재를 사는 데 쓰였다. 지금은 거의 절반 정도가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는 데 쓰인다. 사람들은 이제 만남을 중개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쇼핑하듯 상대를 찾는다. 연애코치를 고용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조언받는다. 결혼을 결정하면 웨딩플래너가 결혼식 준비를 도맡는다. 결혼생활의 문제는 상담치료사와 의논한다. 혹시 아이를 갖기 어렵다면 대리모를 구할 수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대소변 가리기부터 놀아줄 친구를 찾아주는 일까지 해줄 육아전문가들이 즐비하다. 아이의 생일은 파티플래너가 치러준다. 함께 밥 먹거나 영화를 볼 친구가 없다면 임대 친구도 생각해볼 만하다. 가끔 고민에 잠길 때면 상담을 통해 본인이 정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원톨로지스트까지 있다. 늙고 병들면 요양보호사들에게 몸을 의탁하며, 인생의 최후 순간에도 장례사들이 기다리고 있다.

저자는 서비스를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워킹맘 에이프릴은 이렇게 말한다. “중국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면 자동차는 중국에서 만들고, 대신 우리는 잘하는 기술 투자에 집중하는 편이 최선의 방법이죠. 저는 이런 논리를 저한테도 적용합니다. 저는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을 뺀 모든 것을 아웃소싱(외부조달)하려고 합니다.” 바로 자유무역협정(FTA) 지상주의자들의 상투적 논리다. 이쯤 되면 그들이 왜 서비스 시장 경쟁력 강화를 외치는지 짐작도 간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래도 되나’ 하고 반문하지만 그물망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마이클은 막내딸의 다섯 번째 생일을 파티플래너에게 맡기기보다 직접 준비하겠다고 나섰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열심히 오락 게임을 진행했지만 5분 만에 소재는 바닥났다. 진땀을 흘리는 마이클에게 한 이웃이 말했다. “전문가에게 맡겨요. 그 사람들은 다섯 살짜리 애들이 뭘 재미있어 하는지, 어떤 게임을 하는지 잘 알아요. 우리 같은 부모들은 잘 모르잖아요. 자책하지 마시고, 맡기세요.” 프로들이 넘치는 서비스 시장은 아마추어인 우리들을 끊임없이 초라하게 만든다. 전문가가 아닌 가족과 친구의 보살핌은 ‘풋내기 보살핌’이라고 깎아내리고, 오프라인에서 로맨틱한 상대를 만나려는 행위를 ‘야생 데이트’라고 폄하한다.

가족과 마을공동체, 정부와 비영리단체가 하던 일들은 점점 블랙홀처럼 서비스 시장으로 빨려들어간다. 시간이 없어서 서비스를 구입했던 우리는 더 많은 서비스를 구입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시간은 갈수록 더 부족해진다. 서비스 시장에 주요 노동력을 제공하는 빈곤층들은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집을 보살피는 동안 자신의 인생은 산산이 조각나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팍팍한 삶 속에서 갈수록 인간관계는 점점 더 비인간화된다.

저자가 우리의 삶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밖에 없어진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책에는 저자 자신이 94세의 고모를 돌봐줄 도우미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소개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꼭 다른 사람의 손길을 돈을 주고 사야만 하는지, 그것을 좀 더 비영리적이고 사회적 영역으로 둘 수는 없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그 방법은 크게는 협동조합 운동에서부터 작게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려는 노력까지 다양하다.

우리는 때로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안다. 결과만 ‘구매’하면 과정은 사라져버리기 마련이다. 마이클의 딸은 아버지가 마련한 생일 파티가 어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전 아빠가 최선을 다했다고 봐요. 아빠가 원래 그렇거든요. 이런 아빠가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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