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유가 끝나간다. 지지난주 금요일부터 안 먹이기 시작해서 젖이 마르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하루에 한 번 밖에 안 먹이다 단유 했으니 쉬울 것이라 생각했지만(많이 먹일수록 젖을 말리는 게 힘들다) 역시나 육아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 말리는 동안 꽤 아프고 힘들었다.
젖 말리는 것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둘째가 보채는 것이 더 걱정됐다. 그러나 생각보다 둘째는 잘 견뎌냈다. 몇 번 울기는 했지만 심하지 않았고 이제는 찾지도 않는듯하다. 그런데... 허전한 건 뭐지? 둘째는 잘 있는 것 같은데 엄마인 난 왜 이렇게 허전할까.
젖 먹일 때 아이의 눈에 엄마가 제일 잘 보인다고 한다. 아이 눈과 엄마의 눈의 거리. 그 눈 맞춤. 그 눈 맞춤을 못한다고 생각하니 새삼 너무 허전하고 울적하다. 내 인생의 마지막 수유(셋째는 없다!)를 이렇게 끝냈구나 하는 허전함. 아이를 안고 수유할 때 느끼던 평온함을 잃었구나 하는 상실감.
그런데 어째 아이보다 내가 더 허전한 것 같다? 잘 놀고 있는 둘째를 보니 왠지 모를 상실감이 더 강해진다. 아이는 잘 노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허전한가.
둘째가 놀이터에서 놀며 가져다준 선물(?)
항상 아이 걱정을 먼저 했다. 임신했을 때도, 아이를 낳고서 작은 존재를 안았을 때도, 처음 수유를 할 때 유두가 다 벗겨져 피가 날 때도 ‘이러면 아기가 못 먹는 것 아니냐’며 울먹였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처음 보내던 날에도 울었던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단유를 하는 지금도 아이가 괜찮을까를 더 고민했는데... 그러나 항상 마음의 준비를 못한 건 오히려 나였다. 육아의 모든 과정은 이렇게 갑작스러웠다. 부모가 되는 일은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부모는 준비 없이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엄마아빠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 열한 살이었다. 아랫집에 사는 한 살 아래 동생과 수영장에 놀러갔다. 자유수영을 하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신이 많이 났던 기억이 생생. 그런데 이상하게 수영모자가 자꾸 벗겨졌다. 계속 샤워장을 들락거리며 거울을 보고 수영모자를 다시 썼다. 샤워장에서는 어떤 아줌마가 수영복인지 빨래인지를 비누로 빨고 있었는데 속으로 ‘여기서 빨래를 해도 되나’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번째였는지 다시 샤워장에 가서 모자를 고쳐쓰는데 같이 갔던 아랫집 동생이 따라 들어왔다. 같이 샤워기로 물장난을 하다가 그 아이가 나를 살짝 밀었는데 앞으로 미끄러졌다. 바닥이 비눗물로 미끄러웠다.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거울을 보다가 내 입에서 피가 난다는 걸 깨달은 건 수초 후였을 것이다. 너무 놀랐다. 위 앞니 한 개는 보이지 않았고 다른 한 개는 흔들렸다. 영구치였는데. 그 이후의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고 엄마가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내리자마자 등짝을 세 대인가 맞았다. “그러게 엄마가 오늘 수영 가지 말라고 했잖아!” 그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를 낳고 그 장면이 자주 떠오른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엄마가 사고를 당한 딸에게 왜 그랬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어떤 수필이었나. 그렇게라도 자식의 안위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는데. 그 글을 읽으면서도 와 닿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아이 둘의 엄마가 되자 버스 정류장에 내렸던 나를 보고 엄마는 얼마나 처참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내 등과 엄마 손이 닿을 때 느꼈던 어떤 안도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엄마 아빠도, 지금의 나처럼 마음의 준비 없이 부모가 됐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첫째였으니. 아이를 낳으면 이렇게 키워야지 같은 계획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계획이라는 게 적용되지 않는 영역 같다 육아는.
아이들을 기르면서 나를 키웠던 엄마아빠의 마음을 자주 짐작해 보게 된다. 그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때 아빠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어릴 땐 엄마아빠 때문에 서운할 때 왜 엄마는 나한테, 왜 아빠는 저렇게 하지 생각한 적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 서운함이 오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엄마아빠도 나처럼 마음의 준비가 안됐는데 상황이 들이닥쳤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런 것 같다. 이제야 엄마아빠가 나와 동생을 잘 기르기 위해 고군분투했구나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잘못을 혼냈을 때도, 어렵고 힘들 때 손을 잡아줬을 때도 엄마아빠는 부모로서 부단히 노력했었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
아빠와 아들.
가끔 2013년이 내 인생의 전환점 같은 게 아니었을까 가끔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서야 세상에 이렇게 귀한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세상의 모든 초점이 ‘나’였다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첫 번째 경험.
첫째 휴직 1년간 그동안 내가 ‘성취’라고 믿던 모든 것들이 멈춰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복직하고 힘들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집에 가면 ‘귀한 존재’가 있어 행복했고 또 행복했다. 그제서야 내 삶의 기준이 뭔가 잘못돼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일과 아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갈등했고 (입사 동기인 남편은 그런 갈등을 할 필요가 없는데) 나만 갈등하는 것 같을 때는 세상이, 이 사회가 싫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다시 두 번째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내게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첫째를 통해서 알게 됐으니까. 무엇 하나 마음의 준비를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엄마인 나는 담대해지고 싶다. 세상일에 의연해지고 마음을 가다듬어 잔잔해지는 것. 그래서 아이가 엄마라는 호수 속에서 헤엄치고 세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허우적거릴 땐 손을 잡아주고 잘못된 길을 가려고 하면 부드럽게 이끌어주는 것.
아이들을 낳고 나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아이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나일지도 모르겠다. 늘 마음의 준비 없이 상황은 맞닥뜨리겠지만 이 마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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