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1일 금요일 오후 9시45분에도 일기를 썼었다. “두진이를 재우고 일기를 쓴다. 복직 전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일기.” 3년 6개월이 지나고 다시 난 휴직 후 복직을 한다. 2017년 8월 15일 화요일에 쓰는 복직 전 마지막 일기다. 복직이 두 달 남았다, 한 달 남았다, 열흘 남았다 세 왔는데 어느새 내일이 출근.
마음이 계속 싱숭생숭하다. 왜일까. 아이들을 두고 회사에 나가야 해서? 아이들을 친정엄마한테 맡기는 게 미안해서? 회사 일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돼서?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계속 기분이 안 좋았는데 오늘 집안일을 하다가 본심이 나왔다. 소파 패드가 어질러져 있어서 남편에게 “이런 것 좀 미리미리 정돈해놔”라고 말하니까 남편이 “계속 했는데 안 한 것처럼 왜 말해”라고 해서 충돌. 그 말에 짜증이 나서 말했다. “복직하면 안 봐도 눈에 훤하다. 내가 얼마나 힘들어질지.”
두려운가보다. 소진될 것이. 회사 일, 집안일, 아이들, 그리고 친정엄마.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고 다들 너무 중요한데 회사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내가 다 할 수 있을까. 건조기를 사면, 친정엄마께 용돈을 많이 드리면 이 고민이 해결될까.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첫 번째 복직. 회사로 돌아간 후 두 달 일하는 게 힘들지 않았다. 말 못 하는 아이와 독박육아 상태로 지내다가 말하는 어른들 사이로 돌아오니 그저 좋았다. 일로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만족스러웠고 내 시간을 내가 조율해서 쓸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아이의 컨디션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주체적인(?) 삶, 그저 좋았다.
그런데 두 달 정도였다. 두 달이 지나고부터는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체력이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민해서 자꾸 깨는 첫째와 실랑이를 하는 밤, 그리고 새벽, 아침이 되면 출근해야 한다는 게 아득했다. 회사에서는 일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 아등바등. 또 한편 일이 재밌기도 했다. 일하는 동안 ‘아이가 생각도 안 났구나’ 싶으면 퇴근하면서 아이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안고 작은 뺨에 얼굴을 대면 행복한 건 잠시, 아이가 놀자면서 자기 싫어하면 점점 더 피곤해졌다. 그리고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 또 평일에 잘 놀지 못했다는 생각에 또 강박증.
두진이가 그린 그림. 아빠랑 KTX를 탔는데 아빠는 눈을 감고 있고 두진이는 캐리어를 들고 있는 그림.
"아빠, 내가 아빠 휴대폰을 그렸어."
"그래 아빠도 봤어. 진짜 잘 그렸더라. 근데 아빠는 눈 감은 적이 없었는데? 잔 적이 없어."
(드러눕고 눈을 반쯤 감더니) "아냐, 아빠가 이렇게 누워서 아~이제 좀 쉬어야겠다 그런 표정으로 이렇게 누워있었어."
아이들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그걸 알아서일까. 얼마나 피곤할지 걱정이 된다. 종종거릴 것이 두렵기도 하고. 두 번이나 육아휴직을 1년씩 쓸 수 있는 귀한 직장, 아이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녀온 뒤부터 내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을 돌봐주실 수 있는 친정엄마가 계시다. 좋은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과 오래 시간을 보내고 싶고 일도 하고 싶고 종종거리지 않고 싶다고 말하는 게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 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다보면 억울해진다. 일-가정 양립을 말하는 게 사치라니.
또 정말 중요한 사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확연히 줄어들어야 한다. 아이들은 또 울겠지.
지난 일요일 두진이에게 물었다.
“두진아, 내일이 월요일이니까 수요일 되면 엄마 회사 가는 날이네. 어때?”
단번에 돌아온 대답. “안 좋아.”
아이는 아직 복직 후의 삶이 짐작이 안 될 것이다. 유치원 끝나도 엄마가 데리러갈 수 없다는 것, 유치원이 끝난 후 6~7시간이 지나야 엄마가 퇴근한다는 것. 막상 그게 눈앞 현실이 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엄마 회사 낸중에 가면 안돼?" 했던 우리집 큰 꼬마는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할까. 이제 14개월이 지난 둘째는 말을 하지 못해 형이 그랬던 것처럼 엄마가 출근할 때마다 울 것이다.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엘리베이터 앞에서 종종거릴 생각을 하니 아득하다.
두 번째 휴직은 첫 번째와 달리 많이 힘들지 않았다. 우선 독박육아가 아니었다. 두진이는 합정동에서 혼자 키웠지만 이준이는 친정 옆에 살면서 낳았기 때문에 대가족이 키운 것과 다름없다. 급한 상황에 친정엄마, 친정아버지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두 분이 계신 것만으로도 정서적 지지를 얻었다. 또 두진이가 5~6세가 되면서 두진이 친구가 많이 생겼고 두진이 친구들을 통해 나도 유치원 친구 엄마들과 친구가 됐다. 유치원 친구 엄마들과 육아에 대한 고민, 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면서 외롭지 않았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동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 같다. 스무살 때부터 목동에 살았지만 이 동네에 대해 알아갈 시간은 없었다. 대학 때도, 취업준비를 할 때도 늘 바빴고 회사를 다니면서는 더욱 바빠져 밤에 집에 돌아오느라 동네에 관심 둘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두진이를 낳고 목동으로 다시 이사를 왔고 이준이를 낳으면서 동네를 돌아볼 시간이 처음 생겼다. 이제 동네 구석구석을 많이 알게 됐다. 지나가며 알게 된 사람들과 인사도 하게 됐고 또래 엄마들도 많이 알게 됐다.
그래서일까. 휴직 기간이 즐거웠다. 아이를 가족들과 함께 키웠고 또 동네에서 친구들이 생겨서.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에 회사로 돌아가기가 더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동네 친구들과 보낼 시간, 아이들과 보낼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야 한다. 아이들과 보냈던 시간은 힘들기도 했지만 또 여러모로 수월해져서 즐거웠던 기억이 많다. 둘째라서 그런지 첫째 키울 때보다 훨씬 수월했고 수다쟁이 두진이 덕분에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행복했다.
엊그제 두진이는 또 엄마 사랑 폭발. 은행에서 일 보느라 머리를 묶고 있다가 푸니까 “엄마는 머리를 풀어야 사랑스러워.” 풋 웃음이 나와서 “두진아, 엄마 가을 되면 머리 짧게 자를 건데?” 했더니 “엄마, 엄마는 머리를 풀어야 사랑스러워. 사랑스럽다니깐~?” 이런다. 이런 아들과의 소소한 대화가 줄어들 것이다.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간은 짧은데.
아이들은 많이 울겠지만 다시 적응할 것이다. 나도 힘들겠지만 몸은 신기하게도 그 빡센 삶에 적응하겠지. 그런데 걱정이 되는 건 이제 즐거웠던 휴직 기간을 그리워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겠지만.
어차피 답은 없다. 또 답은 계속 변할 것이다. 3년 전 복직 전 마지막 일기엔 이렇게 썼었다.
“두진아,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깊이 아름답고, 깊이 가슴 뛰게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거야. 수술을 하고 깨어난 뒤 작은 너를 만져봤을 때, 조리원에서 곤히 자는 너를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해서 눈물이 날 거 같았을 때, 많이 자주 울던 네가 엄마인 나한테 오면 잠잠해지던 순간들, 네가 옹알이를 하며 세상에 네 존재를 알렸을 때, 그 수많은 순간 엄마는 정말 행복했어. 사람들이 예쁜 너를 보면서 감탄할 때마다 어깨가 으쓱으쓱하기도 했단다. 엄마아빠에게 와줘서 고마워. 부족한 엄마아빠 옆에 와서 자주 웃게 해줘서 고마워. 고맙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고마워 아들.
아기가 혼자 설 때까지 어른이 이렇게 많이 도와줘야 하는지 엄마는 몰랐어. 혼자는 자지도, 먹지도, 옷을 입지도, 목욕을 하지도 못하는 너를 붙잡고 엄마는 사실 자주 힘들었어. 물리적으로 나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를 처음 만났기 때문일 거야. 서른두 살이 되는 동안 엄마가 스스로 해냈다고 믿었던 성취들이 사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옆에서 말없이 도와주셔서 가능했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래서 사소하게 결심하기도 했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엄마도 너의 옆에서 항상 너의 삶을 혼자 짊어질 수 있을 때까지 도와주겠다고. 엄마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받은 만큼 너를 위해 열심히 해주겠다고. 그러면서 엄마도 천천히 엄마가 되어 갈 거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는 자신 없지만 노력할게. 두진이가 커가는 만큼 엄마도 성장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여전히 너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출근해야 하는 엄마는 마음이 많이 무겁다. 너에게도 미안하고 할머니에게도 미안하고. 두진아, 엄마는 두진이가 엄마 없는 시간이 엄마를 보고싶어 할까봐, 그래서 엄마가 없는 순간을 슬퍼할까봐 걱정이 많이 돼.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두진이에게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할 때 같이 있어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언젠가 작은 네가 훌쩍 커서 엄마 손을 귀찮아할 때가 올 텐데 그 전엔 엄마를 필요로 하고 엄마를 이렇게 좋아할 땐 계속 같이 있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기억해줘. 엄마도 두진이와 헤어지는 걸 슬퍼했다는 걸. 두진이만큼, 아니 두진이보다 더 두진이를 보고 싶어할 거라는 걸. 아마 엄마 직업상 일찍 오지 못하는 날이 많겠지만 밤에는 꼭 함께 자자. 두진이가 혼자 잘 수 있는 날까지 엄마가 밤에는 꼭 함께 있어줄게. 그리고 주말에도 좋은 시간 많이 보내자.
두진아, 부모란 건 언제나 뒤에서 지켜봐주는 존재가 아닐까 싶어. 두진이가 인생을 사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 두진이의 행복을 같이 고마워하고 두진이의 슬픔을 위로해주는 사람. 그래서 언제나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 엄마가 두진이가 가장 힘들고 외로운 시간에도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항상 뒤에 서 있을게. 왜냐면 엄마에게는 이제 두진이가 제일 소중하니까.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니까. 네가 있어서 엄마는 또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
같이 많이 있어주지 못하지만 엄마는 그만큼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 그래서 두진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엄마가 엄마의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여줄게. 그래서 엄마아빠가 행복하고 즐겁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게. 아마 두진이가 있어서 엄마는 더 힘을 낼 수 있을 거야. 미안하고 고맙다 아들.
”
힘들고 지칠 때도 많겠지만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제 출근할 시간이 8시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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