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초 여자 선배들이 농반 진반으로 명절 당직을 서고 싶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냥 웃었다. 그때는 결혼하지 않았을 때라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정확하게 몰랐다. 그냥 시댁에 가기 싫은가보다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내가 결혼을 했고 처음 명절을 보내기 위해 구미인 시댁에 내려갔다. 시댁이 아직 불편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시댁에 가서 시부모님과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도 구경하고 즐겁게 보냈다. 남편의 이모님들이 놀러오셨지만 잘해주셔서 어렵지 않았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결혼을 실감한 건 집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내가 서울로 가려는 시간 동생은 늘 그랬듯 서울에서 차례를 지내고 사촌동생들을 만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다 내 생각이 났는지 전화를 걸어 사촌동생들을 바꿔줬다. “언니, 보고싶어”라는 사촌동생 말에 실감했다. ‘내가 결혼이란 걸 했구나. 이제 사촌동생들을 명절 때 볼 수 없구나.’ 결혼은 그런 것이었다. 명절에 이제 내 친척들을 만나지 못하고 남편 친척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 물론 난 시댁이 멀어서 더 그렇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 아직도 가부장제가 강하게 작동하는 제도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처음엔 순진하게 생각했다. ‘나만 그렇게 살지 않으면 되겠지.’ 아니었다. 관습이, 인식이, 문화가 그렇게 짜여있는 구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이제 그 가부장제의 틀 안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지 만 6년이 된다.
결혼 초 보수적인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남편은 보수적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편 고향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도 농반 진반. “며느리는 새벽 같이 일어나서 시부모님 봉양할 밥을 차려야죠~” 그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하지 싶어 머리가 띵했는데 남편이 막아줬다. “요즘엔 그런 말하면 장가 못 간다.” 남편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가. 어머니는 늘 쉬라고 하셨고 늦잠 자는 습관은 못 바꿔서 시댁에서도 늦게까지 자고 집에서 하던 대로 했다. 시댁에서는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아 그것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설거지는 열심히 했다. 남편은 설거지도 하지 않았지만 ‘설거지 정도야’ 하면서. 그 대신 음식을 하고 챙기는 모든 일은 시어머니 몫이 됐다. 결국 여자 몫이 되는 신기한 구조.
이번 추석엔 시부모님이 역귀성하셔서 서울에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같이 과천 서울대공원 가서 추억을.
“아니 왜들 그렇게 명절에 시댁 가는 걸 싫어해?” 얼마 전 한 남자 선배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하다가 번뜩 든 생각. “며느리들은 시댁에 가면 ‘을’이 되지만 사위는 처가에 가도 ‘을’이 되지 않잖아요.” 선배는 100프로 이해 못 하신 것 같았다. “요즘은 사위도 ‘을’ 아니야?” 거기에 덧붙였어야 했다. “며느리들은 시댁에 가면 안 하던 집안일을 더 해야 하니까 싫은 거예요. 요즘은 다들 일하니 집안일은 다 기계에 의존하고 밥도 사 먹는데 명절이라고 전 부치고 설거지하고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남자들은 안 하고 누워있고 쉬어도 되니 역차별로 느껴지는 거죠.”
며느리들은 왜 명절을 싫어할까. 시댁에서 ‘을’이고 발언권이 최하위권이거나 없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야 할 집안일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연휴면 뭐하나. 쉴 수가 없는데. 시부모님이 아무리 좋아도 이 구조는 바꿀 수 없다.
결혼 후 내가 시댁에서 설거지를 하니 친정에 와서 남편도 설거지를 했으면 했다. 사실 어머님이 밥을 다 해주시는데 젊은 내가 설거지를 하는 게 별것인가 싶기도 했다. 다만 남편도 친정에 와서 집안일을 했으면 했다. 젊은 우리가 부모님을 돕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여자만 돕고 남자는 손님처럼 쉰다는 게 문제니까 함께 하면 간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장벽은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사위가 설거지를 하는 것을 극구 반대하셨다. 사위한테 그런 일(?)을 시킬 수 없다는 것. 화가 났다. 가부장제의 화신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바로 우리 엄마 아빠가 사위는 집안일을 하면 안 되고 나는 시댁에 가서 어머님 일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억울했다. ‘왜 나만. 왜 남편은 아니고.’ 아빠는 계속 사위를 시키느니 본인이 하는 게 편하다고 하셨다. ‘아니 아빠가 엄마와 합동해 집안일을 하는 건 좋게 생각해야 하는 건가’ 싶다가도 ‘왜 남편만 특별대우냐’고 계속 얘기했다. 그 생각을 바꾸는데 3년이 넘게 걸렸다. 아빠와 엄마는 동생이 결혼하면 사위와 아들을 같이 설거지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유난스러운가. 설거지 하나가 별 거라고. 그러나 관습은 태초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온 것일 뿐이다. 누군가 괴로운 관습은 바꾸는 게 마땅하다. 시대가 바뀌었으면 관습도 바뀌어야 한다. 그 관습을 바꾸는 것은 결국 관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드디어 9월 동생이 결혼을 했다. 이제는 남편과 동생이 설거지를 공식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써놓으면 남편이 참 억울할 것 같아서 한 마디. 남편은 집안일 지능이 높아 나보다 뭐든 잘 한다. 참고. ‘왜 가사노동을 폄하하는가’ http://ilovepig.khan.kr/264)
동생이 결혼하니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내가 시누이가 된 것.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생겼다. ‘형님’이라니. 동생의 여자친구 입에서 ‘형님’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순간 놀랐다. ‘왜 ‘언니’가 아니고 ‘형님’이지.‘
호칭도 문제다. 도련님, 형님 같이 시댁에서는 ‘님’이 왜 붙을까. 이 불균형한 권력이 일상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며느리들이 그것을 극대화해서 체험하게 되는 명절을 싫어하는 것이다.
조금더 친해지면 올케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 서로 올케, 형님이라고 부르지 말자”고. 그냥 이름을 부르거나 언니라고 했으면 좋겠다. 불합리한 호칭과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호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의’다. 며느리는 딸이 아니다. 그냥 며느리는 며느리다. 며느리를 딸처럼 대한다면서 아들한테 시키지 않는 집안일을 시키는 것보다 며느리는 며느리로,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로 서로 예의를 지키면 된다. 나도 올케에게 그러고 싶다. 서로 예의를 지키고 시간이 지나는 만큼 서로에 대해 알게 되면 친해지면 좋겠다. 가족이 되었다고 급히 친해질 수도 없을 뿐더러 가족이 되었으니 서로 편하게 지내도 된다고(주로 위에서 아랫사람에게만 편히 대할텐데) 하는 것은 허구다. 사람이 친해지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조금씩 친해지는 만큼 서로 평등했으면 좋겠다. 거창한 평등은 아니고 내 발언권만큼 올케의 발언권이 있었으면 좋겠다. 올케의 발언권이 집에서 꼴찌가 되지 않게 챙겨주고 싶다. 물론 이런 마음만큼 잘 될지는 내 스스로를 지켜봐야겠지만. 하하.
시댁에서 내가 정말 가족이 되었다고 느낀 순간도 이 ‘발언권’이었다. 내가 내 생각을 자유롭게까지는 아니어도 많이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느꼈을 때. 지난 촛불 정국 때 아버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아버님, 종편 너무 많이 보지 마세요” 했을 때. 아버님이 다행히 하하 웃으면서 "투표권은 나한테 있다" 하셨는데 나도 그 순간 가족이 된 것 같다고 느꼈다. 정치와 종교 얘기는 가족 간에 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이다. 어찌됐든. ㅎㅎ
시대가 달라졌고 겉으로는 여자들이 장관도 되고 대통령도 되는데 왜 아직도 불평등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깨알같이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주의가 남아 있다. 어떤 가부장들은 착하고 따뜻해 가부장인지도 헷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착한 가부장들의 관습을 바꿔야 모두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착한 가부장의 전형인 우리 아버지가 올해 명절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고 산소에 다녀오시기로 했다. 늦었지만 아빠의 결정을 응원해주고 싶다. 어제 엄마와 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갔다가 오늘 외할아버지 요양병원에 가셨다. 엄마가 명절에 귀향한 첫 번째 명절이다. 내년에 엄마가 환갑인데 말이다. 그게 참 마음이 아프다. 일평생 차례를 지내느라 명절에 친정에 가지 못한 우리 엄마. 이제야 친정에 갈 수 있게 됐는데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계시고 엄마는 돌아가셨다. 나는 우리 엄마의 인생을 닮고 싶지 않다. 내 아들들은 이런 틀에 매이지 말고 나보다 더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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