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와 화해하게 될 때>
두진이가 부쩍 “엄마는 이준이만 이뻐하고”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두 돌을 맞은 이준이의 귀여움은 정말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른다.’ “엄마 사당해요”라며 품을 파고들 때는 ‘이렇게 이쁜 강아지를 본 적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4등신의 몸으로 뒤뚱뒤뚱 걸을 때는 ‘엄마 미소’를 숨길 수 없다. 나도 모르게 그 작은 강아지(?)를 안고 “우리 천사가 어디서 왔나, 하늘에서 내려왔나”라고 말하면서 뽀뽀를 퍼부을 때 두진이의 입은 삐쭉거린다. 그리고 바로 툭 튀어 나오는 말.
“엄마는 이준이만 이뻐하고. 흥.”
이준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두진이의 상실감이 클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내가 첫째이기 때문에 둘째에 대한 질투를 익히 안다고 생각했다. 점점 배가 불러오면서 두진이에게 동생이 어떤 존재인지 설명해줬다. 네 평생 친구가 될 사람, 너를 평생 아껴주고 네가 평생 아껴주게 될 사람이 엄마 뱃속에 있다고. 그러면서도 엄마에게는 두진이가 항상 ‘첫번째 아들’이라고도 설명해줬다. 두진이는 엄마가 처음 낳은 아들, 엄마가 되게 해준 첫 번째 아들이라고. 가끔 귓속말로 속삭여주기도 했다. “두진아, 네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엄마는 훨씬 우울한 사람이었을 거야. 그래서 두진이에게 엄마는 너무 고마워. 두진이가 태어나서 엄마는 훨씬 행복한 사람이 됐어. 고마워요.”
이준이를 낳으러 가던 날 가장 걱정이 됐던 존재도 ‘두진’이었다. 태어나서 엄마와 며칠간 떨어져 자야하는 건 처음인데... 제왕절개 수술을 한 난 병원에서 6일간 회복하고 조리원에서 2주 조리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돼 있었다. 수술 뒤 깨어나서 이준이를 안아보면서도 두진이를 걱정했다. ‘우리 두진이, 잘 있을까. 우리 두진이도 이렇게 눈도 제대로 못 떴었는데.’
동생을 만나러 병원에 온 두진이는 의젓했다. 어쩌면 작은 이준이가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랑 떨어진 3주 동안 두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잘 지냈고 종종 조리원에 나를 만나러 놀러왔다. 두진이가 조리원에 온다고 전화가 올 때마다 마음은 문 앞을 기웃거리며 기다렸다. 우리 큰 아기가 어디쯤 오나 생각해보며 둘째를 안고 있을 땐 쓸데없이 눈물도 났다. (원래 애 낳은 직후에는 감정 조절이 어렵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 ‘우리 두진이도 이렇게 작았었는데 벌써 훌쩍 크다니.’ 작은 둘째를 안고 있으면서도 작았던 두진이가 그리웠다. 내 우려와 달리 이준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두진이는 의젓했다. 동생을 가만히 살펴보기도 하고 엄마가 기저귀나 물티슈를 가져다 달라고 하면 가져다주기도 하고. 몇 달은 큰 갈등 없이 잘 지냈다.
진격의 둘째. 우리집 무법자.
두진, 이준 사이에 갈등이 시작된 건 이준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기기 시작한 이준이가 두진이의 장난감을 족족 망가뜨리면서. 정성들여 만들어놓은 레고 기차부터 블록 주차장이 망가질 때마다 두진이는 화를 내거나 울었다. 이준이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장난감 쟁탈전이 극심해졌다. 뭐든지 ‘내 꺼’인 아이들 사이에서 ‘왜 그게 온전히 네 것이 아닌지’ 설명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친구와 몸싸움을 하지 않는 성격인 두진이가 동생의 머리통(!)은 잘도 때렸다. 그때마다 주의를 줬지만 주의도 한두 번이지... ‘장난감 쟁탈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아마 자라는 내내 쟁탈전의 종류만 바뀌고 계속되겠지. 형아 옷을 물려입는 이준이는 오늘 아빠가 “형아 옷 입자”라고 말하니 “형아 옷 안 입어”라는 말을 시작했다고. 아니, 벌써 형아 옷 안 입는다면 어떡해?!
엄마는 왜 그렇게 맛있는 생선도 동생한테만 큰 걸 주는지 싶었고(실제 생선 크기는 비슷비슷했을텐데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인 거다) 옷이나 운동화도 동생한테 더 좋은 걸 사주는 것만 같았다. “어리니까 동생을 이해해줘야지”라는 말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던(!) 말이다. 왜 항상 내가 양보해야 하지? 실제로는 별로 양보도 안 했던 것 같은데 양보하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다.
아이를 둘 키우면서 첫째였던 내가 둘째였던 동생의 입장에 자주 서 보게 된다. 어릴 땐 무의식적으로 동생이 내 사랑을 다 가져갔다고 생각하고 질투했는지 모르겠지만 두진이를 키우면서 첫째들은 온전히 혼자 사랑받는 시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그렇게 사랑받았던 시간이 있었을텐데 안타깝게도 어린 시절 혼자 무한히 사랑받았던 시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둘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을 나눠가지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둘째로 태어난 자는 항상 나눠가져야 하는 운명. 나는 그런 것도 잘 모른 채 항상 동생한테 나눠준다고만 생각했었다. 별로 나눠준 것도 없으면서 그렇게 동생한테 나눠주는 게 아까웠는데. 두진이가 이준이한테 장난감을 나눠주려고 하지 않을 때 나도 모르게 ‘두진이 넌 혼자 온전히 가져봤잖아’라는 말을 삼킨다.
한편 두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첫째 엄마였던 나보다 둘째 엄마였던 내가 훨씬 능숙해졌기 때문이다. 두진이를 키우던 나는 너무 미숙했고 그래서 두진이에게도 서툴렀다. 왜 우는지, 왜 잠을 못 자는지, 어떻게 아이를 달래야 하는지 다 처음 배우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두진이를 키우는 게 힘들었다. 우는 두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같이 울 때 아이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가끔 불안해보이는 두진이를 보면 내 불안이 저 아이의 불안과 연결된 것은 아닐까 마음이 짠하다. 반면 이준이를 낳고 나는 훨씬 여유로워졌다. 수유하고 잠을 재우고 어르고 달래는 것 모두 능숙해졌고 딱 그만큼 아이에게 여유롭게 대할 수 있었다.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이준이가 두진이보다 여유롭고 편안해 보인다. 그게 두진이에게 미안한 점. 엄마가 처음이었던 것, 그래서 항상 서툴렀던 것.
얼마 전 또 이준이가 ‘예쁜 짓’을 해서 뽀뽀를 퍼부으니 그를 바라보던 두진이가 말했다.
“엄마는 이준이만 이뻐하고.”
“아니야, 두진아 엄마가 두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너무 서운해.”
얼마 시간이 지났을까. 서운하다는 말을 듣고서도 두진이가 또 “엄마는 이준이만 이뻐하고”라고 말하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어릴 때 내 목소리가 겹쳐지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영주만 이뻐하고.”
그때 엄마는 얼마나 곤란했을까. 내가 이렇게 곤란한데. 이렇게 또 아이를 키우며 엄마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한편 어렸던 내가 얼마나 많은 오해를 했는지, 부모의 사랑에 대해 잘 몰랐는지 깨닫는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나와 화해하게 되는 느낌.
사춘기 절정이던 시절 방 안에 틀어박혀 일기를 끄적였던 열네살 나는 엄마가 동생만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의 내게, 엄마 노릇이, 엄마가 잘 중재하며 공평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설명해주고 싶다. 아마 들어도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이 세상이 아이 키우는데 아무리 협조를 안 해준대도 아이 낳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내가 보지 못하던 세계로 나를 보내 준다. 아이들이 열어주는 세상에서 나는 다시 아이도 되고 엄마도 된다. 다시 아이가 되어서, 어린 시절의 내게 위로를 보낼 수 있을 때, 그 시절의 부모님을 좀 더 이해하게 될 때, 그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뭉클하게도.
''기특'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됐다> 발간 소식 (2) | 2018.09.29 |
---|---|
아이를 그리워하는 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엄마 (0) | 2018.03.24 |
워킹맘이라는 말이 숨기려는 것 (1) | 2018.01.21 |
아이를 낳기 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 (4) | 2017.12.23 |
아이가 다치면 마음이 무너진다 (8) | 2017.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