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가 욕실에서 넘어졌다. 뒤로 벌러덩. “이준아, 엄마가 잡으러 간다!” 장난을 치다가 욕실에 발을 내디딘 아이가 미끄러진 건 순식간이었다. 아이가 욕실 안까지 뛰리라고 생각 못하고 뒤따라가던 나와 욕실에서 아이 씻길 준비를 하던 남편은 굳어버렸다. 넘어지는 순간 욕실 타일 바닥에 뒤통수가 ‘딱’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아이는 10분 넘게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안고 있던 내 손은 점점 차가워졌다. “그렇게 장난치면 어떡해!” 나를 원망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쳐갔다.
퇴근 후에도 휴대폰으로 업무를 챙기다
아이에게 집중하자 생각한지 5분 만에
둘째 아이가 욕실 바닥에 미끄러졌다
장난치기 5분 전까지 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퇴근했지만 휴대폰으로도 볼 수 있는 회사 뉴스 데스크 시스템을 들여다보며 체크해야 할 기사들을 확인했고 남편이 “집에서는 휴대폰 좀 그만 봐”라고 할 정도였다. 그 말에 민망해서 “아직 못 고친 기사가 있다”고 항변했다. 이제 휴대폰을 그만 보고 아이에게 집중해야겠다 생각한 직후, 아이가 넘어졌다. ‘이준이가 좋아하는 잡기놀이부터 시작해야지’ 했다가 이어진 사고. 이제 겨우 23개월이 지난 아이, 응급실에 가야 하는 것인지 울음이 잦아들길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긴 한숨을 쉬었다. 나를 원망하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일부러 그랬어?”라며 화를 냈다.
서운했지만 억울하진 않았다. 집에 와서도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지 오래고 그 때문에 계속 죄책감을 느껴왔다. 남편에 대한 원망보다는 내 행동에 대한 후회가 이어졌다. 넘어진 아이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뒤 잠을 재웠고 아이들을 재운 뒤 혼자 일어나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 건가’라는 생각을 ‘또’ 했다. 아이가 넘어진 건 사고였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만 집에 와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일을 확인하던 내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아이들과 있는 시간에도 일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죄책감.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무엇을, 누구를 위해서.’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 엄마 욕심으로 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를 낳은 후부터는 일하는 이유를 하나씩 소거하게 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일하는 이유도 다양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많은 이유가 남아 있지 않다. 어쩌면 아이를 기르는 시간과 맞바꾼 이 시간. 재취업이 쉽다면 난 이렇게 아득바득 일을 했을까. 아이를 기르는 시간과 맞바꾼 내 시간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멍해진다.
일곱살 첫째는 주말마다 말하곤 한다
“근데 내일이면 엄마는 다시 없겠지?”
내가 일하는 건 다 내 욕심이었던 걸까
엄마가 회사에 가는 게 싫은 이유를 여럿 댈 수 있을 것 같은 7세 첫째는 지난 주말에도 말했다. “엄마, 하루 종일 엄마랑 있으니까 너무 좋다. 그런데 내일이 되면 엄마는 다시 없겠지?” ‘없다’는 말에 덜컥 해서 “없긴 뭘 없어. 밤에 오잖아”라고 대꾸하니 “밤 너무 늦게 오니까 엄마랑 놀 수가 없잖아. 엄마랑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데.” 아이가 내가 회사 간 시간을 ‘없다’고 생각한다는 게, ‘너무 늦은 밤’에 온다고 생각한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늘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집중 못하는 엄마랑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아이. 두진아, 엄마가 밤이 아니고 너희들 저녁 먹일 수 있는 시간에 돌아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치원 끝나면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면 할머니 도움 없이도 너희들을 키울 수 있을 텐데.
둘째 육아휴직 후 복직한 지 9개월이 지났다. 일에는 어느 정도 적응을 했고 가끔은 신이 났다. 성취감을 느낄 때도, 동료의 고마운 마음을 느낄 때도 있었다. 두 번의 육아휴직 동안 육아가 얼마나 ‘빡센’ 일인지 알게 된 나는 “역시 육아보다는 일이 쉽지”라고 노래를 부르며 회사에 나오는 아침을 고마워했다. 한편 일은 여전히 내 존재를 증명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두진이, 이준이 엄마가 아니라 ‘임아영’으로 불리는 일은 말할 수 없이 소중하니까.
다만 이 모든 게 ‘내 욕심’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 땅속으로 가라앉는다. 아이가 넘어졌을 때 나를 원망했던 남편이 다음날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을 때 나는 기분이 바닥인 채로 브리핑을 받아치고 있었다.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고 겨우 답장을 했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없는 건 아닐까.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어줄 자신도 없으면서 둘이나 낳은 건 결국 내 욕심이었는데.” 거기까지 썼는데 눈물이 책상에 뚝뚝 떨어졌다.
■ 다른 삶을 꿈꾸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 욕심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주지 못한 것은 노동시간이 길어서다. 알면서도 자꾸 내 탓을 하게 될 때, 이 사회가 전부 엄마 탓을 해도 나는 그러지 말자고 되뇌어도 어느 순간 나도 내 탓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끝까지 내 일을 지킬 수 있는지 걱정한다. 그러면서 ‘일이 도대체 뭐라고’ 말하면서 자기부정하는 분열 상태.
긴 노동시간을 벗어난 삶을 꿈꿔본다
하지만 그건 욕심이라고 말하는 사회
일을 그만두는 상상에 가끔 악몽을 꾼다
지금 상황이 괴로우니 아예 인생을 ‘리셋’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주 상상한다. 첫째를 낳고 회사에 돌아왔던 2014년에는 답답한 마음에 남편과 지방의 작은 마을에 가보기도 했다. 도시 사람들이 많이 내려와 정착한다는 마을에 들러 우리가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삶을 꿈꿀 수는 없을까. 아예 둘 다 일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디자인해볼 수는 없을까. 한 사람만 일하거나 두 사람이 시간을 나눠 5~6시간씩 일하는 방법은 없을까. 집값만 낮아져도 손써볼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이제는 그 상상이 현실이 되기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때 한 명이었던 아이는 두 명이 되었고 서울을 떠나서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 더 근본적으로 나는 삶을 크게 바꿀 용기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용기가 없다고 꿈꿀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꿈을 꾸며 출근한다. 내 꿈은 단순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그러나 이 사회에서 엄마가 그런 꿈을 꾸는 건 ‘욕심’이라 말한다. 이 구조에서 내가 일을 열심히 하려 한다는 것은 결국 아이들과 함께해야 하는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일이 재밌다고 느낄수록, 일에 좀 더 몰입할수록, 퇴근 시간이 늦어질수록 나는 아이와의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 그래서 일이 재밌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모두 다 일을 조금만 하면 좋을 텐데.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아내가 집안일과 육아를 다 해결해주는 남자처럼 일을 할 수는 없는데.
언젠가는 이 균형이 확 깨지지 않을까. 지금은 첫째 한 명이지만 둘째까지 엄마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계속 소거하다가 결국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면. 일을 그만둔 나를 상상해보다 가끔은 악몽을 꾼다. 어떤 꿈에서는 아이가 울면서 집에 혼자 돌아오고 있고 어떤 꿈에서는 회사를 그만둔 내가 울고 있다.
■ 사라진 언니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최근에는 병이 났다. 과도한 집중이 몰고 오는 두통과 구토. 점점 심해져서 진통제를 사먹으려고 편의점에 들렀다가 아이들을 돌보기는커녕 내 자신도 돌보지 못하고 있구나 싶었다. 몸부터 돌보라는 신호다. ‘이것은 지속가능한 삶인가.’ 첫째를 낳고 회사를 다니던 때 밤마다 잠을 못 자는 두진이를 붙잡고 생각하던 질문. 둘째를 낳고 달라졌는가. ‘이것은 지속가능한 삶인가.’
이 삶을 바꾸고 싶어서 지난해 창립한 ‘정치하는 엄마들’이라는 단체에 회원으로 참여했다. 엄마들이 겪는 일상의 불합리를 정치를 통해 직접 해결하자는 비영리단체다. 조금씩이라도 바뀐다는 희망을 잡고 싶었다. 그러나 복직하고나니 일에 치여서 단체 소식에도 관심을 갖기 어려워졌다. 아이들 볼 시간도 없는데 무슨 단체 참여를 하겠나. 한국의 시민사회단체 참여율이 왜 낮은지 이렇게 몸으로 체감한다. 이제 회원들에게 안부를 묻기도 민망해진 차에 “보고 싶어요”라고 먼저 말 걸어준 언니에게 “잘 지내느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이 왔다. “보고 싶어요. 우리 ‘시간 거지’인 만큼 만나서 시간 신경 안 쓰고 여유롭게 쫓기지 않고 이런저런 얘기 하고 싶어요.”
내 몸도 돌보지 못하는 ‘시간 거지’의 삶
야근 중 도착한 그림 속엔 “빨리 오세요”
‘언니’들도 이렇게 일터에서 사라졌겠지
울컥했다. ‘시간 거지’인 엄마들이 보고 싶어도 만나기 어려운 구조. 결국 이 노동환경에서 나가떨어지면 ‘경단녀’가 되어야 하는 구조.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눌 수 있다면. 오전에 출근하는 엄마가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오후에 퇴근하는 아빠가 아이들을 하원시킬 수 있다면. 할머니나 시터 이모님 도움 없이 부부 힘만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다면.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아이들이 내 퇴근만 기다리지 않을 수 있다면.
첫째가 다니는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보내준다. 야근 중에 그림 파일(사진)이 왔다. 선인장을 본떠 그린 그림으로 만든 편지지에 두진이는 글씨를 썼다. “엄마, 회사에서 빨리 오세요.” ‘아, 엄마는 야근 중인데…’ 먹먹한 마음이었는데 여자 후배가 “선배 잘 지내세요? 아이들은 잘 커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순간적으로 아이 그림을 보여주려다 멈추고 “응 그럼”이라고 대답했다. 난 버틸 수 있을까. 버티지 말고 싸우자고 생각했지만 결국 버티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 비관을 걷어내는 건 너무 어렵다.
수많은 ‘언니’들이 이렇게 일터에서 사라졌겠지. 나는, 그리고 여자 후배들은 사라진 그 언니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181657005&code=210100&sat_menu=A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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