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스스로의 삶을 사랑할 수 있도록 사랑하고 싶다
임아영
토요일 수영 강습에 가는 날이었다. 8세 첫째가 수영을 시작하고 두번째 강습을 가는 날. 원래도 겁이 많은 녀석이라 겨우겨우 설득을 해서 수업을 받기로 했는데 아이를 데리고 나갔던 남편이 금방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데리고서였다. “왜 다시 왔어? 수영 안 갔어?” 그 말을 듣자마자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수영장 앞에 도착하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했다. 겁에 질린 아이를 우선 안고서 울음을 그치게 했다. “괜찮아, 수영 오늘 안 가도 돼.” 그러나 속에서는 ‘왜 이렇게 작은 일에 겁을 내는 거야’ 답답했다. 표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아이를 다독였다. 5분쯤 지났을까. 다시 아이를 데리고 수영장에 갔다. “친구가 와 있을테니 한번 다시 가보자. 친구 수영하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아?” 수영장에 도착해 친구가 수영하는 모습을 봤지만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아이가 물을 겁내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게 이성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한편으로 ‘나쁜 생각’도 올라왔다. ‘친구는 가서 잘 하는데 너는 도대체 왜 못하는거야? 그래서 도대체 어떡하려고?’ 어릴 적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말이 제일 싫었는데 말이다. 폭발한 건 수학을 가르치면서다. 집중 못하는 게 당연한 8세인데 내 기준은 한없이 높다. “왜 자꾸 딴 곳을 보는거야. 문제를 푸는데 집중하라고.” 내 말이 반복되자 아이는 풀이 죽는다. 풀이 죽은 눈을 보고 있으면 괴롭다. 그러나 또 집중하지 못하고 딴짓을 한다. 그러다 내 말에 대답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화가 난다. “제발 엄마 말에 대답을 똑바로 하라고!” 화를 내고 나면 자괴감이 피어오른다. 아이를 재우기 위해 누웠다. “아까 엄마가 화냈을 때 무서웠어?” 아이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내 팔에 기댄 아이의 고개가 움직이자 마음이 아프다.
‘이제 시작인가. 보육의 단계가 끝나고 이제 교육의 단계가 되어서 그런가.’ 사회를 냉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어른’이 된 나는 아이에게 다칠 어려움을 ‘막고 싶은’ 존재가 됐다. 물론 부모가 노력한다고 해서 그 어려움을 다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또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세상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알지만. 어릴 때 엄마는 말했다. “네가 잘 된다면 엄마는 바랄 것이 없어.” 고3 때 독서실에서 밤늦게 오는 나를 보는 아빠는 늘 미안해했다. “힘들어서 어쩌나. 참으란 말 밖에 할 수 없구나.” 그 말들을 듣는 어렸던 나는 부모님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자식을 키우며 어떤 불안과 어떤 괴로움을 맞닦뜨렸을지 이제야 짐작이 간다.
우리 아이들을 우리 힘만으로 키우지 못하는 구조에서 남편과 나는 #부모님의도움 을 받아 #양육 을 유지하고 있다. 첫째, 둘째를 #어린이집 에 등원시키고 또 하원시켜 우리 부부의 퇴근까지 아이들을 봐주신 건 ‘내 엄마’였다. 서른이 넘어 마흔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여전히 부모님의 도움이 없이는 유지하기 어려운 생활. 나는 이 구조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부모님에게도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세상이 #조부모 도움 없으면 아이를 키우기 힘든데 ‘정말 복 받은 상황’이라 말하기에 그렇다고 체념하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부모님에게 여전히 독립하지 못하는, 여전히 아이와 다름 없이 부모님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 불쾌하다. 부모님에게 미안하고 양육을 부부의 힘만으로 할 수 없기에 수반되는 갈등들이 몰아치면 ‘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면 모든게 해결될 텐데’라는 생각도 올라온다. 그럴 때 생각한다. ‘서른여덟인데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고 여전히 부모님에게 독립하지 못했구나.’ 딸이 위험할까봐 독서실에 데리러오던 아버지를 기다리던 나는 열아홉살이었지만 남편이 복직하면 아버지에게 아이를 맡겨야 하는 나는 서른여덟이다. 서른여덟인 내가 부모님에게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러나 지원을 받지 않고 버티면 결국 노동시장에서 밀려나야 하는 것은 나이기에 ‘부모님의 사랑’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씁쓸한 결론에 이른다.
한국은 ‘가족 자원’으로 버티는 구조다. #가족자원 이 있는 사람은 복받은 자고 가족 자원이 없는 사람은 차별적 상황에 몰린다. 청년이 취업이 어렵고 결혼도 혼자 힘으로 하기 힘든 구조에서 부모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자의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부모는 도대체 아이를 몇 살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내 불안은 거기서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무 살이면 독립할 수 있는 사회 구조라면 양육이 이렇게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을텐데. 아이가 수영하는 게 무섭다고 겁을 내는 것이, 아이가 빼기를 못하는 것이 두려운 것은 이 아이가 혼자 서지 못할까봐 지레 겁 먹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믿어줘야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다시 사회를 들여다보면 또 두려워진다.
내 부모는 내게 헌신했고 여전히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헌신한다. 그러나 다들 헌신하고 싶어서 헌신하는 것일까. 사회를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가족 자원에 의지하는 풍경을 볼 때 두렵다. 그러나 가족들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구조가 유지된다면 아마 나도 아이들에게 헌신하게 될 것이다. 가족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고 사회를 믿을 수 있어야 사람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기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 자식과 부모가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당위의 문장들로 세상이 바뀌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노력하려 한다. ‘아이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불안을 동력 삼아 아이에게 헌신하지 않도록 양육의 태도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그러나 이 문장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게 두렵다. 그럼에도 반복해서 말해본다. “아이가 스스로의 삶을 사랑할 수 있도록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고.
아이를 안고 보듬는 일은 나를 안고 보듬는 일
황경상
“우리를 키우기 싫어서 그런 거지?”
원래는 요즘 들어 죽어라고 말 안 듣는 녀석들을 곯려주려고 했다. 아내가 진짜 엄마는 따로 있다고 말하면서 현관문을 나서면서 “진짜 엄마는 곧 올 거야”라고 거짓 연기를 했다. 잠시 있다가 다시 집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은 안도 반, 야유 반의 비명을 질렀다. 그러고는 첫째 녀석이 뱉은 말이 그랬다. ‘요 녀석, 많이 컸네’ 싶다가 뭔가 마음이 찌릿하다.
“무슨, 그런 서운한 소리를 하냐? 키우기 싫어서 그랬다니. 엄마, 아빠가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어른이 다 돼 가지고도 가끔 아이한테 이렇게 서운하다. “야, 우리가 정말 얼마나 힘들게 너희를 키우는지 아냐”라는 ‘치사빤스’ 같은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다.
한 번은 또 이랬다. 책을 읽어달라고 해서 나름대로 등장인물 각각의 목소리를 살려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데 아이가 그런다. “연기하지 말고 그냥 읽어~” 갑자기 마음이 팍 상했다. 완전히 삐쳐 버렸다. 책 읽는 것도 그만뒀다. “아빠가 나름대로 얼마나 정성들여 읽어주고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괜히 아이한테 심통을 부렸다. 나는 왜 싸우려고 하는 걸까, 저 꼬맹이들이랑. 다 큰 어른이.
아이들에게 해 주는 것들에 대해 나도 모르게 나는 보상을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사랑해주는 만큼 너희들도 이렇게 해 줘야 하는 거 아냐 하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자꾸만 ‘희생’이나 ‘헌신’이라고 생각하려는 내 모습에 흠칫 놀란다. 희생이나 헌신에 보답을 바라는 모습에 더욱 입맛이 아리다. 내가 좋아서, 내가 보고 싶어서 낳은 아이들인데.
돌이켜 보면 나 역시 부모님에게 얼마나 서운한 말들을 많이 던졌을까. 고교시절 한 번은 내가 꼭 갖고 싶었던 것(아마 좀 더 나은 성능의 컴퓨터였던 것 같다)을 사 주시지 않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워서 『돈 버는 데는 장사가 최고다』, 『일본을 보면 돈이 보인다』같은 책을 사 모으며 부모님에 이렇게 말했다. “돈 한 번 원 없이 벌어봤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들은 부모님은 가슴이 얼마나 먹먹했을까.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같은 말을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
하루 종일 두 녀석과 함께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막 뽀얗게 씻긴 녀석들과 모기장을 친 침대 위에 누웠다. 마침 점점 저물어가는 여름의 시원한 밤공기를 맞으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줬다. 온전히 나에게 기댄 작은 머리통 두 개와 들척지근한 옅은 땀 냄새를 맡고 있노라니 말 그대로 행복했다. 요 녀석들과 함께 보낸 이 시간이 언제고 그리울 것 같다. 이 달콤함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일을 그저 헌신이나 희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얻는 것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바다 생물 이야기책을 읽어주면서 농담 삼아 말했다. “아빠는 벵에돔 좋아해, 커서 이거 사줘야 해~” 그러니까 아이가 말한다. “아빠, 아빠는 초코를 좋아하니까 초코 벵에돔 사줄게.” 웃기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저릿했다. 더 보탤 말이 없었다. 그저 아이를 껴안고 한 번 입을 맞춰볼 뿐이다.
조해진의 소설 『단순한 진심』은 어릴 때 철길에서 기관사에게 발견된 뒤 그 집에서 1년 정도를 보내다가 프랑스로 입양된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다. 얼핏 보면 전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이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런 타인일지라도 아주 잠깐이나마 곁을 내어줬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인간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작가는 “포옹은 누군가를 안으며 동시에 나를 안는 것”이라고 썼다.
물론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일과 타인에게 곁을 내주는 일은 다르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역시 아이라는 타인에게 곁을 내 주는 일이지만 그 경계는 모호하다. 오히려 자신의 울타리만 더 크고 공고하게 만들어가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아이를 통해 난생처음 온전히 내 곁을 내 주는 경험을 하면서 그 경험이 세상으로 더 넓어질 수도 있다. 아이를 낳은 뒤 나와 전의 나를 비교하면, 더 젊었을 때의 나는 더 건조하게 세상을 바라봤고 나를 둘러싼 껍데기는 더 단단했다. 지금은 적어도 아이를 통해서 좀 더 생각한다.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줬던 사람들, 웃으며 자신의 넉넉한 곁을 내어줬던 사람들의 고마움을. 아이와 함께 살아갈 다른 아이들을, 그리고 나와 함께 늙어갈 그 부모들을.
아마도 부모님은 이미 아셨던 것 같다. 아이를 안고 보듬는 일은 나를 안고 보듬는 일이라고. 그리하여 나아가 사람들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조금이나마 곁을 주고 보듬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는 일이라고.
[출처] 부모는 어떤 ‘헌신’을 해야 하는가 [부부 육아 일기] 12화|작성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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