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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 일기/아이처럼 부모도 성장합니다

아빠의 육아휴직이 끝났다 [부부 육아 일기] 13화

 

 

남편이 복직했다, 할아버지 육아가 시작됐다

임아영

9월 1일 일요일 밤 누웠는데 잠이 안 왔다. 다음날은 월요일이기도 했지만 남편의 복직일, 첫째의 2학기 #개학일, 할아버지 육아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자기 직전까지 남편과 아이의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첫째의 2학기 #방과후수업 시간, #돌봄교실 시간, #피아노학원 시간을 표로 정리했고 중간에 둘째 어린이집 하원 시간까지 정리했다. 할아버지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할아버지의 동선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아이들의 활동과 휴식 시간도 고려하다 보니 머리가 아팠다. 누워서 잠을 청하는데 묘하게 불안했다.

월요일 오전 7시 남편은 아이들과 일어나 아침을 먹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또 나는 아이들 옷을 갈아입히고 준비물을 점검했다. 돌봄교실에 가져 갈 색연필과 사인펜은 사지 못해 내일 가져가기로 하고 둘째 #어린이집 이불까지 개켰다. 오전 8시20분이 되자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등교, 등원시키기 위해 집에 오셨다. 10분 후 다같이 집을 나왔다. 남편과 나는 회사로, 첫째와 둘째는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데려다주러.

아이들과 빠빠이를 하며 헤어지는데 기분이 묘했다. 아버지의 바지를 보고서다. 8월 30일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두시면서 9월 2일부터 아이들의 등하교(원)를 책임지시기로 했다. 아버지는 첫날 검정색 긴 바지를 입고 나타나셨다. 속으로 생각했다. ‘정장은 아닌 것 같은데 정장 디자인으로 나온 등산 바지인가.’ 할아버지가 육아를 도와주시기로 하면서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학교, 어린이집에 와서 손주들이 속상해하면 어쩌나’를 걱정하셨다. 여전히 엄마가 데리러오는 아이들이 많은 사회에서 아빠도 아니고 할머니도 아니고 할아버지라는 게 걱정되셨을 터이다. 하얀색 티셔츠에 정갈한 검정색 바지를 갖춰(?) 입은 아버지를 보면서 그 걱정 때문인가 싶었다.

첫째에게는 한 번 물어봤다. “2학기가 되면 아빠가 회사를 다시 가고 할아버지가 학교를 데려다주실 텐데 할아버지가 오시면 싫을 것 같아?” 첫째는 “왜?”라고 오히려 물었다. “다들 엄마가 오는데 할아버지가 오시면 속상할 수도 있으니까”라는 말에 첫째는 “괜찮은데?”라고 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아이에게 웃으며 협박(?)했다. “할아버지가 오신다고 속상해하면 나쁜 거야.” 늘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엄마, 아빠가 할 일을 대신 해주시는 거야. 할머니, 할아버지는 엄마, 아빠나 다름 없어.”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아이가 ‘엄마의 부재’를 속상해할까봐 전전긍긍한다.

하필이라 말하면 안 되지만 하필... 남편 복직 다음날에는 둘째 #어린이집 #참관수업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둘다 참여하기 어려워서 할아버지가 나서시기로 했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린이집 알림장에 사진이 올라왔다. 둘째를 무릎에 앉히고 웃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을 보니 뭉클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어색하실까봐 같이 나서신 듯했다. 남편은 내게 말했다. “얼마나 복 받은 상황이야.” 그래, 맞다. 복받은 상황이다. 그렇지만 항상 나는 고맙지만도 않고 미안하지만도 않은, 고마움, 미안함, 죄책감, 사회에 대한 분노가 뒤섞인 감정을 맞댄다. 퇴근하니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선생님이 고생하셨지. 안 오던 할아버지까지 오니 엄마, 아빠, 할머니에 할아버지까지 부르셔야 했어.” 무슨 말인가 했더니 참관수업을 진행한 선생님이 참여한 부모들을 부를 때 ‘엄마, 아빠, 할머니’까지만 불러도 됐을텐데 ‘할아버지’까지 와서 한 사람 더 불러야 했다는 얘기였다. 웃음이 나왔다.

부모님의 절대적 도움으로 아이를 키우는 ‘복받은 우리 부부’는 다시 #맞벌이 부부로 돌아왔다. 남편은 복직해 정신이 없고 나도 남편이 복직하니 정신이 없다. 남편이야 6개월간 쉬던 회사를 나오니 정신이 없지만 나는 다니던 회사를 다니는데 너무 피곤해 밤마다 뻗었다. 양육 구조를 다시 맞벌이 부부 구조로 맞춰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을 거다. 아버지가 헷갈리실까봐 매일 아침 ‘오늘 동선’을 메시지로 전달하면서 깨달았다. ‘다시 외줄에 올라왔구나. 조금만 삐끗하면 떨어지는 외줄에.’ 아무리 친정부모님이 계셔도 남편이 아이들을 돌봤던 육아휴직 시절의 ‘안도’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육아는 우리 부부의 일이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일이 아니니까. 묘하게 계속 울적했다. 둘째를 낳고 회사로 돌아온 후 나는 자주 ‘한국에서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버티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우울감이 또 휘감을까 두려웠다.

내가 꿈꾸는 육아는 내가 출근하며 아이를 어린이집·학교에 보내고 남편이 퇴근하며 아이를 데려와 저녁을 먹이는 풍경이다. 조부모가 ‘독박 육아’를 하지 않아도 되고 조부모가 도와줄 수 없어서 역차별을 받는 가정이 없는 그런 풍경 말이다. 늘 마음 한켠엔 언젠가 어떤 고리 하나라도 문제가 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것은 ‘나’라는 생각이 있다. 여전히 한국에서 생계부양자는 아빠고 돌봄을 담당하는 건 엄마니까. 우리 부부가 서로를 그렇게 규정하지 않아도 우리도 사회 바깥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남편과 함께 출근하는 길 짧았던 남편의 육아휴직 기간을 오래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 더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남편과 복직 전날 밤 첫째 방과후수업에 대해 논의할 때였다. 2학기부터 돌봄교실에 있을 수 있게 됐는데 돌봄교실 시간과 방과후수업 시간이 겹쳐서 1학기에 하던 방과후수업 중 2개를 빼려고 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보드게임 수업은 두자. 쑥스러움 많은 아이가 친구들과 같이 보드게임 하면서 사회성을 키울 수 있을 것 같더라.” 남편은 1학기 방과후수업 참관을 도맡았다. ‘남편이 내가 보지 못했던 아이의 표정을 다 보고 있었구나.’ 남편의 #육아휴직 기간이 오래 그리울 것 같다. 다행히 아빠가 회사에 다시 가고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상에 아이들은 잘 적응하고 있다. 남편과 내가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육아를 할 순 없지만 외줄에서 떨어지지 않게 서로 손을 꼭 잡고 있어야겠다. 우리 아이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시대에는 ‘외줄’을 떠올리지 않는 환경이 되길 바라면서.

 

할아버지가 첫째는 학교에, 둘째는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복직의 순간도 닥쳤다

황경상

 

“아빠 오늘부터 회사 가는 거야?”

“응~”

“아쉽다.”

거의 반년에 걸친 육아휴직을 끝내고 출근하는 첫날, 학교에 가려고 함께 현관을 나서던 첫째가 말했다.

“회사 가서 잘 하고 와~”

녀석, 훌쩍 컸구나. 괜히 미안했다. 이제부터 데려다줄 수 없다는 사실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그리고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더 잘 보살펴 줄 테지만. 왠지 모를 서운함이 나도 마음 속 한구석에서 솟구쳤다.

복직하기 전날 잠이 오지 않았다. 내 인생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이 시간들을 나는 잘 보낸 것일까. 아이들에게 나는 좋은 추억을 만들어줬을까. 휴직을 하면서 결심했던 수많은 다짐들을 나는 잘 실천했나. 자신이 서질 않았다.

첫째와는 함께 만들기도 더 많이 하고 컴퓨터도 가르쳐 주고 싶었다. 둘째와는 밖에서 더 신나게 놀고 싶었다. 그렇지만 늘 피곤하다는 이유로,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을 해치우느라, 빨리 밥을 먹고 씻고 자야 한다는 이유로 그러지 못했다. 목표했던 것에 반에 반도 채우지 못했다. 생활습관을 가르치는 일에서도 차근차근 설명해서 납득시키기보다는 소리를 빽빽 지르는 일이 더 많았다. 나 스스로도 아이를 돌보는 것 외에 조금 남는 시간에는 운동도 하고 책도 좀 더 보고 싶었지만 애당초 얼토당토않은 일이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그렇게 시간이 남을 정도로 녹록지가 않았다. 시간은 말 그대로 쏜살같이 흘러갔고 오지 않을 것 같던 복직의 순간도 닥쳤다.

복직하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그 자리에서 첫째에게 아빠가 육아휴직하고 나서 뭐가 기억에 가장 남았느냐고 물어봤다. 어떤 대답을 할까. 막상 돌아온 대답은 싱거웠다. “양천탐험하고 떡볶이!”

‘양천탐험’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별 것 아니었다. 구청에서 주민들에게 건강을 위한 산책로를 만들었는데, 그걸 알려주기 위해 보도블록에 박아 놓은 표지판을 찾으러 다니는 일이었다. 첫째는 유난히도 그 표지판을 신기해했다. 새롭게 하나를 찾을 때마다 환호성을 지를 정도로 좋아했다.

방학을 한 뒤에는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 수업 하나를 듣고 하굣길에 나와 함께 그걸 찾으러 다녔다. 다섯 개, 여섯 개, 일곱 개… 하나하나 더 찾을 때마다 첫째는 신나서 뛰어갔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에 때로는 다리가 뻐근할 정도로 걸어야 했지만 첫째가 어찌나 좋아하는지, 그만하자고 할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녀석과 함께 학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김밥을 사 먹었다. 밥 차려 먹기 귀찮아서 먹자고 한 것인데, 첫째는 그것도 몹시 좋아했다. 매운 걸 잘 먹지도 못하는 녀석이 ‘헥헥’하면서 물을 마셔가며 떡볶이를 먹는 모습은 말할 수 없이 귀여웠다. 그런 별 거 아닌 일이 녀석에게는 너무나 기억에 남았나보다.

둘째 녀석은 여행 중 머물던 숙소에서 화장실에 갔다가 손을 씻고 나오면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빠, 수건을 여기에 좀 걸어 놔라~” 아마도 손을 닦을 수건이 없었나보다. 잔망스런 말투에 아연실색했다가 한편으론 흐뭇했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당연히 집안일은 아빠가 하는 것이고, 수건도 아빠가 걸어놔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나보다. 헛물켠 셈은 아닌 것이다.

첫째가 인형들 사이에 노트북(?)을 놓고 회사놀이를 하고 있다.

 

두 녀석은 숙소에서 ‘회사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숙소 밖 마당에 앉아 있던 나에게는 ‘부장님’의 역할을 맡겼다. 첫째 녀석은 회사에 가는 아빠, 혹은 엄마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둘째 녀석은 집에 있는 아이 역할이다. 둘이서 현관문을 드나들며 열심히 논다. 첫째는 테이블에 장난감으로 노트북 컴퓨터도 만들어놓고 뭔가를 심각하게 두들긴다. “이거 어떻게 하는 놀이야?”라고 묻자 첫째가 답한다.

 “응, 내가 동생한테 회사에 가면서 자고 있으면 들어온다고 하고 회사에 갔다가 그 다음에 동생이 자고 있으면 다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놀이야.”

살짝 말문이 막혔다. 우리 부부가 매일 같이 야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가끔 “오늘은 늦게 오는 날이라 자고 있으면 들어올 거야” 하는 말을 녀석들은 잊지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아빠와의 시간을 그렇게나 갈구하는 녀석들.

육아휴직을 했다고 하면 “우리 때는 그런 것을 상상도 못했다”고 하시며 부러워하는 선배들도 계신다. 여건이 안 되어서 하고 싶어도 못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 행운이지만, 이대로 육아휴직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여전히 뭔가 찜찜하고 아쉽다.

복직 둘째 날, 회식을 하고 밤늦게 집에 돌아갔다. 아침에 일어나 녀석들을 보니 왠지 인상이 달라 보인다. 그새 부쩍 큰 느낌이다. 겨우 하루 안 봤는데. 괜히 녀석들의 머리를 한참동안 쓰다듬었다.

 

아빠의 복직 직전 휴가에서 엄마와 아이들이 바다에서 즐겁게 놀고 있다.

 

 

[출처] 아빠의 육아휴직이 끝났다 [부부 육아 일기] 13화|작성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