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라서 괜찮아
임아영
첫 아이가 처음 하는 일은 내게도 보통 처음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에 간다면 초등학교 #학부모 는 처음이듯이. 둘째를 낳고서 알게 됐다. 두번째 경험하게 되면 훨씬 유연해지고 편안해진다는 것을. 둘째를 #어린이집 에 처음 보낼 때도 아이에게 미안하고 아이가 안쓰러웠지만 첫째 때만큼은 아니었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던 날은 정말 펑펑 울었다. 어떤 연애의 끝보다 슬프게. 둘째 때는 그러지 않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안쓰러움’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초보’라서 어려운 이유는 그게 처음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펼쳐진 일이 감당 가능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혼자 겪어야 하는 일은 그나마 다행이다. 어른이 되었으니까. 아이와 함께 겪어야 하는 일은 부담스럽다. 부모가 되고보니 가장 힘든 것은 아이가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지난 겨우내 첫째가 초등학생이 된다는 게 걱정스러웠다. 약간 내성적인 아이가 학교 생활을 즐거워할지 걱정됐고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에 아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3월 한 달을 보낸 결론은 ‘할 만 했다’이다. 아이는 학교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고 나도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에 들어간 첫 달을 잘 보냈다. 모두 남편 덕분이다. 우리 둘다 초보 부모지만 남편과 내가 일을 분담했기에 가능했다. #아빠육아휴직 을 허락한 회사 덕분이기도 하고 아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독려한 사회 덕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지 못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3월 한 달 각종 학교 행사가 쏟아졌다. 말 그대로 ‘쏟아졌다.’ 3월 4일 입학식부터 학부모 #공개수업, #학부모총회, 1학기 상담, 반 모임까지. 보통 하듯 엄마가 다 소화해야 했다면 나는 3~4일을 휴가내야 했을 것이다. 입학식날부터 5일간 10년 근속휴가를 썼고 학부모 총회 때 반차를 썼다.
3월 둘째주부터 육아휴직한 남편은 입학식을 함께 했고 공개 수업, 상담을 맡았다. 엄마들이 주로 오는 반 모임은 다행히 밤에 잡혀 퇴근 후 갈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갈 수 없었던 어린이집 행사도 남편이 갔다. 지난해 내내 ‘열린 어린이집’ 행사에 참여하지 못해 미안했던 둘째에게 어느 정도 만회를 할 수 있었다.
34개월 둘째는 치안센터에 가는 ‘열린 어린이집’ 행사에서 계속 아빠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했다. 회사에 있던 나는 아빠 손을 꼭 잡고 치안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둘째 사진을 보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다행이다.”
초등학교 입학 때 #경단녀 가 가장 많이 생긴다더니 입학 후 첫 3주간은 학교에서 #단축수업 을 해서 만약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정말 곤란했을 상황이었다. 오후 12시40분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가는 남편은 퇴근 후 내게 말했다. “오늘 1만5000보를 걸었어.” 그 다음날은 “오늘은 2만보 가까이 걸었어.”
남편은 오전 8시40분 두 아이를 데리고 학교-어린이집 코스로 데려다주고 오후 12시40분 첫째 학교에 가서 방과후수업이 하는 시간까지 학교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를 두고 기다리다가 다시 집에 가서 오후 3시쯤 첫째 방과후수업이 끝나면 데려오고 또 오후3시30분 둘째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왔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잘 걷지도 못하는 둘째, 호기심 많은 첫째를 데리고 왕복하는 일은 고되다. “그래, OO엄마가 애들은 편도지만 부모는 왕복이라 하더라.”
초등학교를 왔다갔다, 어린이집을 왔다갔다 하는 남편의 모습을 회사에서 상상하면서 기분이 묘했다. ‘아, 내가 육아휴직하는 동안 늘 했던 일인데 뭐 그렇게 힘들어’ 싶었다가 ‘그래도 그때 나도 너무 왔다갔다 힘들었지. 남편도 고생하네.’했다가.
여러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다. 남편의 눈으로 아이를 볼 수 있게 된 거다. 남편이 첫째 아이 공개수업이 간 것은 처음이었다. 유치원 3년 동안 공개수업은 내가 다 참여했었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아이가 수업을 듣는 모습을 보고 약간 충격을 받았다. 아이가 수업에 약간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던 것.
그러나 남편이 보내준 영상을 보고 거꾸로 나는 아이가 많이 컸다고 생각했다. 5세 때보다 7세 때보다 많이 자란 아이의 모습을 보고 뭉클했다. “아이는 잘 크고 있어. 유치원 때보다 훨씬 의젓해졌네.” 남편도 내 설명을 듣고 안심했다. 우리는 얼마나 각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가. 남편과 아내인 우리도 마찬가지다.
매우 뭉클했던 순간도 있었다. 남편이 첫째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돌아와서 상담 내용을 요약한 글을 보고서였다. “내가 간 것처럼 복기해 와야해”라는 말을 들어서였겠지만 남편은 정말 꼼꼼하게 상담 내용을 적어왔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했다.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아이 질문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대화를 잘 해 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항상 남편과 육아를 함께 하려고 노력해왔다. 선생님은 그런 의도로 하신 말이 아니겠지만 그동안의 나와 남편의 노력을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건 해봐야 가늠할 수 있다. 초보 부모 3월 한 달 분투기, 할 만했다. 그러나 남편과 같이 할 수 없었다면 괴로웠을 것이다. 어린이집 알림장에 선생님이 이렇게 적으셨다. ‘우리 이준이가 양치질 시간에 “아빠가 사준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아빠가 준비해 준다고 말했다며 칫솔을 보고 좋아했어요. “엄마는 물통을 사줬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이준이가 “아빠는 칫솔을 사줘서 멋져요”라고 하자 선생님이 “엄마는?”하고 묻자 “엄마도 멋져요”라고 말해주었어요.’ 아이의 말에 엄마, 아빠 모두 등장하는 것이 정말 나는 기쁘다. 요즘 퇴근하는 길 예전보다 더 발걸음이 빨라진다. 집에는 아이들과, 아이들을 돌보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으니까.
퇴근한 엄마 등 위에 올라탄 아이들
‘아빠’라는 작은 히어로
황경상
“뛰어! 뛰어!”
아침부터 달린다. 아직 덜 풀린 다리가 진짜 풀려버릴 것 같다. 오늘도 아침부터 밥도 안 먹고, 옷도 안 입으려는 두 녀석을 데리고 실랑이를 벌이다 학교로 출발하는 시각이 늦어졌다. 마음이 급한데 터덜터덜 따라오던 첫째가 투정을 부린다.
“아빠, 힘들어~ 천천히 가!”, “네가 준비를 늦게 해서 그렇지! 벌써 50분이야~ 지각하겠다.”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차마 남들 볼까봐 화도 못 낸다. 그저 애써 얼굴을 눌러 펴고 첫째의 등을 토닥인다.
그 와중에 둘째는 온갖 사물에 관심을 보인다. “아빠 저건 뭐야?”, “응, 강아지들을 맡겨두는 곳이야.” 첫째 역시 한몫 거든다. “우와~ 아빠! 여기 피자집이 맥주에 치킨집으로 바뀌었어!” 갑자기 이삿짐을 나르는 차가 눈앞에 보이자 둘째가 소리친다. “와, 사다리차다! 보고 싶어~ 멈춰! 멈춰!” 요즘 사다리차에 푹 빠져 있는 둘째가 가만 있질 못한다.
처음에는 두 녀석의 손을 모두 잡고 걸어 다녔지만, 하도 내 손을 잡아끌고 제멋대로 다니려고 하는 둘째 녀석 때문에 등교 시간이 고무줄처럼 길어졌다. 뒤에서 미는 세발자전거에 둘째를 태웠더니 속도는 나는데 오르막이나 계단, 턱이 많아 휘청휘청한다. 첫째의 손을 잘 잡아주지 못하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허둥지둥 교문에 들어서서 첫째를 학교 현관에서 배웅한다. 내가 멀어질 때까지 몇 번이고 들어갔다 나왔다가를 반복하면서 손을 흔들다가 사라지는 녀석의 작은 등을 바라보면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콧날이 시큰해진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 학교가 쉽지 않았는지 첫 주에는 열감기에 걸려 결석까지 했다.
두 녀석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에 오면 잠시의 여유가 생긴다. 많은 분들이 #육아휴직 에 응원을 보내주셨지만, 오전 시간은 잠시 쉴 수 있지 않느냐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왠지 마음이 더 급해진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해야 할 일이 많다. 눈에 밟히는 것도 많다. 이불 빨래를 널다가 베란다 바닥에 살짝 스쳤더니 시커먼 검댕이 묻어나온다. 몇 달 동안 한 번도 청소를 하지 않은 탓이다. 대충 걸레로 닦으려다 잘 닦이지 않아 결국 물청소를 했다.
냉장고에는 2018년, 심지어 2016년에 유통기한이 끝난 냉동 생선과 언제 넣었는지 모를 누렇게 변색된 미역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곰팡이가 생긴 떡국 떡과 마늘도 꺼내 버렸다. 화장실 변기에는 솔질로도 잘 닦이지 않는 곰팡이가 석 달째 방치돼 있었다. 사 놓고 넉 달째 먹지 않았던 크림 스파게티 소스가 눈에 띈다. 다행히 냄새를 맡아보니 상하진 않았다. ‘그래, 오늘은 이걸 먹어야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을 데려와야 할 시간이 된다.
보통 아내가 가던 #학부모상담도 내가 가기로 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아내와 상의 끝에 몇 가지를 적어서 스마트폰에 저장했다.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아 학교 운동장에 서서 몇 번이고 그걸 꺼내봤는데 도통 머리에 남질 않는다. 교실 앞으로 가니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입사 면접 이후 이렇게 긴장된 건 처음이었다. 살짝 들여다보니 선생님은 계시는데 아직 시간이 남아 방해해선 안 될 것 같고… 두어 차례 망설이다 조심스레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먼발치에서 봤을 때는 다소 엄한 인상이셨는데 가까이서 뵈니 달랐다. 선생님은 따뜻한 눈빛으로 쭈뼛쭈뼛하는 아빠를 맞아주셨다. “나중에 크면 아빠랑 대화를 자주 나누는 아이들이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꼭 아빠랑 상의를 하는 아이들도 있더라고요.” 선생님은 육아휴직을 응원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저도 잘 될 진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아빠가 된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은 쉽지만 쉽진 않다. 처음 3주간은 단축수업을 해서 #방과후 수업까지 중간에 1시간이 비었다.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1시간을 서 있어야 했는데 좀이 쑤셨다. “1시간 동안 벌 서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한 엄마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그랬다. 봄인데 날씨는 왜 이렇게 추운지, 얇은 옷을 입고 나갔다가 벌벌 떨었다. “아직까지 롱패딩은 필수라니까요.” 정말 그랬다.
첫째가 학교 놀이터에서 친구와 함께 만든 케이크(?)
그냥 있기 뭣해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놀이터에 섰다. 어색하게 발걸음을 이리저리 뗐더니 아이들은 나를 ‘적’이라고 부르면서 낄낄대며 도망친다. 아이들에게는 악당을 물리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놀이다.
좀 신나게 놀아주려는 찰나, 첫째 녀석이 나를 물리친다며 모래를 내 머리에 뿌렸다 흥이 식은 것은 물론 울화가 치밀었다. 온몸에 모래가 다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아서 화도 못 냈다. ‘그러지 마, 인제 아빠 안 해’ 하면서 돌아와 바닥에 털퍼덕 앉았는데 뭔가 창피했다. 아이들과 노는 것도 훈련이 안 돼 있었던 셈이다. 신문에 나온 육아휴직 하는 아빠들 보면 정말 잘 놀아주던데…….
기운이 빠지는 것도 오래갈 수는 없다. 아직까지 이 작은 녀석들의 우주에서 내 존재는 비중이 크다. 작은 돌멩이 하나라도 주워주면 신나 어쩔 줄 모른다. 둘째에게 아직까지 아빠는 ‘신’이다. 어느 흐린 날 둘째가 말했다. “아빠, 비 못 내리게 해 줘!” “아빠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할 수가 없어.” 녀석은 ‘힝!’ 하면서 발을 구른다.
첫째는 컴퓨터로 로봇을 조작하는 아주 기초적인 코딩을 알려줬더니 ‘우와’ 하면서 탄성을 지르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두한다. 둘째는 막 피어오르는 새싹을 보여주고 만지게 해 줬더니, 어느 날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싹을 보고 “새싹 예쁘다!”라고 말한다. 장난감 지게차, 소방차를 만들어주면 “아빠 멋지다! 고마워!”를 연발한다.
아빠와 함께 로봇 만들기 삼매경에 빠진 첫째
그 새싹보다 예쁜 것들을 껴안으며 잠들면 달큰한 냄새가 난다.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잘못 대해 준 게 생각나 내가 아빠가 될 자격이 없는 거 아닌가, 괜히 감당하지도 못할 아이들을 낳은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졌다가도 작은 손을 잡고 누워있으면 마음이 다시 편안해진다. 손을 잡고 오래오래 걸을 시간이 아직은 많이 남았다.
[출처] 아빠가 간 학부모 상담! 초등학교 행사가 쏟아지는 3월-4월 처음 부모 분투기 [부부 육아일기 2화]|작성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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