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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 일기

돌잡이 교구가 뭔가요- 놀이도 학습하는 사회

안녕하세요. '누런돼지 관리자' 임아영입니다.

 

요즘 좀 뜸했는데...ㅎㅎ 육아일기를 쓰다보니

가끔 나만 무슨 대단한 경험을 한다고, 육아에 대해 잘 아는 척 하지 말자... 라는 소심한 마음이 들어

블로그를 하기가 꺼려지더군요. ㅎㅎ

그런 저를 다시 블로그로 불러온 사건...이 있었으니.

 

 

 

3주째 판촉 전화를 받았습니다.

 

"기특이 어머님~ 이제 기특이가 돌이 지났으니 본격적으로 놀이 교육을 시작할 때입니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음... 우선 귀찮았습니다.

광고 전화는 그렇잖아요?

그리고 전화가 올 때마다 이유식을 먹인다든가, 아기를 재우고 있다든가 계속 일이 겹쳐 전화를 받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전화를 몇 번 거절하면 다시 전화를 안 하지 않나요??

 

전화는 3~4일 간격으로 계속 왔습니다.

결국 성질 급한 전 지난주 단유의 고통(진짜 아프답니다!ㅠㅠ)으로 판촉 사원(?)에게 화를 냈죠.

사실 그 전화 전에 "일주일 후 정도에 전화를 달라"고 했었거든요.

근데 또 3일 후에 전화가 온 겁니다.

그저 영업에 눈이 멀었구나 싶어서 짜증이 확. 게다가 젖몸살로 침대에 이틀째 누워 있던 날이었죠.

 

"제가 일주일 후에 전화 달라고 하지 았았나요?!"

 

저의 앙칼진 목소리에 놀란 그분... "잘못 기억했다"며 다시 전화하겠다고 끊었죠.

 

그리고 오늘 다시 전화를 받았습니다.

 

하도 전화가 계속 오니까

'그래 한 번 무슨 소리를 하나 들어나보자'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_-;;;

 

 

 

 

 

취재하던 습관으로 내용을 한 번 좍 적어보았습니다.

 

 

"어머님~ 저희 *****는 놀이학습 프로그램입니다~ 밥 먹고 잠들고 하는 생활 습관을 놀이로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예요. 가장 중요한 배변훈련까지 배울 수 있어요~ 아이들 월령에 맞춰 교구와 책이 나갑니다~ 장난감 살 필요가 전혀 없죠~"

 

우선 놀이를 학습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런 토론을 판촉 사원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먼저 얼마냐고 물어봤습니다.

 

"어머님~ 한달에 35,500원인데 지금 할인 기간이어서 27,000원에 모든 프로그램을 기특이에게 경험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이미 아들 이름까지 아는 그분(-_-)에게

저는 짐짓 "생각보다 싸네요"라며 계속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교구는 어떻게 나오냐고 물으니

 

"어머님~ 가령 배변훈련을 위해 노래하는 화장실 책이 나오고요~ 여름에는 물놀이 많이 하죠? 빙글빙글 물놀이 세트도 나옵니다~"

 

그냥... 집에 있는 책이랑 장난감이랑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때 판촉 사원분 아들의 교육(?)에 무관심한 저를 공격합니다.

 

"어머님~ 요즘엔 돌 정도 되면 다들 이런 프로그램 많이들 하시는데 모르시나보다~호호호."

 

순간 울컥 했습니다.

놀이를 가르치지 않았다고 교육에 관심 없는 엄마 취급을 하다니.

게다가 이제 겨우 13개월인데 무슨 학습은 학습... 확!

화를 누르고 웃으며 물어봤습니다.

"아~ 요즘은 그러나보더라고요~ 하하 돌 되면 다들 뭔가 하나보죠? 어떤 것들을 해요?"

천진난만한 질문에 돌아오는 답.

 

"어머님~ 전집 정도는 한 질씩은 사주고 교구도 사주시죠 보통~ 기특이 월령 땐 엄마가 책을 읽어주고 장난감을 활용해서 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참 중요하죠~"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한 교구. 뭔가 대단해보이죠?ㅎ 출처:11번가

 

우리 기특이도 잘 노는데...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노는데... (그래서 내가 따라다니느라고 얼마나 힘든데...)라고 말할 뻔했습니다.

그렇지만 또 참고 계속 설명을 들었습니다.

지금 14개월 계약을 하면 1개월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사은품으로 인형과 망치세트, 사운드북이 나간다고 등등.

 

"어머님~ DVD 영상도 나가는데요~ 다양한 신체활동 놀이 있잖아요 아빠랑 할 수 있는 놀이요~ 영상으로 쉽게 배울 수 있어요"

 

음... 아빠는 노는 것도 배워야 하는 건가...

 

결국 전화는 아빠를 팔아서 끊었습니다.

 

"아 선생님 말씀 참 감사한데요. 저는 너무 하고싶은데~ 저희 남편이 이런 교육을 좀 안 좋게 생각해서요~ 아직 어린데 무슨 교육이냐고 할 거예요"

라고 변명을 하면 금방 끊을 줄 알았더니만...

 

"어머님~ 보통 아버님들이 많이 그러시죠~ 잘 모르셔서 그래요~ 그래서 보통은 어머님들이 많이 생각하시고 결정하시더라고요~"

 

끊기 어렵겠다... 싶어서

"남편이 싫어하면 하기 어려워서요~ 호호호"

 

 

그리고 바로 인터넷 검색을 했습니다.

'돌 교구'라는 검색어로.

 

전집부터 교구까지 휘황찬란하더라고요.

저한테 전화를 준 업체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1~5단계로 프로그램이 나뉘어 있다고 했습니다.

 

아... 전화를 끊고 인터넷 검색까지 하다보니

힘이 빠졌습니다.

 

 

"이 사회에서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하는가"

 

아득하더라고요.

 

 

 

한 달 전쯤 아는 분에게 들었던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그 부부는 교구 때문에 부부싸움을 했는데 교구값이 120만원이나 되어서였다고 합니다.

남편은 왜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어린 아기한테 교육을 하려 하느냐,

아내는 남들은 다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 아기만 뒤처져야 하느냐,

...

그런데 교구를 사용해본 후 남편과 아내의 반응이 달라졌다고 해요.

 

아내는 120만원 값을 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했고

남편은 생각보다 다양한 교구가 많아서 아이랑 놀아주는 방법론을 배웠다고 얘기하더군요.

 

 

 

저도 사실 전화를 끊고

한달에 3만원이면 비싸지도 않은데 그냥 한 번 속는 셈 치고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특이랑 놀아주는 다양한 방법을 알게 된다는데 3만원이 뭐가 아까운가 싶더라고요.

(그러나 14개월하면 42만원! 역시 카드는 무조건 일시불입니다....)

 

 

그러다 집을 한 번 둘러봤습니다.

저희 집에도 장난감, 아주 많습니다.

기특이가 태어나고 여기저기서 쓰던 장난감 많이 주셨어요.

회사 선배가 주신 장난감 말, 소리나는 지구본, 회사 동기가 준 블럭 등을 갖고 아주 잘 놉니다.

아 그리고 회사 선배는 책도 네 박스 정도 주셨죠. 집에 책이 차고 넘칩니다.

물론 아직 기특이는 책을 읽기보다 책장에 꽂혀있는 것을 꺼내며 즐거워하지만....;;ㅎㅎ

 

그리고 또 하나의 추억.

 

저는 어릴 적 구몬수학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턴가 구몬수학을 했는데

저희 부모님은 사교육은 안 시킨다는 주의였지만 학습지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나봐요.

 

늘 밀렸습니다.

일주일에 문제지 몇 페이지를 풀어야했던 것 같은데

놀고 싶은 마음에 늘 미루고 미루다가 엄마한테 혼났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때 저희 동네는 구몬수학이 유행이었는데 옆집 친구는 밀리다밀리다 결국

엄마가 문제지를 통째로 잘라버리셨다는... 무서운 추억 ㅎㅎ

 

 

 

 

그 생각이 나자 마음이 진정됐습니다.

 

아마 저 프로그램을 등록하게 되면

매달 오는 책과 교구에 제가 더 열을 올리게 될 겁니다.

돈이 들어갔으니까.

이번 달에는 이만큼은 해야지 아이를 다그치게 될 수도 있겠죠. 고작 돌 갓 지난 아기를.

 

 

그저 물 흐르는 대로 키우겠다는 다짐을 자주 잊어버립니다.

누구는 어떻게 한다더라는 얘기를 들으면 팔랑귀가 팔랑팔랑 날아다닙니다.

 

놀이는 학습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같이 웃어주고

그 아이가 손잡고 이끌어가는 곳에 가서 함께 놀아주는 것, 같이 기뻐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방.

기특이는 장난감보다 엄마 물건을 더 좋아합니다...

 

주로 주걱, 반찬통, 싱크롤, 주전자, 젖병소독기, 프라이팬, 빨래통 이런 것들... ㅎㅎ

 

 

젖병소독기 속의 '꼬마'와 대화 중인 기특님.... 너무 기뻐하십니다...

 

교구 아무리 갖다줘도

어른 물건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해서 노는 아이들의 창의력은 따라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기특이가 이렇게 자유로운 만큼 저도 자유로울 수 있기를.

 

다음에 판촉 전화가 오면

"아 네~ 남편이 결국 반대를 하네요~ 참 저도 너무 하고 싶은데~"라고 말해줘야겠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