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야마 전 일본 총리가 22일 동북아역사재단 간담회에 참석했습니다.

마침 그가 동북아역사재단 간담회에서 발언하던 날

일본 자민당은 고노 담화를 대체할 새로운 담화를 내년에 발표할 것을 정부에 공식 요청하기로 했는데요. 

자민당 정무조사회는 종전 7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2015년에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새로운 관방장관 담화를 발표할 것을 정부에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고노담화가 무력화되는 걸까요.

 

무라야마 전 총리는 종전 70주년을 맞춰 무라야마 담화를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간담회 내내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한다면 일본이라는 국가가 살아갈 수 없다”

“무라야마 담화는 전 세계에 나타낸 국제공약이 됐으므로 재검증은 불가능하다”

“일본 총리는 이를 지켜야만 한다. 이것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은 공직에 머무를 수 없을 것”

이라고 했습니다.

발언 내용이 누굴 가리키는지 보이죠?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무라야마 전 총리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겠다고 했을 땐

타국 국가연구기관까지 오는 무라야마 전 총리가 대단해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짧게 써야 했으니....

 

무라야마 전 일본 총리 “한·일 정상회담 열어 위안부 문제 해결해야”

 

ㆍ자민당, 정부에 새 담화 요구키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90·사진)가 “한·일 정상회담을 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22일 오전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무라야마 담화와 위안부 문제’라는 기조 발제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금 일본 혼자 생각해서 안을 내려고 하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 문제는 역시 정상끼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지금까지 경위도 다 파악하면서 솔직하게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자민당·사회당·신당 사키가케당 연립정권의 총리로 재임하던 1995년 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식민지배와 침략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의 무라야마 담화를 내놓았다.

그는 아베 현 내각이 무라야마 담화를 무력화하려는 데 대해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한다면 일본이라는 국가가 살아갈 수 없다”며 “무라야마 담화는 전 세계에 나타낸 국제공약이 됐으므로 재검증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를 가리켜 “일본 총리는 이를 지켜야만 한다. 이것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은 공직에 머무를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1993년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 역사인식이고 이를 부정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자신이 총리로 재임할 당시 설립된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피해자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제1당인 자민당의 승인 없이 불가능한 일이어서 국민 모금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또 기금을 통한 보상금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민간 차원에서 조성돼 한국에서 반발을 산 데 대해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한편 일본의 집권 자민당은 고노 담화를 대체할 새로운 담화를 내년에 발표할 것을 정부에 공식 요청하기로 했다. 자민당 정무조사회는 지난 21일 종전 7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2015년에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새로운 관방장관 담화를 발표할 것을 정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정무조사회는 최근 아사히신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과거 기사를 일부 취소한 것, 올 6월 ‘고노 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일 정부 간 문안 조정이 있었다’는 정부의 발표와 관련해 대응책을 논의하겠다며 이번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아사히신문 관계자를 국회로 불러서 따져야 한다’거나 ‘고노 담화 작성과정에 대한 검증 결과를 해외에 확실하게 알려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쏟아졌다고 NHK 등은 보도했다.

<임아영 기자·도쿄 | 윤희일 특파원 layknt@kyunghyang.com>

 

 

 

무라야마 전 총리는 아흔살입니다. 아흔살의 열정이 놀라웠습니다. 그만큼 그의 시대인식이 급박하다는 거겠죠.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실제 무라야마 전 총리의 원고는 길었습니다.

아래 실어봅니다.

 

 

무라야마 담화와 위안부문제

 

 

2014822()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들어가며

 

1.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서

 

전후 50년째 해를, 사회당 위원장이었던 제가 자민당사회당신당 사키가케당(新黨さきがけ)[이하 자사키가케] 연립정권의 수반(首班)이 되어 맞이한 것은, 정말로 우연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역시 그것은 객관적인 요청일 것이다, 이 내각에서 무엇이 가능한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 가를 제 나름대로 생각하였습니다. 국내문제로는 피폭자 원호법(被爆者援護法)이나 미나마타병의 피해자 구제 문제, 아이누문화진흥법(アイヌ文化振興法) 등 지금까지의 국회 상황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많은 현안들을 자민당과 사회당의 연립정권이야 말로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수반 지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외교문제, 역사인식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19946월 총리가 되고 나서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등의 여러 국가를 방문하였는데, 이들 국가로부터 일본은 과거 전쟁으로 끼친 피해를 제대로 반성하고 있는가, 전쟁의 사후처리에 임하고 있는가, 또 다시 군사대국이 되는 일은 없는 것인가 등의 시선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는 미야자와(宮澤)내각 시절에 고노 담화가 발표되었지만 그 담화는 과거의 침략전쟁 및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인식과 연결되지 않은 상태였고 또한, 담화에 나타 난 사죄를 구체적으로 피해자에게 전달하는 조치를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이 진정으로 아시아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전후 50년 째 해에 과거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하여 제대로 반성을 표명하며, 과거를 매듭짓고 솔직하게 사과하며 부전(不戰)의 맹세를 새롭게 하고, 평화국가로서 나아갈 방침을 분명히 함으로써 주변국과 확실한 신뢰관계를 정착시키자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718일 시정방침 연설에서 일본의 침략 행위와 식민지 지배 등이 주변 나라의 많은 사람들에게 참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끼친 것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였고, 깊은 반성 위에 서서, 부전의 결의 하에 세계평화 창조에 힘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831일에 낸 총리 담화안에서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여 저의 생각을 피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수상 혼자만의 의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자사키가케 정권을 만들 때, 3당 합의의 공동정권구상에는 전후 50년을 계기로 하여 과거의 전쟁을 반성하고 미래의 평화에 대한 결의를 표명하는 국회결의의 채택을 목적으로 하는 내용이 들어 가 있었습니다. 원래 이것은 사회당과 신당 사키가게, 2당의 합의였습니다만, 자민당이 함께 연립정권을 만들자고 한 단계에서 2당 합의를 그대로 수용하여 3당 합의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합의에 대해서 국회 내에서는 반대의견도 많았으며, 수정에 수정이 거듭되어 결과적으로는 결석자도 많이 나와, 69일 간신히 중의원 회의에서 다수결로 채택되었습니다. 게다가 참의원 회의에서는 의제로 올라가지도 못하였습니다. 전후 50년 째 되던 해의 국회결의는 매우 애매하고 격조가 낮은 결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각의 결정에 기반을 둔 총리 담화를 내어 반성과 결의를 명확히 할 것을 결단한 것입니다. 물론 저의 제2차 내각에서도 각료 전원이 찬성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전원이 찬성하지 않으면 각의결정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로서는 담화를 낼 수 없으면 내각총사직을 한다는 결의를 굳혔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담화가 제안되자 찬반의 발언도 없이 내각은 전회(全會) 일치로 확인되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외무대신과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통산산업성대신,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자치대신 등이 강하게 지지해 준 것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담화에 나타난 일본정부의 자세에 대해서 과거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피해를 받은 나라들은 대체로 높은 평가를 해 주었습니다.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한국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두 분 모두에게서 이것으로 과거의 문제에 매듭을 짓고 새로운 기분으로 양국 관계를 구축해 나가자는 외교적 상황이 조성되었습니다.

 

일본 국내에서 무라야마 담화는 당연히 하시모토 수상, 오부치 케이조(小淵惠三) 수상을 비롯한 이후 총리들에게도 모두 계승되었습니다. 고이즈미(小泉)정권 때 교과서 문제와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참배로 인해 주변국들이 일본의 입장에 의심을 갖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역사 문제는 오로지 문장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이해하고 잊어버리지 않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도 2006년 처음 수상이 되었을 때에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표명하였지만 2012년 두 번째로 수상이 되자 ‘21세기에 적합한 미래지향적인 아베내각으로서 담화를 발표하고 싶다.’고 말하여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는 것인가라는 의혹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13년 봄이 되어서도 아베 수상은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거나 침략이라는 정의에 대해서 이것은 학계에서도 국제사회에서도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해도 좋다.’, ‘국가와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어느 쪽에서 보는 지에 따라 다른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라고 국회에서 말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호된 비판을 받았고, 미국에서도 비판을 받았습니다. 일본 안에서도 야당의원, 신문기자들이 필사적으로 수상의 진의를 추궁한 결과, 2013515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서는, 이미 관방장관에게 대답을 들은 것처럼 이른바 정권으로서는 전체로 이것을 이어 나간다는 것입니다.’라고 계승해 나갈 것을 표명하였습니다.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국가의 공식적인 역사인식이고 전 세계에 나타낸 국제공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재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를 부정한다면 이 세계에서 일본이라는 국가가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국의 수상이 된 사람은 이를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은 공직에 머무를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1993년 고노 담화에 대해서도 아베 수상의 태도는 잠시 불안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만 올해 314일에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이 담화는 관방장관의 담화이지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말한 대로 아베내각에서 그것을 재검증하는 것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라며 계승하는 것을 표명하였습니다. 고노 담화도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역사인식이고 이를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2. 위안부 문제와 아시아여성 기금에 대해서

 

제 내각의 또 하나의 과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고노 담화에 나타난 사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책을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1990년 이래, 한국의 피해자도 운동단체도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도록 국가가 법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여 피해자에게 국가가 보상해 주길 바란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야당 시절 일본사회당은 전후 보상 문제를 들어 정부 측에 피해자에 대한 국가보상을 요구해 왔습니다. 저도 제 내각의 관방장관이었던 이가라시 고조(五十嵐廣三)씨도 모두 그러한 의견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라야마(村山)정권은 자사키가케, 세 당의 연립정권입니다만, 선거에서 사회당이 승리하여 제1당이 되어 연립정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회당 70의석, 신당 사키가케 13의석, 자민당 223의석이 더 해져서, 중의원 다수파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제1당인 자민당의 승인이 없으면, 어떠한 정책도 취할 수 없는 정권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고노 담화를 발표한 고노씨는 외무대신이었기 때문에 노나카씨, 자민당의 정무조사회장 가토 고이치(加藤紘一)씨와 함께 저를 잘 도와주었지만 확실히 한계가 있었습니다. ·일 간 청구권 문제는 한일조약과 협정으로 해결이 끝났으므로 정부의 돈을 피해자 개인에게 줄 수 없다는 사고방식이 벽처럼 막아 서 있어 총리도 관방장관도 그것을 부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금을 만들어, 국민으로부터도 모금하고 정부의 돈도 넣어서 함께 피해자 개인에게 보상금[속죄금]을 보내드리자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하를 불문하고 정부의 돈을 직접 피해자에게 건네서는 안 된다기에 아시아여성기금의 최초는 국민모금으로부터 보상금을 보내드린 것에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고노 담화에 근거한 수상의 사과편지 그리고, 아시아여성기금 이사장의 편지, 모금에 참여한 국민의 사죄의 마음을 담은 편지 발췌문, 그러한 것들을 더해 보상금[속죄금] 200만 엔을 보낸 것입니다. 정부 자금에서 의료복지지원을 300만 엔 부담한 것은 정부의 사죄의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보상금은 한국에서 위문금, 위로금이라고 받아 들여져 강한 반발을 받았습니다.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도의적 책임을 인정한다고 말하는 것도 기만적이라고 일컬어졌던 같습니다. 총리의 사과편지가 보내졌다고 하는데도 어째서 보상금은 국민모금으로 보내졌는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겠지요.

 

결국 한국에서는 60인의 피해자가 받아 주실 뿐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수상의 사죄편지와 함께 피해자 한 분 한 분에게 500만 엔이 보내졌습니다. 300만 엔은 정부로부터, 200만 엔은 국민모금으로부터 보내진 것입니다. 60인은 정부에 등록된 전체 피해자 수의 3분의 1 정도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기금으로 피해자를 위한 사업을 완료하였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당시 일본정부는 61인에 대한 사업을 실시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만 와다(和田) 전무이사의 설명을 들은 바로는 기금 측에서는 61인에게 송금하였으나 그 가운데 한 분으로부터 전달되지 않았다고 하는 항의가 있어, 여러 가지로 조사하였습니다만 기금을 해산할 때까지 문제를 해명할 수 없었다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신청을 하였음에도 전달하지 못한 것은 매우 죄송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관료도 기금관계자도 국민도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서 죄송하다고 생각하며, 사죄와 보상[속죄]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열심히 노력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점은 이해받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아시아여성기금으로부터 보상[속죄]사업의 대상자이신 60인의 피해자 할머니에 대해서는 한국정부, 한국국민이 품어주시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재 생존해 계시는 50인의 피해자를 위해 그 분들이 바라고 있는 해결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서 해결안을 모아야만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시아여성기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해결안이 필요합니다.

 

역시 한·일정상회담을 정식으로 열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협력해서 생각하자라고 합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본만이 생각해서 안을 내라고 하는 것은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노 담화는 한·일 협력으로 탄생한 역사인식이며, 일본의 사죄입니다. 그것에 근거하여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면 그것도 한·일 협력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정상회담에서 해결한다고 하는 합의를 얻을 수 있다면 한국, 일본에서 그리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논의를 펴서 어떠한 해결안이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노다(野田)내각 당시 사이토 쓰요시(齊藤勁) 관방부장관(官房副長官)의 노력은 알고 있습니다. 그 상대가 합의한 이동관(李東官)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하였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해결은 그 마음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보인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가장 오래되고도 깊은 관계로 맺어 진 이웃나라입니다. 그 두 나라가 지금처럼 대립적인 관계에 빠진 것은 이상합니다. 화해로 나아가 협력적인 관계를 재구축 합시다. 바른 역사인식을 공유하며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나서는 것은 바로 그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무라야마 담화는 무엇일까요?

 

전문을 한번 살펴보세요.

 

무라야마 총리 담화(전문)

 

지난 대전이 종말을 고한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시금 그 전쟁으로 인하여 희생되신 내외의 많은 분들을 상기하면 만감에 가슴이 저미는 바입니다.

 

패전 후 일본은 불타버린 폐허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오늘날의 평화와 번영을 구축해 왔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자랑이며 그것을 위하여 기울인 국민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영지(英知)와 꾸준한 노력에 대하여 저는 진심으로 경의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내진 지원과 협력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또 아시아·태평양 근린제국, 미국, 구주제국과의 사이에 오늘날과 같은 우호관계를 구축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일본은 평화롭고 풍요로워졌지만 우리는 자칫하면 이 평화의 존귀함과 고마움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근린제국의 국민들과 협조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확고히 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 여러 나라와의 사이에 깊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를 키워나가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특히 근현대에 있어서 일본과 근린 아시아제국과의 관계에 관한 역사 연구를 지원하고 각 국과의 교류를 비약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하여 이 두 가지를 축으로 하는 평화우호 교류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전후 처리문제에 대하여도 일본과 이들 나라와의 신뢰관계를 한층 강화하기 위하여 저는 앞으로도 성실히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지금 전후 50주년이라는 길목에 이르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에의 길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패전의 날로부터 50주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나라는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독선적인 내셔널리즘을 배척하고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협조를 촉진하고 그것을 통하여 평화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널리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나라는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핵무기의 궁극적인 폐기를 지향하여 핵확산금지체제의 강화 등 국제적인 군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간요(肝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속죄이며 희생되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는 길이 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의지하는 데는 신의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 기념할만한 때에 즈음하여 신의를 시책의 근간으로 삼을 것을 내외에 표명하며 저의 다짐의 말씀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1995815

내각총리대신 村山富市

 

 

 

일본에도 아베 총리 같은 인물들 말고

 

 

무라야마 전 총리, 와다 하루키 교수 등 양심적인 지식인들, 민주주의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할 때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요.

 

 

우울한 마음으로 들었던 간담회, 그래도 이렇게 정리해봅니다.

 

아 참고로 경향신문 미디어기획팀의 탁월한 콘텐츠 '우경본색'도 참고로 보세요.

일본 우경화의 역사가 하나의 그림으로 잡힐 겁니다.

 

http://news.khan.co.kr/kh_storytelling/storytelling_view.html?art_id=201407160000001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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