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야마 전 일본 총리가 22일 동북아역사재단 간담회에 참석했습니다.

마침 그가 동북아역사재단 간담회에서 발언하던 날

일본 자민당은 고노 담화를 대체할 새로운 담화를 내년에 발표할 것을 정부에 공식 요청하기로 했는데요. 

자민당 정무조사회는 종전 7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2015년에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새로운 관방장관 담화를 발표할 것을 정부에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고노담화가 무력화되는 걸까요.

 

무라야마 전 총리는 종전 70주년을 맞춰 무라야마 담화를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간담회 내내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한다면 일본이라는 국가가 살아갈 수 없다”

“무라야마 담화는 전 세계에 나타낸 국제공약이 됐으므로 재검증은 불가능하다”

“일본 총리는 이를 지켜야만 한다. 이것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은 공직에 머무를 수 없을 것”

이라고 했습니다.

발언 내용이 누굴 가리키는지 보이죠?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무라야마 전 총리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겠다고 했을 땐

타국 국가연구기관까지 오는 무라야마 전 총리가 대단해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짧게 써야 했으니....

 

무라야마 전 일본 총리 “한·일 정상회담 열어 위안부 문제 해결해야”

 

ㆍ자민당, 정부에 새 담화 요구키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90·사진)가 “한·일 정상회담을 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22일 오전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무라야마 담화와 위안부 문제’라는 기조 발제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금 일본 혼자 생각해서 안을 내려고 하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 문제는 역시 정상끼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지금까지 경위도 다 파악하면서 솔직하게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자민당·사회당·신당 사키가케당 연립정권의 총리로 재임하던 1995년 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식민지배와 침략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의 무라야마 담화를 내놓았다.

그는 아베 현 내각이 무라야마 담화를 무력화하려는 데 대해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한다면 일본이라는 국가가 살아갈 수 없다”며 “무라야마 담화는 전 세계에 나타낸 국제공약이 됐으므로 재검증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를 가리켜 “일본 총리는 이를 지켜야만 한다. 이것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은 공직에 머무를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1993년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 역사인식이고 이를 부정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자신이 총리로 재임할 당시 설립된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피해자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제1당인 자민당의 승인 없이 불가능한 일이어서 국민 모금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또 기금을 통한 보상금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민간 차원에서 조성돼 한국에서 반발을 산 데 대해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한편 일본의 집권 자민당은 고노 담화를 대체할 새로운 담화를 내년에 발표할 것을 정부에 공식 요청하기로 했다. 자민당 정무조사회는 지난 21일 종전 7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2015년에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새로운 관방장관 담화를 발표할 것을 정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정무조사회는 최근 아사히신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과거 기사를 일부 취소한 것, 올 6월 ‘고노 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일 정부 간 문안 조정이 있었다’는 정부의 발표와 관련해 대응책을 논의하겠다며 이번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아사히신문 관계자를 국회로 불러서 따져야 한다’거나 ‘고노 담화 작성과정에 대한 검증 결과를 해외에 확실하게 알려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쏟아졌다고 NHK 등은 보도했다.

<임아영 기자·도쿄 | 윤희일 특파원 layknt@kyunghyang.com>

 

 

 

무라야마 전 총리는 아흔살입니다. 아흔살의 열정이 놀라웠습니다. 그만큼 그의 시대인식이 급박하다는 거겠죠.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실제 무라야마 전 총리의 원고는 길었습니다.

아래 실어봅니다.

 

 

무라야마 담화와 위안부문제

 

 

2014822()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들어가며

 

1.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서

 

전후 50년째 해를, 사회당 위원장이었던 제가 자민당사회당신당 사키가케당(新黨さきがけ)[이하 자사키가케] 연립정권의 수반(首班)이 되어 맞이한 것은, 정말로 우연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역시 그것은 객관적인 요청일 것이다, 이 내각에서 무엇이 가능한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 가를 제 나름대로 생각하였습니다. 국내문제로는 피폭자 원호법(被爆者援護法)이나 미나마타병의 피해자 구제 문제, 아이누문화진흥법(アイヌ文化振興法) 등 지금까지의 국회 상황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많은 현안들을 자민당과 사회당의 연립정권이야 말로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수반 지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외교문제, 역사인식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19946월 총리가 되고 나서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등의 여러 국가를 방문하였는데, 이들 국가로부터 일본은 과거 전쟁으로 끼친 피해를 제대로 반성하고 있는가, 전쟁의 사후처리에 임하고 있는가, 또 다시 군사대국이 되는 일은 없는 것인가 등의 시선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는 미야자와(宮澤)내각 시절에 고노 담화가 발표되었지만 그 담화는 과거의 침략전쟁 및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인식과 연결되지 않은 상태였고 또한, 담화에 나타 난 사죄를 구체적으로 피해자에게 전달하는 조치를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이 진정으로 아시아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전후 50년 째 해에 과거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하여 제대로 반성을 표명하며, 과거를 매듭짓고 솔직하게 사과하며 부전(不戰)의 맹세를 새롭게 하고, 평화국가로서 나아갈 방침을 분명히 함으로써 주변국과 확실한 신뢰관계를 정착시키자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718일 시정방침 연설에서 일본의 침략 행위와 식민지 지배 등이 주변 나라의 많은 사람들에게 참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끼친 것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였고, 깊은 반성 위에 서서, 부전의 결의 하에 세계평화 창조에 힘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831일에 낸 총리 담화안에서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여 저의 생각을 피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수상 혼자만의 의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자사키가케 정권을 만들 때, 3당 합의의 공동정권구상에는 전후 50년을 계기로 하여 과거의 전쟁을 반성하고 미래의 평화에 대한 결의를 표명하는 국회결의의 채택을 목적으로 하는 내용이 들어 가 있었습니다. 원래 이것은 사회당과 신당 사키가게, 2당의 합의였습니다만, 자민당이 함께 연립정권을 만들자고 한 단계에서 2당 합의를 그대로 수용하여 3당 합의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합의에 대해서 국회 내에서는 반대의견도 많았으며, 수정에 수정이 거듭되어 결과적으로는 결석자도 많이 나와, 69일 간신히 중의원 회의에서 다수결로 채택되었습니다. 게다가 참의원 회의에서는 의제로 올라가지도 못하였습니다. 전후 50년 째 되던 해의 국회결의는 매우 애매하고 격조가 낮은 결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각의 결정에 기반을 둔 총리 담화를 내어 반성과 결의를 명확히 할 것을 결단한 것입니다. 물론 저의 제2차 내각에서도 각료 전원이 찬성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전원이 찬성하지 않으면 각의결정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로서는 담화를 낼 수 없으면 내각총사직을 한다는 결의를 굳혔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담화가 제안되자 찬반의 발언도 없이 내각은 전회(全會) 일치로 확인되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외무대신과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통산산업성대신,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자치대신 등이 강하게 지지해 준 것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담화에 나타난 일본정부의 자세에 대해서 과거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피해를 받은 나라들은 대체로 높은 평가를 해 주었습니다.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한국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두 분 모두에게서 이것으로 과거의 문제에 매듭을 짓고 새로운 기분으로 양국 관계를 구축해 나가자는 외교적 상황이 조성되었습니다.

 

일본 국내에서 무라야마 담화는 당연히 하시모토 수상, 오부치 케이조(小淵惠三) 수상을 비롯한 이후 총리들에게도 모두 계승되었습니다. 고이즈미(小泉)정권 때 교과서 문제와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참배로 인해 주변국들이 일본의 입장에 의심을 갖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역사 문제는 오로지 문장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이해하고 잊어버리지 않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도 2006년 처음 수상이 되었을 때에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표명하였지만 2012년 두 번째로 수상이 되자 ‘21세기에 적합한 미래지향적인 아베내각으로서 담화를 발표하고 싶다.’고 말하여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는 것인가라는 의혹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13년 봄이 되어서도 아베 수상은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거나 침략이라는 정의에 대해서 이것은 학계에서도 국제사회에서도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해도 좋다.’, ‘국가와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어느 쪽에서 보는 지에 따라 다른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라고 국회에서 말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호된 비판을 받았고, 미국에서도 비판을 받았습니다. 일본 안에서도 야당의원, 신문기자들이 필사적으로 수상의 진의를 추궁한 결과, 2013515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서는, 이미 관방장관에게 대답을 들은 것처럼 이른바 정권으로서는 전체로 이것을 이어 나간다는 것입니다.’라고 계승해 나갈 것을 표명하였습니다.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국가의 공식적인 역사인식이고 전 세계에 나타낸 국제공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재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를 부정한다면 이 세계에서 일본이라는 국가가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국의 수상이 된 사람은 이를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은 공직에 머무를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1993년 고노 담화에 대해서도 아베 수상의 태도는 잠시 불안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만 올해 314일에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이 담화는 관방장관의 담화이지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말한 대로 아베내각에서 그것을 재검증하는 것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라며 계승하는 것을 표명하였습니다. 고노 담화도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역사인식이고 이를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2. 위안부 문제와 아시아여성 기금에 대해서

 

제 내각의 또 하나의 과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고노 담화에 나타난 사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책을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1990년 이래, 한국의 피해자도 운동단체도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도록 국가가 법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여 피해자에게 국가가 보상해 주길 바란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야당 시절 일본사회당은 전후 보상 문제를 들어 정부 측에 피해자에 대한 국가보상을 요구해 왔습니다. 저도 제 내각의 관방장관이었던 이가라시 고조(五十嵐廣三)씨도 모두 그러한 의견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라야마(村山)정권은 자사키가케, 세 당의 연립정권입니다만, 선거에서 사회당이 승리하여 제1당이 되어 연립정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회당 70의석, 신당 사키가케 13의석, 자민당 223의석이 더 해져서, 중의원 다수파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제1당인 자민당의 승인이 없으면, 어떠한 정책도 취할 수 없는 정권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고노 담화를 발표한 고노씨는 외무대신이었기 때문에 노나카씨, 자민당의 정무조사회장 가토 고이치(加藤紘一)씨와 함께 저를 잘 도와주었지만 확실히 한계가 있었습니다. ·일 간 청구권 문제는 한일조약과 협정으로 해결이 끝났으므로 정부의 돈을 피해자 개인에게 줄 수 없다는 사고방식이 벽처럼 막아 서 있어 총리도 관방장관도 그것을 부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금을 만들어, 국민으로부터도 모금하고 정부의 돈도 넣어서 함께 피해자 개인에게 보상금[속죄금]을 보내드리자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하를 불문하고 정부의 돈을 직접 피해자에게 건네서는 안 된다기에 아시아여성기금의 최초는 국민모금으로부터 보상금을 보내드린 것에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고노 담화에 근거한 수상의 사과편지 그리고, 아시아여성기금 이사장의 편지, 모금에 참여한 국민의 사죄의 마음을 담은 편지 발췌문, 그러한 것들을 더해 보상금[속죄금] 200만 엔을 보낸 것입니다. 정부 자금에서 의료복지지원을 300만 엔 부담한 것은 정부의 사죄의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보상금은 한국에서 위문금, 위로금이라고 받아 들여져 강한 반발을 받았습니다.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도의적 책임을 인정한다고 말하는 것도 기만적이라고 일컬어졌던 같습니다. 총리의 사과편지가 보내졌다고 하는데도 어째서 보상금은 국민모금으로 보내졌는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겠지요.

 

결국 한국에서는 60인의 피해자가 받아 주실 뿐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수상의 사죄편지와 함께 피해자 한 분 한 분에게 500만 엔이 보내졌습니다. 300만 엔은 정부로부터, 200만 엔은 국민모금으로부터 보내진 것입니다. 60인은 정부에 등록된 전체 피해자 수의 3분의 1 정도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기금으로 피해자를 위한 사업을 완료하였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당시 일본정부는 61인에 대한 사업을 실시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만 와다(和田) 전무이사의 설명을 들은 바로는 기금 측에서는 61인에게 송금하였으나 그 가운데 한 분으로부터 전달되지 않았다고 하는 항의가 있어, 여러 가지로 조사하였습니다만 기금을 해산할 때까지 문제를 해명할 수 없었다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신청을 하였음에도 전달하지 못한 것은 매우 죄송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관료도 기금관계자도 국민도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서 죄송하다고 생각하며, 사죄와 보상[속죄]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열심히 노력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점은 이해받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아시아여성기금으로부터 보상[속죄]사업의 대상자이신 60인의 피해자 할머니에 대해서는 한국정부, 한국국민이 품어주시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재 생존해 계시는 50인의 피해자를 위해 그 분들이 바라고 있는 해결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서 해결안을 모아야만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시아여성기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해결안이 필요합니다.

 

역시 한·일정상회담을 정식으로 열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협력해서 생각하자라고 합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본만이 생각해서 안을 내라고 하는 것은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노 담화는 한·일 협력으로 탄생한 역사인식이며, 일본의 사죄입니다. 그것에 근거하여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면 그것도 한·일 협력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정상회담에서 해결한다고 하는 합의를 얻을 수 있다면 한국, 일본에서 그리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논의를 펴서 어떠한 해결안이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노다(野田)내각 당시 사이토 쓰요시(齊藤勁) 관방부장관(官房副長官)의 노력은 알고 있습니다. 그 상대가 합의한 이동관(李東官)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하였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해결은 그 마음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보인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가장 오래되고도 깊은 관계로 맺어 진 이웃나라입니다. 그 두 나라가 지금처럼 대립적인 관계에 빠진 것은 이상합니다. 화해로 나아가 협력적인 관계를 재구축 합시다. 바른 역사인식을 공유하며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나서는 것은 바로 그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무라야마 담화는 무엇일까요?

 

전문을 한번 살펴보세요.

 

무라야마 총리 담화(전문)

 

지난 대전이 종말을 고한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시금 그 전쟁으로 인하여 희생되신 내외의 많은 분들을 상기하면 만감에 가슴이 저미는 바입니다.

 

패전 후 일본은 불타버린 폐허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오늘날의 평화와 번영을 구축해 왔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자랑이며 그것을 위하여 기울인 국민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영지(英知)와 꾸준한 노력에 대하여 저는 진심으로 경의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내진 지원과 협력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또 아시아·태평양 근린제국, 미국, 구주제국과의 사이에 오늘날과 같은 우호관계를 구축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일본은 평화롭고 풍요로워졌지만 우리는 자칫하면 이 평화의 존귀함과 고마움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근린제국의 국민들과 협조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확고히 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 여러 나라와의 사이에 깊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를 키워나가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특히 근현대에 있어서 일본과 근린 아시아제국과의 관계에 관한 역사 연구를 지원하고 각 국과의 교류를 비약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하여 이 두 가지를 축으로 하는 평화우호 교류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전후 처리문제에 대하여도 일본과 이들 나라와의 신뢰관계를 한층 강화하기 위하여 저는 앞으로도 성실히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지금 전후 50주년이라는 길목에 이르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에의 길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패전의 날로부터 50주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나라는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독선적인 내셔널리즘을 배척하고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협조를 촉진하고 그것을 통하여 평화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널리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나라는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핵무기의 궁극적인 폐기를 지향하여 핵확산금지체제의 강화 등 국제적인 군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간요(肝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속죄이며 희생되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는 길이 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의지하는 데는 신의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 기념할만한 때에 즈음하여 신의를 시책의 근간으로 삼을 것을 내외에 표명하며 저의 다짐의 말씀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1995815

내각총리대신 村山富市

 

 

 

일본에도 아베 총리 같은 인물들 말고

 

 

무라야마 전 총리, 와다 하루키 교수 등 양심적인 지식인들, 민주주의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할 때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요.

 

 

우울한 마음으로 들었던 간담회, 그래도 이렇게 정리해봅니다.

 

아 참고로 경향신문 미디어기획팀의 탁월한 콘텐츠 '우경본색'도 참고로 보세요.

일본 우경화의 역사가 하나의 그림으로 잡힐 겁니다.

 

http://news.khan.co.kr/kh_storytelling/storytelling_view.html?art_id=201407160000001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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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17일 일정을 마쳤습니다.

이제 내일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면 바티칸으로 돌아가시겠네요.

 

4박5일 동안 교황은 우리 사회에 많은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연설하고 강론한 교황,

쉽지는 깊이 있는 그의 메시지에서 우리 사회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선 저부터요.

 

이 포스팅에서는 교황이 방한한 후 남긴 메시지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8월 14일 서울공항 환영식>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8월 14일 청와대 연설>

“한국의 평화 추구는 이 지역 전체와 전쟁에 지친 전세계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우리 마음에 절실한 대의” “평화의 부재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온 땅, 한국. 저는 한반도의 화해와 안정을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치하하고 격려할 뿐”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화해와 연대와 문화를 증진시켜 불신과 증오의 장벽을 허물어가는 끝없는 도전”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한다” “정의는 상호 존중과 이해와 화해의 토대를 건설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유익한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가겠다는 의지를 요구한다”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계속 강화되기를 희망하며 ‘연대의 세계화’에서도 앞장서주기를 바란다

 

 

<8월 14일 한국 주교단 연설>

 

“한국 교회가 번영되었으나 또한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서 일한다” “사목자들은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취하려하는 유혹을 받는다” “십자가가 이 세상의 지혜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잃어 헛되게 된다면 우리는 불행할 것”

 

“여러분은 평신도들에게서 시작돼 여러 세대에 걸친 그들의 충실성과 끊임없는 노고로 크게 자라난, 매우 비범한 전통의 상속자들”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이벽과 첫 세대의 양반 원로들을 감동시켰고 한국 교회는 바로 그 메시지에 자신을 비추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추구해야 한다” “순교자들과 지난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기억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이상화되거나 ‘승리에 도취’된 기억이 되어서는 안된다”

 

“물질적 번영 속에서도 어떤 다른 것, 어떤 더 큰 것, 어떤 진정하고 충만한 것을 찾고 있는 세상에 희망을 선포해야 한다” “희망의 지킴이가 된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특히 난민들과 이민들, 사회의 변두리에서 사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행하는 것”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사업적인 차원으로 축소시키고 모든 사람은 반드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자신의 인격과 창의력과 문화를 존엄하게 표현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라는 사도 시대의 이상은 여러분 나라의 첫 신앙공동체에서 그 생생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빈다” “생명이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상을 경시하고,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빈다”

 

“희망은 외적으로는 부유해도 내적으로 쓰라린 고통과 허무를 겪는 그런 사회 속에서 암처럼 자라나는 절망의 정신에 대한 해독제” “오늘날 우리 곁에 있는 이런 젊은이들이 기쁨과 확신을 찾고, 결코 희망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란다”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 삼종기도>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거룩한 미사를 마치며,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늘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를 바라봅니다. 성모님께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 그리고 희망들을 봉헌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인 대재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또한 성모님께서, 우리 중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 특별히 병든 이들과 가난한 이들, 존엄한 인간에 어울리는 일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을 자비로이 굽어보시도록 간청합니다.


끝으로, 대한민국의 해방을 기념하는 광복절을 맞아, 우리는 이 고상한 나라와 그 국민을 지켜 주시도록 성모 마리아께 간구합니다. 또한 아시아 전역에서 이곳 대전교구에 모여온 모든 젊은이들을 성모님의 손길에 맡깁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복된 계획에 따라 평화로운 세상의 새벽을 알리는, 기쁨에 넘친 전령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진 공동취재단)

 

<8월 15일 아시아청년들과의 만남/솔뫼성지>

 

“교회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뤄 전 인류의 일치를 위한 씨앗이 돼야 한다”


“여러분은 우리 모두가 평화와 우정을 나누며 사는 세상, 장벽을 극복하고 분열을 치유하며 폭력과 편견을 거부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국가와 민족이 일치를 이루도록, 다양성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뤄 더 풍요롭게 하는 일치를 이루도록 부름 받고 있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회의 빈부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많은 친구와 동료들이 엄청난 물질적 번영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빈곤, 외로움, 남모를 절망감에 고통 받고 있다” “이러한 세상에 하느님의 자리는 더 이상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정신적인 사막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의 영은 모든 인간의 마음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가장 절망적인 상황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 “바로 이것이 학교, 직장, 가정, 지역 공동체 안에서 여러분이 이 시대를 함꼐 살아가는 이들과 나눠야 할 메시지”

 

 

 

<8월 16일 124위 시복식 강론>

 

“막대한 부요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들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한국의 순교자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그들을 멀어지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즉 재산과 땅, 특권과 명예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했다” “순교자들은 세례 받은 모든 이가 동등한 존엄성을 지녔음을 받아들였고, 당대의 엄격한 사회 구조에 맞서는 형제적 삶을 이루도록 인도했다” “그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계명을 분리하기를 거부했다”

 

“오늘날 우리는 매우 자주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의해 도전받음을 체험한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우리의 신앙을 양보해 타협하고, 복음의 근원적 요구를 희석시키며, 시대정신에 순응하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이러한 속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들에게 뻗치는 도움의 손길로써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요구하시며, 그렇게 계속 우리를 부르고 계시다” “순교자들의 유산은 선의를 지닌 모든 형제자매들이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 서로 화합하여 일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한민족,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통해 이 땅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들어오게 되었다. 신앙은 지적 호기심과 종교적 진리의 탐구를 통해 촉발됐다” “더 나아가 그들은 전통적 사회적 차별과 상관없이,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던 초대 교회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의 신자 공동체들 안에서도 많은 열매를 맺었다”

 

 

(사진 공동취재단)

 

<8월 16일 수도자들과의 만남/꽃동네 사랑의 연수원>

 

“청빈 서원을 하지만 부자로 살아가는 봉헌된 사람들(수도자)의 위선이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해친다” “청빈은 봉헌 생활(수도생활)을 지켜 주는 방벽이자 성장하도록 돕고 올바른 길로 이끄는 어머니” “또한 순전히 실용적이고 세속적인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려는 유혹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생각해 보라” “이는 우리의 희망을 인간적인 수단에만 두도록 이끌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셨고 우리에게 가르치신 청빈의 증거를 파괴한다”

 

“우리가 수덕 생활에서 많은 진보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용서와 치유를 받아야 하는 우리의 근본적인 필요 그 자체가 가난의 한 형태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의 생활양식에서 청빈의 구체적 표현을 찾아내야 하며, 특히 여러분의 주의를 흩어버릴 수 있고 추문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 

 

“봉헌 생활이 교회와 세상을 위한 소중한 선물임을 보여 주기 위하여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매우 겸손하게 하며, 자신만을 위하여 봉헌 생활을 간직하지 말고 사랑받는 이 나라 곳곳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가 봉헌 생활을 나누라” “(수도생활에) 지름길은 없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온전히 바라신다. 이는 우리가 언제나 더욱더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또 ‘우리 자신에게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가장 나약하게 느껴지는 때에 우리는, 우리가 부유해지도록 가난해지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여러분이 대표하는 카리스마(수도회 정신)와 사도직의 커다란 다양성으로 한국과 그 너머에 있는 교회의 삶이 놀랍도록 풍요로워졌다” “이 사랑 받는 나라에서 하느님 나라 건설에 헌신하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8월 16일 평신도들과의 만남/꽃동네 사랑의 영성원>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고 좋은 일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자선 사업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으로 확대돼야 한다” “저는 여러분이 인간 증진이라는 분야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시도록 격려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저마다 품위 있게 일용할 양식을 얻고 자기 가정을 돌보는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교리 교사와 스승으로서 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형태로 한국 교회의 생활과 사명에 탁월한 공헌을 해 왔다” “가정생활이 큰 위기를 겪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혼인한 부부와 가정이 교회와 사회생활에서 그들의 고유한 사명을 완수하도록 도와주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 “가정은 사회의 기초 단위이며, 어린이들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선성과 청렴과 정의의 횃불이 되도록 인간적, 정신적, 도덕적 가치를 배우는 첫 학교”

 

“한국 교회는 사제의 수효가 부족하고 모진 박해의 위협이 있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교회의 친교 안에서 대대로 보존해 온 평신도들의 신앙을 물려받았다” “오늘 시복된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은 그 역사의 감동적인 첫 장을 보여준다” “이 값진 유산은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과 봉사의 활동 안에 줄곧 살아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8월 17일 아시아주교들과의 만남/해미성지>

 

“공감하고 진지하게 수용하는 자세로, 상대방에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 수 없다면 진정한 대화란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의식하고 다른 이와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대화의 출발점” “대화는 아시아 교회 사명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많은 다양한 문화가 생겨난 이 광활한 대륙에서 교회는 유연성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대화와 열린 마음으로 복음을 증언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다른 이들, 다른 문화와 대화를 시도할 때 출발점과 근본 기준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정체성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우리의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과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세속 정신에 유혹을 받기 때문에 정체성을 확립하고 표현한다는 것이 언제나 쉬운 일만은 아니다” “진정한 대화는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진정한 만남을 이끌어 낸다” “다른 이들의 지혜로 우리 자신이 풍성해지며 마음을 열고 다른 이들과 함께 더 큰 이해와 우정, 연대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8월 17일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해미읍성>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성덕의 아름다움과 복음의 기쁨에 대한 우리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죄와 유혹, 그러한 압력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잠들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다”

“아시아에 살고 있는 젊은이로서, 이 위대한 대륙의 아들딸로서,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사회생활에 온전히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 신앙의 지혜를 불어넣으라” “여러분의 주교님들과 신부님들과 함께, 더 거룩하고 더 선교적이고 겸손한 교회, 또한 가난한 이들, 외로운 이들, 아픈 이들, 소외된 이들을 찾아 섬기는 가운데 하느님을 경배하고 사랑하는 하나인 교회를 일으켜 세우며 올 한해를 보내라”

 

“여러분의 그리스도인 생활에서도 외국인과 궁핍하고 가난한 사람과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멀리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기회들이 많이 있을 것” “그러나 이들은 복음에 나오는 여인처럼 주님께 도와달라는 절규를 되풀이하고 있는 사람들” “가나안 여인의 간청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환영 그리고 우정을 찾는 모든 이들의 부르짖음이며, 익명의 도시들 속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외침이고, 여러분 또래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외치는 절규이며,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죽음과 박해의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순교자들의 기도”

 

“마치 곤궁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주님과 더 가까이 사는 데 방해가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도움을 간청하는 사람들을 밀쳐 내서는 안 된다. 도움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간청에 연민과 자비와 사랑으로 응답해 주시는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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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취재단)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받은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을 왼쪽 가슴 위에 달고 있습니다.

 

뭔가 뭉클하죠.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전에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받은 리본이죠.

 

교황은 미사 전 제의실 앞에서 10명을 만나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으며

고개를 여러번 끄덕였다고 하네요.

 

 

 

 

교황은 14일 서울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식 환영식에 나온 4명의 유가족과 손을 맞잡고 한 어머니와 악수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죠.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

 

 

15일 미사에는 '삼종기도'를 드리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거룩한 미사를 마치며,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늘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를 바라봅니다. 성모님께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 그리고 희망들을 봉헌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인 대재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또한 성모님께서, 우리 중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 특별히 병든 이들과 가난한 이들, 존엄한 인간에 어울리는 일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을 자비로이 굽어보시도록 간청합니다.


끝으로, 대한민국의 해방을 기념하는 광복절을 맞아, 우리는 이 고상한 나라와 그 국민을 지켜 주시도록 성모 마리아께 간구합니다. 또한 아시아 전역에서 이곳 대전교구에 모여온 모든 젊은이들을 성모님의 손길에 맡깁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복된 계획에 따라 평화로운 세상의 새벽을 알리는, 기쁨에 넘친 전령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황이 이렇게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메시지를 발표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입니다.

 

4박5일 동안 4차례나 만나게 되는데요.

 

 

 

교황은 이미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에도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한 적이 있죠.

 

 

4월 17일 "이번 비극을 당한 모든 이를 위해 하느님의 위로와 평화의 은총을 간절히 바란다"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을 통해)

 

 

4월 19일 "한국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기도에 여러분도 동참해주시기 바란다"(트위터)

 

 

 

세월호 유가족들은 오늘 교황에게 십자가를 선물했습니다.


‘세월호 십자가’로 알려진 순례단의 십자가는 미리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에게 전달됐습니다.

 

다만 진도 팽목항에서 받아온 바닷물은 경기장에 반입이 금지된 물품이라

유족 스스로 교황에게 전달하는 것을 취소했다는데요.

 

십자가를 전달받은 유 주교는 십자가를 월드컵경기장에 마련된 제의실에 미리 가져다 놓았고

교황은 이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가시겠다고 했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전달한 ‘세월호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갈 예정이다.

15일 오전 교황은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미사 직전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 2명과 가족 8명 등 10명을 별도 면담했다. 이에 앞서 십자가를 메고 경기 안산에서 출발, 전남 진도 팽목항을 거쳐 대전까지 38일간 행진한 도보순례단이 미리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에게 이들이 가져온 십자가를 전달했다.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는 “교황이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가겠다고 했다”며 “십자가를 가져가는 데 필요한 절차는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담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사 가족들은 십자가 외에도 노란 리본과 팔찌, 참사 희생자들의 사진이 담긴 앨범을 교황에게 직접 전달했다. 이날 교황은 노란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미사를 집전했다.

이날 미사가 끝난 직후 열린 브리핑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김응기군 아버지 김학일씨는 “교황에게 ‘300명이 영혼이 십자가와 함께 있다. 교황이 미사에서 억울한 영혼과 함께 집전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고, 교황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교황은 미사 중 삼종기도를 하면서 “우리는 특별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해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인 대재난으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고 말했다.

 

 

 

(이 십자가입니다. 연합뉴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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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드디어 방한했습니다.

종교 담당으로 교황 방한을 열렬히 기다렸던(?) 전

여러 일정 중 서울공항 환영식 취재 풀을 맡게 됐고

오늘 새벽부터 서울공항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교황님을 뵙기엔 너무 먼 거리더군요. ㅎㅎ

근접 취재는 청와대를 담당하는 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대통령이 영접하기 위해 나왔기 때문이죠)

 

그래도 멀리서 세월호 유가족 앞에 서서 가슴에 손을 얹는 교황의 모습은 확실하게 보였습니다.

그 순간 묘한 뭉클함이 솟아오르더군요.

 

그리고 환영식 전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눈물 흘리는 한 어머니의 모습에

저도 너무 마음 아팠습니다.

 

교황의 방한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절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의 한국 방문이 그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갈등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그래서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전부 서울공항에서의 사진. 마지막은 롯데호텔 메인프레스센터 사진.)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 방한준비위 홈페이지)

 

 

교황은 오후에 청와대에서 공식 환영식을 열고

교황은 연설을 했습니다. 아래 전문.

 

역시 '평화의 메시지'네요.

 

 

대통령님,
존경하는 정부 공직자들과 외교관 여러분,
친애하는 벗들이여,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에 오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 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게 되어서, 또 무엇보다 한국의 국민들과 그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의 아름다움을 접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이 민족의 유산은 오랜 세월 폭력과 박해와 전쟁의 시련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대낮의 열기와 한밤의 어둠은, 정의와 평화와 일치를 향한 불멸의 희망을 품고 있는 아침의 고요함에 언제나 자리를 내어 주었습니다. 희망은 얼마나 위대한 선물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희망하는 이 목표들을, 한국 국민만이 아니라 모든 지역과 세계를 위해, 결코 좌절하지 말고 추구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따뜻한 환영에 감사를 드립니다. 대통령님과 정부 요인들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외교관 여러분에게, 국가 공직자들과 군 관계자들에게 그리고 저의 방한을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환대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덕분에 금방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저의 한국 방문은 제6차 아시아 청년 대회를 계기로 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이 대회는 이 광대한 아시아 대륙에서 모인 가톨릭 청년들이 그들의 공통 신앙을 경축하는 자리입니다. 저는 또한 이번 방한 중에 그리스도 신앙을 위하여 순교한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 품에 올릴 것입니다. 이 두 행사는 서로를 보완합니다. 한국의 문화는 연장자들의 고유한 품위와 지혜를 잘 이해하며, 사회 안에서 그분들을 존경합니다. 우리 가톨릭 교우들은 신앙 때문에 순교한 선조들을 공경합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이 믿고 따른 진리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온전히 하느님과 이웃의 선익을 위하여 사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지혜롭고 위대한 민족은 선조들의 전통을 소중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젊은이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젊은이들은 과거의 전통과 유산을 물려받아 현재의 도전들에 적용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청년 대회와 같이 젊은이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는, 우리 모두가 그들의 희망과 관심사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들을 다음 세대에 얼마나 잘 전해 주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세상과 사회를 그들에게 물려주려고 준비하고 있는지 성찰하라는 도전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평화라는 선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성찰하는 것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화의 부재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온 이 땅 한국에서는, 이러한 호소가 더욱 절실하게 들릴 것입니다. 저는 한반도의 화해와 안정을 위하여 기울여 온 노력을 치하하고 격려할 뿐입니다. 그러한 노력만이 지속적인 평화로 가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평화 추구는 이 지역 전체와 전쟁에 지친 전 세계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우리 마음에 절실한 대의입니다.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특별히 여러분 중에서 인내를 요구하는 외교 활동에 종사하여 인류 가족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더 큰 도전입니다. 이는 화해와 연대의 문화를 증진시켜 불신과 증오의 장벽을 허물어 가는 끝없는 도전입니다. 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며,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이사 32,17 참조)입니다. 그리고 정의는 하나의 덕목으로서 자제와 관용의 수양을 요구합니다.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합니다. 정의는 상호 존중과 이해와 화해의 토대를 건설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유익한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 가겠다는 의지를 요구합니다. 우리 모두 평화 건설에 헌신하며,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평화를 이루려는 우리의 결의를 다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친애하는 벗들이여, 여러분은 국가와 정치의 지도자로서 궁극적으로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더 나은 세상, 더 평화로운 세상, 정의롭고 번영하는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경험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점점 더 세계화되는 세상 안에서 공동선과 진보와 발전을 단순히 경제적 개념으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한국도 중요한 사회 문제들이 있고, 정치적 분열, 경제적 불평등, 자연 환경의 책임 있는 관리에 대한 관심사들로 씨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인간적, 문화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계속 강화되기를 희망하며, 오늘날 절실히 필요한 “연대의 세계화”에서도 이 나라가 앞장서 주기를 바랍니다. 연대의 세계화는 모든 인류 가족의 전인적인 발전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25년 전에 한국을 두 번째로 방문하시면서, “한국의 미래는 이 국민들 가운데 현명하고 덕망 있고 영적으로 깊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함께 하느냐에 달려 있다.”(1989년 10월 8일)는 확신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되새기면서, 오늘 저는 한국 가톨릭 공동체가 이 나라의 삶에 온전히 참여하기를 계속 열망하고 있다는 것을 보증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젊은이들의 교육에 이바지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려는 정신이 자라나게 하여, 새로운 세대의 국민을 양성하는 일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이들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고 자신의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와 전망으로 국가가 당면한 커다란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에 기꺼이 이바지할 준비를 갖출 것입니다.

 

대통령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의 환영과 환대에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특별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위대한 보화인 연장자들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우리 미래의 희망인 젊은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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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nunmankm.tistory.com 버크하우스 2014.08.14 1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경제학이 다루어야 할 것은 곡선이 아니라 인간이다!"

-마드리드의 한 대학 캠퍼스 벽에 새겨져 있는 구호

 

 

 

이번주에 기사로 쓴 <문화유전자 전쟁>(칼레 라슨·애드버스터스 지음/열린책들)

오랜만에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책입니다.


이 책은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지칭되는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주류 경제학자들을 '궤변론자'라고 비난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데요.


칼레 라슨은 <애드버스터스(Adbusters)>지의 창립자이자 편집장.

<애드버스터스>는  ‘광고파괴자’라는 뜻으로, 기존 상업 광고를 뒤틀고 뒤집는 패러디 광고로 유명한 비영리 격월간지. 2011년 7월 9만명에 이르는 이 잡지의 국제 네트워크에 ‘9월17일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라는 내용의 e메일을 보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촉발시켰다.



(칼레 라슨입니다)



윌스트리스트를 점령하자던 저자들은 이제 “경제학을 점령하자”고 말합니다.


책 제목이 특이하죠. <문화 유전자 전쟁>

문화 유전자(meme)는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만들어낸 신조어로 

유전적 방법이 아닌 모방을 통해 습득되는 문화 요소를 말합니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금융 위기가 초래한 불평등에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하는 금융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조리와 벌인 문화 유전자 전쟁이었다면 이제는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대표되는 주류 경제학이 만들어낸 문화 유전자에 저항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 유전자를 만들어내자는 것이지요.




('신고전파 경제학 이곳에 잠들다') @Elicia di Fonzo, Mohsen Mahbob


칼레 라슨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경제학은 놀림감으로 전락했다. 학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제는 일반인들조차 '무능한 경제학'이라고 얕잡아본다..."



이 책은 신고전파가 득세한 이유 중 하나가 '로비'라고 봅니다.


"신고전파 경제학이 부쩍 탄력을 받은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국방부의 후원을 받는 두 기관인 랜드 연구소와 미국 공군이 수리 경제학 연구를 지원하는 대규모 프로그램ㅇ르 싲가한 것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게임 이론을 비롯한 수학적 도구를 국방에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금은 대부분 캘리포니아, 하버드, 프린스턴, 컬럼비아, 스탠퍼드, 시카고, 예일, MIT  등 8개 대학에 돌아갔다. 이 대학들은 대규모 자금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선뜻 경제학과의 학문적 방향을 선회했다. 8개 대학의 비중과 국제적 명성을 보건대, 이 대학들이 신고전파 경제학을 확고한 경제 교리로 받아들이자 서구의 나머지 대학들도 뒤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1960년대 이후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고용된 1000명 이상의 경제학자들은 절대다수가 8개 대학의 교리를 철저히 받아들였다. 따라서 20세기의 마지막 30년과 새천년 들머리에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교리가 전세계를 지배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127쪽)



그러나 신고전파 세계관에 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1년 11월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수업을 거부한 것인데요.

맨큐 교수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상징이죠.

바로 '하버드를 점령하라' 시위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5개월, 하버드에 입학한 지 2개월째인 10대 청소년 샌덜로애슈와 베이어드는 

동료 학생 70명과 함께 맨큐 교수의 수업을 거부했습니다.

"저는 경제학 원론 수업을 듣는 학생에 부로가하지만 경제학의 양면을 접하고 싶었습니다.

경제학자가 되거나 경제학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지식만을 얻은 저 같은 학생들이 경제 정책을 주도하게 될까봐 우려스렵습니다."(베이어드)



<하버드를 점령하라> 시위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렇게 말합니다.

"경제가 건전하려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자신의 시간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출퇴근하느라 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시간을 제대로 쓰는 게 아닙니다."


그외 학자들의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루르데스 베네리아(코넬대학) : 이제부터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생산을 줄여야 합니다. 생산이야말로 지구에 숱한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니까요. 생태 위기가 뜻하는 바는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을 백지 상태에서 다시 사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줄리 메타이(웰즐리 대학) : 나는 소비자로서, 노동자로서, 기업가로서, 부모로서, 시민으로서 미시 경제적 결정을 내릴 때 어떻게 해야 자신과 가족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돈>이라는 가짜 신과 <시장>이라는 지배적 경제 종교를 버리고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표현하고 실현하려면 경제적 권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가르친다. 또한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또한 전체에 의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계몽된 자기 이익을 실현하려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구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할 일을 해야 한다. 진정한 가치를 경제적 결정의 기준으로 삼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다. 


만프레드 막스네프 : 경제학자로서 나의 언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GDP가 약 5% 증가했으니 행복할 거라고 말해야 했을까? 경제학자들은 근사한 연구실에서 빈곤을 연구하고 분석한다. 온갖 통계를 입수하고 온갖 모형을 만들고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들은 가난을 이해하지 못한다.


허먼 데일리 : 성장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경제적 하위 체계가 양적으로 팽창하면 환경 비용과 사회적 비용이 생산의 편익보다 더 빨리 증가하기 때문에, 적어도 과소비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부유해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질 것이다.


테드 트레이너 : 지금의 경제를 끌고 가는 원동력은 부자가 되려는 욕망이다. 이런 욕망이 있기에 정력적으로 방도를 찾고 위험을 감수하고 건설과 개발에 뛰어든다. 가장 확실한 대안은 사회에 필요한 것을 생산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하는 것을 이러한 활동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려면 세계관과 동기 부여 과정이 전혀 달라져야 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혁신과 기업가적 창안, 위험 감수를 이끌어 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즉 소유 욕망을 포기하지 않으면 앞에서 말한 변화를 이룰 수 없다. 


타레크 엘 디와니 : 현 시스템은 우리가 개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타도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것에게 우리가 타도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머리를, 고정관념을 흔드는 문구들이 참 많았습니다.


경제학 책인 줄 알고 펼쳤다가 도발적이고 현란한 이미지들을 보면서 일순간 당황하게 되는데요. 

문자보다 이미지가 많고, 기존 이미지를 비틀고 뒤집습니다. 

독자를 당황하게 만들어 독자들이 익숙해진 경제적 사유 방식에 균열을 내는 게 이 책의 목적입니다.

바로 <애드버스터스>지가 해왔던 전략이죠. 


#석유, 물고기, 숲, 광물 등 지구의 자연 자본을 팔아치우면서 이것을 소득이라 부르는 이유가 뭐죠? 이것은 지구의 살림을 맡은 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잘못 아닙니까?(207쪽)


#50년 안에 세계 인구가 90억이 될 텐데 전 인류의 1인당 자원 사용량이 부자 나라들과 같아진다면 연간 자원 생산량은 지금의 약 8배가 되어야 할 것이다. 90억 인구가 미국식 식사를 한다면 약 4500만 제곱킬로미터의 농지가 필요하지만 지구상의 전체 농지 면적은 1400만 제곱킬로미터밖에 안 된다.(211쪽)




책은 GNP, GDP를 허구라고 공격합니다.


GDP 관점에서 최고의 하루를 묘사해볼까요.


“꽉 막힌 도로에서 휘발유를 허비하고 배기가스에 콜록거리다 결국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어야 했다고 가정해 보자. 교통 체증은 GDP에 기여한 셈이 된다.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박살나고 보험료가 인상되고 거기다 사고 때문에 심각한 교통 체증이 일어난다면 GDP는 훨씬 증가할 것이다. 그날 아침에 값비싼 이혼 수속을 밟고 저녁에 집이 화재로 내려앉아 법률 비용이 발생하고 보험금을 받고 가재도구를 새로 샀다면 ‘GDP 관점에서는 최고의 하루’일 것이다. 만세!”

반면 GDP를 증가시키는 것은 오염, 범죄, 건강 악화, 가족 해체, 자원 고갈이고

자연, 지속가능성, 인간관계, 집안 살림은 GDP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GNP,  GDP를 올리는 일에 목을 매 온 것일까요?








책은 다음 세대 경제학자들의 과제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경제 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계산하고 반영하여 모든 상품의 가격이 생태적 진실을 말하는 세계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


이런 거죠.

"포르투갈에서 화물선을 타고 바다를 건넌 뒤에 트럭으로 우리 동네까지 운반된 가로세로 8센티미터에 길이 25센티미터짜리 크래커 한 상자가 어떻게 1.5달러밖에 안 할 수 있을까?"


자동차를 운전하는 진짜 비용을 계산해볼까요.


차가 내뿜는 탄소의 환경 비용, 도로를 건설하고 보수하는 비용, 교통사고로 인한 의료 비용, 도시 확장으로 인한 소음과 불쾌감, 심지어 주요 유전과 송유관을 보호하는 군사 비용까지 전부 합산한다. 자가용을 사려면 최소 1억원, 휘발유 한 번 주유하려면 30만원은 족히 들 것이다. 운전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운전해도 괜찮지만, 미래 세대나 지구 반대편의 무고한 사람들에게 비용을 전가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부담하는 것이다. 그러면 부자들만이 마음껏 사치를 누리는 세상이 아니라 그 반대의 세상이 될 것이다.(221쪽)




칼레 라슨은 말합니다. 

“옛 아메리칸 드림이 번영을 추구했다면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은 자발성을 추구하리라.” 


책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죠.

 “지구가 다섯 개 있어도 모자라는 당신의 생활방식이야말로 사태의 근본 원인이다.” 


그리고 책은 이렇게 끝맺습니다. “자, 이제 당신 차례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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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nunmankm.tistory.com 버크하우스 2014.06.29 15: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활기찬 주말 되세요. ^^

조희연 서울교육감 당선자는 지지율 3위로 출발해 문용린, 고승덕 후보를 물리치고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조 당선자는 선거에 출마하면서 국정교과서 부활 저지 및 대안 역사교과서 발행 보급,

일제고사식 지필평가 단계적 폐지, 혁신교육지구사업 서울 전역 확대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는데요.

 

공약도 중요합니다만 그 공약을 실행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 이력이 아닐까 합니다.

삶이 인간을 설명해주니까요.

 

 

(경향신문db)

 

그래서 조 당선자의 책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당선자의 생각을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겁니다.

당선자는 공저를 포함해 30여권의 책을 냈습니다.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참여연대 초대 사무처장 등.

당선자의 홈페이지에 가보니 그의 저서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돼 있네요.

(http://seouleduhope.kr/home/?page_id=529)

 

 

 

 

 

성공하는 법, 주식 투자법에 대한 책만 낸 모 후보와 참 다르죠.

 

조 당선자의 책 세 권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병든 사회 아픈 교육>(2014, 한울)

 

 

  조 당선자는 지난 4일 밤 당선이 유력해지자 “아픈 교육으로 신음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듬어주는 치유의 교육감이 되겠다”고 말했죠. 책의 제목과 겹치는 말입니다. 책에서 당선자는 “병든 사회는 아픈 교육을 낳는다. 교육의 아픔은 다시 사회의 병을 심화시키고 이 두 가지는 서로 악순환의 관계를 형성한다”고 진단합니다. ‘과잉경쟁’에 대한 통찰도 드러납니다. “과잉경쟁은 서로간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만들고 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내면성을 파괴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이 책은 영훈국제중의 입학 비리, 삼성의 특권 귀족학교, 교권 문제, 학생들의 자살, 학교 비정규직까지 우리 교육 현실의 어두운 면을 조명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해법은 무엇일까요. “적극적으로 중고교 평준화 체제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대학 학벌 체제의 평등한 재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의 대학체제를 혁파하고 대안적인 대학 체제를 통해 기존의 불평등 질서를 완화하는 형태로 교육체제가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언뜻 보면 교육감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습니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의장으로 활동했던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통합국립대학’, ‘정부책임형 사립대학(공영대학)’, ‘국립교양대학’ 수립, 대학평준화 등을 교수단체와 함께 홍보한 바 있다. 어떤 분은 이에 대해 급진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정도 급진적이라고 여겨지는 사안을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교육 위기의 출구가 보인다고 생각한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부는 ‘아픈 교육’ 현실을, 제2부는 ‘병든 한국 사회’의 현실을 저자의 시선을 통해 에세이식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제3부에는 저자의 삶의 궤적과 개인사를 담았습니다. 제4부 제1장 ‘교육위기의 사회학적 재인식’은 현 단계의 교실붕괴, 학교폭력, 자살, 특권고 등 일련의 초중등교육 문제에 대한 당선자의 해석과 해결책이 담겼습니다.

 

  당선자가 제시했던 해결책을 어떻게 실행해갈지 기대됩니다.

 

 

 <동원된 근대화>(2010, 후마니타스)

 

  이 책은 당선자의 박정희 시대에 대한 해석이 담겼습니다.

  박정희 시대를 ‘근대화를 향한 (자발적·비자발적) 동원’으로 규정하고 국가를 위해 기꺼이 동원되는 것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시기였지만 동시에 ‘지속적인 위기’를 품은 시기였다고 해석합니다. 박정희를 옹호하는 측은 위기의 체제였음을 보지 않으려 하고, 민주세력 역시 이 내재적 위기를 그대로 안고 왔다고 지적합니다.

 

  이 책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현재의 보수적 분석과 진보적 분석이 한 단계 진전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쓰였다고 합니다.

  현재에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두 가지 양분법적 시각이 존재합니다. ‘성장과 경제적 성취 대 폭압과 수탈’, ‘동의 혹은 헤게모니 대 폭압과 강압’, ‘산업화 대 민주화’, ‘수탈 및 착취 대 근대화’, ‘분배를 수반한 성장 대 불평등 성장’ 등의 대립 구도가 바로 그것이며, 보수적 시각과 진보적 시각은 각각 한 측면을 강조합니다.

 

 

  당선자는 보수적 시각이든 진보적 시각이든 어느 일방을 ‘해체’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시각을 견지하면서 반대의 시각이 강조하는 역사적 사실들을 해석적으로 내재화하는 방향으로 서로 풍부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진보적 시각을 견지하면서도 보수의 시각이 강조하는 ‘경제성장의 성취’ 혹은 ‘대중들의 참여·동의’와 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진보적 시각의 확장’ 속에서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에서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2004, 아르케)

 

  2004년에는 17대 총선이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이 있었고 당시 열린우리당이 압승했었죠. 이 책은 그때 나온 책입니다.

 

  당선자는 1987년에 개발독재적 ‘예외국가’ 시대가 종결됐다면 17대 총선까지의 17년간은 ‘정상국가’로 전환하는 시기였다고 분석합니다. 보수세력의 의회 독점이 깨지고 진보세력이 제도정치에 진입함에 따라 다원주의적 정치질서가 출현했다는 점에서 17대 총선은 정상적 민주국가로의 전환이 완성된 시점이라는 건데요.

 

  그는 이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단계를 고민할 때라면서 과거의 사회운동이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이었다면 향후의 사회운동은 ‘정상성에 대한 저항’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상성은 두 가지 차원입니다. 첫째는 사회적 차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동성애자, 장애인 등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억압하고 차별하는 의미의 정상성, 둘째는 경제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에서 자율, 규제완화, 유연화 등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규정하고 이상화하는 정상화입니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이 책을 높게 평가합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3022134105&code=210100)

 

 "조희연의 대표작은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에서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2004)이다. 우리 사회 사회운동이 ‘개발독재적 예외국가’의 비정상성에 대한 투쟁에서 출발했다면, 이제 자본주의적 정상성을 특징짓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에 주력해야 한다는 게 이 책의 메시지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적 정상성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비정상성들인 노동 유연화, 비정규직 증가, 성 차별, 환경 파괴, 장애인 및 동성애자 차별 등에 저항하는 급진 민주주의 기획을 조희연은 진보적 사회운동의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이론과 실천을 연구하는 데 정치학자와 사회학자 사이에는 주목할 만한 차이가 존재한다. 정치학자들은 정당정치와 같은 제도정치를 중시하는 반면, 사회학자들은 노동운동·시민운동으로 대변되는 운동정치에 주목한다. 한걸음 물러서서 볼 때, 소망스러운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해선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한 ‘쌍선적 심의정치’, 즉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새로운 결합이 요구된다. 조희연이 제도정치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당정치와 사회운동의 생산적 결합은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조희연 교수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진보주의의 핵심이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열망에 있다면, 이런 진보의 정신에 가장 충실한 지식인은 조희연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세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첫째, 그는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의 한 주역을 담당했다. 둘째, 민주화 시대를 이끈 시민운동의 이론적 지반인 ‘진보적 시민운동론’을 제시했다. 셋째, 최근 급진 민주주의를 주창해 진보주의 패러다임의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

 

조희연은 195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성공회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쳐온 동시에 지난 30년 동안 진보적 학술운동을 주도해 왔다.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결합이 진보 지식인의 미덕이라면, 이를 우리 사회에서 조희연만큼 보여준 지식인은 없다."

 

조 당선자가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가 됩니다.

김 교수의 평가가 얼마나 들어맞을지는 앞으로 조 당선자의 행보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

 

 

 

+ 제 개인적으로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조희연 교수의 아들이 전했던 편지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진보 지식인이나 진보적 활동가들 중에는 가정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이유가 사회적으로는 진보를 말하면서 가정에서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조 교수의 아들의 편지를 보면 그런 우려를 잊을 수 있었죠.

 

소장용으로 편지를 아래 붙여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시교육감 민주진보진영 단일후보인 조희연 후보의 둘째아들 조성훈입니다.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아버지가 고생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제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조금이나마 아버지의 이름을 알리는데 도움이 되고자 외람됨을 무릅쓰고 이렇게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아는 분들도 몇몇 계시겠지만, 저희 아버지께서는 평생 걸어오셨던 지식인으로서의 여정을 마치고 어렵고 힘든 일을 새로이 시작하셨습니다. 정치와는 담을 쌓고 살아오셨던 아버지가 대중 앞에 전면으로 나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거에 출마하면 이혼(?!)해버리겠다는 어머니의 반대와 주위 사람들의 적극적인 출마 권유 사이에서 제주도에 혼자 내려가 치열하게 고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정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내심은 아버지가 출마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결국 아버지는 진보진영 단일화 경선 후보등록 마지막 날에 출사표를 던지셨습니다.

기회인지 유혹인지 모를 이 상황에서 단일화 경선을 거쳐 진보진영 단일후보가 되셨지만, 냉정하게도 선거의 세계는 아버지에게 너무나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턱없이 낮은 아버지의 인지도 때문입니다.

한평생을 민주화운동과 시민사회운동에 헌신해 오신 저희 아버지가 대중적 인지도 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지만, 문제는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그 인지도 부족의 대가가 유독 크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학구열이 높다는 대한민국이지만, 정작 120만 학생들의 교육을 총괄하는 막대한 권한을 지닌 교육감 선거에는 어떤 후보가 출마하는지조차 모르는 분들이 태반입니다.

그러니 여론조사 결과가 대중적 인기 순서대로 결정되는 것은 당연지사겠지요.

아들 입장에서는 이 정치판의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심지어는 화가 나기까지 합니다.

저희 아버지의 지지율이 낮아서가 아니라, 이 후보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공약을 내세우고 있는지를 평가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조희연 후보의 비전이 널리 알려진 후에 유권자에게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적어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절박한 심정으로 이렇게라도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 짧은 식견으로 아버지의 공약에 대해 논하기는 부족함이 많을 것 같아, 여기서는 한 인간으로서의, 그리고 한 아버지로서의 조희연에 대해서만 적어보고자 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조희연은 고통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를 어느 순간에서나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에게 입버릇처럼 ‘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미 기득권에 편입되어 있으니 절대로 그 자리에 안주하지 말아라. 항상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어릴 때는 우리 집만 잘살면 되지 왜 그렇게 피곤하게 남들까지 생각하냐고 철없이 반문했다가 크게 혼나기도 했습니다.

용돈 받아 근근이 살아가는 대학생에게 한 달에 몇 만원씩 UNICEF에 기부를 하라시지 않나, 놀고 싶은 방학에 갑자기 장애인 복지센터로 끌고(?!) 가셔서 봉사활동을 시키시질 않나, 솔직히 아들에게는 피곤한 아버지였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이와 같은 확고한 신념이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일에 적용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그 누구보다 ‘평등한 교육’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할 사람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검소하고 돈 욕심없이 살아왔다는 것도 제가 바라봐온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돈을 쓸 줄 모르시는 건지, 아는데 안 쓰시는 건지는 몰라도, 철없는 아들이 보기엔 이상할 정도로 아버지는 자신을 위해 돈을 쓰시지 않았습니다.

비싼 옷, 외제차, 명품과는 일말의 관계도 없으신 분입니다.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고 나서도 제대로 된 양복이 몇 개 없어, 부랴부랴 어머니와 옷을 사러 나가셨던 기억도 납니다.

또한, 학생 시절에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되셨다가 최근에 무죄판결을 받으시고 그 배상금을 ‘어머니의 상당한 반대(?!)를 감수하며’ 전액 기부하시기도 했습니다.

제가 20년이 넘게 아버지를 가까이에서 지켜온 바로는, 다른 것은 모르지만 적어도 교육감이 되어서 부정을 저지르거나 사사로이 돈을 좇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로서의 조희연은 누구보다도 제 말을 경청해주시고 언제나 ‘대화’를 강조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어리다고 해서 ‘어린놈이 뭘 알겠어’와 같은 권위적 태도를 보이시기보다는, 일단 제 의견을 끝까지 들으신 후에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문제에 대해 토론하려는 태도를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자신이 틀리거나 잘못한 부분이 있을 때, 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시곤 했습니다.

근래에 저희 형제가 크게 다툰 적이 한번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께서 저와 형이 포함된 ‘단톡방’을 만드셔서 사이버상의 토론을 유도하셨던 것은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이러한 일상의 모습이 공적인 위치에 오른다고 해서 달라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어떤 사안이 문제가 되더라도 독단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 가운데에서 가장 효율적인 정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확신합니다.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시면서, 아버지는 ‘진심 교육감’, ‘교육도 사람이 먼저다’라는 당찬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후보자의 높은 도덕성과 청렴함을 전제로 해야만 하는 이러한 구호를 감히 내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조희연이라는 개인이 지닌 진정성이 그만큼 흠잡을 데 없다는 점을 반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아버지를 바라봐온 저 또한 아버지가 한 점의 부끄러움 없는 사람임을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사실 아직도 많이 두렵습니다. 제가 더 이상 한 사람의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지 못하고 ‘조희연의 아들’로서 세상에 알려질까봐 말입니다. 그렇기에 이 글 하나를 쓰는 데도 수없이 많은 퇴고와 고민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무릅쓰고 이렇게 글을 쓰는 건 저희 아버지가 최소한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인지 공정하게 평가받을 기회라도 얻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입니다. 인지도가 없으면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이 부족한 글을 통해서 저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사람들이 한번이라도 관심있게 알아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교육도 사람이 먼저입니다.

사람이 먼저인 교육을 만들어갈 저희 아버지를 도와주시길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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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공보물이 우편으로 도착했습니다.

열어봤죠.

 

총 7표를 던져야 하는 선거.

누가 누군지, 이 사람은 구의원 후보인지, 시의원 후보인지 헷갈리더군요.

 

언론사에서 일하는 덕분에 시장, 교육감 선거 뉴스는 많이 접했지만

나머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공보물은 여러 장 뭉텅이로 와서 헷갈리기만 하기에

우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어플리케이션을 찾아봤습니다.

 

역시나 있더군요.

마켓에서 '선관위'를 검색하면 나옵니다.

"선거정보"라는 앱이더군요.

 

 

첫 화면은 요렇게 생겼습니다.

 

선거일정이 나와 있구요. 1월부터 자세하게 나와있네요.

 

그다음엔 투표소가 어떻게 검색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집에 온 공보물에 위치가 나와 있지만 다시 한 번 검색해봤죠.

근데... 이용자가 다시 검색하게 되어 있는 구조더라고요.

그러니까 서울시-양천구 를 입력한 후

목1동 제1투표소부터 109개의 투표소 중에 제 투표소를  검색해야 알 수 있는 거죠.

 

다시 공보물을 뜯어봤습니다.

투표소 위치의 정식 명칭이 나와 있더군요.

 

이렇게 만드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습니다.

좀더 친절한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그 다음은 제일 궁금한 메뉴! 후보자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제 궁금증이 해소되는 듯했습니다.

시장 후보부터 전체 명단이 쭉 나오더군요.

 

저의 경우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① 시 도지사 선거 (서울특별시)

-기호 1 정몽준 새누리당

-기호 2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기호 3 정태흥 통합진보당

-기호 4 홍정식 새정치당

 

 

(요렇게 나옵니다)

각 후보를 클릭하면 학력, 경력, 재산신고액, 병역신고, 납부액, 전과유무 등이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만족.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외의 후보를 알게 돼서 만족스러웠습니다.

 

 

 

 

② 구 시 군의 장 선거(양천구)

-기호 1 오경훈 새누리당

-기호 2 김수영 새정치민주연합

-기호 3 설창일 통합진보당

-기호 4 염동옥 무소속

 

여기까지도 만족.

후보별 주요 공약은 정리를 안 해주더라고요.

그 정보까지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③ 시 도의회의원 선거

 

***여기서부터 난관이 시작됐습니다.

서울시-양천구 까지 입력했는데

선거구를 선택하라고 나오더라고요.

 

양천구 선거구는 4개.

나는 몇 번째 선거구지, 하면서 다시 공보물을 들춰봤습니다.

그제서야 알 수 있었죠. 아 제3선거구.

 

그런데 이렇게 입력하게 하면 누가 후보를 알 수 있을까요?

 

어쨌든 답답하지만 3선거구 입력. 후보가 나옵니다.

 

-기호1 강웅원 새누리당

-기호2 우형찬 새정치민주연합

 

아주 간단하군요. 선택지가 두 개 뿐이라니ㅠㅠ

 

 

 

④ 구 시 군의회의원선거

 

구의원 뽑는 거죠. 여기서 완전히 초난감.

 

서울시-양천구 까지 입력했더니

선거구를 다시 입력하랍니다.

아까와 똑같은 걸까 싶어서 봤더니 그게 아니고

양천구가선거구부터 아선거구까지 있대요.

 

공보물을 다시 봤습니다.

어디에도 제 선거구가 어디인지 나오질 않았습니다.

 

결국 포기.

 

선관위는 왜 이렇게 불친절하게 앱을 만든 걸까요.

세금으로 만들었을텐데.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러웠습니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죠.

웹으로 검색 들어갑니다.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어렵사리 찾았습니다.

 

양천구가선거구 : 목2동, 목3동

양천구나선거구 : 목4동, 목5동

양천구다선거구 : 목1동, 신정1동, 신정2동

양천구라선거구 : 신정6동, 신정7동

양천구마선거구 : 신월1동, 신월3동, 신월5동

양천구바선거구 : 신월4동, 신월7동

양천구사선거구 : 신월2동, 신정4동

양천구아선거구 : 신월6동, 신정3동

 

 

겨우 찾았네요. 제 선거구를.

그러나 이렇게 어렵게 찾게하면 누가 투표 의지를 갖게 될까 싶습니다.

 

모바일로 만든 선관위 앱도, PC 버전 홈페이지에서도 찾기가 어려웠거든요.

주소 딱 입력하면 선거구가 나와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이렇게 어렵게, 공무원들이 행정하는 관점으로 만들면 누가 이걸 쉽게 접근할 수 있을지.

여튼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⑤ 광역의원 비례대표

 

국회의원 비례대표처럼 정당에 투표하는 거죠.

관심이 가는 정당마다 눌러보면 누가 후보로 출마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 모 정당에서 공보물은 보내지 못했지만 후보로 출마했다는 걸 여기서 제대로 확인했죠.

의미 있는 소수 정당 같은 경우 공보물도 가가호호 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다시 한 번 확인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5번부터는 찾기가 쉬웠습니다.

 

 

 

⑥ 기초의원 비례대표

 

광역의원 비례대표와 똑같습니다. 구까지 입력하면 알 수 있어요.

 

 

 

⑦ 교육감 (서울시교육감)

-이상면

-고승덕

-조희연

-문용린

 

 

 

 

7표 제대로 찍기가 쉽지가 않을 겁니다.

대통령 선거 때도 한 명 뽑는 거지만! 제대로 공약을 살펴보기가 쉽지가 않은데요.

우리는 세계 최고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투표를 열심히 해볼까 공보물과 선관위 앱, 홈페이지를 좀 뒤져봤습니다.

의외의 곳에서 장벽을 맞이했네요...;;

 

선관위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좀 쉽게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주소나 이름을 입력하면

제가 살펴봐야 할 후보들이 쫙 나오는 걸 기대하는 건 너무 무리인가요.

요즘 기술로 어렵지도 않을 거 같은데요.

개인 정보 때문에 이름이 무리라면 주소로 하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편의주의적인 행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다시 한 번 들어가보세요. http://www.nec.go.kr/

후보자가 누군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 공약이 뭔지 등을 살펴보고 투표를 하러 가야죠.

 

 

선관위가 제공하는 인포그래픽입니다.

 

 

 

 

아래 링크로 들어가셔서 보시면 더 자세합니다.

[인포그래픽] 1인7표제, 어렵지 않아요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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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X파일'에 등장하는 '떡값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혐의로 기소됐던 노회찬 의원이 결국 징역형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씁쓸했다. 국회에서 언론사 기자들에게 뿌린 건 괜찮고 인터넷에 올리는 건 안된다는 해괴한 법논리도 기가 막혔지만 무엇보다 소식을 들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언론사 입사 시험 공부를 할 때 줄창 읽었던 이봉수 선생님의 칼럼이었다. 2006년에 쓴 칼럼이지만, 마치 현재를 두고 말한 것 같아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다. 

http://www.hani.co.kr/kisa/section-008003000/2006/01/008003000200601031819608.html

삼성왕국의 정난공신들

단종 원년, ‘나라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공이 있다’ 하여 수양대군과 한명회 등 43인에게 내려진 훈호가 정난(靖難)공신이다. 1981년 백령도의 산꼭대기 레이더기지에서 해군 소위로 복무하던 필자에게도 난데없이 ‘국난극복기장’이라는 것이 수여됐다. 쿠데타 세력이 전 국군장병에게 수여한 기장이었다. 두 이벤트의 공통점은 국난이 그들의 범죄에서 비롯됐는데도, 저항세력을 평정해 자신들의 불안을 해소한 것을 ‘국난 극복’으로 미화했다는 점이다.

처음 ‘엑스파일’ 일부가 폭로됐을 때, ‘또 공신을 만드는가’라는 제목으로 전망(8월10일)을 한 적은 있지만, 이토록 깔끔하게 삼성과 <중앙일보> 사주들이 원하는 대로 사태가 수습될 줄이야. 검찰은 기소는커녕 수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면죄부를 줬고, 언론이 ‘줄기세포’ 사건에만 현미경을 들이대는 동안 ‘엑스파일’은 국민들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이학수 부회장과 재무·법무·홍보팀 관계자들은 ‘난국 극복’의 공신들이다.

그러나 가신들의 공훈은 국민으로부터 권한과 책임을 넘겨받은 공무원들의 ‘배임 행위’보다는 크지 않다. 가신들이 ‘4등공신’이라면, 검찰 지휘부와 수사진은 ‘3등공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으리라. 핵심 피의자를 소환도 출국금지도 하지 않고, 서면조사를 하면서도 진술내용을 그대로 인정했다. 반면 제보자와 보도기자들은 모두 기소해 재갈을 물리는 효과를 거뒀다. 논공행상의 일부일까? 중앙일보는 수사 책임자 황교안 차장검사를 ‘2005 새뚝이’로 선정했다. ‘새뚝이는 놀이판의 막을 내리고 새 막의 시작을 알리는 사람’으로, 희망을 상징한다나.

수사 가이드라인을 내리는 듯한 발언을 여러 번 한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2등공신’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노 대통령과 이학수 부회장, 이종왕 법무실 사장, 정상명 검찰총장은 매우 각별한 사이지만, 친분이 사건 처리에 개입되지 않기를 바랐던 국민의 소망은 역시 망상이었나. 이건희 회장의 국감 증인 채택에 대해서는 수많은 의원들이 방패막이를 자임했는데, 특히 김종률, 이혜훈, 이한구 의원의 활약이 돋보였다. “국회의원이 뭘 안다고, 기업총수를 불러다 놓고 질문하겠다는 거냐”고 일갈했던 이한구 의원은 “검찰이 시원찮다고 생각되면 국회에서 특검을 할 수 있다”고 말한 적도 있으니, 이제 특검에 앞장서기 바란다.

‘1등공신’은 언론이다. 경제·정치권력의 일탈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진상을 덮는데 급급했다. 중앙일보는 테이프 공개의 불법성만을 부각시키면서 ‘입 열면 안 다칠 언론사 없다’며 공범의식을 강조했다. 다수 신문들, 특히 경제신문들은 소수 의원들의 삼성 관련 질의를 ‘삼성 때리기’ ‘반기업 신드롬’ 등으로 매도하면서 ‘삼성 구하기’에 발벗고 나섰다. 삼성의 업적을 과장하거나 ‘이건희 회장의 가치가 11조원’이라는 등의 ‘이상한’ 기사들이 쏟아진 것도 이때였다. 이 회장이 거둬들인 큰 수확은 ‘한국경제의 견인차가 탄압받고 있다’고 느끼는 대중정서의 확산이다.

‘엑스파일’의 대화 내용은 언론을 낀 거대자본이 경제를 넘어 정치·사회환경을 입맛대로 바꾸려 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사후처리 과정에서도 돈의 위력만 입증한 채 마무리되면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은 되풀이될 것이다. 행여 또 들통나더라도 “돈 맡겨놓았을 뿐 그렇게 쓸 줄 몰랐다”고 진술하면 검찰이 인정하고 넘어갈 테니까.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를 ‘한국경제 부흥의 원년으로 삼자’고 제창했지만, 아마도 ‘삼성왕국의 원년’이 될 듯하다.

이봉수/영국 런던대 박사과정·경제저널리즘

삼성X파일 사건에서 삼성의 돈을 받았다는 사람도, 줬다는 사람도 모두 무혐의로 처리한 '새뚝이' 황교안씨는 법무부장관에 내정됐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국감 증인 채택을 극렬히 거부한 이한구 의원은 경제부총리에 거론되고 있고, 친박계의 핵심으로 불리는 이혜훈 의원도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확실히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다. 문제는 아무리 이상한 일을 밥 먹듯이 해내는 '그 분'들이라 할 지라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우리 앞에 돌아온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던 강만수씨가 다시 한 번 MB정부에서 화려하게 복귀한 것을 봐도...

어떤 사건이 터지고 점점 시간이 지나가면, 우리는 그 사건을 추상적인 어떤 '사건'으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그 사건은 다름아닌 '사람'이 한 일이다. 일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 '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면 '그 사람'들이 어떤 때는 개혁과 혁명의 기수인 양 우리앞에 '짠'하고 나타난다. 기막히다.

Posted by 누런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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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연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는구나 싶었습니다.  ‘인권 후퇴’ 비판받는 현병철 인권위장 연임


제가 사회부에서 일하던 2010~2011년 인권위를 담당했었습니다.

2010년 8월 인권위에 대해 공부해가던 시절 당시 퇴임을 앞둔 최경숙 상임위원을 인터뷰했을 때입니다.

최 위원의 표현은 단호했습니다. "인권위는 결코 가서는 안 될 길을 걸었다" 

 "인권위,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가면 안 될 길 걸어"

 표현자유 후퇴 '식물 인권위' 전락 비판에 "수긍한다"


최 위원은 용산 참사와 관련해 법원에 의견을 낼지 말지 결정하는 전원위원회에서 

현 위원장이 "독재라도 할 수 없습니다"라며 의사봉을 두드려 

일방적으로 폐회를 선언했다고 밝혔습니다.


인권위는'인권전담 독립 국가기관'으로 '합의체 기관'입니다.

11명의 위원이 토론을 해 의견을 내는 기관이지요. 

한 마디로 위원장 독단으로 '독재'를 말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현 위원장 취임 이후 인권위는 점점 조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요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인권위 전원위 두달째 '개점휴업'


11월에는 유남영·문경란 상임위원, 조국 비상임위원이 '식물 인권위'가 되어버린 인권위를 사임했습니다.

전문위원, 자문위원 등도 사임했지요. 

예전 인권위원들도 "인권위가 이대로는 안된다"며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2011년 2월에는 재계약이 당연시되던 조사관들이 계약 해지를 당했습니다.

동료 직원들이 1인 시위를 했죠. 노조 간부였던 조사관을 해고한 것에 대해 '사회적 신분 등에 의한 차별행위'라며 인권위 노조가 인권위에 진정을 내기도 했습니다. 진정인의 진정을 받아 조사하고 권고하는 기관인 인권위가 스스로 진정인이 되는 '모순'이 벌어진 것입니다.



인권위를 취재하면서 많이 답답했습니다.

'국민의 인권'이 아니라 '국가의 권리'를 보호하는 위원회라는 욕을 먹으면서

힘없는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는커녕 정권의 논리에 충실한 '독립기구'...

이 정부의 인권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우울했습니다.


그래도 현 위원장이 교체되면 나아질 거라고 믿었었나봐요.

'연임' 소식은 너무 충격적입니다. 





경향신문 DB



오늘 인권위 공동행동에서 메일이 왔습니다. 인권위 공동행동은 인권위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의 모임입니다. 친절하게도 '현병철 위원장이 연임되면 안 되는 40가지 이유'를 정리해서 보내줬더군요. 하나하나 예전 일이 기억나서 한 번 옮겨와 봅니다.



1. 현병철이 인권위원장 연임되면 안 되는 40가지 이유


■ 인권현안에 대해 침묵하거나 면죄부를 줌

* 정부나 대기업이 저지른 인권 침해 진정및 정책 권고 부결

1) PD 수첩 명예훼손에 대한 검찰 수사 의견표명

2)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에 대한 법원 의견표명

3) 야간시위 위헌법률심판제청 의견제출

4)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국가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사건 관련 의견제출

5) 두리반 단전조치로 인한 긴급구제 (8/6, 8/11 두 번 요청)

6) 공직선거법 93조 1호의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의견제출

7) 국무총리실의 0000 간부 사찰에 대한 직권조사 개시결정

8) 정보기관의 민간인사찰(정치인 포함)의혹에 대한 직권조사 등

9) 철도공사의 노조원 불법 사찰

10) 국무총리실의 김종익 씨 사찰 건

11) 한진중공업 김진숙씨 긴급구제

12) 한진중공업 고공농성자 등의 인권보호에 대한 의견표명

13) 코레일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조치에 대한 정책 권고

* 민감한 현안에 대한 조사 및 입장 표명 하지 않음

14) FTA 집회와 반값등록금 집회의 경찰폭력 침묵


■ 사회적 약자의 인권 관련 정책 및 조사 부재

15) 1년 6개월 동안 노동분야 정책권고 없었음

16) 일제고사 진정 등 청소년 인권 침묵

17) 성소수자관련 사업계획 부재: 인권위 앞 성소수자혐오 시위 방치


■ 인권감수성 없음

19) “깜둥이” 인종차별 발언,“우리나라에 아직도 여성차별 존재하느냐?” 몰성적인 발언

20) 장애인권활동가들의 출입막는다며 엘리베이터 정지 등 장애인이동권 침해


 비민주적 인권위 조직 운영

18)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 등의 비민주적, 반인권적 언행

19) 인권위원장 권한을 강화하고 상임위원 권한 축소하는 운영규칙개정 시도

20) 비민주적 운영으로 유남영 문경란 상임위원과 조국 비상임 인권위원 사퇴

21) 비공개 안건 증가 등 조직운영의 불투명성 확대


 인권정책 대신 국제행사나 조직운영에 치중

22) 국제심포지엄 등 국제행사, 전화시스템 구축 등 인권개선과는 직접적 연관성 없는 예산 증가, 장애부분 예산 삭감


 인권위 직원 줄세우기와 관료화

23) 인권위를 비판한 노조 간부 강 조사관 재계약 거부

24)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1인 시위했다고 내부직원 11명 징계


■ 북한인권위원화

25) 사실 확인 없이 “임진강 논평” 발표

26) “북한주민의 자유로운 정보접근권”라 이름으로 대북방송 권고

26) 북한관련 국제행사를 개최(국내에서 하는 것만이 아니라 유럽에 가서도 함)

27) 북한인권법 제정 권고

: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한반도 평화에 위협이 될 것임

28) 인권상을 3년 연속 북한인권단체나 반북단체에게 수여

29) 북한에 대한 조사권한도 없는데 북한인권침해센터를 설치

(사실상 실적도 없음)


■ 인권위의 역사적 성과를 뒤로 돌림

30) 국가보안법 존치 발언 및 NAP 폐지 권고 삭제

31) 1인 시위나 비정규직 인권 권고에 반하는 직원 징계

32) 인권위가 결정한 2006년 북한인권가이드라인 역행


■ 시민사회의 지지와 소통 결여

33) 임명 당시부터 무자격자이므로 사퇴 촉구

34) 70여명 전문 자문 상담 위원 사퇴

35) 인권위가 주는 인권상를 수상자들이 거부

36) 전국적인 현병철 위원장 사퇴 운동(621개 전국 시민단체 사퇴 촉구)

37) 경찰의 인권위 농성자 처벌에 협조, 장애인권활동가들이 농성하자 경찰동원


■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인권위 위상 하락

38) 인권 경력이 없어 ICC 상임의장 자격 부족으로 출마 포기

39) 국제사회의 권고 : 인권위 독립성 및 인선절차 마련 권고 수차례 반복

40) 국제인권기구의 관례를 깨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상임위원 면담 방해




제가 사회부에서 사건 기자로 일할 때 썼던 글입니다.

인권위원장의 되풀이되는 거짓말 http://redpen.khan.kr/10



인권위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단지 현병철 위원장만의 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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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누런돼지 관리자’ 임아영입니다.

좋은 사람은 일찍 떠나는 법일까요. 4일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영결식이 엄수됐습니다.
마석모란공원에 잠들게 되었다는 글을 보면서 문득 아득해졌습니다.

김근태의 삶을 말하는 것조차 미안한 사람들과 그에게 빚을 진 사람이 많아서일까요.
저는 김근태 고문이라도 오래 살기를 바랬습니다.
지난 몇년간 우리는 너무 많은 ‘어른’들을 잃어버렸으니까요.
그가 ‘뉴라이트’의 상징에 졌을 때도 이렇게 아득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시 그가 우리 앞에서 그의 삶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사진공동취재단

딸 병민씨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말했습니다.
“김근태 딸로 태어난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많은 분들께는 민주주의자 김근태로 기억되길 바라고 저는 저에게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을 선물해준 가장 저의 사랑하는 아버지로 기억하고 싶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페이스북에서 김근태 상임고문의 생전 말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희망을 의심할 줄 아는 진지함,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려는 성실함, 대안이 없음을 고백하는 용기, 추상적인 도덕이 아닌 현실적 차선을 선택해가는 긴장 속에서 우리는 다시 희망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1995)

 

빅터 프랭클이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제가 매우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http://blog.naver.com/mercury117?Redirect=Log&logNo=140118088539&jumpingVid=F7D930914A03667D75181A265049A9875042
빅터 프랭클에 대해 만든 EBS의 <e지식채널> 영상입니다.
(EBS에서는 다시보기를 지원하지 않는듯합니다. 그래서 이 링크를 걸어둡니다)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입니다.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아내, 형제들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갑니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끌려오자마자 책으로 내려 했던 원고를 독일군에 빼앗기고 낙담합니다.
언제 가스실로 끌려가 죽게 될지 모르는 공포가 그를 엄습했을 겁니다.
그때 빅터 프랭클은 죄수복 속의 작은 쪽지를 발견합니다.
“진심으로 네 영혼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빅터 프랭클은 그때부터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루에 한 컵씩 배급되는 물을 반만 먹고
나머지는 세수하는데 쓰고 유리조각으로 면도까지 했다고 합니다.
건강하고 깨끗해 보이면 가스실로 가는 시간이 미뤄질 것을 알았던 것이죠.
결국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을 세상에 폭로하고 그 기억을 토대로 ‘로고테라피’(의미치료)를 만들어냅니다.
어떤 두려운 상황, 죽음이 엄습하는 상황에서도 긍정적 마음가짐을 가지며 삶의 ‘의미’를 찾는 태도.
로고테라피는 ‘의미’를 찾는 훈련을 통해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유지하도록 하는 치료라고 합니다.

그냥 포기하고 죽음을 기다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빅터 프랭클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우슈비츠의 상황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죠.
그리고 ‘아내’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내와 함께 했던 행복한 일상을 떠올리며 다시 그날로 돌아가는 꿈꾸며 괴로운 현실을 견뎌냈다고 합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것이죠.

정혜신 박사는 <사람 vs 사람>(2005)이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빅터 프랭클은 끌려간 사람의 95%가 도착 30분 내에 가스실에서 처형되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 중 하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극심한 기아와 강제노동에 고문까지 견디면서 그는 자기 자신과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의 심리변화 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전쟁이 끝난 후 그 참상을 세상에 알렸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엄청난 행운(?)과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아우슈비츠에서 끝내 살아남은 극소수의 사람들 중 99%는 자기경멸로 인한 정신적 황폐화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은 알코올이나 약물중독 혹은 자폐증 등으로 고생하다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빅터 프랭클은 그야말로 ‘초월적 존재’라 불러도 될 만한 사람이다. 초월적 존재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빅터 프랭클, 김근태 같은 사람이 바로 초월적 존재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이나 성별을 따지지 않고 말한다면 나는 김근태가 너무나 고맙다. 그 지옥의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옥의 고통 속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사람들. 빅터 프랭클과 김근태.


정혜신 박사는 김근태 고문에 대한 기억도 꺼내놓습니다.

“김근태는 지난 96년 15대 총선을 통해 제도권 정치에 진입했는데, 그는 이 선거를 회상하며 개인적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한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고 그런 호들갑을 떤다면 애초에 김근태가 아니다. 김근태는 재야에 있던 30여 년간 언제나 익명이나 가명을 쓰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오지 못하다가 15대 총선 때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내걸고 사람들 앞에 나섰다. 그는 거절되거나 단절되지 않고 사람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다고 회고한다. 그동안 왜곡되고 편견에 갇혔던 자신의 진짜배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 나를 소개하는 일 따위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사라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감흥을 주는 일이 아닌데도, 김근태는 그 일이 그렇게 고맙고 좋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김근태는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삶을 살아온 김근태, 빅터 프랭클 같은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진 빚이 커서이기도 하겠지만
다시는 같은 악몽과 절망을 반복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게 끝일까요.
같은 악몽과 절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김근태를 기억하는 것만큼 김근태를 상처입힌 사람들처럼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합니다.
내가 만약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 내가 만약 처절한 독재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김근태처럼, 독립운동가들처럼 살 수 있었을까.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했던 사람들처럼은,
일제에 적극 부응했던 사람들처럼만은 살지 않을 수 있기를.
엄혹했던 독재 아래에서 자유와 희망을 말했던 사람들에게
총과 칼을 겨눴던 사람들처럼만은 살지 않을 수 있기를.


김근태 상임고문이 타계하자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악연’이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에 대한 기사도 많이 나왔습니다. 김 상임고문은 1985년 9월 4일 민주화청년연합을 결성했다는 혐의로 안기부(현 국정원)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이 전 경감에게 20여일간 고문을 당했습니다.

전기고문 8차례와 물고문 2차례.
김 상임고문은 고문을 받은 뒤 후유증에 시달렸고 2007년에는 파킨슨병을 진단받았지요.
 
이근안 전 경감은 지난해 한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시대 상황에선 고문이 애국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죠.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다”, “나는 고문 기술자가 아니고 굳이 기술자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심문 기술자’가 맞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심문도 하나의 예술이다” 등등.

저는 그 기사를 읽고 정말 아득했습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애국이었을까요.

 

‘악의 평범성’으로 유명한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하는 일은 (…) 정치적 자유가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그렇게들 한다. 그러나 저명한 학자들이 보통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참으로 불행히도 생각하도록 하는 힘은 인간의 다른 능력에 비해 가장 약하다. 폭정 아래에서는, 생각하는 일보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일이 훨씬 쉽다.”

 

아렌트는 1961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에 참관합니다.
재판을 보고 그녀는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죠.

그녀는 아이히만이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이라고 평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아이히만은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만 말합니다.
또 명령은 지키는 것이 도리라고 말하죠.

자신의 일이 수백만의 죄 없는 사람들을 살육하는 일이었는데도 아이히만은 자신의 일이 사람을 죽인 것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시키는대로 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죠.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보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냅니다.

악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는 것.
“나는 명령받은 대로 했을 뿐”이라는 핑계로 ‘생각’을 그만둔다면
평범한 누구나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렌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언제나 ‘생각’해야 한다는 것 아니었을까요.
우리 안에 있는 악마를 마주하지 않도록 ‘생각’하는 그것뿐.
악을 마주쳤다 할지라도 그 악을 멈출 수 있게 하는 것은 ‘자기성찰’뿐.

가끔 살아가는 것이 ‘역할 놀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각자 맡은 역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갈등도 일으키고 조화도 만들어내겠죠.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막연히 ‘좋은 역할’을 맡아 ‘선한 역할행동’을 해내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최대한 좋은 역할을 맡는 것.
그것이 끝이 아니라 그 역할 안에서 최대한의 선한 행동을 하는 것.
내가 맡은 역할이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이라면,
그것도 그 사람의 생명과 안위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 역할을 포기하는 게 맞겠죠.

아이히만은, 이근안은 ‘생각’을 멈추고
자기의 역할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선택한 역할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내놓았는지 눈을 감았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이죠.

 


이근안을 찾아내서 그를 속죄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타의로 용서를 구하게 만드는 것이 ‘반성’이 될 수 있을까요.

1999년 11월 언론 기고문을 통해 김근태 상임고문은 말했습니다.

(이근안 전 경감 같은) 고문자들은 독재구조의 악순환에 가담한 가해자면서 동시에 인간성이 파괴된 피해자다.

 


또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이 이근안 뿐일까요.
당시 이근안에 고문을 지시한 사람들, 그 위 또 그 위 결제권자들, 책임자들...
손에 피 하나 묻히지 않고 사람을 죽여도 상관 없다고 뒷짐지고 있었던 ‘윗분들’
독재 구조를 만들어냈던 사람들. 그 악순환을 묵인했던 수많은 사람들.


기억해야 합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우리 모두 ‘이근안’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사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에게 총을 겨누지 않을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을 수 있도록.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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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공무원 시험 준비생은 아름다운 선생님과 맺어질 수 없는 걸까요.

안녕하세요. ‘누런돼지 관리자’ 임아영입니다.
요즘 ‘누런돼지’와 MBC의 <하이킥-짧은 다리의 역습>을 보고 있습니다.
가장 비호감인 캐릭터는 ‘고영욱’이었는데요.

MBC 홈페이지에서

장조림 한 조각에도 눈물 흘리는 노량진 붙박이 고시생 고영욱

노량진 고시원에서 몇 년째 9급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인 고시생. 가난한데 식탐이 있어 소고기 장조림 하나에도 목숨을 건다. 원칙주의자에 융통성도 부족해 뭐든 미련하게 한 우물만 파는 스타일. 천사같은 하선에게 반한 뒤 사랑에서도 미련하게 한 우물만 판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고영욱 캐릭터 설명입니다.

소심하나 아름다운 국어 선생님 박하선을 짝사랑하는 고영욱이 나올 때마다 괜히 주는 것도 없이 얄미워 그 캐릭터를 안 좋아했습니다.;;ㅎㅎ 게다가 잘생긴데다 하선을 몹시도 좋아하는 체육 선생님 서지석이 마음 앓이를 할 때마다 고영욱 캐릭터가 더 싫어졌죠. 하선과 지석이 맺어지기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몽유병이 있던 고시원 이웃주민(?)인 백진희가 소고기 장조림을 먹었다고 고래고래 화를 내는 모습도 좀스러워 보였고 우연히 하선의 ‘생명의 은인’이 되어 사귀게 된 과정도 탐탁치 않았습니다. 하선을 더 좋아하는 지석이 있는데 어디 감히!


 

그런데 드디어 영욱과 하선이 헤어졌습니다. 그것도 영욱이 먼저 하선에게 이별을 선언하는 방식이었습니다.

23일 방송된 <하이킥>에서 영욱은 시험 발표가 난 뒤 하선 앞에 멋진 차를 끌고 나타났습니다.
하선은 영욱이 시험에 합격한 걸 기뻐하며 넥타이도 사주고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헤어지던 순간 영욱은 “멀리 지방으로 발령받을 것 같은데 혹시 하선씨, 나와 함께 가줄 수 있냐”고 묻습니다. 지방직 공무원에 합격했다는 것이었죠.

당황한 하선은 “저는 학교도 여기 있고 지원이도 있고...”라며 거절 의사를 보입니다.
영욱은 “기적이 일어날까 해서 한 번 물어본 것”이라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선씨 만난 후로 너무 행복했다. 그동안 나 같은 놈 만나주신 것 정말 감사하다. 잘돼서 헤어지는 건데 웃으면서 헤어지자”며 이별을 고하죠.

영욱은 또 시험에 떨어졌던 겁니다. 영욱은 마지막으로 하선을 한 번 안아본 후 “다 미안하다. 다 고맙다”고 말하고 뒤돌아섭니다. 하선은 영욱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영욱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죠.

고시원에 돌아온 영욱을 맞은 건 작디작은 방이었습니다. 영욱은 그 작은 방에서 하선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소리내어 흐느낍니다. 그때 옆방에서 조용히 하라는 ‘노크’ 소리가 들리죠. 그동안 노크 소리에 주눅들어 살던 영욱도 이번에는 울음소리를 죽일 수가 없는지 엉엉 울었습니다.

MBC 화면 캡처

23일 방송분이 끝나고 나서 갑자기 멍해졌습니다.
영욱이 안돼 보여서였을까요?

영욱이라는 캐릭터가 공시생에게는 연애도 허락되지 않는 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 TV 드라마에서 사법고시를 공부하는 남자 주인공에게 헌신적인 여자 주인공 스토리가 반복됐었던 적이 있었죠. 사시를 합격한 남주(인공)는 결국 여주(인공)를 버리고 여주가 복수하는 이야기.

그런데 김병욱 감독은 ‘공시생’을 이야기합니다.
사시도, 행시도 아닌 공시. 그것도 9급 공무원 준비생.

‘여자 버전’ 88만원 세대를 보여주는 캐릭터 백진희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진희는 고시원에 살다가 방값을 못 내 쫓겨나고 학자금 대출은 산더미같이 쌓여있으나 계속 취직이 안 됩니다. 결국 보건소 행정 인턴으로 취직했으나 월급은 쥐꼬리인데 고용 안정성도 불투명하죠.

어느날 진희도 결혼한다는 친구 얘기를 들으며 ‘취집’을 상상합니다.
보건소 의사 선생님인 윤계상과 결혼하는 상상이었는데요.
아마 진희의 바람도 이뤄지기 힘들 것입니다.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과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보여준 김병욱 감독의 비관주의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테니까요.

영욱이 하선과 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진희가 계상 때문에 어떤 눈물을 흘리게 될까 걱정이 됐습니다. 공시생으로, 88만원 세대의 백조로 찌질해지기만 하는 20대들에게 어떤 희망이 있을 수 있을까요.
취업 여부가 ‘계급’을 가르는 사회가 되어 버렸는데.
연애·결혼·출산, 기본 중의 기본을 꿈꿀 수 없는 사회.

김병욱 감독은 그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찌질하게 장조림에 목을 매는 것이 영욱의 잘못은 아닙니다.
하선에게 영욱은 늘 진심이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하선이 영욱을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겠죠. 사람이 사람이 좋아지는 건 사람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하선은 영욱이 공시생이라는 이유로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좋은 사람이죠.

그런데 왜 저는 영욱을 안 좋아했을까요.
혹시 ‘찌질해서’였을까요.
그 생각이 다다르자 맨얼굴을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습니다.

3년 전 제가 미취업자이던 시절 저는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취직을 못한 것이 온전히 내 잘못만도 아니거늘 자신도 없었고 사람 만나는 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긍정하는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 어떤 것도 온전히 내 탓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데까지요.

그때 제 모습도 혹시 ‘찌질’했을까요.
영욱을 바라보던 시선에 그때 제가 겹쳤습니다.


공시생이 선생님을 만날 수 없는 사회,
이제 더이상 사시, 행시를 봐서 합격하는 ‘신분상승’의 사회가 아니라
9급 공무원이 되는 게 ‘생존’이 되는 세상.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MBC 화면 캡처

제가 좋아하는 <지붕뚫고 하이킥>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실은 가기 전에 아저씨 꼭 보고싶었는데, 이뤄져서 너무 좋아요.

(이민 갈 이유 안 갈 이유가 반반이었다고 그랬지?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뭐야? 아빠랑 셋이 사는 거?)

네. 그리고 신애한테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신애?)

언젠가부터 신애가 자꾸 저처럼 쪼그라드는 것 같아서요. 식탐 많던 애가 먹을 거 눈치를 보고 아파도 병원갈 돈이 없을 까봐 걱정하고. 그게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가난해도 신애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안 가고 싶었던 이유는)

검정고시 꼭 보고싶었어요. 그래서 대학도 가고. 아저씨 말대로 신분의 사다리를 한칸이라도 올라가고 싶었어요. 근데 언젠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 사다리를 죽기살기로 올라가면 또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있겠구나. 결국 못 올라간 사람의 변명이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가기 싫었던 이유는 아저씨였어요. 아저씨를 좋아했거든요. 너무 많이. 처음이었어요 그런 감정.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설레고, 밥을 해도, 빨래를 해도, 걸레질을 해도. 그러다 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부끄럽고 비참했어요.

(미안하다. 내가 한 말들 때문에. 상처주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다 지난 일이고 전 괜찮아요. 그동안 제가 좀 컸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의 끝이 꼭 그 사람과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는 거 이제 깨달았고. 그래도 떠나기로 하고 좀 힘이 들긴..들었어요. 아저씨랑 막상 헤어지면 보고싶어서 못 견딜 것 같아서.

그래도 마지막엔 이런 순간이 오네요. 아저씨한테 그동안 마음에 담아놓은 말들 꼭 한번 마음껏 하고 싶었는데. 이뤄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매일 지금 이순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다 와 가나요?

(어)

아쉽네요. 잠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뭐?)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동생이 ‘쪼그라드는’ 걸 보기 힘들었던 언니 세경이 신분의 사다리를 고민하지 않는 사회로 떠나려는 찰나
세경은 죽음으로써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이룹니다.
지훈을 좋아했던 세경은 이렇게 꿈을 이루는 걸까요.

저는 죽지 않고 살아서 우리들의 소망을 이루면 좋겠습니다.

영욱이 공무원 시험에 붙지 않아도 행복해지는 사회, 스스로가 ‘찌질하다’고 느끼지 않는 그런 사회.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겠죠.

이제 왠지 하선과 지석의 사랑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없어질 거 같습니다.
영욱이 생각나서요. ㅠㅠ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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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 2012.01.02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눈물이 나려고 하네...
    김병욱 감독은 너무 잔인해...
    나도 고영욱 미워했는데. 찌질한게 들러붙는다고.
    안내상도 싫었는데. 무능한 주제에 오바한다고.
    그런데 저 감독은, 안내상을 정.말.로. 감옥에 보내버리더라구. -_-
    과잉행동장애가 되어 나온 안내상이 마라톤 하는 걸 보면서 울었다우...

    • Favicon of https://ilovepig.khan.kr 누런돼지 관리자 2012.01.03 1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선배 내상씨도 정말 안됐죠.
      내상씨가 진희 다친 손목을 이용해 게임에서 이겨서 상품권 타내려고 했을 땐 ‘격분’했지만 그 작은 거라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니 그 방송분 끝나고 허탈했어요.
      ㅠㅠ <하이킥>은 잔인해서 현실적이예요. 이번 <하이킥>은 어떻게 끝날지...ㅎㄷㄷㄷ

  2. Favicon of http://leegoeun.khan.kr 이고은 2012.01.03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영, 글 넘 좋다. 그나저나 우리 내러티브는 언제 다시...? WCMS가 점점 멀어지고 있군하. 하아...

안녕하세요. ‘누런돼지 관리자’입니다.

1인시위를 하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으시죠?
요즘 추운 날씨에도 거리를 걷다보면 쉽게 1인시위를 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지요.

6일 점심 때 1인시위하는 분을 만나러 갔었습니다.
바로 하승수 변호사입니다.

이날 점심을 먹기로 했던 하 변호사님은 오전에 제게 전화를 하셔서
“점심을 한시에 먹을 수 있을까요? 제가 12시부터 1시까지 1인시위를 해서요”라고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페이스북에서 “1인시위를 하겠다”고 한 글을 본 기억이 났습니다.

하승수
어제 신규핵발전소 부지 선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청와대 앞에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후쿠시마 1주년이 되는 내년 3월 11일로부터 100일 전인 날입니다. 신규 핵발전소가 더 들어서면 우리는 핵발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지금 건설중에 있는 것들도 전부 건설중단을 시키고 다 짓더라도 가동을 안 시켜야 합니다.
이걸 위해서 두가지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첫째, 앞으로 100일동안 1인시위 등의 방법으로 신규핵발전소 반대 - 탈핵을 주장하는 행동을 하겠습니다.
둘째, 오늘 밤에 첫 방송을 시작하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 방사능과 핵발전의 문제점에 대해 알려나갈 것입니다.
http://www.ustream.tv/channel/?nonukestv
 
모두들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그리고 자기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을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오늘 첫날 1인 시위를 하는데, 지나가는 시민들이 유심히 보시더라구요. 핵발전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접할 기회가 없는 우리 현실에서 뭐든지 해 봐야 할 것같았습니다.^^



직접 광화문광장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하승수 변호사는 광화문광장 끝 횡단보도 바로 앞에 서 계시더군요.
<3월 11일 후쿠시마 D-96 더이상 신규원전은 지으면 안됩니다! 녹색당(준)>
이라는 글을 적은 하드보드지를 들고 계시더군요.

“이순신 동상 앞에 서 계신다더니 왜 이곳에 계세요?”라고 물으니
특유의 사람좋은 웃음으로 하 변호사님 “여기가 사람들이 많이 보더라고요”라면서 웃습니다.

팻말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3월 11일 후쿠시마 D-96”이라는 문구를 보고 벌써 1년이 됐구나 싶어 한편 놀랐습니다.
1년여전 일본 대지진으로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 위기감을 벌써 잊어버렸구나를 새삼 깨달았죠.

사고 때는 원전을 더이상 지으면 안 된다, 있는 원전도 가동을 서서히 멈춰야한다, ‘탈핵’도 가능하다 등 목소리가 터져나왔지만 또 ‘사건으로 사건을 덮는’ 우리는 이런 목소리들을 잊어버렸네요.

 



원전 부지가 들어오면 안 되는 이유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더이상 신규 원전은 지으면 안 됩니다!”라는 문구였습니다.

신규 원전??
어라?? 정부가 신규 원전을 또 짓나?

잘 모르던 내용이었습니다.
다들 알고 계셨나요? 신규 원전 부지가 올해가 가기 전에 발표된다고 합니다.
정부는 지난 11월 4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발표했는데요.
여기에 신규 원전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신규 부지를 2~3개소 더 확보하겠다는 내용이고요.
현재 동해안의 삼척, 울진, 영덕이 후보지입니다. 이 지역은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 미리 신청을 받았던 지역들인데 사고 이후에도 (별다른 반성 없이) 밀어붙이고 있는 형국이네요.

정부가 2008년에 수립한 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12개를 추가 건설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때 이미 20개가 가동 중이었습니다. 하 변호사님은 이번에 선정될 부지에서 최소 6개 이상은 지으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전이 거의 40개 가까이로 늘어난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원전이 40여개가 된다...?
매장된 우라늄을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은 최소 20년에서 최대 50년이라고 합니다.
50년이라고 해도 정말 짧지 않나요?
그런데 원전을 40여개 운용하는 게 맞는 걸까요?

정부는 우라늄이 고갈되면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재처리하면 된다고 설명한답니다.
그러나 하 변호사님 설명에 따르면 그런 경우 재처리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경제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겁니다.



‘원전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남편과 얘기를 했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탈핵’이 불가능해보여도 300년 후를 생각해보자.
그때를 생각하면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뭘까. 현재 꼭 시작해야 하는 일은 뭘까.

세계의 500여개 핵발전소들 중 6개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체르노빌, 후쿠시마에서 보듯 핵발전소 사고는 한번만 일어나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대재앙입니다.
원전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인간이 과연 100% 막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만 생각해봐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탈핵’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승수 변호사는 “핵발전소 신규 건설을 중단하고 설계수명이 종료되는대로 핵발전소들을 폐쇄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핵발전소 폐쇄에 따라 모자라는 전력량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대체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에너지 수요 증가를 억제하는 정책이 따라야겠죠.

재생에너지로 그것이 가능할까? 하 변호사는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재생에너지 기술은 점차 개선되고 있고 지금 연간 2500억원 정도 원자력 연구·개발에 지출하는 비용을 재생에너지 연구·개발 비용으로 투입하면 핵발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음 자료는 하승수 변호사가 보내준 것입니다. 지식경제부가 지난 4월 만든 자료인데요.

이 자료를 보면 2021년에는 원전 사후처리 충당부채가 12조7000억을 넘어섭니다. 정부가 잡은 통계이니 소극적 수치일텐에 향후 얼마나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야 하는 걸까요.

그러니 재생에너지 기술을 발전시키는 비용이 나중에 핵발전소를 해체하고 핵폐기물을 10만년 동안 보관해야 하는 비용에 비하면 감수할 만한 비용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도 핵발전소를 마무리할 제대로 된 기술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합니다. 하 변호사는 그렇다면 이 엄청난 비용이 지금의 청소년, 청년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탈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하승수 변호사는 저한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모두들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그리고 자기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을 만들어가는 것이죠. 그 작은 행동들이 모이면 큰 변화가 오지 않을까요”

하 변호사는 1월 녹색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시민사회 운동을 하면서 느꼈던 한계를 ‘현실 정치’ 안에서 풀어보겠다는 뜻이겠죠. 부디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지난 8월 경향신문 인터뷰 기사를 한번 읽어보세요.

“야권 연대에 참여 ‘녹색 정치’ 퍼뜨릴 것”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042126075&code=910402

 





오세훈이 1인시위 전당을 만들다?

이날 또 신기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광화문광장이 ‘1인시위의 전당’이 되어 있었는데요.

점심 시간에만 3~4팀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본 것도 4팀이었는데요.

한분은 “MB, 사랑해요”라고 적힌 피켓(?)을 매고 있어서 신기하게 봤더니 역시나...
뒷면에는 “이거 다~ 거짓말이란 거 잘 아시죠?”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ㅎㅎ 재밌었습니다.

그밖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주장을 하는 분과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는 분이 나란히 서서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풍경이었습니다.
“왜 같이 서 계시나요”라고 질문했더니
“각자의 주장을 펼치는 민주주의 사회니까요”라고 대답하시더라고요.

 


아 그런데 왜 다들 광화문광장일까요?
하승수 변호사가 답을 주셨습니다.
“광화문광장은 유동인구가 많다.
또 신호대기가 잦아서 차들이 신호가 바뀌기 기다리면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 그래서 횡단보도 바로 앞에 서 계셨던 거였습니다. ㅎ

1인시위하는 사람의 느낌은 어떨까요?
사람들이 무관심한 표정으로 지나가면 속상하지 않으냐고 질문하니
하 변호사님은 웃으며 “뭐 괜찮아요”라고 대답하십니다.

그외 하 변호사님은 “점심을 먹기 전과 먹은 후의 표정이 달라진다”는 점을 알려주셨습니다.
점심 먹기 전에는 눈길도 안 주던 사람들이 12시30분쯤 지나면 점심을 먹고나서인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는 겁니다. 역시 배가 고프면 ‘밥’ 생각만 나기 마련이겠죠. ㅎㅎ

하승수 변호사는 내년 3월 11일 후쿠시마 사고 1년째 되는 날까지 매일 1인시위를 하겠다고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겠죠. 응원하겠습니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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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ㅋㅋ 2011.12.12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카에겐 안 통하는 시위지만, 그래도 재미는 있네요~

    가카께옵선 이걸 보고 어떻게 생각하시려나?

 안녕하세요, 누런돼지입니다. 
 (누런돼지 관리자가 아니라 경향신문 문화부에서 주로 서식하고 있는 누런돼지랍니다...ㅎ)
 
 지난 번 세종대왕 글에 이어 두 번째로 글을 올려 봅니다.
 
 최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한국정치학회 발표 논문을 조선일보에서 대서특필했습니다. 궁금해서 한 번 이것저것 찾아봤습니다.

 저는 학술대회 당일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프레시안 기사를 보면 학술대회에 참여한 한 패널은 "조선일보가 진보의 거장이 드디어 우리 품에 안겼다는 식의 보도를 했을 만큼 논쟁적 차원을 넘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장"이라고 말한 모양입니다. 류근일씨도 이번 경향신문 칼럼에서 이 논문을 인용하셨네요.

 조선뿐만 아니라 연합 등 보도를 보면, 최 교수님이 마치 최근 벌어진 자유민주주의 논쟁에서 보수 진영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준 것처럼 돼 있습니다.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최근 학계 안팎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역사 교과서 기술 지침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것을 두고 논쟁이 뜨거웠다. 주로 보수가 찬성 편에, 진보가 반대로 양분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진보 진영의 '간판'으로 꼽히는 최 교수가 진보 진영의 자유주의관을 비판하고 나섬에 따라 논의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2일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열린 한국정치학회(회장 박찬욱) 연례학술대회를 통해 작금 중학교 역사교과서 개정을 둘러싸고 주로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전개된 '자유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 논쟁에 대해 입을 열었다... (중략) 이런 언급에 의한다면 헌법 정신에 기초해 한국현대사가 추구한 흐름을 '자유민주주의'로 규정한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에 그다지 문제는 없는 셈이다."




 보도에 나온 최 교수님의 발언 인용만 보면 그럴듯 합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에서 얻을 게 많다."
 "자유주의는 현존하는 정치 이념 중 가장 보편적 이념으로 우리 사회에 적극 수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거부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여러 결핍 조건을 깊이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 자유주의가 매우 강력한 유의미성이 있다"
 "자유주의 원리의 실천 여부와는 무관하게 한국은 처음부터 민주주의였고 자유주의였다"
 "건국 이후 자유민주주의는 국가 건설의 존재 이유로 나타났다"


 한 마디로 이런 주장들은 최 교수님이 언급한 자유주의가 그들이 언급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와 같다는 전제에서 비롯됩니다. 물론 기사를 찬찬히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어쨌든 최 교수님의 주장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려는 것이니 그런 얘기는 교묘하게 숨겨져 있지요.

 제목만 보고 기사를 설렁설렁 읽어보면 어쨌든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면 족하다"는 진보진영과 역사학계 대부분의 시각을 반박한 것처럼 느껴지지요.

         



논문을 직접 읽어보자!!

 저도 궁금해서 그 논문을 구해서 읽었습니다. 한 번 살펴봅시다. 첫 부분부터 최 교수님이 그들이 언급한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전문을 그대로 인용해 봅니다.


"민주화 이전 보수파들에게 자유주의는 체제를 수호하는 공식적인 이념이자 정치언어, 슬로건으로서 민주주의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수용된 바 있다. 최근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역사교과서내용을 민주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바꿔야한다고 해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둘러싼 좌우이념논쟁이 일어난것도 그러한 현상의 하나이다. 물론 그들이 실제로 자유주의를 실천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말이다."


 그렇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논쟁을 일으킨 것 자체가 그들이 '자유주의'를 체제 수호의 이념, 정치언어로서 과도하게 수용했다는 설명입니다. 실제 그들이 최 교수님이 말하는 '자유주의'를 실천해 왔기 때문이 아니란 것이죠. 다음 부분을 보면 더 확연해 집니다.

  "한국에서의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더불어 해방 후 민족 문제를 둘러싼 극심한 이념적 갈등이라는 환경 하에서 분단국가가 건설됐을 때, 제도 건설을 뒷받침하는 공식 이념으로 수용되었다. 민주주의가 이념이라기보다 정치체제로서 보편성을 가지고 수용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민주주의의 수식어가 되는 자유주의는 사실상 냉전반공주의를 의미하면서 이념적 갈등의 중심적 요소로서 자기 위상을 갖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이념갈등이 분단을 가져왔던 것만큼 냉전 하 한국에서의 자유주의는 곧 급진적인 냉전 자유주의를 의미했고 그렇게 실천되었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자유주의를 수용하는 데 있어 하나의 비극이었다. 보수파들은 실제로 자유주의의 가치와 이념을 수용하고 실천하기보다 이를 반공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이해했고, 그에 반하여 진보파들은 그것이 사실상 냉전반공주의를 의미했기 때문에 이를 배척하고 비판하였다."


 결국 굳이 멀쩡한 교과서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치하는 이들의 속내는, 자유주의를 반공주의로 채색해 왔던 그들이 늘 해 왔던 뻔한 수법이라는 것이죠. 자유주의를 강화하자는 빌미로 북한과의 대결구도, 나아가 남한 내에서 복지 같은 사회주의적(?) 제도 수용, 사회민주주의에 반대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확연해지는 대목이죠.

 이어지는 최 교수님의 글을 보면, 최 교수님이 말하는 자유주의란 최 교수님의 말을 열심히 인용했던 보수진영에는 안타깝지만 결코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아님을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최 교수님은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보수파들은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자일수는 있어도 자유주의자는 아니다. 동시에 (자유주의를 배척했던) 진보파들은 자유주의자일 수 있다.”

  최 교수님은 오늘날 '자유' 이데올로기의 주요 전파자 중 하나인 한국 사회의 기업엘리트들에게도 일침을 놓습니다. 이들은 “국가의 전면적 지원하에 성장한 국가의존적 집단이었기에 자유주의 가치와 상응하기 어려웠으며, 서구에서와 같이 정치적·경제적 자유의 대변자로서 헤게모니(도덕적 리더십)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입만 열만 '자유'를 외치는 그들이 실은 그닥 '자유스럽지' 않았다는 얘기지요. 오늘날에도 자행되고 있는 중소기업 죽이기 등을 보면 그 잔재를 알 수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뉴라이트'를 표방한 이들 보수세력은 '자유주의 이후의 자유주의'인 신자유주의를 추구했다는 것이 최 교수님의 현실인식입니다.


  물론 기사에도 언급됐듯 최 교수님의 비판이 향하는 곳은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이지만, 진보진영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최근 년에 들어와 보수주의이념이나 가치, 또는 보수주의적 운동의 관점에서 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와 동일시하면서 자유주의를 속류화하거나 급진화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보수에 대해서는 아마 언급할 가치를 못 느끼시는 듯 합니다. 물론 전적으로 제 생각입니다만...





글의 나머지

 어쨌든 기사화돼 논쟁이 된 나머지 논지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겠습니다.


 최 교수님은 진보파가 이러한 보수파의 '냉전적' 자유주의에 반발해 자유주의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아예 관심을 갖지 않았음을 안타까워 하십니다. 이것은 “한국사회가 자유주의를 수용하는데 하나의 비극”이라는 평가죠.

 진보진영이 자유주의를 “냉전반공주의 이외의 다른 말이 아닌 것 혹은 부르주아지의 이념”으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또 구 질서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진보파들은, 그 구 질서가 자유주의 또한 포함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유주의 기반 없는 민주주의가 탄생했다는 것이죠.


 이 과정을 최 교수님은 “한국 사회의 좌우구분에 있어 흥미로운 패러독스”라고 표현합니다. “보수, 진보 모두 다른 이유로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동안 양쪽 모두 민족주의적이고 집단(합)주의적인 반자유주의의 경향성을 공유하게 됐다”는 것이죠. 국가중심적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추구한 보수와 마찬가지로 진보 또한 냉전반공주의에 맞서 민족통일을 이루려는 민족주의적 노력과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의 건설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했다는 분석입니다.

 요컨대 진보, 보수 모두 국가나 집단에 맞선 개인의 권리, 자유와 같은 가치보다는 으쌰으쌰하면서 집단적으로 나가는데 중점을 뒀다는 얘기죠.


 그래서 최 교수님은 로크와 몽테스키외, 토크빌이 제시했던 고전적 자유주의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갑니다. 예컨대 “한국의 보수정부 하에서 시민적 기본권들이 위협받는 상황”을 보면 민주주의 하에서도 국가의 목표나 의사가 개개시민의 자유 위에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의 자유가 항상적인 위협 하”에 놓여 있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죠.

 게다가 정치·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권력이 엘리트 중심으로 중앙집중화되는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현상 또한 자유주의의 허약해서 시민적 자율성을 낳지 못한 탓이라고 보십니다. “허약한 사회의 기초 위에 강력한 국가가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가치는 국가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죠.

  이런 맥락에서 교수님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적 성찰로 “오늘날의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여러 결핍된 조건들을 깊이 이해하고 개선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유주의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 민주화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과부하하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죠.

  따라서 최 교수님이 늘 강조해 오셨던 문제의식, 즉 정당정치의 강화로 결론은 모아집니다. 자유주의적 실천,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강화를 위해 자율적 결사체, 포괄적 정치조직으로서 정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일부 진보 진영의 “민주주의의 이상과 목표를 과도하게 높게 설정하면서, 정치를 뛰어 넘어 이를 일거에 해결코자 하는 경향성”에 대해 자유주의가 “해독제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말씀 중 인상 깊은 구절을 남기면서 이만 갈음하겠습니다. 꾸벅(--)(__)(--)

"한국의 이데올로기적, 이념적 지형에서 자유주의는 진보와 보수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지울 수 있을까? 그것은 진보, 보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있다. 만약 진보가 어떤 천명되고 언표화된 이념과 이론, 또는 그것을 표현하는 정치적 언어의 진보성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권력과 사회경제적 자원에 있어 약자, 소외자들의 권익을 증진하는데 더 큰 가치를 두고, 자신의 위치에서 실제로 그렇게 행위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한국의 현실에서 자유주의는 진보의 이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누런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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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경향신문 문화부 황경상 기자입니다.

신복룡 교수님의 책 <한국정치사상사>를 소개한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1251929495&code=900308)가 메인에 걸리면서 항의 메일과 적잖은 오해의 댓글이 달린 것 같아 몇 글자 적어보려 합니다.

우선 말씀드릴 것은 '세종이 백성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런 이유 때문에 한글을 창제한 것은 아니다'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량상 교수님의 말씀을 줄이면서 그 부분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인터뷰 당시 선생님 말씀 원문을 전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에 대해 아무런 비판의 여지도 없이 백성을 사랑해서 한글을 만들었다고 얘기하지만, 정치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런 국문학적 해석으로부터 조금도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한글이 아니었더라도 세종은 성군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지난해 저의 한국학중앙연구원 강연 제목이 '백성을 바라보는 세종(世宗)의 시선-그것은 오로지 사랑뿐이었을까?'이기도 했는데, 과연 오로지 사랑 뿐이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한글 창제에는 백성에 대한 연민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진심은 어떻게 하면 다스리기에 편할까 그것을 고민한 것입니다. 대명률도 한문이고, 통치의 칙어나 소가 모두 한문이었는데, 백성과 군주 사이의 소통이 참 어렵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한글은 통치를 수월하게 하고, 백성들과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후세의 사학자들은 사랑만이 이유라고 하는데, 사랑뿐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세종은 정치적 인간형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책을 통해 좀 더 자세하게 풀어보겠습니다.
세종이 백성에 대한 애정으로 한글을 창제했다는 것은 훈민정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역혀 날마다 쓰는데 편하게 할 뿐이다."



그러나 신 교수님은 세종의 진의가 다음의 글에 더 잘 나타나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예악과 문물이 중국에 비길 만하되, 다만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한문을 배우는 이는 그 뜻을 깨치기 어려움이 고민이었고, 옥사(크고 중대한 범죄를 다루는 일)를 다스리는 이는 그 곡절을 알기 어려움이 병폐였다."



물론 일차적인 동기가 백성에 대한 사랑이었을 수 있지만, 이 시기는 "옥사를 다스리는 이가 그 곡절을 알기 어려울" 만큼 왕조와 기층 백성들을 연결해 주는 소통의 도구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새로 문을 연 왕조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생긴 시대적 요구였습니다. 즉, 백성들을 가르쳐서 더 효률적인 통치를 일궈내야 했다는 것입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는 세종은 '훈민'을 할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문자의 발명'이었다는 것이지요.

세종은 이를 통해서 '용비어천가'를 만들어 왕실의 정통성을 홍보하고, 유교적 질서를 백성들에게 가르치게 됩니다. 또 <대명률> 등을 한글로 번역하라고 지시하는 등 백성들에게 법을 쉽게 이해하도록 만들어 통치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실록을 보면 세종은 "무릇 사람이 죄에 빠지는 것은 그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 나오는 '부민고소금지법' 논쟁 또한 비슷한 맥락입니다. "아랫사람(백성)은 윗사람(수령)을 고소할 수 없다"는 이 법은 관료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세종은 "백성과 수령은 비록 대소의 분별은 있을 망정 군신의 의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백성의 피해를 고소하지 못한다면 실로 억울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백성들이 법을 잘 이해하고 잘 지키는 한편, 이를 통해 잘못된 관리들을 견제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신 교수님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세종의 한글 창제는 아무리 칭송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의 한글 창제 업적은 애민이라는 측면에서 강조하려는 것이 역사학이나 문화사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치사적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즉 그의 한글 창제에 애민의 요소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 그의 진정한 의도는 백성을 가르침으로서 통치를 편의롭게 하는 데 집중돼 있었다. 그는 문자 혁명을 통하여 왕실의 존엄성과 유교 질서를 가르침으로써 건국 초기의 국정을 장악하고자 했다. (...) 창업 26년만에 오른 그는 국초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수성의 군주로서 국가의 기반을 구축하고 민심을 추슬러야 할 책무를 절감했고, 그러한 과업을 위해 백성을 가르치고 설득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러한 과업을 위한 한 방법이 한글 창제와 그를 통하여 백성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물론 신 교수님은 세종이 "백성을 먹여 살리는 것이 군주의 으뜸 가는 덕목이라고 생각하고, 노비와 죄수의 사회적 처우에 대해 깊은 연민을 가지고 있었다"는 등의 업적도 빼놓지 않습니다.

신 교수님의 이러한 주장은 그렇게 충격적인 말씀은 아닙니다. 요즘 TV드라마에 나오는 세종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지요. 욕도 하고 화도 내면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인 통치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실제 인간으로서의 세종의 모습에 가깝지 않은가 싶습니다. 만원짜리에 나오는 세종처럼 신격화된 모습으로는 오늘날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겠지만 그런 모습의 좌충우돌하는 '인간' 세종에게서는 오히려 배울 점이 많을 것입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신격화해서 아무런 비판도 재해석도 가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종이 원하는 바는 아니었겠지요.

비록 드라마 속이지만 '뿌리깊은나무'에서 세종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식견이 얄팍하다는 이유로,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나라 기강이 문란해진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이유로!! 백성들의 입을 막는다면 과인은 대체 어디서 백성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단 말이오."

신 교수님은 예전에도 세종의 공적을 높이기 위해 최만리를 지나치게 깎아내리는 일을 경계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2001년에 동아일보에 연재하셨던 글인데,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십시오.


[신복룡 교수의 한국사 새로보기4]최만리는 ‘역사의 죄인’인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059861

"세종대왕은 훌륭한 분이었고 그를 기리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역사적 인물의 공적을 높이기 위해 다른 인물을 상대적으로 비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만리를 헐뜯는다고 해서 세종대왕의 공적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최만리가 한글 창제를 찬성했다고 해서 세종대왕의 공적이 낮아지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다."


여기에 제기된 반론들도 함께 읽어보세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082393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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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2011.11.27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차피 사람생각이란게 명확하게 이건 이거, 저건 저거다~하고 딱~ 떨어지는 건 아닐테니깐, 이런저런 해석이 따르게 마련이죠.
    (이것도 일종의 양자역학적 성질이려나?ㅋㅋ)

    암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 황한수 2011.11.27 2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종시대는 중국이란 이름의 나라가 없잔아요
    그러니 지금의 중국땅이 아니라 나라의중심(중국) 즉 그당시 한양말씨와 전국의 말이 틀려
    통치하기 어려우니 말을 통일 해야겠다 이렇게 해석해야지요

  3. 누룽지 2011.11.28 0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이시라면, 헤드라인의 중요성에 대해 무척 잘 아시겠네요.
    본문의 의도를 흐트리는 헤드라인은 그 자체로 옳지 못한 일이라는 것도 잘 아시겠네요.
    네이버 일면에, 헤드라인이 "세종, 백성 사랑에 한글 만든 것이 아니다" 라는 제목을 보고 황당해서
    클릭했더니, 다른 내용의 기사와 그 기사 끝에, 링크 제목이 이 포스팅으로 연결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긴글로, 제목과 본문을 오해하지 말아달라~
    는 타이밍을 놓쳐서 이미 불난집에 부채질 하는 모양새가 아닌가 합니다.

    • 순두부 2011.11.28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누룽지님처럼 제목 보고 들어왔다가
      이건 뭥미였습니다. 누룽지님 생각에 별표 5개!

    • anne1979 2011.11.28 1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조회수를 높일 수는 있지만, 내용과 맞지 않을 경우 신뢰감을 떨어뜨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저도 누룽지님 생각에 동의^^

  4. 당신이 2011.11.28 0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히려 세종을 깍아내리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걸로 밖에 안보이는군요.

  5. 나참.. 2011.11.28 0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반도 역사상이 아니라 세계 역사에서 찾아봐도 보기힘든 위대한 대왕이 이런식으로라도 논란의 대상이 되는것 만으로도 참...어이가 없군요..백성을 사랑해서 했던 세종께서 편하기위해 했던 어쨌건 한글을 창시 하셨고 설사 자기 편하기 위해서만 창시했어도 그 업적이 깎일 일인가??

  6. 시민의역사 2011.11.29 0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자의 저술을 가지고 이야기하면서도 학문적 소양은 커녕 민주시민의 소양도 없는 사람들 뿐이군요. 왕조 중심의 역사- 주체성이 결여된 백성의 담론에 대한 비판인데, 세종이 얼마나 성군이고 백성을 사랑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냐는둥.... 세종을 박정희로 인명만 바꿔보슈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한번 극단적으로 말해볼까요? 세종의 사랑받는 백성이 되느니 혼탁한 한국의 투표소에 서겠소. 봉건왕조가 무엇이었고 어떻게 끝났는지 역사는 뭘로 배운거요들 대체. 교육을 환타지로 받는다더니 어디 역사를 사극으로 배워와서는....


12월 5일이면 리영희 선생의 1주기라고 합니다.

시간이 참 빠르네요.
지난해 타계 소식을 듣고 “아 우리 시대 어른이 또 한 명 사라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벌써 1년 전이라니.


저는 리영희 선생의 책을 많이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리 선생을 잘 안다고 말하기는 매우 부끄럽습니다.
그저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할 때 제 이상형이자 로망이자 꿈은 ‘리영희’였습니다.

입사 직전 <대화>(2005)를 읽었는데 ‘읽는 이를 위하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이 긴 시간에 걸친 나의 삶을 이끌어준 근본이념은 ‘자유(自由)’와 ‘책임(責任)’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믿음이었다.
-읽는 이를 위하여


*마지막으로 덧붙일 청이 있다. 이제는 거의 지나가버린 그 시대를 인간적 고통과 분노, 상처투성이의 온몸으로 부딪쳐 살아온 기성세대나, 앞 세대들이 심고 가꾼 열매를 권리처럼 여기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맛보고 있는 지금의 행복한 세대의 독자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고민하고 자신이 그 상황에 직면했거나 처했다면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가치판단을 하고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해 보기를. 그럼으로써 이 자서전의 당사자와 대담자가 책 속에서 진행한 것과 같은 자기비판적 대화의 기회로 삼기를.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나와의 비판적 대화도 가질 수 있기를.
-읽는 이를 위하여


 

 

“기회가 있으면 나와의 비판적 대화도 가질 수 있기를”

이 문장을 읽고 얼마나 리 선생을 만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입사 이후 선생님과 인터뷰를 했다는 선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부러웠습니다.
“아 나도 한 번 만이라도 만나고 싶다”

간절했는지 저에게도 기회가 생겼습니다.
2009년 7월 인권연대 강연에 오신 것이죠.
수습기자 때 알게 된 인권연대 오창익 국장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만나뵐 수 있느냐”고.

오 국장님은 흔쾌히 저녁 먹는 자리에 와서 인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신이 잔뜩 났습니다.
집에 책을 두고 와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사고 마음이 급히 택시를 갔던 날이 기억나네요.

식사 자리에 가서 어색하게 인사를 드리고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경향신문 기자군요. 열심히 하세요”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좋은 언론사이니 더욱 열심히 취재하라는 말씀을 듣고선 괜히 어깨가 곧게 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때도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셨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의 표정을 하나라도 더 보고 싶고 말씀 하나라도 더 듣고 싶어서
강연장 가시는 길까지 따라나섰습니다.

강연 장소인 조계사에 도착했을 때 옆에 계시던 분들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얼마나 기뻤던지. 쑥스러워서 사가지고 갔던 책을 내밀지도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선생님이 “레이디 퍼스트니까”라면서 가운데에 서라고 해주셔서 영광스럽게 찍은 사진입니다.
(아쉽게도 사인은 결국 못 받았습니다;;)

 




강준만 교수는 <각개약진 공화국>(2008)에서 리영희 선생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사상적 일관성’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인의 자기반성

지난날보다 더 지혜로워져야 한다. 이제 이분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상황이 달라지면 지식인은 자기 수정을 해야 한다. 단시일에 바꾸려는 것, 비타협적인 것, 독선, 과격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군부독재 때처럼 무리수를 쓰면서 전면 투쟁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고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시대가 아니다.

2005년 봄에 나온 리영희의 발언이다. 지식사회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리영희는 ‘사상의 은사’라기보다는 ‘성찰의 대부’다. 그가 1991년 1월26일에 행한 ‘사회주의의 실패를 보는 한 지식인의 고민과 갈등’이라는 강연은 ‘성찰의 역사’에서 대사건이라 부를 만했다. 수많은 좌파 지식인, 청년들이 리영희에게 실망을 표시했고 일부는 리영희를 비판, 비난했다.

리영희 스스로 밝혔듯이, “그 당시 『전환시대의 논리』를 관철하는 나의 입장은 마르크스주의나 레닌, 스탈린주의이기보다는 휴머니즘이었”지만, 그의 사상의 제자들은 ‘휴머니즘’을 넘어섰다. 그런 제자들의 비판, 비난에 대해 리영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섣부른 우상이 되고자 했거나, 우상처럼 행세했거나, 그런 것은 전혀 없었어요. 다만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렇게 받아짐으로 말미암아서 후배나 후학들의 시야를 가리게 했다면, 법률용어로 말하면, 미필적 고의라고나 할까요.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에 대해 한 선배 지식인으로서 가슴 아픈 자책이라고 할 수도 있고, 반성이라고 할 수 있고, 미안하다고 할까, 이런 것을 다 합친 감정에 사로잡혀 있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나는 지금 거대한 역사적 변혁 앞에서 지적, 사상적 그리고 인간적 겸허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심경입니다. 그와 동시에, 주관적 오류나 지적 한계가 객관적 검증으로 밝혀질 때, 부정된 부분을 ‘사상적 일관성’이라는 허위의식으로 고수할 생각은 없습니다.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지난 1년간 글을 발표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지요.”

리영희는 자신의 ‘지적 고민’을 속으로만 하고 잠자코 있어도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리영희다.


 

사실 제가 리 선생께 제일 감동받았고 닮고 싶은 부분도 이런 평가입니다.

“자기반성, 자기 성찰”

사소한 자기의 잘못도 “잘못이었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리 선생은 자신의 신념이자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생각’을 수정합니다.

젊은 시절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가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은 사회에
리 선생은 ‘사상의 일관성’이라는 허위의식으로 고수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유연함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걸까요?

거기에 리 선생은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리 선생은 <대화>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90년대 후반부터 나는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내적 갈등이 심해지고 실의와 방황을 겪었어요. 또 변화한 정세 속에서 나의 위치설정이 잘 안 되더구만. 그래서 뭘 쓸 생각을 못했어요. 『역정』이 나간 19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이 나라와 사회에서 일정한 선구적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광주민주항쟁 뒤에는 우리 대중의 의식이 급진전했고, 국민생활과 민족문제의 국가적 위기, 사회적 부조리 전반에 대한 지식인·청년·대학생·노동자들의 문제의식과 인식능력의 수준이 나를 뛰어넘은 감이 있을 만큼 발전했어요. 60~80년대에 걸친 나의 글과 책과 말 그리고 나의 행동으로 계몽되고 ‘의식화’된 후배와 후학들의 역량이 놀라울 만큼 커졌어요. 내가 할 역할은 다 했고, 남은 역할은 내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주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 나라, 사회의 변화와 전진을 지켜보면서, 혹시 요구가 있으면 몇 마디를 해주는 것으로 족하지. “족한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성현의 가르침은 지금 바로 나에게 한 말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수정하고 자기 자신을 반성하는 사람.
“족한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말을 가슴 속에 담고 그를 실천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요.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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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eegoeun.khan.kr 이고은 2011.12.01 16: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영. 관리자 모드로 들어가서 '다음뷰'를 한번 달아봐.

“없는 사람 얼굴 가져다가 있는 사람 위해서 쓰지 마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0·26 재보선이 끝났습니다.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이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고 저녁에도 민생 행보를 이어간다고 하네요.
정말 그동안 시장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했네요. 기대가 많이 됩니다.


맨 위에 쓴 문장은 제가 취재하면서 들었던 가장 잊지 못하는 말입니다.
2009년 여름이었을까요. 저는 서울시를 출입했었습니다.
당시 기업형슈퍼마켓(SSM) 문제를 기획 기사로 다뤄보자는 데스크 지시로 서울 강북 가게들을 취재하러 갔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여러 가게들을 돌아봐야 하는 일이라 가기 전에는 짜증도 났었던 기억이 나네요.
철퍽철퍽 길을 걸어 한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기자라고 소개하니 주인 아주머니는 약간 냉담한 표정으로 “왜 왔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아주머니가 냉담하게 묻자 저도 조심스러워져 “저기 길 너머 SSM이 생겼던데 가게 운영이 힘드시지 않은가...해서...”라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아주머니는 그제서야 얼마나 매출이 떨어졌는지 말씀하기 시작했습니다.
손님들이 더 싼 것을 찾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꼭 우리같은 영세업자들의 밥그릇까지 대기업이 가져가야 하는 거냐, 나는 옷가게를 하다가 가게 옆에 대형마트가 생겨서 망하고 그 다음엔 빵집을 했는데 또 파리바게트가 옆에 생겨서 망하고 3년 전에 이 가게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또 업종을 바꿔야 하느냐, 우리 아들이 대학교 2학년인데 가끔 저 대기업들에 내 아들이 취직은 할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까지 든다... 답답하고 답답하다...

줄줄이 말을 듣는데 점점 더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기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그저
“그러게요... 어떻게 이런 곳까지 SSM이 들어올까요” 정도였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아주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없는 사람 얼굴 가져다가 있는 사람 위해서 쓰지 마요”

갑자기 목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아주머니의 말씀을 들은 이후로
“없는 사람 얼굴 가져다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쓰는 사람”을 보면 울컥 화가 납니다.

저 또한 얼마나 “없는 사람 얼굴 가져다가 있는 사람을 위해서 쓰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지도 되돌아 봐야겠죠.

그래서 이번 선거 과정에서 유독 화가 많이 났습니다.
고가의 피부과를 다니면서 피부 관리를 받는 사람과 하도 구두를 오래 신어서 헌 구두가 화제가 되는 사람.
과연 어떤 사람이 “없는 사람 얼굴을 가져다가 있는 사람을 위해 쓰는 사람”일까요?
어느 트위터 이용자의 말처럼 ‘시궁창’이 ‘수돗물’에게 네거티브를 퍼붓는 것을 보면서 절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디지털뉴스팀으로 오기 직전 사회부에서 종로경찰서를 출입했습니다.
종로서 근처에는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가 있어서 그 세 단체도 제 출입처였습니다.
모두 박원순 신임시장이 만들고 가꾼 단체들이지요.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이 박원순 신임 시장과 단일화 선언을 한 이후 캠프가 본격적으로 꾸려지기 전
제가 박원순 당시 예비후보를 이틀 정도 취재했었습니다.

9월 8일이었던가요.
상임이사로 재직하고 있던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에 사직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헌 구두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뒤였고 박 시장은 “오늘은 새 구두 신었다”며 웃었습니다.
뒤축이 닳을 때까지 구두를 신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은 헌 옷 등 다 쓴 물건을 교환하는 가게, ‘아름다운가게’를 만들었습니다.

그 아름다운가게에 인사를 와서 “저는 괜찮은데…선물로 주신 구두이니 잘 신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부 보수 언론은 강남의 월세 아파트를 사는 박 시장이 ‘서민’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서민이라는 존재가 과연 뭘까요?
저는 소득계층을 따져 서민이냐 아니냐를 묻기 이전에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어디를 바라보고 살아왔는지 말입니다.

사법고시를 패스하고도 인권변호사의 길에 들어선 사람, 참여연대를 만들어 꾸준히 권력감시운동을 펼친 사람,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를 바꿔보겠다며 시작한 아름다운재단 활동, 헌 것을 나눠쓰며 소비문화를 바꿔보려고 노력한 아름다운가게, 그리고 시민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모아 세상을 바꾸자는 희망제작소 활동...

취재하면서 아름다운재단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2006년 박원순 시장(변호사)은 필리핀 막사이사이상의 공공봉사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상금이 5000여만원이었는데 박 시장은 아름다운재단에 전화를 걸었답니다.
“도저히 가지고 올 수 없어 두고 오겠다”며.

항상 기금을 모으느라 고생하는 아름다운재단 관계자가 “재단도 돈이 없으니까 반만 두고 와주세요”라고 부탁했는데도 박 시장은 결국 다 두고 왔다고 합니다.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을 응원합니다.
그가 부디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없는 사람 얼굴 가져다가 있는 사람 위해서 쓰지 않는” 시정을 펼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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