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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이 지나도...

"경제학을 점령하라!"

"경제학이 다루어야 할 것은 곡선이 아니라 인간이다!"

-마드리드의 한 대학 캠퍼스 벽에 새겨져 있는 구호

 

 

 

이번주에 기사로 쓴 <문화유전자 전쟁>(칼레 라슨·애드버스터스 지음/열린책들)

오랜만에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책입니다.


이 책은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지칭되는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주류 경제학자들을 '궤변론자'라고 비난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데요.


칼레 라슨은 <애드버스터스(Adbusters)>지의 창립자이자 편집장.

<애드버스터스>는  ‘광고파괴자’라는 뜻으로, 기존 상업 광고를 뒤틀고 뒤집는 패러디 광고로 유명한 비영리 격월간지. 2011년 7월 9만명에 이르는 이 잡지의 국제 네트워크에 ‘9월17일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라는 내용의 e메일을 보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촉발시켰다.



(칼레 라슨입니다)



윌스트리스트를 점령하자던 저자들은 이제 “경제학을 점령하자”고 말합니다.


책 제목이 특이하죠. <문화 유전자 전쟁>

문화 유전자(meme)는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만들어낸 신조어로 

유전적 방법이 아닌 모방을 통해 습득되는 문화 요소를 말합니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금융 위기가 초래한 불평등에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하는 금융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조리와 벌인 문화 유전자 전쟁이었다면 이제는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대표되는 주류 경제학이 만들어낸 문화 유전자에 저항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 유전자를 만들어내자는 것이지요.




('신고전파 경제학 이곳에 잠들다') @Elicia di Fonzo, Mohsen Mahbob


칼레 라슨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경제학은 놀림감으로 전락했다. 학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제는 일반인들조차 '무능한 경제학'이라고 얕잡아본다..."



이 책은 신고전파가 득세한 이유 중 하나가 '로비'라고 봅니다.


"신고전파 경제학이 부쩍 탄력을 받은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국방부의 후원을 받는 두 기관인 랜드 연구소와 미국 공군이 수리 경제학 연구를 지원하는 대규모 프로그램ㅇ르 싲가한 것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게임 이론을 비롯한 수학적 도구를 국방에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금은 대부분 캘리포니아, 하버드, 프린스턴, 컬럼비아, 스탠퍼드, 시카고, 예일, MIT  등 8개 대학에 돌아갔다. 이 대학들은 대규모 자금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선뜻 경제학과의 학문적 방향을 선회했다. 8개 대학의 비중과 국제적 명성을 보건대, 이 대학들이 신고전파 경제학을 확고한 경제 교리로 받아들이자 서구의 나머지 대학들도 뒤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1960년대 이후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고용된 1000명 이상의 경제학자들은 절대다수가 8개 대학의 교리를 철저히 받아들였다. 따라서 20세기의 마지막 30년과 새천년 들머리에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교리가 전세계를 지배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127쪽)



그러나 신고전파 세계관에 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1년 11월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수업을 거부한 것인데요.

맨큐 교수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상징이죠.

바로 '하버드를 점령하라' 시위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5개월, 하버드에 입학한 지 2개월째인 10대 청소년 샌덜로애슈와 베이어드는 

동료 학생 70명과 함께 맨큐 교수의 수업을 거부했습니다.

"저는 경제학 원론 수업을 듣는 학생에 부로가하지만 경제학의 양면을 접하고 싶었습니다.

경제학자가 되거나 경제학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지식만을 얻은 저 같은 학생들이 경제 정책을 주도하게 될까봐 우려스렵습니다."(베이어드)



<하버드를 점령하라> 시위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렇게 말합니다.

"경제가 건전하려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자신의 시간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출퇴근하느라 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시간을 제대로 쓰는 게 아닙니다."


그외 학자들의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루르데스 베네리아(코넬대학) : 이제부터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생산을 줄여야 합니다. 생산이야말로 지구에 숱한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니까요. 생태 위기가 뜻하는 바는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을 백지 상태에서 다시 사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줄리 메타이(웰즐리 대학) : 나는 소비자로서, 노동자로서, 기업가로서, 부모로서, 시민으로서 미시 경제적 결정을 내릴 때 어떻게 해야 자신과 가족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돈>이라는 가짜 신과 <시장>이라는 지배적 경제 종교를 버리고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표현하고 실현하려면 경제적 권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가르친다. 또한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또한 전체에 의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계몽된 자기 이익을 실현하려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구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할 일을 해야 한다. 진정한 가치를 경제적 결정의 기준으로 삼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다. 


만프레드 막스네프 : 경제학자로서 나의 언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GDP가 약 5% 증가했으니 행복할 거라고 말해야 했을까? 경제학자들은 근사한 연구실에서 빈곤을 연구하고 분석한다. 온갖 통계를 입수하고 온갖 모형을 만들고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들은 가난을 이해하지 못한다.


허먼 데일리 : 성장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경제적 하위 체계가 양적으로 팽창하면 환경 비용과 사회적 비용이 생산의 편익보다 더 빨리 증가하기 때문에, 적어도 과소비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부유해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질 것이다.


테드 트레이너 : 지금의 경제를 끌고 가는 원동력은 부자가 되려는 욕망이다. 이런 욕망이 있기에 정력적으로 방도를 찾고 위험을 감수하고 건설과 개발에 뛰어든다. 가장 확실한 대안은 사회에 필요한 것을 생산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하는 것을 이러한 활동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려면 세계관과 동기 부여 과정이 전혀 달라져야 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혁신과 기업가적 창안, 위험 감수를 이끌어 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즉 소유 욕망을 포기하지 않으면 앞에서 말한 변화를 이룰 수 없다. 


타레크 엘 디와니 : 현 시스템은 우리가 개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타도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것에게 우리가 타도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머리를, 고정관념을 흔드는 문구들이 참 많았습니다.


경제학 책인 줄 알고 펼쳤다가 도발적이고 현란한 이미지들을 보면서 일순간 당황하게 되는데요. 

문자보다 이미지가 많고, 기존 이미지를 비틀고 뒤집습니다. 

독자를 당황하게 만들어 독자들이 익숙해진 경제적 사유 방식에 균열을 내는 게 이 책의 목적입니다.

바로 <애드버스터스>지가 해왔던 전략이죠. 


#석유, 물고기, 숲, 광물 등 지구의 자연 자본을 팔아치우면서 이것을 소득이라 부르는 이유가 뭐죠? 이것은 지구의 살림을 맡은 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잘못 아닙니까?(207쪽)


#50년 안에 세계 인구가 90억이 될 텐데 전 인류의 1인당 자원 사용량이 부자 나라들과 같아진다면 연간 자원 생산량은 지금의 약 8배가 되어야 할 것이다. 90억 인구가 미국식 식사를 한다면 약 4500만 제곱킬로미터의 농지가 필요하지만 지구상의 전체 농지 면적은 1400만 제곱킬로미터밖에 안 된다.(211쪽)




책은 GNP, GDP를 허구라고 공격합니다.


GDP 관점에서 최고의 하루를 묘사해볼까요.


“꽉 막힌 도로에서 휘발유를 허비하고 배기가스에 콜록거리다 결국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어야 했다고 가정해 보자. 교통 체증은 GDP에 기여한 셈이 된다.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박살나고 보험료가 인상되고 거기다 사고 때문에 심각한 교통 체증이 일어난다면 GDP는 훨씬 증가할 것이다. 그날 아침에 값비싼 이혼 수속을 밟고 저녁에 집이 화재로 내려앉아 법률 비용이 발생하고 보험금을 받고 가재도구를 새로 샀다면 ‘GDP 관점에서는 최고의 하루’일 것이다. 만세!”

반면 GDP를 증가시키는 것은 오염, 범죄, 건강 악화, 가족 해체, 자원 고갈이고

자연, 지속가능성, 인간관계, 집안 살림은 GDP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GNP,  GDP를 올리는 일에 목을 매 온 것일까요?








책은 다음 세대 경제학자들의 과제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경제 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계산하고 반영하여 모든 상품의 가격이 생태적 진실을 말하는 세계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


이런 거죠.

"포르투갈에서 화물선을 타고 바다를 건넌 뒤에 트럭으로 우리 동네까지 운반된 가로세로 8센티미터에 길이 25센티미터짜리 크래커 한 상자가 어떻게 1.5달러밖에 안 할 수 있을까?"


자동차를 운전하는 진짜 비용을 계산해볼까요.


차가 내뿜는 탄소의 환경 비용, 도로를 건설하고 보수하는 비용, 교통사고로 인한 의료 비용, 도시 확장으로 인한 소음과 불쾌감, 심지어 주요 유전과 송유관을 보호하는 군사 비용까지 전부 합산한다. 자가용을 사려면 최소 1억원, 휘발유 한 번 주유하려면 30만원은 족히 들 것이다. 운전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운전해도 괜찮지만, 미래 세대나 지구 반대편의 무고한 사람들에게 비용을 전가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부담하는 것이다. 그러면 부자들만이 마음껏 사치를 누리는 세상이 아니라 그 반대의 세상이 될 것이다.(221쪽)




칼레 라슨은 말합니다. 

“옛 아메리칸 드림이 번영을 추구했다면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은 자발성을 추구하리라.” 


책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죠.

 “지구가 다섯 개 있어도 모자라는 당신의 생활방식이야말로 사태의 근본 원인이다.” 


그리고 책은 이렇게 끝맺습니다. “자, 이제 당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