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지지난주 월요일의 일이다.
녀석은 이른 아침, 아니 새벽이라고 불러야 더 적절할법한 그 시각부터 활동에 나섰다. 심상치 않은 낌새였다.
아직 잠도 덜 깼는데, 아니 깨고 싶지 않았는데, 어슴푸레한 빛살 사이로 거실과 안방을 오가는 부산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아빠, 뽀로로랑 포비 구해줘요~"
무슨 소리지? 살짝 눈을 떴다가 녀석에게 걸렸다. '나가자! 나가!' 녀석은 그 새를 놓치지 않고 나를 집요하게 거실로 끌어냈다. 뽀로로 일행들은 녀석의 손에 이끌려 장난감 어린이집 차에 태워진 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뽀로로 일행 역시 피곤이 역력해 보였다.
"아빠, 도미노 놀이해요."
이번엔 젠가 블럭들을 가지고 와서 도미노 놀이를 하자고 했다. 언젠가 젠가 블럭들을 줄세워서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몇 번 재미로 보여줬더니 신기했던 모양이다.
잠이 덜 깬 채 소파에 앉아서 성의없이 몇 개를 세웠다. 민감한 녀석은 이내 또 알아채고 경고를 했다.
"바닥에 앉아서 해요~ 바닥에 앉아서 해요~"
하는 수없이 바닥에 앉아 도미노를 만들었다.
'우와~'
탄성이 터질수록, 뿌듯한 한편으로 또 두려웠다. 몇 번을 더해야 하나... 한 열 번?
갯벌을 보고 신기해하는 두진
주말 내내 같이 지냈더니 두진이는 오늘도 자기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이 논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어제 낮잠을 안 자고 일찍 잠을 청하신 터라 충분한 숙면을 취했는지 에너지가 넘쳤다. 반대로 나는 어젯밤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편하지 않아 늦게 잠들었던 터였다.
그렇다고 녀석과 노는 시간이 긴 시간은 될 수 없었다. 곧 출근을 해야 했고 아이를 처가에 계시는 장모님께 데려다줘야 했다.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으라고 했더니 의외로 잘 신는다.
그런데 나가자고 하면서 바로 출근하는 엄마한테 인사를 하라며 손을 이끄니 아니나다를까 "셋이 같이 가요"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아마 제 나름대로는 엄마, 아빠랑 어디 놀러라도 가는 줄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우는 녀석을 달래려고 일단 아내와 함께 셋이서 나왔다. 그러나 1층에서 엄마와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순간 녀석은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이렇게 헤어지기 싫어서 운 적이 있었던 터라, 그리고 그러더라도 5분 정도 뒤면 울음을 크쳤다고 장모님께 들었던터라 일단 앞으로 나섰다.
녀석은 계속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가기 싫어~~ (엉엉엉)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원래는 같이 손잡고 걸어가면 얼마 안 되는 거리였다. 5분 정도면 충분했다. 그 거리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한손으로는 녀석을 들쳐안고 안고 한손으로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 식은땀을 흘렸다. 너무 힘들어 바닥에 잠시 내려놓았더니, 녀석이 제멋대로 바닥에 거꾸러져서 하마터면 머리를 다칠 뻔했다.
"(엉엉엉) 엄마한테 가자~ (엉엉엉) 저쪽으로 가자~"
녀석은 손을 집쪽으로 가리키며 동네가 떠나가라 큰 소리로 울면서 다시 돌아가자고 외쳤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나를 쳐다보는데 내가 마치 유괴범이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아빠가~ 아빠가~'를 짐짓 강조하면서 말했다. 난 아빠라고...
녀석은 점점 더 크게 울었다. 바라보고 있자니 난감했다. 몇 번이나 멈춰서서 '돌아가야 하나' '회사에 얘기하고 오전만 잠시 봐 줄까' 하고 고민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 어느덧 집과 처갓집 사이에 있는 어린이집 근처까지 왔다. 두진이의 울음소리가 익숙했던 듯 마침 그 시각에 출근을 했던 어린이집 선생님이 창문을 열고 내다봤다.
"두진아 왜 그래~ 두진아~"
선생님을 보자 녀석은 자기를 어린이집에 두고 떠나려 한다고 생각했던 듯 더 크게 울었다ㅠㅠ
얼마나 크게 울었는지, 지나가던 길에 있는 다른 아파트의 경비 아저씨께서 나오셨다. 아이고 왜 우니 하면서 '롯데샌드' 한 봉지를 쥐어 주신다. 과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녀석이건만, 아예 받을 생각도 않고 계속 울었다. 아저씨의 손만 민망하게 됐다.
"어차피 늘 그러셔야 하잖아요. 안타깝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걸 단호하게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요."
그냥 포기하고 집에 돌아갈까 싶은 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진이는 계속, 더 큰 소리로 울고, 마음은 아팠지만 꾸역꾸역 처갓집에 도착했다.
"매일 이렇게 보고 있었구나. 엄마 뒷모습을..."
<미생>에서 몇 번을 봤지만, 볼 때마다 가슴 찡했던 장면... 갑자기 생각이 나서 소장하고 있는 미생 단행본에서 찍어 대충 올렸다.
장모님께 맡긴 뒤에도 계속 우는 아이를 뒤로 한 채 돌아서고 나니까 마음이 허했다. 땅콩크림빵을 하나 사 먹었다. 그래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난 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한다고 아이를 이렇게 떼 놓고 가야 하는 걸까. 물론 알고 있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자리인지를... 내 일을 한다는 것, 생계를 이어나간다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을 테다. 그럼에도 나는 무언가 삽으로 밥을 퍼먹고, 정작 숟가락으로는 흙을 푸는 멍청한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서럽게 우는 너를 억지로 떼놓고 가야 하는데... 차라리 내가 세상을 구하는 일을 하러 떠나야 한다고, 지구를 지키려면 아빠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아빠가 없어서는 안 돼. 두진이가 힘들겠지만, 세상 사람들을 위해 조금만 참아줘. 지구를 구한 뒤 꼭 금방 돌아올게. 두진이는 씩씩한 아이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면 죄책감이 좀 줄어들었을까.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일, 내가 꼭 있어야만 하는 자리라기보다, 해도 해도 허랑한 일들, 매일 반복해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일들, 내가 없어도 되는 자리와 잘 굴러가는 일이 더 많은데... 그걸 위해서 아빠가 너를 두고 간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겠다. 두진아, 그래서 아빠는 오늘 하루도 뭔가 더 더 의미있는 일을 하려고 애쓴단다. 우는 너를 떼놓고 나오더라도 부끄럽지 않도록... 그런 말 정도는 억지로 짜내서 해 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만.
물론 아이는 이튿날부터 또 언제 그랬냐는듯 출근하는 엄마, 아빠와 잘 헤어진다. 나가는 아빠, 엄마 보고 잘 가라고 하이파이브도 한다. 선배들의 말을 들으면 아이들은 조금만 더 크면 혼자있는 시간이 더 좋다면서 아빠, 엄마가 늦게 들어오길 바란다고 한다.
아마도 아주 아주 잠시 동안 아이는 내 품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그 날, 두진이의 우는 모습은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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