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8개월을 지나고 있는 두진이는 요즘 말이 부쩍 늘었다. 제법 의사표현도 할 줄 안다.
한 번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니까, "하무니가 하무니가" 그런다.
"뭐야? 할머니가 뭐라고 하셨어?" 물으니
대답은 없이 집에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가리키며(블루투스 스피커는 녀석이 장난감보다 즐겨찾는 장난감 아닌 장난감이다;;;)
또 "하무니가 하무니가" 한다.
"하무니가가 뭐야 두진아?" 하니까 답답한지 한숨을 쉬면서 또 "하무니가 하무니가"란다.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날 아침에 부지런하게도 5시50분에 일어난 녀석이 잠도 덜 깬 제 엄마에게 놀아달라고 하면서 노래를 들으며 하모니카 어쩌고 했던 게 생각난 거다.
녀석은 엄청난 음악 애호가다. 특히 최근 영화 쎄시봉 ost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래 그거였군' 무릎을 탁 치며, "두진아 하모니카 소리 말하는 거야?" 그랬더니
기뻤는지 크게 웃으며 "네!" 그런다. 역시!
"그래 하모니카 소리 들려줄게" 하면서 스마트폰을 켜서 짚이는 대로 하모니카 소리가 나오는 동요 한 곡을 틀어줬다.
그랬더니 "싫어 싫어 딴 거 딴 거" 그런다.
"이거 하모니카 소린데 두진아~" 그래도 소용없다.
숫제 이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 기세다.
때마침 아내에게 문자가 왔길래 물어봤다.
하모니카 나오는 노래 그게 뭐야 했더니
버스커버스커의 '꽃송이가'란다.
그걸 틀어줬더니 금새 흡족해하며 춤이라도 출 기세다.
노래 중간에 '하모니카 솔로'라고 외치는 부분이 나오자 저도 '하무니가 소로'라고 외친다.
"두진아 이 노래 좋아?" 그랬더니
마치 벽창호가 인제야 말을 알아들었다는듯한 목소리로, 기쁨반 한숨반의 감정을 섞어 '네에~(휴)'하고 길게 목청을 빼면서 큰 목소리로 대답한다.
문제의 노래, 버스커버스커의 '꽃송이가'
나도 그랬지만 제딴에는 또 얼마나 답답했을까.
요즘 그런 일이 부쩍 늘었다. 두진이는 하고 싶은 것, 그만큼 하기 싫은 것도 늘었고 그걸 언어로도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이것저것 말해보는데... 엄마 아빠는 영 외계어를 듣는양 못 알아먹으니... 그래서 두돌 이후에 떼가 는다고 했나보다.
어제는 또 비밀을 하나 풀었다.
가끔씩 '이제 밥 먹을 시간이야 틀어주세요'라고 하는데... 그 노래가 도통 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가사로 검색을 해 봐도 그런 노래는 없다.
"두진아 그 노래 어린이집에서 배웠어? 선생님한테 노래 제목 알려달라고 해서 아빠한테 말해줘~" 그랬더니 묵묵부답이다.
그저 계속 '이제 밥 먹을 시간이야 틀어주세요'란다. 그때마다 '아빠가 잘 모르겠으니 담에 틀어줄게'라고 얼버무리거나 장난을 걸고 간지럼을 태우면서 주의를 딴 데로 분산시키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어제 또 두진이가 똑같은 말을 했다. 주의깊게 들어보니 이번에는 발음이 조금 달랐다.
"이제 밤 머픈 시간이야 틀어주세요."
엥? 조금 달랐다. 계속 듣다보니 떠오르는 노래가 있었다.
두진이가 심취한 쎄시봉 ost 중 '웨딩케이크' 노래 가사
'이제 밤도 깊어 고요한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스마트폰을 켜서 얼른 웨딩케이크를 틀어줬더니 가만히 듣는다.
이거 맞아? 그랬더니 또 "네에~(휴)"란다.
개인적으로는 김희애가 부른 '웨딩케이크'야말로 정말 압권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풀지 못한 문제도 있다. 바로 '사마귀'다.
며칠 전부터인가 두진이는 잠에서 깨자마자 사마귀는 어디 있어요, 그러는데 그 사마귀가 대체 뭔지 모르겠다.
제 할머니집에 있는 모형 방아깨비를 몇 번 보더니 그걸 갖고 그러나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니란다.
설마 한 번도 본 적 없는 진짜 사마귀일 리는 없고.
사마귀 -> 자마기 -> 지매기 -> 귀마개 의 4단 변화인가 싶어서(실제로 녀석은 귀마개를 광적으로 좋아했다. 밟아서 망가지기 전까지는...) 또 그건 아니란다.
하여튼 향후 몇달간 나와 아내의 과제는 그 사마귀의 정체를 밝혀내는 일이 될 것 같다.
수수께끼보다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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