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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 일기

두진이를 보며 나를 돌아본다

설 연휴를 보내고 두진이와 나를 기차역까지 차로 바래다주시던 아버지가 문득 좌석 뒤로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참, 너 어릴 때 하고 똑같다."

사실 두진이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말씀하신다. 장인, 장모께서 보실 때는 아무래도 아이의 모습에서 아내의 어린 시절을 많이 발견하시는 것 같다. 반면 어머니, 아버지가 볼 때는 또 내 모습을 많이 떠올리시는가 보다. 이제 다섯 살배기 아이를 보시며 아버지는 그렇게 내가 아니라 젊은 날의 자신을 떠올리시는지도 모르겠다. 언제 이놈이 커서 또 저만한 애를 낳아 데리고 왔나 하고...

하지만 외모를 빼고, 두진이가 하는 행동들만 본다면 아무래도 나를 더 많이 닮았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녀석은 잠을 잘 때 자꾸만 옆에 있는 사람의 몸 밑으로 손을 쑤셔넣는다. 주로 머리와 목, 몸통 부분을 집중 공략하는데, 손을 넣었다 뺐다 낑낑대면서 생각보다 손이 잘 안 들어가면서 짜증을 내기도 한다. 잠들기 직전 특히 유독 손길이 빨라진다. 무슨 철사장(무협영화에서 뜨겁게 달군 가마솥에 쇠구슬과 모래를 집어넣고 손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는)을 연마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행동은 약간의 애착 행동 중 일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두진이는 엄마 잠옷에 붙은 단추를 광적으로 좋아하기도 한다. 단추를 꼭 잡고서야 비로소 안심했다는 듯 잠이 드는 거다. 단추가 없는 옷을 입으면 역시 또 칭얼대기도 한다. 아이들은 뭔가 그렇게 잠을 자기 전에 집착하는 게 있다고 한다. 이 글을 읽어보니 아이들은 생후 8~9개월이 지나면 엄마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안정감을 주는 특정 물건에 집착하거나 특정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런데, 나도 어릴 때 비슷한 버릇이 있었다. 

잠을 잘 때 뭔가 구석진 곳을 좋아했다. 침대에 모로 누워서 벽 쪽으로 딱 붙은 다음, 벽과 침대 사이의 공간에 손을 쑤셔넣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참 편했다. 그래야 잠이 잘 왔다. 꼭 어딘가에 그렇게 내 몸을 구겨넣듯 '접속'시켜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서늘한 벽이 무슨 진통소염제처럼 마음을 가라앉아 준다. 

한 번 두진이가 자는 모습을 보고 한참을 신기해서 들여다 봤다. 녀석 역시 침대와 벽 사이, 그 좁은 공간에 손을 딱 밀어넣고 곤히 잠들어 있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침대 앞판과 베개 사이의 구석진 곳에 몸을 묻고 자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런 건 괜찮다. 침대에 몸을 구겨넣든, 대자로 뻗어자든 사는데 별 지장은 없다.

문제는, 이런 건 참 안 닮았으면 싶은데 꼭같은 점이 보인다는 거다.

식성이 그렇다. 녀석은 참 몹시도 밥을 잘 안 먹는다. 밥과 잠을 빼면 정말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하는 게 별로 없는 아이인데... 

일단 아무거나 잘 먹지 않는다. 딱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 몇 가지(닭고기 꿀조림, 불고기, 우엉조림, 김, 계란말이) 외엔 입에 대지도 않는다. 밥 밑에 녀석이 잘 먹지 않는 브로콜리 등의 채소류를 살짝 숨겨서 주면 한입 크게 먹었다가도 여지없이 오만상을 쓰며 뱉어낸다. 이것저것 섞어서 볶음밥을 해 주면 그나마 먹는 편이지만, 매일 그럴 수는 없다.

어릴 적 내가 꼭 그랬다. 라면에 들어간 미역(혹은 파)을 모두 골라내고 먹을 정도였다고 하니... 맨날 비엔나 소세지, 미니 돈가스, 케첩 비빔밥을 주식으로 하고 살았다. 보다못한 어머니가 제발 김치하고 밥 좀 먹어라, 김치하고 밥 먹으면 로봇 장난감 사 주마고 하셔서 꾸역꾸역 먹었는데, 결국 구역질을 하며 뱉어낸 적도 있다. 그만큼 비위가 약했다. 편식하는 버릇은 고교 때 학교급식을 하고 나서 어느 정도 나아졌던 거 같다. 다들 아무거나 잘 먹는데, 그걸 보니 왠지 부끄러워서 이것저것 집어먹다 보니 그나마 잘 먹게 된 거다.

녀석의 엄살 떠는 모습을 지켜볼 때도 꼭 나를 보는 것 같아 정말 헛웃음이 나온다.

지난 번 녀석은 문 사이에 손이 끼어서 새끼손가락 손톱이 빠진 적이 있었다. 물론 손톱이 빠졌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문제는 손톱이 거의 다 자라나고 나서도 아프다며 계속 붕대를 감아달라고 하는 것이다. 붕대가 빠지면 자다가도 깨서 다시 끼워달라고 칭얼대기도 했다.

감기 때문에 소아과에 갔다가 의사선생님이 상처를 보자고 하니깐 절대 안 된다며 난리다. 겨우 붕대를 빼고 상처를 본 선생님이 '이제 안 아플 것 같은데' 하니깐, 그래도 막무가내로 아프다며 붕대를 감아달라고 울고불고 한다. 선생님이 밴드를 발라주고 나서야 진정했다. 나 역시 엄살은...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

신중한, 혹은 소심한/겁 많은 행동 패턴도 그렇다. 녀석은 어린이집에서 체육, 음악수업 같은 실제 몸으로 참여하는 수업을 하면 항상 뒷짐지고 친구들 뒤에 서 있다가 마지막이 되어서야 나선다고 한다. 어린이집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늘 친구들 뒤에 숨어있다;;; 나 역시 앞장서는 것을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 편이다;;;;;

두진이는 전기 콘센트에 각종 코드를 끼웠다 뺐다 하는 걸 좋아한다.(물론 전기에 연결하지 않은 빈 콘센트다) 그러다보니 진짜 전기 콘센트에 꽂혀 있는 기구들을 늘 빼서 갖고 놀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기 기구를 만지지 말라고 한 번 주의를 주었더니, 절대 만지지 않고 나보고 늘 빼달라고 한다. 한 번쯤 호기심을 갖고 만질 법도 한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큰일나' 하면서 안 만지는 것이다. 김 봉지에 들어있는 실리카겔도 '먹으면 큰일난다'고 겁을 주었더니 그 다음부터 '절대 먹으면 안 돼, 먹으면 죽어"라고 한다;;;; 두진아, 내가 '죽는다'고는 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ㅠ

또 한 번은 제 엄마랑 친구 집에 가서 그 집 아이의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빼앗겼는데, 직접 뺏을 생각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 엄마한테 와서 "빼앗겼다'고 하소연했단다. 직접 가서 달라고 말은 못하고... 뒤늦게야 엄마한테 와서 이르는 그 소심함이란... 나 역시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굉장한 소심증에 겁도 많다. 밖에 나가기도 전에 감기 걸릴 걱정부터 하는, 늘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걱정하는 탓에 지청구도 많이 먹는다. 

어머니한테 이런 두진이 얘기를 해 줬더니, 넌 그래도 장난감을 그저 빼앗기고 가만있진 않았다고 하셨다. 남의 장난감도 너무 '내 꺼'라고 떼를 쓰며 양보하지 않아서 결국 사 줄 수밖에 없었다고... 아무래도 두진이는 나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것 같아 걱정이다ㅠ

녀석이 커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나 자신 또한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 하는... 사실 자꾸만 그런 모습을 보려고 해서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커 가면서 나와 같은 모습보다는 다른 모습을 더 들여다보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