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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 일기/폭풍육아

[맘편한 세상을 위하여]8주간의 방학 ‘막아내기’ 이러니 다들 경단녀가 될 수밖에

■ 아이의 방학을 막아내는 방법 

 

첫째 두진이가 일곱살이 되었다. 그리고 유치원이 겨울방학을 했다. 자그마치 5주간. 2월 초에 일주일 동안 등원했다가 3주간 다시 봄방학이다. 총 8주의 방학. 두 달이다. 12월 내내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어떻게 8주를 막아낼 것인가. 두진이는 “엄마, 언제 방학해? 얼른 방학했으면 좋겠어”라고 했지만 난 속으로 ‘큰일이다 큰일’을 외쳤다. 


 

이렇게 된 것은 두진이를 종일반에 넣지 못했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이기 때문에 종일반 대상이지만 하필 종일반을 신청해야 하는 지난 3월 둘째 육아휴직 중이어서 대상에서 제외됐다. 공교롭게도 내 복직은 8월 중순. 아이를 종일반에 다니게 하기 위해 3월에 복직할 수도 없는 애매한 때. 둘째가 돌도 안됐을 때였다. 눈물을 머금고 종일반을 포기했다.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두진이는 매일 오후 1시30분에 하원한다. 아이는 하원하고 우리 부부가 퇴근할 때까지 외할머니와 함께 있다. 친정엄마가 아이를 돌봐주지 않았다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9주짜리 달력을 만든 후 머리 싸맸다 
친정 엄마를 꼼짝 못하게 할 수 없으니
시댁에 SOS…시댁이 가까우면 좋을텐데
 

9주짜리 달력을 만들어 지난해 12월31일부터 3월3일까지 날짜를 적어넣고 머리를 싸맸다. 8주간이나 친정엄마를 꼼짝 못하게 할 수는 없으니 시댁에 SOS를 요청했다. 시댁은 경북 구미다. 가끔은 시댁도 서울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경기도쯤만 되었더라면. 그럼 친정 부모님에게 쏠리는 육아 부담을 나눠주실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드니 속에서 또 불이 난다. 부모에게 독립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너무 의존적’이라는 말을 쉽게 하는 누군가들의 말이 떠올라서. 나도 부모님들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고 싶다, 정말. 


 

“두진아, 방학하면 구미 갈래?” “응, 좋아!” 아이가 흔쾌히 구미 할머니집에 간다고 하니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건지. 시어머니께 말씀드리고 두진이를 열흘간 구미에 보내기로 했다. 친정엄마는 “구미에 보낼 필요 없어. 두진이는 이제 다 커서 괜찮아”라고 하시지만 내 마음이 편치 않다. 두진이가 구미에 간다고 해도 둘째 이준이는 친정엄마가 돌보셔야 한다. 그나마 어린이집 방학은 12월 마지막주여서 이제 끝났다. 두진이가 유치원에 안 가면 친정엄마는 하루종일 운동도 못하고 아이에게 매여있어야 한다. 엄마는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하는데. 그렇다. 나는 무릎 안 좋은 엄마에게 아이를 맡긴 ‘이기적인’ 불효녀다. 


 

구미 가는 날짜에 화살표를 그려넣었는데, 왜 그렇게 빈칸이 많은지 다시 시어머니에게 SOS. “어머님, 두진이 설 일주일 전에 내려보내서 저희 올라올 때 함께 데려와도 될까요?” “당연히 괜찮다”는 답을 듣고 다시 화살표를 그려넣었다. 그래도 아직 많이 남은 빈칸. 남편과 내가 5일씩 쓸 수 있는 겨울휴가를 쪼개 일주일씩 아이를 보기로 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경단녀가 제일 많이 생긴다는 초등 1학년 
내년엔 남편이 육아휴직 하기로 했지만
우리의 ‘가계부채’ 상황으론 여의치않다
 


 

■ 경단녀가 만들어지는 구조 

거창한 겨울휴가 계획 같은 건 없었지만 서운했다. 가족이 같이 휴가도 갈 수 없는 구조 아닌가. 그래도 내 휴가보다는 친정엄마의 건강이 몇만배 중요하지. 남편이 “이준이가 이제 19개월인데 어딜 가. 이번에는 집에서 시간 보내자”라고 말했다. 그래, 어차피 19개월 된 아이와 집 밖에 나가봤자 고생스러울 테니. 그렇게 구미 가는 날, 남편 휴가, 내 휴가를 화살표로 그려 채워넣으니 친정엄마 숨통을 조금 틔워드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림이 나왔다. 그랬더니 친정엄마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 하신다. “그럼 엄마! 황 서방 휴가 이틀만 나랑 같이 써도 돼요?” 그렇게 ‘일월화’ 2박3일의 휴가를 만들어냈다. 역시 믿을 사람은 친정엄마뿐이다. 엄마가 없으면 내 새끼를 어찌 키웠을꼬.


 

지금 생각해보면 참 멍청했다 싶은 게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가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 걷지 못하는지 몰랐다. 적어도 열 살까지는 혼자 있을 수 없는 미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아이를 낳아도 돌볼 시간을 주지 않는 이 사회에서 나는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 어쩌면 친정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해 아이를 기르고 있다. 늘 친정엄마의 건강을 염려하며. 


 

문제는 이 방학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장 내년에는 두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아, 그 경단녀가 가장 많이 생긴다는 초등 1학년을 맞게 되는 것이다! 오전 11시40분 유치원 하원 시간보다 빨리 끝난다는 3월.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지만 준비물을 챙겨야 하고 아이 적응을 도와야 한단다. 아이도 혼란스럽고 엄마는 더 정신없다며 주변 선배 엄마들이 잔뜩 겁을 준다. 두진이 유치원 친구 엄마가 말했다. “두진이 엄마는 두진이가 첫째죠? 첫째가 유치원 다니면 아직 회사 다닐 때죠. 전 결국 둘째가 초등학교 가면서 일 포기했잖아요. 1학년 때는 감당이 안돼요. 학원 뺑뺑이도 정도가 있죠. 첫째는 어찌어찌 버텼는데 둘째까지 1학년이 되니 안되겠더라고요.” 


 

난 이미 육아휴직을 다 사용했으니 쉴 수 없다. 남편이 쓰지 않은 육아휴직은 남아 있다. 예전부터 초등 1학년 때는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었다. 한 6개월 정도만 쉬면 되지 않을까. 그러다 얼마 전 월급날 깨달았다. 우리의 ‘가계부채’ 상황으로는 그렇게 오래 쉴 수 없다는 것을. 서울에서 일하며 살기 위해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주거비. 빚을 갚는 일정을 따져보다가 남편 육아휴직이 가능한지 의문이 생겼다. 


 

정부의 여성 일자리 5년 로드맵 
방향 맞지만 어떻게 실효성 있게 할지…
근본적으로는 노동시간 줄여야
 


 

아이를 키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시간을 사기 위해서는 월급을 포기해야 하는 역설적 구조. 육아휴직 급여가 좀 많았다면 덜 고민했을 텐데. 남편이 말했다. “정 그러면 한 달이나 두 달만 쉴까?”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두진이 하원은 다시 친정엄마가 해야 해? 아니 두진이 학교 적응을 부모인 우리가 도와야 하는 것 아니야?’ 말할 순 없었다. 그걸 말하면 서로 답답해질 뿐이니까.


 

■ 아이를 키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부부가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직장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 전 대통령이 “여성이 결혼, 출산, 육아를 하면서도 자신의 일과 삶을 지켜나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근본적인 저출산 대책”이라고 말한 것을 봤다. 방향은 잘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여성 일자리 5년 로드맵은 아쉬웠다. 남성들의 출산휴가를 사흘에서 열흘로 늘리고 두번째 육아휴직자 급여를 올리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확대하는 방향은 맞다. 그런데 이 제도가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까. 실효성 있는 수단이 담보되지 않으면 ‘허언’이 된다. 우리의 제도가 늘 그랬듯이. 


 

여성 육아휴직도 허용하지 않는 사업장이 많다. 어떻게 제도를 실효성 있게 가져갈 것인가가 ‘답’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 있을 수 없는 아이 옆에는 어른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어른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 아빠가 야근하느라 아이를 키울 수 없으니 엄마가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사회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 엄마가 ‘자아실현’하기 위해 직장에 다닌다는 건 배부른 소리다. 주거비, 치솟는 물가 등 때문에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사회가 됐다.


 

아빠, 엄마가 조금씩 일찍 퇴근해 아이를 같이 돌볼 수 있다면. 아이를 키우는 데 시간을 써도 경력이 끊기지 않고 경제적 손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면. 당장은 시차출퇴근제만 현실화돼도 경력단절, 할머니 육아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아빠가 오전 10시에 출근하기 전 아이를 기관에 맡긴 뒤 오후 7시 퇴근하고, 엄마가 오전 7시에 출근하고 오후 4시 퇴근해 아이를 기관에서 데려올 수 있다면. 그렇다면 할머니 손을 빌리지 않고 아이를 기를 수 있다. 엄마·아빠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쓸데없는 야근과 회식, 주말 근무만 없애도 아이 키우기 나아진다고. 근본적으로는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 ‘루피’ ‘로디’ 친정엄마의 낙서 

다섯살 때 주로 보던 뽀로로 책을 두진이가 오랜만에 가져와 읽어달라고 했다. 책을 읽어주다 멈칫 했다. 뽀로로 캐릭터들 중에 ‘루피’와 ‘로디’에 친정엄마 글씨가 써 있었다. 익숙한 엄마의 필체. 뽀로로 캐릭터가 너무 많으니 루피와 로디 이름을 외우시기 어려웠나 보다. 아이들을 재운 뒤 나는 혼자 울었다. 엄마는 내 아이들을 돌보는 데 정성을 다하고 있는데 난 뭘 하고 있는 건가.


 

두진이가 요즘 한글에 부쩍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퇴근해 들어오면 스케치북이나 종이를 들고 와 “엄마, 같이 글씨 쓰자”라는데, 난 늘 말한다. “엄마 씻고 하자.” 그런데 씻고 나면 너무 피곤하다. 이미 밤 9시. “엄마, 놀자”라는 말에 “두진아, 침대에서 놀자” 아니면 “두진아, 이제 자야 할 시간이야. 주말에 실컷 놀자”만 반복하는 바쁜 엄마. 그게 나다. 


 

친정엄마가 두진이가 관심 보이는 한글 책을 사다가 같이 하시는 모양이었다. 연필을 잘 잡아야 한다고 몇 번이나 일러주시기에 나는 괜히 “엄마, 요즘에 연필 얼마나 쓴다고. 그냥 편하게 잡게 해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느 날 두진이가 연필 잡는 걸 보니 웬걸. 바르게 잘 잡고 있는 것 아닌가. “엄마, 연필은 이렇게 예쁘게 잡는 거야.” 아이가 오히려 내게 연필 잡는 법을 일러주는데 또 눈앞이 흐려졌다. 믿을 사람은 엄마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온 사회가 아이를 돌보기 어렵게 만들어도 엄마 덕분에 아이를 기르는구나 싶어서. 


 

크리스마스 때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택배로 주문했다. 택배로 오면 아이들이 신나서 열어보자고 할까봐 친정엄마 집으로 배송해달라고 요청했다. 예상치 못한 택배가 오면 ‘뭐지’ 하실까 해서 전화를 걸었다. “엄마, 택배 하나 올 거예요. 애들 크리스마스 선물.” 예상치 못한 엄마의 답변. “내 선물은 없냐?” ‘아차’ 싶었다. 그렇게 엄마를 고생시키면서 정작 엄마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 이기적인 불효녀라니. 

 

그렇지만 엄마 체력을 축내며 아이를 기르는 ‘불효녀’가 된 게 내 잘못은 아니다. 나를 탓하며 주눅드는 일은 그만할 것이다. 그래서 함께 말해야 한다.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내 아이들은 내게 미안해하며 아이를 기르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051731005&code=210100&sat_menu=A073#csidx08ac0c3be42b206a8e6f2941776f3f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