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부부가 함께 육아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임아영

우리는 2012년 12월 3일 부모가 되었다. 첫 아이를 낳고는 ‘멘붕’의 연속이었다. 분명 아이를 낳은 것은 남편과 나였는데, 어느 순간 친정엄마와 아이를 기르고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다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할머니가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집은 그나마 좋은 조건이라는 것을 되새기며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2016년 둘째 아이가 태어났고 나는 두 번의 육아휴직을 했다. 2년의 시간 젖을 주고 온몸으로 아이를 기를 때 외로웠다. 온 사회가 아이는 엄마가 기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을 때면 여자인 것이 너무 싫어서 소리내어 울었다. 회사와 아이들 사이에 끼어있다는 생각이 들어 괴롭고 친정엄마가 육아로 인해 힘들어보이면 내 분노의 화살은 남편을 향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남편과 나는 함께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애썼다. 임신한 것을 알고서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고 싶어 #수중분만 을 하는 병원을 찾아냈다. 무엇보다 #출산 의 순간 남편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큰 욕탕처럼 생긴 곳에서 남편이 아내를 뒤에서 안은 자세로 진통을 한 뒤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임신하면서 배가 부르자 사람들은 간혹 말했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잘 크지, 아이들은 엄마들을 더 많이 찾으니까.

두려웠다. 아이가 나를 더 많이 찾을까봐. 그래서 더 안간힘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뭐든지 함께 하겠다고. 입사 동기로 회사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데 아이를 낳은 뒤 내 처지가 달라질까 두려웠다. 임신과 출산이 내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두려웠다.

그렇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를 낳기 2주 전쯤 출산휴가에 들어갔을 때였다. 아이가 크다며 걱정을 하던 의사선생님은 계단을 많이 올라가라 했다. 중력의 힘으로 아이가 많이 내려올 수 있도록. 겨울이었고 #출산휴가 중이었던 내 옆에서 계단을 걸어주던 사람은 ‘친정엄마’였다. 결국 아이를 #제왕절개 수술로 낳아야했고 남편은 수술방 바깥에서 기다려야 했다. 남편은 옆에 있어주고 싶어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남편의 출산휴가는 3일 뿐. 다시 전일 임금노동을 하기 위해 회사를 간 남편 대신 내 옆에 있어준 것은 #친정엄마 였다. 그 이후 아이를 키우는 내내 그랬다. 남편은 항상 최선을 다했지만 육아의 공백을 채우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친정엄마였다.

친정엄마는 집에서 ‘두 회장님’이라고 불린다. 희귀성을 가진 엄마는 6명의 직원(?)을 전적으로 돌보는 회장님이다. 돌봐야 하는 식구가 한둘이 아니다. 나와 남동생, 나의 아들들인 2명의 손자에 사위, 그리고 남편까지. 지난 겨울 엄마가 많이 아팠다. 어깨, 무릎, 이까지. 하루에 3군데 병원을 다닌다는 엄마 얘기를 듣고 나는 괴로웠다. 내 아들들이 우리 엄마의 무릎을 축낸 것만 같아 괴로웠다. ‘할머니 육아가 5년을 넘어섰는데 탈이 나는 게 당연하지.’ 한편 커가는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을 원할 때면 질문이 올라왔다. ‘도대체 나는 왜 회사를 다니는가.’ 회사를 다니는 답을 찾을 수 없을 때면 일하는 이유를 하나둘씩 지우기 시작했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남편이 #육아휴직 을 하기로 했다. 꼬여 있는 많은 것들이 풀릴 수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친정엄마가 무릎을 돌볼 시간이 생기고 초등학교에 가는 큰아들이 아빠의 안정적인 정서적 지지 아래에서 적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직 34개월 밖에 안된 둘째가 안아 달라고 할 때면 튼튼한 아빠가 안아줄 수 있다는 것을.

2019년 3월 남편이 드디어 육아휴직을 했다. 그제 둘째가 코감기가 심해 자다가 계속 기침을 했고 조금 토했다. 나도 모르게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애가 아픈데 뭐가 다행이야?” 남편이 놀라기에 말했다. “내일 열 나면 어린이집 못 갈 텐데. 남편이 애들 보니까 안심하게 맡기고 갈 수 있잖아. 엄마한테는 미안했지만 당신한테는 미안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래서 다행이라고.”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서야 나는 우리 부부가 함께 제대로 육아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꼭 있어야 하는 자리, 그것이 아빠니까

황경상

아이를 키우면서 잊히지 않는 장면이 몇 개 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첫째가 어렸을 때다. 그날따라 녀석은 새벽같이 일어나 놀아달라고 했다. 신나게 놀다가 출근해야 하는 시각이 됐다. 엄마, 아빠와 함께 현관문을 나서는 것까진 좋았다. 어디 나들이라도 가는 기분이었던가 보다. 1층에서 출근하는 엄마와 헤어지는 순간 울기 시작했다. “가기 싫어~~ 엉엉엉~ 집에 가자~”

금방 울고 그칠 줄 알았는데 울음소리는 더 거세졌다. 나 역시 출근을 해야 해서 가까이 사시는 장모님께 어린이집 등원을 부탁드려야 했다. 원래는 같이 손잡고 걸어가면 5분도 안 되는 거리였다. 한손으로는 녀석을 들쳐 안고 한손으로는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 식은땀을 흘렸다. 녀석은 “엄마한테 가자~ 저쪽으로 가자~” 하면서 동네가 떠나가라 울어댔다. 마치 유괴범이 된 느낌이어서 우는 아이를 달래며 짐짓 ‘아빠가~ 아빠가~’를 강조했다. 짧은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녀석은 점점 더 크게 울었다. 몇 번이나 멈춰 서서 ‘그냥 돌아갈까’ ‘회사에 얘기하고 오전만 잠시 봐 줄까’ 하고 고민했다. 그러다 마침 출근을 하시던 어린이집 선생님과 마주쳤다. 사정을 설명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차피 늘 그러셔야 하잖아요. 안타깝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걸 단호하게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요.” 고개를 끄덕였다. 울음소리는 더 커졌고 마음은 더 아팠지만 장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꾸역꾸역 돌아섰다.

마음이 허했다. 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한다고 아이를 이렇게 떼 놓고 가야 하는 걸까. 물론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자리인지를 안다. 내 일을 한다는 것, 생계를 이어나간다는 것의 중요함도 안다. 그럼에도 그 순간에 나는 무언가 삽으로 밥을 퍼먹고, 정작 숟가락으로는 흙을 푸는 멍청한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서럽게 우는 너를 억지로 떼놓고 가야 하는데, 이런 말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빠는 세상을 구하는 일을 하러 떠나야 해, 지구를 지키려면 아빠가 없어서는 안 돼. 두진이가 힘들겠지만, 세상 사람들을 위해 조금만 참아줘. 지구를 구한 뒤 꼭 금방 돌아올게. 두진이는 씩씩한 아이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면 죄책감이 좀 줄어들었을까.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일, 내가 꼭 있어야만 하는 자리는 많지 않다. 해도 해도 허랑한 일들, 매일 반복해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일들, 내가 없어도 되는 자리와 잘 굴러가는 일이 더 많다. 그걸 위해서 아빠가 너를 두고 간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나마 회사에서 널 생각할 때마다 너를 떼놓고 나온 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애쓴다는 정도는 억지로 짜내서 해 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물론 아이는 이튿날부터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출근하는 엄마, 아빠와 잘 헤어졌다. 잘 가라고 하이파이브도 했다. 선배들의 말을 들으면 아이들은 조금만 더 크면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좋다면서 아빠, 엄마가 늦게 들어오길 바라기도 한다고 했다. 아마도 아주 아주 잠시 동안 아이는 내 품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그 날, 두진이의 우는 모습은 한동안 뇌리에 남았고,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육아휴직을 하게 된 건 여러 이유가 있었다. 첫째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시기가 됐다. 수줍음이 많은 녀석이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학교에서 잘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두 손자의 말썽 탓에 요즘 부쩍 힘들어 보이시는 장모님의 짐도 잠시나마 덜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 있던 그 날의 기억도 한몫한 게 아닐까 싶다. 부모와의 시간을 그렇게 갈구하는 아이들인데, 언젠가는 좀 더 여유를 갖고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야 겠다는 생각이 그 날 이후로 내 머릿속에 각인된 것 같다.

 

빗물 가지고 장난하다 옷 다 젖고 아빠한테 끌려(?)가는 아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이 이제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즐거운 한때를 만끽하는 장면이다. 아버지와 어린 아들은 해변가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논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이 장면을 보면서 많이 울었다. 앞으로 주인공은 그 아버지와의 추억을 밑천 삼아 인생을 견뎌나가지 않을까.

그 해변가의 놀이처럼, 아이들과의 순간은 매우 짧다. 매 순간순간이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어떻게 해도 돌아오지 않는다. 늘 우리는 아침에 만나 저녁에 이별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만난 녀석은 어제의 녀석은 아니다. 매일 아침 ‘지금 너를 만나러 여기 왔어’라는 심정으로 살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물론 잘 놀아주지도 못하고 늘 윽박지르기나 하는데다 진득히 지켜봐 주는 참을성도 없는 부족한 아빠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아이가 물어본다면 이 짧은 육아휴직 덕에 그나마 대답할 수 있을 거다. 아빠는 늘 너희와 시간을 더 보내려고 노력했다고, 어린 시절의 너희와 보냈던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이다.

 

[출처] 드디어 아빠가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부부 육아일기 1화]|작성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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